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많은 줄 알고 있는데, 이번 하계 전도 기간에 들어온 식구들이 몇 명이 되나 손들어 보자구요. 하계 전도 기간에 들어온 사람들, 금년 7월 21일 이후에 들어오신 분들 손들어 봐요. 18명? 「28명입니다」 28명? 「예」 아, 6개월 이상 된 사람들 손들어 보자구요, 6개월 이상. 통일교회 들어온 지 6개월 이상 되는 사람. 몇 명? 「33명입니다」 33명. 그 이상 된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3년 이상 된 사람은? 내리세요.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관념으로 수련회에 임해야

여러분들이 여기 본부에 찾아왔습니다. 지방에서 있을 때는 본부가 가 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제 여기 찾아왔다구요. 여러분이 맨 처음 올 때에는 이 서울에서 본부가 상당히 크고…. 제일 큰 집이었으면 좋았을 거예요. 물론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이 좁은 집에서 크나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고마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이 집에서 수련을 받아야 되겠고 이 집에서 먹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이 집을 무심코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 집에는 한 장의 가라스(유리)에도 하늘의 피눈물이 섞여져 있다는 거예요. 지극히 작은 문짝 하나에도 하늘이 주시해 싸워 나오던 노력의 수고가 거기 들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마루바닥, 혹은 여러분들이 자야 할 마루바닥도 마찬가지라구요. 이것은 지금까지 세상에 있는 어떤 집의 마루바닥과는 다르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초라하지만 거기에 깊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의 어떤 큰 집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본부를 바라보면서 믿고 있고 의지하고 있던 마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훈련시키고 연단시켜 가지고, 재차 본부에 대한 어떤 면이 귀하다든가, 또 어떤 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지금까지 갖고 있는 생각을 전부 다 꺼내 연단시켜 가지고 다시 집어넣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일단 들어온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과거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제부터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바라던 본부가 왜 이런고? ' 이런 생각을 당장에 버려야 된다구요. `수련회 가면 좋을 줄 알았더니 왜 이런고? ' 하는 그런 관념과 생각을 전부 다 취소해 버리고, 이제부터 느껴지고 이제부터 체험되는 모든 것이 본부에 대한 여러분의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관념으로 세워지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그리고 이제부터 출발하는 이 수련에 참석해 있는데 한 일주일 동안은 시련 과정이라구요. 일주일 가운데도 사흘 동안은 싸움 과정이다 이거예요. 사흘 동안은 복잡하다 말이예요. 잠자리가 편치 않지, 환경이 갑자기 달라졌지, 좌우를 바라보면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아주 색다른 사람들끼리 살을 대야 되고, 이마를 맞대고 밥을 먹어야 되고…. 좋든 나쁘든 그와 같은 인연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생리가 맞지 않아요.

더우기나 또 3일 기간은 고향 생각이니 뭣이니 복잡하다구요. 집에서 뭐 어떻게 왔고 내가 이렇게 왔는데 하는 여러 가지 세상 관념에 아주 복잡해져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요 3일 동안은 여러분들이 중심을 잘 잡고, 기어이 단단한 중심을 세워 가지고 3일을 넘어서면 그다음에 일주일 동안은 복잡한 일이 점점 심해 간다 말이예요.

이것이 일주일 지나가고 2주일 지나가고 3주일 지나가야 본 코스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2주일 지내 가지고 보면, 그 사람이 금번 14회 수련회 참석한 자로서 하늘 앞에 설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서 갈라져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기간에 여러분들을 같이 둬 가지고 연단시켜 가면서, 여러분들의 내적 싸움과 환경에 이 모든 것을 맞춰 나가면서 한 3주일쯤 지내 봐야 쓸 만한 사람, 못 쓸 만한 사람으로 갈라진다는 거예요. 3주일 지나갔어도 소망 없는 사람은 이번 수련회에 참석했더라도 다시 수련받아야 돼요.

