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그간 비좁은 가운데서 긴 40일 기간을 지냈습니다. 목이 쉬어서 듣기 거북하더라도 들어 주길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자기라는 존재를 가만두고 생각하면 큰 짐, 혹은 어떠한 압력에 큰 자기가 압박되는 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뜻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뜻이 크고 엄청나기에 이 큰 뜻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무한한 능력이 필요하고, 이 큰 압력을 타파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비장한 투쟁이라든가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이 뜻은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나'입니다.
더우기나 우리 나라의 실정을 두고 보면, 이 나라의 젊은이로서 이 험한 국가적인 운세라든가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이 운세를 가만두고 볼 때에, 이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뜻을 찾아 이것을 책임지고 나가고자 한다면 현재 민족이 당하고 있고 세계가 당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없어 가지고는 도저히 새로운 세계에로 이끌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든가 뜻이 죄악세계에서 개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고, 민족과 세계와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구한다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있다 할진대는 수많은 개인 앞에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요, 수많은 가정들 앞에, 혹은 민족·국가·세계·천지간의 어떠한 힘보다도 더 큰 능력을 스스로 내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힘을 발동시켜 발전해 나가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전체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개인을 두고 보면 개인으로서, 혹은 가정을 두고 보면 가정으로서,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그 범위가 큼에 비례해서 자기가 대처해야 할 내적 결의와 마련되어야 할 능력이, 힘이나 여건들이 거기에 비례되는 이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한 역사적인 임무를 앞에 놓고 더우기나 천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여기에는 하나님만이 계셔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하는 무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거절하려 하는 반대의 입장에서 파괴를 도모할 것이요, 또 악이 성(盛)하면 하나님이 악을 배제하여 청산하기 위한 소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모하든가 저기에서 소모하든가 선한 편에서 소모하든가 악한 편에서 소모하든가 이와 같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역사노정을 거쳐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큰 사명과 큰 은사를 앞에 놓은 내 자신을 보게 될 때, 책임을 지고 나서고 사명감에 불타는 입장에 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크나큰 압박감에 눌리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기 자체가 천지로부터 세계·국가·민족을 거쳐 가정을 배경으로 해서 여기에 나타났다 이겁니다. 이제 여러분 개체가 선한 세계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개체로 섰느냐 할 때에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가정, 선한 민족, 선한 국가, 선한 세계를 대신하여 보장받을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갖추고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하다 이겁니다. 도리어 이것보다 악한 세계, 악한 국가, 악한 민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을 중심삼아 인연되어진 배후적인 기반이 크면 컸지, 선한 편에서 여러분 자신을 세워서 입증해 주고 보장해 줄 수 있는 내적 기반은 희박하다 이겁니다.
이런 찰나에 선 자기 자신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결의를 해야 될 것이냐? 지금까지의 생활태도, 강당에서 스스로 수련받았던 태도, 그것으로서 내가 이와 같은 엄청난 개인으로부터 가정·국가·세계·천주까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심정세계에까지 도달하여 공인받아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악한 세상 앞에 뚜렷이 명시하기 위해서는 악한 세상의 개인 앞에 승리해야 되고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 앞에 혹은 어떠한 주의나 사상 앞에 여러분은 이것을 박차고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냉정히 비판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엄청난 위치에 섰는가 하는 것을 더더욱 깊이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을 조종해 나가든가, 선한 개인으로부터 선한 가정·종족·민족·국가를 거쳐 선한 세계무대로 나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지도자가 있어 가지고 내가 그의 치리를 받아 그 길을 가든가, 혹은 믿는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도록 코를 꿰어서 그 길로 끌어가든가 하는 비상한 방편이 없는 한 여러분 자유 의사로 이 길을 가라 하게 될 때는 열이면 열 번, 백이면 백 번 다….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이 선을 위해 가다가 전부 다 배반자가 되었던 것을 우리들은 비판하고 배워 왔습니다. '과거의 선조들도 이러했고 오늘 현세에 뜻을 대한 사람들도 이러했으니' 하고 지금은 비판하고 있지만 여러분 각자들이 비판받는 무리에 가담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과거보다도 더 결의를 해야 되고 지금까지 뜻을 대신해서 맹세한 것보다도 더 결의를 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이 길을 가는 데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여러분의 심정 가운데 그러한 불타는 각오와 투지력과 결의를 가지고 새삼 여러분을 걸어 놓고 하늘땅 앞에 혹은 이 원수 앞에 선포하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청소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여러분과 같은 연령 시대에 있어서 어차피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번 뒤넘이쳐 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모든 고통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비애의 곡절을 피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환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환난이 기필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계가 선의 세계가 아니고 악으로 시작하여 악의 목적 세계를 영위해 나가는 역사 발전 도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종국적인 결말은 기필코 선한 사람을 환영하는 미래로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종결짓기 위하여 최후의 단판을 결정짓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역사적인 슬픔과 역사적인 비애와 더불어 이것을 판가리하고 스스로 승리적인 자세를 갖추어 천지 앞에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자세와 새로운 심정을 갖고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지 않는 한 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 가슴 한 가운데 소망과 포부를 지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망은 다 갖고 있습니다. 새롭고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남이 하지 못하는 더 좋은 면의 것에 반대되는 여건들을 타파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새로운 것과 좋은 것이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혹은 현실적인 생활 시점으로 보아 우리가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출발의 길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을 세워 놓고 다시 한 번 다짐하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나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갈 것이냐? 이런 문제를 걸어 놓고 생각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 도상에 있어서 두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 할 때 반드시 반대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래의 선을 세우기 위한 사회가 아니요, 선을 반대하던 역사적인 사회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은 하기가 어렵지만 악한 일은 하기가 쉽습니다. 열 가지의 악보다도 한 가지의 선을 행하기가 더 힘든 사회적인 실정 가운데 내 몸이 잠겨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악이 기반을 닦고, 악의 사조가 다시 역사적인 배경으로부터 현실적인 무대를 거쳐 미래에 우리가 추구해 나갈 세계를 정복하려는 사회적인 사조를 앞에 놓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것을 관망하는 입장이나 도피하는 입장에 서면 선한 나라를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요, 선한 개체를 완성할 수 없다면 선한 가정을 완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요, 선한 가정이 없으면 선한 국가, 선한 세계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섭리, 하나님이 뜻을 세워서 오늘 이 땅 위에 구원섭리를 하시는 전체적인 소망이 이 지상에서 성취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기로에 있어서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박차고 나가야 할 자신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출발하는 시점에서부터 내가 어디까지 달려가야 될 것인가를 측정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역사도상에서 복귀섭리를 해 나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한 개인을 찾기 위해서 역사적인 투쟁을 해왔습니다. 역사적인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또 역사적인 투쟁을 해왔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어느 가정이나 어느 사회나 어느 국가나 어느 세계 어느 주의를 막론하고, 그 주의가 평면적으로 나타났고 시대적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인연과 동기에 있어서는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이 노아 같은 양반 한 분을 세워서 '120년 후에 내가 천지를 심판하겠다'고 약속하게 될 때는 그 개인을 부른 것이로되 역사적인 시련과 역사적인 고통과 역사적인 환란 도상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120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하면, 세계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고 혹은 죽음길을 가는 도상에서, 선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배반하기 쉬운 자리에서 120년 동안 하나님이 노아에 대해서 명령한 것을 노아가 행동하여 지켜 나온 시기였습니다.
