[기 도]

사랑의 아버님, 오늘은 이달을 맞이하여 세번째 맞는 안식일이 되옵고, 또한 이날은 이 나라에 있어서 잊혀질 수 없는 4·19의거의 기념의 날도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이 시간 축복하시옵소서. 처하여 있는 내 자신이 엄숙하신 당신의 존전에 서 있는 스스로를 살피면서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내 몸은 어디로 향하는가. 몸과 마음의 자체가 어디에 머물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면서 높고 귀하신 당신 앞에, 깊고 넓고 높으신 당신의 사랑의 품에 품기려는 순진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흠모하며, 당신 속에서 기쁨의 반영의 실체로서 잊혀질 수 없는 하나의 아들과 딸이 될 수 있는 모습을 그리워하며 이 시간에 모였사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기나긴 역사노정 위에 내 한 생명의 존재를 세워 놓고,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와 같이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를 심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가치적인 대상의 실체로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즉각적인 면에서 느끼지 못하였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가치적인 상대 실체라고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자각된 자리에서 아버지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를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땅 이곳을 향하여, 전세계 통일의 무리들이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마음으로 통곡하면서 만남의 기쁨을 갖고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흠모하는 심정에 사무친 모든 자녀들을 그 어떤 환경과 역경과 처지에 있든지 당신이 주관하시고 인도 하시옵소서, 오늘이 기쁘신 한 날이 되고, 축복의 은사와 더불어 생명의 인연을 다짐 지을 수 있는 이날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뭇 자녀들을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를 고이 당신의 존전에 현현시킨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어 주시길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제목은 '만남'입니다. 만남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제나 환경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인간생활

우리들은 내 개인으로서만 살 수 없습니다. 반드시 환경적 요건과 대인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을 집약해서 말하면, 가정을 중심삼은 소유관계와 같은 환경을 초월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한 자신이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어렸을 적부터 혹은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역사가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남아짐과 동시에 반드시 환경적 여건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 나가는 것이 인간생활입니다. 이것을 크게 말하면, 나라도 그러한 입장에 있고, 세계도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말을 빌려 말하면, 전체의 섭리를 추진하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 천주라는 대우주를 두고 봐도 그와 같은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여기 오기 위해 옷을 입었을 거예요. 옷을 입었으면, 옷 그 자체도 하나의 만남입니다. 만물과의 만남이다 이거예요. 혹은 일어나서 물을 마시면 그것도 하나의 만남입니다. 그것도 만물과의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과의 만남입니다. 또, 내가 오늘 아침에 이러한 환경에 머물게 될 때는 이 환경을 중심삼고 서로서로가 만난 겁니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것도 하나의 만남이다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엮어진 인연을 중심삼은 모든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보다 가치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가치 있는 기준으로서 나와 인연을 맺으면서 전진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생활이요 생애가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하루의 생활을 중심삼고, 혹은 일생을 중심삼은 생애를 통해 가지고 관계된 그 모든 사연들을 통해서 나는 전진하고 나는 발전한다 이거예요. 그리고 내 가치적인 내용에 있어서 내실의 충실과 외부의 충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남의 중요한 그 가치적 내용이 뭐냐? 여러분들이 생각하기를,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필요하고, 남편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부부를 중심삼고는 자녀가 필요하다. 또 나를 중심삼고 볼 때, 나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 고 할 것입니다. 이런 환경적 여건에 대해서 볼 때 그 내용이 뭐냐? 그렇게 만나서 살고 만나서 엮어지는 역사노정, 생애의 걸음걸이가 무엇을 내용으로 하고 움직이는 것이냐? 이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만남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

혹자는 지식을 중심삼고 그러한 만남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혹자는 권력을 중심삼고 이런 만남의 내용을 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금전(金錢)을 중심삼고 만남의 가치를 추구할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벌어진 모든 환경적인 여건을 보게 될 때에, 우리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뭐냐? '지식을 좋아한다, 공부해야 되겠다' 하고, '금전이 필요하니 돈을 벌어야 되겠다, 그다음에는 '출세를 해야 되겠다. 권력이 필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든 것이 과연 우리의 이 만남의 생활 가운데서 중심으로 미쳐질 것이냐? 이렇게 볼 때,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요즈음에 보게 되면, 지식을 가진 학자들도 65세가 넘으면 정년퇴직을 합니다. 그럴 때, 그 정년퇴직을 한 유명한 박사들도 인생의 내리막길에 서게 되는 겁니다. 거기서 자기가 학문을 즐기며 추구했던 모든 기쁨이 내려가는 인생의 행로를 거슬러 가지고 미래의 소망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돼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또 금전을 중심삼고 볼 때, 나이 60이 되고 70이 되어 이제 영계에 갈날이 가까워 오면, 그 돈이 과연 그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갈 때 소망의 어떠한 뒷바라지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되어 있느냐 하면, 그것도 그렇지 못합니다. 권력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이라는 것도 일시적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지, 내 일생을 끌고 어렸을 적부터 노년시대를 거쳐 가지고 사후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돼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것들은 일시적인 면에서 필요하고, 사회환경적 여건에 접촉할 수 있는 내 한 자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요건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것이 전체의 인생의 목적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고, 또 우리 생애에 바라는 하나의 이상의 가치기준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인생은 어디로, 무엇을 만나러 가야 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예요. 남자나 여자는 서로 무엇을 중심삼고 만나려고 하느냐?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만나는 것이냐? 혹은 원리를 중심삼고 만나는 것이냐? 혹은 같은 동료들로서 같이 일하는 자리에서 서로 아니까 만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 가운데에는 깊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 만남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뜻을 가지고 그런 내용의 추구를 위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되어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게 뭐냐? 이렇게 볼 때,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을 당연히 표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을 표준으로 안 삼을래야 안 삼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사랑을 중심삼고 만난다 할 때는 이것을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요, 환경에 있어서도 바라는 것이요, 미래의 있어서도 소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거예요. 이것은 과거 사람이나 현재 사람이나 미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혁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인간 세계의 모든 만남의 기원은 파괴될 것이고, 그 만남의 기원이 파괴되면 이상적 실체가 존속할 수 있는 터전이 파괴됩니다.

사방으로 사랑의 인연의 파문을 넓혀 나가야

그러면 우리가 안식을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은 이러한 전부를 무엇을 중심삼고 시작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보면,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되는 요점으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어떠한 것을 보는 데나 만나는 데에 있어서 그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되겠느냐? '서로서로 주체 대상 관계로 그렇게 만나는 것이다' 하면 무의미한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듣는 데에 있어서도 그렇고, 느끼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것이 개재해 가지고 이것이 인연이 되고, 엉켜지고 뗄 수 없는 것으로 수습되느냐? 그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보는 데도 사랑을 가지고 보는 것이요, 듣는 데도 역시 사랑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듣는 것이 우리의 제일 큰 바람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혹은 말하는 것, 느끼는 것, 감각으로 체휼되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되어질 때에 '좋다' 그럽니다. 좋다는 기준, 이 좋다는 기준을 무엇으로 결정하겠느냐? 이런 사랑의 내용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가지고 그 인연의 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 때, 그 자리에 있어서 '좋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좋다는 것은 일시적이면 되느냐?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엇인지 모르게 좋은 사실이 영원으로서 하나의 파장이면 파장, 파문이면 파문과 같이 확장되어 갈 수 있고, 그 확장됨이 전체에 환영받을 수 있는 것으로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이것이 사랑이라는 파문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진 모든 인연과 나타나는 작용적 현상의 상대권까지 사랑이라는 말을 중심삼고는 통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못에 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진 곳에서 물결이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파문이 일 때 거기 떠 있는 잎사귀들은 그 파문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가치적인 어떤 존재가 되어 가지고 하나의 파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 파문을 우주가 필요로 하겠느냐, 환영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지식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금력과 같은 것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일방적인 것이 될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사방의….

여러분 잔잔한 못에 돌을 던져 봐요. 얼마나 파문이 아름다워요. 파문이 일면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와 같이 사방으로 파문을 일으켜 가지고, 그 파문이 이는 데에 따라 전부가 화동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그러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건 힘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일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사춘기에 있는 청춘 남녀들이 서로서로가 대하고 싶고 또 그 환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뭐냐? 그 환경 자체가 그 무엇 때문이냐? 사랑의 환경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사춘기시절에는 어느 누구나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꿈을 그려도 무한히 그립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내용이 무엇이냐? 지금부터 새로이 발발하는 사랑의 느낌 때문입니다. 또, 이것을 통해 가지고 엮어지는, 그런 세계에 파급되는 그 환경의 전부는 거기에 화동하고, 나와 더불어 즐기고 나와 더불어 인연맺고 싶어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춘기는 자극이 강하고 어느 분야에서도 내가 미치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마음이 반사되고 반영되고 그 환경 전부도 거기에 화동합니다. 화동하는 그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 이런 문제를 두고 볼때, 이것은 사랑의 내용이 되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만나는 가운데 있어서, 만남에 있어서 '사랑을 중심삼고 만나야 되겠다' 한다는 거예요. 친구끼리 만나더라도 말이예요, 어제 보던 친구의 그 얼굴을 보더라도 말이예요. 그 얼굴을 사진 가지고 다니면서 보나 혹은 그 친구를 직접 보나 다른 게 뭐가 있어요? 어제 그 얼굴 그 꼴은 다 아는 거구, 그 성격 다 아는 것인데 말이예요.

그러나 어제 만났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친구지우애(親舊之友愛)도 있겠지만 친구 간의 정이라는 게 있어 가지고 서로서로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결국은 생활이 동화되고, 모든 느낌이 동화되고, 심정이 동화되어 가지고 그 자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 자체에 내가 휩쓸려 들어가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그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내가 스스로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는 좋은 것이요, 친구와 더불어 있고 싶고, 친구 있는 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그러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무엇이 있어서 그러냐? 친구지정(親舊之情)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사랑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게 해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좋아하고 필요로 합니다. 언제나 부모를 만나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그건 왜? 무엇 때문에? 연령으로 봐도 차이가 있고 말이예요, 또 질서적 단계를 봐도 이것은 상하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예(禮)를 갖춰야 된다 이거예요. 복잡한 예(禮)를 갖춰서 존경하고 효도를 해야 합니다. 이런 모든 사회 생활의 인륜도덕적인 내용을 갖춰 가지고, 상하관계에 있어서 하나는 주체요 하나는 대상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면에서 효자가 되려면 순종이나 복종이란 내용을 개재시켜 가지고 내가 만나고 싶어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관계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환경적 여건이라든가 사회적인 표상으로서 연결되는 모든 내용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내용을 극복하고 부모를 모시고 싶고, 부모와 같이 있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상하관계의 그 모든 어려운 순종과 복종의 내용을 극복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때, 사랑은 위대한 것이라는 거예요. 사랑 때문에 내가 부모 앞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은 위대한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요, 위대한 사랑 앞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순종과 복종이 나쁜 게 아니라구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순종과 복종까지도 거느려 가지고 상충 없이 하나의 방향성을 중심삼고 차원 높은 미래의 세계로 인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또, 요즈음 사제지관계에 있어서 학교 선생들을 보면, '선생은 뭐냐?'할 때, '하나의 직업인이다' 이렇게 보면 그거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거 직업이란 게 뭐냐? 금전관계를 중심삼은 인연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는 그야말로 마지막이다 이거예요. 사제지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그분과 나와의 또 다른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규범을 축소시킨 질서적 내용과 환경적 여건을 소화시키고 대하여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제가 문제가 아니다 이거예요. 그 과제를 무난히 극복하고, 모순과 상충 없이 소화시키는 자리에서 제자는 스승을 대하고 스승도 제자를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것. 보다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게 뭐냐? 사랑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사제지간의 사랑, 정, 또 다른 정. 이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그 무엇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환경적 모든 여건을 극복하고, 그 인연을 길이길이 간직하고 싶은 거예요. 이러한 내용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겁니다.

