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 중에 이 3년 기간에 고생한 사람도 있고, 혹은 고생하려고 해도 고생의 자리를 찾지 못해서 애쓴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여러 가지 사정의 내용을 가지고 거쳐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는 미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특별히 지성을 다하고 요 3년 기간을 마치기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만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완성시대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늘의 사명을 달성해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특별수련회라는 과정에 참석했는데, 이번에 여러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런 모임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천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크나큰 의의가 있지만서도, 이제부터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여러분들을 대해서 하늘이 축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금년에 3년의 마지막으로서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물론 일면의 뜻이 있지만, 앞으로 전체 앞에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허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축복받은 식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식구들은 특정한 하나의 어떤 프로에 의해 제정된 그 코스를 결정짓기 위해서 한다는 것보다도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한다는 것을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36가정과 72가정은 프로에 의해서 장성기준까지의 어떠한 사명적인 책임을 완결지어야 할 천적인 내용이 있지만, 이 완성시대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전체를 대표해 평면적인 기준에서 넓혀 나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들은 앞으로 특정한 무슨 책임적인 분야에 서지 않은 입장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만일에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 중에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건 어차피 뜻 앞에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비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있게 되면 이제부터 축복받는 특별한 사람들을 보충할 수 있는 입장에도 세워 놓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알고, 특별히 천적인 어떠한 프로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다는 생각은 갖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이러한 것을 전체적으로 해서….

앞으로 사람이 많아지면 일년에 몇 번이라도 할지 모릅니다. 이래 가지고 천적인 기반을, 즉 민족이라든가 종족적인 기반을 넓혀야 할 하늘의 사명이 있는 연고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축복해 주는 것임을 먼저 선생님과 여러분이 약속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상대적인 목적을 완결지어야 이상적인 출발이 가능해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은, 여기에 '제17회 전국 전도사 특별 수련회'라고 돼 있지만, 여러분이 온 목적은 전도사 수련회가 아닙니다. 목적은 뭐냐? 남자 여자가 이제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남자가 어떠하고 여자가 어떠한가의 내적인 세계를 분석하기 위한 내용을 여기에서 약속짓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패들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신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들에게 여기에서의 21일 기간은 하나의 씨름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씨름하는 기간이예요. 옛날에 야곱은 얍복강에서 천사를 중심삼고 씨름했지만, 여러분들은 가냘픈 여자지만 여자로서 이제 남자를 대해서도 씨름해야 합니다. 또 남자는 제아무리 굳세다 하더라도 심정을 걸어 놓고 여자와 씨름해서 승패를 겨뤄야 할 운명권 내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복귀역사를 한번 쭉 회고해 보면 모든 전부가 싸움입니다.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승패를 결해 나오는 싸움입니다. 구약시대를 보게 되면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습니다. 그 싸움이 내용에 있어서 다를 뿐이지 그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싸웠던 동시에 인간과 제물이 싸웠습니다. 또, 인간과 제물이 합해져서 하나님과 싸웠습니다. 그렇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달랐지만 같은 모양을 거쳐서 제물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고, 또 예수님시대에 있어서는 복음이면 복음, 말씀이면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패를 결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쭉 나오면서, 서로 싸우면서 승패를 결해 가지고…. 최종적 싸움 문제가 어디에 가서 종착이 되느냐? 예수님도 그 종착점을 어디로 두었느냐 하면 신랑 신부라는 거룩한 명사에 두었습니다. 이 명사를 걸어 놓고 그 종착점을 지어 놓았습니다. 또, 예수님도 물론 그러하지만 지금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 지금까지 복귀의 혜택을 지상을 통해 받아야 할 운명에 있는 그들도 역시 자기들이 최후의 승패를 결해야 할 싸움의 종착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면 그들도 역시 상대이념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성적인 성을 지니고 태어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으로서 상대적인 목적을 완결지어 하늘, 즉 주체의 성상체를 대신할 수 있는 지상의 기대를 완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창조원리를 봐도 그렇고 창조이상의 목적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 기반을 달성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준이 완결되기 전에 이상적인 출발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창조목적의 기준이 심정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인연이 돼 있는 걸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는 쭉 흘러 나간다는 거예요.

부모의 자리에 나가 심정적인 세계에 연결돼야

오늘날 복귀역사를 우리가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망라해 볼 때, 그런 내용으로 된 목적의 기준이, 혹은 목적의 장소와 목적의 대상들이 한 곳에 한 날을 중심삼고 한 인연 가운데에 임하는 사실은….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 들어온 지 1년 혹은 2년, 3년 넘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귀하게 보게 된다면 자기에게는 기나긴 세월이라고 볼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기나긴 역사노정에 비교해 보게 될 때 지극히 짧은 거예요. 그러나 이 지극히 짧은 내 과거의 생애를 통하여 오늘날 이와 같은 장소에 여러분들이 참석했다는 그 내용은 엄청나고 두려운 내용이란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코스를 정당히 역사 앞에 있어서 내가 순응해서 잘 계승하여 넘어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에 혹은 창조의 이념에 반하여 넘어가느냐? 넘어가는 데는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넘어가느냐, 패자의 억울한 모습을 갖고 넘어가느냐? 이러한 중대한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짧은 역사를 갖고 있으되, 이 자리는 중대하고 엄청난 자리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불리움을 받았는데, 불리움받은 자체는 개인으로 불리움받고, 혹은 지역을 대표하고 혹은 교회를 대표해서 보내심을 받아 가지고 왔지만서도, 온 여러분 개체라는 것은 개체에 속한 개체가 아니라 역사적인 개체라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를 더듬어 보면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역사를 거치고, 양자의 역사를 거치고, 자녀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자녀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 가지고 비로소 심정적인 세계에 연결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이 원리를 통해서 배운 복귀의 정상적인 코스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지금 이전까지의 역사세계에 있어서는 꿈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종의 역사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 구약역사요, 종의 역사로부터 양자의 역사를 계승받아 직계의 인연을 세워 나오기 위해서 허덕여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신약역사입니다. 직계 자녀의 몸을 가지고 참부모의 인연을 거쳐 비로소 가정의 한 식구의 이름을 지녀 가지고, 거기에서 자라고 거기에서 길리움을 받아 거기에서 반드시 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내적인 면에 결부시켜 가지고야 비로소 이 피조세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본래 아담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 가지고 해와와 남매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아담 해와가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가정을 대표한 아들딸로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원칙인데, 그것을 잃어버린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소망의 표준으로 하여 지금까지 걸어 나오고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준이 오늘날…. 예수도 그 기준을 중심삼고 성신도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바라고 나왔지만, 그것이 영육을 합한 실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지상에 섰던 것이 아닙니다. 영과 육이 갈라진 입장에서 남성은 하늘을 대표하고 여성은 땅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으니, 미래의 소망의 한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영과 육이 합할 수 있는 한날을 고대해 나오던 장소가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모여있는 이런 장소인 것입니다.