만일 노아가 80년 동안만 수고했더라면 이 뜻은 미성사(未成事)입니다. 100년 동안만 수고했다 하더라도 미성사입니다. 119년 성사하고 '아, 하나님이고 뭣이고 나는 모르겠다' 하고 후퇴했다면 미성사로 끝날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년 동안 꾸준히…. 그는 벌써 하나님이 작정한 120년이라는 기간에 있어서 길이가 길면 길수록 거기에 대동하고 포함되어 있는 시련과 고통과 역경이 얼마나 큰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그 마음 가운데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온 세계 만민은 악한 시련 도상에서 다 포로가 되었지만 나는 악한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가는 길을 가로막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포로가 되는 패자가 되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신념의 기반 위에서 스스로 실체적인 행동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는 데 있어서 그것이 하루의 생활로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120년 이후에 남아질 수 있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의가 노아에게 없었으면 그는 가다가 망했을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자신이 이것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면…. 누가 재촉하여 '어찌하여 당신이 약속된 기간을 방심하느냐'고 충고해 줄 수 있는 부인이라든가 자식이 있었으면 노아는 행복한 아버지요 남편이 됐을 것입니다. 120년 동안 남이 알지 못하는 천적인 명을 받아 가지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노아의 처나 자식들은 협조를 못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노아는 환경의 십자가가 크면 클수록, 외적인 고충이 크면 클수록, 안팎의 시련이 크면 클수록 붙들고 늘어졌던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노아는 언제나 '내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놀음을 하지만 내 개인으로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려고 할 때는 열 번 백 번 천만 번 낙심할 수 있는 자리요, 도리어 지긋지긋한 생활 터전인 것을 느끼는 노아는 자신이 홀로 이 일을 해 나간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느냐? '나는 혼자 하되,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요, 혼자 하되 1600년 동안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한 사람을 불러 나온 과정에서 협조한 선한 선조들과 같이 동반해 싸운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인 과제를 여기서 만들고, 역사적인 인연을 여기서 만들고, 천적인 인연이 자기로 말미암아 빚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외적인 시련에 부딪치는 그것보다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그 가치보다도 내적으로 인연된 가치를 더 철저히 생각하기 때문에, 이 둘을 비교해 볼 때 내적 인연이 크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비교하는 능력을 가지고 비교해 보니 이것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노아는 120년 동안 싸워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도 그렇고, 가정의 생활도….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야곱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겁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21년 동안 하란 땅에 가서 라반의 수하(手下)에 있으면서 모진 압제를 받고 모진 수모를 받아 가면서 하나님이 축복한 축복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과 내가 당하는 시련과 바꿀소냐! 이 길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같이 가신다. 내가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것을 받드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나와 같이하신다' 하는 신념이 환경에 머물러 있는 모든 핍박과 시련보다 더욱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야곱이 느꼈기 때문에 하란 땅에 들어가 21년 동안의 수난의 길을 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축복을 받아 가지고 돌아온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가서 4백 년간 고역을 당하게 될 때에 그 4백 년간의 고역보다도 가나안 복지, 하늘이 축복한 땅, 아브라함ㆍ이삭ㆍ야곱을 통하여 약속한 철두철미한 이스라엘 선민권을 이 천지간에 빼앗아 갈 자가 없다, 아무리 시련이 크더라도 이 축복을 생각하고, 이 축복의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이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그 마음이 시련보다 더 컸고, 더 무서운 힘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어마어마한 사지(死地) 가운데서 새로이 단결하여 나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을 두고도 그러했고, 가정을 두고도 그러했고, 민족을 두고도 그러했고, 오늘날 세계적인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혹은 민주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개인을 선별해서 축복하기 위해서는 아무 덕도 없는 사람, 공로도 없는 사람을 끌어다가 개인적으로 축복해 주는 법이 없습니다. 개인을 축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만 닦아서는 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기반을 닦아 가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자기의 책임에다가 플러스해서 가정을 구할 수 있는 책임을 한 사람이라야 개인적인 축복을 해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개인적으로 축복을 받으면 못 가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축복받게 될 때, 그가 축복받고자 하는 그 욕망보다도 가정을 축복받게 하기 위한 욕망이 더 불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은 개인적인 축복을 해줬습니다.