수련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첫 3일 기간

그러니만큼 제일 짧은 3일 기간을 잘 지켜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3일 기간. 3일 기간에는 원래는 여러분을 세워 놓고 그저 이 방망이로 들이 갈겨야 되는 거예요. 이 복잡한 환경이, 이렇게 지지한 것이 일주일이고 2주일이고 싫다 이거예요. 그저 한 3일 동안 뚝 잡아떼 가지고 넘겨서 다리를 퍽 잡고 수련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 골통에서부터 들이 죄겨야 되는 거예요. 아예 세상에 없었던 매, 세계 최고의 매를 가지고 들이 죄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시시한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그저 한 대 맞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어떠한 매라도 참고 견디겠다 해 가지고 남아지면 그 사람은 수련받을 수 있는 자격자다 이거예요. 그러나 `아이쿠' 해가지고 돌아선 녀석은 수련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예요. 그렇게 하면 무난히 한 3일부터 여러분이 정식 수련을 받을수 있는 코스로 들어갈 수 있는 데, 그렇지 못할 때는 이게 한 3주일 동안 걸린다구요, 3주일 동안.

그러면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요? 응? 한 3주일 걸리는 게 좋아요? 원래 하늘은 바라기를 , 들이 볶아 가지고 그저 어떤 기합을 줘서라도 한 3일 동안에 넘겨 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늘의 소원이예요. 그렇지만 몽둥이 들고 어떻게 팰 수 있나? 팰 수 있어? 패는 데는 눈물은 물론 나오겠고, 콧물도 물론 나와야 되고, 물 나오는 데는 다 물이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눈에서 눈물 나오고, 코에서 콧물 나오고, 입에서 침이 나오고, 그다음에 얼굴에서는 땀이 나온다 말이예요. 물이 나올 수 있는 그러한 구멍에서는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아주 뭐 방출 훈련을 받아야 돼요. 방출 훈련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렇게 하면 제일 빠른데 그렇게 할 수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지 않으면 안 돼요.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 주위에는 전국에 있는 사탄들이 꽁지를 달고 있다 이거예요. 여기 허리띠에는 갈고리가 하나 있어 가지고 사탄이가 사방에서 줄을 떡 걸어 가지고 `요 녀석아' 하면서 잡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팔도강산에서 다 모여 왔으니 만큼 팔도강산의 사탄 후계자들이라구요. 여러분은 아직까지 상속적인 인연을 완전히 취소 못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사탄이 그 어떤 끈을 잡고 당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나를 중심삼고 당기고, 가정을 중심삼고 당기고, 그 부락, 혹은 뭐 어떻고 어떻고, 과거를 중심삼고 그러고 있다구요. 그걸 끊어 놓으려니 사정을 봐서는 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한 여러분에게 시련 기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흘 동안 이것을 잘 넘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관점에서 그런 관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구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구요. `아, 3일을 넘었으니 일주일을 잘 넘자'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을 잘 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오늘 잘 때도 시간을 딱 정해 가지고 `기상' 하면 그 기상하는 시간이 되기 전에 기상하는 준비를 해 가지고 `기상 소리만 나라' 하며 선착으로 일어나야 되겠다구요. 밥을 먹어도 그와 같은 훈련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밥을 먹어야 된다구요. 밥을 먹어도 이 원수와 더불어 싸우기 위해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해도 자기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수와 더불어 싸우기 위해 공부하라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런 관점에서 자기 중심을 딱 잡고 이 기간을 지내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면 그 기간을 빨리 지낼 수 있다는 거예요. 1주일 걸려서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2주일 걸리는 사람도 있고, 3주일 걸리는 사람도 있다구요. 3주일 안 되면 40일 동안에 뻐드러져 나가는 , 수련받은 것보다 더 못한 녀석들도 생겨날지 모른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 어떠한 기간에 통과해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말씀을 얻고, 이 수련을 잘 받을 수 있는 내가 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란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13회 때도 선생님이 약간 이런 얘기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여기 왔단 말이예요. 자기 스스로 왔어요. 올 때는 사방에서 몰려왔어요. 동서남북에서 다 몰려왔다 이거예요. 몰려올 때 오기는 다 같이 왔어요. `수련회 간다' 해서 여기 왔다는 말이예요. 사정을 보게 되면 천태만상의 사정이 있다구요. 그러나 요 `온다' 하는 목적지는 같은 목적지이니 나타나기는 다 같다 이거예요.