남자는 예수의 사명을, 여자는 성신의 사명을 대신 해야

그러면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떠해야 되느냐? 어떤 내가 돼야 되느냐? 남자는 사탄세계를 대하여 예수의 사명을 능히 대신할 수 있고, 여자는 사탄세계를 대하여 성신의 사명을 능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거룩한 분들이 모여야 할 곳이 이 장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이 한날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하를 대하여, 불의의 주인공인 사탄을 대하여 항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도, 남자 여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의 인연을 결속하느냐 못 하느냐로 결정됩니다. 여기에서 사탄으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적인 문제를 파괴시키느냐 못 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자리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노심초사하여 싸워 나오는 목적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적인 자리,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심각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예수가 세우고 싶었던 제자들, 예수가 찾고 싶었던 소원의 아들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갖고 싶었던 후대의 후손들을 세워야 합니다. 또, 그 후손들을 세워 가지고 민족으로부터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고, 소원의 민족을 고대하고 소원의 백성을 고대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하고 또 갖고 있어야 할 입장이 오늘날의 여러분의 입장입니다. 또, 오실 성신 이 그러한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고대하는 사명과 책임을 완수했다 하는 자리에서야 할 것이 오늘날의 여자들인 것입니다 .

남자 여자를 합해 가지고 도(道)의 문을 통하여 이런 축복의 명사를 세워 가지고 결혼을 시킨 그런 도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부 다 분별역사예요. 갈라져라 이거예요. 전부 다 갈라진 이 역사를 심정을 걸어 놓고 연결시킬 수 있었다는 이 사실이 오늘날 무엇보다도 복되다면 이 이상 복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황공하다면 이 이상 황공한 게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남자는 남자 자체, 그 개체를 위주로 한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 그 개체를 중심삼은 여자가 아니예요. 남자는 남성을 대표한 남자요, 여자는 여성을 대표한 여자라는 거예요. 대표하는 데는 어떠한 입장에서 대표하느냐?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입장에서 이 부끄러움을 막고 하늘 앞에 사죄를 고하는 입장에 선 남자 여자가 아니라, 부끄러움의 세계를 밟고 승리적인 영광의 개가를 부르면서 월계관을 쓰고 하늘 앞에 자랑하는 입장에 선 남자 여자라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이 여기에 참석하긴 했지만 그러한 복귀적인 내적인 심정의 세계와 인연되어진 관계로 비판해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서는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먼저 회개하는 기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가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 진리의 뜻을 알고 살아 나온 내 생애를 다시 한 번 분석하고 전개해 가지고, 그러한 목적관 앞에 있어서 과연 내가 심정적인 생활에 있어서나 행동적인 생활에 있어서나 혹은 마음이 통하는 모든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나 내가 과연 그러한 내 생애를 가졌느냐 하고 비교해 보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 갖고 회개하는 기간이 있어야 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회개의 기간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당당히 '아, 나는 회개 안 해'라고 말할 자가 있다면, 그는 아직까지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이 이러한 내용을 전부 다 알고 참석했더라면,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그 한발짝 한발짝은 어떠한 제왕이 취임식을 하는, 대관식을 하는 이상으로 엄숙했을 겁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머무는 이 기간에 있어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서로서로가 앞으로 문제 될 수 있는 상대를 대하게 될 때에 그저 한마디 말뿐으로써 좋다 나쁘다 하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자기의 숙명적인 모든 내용이 해석되느냐 안 되느냐, 이 해석을 기본으로 해서 역사적인 인연을 통한 내 자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 이런 문제가 달린 중대한 시기요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회개를 거치고…. 회개를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사실은.

