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후손이나, 혹은 현세에 사는 자기민족이나, 혹은 세계 인류 앞에 자기를 세워 가지고 어떤 인연을 맺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한 존재를 세워 놓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가, 혹은 무슨 권고를 하든가, 혹은 무엇을 호소하든가 할 때에, 그 앞에 절대 순응해 주기를 사람은 누구나 다 바라는 거예요. 사람이 그러하듯이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도 그러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어떤 하늘이냐 하면, 오늘날 이 땅 모든 수많은 인류들을 대해서, 또 지으신 모든 만상세계를 대해서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을 하고 싶고, 권고를 하고 싶고, 충고를 하고 싶은 하나님이예요. 또, 하늘이 귀하게 여기고 하늘이 존중시 여기는 것이 있으면 그 존중시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수천만 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존재세계가 존재할 때까지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한 것을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하늘이요, 또 남겨 주고 싶은 하늘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여 줘야 돼요. `나는 이러한 분이니,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니 창조하신 분으로서 지음 받은 모든 만물 앞에 이러한 것을 보여 준다' 보여 줄 것이 있어야 돼요. 하늘은 지금까지 우리 인간앞에 전체를 보여 줬고, 우리 인간 앞에 전체를 보여 준 동시에 전체를 말하고 또 전체를 남겨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하늘도 수많은 인류들 앞에 찾는 것이 무엇이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완전히 내가 지으신 이상의 세계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지도 못하였고, 그러한 세계를 맞을 수 있게끔 말하지도 못하였고, 그러한 세계를 영원히 아담 이후에 수많은 후손 앞에 남겨 주지 못하였던 것이 한이었다는 얘기예요.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오면서, 아담으로부터 타락한 이 6천 년 기나긴 세월을 지내 오면서 하늘이 우려했던 것은 참다운 심정을 터놓고 마음과 몸이 간격이 없는 동시에 몸 마음이 하나되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국가, 세계, 온 인류,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온 인류와 더불어 간격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이 참답게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하늘이 참답게 인류 앞에 보여 줬느냐?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또, 하늘이 참답게 남겨 주고 싶었던 모든 것을 그러한 인류들을 맞이하여 남겨 주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럼 복귀섭리라는 것은 무엇이냐? 그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전개시키고, 가정을 단위로 하여 종족을 거쳐, 민족을 거쳐, 국가를 넘어서 세계, 나중에는 하늘땅까지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이 복귀섭리의 역사요, 하늘의 내적인 고충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들은 재료가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하늘은 재료로 삼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종족을 동원해서 그 가운데서 재료를 수습해 나왔다 이거예요. 재료를 수습하는 내용은 무엇이냐? 그 내용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딴 게 아니예요. 진정히 말할 수 있는 사람, 진정히 남겨 줄수 있는 사람, 진정히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시대를 중심삼고 개인에서 보여 주고, 그런 가정을 단위로 하여 수많은 가정들 앞에 보여 주고, 한 종족을 거쳐 한 민족을 거치고 한 국가까지 내세워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온 세계 각각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 앞에 나타내고, 보여 주고, 남겨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라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명명한 그날부터 아브라함이라는 한 자체는 신앙이라는 이런 것을 중심삼아 남겨줄 수 있는 존재요, 보여 줄 수 있는 존재요, 또 그다음에 자랑하고 말하고 싶었던 그런 존재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개인을 중심삼고 이 아브라함의 혈족을 중심삼아 야곱가정을 단위로 하여서 가정적인 인연을 넓혀 나가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어 나온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뭐냐? 본래 하나님께서 말하고 싶었고 남기고 싶었고 자랑하고 싶었던 그러한 신앙 기준에 입각하여, 택함받은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그 후손들은 하늘 앞에 전체가 보여 질 수 있고 하늘앞에 전체가 남겨질 수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민족이 되어야 되고, 그러한 한 국가, 유대 나라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되지 못할 때는 도리어 축복한 것이 화로 변하여 나가는 거예요.
야곱은 가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요, 모세는 민족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요, 예수는 세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자입니다. 보여 줄 뿐만이 아니라 또 하늘이 진정한 이념을 중심삼아가지고 자기 소원의 모든 회포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대표자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위업으로 지었던 모든 만물을 그냥 넘겨 주려고 하였던 그러한 존재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그런 역사노정을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과연 이세계 앞에 예수님을 내세워 가지고 진정히 전부 다 말을 하였느냐? 성경이 그걸 증거하는 거예요. 예수님 자신도 사랑하는 제자를 대해서 '내가 일러 줄 것이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치 못한다'고 하신 말씀을 보다라도 예수님 자신도 이 땅 위에 세계적인 대표자로 와 가지고 사랑하는 제자들 대해서 다 말씀 못 한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지 못한 그런 세계를 대해 하나님이 말씀할 수 있겠느냐? 말씀 못 하신다 이거예요. 예수님이 보여 줄 수 있는 이런 인류가 못 되었는데 하나님이 보여 줄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너희들은 천추만대 남길 수 있는 대표자라고 축복해 주지 못한 그런 존재들을 오늘날 이 땅 세계에 제아무리 잘 믿는 신앙자가 있다 하더라도 남겨 줄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소원과 혹은 모세의 소원과 야곱의 소원과 아브라함이 바라던 소원이 완전히 달성됐느냐 하면 달성되지 못하였다는 거예요. 이들의 소원이 달성됐더라도 그 달성된 기반 위에 하나님이 권고를 하고 새로운 무엇을 명령하고 인연을 맺어야만이 이 모든 것이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섭리의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을다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제자들을 가져 가지고 축복하지 못한 이런 입장에 선 지금까지의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늘이 자랑할 수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그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소원을 성취 못 했다는 거예요.
신앙이라는 역사를 세워 나오면서 하늘이 섭리하시는 구원섭리 앞에 신앙자로서의 목적을 달성했느냐 하면, 아니예요. 또, 하나님으로서 구원섭리의 목적을 달성했느냐? 아니예요. 전부 다 미달성이예요. 미완성, 미급에 머무른 채 역사는 흘러가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하늘이나 땅이나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신앙자들이 나와서 수많은 오늘날 신앙의 세계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자는 누구뇨? 하나님이 진정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는 누구뇨? 사람을 세우서 천추만대에 남겨 주고 싶고, 이 사람을 영원히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 것이냐? 이것이 끝날에 주께서 오실 때에 남아질 수 있는 참다운 신부의 모형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랑할 수 있고, 남겨 줄 수 있고, 말하고 싶고, 보여 줄 수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겠느냐? 오늘날 이 땅의 누구같이 잘먹고 잘사는, 권세나 명예에 있어서 누구나 우러러볼 수있는 그런 사람이냐? 그러면 오늘날 어떤 교파를 가지고 있고 그 교파를 지도하는 책임자냐?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주권자냐? 그거 다 아니예요. 그거 다 아니예요.
왜 그러냐?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끝날에 있어서는 반드시 심판이라는 명사 앞에 청산당해야 할 것이 역사의 운명이요, 인류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들이 소망하고 있는 모든 조건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충이라면 충, 효라면 효, 열이라면 열이라는 겁니다. 효성이라면 최고의 효성을 해야 할 것이며, 또 충성이라면 최고의 충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열녀가 된다면 최고의 열녀가 되어야 할 것이예요, 신랑 앞에.
그러면 충ㆍ효ㆍ열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돈이 많다고 충신이 되고, 세상에서 갖춘 모든 것이 남부럽지 않은 입장에 섰다고 해서 효를 갖출 수 있으며 열을 갖출 수 있느냐? 그건 아니예요. 그건 아니예요.
그러면 참다운 효와 충은 어디서부터 벌어질 것이냐? 없는 가운데서 부르짖는 충, 없는 가운데서 나타난 충, 어려운 가운데서 이루어진 충, 없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효, 없는 자리, 어려운 가운데서 이루어진 효, 이것만이 역사에 남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게 천리의 원칙이예요.
