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예요, 여기가? 「광주입니다」 광주. 광주 또 어디예요?「지구본부입니다」 지구본부. 또 그다음에는? 「동명동」 동명동의 어디? 「254번지」 254번지. 여기는 넓게는 광주도 되겠고, 그다음에는 동명동 254번지도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지구본부도 될 것입니다. 그럴 거다 이 말이예요.
그러나 오늘 여러분이 모인 이 자리는 지구본부라 해도 좋고 동명동 몇 가 몇 번지라 해도 좋지만, 여기는 어디냐 하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그렇지요? 「예」 이 자리는 통일교회요, 참석한 여러분들은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무엇이예요? 「식구입니다」 통일교회의 뭐예요? 「식구입니다」 대답해요. 통일교회의 뭐예요? 「식구입니다」 거꾸로 하면 구식이네요? (웃음) 구식이 아니고 식구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나 자신은 틀림없이 통일교회 식구입니다'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리라구요.
여기에 오신 분 가운데에는 이번에 선생님이 온다니까 새로 오신 분이 많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사들이, 혹은 전도대원들이 `본부에 계시는 우리 선생님이 이번에 오시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온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이 온다니까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알아보자고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래저래 관계된 인연으로 인해 온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여하튼, 사정과 인연이 어떻든간에 일단 여기 들어왔으니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을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입장에 세워 놓고 얘기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에게 대답하기를 `우리는 통일교회 교인이다. 나는 통일교회 식구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통일교회라는 교회가 생겨날 때까지, 또 식구가 생겨날 때까지의 그 기간은 짧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처음으로 선생님을 면접하는 이런 입장에 있지만 그 역사를 더듬으면 한참만이 아니예요. 그것은 길고 길다 그 말이에요. 통일교회가 어떠한 동기로부터 연륜을 밟아 가지고 오늘의 이러한 상태로써 이러한 상황에 이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기나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나긴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 여기에 와 앉아 있는 여러분 자신에게 각 개개인의 역사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식구로서의 역사가 있는 것이라구요. 통일교회 식구들의 그 긴 역사가, 곡절의 역사가 많으리라고 본다 이거예요.
여기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슬펐던 사정, 기뻤던 사정, 얘기하고 싶은 여러 가지 사정이 많을 것입니다. 본부에서 선생님이 오셨는데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싶은 내용도 많을 거예요. 그런 사정이 많은 줄 알고 있지만, 시간이 넉넉하다면 터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세워서 그런 소감도 들어 보고, 사정도 들어 봐 가지고 슬픈 일이면 같이 슬퍼하고, 기쁜 일이면 같이 기뻐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제쳐놓고….
단 하나 이제 과거의 역사와 오늘날 현실의 나를 중심삼고 `나'라는 존재가 지금까지의 남겨 놓은 역사와 오늘날 내 자신이 처하고 있는 순간과 이제 결심하여 나가는 미래의 자아의 위치를 비교해 보게 될 때, 뒤를 돌아다보면 슬픈 역사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또, 앞을 바라보게 될 때에 슬픈 역사가 있어야 되는지 혹은 기쁜 역사가 있어야 되는지 그건 난 모르겠어요. 하여튼 뒤를 돌아보게 될 때에 슬픈 역사로 시작했느냐? 뒤를 돌아볼 때에 내가 낙망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이거 생각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뜻을 대한 자기 자신의 개체를 세워 놓고 보게 될 때에, 역사는 엄숙한 이런 생활법도를 따라서 오늘 나 한 자체를 만큼 이끌어 주었습니다. 현실에 처해 있는 내 한 존재를 두고 재 보고 해부해 보게 될 때, 내 한 개체는 슬픔으로 시작했던가, 혹은 기쁨으로 지금까지 싸워 나왔던가. 곡절이 많은 거예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이제 여러분이 모인 이상…. 물론 지금까지 슬픈 역사도 있었을 것이고 곡절 많은 과거도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제 여기에 왔으니 슬프고, 곡절 많았고, 혹은 낙망할 수 있는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여기에서 낙망할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주저할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하지 못했으면, 오늘에 하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더 낫기 위해서 내 자신은 미래를 두고 좀더 힘차고, 좀더 씩씩하고, 좀더 의의있고, 좀더 기쁠 수 있는 자아를 다시 한 번 재창조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하기에 우리는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전남지구에 있는 모든 식구들이 오늘 여기 동명동 지역에 발을 들여 놓게 될 때에 여러분들에게는 가지가지의 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선생님을 만나 보고 돌아서서 자기의 본거지, 혹은 자기의 맡은 바의 책임 지역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품고 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정은 천태만태 다를지라도 그 마음에 한 가지 지녀야 할 것은, 과거를 청산하고 가야 할 내 현실에 있어서 미래를 새로이 창조하겠다는 그 신념 하나는 가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이것만은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잠자고 있고, 정지 상태에 머물러는 있더라도 역사와 세계적인 모든 정세는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변천하고, 일보일보 전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거예요. 이러한 전진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가운데에서 내 한 개개인이 한 분자였지만 내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역사와 더불어, 역사의 전부를 대신하여 거기에 비판하고 싶고, 그 역사 앞에 있어서 내가이 역사적인 전망의 세계 앞에 무엇을 보태 주고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를 믿는 사람이나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유ㆍ무신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고 있습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자기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러한 책임적인 입장에 서면 설수록 존재하는 이 세계 앞에, 발전해 가는 역사 앞에, 자기의 하나의 존재의 거동이 전체 앞에 좋은 것으로써 영향이 미쳐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전부 다 그렇게 바라고, 어느 누구나 그렇게 요구하며 그러한 소망을 대하여 맹세와 결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 혹은 그러한 미래의 세계 앞에 공헌하지 못하고, 봉헌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시간 시간 찾아오는 생활과정을 두고, 시간 시간 찾아오는 미래의 생애노정을 두고 거기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확고히 세우지 못하고, 갈 바의 방향을 올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후퇴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좌로 가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우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뜻을 품고 결의를 하는 그러한 사나이나 아낙네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냥 안 됩니다. 최후에 어떠한 변태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자기의 신념만은 굽히지 않고 `나는 진보의 일로에서 살아야 되겠다. 환경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복잡한 환경을 거부한다'라고 더 강하게 용솟음칠 수 있는, 더 강하게 자아 중심에서 발동해 주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는 한 이는 환경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표를 향해 나가는 사람은 시간 시간 그 내적인 충격의 자극을 뚜렷이 갖고 가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1년 가고 2년 가고 해가 거듭해 감에 따라 그의 생활적인 배후에, 역사적인 인연의 세계 앞에 기필코 그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무엇을 오늘의 이 천주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정해 출발한 후에 그것을 향해 갈 때는, 내가 결심한 다음에는 옆 사람하고 타협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진실된 목적지를 향해 갈 때는 내 생명을 걸고 각오하고, 내 생애를 걸고 각오했으므로 내 생명이 진(盡)하고, 내 생애가 그치기 전에는 타협하지 말고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더불어 그 방향을 따라 전진하는 그러한 용맹심, 그러한 자극적인 충동의 힘이 자기의 속 마음에서부터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기필코 1년, 2년, 십년이 멀다 하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갈 것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시련의 바람결이 제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혹은 가는 길이 아무리 험산준령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구요. 그 결의와 그 충격적인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시련을 쳐부수고 목적지를 향하여 행군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혀를 깨물고 맹세하고 결의하지만….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은 할 수 있다구요. 그러나 일 년, 십 년 일생을 걸어 두고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 되었던가! 사내라면 사내로서 한번 결의한 결의를 가지고 최후의 목적을 달성하여 그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고 후퇴, 혹은 좌우로 회전하여 원치 않는 방향에서 자기 자신을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상태에서 탄식하는 자신을 보게 될 때에, 거기에서 낙망하고 절망하면서 자기의 야망을 갈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태반이 그렇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대개가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보다 현재를 통한 미래에 있어서 내가 더 나을 수 있는 그러한 가치적인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지는 것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오늘의 결심을 해야 됩니다. 또, 그러한 때와 발전해 나가는 범위가 개인적인 입장에서 결심하는 때와 달리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의 무대까지 나가는 데에 있어서, 맨 처음에 결심할 때에는 자기 자체에서 결심했지만 결심한 그 상대적인 위치가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어 자기가 결심하던 것보다 범위가 더 커지게 될 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을 자인하고서 후퇴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심을 할 때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결심을 하지 말고, 세계적인 결심을 하고 천주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럴진대는 거기에 대응되는 시련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새로운 각오를 하고 발전의 진로를 향해 자아의 가치의 기준을 높이고자 할진대는 결실될 것이 크고, 욕망이 크고, 목적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그 반대의 현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차를 타고 떡 앉아 보면 말이지요, 가만 가만히 가면 쉽습니다. 그런데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유동성이 불어갑니다. 까딱 잘못하면 볼장 다보는 거예요. 여유가 없어요. 크고 빠르고, 크고 높은 것을 구상해 나가게 될 때에는 까딱 잘못하면 볼장 다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야 사방팔방 돌아다니면 되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최고 속도로 달려 목표를 향하여 간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거기에 반대적으로 저항해 오는 모든 악조건이 사방에 벌여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한 곳을 향하려면 사방에서 날 잡아내는 거예요. 이걸 각오해야 됩니다. 그걸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조는 처녀들이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 안 들으면…. 너! 이름이 뭔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저항이 크고 반대가 크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이치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통일교회의 식구입니다. 알겠지요? 「예」 통일교회의 식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 통일교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볼 때에, 이 길이 과연 내가 필시 가야 할 길이냐? 그런 생각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필시 이 길을 가야 하느냐? 내가 가는 이 길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길은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길이며, 우리 과거의 선조로부터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의 민족이면 민족, 세계 인류면 인류가 다시 이 길을 가야 할 길이냐? 또, 학생에게 물어 보게 될 때에 그의 동무들도 가야 할 길이냐? 어느누구에게나 물어도 가야 할 길로서 내 자신이 확신하고 있고 가기를 결의한다 할 때에는, 가야 할 이 길이 얼마나 큰 길이냐 하는 걸 알고,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자기에게 부딪쳐 오는 반대적인 환경이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처하기를 '이 문명세계에 있어서, 혹은 주의와 사상세계에 있어서, 좌우가 대립하여 투쟁하는 이러한 현 세계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기필코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외로 돌든 바로 돌든 그건 난 모릅니다. 우린 몰라요. 세계가 바로 돌겠으면 돌고 외로 돌겠으면 돌라 이거예요. 깨지겠으면 깨지고 말겠으면 말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나와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겁니다. 나와 우리는 그럴 수 없어요. 이것이 외로 돌고 바로 돌더라도 나는 한발짝 전진하여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반석과 같은 자리에 서서 미래의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진일보를 가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가는 데에 있어서는 내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성공, 국가적인 성공, 세계적인 성공, 천주적인 성공을 목표로 하고, 민족이 맹세하는 전체적인 맹세의 길을 내 스스로 가야 되겠고, 전인류가 맹세하는 결의를 가지고 내 몸에 맹세해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전인류를 움직일 수 없고 전세계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천주의 이념을 갖고 나갈 수 없습니다. 하늘땅 천주가 통틀어 일시에 맹세하는 그 맹세 이상의 맹세를 해야만 그 이념 자체를 대신하여 내가 주관하든가 내가 간섭하든가 이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느 한때에 개인적인 시대에 있어서 승리해도 가정적 시대에 나서지 못합니다. 행군을 계속한다고 해서 성공자가 아니예요. 가정적인 시대로부터 종족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로부터 민족시대를 거쳐 나가는 이런 역사의 도상에 있어서, 민족적인 시대에 자기가 결심하여 승리하였다 해도 그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민족을 지나 국가를 지나 세계와 천주의 소원을 이루는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사명이 개재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자기가 승리자가 되어 대우주에 있어서의 존재세계 앞에 승리의 존재로서, 천주의 칭송을 받아 영원한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하늘 앞에 나서고자 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 대비한 시련을 각오하고 그들이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고난과 환란은 내가 다 가지고, 어려움과 원수들의 모든 간교한 계략은 내가 책임지고 쳐부수겠다는 이런 신념을 갖고, 기울어지는 역사를 탄식하는 세계의 현상보다 내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의 결심한 그 각오의 힘이 이를 때려부수고도 남음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목적을 결의해서 마음을 같이하여 손에 손을 붙들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쌍수를 들고 온 천하 앞에 맹세하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들을 지도할 하늘이라든가 혹은 스승이 있다고 하면 그 스승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앞으로 다가올 환란세계 앞에 있어서 그 환란과 시련의 패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시련의 환경이 휘몰아 쳐옴이 필시 있을 것을 알아 각오하고 그 이상의 수련과 훈련을 시켜야 하고, 또 하여야 할 책임과 사명을 가지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로는 못 가는 겁니다. 자기 혼자서는 안 돼요. 나에게 누가 코를 꿰어서 끌어 주든가 내 뒤에서 몽둥이로 밀어 주든가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내뒤에서 나를 밀어 줄 수 있는 소망의 제2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생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에 이런 참다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승리의 목적지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스승이 없는가? 그런 스승이 있으면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의 시련과,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의 곡절의 모든 조건들을 제거시킬 수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러한 것에 부딪치게 될 때 그 환경 앞에 패하는 자가 되지 않고 환경을 수습하여 환경이 내 앞에 패자가 되게 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자고, 자격자로 누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뒤에서 누가 밀어 주었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바라는 소원인 연고로 오늘날 이러한 크나큰 목적과 사명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사명을 짊어지고 간다 할진대, 통일교회에는 반드시 지도하는 스승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나가는 그 주위에서 여러분에게 사방에서 부딪쳐 오는 모든 시련을 이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써 몰아낼 수 있는 배후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유명한 스승으로서 지도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겠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여러분을 밀어 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내 본심에 울리는 심정을 가지고 정적인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로서의 지도자가 되고, 환경의 보호자가 되고, 뜻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승리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고 협조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음은 훌륭한 어떠한 스승이 있으면 그 스승을 대해 `아, 우리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예」 스승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 나를 밀어 줄 수 있는 그러한 동지가 내 누나가 되고, 내 오빠가 되고, 내 형님이 되고, 내 동생이 되고, 내 어머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대우주의 성공을 완결하게 될 때에 기뻐할 수 있는 존재는 물론 자신 이겠지만, 자신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보니 그 스승으로 세울 수 있는 분이, 스승보다 더 귀한 자리에서 기뻐할 수 있는 분이 어머니 아버지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내 성공을 대해서는 친구보다 혈육을 같이한 형제는 더욱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로 보게 된다면 말이지요, 통일교회는 지금 말하고 있는 부모 아닌 부모의 명사를 앞에 세워 놓고 형제 아닌 형제의 명사로 진을 쳐 놓고 행군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시련의 세계에, 탄식의 세계에, 절망의 세계에, 비애의 세계에, 사망의 물결이 교차하는 그 교차로에 서서 늠름히 행군을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통일의 무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식구로서 무엇이 필요하냐? 내 형을 형으로 알고, 동생을 동생으로 알고, 누나를 누나로 알고, 상하 전후 좌우의 관계를 알아 자기의 위치의 환경을 확고히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싸워 나가는 시련과 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모든 시련은, 식구의 명사를 갖게 될 때에 형님이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부모가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주위의 형제들이 당하는 모든 시련도 내 시련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다'는 심정으로 그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 부딪쳐 오는 반대적인 현상으로 내 몸에 반대적인 슬픔의 조건이 불어가면 불어갈수록 우리의 형제들의 고통이 불어가고, 우리의 전후 관계의 부모면 부모들의 고통이 불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원수를 대해 싸운다는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형제 중의 형제가 될 수 있고, 자녀 중의 자녀로서 그 가는 동료들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고 지킴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천지이치입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지요? 시련과 연단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시련과 연단이 심한 동시에 절망과 낙망이 교차되는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출발했습니다. 현세의 환경에 있어서 시련과 낙망과 절망을 박차고, 시련을 주관하고, 절망을 주관하고, 비애를 주관하여 한국적인 모든 시련의 요소는 물론이려니와 세계에 남아 있는 시련과 절망과 낙망과 비애의 요건까지 원수로 알고 대결하기 위하여 출발한 무리가 통일의 무리인 것입니다.
식구로서의 명분을 같이하여 행군하는 우리의 행로에 있어서는 우리가 가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한 때는 개인적인 시대를 거쳐왔고, 한 때는 가정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한 때는 종족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민족을 거쳐 국가적인 투쟁시대를 향하여 세계적인 투쟁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는 시대에 당도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것은 자기 일신이 가는 것 같지만 그 일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인연의 관계를 가지고 우리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우리가 한국에서 싸우는 그 정상은 세계를 대표한 싸움인 연고로 세계적인 모든 인류, 혹은 세계적인 수많은 종족들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행군 명령에 보조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 있는 현상이 벌어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식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3년 동안 움직여 나온 그 3년 동안의 행군의 노정은 한국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무리가 여기에서 행군하는 그 파동은 일본을 거쳐 미국을 거쳐 독일에까지, 전세계에 널려있는 통일용사들이 가는 행군의 보조로서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사실을 볼 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우리의 식구라는 이 명분은 앞으로는 부모를 위함이요, 좌우로는 형제를 위함이요, 소망의 선의 나라, 선의 주권과 선의 인류, 선의 백성과 선한 지구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모진 투쟁의 물결과 풍랑이 있어야 할 것을 알고, 내가 들어가느냐 내가 나가느냐 하는 싸움에서 진을 치고 있고, 또 나가고 있는 자들이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신도들인 것입니다. 통일의 식구들인 거예요.
부모가 슬퍼하면 형제도 물론 슬퍼하는 것이요, 형제가 슬퍼하면 부모가 슬퍼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일가는 한살로 묶어져 있고, 한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고동소리에 세포가 생동하고 있는 연고로 거기에 부딪치는 시련은 그 자체로서 그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시련으로 대할 줄 아는 감정과 그런 생활적인 자극이 예민하면 할수록 이는 정상적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주위에 몰아치는 식구들의 어려움이 무엇이고, 식구들의 현재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이들이 가는 도상에 있어서 시련을 받고 있는 여기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은 어차피 찬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날을 맞이한 나뭇잎과 같이 자연적으로 낙엽으로 화할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무리, 이 하나의 지체가 그냥 처참하게 쓰러거나 원수들 앞에 농락을 받아 분한 일이 있다면 그 분함은 전체의 분함입니다. 일본 사람이 그러하면 한국 사람이 분하고, 한국 사람이 그러하면 미국 사람이 분하다는 거예요. 종족과 민족과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을 달리한 그러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심정을 걸어 놓고 한 인류의 혈육을 통하여 인연돼 있는 그 무리에게 부모의 슬픔이 전체의 슬픔이요, 자녀의 슬픔이 전식구의 슬픔입니다. 그것을 친히 체감하고, 친히 기뻐할 수 있는 생활적인 자극과 생활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통일교회 식구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무리가 하나에서 열, 열에서 수십, 이것이 십진 배수로서 천 번을 가하여 3천만이 화하여 하나의 지체와 같이 되어 이 길을 가는 도상에 있어서, 이 엄숙한 도상에 있어서 침해를 받게 될 때에는 전체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이름으로 결심한 그 결의 밑에서 제지하려고 해도 제지할 수 없고, 용서하려고 해야 용서할 수 없는 공분의 심정이 자기의 배 밑창에서부터 폭발되어 올라오는 분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선발대로서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병, 따라가는 병사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더듬어 보게 될 때에 마음은 언제나 앞에 서고, 마음은 남보다 더 하고, 좋은 일을 하고 하고 또 해도 이 마음은 `또 해라, 또 해라, 또 해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요놈의 마음이 어떻게 돼 있는지 좋은 일을 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어떠한 제물적인 생활을 했더라도 또 하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마음이? 좋은 일을 하고 나도 또 하라고 하지요? 하고 나도 쉴 줄 모르게 재촉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왜 그런고? 그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런고? 마음의 소망은 높고 큰 것입니다. 높고 큰 거예요. 하나님을 몽땅 갖다 놓고 하나님을 품고 앉으면 다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을 품고 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이놈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춤을 추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가지고 목을 붙안고 키스를 하고 뒤넘이쳐도 편안치 않다는 거예요. 마음은 그래요. 하나님도 내것 만들고 마음대로 기뻐할 수 있는 내편으로 세우고, 이 천하 만민도 환경 만물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편에 세우고, 그뿐만 아니라 온 천상세계, 현재의 인간,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 내편으로 만들어 놓고야 비로소 기뻐하겠다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욕망은 그 한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성적이 좋아서 그 학교의 우등생이 되었다, 혹은 거기에서 뭐가 되었다 하면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나도 부족하고, 하고 나도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잠깐 좋을지 모르지만 또 그렇게 하라, 또 하라, 또 하라는 거예요. 욕심은 개인에서 가정을 넘고,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를 훌훌 넘어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그 욕심이 그 양심이 재촉하는 한계는 이제 말한 거와 같이 존재하는 만유의 것을 내것으로 삼아 내가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내가 기쁘지 않을 때 그들을 통하여 기쁨의 요소를 얻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의 욕망이요,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목적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바쁜 거예요, 바쁜 거예요. 죽을 놀음을 해서 무얼 하나 만들어 놓았으면 그냥 좀 쉬라고 하고 말이예요, 이젠 `너는 그만큼 했으니 한 3년이고 10년이고 쉬어라!' 그러면 좋겠는데, 이놈의 마음은 `달려라, 또 달려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재촉하는 걸 볼 때에 필시 마음의 인연의 세계는 역사를 창조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크나큰 대우주의 목적을 성공리에 이루었다고 하늘과 땅이 전부 다 찬양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고통을 받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눈을 뜨라구, 저 아가씨. 한 대 패 주라구. (졸고 있는 아가씨를 가리키시면서) 목이 쉰 데다 일어서서 얘기하니까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그래, 조금 얘기해야 되겠어요. 왜 이렇게 조나? 너, 걸어왔나? 어디서 걸어왔나? 너, 너. 거 조그만 애 뒤에. 조그만 애 뒤 말이야. 너 어디 애야? 어디서 왔니? 어디서 와? (녹음이 잠시 끊겼음)
우리는 한몸입니다. 그렇지요? 한몸으로서 한국 사람이요, 미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입니다. 그 한국이라는 명사를 떼 버리고, 미국이라는 명사를 떼 버리고, 일본이라는 명사를 떼게 되면 뭐예요? 뭐예요? 뭐냐구요? 한국 사람, 일본 사람, 미국 사람이라는 말의 대가리를 따버리면 뭐냐 말이예요? 「사람」 사람 아니냐 말이예요. 사람입니다.