천적인 가법을 중심삼고 살았다는 기준을 통과해야

반드시 이 축복이란 것은 우리의 복귀원리로 볼 때, 반드시 종의 시대를 거쳐야 돼요. 종의 시대에 있어서는 종으로서 충성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천사장을 세워서 충신을 만들고자 했으나 충신을 못 가진 것입니다. 충신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예요. 오늘날 여러분은 천사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니,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났으니, 하나님 앞에 공인받기 위해서는 천사장한테 받은 피를 무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충성의 기대를 가지고 종으로서 충성한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종의 시대를 거치게 될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는 예식이 있는 거예요. 예식이 있어요. 식이 있어요. 종에서 양자로 넘어가는 식을 거쳐야 종새끼를 양자로 입적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무슨 수속절차가 있듯이, 여러분들도 종의 시대를 거쳐 양자의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충신이라는 이름을 갖출 수 있는 식을 거쳐야 되는 거예요.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아들딸이라고 이름 불리울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나오는 것도 역시 엄청난 식을 거쳐 가지고 나오는 겁니다. 양자에서 직계 아들딸로 되어서 아들딸 개체 개체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하나의 식구라고, 오빠라고 누나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되는 데에도 반드시 하늘의 엄격한 시험과 비판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야 연결돼 나가는 것입니다.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자라 가지고, 자라는 데도 천적인 가정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랐다는 기준을 통과해 가지고, 그 부모에 있어서 심정을 통해 보나 생활을 통해 보나, 지금까지 자기 아들딸을 길러 나오는 부모의 마음에 있어서나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나 혹은 내적인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과연 내 모든 전체를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안팎의 내용을 다 갖춘 후에야 여러분들을 그의 아들딸로서 혈통적인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부모라는 인연을 맺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느 한때에 종으로서 하늘 앞에 충성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어느 한때에 있어서 내가 양자로서 충성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어느 한때에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인정을 받았느냐? 아들딸로서의 이 인정을 받고 난 후에 나는 어느 한때에 가정적인 가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적인 규범 밑에서 살았다는 내용과, 혹은 실제적인 사실, 실적을 가진 그 무엇, 공인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어느 분야에도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어느 지방에서 이런 모임이 있게 될 때 '어, 누군 보내 주고 누군 안 보내 준다' 하는 이런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렇게 취급해도 서운치 않을거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모든 내용과 전례와 절차를 거치지 못했으니 종으로 취급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요, 양자로 취급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작자이니 이러이러한 결과에 서라고 하늘이 분부해도 여기에 반항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내용을 갖지 못한 자신인 것을 생각할 때, 불러 주고 여러분을 위해 수고해 주는 것만도 황공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나요, 안 그렇나요?

이런 기준을 모르고 왔다가 전부 다 그냥 돌아가 가지고 울고불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 운명의 결정은 자기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반드시 인연의 세계를 갖고 있는 거예요. 내가 있는 데는 사방을 갖추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와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의 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이러한 천적인 내용과 이러한 역사적인 배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러한 입장에 서 가지고 내가 이런 입장에 서기 위해서 갔다 할 수 있는, 과거와는 다른 이런 원칙을 제시해야 할 것인데, 여러분에게는 제시할 아무런 것이 없는 걸 선생님이 미리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고생길에 내세운 것입니다. 밥을 얻어먹어라, 욕을 먹어라 이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실체세계로 전개시켜 나온 게 복귀역사

그러므로 배후의 하늘이 프로를 맞춰 나가는 시대적인 혜택과 더불어 종의 시대에 동참하고, 혹은 양자의 시대에 동참을 하고, 자녀의 시대에 동참해 나가는 역사과정의 인연을 거쳐 시대적인 한계를 세워 놓고 거기에 여러분들이 동참했다는 인연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 가지고 이 자리에까지 참석할 수 있었던 여기에는 그 인연을 붙들고 온 그것뿐입니다, 인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자신의 무슨 내용을 붙들고 온 것이 아니예요. 그러한 복귀적인 인연이 돼 있으니, 시대적인 혜택과 하늘이 세워 준 내용의 인연이 있으니, 그 인연줄을 여러분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은 명령을 했고, 그 인연줄을 여러분에게 관계맺히기 위해 하늘이 분부하셨으니 그 분부한 기간에 종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양자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직계 시대까지 거쳐 가지고 거기에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편단심….

여러분의 마음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예요. 가정이 핍박해도 가정에있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부모가 갈 길을 막아도 부모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내가 아니예요. 나도 모르게 한 곳에 마음이 집중되는 거예요, 한 곳에. 그 인연을 중심삼은 거기에 내 모든 마음과 내 모든 생명의 중심은 거기에 기여해 가지고, 거기에 기점을 두고 어떠한 환경에서 나를 끌어내려고 해도 끌어낼 수 없는 심정적인 인연을 세워 놓고, 그 인연과 더불어 행동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걸어 나오는 데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도 그 핍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3년이면 3년 기간에 있어서 움직이는 식구들 앞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게 고통이예요. 무엇 때문에 고통받느냐? 여러분들도 모르게 하나님이 내적 인연을 가지고 찾아온 그 인연이 여러분과 인연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지을 수 있는 하늘이니, 이 고통을 느끼면서 그래도 하루 한때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고, 혹은 슬퍼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고, 혹은 고통을 받는 자리에서 있더라도 '아버지여! 당신이 가는 곳을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러한 조건적인 실적을 가지고 이러한 자리를 혜택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뭐 이러고저러고 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다시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으로부터 양자, 직계 자녀를 거쳐, 그다음엔 하늘의 직접 지배권 내에 있어서 자녀로서 길리움을 받아 가지고, 여기에서 하늘가정을 중심삼아 생활적인 법도를 거쳐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뭐 하늘의 생활적인 내용이, 하늘의 식구들이 생활하는 내용이 어떤지를 아느냐 말이예요. 가법을 아느냐 말이예요. 안 나와 있단 말이예요. 그건 지금까지 선생님이 혼자 걸어 나온 거예요.