여러분이 각 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때에, 그 나라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국가의 운명과 더불어 생사지권을 같이하여 국가의 어려움을 자기의 생명과 더불어 바꾸기 위해 나간 사람들이예요. 반드시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 가운데서 이름을 남겼고, 또 고통스런 가운데서 이름을 남겼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효와 참다운 충을 갖춘, 이제 말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고, 진정으로 남겨 주고 싶고, 진정으로 보여 주고 싶은 그러한 사람, 그러한 신앙자, 그러한 참다운 아들딸은 어디서부터 찾을 것이냐?
보라구요. 노아를 보더라도 노아도 역시 그런 길을 갔고,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야곱을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모세를 보더라도 그런 길을 갔고, 오늘날 만민을구하기 위해서 오셨던 메시아 역시 그런 길을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왔다 간 2천 년 역사가 지나간 이후 오늘날의 기독교가 순교 역사를 상속해 나온 모든 그 인연은 무엇을 통해 연결돼 있느냐 하면, 죽음과 고통과 눈물을 통해서 연결되어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하여 오늘날 참다운 후손을 맞이하여 역사적인 모든 전체의 소망을 걸고 다시 상속하여 하늘이 남겨 준 소원, 인류가 찾아 세워야 할 소원을 해원해 주기를 지금까지 왔다간 수많은 충신, 효자, 열녀는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끝날에 처해 있는 오늘날 신앙자들의 태도는 뭐냐? 역사적인 엄숙한 전체 재료는 인류 누구나 전부 다 소망하는 재료요 하늘이 바라는 재료이니, 이런 내용의 재료를 홀로 상속받아 자기 일신을 통하여 이것을 드러낼 수 있고, 일신을 통하여 이것을 상속받아 세워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 신앙자의 바라는 소원이 되어 있고, 하늘이 바라는 소원이 되어 있다 이거예요.
오늘날 어려운 역사를 지닌 사람들은 자기 과거의 선조를 팔아먹는다 거예요, 뭐 우리의 문화는 어떻고 어떻니 어떻니 하면서 말이예요. 선조를 팔아먹으려면 선조를 팔아먹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돼요. 그 시대를 대신하여 현세면 현세에 있어서 선조를 팔아먹으려면 선조를 팔아먹는 이상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선조를 팔아먹어야 그 선조들이 좋아하지, 만일에 현세의 그 이상의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선조를 팔아먹으면 선조가 저주한다는 거예요.
일개국의 역사, 흑인 세계의 문화사적인 역사노정에 있어서 자기의 민족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역사를 가졌다는 어떠한 민족이 있다면 나는 그 민족 앞에 대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네가 현세에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가져 가지고 자랑하느냐? 그렇다면 응당히 옳을 것인데, 그렇지 못할 때에는 비판받아야 될 것이다' 하고 말이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구원섭리역사는 면면히 어길래야 어길 수없는 그러한 역사적인 기반을 통하여, 6천 년 기나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찾아왔는데 오늘날 이러한 역사를 붙들고 자랑한다는 거예요. 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랑한다는 거예요. 자랑하는 데는 선조들이 바랄 수있는 후손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 역사의 전모를 알아 가지고 자기 선조들이 소망하는 그 입장에 입각하여 그 전체의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입장에 서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조들도 고맙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하늘도 역시 그러한 후손에게는 복을 준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는 참패의 역사예요. 여러분, 2차대전 당시에 히틀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6백만이 학살당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불쌍하지만 역사적인 모든 전부를 다시 한 번 회상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선조들이 바라는 소망의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책임 감당을 못 했으므로 죽음으로서 감당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 그렇게 좋지 않게 생각해요.
그 역사는 시대가 흐르면 흐를 수록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더 큰 세계사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여기에 섭리의 내용과 하나의 인연을 맺게끔 흘러 나가는데, 그 인연맺는 데 있어서 책임을 하지 못하게 될때는 비참하게 되는 거예요. 불러 세웠던 사람이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그 사람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 그게 복귀역사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복이라는 것은 공적이예요. 복을 받고 나서 그 책임을…. 복이라는 것은 민족을 위해 주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 주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전체의 뜻을 위하여 복이라는 것은 인연을 맺게 되어 있다 그 말이예요. 복은 자기 일대의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어떤 종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어진 복이 아니예요. 세상 복을 받아 가지고 큰소리 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 이거예요. 두고 보라는 거예요. 오래 못간다는 거예요. 복을 받았으면 복받은 만큼 그 복을 준 하늘의 소원이 있을 것이고, 복을 민족을 대표해 주었으면 민족 대표한 사명적인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그 복이 크면 클수록 민족의 운명과 같이해야 돼요.
오늘날 세계적인 재벌들을 가만 보면 말인지요, 그 국가 주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보조를 취해 나가는데 그건 불가피한 현상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복이라는 것이 좋은 거예요. 좋은 것이지만 복은 전체의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하늘의 선민이예요. 이제 말한 거와 같이 이런 전체의 내용이 보여 주고, 자랑하고, 혹은 진정히 남겨 줄 수 있으며, 진정히 하늘의 전폭적인 모든 것을 하늘이 권고할 수있는 이런 전체적인 축복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나아가는 책임을 짊어졌었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축복이 인류를 위한 축복인 줄 몰랐고, 그축복이 만민을 위한 축복인 줄 몰랐고, 그 축복이 하늘땅을 위한 축복인 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망하게 되었던 거예요.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잘살기 위해서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관념보다도, 오시는 메시아는 하늘땅을 위해 오시는 분이니 하늘땅을 복받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진정으로 모셨던들 그 민족은 하늘땅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지기 전에는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민족을 위주해서 메시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민족을 위주해서 나타나지 않은 메시아를 잡아죽이고 망했다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도 앞으로의 자녀들을 길러 세우게 될 때 어떤 사람으로 기를 것이냐? '너는 이 가정을 위해 태어났고, 네 아비 어미를 위해서 태어났으니 아비 어미를 위해서 살라' 하면서 기르지 말라구요. 어머니 아버지 아니예요. 만일에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공적인 입장에 있어서 복을 받은 사람이 자식에게 `너는 부모를 위하여 효성을 다하라'고 해 가지고 효성을 받는 그 아비 어미가 있다면 그 아비 어미는 자기 아들딸 가는 길을 막는 아비 어미라는 거예요.
`나에게는 이러한 복을 하늘이 주었다. 너는 나보다도 큰 이 민족뿐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소유물과 재산을 써라.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위해서 이것을 남겨라' 한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은 하늘이 옹호해 준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은 그랬기 때문에 망했다는 거예요. 자기네 민족만을 위한 메시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위해 나타난 메시아가 못 되니 잡아죽이고 망해 버린 거예요. 그렇지만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오시는 메시아는 민민을 위한 메시아라고 믿었던들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안 깨진다는 거예요.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에 선생님은 여러분들 앞에 어떤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하느냐? 통일교회라는 요 간판 밑에서 사는 여러분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하늘땅을 넘어서 인류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위하고, 외적으로 위하는 입장이 아니라 심정을 넘어서 가지고 위할 수 있는 이런 이념적인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부르짖고 나온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말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보여 주자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뭐냐? 하늘땅을 위해서 남겨 주자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삼천리 반도에 태어나 가지고 싸워 나오는 , 투쟁해 나오는 목표라는 거라구요. 여기에 합당치 않은 자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의 원수예요. 맹목적으로 원수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예요. 최고의 복을 받으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들을 몰아 민족적인 시련시대에 있어서, 민족적인 시련시대에 있어서, 학춤을 추고 나가자빠질 사람들은 망해 버려야 된다구요.