어려운 수련을 잘 통과해 새출발하는 내가 돼야

여기 본부면 본부에서 `와라' 하는 어떠한 책임을 중심삼고 명령해서 여러분이 왔다 말이예요. 오라 하는 곳의 요구와 오기를 바라서 온 여러분들의 요구가 여기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부는 `너희들 여기 수련받으러 와라' 한 그 목적에 부합되게끔 내몰아야 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왔으면 그 목적 앞에 통과 하기 위하여 애써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예」

수련생 가운데서 이번에 83명이 왔지만, 이 83명 가운데는 올 때에 여러 모양으로 왔지만, 진정히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참으로 온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한 사람밖에 없을 거예요. 두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이 가운데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늘이 바라는 기준 가운데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참 너는 잘 왔다. 너는 참 심정적인 태도나 모든 면으로 보게 될 때 완전한 너로서 왔다' 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 할 때, 두사람 아니예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라고 치는 하나의 그 사람이 있다 하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사람일 것이냐? 여기에서 추려 가지고 그 사람 가운데서 나은 사람을 빼 가지고 또 거기서 하나를 빼놓으면 하나가 있을 거예요. 만일에 하나님이 수련하러 올라오는 입장에서 찾아왔다 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기준으로 왔을 것이냐? 그런 기준에 비교하면 여러분들은 사정이 달라요. 그럴 거 아니예요? 그만한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차이의 거리를 어떻게 메워 버릴 것이냐? 이것을 빨리 메워 버려야 돼요. `빨리 이것을 가르쳐 줘 가지고 그 방법과 방편을 세워 가지고 그런 기준을 빨리빨리 청산하자, 우리는 이런 도리에 다 따라가겠다, 이왕에 수련받을 바에는 그런 기준에 합격될 수 있는 내가 돼야겠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수련을 받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제일, 밥을 먹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 때 제일, 잠을 자는 데 있어서 하늘이 보게 될때 `내 아들아' 할 수 있게 제일, 공부를 하는 데 있어도 하늘이 보게 될때 제일, 모든 면에서 제일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회에 `야! 내가 여기 83명 앞에 있어서 제일 잘해야 되겠다, 잘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서로서로 노력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수련회 자리에 참석해 주기를 부탁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응? 「예」

무엇이 돼야 된다구요? 제일, 제일이 돼야 된다구요. 그러한 여러분들이 돼서 이 수련회 기간을 충실하게 보내기를 바란다구요. 그리고 이번에 여러분을 지도하는 지도위원들과 훈련부장들이 있는데, 내가 부탁하는 것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많이 울리라는 거라구요. 때려서 울리든가 힘들게 해서 울리든가 말씀을 통해서 울리든가…. 그다음에는 울려 가지고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고, 새로운 맹세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주길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새출발을 하려면 통곡을 해야 된다구요. 통곡을 해야 돼요. 눈물을 흘리며 결의를 하는 이런 과정이 없어 가지고는 새로운 사람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훈련부장들이 그렇게 시키라구요. 훈련에 있어서 그저 눈물이 나 가지고 눈물이 쏟아지게 하는 훈련을 시켜야 돼요. 그것이 자기들 앞에 제일 되는 첩경을 세우는 데 제일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을 하늘 앞에 제일 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 들이 방망이질해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하늘이 쓸 만한 곳이 있을 거예요. 알겠어? 책임자들. 훈련부장! 「예」 저 지도위원들 알겠어? 「예」

타락으로 인해 공포와 사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잠깐 동안 말씀 한마디 하고 가겠어요. 제목을 잡으라면 `삶의 길을 찾아서'입니다. 내용을 말하라면 그렇게 될거예요, 삶의 길을 찾아서. 여러분들은 싫든 좋든 부모들이 낳아 줌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말이예요. 태어나고 보니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고,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또 태어나고 보니 이 세상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말이예요. 사방 어디를 가든가 나 외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았고, 또 바라보면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 세계에는 모든 사회가 있고, 또 나라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 나라들을 중심삼고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을 중심삼고는 개개 민족이라든가 국민이 있고, 그 국민을 위주로 해서 땅 짜박지를 갈라 가지고 땅들을 갖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세계를 보게 될 때 `아! 이놈의 세계를 요렇게 만들지 않고 전부 다 두루뭉수리하게 해 가지고 하나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미국 사람은 무엇이고, 한국 사람은 무엇이고, 뭐 어디 나라 사람은 무엇이고, 뭐 깜둥이는 무엇이고, 흰둥이는 무엇이고, 노랑둥이는 무엇이냐?

