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좋고 또 좋고, 극상으로 좋은 것 중의 극상으로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렇지요? 「예」

좋은 것을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인간

대다수의 사람들을 볼 때 사람들은 좋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좋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좋은 것을 어디서 찾으려고 하느냐?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이거예요. 나를 떠나 다른 곳에서 좋은 것을 찾고자 무수한 사람들은 애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 참되고 좋은 것도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 못 되게 될 때에는 , 아무리 좋은 것도 가치가 없어지는 거예요. 오늘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최고의 것, 최고의 선, 제일 좋은 것 찾기를 고대하는데 자기 범위 밖에서부터 찾으려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모든 모순과 이치에 불합리한 원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누구를 위주로 좋으려고 하느냐?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좋으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예」 나를 중심삼고 `내가 좋았으면, 내가 더 좋아졌으면, 내가 천하에 하나인 존재가 되었으면' 하면서 극상 것을 모든 인간들은 바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좋은 것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할 텐데 상대의 세계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세상에는 모순과 상충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본래 인간시조 아담 해와에 있어서도 타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좋은 것을 상대의 세계에서 혹은 상대의 위치에서 요구한 데서부터 인간세계의 근본 되시는 우리 시조가 타락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밀려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만일에 우리의 시조가 좋은 것을 자기 중심삼고 지닐 줄 알고, 자기 중심삼고 좋은 것을 빛낼 줄 알고, 자기 중심삼고 좋은 것을 세울 줄 알았던들 우리 인간시조는 타락이라는 위치에 서지 않았을 것인데, 상대적인 환경, 혹은 상대적인 위치에서 좋은 것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여기에 있어서 우리 인간시조는 타락하고 말았던 거예요.

제일 귀하고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오늘날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고,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천하를 통일시키는 위대한 사람 혹은 위인이 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 호령에 천하가 전부 다 굴하고 일어서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당당한 세계적인 인물이라 해도, 그 사람이 진정한 좋은 것을 가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하늘땅을 움직이게 하더라도 좋은것이 아니예요.

좋으려면 그 자신이 좋을 수 있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상대적인 세계에서 좋은 가치를 상대적으로 취할 수 있는 데서 좋은 것이 되지, 자기 마음에는 좋은 내용을 갖지 아니하고 상대적인 면에서 좋은 행동이나 좋은 어떤 요구를 한다 하면 이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좋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찾는 것도 좋겠고, 하늘땅을 정복하는 것도 좋겠고, 수많은 대중을 인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도 자기를 제일 귀한 가치로 갖는 것 이상 제일 귀한 것이 없고, 제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를 세워 나오는 수많은 도주들, 혹은 역사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을 찾아보게 될 때, 그들은 외계에 나타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꿈꾼 사람들이라기보다 `나 자신의 마음속 깊은 있는 최고의 선, 인간의 근본이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가치를 갖고 있느냐? '에 대해 탐구하고 노심초사하며 자기 생애를 걸고 싸워 나간 사람들이 대부분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속단하여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외부에서, 상대적인 세계에서 그 무엇, 제일 좋은 것을 구하기 전에 나 자신이 제일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설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 보기에는 불행하고, 남 보기에는 형편없고, 남 보기에는 조롱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 자신에게는 그 이상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말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좋기를 바라는데, `내가 좋아지기를 바라느냐' 내가 제일 좋아지기를 바라느냐 이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내가 좋은 것이 있다고 하려면 좋을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돼요. 내가 제일 좋을려면 세계를 주고도 나와 안 바꾸겠다 해야 돼요. 알겠어요? 대한민국을 주고도 안 바꾸겠다, 그런 가치가 있다 이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을 주고도 안 바꾼다 이거예요.

내가 주먹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고 또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내 한 몸뚱이 가운데 나만이 가지고 있는,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만일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 사람을 갖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생활을 하고, 혹은 참선하는 모든 내용에 들어가 회고해 보게 될 때에, 내가 무슨 가치를 지녔느냐고 나를 완전히 해결하고 나서게 될 때에 나 하나를 완전히 해결한 그 가치는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엇이 되겠다고, 제일 좋은 것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상대적인 세계에서 구하지 말고, 다 끊어버리고 나를 찾아 들어와서보면 내게 제일 좋은 것이 있나니, 여러분 자신이 생활할 때에 시시, 초초를 넘기지 않고 권고하는 스승이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거예요. 천륜을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이것을 가려 주는 양심이 있는 거예요. 더 나가서는 속사람이 있는 거예요.

자신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가치는 무엇이냐? 팔도 아니요, 눈도 아니요, 귀도 아니요, 몸뚱이도 아니요, 속사람이라는 거예요. 이 속사람의 인격의 가치를 오늘날 케네디 대통령의 몇십 배, 몇 백 배의 가치의 자리에 갖다 놓아도, 이 속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최고의 높은 자리에 갖다 놓아도 이 속사람은 거기에서 선과 악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요걸 볼 때에 여러분들이 제일 좋은 것을 갖고 있나니,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제일 좋은 것을 갖고 있나니, 그것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거예요. 즉 양심을 통하여 여러분을 권고하고 있는 그 내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내적 존재를 연마하고 연마하는 가운데에는 하나님도 들어갑니다, 하나님도. 이 양심은 보따리가 얼마나 큰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도 이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이거예요.

성경에는 사람이 뭐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무엇이냐? 사람은 하나님이 우거하실 수 있는 집이라고 했어요. 집인데 거기에 고기덩어리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아니예요. 선한 터전 위에 선한 자체로 계시고, 선한 환경을 수습하기 위한, 선한 그 자체 가운데 처해 있는 양심 그 근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천상천하의 만유의 존재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고이 모셔 드릴수 있는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속사람이 하나님을 비로소 모시고 하나가 되어서 나를 명령한다고 하면 나라는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구세주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형상을 쓰고 나오든가 하나님의 심정을 쓰고 나오든가, 하나님의 내용을 쓰고 나오신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양심에 하나님이 임재하면 여러분 자신들도 최고의 권위 있는, 어느누구보다도 높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좋은 것을 나에게서부터 찾아야 됩니다.

갖고 싶어하는 물건의 참다운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그러면 이제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나'라는 한 존재를 세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될 때, `내가 저것을 원한다. 저것을 가지면 좋겠다. 그것을 내가 가질 수 있을 때 정말 가질 수 있느냐? ' 하고 반문하여야 됩니다. 내가 가질 때 정말 가질 수 있느냐? 정말 저 물건의 참다운 주인이 될 수 있느냐? 내가 갖고 싶어하고 고대하고 있고, 내가 바라고 있는 그것을 어느 누가 준다면 정말 그가 바라던 가치의 주인공으로 나타날 자신이 있느냐? 여러분은 거기서 전부 다 문답을 해봐야 됩니다.

더우기나 신앙생활에 처음 나가는 사람들은 이걸 생각하여야 됩니다. 내게 무엇을 주면 좋겠다 할 때에, 그것을 받고 그것을 주는 분이 있으면 그걸 받고 자기 스스로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있느냐? 과연 그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느냐? 그는 좋은데 나는 좋지 않으면 이것은 악입니다. 하나는 원하는데 하나는 원치 않으면 이것은 선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둘 다 좋아야 선이 됩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혹은 여기 지우개를 원하게 되면 이 지우개 자체도 소원합니다. 이 자체에도 소원 있는데 그 소원 자체가 소원하는 소원의 주인적 자격을 갖추었느냐 할 때, 이 자체가 요구하는 자격를 지닌 주인이 되지 못할 때에는 선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100의 가치로 바라보고 있는데, 여러분 자신의 가치는 10만큼밖에 안 된다면 이것은 90만큼 탄식이요 한입니다. 여기에 한이 맺혀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좋은 것을 찾기 위해서 나타난 이 마당에 있어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감당할 자격이 되어 있느냐? ' 이거예요. 이것이 필요한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종교라는 명사를 알아 가지고 신앙길을 가고 있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통일교회의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 여러분 자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있느냐?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세계의 인연을 못 가지는 거예요.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거기에, 그 세계의 좋은 것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되고,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내야 됩니다. 그런 후에 그도 좋고 나도 좋아야만 그것이 선의 결과가 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이 길을 가도 마찬가지예요. 길을 가게 될 때, 여러분이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가게 될 때 나쁘기 위해 가는 사람은 없다 말이예요. 서울 명동 거리에 가 보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의 눈들과 그 사람들의 생각은 전부 다 좋은 것을 찾아 허덕이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결과를 보면 좋은 것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이거예요. 마음으로는 원하는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많지 않아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늘땅이 이렇게 바라보게 될 때에 좋은 것을 주면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찾아오다가도 도망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가고 오는 사람, 먹고 자는 사람, 기쁘고 나쁜 사람, 요 여섯 가지예요. 가고 오고, 먹고 자고, 그 다음에는 좋고 나쁜 것, 요 여섯 가지라는 거예요. 가고 오고, 먹고자고, 그다음에는 ? 좋고 나쁜 것. 요것이 인생생활 전체의 모양입니다. 이것만 빼 버리면, 요것만 딱 들고 나오면 세상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가고 오고, 먹고 자고, 그다음에는 좋고 나쁜 것, 여기에 다 걸려 있다는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먹는 데도 그렇다는 거예요. 먹는 데도 그렇고, 자는 데도 그렇고, 가는 데도 그렇고, 오는 데도 그렇고, 좋고 나쁘다 하는 명사도 역시….

여러분들이 감당할 자리에서 감당하고, 그것을 책임질 자리에서 여러분이 움직이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을 확정지어 거기에서 자기의 위치를 세우지 않는 한 발전했댔자 그것은 자기의 발전이 아니예요. 아무리 좋은 자리에 갔다고 하더라도 간 곳이 영원히 자기 것이 안 돼요. 어느 한 때는 남의 것으로 빼앗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은 것을 바라기 전에 내 자신에 좋을 수 있는, 환경의 존재를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고 감당해 낼수 있는 내 자신이, 즉 안팎의 사람이 되어 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명령을 감당하고 책임지는 데서 발전이 벌어져

그럼, 나 하나 물어 봅시다. 오늘 선생님이 전주에 온다고 하니까 전주의 사방에서 몰려들었어요. `선생님이 서울에서 오신다는데, 또 무슨 말을 할까? ' 하고 들어 보기 위해서, 혹은 알아보기 위해서, 또 좀 더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왔을 거예요. 그래서 뭘하기 위해서. 어떻게 되기 위해서? 좀더 좋아지기 위하여. 좋아하는 데는 선생님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 자신이 좋아지기 위하여. 내 자신에 무엇을 보충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러면 이와 같은 자리나 혹은 말씀을 나누는 입장에 설 때에, 말씀을 주게 되면 받는 그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이 말씀을 감당해 낼 수 있느냐? '감당해 낼 수 있고 말고! 책임을 질 수 있고 말고!' 할때는 지금 하는 말씀 이상의 말씀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더 큰 선의 위치를 찾아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뭐냐 하면, 여러분이 감당하고 책임을 질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저 자기 위치를 떠나 가지고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응? 「예」

타락이 무엇이뇨? 책임을 못 진 거예요.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그 명령에 책임을 못 했고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상대적인 선의 세계가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거예요. 결국은 내가 그것을 책임지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내 자체의 선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볼 때 두 가지 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받고 싶은 작용이요, 하나는 주고 싶은 작용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 거예요. `나'라는 존재를 가만히 분석해 보면, 사람에게는 받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조는 녀석은 깨우라구요. 너 어디서 왔나? 어디서 왔나? 「김제에서 왔습니다」 김제, 가까운 데서 온처녀들이 졸고 있구만.