또, 가정적인 축복은 민족적인 축복의 기반을 닦아 놓고 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적인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가나안 7족을 멸하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또, 세계적인 발판을 닦기 위해서는 그 원수들을 대비하여 싸워 나갈 수 있는 국가적인 기반의 터전을 마련해 놓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국가적인 터전을 마련해 놓고 민족적인 해방의 문을 열어 놓을 줄을 몰랐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애급 땅에서 나오면 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아니예요. 애급 땅에서 나와 가지고 이스라엘 건국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몰랐기 때문에 망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예수 이름으로써 일체가 됨으로 말미암아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2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해서 천국이 되는 게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하늘땅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만 전세계적인 기독교인의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축복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점점 발전시켜 나가서 고차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니 더 고차적인 욕망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개인적인 축복, 가정ㆍ국가ㆍ세계적인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역사를 미루어 봐서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이러한 두 갈래 길 가운데서 어디로 갈 것이냐? 지금까지 사망의 세계에서 포로가 되어 살면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이고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살아온 과거를 후회하고 그러한 나를 청산짓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참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들 앞에 이러한 축복의 내용을 갖고 와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을 평면 도상에 불러 놓고, 삼천만 민족 혹은 30억 인류를 지상에 세워 놓고 하나님은 공통적인 축복의 말씀을 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신부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신부는 개인적인 위치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가정적인 입장에서의 신부라고 알았습니까? 신부는, 개인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가정적 입장의 신부도 있을 것이요, 민족을 대표한 지도자의 아내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신부도 있을 것이요, 세계와 하늘땅을 총합한 신랑 되신 주님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황태자인 그 앞에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지를 호령하기에 결함이 없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어, 예수 믿으면 천당 가지. 신랑 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있지만 그건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는 것입니다. 종의 부인의 입장도 못 되어 가지고 '오, 하나님의 아들 되신 구세주가 내 남편이다' 그러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개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련도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니고 있는 사명과 가치는 민족적이냐 세계적이냐 혹은 개인적이냐에 따라 차이가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천적인 우리의 소망을 두고 볼 때도, 주님이 오늘날 신랑으로 오시는데 그 주님은 어떠한 신랑으로 오시기를 바라느냐? 나 하나를 대신하여 개인적인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으로 믿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망해! 그렇다면 개인적인 구원섭리를 노아 같은 양반을 통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을 구하고, 가정을 구하고…. 이렇게 점점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하나 빼 가지고는 수많은 시련을 주고 단련을 시켜서 한 고비를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자신이 개인적인 부름을 받던 그 지긋지긋한 길을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는 꿈에라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긋지긋한 고난길, 사탄이 그를 따라와서 다시는 시험할 수 없을이만큼 지긋지긋한 자리를 거쳐야 개인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석같은 개인적인 기반 위에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가정 기반 위에 민족을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민족 기반 위에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국가 기반 위에 세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철석같은 세계 기반 위에 하늘땅을 놓고 비로소 아버지가 거기에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 신랑 되신 주님이 전부 다 나를 위해…'라고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이 재림하게 되면 천지를 수습하고, 공의의 법도를 따라 심판해 버리고, 그 천적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신 열녀, 효자 효녀를 거느리고 새로운 개인을 수습하여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고, 새로운 가정을 편성하여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를 편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시는 분이 주님인 것입니다. 이건 그저 주먹구구로 구름 타고 와서 다….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이 놀음을 하지를 않는다구요.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신앙 관점에서 우리의 욕망과 소망이 무엇이냐? 대다수의 사람을 보면 뭐 천지를 지배하는…. 요즘 신문에 보면 케네디가 유명한데 '케네디 대통령보다 더…' 그러는데,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데는 날아가듯이 갈 수 있어요? 아니예요. 지상에 기반을…. 맨 처음에는 벽돌 하나 가지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콘크리트로 기초를 쌓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하늘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민족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 어디 있느냐? 이건 오랜 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기반을 쌓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 일대에서 얻어진 이름이로되 그 일대에서 얻어진 명사는 가정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민족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그다음엔 국가적인 이스라엘로 출발해야 되고, 세계적인 이스라엘로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사를 가졌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 버렸습니다.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다 망했습니다. 예수를 잡아죽임으로 말미암아 다 망해 버렸단 말입니다. 유대 백성을 보게 될 때, 본래의 민족과 국가를 세우려 하던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세계 국가적인 이스라엘, 국가 주권을 중심삼은 승리적 이스라엘을 건국하려 한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스라엘 역사, 가정적인 이스라엘 역사는 닦았지만 국가적, 세계적 이스라엘 기반을 닦아야 할 주권적인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깨깨 못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그 나라를 치는 사람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왔다 간 후의 2천 년간은 왜 지지리 못난 입장에서 나그네가 되어 가지고 가는 곳곳마다 학대를 받고 가는 곳곳마다 몰리게 되었느냐? 그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간단히 안 돼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사적인 환난을 극복하라 이겁니다. 이 환난이 십년 가면 십년 이상 품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백년 가면 백년 이상 참아낼 수 있는 내 자체와 내 가정과 내 주의, 혹은 교파, 새로운 이스라엘 이념을 가진 주권국가를 만들어 놓아야 영원히 남아지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제아무리 개인적으로 승리하고, 가정적으로 승리했다고 해서 세계사적인 이스라엘 권한을 갖고 나온다고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첫 발걸음을 내딛는 문 앞에서부터 여러분을 환영할 수 있는 사회의 환경과 사정이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친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여러분의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인연돼 있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것이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여러분이 세상 것이요 악 그대로의 것이라면 그런 일이 없으되, 새로운 인연을 택해 가지고 선으로 향하려 할 때는 이 기반 닦아진 모든 악의 운세는…. 새로운 승리의 행로를 개척하는 여러분 앞에 있어서 친구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개인적인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 알았지요?「예」선악의 중간 위치에서 여기에 결정적인 승리권을 여러분들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옛날 그 자리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악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잘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붙들고 나와야 돼요. 그러니 과거에 여러분이 생활하던 것보다도 몇십 배 이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것을 바라느냐? 투쟁의 역사노정이 오늘날 인류사 배후에 남아져 있는 연고로 인간들은 `하늘이 있으면 절대자를 내가 믿을 것이다. 절대자의 뜻을 따라 이러한 세계사적인 승자의 기반을 세우게 해줄 수 있는 어떠한 주의가 없느냐? 선한 어떠한 지도자가 없느냐?' 하고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믿든가 그런 절대적인 능력의 배후에서 보내신 메시아를…. 지금부터 2천 년 전의 메시아 같은 양반은 하늘의 힘과 더불어 이 땅 위에 있어서 최고의 지도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는 가정, 민족을 지나 국가 기반을 갖추어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야 할 텐데, 다시 말하면 국가 기반 위에 세계적인 시련을 방어해서 이것을 닦아 놓고 국가를 인도해야 할 텐데 그 책임 노상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 나라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 지상세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붙들고 요리해야 됩니다. 요리를 해야 된다구요. 사탄세계의 개인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끈기 있게 십년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됩니다. 일생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결심 했어요? 「예」 정말 결심했어요? 「예」 여러분들 잡아다가 거꾸로 꽂아서 한번 엎어놓고 '이 자식아, 너 통일교회 계속 갈래?' 하면 어쩔 거예요?
선생님은 과거에 그런 놀음도 해봤어요.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내 피와 살, 내 세포에서는, 내가 각오하고 나가는 이 길에 있어서 양보하지 않고 투쟁한다’하면서 나왔어요. 세상 사람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해 가지고 지도자가 된 사람이라든가, 어느 사람의 안수를 받아 가지고 목사가 된 사람들과는 달라요.