아무리 복잡한 생활을 하지만 그 생활 가운데에서 남 모르는 가운데에 그러한 발판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런 내적 세계의 생활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외적 세계의 생활로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세계의 역사를 외적인 실체의 심정세계의 역사로 전개시켜 나오는 것이 복귀역사예요. 그러니만큼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든 결정은 상대가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한다

복귀역사는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나를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러한 나인데, 복귀역사로 보면 여러분이 지금 그런 입장에 서 있는데, 그러면 이제 나와 아버지를 생각해 보자 이거예요. 이제는 문제가 뭐냐 하면, 오늘 이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를 진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제 만약에 여러분이 불리워 가지고 누가 물어 보더라도, 여러분 중에 남자 여자를 불러 얘기하더라 도 그때 얘기하는 그 순간은 자기를 위해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얘기하는 게 아니예요. 반드시 그건 지금까지의 역사를 대표해서 역사적인 남성이 얘기하는 거예요. 여자면 역사적인 여성이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갑(甲)이라는 아주 멋진 남성이 있고 을(乙)이라는 지지리 못난 여성이 있다고 하자구요. '이 사람과 너와 인연이 있으니 뜻을 중심삼고 인연되겠나?'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그럴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그를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요' 하는 마음은 갖더라도 '그가 어떻고 뭐 어떻다고…'라고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말이라도 그런 걸리는 말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마음으로만 비판하는 건 괜찮아요. 그리고 제삼자에게 '누구 뭐 어떻고 어떻고, 그 사람이 어떻다는 데…' 하면서 물어 보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갈 길을 못 간다는 거예요.

작년 재작년에 있었던 예를 보게 된다면 말이지요, '옆 사람이 뭐 어떻고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던데 절대 물어 보는 게 아니예요. 전부 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사탄들이예요, 사탄들. 물어 보는 것은 내 마음 보고 물어 보고, 하늘보고 물어 보고 정성을 들여 가지고 이렇게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때는 3수의 기준을 여러분이 완결짓는 거예요. 3수의 기준을 완결짓지 않으면 4수의 기준이 안 나가는 것입니다.알겠어요? 「예」 3수의 기준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먼저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여기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가 있으면 상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가 문의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직접적인 다른 무엇 가지고는, 누가 뭐 권고하고 뭐 그런다고…. 그건 오히려 방해하는 거예요, 방해.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 모임 가운데에 일반 식구들은 전부 다 참석 못 하게 할지 모릅니다. 괜히 쓸데없이 곁들여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자기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결정은 누가 하느냐? 선생님도 안 해요. 결정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도 안 해요. 누가 하느냐? 내가 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하느냐? 이 자리예요. 이 결정은 누구 딴 사람이 하는 게 아니예요.

복귀역사를 쭉 이야기해 본다면 말이지요, 원래 남자는 해와를 창조해야 되고 여자는 아담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남자들은 해와를 만들어야 되고, 또 해와가 먼저 믿었으면 남자를 만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본래는 그래 가지고 서로 둘이 뒤넘이쳐 가지고 뜻 하나를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이 하는 것이 그 놀음이거든요?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나오는 데에 있어서 예수와 성신은 부처(夫妻)인데, 이건 뭐냐? 아버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된 것이 아니예요. 종의 부모 역사부터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양자의 부모의 역사로부터, 그다음엔 직계 자녀의 부모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그다음에 본연의 아들딸을 중심삼은 하늘이 세울 수 있는 참부모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와 같은 입장에 있으니 여자들은 전부 다 자기 남편은 자기가 길러내고 전부 다 해 가지고야 축복받는 겁니다. 그것이 안 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되거든 복귀역사이니, 그다음에 자기의 종의 시대를 거쳐 가지고 아들딸을 만들어 놓고야 여러분은 축복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지요? 「예」 원리를 알지요? 「예」 그거 안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안 돼 있으니 여러분들을 내쫓아서 고생시키는 거예요. 지금 보라구요. 축복받은 사람들을 전부 다 선생님이 죽도록 고생하라고 내모는 거예요. 지금 고생들 많이 하지요? 왜 고생시키는 줄 알아요? 고생을 해야 돼요. 여러분들도 이번에 여기에서 결정하게 되면, 결정하는 데는 거룩한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에서는 벗어나지만 하늘과 선생님 앞에는, 아직까지 원칙적인 기준 앞에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남아 있는 미비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지금 축복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까 미비한 내가 미비한 것들과 의논할 수 없다는 말이예요. 내 자신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사람이 그래요. 태어날 때도 둘이 못 태어납니다. 자기가 둘로 나올 수 있나요? 뭐 쌍둥이로 나오는 것도 형제예요. 날 때에도 혼자 태어나는 거라구요. 시집 장가 갈 때에도 혼자 가는 것입니다. 대신 가나요? 자기가 시집가고 자기가 장가가지요? 그렇게 돼 있단 말이예요. 죽을 때도 자기가 죽지 남이 죽을 수 없단 말이예요. 그건 누가 해야 되느냐? 자기가 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결정하는 것도 상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하는 것도 아니예요. 물론 부모는 소개를 해 주지요. 다 봐 가지고 소개를 해주지만 결정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또, 이번에는 하는 시간을 많이 안 들이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작년까지만 해도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예스'인지 '노'인지 물어 봐 가지고 싫다는 사람은 자꾸 밀려 나가게 해 가지고, 어느 수효까지 딱 하고는 그다음에는 전부 다 끝내지 않고 내려보낼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는 뭐 여러분들을 많이 시집 장가 보내려고 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아마 3분의 1이상은 돌아가야 되지 않나 보고 있단 말이예요. 괜히 지구장 지역장들은 자기 책임 안 지겠다고 그저 아무개도 해주고 아무개도 해주고…. 지역장 지구장들은 선생님 편이 아니고 여러분들 편이예요, 가만히 보면. 그거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 편이 되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에는 여기에 참석하지 못할 사람도 참석해 있는 경우도 있다 이거예요. 대개 남자들도 그렇지만 지금은 여자가 넘어갈 때이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줘서 1년 이상 된 사람들도 여기에 참석할 수 있게 했으니만큼 눈을 높이지 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냐 말이예요. 「예」 여러분들이 결정해야 된다 말이예요.