나라면 나라에 대해도 하나의 국민으로 있어 가지고 '대한민국 백성이다' 할 때 말이예요, 우리 같은 사람은 해외도 돌아다니고 복잡하게 사회 생활환경을 거쳐 나가고 있지만…. 한국이 지금까지 나를 반대해 왔어요. 지금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말이예요. 그걸 생각을 하게 되면 전부 다 훌훌 털어 버리고 싶어요. '아, 이놈의 한국 사람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원수라면 원수와 같고, 기성교회도 원수와 같고…' 그거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애국심이라는 것, 나라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버릴 수 없어요. 나라와 나와의 관계, 그 만남에 있어서 보다 귀한 것이 뭐냐? 나라를 사랑한다는 마음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환경적 여건이 아무리 복잡하고, 아무리 어려운 수난길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문제가 안 됩니다. 보다 차원 높은 애국한다는 마음을 가질 때에는 그 원수들이 원수가 아니라 나라를 사랑한다는 그 큰 테두리 앞에 기대고 사는 하나의 옷과 같고, 하나의 자기의 지체와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는 그들이 원수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그 모든 환경을 소화하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이 무엇이겠느냐? 그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알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애국하는 마음입니다.

역사를 극복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의 힘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최후의 표준을 무엇으로 삼느냐? 기독교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전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예수님은 어느 한때 지나간 분이지만, 오늘 현실생활에 있어서 그분을 만나기 위한 간절한 생활적 표시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자의 표시일 것이고, 불교면 불교 신앙자의 표시일 것입니다. 또, 각종파도 그런 내용의 인연을 따라서 신앙을 지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 과정을 거쳐간 모든 성현들이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 어떻게 그 만남의 가치를 재현할 수 있느냐? 이것은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진리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말 가지고 가능하다 이거예요. 사랑은 역사를 포괄할 수 있다 이거예요. 또 역사를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공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포괄할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 '당신은 그렇게 능치 못함이 없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데, 당신이 있고 싶은 곳이 어디요? 힘을 가진 환경에 있고 싶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노' 한다는 거예요, '아니다'라고. 무슨 지식을 가진 입장에서 내가 제일 높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으냐? 우리 인간이 바라는 돈? 그거 다 아니라는 거예요. '나도 사랑의 공기 가운데, 사랑의 환경 가운데, 사랑의 보좌에 앉고 싶다' 하나님도 그런 결론을 안 내릴 수 없다구요. 그건 왜 그러냐? 순간을 넘어서 영원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시공을 넘어서 찾아가야 할 그런 입장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공기 가운데,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사랑의 자리 가운데 있고 싶다 이거예요.

그렇게 사랑의 자리에 있고 싶은데, 그 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억천 날을 혼자 취해 가지고 있고 싶으냐? 아니다 이거예요. 인격적인 존재라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듣고 싶고, 말하고 싶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런 문제가 대두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때에, 그는 아무리 사랑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분위기에 취해 산다 하더라도, 취한다는 것보다도 만지고 보고 비비고 느끼고 싶은 분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인격적 신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 가운데서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와 서로서로 만남의 자리를 필요로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자연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오늘날 신앙자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초월해 가지고 2천 년 전에 왔다 갔던 그리스도면 그리스도가 오늘날 현실에 어떻게 재현할 수 있겠느냐? 시간성을 초월한 그 권에서 작용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주파를 통해서는 역사를 극복할 수 있고, 모든 시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는 사랑을 통해서 만나기 위한 생활이 신앙생활이 아니냐 이거예요.

절대권을 넘을 수 있는 강하고 간절한 사랑의 인연을 꽃피우자

그렇다면 만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일방적이냐? 그건 범위가 다른 거예요. 진정한 의미의,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사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사방적으로 만나면 그 생활적 기반을 넘어서 생애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럴 때에는, 그와 나와의 만남에 있어서는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랑을 지니지 않고는 만날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의 참다운 신앙자가 몇 사람이나 되느냐, 이렇게 나오게 되는 거예요. 보는 눈이 그리스도가 원하는 사랑의 눈이 되고, 귀로 듣는 것도 그렇고, 내 모든 오관을 통해 느끼는 촉감까지 그 사랑을 통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그리스도에 접하여 만남의 시간을 추구하는 신자가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그 만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정성들이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간절한 자리입니다. 간절한 자리 중에서도 어떤 자리냐? 그 만남의 도수가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 같은 내용이 될 수 있는 강한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그 강한 사랑에는 절대권을 넘어올 수 있는 간절함이 젖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것으로 역사를 긋는다면 모든 역사의 어디든지 ….

자기가 아무리 장식했더라도 그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아무리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놓은 판이 있더라도 간절한 사랑의 마음으로 글자를 쓰면 글자가 써진다 이거예요. 다이아몬드가 굳지요? 쇠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그렇지만 간절한 사랑의 그 무엇으로써 다이아몬드에 글을 쓰게 되면 글이 써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강조합니다. 간절한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우리 승도 할머니 여기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겠어요. 뭐 기도할 때는 보통사람은 '간절히 간절히' 하지만, '간-절히' 한다구요. 그때는 오장 육부가 다 까부러져 똘똘 뭉쳐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굴러다니다가…. 그런 그 모습 '간-절히', 간절히 한번 해보자구요. 얼마나, 한 30분만 해봐요. (웃음)

그 간절히, 그 극치가 어디냐? 그 극치를 논하게 되면, 힘을 주고 땀을 흘리는 것이 간절함의 극치냐? 아니다 이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을 갖다 붙여 놓고 간절히 하면 극치에 얼른 도달한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게 아니예요.

자, 그러한 원칙적 관점에서 볼 때, 과연 기독교 신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만날 수 있는 만남의 대상적 가치를 지녀 가지고 생활을 더듬고 환경을 소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참다운 기독교 신자가 몇 명이나 되느냐? 요즈음에 뭐 '월급 많이 줘야 된다. 지방교회는 싫다. 큰 교회 가 가지고 월급을 많이 받아야 되고, 그다음에 자동차가 필요하다. 뭐 어떻다' 그거 문제라구요, 문제.

그러면 나의 일생을 어떻게 갈 것이냐? 이게 문제예요. 내가 오늘 사회에 나가는데, 종로 네거리나 혹은 명동 거리 가게 되면 척 오색 군상이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사람, 어떤 사람은 절름발이, 어떤 사람은 잘났다고 하는 사람…. 얼굴은 제멋대로 생겼는데 옷은 아주 호화찬란하게 입었거든요. 그거 아무리 호화찬란하게 옷을 입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오색 가지의 반지를 끼고, 그거 뭐라고 할까? 별의별 행차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계 없는 것이다 이거예요.

많은 군상 가운데서 아무리 봐도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아!' 하고 놀랄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그저 그래요, 그저 그렇다구요.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초라하고 말이예요, 남이 보면 동서남북 사방에서 누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얼굴을 숙이고 그저 힘없이 가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내 사랑의 인연이었던 사람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정신이 번쩍 든다구요. 그런 것 알아요, 여러분들? 둘도 없는 친구면 친구,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그 누구를 만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좋은 환경이나 잘난 사람에게는 내 마음이 끌려가지 않고 다 휘저어 버리고 잊어버리지만, 사랑이 인연된 곳에는 나의 모든 신경이 충격적인 자극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사랑은 나로 하여금 제일 가까운 곳에 있게 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또, 사랑이란 제일 가까운 동시에 나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기쁨의 자극과 기쁨의 충동을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만나고 싶고, 거기에 가고 싶고, 그거 아주 좋은 거라구요.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보고 싶다' 하고, 그다음에 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가고 싶다' 하고…. 많지 않아요? 보고 싶고, 가고 싶고…. 다 그렇잖아요.

사랑을 개재시킨 생활에 참된 행복과 희망이 있다

나이 많은 어머니가, 60난 자식에게 80난 어머니가 말할 때 '얘' 하는 그 말이 말이예요. 세상에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세상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꿈에도 그릴 수 없는 뭐라 할까요, 역사의 모든 고비를 넘어 가지고 환경을 소화시킨, 사랑으로 품어 주는 포근한 말이 아닐 수 없어요. 이렇게 나이 많은 80난 노부모가 60난 아들에 대해서 하는 말은 보통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큰 가치가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엇이 그런 작용을 하느냐 할 때, 이건 사랑을 빼놓고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고 위하는 사랑의 마음, 이것은 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 내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한다' 할 때, 그것도 좋아하지요. '아, 내가 이제 공부해 가지고 대통령이 될 거야' 하면 그것도 좋아하지요. '아, 내가 사업해서 아주 백만장자가 될 거야' 하면 그것도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자기를 위해서 한다면 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이예요. 학박사가 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은 내용을 위한 학박사는 천년 만년 학박사가 되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그것은 영원히 환영한다 이거예요. 아무리 교만하더라도, 아무리 꾸짖더라도 환영한다는 거예요. 채찍을 들고 때리더라도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지닌 부모 앞에 선 자식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멋지다는 거예요. 아무리 권력이 좋다 해도, 그 권력을 생의 가치 전체로 알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권력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빼 버리면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금전이 귀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금전을 쌓아 놓은 것은 찬양의 조건이 되지만, 사랑을 빼놓고 쌓아 놓은 것은 화근이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중심삼고 시작해야 되고,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야 되고, 사랑을 중심삼고 죽어야 됩니다. 이것이 행복한 길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행복한 것은 뭐냐? 그것은 좋은 것의 연속이다 이거예요. 꽃을 봐도 좋아요, 꽃을. 그 꽃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갖다 준다고 하면 얼마나 아름다워요. '야, 꽃이 아름답다. 이것은 전부 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향기와, 아내를 위하는 그 향기와 비교할 수 있느냐?' 하는 거라구요. 그 모든 전부가 사랑 가운데 왕창 빠지지, 사랑을 끌고 가지 못한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나는 모르긴 하지만 그럴 것 같아요. (웃음)

