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은 1971년 2윌 14일, 이달에 들어와 두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오니, 당신의 거룩하심과 자비와 사랑이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모든 생애를 아버지 앞에 의탁하고, 남은 삶도 아버지 뜻 앞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한 몸들이오니, 부디 부디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 하나의 결실로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실적을 이 땅위에 남기고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사정은 각각 다를지라도 마음만은 뜻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갖춰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이 땅 위의 잃어버린 인간들을 찾기 위하여 한 생명을 다른 생명으로 바치면서 지금까지 참고 싸워 나오신 그 놀라운 노고 앞에 진정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릴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뜻을 이어받아 그 뜻을 저희의 필생의 사업으로 알고 그러한 길을 가려갈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겠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지난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덧없이 지나간 과거의 생활인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하루의 한 시간 한 시간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 앞에 의의있는 깊은 내면을 지니고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기억하실 수 있고, 인류가 마음 가운데 그리워할 수 있는 하루의 생활, 한 해의 생활, 혹은 일생의 생활을 엮어가기 위해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제 진정한 아버님의 모습을 저희 자신에게 현현시키시옵소서. 오늘날의 인간의 부족함을 아시는 아버지시기에 찾아 오셔서 부족한 것을 보충시키시면서 저희들을 깨닫게 하고자 만방으로 수고하시는 노고에 대해 친히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모르는 자식이 되지 않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아는 자식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무감각한 아들딸이 되지 않고 감각으로써 아버지를 체휼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슬픔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저희들이지만 그 슬픔의 한을 연속시키어. 슬픔의 결과를 남겨 놓고 가서는 안 될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육신을 갖고 있는 짧은 기간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당신이 믿고, 당신이 의지하고, 당신이 분부하고, 당신이 명령할 수 있는, 이 땅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사명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지기를 아버님께서 얼마나 바라고 계신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마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연들을 이 시간 다 내어놓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슬퍼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저희들에게도 원수와 같은 것이요, 만나서 함께할 수도, 거기에 패할 수도 없기에 오직 아버님편에 선 철석같은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으로서 이 시간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아버지, 받아 주시옵소서.

천상세계의 수많은 성도들도 자기들이 이 땅 위에 한을 남긴 생애를 후회하면서 오늘 이 땅 위에 있는 후손들만이라도 아버지 앞에 어서 나와 충성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님의 슬픔이 사무치는 그 자리는 땅의 인간들 앞에는 멸망의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소원이 깃드는 그 자리는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 찾아드는 자리인 것을 알고, 저희 자신들은 아버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 길을 남기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라는 것을 망각하는 데서만이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들을 친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나왔으며 무슨 인연을 따라서 이 파리에 나왔는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될 때, 저희들은 높고 귀하신 아버지와의 인연과 거룩하신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을 그리워해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과거의 저희의 손길과 마음이 아버지 앞에 추한 모습이었사옵고 가증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 앞날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성상을 본받기 위하여 나온 무리가 되었사오니, 저희 일체가 아버지 앞에 흡수될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 여건이 되게 하시옵소서. 여기서 나 스스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으로서 화합할 수 있고 흡수 될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저희 자체를 그냥 가져서는 안 되겠사오니, 스스로를 극복하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참신하고 참된 마음을 가지고 나오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당신께 축수(祝手)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모인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 길이 하늘의 생명길이라고 모든 것을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인연을 그들로 하여금 영광의 터전에 연결시키게 하시어서 만민이 우러러볼 수 있는 승리의 한날을 약속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천상의 인연을 인간의 인연 가운데 심어 주시어 당신이 의지하고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으로서의 기준을 만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일본과 미국과 독일을 위주로 하여 금후에 가야 할 세계적인 탕감의 험한 노정을 당신이 가려 주시고 지켜 주시는 가운데서 승리 또 승리하고, 전진 또 전진하여 원수의 세계를 밟고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도 당신이 친히 허락하시는 한 시간으로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개인을 두고 볼 때에 개인을 중심삼고는 반드시 가정이 관계되어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는 사회가, 사회를 중심삼고는 국가가, 국가를 중심삼고는 세계가 관계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발전의 조건