사람이 전부 다 노랗고 하얗고…. 요즘에는 뭐 흑백 문제니 해서 싸워서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검둥이니 황인종이니 청인종이니 난 그건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붙인 명사는 편의상 붙인 것입니다, 편의상. 사람 그 자체에는 차이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어떠한 주권의 평등을 논의하기 전에 인권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어떠한 민족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종족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종족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가정의 평등을 논해야 되고, 가정의 평등을 논하기 전에 개인의 평등을 논의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예」
사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떠한 주의자냐? 우주주의자입니다, 우주주의자. 그 주의는 뭐냐? 인간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주의예요, 하나님주의. 하나님주의인 동시에 내 주의입니다. 나와 하나님이 합한 주의가 우주주의예요.
민주주의도 하나님하고 백성, 혹은 인민과 합한 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본래는 그것이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도 하나님 플러스 민주주의가 되지 못했습니다. 본래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민주주의가 출발했으므로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예수와 성신을 위주로 한, 인간을 합한 민주주의가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과 예수를 떼 버린 민주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에 가서는 허덕이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물질 플러스 사람, 그런 주의예요. 이런 것은 천하에 없는 것입니다. 자멸해 버려야 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만나 가지고 깨져 나간다 이거예요.
천주주의는 뭐냐? 하나님주의와 내 주의가 합한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한 거예요. 누가 주(主)냐? 사람이 주가 아닙니다. 하늘이 주예요. 정신이 주냐 몸뚱이가 주냐 할 때, 정신이 주예요. 지천(地天)이 아니고 천지(天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모부(母父)가 아니라 부모(父母)입니다. 부모는 뭐냐? 아버지는 하늘을 상징하고, 어머니는 땅을 상징해요. 그래 모부가 아니고 부모라구요. 거 이상하지요? 그런 연고로 우리의 주의는, 우리의 이념은 무엇이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이냐?하나님주의와 내 이상주의가 합한 것입니다. 내 이상주의는 무엇이냐? 이 세계를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의 주권의 세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권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예요, 하나.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돌고 돌아 목적지를 향하여, 목적의 결실점을 향하여 점점 부딪쳐 가고 진전해 가나니, 그 목적점은 정지해 있으나 목적을 향하여 가는 역사는 진전해 가니, 진전해 가는 이 사조적인 운명이 목적적인 그러한 기준과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기준은 무엇이 되겠느냐? 이 목적기준을 수습하여서 여기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되겠느냐?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주인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 주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의 기준이 변치 않아 하나의 목적의 때가, 환경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때와 환경이 구비되면 지도자를 보낸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환경의 때가 되어 한 시기를 맞이하면 그 시기와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도자를 보내마 하는 약속이 오늘날 도의 세계에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사상입니다. 메시아 사상이예요.
그 메시아라는 분은 어떤 분이냐? 자기를 세계와 같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를 하늘땅과 같이 사랑하는 그런 주의자가 아니예요. 먼저 누구를 자기 이상으로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자기 이상으로 사랑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세계 인류로부터 추천받은 자기라는 것을 알고, 세계 인류를 배후에 놓고 책임을 짊어지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같은 승리의 결과를 획득하였을 때에, 같은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겠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한 분이 메시아예요. 그러한 분이라야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메시아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천주주의예요. 천주주의니 그 주의는 하나님과 나의 주의입니다. 부족한 고로 그 사유를 알지 못하고, 하늘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고, 생의 종말시대에 있어서의 환경을 어떻게 수습하고, 그때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오고 환경이 이루어지는 때에 하늘이 수습할 수 있는 분으로서 보내신 분이 누구냐 하면 메시아란 분인 것입니다. 메시아란 분이예요. 구세주예요.
구세주인데 그 구세주는 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구세주가 남이 아니야! 어떠한 역사적인, 혹은 세계적인 위대한 스승이 아니예요. 그 구세주는 누구냐? 아버지예요. 아버지인데 무슨 아버지냐?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요, 오시는 구세주는 외적인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 그런 논리적인 구상을 해 가지고 세계적인 이념으로써 모든 사리에 맞는 체계적인 논리를 세웠다고 하면 그 논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빼놓고 세계의 모든 만민을 한번…. 그래도 멋지거든요. 사실이 그래요.
하나님은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입니다. `사람' 하면 말이예요,`나'라고 하면 나에게는 속사람이 있고 겉사람이 있지요? 「예」 속사람은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여러분들 속사람의 크기를 봤어요? 속사람이 얼마나 크냐? 그놈의 속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하냐 하고 묻게 될 때에는 `네가 물을 것 다 물어 봐라. 밤새껏 물어 봐도 네가 묻는 것은 미급하다' 할 거예요. 그 마음, 내 속사람은 누구하고 친구하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하고 친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친구라고해요. 내 속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러지 하나님의 동생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하고 한 형제가 되려고 한다 그 말이예요.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마음은 세계를 전부 다 내 세계로 만들고 싶어하지요? 요전에 대통령 선거했지요? 한번 삼천만에 호령하면 그저 좌우로 가라고 하면 가고,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는 걸 사람은…. 그래, 사람의 탐욕이 뭐예요? 한번 이 세계를 내 것 만들고, 한번 쥐었다가 흔들고, 그다음에는 머리가 좋아서 이것을 잘 요리하고 싶은 거예요. 이게 인간의 3대 욕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겁니다. 돈 욕심, 권세욕, 지식욕이 있다구요. 인간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에 있는 친구는 어떠한 인격자냐? 네 친구는 어떠한 것이냐?' 하고 마음에게 물어 보면 이 마음은 `쩨쩨한 사람하고는 친구 안 한다'고 합니다. 그 인격이 한번 이 천하 앞에, 온 우주 앞에 온전히 자리를 잡고 나서게 되면 그 마음을 집 삼아서 하나님이 옷과 같이 입고 행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은 거룩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이 그렇게 위대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의 아들이다'하는 것을 가르쳐 줍지다. 기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구요. 아들은 무엇이냐? 아버지와 일체예요, 일체. 오늘날 인간이 이러한 대우주의 창조주와 내 마음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그 아버지가 움직이면 내 마음도 움직이려고 하는데 못 움직이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몸뚱이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마음이 움직이고 싶은데 못 움직이는 건 무엇 때문이라구요? 「몸뚱이 때문입니다」 몸뚱이 때문이라구요.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투쟁역사입니다. 전쟁사지요? 전쟁사인데 이 전쟁사는 무슨 전쟁사냐? 내 몸과 마음의 전쟁사입니다. 마음과 몸의 전쟁이 외적으로 민족 대 민족의 환경으로 확대 전개되어 범위가 넓게 벌어진 것이 전쟁사라는 겁니다.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입은 놀아 대고 ,입이 말하고 나서는 행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연고로, 결과적으로 마음이 `너를 죽인다' 했으면 죽여야 돼요. 안 죽이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심판받아요. 악에서 맹세했어도 맹세한 대로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맹세하지 말라고 그랬지요.
이래서 이 몸과 마음이, 이 몸집과 마음집이 서로…. 마음집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려면 여기에서 몸뚱이는 반대하고, 마음이 가자고 하니 싸움은 그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확대시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전쟁사는 무엇이냐? 하늘과 땅이 싸우는 것입니다.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지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본받아 태어났습니다. 마음은 하늘 대신이요, 몸은 땅 대신입니다. 예수는 신랑인데 하늘 대신자요 남자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왔다가 하늘로 올라가고, 또 성신은 어머니 대신자기 때문에 땅을 상징하므로 땅으로 내려옵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될 때, 마음은 하늘로부터 받고 몸은 땅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 부모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라는 이 두 존재는 하늘과 땅의 축소체입니다. 그 두 사이에서 하나의 결실로 맺어진 나라는 것은 하늘과 땅을 총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목적은 어디를 중심삼고 잘 운전하는 것이냐? 자동차가 있다고 할 때, 자동차의 마음과 같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운전수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렇게 하면 이렇게 가야 되는 거예요. 핸들을 이렇게 돌렸는데 이놈이 이렇게 가면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른쪽' 하면 `예' 하고, `왼쪽'하면 `예' 하고, `똑바로' 하면 똑바로 가는 거예요. 돌려 주는 각도에 따라 40도, 몇 도, 좌우 해서 꼬불꼬불 꼬불꼬불 잘 돌아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창조원리 배웠지요? 「예」 모든 존재물은 이중 구조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구조형. 그렇지요? 「예」 그것이 둘이 하나되어 조화가 벌어지는 가운데에 천지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묘미의 관계가 입체적인 관계로서 심정적인 세계에 부딪쳐 들어오게 될 때 거기에서 아주 자극적인 충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들은 얼마나 크냐? 마음은 누구의 지체냐 하면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몸은 누구의 지체냐 하면 부모의 지체입니다, 몸뚱이는. 그렇지요? 「예」 마음은 변하는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과 여러분들의 마음의 본성은 혁명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진리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과 나중이 통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과정에 있어서 이상이 벌어지더라도 끝에 가서는 이것이 상대적 기준에서 수습됩니다. 상대적 기준만 되면 과정이 복잡하던 것이 수습되어서 자기들이 생활할 수 있고, 자기들이 영존할 수 있는 하나의 자동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지의 존재물의 이치일진대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세계에 있어서는 혁명이 없습니다. 더우기나 마음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에서는 진짜 혁명이 없어요. 마음의 세계에서는 방향적인 이동이 있습니다. 방향적인 이동은 있지만서도 심정의 세계에서는 맨 중심이기 때문에 돌고 돌더라도 그 자리에서 돌지 방향도 바꿔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부부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 형제끼리 서로서로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하늘이 정한 변치 않는 하나의 기준인 것입니다. 혁명이 없어요. 혁명이 있어요? 없지요? 「예」
그것이 남아 있는 연고로 사람들이 심정을 중심삼고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하면, 하나님과 친구될 수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떨어졌다는 겁니다. 마음의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의 동생과 하나님의 친구될 수 있는 이러한 자리인데, 이것이 어찌어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뒤넘이쳐져 가지고 반대의 자리에 떨어졌다 이거예요. 반대의 자리에 떨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떨어져 있느냐? 이 고깃덩이를 중심삼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본래의 자리에 올라오기 위해서는 고깃덩이를 죽여서 이 사체를 구해 가지고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도상에서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수한 희생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떨어져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이 그 마음의 목적과 방향을 어디에 맞추느냐? 너하고 나하고 내 마음의 목적이 한 형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목적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예요. 개인을 버리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를 넘고, 국가를 넘고, 주의 사상을 넘어 최고의 마음의 기준인 하늘과 더불어 그 위치를 같이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고동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타락이라는 이 슬픈 법도에 얽메여 있는 연고로 이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자체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한 자체를 희생시켜서, 자기의 외적인 모든 몸뚱이를 희생시켜서 내적인 마음이 원하는 가정 앞에 나아가고, 또 가정 제일주의를 생각하고 있는 몸을 쳐 끌어올려 가지고 종족과 민족을 통해서 점점 높이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인간은 바라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였으니 최후에는 하나님과 대등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는 걸 바란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사람의 마음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내 세계, 이 천하는 내 천하, 이 인류는 내 형제, 하나님은 내 아버지로 다 끌어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마음이 지금 자기 울타리에서 안주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가정보다도 종족을 위해서 출발해야 됩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 자기 종족을 구할 수 있고, 종족이 선할 수 있으면 자기 가정을 희생시켜야 됩니다. 한 국가가 살아나게 하고, 그 국가의 선한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그 종족도 희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흥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구요. 국가가 하나의 선한 자리에 섰더라도 세계를 선한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도 희생시켜야 합니다. 희생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큰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우리 인간에 대해서 말이예요. 또 세계보다 하늘땅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현세계의 어떠한 주의 사상도 떼려 잡아라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한 세계에 대비될 수 있는 인간이 거기에 화합이 될 수 있는 세계, 그러한 세계가 천주주의 세계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우리의 이념은 무엇이냐? 인간을 위주로 하여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적인 주의가 아닙니다. 종교라는 테두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하나의 주의 세계를 모방하고, 이 모방한 하나의 주의 세계권 내에 인간이 모방해 놓은 선의 세계가 모순 없이 들어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지가 합하는 거예요. 하늘은 마음이요, 인간은 몸과 같기 때문에, 몸과 같은 이 세계가 하나로 수습되어 인간 중심한 선의 세계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한 마음적인 선의 주체가 선의 세계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전체적이며 내적인 세계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모순, 상충 없이 하나의 주의로서 완결되게 될 때에 천지는 거기에서 비로소 평화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세계를 만들 때에 어떠한 세계를 만들 것이냐?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서 어떠한 세계를 만들 것이냐? 통일교회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간판 떼버려야 돼요. 통일가예요, 통일가. 알겠어요? 응? 「예」 뭐라구요? 「통일가입니다」 통일가라구요. 통일가 가운데에는 공산당도 들어가고, 민주주의도 들어가고, 검둥이도 들어가고, 회회교도 들어가고, 불교도 들어가고, 기독교도 들어가고, 잡탕 전부 다 들어가서 하나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모토(motto;표어)로 하느냐? `천주주의 이념을 지상에서 실현하자'입니다. 우리가 적절한 명사를 대치해 보니 그것이지 지상천국을 완비하여 하나님을 모신 선의 주권의 세계를 만들고, 선의 지구성을 만들고, 선의 인류를 만들어 하나님을 중심삼은 일가를 만들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중심삼은 일가가 아닙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일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각 개개인을 대해 어떠한 조직망을 갖고 있느냐? 그 하나님은 조직망을 만민 앞에 갖고 있나니 그 조직망의 명령의 초소는 뭐냐 하면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알겠어요? 「예」
양심은 여러분에게 있어서의 참모부요, 몸뚱이는 여러분에게 있어서의 명령을 받아 행동할 수 있는 행동부대입니다. 포병이나 뭐 그런 것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을 무엇으로 그렇게 얽어메 주느냐?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딸이요 아들입니다. 전부 다 평등해요. 거기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심정적인 하늘을 중심삼고 상하가 없고 평등의 평등으로서 대우주 이름권 내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위주로 한 사상세계, 그것이 나와 관련이 먼 하나의 남의 집 살림살이가 아니라 내 집 살림살이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살림살이예요. 우리 아버지의 살림살이니 아버지 앞에 효도하고 충성하여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아들이니….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고 하지요? 「예」
부자일신이라는 말이 있나요? 있나요, 없나요? 없나요? 부자일신이란 말 없나요? 「있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웃음) 없으면 여기서 내가 만들어 놓는 거예요. 그 말이 없다면 이 시간에 내가 창조하니 이제부터 생각하는 거예요. 부자일신, 그다음에는? 뭐 여자부터 하면 좋아하니까…. 부부니까 거꾸로 해도 부부(婦夫)고 바로 해도 부부(夫婦)구만요? (웃음) 부부일신(夫婦一身). 그다음엔 형제도 일신이예요, 형제도. 우리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요즘에는 대개 부부일신밖에 모르지요? 타락한 세계에서는 그게 제일의 목적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부부일신밖에 모르는 거예요. 오늘날 부부일신이 되기 전에 부자일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은 본격적으로 안 나왔다구요. 부부일신이요, 부자일신이요, 그다음엔 뭐예요? 「형제일신」 형제일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내가 죽어요. 그런 일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기의 팔을 잘라서 동생이 살 수 있으면 자르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그랬어요. 자기 아들이 말이예요, 눈병신입니다. 소경이예요. 그래 유명한 안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내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요?', `내 눈이 둘 아니요.' '그래요' 내 눈이 참 좋은데 이 눈을 하나 빼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왜 빼요?', `줄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에게 주려고 해요?', `우리 아들 눈하고 내눈하고 바꿔 주소' 그랬다는 겁니다. 그거 보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구요. 그게 부자일신이예요.
보라구요. 여러분들 찬 방에서 누워 자면 배가 먼저 얼어 들어와 아프지요? 배가 먼저 얼어 들어오지요? 「예」 그러면, 이불로 어디를 먼저 덮어 주나요? 어디를 덮어 줘요? 「배를 먼저 덮어 줍니다」 배를 먼저 덮어 준다는 말이예요. 또 발끝이 얼어 오면 배에 덮은 포자기나 이불이라도 발끝에 덮어 주는 그게 일신이예요. 자기의 한 지체 가운데에 조그마한 결함된 기준이 있으면 내 한 부분을 희생시켜서 그것을 보호해 주고, 그것을 본래 상태로 세워 놓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일신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부부일신입니다.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 몇 가정이예요? 38가정이 전라남도에 와 있지요? 생각해 봐요. 축복받은 가정들! 「예」 그래 임자네들은 부부일신이예요? 일신 되었어요, 되려고 해요? 대답이 왜 없어요?
부부일신이 되기 전에는 하늘 아버지 앞에 부자일신이 될 수 없습니다. 또, 부자일신이 안 돼 가지고는 부부일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예요. 하나만 완전히 일신되면, 부부가 완전히 일신되면 부자일신은…. 땅을 대해 움직이는 하늘이기 때문에, 완전한 선한 부부가 하늘 앞에 백 퍼센트 일체가 되면 하늘은 일신당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부부들은 천정(天情)을 받는 것입니다. 선한 부부의 자식들은 천정을 받아 이 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을 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일신이라든가 부부일신이 되면…. 부자일신은 남자만이 아니라 부녀일신도 되는 거예요. 요전에 내가 일본 식구들한테 한번 공박을 받았어요. `선생님은 남자니까 여성들을 그렇게 보류하시는군요' 하고, `원칙을 보게 되면 아담을 먼저 짓고 해와를 나중에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세계가 되더라도 해와는 아담한테 절대 복종하고 절대 존경해야 되는 그런 원칙이 어디있습니까?' 하길래 그걸 설명해 주느라고 아주 내가 혼났다구요. (웃으심) 부자일신만이 아니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부인들은 그만큼 아량이 있기 때문에 `부자일신' 하면 `부녀일신' 하고 마음으로 대답하지요? 「예」 그럴 줄 안다 이거예요. 그러니 `부자일신'이란 말 한마디만 하더라도…. 바쁜데 뭐 두 마디 해요? 그러니 `부자일신' 하면 여자들은 뭐라구요? 「부녀일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구요.
남편을 칭찬해 주면 부인은 그저 입이 해슥해지고, 부인을 칭찬해 주면 남편은 밥을 안 먹어도 좋아서 그저 터진 바가지처럼 헤헤 한다는 겁니다. 자식을 칭찬할 때 동네에서 `거 아무개 자식, 젊은 자식 그자식, 거 쓸 만한데?' 하고 말해봐요 `자식'은 욕이고 `쓸 만한데' 는 칭찬이거든요. (웃음) 그런데 사람들은 `자식, 거 쓸 만한데?' 하면 `자식' 이란 말은 잊어버리고 `쓸만한데' 란 말만 딱 기억하는 거예요. 사실은 먼저 `자식'이라고 욕을 했는데 말이예요.