그러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때, 날아가는 새를 보게 될 때 '아, 저 새는 왜 지지배배 하느냐? 아,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한다' 하지요? 거기에서는 시가 읊어지고 문학 작품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인생살이의 역사의 사연이 반복하여 재현된다 이거예요. 그거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흘러가는 물을 보더라도 보통사람은 물이야 하면, 구불구불해 가지고 지형에 따라서 굽이쳐 내려가기도 하고, 바위돌이 있으면 부딪쳐 가지고 거기에 물방물을 내고 가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사랑을 중심삼고 흘러간다는 걸 알게 되면, 천년을 엮고도 남을 수 있는 시가 읊어지고 소설이 엮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므로 사랑의 입김도, 사랑의 손길도, 사랑의 노랫 소리도, 사랑의 말소리도 모두 좋은 것입니다. 사랑의 모든 뭐…. 깨지는 데는 왱강댕강 …. 거 뭐예요? 컵이 깨지더라도 사랑으로 보게 되면, '아, 나를 잊어버리려고 하는 아내의 손길인데, 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컵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자극적인 결의를 다짐하게 하기 위해서 저것이 깨졌구나' 그럴 때는 깨진 것이 나쁘다, 좋다? 「좋다」 나쁘다! 나쁘다!「아닙니다」

만일에 백만 원짜리 말이예요, 요즈음 백만 원은 얼마 안 되니까, 억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가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할 때에, 그것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 남편을 사랑하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재료로서 취해진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들, 몇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열 손가락 가득 낄 거예요,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가냘픈 여인의 손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가질 거예요? 어떤 거예요? 나를 진짜 사랑하는 남편을 가질 것입니다. 아마 한국 사람 부인들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대답은 그럴 거예요. '제일 사랑하는 남편을 가지겠소'라고. 맞아요, 부인네들? 맞아요, 안 맞아요?「맞아요」 맞다구요.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생활 중에 참된 생활이 뭐냐? 간단하다구요. 사랑을 개재시킨 생활이 참된 생활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학교생활도 역시 사랑을 그리면서 생활해요. 그 무엇인가 나라를 사랑하든가 선생을 사랑하든가 이러한 생활을 하게 돼요. 그 사랑을 개재시킨 생활, 거기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구요. 가는 것 오는 것이 전부 다 거슬리지 않다구요. 모든 것이 밀어주고, 활개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다는 겁니다. 어색하지 않고 어울린다는 거예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인연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내 자체는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태어나길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태어나긴 어디에서 태어나? 지식에서 태어났지, 권력에서 태어났지, 혹은 돈에서 태어났지' 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부모의 사랑에서 태어났다 이거예요. 출발이 어디냐? 사랑에서 태어난 겁니다, 사랑이라는 데서. 아시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에서 태어났다 이거예요.

사랑에서 태어나 가지고 말이예요. 만약에 세상을 말하게 되면, 남자들은 좀 낫지만 여자들은 벗기 싫어해요. 뭐 미국 여자는 빼놓고 한국 여자 말이예요. 미국 여자는 그렇지 않아요. 종로 네거리 같은 데에서도 젖뚜껑만 덮고 활짝 벗고 다니는데, 뭐. (웃음) 그런데 한국 여자는 벗는 걸 제일 싫어해요. 뭐, 이건 뭐 전부 꽁꽁 싸매지? (함께 웃으심) 그건 왜?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하기를 잘하거든요.

그러면 여러분. 부모 앞에 태어난 어린애기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발가벗은 채로 태어나 가지고 적나라하게 다 벗었는데. '아이고 부끄럽다' 그래요? (웃음) 부끄럽기보다는, 오줌똥을 한꺼번에 안팎으로 들이 싸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라요. 그러면 또 엄마 아빠는 '야이, 간나야!', 여기 여자들 말이예요, '이 간나야 나자마자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지. 그래 이게 뭐야? 나를 존경하고 형편과 사정이 우리 살림살이에 맞게끔 모든 것을 좀더 알아 가지고 해야 될 텐데 이게 뭐야' 그래요? (웃음) 그저 오줌을 싸도 '후후', 똥을 싸도 '후후' 하고, '그래도 제일 좋다. 요것 봐라 요것, 요것, 요리 봐도 그렇고 저리 봐도 그렇고, 아이고 어쩌면 이렇게 뺨이 곱고, 어쩌면 입술이 그렇게 아름다울까' 하면서 요래요, 쪽쪽쪽.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진짜 그걸 위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법도도 필요 없어요. 두루뭉수리래도 좋다 이거예요. 어쪘든 좋다 이거예요. 통한다는 겁니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사통과를 하느냐 이거예요. 여기에 틀린 것을 가리키면 이건 뭐 우는 것도 틀리고 전부가 틀린 거예요. 그렇지만 그 환경을 아름답게 미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 도대체 뭐냐? 모르긴 모르지만 사랑이라는 것일 것입니다.

자. 그렇게 태어나기를 사랑에서 태어났고, 자라나 가지고 첫번 사랑 받은 것이 누구예요, 누구의 사랑 받아요?「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요」 어머니 아버지 사랑을 받는다구요. 애기가 나면서 '앙앙앙' 우는 것은 그 어머니 아버지에게 사랑해 달라는 말이다 그래요, 우는 게? 아무렇거나, 그저 울든 어떻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부모예요. 부모는 사랑하게 된다구요.

첫번 사랑의 기원을 가지고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첫번째로 나를 쓰다듬으면서 사랑하신 분이, 첫사랑의 인연을 맺은 것이 부모다 이거예요. 철을 알지 못할 때부터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는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때의 인연이 아니예요. 사랑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를 때에 사랑한 그분이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철을 알아 가지고 사춘기가 되고 청년남녀가 되어, 시집가고 장가가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사랑보다도 더 차원 높은 거라구요.

내가 모를 때에 나를 첫사랑으로써 쓸어 주고, 보호해 주고, 사랑해 준 그분이 누구냐? 부모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첫사랑은 잊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혼자 사는 저 아줌마 이름이 뭔가요? 무슨 식이?「……」그걸 알아야 돼요. 첫사랑은 못 잊지요, 혼자 살더라도. 첫사랑은 못 잊는 거예요. 남편의 첫사랑을 못 잊는다구요. 그런 말 알아요? 우리 아가씨들은 연애도 못 해봤기 때문에 그것 모르겠지.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나도 잘모르지만. (웃음)

첫사랑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 그러면 첫사랑을 누가 먼저 해줬나요?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부모예요, 부모. 나면서부터 잘 때나 알지 못할 때나 언제나 사랑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나 남편 사랑이 그래요? 여러분 어때요. '부모하고 남편하고 있을 때 어느 쪽을 취할 거야?' 하면. 서구 사람들 사고방식은 남편 따라 갑니다. 상대적 사랑이 제일이지, 부모야 까짓것 다 뒷방 영감이 돼서 쓸데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세상 자체를 중심삼고, 경제적 생활이라든가 지식적인 생활기반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근본적인 전체의 내용을 파헤쳐 사랑이라는 것을 개재시켜 보게 될 때에는 부모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집간 아가씨들도 말이예요. 옛날에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가지고 있던 책, 남편이 살아가던 일기 쓴 것 등은 이사 다닐 때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책이고,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보따리' 하면서 도망가고 피난가면서도 들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사랑하던 어머니 아버지는? 그건 다 버리고? 이게 사랑의 논리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고 제일 사랑받던 것이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거느리고 가야 된다 이거예요.

사랑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주인이 될 수 있어

요즈음에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좀 낫지만, 세상 아가씨들은 어머니 아버지는 뭐 뒷방 영감 취급한다구요. (웃음) 그것은 사랑의 역사에 대한 유린이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사랑도 역사가 있겠지요?「예」 내가 사랑의 역사를 논하게 될 때는 첫번, 제1사랑에서 볼 때, 부모의 사랑을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2의 사랑을 논할 때는 아내와 남편의 사랑을 논할 겁니다. 그다음 제3의 사랑을 논할 때, 아들딸에 대한 사랑을 논할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므로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야 그 가문이면 가문에 있어서 주인이 되는 것이요, 그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세계면 세계에 있어서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모든 우주는 무엇을 중심삼고 태동할 수 있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며, 무엇을 중심삼고 정착하느냐? 사랑이라는 이 권을 중심삼고 시작하고, 움직여 나가고, 이상의 자리에 정착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는 사랑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통으로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필요하고 내게 좋은 것은 받고, 내게 나쁜 것은 안 받는다. 그게 아니라구요.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는 좋은 것이나 나쁜 것도 다 나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한민국 백성이 안 되고 싶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면, 그 사랑이라는 인연 가운데서 연결되어 있는 국민사상권 내에 존속하는 그 개인은 국가의 운세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도 그렇게 직결되고, 전체가 그럴게 직결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이라는 것은 직결이요, 통일입니다. 그러면서 방향성을 지녀 가지고 분립이 아니라 공동보조를 맞춰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 사랑의 역사나 전통도 완전히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야 가지에 가지가 뻗어 나가 큰 나무가 되고 꽃이 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 시부모하고 싸움하고 말이예요, 남편이 들어오면 우리 남편은 좋은 것 먼저 주고, 시부모는 남편 줄 걸 다 골라 놓고 나중 것인 찌꺼기를 주자! (웃음) 이것이 요새 시대감각이 예민한 아가씨들이 시집갔을 때의 생활관입니다. 그거 됐어요. 안 됐어요?「안 되었어요」 여러분 과거에 그렇게 안 살았어요? 시어머니하고 싸움 많이 했지요? (웃음)

'남편은 좋아' 그래 가지고 시부모하고 들이 싸움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어머니 아버지 편을 들면 '야, 남편아, 당신 뭐 내 편 안 되고, 어머니 편만 돼? 시아버지 편만 돼? 어머니야 뭐 보기 싫은 쭈그렁 바가지 같은데, 뭐 봐야 한푼짜리이지만 난 요렇게 미녀인데 말이야, 어머니 아버지, 쭈그렁 할머니 할아버지 뭣이 그렇게 좋아서 그래? 나보다 더 좋아하네' 하며 꼬리를 젓고 야단하고 반대한다 이거예요. 그런 여자들이 한국에도 약간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구요.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 알아요? 우리 통일교회 아줌마들이야,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해서 여기 들어왔겠지요.