​내 개인을 중심 삼고 가정을 두고 볼 때, 가정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내적인 입장에 서든가 아니면 가정이 내적인 입장에 서든가 하고, 내가 외적인 입장에 서든가 가정이 외적인 입장에 서든 가하는, 서로 엇바뀌는 입장에 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나라가 중심이 되든가 아니면 백성이 중심이 되든가 하는, 이런 관계를 반드시 맺어야 그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개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결심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노정을 결심하고 가려 가야 합니다. 그 노정에서는 여러 가지 일과 사건들을, 혹은 여러 가지의 사물들을 관계지어 가지고서야 목적성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관계가 자기와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아무리 좋은 목적을 두고 정성을 들여 가더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적성사를 하고자 하는 그 결심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이,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배후적인 주체와 대상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 목적을 중심 삼고 일치화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내 개체가 대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기뻐할 수 있는 한 장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기쁨은 나에게 새로운 소망을 가져올 수 있는 자극으로써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떠한 단체가 있어 가지고 그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단체를 움직이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그 단체가 가야 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단체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반드시 거기에는 부서가 있게 마련이고, 그 부서에도 그 단체의 중심되는 존재와 더불어 상관돼 있는 상대적인 부서의 책임자가 있고,

그 책임자와 연결된 요원들이 구성되어져 그것이 상하로 하나되고 안팎으로 하나되게 될 때, 그 단체는 거기에서 발전하고 거기에서 계획하는 모든 일이 그대로 진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나 일상생활에서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를 보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국책을 세우는 주권자를 중심으로 그의 뜻을 받드는 행정요원과 행정 조직이 전국에 널려 있어서, 거기에 환경을 연결시켜 전체를 통할 수 있는 안팎의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세포와 같이 저 말단 단계에까지 조직형태를 갖추고 있는 복잡한 국가라 하더라도 그 모두가 주권자의 본의와 상충되지 않고 일체가 되어 화합할 수 있고, 상응될 수 있는 환경적인 여건을 갖춘 국가라면 그 국가의 환경이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환경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데 있어서 한 손만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양손으로 일을 할 때 비로소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보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인 여건을 표준하여 시각에 대한 실상이 상대적 위치에서 결정 되어야만 보이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에도 혼자 있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받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받아들이는 상대자와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주고받아서 일치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요, 그 말이 사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통해서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가 대하고 있는 상대와 그 환경 전체 앞에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해서 상대적 요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어떤 나라에 중심 존재가 있어서 그 중심 존재의 행동이 그 나라 전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 개인의 움직임은 국가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 사람이 세계와 더불어 관계를 맺게 될 때 그 사람의 움직임은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우리는 이와 같은 안팎관계, 즉 주체와 대상관계가 이루어져서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인연으로 서로 일치되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결여되어 주체가 열마디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여기에서 상대적인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될 때는, 그 말한 사람이 허무감과 위축을 느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대적인 결과까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상대와 상관 관계를 중심 삼고 서로 주고받는 환경을 갖추는 데서만이 기쁨과 연결되는 것이요, 발전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이요, 승리의 터전이 닦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 주변이나 제반 사회의 내용은 이와 같은 상관관계를 거쳐 가지고 발전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국가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를 벗어나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교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에서 어떤 것을 요구할때 상대적인 나라가 거기에 응하여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게 되면 그 두 나라 사이에 아무리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단시일내에 주체적인 문화의 기준까지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될 때는 국가간에 있어서도 반드시 상충이 벌어지고 서로서로가 감소되는 입장을 빚어내고 마는 것입니다.

​2. 전후방이 하나되어야 적을 물리칠 수 있어

​오늘날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나라가 서로 원수시하여 반목질시하고, 서로에게 약점이 있는 경우 자기가 공격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노리는 입장에 있게 되면, 그 노리는 기간까지는 정지적인 한계점에 머물러 있지만 둘이 부딪치게 되면 부딪치기 전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소모를 가져오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측이 부딪쳤을 때 어떤 사람, 어떤 백성이 남아질 것이냐? 그것은 일선이면 일선, 후방이면 후방이 얼마만큼 하나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국의 전방과 후방이 하나되어 있는 것 이상의 힘으로 하나되어 있다는 기준을 갖게 될 때는, 혹은 전후방이 하나된 강력한 기준 아래 영구한 앞날을 바라보며 결의한 가운데 뭉쳐진 나라라면, 아무리 원수가 공격해 온다 해도 공격해 오는 그 원수가 기필코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원수가 100의 힘을 갖고 대적해 온다 하더라도 이것을 대하는 국민의 힘―전방과 후방을 합한 힘―이 100이상의 기준으로 나타나서 원수를 대하게 될 때는 100의 힘을 가진 원수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힘의 기준이라는 것은 반드시 강한 편에서 약한 편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느 한 나라가 강하다고 하는 것은 전방만 강해 가지고서는 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뿌리가 될 수 있는 후방이 강해야 합니다.