그걸 보면 말이예요, 그건 일신입니다. 그 아버지를, 부모를 잡으려면 말이예요…. 또 뭐 잡는다고 해서 소 잡듯이 골통을 까는 게 아니예요. 부모와 가까와지려면…. 그 아기를 가만히 보면 눈이 찌그러지고 한옥 기왓골에 올린 바가지 통처럼 생겼는데, 울퉁불퉁 자기 생각대로 그저 배나무처럼 생겼는데 그 아기를 업고 다니면서 부모가 흥흥 할 때 그걸 절대 흉보지 말라구요. `아이고, 우리 사촌 동생 애기가 있는데 동네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칭찬하기를 잘났다고 칭찬하는데, 아, 이 아기를 보니 그 아기보다 낫네?' (웃음) 이래 주면 부모는 으쓱 올라가는 거예요. 소리 없이 올라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입이 터지는 거예요. (웃음)
어머니들은 알 것입니다. 가정의 식구들을 보면 어떤 아이들은 아주 곱상해요. 코도 도독하고 입술도 아주 이쁘고 눈도 또롱또롱해요. 어떤 아기는 아주 격이 갖추어져서 팔방으로 다 방수를 맞춰 가지고 대비할 수 있는 규격을 떡 타고났는데 말이예요, 어떤 아기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만 `아, 이놈 아주….' 하고 한마디 떡 해 놓으면 어디서부터 웃어대느냐 하면 말이지요, 입부터 웃어야 되는 게 아니예요? 이마부터 웃어요. 이마부터 웃어 내려가요, 이마부터. 눈부터 웃어 내려가요, 눈부터. 눈부터 웃는 것은 참 기뻐한다는 표시라구요. 그다음에는 웃다 말고 이렇게…. 그래 가지고는 웃다가 줄어 들어가지 못해요. 줄어 들어가야 정상인데 너무 좋아서 스톱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낚는 데에 있어서 무엇을 가지고 낚느냐? 구원하려고 하는 것이 낚시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 타락한 인간들을 낚시질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하겠다는 것은…. '내가 낚시질을 좀 해 봤다구요. 낚시질을 하려면 밑감을 써야 합니다. 밑감을 넣을 때는 무슨 밑감을 넣어야 되느냐? 쓰고 그저…. 이 전라도 감은 더 떫지요, 아마? (웃음) 경기도 감보다 더 떫을 거예요. 더 떫지요? 「떫은 감도 있지만….」 아, 전라도 감은 더 떫다! (웃음) 떫을 거라구요.
내가 어릴 때, 중학교 때 서울에 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 고향에는 감나무가 없어요. 그래 감 열매는 봤었지만 어미는 생전 보지 못했습니다. 감 어미가 뭐예요? 나무 아니예요? 물론 어미는 맨 처음에 씨 가지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말이예요. 옛날에 거 감, 홍시가 참…. 선생님이 먹게 되면 하나도 안 먹거든요. 그게 집에 있으면 뭐 바닥 나도록…. (웃음) 먹는 게 취미예요. 내가 아주 참 잘 먹는다구요. 내가 감 동산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내가 이웃 동네 총각들에게 전부 다 나눠 줘서 그저 입에 넣으면…. 바쁘다 바빠 하면서 콧구멍에 들어가는지 모르고 터질 대로 먹는다구요.
그래,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걸 생각했다구요. 서울에 떡 올라오니 감나무가 있더라구요. 척 보니까 밑이 따닥따닥하고 참 잘생겼거든요? 그놈의 나무를 만져 보니까 아주 단단해 보이더라구요. 감나무 단단해 보이지요? 그런데 크지는 않아요. 나는 감나무가 큰 줄 알았더니 요만하더구만요. 저 자하문 밖에 있었다 말이예요, 자하문 밖에. 거 동무 녀석이 있어 갔는데 감이 아주 노랗게 되었더라구요. 노랗게 돼 가지고 참 먹음직해요. 그래서 그 녀석하고 몰래 거기에 들어갔어요. `야, 이거 맛있겠다' 해서 따 가지고…. 그 녀석은 따니까 그저…. (웃음) 그래, 그는 잘 알거든요? 입으로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렇게 내다 보면서 먹는 거예요. 거 맛있겠구만. 이거 알게 뭐야? 아, 맛있겠다' 해 가지고 사정없이 들입다 씹었더니 혓바닥이 그저 이만큼 (웃음) 감이 그래요. 그렇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총각 녀석들은 그런 경험 다 했을 거라. 자기네 감은 안 따먹고 남의 담 너머에 있는 감을 따먹고 그랬을 거라구요. (웃음)
여기 전라도 감은 나 못 먹어 봤어요. 더 떫을 거예요. 그렇지요? 어제 서울서 왔어요. 난 서울 사람이예요. 여러분들은 전라도 사람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서울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와이 사람이라 한다구요. (웃음) 하와이 설명하면 여러분들이 눈을 이렇게 뜹니다. `허허허. 아이구 고마와라. 우리 선생님은 저렇게….' 할거예요. 가능하면 내가 그렇게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건 그만 두고, 하여튼 나쁜 의미의 하와이가 아니예요.
또 전라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말이지요, 살림살이를 크게 차린 곳입니다. 그런 곳이 전라도예요. `전' 자는 무슨 `전' 자예요? `전' 자는 무슨 `전' 자라구요? 「'온전 전'(全) 자요」 `찌그러질 전' 자예요? 무슨 `전' 자예요, 똑똑히 얘기해 봐요. 「'온전 전' 자입니다」 그래요, '온전 전자'라고 합시다. `라' 자는 무슨 `라' 자예요? 「'비단 라(羅)'요」 비단 라가 뭐예요? 「벌릴 라」 뭐 `버릴 라'가 뭐예요? 냅다 버린다는 말이예요? 쳐 버린다는 말이예요? `버릴 라'가 뭐예요, `버릴 라'가? 「벌릴 라요」 `벌릴 라'가 뭐예요? 날아가는 벌이예요? 그게 뭐예요, 벌일 라가? 그건 뭐냐 하면 말이지요, 채신머리없는 여자가 시집올 때부터 아기 기저귀 해온 것을 널어 놓고 있는 여자와 같은 걸 `벌일 라'라고 하면 맞는 거예요. 벌여 놓는 거라구요. 나는 이 전라도를 `온전 전' 자를 딱 따 버리고`라도'라 하면 어떻겠느냐 생각한다구요, `라도'. `라북도' `라남도'라고 말이예요. (웃음) 왜 전라도가 욕을 먹느냐? 이렇게 떠억 대가리에 온전 전 자를 붙여 놓았으니 참 곤란하거든요.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그거 명사는 좋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쁘다고 본다구요. 나쁘지요? 나빠요, 좋아요? 「안 나쁩니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은 말이지요,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 어디 가도 싹싹 잘 돌아다닙니다. `벌일 라' 자를 뒤집어 썼으니까 잘 돌아다닌다는 말이예요. (웃음) 사실 그래요.
엊그제 내가 경상도 대구에 갔었는데, 대구 사람들이 평하여 말하기를 좌측 황해 가까이에 라도가 있는데 전라도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첫 맛은 백 퍼센트라는 거예요, 첫 맛은. 먹게 되면 꼭지까지 삼키더라도 또 먹고 싶다는 거예요. 꼭지가 쓴데 얼마나 달면 꼭지까지 삼켜도 또 먹고 싶겠느냐 이거예요. 첫 맛은 그렇게 근사하고 멋진데 후의 맛은 배가 아프다 이거예요. (웃음) 그런 차라리 먹지 않음만 못하다 이거예요. (웃음) 그 얘기까지는 안 했어요. 배가 아프다는 것은 선생님이 말을 지어내서 한 말이예요. (웃음)
하여튼 전라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은…. 열 주면 전라도 사람은…. 처음에는 경상도 사람 열과 전라도 사람 한 사람하고 안 바꾸겠지만, 조금 지나면 전라도 사람 열 주고 경상도 사람 하나와 안 바꾼다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거 무엇에 쓰겠어요? 부산에서 내가 `이제 부산을 거쳐 전라도로 행차를 할 텐데 전라도로 가게 되면….' 하면서 얘기하니깐…. 전라도라는 명사도 좋거니와 선생님이 가는 날이 오늘이 18일인가요, 17일인가요? 오늘이 며칠인가요? 「18일입니다」 18일이라서. 18일은 재출발 수 8수라서 좋고 `라도'도 좋고, 또 거기에 `주'도 좋은데 `광주'라고 했습니다. (웃음) `광주(光州)'의 `광'자는 무슨 `광' 자예요? 「빛 광(光)」 빛 광. 어두울 광 자지요? (웃음) `놀랄 광' 자예요, 놀랄 광 자. (웃음) 어두워서 놀라 자빠지는 `광' 자라구요. 무슨 광 자라구요? 「'빛 광' 자요」 하하 이거 광주(光州)라는 말은 자유 동산에서 춤추고 놀 수 있는 고지란 말이예요. 명사는 아주 그만이예요.
그래서 큰 기대를 갖고 왔습니다. 아, 통일교회 우리 아가씨, 우리 신랑분들이야 뭐 전라도 주인임에 틀림없다구요. 그래, 많은 기대를 가지고 와서 척 보니…. 여기 올 때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해 가지고 네 시간 걸리는 걸 그저 두 시간에 왔다구요. 두 시 반에 떠나 몰아 가지고 와 보니까…. 내가 이 집 찾느라고 저 도청 앞에 가 가지고…. 그 앞에 무슨 경찰국인가요? 이러고서, 전라도에 와서 내가 얻어먹는 골목대장 노릇 한번 해봤다구요, 차를 타고서. 그렇게 되었어요.
이 사람들은 아주 타산주의자예요. 비교의 지능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손해나는 건 한푼, 일 초도 아끼는 사람들이예요.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대해서는 안 되게 생겼다는 말이예요. 그래요? 그런데 말이예요, 그런 건 작전시대에는 필요하지만 말이예요, 평화시대에 그러다가는….
그래서 이렇게 죽 해 가지고 타고 왔다구요. 그런데 이번 코스가, 짚차 타고 달리는 코스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짚차 타기가 힘든 걸 알아야 돼요. 진짜 타 보라구요. 뭐 오만가지, 뭐 사지백체 세포까지 춤을 추고 그런다구요. 좋아서 춤을 추는지 모르지요. 따다다다다…. 아주 거 박자를 잘 맞춰요. 내가 그걸 볼 때, 내가 고무 다리 위에 타고 앉아 있으니 할 수 있어요? 이놈의 궁둥이가 어찌나 박자를 잘 맞춰주는지…. (웃음) `이건 뭐 하나님이 그렇게 놀아나는 박자에 인간들이 그렇게 맞추면 백 퍼센트 성공은 문제없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왔다구요. (웃으심)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왔는데 온 첫맛이 아주 전라도 감 먹던 맛이예요, 전라도 감. 그래서 아주 떨떨 해 가지고…. 손님이 오자마자 자란 법이 어디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게 손님 대접하는 법이 어딨어요?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고 말이지요, `들어와서 주무십시요, 주무십시요' 하더라구요. (웃음) 자면 뭐 잡아먹을지 어떻게 내가 알아요? (웃음) 처음 가서 누가 거 자겠어요? 몽둥이를 그저 준비해 놓고 문에 지켜 서 있지요. 그리고 내가 뭐 자러 왔나 이거예요. 잘 것 같으면 어젯밤에 잤지요. 자라고 이불을 펴 놨으니까 억지로 가서 들이 자는 거예요. 그저 한 여남은 시간 자라는 거예요. `아버님, 열 시간만 자게 해주소. 누가 깨우면 그 녀석의 다리가 떡 붙게 해서 못 깨우게 하소' 그런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내가 자다 깨 그럭저럭 나와서 좀 얘기할 팔자가 되긴됐지만서도…. 지구장을 사정없이 기합을 주려고 하는데, 기합을 줄까요? 잘못했으니까 줄까요, 주지 말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에서 공문 낼 때 전라도 여기까지 와 봤어요? 와 봤나 말이예요. 거리를 보고 대개 시간을 넉넉히 잡아요, 넉넉히. 그다음에 전라도 이 광주에 있는 패들은 말이예요, 여기에 뭐 버스 영업소가 있을 것 아니예요? 있지요? 「예」 가 가지고 한마디면 된다구요, 전화로 한마디. 부산서부터 광주까지 버스로 달리면, 직행 버스로 달리면 몇 시간 걸릴까요? 또 트럭으로 한번 달리면 대개 몇 시간 걸릴까요? 그러면 짚차로 달리면 몇 시간 걸리는지 대번에 나오는 거예요, 대번에. 그럴 거 아니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이 녀석들 그렇게 안 하게 되면 그냥 줄을 세워 가지고 멋지게 기합을 주려고 해요. 기합 줄까요? 기합 줘요? 줄까요, 말까요? 요것 보라구요, 손해가 나겠으니까 가만 있구만요. (웃음) 조금만 이익이 나 보라구요. 조금만 이익이 날 것 같으면…. 주지 말까요, 어떻게 할까요? 줄까요? 주지 말까요? 지금 내가 얘기하는데 대답을 못 해요. 여기까지 대답이 나오는데 체면상 대답을 못 해요.
이번 코스에는 광주가 아주 '놀랄 광' 자예요, '놀랄 광' 자. 아 이건 지구본부에 선생님이 오면 먼저 쓱 와서 인사하고 다 그래야 될 텐데, 이건 떡 내가 찾아와 가지고 `주인 계십니까' 해야 되니…. 주인 놀음 못 한 거라구요, 전부 다 주인 노릇 못 했다는 겁니다. 오는 손님한테 망신당했으니 깨깨 오늘 그저 욕을 하고, 그래도 시원찮으면 그저 몽둥이를 갖다 마구 후려대고 싶다구요. 그렇다고 빗대서 그러라는 게 아닙니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내 다 잊어버릴거예요. 말하고 잊어 버릴께요? 「예」
이제 전라북도에 가서 전주 가서 그런 얘기 할까요? 난 잊어버렸는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해요, 말아요? 약속을 하자구요. 대전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할까요, 말까요? 서울 가서 그런 얘기를 할까요, 말까요? 대답을 해요. 할까요, 말까요? 「하지 마십시오」(웃음) 그렇게 하자구요? 「예」 나하고 여러분하고 약속하는데 협회장이 얘기하면 난 모르겠다. (웃음) 얘기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협회장보고도 얘기하지 말라고 그래요? 선생님이 명령할까요? 「예」 그거 얼마나 거북하겠어요? (웃음) 명령할 것이 많은데 그런 명령까지 해야 하니 이거 얼마나 신세가 딱하냐 말이예요. 그쯤하면 됐다 말이예요, 이제.
자, 얘기 한참 하다가 떫은 전라도 감이 말을 물어 가기를…. 여기에서 무슨 산이 제일 높은가? 「무등산」 무등산 꼭대기에 갖다 놨어요, 지금. 거기까지 왔으니 이제 돌아가자구요.
그래, 최후에 남을 주의는 천주주의입니다. 통일의 무리는 그런 사명과, 그런 책임에 불타 가지고 양손에 통일의 큰 깃발을 들고 행군을 시작하는 거예요. 이 행군의 대열 앞에 있어서는 아까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행군 목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행로에는 그 목적에 대비되는 그런 시련과 그런 환경이 겹겹이 싸여 올 것입니다. 이 일을 백 년에 성사하려면 백 년에 비등한 시련이 필요할 것이요, 백 년에 성사할 것이 기반의 한계라 할 때 백 년 한계의 이 연한을 만일에 어떠한 최고 사령관이, 명사령관이 있어서 십 년으로 단축시키겠다 하는 결의를 하고, 맹세를 하고 나섰다 할진대는 그 환경에 부딪치는 시련은 십 배로 가중해 부딪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요? 「예」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인류를 가만히 바라보게 될 때, 인간들이 지금 조급하게 고대하는 것은 이상의 세계, 하나의 세계, 자유의 세계, 평화가 깃들어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의 동산입니다. 어느누구나 마음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그러한 세계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뜻을 품고 생각하고 다닌 사람으로서 어느 선한 이념을 생각하면서 일념을 세워 세계에 공헌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사람은 시간을 다투어 분을 다투어 그러한 날, 그러한 세계, 그러한 자유의 천지를 마음 모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지요? 「예」
그러니 전인류가 조급하게 고대하는 그 목적은 하나입니다. 수많은 도의 세계에 있어서 지금까지 고통을 받아 지치고 허덕이는 찰라에 있어서 `아이 자리에 어서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한 발짝 가기에도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서 주저하면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그러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왜 10년 전에 그러한 자유의 천지가 못 왔던고?' 라고 생각할 거예요. 10년 전에 자유의 천지가 왔다면 그 사람들은 낙담과 낙망을 하지 않고, 승리의 자유동산에서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면서 천하에 부럽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자유의 천지가 오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절망 가운데 비련의 심정으로 탄식하다 말국에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당장에 그래요. 오늘날의 한국 정세를 보든가 세계의 실정을 바라볼 때, 세계는 모두 환란의 와중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고 자유의 그날, 자유의 천지, 자유의 한 세계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나할것없이 누구나의 공통적인 욕구로 돼 있으니 `그날이 빨리 와라! 내 아들딸 하나쯤 희생시켜서라도 빨리 오게 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 같은 나라에서 나라를 마다하고, 이 나라의 이념을 위하여 전진하는,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어떠한 무리가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모두 희생을 무릅쓰고 투쟁하는 거예요. 국가나 개인이나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우리 자신들을 가만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 모인 무리는 불과 몇백 명밖에 안 되는 소수의 무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하고 나서는 그 이념과 그 목적은 천주적인 이념이요, 천주적인 목적입니다. 오늘날 그 목적을 잡아 끌어 가지고 감아 세워서 `과거의 한을 풀었노라. 맹세와 결의로써 사모하던 승리의 한 날을 차지했노라! 천상천하에 내 이 승리의 영광을 들어 모든 만민에게 찬양거리로 돌려 주고 싶고, 만천주에 혹은 하늘에 영광으로 돌려 주고 싶고, 천주 만대의 후손 앞에 돌려주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승리의 시간을 얼마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바랐나 이거예요. 그렇지요? 「예」 바랐어요, 안 바랐어요? 「바랐습니다」
옛날에는 자전거만 타고 가도, 지금부터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근사하게 타고 가게 되면 사람 대해서 괜히 으시댔다구요, 조금 빠르다고 말이예요. 그다음엔 자동차, 자동차가 나오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형편없거든요? `빵빵' 하면 저 돌짝 옆에 가 가지고 발도 못 굴러대요. 스톱이예요. `빵빵' 하고 그저 `옆으로 가' 하면 `예' 하고, `발 돌리지 마. 잘못 돌리다가 비틀어지면….' 그랬다구요. 대개 차를 타고 `빵빵' 해보라구요. 옆으로 후다닥 가게 되면 발도 못 구르고 스톱 해 가지고 `제발 잘 지나가소' 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없나…. (웃음)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웃으심)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더구나 좁은 곳 같은 데야 형편없지요. 전부 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지요. 자전거가 조금밖에 없을 때에는 자전거 하나 가지고 뽐내고 들썩거리고 가더니 말이예요, 이젠 자전거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렇지요? 그러니 빨리 자전거 시대는 들어가라 이거예요. 요즘에는 짚차…. 나도 물론 짚차로 왔지만 짚차가 휘─잉 나는 제트기 옆에 가 설 수 있겠어요? 이젠 자동차 시대는 지나갔다구요. 이젠 인공위성, 유도탄 시대입니다. 오늘날 제트기가 인공위성을 따르겠어요?
나는 생각하기를, 마음의 인공위성을 타고 한번 대천주 여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트기와 인공위성보다 더 빠른 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인공위성입니다. 이제 마음의 인공위성 시대가 온다구요. 그런 시대니 얼마나 빠르겠어요. `빨리 와라, 빨리 빨리. 야, 달려간다. 빨리 가자' 이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그렇게 빨리 와서 뭘할 것이냐? 한 번 가서 안 되면 두 번 가고, 두 번 가서 안 되면 세 번 가고, 세 번 가서 안 되면 네 번 가고…. 옛날에는 한 달 걸려야 갔던 것이 지금은 하루에 한 번씩 갔다 와도 넉넉하다구요.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도 안 되던 것이, 하루에 한 번씩 왔다갔다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 달에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게 뭐냐? `평화 평화, 자유 자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세계' 하면서 이 나라 저 나라, 전부 왔다갔다 왔다갔다 자꾸자꾸 하면, 한 번 왔다 가고 두 번 왔다 가고, 시간을 단축해서 왕래가 빈번하면 문화교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적인 감정이 통할 수 있는 평면적인 토대를, 집을 짓는 토대를 다 닦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보라구요. 요즘에 그 춤을 무슨 춤이라고 그러던가요? 엿가락 춤이라는 춤이 있지요, 엿가락 춤? 엿가락인데 그것이 겨울에 얼은 엿가락이 아닙니다. 따뜻한 구들방에서 비벼 놓은 엿가락이예요.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그런 춤을 추는 걸 뭐라고 그러던가요? 그게 뭐예요, 이름이? 뭐라고 그래요? 20세기의 문명의 춤이지요, 그게? 그 춤도 춤인가요? 그 춤은 어느 춤이예요? 요 젊은 녀석들, 아 뭐 이건 안 돌아가는 게 없대, 좌우간. (웃음) 그걸 내가 볼 때, `야, 세상에 춤을 추는데 사지백체가 동서남북으로 놀아나는 입체적인 춤을 추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구요. 그건 뭐 마음대로 추더라구요. 손가락을 머리에 올리고 그저 대가리를 밟고 추면 그냥 춤이예요. 그건 오구육구탕 춤이다 그거예요. (웃음)
집터를 닦으려면 왜말로는 지나라시(じならし;땅고르기)라고 하지요? 그걸 전부 다 섞어 가지고 그저 위가 아래고, 아래가 위가 되게 다 메워가지고…. (웃음)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전세계의 청년, 청소년들은 전부 다 일어나라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오늘날 지금까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문화야 간 곳 없고, 공산주의 문화야 간 곳 없다구요. 부딪치면 꼼짝 못 하는 거예요. 10대 소년들 앞에 지금 대한민국도 손들고, 미국도 손들고, 블란서도 손들고, 공산당도 손들어 온다구요. 그걸 알아요? 그걸 알아요, 여러분들? 그거 뭐 언제나 지나가서 그렇지요. 그거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그게 집터 나는 거와 같아요. (웃으심) 집터 날 때 동네 늙은이들 젊은이들이 모여 얼마나 요동해요? 그때가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트위스트 춤은 무슨 춤으로 변하느냐? 무슨 춤으로 변하느냐 하면 천지 춤으로 화한다는 것입니다, 천지 춤, 하늘땅 춤. 청년들만 추면 되겠느냐구요. 청년들이 그렇게 추면 늙은이도 추고 하늘도 추고 땅도 추고 그러면 됐지요, 뭐. 그럴 수 있는 천지 춤을…. 내가 이제 아마 그런 명사를 하나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내가 그런 춤을 하나 만들어서 한번 멋지게 바람을 일으켜야 되겠다구요.