이런 걸 볼 때, 만남의 시간 가운데서 제일 길게 갖고 싶은 것이 뭐냐?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아시죠? 제일 길다고 해서 잼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예요. 오래 같이 갖고 싶은 것이 뭐냐 할 때에, 뭐예요? 돈? 혹은 공부 하는 시간이지요? '아이고, 내일 시험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에 영원히 있고 싶소이다. 아멘' 그래요? (웃음) 어디 우리 학생들 그래요? '아이고, 시험아, 시험아. 이놈의 시험. 할수없는 시험이지' 하지요. 그러면 할수없는 걸 왜 해? 누구 시험 좋다는 사람은 물론 선생도 못 봤다구요. 선생도 '시험은 할수없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선생은 없다구요. 그거 할수없는 것을 왜 해? 시험 안 치면 사회적으로 탈락되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에 만약에 사랑의 무슨 시험이 있다면 어떨까요? 꿀맛보다도 좋고, 밤을 새우면서 똑딱똑딱 시계가 가는 것을 보고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그럴 수 있는 내용의 사랑의 보따리가 있으면 공부하는 게 싫겠나요, 좋겠나요? 시험 치는 게 좋겠나요, 나쁘겠나요? 좋다는 거예요.

그건 뭘 말하느냐? 모든 어려운 자리나 슬픈 자리나 고통스러운 자리는 다 같은 말이지마는, 매 맞는 자리나 죽는 자리에서도 같이 죽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것이 뭐냐?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이예요. 사랑의 그 무엇을 지니고 이 모든 것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입니다. 이런 힘을 가졌다면, 그 사랑을 바라는 우주에 어떠한 주체자가 있다면 그건 필시 사랑의 자석 앞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이 지남철에 째까닥 가서 붙을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은 안 그래요?

본연의 사랑의 환경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통일교회

여러분이 보기 싫게 생긴 이 선생님 얼굴 보고 싶어요? 「예」 아주 보기 싫게 생겼다구요. 그건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은 잘생겼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눈이 왜 그렇게 쪼그마해…' 합니다. (웃음) 눈이 큰 사람을 원하는 사람을 볼 때, '아이구 나 선생님 싫어' 그런다 이거예요. '아이고, 눈이 왜 그렇게 쪼그마하지. 아이고, 코가 왜 그래. 아이고, 이마가 왜 그래. 난 이마가 벗어지지 않았는데, 이마가 왜 그래. 아이고, 난 날씬한 사람인데, 이게 두루뭉수리해 가지고 나무통같이 왜 그래' (웃음) 싫다는 점이 얼마든지 많다구요. 그렇다구요. 관점에 따라서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거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왜 좋아해요? 여러분 선생님 좋아해요? 나는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구요. 좋아한다고 해도 걱정이지, 우리 엄마가 야단하니까. (웃음) 그건 다른 의미에서의 얘기고, 그래, 선생님 좋아해요?「예」 정말이예요?「예」 뭣 때문에? (웃음) 내가 돈을 주어요, 여러분에게 떡을 해서 매일같이 대접을 해요? 오면 욕을 하고 말이예요. '요놈들, 이 녀석들 잡아다가 고생을 시키겠다. 이 쌍것들아' 이렇게 욕하기가 보통지사고 말이예요. 그런데 왜 좋아해요, 왜? 어째서? 떡이 생겨요, 밥이 생겨요, 거기에 뭣이 생겨요? 돈 보따리가 생기나요? 그게 뭣 때문에 그래요? 그건 뭣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좋다구요. 좋아서 그래요. 그런 뭣이 있다구요. 좋은 것이 있다 그말이예요.

그러면 좋다는 것이 뭐냐?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사랑의 논리를 가르쳐 주고 사랑은 이래야 된다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빙산과 같고, 얼음과 같은 이 세상에서 사랑의 봄날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얼음과 같은 이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남편을 봐도 그렇고, 아내를 봐도 그렇고, 처자를 봐도 그렇고, 어머니 아버지를 봐도 쓸쓸하기 짝이 없고, 맛이 없다 이거예요. 이거 빙산과 같고, 대하면 대할수록 싸우고 반발하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좀 다르다구요. 이거 뭐 교회에 오면 밥을 안 주고 그래도, 안 먹고라도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고 싶다 이거예요. 그건 왜 그러냐? 인간은 본래 사랑의 환경을 거느려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삼고 낳고, 사랑을 위해서 살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자, 그만하면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 만남이라는 것은, 그거 어쩌다 보면…. 내가 오늘도 오면서 말이예요. 비가 오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 저 물방울이 어디서 왔나?' 생각했다구요. '저 물방울이 어디서 왔나?' 할 때는 '오긴 어디서 와, 수증기가 합해 가지고, 공중에 있다가 찬바람을 만나 가지고 결합되어서 떨어진 것이 비지' 이렇게 설명은 간단합니다.

그렇지만 보라구요, '그 수증기는 어디서 왔어?' 이렇게 말할 때, 이것은 초세계적이다 이거예요. 어디서 왔어요? 경상도서 왔어요, 전라도서 왔어요? 어디서든지 올 수 있다구요. 태평양을 건너서도 올 수 있다 이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아, 요놈의 수증기가 요렇게 요렇게 해 가지고 바람에 밀리다 보니 저 미국 수증기, 미국 이스트가든 수증기가 여기에 올 수도 있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웃으심) 이스트 가든에서 내가 물을 먹다가 한 방울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수증기가 되어서 싹 꼬물 꼬물 올라간 그놈이 여기 한국에 와서 만납니다. 그래 가지고 내 입에 물로 떨어진다 할 때, 그 수증기가 '아이, 만세! 좋아! 선생님 또 만났구나' 이런다구요.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웃음) 만세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물을 한 사발 먹을 때, 천하가 왕래하는 거예요. (물을 드시면서 말씀하심. 웃음) 천하의 사연이 엮여진다는 얘기라구요. 자, 그럼. '너 수증기야!' 그러면, '예', '너 뭘할려고 여기 왔니?' 할 때, '사랑이 그리워서 왔다' 하면 만사가 다 해결됩니다. 태평양을 건넌 것도 '오, 그래, 잘왔다' 지구성을 몇 바퀴 돌아도 '오, 그래, 잘 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천년 역사를 꾸며 놓은 어떤 스승이 있다하더라도 '야, 너 참 잘했다' 하지만, 사랑이 없이, 이끄는 것 아무것도 없이 무의미할 때에는 '너 뭐하러 여기 왔어', '하긴 뭘하러 와 그저 여기 들렀지' 그게 얼마나 기가 막혀요. 저 혼자서 비참한 기억을 더듬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그런다면….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만남이라는 것을 놓고 여러분이 물을 대하나 무엇을 대하나 이런 걸 생각해야 돼요. '물을 대하는 역사가 이 우주역사를 든다. 야, 태평양 물보다 더 귀하다' 생각해 봤어요?

오색인종을 포괄하고 소화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라

숟가락을 떡 들면, 요즈음 말이예요. 밥을 먹겠다고 인사도 안 하고 배고프니까 그저 자신 있게 '야, 밥 가져와! 야, 아무개 엄마 밥 가져와!' 한다구요. 이놈의 남자는 말이예요, 이거 인사도 안 하고 그저 무자비하게 그냥 콱콱 집어넣는다 이거예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그것이…. 고기가, 그렇게 산 고기가, 말할 줄 아는 고기가 그런 영감이라든가 젊은 남자 입에 무자비하게 깨물어질 때, '아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고기가 '나는 이제 내일 아침에 저 남자 입에서 사형선고 당해 가지고 난 사형장에서 쓰러지는 존재로구나' 할 때, 좋다고 생각하겠어요. 나쁘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러나 '아무개의, 사랑하는 그분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가지고 내 피가 엮어져 간다. 이것이 앞으로 생명을 연결할 수 있는 아들딸의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뻗어 나간다. 아, 사랑이 고비치는 그런 무엇이 옮겨져 가지고 뻗어 나간다. 아무것도 없지만 이 음식이 사랑의 생명의 줄기가 된다. 사랑의 꽃이 핀다' 이렇게 될 때에는, 꼬리를 풀고 죽든 뭐를 하든 그저 환성을 올릴 거라구요. 그래서 '만물을 사랑하라'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용이 달라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 내용이 얼마나 달라지느냐? 무한히 달라져요. 무한히 확대할 내용을 내가 지닐 수 있다구요.

그러므로 한 술의 밥에도 사랑의 천하를 볼 수 있고,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힘이 여기서 인연된다고 생각해 봐요. 그렇게 밥을 먹으면 난 생각하기를 말이예요, 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병이. 왜 그러냐? 모든 사지백체는 사랑을 흡수하고 화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착 끌어들이고 화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힘도 강해지고 그럴 것입니다. 나는 그런지 안 그런지 모르지만 그럴 것 같아요.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 통일교회 문 아무개하고 만난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를 보면, 통일교회는 세계사, 혹은 세계 문화사 가운데 있어서…. 종교는 문화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문화사 가운데에 있어서 통일교회는 세계사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사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앞으로 세계는 통일교회주의 외에는 남지 않는다구요. 공산주의도 지나가고 민주주의도 이미 지나가고 있어요. 기독교주의도 지나가고 다 지나갔다고 생각한다구요. 여기에 목사나 혹은 장로들이 와서 기분 나쁘다고 해도 할수없다구요. 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렇다고 하기 때문에 전해 주는 거예요. 믿고 싶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아요.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가 되어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예요. 무엇이 남는다구요?「통일교회주의요」 무엇이 남는다구요?「통일교회주의요」

'야, 이 녀석아, 너 통일교회 문 아무개 때문에 그따위 수작하지, 남기는 뭐가 남아! 안 남아!'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최후에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종단이 가진 이상의 사랑의 능력을 가지는 단체가 되라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민주세계가 꿈에라도 그럴 수 없는 사랑의 내용을 지닌 종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을 하라 이거예요. 오색인종을 포괄하고 소화하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소화능력을 가진 그런 종교가 되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까지도 전부 다 소화 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을 지니게 될 때 통일교회는 영원히 세계를 지배하고 남을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에 이의 있어요? 이의 있어요, 없어요? 할머니들도, 할아버지들도, 젊은이들도? (웃음) 보라구요, 그럴 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 내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뭐냐? 무엇을 가르치느냐? 아무렇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타이틀을 중심삼고…. 만약에 말이예요, '하나님을 위해라!' 그렇게 되면 그건 정지되고 말아요, 스톱되고 말아요. '위해라, 위해라' 하는 반면에 줄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위하라고 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정착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파괴돼요. 정착은 파괴를 말해요. 순환과 영생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방에서 상대를 위해 희생하면 자연히 중심의 자리에 올라

여러분이 참다운 사랑을 갖게 될 때, 친구가 나에게 10만 원을 도와주었으면 내가 그것을 돌려주게 될 때는, 사랑을 가지고 도와준 그 친구에 대해서는 플러스해서 돌려주는 거예요. 10만 원. 12만 원, 15만 원…,더 보태서 갚고 싶은 것이 사랑의 세계에서의 운동법칙이다, 이렇게 보는거예요.