뼈가 있어야 됩니다. 중심을 지배할 수 있는 뼈가 있어야 됩니다. 온 천지, 전우주를 움직일 수 있다 하더라도 나한테 항복해야 됩니다. 왜? 만우주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예요. 내가 치고, 내가 지배하고, 내가 하고자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 `네 자체의 실력이 어떠한 기준에 있느냐? 내 일대에 와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개인을 농락하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 가정을 농락하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 국가 민족을 대해서 농락했던 사탄아, 내 앞에 와라’해 가지고 영적으로 이것을 굴복시키고, 실체로 나타나게 될 때 대결하여 생사의 판가리를 짓겠다는 과정에서 승리라는 두 글자를 남기고 죽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자유스러운 입장입니다. 지금때는 자유스러운 때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를 대하는 여러분들이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들어왔으니 진리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시대적인 혜택 기반을 닦고, 어떠한 승리적 기반 위에 서 있느냐 하는 것도 모르면 안 되겠어요.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거든요. 통일교인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행로에 있어서 내가 어떠한 승리적인 기반을 닦고, 어떠한 투쟁적인 도상에 서 있는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가질 수 있느냐 이거예요.
가정적이냐, 종족적이냐, 민족적이냐, 국가적이냐, 세계적이냐?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투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돼요. 충신 열녀가 되기를 원하고 효자 효녀가 되기를 원하거든 하나님이 요구하는 목적을 향하여 험한 시련, 어려운 환난이 부딪쳐 오는 그 물결을 책임지고 하나님이 주인이라면 주인 대신,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버지 대신, 하나님이 군왕이라면 군왕 대신이 되어 환난과 핍박과 고통을 자기가 짊어지고 부딪쳐 생사 결단하여 승리의 조건을 남길 수 있어야 되고, 그 승리의 조건은 그때의 시대만이 아니고 과거를 수습하고 현세를 수습하고 미래에 새로운 터전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신 효자 열녀의 명사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세상적인 도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시기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삥삥 돌 수 있고, 여기 들어오나마나 한, 있으나 없으나 한 패도 될 수 있습니다. 나가는 두 갈래 길 앞에 정도를 향하여 반드시 오른쪽을 기준 하고 나는 한편에서 언제까지 악한 것을 심판한다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섰으니 나는 참다운 개인을 붙들고 거짓된 개인을 정복하고, 참다운 가정을 붙들고 그릇된 가정을 심판하고,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적인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세계적인 악을 심판해야 됩니다. 여기에서 내 왼쪽에서 침범해 들어오는 모든 것을 끊고 오른쪽을 침범하지 않게끔 절대 보호하며 절대 투쟁하여 승리적인 장벽을 만들어 놓고 간다는 신념이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앉아 가지고 바라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절대 강도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가 싸워 줄 거예요? 누가 이것을 이루어 드릴 거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남이 활동하면 들어와 가지고 그때 가서야 슬쩍 끼어들 거예요? 책임분담에 있어서 95퍼센트는 하나님이 하게 되어 있고 5퍼센트는 인간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95퍼센트부터 100퍼센트권 내에서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이것은 놀다 남은 그런 시간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총력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이런 투쟁 역사가….
개인적으로 침범한 세계적인 사탄이가 있는 것이요, 가정적으로 세계에 나가 투쟁해서 승리해야 할 가정적인 사탄권이 있는 것이요, 국가, 혹은 세계적인 사탄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복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신 있어요? 「예」말은 자신 있지. 자신 있습니까?「예」6천 년 동안 하나님을 멋지게 배반해 나오고,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을 유린해 나오던 사탄의 지혜를 당할소냐? 자신 있어요? 「예」 뭘로 당할 거예요?
오늘날 자연과학 문명이 발달함으로 말미암아 전쟁도 과거의 전쟁과는 다릅니다. 이제는 적의 비행기가 어디서 날고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편리해진 거예요. 레이다가 있어 가지고 말입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거기에 동반된 무기를 겸하여서, 활용해서 싸우면 싸움에서 고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과 대결해 나가는 역사 도상에 있어서도, 사탄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세계사적 사탄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의 기준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원수세계에 없었던 그런 무기를 지녀야 됩니다. 가정을 정복하고, 국가·민족·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에 없는 새로운 무기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죽으면 죽었지 우리는 안 죽는다. 세계가 망하면 망했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왜?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맹목적이 아닙니다.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맨 처음 들어올 때는 옛날 노아를 부를 때나 마찬가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요. 오늘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을 걸고 말하면 개인적인 투쟁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모진 풍상 가운데 내 개인적으로 백번 천번 처참하게 쓰러질 상황이 많았고, 가정적인 시련 도상에 있어서 별의별 일이 많았지만 내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민족 국가가 통째로 반대했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반대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이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은 선생님 말씀 듣겠나요, 안 듣겠나요? 「듣겠습니다」 강압적이요, 강제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마음이 그렇게 돼 있어요? 「예」
우리는 족속이 달라야 됩니다. 족속이 달라야 돼요. 본질적인 바탕이 달라야 됩니다. 지금까지 악한 세상에서 습관적인 생활에 젖어 있었고, 환경과 배경적인 그러한 무대에서 자라난 내 개체인 연고로 인습적이고 주관적인 관념이 전부 다 악에 접하기에 쉬운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잘라 내야 됩니다. 나면서부터 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이것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돼요. 옛날에 뭐 어디 가서 붙은 것도 전부 다 잘라 버려야 돼요. 동기에서부터 잘라야 됩니다.
나는 어디서 왔느냐? 악으로서 출발하여 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나서 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으로 와서 선을 입증하여 악을 치고 돌아가야 합니다. 악에서 구원받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선에서 났으니 악과 원수의 입장에 선 선이기 때문에 악을 치고 내 사명을 완수하고 간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구원받아 가지고…' 구원받아 가지고 어떻게 원수를 갚아요? 그런 사상을 가져서는 안 돼요. 나는 출처가 다르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해왔지만 섭리를 하는 데는 심정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해 나왔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심정적인 종적 기반을 통하여 출발해야지, 말씀적인 기반을 통하여서는 절대 아버지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핏줄로부터 타락을 하지 않은…. 본래 바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인연되는 것은 내가 보고는 참지 못해요. 세포가 요동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본래부터 출처가 다르다. 본래부터 나는 너와 달라. 사탄을 청산하고 심판해야 되겠다. 악의 생활무대를 일소해 버리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여리고 성이 일시에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세상 무대를 중심삼았던 여리고 성을 일시에 무너뜨려 가지고 그런 기반 위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손이 가는 곳에는 개인적인 재창조가 벌어지고, 그 개인적인 재창조의 완결을 통하여 가정적인 재창조가 벌어지고, 민족ㆍ국가ㆍ세계를 중심삼아 재창조의 역사는 확장됩니다. 여러분의 계획이 크고, 맡은 바의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과 고통이 동반해 오나니, 이 시련과 고통 앞에 패자가 되지 말고 시련과 고통을 받아 나를 거기서 연마하고 다짐하여 그것을 맡기고 물려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요 조건으로서 소화시켜야 되겠다, 이런 배포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가고자 하는 결의보다도 사회에 엉클어진 악습, 사회적인 모든 악의 흐름이 여러분을 포위해 한 곳으로 끌고 가게 될 때 여러분들이 거기에 대비해 가지고 주관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그렇게 못 되어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돼요. 실지 자기를 살피고, 자기를 분별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 가지고 끊임없는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때, 밤이 될는지 아침이 될는지 저녁이 될는지 모르지만 어느때에 사탄의 공세는 있을 것이거늘 이 공세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 돼요.