선생님이 지금 얘기하는 것을 악을 쓰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정말이예요. 책임이 있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올 때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올 적보다 조금 나아져야지요. 나아지는 데는 선생님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내적인 바탕에 있어서 나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그것이 자기 것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싸움이라는 거예요.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여러분들과 나와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나는 책임을 져야 되겠고, 나는 감당해 내는 입장에 있어야돼요.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되는 대로, 그저 가는 대로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돌려보내는 그게 아닙니다. 책임을 져야돼요. 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을 걸어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 걸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돼요.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몰려들었으면, 이 수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과 이들의 마음으로 다 생각하던 천태만상의 곡절이 많을 거예요. 심선상(心線上)에 이루어졌던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내용 위에 한 점이라도 좋은 점을 첨부해 주고 가야 선생님으로서 왔다 가는 책임을 다하는 거예요.

또 여러분들로 그래요. 그런 선생님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의 내용에 있어서 선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가져 가지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으로서 좋다는 결정을 지어 놓고 돌아가야만, 여러분이 어디 가든지 그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번 자리잡았던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아야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타락도 자체 내의 양심을 중심삼고 바라고 있는 그 귀한 내적 인격관을 무시한 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반드시 양심의 작용은 높아지려고 하는 거예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원칙인데, 높아지는 데는 법도를 따라서, 자기 의무와 자기 책임과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서만이 좋은 것이 관계를 맺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데에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단 여기 왔으니, 온 만큼 온 데 대한 책임을 져야 되고, 여기 온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그 자체 내에 있어서 스스로 좋은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본바탕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다 흘러가 버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졸음이 깼어요? 「예」

최고의 것을 무한히 주고받을 수 있는 인격을 갖춰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있다 할진대 그 애국자는 그 나라가 최고로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 효녀가 있다 할진대 그 효자 효녀도 역시 부모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부모로 모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효자 효녀가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혹은 일국의 공신이면 그 공신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오늘 이 시대에 어떤 사람보다도 더 최고의 뜻을 품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 사람이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나가는 그 기반 밑에서 애국자면 애국자, 나라의 충신이면 충신이라는 명사가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일이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마찬가지예요. 작다고 소홀히 할 수 없어요. 크다고 중요한 것만은 아니예요. 작은 것도 선에 속하면 그것도 중요한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눈동자가 작지요? 새까만것. 눈동자가 손톱만큼도 못한 거예요. 그러나 작다고 소홀히 하고 크다고 중요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상만사를 바라보게 될 때 좋기를 바란다면, 절대 거기서 한 가지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은 상대적으로 구하지 말라는 거예요. 좋은 것 받기를 바라고 좋은 것 갖기를 바라거든, 좋은 주인으로서 지닐 수 있는 그 책임과 감당해 낼 수 있는 자체가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자체보다 더 커야 돼요. 내적인 위치가 더 커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양심은 하늘을 받고도 남을 수 있고, 무한히 줄 수도 무한히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람의 마음은 무한히 크다는 거예요. 무한히 크므로 천하의 어떤 것을 받고도 남을 수 있는 본래의 바탕이 되어 있는 데, 책임을 못 했고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인격이 못 되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책임을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인격 기준만 해결하고 나서면 천하를 주름잡는 거예요. 세상에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취하고 당당히 살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귀한 것이 뭐냐?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니요, 인간이예요, 인간. 인간은 본연의 양심의 기준을 완전히 회복하고, 하나의 완성한 인격자가 되는 데서만이 완전한 차원의 실체요, 결실체가 된다구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면 어떻게 되느냐? 그런 사람이면 하늘이,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찾아오는 거예요.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하겠지요? 「예」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하겠지요? 「예」 얼마만큼 좋은 것? 제일 좋은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좋은 것을 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좋은 것을 원해요. 그런데 그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로 좋다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자체의 내적인 인격 전부를 갖출 수 있으며 책임을 질 수 있는 기준이 완전히 닦아져 있으되, 그것을 주고받지 않으면 좋은 가치가 못 된다구요. 가만 있어 가지고는 가치가 안 나와요. 주고받는 그 자리에서 가치가 나오는 거예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내적인 마음세계에 느끼는고 모든것을 외적인 세계에 완전한 대상의 실체를 세워 가지고 그와 더불어 주고받는 거예요. 책임을 지고 거기에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서 완전히 주고받을 수있는 대상을 만들어 놓자 해서 만들어진 것이 누구냐? 사람이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이예요. 알겠나요? 사람은 그런 존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만물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냐? 사람이예요. 또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누구냐? 최후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에 있고,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 나오는 길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하면서 세계를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면서, 제일 좋은 문화세계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모든 천하의 위업을 상속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아까 말한 내적인 그 기준에 있어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의 책임도 감당해 낼 수 있는 내적인 인격을 갖춘사람이면, 이는 필시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까지도 모실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많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수고한 목적이 어디있느냐? 돈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요, 권세 잡은 사람도 아니예요. 아까 말한 본성의 그 내적 인격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하나님까지도 부러워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천하의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체가 되면 그 사람의 것이 천하의 것이요, 천하의 것이 그 사람의 것이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어느누구나 전부 다 제일 높아지겠다고 하는 거예요. 세계도 내 것!' 그러는 거예요. 내 마음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전부 다 해보고 싶고 그런 거예요. 그 마음이 나쁜마음이 아니예요. 본래 있는 마음인데, 그 마음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지고 감당해 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알겠어요? 「예」

최고로 선한 것은 공적인 존재

그러면 나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들이 지금 좋은 것을 바라고 있지요? 「예」 지금까지 그렇게 바라고 나왔지요? 「예」 그러면, 좋은 것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졌어요? 나면 나, 너면 너, 여러분은 여러분…. 내자신을 두고 볼 때, 제일 좋은 것을 바라는 내 자체로서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거기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 가지고 참 좋은 것을 원했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래, 뭘 책임을 져 봤어요? 또 제일 좋은 것은 최고의 공적 존재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은 공적 존재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최고의 선한 것은 개인적인 소유가 아니예요. 공적인 존재예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죽어 나가자빠져도 남아져야 돼요. 우리 한민족이 전부 다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남아져야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다 가고 우리도 가고 후대 사람이 전부 다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선한 것은 공적인 존재로 남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침범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최고의 선은 만 기원의 것! 갑이나 을이나 동서고금은 물론이고,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존재세계가 바라는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금덩이가 이만하고 다이아몬드가 이만한 게 있으면, 아무개 집에 그런 다이아몬드와 황금덩이가 있다면 전주에 있는 사람들,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 재물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 집에 마음을 두겠나요, 안 두겠나요? 두나요, 안 두나요? 「둡니다」 만일에 그 귀한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에 암만 마음을 준다 하더라도 그 보물의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책임을 지지못하는 사람은 그 보물한테 치여 죽는 거예요. 책임을 감당해 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이라는 것은 공적인 존재요, 최고의 것은 전부 공적인 존재예요. 공적인 존재니 혼자 이것을 가지고 쓸 수 없는 거예요. 쓰되 만민을 위해 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있어서 혼자 쓰지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할 수없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예요. 알겠어요? 응? 「예」 하나님이어떤 분이라구요? 나 혼자 마음대로 못 해요. 아무리 하나님이 가깝더라도나 혼자 못 한다 말이예요. 공적인 존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나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름은 그렇지만 이것은 전체를 대신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그리워하고 전부가 바라보는 주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최고의 공적인 존재를 최고의 것으로 지닐 수 있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고 그걸 받아 감당해 낼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원수가 나타나는 거예요. 하늘이 원수를 보내는 거예요. 최고의 공적인 존재가 무엇이라구?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그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면 어떻게 되느냐? 나도 최고의 공적인 존재가되는 겁니다. 그러면 최고의 공적인 존재는 뭘해야 되느냐? 모든 사람을 위해서 줘야 됩니다.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모든 피조만물에 대해서 줄 수 있는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 하나님은 어떤 분? 대답을 하라구요. 공적인 존재이니만큼 하나님이 최고의 선, 제일 좋은 분이라면 그 분은 자기를 향하여 바라고 있는 , 참다운 마음을 갖고 바라고 있는 모든 사람 앞에 같이 나눠 줄 수 있는 분입니다. 동에서 그렇고, 서에서 그렇고, 남에서 그렇고, 북에서 그렇고, 어디 가든지 같은 가치로 주고자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왜 좋아하느냐? 미국 사람에게 복을 주었으면 한국 사람에게도 복을 주어야 됩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주느냐? 그 복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됐느냐, 못 됐느냐? 또, 복을 주면 이걸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기준에서 하나님은 지금 세상만사를 거느리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최고의 공적인 선의 하나님을 찾으려면 하나님을 닮아 들어가야 돼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최고의 공적인 선의 하나님을 찾기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 하나님을 닮아 들어가야 됩니다. 닮아 들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여러분들에게 명령하는 거예요. 양심이 `야! 아무개야!', `예' `너 저기 길을 가다가 불쌍한 거지가 있다. 네 지갑에 돈 100원 있지? 돈 50원만 떼어 줘라. 줘!'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명령하면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 됩니다」 해야 돼지요? 「예」 돈 50원을 떡 주고 가는 데 `야! 이번에는 불쌍한 여자 거지가 있으니 여자 거지한테 50원을 또 줘라! 또 줘라!' 그러면 줘야 돼요, 안 줘야돼요? 「줘야 됩니다」 줘야 된다는 말이예요.

또 한 골목에 떡 가니까, 애기 거지가 있는 데 불쌍한 자리에 놓여 있어요. `야! 너 또 줘라' 그런단 말이예요. 양심은 그래요. 또 주라는 거예요. 또 주라는 거예요. 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줄 것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줘야 됩니다. 무엇을 주어야 되느냐? 마음으로 줘야돼요. 눈물로써 주든가 안타까움으로 줘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후에야, 공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요.