통일교회에서는 벌거벗고 춤춘다는 소문났지요? 벌거벗고 한번 춤춰봤으면 좋겠다구요. 얼마나 멋지겠나요? (웃음) 그게 아마 유행될지 모르겠다구요, 춤이라면. 여기에 수만 명이 와 가지고 구경하고는 눈이 빠지도록, 혓바닥이 빠지도록 홀딱 빠져서 `밥을 안 먹어도 좋다. 뭐 어때도 좋습니다. 죽어도 좋다. 아이고, 좋다 좋다' 이럴 수 있게끔 벌거벗고 춤추게 하면 그거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그만하면 세계에 바람이 불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올지 모른다구요. 그런데 춤을 내가 한번 못 춰 봤어요. 선생님이 벌거벗고 추면 얼마나 고상하겠어요? (웃음)
요전에 본부교회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간증을 하는데 말이예요, 춤춘다고 해서 주목해 보기 위해 들어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는데….' 그래 가지고 그 아주머니가 쓰윽 와서 감상을 했다구요. `허, 협회장 다리가 저렇고 눈이 움푹한데 거 한국산 외국놈 같다' 하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떡 와 가지고서 `저 다리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저 몸뚱이로 춤을 추면 그 얼마나 멋지고 볼 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거예요. (웃음) 하여튼 통일교회는 뭐 다 있다는 말이예요. 별 소문이 다 있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말이예요, 저기 이러던 아가씨가 하하하 하는것 같다구요. (웃음) 부활하라구요, 부활,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그저 귀가 쫑긋해 가지고 못 듣는 것 다 듣겠다고 모가지를 빼고 이러고 있는데 그러라고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한 시간 지나면 피곤하지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맛있는 반찬을 만들려면 양념이 짠 것, 신 것 다 들어가야 됩니다. 그건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서…. `뭐, 선생님이 얘기하는데 트위스트 춤 설명하고 뭐 못 된 것 설명하는데, 이거 와서 뭐람?'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딴 사람은 다 듣고 좋아서 웃었는데….
자, 그러니까 제트기 시대를 지나 가지고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요? 바쁘다 못 해 타고 갈 게 없어서 발로 뛰어간다구요. (웃음) 차 타는 시간이 아깝다는 거예요. 차 타러 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야, 이 사람들, 차 타러 나가는 시간이 바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뛰어서 가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저 충주에서 서울까지가 320리인데 하루에 달려갔어요. 그만하면 됐지요, 뭐. 그런 사람이 몇 명인가? 상당히 많지요? 그저 한 320리를 후다닥….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하루 2백 리는 보통입니다. 여러분 전라도에는 그런 사람 없지요? (웃음) 따라갈 수 있어요? 고생을 많이 하는데 고생을 할 게 있어요? 이렇게 하는 게 뭐예요, 이게? 입이 늘어져 가지고…. (웃음) 선생님은 그러면서 욕을 해도 괜찮지만 여러분들은 욕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욕해도 된다는 말이예요. 욕해도 되게 돼 있지요? 「예」 그런 조약이 다 돼 있어요. (웃음) '에이, 선생님도 뭐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런 내가 욕을 할 거라구요.
바쁜 생활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본부에 척 있어 가지고 명령하기를…. 선생님도 여기 전라도에도 그저 하루에 몇 번 왔다갔다하고, 여러분들 집집을 돌아다니고 싶고 다 그런 거라구요. 가서 빵도 얻어먹고 싶고, 조밥도 얻어 먹고 싶고, 보리밥도 얻어먹고 싶고, 강냉이도 얻어먹고 싶고, 보리죽도 얻어먹고 싶다구요. 별 게 다 있을거라구요. 뭐 팥죽도 얻어 먹고, 단 것을 그저 한 천 개라도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고, 이래 가지고 그저 다니고, 또 다니고 다니고, 또 다니고 싶다구요. 그렇지만 몸뚱이가 한 개밖에 없다구요. 마음이 그래요, 마음이. 바쁘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이념적인 무대는 선생님이 닦아야지요? 이념적인 무대를 선생님이 닦아야지요? 이 무대의 터를 선생님이 다 닦아야지요? 「예」 여러분들은 앉아서 구경하구요? (웃음) 어떻게 해야 돼요? 어지간히 이젠 닦여졌다구요.
그러니 오늘 여러분이나 나나 얼마나 바빠요? 바쁘지요? 바쁘지요, 마음이? 바쁜가요, 안 바쁜가요? 「바쁩니다」 바쁜데 왜 가만 앉아 있어요. 서서 야단해야지요. 나는 바빠서 서서 야단하잖아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야단 안 하면 안 될이만큼 바쁘다는 말이예요. 한시간에 말을 그저 한 몇 억 마디 퍼부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어디 혓바닥이 그렇게 놀아 줘야지요. 여러분들에게 암만 빨리 떠들어도 알아들어야지요? 나는 말했는데 못 알아듣거든요? 할 수 없으니까 얼마나 바빠요? 바쁘단 말이예요, 바빠. (웃음) 말도 바쁘고, 행동도 바쁘고, 밥 먹기도 바쁘고, 자기도 바쁘고, 변소 가기도 바빠요. 지금 때가 그런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서울 가면, 내려가면 그저 편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거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여러분도 그런 걸 느껴 보지 못했을 거라구요. 참 바쁘다구요.
선생님의 눈에는 대한민국은 안 보입니다, 대한민국.`공산당하고 민주주의하고 케네디하고 흐루시초프, 어디 가니 이놈들, 어디 가니? 너 어디 갈 거야? 응,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구나. 이리 나와' 이걸 생각한다구요. 한번 내가 그물을 치고 멋있게 막 때려서 몰아대면 어디로 도망갈까요? 여러분들 그런 생각들 해봤어요? 그물을 치고 그저 벼락같이 몰아대면 어디로 도망갈까요? 대항할까요, 도망갈까요? 선생님은 그런 공상도 합니다. 공상이 아니라 실상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도 많이 합니다. `요놈의 통일교회를 꽁무니에 달고 어디로 빠져 나갈까, 어디로 빠져 나갈까?' 이런 생각 하는 선생님이니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할 거 아니예요? 그저 꽁무니에 달아매고 부딪쳐서….
잘 타 가지고 평야를 뭐 밤이든 낮이든 달리는, 태극호든가? 이름이 좋아요. 여기 태극호는 난 못 타겠더라구요. 털커덕 털거덕…. 나 그런 생각 안해요. 뭐 도랑이가 있든 말든, 나무가 있든 말든, 바람벽이 있든 말든, 집이야 있든 말든, 도둑놈이야 있든 말든, 한바탕 냅다 뽑아 봤으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러다가 넓은 곳을 달릴 때야 `아이구, 좋아라!' 하고 탄 녀석들은 다 그럴 거예요, 통일교회에 탄 녀석들도 그와 같다구요. 그렇지만 들어간다구요. 들어가는데, 굴로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여유가 없어요. 굴이 좁아서 말이예요, 살가죽이 떨어진다구요. 그래도 달리는 거예요. `아이고, 저고리가 떨어졌구나' 그래도 가는 거예요. 그렇게 바쁜 사람이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이렇게 바쁜 사정과 바쁜 신세에서 춤을 추고 허덕이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그 이념이 천주주의 이념에 들어간다 이거예요. 또, 그날과 그때가 오기를 수많은 인류와 천상천하의 만유의 존재가 바라고 있다구요. 그러니 안 바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피곤해서 목이 터져서 피가 나왔으면 나오고 그저 이 놀음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바쁘지요? 상당히 바쁘지요? 상당히 바쁘지요?
누가 그렇게 바쁜가요? 선생님이 그렇게 바쁘지요? 대답들 해봐요. 안 바빠요, 바빠요? 바쁘지요? 「예」 바빠요, 안 바빠요? 「바쁩니다」 바쁘지요? 「예」 선생님만 바쁘면 되나요? 「저희들도 바쁩니다」 여러분들도 바빠요? 「예」 그렇게 바쁜가요? 바쁜 사람이 이렇게 앉아서 가만히 있어요? (웃음) 주먹을 이래야지요. 발을 이래야 돼요. 상대적으로 바빠야지요. 할머니! 할머니도 바쁘고 그래야 돼요. (웃음) 아, 물 먹기도 바쁘다구요.
지도자의 입장은 어떠하냐? 남보다 더 잘 먹이고 싶고…. 뭘 어떻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고 싶다구요? 지금 무슨 말을 했어요?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을 했어요? 「저 말입니까?」 아, 이 청년 말이야, 넥타이맨 청년. 「저요?」 「남보다 잘 먹이고 싶고….」 아니 너 말이야, 그뒤에. 저 사람 말이야. (웃음) 못 들었거든. 그래서 물어 보는 거예요.「들었습니다」 그럼 왜 대답 안 해, 왜?
지도자의 입장은 어떤가 하면 말이지요, 따르는 사람을 남보다도 더 잘 먹이고 싶고,더 편하게 해주고 싶고, 남보다 더 좋게 만들어 주고 싶은 겁니다. 그것이 지도자입니다. 그렇지요? 자기는 고생을 모른다구요.
그런데 그런 말들은 평화 시대에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 시대에 필요한 거라구요. 만약에 그 자리에 가만 두었다면, 지금 당장에는 그곳이 피난처일지 모르지만 몇 달 후에나 몇 년 후에 그 자리에 있다가는 벼락을 맞습니다. 그것을 아는 지도자라면 그 자리에 있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도망을 치게 해야지요? 그렇지요? 「예」 그게 사랑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은 모르지만 지도자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운명이나 그 사람의 앞길에 있어서의 위험이 있을 때, 그 사람이 필요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위험한 지대에 있게 될 때에는 필요한 가치에 대등한 기합을 줘서라도 그 자리를 모면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예를 들어 모세가 바로 궁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빼낼 때 그 무지무지한 10재앙과 대결을 한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생명을 각오하고 바로 궁중에 나타나 당당히 하늘을 위하여 변호하고, 민족 편에서 민족의 고난과 수난을 염려하면서 투쟁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의 수중에서 끌어내 광야에 나아가게 될 때 모세는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 지금까지 고생한 이 민족을 고생시키는 모세 마음이 아팠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400년 동안 수많은 고역 가운데에 있으면서 피폐한 신세에서 허덕이는 그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에, 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고, 안식의 한 날을 맞이하여 편안한 자리에서 남과 같이 생수를 마시게 하고, 남과 같이 먹고 싶은 모든 진수성찬을 먹도록 베풀어 대접하고 싶고, 편안히 안식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지도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가야 할 사명적인 책임과 당면한 광야를 놓고, 생사의 기로에서 생과 사의 결단을 지어야 할 이러한 비장한 마당에 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하는 모세에게 있어서는, 그들에게 먹으라고 권고하지 못하고 먹는 것까지 빼앗아 집어던져야 되었고, 입은 옷까지도 방해가 되니 벗겨 버려야 되었고, 짊어진 지금까지의 군량, 이 모든 것도 집어 던져야 했습니다.
이러한 처참한 명령을 해야 할 입장에 선 모세는 인정(人情)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도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할 수 없는 일이예요. 그렇지만 마음의 그 심한 고통이 자기의 마음을 점령해 들어오고 아프게 조여 들어오더라도, 불쌍한 그 정경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60만대군이 전멸할 것을 아는 모세라 할진대는 자기의 팔을 자르고라도, 자기의 가슴에 칼을 꽂고라도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는 권고의 말씀으로 '네 자리에서 기동을 하여 전진하라!' 하는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던 모세였던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예요.
지도자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사태가 급박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400년 동안 수고하던 바로 궁중보다야 아무래도 낫겠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지도자의 서릿발 같은 최후 통첩의 명령이 내릴 때, 진군하라는 명령이 나오게 될 때, 그 명령 앞에 일치단결하여 그 자리에서 기동을 하기 시작했던들 그들은 순식간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복귀해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쳐서 다리 아픈 것을 못 참고 입을 벌려 하는 말이 `모세는 무심하지. 동정도 없지' 이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 목석 같은 사람' 그런 말을 하다가 그 환경이 점점 심해가니 `저 목석 같은 무지한 자식' 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오죽 안타까우면 바로 궁중에서 400년 동안 죽어가는 60만 대군을 끌고 나와서 광야에 갖다 놓고 시내산에 40일 동안 무얼하러 올라갔던고? 편하려고 올라간 줄 알아요? 무엇 때문에 40일 금식을 했던고? 최후의 각오와 최후의 명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 앞에 불복종하니 망할 것을 아는 모세는 `이들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더라도 망할 길을 피해 가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간곡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신세를 안 이스라엘 민족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도자라는 것은 고독하다는 거예요. 남 모르는 가운데에 그 민족 앞에 다가오는 시련과 폭풍우 앞에 시달리면서 그 모든 거센 환경의 원수를 대하여 홀몸으로 가려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쌍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못나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지도받는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불쌍한 것입니다. 따르고 있는 민족이, 알아 주어야 할 이 민족이 알아줘야 할 정경을 몰라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하늘은 `이놈들아!'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동정하여 모세를 보내 권고함에도 불구하고, 천신만고 수고한 심정에 사무쳐 최후의 선언과 같이 절규하는 그 모세의 부르짖음 앞에 민족이 반항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하늘인들 그 민족을 앞에 내세워서 끌고 갈 수 없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모세를 내세워 권고하는 하나님의 마음, 모세가 간곡히 외치던 마음, 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외치던 간곡한 모세의 심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사무치게 될 때에, 모세의 외침이 복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로 변해 전부 때려부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명령하기를 가나안 복지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이고이 뽑아서 내보낸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 60만 대중이 광야의 독수리 밥이 된 처참한 정경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재촉하고 싶었을까요? 모세를 조종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그저 지금과 같이 입을 다물어야 되겠나요, 입을 벌려야 되겠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입을 다물어야 돼요, 벌려야 돼요? 「벌려야 됩니다」 틀림없이 벌려야 돼요.
아버지께서 6천 년 동안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신 그 비참한 정경을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어도 모를 것입니다. 4천 년 복귀의 한스러운 노정을 거치고 거쳐 선민 이스라엘을 품고 부대끼던 아버지입니다. 노아로부터, 아브라함, 야곱, 모세 시대를 거쳐 4천 년 역사를 붙안고 부대끼던 아버지예요. 이스라엘이 슬픈 날을 맞이하면 그날은 아버지의 슬픈 날이었습니다. 슬픈 민족의 사정은 아버지의 민족적인 사정이 되었고, 그 민족의 처참한 광경은 전체가 아버지의 처참한 광경으로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책임진 그런 하나님이 되었던들 무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이 된 것이 원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내적인 원수들은 손을 대고 하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외부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원수들은 조롱하나니 그 조롱의 아픈 상처를 더듬어서 쓰러져 가는 이 민족을 수습하기 위해 애달파하며 바로 궁중에서 몇억천만 번 눈물 흘리는 사정에 처했던 모세를 누가 알아주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외로우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몰라줘도 몰라주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당해야 할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민족은 배반을 해도 배반을 그대로 받으면서 그들을 위해 또 눈물지어야 할 하나님입니다. 이런 사정을 누가 알아주었느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민족들을 거치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거쳐 그래도 울타리를 치고, 그들을 맞기 전에 선지자를 대신 탕감의 제물로 하여 한 세기 세기, 한 시대시대 넘어갈 적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당장에 원수의 조롱 앞에 사라져 멸망해야 할 때마다 하늘은…. 그들이 매맞는 대신 하나님은 택한 자를 세워서 맞게 하는데 그 매는 하나님이 맞는 거예요.
그리하여 수많은 역사노정 위에 선지선열을 보내 민족의 울타리로 삼기 위하여 제물삼아 사라져 간 수많은 역대의 우리 조상들이 있음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물을 지을 적마다 하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슬픈 것이요, 그들이 고통을 당할 적마다 이 민족에 대한 저주의 한이 마음에 사무치지만, 복수하여야 할 원수임에도 억제하여 이들을 찾아와야 할 하늘의 사정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의 신도들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불쌍하신 하나님이예요. 또한 하늘의 천국이념을 바라보고 지도하는 하늘의 지도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그렇다고 오늘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 앞에 어떠한 지도적인 책임을 짊어졌다고 동정받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구요. 좋은 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이라고 할 줄 알아요. 만민이 따르고, 만민이 추앙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섬길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요.
예수님 당시의 예수님의 일신을 두고 보더라도 그 시대적인 정상으로 보면, 모든 환경이 유리하게 되었으면 예수의 제자가 안 될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살인 강도까지 예수를 환영하겠다고까지 했고, 세리와 창녀까지도, 어느 누구나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불리해 들어가고 하나 둘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무리가 생겨 예수를 배반하는 무리가 많아지게 될 때, 그 무리 앞에 예수를 뒤로 두고 가는 무리를 붙드는 무리가 얼마나 많았던고! 벳새다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 여 무리를 먹이던 그때에 진탕 먹고 좋다고 찬양하면서 당신이 메시아라고 신봉하던 그런 무리들은 다 어디 갔어요?
오늘 여기 전라남도에서 온 여러분에게 말이예요, 식구라는 명사를 가진 여러분들에게 내가 여기에 좋은 말 하러 오지 않았어요. 좋은 말 하러 오지 않았다구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 문선생 일신의 어떠한 한을 풀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것은 민족적인 한이요, 인류적인 한이요, 천주적인 한입니다. 이 한을 누가 대신 호소해 줄 것이냐? 피어린 분함과 원통함의 이 한은 역사적인 한이요, 시대적인 한이요, 미래에 사무치는 무한한 한인데 누가 이것을 호소해 줄 것이냐?
무수한 무리들을 모아 놓고 비통하고 절통(切痛)스러운 호소의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한을 대변해 선 내 자신을 놓고 볼 때, 이 놀음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돈 받고 하라고 해도 못 할 놀음입니다. 값을 쳐서 어떠한 조건을 따라 움직이는 그러한 자리에서는 못 할 놀음이예요. 생명으로 부딪치고 심정으로 부딪쳐 내가 아니면 망하는, 내가 아니면 둘 다 망하는 입장에 설 것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고, 살아야 할 운명의 길을 우리 앞에 놓고 하늘이 축복하고, 민족이 축복하고, 인류가 축복하는 자리에 선 연고로,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이러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알아 합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여러분의 스승도 지금에 와서 스승이라고 모셔 주는 여러분이 있는 건 고맙지만 옛날에 나는 스승이 못 되었었습니다. 옛날에 나는 하나의 죄수였었습니다. 살인 강도와 쇠고랑을 같이 차고 형무소의 문을 찾아 들어갈 때마다 비장한 눈물과 더불어 하늘 앞에 맹세하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기억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물 가운데에서 나는 모세가 눈물 흘린 것을 중심삼고, 예수가 눈물 흘린 것을 중심삼고 천지가 그 눈물 앞에 어리었던 그것을 나는 잊지 않아요. 그때 맹세한 신념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내가 비참한 자리에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석같은 내 신념과 내 뜻은 하늘의 심정을 통했으니 그 심정을 빼앗아 갈 역사적인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가고 가다 보니, 죽음을 각오하고 가다 보니 결국은 행복이 남아진 오늘날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인간 중의 맨 말단의 행로에도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어요. 여기에는 농민의 아들들도 왔을것이고, 노동자의 아들들도 왔을 것이고, 혹은 과부의 아들이던 그러한 분도 왔을 것이고, 지금 당장에 자기 자신이 어떠한 지역에 있어서 자기의 명망을 세우기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그런 무리의 자식들도 왔을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의 친구 되기를 원하였던고! 이론적으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하나님은 불쌍한 자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불쌍한 자의 어머니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연고로 우는 자의 친구가 되고 싶었고, 탄식하는 자의 탄식 자리에 찾아들어가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놀음 해왔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 땅 위에 있어서 유린하여 민족의 피를 팔아먹는 그런 무리들에게는 이를 악물고 원수를 갚아야 하지만 참는 거예요. 내가 40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젊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이것을 하늘땅의 철창으로 치더라도 나는 간다 이거예요. 피 흘리며 승리의 날을 고대하면서 역사는 선을 보전하는 것이 천리이고, 하늘은 선한 자녀들이 갈 길을 인도하는 것이 천륜인 것으로 알고….