젊은 사람들이 먹기를 탐하면 밥덩어리가 날아온다 이거예요. '이놈아, 네가 배가 고프지? 이 불고기 백반을 먹어 봐' 한다구요. 또, 놀기를 좋아하면 '야 얘야, 너 과거에 이런 일 좋아하지 않았어? 그 이상 것을 주마' 한다구요.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 '야 야 야, 뭐 배고프게 그럴 거 있니? 잘먹고 잘살아라. 언제 소원의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개인도 복귀 못 했고, 가정도 복귀 못 했는데 국가와 세계와 천주적인 선의 동산에서 언제 살겠니?' 한다구요. 생각하면 창창하거든요. '언제 살겠니? 당장에 뛰쳐 나가면 먹을 것이 있고, 춤출 곳이 있고, 활동할 수 있고, 네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태산같이 있는데 그럴 게 뭐 있니?' 하고 여러분이 외적인 오관으로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모든 여건들이 여러분을 얽어맨다 이겁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아, 피곤한데 자야지' 하는 것이 얽어맵니다.
그다음에는 정욕입니다. '아, 누가 보고 싶다. 집에 있을 때는 내가 배고프다 하면 떡도 해주고 뭣도 해주고, 내가 춥다고 하면 어떻게 어떻게 해줬다. 부모의 사랑이 그립고 누나가 그립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적인 모든 문이 열려 가지고 침투한다 이겁니다.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친구….
그다음에는 옛날 세상과 비교해 보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오기 전에는 이렇게 살았는데 통일교회 오고 나서는 이렇게 됐다. 개인적으로 볼 때도 형편이 없고, 가정적으로 볼 때 추방자요, 민족·국가적으로도 몰리는 입장이다' 하고 비교한다구요.
선생님이 왜 그러겠습니까? 여러분보다 못해서 그런 놀음 하는 줄 알아요? 내게는 친구도 없어요. 내게는 부모도 없어요. 가정도 없습니다. 민족도 없습니다. 나라인 대한민국이 있어도 대한민국은 나에게 친구가 못 됩니다. 환영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몰아대고 뭐…. 오늘날 전세계 30억 인류가 내 당대에 친구가 못 되는 입장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 반기를 들어 들이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싸움 시대가 지나갔지만 개인적인 싸움하던 이상의 결의를 가지고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 시대가 있어 왔지만 가정적인 싸움 무대를 대해 싸웠던 이상 결의를 가지고 있어야 되고, 종족·민족적인 싸움은 이미 지나갔으되 그 이상의 신념과 그 이상의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왜? 세계적 싸움이 남아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개인을 불러 세워 놓고, 야곱이면 야곱을 불러 놓고 '야곱아, 네가 세계를 대하여 나 대신 싸워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부탁은 했지만 하나님은 믿지 못했습니다. 모세를 세워 놓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들어가라는 명령을 하였지만 명령하는 하나님은 모세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도 망했던 것입니다.
천년 만년 보장된 입장에 있어서 개인적인 승리요, 가정적인 승리요, 민족ㆍ국가ㆍ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 준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지배하고 민족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련 속에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궁중에서의 내적인 시련과 미디안 광야에서의 험한 외적인 시련 도상에서 연단을 해 가지고 민족적인 연단 과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될 때 그를 절대적인 민족적 책임자로서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이 국가도 그렇잖아요?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젊은이들을 가만 보면 잘못돼 가지고 공을 안 들이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공 안 들이고 성공하면 망한다 이겁니다. 오래 못 간다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천년 수고하더라도 천년 개인의 승리적 기반을 닦고 기뻐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고, 내가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 천년 만년 수고하더라도 이 천년 만년 수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이 억천만세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갖고 싶다' 이래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의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일생이 문제가 아니요, 몇 십 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기간에 엄청난 수고를 했더라도 억천만세까지 민족적인 주권과 기반이 무너지지 않거든 그것을 보고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조갈증이 나 가지고 혀를 내뽑아 가지고 쑥덕 공론하면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성경을 보고는 알 수 없단 말입니다. 상징과 비유로 나타난 부분이 많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고 6천 년 동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냐 말이예요. 하나님이 사람 같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자랑했겠나 말이예요. 무엇 하나 자랑하지 않는 게 없을 것입니다. 내 속에 있어서는 어떻고 어떻고, 내 귀는 어떻고…. 사람 같으면 전부 다 자랑해 가지고 하나님 판도를 다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계시기는 계시는데 어찌하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시냐? 만년대계(萬年大計) 바라보는…. 억천만세의 영원무궁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나님은 꾸준히 내적인 기반과 인내와 작전을 세우시면서 심각하게 포위작전을 하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쓰러져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둘이 싸우고 소리가 나니…. 이래 가지고 나간다 이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하루의 성공을 바라지 말라 이겁니다. 옛 속담에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큰 집을 지으려면 큰 터가 필요한 것이요, 큰 터 위에 큰 기초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초가 크면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요, 거기에 대한 수고와 부역할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모든 물자가 더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가 큰 사업을 한다 할진대는….