전방이 아무리 약하다 하더라도 후방이 강하게 되면 약한 전방은 강한 후방의 보강을 받을 수 있으되, 전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후방이 약하게 되어서는 그 전방이 잘못되어 무너지는 날에는, 후방에서 보강할 수 있는 터전이 없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의 세계에는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단체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엄연히 전방이 있고 후방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수많은 원수들이 우리를 대하여 반목질시하고 있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포, 우리의 감정,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친히 그러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 가운데서 그런 반대적인 무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얼마나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느냐? 이것이 먼저 문제가 됩니다. 원수와 일대일로 부딪쳤을 때 후퇴해야 하는 자신이냐, 아니면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약하더라도 나와 상대로 나타나는 반대쪽의 단체면 단체의 움직임보다 강할 수 있는 후방을 내가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 자체가 약하더라도 나의 후방이 상대의 후방보다도 몇십 배 강할 수 있고, 그로부터 언제나 보급받을 수 있고, 언제나 서로 상응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일선에서는 아무리 약한 개체라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승패가 결정나지 않습니다.

어떤 개체가 아무리 약하더라도 그 배후에 강한 후방이 있게 될 때는, 그 약한 개체가 몰리더라도 후방의 힘이 거기에 보급될 수 있기 때문에 약한 것 같지만 약한 것이 아니요, 망할 것 같지만 망하지 않습니다. 패자가 될 것 같지만 패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강하여 일선에 나타난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강한 후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방에 있는 사람이 그 자체의 힘만으로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극복해낼 수 있겠느냐 할 때 그 개인이 건뎌낼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1년뿐만 아니라 10년, 1세기, 혹은 수십세기를 거치며 세계를 통하여 벌어졌다 할 때는 문제가 더욱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싸움이 자기 일생의 한때에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해결을 할 수 있고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으로서 끝난다면 그런 싸움을 해볼 수 있으되, 그 싸움이 한번 이기더라도 또 다시 싸움이 계속 되고, 한번 그 싸움을 이겼다 해서 상대적 판도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할 때는 우리 자체도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배후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세계를 대할 수 있는 어떠한 힘의 내용을 보급받을 수 있는 배후와 연결되어 있지 못한 입장에서 내 자체가 이 세계적 싸움을 감당하여 승리의 자리를 획득하겠다고 한다는 것은 망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인류 역사는 선악의 투쟁사

​오늘날 인류 역사의 복귀 노정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선악이 대립된 그날부터 악을 대하여 선이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과 선의 비율을 놓고 볼 때, 악은 전체에 성하여 있지만 선은 하나도 안 되는 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오늘날 선과 악의 투쟁사의 주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전체적으로 악화된 이 땅 위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과 일치될 수 있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찾으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완전히 일치된 자리에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승리의 기점을 세워 선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종족. 선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악의 세계가 벌어졌으므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선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를 기필코 만들어 가지고 악의 세계 대 선의 세계의 싸움에서 이 문제를 해결짓지 않고서는 선한 세계의 승리라는 것은 우리가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때까지 하나님은 이 엄청난 싸움을 해 나오고 계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헤아려 볼 때도 거기에는 반드시 일선과 후방이 있습니다. 그러면 선을 중심 삼고 싸우는 데 있어서 그 싸움을 시킨 사람이 누구냐? 그래도 땅 위에서 선을 흠모하고, 선의 사회와 선의 세계를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중심 삼고 싸움이 전개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선의 입장에서 그 책임을 지고 나타난 사람들이 선을 중심 삼고 얼마나 싸웠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즉, 몇대 혹은 몇세기에 걸쳐 입증하는 자리에서 싸워 나왔고, 자기가 실패했다면 자기 후손에까지 연결시키고, 그 후손이 실패하면 대를 이어 가면서, 수천만대 선의 대를 이어 가며 싸워 나오는 그런 민족, 그런 국가가 어디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악의 투쟁사는 지금까지도 해결짓지 못한 채 인류 역사에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요, 선을 중심 삼은 비참한 노정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악한 세상에서 하늘편에 기여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상대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하나의 무리를 선택하기 위한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개인을 찾아 나오시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 그러한 국가를 찾고 계심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의 세계에서 어떠한 나라와 어떠한 민족이 하나님이 세우려 하는 선한 나라와 선한 민족이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나라와 민족이 없게 된다면 지금까지 선을 중심 삼고 싸움을 해 나오신 하나님은 지극히 불쌍한 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개인이 없다 할진대 그 개인의 싸움은 하나님이 대신 책임져야 하고, 그런 가정이 없다 할 때는 그 가정의 싸움도 하나님이 책임져야 되고, 그런 민족과 그런 국가가 없다 할 때는 그 싸움도 하나님이 대신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선의 편에 서서 싸우는 사람들의 후방

​지금까지 수많은 선한 사람들과 성인들이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자기 나라 하나를 잘 살리기 위한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주장으로는 성인이 되지 못합니다.