여러 가지 복잡한 인류들이 땅에 살고 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자체들도 역시 복잡한 국경선을 중심삼고 엉클어져 있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좋게, 서로서로 안 보면 못 살고 안 만나면 못 산다는 입장에서 산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저쪽으로 갈 때도 `오지 말라' 하고또, 저쪽에서 올 때도 올까봐 두려워한다구요.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수 없고, 내가 가려고 할 때 거기서 나를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저 사람이 오려고 할 때 내가 `오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저 사람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가게 되면 나를 의심하는 것뿐이 아니라 걱정을 하고 바라 보고, 조금 더 나가게 되면 `아이쿠,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오지 않나? ' 하고 두려움으로써 그 사람들과 대항하여야 할 이런 세상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대충 얘기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가 그런 동시에 여러분 한 자신을 두고 볼 때…, 자신을 가만히 보자 이거예요. 자, 그러면 `오, 나는 이렇게 세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전부 다 저런 식을 만들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을 것 같은데… ' 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어느 한 때 누구를 대할 때마다 좋을 수 있는 내 행동을 가졌고, 어느 한 때 전부가 좋아할 수 있는 내 말씀을 가졌고, 어느 한 때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내가 누구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느냐를 생각할 때 그런 과거가 있었어요?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의미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마음에 `야, 내 아들은 참 천하에 하나밖에 없구나! 하늘도 주고 땅도 주고 온 전부 내 생명까지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또 그러면서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인 동시에 온 천하에 드러내서 자랑하고 싶은 내 아들이다'라고 부모가 말할 수 있고 보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있느냐 하면 아니예요. 걱정이예요, 걱정. `저 녀석이 언제 자라서 저렇게 될 것이냐? ' 그러고 있다구요.

사회가 악하면 악할수록 그 악한 사회에 자식을 내놓은 부모들은 그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편안히 잠을 자고 있지만 부모의 시선에는 슬픔이 어리며 `행여나 저들이 이 가문을 망치고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자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부모라고 하지만 부모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자는 모습도 바라보고 새로운 면에서 더 좋은 아무개가 되었으면 하며 기대하고 계시는 부모가 돼 있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보면 이 세상은 전부가 좋아하는 환경과 좋아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세상이 못 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위주해 살고 있는 자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런 관계에 못 놓여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뭐 큰 것은 다, 넓은 것은 다 제해 놓고 여러분을 중심삼은 가정을 두고 볼 때에 형제끼리도 그렇다 이거예요, 형제끼리도. 자기가 조금만 못하면 `이게 뭐야, 이게? ' 하며 형제끼리도 싸운다구요. 형님 동생끼리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그것도 좋다는 거예요. 싸우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좋은데 `이 자식, 형님 틀렸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이거예요. 그 기준조차 전부 다 믿을 수 없는 기준에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걱정해야 할 세상이요, 믿지 못할 세상입니다. 걱정하고 믿지 못할 세상인 동시에, 또 가만히 생각하면 무서운 세상이예요. 무서운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이예요. 공포의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에 사는 내 자신이 이것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게끔 아주 뭐 단단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디에 얽매어진 오늘날 내 자신이 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사회와 국가와 오늘날 전세계 사조가 그러하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또, 공포에 찬 세계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가서는 공포만이 아니라 사망의 물결이 나를 휩쓰는 세계예요. 나혼자 무서워하는 환경과 두려워하는 환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자식아 죽어라!' 하며 사망의 물결이 여지없이 몰아치는 이런 환경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현재의 세계를 바라볼 때, 공포의 세계요, 사망을 염려해야 하는 전초지에 있다 이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이것이 왜 이렇게 됐느냐? 이렇게 된 것이 타락 때문이예요, 타락. 타락의 보응은 무엇이냐? 사망이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은 나로부터 살아가는 나로서 삶의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가정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사회가 살 수 있고, 국가가 살 수 있고,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의 힘보다 더 큰 힘을 통해야 복귀의 길로 들어서