이러한 과제 앞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구를 위해 살아갈 것이뇨? 누구를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될 것이뇨? 현세의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우리의 선조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우리의 천추만대의 후손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원치 않는 자리에서 피땀을 흘리고 기름땀을 흘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참고 참는 노정에 있어서 내 아버지를 찾아 내 아버지의 심정 앞에서 편히 모시기 위하여 애달파 하면서 허덕이는 초췌한 모습이 있다면 그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망하지 않으니 그것을 따르는 사람도 망하지 않고, 그의 후손도 망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알아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설 적마다 하늘은 살 길을 마련해 두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3천만 민중을 구원해야 할 사명과 민족적인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이 민족을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세계의 문화 사상에 있어서 우방 국가 앞에 출중한 민족이 될 수 있겠느냐? 이 세계를 위하여 정성을 많이 들이고, 이 세계를 위하여 눈물과 피땀을 많이 흘려라 이거예요. 이게 철칙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이념은 최후의 천주주의의 이념을 품고, 생활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고, 행동은 종의 몸뚱이로서 눈물과 피땀으로서 이 땅을 붙안고 인류를 붙안고 하늘땅을 붙안고 가야 합니다.
채찍을 맞더라도 그 매는 나 한 사람이 맞는 매가 아닙니다. 3천만을 대신하고, 30억 인류를 대신한 거예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하여서는 수천억의 인류를 대신한 것입니다. 얼마나 거룩하냐 이거예요. 골고다 산정에 있어서,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고고한 예수의 한 몸이, 무릎을 꿇어 눈물을 흘리고 세 번씩이나 피땀을 흘려 기도한 그 기도가 오늘날 수많은 민족 앞에 불을 던지고 폭탄을 던질 줄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예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눈물짓는 기도, 갈보리 산상에서의 눈물짓는 기도, 피 흘리는 놀음,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의 죽음의 놀음이 없었던들 기독교는 벌써 로마제국의 400년 박해시대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예수는 자기의 몸을 가꾸기에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가꾸기에 노래하지 않았어요. 체면이야 위신이야 어떻게 되든, 남자의 위신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일신은 가나니, 거룩한 땅 거룩한 곳에서 죽나니,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권한이 역사와 더불어 같이 생동하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 마음을 느끼면서 그는 엄숙히 자기 몸을 가꾸어 하늘 앞에 맡기고 왔다는 것을 알고 그랬기에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눈물 흘림이 없었던들, 그의 참다운 피흘림이 없었던들 부활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교파적인 싸움 시대는 지나갔나니, 민족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이 판국에 오늘날 민족적인 운명을 앞에 놓고 있는, 이 난국에 처한 오늘날의 통일교회 신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부활의 한 날을 이루기 위하여 새로운 여명의 출전명령을 받고 암담한 곳을 향하여 우리는 행군을 시작하였나니, 가는 데는 지장도 많습니다. 원수의 철망도 많아요. 원수는 방어의 체제를 갖추고 있어요. 그렇지만 사체에 사체를 넘어서 달려야 합니다. 가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의 눈물과 더불어, 쓰러지더라도 예수의 피흘림과 같이 내 생명을 맡기고 `내 뜻대로 아니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뜻이라고 하는 것은, `천추만대 이 땅 위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될 이러한 악당이 남아 있으니, 그들의 죄를 전부 다 벌하십시오!' 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예요.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가는 그런 숭고한 예수의 희생 앞에 하늘과 땅은 머리 숙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마저 거기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굴복하는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안다 할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지금 이와 같은 마당에 있어서 가야 할 길이 바쁘고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 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을 이제 만났으니 무슨 말을 해야 될 것이냐? 죽어라, 죽어라 이거예요. 누굴 위해 죽느냐? 민족을 위해 죽고, 세계를 위해 죽고, 하늘땅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죽어라 이거예요. 왜 그러냐? 바쁘기 때문이예요. 바빠요, 바빠. 바쁘고 바쁜 일을 다하지 못하겠으니, 하고 싶어도 못 다하겠으니, 죽음을 각오하고도 못 다하겠으니 죽음으로 끝마치자 이거예요. 끝마치고 돌아보게 될 때에 `내가 여기에서 내 있는 정성을 다 했노라! 하나님,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하늘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나라에 공을 세운 그러한 전사들일지라도 싸우는 자리에서 훈장을 주는 법이 있어요? 전쟁이 끝나고 승리하고 난 후에 훈장을 주는 법이요, 그다음에 승리하고 난 후에 동참하지 못하고 죽은 자에게 훈장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게 돼 있지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상은, 여러분들의 사상은 승리하고 난 후의 영광입니다. 죽고 난 후의 영광이예요. 이런 각오하에서 철석같이 뭉쳐야 됩니다. 그러므로 가야 할 길이 바빠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개인을 무시했고, 가정을 무시했고, 종족을 무시했습니다. 외톨이가 되었다구요. 그렇지요? 외톨이지요? 선생님에게 친구가 있어요? 친구가 있나요? 외톨이라구요. 스승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전부 다 반대하던 구신도의 족속들이예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투쟁을 하고, 가정적으로 투쟁을 해 가지고 지금까지 와서 이제는…. 몇 시예요? 얘기를 그만하면 좋겠어요, 더 하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바쁜 뜻을 앞에 놓았으니 오늘날 여기 전라남도의 이 젊은놈들, 여러분들은 가다가 기운이 빠지거든 맥박을 짚어보라구요. 가슴을 짚어보라구요. 여러분들은 맹세할 때 언제나 가슴을 짚고 맹세하라구요. `이 맥박이 끊어짐과 더불어 청사가, 역사가 뒤넘이쳐지지 않는 한 내 맹세는 변할 수 없다' 이런 맹세를 하라구요. 맥이 빠졌더라도 가야 됩니다. 쉴 사이가 없는 거예요. 이 고동은 밤이 없어요. 밤이 있나요? 밤이 있어요? 「없습니다」 밤이 없어요. 낮이 있나요? 밤낮이 없어요. 쉴새없이 가야 된다구요.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리의 인생의 행로를 싣고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그러니 불쌍하지 않아요? 거 얼마나 불쌍해요?
이놈의 가슴이 놀라 죽을 것이냐, 기뻐 죽을 것이냐? 사고가 나서 원수의 칼에 맞아 죽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에 춤출 수 있는 가슴이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불쌍해요? 여러분들, 하루라도 일분에 내 맥박이 칠십 몇 번 뛴다 하는 걸 느껴 봤어요? 느껴 봤나요? 하루 종일 수십 번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고생시켜 놓고도 인사도 한 번 안 하지요? 인사 해봤어요? 그러면 누구,누구, 누구를 위해서 가느냐? 「아닙니다」 크나큰 목적을 위해 가는 거예요. 이것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가야 됩니다. 그 길을 가야 된다구요.
자, 이제는 결론을 내리자구요. 얘기하려면 한이 없으니 수습해서 결론을 내리자구요.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고, 거기에다 편안하면 좋겠는데 싸워야 할 원수까지 등장하는 거예요. 하라고 가만히 놓아 두고, 가라고 가만 놓아 두지 않아요. `이 자식, 네가 갈래?' 하는 원수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 발짝 가려면 열 발짝에 대등하는 원수가 칼을 들고 모진 흉악한 태세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일이라구요.
오늘날 우리들은 6천 년 역사를 좁혀 들어가니 6천 년 종적 역사를 내 일생에 현실적으로, 횡적으로 전개하여 여러분의 내적 생활면이나 외적 생활면에 있어서 그러한 투쟁 역사를 순식간에 뒤넘이쳐 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은 갈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필요한가요? 필요한가요, 안 필요한가요? 「필요합니다」 얼마만큼 필요해요? 요만큼 필요해요, 요만큼?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로. 그건 내 말이 아니라구요. 절대로 필요하다구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달리는 방향으로 내가 가야 됩니다. 가야 되지요? 가야 되지요? 「예」 가는데, 지금까지 선생님이 얼마만큼 싸워 왔나 보라구요. 개인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가정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종족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민족적인 십자가도 제껴 놓고, 그래서 그걸 다 제껴 놓고 개인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가정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종족적인 통일교회를 만들고,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통일교회를 만들었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하기 위해서는 영계부터 통일해야 됩니다, 영계부터. 여러분들 영계 알아요, 영계? 「압니다」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영계를 알아야 돼요. 영계를 통일해야 됩니다. 영계를 통일해야 돼요. 영계를 통일 하는 게 뭐 쉬울 거 같아요? 영계의 통일 없이는 지상의 통일이 없는 거예요. 오늘날 이 지상의 싸움이 참 힘들지요? 힘들지요? 그렇지요? 「예」 지상의 싸움이 힘들다구요. 그러면 영계의 싸움은 지상의 싸움보다 쉬운가요? 쉽겠나 말이예요? 쉽겠어요? 「어렵습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힘들다는 명사를 입을 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고 있는데….
지금은 선생님의 제1차 작전을 하는 때입니다. 제1차 작전 계획에 있어서 40평생을 걸어 놓고 지금까지 싸우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 예수 당시에 있어서의 로마제국의 속국에 처해 있는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이 만약에 메시아를 모셔 가지고 일치가 되었더라면, 반드시 여기에서는 로마제국을 중심 기반으로 하여 기독교가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구요. 그런데 택한 선민이 예수를 추방했지요? 택한 이스라엘의 유대교가 예수를 추방했지요? 그렇지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추방하고 민족이 추방하니 어떻게 되었느냐? 로마제국 앞에 추방당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려서 죽어 버렸습니다.
메시아가 온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고, 메시아로서 온 자신의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지상천국을 완결하여 천상천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이념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 앞에 들어가지 못해요.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연고로 분립되어 있는 이것을 합성일체화하기 전에는 완전한 대상의 실체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나라에는 남자만으로 못 들어가고 여자만으로 못 들어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예수가 왔다 간 후 2천 년이 되었지만 신랑 신부의 이름을 남겨 놓고 하늘과 땅이 합할 수 있는 실체적인 대신 존재로서 현현하기를 바라는 것이 재림이상입니다. 그래야 예수는 신랑이요 땅 위에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신부로서 비로소 어린 양 잔치를 거쳐 상대적인 이념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본래 부모ㆍ처자ㆍ가정을 끌고 들어가야 할 이상세계예요. 그렇지요? 천국이 그렇다는 말이예요. 오늘날 기성교인들, 예수믿고 천당가자고 하는데 가 보라는 거예요, 어디에 가나.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다시 와서 이 땅 위에서 개인복귀완성의 기준을 터로 하여 복귀도상을 거쳐 나가려면 반드시 역사적인 해원을 해야합니다. 제1, 제2 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구약성경을 믿고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선조들과, 지상에 남아 있는 그 시대적인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한 후에 그 기반 위에서 승리라는 두 글자를 세워 가지고, 사탄 등에 거꾸로 붙여 놓아 가지고 비로소 예수 중심한 새로운 혈족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아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제1 이스라엘, 제2 이스라엘, 제3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등극하여 만유 세계 앞에 비로소 어버이로서의 위치를 찾아야 했던 것을…. 열두 제자는 열두 아들입니다. 그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확실히. 그거 다 들어두라구요. 모르겠으면 지구장한테 물어 보라구요.
열두 아들을 기반으로 하여 역사적인 기반의 해원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열두 아들이 배반한 것입니다. 민족적인 대표인 열두 아들을 세우려면 이스라엘 민족을 예수의 장중에 두고, 유대교를 예수의 품에 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야 열두 아들을 효자 효녀들 앞에 왕자 왕녀로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여, 환경이 불리하니 열두 제자들이 전부 다 야반도주해 버렸습니다, 이놈의 자식들이. 그래도 그 가운데에 세 제자라도 남았어야 했습니다, 세 제자라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믿고 3년 동안 천신만고하여 그들의 종살이를 해 가지고 그들을 길렀습니다. 그들이 울 때 눈물을 씻어 주고, 굶주릴 때 먹여 주고, 헐벗을 때엔 입혀 주었단 말이예요. 나그네 되어 다닐 때 친구가 돼 주고, 모든 편의를 봐 줘 가지고 제물과 같은 생활을 하여 길러 놓았던 열두 제자가 심정을 배반하니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세 제자를 수습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게 될 때 이들은 전부 다 예수를 배반하는 자리에 있어서 자기 몸을 가꾸기에 급급했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는 누구예요? 인류의 참부모지요? 「예」 예수는 우리의 누구예요? 우리의 누구예요? 참아버지지요? 「예」 아버지 아니예요? 아버지지요? 「예」 그렇다구요. 아버지께서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을 당해야 아들입니다, 먼저. 자식의 죄값으로 팔려 죽음길, 십자가의 길로 향해 나가는 그 길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몽매한 자식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팔려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이 아들딸들은 `야! 내 아버지 잘 팔렸다' 그래 버렸어요.
그렇게 자식들은 몰랐습니다. 자식들은 몰랐지만 십자가에 달린 오른편 강도는 예수의 사정에 편들었습니다. `나는 응당히 죽어야 할 죄로 말미암아 이런 극형에 죽지만 당신은 죄가 합당치 않은 것을 내가 아옵나이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돌보소서' 하는 한마디를 들은 예수는 `오냐, 내가 오늘 너와 더불어 낙원에 같이 이르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역사 이후에 낙원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는 존재는 33년 생애의 공들인 터전 위에서 생겨나야 할 것인데, 살인강도 민족 반역자로 몰린 오른편 강도가 예수가 낙원갈 때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실이 남아져 있는 연고로, 강도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후대의 인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다시 부활해서 베드로를 찾아와 가지고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구원 역사상, 낙원이 열린 역사상에 낙원에 맨 처음 간 사람이 누구냐? 예수를 따라간 살인 강도였다 이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인간이 배반하는 세상 위에 있어서의, 십자가 도상에서, 눈물짓고 피흘리는 그런 자리에서 같이 눈물흘리며 예수를 예수로 모시는 그러한 존재가 살인 강도의 몸과 입을 통하여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인간 대표한 역사의 터전 위에 낙원 점을 세워 놓을 수 있었고, 또 예수가 다시 와서 제자들을 끌어다가 낙원 가게 할 수 있는 길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실은 열두 사도들보다 이 살인 강도를 더…. 이게 됐냐 말이예요.
여기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다 알지요? 알지요? 여러분들 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요, 알지요? 내가 누구란 걸 알지요? 「예」 자기 자신을 알지요?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원리를 대해 보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죄인이예요? 여러분들은 어떠한 죄인이예요? 급살맞아 죽을, 천지 가운데에 용서할 수 없는 살인 강도 할아비들이예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은 참아버지를 잡아죽였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어디, 여기 이익 가리는 녀석들 대답하라구요.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간나 이 자식들이예요. 살인 강도는 용서를 받을 수 있고 특사를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를 잡아죽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천리가 용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아버지 잡아죽인 그러한 죄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살인 강도를 낙원에 들인 예수의 심정은 살인 강도가 아들딸보다 더 억울하고…. 자기와 같은 관계에 있는 아버지를 잡아죽인 것이 아니요, 종의 종을 잡아죽이고 사탄 새끼를 잡아죽였기 때문에 그건 죄인이라도 죄가 돌아설 수 있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살인 강도를 용서해 줌으로 말미암아 나를 침범해 오고, 나를 죽인 우리 아들딸도 용서하는 법도를 세울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에 다시 찾아와 베드로와 야고보를 수습한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아버지 죽인 살인 강도와 같은 여러분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는 어느 정도로 해야 되느냐?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무엇을 하여 용서받겠느뇨? 천지가 용서할 수 없는 이런 죄인인 연고로 목을 잘라도 갚을 도리 없고, 배를 찢어도 갚을 길 없고, 불에 살라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이예요. 억천만번 화형을 당해서 찢어 볶이고, 칼로 찢기어 그저 바위 위에 휘둘려져 천지에 뿌려져도 갚을 수 없는 살인 강도입니다. 아비를 죽인 죄인이예요. 아비를 죽였어요. 돈 받아 먹고 팔아먹었습니다. 로마 병정한테 팔아먹었어요.
선조들이 지은 죄가 후손들에게 머물러 있는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죄의 보응을 받은 그러한 후신자들이 돼 있는 것을 아는데 어느 정도까지 회개해야 하느냐? `하나님이여, 내가 이러한 죄인임을 알았사오니 이 죄를 용납받기 위해서 그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요구하였던 심정을 알았고, 천지에 아득하였던 이 사정을 알았는데 하늘을 향한 무리에게 복된 지상을 열어 주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죽음의 길인들 마다하겠습니까! 고통의 길인들 마다하겠습니까! 가도 가도 그 한을 풀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인 이 몸을 하늘 앞에 세울 수 있는 특사의 길이 있고, 속죄할 수 있는 영광의 터전이 있다니 이게 웬 말인가!' 하고 황공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이러한 무리인 연고로 때려잡아라, 고생을 시켜라 이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40평생을 두고, 하나님이 2천 년 수고하여, 예수와 성신이 2천 년 수고하여, 이러한 고생길을 걸어가야 했던 고난의 곡절을 알았기에 이걸 풀기 위해 내가 고생을 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죄중의 죄를 지은 이 무리들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내가 세운 하늘의 용서의 법도를 적용하여 이들 앞에 지긋지긋 고생을 시켜야겠다 이겁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고, 굶주림에 죽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얼어 죽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십자가에 죽는 게 아니라 오착(五鑿; 이(耳), 목(目), 구(口), 비(鼻), 심(心) 의 다섯구명)이 몽둥이 찜질을 당하여 찢겨 죽어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의 한을 내 일신으로 풀게 하시옵소서'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여야 맞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습니다. 내 뜻 대해서는 `노' 했사오니, 죽고 망하는 것을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한 말씀은 구원시키기 위한 말씀이지만,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이 중보자이오니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몸을 제물삼아 `아버지여, 아버지를 죽인 한을 이러한 천추의 역사적인 인간들이 전부 다 짊어지고 있사오니, 내 고생을 덜어 그저 거룩한 예수의 십자가의 조건과 같은 자리에 설 수는 없을지라도 눈물의 수고의 흔적을 대신하여 제 죽음의 피를 받아 주시옵소서' 할 줄 아는 이러한 사람이 돼도 구원 받을지 말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대가리를 젓고 그저 `아이고, 힘들어 힘든 일을 하지 말자, 가지 말자' 이러고 있다구요. 이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회개를 해야 돼요. 알겠나요? 알겠어요? 「예」
그런 십자가에 가신 아버님의 죽음길을 찾아, 그 동산에 찾아가 가지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던 그 땅을 붙들고 통곡해야 되겠고, 피흘린 십자가의 틀을 붙안고 몸부림치면서 그의 죽음의 원한을 해원하겠다, 역사를 들어 2천 년 연한이 짧다, 한 많은 심정으로 눈물 적시어 그가 용서해 주는 특권을 받고야 말겠다는 이러한 간곡한 마음을 갖고 가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도 안 가고 천국 가요? 예수믿으면 구원받아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아요. 엉터리 중에 그런 엉터리들이 세상에 꽉 차 있다구요. 이러한 불신의 무리들을 향하여 나는 분발하여 생애를 바쳐 투쟁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피를 받고 태어난, 통일의 피의 인연에 젖어 인연맺고 찾아온 여러분들은 죽은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동지섣달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그러한 도상에 있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그 몸뚱이가 피땀에 젖어 눈덩이를 녹일 수 있는 이상의 회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등골에서 땀이 흐르고 무릎의 가죽이 벗겨지도록, 매를 맞고 몰림받는 자리에서도 회개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가야 할 것이 아버지 죽인 죄인의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복귀의 길을 따라 나서는 우리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몸으로는 갈 수 없으니 무엇으로 탕감할 것인가? 예수님의 심정을 내가 붙들어야 됩니다. 심정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아담 해와의 심정을 붙들고, 역사적인 심정을 붙들고, 예수의 심정을 붙들고, `당신이 울고 싶었던 그 마음 자리에서 나는 울어 주겠습니다' 해야 되는 겁니다. 이거예요! 왜 심정을 가르쳐 주느냐 이거예요.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쫓겨 나와 감람산 뒷골목을 홀로 허덕이면서 소나무를 대해서 말했을 것이며, 풀을 붙들고 말했을 것입니다. `너는 내 사정을 알 것이나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과 잠들어 있는 예루살렘은 내 사정을 모른다'고 눈물지어 풀뿌리를 붙들고 우시던 예수의 사정 앞에, `그때의 마음세계 앞에 나는 동지가 되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여야 그 심정을 배우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논하는 심정의 문제가 어디에 비교 되느냐? 예수의 몸을 붙들고, `나는 예수가 눈물을 흘리기 전에 내 눈에서 먼저 눈물이 흘러 예수의 손을 적실 수 있는 심정의 동반자가 되겠다. 죽은 후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죽기 전에 그런 안타까운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가 십자가에 돌아가는 이런 고통 자리에 동참하여 죽음 후에 슬퍼하던 선조에 선행하는 슬픔의 자리에서 그 심정을 놓고 회개하고 나가겠다'는 그런 마음 바탕을 소유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하는 기도는 예수의 기도가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기도가 아니예요. 그걸 생각하면 통곡이 벌어져요. 통곡이 벌어진다구요. `울고 울어도 한이 없어서 원통합니다. 아버님, 우리 선조들이, 4천 년 수고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어찌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던고! 4천 년 동안 닦아 놓았던 유대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던고!' 하고 천년 만년 울어도 그칠 수 없는 원통한 한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책임지고 이 길을 닦아 나올 때, `저들은 예수를 위해 철야기도하는 그 친구의 자리에 못 섰고, 제자의 자리에 못 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역사적인 길을 선행하여 투쟁해 나오며 길을 닦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태어난 탄생의 기반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의 각오, 민족의 죄상을 염려하던 그 벅찬 심정의 고통, 미래에 이스라엘 민족이 환란 도상과 처참한 제물의 과정 하에서 탄식하면서 유리고객하여 예수를 죽인 죄로 처참한 학살의 무대를 향하여 무덤을 메워야 할 그 처참한 사정,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 예수 자신의 고통도 컸지만 역사적인 책임적인 고통이 더 했고 그 고통적인 사명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책임자는 예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를 부활시킨 것입니다. 다 마찬가지라구요.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피흘리는 역사적인 깊은 자리에 들어와 어디에서 만난 식구냐?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만난 식구냐? 통일교회의 스승은 어디에서 만난 스승이냐?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나니, 여러분들을 편한 자리에서 만난 식구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최고의 십자가의 혈전장에서, 못이 박히는 자리에서 '아무개야, 내 손길 네 손길 붙잡고 죽고 싶구나' 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의 못 박히기를 각오하고, 못박히는 그 도상에서 하늘의 특권적인 혜택을 얻어 해방을 받은 그 자리에서 만난 우리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의 `우리들' 이라는 것은, `식구'라는 그 명사는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십자가의 전통에서부터, 피가 흐르고 피눈물이 엮어지는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 주고도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고, 무엇 주고도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인연인 것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의 인연을 끊고라도 이 길을 가야 되고,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의 인연을 끊고라도 가야 되고, 천지가 반대하면 천지의 인연을 끊고라도 가야 됩니다. 죽어도 이 길 을 붙들고 죽어야 되고, 살아도 이것을 붙들고 살아야 하고, 이 한이 세계적인 한으로 맺혀 있으니 세계적인 한을 풀 때 이것을 붙들고 눈물을 짓고 가야 할 그런 걸음이 통일교회의 걸음이요, 통일교회의 스승이 가는 걸음인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이 길을 나오는 데에 있어서 스승은 친구가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통곡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지만 이 땅 위에 그런 입장에서의 누굴 붙들고 통곡해 본 친구와 동지는 없어요. 내가 목을 내어서 울고 싶은 때에 어느 누가 그런 사정을 한마디만 말하면 당장에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렇게 슬픔에 잠기어 태산 같은 고통을 품고 가는 스승임을 여러분들 잊지 말라구요.