`아이구, 내가 이제는 다 줬으니 없습니다' 하지 말라구요. 그렇게 마음이 명령하면 그 사람을 볼 때 불쌍하고 측은하여서 `어찌하여 너는 그렇게 불쌍하게 되었던고? ' 하라구요. 그가 남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혈족과 같고 혹은 혈육과 같이 생각하면서, 그를 향하여 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면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가슴 아프게 느끼면서, 돈 50원이 없지마는 50원 이상의 가치로서 `내가 너에게 주고 싶다' 하면 그 사람은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주지 못했더라도 양심의 가책은 안 받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주지 않더라도 양심의 가책은 안 받아요. 그렇지만 돈 50원을 남겨 놓고 안 줬을 때에는 가서 잠을 자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요. `이놈아!' 합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선을 지향하여 움직이는 양심작용은 주고 주고 또 주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보라구요. 양심은 언제든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 하면 `예' 합니다. 이것은 언제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이에 언제 양심과 조약을 맺고 있다는 거예요. 몸뚱이가 양심과 조약을 맺었다는 거예요. 마음은, 양심은 `너를 명령하여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 하고 몸뚱이는 `양심과의 조약을 지켜서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이 되겠다!' 합니다. 자신들은 모르지만 어느 한 때에 조약이 맺어졌다는 거예요. 이걸 여러분들은 모르지요. 조약이 맺어졌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선한 사람이 될 수있고, 선한 사람이 되면 지극히 선한 것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고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선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선한 무엇을 상대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죄입니다. 절도와 강도야! 주인이 될 수 없어요. 책임을 질 수없어요. 그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입장에서 감당해 내지 못 해요. 그건 절도와 강도라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이 나라가 지금 부패해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 있게 될 때, 뜻을 품은 애국자가 있다 할진대는 `야!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네 밭뙈기도 팔아라! 다 팔아라! 집이고 뭐고 다 팔아서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해라!' 해서 다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부족해서 양심은 명령하는 거예요. `야! 이놈아! 너는 아직까지 고기 덩어리가 뻔뻔하게 살아 남아있으니, 네 고기 덩어리까지 이 민족을 위해서 쓰러지게 해라'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열만큼 명령했을 때 이것을 완수하면, 또 열만큼 해야돼요. 양심은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 명령을 듣다가는 내가 옥살박살하겠거든요. 이걸 또 했는 데 또 딴 거 하라는 거예요.

양심이 왜 그러느냐?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양심이 그렇게 명령을 하는 것은, 실천하면 또 하라는 것은 왜냐? 양심이 찾아 줘야 할 조약, 몸뚱이가 맺은 조약을 실천해 주려니까, 조약을 지키려니까 너를 천하에 제일가는 사람으로 만들겠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하는 데는 이것을 하고도 또 해라 또 해라 하는 거예요. 하루에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선한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양심의 요구이자 희망이기 때문에, 양심은 여러분의 몸뚱이를 통하여 쉴 새 없이 명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싸움이 인류역사

양심이 고마운 것이지요? 「예」 왜? 인간이 본래 타락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서 최하의 자리에 떨어졌으니, 오늘 우리의 마음, 즉 양심은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천적인 본성의 심정은 본래 타락하지 않은 선의세계, 완전한 자리에 나가야 할 것이 본래의 양심과 하나님과 결정한 법도예요. 법도인데 이 양심은 법도를 어길 줄을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이 법도의 기준에서….

오늘날 인간을 이 법도의 기준에 올라간 가치의 존재로 어느때라도 만들어 주고 싶고, 되어지기를 바라고, 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양심작용입니다. 양심이 떨어진 인간을 대해서 여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치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으니, 수천년 동안 암흑세계로 떨어진 인간이 하루에도 천년 공사를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양심은 `빨리 올라가야 되겠다' 하고, 한 시간에도 십년 공사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뭐 지쳐서 못할이만큼 명령한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여러분들의 양심이 얼마나…. 그래 가지고 뭘할 것이냐? 세계에서 제일 가는 최선의 주인공인, 최고의 공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늘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 천하 만인간이 주고받는 선한 사람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도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요? 「예」 선한 사람과 선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은 약해요. 약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스승이 필요한 거예요. 지도자가 필요한 거예요. 지도자가 대중에게 외치면 그 양심은 `옳다! 이놈아!' 합니다. 외적인 자극을 통하여 내적인 자극을 명령해 줘도 느끼지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외적으로 선한 지도자를 세워 가지고 공격하는 거예요. 공격하면 마음에서 폭발되어 `옳습니다' 해 가지고 그 사람의 생활을 따라가게 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가게 하고, 그 사람의 말씀을 따라가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낮은 데서 다리를 놓아 올라가게 하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도 좋은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요? 그렇지요? 「예」 사는 데도 좋은 사람하고 살려고 하고, 다 그러는 거예요. 자기보다 나은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으려고 하고,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또 올라가려고 하고,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게 뭐냐? 최고의 선의 자리에 나가서 제일 좋은 것을 찾아 나가기 위한, 인간이 본래 지녔던 그 가치를 찾아나가는 것이 오늘 우리 타락한 인간생활의 전부라는 거예요. 즉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기 위한 싸움이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기 위한 싸움이라는 거예요, 싸움.

선을 행하고 피땀 흘려 노력하고 양심의 명령대로 실천하겠다는 것은 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느냐? 최고의 선이예요. 하나님 자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투쟁을 벌이는 것이 오늘날 인생이예요, 인간 생애. 알겠어요? 「예」

그러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 한 분을 모신 사람은, 그분의 것이 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으면….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으면 수수작용이라고 그러지요. 통일교회에서는 ? 최고의 그분과 더불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거기에서 비로소 쉬는 거예요. 비로소 안식하는 거예요, 안식.

오늘날 역사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투쟁해 나오는 것은 최고의 선의 주체인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쟁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찾아져 가지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인류역사는 전쟁사를 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은 구원섭리를 하여 이 땅 위에서 비참한 상태, 피흘리는 일, 죽이는 일, 원수 앞에 쫓기는 일, 이런 일을 전부 다 없애기 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싸워 나가면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하나님이 소원하는 목적의 실체가 사람이요 사람의 소원과 사람의 목적의 실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과 사람이 요구하는 하나님과 둘이 합해서 완전히 그 맘과 몸이 주고받을 수 있는 그때에 가서 이 사람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결국은 결론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뺏기내기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찾기내기 하는 싸움이요, 하나님을 뺏기내기 하는 싸움이예요. 하늘을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싸움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위한 싸움이예요. 살면서 뭘할 것이냐? 사랑하기 위한 인간들이라는 거예요.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사랑하고 하나님하고 살면서 하나님과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좋아할 수 있는 이 자리까지 인간의 양심작용은 언제나 달려가는 거예요. 그 자리를 갖지 못하는 한 이 인간세상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키워 나온 한 존재는 메시아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 봅시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이 대번에 하나님을 찾아 나갈 수 있느냐? 아니예요. 하나님은 이런 세계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사망의 구덩이에 빠져 있는 인간 가운데서 양심으로 대신하는 거예요. `야! 아무개야! 네가 부디 선하여라! 선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양심으로 명령하면 지남석 작용과 같이 힘의 작용을 일으켜 그 어둡던 사람이 점점 깨우치게 해 가지고, 여기 이 세계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한사람을 빼앗아 나와야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을 세워 놓아야 된다구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역사노정에 있어서 구원섭리에 나타난 우리 조상들이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야곱이예요. 야곱으로부터 비로소 승리한 사람, 즉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 한 사람을 기대로 해서 그다음에는 한 사람을 크게 해 가지고 가정으로 끌어내는 거예요. 가정을 선하게 하고, 가정이 선한 권내에 들어오면 하나의 종족을 선하게 하고, 종족이 선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민족을 선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세계까지 점점 키워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이 키워 나오는 사람을 본받아 나가는 거예요. 키워 나가는 사람을 본받아 나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잘들어요. 이 키워 나가는 사람을 따라서 하늘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 생겨나면 거기에는 지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또 국가가 생겨나면 그 국가를 구하고 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와 백성이 있는 거예요. 그 국가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과 지도받을 수 있는 백성이 찾아지면, 그 찾아진 기대 위에서 국가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인을 보여 준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점점 올라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사람은 무엇을 찾아 나간다구요? 사람을 찾아 나가요. 여기서 한 사람, 개인을 찾고, 여기서 가정을 찾고, 여기서 종족을 찾고, 여기서 민족을 찾고, 여기서 국가를 찾고, 여기서 세계를 찾아야 된다구요.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개인을 찾아 세울 때에는 개인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이요, 가정을 찾아 세울 때는 가정을 중심삼고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이요, 혹은 민족과 국가, 국가와 세계까지….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뭘? 개인의 중심, 가정의 중심 혹은 종족의 중심, 민족의 중심, 세계의 중심으로 점점 커 가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쭉 사람이 커 나오는 거예요. 사람이 한꺼번에 클 수 없으니 개인적으로 장성하는 때, 가정적으로 장성하는 때, 종족적으로 장성하는 때, 민족적으로 장성하는 때, 국가적으로 장성하는 때, 세계적으로 장성하는 때, 나중에는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때까지 하나님은 인간들을 키워 나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전부 다 천하통일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렇게 6천년 동안 키워 나간 이 한 존재는 무엇이냐? 이것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인 동시에 이것이 뭐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야'사람이 제일로 요구할 수 있는 선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제일 된 사람이 합했으니 이게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거예요. 제일 가는 하나님과 제일 된 인간, 둘이 합하여 하나의 살림살이를 차려 놓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앞으로 이상세계는 어떤 세계냐? 제일 가는 하나님과 제일 된 사람이 6천 년 동안 키워서 자라난 사람이 사는 세계예요. 그러면 여기에는, 요건 다 개인적인….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이걸 아담이라 하면, 메시아라고 하면, 여러분이 개체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은 개인적인 메시아가 되는 거예요. 내 마음은 개인적인 구주예요. 몸뚱이 대해서 구주예요. 몸뚱이 대해서 양심은 구주입니다. 개인적인 구주예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양심의 명령에 잘 복종해야 이 개체가 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거예요. 또 가정을 지도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구주입니다. 민족을 지도하면 민족의 구주예요.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국가적인 구주예요. 그와 같이 하나님은 개인으로부터 다리를 놓아 가지고 오늘날 세계무대까지, 이 끝날 세계적인 무대까지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하나의 전체의 수고의 가치로서 비로소 한 사람의 실체로 나타난 그분이 기독교로 말하면 메시아입니다.

그분만 이 땅에 오면 그분 가운데는 하나님이 찾고 있던 개인도 살아날 수 있고, 하나님이 찾고 있던 가정도 살아날 수 있고, 하나님이 찾고 있던 민족ㆍ국가ㆍ세계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도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은 `구세주여 오시옵소서!' 하고 고대한다는 거예요. 왜? 그분이 이와 같이 완성한 세계적인 참부모의 입장에 있으니, 우리는 그분만 모시게 되면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요. 또 아들딸이 되어 키움을 받게 되면 우리도 시집 장가가서 참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천지만물을 주관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까지 주관해야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을 제일 귀한 자리에 있게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만물을 인간한테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통하여 만물이 주관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들은 세계를 지배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라고 인간한테 명령한 동시에 또 명령을…. 성경 말씀에 없지만 `만물만 주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해 다오' 하신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제일 귀하신 하나님, 제일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 세워 가지고는 , 우리 인간을 만들어 가지고는 `제일 귀한 만물도 주관하는 동시에 하나님 가운데 제일 중심인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해 다오!'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정까지 주관하라고.