그러면 그런 세계는 뭐냐? 참사랑이 가는 직선코스, 참사랑이 가는 주류, 그게 뭐냐?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상대를 위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해야 되느냐? 동서남북 사방으로 위해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아침때나 점심때나 저녁이나 할것없이 사방으로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사방에 가서 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사방을 중심같이 해 가지고 내가 위해 가게 되면 내가 겉같이 생각돼요. 그렇지만 더 사랑하는 사랑의 내용이 충실해지면 충실해질수록 자리가 바꿔진다구요. 요것은 나오고, 요것은 들어가는 거예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심) 여러분 쳇바퀴 같은 것을 보면 말이예요, 조그만 것은 거쳐 나가고, 무거운 것은 어디로 가요? 가운데로 가지요. 그게 우주의 법칙이예요, 우주의 법칙.

전체 통일교회를 위해서, 내가 전체를 위해서 일하다 보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협회장 자리를 말없이 상속받는다구요. 협회장이 위하는 무엇이 없거들랑 나는 자꾸 들어가고 협회장은 전부 다 겉으로 나간다구요. 나는 중심이 되고 협회장은 껍데기가 된다 그 말이라구요.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알겠어요?「예」

보다 위하려고 하는 사람은 보다 중심자리에 도달 안 한다?「한다」 안 한다!「한다!」아, 예, 그래, 해요. 도달합니다. 천리가 그렇게 돼 있다구요. 문 아무개가 생긴 것이 제멋대로 생겼지만 고것만은 안다는 거예요, 고것만은. 그래서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라' 이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백방으로, 낮이나 밤이나 일생을 희생하면 그는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를 앞세우고 그 그늘에서 잠을 자려고 하고, 형제들도 그를 앞세우고 그 그늘에서 잠을 자려고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예」

그것이 사랑을 중심삼았기 때문에 사랑의 품에서 깃들고 싶고, 사랑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는 것이 존재의 최고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품안에, 그 주변에 머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거예요. 알겠어요?「예」 그래서 통일교회는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라. 어머니를 위하고 형제를 네 몸보다 더 위하라'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가정은 어떻게 되느냐? 가정은 친척,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라 이거예요. 종족을 감싸 가지고 이 가정이 열심히 동네를 위해 살다보니, 그 동네에 가만히 있더라도 자동적으로 자꾸 '야야, 네 갈 데는 저기다 가라' 자꾸 차서 보내요. 자꾸 차서 밀어요. 자꾸 차서 보내고 밀어서 보내다 보니 어디로 갔느냐 하면, 가운데로 떡 왔다 이거예요. 동네의 이장이 되고 말이예요. 동네의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 이의 있어요? 그건 이의가 없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통일교회 한 종교를 보면, 이 통일교회는 뭐냐?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라,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라 이거예요. 하루가 아니라 10년, 20년, 40년은 희생하라 이거예요. 계속 그렇게 하면 이 나라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맨 처음에는 차 보니까, 차기에 간단하니까, 볼 같아서 마음대로 차지만 이놈이 차니까 자꾸 무거워진다 이거예요. 위하게 되면 어떻게 돼요? 위하는 기반 위에 자꾸 무거워지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차다가 '아이고 발이야' 발이 부러지겠거든요. 한번 맞부딪치면 '아이고ㅡ' 자꾸 큰다구요. 굴러가면 갈수록, 떼굴떼굴 굴러가면 굴러갈수록 어디로 가느냐 하면, 전부 다 밀치고 어디로 간다구요? 주인의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왜 희생을 강조해요? 종교에서도 희생하라 하고, 오늘날 사회에서도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라고 하느냐? 애국하라는 그 말은 나를 희생하라는 거예요. 희생을 통하지 않고는 애국이 없는 거예요. 효자가 되려면, 부모 앞에 희생해야 됩니다. 희생을 통하지 않으면 효자가 될 수 없어요. 성인이 되려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 경력이 없어 가지고는 되는 길이 없어요. 왜? 그 희생이 나쁜 거 아니다 이겁니다. 요걸 설명을 못 했어요. 희생이란 지극히 위대한 것입니다. 왜? 여기서는 사랑을 끌고 간다 이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이 뒷받침이 되어서 희생하게 될 때는, 희생을 덜한 존재들이 희생을 더한 그 사랑을 가진 그 주체를 중심으로 모시고, 그 그늘에서 쉬고 싶고, 그와 더불어 화합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왜? 이게 천지이치요, 우리 본성은 그것을 환영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넘어서 나라와 세계와 천주와 하나님을 사랑하자

통일교회를 지금까지 고생시키다 보니 통일교회가 유명해졌다구요. '애국자는 통일교회 교인이다' 합니다. 뭐 요즈음에는 '애국자는 문 아무개다' 그런 얘기 하지요? '아,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옛날에는 나쁜 소문 났지만, 요즘에 듣건대는 애국자야' 이래요. 그래, 옛날에는 애국자가 아니고, 며칠 전에 된 애국자예요? (웃으심) 그 애국자가 하루 만에 돼요. 수십 년 세월, 일생을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그거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나는 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결국은 싫다고 해도 자꾸 밀어내 가지고 자연히 가운데로 가는 것입니다. 안 가겠다고 해도 자꾸 여기서 밀고, 저기서 밀고, 삥삥 돌고, 자꾸 미니까 돌다 보니 어디로 가느냐? 나는 도망간다고 했는데 가운데 가서 서 있다 이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요걸 몰랐다구요. 더구나 한국 사람은 뭐…. 일확천금을 꿈꾸는 데는 세계 챔피언 중에서도 아마 그런 민족이 없을 거예요. (웃음) 이게 못살면서도 멋 내길 제일 좋아하고, 또 기분 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돈 쓰는 것 보면 말이예요. 일본 사람 같으면 점심을 사더라도 잘 사야 한두 가지밖에 안 삽니다. 그런데 이건 타스로 갖다 놓고 '잡수소' 안 먹으면 자꾸 재촉해서 입을 벌려 가지고 집어넣어 줍니다. (웃음) 그건 한국 사람 위해서 그래요. 이런 설명이 맞게끔 떡 해보라구요. 그것이 안 맞으면 내 목을 떼라 이거예요. 그게 그렇지 않으면 내 목을 떼라는 거예요.

새벽부터 자지 않고 24시간 희생하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회사에 갔는데 '이 상놈의 자식아 너 때문에 우리가 일도 못 하고 말이야, 피해가 많아' 하면서 사방에서 뭐예요? 동네 북같이 두둘겨 패면 말이예요, 떠억….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이거 왜 귀찮게 달고 있어요, 이거. (웃음) 동네 북같이 두드려 패고 하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회사를 생각할 때는 사장의 사위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면 사장의 며느리감이 되는 걸 알아요? 그는 그 회사를 인계받는 직계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희생을 통하는 데에 있어서는 사랑의 보금자리, 사랑의 주인자리가 상속되는 것이라는 말이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말하기를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국가는?「세계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있다면, '야야야, 세계만 위해서 희생하지 말고 천주까지 위해서 희생하라' 합니다. 또 '야야, 그것 말고 나를 위해서 희생하라. 그런데 나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제일 어려운 챔피언 자리이니. 너는 개인에서 훈련해 가지고 지방에서부터 올라와라. 복싱으로 말하자면 동네 복싱대회에서 일등하고 그래야 돼' 하는 것입니다. 일등하려면 거 쉬워요? 땀을 흘리고 24시간 노력하고, 매를 맞고, 전부 다 좋아해야 된다구요. 세상이치가 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윤박사도 팔자가 사납지, 여기 왜 들어왔어요. (웃음) 경희대에서 얼마나 좋아요? 부총장 자리에서 '에- 여봐라!' 하면, '예' 그러는데 통일교회 들어와서 뭐 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형편없지. (웃음) 그렇지만 경희대학을 넘어서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천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타이틀을 가진 위대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될 때,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10년, 20년, 일생을 지나가 가지고 '지상이 모르거든 영계에 가서 보자. 너와 내가 비교가 되겠느냐? 그때 가서 내 가슴에는 하나님이 준 훈장이 수두룩 달릴 것이어늘…' 하게 돼요. 그렇다는 거예요.

문 아무개가 똑똑한 사람입니다. (웃음) 그걸 알아야 돼요. 대한민국에서 누구에게 지지 않을 똑똑한 사람이예요. 능력 있는 사나이입니다. 요즈음에는 능력 있는 사나이인 줄 알지만 옛날 청파동 허리 부러진 호랑이를 누가 알아줬어요? (웃음) 고양이 새끼만큼도 무서워 안 했지요.

이런 걸 알았기 때문에,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뭐 한국 미국 이젠 또 남미, 저 아프리카까지 그저…. 일생 동안 그러다 죽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어떻게 됐느냐 이거예요. 세계 5대양 6대주를 돌고 돌고, 욕을 먹고 이렇게 채이고 다 이러지만, 자기 갈 데로 다 가 가지고, 이 우주 정세의 소용돌이가 다 돌아가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데에 있어서 그 가운데에 몰려갔다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희생하면 절대자 앞에 상대권을 갖추게 돼

자기를 위하면 꺼꾸로 밀려 쓰러져 가지고 승천하지 못 하지만, 하늘을 위하면 이것이 승천합니다. 쉬-익 올라간다는 거예요. 구멍이 둘이예요. 하나는 땅으로 내려가는 길하고, 그다음 하나는?「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올라가는 거예요.! 비상천한다 이거예요.! 그런 힘이 사랑을 중심삼은 희생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희생하면 들어 가려고 하는데 끌어올려서 하나님 보좌 앞으로 가는 직행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뭣인가? 콜롬비아? 뭐라고 하는데 여기 윤박사 잘알겠구만. 콜롬비아는 우주 무슨 선?「왕복선」 복왕선인지 왕복선인지 모르겠구만. (웃음) '그 왕복선은 복귀선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21년이 딱 끝나고 여기 한국에 와 보니까 다음날 또 야단이더라구요. 우리가 그렇다구요. 하나님 앞에 왔다갔다할 왕복선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웃음)