대체로 성인들은 그 나라의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환영도 받지 못하였고, 다만 그가 죽고 난 후에, 또는 그 백성들이 그를 죽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말이 옳고 그 사람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분의 주장을 반대하고 핍박하며 쫓아냈지만, 역사가 지나간 후에는 그분의 주장이 옳았다고 하면서 거국적으로 그를 추모하는 역사적인 일을 펼쳐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난 후에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난 뒤에 승리의 결과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몇백년이라는 기간을 통하여 그 누가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죽은 사람이 닦는 것이 아니라, 선의 가치를 내걸고 희생을 해 나온 역사적인 인물들의 배후에서 협조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있어서 선을 위해 싸우던 사람은 몰리고 희생당하며 죽어 갔지만, 그 후대에 승리의 결과로서 나타날 때까지의 과정에 있어서 그 인연을 나타나게 해준 동기, 혹은 그런 후방이 있어야 될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하나님은 지금까지 해 나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그 결과를 선한 터전 위에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를 거치는 과정을 통하여 그 결과를 세워서 키워 나오고 그것을 옹호하는 일이 배후에서 끊임없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거친 후에야 선이 남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악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개인, 즉 30억의 악한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만이 믿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인을 찾으실 것입니다.

수많은 악한 무리 가운데서 그런 한 사람을 찾았다면 그 사람에게 복을 주고 편안하게 안식시키며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소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아니면 이 악한 세상의 30억 인류를 대하여 책임지고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찾은 그 사람을 원수 앞에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억울함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혹은 수난을 극복하면서 소원의 일념의 분자로서 이 땅위에 찾아진 그 모습을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 세워 찬양할 수 있고, 또 그 모습이 승리의 결과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악한 세상에 있는 인간이기에 악한 세계와 더불어 싸워야 할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오늘날 선편을 대신하여 서 있는 가냘픈 한 생명을 30억 인류 앞에 내세워서 싸움을 대신해 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신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한 개체를 내세워 가지고 싸움을 부탁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하신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악을 처치하는데 있어서는, 악을 유도해 들어온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대표적으로 이 악을 해결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남아 있는 고로 하나님께서 앞에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싸움터가 벌어진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싸움은 선한 사람이 나서서 막고, 선한 사람이 희생해서 승리의 결과를 다짐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선한 사람을 세웠다 할진대는 그 선한 사람은 불쌍한 생애를 마치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과정에서 왔다 갔던 선지선열들이나 혹은 예언가, 성인, 선한 사람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성공을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길에서 비참하게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 언제나 희생의 자리에 서 왔던 선편의 사람들

​한 사람이 그렇게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그가 억울하고 비참하게 아무 죄 없이 무모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때, 악한 세계의 사람들도 그것을 직시하고 그 참상을 참관할 때 그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참인데도 불구하고 거짓에게 억울하고 불쌍하게 희생되어 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악된 요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에 의해 비로소 폭발되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희생의 제물을 세워 가지고 후원자를 내세우는 일이 선한 역사를 찾아 나가는 투쟁의 행각입니다. 이 투쟁이 없이는 이와 같은 정상의 인연을 벗어나서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언제나 희생하고 나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고, 그것이 선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악이 전체 주위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서 희생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을 하여 이겼다면 그의 승리는 세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환경적으로 대한민국 내에 있고 어떤 종족의 한 아들딸로 태어난 개체라 하더라도, 그가 30억 인류와 하나님의 선을 대신하여 싸워 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그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항상 개인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한 가정이 세계의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왔고,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요셉 가정, 혹은 사가리아 가정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자리에 서서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위주로 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가운데 서로 뜻이 같은 운명의 길에서 세계를 대신하여 수많은 악한 가정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하늘편에 서서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세워 그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정들과 싸우게 하는 일을 지금까지 엮어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진 가정을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이 노아 가정이요, 아브라함 가정이요, 모세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싸움을 책임지고 왔던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도 가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중심 삼고 보면 아브라함의 일파가 있었고, 모세를 중심 삼고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싸움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의 중심으로서 하나의 남성의 자리에 서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은 어떠했느냐?