지금이 국가와 민족의 시련시대예요. 우리는 국가를 위해 나가는데 이런 시련의 도탄중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한 세계적인 시련 도탄이 내 목전에 다가와도 남아진다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민족이 현재 당하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 이 느끼는 위기에서 후퇴해 버리고 낙망해 가지고 나가자빠지는 그런 사람은 필요 없다이거예요.
우리는 이보다 더한 세계적인 위기, 하늘땅이 중심을 못 잡고 안팎이 바뀌어지는 이런 혼란 중에서 가더라도 나는 설 자리에 선다고 할 수 있는, 우주적인 위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대노하는 심판 도상에 있어서도 자기의 위치를 세워 심정기반을 중심삼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자격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자격자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소원이예요.
하나님이 찾아오는 길은 눈물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일 것이냐?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 통일교회의 소원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소원도 그렇다는 거예요. 끝날에 7년대환란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요 7년 대환란 이 민족적인 환란이예요? 아니예요. 세계적인 대환란이예요. '그저 이 땅 위의 모든 돈 많고 잘난 사람이 꼼짝못하게 전부 다 보따리 둘러멜 수 있는, 세상이 동강나는 7년 대환란이 한번 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여러분 바라야 된다구요. 잘났다는 사람 7년 대환란이 와 가지고 어떻게 되나 보자 이거예요. 선생님이 감옥 생활할 때에 사회적인 명사니 어떤 종교적인 대표자들이니 하는 사람과 같이 살아 봤지만 그 사람들은 다 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예요.
하늘이 끝날에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는 무리는 어떤 무리며 지금까지 주고 싶었던 것을 줄 수 있는 무리, 지금까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러한 무리는 어떤 무리일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무리는 저기 '하! 내 나라 '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요즘 미국이면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자기 나라 중심삼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의 국가 예산을 3분의 2를 남을 줄 수 있어야만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는. 그런 세계가 되어야 돼요. 그러한 정책을 세우는 민족 아니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거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면 길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그거 내용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는 아직까지 자기 위주한 세계예요. 자기 위주한 이런국가 체제예요. 자기를 위주한 사상 체제예요. 그런 사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요, 그런 국가가 하나님이 세워 준 국가라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언제 자기들이 세운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나님이 해줬어요? 언제 국왕의 취임식을 하나님이 해줬어요? 그러기에 이런 세상은 어차피 지나가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세상에서 제아무리 자기 주권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하늘이 보여 줄 수 없는 주권이요, 제아무리 잘난 민족, 혹은 역사, 혹은 주의 사상의 역사를 가졌더라도 그 역사를 천추 만대에 남겨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그들을 붙들고 사정을 할 수 없는 것이니 그건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무리를 취할 것이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힘찬 생명의 인연은 맨 깊은 가운데 박혀 있는 뿌리라는 거예요. 맨 나중에 죽어 버린 것은 깊은 가운데 박힌 뿌리라는 거예요. 죽을 때 어디서부터 죽어 나오나요? 뿌리서부터 죽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부터 죽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생각지도 않은, 이 인간들이 사망의 세계를 창조하는 깊은 곳에서, 남아진 하나의 뿌리가 그 죽을 밑창에서 인연을 맺고 따라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는 길은 무슨 길이냐? 눈물의 길, 고통의 길, 슬픔의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천륜이 세워 놓은 원칙적인 섭리의 방향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방향에 입각하지 못한 사람이나 민족은 제거되는 거예요. 역사가 심판하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심판하지요.
그러면 오늘날 수많은 세계 국가 앞에 있어서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냐? 그런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온, 하나님이 찾아오는 섭리의 방향을 알아서 연결시켜 가지고 앞으로 세계적인 기준을 향하여 가자, 천도가 세워 머무를 수 있는 최고의 목적점을 향하여 가자 하는 민족입니다. 그 가는 데에는 주의 사상이 문제가 아니예요. 민족 관념이 문제가 아니예요. 자기 위주한 가정 관념이 문제 아니예요. 이걸 다 초월하여 하나님 중심삼은 국가 관념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의 관념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 관념, 하나님을 중심삼은 자기 관념을 갖고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태연하게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그런 무리는 앞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문화사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민족이 될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틀림없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한 무리들을 만들어 갖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런 무리를 먼저 찾아갈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무리가 있단다면 하나님이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너한테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라고 하더냐, 이놈아!' 그러겠나요? `야 이놈아, 내가 언제 그러한 이념을 세워 그러한 방향으로 가라고 하더냐? 나 몰라 이 지식아! 왜 왔어? '하고 하나님이 그러겠나 말이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견지에서…. 뭐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견지에서 찾아와야 되는 거예요. 지금 보고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요즘 뭐 미ㆍ소관계 때문에 복잡해요? 그건 내가, 말하지 않아요. 미ㆍ소 관계보다 이제부터 십년 후에, 삼십 년 후에, 그때에 말할 수 있는 무리들은 어떤 무리냐? 그때에 말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이것 가지고 말하자는 거예요.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콘크리트를 칠 수 있는 무리, 제일 밑창에 가서 거기에서 모든 요소를 , 모든 좋을 수 있는 요소를 전부 다 가져 가지고 말없이 실천하는 패들이 있다면 그거 무서운 패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낼 것이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통일교회 가는 길 따라가기 힘드니까 단단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돼요. 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졸라매야 되게 돼 있어요. 그래 가지고 뭐 좋은 옷 입고 못 가게 돼 있거든요. 가정이면 가정 식모 발맨 끄트머리서부터 출발이예요. 여러분 식모를 잘 부리지요? `얘, 물 가져 와!', `예이, 상감님' 그거 다 시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새로운 사상적인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저 똥 푸러 다니는 사람들 발 끄트머리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거기서부터 어디까지 나갈 것이냐? 거기서부터 자기를 닦고 어디까지? 세계 끄트머리까지 갈 수 있는 이러한 시련과정을 거쳐 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들어와서 가만 알고 보면 안 갈 수 없어요.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산다고, 젊어서 한 때인데' 한다구요. 그거 염려하는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거예요. 오지말라는 거예요, 여기.
여러분 생애는 여러분이 책임지니까 여러분이 제일 좋을 수 있는 때를 수판을 튕겨 다 따져 보고 어떤 때가 좋은가 맞춰 가지고…. 장사도 수지가 맞아야 돼요. 오늘날 신앙 노선도 말이예요, 자기 일생을 두고 `나 요런 때 간다'고 하는 데, 그때 가서 한번 맞춰 보라는 거예요. 못 맞춰요. 일생에 한번밖에 못 맞춰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이 지금 잡아다가, 들어와 걸려들기만 하면 고생 바가지가 떨어지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녀석들은 따로 취급한다구요.
자, 그러면 고생시켜서 뭘할 거예요? 선생님 배에 기름을 찌우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가지고 뭐…. 하늘이 슬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원하지 않는 것을 그렇게 했댔자 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될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이때에 하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천 사람의 원수가 있으면 천 사람의 원수 앞에 가 가지고, 기필코 이제 이런 한때가 오거늘 완전히 원수 갚기 위해서는 원수 앞에 시련을 당해야 돼요. 그게 하늘의 작전이예요.
원수의 것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천사람의 원수를 한때를 맞이하여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는, 말도 못하고 얼굴도 들 수 없을 만큼 스스로 머리 숙이고 항복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천 사람 앞에 수욕을 당해야 돼요. 그저 입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수욕을 당해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늘이 내세워서 `야 아무개야!이러한 사명과 이러한 뜻과 이러한 내용을 가져 가지고 너의 집을 방문했고, 너를 위하여 너의 자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 너는 어떠한 행동을 했느냐? 이러이러한 행동을 했고, 너는 개인적이요, 너는 국가를 무시했고…' 하신다는 겁니다.그런 사람은 걸려 들어간다는 거예요.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이라고 한 것까지 전부 걸어 들어간다는 겁니다. 천 사람, 만 사람 앞에 수욕을 당하다가 한날에 가 가지고 원수를 불러 세워 놓고, 하늘이 그 모든것을 전시해 놓고 옳은 것은 어떤 것이고 그른 것은 어떤 것이냐를 따지는 거예요. 누가 대답하느냐? 하나님이 대답하는 거 아니예요. 사탄을 불러다 놓고 대답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개인을 찾아올 때에 하늘을 위하다 당한 그 수욕을 그런 내용을 들고 개인 대해서 하늘이 제시하게 될 때에, 그 제시한 내용에 대해서 사탄 원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들 앞에 있어서의 죽을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런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민족을 거쳐서 세계까지 나온 거예요. 기독교라는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제물 되어 나오는 거예요.