상대이념은 부활한 후에 이루어진다

자, 그러면 결정해야 할 나…. 여기서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시간이 어떻게 됐나요? 「아홉 시 십오 분입니다」 아홉 시 십오 분. 한 십 분이나 이십 분만 더 얘기할까요?

자, 나 자신을 가만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의 마음에 지금 이제 가만히…. 여기에 오면 내 자신이 어떻게 되느냐? 이 기간에는 우리 복귀 원리에 나와 있듯이 재부활이 돼야 됩니다, 재부활. 예수님도 부활해 가지고 상대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이지요? 알겠어요? 예수님도 성신 강림이라는 것을 오순절에 했어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영적 구원을 완결짓기 위한, 혹은 출발하기 위한 신약 역사에 있어서, 예수님 께 있어서도 상대이념이란 것은 부활한 후에 이뤄진 거예요. 그렇지요?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안 돌아갔으면…. 3년 기간이라는 것은 부활과정입니다. 부활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까지 부활하기 위한 기간을 뜻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한 번 재부활 역사로서 인간과 더불어 복귀의 역사를 쭉 다시 되풀이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여기에 있어서 이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활해야 합니다. 부활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선생님 생각 같아서는, 사실은 우선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21일이면 21일간 전부 다 금식을 했으면 좋겠어요, 21일금식, 21일금식을 전부 다 시켜도 배고픈 줄을 모르고 '가야 할 곳을 가야지' 이럴 수 있는 마음이 남아진 자라야만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 천국이라는 곳은 혼자는 못 갑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그렇지요? 천국은 혼자 못 가게 돼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반드시 상대이상을 결정짓고야 천국문을 통해 들어가게 돼 있기 때문에, 천국 들어가기 위해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복귀의 역사, 혹은 부활의 역사를, 재창조의 역사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은 천국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입니다. 가고 안 가고는 몰라요.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다는 것은 뭐냐? 축복이란 그 명사는 뭐냐? 여러분 앞에 천국문이 닫혀 있었던 것을 이 축복이란 명사를 세워서 열어 주는 거예요.

문을 열어 놓고 들어가는 데는 혼자 못 들어갑니다. 가정이 들어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들딸을 갖추어 가지고 들어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가정이니만큼 역사적인 열매의 그 모든 실적을 갖추었으니, 하나님의 6천 년 복귀역사라는 것은 1차 아담, 2차 아담, 3차 아담 시대를 거쳤으니 세 아들을 거치고 그 세 아들까지 상대이념을 세워 놓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들어가려면 자기 어머니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3대가 들어가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야 돼요. 3대를 모시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3대를 모시고 들어가고, 자기로부터, 아들로부터 3대의 인연을 거쳐 관계를 맺어야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70가정을 거느린 것이 요 3대권 내에 그 기준을 닦아 가지고 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이 축복의 연대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관계를 전부 다 갖추어 가지고야 앞으로 가정적인 시대에서부터 종족적인 시대를 넘어 가지고 세계적 무대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부활해야 될 터인데, 먼저 부활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개체 부활입니다, 개체 부활. 개체 부활 하기 위해서는 뭐냐하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순간의 자리가 여기예요. 여기에서 기도해 가지고 내가 승리해야지 승리 못 하게 되면 골고다로 가는 거예요. 골고다로 가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부활할 때는 개체부활과 더불어 환경부활의 인연을 거쳐야

여러분, 사실은 여기에 이번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이번 케이스에 못 들어가게 되면 원래는 선생님이 책임 안 져야 되는 거예요. 뭐 두 번씩 절대 그렇게 할 일이…. 그렇게 뭐 여러분들을 시집 보내기 위해서 사는게 선생님의 사명이예요? 한 번에 만나서 딱 끝나면 되는데, 그들을 간섭 해 가지고 시집 보내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이거예요. 그건 여러분 자신들이 이해할 것입니다. 인정하게 된다면 선생님의 사명은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시집 못 가게 된다면 10년이고 그것 붙들고 선생님이 뭐 그 놀음 하겠나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1차에 안 될 때에는,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3차까지 했으니 3년까지는 봐 준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에 함부로 참석하지 말라는 거예요. 두 번, 세 번까지 해서 못 가는 사람들은 그다음에는 홀아비로 살겠으면 살고 말겠으면 말고…. 그렇게 살다 죽으면 저나라 영계 사람들하고…. 3수 권내의 것은 천사장 세계에 해당되어서 영계에 가서 천사장들하고 상대 맺으면 좋아할 거라. 본래는 그러는 거예요. 이 1차에 있어서 어떻게 하든지 넘어가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라는 거예요. 부활하는 데는 내 개체가 부활하라 이거예요. 개체가 부활하는 데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체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지금까지 여러분 자신들이 완성되어 있지 않다면 회개한 나로서 올라가서 부모의 자리에까지 나가려면 어떻게 돼야 되겠느냐? 자기가 대번에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종으로서 일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종과 같이, 소새끼 같이 일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거지와 같이 일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거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구요, 3년 동안에. 그런 사람들을 전부 다 연결해 가지고 그 인연을 타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전부가.