주인이 창고를 백 개 가졌는지 천 개 가졌는지 알 게 뭐냐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복귀섭리가…. 세계상에 없었던 최대의 행복과 최대의 축복을 주기 위한 하늘 창고에 보화가 얼마나 있는지 아느냐 말입니다. 내가 지금 이층에 살고 있지만 하이어 카(hire car;전세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배통을 내미는 녀석들 우습게 안단 말입니다. 그건 다 꺾여 나가는 거예요. 비록 가진 것은 단벌 옷이요, 누운 곳은 판자집일망정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승리적인 준비와 결의를 해 가지고 세계사적인 이념을 지니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야 하는데 더 들어가 가지고 조금만 힘들면 어렵다고 뭐 어떻고 어떻고….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세계, 혹은 민족ㆍ종족 앞에 있어서, 가정적으로 승리자가 못 되겠거들랑 개인적으로라도 완전 승리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자기가 자기를 알 겁니다. 내 실력을 볼 때 이만큼밖에 책임질 수 없다 하고 생각하거든 그 한계를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100퍼센트 120퍼센트 성공하겠다' 해야 됩니다. 개인적인 승리 기반을 120퍼센트만 닦아 놓으면 가정적인 시대는 곧바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또 수고하면 더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턱없는 욕망만 커 가지고, 개인적인 승리 기반을 닦은 내적인 모든 여건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욕심은 커 가지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이루기 위한 입장에서 출발하는 도상에 있으니 결의하고 각오와 신념을….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여건이 많다 이겁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거든 머리를 싸매고 공부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싸움을, 이러한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시련과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거늘 그 환란과 핍박에 부딪칠 것이 틀림없으니 편안할 때부터 미리 연단과 수련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별의별 놀음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바쁠 때는 한 사람이 두 사람하고 주먹받기도 해야 할 때가 있으니 그것도 대비해야 되고, 세상만사 천태만상의 그런 환경을 거쳐 나가서 수습하기 위한 선생이니 몸뚱이도 누구한테 지지 않아야 된단 말입니다. 또, 머리도 그렇고, 배짱도 그렇고,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의 결점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결점이 많은 분야를 찾아 들어가서 더 주력해야 됩니다. 싫다 하는 것을 반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고생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스승이 되고 여러분이 법관이 돼 가지고 명령하여 이런 싸움을 해야 됩니다. 스스로 싸워 가지고, 스스로 채찍질해 가지고, 스스로 심판해 가지고 거기에서 해방을 받고 승리적인 터전 위에 섰다 할 수 있는 자기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기준을 갖지 않는 자는 개인적인 싸움 앞에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싸움터 앞에 그런 내용을 갖지 않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 훌륭하게 되고 싶어요? 「예」얼마나? 그런 욕심은 귀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대번에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에게 있어서 개인ㆍ가정ㆍ민족ㆍ국가 세계까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느냐? 여기에 있단 말입니다. 개인 도상은 편해요. 가정으로 가면 편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의 것이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누구의 것이냐?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것이냐 하면 민족만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요, 세계만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늘땅―세계는 여기에 다 들어가는 거예요―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의 최고 이념은 세상만사 다 버리고, 과거·현재, 현실을 다 무시해 버리고 하늘만을 위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거 멋진 표어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천지를 위주로 하고, 세계 30억 인류를 위주로 하는 겁니다. 30억 인류도 작다구요. 우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구요. 그렇지요? 내가 30억 인류 위에 앉아서 1억 달러씩 나눠 줄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밤잠도 안 자고 아깝다는 생각도 안 하고 멋지게 나눠 주고 또 주고 싶을 수 있는 그 배포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하나님이 그럴 거예요. 하나님이 만약에 30억 인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으면 축복을 해줘야 될 텐데, 30억 인류가 갖지 못한 축복을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일 텐데 주면 얼마만큼 주시겠어요? 내가 옛날에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떤 축복을 해주실 겁니까? 30억 인류가 먹는데 모자라게 축복해 주실 겁니까?' 이런 기도를 했다구요. 30억 인류에게 나눠 주고 모자라는 게 아닙니다. 그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나눠 주고도 또 나눠 주고 과거ㆍ현재ㆍ미래에도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게 뭐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놈의 사랑은 말이예요, 늙은이도 좋아하고, 병신도 좋아하고, 다 좋아하지요? 「예」 굶주린 사람도 밥보다도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지금 여러분들 가면 어렵게 살지요? 이제 가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 오늘 저녁 내가 일전짜리 빵 한 개 먹었습니다. 이거 되겠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절대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 이거예요. 그런 기도는 대단히 잘못된 거라구요.
요즘에 저 기성교회 정통파―그들이 정통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장로교회에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장로교회 하나님입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기도 하지 말라구요. 성결교회도 가만 보면 성결교회 떼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복이든 감리교 복이든 세계의 모든 복을 하나님이 그저 벼락을 쳐서 빼앗아 주면 허허허…. 이런 기도는 암만 해야 이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눈에는 장로교인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성결교인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복받은 부모라면 아들딸 천 명 만 명 먹일 만큼 재산이 넉넉한 거예요. 또 그 아들딸이 틀림없이 효자 효녀가 된다면 아들이 몇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딸은 몇 사람이나 되면 좋겠어요? 효원이, 하나만 원해? 거 솔직히 이야기해 보라구. 하나인가, 어떤가? 뭐 무한정일 거예요. 우리 아들딸이 세계 어디 가든지 만민이 전부 다 우러러보고 다 존경할 수 있는 멋진 아들딸이 된다면 세계 30억 인류를 전부 다 자기 아들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할 거예요. 그런 마음이 있잖아요, 사람이라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있지요? 「예」
그러면 하나님은 얼마나 욕심이 많겠어요? 아들딸 쑥쑥 낳아 가지고 어디 가든지 하나님 아들딸이라고 하면…. 하나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참은 많은 것이 좋은 거라구요. 무한까지 인연맺고자 원하는 것이 참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양심이 참이예요? 양심은 좀 참에 가깝지요. 그래서 무한정까지 인연맺으려고 그러지요? 참의 인연권 내에 그 바탕을 두고 싶어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은 무한까지 주고 싶은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이 뜻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참아들딸들이…. 나도 그래요. 내가 우리 아이들 대해서 기도를 안 하는 겁니다. '우리 아들딸에게 복을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안 한다구요. 기도하려면 '2천 년 전 예수 당시에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아들이 있습니까? 예수가 오기 전 4천 년 역사 가운데에 있어서 이 시대 사람들보다도 더 하나님 앞에 충성하던 아들딸들이 있거든 그들을 축복하소서. 만일에 이 시대에 있어서 더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 사람이 축복을 이루어서 나는 그 축복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소서' 이런 기도를 한다구요. 이러면 망하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거라구요. 한 사람의 참사람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접붙이려고 그럽니다. 가지를 잘라 버리고 전부 접붙이려 한단 말입니다. 그게 복귀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저 자기 아들딸을 위해 남의 복을 전부 다 빼앗아다가라도 복 달라고 해 놓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니 예수가 얼마나 미워하겠어요? (웃음) 그거 생각해 봤어요?