이 제물 되어 나온 기독교 그 자신들은 세상이 오는지 가는지 지금 낮잠 자고 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되는지 분수를 알아야지요. 분수를 알아야지요. 뭐 예수 믿고 천당가겠어요? 그렇게 간단하면 내 통일교회를 만들지 않았어요, 간단하다면. 남은 쉽게 가는 데 왜 하필 어렵게 가려고 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만 보는 것이 다르다 이거예요. 아는 것이 다 틀리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수많은, 천이면 천 명의 원수 앞에 수욕을 당해도 꺽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꺾어지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천의 원수 앞에 수욕을 당하게 할 계획이 있는데 구백 구십 구까지 갔다가 하나 못 넘기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 하나는 누가? 이 뜻을 계승하여 충성하고자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구백 구십 구 기반 위에 하나 함으로써 복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끝날에는 빼앗는 패가, 천국은 힘쓰는 자가 복받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염려하는 것은 뭐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어떤 사명을 짊어진 하나님의 뜻과 책임적인 분야에서 책임을 해야 된다는 걸 염려하게 될 때에, 만일에 하나님이 수많은 인류 앞에 오늘날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고생하는 이상의 고생을 하기를 바란다면 이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야, 이젠 됐으니 허리띠를 풀고 자, 네 활개 펴고 잠자라!' 그게 사랑 같지만 알고 보면 아니예요.
수많은 국가 앞에, 수많은 종족 앞에 하늘이 세우는 이 길을 넘고 가서도, '야, 이젠 쉬어라' 할 때 `아니요, 내가 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오기를 하늘은 말은 하지 않지만 내심적으로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앞에 책임 맡겨진 이 사명적인 분야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통일교회가 현재에 움직이는 요 상태로서 만족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 되겠느냐 이거예요. 그래 선생님은 `아, 그렇습니다' 하는 대답을 못 해요. `아닙니다' 한다구요. 만일 여러분이 가다 못 가게 되면 이들을 다 내쫓고 외국 사람을 끌어다가 이 놀음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 다 쌓아 놓고, 일해 놓고 가는 사람이 되면 되는데, 그냥 가는 사람은 종이예요. 사는 사람이 못 되고 가는 사람이 되면 종이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응? 「……」
여러분들이 이제 기도할 때에 `나는 원수 앞에 강하게 나가겠습니다. 내 배후에는 부모가 있고, 내 배후에는 우리 종족이 있고, 우리 민족이 있고, 내 배후에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명을 갖고 이들을 대표하여 나는 하늘 앞에 세움 받았습니다.' 해야 돼요. 그러니 시련 도상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나의 후대 앞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연 되어진 것을 남겨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맨 나중의 끝날에 가서 자기의 선조의 거룩하신 그 남겨진 혈통적인, 혹은 자기 공로적인 그 무엇을 가져 가지고 감사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지 않으면 선조로서의 책임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견지에서 볼 때에, 그러면 어떤 길까지 가야 되느냐?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도. 지금도 그런 생각이예요, 지금도. 환경적으로 벌어진 모든 것이 전부 옛날과 다르다 해서 거기서 `됐다'고 안식해요? 아니예요. 그거 아니예요. 그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우리 앞에 부여해 준 가야 할 길이 크니만큼 어느 기준까지 오기를 바라느냐? 어느 기준까지 이 무리들을 몰고 가기를 바라느냐? 그때는 들이쳐서라도 내모는 거예요. 과정에 있어서는 비참해 보이고, 과정에 있어서는 잔인해 보이지만 가고 나서는 선조가 살아나고 후대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희생을 각오하고 전후좌우 역사적인 존재를 살리기 위해서 개인을 무자비 하게 쳐 몰아야 할 운명의 길이 복귀의 길이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오는 행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역사를 비추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대답해 보라구요. 그래요, 안그래요? 「그렇습니다」 처음 온 사람들은 그런 말 들으면…. 처음 온 사람도 알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 말이 어떻다는 것쯤은….
민족을 움직이면 민족을 움직여서 세계적인 투쟁과정에, 세계적인 무대 위에 내세워 가지고 우리는 세계에 널려 있는 원수를 빨리 맞자 이거예요. 맞는 데는 어떻게 맞아야 되느냐? 비난 조소 다 받아라, 무시당하라, 멸시 천대받아라 이거예요.
하늘이 공인하는 복을 받기 위해서 멸시 천대 받아 가지고 망한 옛날의 의인이 없어요. 역사를 들춰봐요. 그 시대에 있어서 선을 대표해서 싸우던 사람이 망한 자가 없어요. 역사적인 선을 대표해서 싸우다가 억울한 데에 쓰러졌다 하여도 그게 쓰러진 것이 아니예요. 그 뒤에서는, 하나가 죽으면 천만인이 옹호해 준다는 거예요.
그러다 억울하게 죽으면 그로 말미암아 폭동이 일어나요, 폭동이. 4. 19의거 알지요, 여러분들? 누구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어요? 3. 15선거 당시에? 「김주열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 때문이예요. 그 한 사람 때문에 전부가 꺾여 나가는 거예요. 선을 위해서 선두에서 투쟁하다가 쓰러져 죽어 제물 된 자는 까마귀 밥이 되는 법이 없어요. 독수리 밥이 되는 법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건 역사가 증거한다 이거예요.
예수도 어떻게 죽었어요? 예수가 어떻게 죽었나요? 예수님 생각해 보라구요. 그 시절에 `예수, 네까짓 게 무슨 메시아야! 메시아는 무슨 메시아야!' 그랬다구요.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가지고 인정된 가치 위에서 바라보니 예수가 메시아로서 뭐 훌륭하다고 하지. 예수가 훌륭하긴 뭐 훌륭해요? 일대일로 보면 너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뭐 가 훌륭해요? 안 그렇겠어요?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를 많이 갖다 올려놨지요? 옛날에 예수 당시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천하통일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수작들 하고 있어요. 내 그런 사람들 보면, 단단히 한 때 걸려 들기만 해라, 세뇌 공작을 단단히 근본적으로 해 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는 불쌍한 사람이예요. 민족 반역자예요, 민족 반역자. 선동분자예요. 누가 뭐, 손꼽을 무슨 뭐 조건이 있었어요? 누구를 위해서 그랬나요? 무엇 때문에? 만민을 위해서 그렇게 나온 것이요, 하늘땅을 위해서 그렇게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나 비참히 죽었지만 하늘땅은 죽지않았다 이거예요.
그들이 칠 수 있는 권한이 어느 정도까지냐? 한 개인을 쳤을망정 하늘땅은 못 치는 거예요. 그들 권세가 얼마나 클 것이냐? 하나님의 권세를 당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망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는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지게 된다는 거예요.