금년에 넘어오는 이 전체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서 뽑혀 가려면 이 인연을 전부 다 밟고 가야 되지, 그 인연을 무시하게 되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기 지금 몇백 명, 수가 좀 많으리라 보고 있는데 많이 온 사람들을 중심삼고 개인주의적인 사상을 버려야 되는 거예요. 부활할 때에는 물론 개체가 부활하는 이 사명을 완결짓되, 개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인연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알겠어요? 「예」

부활하는 데에 있어서는 물론 환경적인 인연을 책임지고 부활해야 되고, 부활해 가지고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활한 후에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냐? 예수님도 부활해 가지고는 어디로 갔나요? 성신 찾아갔어요? 「아니요」 제자들 찾아갔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어서 나를 위해서 지방의 식구들이 기도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넘어가는 그 고비를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돼요.

나에게 있어서 믿음의 아들딸이 있다면 그 믿음의 아들딸이 앞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전도한 내가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전에는 못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여기에서 축복받을 수 있는 내용을 딱 결정짓고 와서, 또 여러분들의 믿음의 아들딸도 앞으로 시집 장가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책임을 졌다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와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부활할 때 개체 부활과 더불어 환경 부활의 인연을 거치는데, 예수님이 부활해 가지고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느냐? 제자들을 생각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지만서도 그 식구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나를 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그들 앞에 연대적인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수습해 놓고야 비로소 성신을 맞게 된다 이거예요. 상대이념이 생긴다 이거예요. 거 그렇게 돼 있지요, 예수님에게도?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상대를 결정한다 할 때는 무한한 고충을 느껴야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이제 여러분들이 상대를 결정한다 하게 될 때에는, 절대 여러분이 기뻐서 하는 게 아니예요. 여기서는 무한한 고충을 느껴야 돼요. 무한한 고충을 느껴야 돼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는 걸 느껴야 돼요. 얼마나 어렵고도 얼마나 힘들다는 걸 여러분이 느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일부터 심사하더라도 사실은 그날부터 전부 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발표는 사실, 그 20일날 마지막에 발표해야 돼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게끔.

그러면 얼마나 많이 쪼그라들고 얼마나 고충이 심할까요? 맨 처음에는 한 일주일 동안 밥을 못 먹어야 돼요. 밥을 못 먹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작년에 보니까 그렇대요. 맨 처음에는 밥을 해주면 밥덩이가 남아나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21일이 되면 될수록 더 못 먹어야 될텐데, 한 10여 일 지나면 그다음에는 또 잘 먹어요, 자포자기해 가지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예요. 끝날 때까지는 여러분이 전부 지금 출발하는 마음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나가는 데는 뭐냐 하면 고통을 느껴야 돼요.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고통을 느껴야 돼요. 그 기간에 있어서는 반성해야 됩니다,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그 일이 좋은 줄 알았더니 지옥이예요, 지옥. 요전에 축복받은 패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지옥이라고. 이 기간은 지옥 기간이예요. 요 21일 기간은 6천 년 역사를 전부 다 풀어 맞추는 역사입니다. 그렇지요? 삼 칠은 이십일. 만 이십 년, 이천 년 역사와 마찬가지예요.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시대까지 그 7단계를 거쳐 나오는 순서를 전부 다 탕감해 복귀하는 기간이예요. 그러니 여러분은 여기에 있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입장에 있기는 해도 그래도 현실에 오늘날 실체를 가지고 이러한 무대를 바라볼 수나 있지만, 바라볼 수 없는 저 영계에 간 영인들이 지상의 인간들과 연락을 해 가지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 것이냐 이거예요. 그걸 생각할 때 여러분은 여기에서 무한한 고통을 느껴야 된다 이거예요.

이게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예요. 고통의 자리입니다. 고통의 자리인 동시에 슬픈 자리예요. 요 순간엔 지극히 고통을 받고, 지극히 슬퍼하고, 그다음에 죽음을 각오하고 이 문제를 결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최고로 심각한 자리에서, 최고의 고통을 받는 자리에서, 최고의 슬픔을 느끼는 자리에서, 죽음을 결정하는 최고의 자리에서 반성하고 결의하면서 여러분들이 이 기간을 넘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을 넘어간 후에는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이구, 저 여편네가 얼굴이 못생겨 가지고 호박덩이처럼 생겼으니 저걸 어떻게 데리고 사노?'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이예요. '아이구, 저 사나이를 보니 저거 뭐 생전 처음 만났는데, 이거 뭐 상대니 뭐니 하지만 어떻게 사노?'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이만큼 여러분들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재부활해야 됩니다.

부활하려면, 고통 이상의 고통을 뚫고 나오려면 고통 속에 스스로 들어가 가지고 밑창으로 삐져 나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있어서는 고통으로 부활하고, 슬픔으로 부할하고, 죽음에서 삶으로 부활할 수 있는 장면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해야 느낄 수 있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고통을 받아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을 받았겠어요? 다 나오지 요? 그런 얘기는 안 할 거예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또, 예수님은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얼마나 슬퍼했겠느냐? 수많은 우리 선조로부터 예수님도 이 문을 통하기 위해서 죽음길을 갔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죽음에 밀려남이 없이 죽음을 밟고 슬픔을 밟고 고통을 밟고 나가야 된다 이거예요. 여기에서는 자기를 이겨야 해요. 최고의 고비로서 부딪쳐야 할 자기예요. 그러한 입장에서 승리적인 부활체가 돼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과거에 뭐가 없었지만 그러한 각오 밑에서 제일 어려운 환경에 섰다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 거기에서 정상적인 새로운 길이 전개돼 나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고통과 슬픔과 죽음에서 부활한 부활체가 되라