여러분들을 남한 각지에 보내 놓았는데, 굶주리는 자리에 가라고 하는 스승이 어디 있으며, 자기 아들딸을 고난에 몰아넣을 그런 부모가 어디에 있겠느냐? 민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인류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지구장이 몰려올 적마다 `야, 이 자식들아! 너 지방에 돌아가면 식구들을 그저 고생을 시키고 죽을 자리로 내몰아라' 하는 거에요. 스승이라는 사람이 번번히 그래. 영원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그 누가 부정하여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로 갈라졌으니 십자가로 만나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로서 눈물을 지으면서, 가슴으로 눈물지으며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고생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먼 것이 아니예요. 3년 고비, 7년 과정을 넘어가야 돼요. 예수가 40당대에 세계적인 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40 고개를 넘기려고 했는데 33세에 죽어 성사를 못 하고 갔으니, 7년 공생애를 남기고 갔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환경에서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전세계 기독교요, 제2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 그때의 선민과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이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민주주의와 유대교 주의를 축소시킨 그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예요. 여기는 좌우가, 세계적인 정세가 부딪힌 곳이요, 온 세계의 문화가 결실하는 곳이요, 온 세계의 문명 기구가 전시된 전시장이예요. 그리고 종교도 불교로부터 유교, 기독교까지 전부 다 꽃피웠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무엇이냐?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나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리드하고 있는, 선진국가라고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식민지입니다, 식민지. 식민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어요. 유대 나라 때에 로마를 위주로 할 것이 세계적인 기반이 되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전세계를 중심하고 세계적인 기반 위에 있어서만 무르익은 자유의 환경이 다 끝을 바라보는 마당에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었던 한을 탕감복귀해야 하겠으니 시대상도 그와 같이 딱 들어맞아야 됩니다.
예수는 그때 민족 앞에 몰리고, 법 앞에 몰리고, 가정 앞에 몰려 할 수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시대적인 모든 것을 탕감하여야 할 운명에 서 있는 연고로 민족 앞에 몰려나고, 세계적인 유대교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교파한테 몰려나는 것입니다. 민족 앞에 몰리고 교파한테 몰려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갈보리산상에서 피흘리고 죽어갔지만 통일교회는 죽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것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나와 언론ㆍ출판ㆍ결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누구를 뭐로 믿는다고 목아지를 자르지 못한다구요.
예수의 한은 무엇이냐? 유대교를 자기의 장중(掌中)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 장중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세계를 장중에 넣지 못한 것이 한이요, 천지를 장중에 넣어 가지고 천지복귀 완성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결짓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복귀시대에 있어서 천주적인 이념을 품고, 새로운 뜻을 이 동상 위에 건설하여야 할 사명을 짊어진 무리가 통일교회의 무리인 것입니다. 이념은 천주복귀요, 출발은 십자가의 절정에서 출발하나니, 예수는 쫓김받는 사회적인 배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의 시련무대를 거쳐오면서 죽음의 자리에 나왔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2 이스라엘적인 모든 민족이 배반하고, 제2 이스라엘교,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있어서 유대교와 같은 기성교회들이 반대할지라도, 수많은 교파가 반대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은 이걸 제거해 버리고 다 오는 것입니다. 살아서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은 신약교회를 세운 거와 마찬가지의 역사와 기준을 오늘날 살아서 닦아 놓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로마와 같은 미국 연합정부에 통일교회라는 명칭을 가지고 승리의 팻말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렇지요? 「예」
전세계 기독교가 예수 당시의 유대교적인 사명을 하여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사명을 전세계 기독교가 못 하더라도 종교라는 그 명사를 가진 종교가…. 종교는 무엇이냐? 효자ㆍ효녀의 도리를 가르치는 곳 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무엇이냐? 충신 되는 도리를 해야 돼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예수가 참부모로 올 때 효자의 도리를 하여야 할 사명을 가르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사명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게 될 때에 그 백성들에게 충신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명입니다. 알겠나요? 「예」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치느냐? 효자, 효녀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유대교의 사명을 상속한 것입니다. 한민족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 책임을 못 했고 충신이 못 되었으니 충신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삼천만 민족을 통일교회 교인들이 수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교의 사상적인 기준에서 지배해 가지고 통치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기준을 중심삼아 이념적인 사상을 통하여 하늘 앞에 충신ㆍ열녀들을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세우고자 원하는 주권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선한 백성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선한 복지를 회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 건국 이념을 완결한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진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아들을 자는 알아듣고 모르는 자는 몰라도 괜찮아요. 머리가 부족해서 못 듣는거예요. 응큼한 것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겠다구요.
그러면 오늘날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예수는 개인적으로 몰리고,가정적으로 몰리고, 종족적으로 몰리고, 민족적으로 몰리고, 국가적으로 몰리고, 전영계적으로 몰려 죽었지만 오늘날 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개인적인 기준, 가정적인 기준, 종족적인 기준, 민족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의 결판을 지어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적 권내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야겠습니다.
예수의 한이 무엇이냐? 민족을 수습해 놓고, 교회를 수습해 놓고 거기에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되는데 그걸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다운 종이 있어야 되고, 참다운 양자가 있어야 되고, 참다운 직계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뭐냐?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 양자의역사, 참 아들딸의 역사로 올라가 그 기반을 닦아 놓고 종적인 역사로서 4천 년 동안 역사한 것을 당시에 있어서 4천 년 역사의 결실형인 종 중의 종이요, 종이요, 양자요, 아들딸이요, 충신으로 전부다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하나의 본연의 자리를 잡아 가지고 예수를 중심삼은 참부모의 자리에 등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의 종이 없고, 종이 없고 양자가 없고 아들딸이 없으니 별 수 있어요?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패망해서 충신이 없고 아들딸이 없으면 전부 다 원수들이 마음대로 모가지 잘라가지요? 그렇지요? 「예」 할 수 없어요. 안 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뭘하느냐? 창조의 목적은 뭐냐 하면 4위기대를 이루는 겁니다. 그렇지요? 4위기대 복귀지요? 「예」 하늘이 공인한 4위기대 복귀인데, 4위기대 복귀는 천상천하에 천천만 성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화해하는 자리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없는 자리에 섰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어떻게 했느냐? 종이 있어야 됩니다, 종이. 우리 통일교회의 시대로 보게 되면, 노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로부터 청소년시대로 내려오지요? 「예」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도 어떠한 아들딸을 찾느냐 하면, 맨 새끼 아들딸까지 찾는 것입니다, 새끼 아들딸까지. 하나님이 아들딸 찾는데, 큰 아들딸 그런 종새끼같은 아들딸 아니예요. 갓난아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 있는 아기를 중심삼은 아들딸까지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걸 설명하려면 또 한정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야 되겠어요. 이것은 원리에 없는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풀어 맞춰 놓은 새로운 원리 분야의 것을 얘기했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덮어 놓고 하는 건 아니예요. 맹목적은 아니예요.
선생님은 그걸 알려고 어떻게 했느냐? 하늘을 사랑하고,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예수는 자기 엄마 동생을 떠났습니다. 선생님이 예수가 가던 길을 재차 탕감복귀해야 되겠으니 자기 부모를 떠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그 놀음을 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기준, 개인적인 가정을 일으켜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이 벌어지는 이 가운데에는 종새끼도 있고, 종도 있고, 양자도 있고, 아들딸이 있는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횡적인 형으로 전개시켜 가지고 여기에서 택해 가지고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의 3년 기간은 어떤 기간이냐? 3년 기간은, 3수이므로 사탄 분별 기간인데 뭘하는 사탄 분별 기간이냐? 아들딸을 찾기 위한 사탄 분별 기간입니다. 알겠어요? 「예」 3수를 여기 지역장들 알아야 돼요. 4수는 무엇이냐 하면 만물을 복귀하고, 이 땅을 복귀하기 위한 사탄 분별 수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3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3년 동안 뭘하자는 것이냐? 말하자면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는 놀음입니다. 역사적인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직계 아들딸을 갖다 심어 놓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제2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제3 이스라엘의 조상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명이 그래요. 여러분들은 제2, 제3 이스라엘을 중심한 조상이 돼야 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전도 안 하면 안 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잃어버린 세 아들딸을 찾지 않으면 가정을 못 가져요. 가정을 못 가진다는 말이예요. 그건 철칙입니다. 예수님도 그것 때문에 죽었고, 선생님도 그것 때문에 40평생을 뜬 구름 생활을 했단 말이예요.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들을 중심삼고 제1차, 제2차, 제3차, 제4차에 거듭하는 이러한 성혼식을 중심삼고 이제는 세계적인 운세를 딱 몰아놓았습니다. 원수의 세계는 하늘이 자리잡으면 깨져 나갑니다.그렇지요? 깨져 나가지요? 선생님 1대에서는 세 가지 주의 국가 앞에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 한테, 공산주의 한테, 민주주의 한테 투쟁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3정권이 이동해 나옵니다. 자유당시대, 민주당 시대, 혁명 정부 시대…. 그거 다 설명하면 참 재미있는 일이 많다구요. 그걸 설명하면 여러분들에게는 쓸데없는 말이니까 그만두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이 이젠 박자가 맞아야 된단 말입니다. 종교적인 기준에 있어서 예수가 유대교를 수습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문제없이 수습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자리를 잡고 나오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시대착오가 나타납니다. 정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구요. 그건 전부 다 광야에서 죽을 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제 2세, 그 아들딸들은 움직여 온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솔솔이 패지요? 이것 보면 원리가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거짓말이 아니예요. 사실이예요, 이게.
내가 여러분들,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면 신이 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10대 청소년들이 세계의 사조를 망치고,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국가들과 모든 위정자들은 손을 들고, 큰일났다고 합니다. 막을 도리가 없어요. 인간 개조를 부르짖지만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방법을 모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세계를 망하는 함정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데에 청소년이 선봉에 섭니다. 이것에 대비하여 하늘의 청소년들은 그들보다도 더 강하고, 이념적인 기준과 논리적인 대화로 심정을 품고 성벽을 쌓고 밀어대며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성벽입니다. 알겠어요? 「예」 사탄세계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뜻을 품은 이 하늘 청소년들이 총칼을 들고 진군 하게 될 때에는 난데없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 전국의 깡패를 선생님이 소탕하려고 한다구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전부 다…. 그래서 전부 다 무장해 가지고 사탄세계를 무찌르는 데 있어서의 병사가 돼야 됩니다.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실력으로써….
보라구요.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하고 국민학교 안 다니는 아이들하고 싸우면 누가 승리하나요?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이예요」 아는 자가, 실력 있는 사람이 지배하는 것이 천칙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개인적으로 볼 때, 여러분도 대학 나온 사람하고 고등학교 나온 사람하고 누가 지배하나요? 누가 지배해요? 「대학교 나온 사람입니다」 그거 그런가요? 그래요? 「예」 정말이예요? 「예」 거기에 불평 없지요? 「예」 개인으로 보면 그렇다구요.
또, 가정 가정끼리에 있어서 실력 있는 가정과 실력이 없는 가정을 놓고 볼 때 누가 지배하나요? 실력이 없는 가정이 지배당하는 거예요. 억울해도 할 수 없어요. 억울해도 할 수 없단 말이예요. 또 민족 민족끼리 볼 때, 우세한 민족과 열세한 민족중에서 어느 민족이 지배하나요? 실력 있는 민족이 지배하지요? 「예」 대한민국하고 미국하고 놓고 볼 때 누가 지배하나요? 실력 있는 나라가 지배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러면 오늘날 세계를 보라구요. 세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무슨 돈이 있어요, 권세가 있어요, 지식이 있어요, 자랑할 문화가 있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자랑할 것이 있나니,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의 최고의 지식을 가져 하나님의 심정과 인류의 심정을 수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을 가질 때에 그 지식이 필요할 수 있는 문화세계가 오면 그 사람들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30억 인류 가운데에 그 사람만 실력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으면 그 분야에 있어서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의 주권을 논하는 것입니다. 심정의 주권을 논하는 입장에 있어서의 그 권세는 최고의 권세입니다. 심정을 통한 주권을 논하고, 심정을 통한 지식을 논하고, 심정을 통한 경제를 논의하는 사람이 최고인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돈이 없다고 낙망하지 말라구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나니, 새로운 시대에 신문화를 창조하는 데에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를 움직이고, 이것을 배양할 수 있는 여건들을 우리 한민족은 전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으로 보게 될 때에 누가 제일 실력이 있어요? 누가 제일 실력 있나요?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심정적인 교육을 빨리 받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적인 인격을 빨리빨리 만들어야 되겠다구요. 인격이 갖춰져야 출발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말씀으로 빨리빨리 무장하는 것, 이게 급선무라구요. 지금 지방을 보니까 사람이 없어 큰일났지요? 껍데기 쓴 사람도 많지요? 실력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실력이 없는 사람이 엄청나다구요. 그러니까 들이패서라도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천륜을 받들 줄 알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자 이거예요.
한국의 문화를 자랑할 것이 없고, 한국의 경제권을 자랑할 것이 없고, 한국의 주권을 자랑할 것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구요. 역사와 문화를 팔아먹고,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세계에 절대 필요하고, 최후에 남을 수 있는 문화와, 새로운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주권과, 새로운 문화 세계에 남을 수 있는 민족을 건설할 수 있는 이념을 가졌다 할진대는, 지금 현재의 국가 민족을 다 무시해 버려도 그 사람들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결론지읍시다. 나라가 망한들 민족이 망한들, 걱정하지 말라구요. 세상이 다 깨져 나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구요. 20세기 30세기에 필요할 수 있는 문화재의 여건을 구비한 민족이 되거든 그 민족은 한때에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결론이 나와요.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그걸 압니다.
통일의 이념은 지금 이때에 벌어지면…. 이는 필시 외적인 문화세계만이 아닙니다. 심정문화세계와 심정역사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화의 요건, 문화재로서 필수불가결한 이런 요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역사의 운명은 그 과정을 거쳐 어느 한 때 상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거늘, 그날에 있어서는 민족의 국경을 철폐해 버리고 주권을 망각해 가지고 민족성을 초월하여 그 문화재 앞에, 그 문화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엄숙히 자기를 지배해 달라고 꿇어 엎드릴 것입니다. 그러한 날이 불원간에 올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 고생해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원리 모르기 전에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걸 한했지요? 「예」 `아이구,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게 아닌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왜 여기 대한민국에 태어났어? 아이구, 배달의 민족?' 그랬지만 원리를 알고부터는 `한국이 좋구나'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한국이 좋아요? 「예」 누구 때문에? 첫째는 하나님이예요. 통일교회 교인이…. 입장에서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은 잘리고 잘려도 뼈다귀도 뛰어야 됩니다. 잘리고 잘려도 뼈다귀가 통통통 하고 뛰어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된다구요.
선생님도 옛날에 거지 같은 옷 입고 밥도 얻어 먹어 봤습니다. 여러분들은 복귀의 길을 가니까 선생님이 한대로 다 해야 됩니다. 기간이 너무 짧아요. 선생님은 40평생 하는데 여러분들은 이제 3년 하면 7년만 하면 됩니다. 그건 공식이예요. 6천 년 탕감복귀를 최소로 축소한 기간이 7년이예요. 이건 안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6천 년 수고했고, 예수와 성신은 4천 년 수고했고, 선생님은 40년 수고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40년 위에 7년 고비를 닦아 나가는 거예요. 이것을 청산해 넘어가자 이겁니다.
지금의 이 7년 기간은 선생님이 가는 7년 기간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복이지요. 그 기간은 한 번밖에 없다구요. 알겠어요, 왜 복이 있다는 걸? 「예」 선생님하고 같이 갈 때는 울기도 같이 울었으니 식구예요. 알겠어요? 「예」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고비를 지나고 다음 번에 들어오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전부 다 수습해서 이제 3년 길 또 가는 거예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갈 때는 그저 표주박 같은 물 바가지 하나 차게 해 가지고…. 여름에는 솜옷 입혀 쫓아내야 됩니다. 탕감복귀예요. 그래야 최고의 더움을 느낄 것 아녜요. 이게 역사적인 탕감이 되는 거예요. 또, 겨울에는 베옷을 입혀 쫓아내야 돼요. 그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고생을 빨리 해야 탕감이 되는 것이 역사예요. 하나 고생하는 것보다 열 고생을 하면 열 분야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들이죄기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는 갈 때마다 다들 급살맞아 죽지요, 다들. 죽고 살길이 없잖아요? 그렇지요? 천리법도가 그래요.
그때는 암만 수고해도 그까짓껏 선생님이 순회 다닐 필요 없습니다.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말이예요. 그럴 때가 불원간에 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래요. 이거 또 지쳐서, 3년 고비 끝났으니까 지금 허리띠를 풀어놓고 `아이구, 3년 다 되었으니….' 이러겠지만, 3년은 여러분들이 3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3년 동안에 아들딸이 종적인 선조들의 한을 풀고 지금까지의 시대적인 복귀의 천적 조건을 완결짓는 기간이예요. 4년 기간은 뭐냐? 이 민족을 중심삼아 민족 복귀의 사명을 하는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간 아들딸을 가르쳐 주는 통일교회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가 닦아야 할 세계적인 발판을 기준을 이 시대적인 동시성 기반 위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닦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 기성교회가 없어도 괜찮아요. 알겠나요? 「예」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돼요? 민족적인 사명을 해야지요? 민족적인 사명을 하는데 보라구요. 종적인, 역사적인 세계의 모든 것이 시대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한민족은 어떠한 민족이냐? 어떠한 민족이예요? 영적으로 보면 제1, 제2 이스라엘 민족의 혜택권내다 이거예요. 그냥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 유대교가 승리의 발판을 닦아 나오면 그 민족은 이스라엘권 내에 자동적으로 들어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외국의 잘 믿는 사람이나 한국의 안 믿는 사람이나 시대적으로 혜택을 같이 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니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때에 있어서 우리는 유대교에게 쫓김받던 예수의 한을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기준의 모든 것을 전부 다 탕감복귀하여 한을 벗어 버리고 이제는 민족 복귀의 투쟁 시기로 넘어갑니다. 알겠나요? 「예」 그래서 하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여기에 참석하면 충신이 될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알 자는 알고 말 자는 말고, 귀가 있는 자는 듣고, 눈이 있는 자는 보고, 마음이 있는 자는 깨달으려면 깨달으라구요.
종교를 세워서 투쟁하던 예수의 해원의 모든 조건을 제거해 버리고 민족적인 투쟁기반을 향하여 넘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 세계, 이 주권시대와 점점점 어깨를 겨누게 될 때가 왔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또, 이제 조금만 나가면 이 민족은 이념이 없으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을 거라구요. 이념이 없으면 안 된다구요. 무슨 민주당이니 공화당 가지고 안 됩니다. 이념이 없으면 안 된다구요.