사랑하는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주관하나요, 주관하지 못 하나요? 응? 주관할 수 있는 거예요. 자식이 슬퍼지면 부모도 슬퍼지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자식이 방실방실하면 부모도 방실방실하지요? 「예」 그 말이예요.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주관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생이라는 한 존재는 천지만물도 주관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주관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과 사람이 합동작전을 하여 새로운 세계에 가정을 이루어 살기 위한 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최고로 선하게, 제일 좋게 지었던 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었으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재차 복귀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재차 찾아 나가는 거예요. 이걸 찾기 위한 방편으로 세워 놓은 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처음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뭐라구요? 「창조목적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을 찾아 세워 나가는 방편으로, 타락한 인간이 죽어 자빠졌으니 이것을 살려 가지고 이 자리까지 끌고 나가기 위해서 민족은 민족에 해당하고, 혹은 그 국가면 국가와 국민성에 알맞는 종교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태평양 물이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통해서 모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지각색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이 지류를 통해서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지각색의 사상을 통해 종교를 세워 가지고 이것을 전부다 규합해서 하나의 태평양 물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수많은 민족 앞에 그 민족에 알맞을 수 있는 , 흡수될 수 있는 종교를 세워 가지고 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끌고 나오는 거예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 목적의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합동작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은내 사랑이요 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림살이를 차리고 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 천지 창조한 창조주의 이상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앞으로 선한 세계가 오고,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님이 오고 천년 왕국시대가 온다는 게 뭐예요? 그 세계가 뭐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지배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주관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나를 놓고는 못 간다 이거예요. 자식을 놓고 부모가 어디 도망갈 수 있어요? 타락한 인간도 그렇거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 중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선 중에 최고의 선? 하나님만 가지고도 최고의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한을 품고 있으니 사람 찾겠다고 하고 있으니 선이 아니예요. 욕망이 있는 사람도 선이 아닙니다. 사람도 사람만 가지고 암만 올라가더라도 그것이 선이 아니예요. 사람은 하나님을 갖고 하나님은 사람을 가져 가지고,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이 합하여 하나의 가정이 벌어지게 될 때 비로소 선한 거예요. 그래 동양의 음양의 이치가 거기서 벌어지는 거예요.

손 하나만 있으면 선이예요? 이거 하나 가지고는 조화가 안 나와요. 이것에는 이것만 있으면 조화가 나오거든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별의별 조화가 다 나오지요? 이것이 있으면 돼요? 이 둘이 있어야 조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방향, 각도, 위치, 고저, 폭 여하에 따라서 조화가 벌어지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젠 알겠지요? 종교는 무엇이라고요? 그걸 찾아 나가는 방편으로 준 거예요.

그러면 세계적으로 제일가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 것이냐? 그 하나님을 대해서 하나님의 사정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소원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의 그 제일 알맹이를 가르쳐 주는 종교가 최고의 종교예요. 알겠어요? 「예」 종교라면 어떤 것이 최고일 것이냐? 껍데기 를 가르쳐 주는 그 종교가 최고의 종교가 아니예요.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을 가르쳐 주는 그것이 최고의 종교가 아니예요.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내정을 들고 나와서 가르쳐 주는 종교가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종교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종교가 어떤 종교냐? 불교도 그렇지 않고, 유교도 그렇지않아요. 회회교도 그렇지 않아요. 4대 종교 가운데 기독교인데, 기독교가 그걸 들고 나왔다 이거예요. 내가 기독교를 믿는 다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선생님도 그런 문제를 냉정히 비판해 본 사람이예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는 사람

제일 좋은 것 중에 무엇이 제일 좋으냐? 심정문제입니다. 심정이 엉클어질 때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런 내용을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를 우리 해석해 보자구요.

기독교는 어떻게 말하느냐? 하나님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한다 이거예요.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응? 「아버지입니다」 아내의 심정을 통하기전에 아버지의 심정을 통해야 돼요. 그렇지요? 「예」 그러니 제일 가까운 게 부모예요. 아버지의 심정이예요. 그다음에는 ? 아내의, 부부의 심정이예요. 그렇지요? 「예」 그다음에는 자기들끼리 형제지간의 심정이예요. 요걸 확대시켜야 되는 거예요.

종교 중에 기독교가 어찌하여 세계를 제패할 새로운 문화세계에 있어서 원천이 될 수 있었느냐? 이런 원칙 밑에서 헤아려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심정의 핵심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거 이치에 맞지요? 「예」

앞으로 주님이 와서 할 것이 뭐냐?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을 주님이라 했는데, 기독교에서 가르쳐 주기를 하나님을 대해서 예수님은 아버지라 불렀다는 거예요. `나는 독생자다. 천하 만민 가운데 나만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태어난 자는 없다'고 했습니다. 거 과연 구주라는 것입니다.그다음에 온 세계 인류에 대해서 하는 말이 `나는 너희 인류의 조상이다.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다!'고 했어요. 신랑 신부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아버지라는 말도 나왔고 신랑 신부라는 말도 나왔고, 그다음에는 ? `나는 너희들을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요 형제라고 말하겠다!' 했습니다. 다 나왔다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있는 걸 볼 때에, 천지조화 합덕을 이룰 수 있는 그 원천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기독교예요. 알겠어요? 「예」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심정 발판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예요. 최고의 선은 어디에 깃들어 있느냐?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곳에 깃들어 있는 거예요. 좋아하려면 심정이 깃들어야 돼요. 심정의 주체가 계시는 곳에는 최고가 머무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암만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권세가가 있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영웅이 있다 하더라도, 그 영웅 가운데 심정세계에 제일 중요시하는 것을 딱 빼 오면 영웅도 무능한 객이 되어 버리고 만다구요. 심정 기반을 잃게 되면 불행한 거예요.

그러면 타락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에게 최고의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만이 아니예요. 하나님과 사람과 합하여서 죽자 살자, 놓고 못 살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판국이 벌어지는 동산이 인간이 찾아가는 최고의 지성소요, 하나님이 찾아오는 최고의 지성소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 왜 왔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에 뭣 하러 왔느냐? 통일교회에 와서 배우는 것이 그 최고의 지성소를 찾아 나가는 데 보탬이 될수 있으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다 가라는 거예요. 그걸 못 해주는 종교는 다 깨진다구요, 다 깨져. 제아무리 간판이 크고 제아무리 덩치가 크다 하더라도 다 깨지는 거예요. 알겠나요? 「예」 그러면 대강 알 거예요.

도를 통해 나가는 최후의 목적은 참부모를 찾는 것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이 되는 것이 최고의 선이예요? 타락한 입장에서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의 종의 신세로부터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도 못 됩니다. 사탄의 종도 못 된다 말이예요. 사탄의 아들딸도 아니예요. 사탄의 아들딸이라면 사탄이 여러분들을 사랑해야 돼요. 사랑하게 되면 자유를 줘야 되는데 자유만 주면 이놈의 사람들은 전부 다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탄은 여러분들의 모가지를 올무에다 매 가지고 끼고 다니는 거예요. 사탄은 부모도 못 된다는 말이예요. 사탄이 인간을 사랑해 가지고 운행하게 되면 자유를 줘야 돼요. 자유만 주면 하나님께로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엎어 버려 가지고, 겁탈해 가지고 지금까지 유린하는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지금 땅 위에 사는 타락한 인간들은 사탄의 종의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섭섭하겠지만 사실 그런 것입니다. 사탄의 종의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됐어요? 사탄이 심정이 있다면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처참하게 고생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사탄의 종 새끼도 못 되어 있기에 그러는 거예요. 사탄의 종 새끼도 못 되었고 사탄의 아들딸은 더우이나 못 되었다구요. 이것들을 세워 가지고 하늘은 종 새끼로 입적시키는 거예요. 그 종 새끼로 입적시키기 위한 수속을 수많은 종교를 통해서, 종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종 새끼들 중에도 계급이 있어요. 그 계급 계급을 분담시켜 가지고 종 새끼를 모집하는 운동이 지금까지 종교의 사명이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종의 새끼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특출한 패들을 끌어내 가지고,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그다음에 양자를 만드는 거예요. 양자를 만든다는 거예요.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해서 올라가야 될 것 아니예요? 양자를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예요. 양자를 만들어 놓고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 인간을 찾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양자에서 직계아들딸로 끌어올려야 돼요.

이 직계 아들딸로서 상속적인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예요.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 아들과 우리 타락한 인간으로서 양자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과…. 하나는 돌감람나무요, 하나는 참감람나무지요? 그렇지요? 「예」 성경에 그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하나는 돌감람나무요 하나는 참감람나무라고. 그러므로 돌감람나무를 슬쩍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순을 갖다 접붙여라 이거예요. 옛날 사람은 죽여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의 순을 갖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무슨 감람나무로 되는 거예요? 「참감람나무요」 (녹음 잠시 끊김)

이렇게는 못 올라가요. 맨 밑창에서부터 꺼꾸로 올라가는 거예요. 백성을 모아 종을 모으고, 종을 모아 양자를 모으고, 양자를 통해 아들을 보내 가지고 접붙여서 아들 급에 올라오게 한 후에는 인류가 본래 맞아야 할 참부모,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 되는 그 두 분을 모셔다 놓고, 그 두분에게 심정적인 인연의 공인을 받아 비로소 타락하지 아니하고 본래 태어났던 아들딸의 입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예요. 알겠어요, 저기 계신 아저씨들? 그렇게 하면 이제 알 거예요. 오늘날 도를 통해 나가는 최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잃어버린 참부모, 천지 부모를 찾는 거예요. 이렇게 땜질을 해서 올라가는 거예요. 꺼꾸로 복귀해서 올라가는 거예요.

도의 길은 절대 복종, 절대 희생, 절대 순종의 길

하나님이 제일 선하신 분인데, 선하신 분이 기뻐하는 날이 어느때일 것이냐? 선한 자체라면 기뻐하여야 됩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선의 하나님이지만 기뻐하지 못하니 선의 하나님이 아니었어요. 불의와 타협하는 하나님이예요. 지금까지 그랬다는 거예요. 사탄이 참소하면 `오! 그래, 그러지 그러지' 한 거예요.