제아무리 원수가 무섭다 한들 하늘땅을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아무리 원수의 권세가 당당해도 하나님의 권세를 당할소냐? 그원칙에 있어서 고이 맞고 원수를 대해서 복귀하기에 얼마나 수고했느냐? 그게 헛되요? 다 쓰러지고 날려 버리고 길 가에서 껍질 벗기고 떼어간 나무와 마찬가지 된 그 터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세 제자까지 도망가던 그 터전이라구요.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한마디가 `나는 다 이루었다' 이거예요. 이것이 부활의 동기가 됐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부활의, 세계적인 새로운 등대가 될수 있었다는 거예요. 새 역사의 등대불이 거기서부터 비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다 이루었다!' 했어요. 뭘 다 이루었어요? 죽는 것이 다 이룬 거예요? 예수는 죽어 가나 하나님이 소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이 남아 있고, 천주의 소원이 남아 있고, 오늘날 후대의 인류의 소원이 나와 더불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걸 중심삼고는 예수는 죽지 않고 남아지고 승리적인 방패를 세우고 갈 터전을 다 이루었다는 거예요. 내적인 기준에서는 다 이루었다는 말이예요. 그게 할 만한 말이다 이거예요.
이놈의 원수들 대해서 복을 빌어 주었다는 거예요. 성인으로서 와서, 구세주로서 와서할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는 거예요. 죄인도 구원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복을 빌어 주어야지요. 그렇게 된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역사는 그러한 환경을 바라보고 논단을 짓고, 지금까지의 사회는 그런 자체를 두고 보고 평하지만, 이 섭리의 역사라는 것은 그러한 자체를 두고 평하지 않고 내용과 관계의 소망을 중심삼고 판단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면, 여자로 말하면 뭐 찍어 바르고, 뭐 하고, 뭐 빼고, 뭐 눈 주위나다듬어 가지고 아주 뭐 봄날에 잘 핀 버드나무 가지 바람에 흔들거리듯이 아주 휘젖고 돌아다니는 그런 패들 잡아다가, 거지탈을 쓰고 민족을 위해서 나가자고 울게 만들 수 있는 이 국가의 지도자가 나오길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야 이 나라를 구해요.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느니, 무슨 학 박사니 하는 녀석들 배통을 쥐어 박아요, 이 자식아 하면서. 자기의 양복 짜박지를 다 집어 던지고 노동자의 땀이 흘러 젖은 옷, 비를 맞아 가지고 후줄근한 옷에 시금털털한, 무슨 냄새라고 할까, 별의별 죽은 고기덩어리들, 죽은 사체들 전부 다 한꺼번에 갖다 끓인 냄새가 나는 그런 옷을 입고도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을 빨리 만들어 놓아야 세계가 살게 된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할 수 없거든 하직하라는 거예요. 조금만 더 숙달이 되면 되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을 잡아다가 이제 한국에서 아주 뭐 똥 구루마 끄는 부대를 만들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는 안 돼요. 그러지 않으면 세계를 한번 뒤집지 못해요. 못 뒤집는다는 말이예요.
하늘의 복귀 섭리가 뭐냐 하면 고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거예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슬픔이 시작된 것이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눈물 골짜기가 시작된 것이요,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의 함성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예요. 이것으로 뿌렸으니 이것으로 거두어야 돼요. 그 눈물과 혹은 죽음과 그 고통은 누구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었느냐? 사탄으로 말미암아. 사탄 때문에 시작됐으니 복귀 종말시대에 있어서는 누구를 향하여? 내 슬픔은 아버지를 위하여, 내 눈물은 아버지를 위하여, 내 고통은 아버지를 위하여…. 뿌리는 대로 거두는데 방향이 달라요.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 앞에, 하늘 앞에 하늘의 대신자로서, 하늘의 축복받은 자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런 견지에 있어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울어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하고, 통곡을 해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하고, 고통을 받아도 세계적인 대표자가 돼야 합니다. 이러면서 그 배후의 인연줄은 저 6천 년 전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 전 심정서부터 인연 되어 곡할 심정을 다 휘어 잡고 대성통곡할 수 있어야 돼요. 그 자체의 울음은 하나님의 울음이 되는 거예요. 울긴 사람이 울지만 하나님의 울음이라는 거예요. '야, 이 녀석아! 네가 내 대신 울어 주는구나'하는 거예요.
너무나 슬퍼하면, 민족을 위해서 울 수 있는 도수가 차면 `야, 이제는 그만 울어라' 하고 하나님이 얼러 주는 거예요. 그때 여러분이 `나 이제 눈물 흘리는 거 그만두겠으니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겠습니까? ' 하고 기도해 가지고 축복해 주겠다는 조건을 딱 받아 가지고 눈물 안 흘리면 그 민족은 축복받는 거예요. 세상 사람은 그런 거 모르거든요.
하나님 대신 울게 될 때에, `이런 입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참아들딸인데…. ' 하고 하나님은 바라실 거예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늘의 수고를 대신하여 우는 효자의 울음은 이러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입장에서 민족을 대표한 효자가 있다면 그 대표자가 울어야 할 하나님이 바라보는 한계점이 있을 거예요, 백이든 천이든. 천을 넘고 만까지….
그러한 슬픔을 가지고 울려고 할 때에 천만 넘으면 하늘과 다 통한다는 거예요. 그때에는 자기 민족을 구해요. 야곱이 그런 의미에서 지혜롭다는 거예요. `축복해 달라!'해 가지고 얍복강 가에서 천사를 붙들고 싸우다 환도뼈가 부러졌는데도 놓치 않았다는 겁니다. 병신이 되더라도 못 놓는다! 내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도 시키는 게 그거예요.
나가 가지고 부락에 가 가지고 다리가, 환도뼈가, 대가리통이 깨져도, 이거 하나 병신 되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아버지, 알아주겠어요, 못 알아 주겠어요? 기억해 주겠어요, 안 해주겠어요? ' 할 때, `오냐 너 기억하마!' 해 가지고 기억해 준다면 복받는 거예요. 이것들 그러한 판가리하기 위해서 다 갔는데, 갔다 하면 그저 `이래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저. 선생님은 여러분들 끌고 나가지만 선생님도 싸우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도. 책임이 더 큰 싸움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복을 받을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인간 세상에서의 자기 부모 앞에 상속받은 사람도 어떤 아들이냐 하면 부모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갔던 사람이예요. 부모가 슬퍼하는데도 그저 `아이구, 아버지가 슬퍼하겠으면 슬퍼하고…'하며서 자기는 고기나 먹고 그저 반찬을 해 가지고 편안히 호의호식이나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있으면 뒷골목에 가 가지고 꼬리를 치면서 지내고 그런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아, 난 싫습니다. 형제들을 주시옵소서' 해 가지고 저 구석에 가 가지고 이러는 있는 사람이예요. 부모의 염려거리를 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예요. 형제들의 눈물거리를 대신 자기가 치닥거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게 세상의 이치예요, 이치.
원래 교육이라는 것은 뭐 어려운 과학 전부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니예요. 그것도 가르쳐 주어야지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사람을 만들어 줘야 돼요, 사람을. '네 어미 아비가 이랬으니 너도 어미 아비 따라 이렇게 해라'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미 아비가 자식 대해서 가르쳐 주는데 `가서 도둑질해 가지고 오너라' 하는 게 아니예요. `네가 남을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해서 이렇게…'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부정하지 못할진대 앞으로의 통일교회를 어떤 교회로 만들어야 되느냐? 통일이라는 명사는, 통일(統一)이라는 명사가 쉬운 명사가 아니예요.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려 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느려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서는 싫다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뭐 안 되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후퇴라는 것이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통일 못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좋은 거 입고, 좋은 데 살고, 좋은 거 먹고 하는 데에서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사람을 데리고 헤어 나오고 있지만서도 먹고 입고 사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 싸움의 80퍼센트는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뭐 `어머니가 나보다도 동생에게 먹을 것, 좋은 것을 주는 구나, 흥!' 하는 거예요. 다 그러는 거예요. `아, 우리 상관은 한 직장인데 아무개 녀석한테 잘 해주고, 아무개는 이렇게 됐는데 난 요렇게 되고, 가만 보면 뭐 비슷한데 왜 그 녀석한테는 한푼 더 주고 왜 나한테는…' 한다구요. 전부 다 싸움이 벌어져요.