예수에게는 그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된 터 위에, 그의 친척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춘 가운데, 하나의 중심적인 남성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의 민족과 국가 앞에 당당히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 혹은 모든 가정이 예수 앞에서 그런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터전을 갖지 못한 예수의 입장은 다시 개인적인 싸움부터 시작해야 할 입장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3년 공생애 노정을 통해 개인의 싸움을 거쳐 가정과 종족, 그리고 민족의 싸움터를 다시 넓히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6.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하늘의 수고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선민으로 세운 배경에는 하나님의 소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민족이 둘러서 있는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이 비로소 땅 위에 발 붙이고 섭리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민족을 찾아 나온 것이 선민을 형성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민을 세워 가지고 그 선민에게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장차 악한 백성을 굴복시키고 악한 나라들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선민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선민의 자격을 갖추고 다시 한 번 세계 앞에 승리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이스라엘 선민과, 선민의 사상적인 중심인 교단과, 그리고 전체 가정의 중심인 요셉 가정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일치가 되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해서 악한 세계와 부딪쳐 싸우는 하늘나라의 전방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나의 전방이 되고, 세계에 널려 있는 악한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민족이 사탄의 전방이 되어 맞부딪치면, 사탄 세계는 총동원하여 이 악한 전방을 후원할 것이므로, 그때에 선민의 후방은 누가 될 것이었는가 하면, 하나님이 되어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 삼고 전방과 후방이 일치하여 안팎이 결속된 힘과 사탄을 중심 삼고 결속된 그 힘이 맞부딪쳐 싸우게 될 때, 하나님을 중심한 전방과 후방의 단결된 힘이 사탄의 힘보다 강하게 될 때는 악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과 사탄나라의 악주권 전방과 후방이 결속되어진 거기에 비해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기반이 없어서 개인적인 입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하여 나라를 세우고 이스라엘의 교회를 세운 뜻은 원수의 나라와 대결케 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그 나라와 교회는 물러가고 예수 홀로 개인의 싸움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악한 나라편에 있던 로마제국을 중심 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까지도 예수에게 반기를 들고 공격하였던 사실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원통하셨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한 장면이,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키워 나오시면서 하나님이 내적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선의 판도를 넓히기 위해 역사시대에서 치러 오신 희생의 대가를 일시에 전복시키는 억울한 장면인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잘 죽었다고,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은 왜 세웠으며, 왜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며 유대교를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히 죽어야 할 기반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였더냐 할 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새로운 사상으로 강력히 뭉쳐 전후방이 하나되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를 중심 삼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사탄세력 이상의 강력한 배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 삼고 결속되어 아무리 강력한 로마제국이라도 굴복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기원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찾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와 교단이 예수를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운명을 가려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시 종족과 민족, 국가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하다가 죽어간 것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인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간 그날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내용을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땅 위에서 하나님의 기지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땅 위에 하나님의 법도를 세울 수 있는 종교, 유대교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가는 곳에는 나라가 없었고, 하늘의 제단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없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땅도 없었고, 성전의 법도를 따라가서 겨레를 지켜낼 수 있는 민족도 없었습니다. 민족과 성전을 일치시킬 수 있는 뜻을 세워가야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어받은 기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시 민족적 터전과 성전적 터전을 지상에 닦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가는 곳곳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피의 참사를 당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순교사였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를 중심 삼고 주권을 가진 국가가 되어서 로마제국과 일대일의 협상을 할 수 있고, 세계의 열강들과 일대일의 협상을 할 수 있는 터전―어느 나라가 기독교인을 학살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국교를 통해 당당히 이것을 항의할 수 있는 터전―을 가졌더라면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의 땅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서 땅 위의 백성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반조차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뜬구름과 같이 동에서 쫓기면 서로 몰리고, 북에서 쫓기면 남으로 몰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부평초같이, 흘러가는 물결과 같이 근거도 없는 역사적인 운명을 가려 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죽음의 대가를 치르고, 피의 대가를 치르는 희생을 통해서야 비로소 세계적인 결실로서 동지를 규합하는 운동을 전개해 가지고 기독교 문화권의 판도를 넓혀 오늘날의 민주 세계의 문화의 터전을 마련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수많은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이는 내 나라다' 할 수 있고, 이스라엘 교단과 같이 '이는 하늘의 법도를 지킬 수 있는 내 영원한 성전인 교단이다' 할 수 있는 땅의 기반을 가진 나라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을 중심 삼고 볼 때 미국의 통수권자는 교회의 책임자가 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을 보더라도 성공회 책임자가 영국의 통치권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분리되어 있습니다. 주권을 놓고 볼 때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종교적인 판도를 중심 삼고 주권국가를 갖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나라요, 내 주권이요, 내 백성이요,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주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유대 나라와 유대교, 그리고 이스라엘 가정이 하나가 됐더라면 하나님께서 이는 내 나라요, 내 백성이요, 내 주권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예수님은 비로소 하나의 주권자로서, 만왕의 왕의 권위를 갖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원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는 기독교를 통하여 죽음의 골짜기를 허덕이며 서러움이 반복되는 역사로 지금까지 걸어나온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시면, 만국은 주님의 발 아래 놓일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한 주권자로서 모든 악한 주권자를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공중의 뜬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땅 위에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통하여 철석 같은 사상을 기반으로 그가 동으로 가라고 하면 전체가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 하면 전체가 서로 갈 수 있는, 그러한 사상으로 맺은 터전이 없어 가지고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찾아왔던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내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뜻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오시는 주님을 모두 따라갈 수 있을 줄 알고 믿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 하더라도 언제 땅에서 구름을 타고 다니겠어요? 발로 걸어다니실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여러분이 믿을 것 같아요? 명동거리에 주님이 구름 타고 나타났다면 따라가서 믿을 것 같아요? 혹은 미국에 주님이 그렇게 나타났다면 그 사실을 믿을 것 같습니까? 어림없는 수작들인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과연 소망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고,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애국심에 불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의 가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신랑으로서 오게 될 때 신부로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룬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10억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은 공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에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공산주의에 전부 걸려들고 말려들어가서 자기 처신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글픈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나라도 없고 이 땅 위에 있어야 할 하나의 터도 없는 것입니다. 목적은 오직 자기 한 사람만 믿고서 천당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시한 사람들을 천당에 데려가지 않습니다.