보라구요. 사탄이 `하나님이여! 저렇게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자랑하는 그 욥 자체를 보면, 당신이 모든 재산을 축복해 주었고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여기 그 해준 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렇게 공경했지. 그렇지 않으면…. 그러니 한번 때려 보소, 그까짓 녀석도 다 마찬가지요' 했다구요. 남을 치라는 것은 악입니다. 사탄이 참소하는 그때에 하늘은 채찍을 들어 욥을 치는 거예요. 악하고 타협해 오는 하나님이예요. 조건만 걸리면 꼼짝하지 못한다구요. 그런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악은 우리의 경계 내에서는 용서할 수 없어!' 이럴 수 있는 입장의 권한을 가진 세계를 만들어야 할 하나님인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이 무엇이뇨? 아까 그 말대로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선은, 맨 끄트머리의 선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뒤따라가며 사랑을 받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겠지만, 그건 한꺼번에안 되는 거예요. 단계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종 새끼를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종 새끼를 만나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직계의 책임을 진 종이 누구냐? 종 중에 종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입니다. 종의 새끼를 만난 후에는 종이 어느 정도까지 수가 차게 되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양자 새끼를 보내 양자 새끼를 세우는 거예요. 그다음에 종이 된 녀석들은 양자 새끼를 만나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양자가 된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아들을 만나야 됩니다. 그걸 찾아 나오는 거예요. 참아들을 만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참부모를 찾아 나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래야 여러분들이 최고의 선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찾고 있는 선과 제일 좋은 것은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이 누가 되는지 알아요? 알아요? 하나님의 종이 누군지 알아요?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임자네들이 알게 뭐야? 종인지 알 게 뭐야? 하나님의 종인 줄을 모르니까 덮어놓고 종교에서 가르쳐 주기를 `절대 복종, 절대 희생, 절대 항복해라'합니다. 이것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 무사통과 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종을 모시는 이상으로 양자를 모시고, 양자를 모시는 데에는 아들 이상 모셔라! 아들을 모시는 데에는 참부모 이상 모셔라! 천지 부모를 모시는 이상 있는 정성을 다해 희생봉사하면서 모셔라! 이렇게 되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종을 만날 수 있는 가치의 경지로 나가고, 양자를 공경하고 모실 수 있는 가치의 자리까지 넘어가고, 직계 아들딸을 모셔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세움받을 수 있는 가치의 자리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오랜 역사를 두고 지긋지긋한 고생과 지긋지긋한 희생을 해 나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가는 데마다 전부 다 모가지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 복종, 절대 온유겸손, 절대 겸비를 해야됩니다. 무조건 여러 세계를 참아 나가고 그렇게 모시면, 만일에 종이 나를 찾아왔을 때 종 이상으로 모시는 대우를 하고 종을 위하면 그 종이 나를 버리지 못한다구요. 그럴 것 아니예요? 「예」 양자가 나타난 때가 되어 양자를 자기 아들딸이나 하나님의 아들딸보다도 더 정성껏 모신다고 할 때에는 그 양자가 나를 버릴 수 없어요.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또 그다음에 아들이 왔을 때에 아들을 하나님과 같이 혹은 최후에 모셔야 할 참부모와 같이 모시는 사람이 있으면 아들이 박대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사통과할 수 있는 원리원칙이 무엇이냐? 절대 복종이요, 절대 희생이요, 절대 항복입니다. 이해돼요? 그래서 오랜 역사노정을 통해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서 하나의 참부모라는 이 부모의 문을 거치게 하려고, 저 옛날 옛적부터 이 법도의 기준에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도의 길은 죽음의 길이요 희생의 길이요 봉사의 길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고마워요, 어때요? 고마워요? 알고 보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참부모를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 밑에서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오늘날 기독교가 수천년 역사노정에서 참살을 당하고 피어린 역사적인 슬픔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슬픔의 길을 걸어온 그 자체를 보게 되면 불쌍한 것이었으나, 하나님이 의도하는 길로서…. '너희들이 가는 길을 따라서 하늘이 찾아오는…. 앞으로 최고의 부모의 문으로 직행할 수 있는 무리들은 너희들밖에 없다! 이것을 세워 놓은 공약 밑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그 법도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를 남기기 위해서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는 하나님인 것을 내가 알 때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면 맨 처음에 출발할 때 어떻게 출발해야 되느냐?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그러한 천국의 인연을 최후에 가서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들도 종 새끼 중에 종의 종 새끼가 되자, 종 새끼 중의 종 새끼가 되자는 거예요. 종 새끼라는 것은 무슨 권위가 없는 거예요.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그렇지? 종이 자기 주장이 있어요? 「없어요」 있나요, 없나요? 「없어요」 종은 자기 주장이 없어요. 또 종이란 무가치한 거예요. 자기 주장이 없으니 자기 의견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고 무가치한 거예요. 주장이 없고 가치가 없는 자리예요. 그래서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세상과 등지고 가치 없고 주장이 없는 길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보면 주장이 많아요. 망하는 거예요. 불교도 보면 주장이 많아요. 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이제 최고의 것, 제일 좋은 것을 찾아가야 되는데,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그 곳이라구요. 하나님과 최고의 인간을 모실 수 있는, 최고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그 자리 이상으로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 이상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최고의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잃어버린 참부모를 모셔 가지고 하늘의 사랑 밑에서, 그 평화의 자리에서, 영원무궁토록 그 부모의 슬하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우리 행복입니다.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가 다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인간들의 것입니다. 참부모의 것이니 만우주는 그 앞에 주관받는 거예요. (아이들이 많이 움)

그만둬요? 그만둘까요? 「안 됩니다」 아, 이러는데 어떻게 알아먹나요. 안 하고 안 들으면 여러분들이 손해보지 내가 손해볼 것은 없어요. 통일교회는 기성교회하고 다르단 말이예요. 그렇게 언제나 종 새끼 모양으로 이러지 않아요. 이제 그럴 때가 지나갔다구요.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최고의 선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류의 참부모가 상봉하여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평화의 복지로 출발할 수 있는 그곳이 우리의 최고의 소원인데, 그곳을 찾아가려면 인생들은 어떻게 따라가야 되느냐? 종의 멍에를 메고 양자를 거쳐 참아들딸의 기준을 거쳐서 참부모와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참부모가 `내가 너희들을 아들로 삼는다. 딸로 삼는다' 하는 인정을 받아야만 인생의 소원성취가 끝나는 거예요. 그 이상의 무엇이 없어요.

세기말의 시대에 제일 귀한 것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

자, 그러려면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시대냐? 아까 말한 것처럼 이렇게 살아 올라가는 시대인데,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인 시대로 이렇게 쭉 올라가는데, 옛날 구약시대나 종의 섭리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시대에 제아무리 영웅 열사였고 잘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때에 태어난 사람은 개인적인 혜택권 내밖에는 못 올라가는 거예요. 또, 가정적으로 택할 수 있는 시기에 머물렀던 사람은 아무리 세계를 호령하고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주관한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보시기에 가정을 택할 수 있는 그 시대의 혜택권을 못 넘어가요.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또, 민족을 택할 때에 와서 믿은 사람은 이걸 다 업고 들어가는 거예요. 민족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여기의 한 사람이 충성을 드리는 것이 옛날 여기의 개인이 충성을 드리는 도수와 같더라도 이는 개인적인 축복밖에 못 받을 존재이지만 충성을 드리는 데 있어서 같은 기준에 섰더라도 시대를 잘 타고 났기 때문에, 시대적인 혜택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복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때에 들어왔으니 종족과 가정과 개인의 축복을 넘어설 수 있는 혜택권 내에 들어간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끝날이 오면 올수록 끝날에 태어난 사람이 복이 많아요. 이해돼요? 「예」

예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 20세기 문명은 과학의 문명이예요. 과학을 중심삼은 공식 발달의 문명이예요. 공식적인 문명이예요. 그런 문명인데, 수많은 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해서 공식으로서 가르쳐 준 그 법도를 알고자 할 때는 천년 수고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모아 놓은 한 권의 책을 우리는 하룻밤에 다 독파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천년 혜택을 하룻밤에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커 나오는 거예요. 때를 따라 커 나오니만큼 개인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거예요. 오늘날 개인적인 시대에 태어났던 것보다도 이 민족적인 시대, 즉 끝날이 가까운 시대에 태어날수록 복이 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그러면 오늘날 이 세기말적인 시대는 어떠냐? 끝날이예요. 좌우가 부딪치는 이런 세계적인 환경에 처해 있으니, 우주에 둘밖에 안 남았거든요. 둘밖에 안 남아 있으니 둘이 싸우면 뭐가 남는 거예요? 하나가 남지요? 제일 귀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렇지요? 「예」 제일 귀한 것은 하나인데, 하나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그런 가까운 세계에 왔구나!

그러면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세계적인 때입니다. 세계적인 때는 어떤 때냐? 참부모가 올 때예요. 주님이 올 때예요. 그러면 이 세계적인 때에 있어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옛날에 가정적인 시대에 충성하던 것과 같이 충성하더라도 그 사람은 세계적인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거예요. 이때에 태어났으면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이 가정적인 축복을 받게끔 충성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만한 충성을 하더라도 여기서 세계적인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종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충성하던 사람만큼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충성하면 세계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게 복이예요? 끝날에, 말세에 태어나 이 땅 위에 사는 인간에게 무한한 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복인동시에 어려운 것이 있다는 거예요. 시련이 많습니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중세 혹은 기독교 역사라든가 서양사를 보게 되면, 옛날 구교라는 틀에 감투를 씌워 놓았기 때문에 요지부동(搖之不動)이예요. 마음대로 빠져 못 나간다구요. 그렇지만 지금은 자유의 천지가 됐어요. 이것도 그것 같고 그것도 이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찾기가 힘들어요. 알아내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알아만 내는 날에는 꿩 잡는 거예요. 수가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선과 악이 대등할 때예요. 선과 악이 맞먹는 때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것도 그것 같고 그것도 요것 같고, 선도 악 같고 악도 선 같고 맞먹는 때예요. 맞먹는 요것을, 이빨을 맞추어 보니 틀려 나가는 것은 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도 기아가 있다구요. 하나님은 정의의 기아가 있을 거예요. 정의의 기아가 있으니, 이 기아를 만들기 위해서 하늘은 여기에 맞춰 나오기 위한 기아를 닦아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두 세계가 되어가지고 틀고 돌아가는데, 지금 하나님의 기아가 여기서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제일이냐? 네가 제일이냐? ' 하며 싸우다가 맞추어보는 거예요. 요가소 맞추어지는 것은 남는 거예요. 안 맞추어지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안 맞춰지는 것은? 망할싸!

하나님의 소원·사정·심정을 알아야

오늘 이때가 제일 좋은 때인 동시에 제일 어려운 때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때에 태어났노? 「좋은 때요」 알겠어요? 이때에 태어났는데 이 사람들이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이 사람들이 발견해야 할것이 무엇이냐? 이때에 태어난 것은 복인데, 이 사람들이 발견할 것이 무엇이냐?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돼요. 그렇지요?

사람의 진짜 소원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사람이 진짜 통할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되고, 또 그다음엔 사람으로서 지극히 하나밖에 없는 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된다구요.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 줄 알고, 사람으로서의 사정을 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어떤 것이 귀한 것인지 알고,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심정이 어떤 심정이라는 걸 알아야만 된다는 거예요.