그래, 뭣 갖고? 추진력 갖고, 그러면 추진력이 뭐예요?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 가지고, 왔다갔다 거기서 끝나? 왔다갔다하되, 동서남북으로 돌고 돌고 또 돌고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왕복선이 생겼으니까, 나도 이제 대한민국에 들어오니까, 옛날에는 이단자고 뭐라고 하더니 애국자라는 네임 벨류(name value; 명성)가 붙었더라 이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옛날에는 그저 나쁘다고 차 버리더니, 이제는 날 내세워서 세계를 차 버려서 대한민국 선전하려고 하고, 대한민국 전통을 전부 다 옮겨 주려고 한다. 나를 또 이용하려고 하겠구만'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선생님이 이렇게 세계적 기반을 닦으면 우리보다 나을 텐데, 우리가 천년 수고할 것을 선생님은 일년에 하게 되면, 선생님이 가서 고생하더라도 해야지' 그러지요? 그렇지요? 요 사람들?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좋은 거예요. 그게 선이다 이거예요. 천 사람, 만 사람이 희생할 것을 혼자 할 수 있으면, 그게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얼마나 멋져요, 이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다구요. 남들은 부자라고 그러는데 나는 부자 아니라구요. 돈이 내 것이라는 생각 안 해요. 다 거쳐가는 것입니다. 남아 있을 것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돈이 있거들랑, 오색인종에게 뭘 사 주자 이거예요. 돈을 쓰자 이거예요. 그래서 뭘하느냐? 반드시 중심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예」

그러면 종교 가운데 세계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제일 희생한 단체가 되거들랑, 하나님이 있는 한 필시 이 단체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대상적인 종교가 될 것이다, 절대자 앞에 절대적인 상대권을 갖춘 종교가 될 것이다 이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

통일교회 교인들 요즈음에 보면 말이예요. 이건 그저 축복을 받고도 보따리 짐지고 이게 정착을 하려고…. 정착을 언제 해요? 여러분, 이걸 알 때, 협회장도 집 갖고 살지 못한다구요. 집시와 같이 언제든지 보따리 싸 가지고 기다려야 된다구요. '또 하자' 하고 나 자신이 그러고 있는데. 요즈음 어머니나 보회보고 얘기하기를, '아, 이젠 미국은 다 생각 없어. 그러니 이젠 보따리를 싸려고 한다' 그랬더니 '아녜요, 미국을 근거로 왔다 갔다 해야지요' 그래요. 그거 왔다갔다할 게 뭐예요? 그게 얼마나 힘들어요? 거기 가서 지내면서 왔다갔다할 게 뭐예요. 왔다 할 때는 갔다 하는 힘 가지고 거기서 정성 더 들이면 더 좋을 텐데, 이게 얼마나 산만해요?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다구요.

요즈음에 곽정환이 여편네 데리고 내일 모레 간다고 좋아할는지 모르지만, '아, 너는 가고 난 떠나자'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그런 생각도 해봤다구요. 또 그렇게 당장 한다는 것도 아니라구요. (웃으심) 뭐 선생님 가까운 이웃 동네에 산다고 생각해요. 그건 다 필요 없어요. 갈라져도 좋다 이거예요. 응, 그런 거예요, 그거.

한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이고, 이제는 나이 많으니 죽을 때는 고국땅에 돌아와야지' 이래요. 내 고국은 지구상이예요, 지구상. 지구상인데 사랑의 지구상입니다. 사랑이 모인 그런 동산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색인종이 합해 가지고 사랑하는 데는 한국 사람 이상, 천만 명이 넘는 한국 사람 앞에 북한에서 설풍이 불어치는 이런 냉정한 자리보다도, 오색인종이 모여 사랑이 화동하는 봄동산이 있으면 거기서 내가 쓰러지는 것이 내 행복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응?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말이야? 「예」 이 녀석들!

신세지는 사람보다 신세를 입히는 사람을 만나려고 해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고생길이 훤해요. 그러니까 그런 것 싫어하는 사람 보따리 싸 가지고 가요, 방해가 많다구요. 내 등을 타 가지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지 않아요. 내 신세를 지거들랑 나한테 신세를 못 갚더라도 민족과 후손들 앞에 갚고 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지요. 이젠, 뭐 '통일교회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요즘에는 나 만나자는 사람 많더구만. '뭐 만나자 만나자', '야, 이 녀석들아 너 장사속이야? 언제는 내가 고생하고, 저 형무소로 쫓겨 다닐 때 한번 만나서 내게 차입이라도 한 백 원짜리 들여 줬으면 내가 억천만 배로 갚아 줬을 텐데, 언제는 나쁘다고 하고, 다 그러고 이제 와서 좋다고 또 찾아와' 이제 나쁘다고 하면 또 갈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패들은?「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쁘다 할 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궁둥이에 쇠등에가 붙어 있었지만 잔치 집에 들어온 쇠등에는 행복한 쇠등에예요. 왜? 잔치집에서 좋은 것을 먹고 있는 소 궁둥이에 붙어 있으면 잔치상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그게. 붙어 있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이거예요. 그래, 무엇으로 붙어 있느냐? 소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등에…. 등에 알아요, 쇠등에? 그런 것을 뭐라고 하나요, 쇠파리 큰 것. 우리는 등에라고 그러는 데요, 쇠등에. 이런 얘기가 실례가 되어도 할수없다구요. 난 그런 말을 보통으로 잘하는 사람이니까. (웃음) 누구 뭐 귓맛 좋으라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 얘기하는 데는 체면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구요.

쇠등에 같이 붙었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쪽쪽ㅡ 뭘 빨아먹느냐? 피를 쪽쪽쪽. (입술로 빠는 시늉을 하심) 통일교회 문선생 궁둥이에 붙은 쇠등에처럼 말이예요. 통일교회 피 빨아먹는다구요. 우리 어르신네들, 다 훌륭한 분들 여기 앉아 있구만. 솔직한 얘기예요. 나는 나면서부터 신세지고 살려고 하지 않았다구요. 그런 사람이라구요. 나라에 있어서도 기생충이 안 될 것이고, 가정에 있어서도 그렇고, 부모 앞에서도 그렇고, 형제들 앞에서도 그렇다구요.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실제로 경제적 원조를 도와주면, 난 자지 않고 그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 그 이상으로 사랑의 마음과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그 가정에 갚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 통일교회 문선생 만나기를 잘했어요? 「예」다음은 점심시간이구만. 한 시간 조금 넘었군. 우리 어머니가 저기에 앉아 있지만 난 어머니에게 참으로 애처가니까, 할수없다구요. (웃으심) 1시간 40분이 됐는데, 우리 어머니께서 앉아 있기를 상당히 힘들어 하기 때문에 이제 빨리 결론을 내리겠어요. 섭섭해요? 응, 섭섭해요?「예」(웃음) 이건 여러분들이 어머니보다 나를 더 사랑한 자리에서 '예' 하면 '옳소' 이래요. 그렇지만 어머니보다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암만 '예' 해도…. (몸짓으로 표현하심. 웃음)

여러분은 세상천지에서 사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 만남의 내용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만났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 여러분이 대학교에 가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요? 만난다면 말이예요, 교수도 만나고 말이예요. 그다음에는? 그다음에 누구 만나고 싶어요? 총창 만나고 싶지않아요?

만약에 사위가 된다면, 교실에 들어가서 교수하는 학과 교수의 사위가 될 거예요, 총장의 사위가 될 거예요? 우리 학생들 어떻게 대답하나요? 응?「총장요」 무엇이라고? 아, 대답을 해봐요?「총장요」 총장?「예」 그건 뭐 그럴 거라구요. '총장 사위 되고 싶소' 할 거라구요.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시집 장가가게 되면 누구의 사위가 되고 싶어요? (웃음) 아, 그거 한번 대답해 보고 넘어가자구요. (웃음) 그거 이치에 통하는 말이라구. '아. 선생님의 사위 며느리 한번 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예」 정신이 돌지 않는 한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웃음)

그러면 학교 총장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교수보다도 학교를 위해서 더 희생하는 학생이 있거들랑 그 총장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그럴 수 있다, 그건 통하지요?「예」 문 아무개가 말이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전부 다 나보다 더 희생하고, 통일교회 교인들 어느누구보다도 뜻을 위해서 이렇게 움직이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이거예요. 거 틀리지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렇게 알게 되면, 자, 이 우주 가운데서 제일 높고, 제일 훌륭하고, 제일 크신 분이 누구냐? 응, 누구 같나요? 누구겠어요?「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란 말은 말이예요, 일등이란 말이예요, 일등. 하나밖에 없다는 일등이지요. 마라톤 하는 데도 일등이고 말이예요, 수판을 놓는 데도 일등이고 말이예요. 무엇이든지 일등이예요. 모든 것이 일등, 일등, 그런 남편 얻고 싶지 않아요, 우리 아가씨들? 그런 아버지 한번 갖고 싶지 않아요? 더 나아가서는 그런 친구라도 다 원하는 겁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고, 모든 것에 챔피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런 님이예요. 님이라는 것은 주인님이예요, 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말하는 거예요, 이게. 그런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런분 한번 만나고 싶지 않아요?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만나고 싶어요」 만나면 푸대접 받겠어요, 대접 받겠어요? 만나고 나서는 말이예요, 그거 잘못했으면, 전부 다 그 분 앞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면 푸대접 받아야지요. '야 이 녀석아 가' 하고. 그렇지만 가겠다고 해도 '야야, 있거라. 있거라'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 앞에 신세를 지려고 하면 만나 보고 후퇴하는 것이요, 그분 앞에 신세를 입히려고 하면 거기에 머물 수 있다, 이런 결론이 벌어져요.

사랑과 희생의 길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의 길을 찾아가자

그래, 그대들은 누굴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 만나고 싶지요?「예」 하나님 만나고 싶지요?「예」 우리 나라 대통령이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도 다 어려운 수속을 통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나는 것이 간단한 수속으로 통할 것 같아요? 사무적인 그런 공문이나 사무적인 무슨 문서 형식을 통해서 가는 게 아니라구요. 이것은 사랑이라는 문서 형식을 통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만날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사랑을 중심삼고 희생의 길을 통해야 돼요. 그래 가지고 쌓아진 터전을 통하여 하늘의 만남의 날을 찾아가야 합니다. 아까 말한 거와 같이 그렇다면, 어디서 만날 거예요? 어디서 만날 거예요? 내가 걸어간다 이거예요, 간다. 어디서 만날 거예요? 어디서 만나고 싶어요? 가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정을 모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격이 될 것이다 이거예요. 그래요?

하나님을 내 오붓한 우리 가정에서 만나고 싶어요? 그러면 가정을 중심삼은 세계의 대표적인 가정의 하나님으로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정에 찾아오는 하나님이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궁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서는 못 나타난다 그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가정에서 가정 하나님 만나고 싶어요? 여러분 욕심이 그래요? 그게 문제예요. 하나님을 어느 자리에서 만나고 싶으냐? 가정의 자리에서 만나고 싶으냐? 가정에서 만나되, 세계를 전부 다 만날 수 있는 자리를 기반 닦아 가지고 가정에 들어와서 만난다고 하면 그건 내용이 다르다구요.