'나만 믿고 천당가겠다'고 '내가 요렇게 하늘을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부 개인주의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천당가겠다는 사람은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리고 내가 요렇게 해 가지고 천당에 가겠다는 사람은 절대 천당에 가지 못합니다.

예수의 사상이 그것입니까? 내가 이렇게 해야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해서 아버지의 아들딸이 됐다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들딸 된 자리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나만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천당 못 갑니다.

'세상을 다 잃어버려도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한 사람을 세워서 악한 열 사람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악까지도 슬퍼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안고 나가게 함으로써 악이 스스로 굴복하고, 절대 복종할 수 있게 하여 진정한 승리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땅에서 승패의 결정을 해 가지고 악한 나라를 선한 나라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런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라의 채찍에 맞아 몰리고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의 일을 해야 천당에 가는 것입니다. 몰리고 고난을 당하며 죽어가는 것은 네가 주도하고 네가 부리던 그 권세와 판도를 하나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악의 세력을 대하여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죽어서라도 그 뜻을 이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역사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나왔습니다. 이런 기독교는 망해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거예요. 선과 악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선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여러분은 선악이 어떠한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지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 천당에 가는 것이다' 하는 식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쩨쩨하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안식의 터전에서 승리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지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람을 말하게 될 때 혼자만 구원받겠다고 하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자기를 위해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맞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이 어떤 것이냐? 예를 들어 여러분이 좋은 친구라 할 때, 그 친구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양보해 주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남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냐? 이렇게 볼 때 어느 사람이 선한 사람이냐?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겠어요, 자기를 희생시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겠어요? 선한 사람은 왜 흥하느냐 하면 선한 사람은 절대 빚을 지거나 신세를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친구란, 만나면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까지 상대를 위해 쓰는 친구입니다. 자기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친구의 부탁을 자기 일보다 더 들어 주려고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라면 그가 도망을 가더라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친구라도 보이는 것마다 빼앗고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가 오라고 해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선악의 기원은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희생시키고, 자기를 위해서 빚을 지우던 친구가 죽게 되면 '에이 그 녀석 잘 죽었다'고 하면서 시원하다고 하지만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상대를 위해 애쓰던 친구가 죽게 되면 그가 죽은 후에도 무덤 앞에 서서 추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남을 위해 사는 친구는 당장에 친구에게 신세를 지우는 것 같지만 그 아들딸이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연결되고 그 나라가 연결될 수 있는 추후의 터전이 여기에서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자리는 자기를 내세워 주장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은 남을 위하여 사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것은 악입니다.