또 그다음에는 사람 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배가 된다는 말이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소원을 통하고 사정을 통하고 심정을 통하여야만, 3통을 해야만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사람까지 6통을 해야 돼요. 그래야 인간에게 있어서 욕망적인 요건을 딱 세워 보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제1은 무엇이라고? 「소원」 소원. 제2는 뭐라고? 「사정」 그다음엔? 「심정」

문제는 여기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세계에 꽉차고 남을 수 있는 경서가 많더라도 그 경서 가운데서 인간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지적하지 못하면 그 경서는 불살라야 됩니다. 세계 인류가 참다운 인간의 모습으로서 통할 수 있는 사정이 무엇이냐고 가르쳐 주지 못할 때에는 불살라야 돼요. 세계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라고 가르쳐 주는 그런 경서가 아니거든 불살라야 돼요.

거기에 더 보태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은 종교도 아니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줘야 돼요. 그다음엔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줘야 돼요.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도가 나와야됩니다. 그 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도가 될 것입니다. 결론이 나온다는 말이예요. 그럴싸한 것 같아요? 「예」 그럴 것 같아요? 「예」 사람의 소원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심정이 통하면 다지, 뭐가 더 있겠어요?

하나님도 지금까지 지정의(知情意)를 가진 분이시니만큼 하나님도 소원이 있어요. 하나님도 사정이 있어요. 하나님도 심정이 있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냐? 인간의 사정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으로 이것만 알면 된다구요. 이것만 알면, 자연히 여기서 풀이하면 사람의 소원이 무엇인지 대번에 안다구요. 왜? 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기 때문에 맞먹어요. 인간의 사정을 잘 알고 인간의 소원을 잘 알고 인간의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소원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거기 품에 들어와 자고 싶은 심정을 지니게 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누구든지 다 복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마련해 나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소원·사정·심정을 가르쳐 주는 통일교회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하는 교회냐? 내 욕심 같아서는 제일가는 교회라고 하고 싶어요. 하나님도 살아 있으면 `야! 지금까지 그런 교회를 못 봤으니 제일가는 교회 한번 되어 봐!' 하고 요구할 거예요. 통일교회는 뭘하는 교회냐? 통일교회에 처음 온 녀석들이 있을 거예요. 통일교회가 뭘하는 교회냐?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교회가 통일교회예요.

또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오신 분인데, 과거의 소원이 무엇이고, 과거의 사정이 무엇이고, 과거의 심정이 무엇이고,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시대에 대한 소원이 무엇이고, 이 시대에 대한 사정이 무엇이고, 시대에 대한 심정이 무엇이고, 또 이제 앞으로 올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냐? 그 내용까지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라야 만국을 포섭할 수 있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만민을 속죄할 수 있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과거의 사정과 심정과 소원이 다 있지요? 현재를 떠나서 미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다 있지요? 과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과 과거의 사람,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이 둘의 사정과 소원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정복한 사람보다도 위대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내용의 세계를 찾아가고 가르쳐 준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내용이예요.

여러분들, 여기 부모들도 말이예요, 자식을 볼 때 부모의 소원을 지닐 수 있어야만 부모가 찾아가지요? 부모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식이라야 가까이 오는 거예요. 부모의 심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터가 된자식이라야 부모가 꼼짝못하고, 열 아들이 있고 몇 백 아들이 있더라도`어머니 아버지, 나는 어디 갑니다' 하면 `야! 이것 다 버리더라도 널 놓고는 못 살겠다!' 하고 달려들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천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제일 되기를 원해요. 제일 좋아지기를 원해요. 제일 좋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제 말씀한 내용의 요건들을 갖추어 가지고 최후에는…. 제일 좋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요 제일 좋을 수 있는 분이 천지의 부모이니, 그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세계에서 사랑의 가정을 이뤄 우리 참조상과 하나님과 재미있게 살림살이하며 사는 곳이 최고의 곳인데, 그곳까지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대적인 과정을 거쳐온다는 거예요.

끝날에 태어난 우리는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여기에 처해 있는 우리들이 하여야 할 과업이 무엇이고 해결하여야 할 여건이 무엇이냐? 그런 요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 되면 하나님이 박대할 수 없어요. 천국 문을 찾아 들어가는데 환영하지 않으면 천지 법도가 어긋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끝날 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하여야 사명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뇨? 인류의 사정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뇨? 인간들의 심정이 무엇이냐? '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세계를 다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가르쳐 줄 수 있고 천 사람만 사람 다 교육시킨다고 하게 되면, 이 이념권 내에로 세계는 통일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인간의 천지의 화동의 중심체

뭐야, 이게?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통일교회」 통일이라는 것은 지배를 받는 거예요, 지배를 하는 거예요? 「지배하는 거예요」 거느릴 통(統)자 입니다.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라 할진대는 무엇을 거느려야 되느냐?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상에는 육계가 있고 영계가 있어요, 영계가.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으면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틀림없이 있어요. 여기 서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몸뚱이를 쓴 사람들이 사는 동시에 저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사람, 즉 우리 마음의 실체들이 사는 세계가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양심을 보았어요, 양심? 「못 보았습니다」 보았어요, 못 보았어요? 「못 봤습니다」 봤어, 못 봤어? 「못 봤습니다!」 왜 못 봤어? 「안 보이니까…」 그러면 있나요, 없나요? 「있습니다」 있는 걸 왜 못 봤어요? (웃음) 마음과 같은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몸 같은 사람이 있는 동시에, 정신 나간 사람도 사람이지요? 정신이 들어오면 그것도 사람이예요. 사람은 사람인데 무엇이냐? 두 사람이예요, 두 사람. 이중인격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몸뚱이는 만물세계를 대신하여 생겨났고, 이 보이지 않는 영계를 대신하여 마음 사람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두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무엇이라고? 「화동의 중심체」 화동의 중심체요, 중간? 「매개체」 원리에 딱 나와 있단 말이예요.

그러면 요 사람만 천하에서 빼다가 저 태평양 바다에 갖다 놔두면 하나님은 어디로 갈까요? 그 사람이 가는 데에는 천지가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생이요, 천지 중심과 인연맺게 되는 인간이예요. 그러니 그런 분이 있다면 태평양 바다에 있더라도, 조석을 잊고서라도 따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명으로 오신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거느리는 세계는 어떤 세계예요? 땅만이 아니예요. 사람만이 아니예요. 하늘과 영계, 천상세계와 지상과 인간세계입니다. 그것을 하나님 대신 주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천지를 주관하는 동시에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신들이 있는데 악신까지도 치리해야 됩니다. 거느려야 된단 말이예요. `야! 이놈아!'하면 `에이-'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하나님도 그 노릇을 못 했어요.

하나님이 그 노릇을 했으면 악신들에게 전부 다 추방명령을 대번에 했을 텐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것 못 했어요. 이 땅 위에, 천지를 통해 중심존재로 오신 분이 나와서 이런 역사적인 모든 범죄를 다 알아 가지고, `이 악마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긴 거야!' 하며 사탄의 비리를 폭로 가지고,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이 녀석은 천리 법도의 이러이러한 면에서 범죄한 자이니, 심판의 하나님께서 공의의 판단을 내려 주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를 우리가 고소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게 마지막에 도인들이 해야 할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심판하지 못하는 사정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하지 못해요. 왜? 진정으로 사랑하는 종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종을 심판대에 올려 모가지를 못 자른다는 거예요. 또, 인간을 심판하지 못해요. 인간은 왜? 자식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으면 전부 다 각을 찢어져 옥살박살 만들고 다시 만들어 줘야 될 텐데, 왜 지금까지 그런 노릇을 못 했느냐? 하나님이 부모로서 본래 사람을 지을 때 `나는 네 애비고 너는 내 자식이라'는 부자의 인연을 갖고 지은 천리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죄지은 자식을 벼락을 때려서 죽이지 못하는 거예요.

세상에 악한 부모라도 자기 아들딸이 사형수가 되어 교수대에 죽으러 나가는 걸 보고 어떻게 생각해요? 부모가 `하나님이여! 저 자식이 죄인이니 어서 모가지를 덜컥 잘라 주소!' 그래요? 그러겠어요, 부모가? 「아니뇨」악한 조상도, 타락한 인간들도 자기 자식이 암만 죄를 지었을 망정 죄지은 그 자리에서 천변지이(天變地異)가 벌어져서 우리 아들이 살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예요, 아니예요? 「그래요」 그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전멸시키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되지요? 「예」

그러니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찾자는 거예요. 다시 돌아오라! 다시 찾자! 내 말을 듣고 다시 찾아오라! 옳은 것을 듣지 못하는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은 지금 다시 찾는 놀음을 하나니, 하나님의 자식들이 원수의 쇠고리에 묶여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이예요.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 가는 노정에 있어서 사탄이가 끌고 가는 포로대열 가운데 낙오자를 주워 모아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종교를 믿는 사람은 인생노정에 있어서 낙오자들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저기 아저씨,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패가 망신당하여 세상천지에 믿을 게 없어 갈 길을 몰라 방황하다가 할 수 없이 하나님을 찾아 들어온 거예요.

인생행로의 낙오자를 찾아서, 즉 다리 병신, 찌끄러기, 곰배팔이, 병신 중의 상병신이요, 거지 중의 상거지를 찾아서 그것을 고쳐 가지고 아들로 만들겠다는 이 하나님의 처량한 사정을 이 땅 위의 인간이 모른다는 거예요.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오히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이런 비참한 자리에 서 가지고 잃어버린 아들을 수습하면서 이렇게 나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인간 너는 내 아들이요, 나는 네 아버지다'하는 걸 지금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 된 인연과 자식 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천지 법도를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는 날에는 천지를 다 휩쓸어 버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많으시고 전지 전능한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참고 또 참으면서, 여기까지 끌어 올라오는 데는 원수와 싸워서 올라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공의의 하나님 앞에 원수를 끌어다가, 종새끼를 끌어다가 `나는 자식이고 그는 종인데 이놈의 자식이 천도를 어겼다'고 그 죄상을 폭로시켜 심판을 받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존재 원수를 잡아다가 형무소에 가두게 해주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심판을 걸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심판을 걸 수 없으니까 인간이 검사가 되어 가지고, 사탄을 끌어다가 참소하여 공판정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놈을 완전히 청산해 주소!' 하고 청산을 요구하는 한날이 있으니 그날이 무엇이냐? 주님이 오셔서 심판한다는 대심판의 날이예요. 알겠나요? 「예」

대심판이라는 명사가 있으니, 인간은 이렇게 악하게 되고 타락한 것이 틀림없다 이거예요. 그때는 어떤 분이 나오느냐? `이놈의 사탄아! 너는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이렇게 유린한 철천지원수로구나!' 해야 합니다. 그 죄상을 공의의 심판주인 하나님 앞에 샅샅이 보고하여 정죄하는 판결이 내리기를 고대하는 , 이런 참소를 할 수 있는 참다운 승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하려면 하늘땅을 통일하고 이 원수를 통일해야 됩니다. 원수의 새끼를 전멸시켜 가지고 거기에 있던 모든 인류를 통일시켜야 돼요. 이런 사명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예요.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지요?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지만 또 갈라져 있어요. 다 갈라져 있어요, 전부 다. 사람도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어 싸움하지요? 부처끼리 가정에서 또 싸움하지요? 형제는 형제끼리 싸움하지요? 종족이면 종족끼리 싸움하지요? 민족이면 민족끼리 싸움하지요? 세계는 세계끼리 싸움한다 이거예요. 다 갈라져 있어요. 다 갈라져 있으니 어디서부터 이것을 합하느냐? 근본부터 해야 됩니다. 맨 처음에 갈라진 것이 인간이니 인간을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합하는 데는 하나님으로부터 합하기 시작해야만 이것을 다시 가를 자가 없다구요. 인간끼리 합하면 또 갈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합동의 한날을 고대하여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합할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때가 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합했으니 누가 가르느냐 그 말이예요.