여러분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자리에서 만나고 싶으냐? 가정에서 만나게 되면 그건, 그 가정 위에 종족의 만남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종족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면 민족의 만남의 자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또, 민족의 자리에서 만나면 국가의 만남의 자리가 남아 있고, 국가에서 만나기를 필요로 하게 되면 세계의 자리가 남아 있고, 세계에서 만나기를 원하거들랑 천주, 영계를 개재시킨 그것이 남아 있고,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 자리에서 만난다 이거예요. 이 자리에서 만난다면 그것이 최상의 자리일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어느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요? 내려와서 맨 문전에 와 가지고, 그 보좌고 천주고 세계고 국가고 민족이고 종족이고 다 필요 없이 내 가정에서 만나자구요.! 이것은 가정적 하나님으로밖에 나타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소원이예요? 우리의 마음은 아니예요. 최상의 자리에 있는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한다구요. '내가 찾아갈 테니 거기서 기다리시오! 내려 오다 보니 한 단계 천주사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내려오다 보니 세계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내려오다 보니 국가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내려오다 보니 종족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내려오다 보니 가정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요, 내려오다 보니 개인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이니 그런 자리에 내려오지 마시오. 우리 인간은 그곳을 찾아가겠수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찾아가는 데는 어려움의 길을 나에게 폭포수같이 퍼부어 주소! 10년 만년을 위해서 가거든 그 10년 만년을 압축한 수난길을 나에게 퍼부어 주소! 그걸 타고 넘어가 가지고 당신 앞에 도달할 수 있는 그 만남의 길을 나에게 부여하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욕망의 최고의 왕과 만남의 종착점이 아니겠느냐? 이해돼요?

핍박을 통해 발전해 나온 것이 종교의 길

자, 이 길을 가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면, '아이구, 우리 엄마 아빠는 반대해' 합니다. 이게 반대하는데 한 10년쯤 가다가 떨어지면, 그게 얼마나 괴롭냐 이거예요. 이왕지사 출발한 것 달려가는 겁니다. 달려가는데, 쏜살같이 달려가는 거예요. '나라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어서 당신의 보좌 앞에 내가 찾아가서 만날 수 있는 시간까지 기다리시오!' 한다면 기다리는 시간을 몇 년 잡을래요? 그 자리까지 가는 시간을 몇년 잡을래요? 몇 년 잡아요? 50년 잡을 거예요, 5년 잡고 싶어요? 「5년요」 답변은 다 '5년' 하는데, 5년 하는 걸 다 좋아하지요? 그건 뭐냐 하면, 50년 역사를 5년 잡으면 내일의 생애에 있어서 몇백 배 이상의 수난과 고통을 소화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가 반대하는 것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늘이 반대하면서 밀어내면, 이게 옆에서 확 밀고 나가면, 휙 올라가는 기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세계야 나를 반대하라. 반작용을 이용해 가지고 나는 저 아래에서 보금자리를 향한 만남의 한때를 위해서 가니, 세계가, 그저 누구든지 힘껏 쳐라!' 그거 있지요? 그러면 반작용으로 휙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의 가슴에 안기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 이것은 반드시 세상에 있어서 상응작용이 아니라 반작용적 형태를 취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길이 왈 종교의 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종교는 핍박이 있게 될 때에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널 같은 것을 한번 꿍 하면, 핑…. 이 밟는 힘에 의해서 올라가지요, 딱 그 격이라구요. 세계적인 종교로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핍박의 역사적 과정은 필연적인 조건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자진해서 핍박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자진하여 미국에 가서 그 미국 정부하고…. (손뼉을 치심) 나는 자진하여 남미 혹은 아프리카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건 왜? 그걸 넘은 자리에 있어서 만남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위해서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게 얼마나 멋져요.

자, 핍박을 받고 만나게 될 때에,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그분이 계신다면 눈물로서 맞아 줄 것이고, 내게 상처 있으면 천년 한의 심정을 가지고 쓰다듬어 줄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가운데 나는 완전히 포위되어 가지고 세포 자체가 약동하며 만족감에 취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이거예요. 오늘 제목이 만남인데, 뭣 갖고 만나고 싶어요? 「사랑」 원리 갖고, 원리 갖고. 원리는 길잡이예요, 길잡이. 그걸 다 가야 된다구요.

각 분야에서 모든 체험을 거쳐 승리의 자리를 갖춰야

그러면 종교 가운데 어떤 종교가 있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종의 종의 종교가 있다고 봐요, 종의 종의 종교. 종교 중에도 하나님의 종에서 만들어져 가지고, 그 주인 앞에 종같이 순응해야 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종의 종의 종교. 하나님 앞에 있어서 무슨 종교가 있다구요?「종의 종의 종교요」 종의 종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종의 종교요」 종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양자의 종교요」 양자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아들의 종교요」 아들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다음엔?「부모의 종교요」 부모의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뭐냐? 신랑 신부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뭐냐? 독신생활하는 것은 처녀 총각 때에 있어서 양자 자리라든가 혹은 아들의 자리가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것이 분파적으로 돼 있다구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통일교회는 무슨 종교냐, 통일교회는 무슨 종교예요?「부모의 종교요」 그럼 뭐 제일 좋은 종교계? 무슨 종교예요?「부모의 종교요」 부모의 종교, 좋습니다. 부모의 종교인데, 부모는 어떤 분이냐? 종도 사랑으로서 품어 주고, 종이 명령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이라야 부모가 되고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종의 종도 그렇고, 양자도 부모의 명령을 기다리는 겁니다. '야, 이것 해라' 하면 '예이' 하고 말이예요. 아들을 위해서 모든 전부가 명령에 순응해야 돼요. 모두가 순응할 뿐만 아니라 자체에서 하나될 수 있는 환경을 거쳐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그 모든 분야에 패스를 해 가지고 부모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가 결정됩니다. 아시겠어요?「예」

그러려면, 종을 지배할 수 있는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종의 자리에 서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종의 자리에서 종 이상의 자리에 서 봐야 됩니다. 그리고 양자의 입장에 서 보지 않으면 양자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양자의 모든 사정을 알고, 그 이상 고생했다는 네임 벨류(name value; 명성), 간판이 없으면 양자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아들 중에도 아들이 거쳐야 할 모든 책임 소행에 있어서 이것을 다 거쳐 가지고 보통 아들보다 나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부모 대신 그 아들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볼 때에, 부모 앞에 혹은 하나님 앞에 종이 있고 양자가 있고 아들이 있고 부부가 있고 부모가 있다면, 이 전체를 전부 다 포괄해 가지고 주인 자격이라든가… (녹음이 잠시 끊김 ) 통일교회라면, 그 통일교회의 부모의 종교에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상속하는 자리는 어디냐? 어디서 상속할 것이냐? 그 위치가 개인적 자리예요? 가정적 자리예요?종족적 자리예요? 민족적 자리예요? 국가적 자리예요? 세계적 자리예요? 천주적 자리예요?

그러한 생활을 통일교회 교인이 거쳐가지 않으면 안 돼요. 실제 사회에 각계 각 분야에 있어서 모든 체험을 거쳐 가지고 승리의 자리를 갖춰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갖춘 자리가 개인 자리가 아니고 세계의 자리까지 연결시켜서 그것을 하나의 반대적 기반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최상의 자리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창건하는 데에 순응치 않으면 망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예수를 믿어라!' 하는데 믿고 천당 가요? 그런 하나님은 우리 통일교회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필요 없다구요. 믿기만 하면 천당 가요, 세상은 망하고? 꺼꾸로 되어 있어요. 그런 종교는 하나님이 전부 다 탈락시켜 버려야 된다구요. 왜?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2천 년 동안 수난길에서 무한히 발전해 나온 기독교가,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온 이후에 한 20년 동안 이렇게 협박(狹薄)하고 몰락되어 있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이것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창건하기 위한 새로운 종교가 나오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몸부림치고 망하지 않으려 해도 망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마찬가지라구요. 여기에 순응치 않는 종교는 다 쓰러지는 거예요. 여기에 순응치 않는 나라와 세계도 다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카터 대통령 멱살을 잡고 싸우는 거예요. 당당코 싸우는 겁니다. 미국 국회를 들고 싸우는 거예요. 민주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하나의 축복권이면 축복권이나 사랑의 세계형태를 내가 만약에 섭리권 내에 필요로 한다면, 개인주의와 안락을 위한 퇴폐적이고 윤락적인 기반이 있으면 안 됩니다. 없애야 돼요. 제거당해야 된다구요. 우리 같은 사람이 나와서 싸워 제거해야 된다구요.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통일교회가 안 나왔을 때는 할수없이 누더기가 됐지만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명실공히 세계사적인 종교가 됐습니다. 그걸 내가 만든 거예요, 그게? 그냥 무엇이 밀어서 그렇게 된 거라구요. 단 하나, 무엇? 사랑의 만남을…. 아시겠어요? 내가 미국 찾아갈 때가 지금부터 한 십 년 전 되는구만. 하- 그 사람들을 내가 이렇게 요리해 먹고 내가 주인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구요. '수난길에서도 아무리 억센 폭풍우가 오더라도 나는 직행할 것이니라' 이런 생각했지, 돌아가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구요. 공산당을 구해 줘야 하니, 공산당을 위해서 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래 여러분들이 아무리 통일교회 교인이래도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종의 자리를 못 넘어서면 종의 급에 머무는 것입니다. 자격이 그것밖에 안 되었으니, 그것은 자체가 전부 다 증거하는 거예요. 여러분, 저 수소 기구와 마찬가지예요. 자기에게 공기의 비중이, 안팎으로 그 무게의 비중이 맞는 곳에 머무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저나라에 가서도 용서가 없어요. 과학적인 것이 영계예요, 내가 알기에는. 절대…. 세상과 같이 뭐 사바사바해서 통하고, 뭐 이렇게 비법이 통하지 않는다구요. 용서가 없는 세계다 이거예요.