그래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못 가겠다 하는 곳이 없어야 돼요. 그래야 통일하지요. 못 하겠다는 것이 없어야 돼요. 죽을 사지를 찾아가야 되게 될 때는 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와서 내가 거느려 가지고 하나되자고, 통일하자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중심삼고 모이지 말래도 모이는 거예요.
요즘에 정당 관계를 가만 보면 말이예요, 새로운 담을 만들어 정치 활동을 시작해서 잘들 모인다구요. 응, 잘 모이는 구나! 생각한다구요. 그거 생각이 많다구요. 알겠어요?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그러려니 이 글자의 내용을 가지고 무난히 어떤 시대나 어떤 환경을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 고생하라! 이게 제일 안전 작전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말이예요, 무슨 미국 같은 데에는 하이웨이 같은 진입로가 있는데 사람은 걸어서 못 다니고 차 아니면 못 다니는 그런 길에서 아주 뭐 시속 백 마일 가까이 달려 가지고 그저 무사통과하는 그것보다도 더 안전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가다가 까딱 잘못하면 옥살박살하는 거예요.
그것이 달릴 때 요즘의 인공위성보다 더 빨리, 1초에 3억 미터가는 태양 빛보다도더 빠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이 길을 달리는 데는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여기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예요. 방해도 없고 지장도 없다는 거예요. 방해가 있단다면 그놈이 깨져 나간다구요.
그놈의 대가리는 맨 처음에 들어갈 때는 작은 것 같은데 꽁지는 얼마나 큰지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척 보면 말이지요, 이거 대가리는 아주 뭐 송곳 끄트머리보다 가는데 그놈의 꽁지는 세계가 왈가닥 다 들어가고 하나님까지도 대령한다는 거예요. 그 길이 어떤 길이냐? 여기예요, 여기.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이 길은 선생님도 연구를 해보니까, 알아보니까, 또 기도를 해보니까, 들추고 들추고 해보니까…. 우주적인 발견이라면 그거예요. 그게 천지 통일 쌍화탕이예요. (웃음) 여러분 다방에 가면 쌍화탕 얘기 잘하지요? 웃을 얘기가 아니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매맞아 가지고 민족을 위해 통곡한 것은 지나가지만 지나고 난 후에 그게 벌어지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이 자식아!' 그런 동네가 많다구요, 통일교회 나갔다 들어온 다음에는 동네 싸움이 일어나요. 억울하게 쫓겨나고 억울하게 저기서 매맞고 그런 데에서는 자기들끼리 `이 자식' 하며 자기들끼리 싸움이 일어요.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이거?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생겼다 이거예요. 대가리는 지나갔지만 몸뚱이가 있고 꽁지가 있어요.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대령하게 되면 씨알머리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상속자는, 축복의 상속자는 , 더 나아가서 한 말로 말하면 복의 상속자는, 복의 상속자는 이것 안 가지고는 안 됩니다.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결론 나왔지요? 「예」
'아,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말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 몇 가지만 물어 볼께요. 눈들 가졌으면 생각들 해보라구요, 그거 거짓말인가, 진짜 말인가. 그래, 선생님이 여러분들 시켜 먹어 가지고…. 선생님이 뭐예요? 강도예요? 여러분들이 선생님 신세를 졌지요, 암만 그래야. 알고 보면 신세를 진 거라구요. 통일교회에서는 그렇게 살았지.
그래 욕을 먹고도, 알고 난 다음에 잘못 생각하면 속이 편안치 않거든요. 그래 한마디라도, 생각이라도 좋지 않게 하면 편안치 않다는 말이예요. 이러니까 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거 아니예요. 알겠어요? 결론이나오지요? 「예」
복은 어디로부터? 「고생을 하는 데부터」 복을 받은 사람도 주지 못해 고생을 해야 돼요, 더 주고 싶어서. `아이고, 내가 요 부락의 어려운 사람들 다 이렇게 도와줬는데, 아이고 이거 저 집이 또 어려운데 또 주고 싶다. 아, 저 이웃 동네에도 한 줌이라도 주고 싶어!'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자기 친척을 위해서 한몫하고, 자기 마을 위해서 한몫하고, 그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한몫하고, 그 몫을 많이 가지고 나가야 그 후손 망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복받고 살고 싶지요? 복받고 살고 싶지요?
선생님을 지금까지 핍박을 하고, 그저 전부 다 때려죽이지 못해 지금까지 남겨둔 거예요, 죽이질 못해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고와서 남겨 둔 줄 알아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그럴 거라구요. 한때는 아주 귀가 솔깃한 말로 같이 가담해서 욕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대부분 욕한 사람이지요. 99퍼센트까지는 욕한 사람들이예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하면서 이것들 그저 내가 엎어놓고 한 바탕 복수를 해도 뭐 할말 없지요. 다들 뭐 통일교회 편 되기위해서 왔어요? 알아봐라 해 가지고 싸움을 하다 왔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오면서도 없어질 것 같고 망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살아 있어요. 지금까지. 이제 조금 더 나가면 세계가 또 한번 왕창, 세계가 아주 여기 통일교회 선생님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플 겁니다. 뭐 저라는 하는 사람을, 한번 딱 장진만 해 가지고 한번 갈기게 될 때는 후루시초프든, 케네디든 한번…. 그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한번 오면 좋겠다구요. 6천 년 전쟁이예요. 몇 년이예요? 「6천년입니다」
지금 2차 대전 이후 17년 됐어요. 우리가 뭐 싸움한 것이 불과 10년 미만인데 지금 이러고 있다 말이예요. 거기서 `죽는다, 세계 사람이 죽는다, 아이고 큰일났구나' 하는 걸 보고내 생각할 때에 6천 년 전쟁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 그까짓 전쟁이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까짓 백 년 전쟁은 6천 년 전쟁에 비하면…. 태평양 물이 남아 있는데 뭐 조그만한 바가지 물 가지고 싸워요? 그런 판국이란 말이예요, 이게. 하나님은 6천 년 전쟁 도상에 있어서의 선봉에서 지휘 장군이 되어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응? 「예」
우리 통일교회 목표는 7년, 6천 년 대신하여 안식 기간 7수, 7천 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7천 년 역사를 넘어가자는 거거든요, 7천 년 역사. 7천 년 역사를 넘어가야 됩니다. 8수는 재출발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8일 만에 할례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수효를 맞추기 위해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6천 년 전쟁 마당에 6년 전쟁 하기 위해서 가야 됩니다. 못 하겠어요?
`아이고, 내 아들딸이 지금 뭐 죽게 됐고, 아이고 우리 남편이 다…' 그러려거든 그렇게 가서 살란 말이예요, 후방에서. 나오라는 게 아니예요. 아주 시끄러워요. 통일교회가 전부 움직일 적마다 별의별 부모들이 다 있지요. 아주 네활개를 쭉 뻗고서 `날 먹여다오! 우리 자식 공부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만들었어? 공부를 시켜 다오. 대학원을 보내려고 하는데 고등학교밖에 안 가겠다니 그 이상 책임지고 시켜라!' 별의별 부모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 시켜 주마….(웃음)
여기 이 통일교회 건물이 6천 년 사회생활의 전시장이예요. 좋은 자화상이예요. 울고 불고 부딪치고…. (웃음) 내 그걸 볼 때마다 `또 한 장면이 벌어지는구나, 언제 끝날지! 언제 끝날 거냐? 시작했으니 끝난다 이거예요. 저것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 거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꾸러질 거냐, 어떻게 될 거냐? ' 가만히 궁금해서 보게 되는데 시작하면 끝난다구요. 그래, 그런 사람들은 가 쳐박혀 있으라구요. 오라는 거 아니예요, 그런 사람들은. 아, 고이 살림살이나 잘하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다 그만두고 용사들만! 그래, 용사가 필요해요, 용사가. 그래서 통일교회 용사가 되라는 거예요. 용사가 필요해요.