사탄들이 무서워하는 통일교회

우리 통일교회는 아까 말한 노정의 사실을 찾아 나가는 관점에 있어서…. 이 천지 하늘땅의 원수를 복수하여 심판대에 세우는 한 날을 세워서, 승리한 아들딸의 가치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내용을 성취해 보자고 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예」 굉장한 거라구요. 통일교인,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책임을 질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선한 통일교회 교인이 되지 못해요.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교인이 되려고 왔어요, 안 되려고 왔어요? 「되려고 왔습니다」 되려니 힘들지요? 여기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는 몇 시간 혹은 한두 시간이지만, 이런 내용을 찾기 위해서는 천신만고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다는 걸 모를 거예요. 그러면 그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다 했느냐? 주워 듣고 하는 얘기가 아니예요. 실제 경험담입니다. 실제 경험담이라구요. 그러니 틀리지 않아요. 거짓말이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라구요.

그것이 다른 교회하고 다르다는 거예요. 무엇이 다르냐? 그렇다, 즉`예스', `노'가 결정적이예요. 그러니만큼 두려운 패들입니다. 하늘 앞에는 두려워하는 패요, 세상 앞에 무서운 패들이예요. 우리는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두려운 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패예요. 세상 사탄세계의 사탄들이 무서워하는 패예요.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악한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의 심정이 아까 말한…. 하나님의 소원을 통하고 하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 가지고, 통일이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행복 가운데 되느냐? 행복,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아니예요. 고생해야 돼요. 어느 길로 가야 되겠나요? 「고생길」 그런 길을 가려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고생길요」 행복의 길은 여기에 없어요. 고생길을 가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인간 하나를 길러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때를 맞이하지 못했으니 기쁜 날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기쁜 날을 가지지 못 했다는 거예요.

여기 왜 웅성거리나요? 그만둘까요? 나도 힘들다구. 그만두자우? 그만큼 얘기했으면 알 거예요. 더 해요? 「예」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쓰러질 각오를 하고 얘기하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정신차려야 될것 아니예요. 어디 뭐 지나가던 사람이 여기 온 게 아니예요. 여러분들의 생명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싸움하는 판국이예요. 선생님은 손해 안 난단 말이예요. 그만둬요, 더 해요? 「더 해요」 자는 녀석이 있으면 볼기를 때려요. `자거든 주먹으로 한 대 들이 갈겨라!' 이럴 때는 선생님이 무섭지요? 한참 얘기할 때는 좋은 말로 얘기하고 욕을 할 때는 무섭다구요.

선생님은 조는 사람을 모아 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더구나 원리 말씀을 강의할 때는 암만 처음 온 무슨 학박사라도 졸게 되면 내쫓는 거예요.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어디서 껄렁껄렁하게 자기 마음대로 그저…. 쓰면 뱉고 달면 삼키게 안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껄렁껄렁한 곳이 아니예요. 이거 세상 사람들, 아주 껄렁껄렁한 녀석들 전부 다 통일교회에 올 때 검사의 눈을 다 가지고 왔지요, 맨 처음에 올 때? 「예」 뱀의 눈, 독사의 눈으로 `어떤가 보자!' 하는 거 다 쳐버려야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통일교회 선생님의 사정을 봐주기 위해서 오는 녀석이 한 마리나 있어요? 뭐 이익 나겠으니 여기 붙어 있고, 손해 안 보겠으니까 달라붙어 있지요. 손해 날 것 같아 봐요, 다 도망가지 안 그래요? 사실 자기들이 끝까지 가더라도 손해는 안 볼 것 같으니까…. 틀림없이 손해는 안 본다구요. 자기들의 것을 천 개 만 개 주고도 못 갖는 거예요. 이렇게 또 욕을 좀 해야 시원하다구요.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는 길을 가야

자, 하나님의 소원과 뭐?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기 위해 그 길을 돌아 나가려 할 때 행복의 콧노래와 더불어, 좋은 침상에 누워서 몽상과 더불어 할 수 있느냐? 아니예요. 그러면 고생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최고의 영광 중에서 사셔야 할 하나님이예요.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하나님의 발걸음에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있을소냐? 이해돼요? 요 아주머니들은 실감이 날 거예요. 젖꼭지를 물려 애지중지 기른 녀석들이 지금 앓아서 당장에 죽으려고 하면, 팔뚝을 자르든지 가슴을 찌르든지 자기 배때기를 째든지 해서 피를 전부 다 먹여서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도 한단말이예요.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난 부모들도 그러는데 본연의 본성을 가진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은 자식들을 송두리째 생매장하는 , 송두리째 원수 앞에 빼앗긴 걸 생각할 때 어떻겠나요? 밤잠이 오겠느냐 말이예요. 밤잠이 오겠어요? 「안 옵니다」 6천년 동안….

이제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워야 할 아들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이예요. 봤지요, 아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을 찾기 위한 것이므로 세계에 있어서 종교니 혹은 기도니 하는 명사가 필요치 않는 거예요. 종교에서 기도생활에서 탈출하고 하나님과 동거생활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 창조했는데, 이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원수의 품에 가서 종이 된 거예요.

이래 가지고 천신만고하여 사탄하고 조약을 맺는 거예요. `이놈아! 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천리의 원칙에 어긋나니, 그 어긋난 법도를 대신하여 바른 도리를 찾아서 사람이 나서게 될 때 너희는 주관하지 못 한다!' 하면 여, 그거야`응당히 천리 법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하여 세웠던 법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간섭하겠습니까' 하는 거예요. 간섭하지 못하겠다는 조약 밑에서 인간 앞에 세워 놓은 원리 원칙적인 조건대로 하면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철창을 뚫고 가서 빼앗아 나온다구요. 조건대로 못 하면 그냥 포로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빼앗아 나오기 위해서는 주관을 끝까지 해야 됩니다. 참아들이라면 하늘땅을 주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을 수 있어야 되고, 인간 세상에 참조상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수많은 인류들이 그 조상을 천추만대에 길이 천양할 수 있는 조상이라고 모시게 할 수있는 아들로 만드려고 했는데, 그런 아들이 죽어 버렸다 이거예요.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으니 타락입니다.

잃어버린 그 아들을 찾아 나오는 하나님께서 어디 가서?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정신이 나겠나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하여 이름지어 주던 물건 혹은 장난감 같은 걸 보더라도 자식이 죽은 후에는 부모 앞에 다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위해 지음받았던 만물도 하나님 앞에 만물 취급을 못 받으니 만물까지 탄식한다고 했어요. 사람까지 탄식하고 하늘땅 전부가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탄식하는 입장에 섰으니, 아들딸을 못 찾는 한 그 탄식을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완전히 찾아 이 만우주에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워놓기 전에는 ,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목적을 완결지을 수 있는 하나의 자리에 세워 내놓기 전에는 , 하나님도 쉴 수 없고 인간에게도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안식이라는 두 글자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처참한 역사적인 곡절이 벌어졌던 것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천지의 대주재시요 인류 행복의 중심 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 되시는 그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렇게 비참 중의 비참이라는 명사 가운데에서 아직까지 탈을 쓰고 있느냐?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억울하고 처참한 환경에 놓여 있게 됐느냐? 하나님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죄와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나님이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져서는 안 될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대신 이 억울한 책임을 지고 원수와 대결하여 참아들딸을 찾아 세워서 길러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담 새끼, 1년 자란 아담 새끼, 혹은 3년 자란 아담 새끼, 꺾어지면 또 1년도 안 되어 접붙여 가지고 나가다가 또 한 3년 지나 꺾어지면 또 다른 사람을 세워서 접붙였다구요. 이래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하나의 아담이 장성해서 죄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그때의 인간의 가치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거기서 세계적인 종말을 지어 가지고 비로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복귀 사명이예요.

효자·충신·열녀가 되어 하나님을 모셔야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느냐?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사정이 많았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신문을 보게 되면 3면 기사에 특필되는 집단자살사건이 나오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고통에 비하겠느냐? `이놈아! 하나님이 이런 고생 가운데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 나왔는데 하늘 앞에 자살이 웬말이냐? '나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인간이 제아무리 고생하고 제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6천년 지난 세월을 통하여 나오신 하나님, 자식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찾아 세우시는 하나님 이상 불쌍한 자가 어디 있었겠느냐? 그거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예요! 자식 된 인간을 찾아와 가지고 설명을 해줄 수 없으니 불쌍하지요. 그러니 갖은 수단을 아끼지 않고 이걸 끌어 나와 오늘날 하늘을 공경할 수 있는 , 하늘을 사랑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고, 민주진영을 중심삼고 이렇게 만들어 놓기까지는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오늘날 종교인들, 기독교인들을 보게 되면 처량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 배워야 할 것은 행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배우자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그래도 좋고 안 그래도 좋아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효자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는 거예요. 효를 세울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에서 생기는 거예요. 충을 세울 수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완전히 편안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국태민안한 그런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나라의 형편이 최후의 고비에 부딪쳐서`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전체가 죽느냐, 사느냐? ' 하는 최후의 역경에서 있어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국운을 돌려 국난을 풀어 주는 책임과 내용을 세운 자라야만 그 나라의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려울 때 충의 명사, 어려울 때 효의 명사, 어려울때 열녀라는 명사가 역사노정에 기록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세계사에 어떤 페이지를 들여다 볼 때, 어느 누가 더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 나갔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만고(萬苦), 일만 가지의 고통을 책임진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제일 불쌍하고 제일 원통하고 제일 서럽고 제일 불행한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이 하나님이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이 스스로 뼈와 살에 사무치게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예요, 내 아버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하나님도 고대했지만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오느냐? 오늘날 이 한반도 한 민족에게 기독교 사상이 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죽인 줄 알아요? 자기 종을 끝없는 바다에, 끝없는 물 구덩이에 쓸어 넣어 그것을 메우는 놀음과 마찬가지예요. 엄청나고 한없는 놀음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수고해 나온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고생하신 대왕님이예요. 세상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눈물을 흘린 자가 없고, 땀을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땀을 흘린자가 없고, 피를 흘렸다면 하나님 이상 피흘린 자가 없다는 거예요. 슬픔이라는 명사는 인간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한없는 고통을 가진 하나님의 슬픔을 나타내는 명사입니다. 이 슬픔이 하늘을 위주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땅 위에 사는 수많은 인류는 불행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행복해요? 여러분들은 행복해요? 돈이 많다고, 권세가 있다고 행복해요? 불행입니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맞아요. 그러면 어느 날에야 이 고생길이 끝나게 되느냐? 안식의 한날이 이 땅 위에, 지구성으로 찾아올 것이냐? 하나님이 쉴 수 있는 날, 하나님이 찾고 있던 아들딸을 찾아 평화의 가정을 건설하는 날, 그날서부터 하늘왕궁에서는 행복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니 대우주가 기뻐하고, 만민 만물은 전부 그것으로부터 봄날을 맞이하여 태평의 양심세계에서 비로소 발을 펴고 안식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우리가 바라던 이상세계요, 기독교에서 말하던 천년왕국의 때인 것입니다.