나는 그런 기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만민의 구세주요, 만복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주인공이 기도를 그렇게 하는데 '아무개야, 기도해라. 해라' 이렇게 한다면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거예요. '내가 구도의 도리를 펴서 하나님을 안다는 무리를 저렇게 만들었구나' 하면서 당장에 '이 자식' 하고 발길로 들이 찬다 이겁니다. (웃음) 여러분,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찾고 있던 아들딸이 어디 있습니까? 과거에 있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까? 현재에 없거들랑 우리 민족 가운데 앞으로 보낼 사람이 있다면 내 앞에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그런 사람이 없거들랑 '왜 없습니까? 뜻을 위한 충절이 부족했습니까? 뜻을 위한 민족적인 책임이 부족했습니까? 간곡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몰랐습니까? 내적인 그 모든 사연을 기필코 이 땅 위의 인간 앞에 통고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일진대 그러한 마음을 통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없습니까? 만일에 나를 세워서 그런 사람을 이끌 수 있으면 나를 세워서 말씀을 전하여 그런 사람을 이끌게 해주시옵소서. 만일에 그것이 불가능하거든 나는 부족하오나 우리 민족을 통하여서 몇십 년 후에 몇백 년 후에라도 그런 사람이 있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부족하거든 그런 소망이 있거든 나를 통하여서라도, 나는 그런 사람의 종이라도 좋습니다. 죽을 고생을 다 해도 감사하겠으니 그런 사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그러한데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없거들랑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게끔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대통령을 만나려는 사람이 그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고 합시다. 가 가지고 배통을 내밀고 '내가 이렇고 이러니 이래라' 한다면 되겠어요? 먼저 자기의 사연을 통하기 위해서는 모든 입장을 전부 다 이해시키고 비로소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즉 그 입장에 있어서 정당화할 수 있는 내용을 주고받은 후에 자기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 사회의 룰입니다.
그런데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황태자 앞에, 하나님 앞에 다 달려간다 이거예요. 이건 그저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벼락맞아 죽을 패들이 축복받겠다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어요? 삼팔선 갈라졌을 때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안 된다구요. 한국을 구해 달라고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어요? 그렇지만 왜 안 되느냐 이겁니다. 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터를 닦아야 행차하시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지만 그 반석의 터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이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무너졌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이 세계사 앞에 비참한 민족이 된 것이 아니라 이 민족에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터전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통일교회의 무리들이 세계적인 복의 터전을 바라거든 이들을 몰아서 이들이 나갈 수 있는 세계적인 반석 기반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풍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치더라도 깨뜨릴 수 없는 반석 기반을 어떻게 닦아 놓을 것이냐? 그래서 젊은이들이 오게 되면 교회에 들어올 때까지는 말씀을 가르쳐 주지만 들어온 후에는 무자비하다는 겁니다. 이 코스를 걸어야 되는 거예요. 보라구요. 남이 자는 동안에 우리는 일해야 되고, 남이 방관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세계는 수라장이 돼 있는 판국에 우리는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됩니다. 그러려니 얼마나 바빠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에 의해 망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바람에 우리는 자랐습니다. 민족이 혼란된 환경에서 우리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세계가 혼란된 와중에서 새로이 하늘땅을 통할 수 있는 축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빠요? 이제 우리는 밤이 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래서 4월만 되면 내가 몇 가지 행사를 할 겁니다. 지방으로 젊은 놈들을 다 배치할 거예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처리할 거예요. 내가 잘라 버릴 것입니다.
보라구요. 가만있어 가지고 선이 이루어져요? 가만히 있어 가지고 선이 이루어지느냐 말이예요.「안 이루어집니다」악은 선을 대비하여 무자비한 투쟁을 각오하고 나오지만 선은 무자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자비했습니까? 선이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오기 때문에. 악은 앞에서 침범하고 또다시 후퇴했다가 또다시 침범할 수 있으되, 선은 침범했다가 후퇴했다 또다시 침범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번 침범하고 나서 또다시 침범하기 위해서는 오랜 탕감적인 기간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됐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가 증거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분명한 거예요? 시작하는 마당에는 깨끗이 청산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후퇴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장ㆍ발전하는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은 스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이 지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때를 지내면 지낼수록, 뜻은 이루어진다고 알면 알수록 그 이루어지는 배후에는 발전이요, 성장이요, 거기에 있어서 뜻을 위한 행로를 개척해야 할 투쟁적인 책임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을 두고 볼 때 자기 개인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때가 그런 게 아니예요. 그래서 금년 4월부터 새로이 1차 수습을 해야겠다 이거예요. 1차 정비를 해 가지고 나갈 준비를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이번 이 수련 받고 나가는 여러분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선을 위해서 플러스되는 방향성을 취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가정적인 사조가 흘러오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내가 승리했다고 해서 가정적인 사조를 배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협조해야 돼요. 오늘날 국가적인 사조가 우리 앞에 다가왔으면 그 사조 앞에는 비록 개인적·가정적·종족적인 기반의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협조해야 됩니다. 뒷받침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연을 맺지 않고, 여기 자라는 데 있어서 자라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끼리 싸움하고, 가정은 가정끼리 투쟁해 가지고 점점 나가느니만큼 여러분들은 이 세계사적인 무대를 앞에 놓은 입장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어디에 설 것이냐 이거예요.