기다림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

그렇게 알고, 오늘 이런 제목을 중심삼고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느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이거예요. 아시겠어요?「예」 가냘프고 이쁘장하게 생긴 우리 통일교회 소녀들에 대해서 나는 말하노니 '아름다우니 시집 빨리 가 가지고 행복하게 살라'가 아니예요. '너는 시집을 가더라도 이 모든 것을 거치고 하나님을 만난 후에 시집가면 얼마나 좋겠느냐'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예」

하나님을 만난다면 어느 자리에? 선생님에게 꼭 붙어 있어요. 꼭 붙어 있다가 선생님이 달려갈 때는 그저 기관차 가듯 달려갈 테니, 떨거덕 떨거덕 바퀴 하나 깨지더라도 떨어져 나가지 말고 달려가게 되면 종착점에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다 쉬는 겁니다. 또, 뒤로 돌아갈 때, 그때 가서는 그때도 다 갔다가 종착점에 가서 도착 합격을 맞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다음에 돌아가서 시집가라 이거예요. 그런 생각 하니 선생님이 고약한 선생님이지요. 자, 이게 저 고개를 넘어갔다 와야만 결혼해 준다니 야단났지요. '아이고, 옆으로 얼마든지 있는데…' 하지만, 그 옆으로 가고 싶으면 가 봐요. 내 가는 길은 그 길이 아니예요. 저 고개를 넘어갔다 와 가지고야 가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결혼해 가지고 3년 기다려야 돼요. 3년 아니라 7년이라도 기다려야 돼요. 내가 결혼식하게 되면 7년 아니라 10년이라도 기다려야 됩니다. 여러분, 뭐 기다린 것은 여러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기 위한 것이냐? 보다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기 때문에, 그것이 끝날락 끝날락 하는데 거기에 만나지 못하고 시집가고 장가가야 되겠나요, 조금 더 기다려서 만나 가지고 시집 장가가야 되겠나요? 어디예요?「만나고 나서요」 그거 물어 볼 게 있어요? 없어요. 물어 볼 것도 없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 이번에 선생님 오시면 아이구 약혼축복 해주지' 이래요. 몰라요, 나는 몰라요. 요즈음에 '축복해 주고 결혼 안 해주나?' 내가 결혼해 주고, 축복해 주러 온 거예요? 그건 임자네들의 생각이지, 내 생각은 아니예요. 통일교회 가정을 어떻게 한 계급이라도 높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놀음을 해주느냐? 내가 그저 욕을 해서라도, 들이 밟아서라도, 때려서라도, 밀어서라도 어떻게 해주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그게 좋은 선생님이예요, 나쁜 선생이예요? 응, 좋은 선생이예요, 나쁜 선생이예요?「좋은 선생님입니다」 나쁜 선생이지요?「아니요」 눈물이 나오고 비틀거리고 하는 데도 동정 안 하고, 배가 고파도 밥 먹으라고 하지 않고 '이 쌍것, 밥이 뭐야 쌍것. 가야 돼. 가야 돼' 하는 거예요.

자, 그 놀음을 하다 보니 나도 늙었다구요, 이제. 나도 이제 60이 넘었으니 기력이…. 그렇게 시키는 사람이 오죽하겠어요. 시킴당하는 사람하고 시키는 사람하고 누가 더 힘들겠어요?「시키는 사람요」 그건 시키는 사람이예요. 나도 이젠 60이 넘었기 때문에, 아 이거 더 냅다 몰아야 할 텐데 이게 기력이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아ㅡ 죽기 전에 좀더 때려 몰아라 …. 그래야 할 텐데 내가 '안 되겠습니다' 이러고 있지만 기가 차지요? 기가 차지요?

여러분 침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저 히말라야 산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히말라야 산정에서요」그러면 여러분들, 세계 왕자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여러분의 침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세계 왕좌에서요」응? 어디예요. 여러분 욕심이 어디예요?「세계 왕자의 보좌예요」물어 볼 게 없어요. '물어 보긴 뭘 물어 보노? 덮어놓고 왕자지' 그러는 거예요. (웃음) 덮어놓고 보좌지요.

그게 얼마나 쉬워요? 쉽죠?「어렵습니다」순서를 밟아 가지고 그 자리에 가는 게 쉬워요? 그것이 세상에 무슨 권력을 가져 가지고는…. 옛날에 징기스칸 같이 힘이 많고 전술에 능하게 되면 전진명령을 타고 앉아 있지만, 사랑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희생을 통한 제단을 쌓지 않고는 도달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고 가도, 가고 가고 가도 끝이 없는 희생의 제단을 남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그거 그럴 것 같소? 「예」

만남의 주체가 되어 사랑의 씨를 뿌려야

여러분들도 그래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만큼 왔어요. 이젠 뭐…. 나는 지금까지 일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내가 할 책임은 이제는 다했다고 봐요. 내가 이 민족 앞에도 그렇고, 세계 앞에도 그렇고, 오색인종 앞에도 그렇다구요. 지금까지 나의 짧은 이 생애노정이지만 그들의 뼛속에는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하나의 남성으로서 길이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바라봐도 그것이 없었지만, 레버런 문을 바라볼 때는 그런 것이 있었다 이거예요. 무엇인가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오색인종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과제 하에 그 운명길을 출발했고, 그 과정을 거쳐가야 되고, 그 종착점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행로이기 때문에, 그런 천의에 의한 사랑의 내심을 가지고 나타나는 곳에는 동·서양을 넘고 세계 환경과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극복해 가지고 비약해서 하나의 높은 차원으로 전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셔야 돼요. 아시겠어요? 「예」 무엇만이? 「사랑만이」 사랑만이.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아침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나를 만나고 가게 될 때는, 그 사람에게 절대 마이너스시키지 말라 이거예요. 내가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고, 거기에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주파, 그 무엇을…. 어디 가서 앉더라도 그런 생각 하라는 거예요. '나는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은 무한한 발전소다. 내가 앉아 가지고 나는 사심없이 전체를 위한다' 하게 되면, 전체 분위기는 전부 다 내 앞에서 부활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살고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망하게 하려는 사람이 그 순간에 망하고 나는 비약하는 거예요, 비약. 비약이라는 것은 극의 찰라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냥 순탄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극의 순간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작전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아시고, 이제 교회에 나가도 누굴 만날 것이냐? 내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주체가 되어 있으니 그를 위해서 무엇을 줄 것이냐? 사랑의 씨를 뿌리고, 사랑의 잎을 뻗게 하고, 사랑의 맥박을 연결시킬 수 있는 놀음을 해보자 이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이라고 생각해요. 정상적인 길인 동시에 그것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 향상의 길을 가기 때문에, 차원 높은 만남의 길을 오늘도 내일도…. 이걸 알아야 됩니다.

보다 고생하는 자리에서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통일교인이 되자

그걸 딱 알게 될 때, 자기 갈 길이 바빠요.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잘 알아요.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자기가 잘 안다구요. 설명이 필요 없다구요.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고, 내 마음이 하나님의 어디를 닮고 있고,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잘 알아요. 설면이 필요 없다구요. 자기가 잘 안다는 거예요. 이걸 볼 때에, 내 갈 길이 바쁜 인생행로를 재촉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보다도 남을 위해 살기 위해서 산곡을 넘어가야 돼고, 험산 준령 ….

우리 통일교회에는 이런 사상이 있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가는 것입니다. 생애를 희생하고 가겠다고 하면 천국은 저 새벽으로 오는 거예요. 여기는 밤이지만 새로운 태양을 맞게 되면 저 땅 끝, 저쪽 편에 가 가지고 방향은 이쪽으로 향하여야 된다 이거예요. 새로운 태양과 같은 것을 보여 주는 거와 마찬가지의 길을 우리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대인 밤이 지날 때까지 밤길을 넘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런 세계의 타락권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의 길을 추구해가는 것이 통일식구들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이 아니냐.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예」

한국에서 누구보다 고생을 하면서 뜻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 나 미국 보내 주소' 하면 보내 주는 겁니다. 그때는 '나 미국 안 가겠소' 해도 하나님이 보내 준다구요. 아시겠어요? 그렇게 위하는 길은 세계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이놈의 영신들이 말이예요, 선생님이 미국에 있다 해서 강제로 와 가지고, 저 날치기 달치기 새치기 패들 날뛰고 있어요. 나는 그걸 제일 싫어한다구. 이놈의 자식들, 내 승낙 안 받고 온 나쁜 놈의 자식들은 내가 쫓아 버리는 거예요. 내 앞에 못 나타나게 하는 거예요. '이리 와 봐! 통일교회 한국에서 무슨 일 해놨어? 나 이상 했으면 와라!' 이거예요.

여러분도 그래요. '우리 선생님 미국 기반 닦았다'고? 미국 기반은 세계를 위해 닦은 것이지 여러분들 위해 닦았나요? 세계를 위하는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구요. 한국 사람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선생님의 전통을 이어받고 선생님의 뜻을 안다면, 세계를 위하는 것이 선생님보다도 나아야 된다구요. 세계를 위할 수 있는 통일교회 교인이 된다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밀어 줍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협회장도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아무나 세계에 내보내면 망신을 당한다 이거예요. 보다 고생한 사람을 보내야 돼요. 아시겠어요? 미국에서도 보다 고생한 사람을 취해서 세계로 보내는 운동을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우리 대한민국에서 천국을 보내는 데 있어서도, 나는 보다 세계를 위해 고생한 사람을 하늘나라에 나는 보내겠다 이거예요. 높은 자리에 가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활동을 하고 그런 내용을 가지고 가는 단체라면, 하나님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 단체가 망하지 않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발전할 것이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예」 알 만해요?「예」

결국은 '고생을 더 해라' 이거예요. 그러거든 높은 자리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상봉의 날이 목전에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아ㅡ멘.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는 본부인 청파동 교회의 단상에 섰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이 시간도 스승이 있는 곳을 항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이곳에 오기를 고대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나는 보고 또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성들여 기도하는 그 마음 가운데는 선생이 간 그 길 이상의 수난길을 대신해서 세계를 넘어 당신을 만나는 그 한 자리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있사오니, 이 시간 같이 여기에 참석한 자들과 더불어 그 마음에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을 중심삼은 이런 환경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급되는 모든 파문이 그들의 마음속에 영향을 미치게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자활과 자주의 생명권을 지녀 가지고 당신을 향하여 달음질쳐 갈 수 있는 은사를 같이 부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있는 전식구들, 일본에 있는 전식구, 미국 그리고 127개 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 더더우기나 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으면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울 때에 지키시고 낙심할 때에 권고하시던 당신이 있는 것을 아는 자들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이 시간 살펴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한국의 정세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안팎으로 모든 전체의 환경을 당신이 살피시고 금후에 가야 할 한국의 방향을 당신이 설정하시옵소서. 그리고 위정자들이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길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게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불철주야 기도와 더불어 이 민족과 이 세계에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시대적인 사명을 할 수 있게끔 하여 주시옵고, 민족적 책임을 다 해내는 대한민국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를 위함에 있어서 자중하고, 세계 사조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정도를 살펴 갈 줄 아는 젊은 청소년들이 되고, 학생들이 되고, 국민들이 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모인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 위에, 그리고 저 먼 가운데서 내일의 희망을 바라며 당신의 사랑의 자리를 만남으로서 추앙하는 모든 신도들 위에 공히 당신의 손길을 펴 주시길 간절히 부탁합니다. 오늘의 모든 것을 감사하며 금후의 전체를 맡기겠사오니 주도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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