​8. 선악의 갈림길

​대한민국이 부패했다고 하고 악하다고 하는 것도 더 큰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이용당하지 않고, 자꾸 나라의 것을 깎아 먹고 3천만의 큰 뜻을 자꾸 뜯어 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보태 주고 합할 수 있게끔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꾸 뜯어 내니까 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가 망해요. 안 망해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안 망하려고 제사를 지내도 망합니다. 공화당도 이런 부패를 근절시키지 못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의 정권을 꿈꾼다 해도 그런 부패가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선(積善)에는 희생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희생이라는 원칙을 거치지 않고서는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선악의 본질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를 위하는 사적인 것은 망하는 것이요, 전체를 위하는 공적인 것은 흥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또는 집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 믿고 천당 가겠다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 영계에 가 보면 로마 제국시대의 4백년 고역기간에 죽은 영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내가 이렇게 하다 죽으면 천국에 가겠지' 하며 과감하게 죽었지만 그런 마음 가지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로마 복귀를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다 붙잡혀 죽는 것이, 즉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로마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죽는 것이 바로 천당의 본질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저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은 정작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에 기독교가 망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그러면 마찬가지 운명이 됩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통일교회의 책임자로서 당부하는 것은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통일교회는 됐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 원칙에 의해서 됐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그런 연후에 자기를 사랑하고자 하는 것, 그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체는 망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서 그 사랑의 보증을 받아 가지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가 필요로 하고 인류가 필요로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이 가는 길 앞에는 아무리 비참함이 가로막히더라도 그것을 능히 뚫고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핍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도 갖은 치욕의 화살이 우리 주위에 날아들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사 일선에 서서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후방이 되어 주시는 터 위에 그 보급로를 중심 삼고 일선에서 싸워 나가는 전방에 서야 합니다.

그 원칙은 간단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하늘나라의 승리를 위해 수모를 받아 가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업도 그러하고 행동도 그러하며,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전부다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방에 선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령관이 되고, 군단장이 되고,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결속된 조직과 실력을 가지고 무한히 보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 앞에 백전백승의 승리는 정해진 이치입니다. 망할 줄 알았고 깨질 줄 알았는데 도리어 승리자가 되어 올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9. 후방에 있는 사람의 책임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의 세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왔고 세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았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민족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이런 입장이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망하지 않았느냐? 여러분이 이 민족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나는 이 민족을 사랑했고, 여러분이 이 나라를 위하는 그 이상 나는 이 나라를 위하였으며, 여러분이 소원하는 그 이상으로 나는 새로운 선의 주권을 소원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세계의 각 나라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하나의 거룩한 민족, 세계의 모든 나라가 연결되고 싶어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된 국토, 세계 각 나라가 이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한주권을 찾아 나온 것이 곧, 하나님이 바라는 주권과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와 하나님이 바라는 백성을 찾아 나온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에는 싸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연쇄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어차피 싸움은 전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전방에 선 군사로서 싸우게 될 때 후방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인류를 대표한 사탄세계의 주권이 아무리 단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후방인 우리를 막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후방의 하나님의 힘을 대신하고 보조를 맞춰 나갈 때에는 사탄도 꺾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싸워나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개척해 나온 통일교회 지도자의 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이 길을 가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전후방에 갖추어진 그 힘의 기준이, 그 세력권이 악한 세계의 전후방에서 갖추어진 힘보다 우위에 서지 않고서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알겠지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1천 2백명의 아주머니들이 일선에 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일선에서 고생하며 수고하는데 후방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을 보면 요란스럽기만 하였지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아무리 알랑 거리며 통일교회를 믿고 나간다 하더라도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못 할 때에는 망합니다. 일선에 있는 그들은 내 대신 먼저 칼을 받고 화살을 받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내 옷이 찢겨지기 전에 그의 옷이 먼저 찢길 것이며, 내 얼굴이 그슬릴 것을 그들이 그슬린다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전후방은 하나로 결성되어 갈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도 후방에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빚진 자리에 있게 되고, 하나님은 복을 받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후손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후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방에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방은 하나님과 영계가 협조할 수 있는 자리요, 하나님과 더불어 동맥의 고동소리를 같이 울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후방을 뒤에 남기게 되더라도 전방에 대하여 그렇게 역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방이 결속될 때는 전후방 둘 다 사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후방을 거쳐서 보급해 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므로 그럴 수 있는 후방이 없게 될 때는 여러분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선을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승리의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보다 배가의 기도를 해야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금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슬픔이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일선장병으로서 선두의 자리에 섰을 때에 유대교가 후방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후방이 되어야 하며, 요셉 가정이 후방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후방이 되어야 할 가정, 후방이 되어야 할 교회. 후방이 되어야 할 나라가 반목질시하고 수수방관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외로운 싸움을 거듭하다가 끝내 사탄에게 걸려 가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도 까닥하면 사탄에게 걸려 가지고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때가 올까봐 지금까지 말없이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맞으면서도, 그리고 핍박을 받고 별의별 누명을 다 뒤집어 쓰면서도 참아 나왔던 것입니다. 말할 줄 모르는 무골충이어서가 아닙니다. 큰일을 겪을까봐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가 되는 날에는 7배를 가산하여 일시에 탕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후방에서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을 고마워해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편성하여 섭리해 나오신 것에 대하여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국적인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을 전부다 여러분이 했어요? 모든 걸 고마워해야 합니다.