내 생활에 있어서 플러스적인 내 개체와 더불어 뜻 앞에 보탬이 돼야 됩니다. 여기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구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일선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갈래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될래요?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앉아 가지고 쉬는 사람 될래요? 구경하는 사람이 될래요? 어떤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우리는 최후의 결전장으로 가서 생사의 판결을 짓는, 최후의 결판적 입장에 나가는 용사들이 돼야 됩니다. 어때, 용기가 있어요? 「예」'내 아들딸이 지금 배가 아픈데 아이구 약 사다 주겠다' 하는 생각 하겠어요? 그런 때를 봐서 언제 가더라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단계로 볼 때에 배후에 떨어진 사람은 편할 것 같지만 역사와 더불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가는 사람은 비참한 것 같지만 그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니만큼 이왕 전장에 나가서 싸우려면 세계적인 전쟁무대에 나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는데 어디로 갈 것이냐? 환경을 수습하여 복귀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플러스적인 입장에 여러분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얼마만큼 결의와 신념을 갖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동지가 없게 될 때는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지라는 거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니 그런 아들딸을 보호하는 겁니다. 일선에 나가 가지고 전쟁을 해본 사람이라야 전쟁터에 나가서 자기의 몸을 가눌 줄 압니다. 이건 지금 뭐 그것도 못 해 가지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최일선에 전부 다 내쫓아 가지고 고생 좀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 생각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거예요, 흥하는 거예요? 「흥하는 겁니다」그렇게 하라우, 말라우?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라우? 「예」 그러니까 내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라구요. 여러분들이 나 대신 날 넘고…. 내가 실체기반을 닦아 놨다구요. 옛날에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삼천리 반도를 갖다 놓고 '이놈의 사탄들 물러가라' 하는 그런 싸움도 해봤습니다. 나타나면 그저 뼈다귀까지 건지지 못하게끔 그냥….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 거기서 사탄이 '아, 무섭다' 그런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어야지요. 신념적으로 제패하지 않으면 승리가 와도 역사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못 됩니다. 흘러가는 거예요. 승리를 남에게 안겨 주고 자기는 종밖에 못 됩니다. 그런 기백과 신념으로 어떤 주의, 사상, 이 사회의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일념과 우리들이 나아가는 만반의 결의 앞에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묵묵히 응시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해도 통할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지방 내려가서 패잔병이 되지 말고, 부디 낙오자가 되지 말고, 지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싸움 터전 위에서 이제 선생님과 더불어 만나 가지고 옛날을 회고하고, 역사적인 우리 통일의 용사들과 더불어 세계 인류와 더불어 의논하고, 다가올 그날을 찬양하면서 그 모습을 높이면서 하늘 앞에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가는 도상에, 싸움길 앞에 혼자 이것을 방비해 놓고 하늘편이 돼서 여러분들이 이런 뜻 앞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심판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끝까지 승리자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든가 그 무엇도…. 그러한 하늘의 책임을 맡아 하게 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한 많은 복귀의 길이 저희의 역사 도상에 비춰진 것을 저희들은 알았나이다. 이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눈물과 피와 땀으로 제단을 연결해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력히 배웠습니다.
아벨 제단으로부터 노아의 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를 거치고 4천 년 역사적인 모든 전부를 규합하기 위해 왔던 메시아와, 그 외에 12사도, 70문도를 위주로 하여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피의 제단의 상속자가 누가 되겠느냐고 서로가 다투어 오늘 현재까지 끌어온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세계적 대운세를 앞에 놓고 좌우에 판가름을 지어야 할 사람들은 아버님보다도 이 땅 위의 사람들이 아버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임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심판의 주인공은 아버님이 아니고, 심판의 여건을 제시한 것이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원수를, 깨끗이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런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탄을 완전 굴복시킨 사람이 아니고는 아버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 앞에 국가적인 기반을 세워야 한다는 승리의 결정을 갖지 않고는 하늘의 충신 열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오늘날 보기에 초초하고 갖춘 내용이 빈약하되 이 모습을 들어 충효의 반열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거룩한 축복의 기반을 저희들에게 연하여 있으니 황공하옵니다. 오랜 역사의 환난 가운데서 피의 제단과 더불어 아버지의 보호 가운데서 피를 뿌리고 간 수많은 열사들, 혹은 순교 선열들의 반열이 저희 시대에 저희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충성을 할 수 있는 최대의 충성의 도리가 개방돼 있다는 걸 생각할 때에 황공하옵니다.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미래와 더불어 하늘의 공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거룩한 공의 앞에 승리의 방패를 들고 악을 대치하며 선을 옹호할 수 있는 천적인 변호의 입장을 세울 수 있다는 놀라운 역사적인 선물임을 저희들은 역력히 알았사오니, 그런 것을 목전에 놓고 저희들은 순종굴복, 절대 신임하면서 절대 강하고 담대하여 원수를 굴복시키고 남겠다는 기백이 충천하여 온 천하를 제압하고 남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돼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아직까지 지구성을 유린하고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 사탄을 이 지구성의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추방해 버리고, 아버지를 친히 모셔 놓고 `아버지의 소원성사하는 것이 이것이었고 아버지의 바라시는 승리의 발등상이 지구성이오니, 여기에 아버지 친히 좌정(座定)하실 수 있는 보좌의 이념을 펼치사 만민을 당신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제단을 대하시옵소서. 그것을 위하여 저희들은 종의 신세가 돼도 좋사옵고, 이것을 위하여서는 양자의 몸으로 팔려가 제물되는 일이 있더라도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의 도리를 세우고 충신 열녀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감사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만민을 위해 싸우는 시련 도상에서 저희들은 낙망하여 하늘의 위신을 상실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민족이 저희들을 바라보는 도상에서 천적인 위신과 천적인 체면을 세우기 위해,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면서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비굴하지 않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40일수련 기간을 끝내고 이제 험한 파도가 몰려오는 시련 도상을 자기의 활동무대로 삼고 아버지의 아들딸들로 치리받을 결의와 그 자세가 어떻다 하는 것을 이제 과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시련의 도상이 이들이 내일부터 움직이는 발걸음 앞에, 나타나는 그 환경 앞에 벌어진 것을 알고 있사옵고 그런 때와 그런 환경은 이미 아버지가 당하여 간 것이요, 스승이 이미 개척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해 간 길이오니 하늘의 동반자, 스승의 동반자라는 그 역사적인 인연에 내가 동참할 수 있다는 거룩한 사실을 마음으로 찬양하며, 실제적인 자체는 존엄한 역사를 대신하여 승리적인 혈통과 승리적인 전통을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선의 재료로서 아버지 앞에 보여 드리고, 엄숙한 자체로서 살아 드릴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피어린 투쟁의 역사노정 위에서 고이고이 길러 주신 통일의 정신, 통일의 넋을 이들은 절대로 유린하지 말고 고이 세워서 만세에 자랑할 수 있고, 만민이 머리 숙여 찬양할 때 찬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소서. 그런 시련 도상에서, 아버지, 끝까지 지켜 주시옵시고, 싸움의 동역자가 되시어서 최후의 일전을 결하여 원수를 굴복시키어 승리의 개선가와 승리의 영광을 갖추고 이 민족과 인류 앞에 나타날 수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민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만세를 염려하여 수고하고 있는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 위에도, 아버지, 복의 인연을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후의 생애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고, 약할 때 같이하여 주옵시고, 쓰러질 때 아버지께서 붙드시어서 남아진 역사 도상에 있어서 끝까지 가고 또 가고 싶어 아버지 앞에 명령을 받기를 고대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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