고통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슬픔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사망의 문을 닫는 게 아니예요. 슬픔을 끊으려면 그 이상의 슬픔으로 탕감해야 되고, 고통을 끊으려면 고통으로 탕감해야 되고, 죽음을 끊으려면 죽음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혹은 사탄세계의 심정을 끊으려면 사탄세계 이상의 심정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사랑하는 남편을 맞이할 생각이 있거든, 전부 다 그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우리 부모를, 혹은 친척을 사랑했던 그 이상의 마음을 세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런 자리에 나가지 못한다는 걸 알라 이거예요. 재생하는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축복의 명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이번에 여러분들이 잘 이겨 나가야 되겠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절대 이건 뭐….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이 추방해 버리라구요. 그건 사탄이예요. 그렇잖아요? 시집 장가 가는 데 누구 심부름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예요, 사실은. 선생님도 다 여러분의 심부름 해주는 거예요, 사실. 이 심부름을 앞으로는 안 해준단 말이예요. 영계의 여러분의 조상들이 앞으로 해주지요. 원래는 여러분의 직계 조상들이 해줘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그렇게 알고 여러분 자신들이 결정해서, 그러한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이러한 새로운 성체가 돼 가지고 여러분의 실체,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알겠어요? 「예」

부부 상봉이 무엇이냐 하면 6천 년의 꽃이예요, 꽃. 이걸 붙들고야 아버지 앞에 나가는 거예요. 이걸 붙들고야 타락한, 사랑으로 엉클어진 곡절을 사랑의 인연으로 푼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거 혼자 사랑해서 혼자 풀 수 있나요? 그래서 부처끼리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에는 말이지요, 앞으로 혼자 오는 사람들은 여기 본부의 선생님 앞에 직접 못 와요. 선생님이 직접 지도하는 장소에는 못 와요. 앞으로는 이제 부처끼리 오면 좋겠어요.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해서 착착 부처끼리 앉았으면 좋겠어요. 그렇잖아요? 얼마나 하늘도 그걸 좋아하겠어요? 지금까지는 남자 여자 전부 다 이렇게 떡 갈라 가지고 앉았었지만…. 부처끼리 앉아야 뭐 한 줄은 남자이고 한 줄은 여자고 그렇지요? 그런 예배, 세계에 없는 그런 예배를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래 가지고 여기 본부는 부처끼리가 아니면 못 가는 교회라고…. 사실 그래야 돼요. 천국은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것 조금 지나 가지고 아들딸을 낳으면 가정적으로 모이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모여 가지고 뭐 예배보고 그러는 줄 알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잘 해먹고 다 이렇게 살고, 힘껏 일하고 다 이래 가지고…. 그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출발기준이니만큼, 여러분들이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사망에서 부활한 승리적인 부활체가 되어서, 지상에 모처럼 허락한 이 터전 위에서 축복받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님, 까마득히 멀고 한없이 험한 복귀의 길 앞에 그 누가 슬픔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그 누가 고통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그 누가 사망의 보호자가 되었나이까? 내가 자라고 있는, 지금의 나를 중심삼은 가정은 하늘의 혈통적인 가정이 아니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것이 알고 보니 슬픈 명사였다는 이 한 사실이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 것입니까?

부모를 바라볼 때 고통스러운 자기 자신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슬픔의 자신으로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생명적인 인연을 각오하고라도 그의 정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곡절에 사무친 것이 오늘날 인류의 심정의 역사였음을 알았습니다. 이 심정의 역사를 더럽혔기에, 당신은 이것을 찾아올 때까지 무한한 곡절의 노정을 거쳐 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황공하옵나이다.

고통의 왕자가 메시아였으며, 슬픔의 왕자가 메시아였으며, 사망의 왕자가 메시아였음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남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낙망하지 아니하였고, 남 모르는 슬픔 가운데에서도 주저하지 아니하였고, 남 모르는 죽음의 고비에 있어서도 하늘 앞에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잃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너무나 경거망동했던 자식들이었습니다. 자기 일신을 살펴 놓고 당신을 배반할 때가 많았사옵고, 자기 개인적인 고통을 제껴 놓고 하늘의 고통을 위해야 할 것이었사오나 하늘의 고통을 제껴 놓고 내 고통을 염려하던 저희였사옵니다. 하늘의 슬픔을, 하늘의 죽음길을 제껴 놓기 일삼던 저희들을 이제 불러 놓았사오나, 이 부족한 것들을 모아 놓고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겠사옵니까?

그러나, 하늘이 세우시옵고 하늘이 찾아오시옵고 하늘이 닦으신 거룩하신 승리적인 터전 위에,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불리워서 당신의 시대적인 혜택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은사의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생각하게 할 때, 저희는 여기에 저희의 부족함을 중심삼고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저희의 부족한 자체를 지극히 서러워해야 되겠고, 저희의 부족한 자체와 더불어 사활을 결해 싸워야 할 자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여기에 승리적인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아버지가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한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다시 여기에 하늘의 복귀적인 내용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안팎의 모든 조건을 염려하는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긍휼을 바라옵니다. 저희 스스로 갈 수 없사오나 식구들이 닦아 놓은 터전 위에서, 스스로 서로서로가 협조하는 자리에서 인연을 타고 올라가 하늘이 세워 주신 참다운 가정의 중심에까지 심정적인 인연을 연결시켰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자기 스스로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런 자리에서 하늘의 약속과 하늘의 승리적인 재출발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으로 맺혀 있던 모든 사실이 오늘날 저희들을 중심삼고 사랑으로 풀릴 수 있는 이러한 시대적인 새로운 출발의 기준을 허락하여 준 것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제부터 시작되는 삼칠일 이 기간을 친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고 안 가는 것은 저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이러한 기간이 되게 하시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누구의 권고를 받지 않고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이 거룩한 사랑, 거룩한 상대적인 문제를 전부 직접적으로 해결하게 하시옵소서 하늘을 입증하고, 땅을 입증하고, 혹은 만민을 입증한 자리에 서서 해결한 후에는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을 귀하게 볼 수 있고, 이것을 가치 있는 자리에서 결정지어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부는 뜻하신 경륜 가운데에서 승리의 한 날로서 거둬지게 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그동안 이 길을 찾기 위하여 고생한 모습, 이 뜻을 위하여 고생한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하고 이 자리에 모인 줄 압니다.