공의에 입각하여 희생이 크면 클수록 큰 복을 받아

복받는 민족, 즉 복받는 사람은 공의에 입각하여 밟히고 희생당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큰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정의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의 철칙입니다. 공의에 입각하여 고생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그게 틀려요? 틀린가요? 「맞습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할 때에 오늘날 세계 역사노정에 그것이, 여기서 선생님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 역사노정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선을 추구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민족이 어느 민족인지 찾아보라는 거예요. 그것이 유대민족이예요. 알겠어요? 「예」 유대민족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공격받는 거예요. 그러니 이 나라 이 사람들에게는 주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해방할 때까지는 주권이 없어요. 불쌍한 민족입니다. 세계에 유리고객하는 백성이 되었어요.

또 그다음에는 한국 민족, 우리 한국 민족을 생각해 보라구요. 근 4천 5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고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이 민족사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 어느 한 때에 자기 주권국가로서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있어요? 오랫동안 피어린 투쟁 노정에 있어서 지금까지 침략만 받았어요. 이런 민족이예요. 그러면 이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준에 서서 이렇게 나왔다면 이 민족은 희망의 민족이라는 거예요. 유대민족이 희망이 있는 민족이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편에 서서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을, 한날에 하늘의 해원이 풀리는 날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에 쓸어 넣을 것이냐? 오늘날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이 혁명을 하는데 생사를 개의치 않고 자기 발뒷꿈치로 가까스로 따라나온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구요. 그렇지요? 「예」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사관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고생 많이 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나온 민족은 앞으로 특별한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그 터전 위에 가까이 설 수 있다는 것은 이치로 보아 타당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예」

나라가 그렇다면 나라를 제쳐놓고, 하나님은 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개척하여 세계를 구하기 위한 길을 열어 놨으니, 종교 가운데 종교로서 제일 많이 고생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20세기 문명의 첨단에 선 이때에 있어서 기독교 가운데 기독교 교인…. 기독교 가운데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지긋지긋하게 많이 고생하고, 지긋지긋하게 많이 핍박받고, 지긋지긋하게 외롭고, 지긋지긋하게 원통한 자리에서 복귀해 나온 사람이 기독교 중에 주권복을 상속할 자입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고생길을 빼놓고는 통일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않아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느냐? 통일교회라는 두 글자를 가진교파는 어디로 가느냐? 영광이 울려 나오는 호화찬란한 자리를 찾아가야 되느냐? 아니면 자기의 일시적인 향락에 파묻혀 콧노래를 부르면서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느냐? `우리는 역사가 이렇게 지향하나니, 이 역사적인 방향을 향하여 정직한 자세를 갖추어 직행하자! 정직한 자세를 갖추어 직행하자! 직행하는 데는 제일 고생길, 즉 하나님이 발을 떼면 그 뒷발꿈치를 내가 딛고 따라가겠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중심이 그거예요. 하나님이 사해와 같은 이 세계를, 가시밭길과 같은 산곡을, 태산준령을 넘나드는 거기에 있어서 다 싫다고 손을 내저어요. 예수를 따르던 세 제자마저 예수를 비참하게 저버리고 도망갔어요? 이것이 인간 역사에 있어 되어진 사실이니 오늘날 후대의 인간이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장담하겠느냐? 그러니까 그럴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의 발꿈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배반했지만,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뒷발꿈치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그 뒷발자국을 따라가겠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에 아들을 배척했던 죄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각오 밑에서 나가야 되는 거예요.

오늘날 민주진영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민주진영 가운데서 종교단체를 대표하여 제일 고생길을 가자는 거예요. 이것을 빼놓고는 통일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않아요. 알겠어요? 「예」 알겠어? 「예」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교회는 벌거숭이가 되자! 하나님을 위하여 굶고 일하자! 누더기 옷을 입고 일하자! 동삼삭에도 찬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일하자! 없는 가운데서 발전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역사이니…. 하나님이 돈 가지고 일했어요? 하나님이 좋은 옷을 입고 일했어요? 아니예요. 하나님은 통곡하시면서 타락한 인간들을 위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왔습니다. 눈물을 흘리게 만들면서 복귀섭리를 해왔습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을 때, 회개라는 두 글자의 간판 밑에서 섭리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은 뭐냐? 이 민족 앞에, 30억 인류 앞에 원리 말씀을 통하여 외치게 될 때 통곡하는 백성을 만들자는 거예요.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예수는 우리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를 죽인 이 죄인이 천벌을 받지 않고 오늘날까지 모양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황공한 거예요. 죽을 날을 재촉하여 하늘 앞에`내가 어서 이 죄를 갚게 하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무리를 하늘은 용서해 주는 가운데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황공해요. 아버지를 죽인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천번 만번 죽는 일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고생길을 찾아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아까 말한 개인적인 때로부터, 가정적인 때로부터 새로운 하늘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하던 것 말고 앞으로의 새로운 이상세계를 상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개인적인 시대로부터, 새로운 가정적인 시대로부터 새로운 민족, 새로운국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주의 세계를 향하여 가려니, 일대에도 가기 어려운 길을, 수십대를 거쳐가야 할 길을 이때를 중심삼고 탕감복귀해 가자니 천신만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는 거예요. 그 길을 헤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한스런 복귀의 길, 어이하여 우리 인류 조상은 그 비참한 역사적인 곡절을 저끄렀던고?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오늘의 이 몸뚱이에는, 이 세포 가운데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배반한 원수의 피가 섞여 있고, 하늘을 배반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피가 여기 세포 세포마다 분별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이 피를 뽑아 제물로 삼아 주십시요. 불살라 주시옵소서!'라고 할 만큼 지긋지긋한 원수의 피입니다. 나 한 자체는 세계사적인 이 죄악사의 주식회사예요. 보응은 사망이요 멸망밖에 없어야 할 것인데, 아버지 대신 죽는 자리에서 이 몸이 당해야 할 그 고통을 당하여 탕감함으로써 사탄의 참소를 벗게 해 가지고, 죄를 내 대신 벗겨 주셔서 죄 있는 우리들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까지 아무 공로 없이 갖다 주겠다는 이 은사를 알게 될 때 통곡 안 할 수 있어요?

천운에 따라, 상처입은 아버지를 찾아 모시자

하나님이 그런 작전을 해 나왔으니, 심정에 강한 충격을 주어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여 이를 악물고 이 원수를 갚고 말겠다는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는 무리를 거두어서, 시대 시대마다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 들어 오늘날 개인으로부터 세계무대까지 달려 나온 거예요. 그 미래의 깃발을 오늘날 미국 같은 선진 나라가 못 받게 되니 이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가 받았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 그들이 신문화를 자랑하고 세계 앞에 큰소리하고 있지만, 이런 고통의 길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위하여, 그 아버지가 쉴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복을 준 거예요. 그럴 알아야 됩니다.

미국은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찾아오는 한날에 영광의 잔치를 하기 위하여, 그걸 준비하는 천사장의 사명을 준 거라구요. 세계 모든 물질적인 축복을 해준 것은 뭐냐? 오시는 주님이 살 수있고, 모든 세계무대를 향하여 명령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오시는 주인에게 그 뜻을 상속시켜 줘 가지고 자유롭게 천하를 호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미리 보낸 심부름꾼이예요. 이것이 심부름꾼인 줄 모르고 주인으로 온 것을 망각하다니 어떻게 되겠어요? 망하는 거예요.

오시는 주인은 호화찬란한 고른거각에서 오는 게 아니예요. 그 주인은 어디로 오느냐? 피어린 가시밭길을, 6천년 상처를 고스란히 남겨 가지고 그 손에는 가시 투성이요, 그 몸에도 가시 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보기에 남루한 옷을 입고 말로 해서는 알아보지 못할 모양으로 찾아 오는 것입니다. 주인을 몰라 봤다가는 망한다는 거예요.

이런 세계사적인 난국시대가, 비상시가 오기 때문에 천운은 그런 길을 찾아오니, 오늘날 이것을 아는 통일의 무리는 천운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하여 상처 입은 아버지를 찾아 모시자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처입은 자리에서 찾아가 모시자는 거예요. 슬픈 아버지로 오시니 그 슬픈 눈물을 붙안고 `그대 아픔이 내 아픔이요, 내 아픔이 그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픔이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의 아픔과 그의 심정적인 쓰라림을 해원해 줄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딸을 붙들고 통사정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요, 부모의 심정입니다.

우리 통일인은 불쌍한 무리예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불쌍한 무리예요. 한국은 세계에서 불쌍한 나라예요. 불쌍한 이 나라 가운데 불쌍한 무리가 누구냐? 우리가 피땀 흘린 것을 누가 알고 누가 알아주느냐 말이예요. 우리가 교파를 확장하기 위해서 밥을 못 먹고 굶으면서 전도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욕망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 통일교회 그 아무개는 지방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을 파송해 가지고 앞으로 크나큰 무슨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궁리하고 있다'며 별의별 의심을 하는 거예요. 그들은 잘 모르는 거예요 그럴 것 같으면 내가 이 한국 땅에 있지를 않아요. 오늘 그런 야망을 가졌다면 한국 땅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벌써 외국에 나갔지요. 청년시절에 벌써 외국 무대에 나갔을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보화를 제일 찾기 힘든 골짜기나 으슥한 곳에 묻어 둔 거예요. 세계 종말시대에 하나님이 만민 앞에,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상속해 주기 위해 보화를 묻어 둔 곳은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골짜기예요. 태산준령을 넘고 인간의 기척이 없는 곳을 찾아가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예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이 몰라주는 길에서 우리들은 통곡했고,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렸으며, 우리는 이것을 위해 땀을 흘렸고, 우리는 피를 팔아 전도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선생님이 남 모르게 통곡하며 `아버지여! 내가 죄인이라면 큰 죄인입니다. 나를 안 연고로 저들이 피를 팔고, 내가 이들의 피를 농락하고 이들의 살을 농락했으니 천벌을 받아야 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되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

귀한 것과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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