​10.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이런데도 불구하고―이와 같이 전후방이 연결되어지는 하나밖에 없는 보급로를 통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데―이 사명을 우리가 감당 못하면 우리 체제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후방이 일체가 되어 가지고 후방이 전방보다 강하게 되면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여러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비로소 소원의 때, 용서의 때를 맞이하고, 사탄의 나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울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입장임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전방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후방에서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전방의 어려움을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전방에 있는 청년들이 지금 어떠한 어려운 입장에 있는가를 몰라 가지고 3천만 민족과 3천리 반도의 중심부인 서울이 전방과 일치하지 못하게 될 때는,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전방과 후방이 일치되어 그 힘이 강하게 될 때는 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라도 이러한 기원을 만들게 되면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우리로 말미암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일선에서의 치열한 싸움보다도 우리 종교를 중심 삼고 전방과 후방에서 하나되면, 사탄과. 하나님과의 치열한 전쟁을 하더라도 실체세계에 있어서의 국가 대 국가의 치열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자진해서 공격전을 개시하고 있는 때가 1970년부터 1973년까지의 기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후방에 서 있는 우리는 전방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알고, 전방을 사수하고 있는 용사들을 위해 살고 있지 못함을 한스럽게 생각하면서, 우리 전체의 생활이나 마음가짐을 전방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서 재정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전방과 통하는 자리에서 그 자리를 소화하고 살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망하라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우리들이 가려 가야 할 것이 현재의 시점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에 이것을 못 하게 될 때는―이 책임을 부여받아야 할 사명권에 처해 있는 여러분이 만일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반대로 개인적 일을 추구하게 될 때는―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천국은 커녕 지옥중의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전후방을 생각하며 전방을 대신하여 후방을 굳게 지키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후방을 통해서 전방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후방을 통하여 각자의 책임을 다함으로 우리끼리라도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요건을 제시하는 일을 통일교단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 통일교단이 하게 될 때 통일 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추앙받지 않을 수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의 일선과 아버지의 후방은 아담이 타락한 그날부터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대하는 싸움을 벌여 나왔으나 언제나 불쌍한 입장에 서야 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인 것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한때 가정을 내세워 믿고 싸워 달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이 없었으며, 믿고 내세울 수 있는 씨족이 없었던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때 하늘 전체가 믿을 수 있는 민족을 갖지 못하였고, 믿을 수 있는 어느 한 나라를 보지 못한 처참하고 불쌍한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원한의 사실을 알고 있는 통일교회의 저희들은 이제 내 개체가 아버지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하겠고, 아버지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가정은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제사장 가정이 되어야 하겠고, 민족을 대신한 대제사장의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국가를 대신한 주권자의 자리에 서야 하며 세계를 대하여 아버님의 독생자의 권한을 대신하는 하늘의 왕자 왕녀의 권위를 가져야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회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인연을 이 땅위에서 이어받지 못하게 될 때 아버님은 지극히 불쌍하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이러한 수난길을 거듭하기를 수천년을 해 나오신 것을 저희들은 진실로 뼈살에 사무치게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불쌍하신 우리 아버님을 모셔 놓고 해방의 한날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합하여 승리의 세계적 판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버님을 안식시켜 드릴 수 없사오며, 또한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효성의 도리도, 충성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는 인류가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따라서 이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고, 이 전통적 사상을 인류 앞에 남겨 주기 위해 나타난 무리가 통일교단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이 교단을 키우기 위해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해 오셨는가 하는 것을 저희가 아옵기에, 아버지, 진실로 황공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이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작 일선 장병이 되지 못한 한이 저희 자신들에게 남겨질까봐 두려워하여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일선을 사수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이스라엘 민족의 젊은이들이 수많은 아랍 국가를 대하여 총칼을 들고 일선에 나서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 나라에 당신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의 통일의 용사들도 온 세계 만민을 대신하여 사탄으로부터 일선을 사수하려는 책임을 자기의 생명과 스스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저희를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비로소 우리가 일선에 선 사탄과의 싸움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민족을 우리의 후방이 되도록 다시 한 번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저희에게 이 나라와 이 세계를 통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를 돌려드릴 수 있는 일선과 후방을 갖추어 아버님을 안식시켜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비록 일선 장병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지 못할지라도 후방에 있는 요원으로서 책임을 2배 3배 해야 하겠다는 불타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사탄을 대하여 전후방을 지키며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는 선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부디 아버지로부터 영원한 그 나라와 그 세계를 후사로 이어받을 수 있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이 나라 조상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전체를 허락하여 주신 뜻대로 받으시어서 영광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전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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