인간 개조의 방법이 뭐냐? 이념입니다. 이념의 시대가 틀림없이 온단 말이예요. 그때에 필요불가결할 입장에 서려니 국가적인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제물을 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 다 뽑아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 천국 주권을 향해 나서게 될 때에는 애급 땅에서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야곱도 라반의 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예수도 복음을 중심삼고 70문도를 중심삼을 때 세계적인 대이동이 벌어졌지요? 「예」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도 대이동이 벌어집니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 하게 되면 이동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 국내에서 함경도에서 강원도로,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동했지만 앞으로는 동반구에서 서반구로 이동합니다. 이래 가지고 사탄세계의 문화의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혈통적인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근본적으로 전부 다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뭘 모르고 그러지만 안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령 받아 가지고 다 여기에 왔지요? 어젯밤에 왔지요? 「예」 추첨해 가지고 미국 사람이 한국에 오고,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고 전부 다…. 이래놓고 몇 개국의 기반을 딱 만들어 놓고, 지파 편성을 해서 세계복귀운동을 중심삼고 벌커덕 뒤집어서 다 꿰매 가지고 자루를 만들어 나가면 절반만 되면 다 넘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복귀역사를 해 나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통일교회의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교회를 위해서 집에서 그저 가지 말라고 때리고 그래도 교회에 밤에도 기어 왔지요? 도둑놈처럼 담도 타고 넘고 그렇게 나왔다구요. 교회 아니면 안 된다고 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죽어도 교회에 대가리를 파묻고 죽어야지요? 이제는 지나갔다구요. 이제는 발은 교회에 딛고 머리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나가야 합니다. 안 나가면 안 됩니다, 안 나가면. 생명을 각오하고 이제는 출동하는 거예요. `이 나라 이 민족이 이렇게 살아야만 민족을 구할 수 있다'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행동적인 모범을 보이고 실천적인 사실을 보여,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이 민족을 전부 다 아버지 앞에 몰아넣어야 됩니다. 그래 놓으면 이 민족도 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제1차 작전계획에 승리했으면 이제 제2차 투쟁이 있나니 이 투쟁은 민족을 위한 투쟁입니다. 민족을 위한 이 투쟁 가운데에서 승리하면 세계적인 투쟁 무대를 향해서 제1차 작전 계획, 제2차 작전 계획, 제3차 작전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여기에서 하늘을 중심삼아 새로운 천주의 횃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예」
그렇게 하여야 할 우리의 책임과 우리의 사명을 촉구하고 있는 하늘의 천적인 운세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였기 때문에…. 하늘은 바쁩니다. 내가 이 삼천리 반도를 빨리 돌아야 돼요. 그래서 선생님이 이번에 순회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석유불을 피우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이제는 석유불을….
제2 작전 승리자가 못 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의 민족적인 심판을 받아 하나의 그 민족적인 전통 앞에 있어서의 배반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당장 그렇게 심판받는다구요. 그렇지요? 그랬나요, 안 그랬나요? 「그렇습니다」 금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대한민국 주권을 중심삼아 정책을 세워 가지고 이 민주주의라는 우방국가에 있어서, 세계 사조의 민주주의 노선에 있어서 공헌을 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도움이 되어야지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한 책임이 있는 연고로 이 정책적인 이념을 우방국가가 `아, 그 이념! 거룩하고 숭고한 이념이니 그 이념을 가지고 있는 그 민족을 따라가고 싶고 접붙어서 합하고 싶다'고 해서 만민이 서로서로 머리를 숙여 들어올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1차, 2차, 3차의 고개를 넘어가야 비로소 이 사람은 역대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세계사 앞에, 앞으로 남아지는 새로운 운세 앞에 그 이름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운세에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지요? 새 고개를 넘어서야 돼요. 알겠나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지금 전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투쟁에 있어서의 승리의 기반을 놓고 전부 다 우리를 때려 죽이려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안 죽어요. 승리의 기반을 닦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적인 투쟁 시기의 제2차 작전 무대를 향하여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과거보다 더 힘드니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다는 사람 손들라구요. 내리라구요. 허리띠를 졸라매야 된다구요.
3년 기간에 내가 굶주렸으면 이제 4년 기간에는…. 내가 3년 기간 지나온 것이 한스러웠고 원망스러운 일이 많아요. 내가 어찌하여 남과 같이 충성을 못했고, 어찌하여 남 가는데 가지 못했으며, 어찌하여 남은 싸우는데 싸우지 못했던고! 내가 굶지 못한 것이 한이요, 내가 고생 못 한 것이 한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되었단 말입니다. 틀림없어요. 그 한을 남기면 안 되는 거예요.
이젠 민족적인 계획에 승리하는 무대에 있어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면 제1차 승리의 터전을 보충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민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는 제3차 작전을 하여 제3차 투쟁 무대로 넘어가야 됩니다. 전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의 통일의 이념이 세계적인 문화 세계에 공헌한다면 만민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기반을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세계적인 작전 계획에 있어서의 제 3차 승리를 거둬 나갈 수 있습니다. 알겠나요? 「예」
여기에서 통일의 무리들이 승리의 개가를 하늘 앞에 부르고, 비로소 천상천하의 승리의 영광을 전부 가지고 만민과 더불어 전부 아버지 앞에 드려야 됩니다. 잃어버렸던 걸 찾아서 전부 다 드려야 돼요. 다 드려야 돼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것이 아닙니다. 문선생 것이 아니예요. 전부 다 아버지 것으로 다 드려 가지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겠으면 주고 말겠으면 말고, 딴 사람에게 주겠으면 주고, 첫째 아들에게 주겠으면 주고, 네째 아들에게 주겠으면 주고, 딴 나라 사람에게 주겠으면 주고 당신 마음대로 하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해 놓고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려주는 것은 만방에 돌려 줘도 그건 내 것이요, 미국에 돌려 줘도 내 것이요, 일본에 돌려 줘도 내 것이예요. 국가 관념을 초월하고 하나님주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이 좋아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주는 것을 다시 받아 가지고 드려서 영생무궁토록 통일의 천국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나요? 「예!」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해볼래요? 「예!」 해보겠다는 사람, 손을 번쩍 들자구요. 이건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내리라구요.
이러한 사명과 책임이 있는 연고로 오신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해야 할것이냐? `채찍을 들고 들이팰 거다! 가다가 후퇴하는 녀석이 있으면 모가지를 자를 거다!' 하는 겁니다. 그놈 때문에 물들어 가지고 천 사람 만 사람 희생당하겠으니 그저 무자비하게 심판을 가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 목을 자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정없이 때려 모는 거예요. 여러분들 앞에 사정없이 복을 주면 한꺼번에 복을 주고 싶다구요. 주는 데는 눈물 흘리며 주고 싶고, 정성을 다해서 피땀을 흘리면서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얘기도 이렇게 하는 거예요, 빨리 주고 싶어서. 망하라는 의미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알겠나요? 「예」 망하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이것들 지금 3년째 와 가지고 지쳐 나자빠져 있는데, 이 지역장들 가만 보니까 다들 갈아치워야 되겠어요. 허리띠를 잡아매라구요. 선생님은 죽지 않았어요. 알겠나요? 「예」 선생님은 죽지 않았다구요.
미국에 있는 박중령(박보희)도 선생님이 전부 다 지휘해 가지고 행정부와 사회 단체에 구멍을 뚫어 가지고…. 여러분들은 움직이기만 하란 말이예요. 움직이면 내가 뭐 여러분들 죽이려고 명령하겠어요? 알겠어요? 「예」 또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십 년 동안 사탄 대해서 모진 싸움 해 가지고 꼼짝하지 못하게끔 전부 다…. 영계를 딱 선생님이 주먹 안에 넣고 지상에 와 가지고 통일하자는 거예요. 세계 기독교를 통일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영통하는 패들은 전부 다 선생님 부하입니다. 영계의 수백 수천억의 영인들은 문선생의 부하들이예요. 여기에 오게 되면, 여기 광주에 오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몰라보지만, 가기만 하면 전부 다 몰려옵니다. 문선생님 하면 다 알거든요? 지상에서는 욕먹고 돌아 다니지만 그런 날이 오는 거예요. 안 오면 내 손으로 만드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만 보면 쩔쩔매지요? 「예」 내가 쩔쩔매라고 언제 공갈 했어요? 공갈을 했어요?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그렇다구요. 나도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거예요. 내가 아버지 앞에 그런 것같이 여러분들도 선생님 앞에서 그래야 된다구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무한히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진짜 해가지고…. 보라구요. 어려운 자리에서 사랑을 했다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꼬불꼬불 꼬불꼬불 꼬불꼬불 몇천 년째 꼬불꼬불 꼬불꼬불 꼬불꼬불…. 네 맘에도 내 맘에도 전부 다 꼬불꼬불이예요? 꼬불꼬불하게 고생길을 체휼해 가지고는 사람들도 못 따라가게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 사탄이 못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어도 좋다 하는 자리, 하늘이 버린 자리, 피눈물을 흘리는 자리에, 자기의 위신과 채신을 깨부수는 자리에 가야 됩니다. 사탄이 그 자리에 그 사람과 동등한 자리에 내려가게 되면 사탄 세계는 뻥 깨져요. 사탄이 영영 침해하지 못할 데에 가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고 죽는 자리에서 승리해서 거기에서 인을 맞고 하늘이 세워 주는 날에는 사탄이가 그 자리에 와서 침해를 못 합니다. 다시는 빼앗아 가지 못해요.
이렇게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승리의 왕자들을 만들려니 내가 고생길로 내모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게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 가지고 얻은 결론입니다. 문선생이 지금 가지고 있는 특권이라는 것은 영통하는 사람들 누구도 천지는 다 주름잡는 사람이라도 못 따라옵니다. 사탄도 못 따라와요. 그거라구요. 그저 무지하게 그저 무정하게 해 가지고 가 가지고 알고 보니 결론이 그거예요. 누구다 못 빼앗아 갈 완전무결한 승리의 결정권을 영원토록 주기 위해서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고생시키는 겁니다. 그런 인연의 때를 맞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 그저 눈물 흘리면서…. 죽지는 말라구요. 죽지 말라구요. 그러니 30살 이내의 사람들은 통일교회에는 전부 다 30이내의 사람들이 들어와요. 30이내는 그저 석 달 넉 달 굶어도 그저 두 주일만 꼴까닥 꼴까닥 곰탕, 무슨 탕, 천지 쌍화탕 뭐 이런 거 먹어대면 훌떡 그대로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지는 말라구요. 그 대신 위신과 체면을 세워 가지고 밤이고 낮이고 활동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시간이 있으면 배우고….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무슨 일을 하는 종교냐? 배우는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는 종교냐?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종교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는 종교냐? 세계 만민의 복지를 건설하는 종교입니다. 이런 책임을 짊어지고 종교적인 승리의 기반, 국가적인 승리의 기반,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규합해 가지고 선생님이 지쳐 나가 자빠지기 전까지는 따라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오는, 남아있는 여러분들은 복종해 가지고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듣고 움직여야 할 책임이 있으니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 너는 이제부터 전라남도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몰라구. 「예」 이래 가지고 4년 더 눈 꼭 감고 가야 된다구요. `선생님이 3년 가라고 하더니 알고 보니 그랬구나. 영적으로 그렇게 승리했구나. 그다음에는 이 4년을 가라고 했으니….' 하면서 가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이제는 우리가 조금더 가면 공산당하고 싸워야 됩니다. 공산당하고 싸워야 돼요. 박정희 장군에게도 한번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할 거라구요. 하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을 수습하는 것보다도 유엔 총회로부터의 남북 협상을 하여서 남북자유선거 때가 오게 될 때 `너 어떻게 할 테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걸 대비하자는 거예요. 목적이 그거예요.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저 대전 형무소에 빨갱이들이 많은데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 가지고 공산당 주모자들을 전부 녹여 가지고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이제 통일교회 대 공산당과 문화교류를 하자 이거예요. 공산당들은 통일교회 교인들한테 와서 공산당원 만드는 교육시키고…. 여러분들 공산당원 될래요? (웃음) 그들은 여러분들을 공산당원으로 만들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공산당원을 통일교회 교인으로 만드는 내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좋다고 입을 벌리고 `그러자'할 것입니다. (웃음) 1차 하고, 2차 하고, 3차 해서 `아이구, 안 하겠소' 하여 후퇴하는 날에는 민주진영의, 민주주의의 상투끝은 내가 잡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사상의 결핍과 이념의 결핍에 허덕이는 민주주의예요. `볼 것이 없어요.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졌다. 두 손 들었다' 이렇게 선전해 가지고 우려 먹는 거예요. 그리고 `너희들은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얼마나 피땀 흘렸느냐? 너희들은 노동자 농민을 부려먹기 일수이고, 착취하기 일쑤고, 죽이기 일쑤였는데….' 하는 겁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교인들은 피를 팔아서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먹여야 된다 이거예요, 죽음이 여러분들을 위협하더라도. 그래 배우지 못한 사람은 울면서라도 재료를 수집해야 돼요. 선전 재료가 있어야지요? 그렇지요? 「예」
통일교회 가정은 대학을 나온 학사님이나 대학원 나온 석사님이나 전부 다 냉방에서 자기 일쑤요, 밥 굶기 일쑤요, 일주일쯤은 문제가 없게끔 왕래하기 일쑤예요. 정 여러분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선생님이 일주일 금식 명령을 하려고 해요. 못 하는 녀석들은 전부 다 제2차로 수습해 가지고 다시 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 하고 있다구요. 먹는 것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아요. 없는 가운데에서 우리의 피를 팔아 가지고 우리가 발전했지요? 이제는 피를 팔다 못해 뼈다귀를 팔아서라도 우리는 할 일을 해야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선전을 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거 알아요?
축복받은 가정들은 선생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 교인들, 연보 많이 해서 줘라, 줘라! 이러지 않아요. '선두에 나서서 죽어라, 죽어라!' 이러는 거예요. 누굴 위해서냐? 그들보다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래 지금 일선에 내세워 놓았으니 고생을 잘 할 거라구요. 밥 굶기가 일쑤입니다.
보라구요. 20세기 30세기의 제일의 고등 요리가 무엇이냐? 냉차예요, 냉차. 냉차가 무슨 냉차인 줄 알아요? 거기에는 뭐 가짜가 없는 순냉차예요, 순냉차. 그게 뭔지 알아요? 오뉴월에 아주 제일 저렴한 돈으로 벌커덕 벌커덕 마시는 냉차예요. 물 한 그릇만 있으면 잔치도 하고 저녁도 먹고 아침도 먹거든요?
내가 이 축복받은 가정들을 위해서 얘기 한마디 하겠어요. 오늘 시간 있으면 여러분들을 만나 가지고 그저 움직이지 않는 간나들 있으면 말이예요, 기합을 주고 두드려 패고 가려고 했는데 그런 시간이 어디 있어야지요. 밥 먹기도 바쁘다구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제 가면 별수 있나요? 가면 뭐 어디 조그마한 냉방에서 자는 사람도 있을 거고 별의별 사람 다 있을 것입니다. 처량하지. '아이고─ 저랬다가는….' 하며, 축복 받기 전에 열두 번도 더 도망 뺄 수 있는 정상이라구요
그렇다고 여러분들 낙심하지 말라구요. 지금까지 사탄세계까지 녹여 먹는 선생님이니 어느 분야 같은 걸 들썩이려면 잘 해요. 선생님이 그런 놀음 하려고 마음 먹고 수많은 통일교인 가운데에 선생님이 특별히 명령하면 무슨 짓이든 해 가지고 돈을 벌어 오게 할 수 있어요. 뭐 선생님이 필요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재간이 있다구요. 그렇지만 돈에 팔려서야….
여러분들을 알차게 만들어 가지고 돈이 얼마니 필요한가 하는 그 가치를 알게끔 만들어 가지고 돈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 부처끼리 지방에 나갔으니 떡 집안에 들어오면, 남편도 어디 나갔다가 여자도 어디 나갔다가, 며칠 있다가 집에 들어와 보니 먹을 게 있나요? 혼자 들어와 가지고 먹을 게 있나 이거예요. 여편네가 있다면 밥이라도 달라고 할 수 있지만 여편네도 나갔으니 찬 방에서 침이나 삼키지요. 별거 있어요? 애들이라면 손가락이라도 빨 수 있지만 체면이 있으니 손가락을 빨 수 있나요? 할 수 없으니까…. 거 잘 한다 말이예요. 그럴 때 멋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놀음을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모시고 한번 해보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오시는 참부모 앞에서 이런 일을 하면 얼마나 복이 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리고 여편네끼리 떡 어떤 때는 함께 만날거예요. 요 여자들은 앵앵앵앵 땅강아지 같은 성격이 많아요, 여자들은. 앵앵앵앵앵앵, 남편만 얻으면 그저 풍습적인, 습관적인 관념이 고착 돼 가지고 `남편은 벌어 먹여야 되는 것. 나는 그저 사랑만 받고 있어야 되는 것' 이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런 것들은 간나예요. 그렇다고 전부를 얘기하는 건 아니예요. 처음 온 사람은 오해하지 말라구요.
우리 아가씨들, 우리 색씨님들은 말이예요, 좀 다정스럽게 말 좀하자구요. 임자네들을 내가 축복해 주기 위해 수고했지요? 내가 가면 말이예요, 여러분들 닭은 한 마리씩 잡아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닭 한 마리씩 잡아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남자는 누구의 분신이라고 그랬나요? 아버지의 분신이요 선생님의 분신이라고 했으니 남자를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아, 우리 선생님이 남자인데 나를 약혼시켜 주고 결혼시켜 주셨으니 오늘 저녁에 찾아오시면 닭을 한 마리 대접해야 할 텐데, 아 선생님의 동생 같은 분이 찾아왔으니 닭을 한 마리 대접해야겠구나' 해서 말이지요, 닭이 없으면 닭발이라도 하나 사다가 대접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없거든 뭘 할것이냐? 정성으로서 사 온 닭, 그걸 생각하는 거예요.
떡 남편이 들어오게 되면 먹을 게 없지요, 아내가 없지요, 그러니 신세가 될 대로 다 된 거라구요. 거기서 짜증을 내고 원망하려면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하나는 동으로 하나는 서로 갈라져요. 그러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녁 때 남편이 들어오면 굶주려 가지고 `저녁을 했나?'. `먹을 것 있나 없나' 물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럴 때 `다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고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가 돌아다니면 일하다 보면 가슴 아픈 일도 있고 분한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어 가지고 뚱해 가지고 들어오는 남편에 대해서 또 뚱 해서 같이 그러면 망하지, 별수 있어요? 못 가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구요.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아, 오늘은 기분이 나쁜 모양이구나' 해서 척 그때는 앞치마를 슬쩍 두루고 쓱….
뭐 일주일씩 금식 기도 하지 않았어요? 일주일씩 금식하면서 다녔지요? 다 그런 놀음시키려고 선생님이 훈련시킨 것입니다. 달리 한 게 아니란 말이예요. 다 써 먹을 그런 때가 있기 때문에 그거 다 그렇게 훈련시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법을 적용해 가지고 치마를 척 올리고 촌색씨처럼 해 가지고 싹…. 아주 상도 닦게 될 때에는 하얀 행주로 빡빡 문질러 구미가 바짝 돌게 해 놓아 가지고 신문지라도 한 장 놓고 떡 밥그릇을 놓는 거예요. 거기에 술술 흘러 넘어가는 냉차를 한 두어 그릇 딱 차리는 거예요. 공손히 쓰윽 해 가지고 속으로는 웃으면서 반웃음을 하면서 갖다 주는 거예요. `자, 드십시다' 하면서 갖다 놓으라구요.