이번부터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련을 진행할 것입니다. 이번 수련은 어떤 특정한 숫자를 맞추기 위한 수련회가 아닙니다. 소생과 장성 기준이 지나갔으므로 이제부터는 완성적인 기준입니다. 따라서 천적 기반을 넓히기 위한 것일 뿐 어떠한 특별한 천적인 프로그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종족 형성을 위해서 자유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인식의 중요성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싸움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싸움입니다. 인간과 제물이 싸웠고, 인간과 제물이 합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면 최종적인 문제는 무엇이며 인생의 종착점은 어디냐?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인생의 종착점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영계에 가 있는 모든 사람들도 상대를 찾아 목적을 이루는 것을 최대의 소망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되기 전에는 이상적인 출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모였다는 것은 엄청나게 귀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 앞에 잘 순응하고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 또 넘어가더라도 승리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넘어가느냐 패자의 모습으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각 지구에서 불림을 받았기에 그 지구 전체를 대표한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종의 역사를 거치고 양자의 역사를 거쳐 직계 자녀의 명분을 얻기 위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거쳐야만 만물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도 성신도 이것을 소망하고 나왔지만, 영과 육이 떨어져 있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영과 육이 함께 있습니다.

남자는 예수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하고, 여자는 성신을 대신해서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합니다. 그런 거룩한 존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예수의 사명을 다했다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고, 여자는 성신의 사명을 다했다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을 알고 보면 무엇보다도 복될 수도 있고 두려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남자는 모든 남성을 대표한 존재이고, 여자는 모든 여성을 대표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안다면 먼저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 나는!’ 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원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들어올 때에는 어떤 제왕이 식장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엄숙해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았으니 종으로서의 기준을 통과하여 양자로 넘어가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또한 이 양자의 위치에서 직계의 아들딸로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엄청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식구의 한 사람으로 서는 데도 엄청난 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느 한때에 종으로서 충성을 다했고, 양자로서 충성을 다했고, 직계의 아들딸로서 충성을 다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까?

지방에서 왔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불러 주는 것만도 황공한 것입니다. 이번에 그냥 돌아가서 울고불고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참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어떠한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인연의 줄을 붙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심정의 한 점을 중심삼아 나오다가 이 자리까지 나온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따라겠다고 한 그 인연으로 인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종으로부터 양자로, 양자로부터 직계의 아들의 자리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자리로 나오기 위한 필요한 법을 압니까? 선생님이 그런 것을 모르는 가운데 해 나왔겠습니까? 우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축복의 의의

그러면 내 자신과 아버지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남자, 혹은 여자에게 말을 할 때 개인으로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남성을 대표한, 또는 여성을 대표한 존재로서 얘기해야 합니다.

수련기간에는 누구에 대해서 비평도 하지 말고, 남에게 물어 보지도 마십시오. 물어 보려면 자기 마음에게 물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3수의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은 선생님도 하나님도 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본래 남자는 여자를 창조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창조해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종과 양자와 직계의 자녀를 거쳐 참부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받은 사람을 죽도록 고생시킬 생각입니다. 사람은 날 때도 혼자이고, 시집 장가 갈 때에도 혼자 가고, 죽을 때도 혼자 죽습니다. 부모도 소개만 하지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갈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기간은 부활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상대, 즉 성신도 예수님이 부활한 후 오순절에 강림했습니다.

선생님 생각 같아서는 전원이 20일 금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배고파하지 않고 남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은 혼자서 갈 수 없습니다. 축복은 천국 문을 훌쩍 넘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정적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3대의 인연을 가지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야곱의 70가족도 3대가 합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애급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축복받기 위해서는 개체의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3차의 섭리를 하셨으니 3년간은 봐주십니다. 개체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과거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전체의 인연을 따라가야 합니다. 개체가 부활하려면 환경적인 인연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부활한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여러분을 위하여 뒤에서 기도해 주고 있는 지방 식구에게로 가야 합니다. 사실은 자기가 기른 믿음의 아들딸이 자라서 축복을 받을 만하게 된 후에 자기의 상대에게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후에 성신 앞으로 갔습니다.

재생의 길

상대를 결정하는 데는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고통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끝이 날 때까지 출발할 때와 같이 조심스럽게 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번 20일 기간은 6천년 역사와 때를 맞추는 중요한 기간입니다.

무한한 고통의 자리에서, 동시에 지극히 슬픈 자리에서, 또한 죽음을 각오한 자리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최고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맛보는 자리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고, 불평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얼마나 슬퍼하셨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거쳤습니까? 여러분도 제일 어려운 환경에서 그러한 고통을 받아야 새로운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자리는 고통의 문을 닫게 하고, 슬픔의 문을 닫게 하고, 죽음의 문을 닫게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최고의 고통, 최고의 슬픔, 최고의 죽음을 느끼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재생의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자신이 걱정에서 부활하고, 고통에서 부활하고, 슬픔에서 부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상대를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은 자기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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