그래 선생님 자신도 그런 놀음하는 거예요. 내 이 길 나설 때는 부모도 없었어요. 처자, 친척도 없었어요. 혼자였다 이거예요. 혼자 이 세계를 향하여 깃발을 내가 만들고, 내가 들고, 내가 출발한다 이거예요. 누가 하나 만들어 줬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거 친구 중의 친굴 거라구요.
깃발도 자기가 만들어야 되고 깃발 드는 것도 자기가 들고 또 깃발을 주는 데도 내가 주고, 또 받겠끔 만들고 그래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젠 깃발 갖고 오게 되면 많은 것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해 나왔어요.
고생 가운데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복을 빼앗긴 것 같지만 복을 주는 것입니다. 이 노정을 통해서 나간 사람들만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정 못 하지요? 「예」 부정 못 하지요? `뭐 그게 틀렸는데…' 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딴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예요. 딴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예요. 지금 인류 도덕의 배후 관계를 부정할 수없어요. 그래, 염려하는 부분을 복보다도 더 크게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복을 천 년 만년 지니고 가는 거예요.
앞으로 이 민족에 있어서 이런 이념권 내에서 세계적인 복을 받으려면 이민족 중심삼고 염려하는 것보다도 세계적인 것을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불쌍한 사람들을 어서 살리자!' 할 수 있는 이러한 각오로 민족 전체가 각성하고 민족 전체가 책임지겠다면 그 민족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을, 그러한 무리들을, 그러한 종족들을, 그러한 민족들을 찾아가서 복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님은 이 땅위에서 추방당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면 복의 주인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려고 해도 도망가야 돼요. 뭐 축복을 해주든가 하는 그 마당에 있어서의 수라장이 되기 때문에 도망쳐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 복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최고의 안전지대가 고생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월급 타게 되면, 월급을 척 타게 되면 `아아고 내 30일 동안 일한 대가기 이것뿐이야' 그럴 거예요. 요즈음 직공 여자들 한 2천 원 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2천 원 타고 그러다 보면 `아, 우리 사장님은 몇 십만 원이고, 누구는 몇 분의 일이고, 난 그 사람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돼. 아이구, 죽어야지' 그러는데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만약에 월급이 그 사람과 십대 일─회사의 주인이 누가 주인이냐? 사장님이 주인이지요─이면 `당신은 십 배를 가졌는, 당신이 회사에 대해 십 배 충성하고 십 배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십 분의 일만 하면 하늘땅이 공인할 수 있는 내 책임은 완수입니다' 그럴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여기에서 사장님 이상 내가 염려하고, 내가 그 이상 걱정을 하고, 그 이상 잠 못 자고 할 때에는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 복이 어디로 가느냐? 여기에서 말하는 선생님이 거짓말하면 천상세계에 가서 항의하라구요. 사장님이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안 쫓겨나요. 사장 하나 쫓아내는 데는 전부 `옳소!' 하고 수많은 사원들이 찬동할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안 됩니다!' 하고 전사원들이 그런다구요. 알겠어요?
돈 가지고 놀음놀이하는 세상에 복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내가 바라는 것은 이 민족 앞에 이런 사상을 어떻게 빨리 집어넣을 것이냐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에 떠맡기면 반드시…. 요즈음도 눈만 감으면 분한 마음이 생겨요, 분한 마음이. 지금까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어느 누구누구 몇몇 사람이 반대했지만 밥대 안 했으면 오늘날 우리들은 세계적인 무대를 거쳐 가지고 이 민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적 발판도 통일교회를 앞장세웠으면 그렇게 됐을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책임진 사람이 뭘 모르면 모르지만 분하겠어요, 안 분하겠어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예」 우리는 사람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많은 눈물 흘렸습니다. 사람들이 볼까봐 산중에 가서 굴 가운데에 가서 통곡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까 봐서. `아버님만 아시옵소서. 바위굴아 알아라. 천지만 알아라. 그렇지만 한때에 비교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모든 것을 만들어서 제시할 때는 , 거기에 한번 비교해서 진짜와 가짜가 부딪치게 될 때는 알 날이 있을것이다!' 그랬다구요. 그래서 지금 민족 앞에 우리는 부딪치는 거예요. 세계 앞에 부딪치는 거예요.
뭣 갖고? 우리는 돈 갖고 하는 것 아니예요. 육탄 갖고, 심정탄 갖고, 가치탄 갖고 부딪치는 거라구요. 그것은 돈 가지고서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자처하고 나선 무리가 통일의 무리예요. 그리고 우리는 세계적인 복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길을 선두에 서서…. 우리는 그 책임하기 위해 모였다 이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알았다구요. 이젠 뭐 무슨 욕을 해도…. 그러니까 결론은 복을 통하기 위해서 고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아까로 되돌아 가서, 하나님이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하나님이 말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자기와 같은 사람을 붙들고 말하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땠느냐? 6천 년 전쟁의 마당에 있어서의 총지휘를 하고 나온 거예요. 최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하여 행진 명령을 내는 것은 이미 오래였지만서도 그 달리는 하나님 뒤에 따라 나오는 병사가 없었다는 거예요. 있었어요? 이스라엘 민족 어디 갔노? 기독교 신자 어디 갔노?
오늘날 하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 신자들이 많겠지만, 뭐 천국 가겠다는 사람 많지만 하나님 사정을 하나도 몰라요. 달리고 있는 하나님 앞에 하늘을 위한 병사가 없더라 이거예요. 그 얼마나 처량하겠어요? 얼마나 처량하겠나 말이예요.
오늘날 제일 생사의 첨단에 서 가지고, 이 사선의 접경에 서 가지고 누구보담도 비장하고, 누구보다도 마음을 조이면서 나오신 분이누구냐?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그 하나님은 기쁜 사람, 혹은 잘사는 사람, 개인주의적인 사람, 그런 사람 친구겠어요? 다 아니예요! 자기 같은 사람 찾나니 어떤 사람이냐? 세계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고, 세계를 위해서 고생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붙들고 하나님은 `오냐 내 아들이구나! 오냐, 이제야 너를 만났구나!'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회포의 소원을 다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오냐, 너다 말했으니, 나한테 있는 것 다 네가 주관해라. 영원히 내것을 네 것으로 남겨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그렇게 했으니, 네가 보기에 천한 자리에 누워 있고 처량한 자리에 있지만 너를 들어 만민 앞에 보여 주겠다' 한다는 겁니다. 축복받고 잘사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고생한 그것을 보여 주겠다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오는 목적이요, 인간도 지금까지 섭리를 따라 찾아가는 최후의 목적점이니 하나님과 상봉할 수있는 그 자리는 고생을 밟고 올라선 자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7년대환란이라는 명사가 기독교에 남아지게 됐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렇게 되어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이…. 개인이 그런 자리에 있으면 개인을 들어 그러한 자리에 세울 것이요, 혹은 단체면 단체, 국가 민족이면 민족, 한 민족이 그렇게 되게 되면 세계는 그 민족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거예요. 한 교파가 그러한 교파가 나오면 수많은 종교는 머리를 숙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리의 원칙이예요.
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철학이 사실이냐 아니냐 한번 시험해 보자구요. 그 실천 과정에 있는 것이 지금 통일교회의 가는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래서 3년 전에 정초에 선생님이 3년 동안 고생하라고 얘기했는데 지옥 세상에 있어서의 우리가 사는 것은 감옥살이예요, 감옥살이. 복역하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3년 기간은 여러분들이 하늘땅 앞에 저끄러진 선조의 죄로부터 시대적인 죄, 미래의 후손에게 남겨 줄 죄까지 전부 다 탕감하기 위한 복역 기간으로 알아 가지고, 형을 받아 가지고 지상 지옥에서 자기 죄를 풀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 기간이니 고생길 앞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생 못한 선조의 모든 불평과 불만과 불행이란 글자를 걸어 놓고 내가 총 결실의 자리에 들어가 떨어질 터인데, 떨어질 때의 조상의 불평이 들어와 풍덩 빠지면 그게 간 데 없고, 조상의 후회 고통이 전부 다 나한테 풍덩 빠지면 간 곳 없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기간을 지내고 나 가지고 뭐 하나를 들고 나서게 될 때에, 거기서부터 소망이 생겨나요.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3년 기간을 출발하였다구요. 비단 3년뿐이 아니예요.