그러면 남편이 `오늘은 이거 뭣이 있을꼬?' 해 가지고 앉아 가지고 `틀림없이 이 밥에다 소고기 반찬을 잘 해줄 거라, 정성껏' 이렇게 생각하고 쓰윽 재껴 볼 것입니다. 그때 `이게 뭐야?' 하는 그런 남자라면 말이예요,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그런 남자하고는 살지 말라구요. 절대 살지 말라구요, 그런 남편하고는. 내가 그 남자보다 더 훌륭한 남자를 얻어 줄께요. 그렇다고 남자들 화내지 말라구요. 그런 남자 있으면 또 가슴 철렁해 가지고…. (웃음)
여자가 그만한 배짱이 있으면 `야! 그야말로 이상 상대로구나. 굶는 자리에서 물 한 컵 놓고 위로해 주고 그 마음을 살 수 있는 그런 아낙네로구나! '그렇지. 더 사랑스럽구나' 하면서 쳐다보고 물 한 그릇도 감사하다고 할 거라구요. `거룩한 아버지께서 보면 순진순진해도 이게 얼마나 순진하겠소? 설탕도 안 넣은 순수한 것인데, 우리 한 그릇 먹읍시다' 하고 손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아버지의 사정이구나, 이렇게 알고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비참한 자리에서 죽어간 수많은 인류가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이것도 고맙고 감사합니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일 예수님 앞에 십자가를 지기 전날 그러한 신부가 있었던들, 가시는 주님 앞에 그런 정성으로서 고이 가 달라고 하면서 낙망하지 말고 굳세게 가 달라는 말을 해준 아낙네가 있었다면 예수는 불행한 예수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이, 그런 아낙네들이 돼 있어야 된다구요. 눈물흘리면서 그 가운데서 결합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돼 가지고 `자, 갑시다! 이와 같이 살고, 이와 같이 배척받고, 이와 같이 분하게 하늘의 축복받은 무리들이 천대받는 것은 이 한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승리의 한날을 위함이니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되겠고, 승리적 결정점까지 우리는 갑시다' 하면서 서로가 권고해 가지고 다시 분발할 수 있는 이런 재료로 사용하여 가지고 살림할 수 있는 이런 가정이 부부가 바로, 이상상대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축복받은 사람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 알겠어요? 「예」
배고픈 것, 배고픔은 내가 잘 압니다. 선생님은 배고파 본 경험을 얼마든지 갖고 있어요. 30평생 배고프지 않아 본 날이 없고 울어 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집에 밥이 없어서요? 전도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올 수 있는데, 뭐. 그런 돈도 있단 말이예요. 책임을 못 한다 할 때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면 밥이 참소합니다. `네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이런 큰 사명을 해야 될 텐데…. 나는 그런 사명을 하는 사람에게 들어가고 싶어' 하고 밥이 호소한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울면서 `먹고 또 나가 일해야 되겠으니 어떡 하겠노?' 하면서 빌고 먹는 거예요, 빌고 먹는 거라구요. 그래야 된다구요. 밥이 무서운 거예요, 밥이 무서운 거라구요. 책임 못 해 가지고는 밥 먹기도 무서워요. 여러분을 지금 다 내보내서 삼천리 반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리고 고생한다는 걸 생각할 때 내가…. 본부의 선생님은 그래요. 내가 침대에서 잔다고 하지만 침대를 내가 원치 않아요. 어제는 이밥 말고 보리밥 해 달라고 야단했다구요. 거 자기들이 알겠지만, 그런 것은 참소받는다고 자꾸 그러지요. 해주는 것도 나는 부끄럽게 안다구요. 그걸 원치 않는다구요. 그렇지만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여러분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을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절대 빚지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 적마다 내가 감옥살이 할 때에 보리밥을 먹고, 밀밥을 먹고, 모밀밥을 먹었던 것을…. 여러분들 모밀밥 먹어 봤어요, 모밀밥? 모밀 껍데기 3분의 1되는 이런 밥을 먹던 그때를 생각한다구요. 그때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하소연하던 소원의 목적지가 지금 이 아침에 상 받아 먹는 이 자리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지금까지 지내왔어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여러분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 고생을 해 가지고 원망을 하는 것은 잘못 됐어요. 원망을 못 하게 돼 있어요. 암만 고생을 해도 원망을 못 하게 돼 있다구요. 왜?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위하고 여러분들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빌어 주기 위해서 지금도 애쓰고 있기 때문에, 천심을 따라가는 양심이 원망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그건 벌 받아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그런 부처들이 돼서 나가야겠습니다. 알겠나요? 「예」
선생님은 그런 것을 원합니다, 선생님은. 김삿갓처럼 부처끼리 떡 지팡이 들고 왜 못 다녀요? 그런 것이 필요하다구요. 그게 오래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예요. 남은 기간을 여러분에게 맡기니 조금만 참고 멋지게, 힘차게, 굳세게 잘 싸워서 승리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아까 맨 처음부터 얘기한 것이 뭐냐? 이렇게 쭈─욱 얘기한 것이 뭐냐? 하나의 우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오던 그 길에 있어서, 전후 좌우 지금까지의 과거보다 현실에 있어서, 이념적인 크나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갈 수 있으면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일이 바쁘고 이러니까 선생님이 할 수 없이 여러분들에게 지긋지긋한 명령을 해서고 생시켜 가지고 승리의 월계관을 맡기는 것입니다. 영원히 승리를 하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알겠나요? 「예!」 그런 사람이 돼 달라는 말이예요. 「예!」
내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었어요. 일본 식구들이 와 가지고 그저 선생님을 데려가려고 합니다. 미국 식구들이 또 선생님 오라고 야단이예요. 선생님이 뭐 필요해요, 선생님이? 자기네들보다 뭐 밥을 더 먹나요, 뭐 내가 코가 하나 더 있나요? 뭐, 뭐, 뭐가 필요해요? 딴 거 아니예요. 마음 세계에 있어서의 빚을 지고 있고, 마음 세계에서 그 물가에 가서 자기가 목욕도 하고 싶고, 그 물가에서 때도 씻고 싶으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이놈들! 너희들 좋으라고 그러지, 날 좋으라고 해?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럴 때가 틀림없이 올 테니까 그렇게 알고 4년간 싸워야 되겠습니다. 「예」 너도! 「예」 싸울래? 싸울래, 안 싸울래? 금년, 명년, 1년에는 여기에 몇 만 명 늘어나야 돼요. 명년까지는 선생님에게 계획이 있어요. 여기 아마 명년까지는 그저 냅다 몰아서 3만 명 이상 해야 될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무슨 노력을 해서라도 총 전도하러 나가야 된다구요, 밤잠을 자지 말고.
그다음에 내 소원이 말이예요, 통행금지 철폐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지요, 통일교회 선생님이나 지부장이나 지역장들은 말이지요, 통행금지라도 무사통과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겠어요?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이 전라도에 와서 좀 살아야겠어요, 전라남도에서. 전라남도에 와서 살까요? 눈깔이 둥그래지는구만. `아이구, 선생님이 와 살면 살림을 누가 다 해주고?' 할 지 모르지만 여러분 신세 안 질께요. (웃음) 이제 물어보면 그저 `예!' 할 거라. 와서 살까요? 「예」 (웃음) 와서 살긴 살라는데 살자고 하면 큰일날까봐 그렇게 못 한다구요. 여기에 와서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또,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말이예요, 내가 걱정이 안된다구요. 지금도 통일교회 문선생 온다고 삐라 붙이면 기성교회 교인들은 구경삼아 `왔나 보자' 하고 올 것입니다. 한판 들이죄기면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그저 넋 놓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많은 사람이 동원될 걸 알고 있단 말이예요. 거 그 사람들을 때려 잡으려면 뭐, 물어 볼 거 없어요. 그런 건 선생님에게 수완이 있어요. 어디 할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보여요? 「예」 어디 능력이 있어 보여요? 「예」 삶으면 된다 말이예요.
이젠 본부에서 선생님이 계획하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도 하고 전부 울타리를…. 이젠 그거 문제 없다구요. 선생님은 어려운 가운데에 그걸 만들 거예요. 피땀을 흘리면서 하는 그게 필요한 거예요. 이래 놓고 선전은 나중에 퍼뜨려요. 사탄세계는 하기 전에 선전하지요? 우린 열만큼 해 놓고 다섯, 여섯만큼 선전하는 거예요. 그거 잘 모르지요? 우린 뭐 국제적인,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이제…. 지금은 미국에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아주 포위하려고 하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힘차게 가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그러면 갈거예요? 「예」 같이 해보자구요. 가―자.
그러면 이젠 내가 없어도 가는 거예요? 「예!」 선생님이 있건 없건 여러분들은 가는 거예요? 「예!」 가서 승리하는 거예요? 「예!」 참 다들 용합니다. 부탁합니다. 「예」 윤보선, 박정희도 선거유세 때 얘기 다 하고는 `부탁합니다' 했지요? 「예」 (웃음) 선생님은 다르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잘되기를 부탁하는 거예요. 나 표 찍어 주고 말 조금 잘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예요. 여러분 잘되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해할까봐 이런 말 하니 이해하라구요.
그럼 이제 선생님 들어갈까요? 「예」 그럼 아무거나 노래 하나 하자구요.「예」 (전체 애향가 부름)
힘이 나요? 힘이 나요? 「예」 그와 같은 힘으로 앞으로는 뛰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달려 나가야 되겠다구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 전라남도에서는 날 해방시켜 달라구요. 해방시켜 주겠어요? 「예」 해방시켜 줄래요? 「예」 이젠 다시는 안 와도 돼요, 전라도에.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해방시켜 줬는데 뭘 또 오라고 그래요. (웃음)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다시는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이제는 마지막이예요. 이제는 날아가야 될 것 같아요. 날라가야 될 것 같아요. 지금 그럴 때가 왔다구요. 해방시켜 줬으니 뭐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그럼 또 오라구요? 「예」 또, 도망가겠다는 거구만요. 내가 안 와도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책임은 지는데 나는 구경하러 올께요. 「예」 여러분들에게 맡겨요? 「예」
선생님이 한마디만 할께요. 내가 맨 처음에 부산에 내려올 때 피난민으로서 피난 보따리를 지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평양서부터 걸어 나왔습니다. 함흥서부터 걸어 나오는 데에 한 오십 칠 일이 걸렸어요. 이래 가지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면서 다니는데 말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하늘은 참 잘 알더라구요. 배가 고프고 정 지치게 된다면 쓰윽 벌써 알거든요? `아무날, 내일 모레쯤 닭이 생길 것이다' 생각하게 되면 어느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오셨습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래 `누구세요? 난 모르는데요' 하면 `아닌 게 아니라 간밤에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닭 잡고 떡 해 놓으라고 해서 떡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물으니 `보기에 초라한 행인으로 온다 했는데 보니까 선생님의 얼굴과 흡사하다'하는 거예요. 그거 믿어져요? 믿어져요, 여러분들? 「예」 그래 가지고 떡도 얻어먹고, 닭도 얻어먹고 그런 일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선생님인데 피난 나와 가지고는 말이예요…. 여러분들 지금 당장에 전도 나가는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복귀역사니 할 수 없어요. 선생님이 피난 가는데, 아, 부산에 오니까 사람 사태가 났거든요. 어디가서 은신할 데가 없었어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할 때 사관(舍館)이 있을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할 수 없이 마구간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들어갈 곳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선생님도 뭐 밤에는 부둣가에서 자고 산속에서도 잤어요. 재미있어요. 한국 군인 오바를 척 깔고 잘 때는 말이예요, 그때는 2월 초라서 추웠거든요? 추웠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 밤에는 나가서 돈벌이하고 낮에는 열 시부터 두 시까지 자는 거예요. 그때는 양지쪽에 가서 가만히 앉아 가지고 꿩새끼처럼 딱 자리잡고 들어가 자면 좋아요. 떡 자고 일어나서 옷을 척 입었을 때에는 김삿갓 노래가 생각나는 거예요. `석양 지는 산마루 위에 잠을 자는 문서방' 이렇게 (노래를 부르심) 한때지만 입맞추어 가지고 부르는 것도 좋아요.
그래 가지고 떡 돈이 생겨, 죽을 먹고 싶으면 나갑니다. 부둣가의 아주머니들이 말이예요, 식을세라 보자기를 덮어 가지고 그저 자기 귀동자 외아들 품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하게 한다구요. 쓰윽 앉아 가지고…. 또, 그때엔 그 사람들이 친구예요. 아주머니들이 죽을 쑤어 오면 얘기를 들어 보는 거예요. `어디서 왔어요?' 하면 `피난민들 사정들 다 같은 사정들인데요, 뭐. 어디서 오나 뭐 말씨 들어 보면 어디서 왔는지 아실 텐데요, 뭐' 이러고, '영감님 계세요?' 하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발판을 닦았기 때문에 큰소리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이 꿈같은 얘기를 하던 것이 이젠 현실적으로 다 들어맞게 돼 있고, 세계 복귀의 탕감조건이라는 명사도 지금 다 현실적으로 여러분들이 알 수 있으리만큼, 머리 가진 사람은 알 수 있을이만큼 돼 있단 말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만큼 만들어 놓은것을 보고 못 믿겠다는 것들은 벼락을 맞아 즉살 박살 그저 망해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들은 다 와야 걱정이예요. 내가 뒷처리하기 바쁘다구요.
그러니까 그런 신세를 안 지고 자기 혼자 자립적인 일을 해야 돼요. 자립 자득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내들만…. 옛날에는, 아무리 남 보기에 무섭더라도 한 방에 앉아 가지고 얘기하게 되면 전부 다 자신을 가져 가지고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이 나왔다구요. 부두 노동을 하고 구루마를 끄는 한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대산이라도 치면 깨진다 이겁니다. 하늘 공중의 명의 잡아채면 그 별이라도 떨어진다는 기백을 가지고 쓸어대고 밀어대고 한다면 별수 있나 말이예요. 이제 몇 해만 두고 보라구요.
이북 사람들이 피난 온 지 지금 한 몇 해 되었나요? 한 십 년 되었나요? 십 년 조금 넘지요? 전부 다 피난 올 땐 괴나리봇짐 지고 왔던 사람들이 한 십 년 되니까 경제권을 전부 다 쥐어서 보따리가 바꿔졌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이 전라도가 그래요? 이놈들, 전라도 놈들 왜 그렇게 되었어? 우리는 이렇게 된다구요. 몇해만 보자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다 자신 있어요? 「예」
돈버는 일에 선생님이 지향하게 되면 돈은 문제없습니다. 지금 때는 돈이 필요 없어요, 돈이. 돈이 필요 없단 말이예요. 왜? 참사람, 진짜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예요. 돈 놓고 하면 도둑놈들이 많이 온다구요. 그렇지요? 사기꾼들이 많다구요. 그러니 여러분의 피를 빼라! 땀을 흘려라! 눈물을 짜라 이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사람을,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모아야 돼요. 내가 여러분들을 이제 건달꾼들을 잡아다가 기합 주는 스승들을 다 만들어야겠다구요. 그러니까 잘 훈련받고 잘 싸워 가지고 그 제자들이 자꾸 나타나야 된다구요. 그렇잖아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욕을 해도…. 그저 무슨 욕을 해도 눈이 없나요, 입이 없나요? 왜 가만히 있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온 실적이 다 누구를 위한 거예요? 자기만이 아니라 전부를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어떻게 터치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뭐 강제가 아니예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자기가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자리에서 책임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는 자리에서 권고하게 될 때에는 누가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다 하고 하지요. 전부 다 내가 하고 하지요. 지금부터 하라는 것도 뭐 여러분들만 해요? 내가 다 하고…. 내가 다 했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지금 처량하라고 해서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오래지 않은 기간 내에 이런 기반을 닦은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자유천지가 되는 거예요. 급속한 시일내에 삼천만에, 살고 있는 삼천리 동산이, 여러분이 큰 장대를 휘둘러도 거침이 없을 활동무대가 될 것이 뻔한 겁니다. 그러니 단단히 결심하고 자숙하기를 부탁합니다. 「예」 축복받은 여러분들….
아홉 시까지 얘기했기 때문에 이제는 전라도에 와서 얘기할 것은 더 할 수…. 있긴 있지만 더 안 해도 괜찮지요? 또, 들어갔다가 나와요? 「예」 뭘 주려고 나오라고 해요. 이젠 나 좀 줘야지요. 뭘 줄래요? 뭘 주겠느냐 말이예요. 「정성을 들이겠습니다」 *
<말씀 요지> 지금까지 통일교회 역사를 회고해 보면 수많은 곡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의의 있는 자아를 찾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역사의 한 분자로서 인간은 누구나 그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쳐 주고 싶은 마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귀하게 생각할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는 것은 내적인 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극적인 충격의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때는 주위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각오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심이나 각오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시련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길이 과연 가야 할 길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같이 지닌 가치가 크면 클수록 그에 대한 반응이 큰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이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적인 모든 환난을 내 한 몸으로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 무리를 지도하는 분은 그들이 그 길을 잘 갈 수 있고 시련을 이길 수 있게 훈련도 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혼자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뒤에서 누가 밀어 주었으면 하고 원합니다. 누구나 그러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고, 또 그런 지도자가 자기의 부모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위치를 알고 부모 형제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심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대한민국의 시련과 절망을 주관할 수 있고, 세계의 시련과 절망을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의 감성이 자기의 것으로 느껴져야 비로소 식구가 됩니다.
마음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 많이 행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하나님을 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피조세계 전체를 자기 것으로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바쁩니다.
주권보다 인권의 평등을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주의는 천주주의(天宙主義)요 하나님주의입니다. 나와 하나님이 합한 주의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하나님을 떼어버린 주의이며, 공산주의는 물질과 인간만을 위주한 주의입니다. 그러나 천주주의는 인간과 하나님을 합한 주의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하나님을 위주한 주권의 세계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늘을 가장 사랑하고, 세계 인류가 추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마음과 몸을 완성하면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자신의 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몸 때문에 못 움직입니다.
마음은 하나님 지체요 몸은 참부모의 지체입니다. 전쟁은 마음과 몸의 싸움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천지의 싸움입니다.
부모, 부부, 자녀의 사랑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위하여는 어떠한 주의나 사상도 희생해야 하며, 세계를 위하여는 국가도 희생해야 합니다. 인간을 중심한 세계와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가 부딪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중심한 싸움이 한번 일어나야 합니다.
부자일신(夫子一身)이 되어야 부부일신(夫婦一身)이 되고 부부일신이 되어야 부자일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주주의를 품고 나가는데, 10년에 이룰 것을 1년에 이루려면 10배의 시련이 있게 됩니다.
지도자는 부하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 주고 싶어해야 하지만 만일 그가 위급할 때는 비참한 길로 몰아서라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민족을 떠나 40일 기도를 했을 것인가! 모세는 그들 앞에 폭풍우가 불어 닥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걸어오는 식구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을 내몰아서라도 하루바삐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옛날에 죄인으로 형무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창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호소하던 선조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망할 것입니다.
승리는 눈물과 피땀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효자 못지않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은 선을 지향하는 사람의 보호자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할 때마다 하늘은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 민족이 세계를 위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로이 기도하던 예수님의 그 기도가 역사를 두고 이루어져 나올 것을 누가 알았던가! 그의 눈물과 피가 없었더라면 인류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 앞에 하늘땅이 굴복할 것입니다.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하고 가는 사람은 하늘이 그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훈장을 싸움 도중에 주는 법은 없습니다. 싸움이 다 끝난 후에 주는 것입니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원수마저 등장하고….
영계를 먼저 통일해야 지상이 통일됩니다. 영계의 통일은 지상의 통일보다 더 힘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가 추방하고 민족이 배척하니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분립된 것을 합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신랑 신부에 대한 이념을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역사적인 한을 해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선조와 지상의 인간을 수습한 후에 예수를 중심하고 새로운 혈족을 세워야 합니다.
12제자는 12아들입니다. 12자식을 효자로 세워 왕자가 되게 하여 유대교를 중심한 민족과 하나되어야 했는데, 12제자도 배반하고 3제자도 배반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야 했었습니다. 자기 죄로 말미암아 팔려가는 부모를 보면서도 오히려 한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공을 들여서도 세우지 못했으나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증거한 오른편 강도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베드로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강도가 제일 먼저 낙원에 들어갈 줄이야!
여러분들은 참부모를 잡아죽인 살인강도인 것입니다. 이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인이 사함을 받기 위하여는 무슨 일인들 못할 것인가! 여러분은 이러한 무리인 연고로 때려서라도 내몰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몸이 찢기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잠든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풀뿌리를 붙들고 울던 예수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편안한 자리에서 만난 식구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붙들면 가정을 끊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자는 있어도 이 땅을 책임지고 눈물 흘리는 자가 없습니다.
지구장들이 올 때마다 식구들을 더 고생시키라고 하고 싶습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은 7년노정을 걸어야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축소한 것이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종교의 전시장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경제면, 사상면에서 미국의 식민지입니다. 미국은 로마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이 몰렸듯이 통일교회도 몰릴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는 천주주의 이념을 품고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었지만 기독교는 십자가 하나로 말미암아 부흥했듯이 우리도 수많은 교파를 하나로 묶고 국가적 기반을 닦아 로마와 같은 입장에 있는 미국을 복귀해야 합니다.
유대교는 효자 효녀의 도를, 이스라엘은 충신의 도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유대교의 사명을 하기 위하여 효자 효녀의 도를 가르치고 충신 열녀를 만들어서 이스라엘 건국 이념을 완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들딸을 세워 참부모의 자리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되려면 참종, 참양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이루려 해도 충신이 없고, 종이 없으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것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던 길을 탕감복귀하려면 아들딸을 찾기 위한 3년간의 사탄 분별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간은 역사적인 아들딸과 직계의 자녀를 찾는 기간입니다.
선생님은 역사적인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의 세계에 자리잡으면 원수는 깨어집니다. 선생님은 3정권시대를 거쳐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유대교를 수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해야 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10대의 소년들이 세상을 망치고 있으니 이들을 하나님 앞에 찾아 세워야 합니다.
실력 없는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념, 인격, 심정적인 면에서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문화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민족이 되면 세계는 자기들을 지배해 달라고 꿇어 엎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려서라도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7년 기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인데 여러분들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갔으니 복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복귀의 시대에로 들어왔습니다. 이념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는 때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고향 땅에 들어갈 때는 대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도 대이동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뿌리고 불살랐지만 이제부터는 휘발유를 뿌리고 불살라야 합니다.
박 정권과의 제2의 투쟁이 남아 있습니다. 또 삼천만을 인도하는 투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민주 우방국가가 머리숙이고 따르는 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운세로부터 심판을 받습니다. 3차 전쟁에 이겨야 합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제2차 투쟁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