앞으로 세계적인 사명이 남아 있으니 시련과 고통을 얼마만큼 견뎌내야 될 것이냐? 세상에 그런 견지에서,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하고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해서 뭘할 것이냐? 뭘할 것이냐? 뭘할 것이냐 이거예요.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자는 거예요. 그랬으면 됐지요. `어, 나는 고생했는데…' 그럴 녀석 오지 말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복을 받고 그래 가지고 남아지는 무리가 없어요. 그건 죽어요. 독수리 밥이나 되지요. 이스라엘 민족을 보라 이거예요. 광야에서 전부 다 늑대 밥이 되고, 독수리 밥이 되고, 까마귀 밥이 되지 않았나 이거예요. 어떤녀석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녀석들이. `민족이고 뭣이고 가나안 땅이고 난 싫다. 하나님이고 뭣이고 난 모르겠다' 했던 녀석들 다 죽었지요. 참고 참고 이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노력한 자들은…. 그래서 여러분들을 그러한 목표 밑에서 지금까지 3년 동안 활동시켰습니다. 여러분 앞에 이러한 취지의 내용을 말씀한 이후에 그런 대표적인 사람들을 선생님이 골라 온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고생 제일 많이 한 사람을, 통일교회에서 고생 제일 많이 한 사람을 선생님이 친히 상을 주기는 말이지요, 지난번 `자녀의 날'에 하늘에 기도하고 상을 주기는 처음입니다, 기도하고 주기는 . 선생님이 사인을 하고 상을 주기는 일생에 처음이예요. 축복들은 해줬지요. 상 주기는 자녀의 날이 처음입니다. 모든 조건을 하늘땅에 걸어 놓아 가지고 상을 주는 것은 지난번 자녀의 날이 처음입니다. 3년째 넘어가는 자녀의 날에 안 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 그들을 세워 놓고 그들이 걸어 나옴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서의 맹세문을 선포하게 된 거예요. 역사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을 본받아야 돼요. 그렇다고 그들이 하늘을 보게 될 때에 완전히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이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거기에 있어서는, 심정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그들을 위해서 정성들인 그 정성이 있는 거예요. 문제는 그게 문제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고생한 것이 였습니다.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뜻을 대해 이런 기간을 대해 가지고 정성들였습니다. 하루하루를 한 시간도 잊지 않고 생각하는 그 정성과 더불어 거기에 그러한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적인 운세가 이제는 다가온다는 거예요.
그래 여자는 왜 셋을 택해 세워야 되느냐? 여자는 복귀역사 과정에 있어서 신부 복귀하기 위해서…. 아담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이 전부 다 실패했지요? 삼시대를 거쳐나왔습니다. 알아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세워 놓고 다 그런 것들을 중심삼고 다 해 나옴으로 말미암아 멋진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기 때문에 그렇게 해 나왔다구요.
그러니만큼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의 역사를 꾸며야 돼요. 역사를 꾸미는 데는 가정이 없고 종족이 없어 가지고는 역사를 못 꾸미지요?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도 없는데 무슨 뭐 그 집의 족보를 꾸며요? 족보를 꾸며요? 「못 꾸밉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역사를 못 꾸몄어요. 그렇지만 이제부터 통일교회 역사를 꾸며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통일교회 역사 기록하는 데 있어서의 중요한 기사감이예요.
여러분들도 이러한 자리에 있어서 이러한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 이거 얼마나 행복해요? 여러분이 천추만대 후손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 와서 듣고 있다는 게 말이예요.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요. 그렇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 거예요.
이제 앞으로 통일 이념을 따르는 수많은 민족들이 이들이 고생한 것을 들으면 자기의 고생과 같이 알고 눈물 지을 것입니다. 눈물지을 거예요! 이 일이 어떤 한국에 있는 우리 식구들의 일이 아니예요. 수많은 민족을 대표한 일로서의 이런 놀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를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에도 한국에 신령한 역사적이 이런 인연을 맺고 왔던 그런 사람을 세워 가지고 간증하게 한 거예요. 그거 역사에 남겨야 돼요. 효원씨 알지? 잘 기록해야 되겠구만. 그러니만큼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첫날에 이러한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런 것들을 쭉 세워 가지고 앞으로 뭘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교회로서는 통일교회에서 말하고 싶고, 또 보여 주고 싶고, 남겨 주고 싶고…. 하나님 편에 있어서의 교회적인 입장에서 그러한 기준을 남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또 민족적으로 남겨 놓을 수 있는 데까지, 그다음에는 세계까지…. 이래 놓아야 됩니다. 세계까지 그렇게 되면 사탄은 보따리 싸 가지고 `아, 이젠 난 안 되겠다!' 하고 자연 굴복하게 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이제 말하는데 내용을 결정짓는 거예요. 지금까지 자기가 지내온 얘기를 쭉 해 가지고 전부 다 역사에 다 남겨 놓는 거예요. 지금까지 지내온 가정 얘기, 가정 얘기에서 국가면 국가에 대해서 충성을 했다든가, 자기 양심적인 기준 앞에 있어서의 이 민족이 볼 때의 본이 될 수 있는 면, 남 다른 고난의 길을 거쳐오면서 뭘 세우기 위한 그런 과거의 역사적인 일이 있으면 고걸 말하고, 그다음엔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터 위에 자기의 결의, 우리 이념이 어떻다라든가 하는 그럼 것을…. 그것이 제1 단계입니다. 그것이 소생단계예요. 알겠어요?
그래, 여기서 들어와 가지고 그다음에 여기까지…. . 여기 들어와 가지고 이것은 장성 기준이니까 투쟁이예요, 투쟁이란 말이예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무슨 투쟁이예요? 밥을 굶었으면 밥 굶은 것에 대해 세밀히 얘기하는 거예요. `아, 뭐식구들한테 자랑될 게…' 하겠지만 자랑이 아니예요. 그건 하늘 앞에 직고하는 시간입니다. 알겠어요, 자기의 역사를 ? 혹은 배가 고파서 죽게 되어서 견디지 못해 가지고 남의 집에 가 가지고 밥 도둑질했으면 거 도둑질한 이야기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웃음)
밥을 훔쳐다 먹고 참외 한 개 그저 수백 번 쥐었다 놨다 했다, 이것을 따 먹었으면 따먹었다, 못 따먹었으면 못 따먹었다,그것까지 얘기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웃음) 그 대신 이것이 지루한 사람들은 지금 가요. 몇 시간 될지 몰라요. 오늘 저녁 예배도 안 볼 지 몰라요. 그러니까 지루한 사람들은 가라구요.
그다음에 자기의 결의를 말하라구요, 자기의 견의를. 이러한 뜻 앞에 있어서의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가겠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한 그런 말씀을 듣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것을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왜 지금 얘기해 주느냐 하면 말이예요, 자기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결의해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걸 결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알겠지요?
요건 자기가 지금 돌아올 때까지를 얘기하고, 그다음에는 들어와 가지고 이제부터의 결의를…. 자 그럼 누구부터? 그리고 이제 말한 것들을 추려 가지고 영문으로도 다 번역하라구요. 이 골자를 추려 가지고, 이거 전부 다 하면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요런 것을 딱 짜 가지고 앞으로의 역사 펴내는 데 있어서 준비를 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 대신 여러분 통일교회를 같이 다녔으면서도 허송 세월 한 사람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자, 여자들부터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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