이러한 삶의 길을 닦아야 할 텐데 오늘날 이 땅 위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간 자신은 도저히 닦을 수가 없어요. 인간으로서는 닦을 수 없어요. 인간은 닦을 수 없다구요. 인간은 닦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엇을 플러스해야 돼요. 거기에다 그 무엇을 가해 가지고야만 닦을 수 있는 길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닦을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옛날에 우리 인류시조 맨 조상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쳐다보게 될 때, 그들이 타락하지 아니 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타락한 시대에, 처음부터 끝까지 타락한 시대에 태어났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 인류 조상이 비록 타락은 했을망정 그 역사에는 타락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예」 우리 조상에게는 타락하지 아니 한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조상이 타락한 그날서부터 지금까지 떨어져서 이렇게 죽음의 세상을 만들어 나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고통과 사망 가운데 떨어졌다 그 말이예요. 여러분 자신은 타락한 후손인 연고로 타락하지 아니한 시대를 못 가졌다구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있어서의, 우리 인류시조는 얼마나 가까왔느냐? 말할 수 없이 우리 시조 아담 해와는 사랑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타락하지 아니한 지각과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얼마나 예민했겠느냐. 모든 것을 비판할 줄 알고, 모든 느낌에 있어서 이것을 헤아릴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들 보다도 본심에 있어서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거예요.

그러한 아담 해와도 타락을 했는데 여러분들은 타락해 보지 않은 역사도 못 가지고 그런 감정도 못 가진 사람들이니 이건 형편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로서는 도저히 살아날래야 살아날 수 없는 거예요. 왜? 우리 선조가 나보다 나은 자리에서 타락해 버렸기 때문에. 역사적인 출발이 그렇게 됐으니 그만도 못한 자리에 있어서는 도저히 살아날래야 살아날 도리가 없는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신들이 살아나려면 인간의 힘으로는 안 돼요. 알겠어요? 「예」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된다 말이예요. 절대 안 돼요.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의 힘에, 인간의 최대 힘에 무엇을 플러스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간은 `내가 이런 고통 속에 있으니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요구한다는 거예요.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으니 여기에서 다시 새로운 어떤 길, 이런 고통 가운데서 어떤 해방의 길, 이런 슬픔 가운데서 어떤 행복의 길, 이런 죽음의 도상에서 어떤 삶의 길을 찾고자 원해 나온 길이 오늘날 인류역사가 엮어 온 역사노정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애썼지만 자기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애를 쓰는 데는 누구를 불들고 애쓰느냐? 개인이 찾는 시대에서 가정이 찾는 시대, 종족이 찾는 시대, 민족이 찾는 시대, 국가가 찾는 시대, 세계가 찾는 시대, 하늘땅이 찾는 시대로 발전해 나오는 거라구요. 시대는 그런다 말이예요. 그러한 개인들이 찾는 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개인이 찾는 그 가정을 찾지 않고도 몽땅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가정을 찾는 그런 시대가 왔다 하면 가정을 찾는 그런 시대보다도 종족을 찾아 세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런 시대적인 대표자를 만난다면, 가정적인 시대에 처해 있어도 종족을 지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와 하나된다면 나는 가정을 찾는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 현실에 살고 있는 그 생활보다도 더 좋은것, 더 큰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더 크고 전체적인 가치의 내용을 지닌 무엇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 종족과 민족을 거쳐 국가 형태를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 나왔다는 거예요.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역사를 찾아 나온 그 배후를 살펴 보게 될 때에 인간만이 이것을 움직여 나왔느냐? 인간이 이것을 끌고 나올 수 있느냐? 만일에 인간만 있었더라면 망해 버렸어요, 벌써. 왜? 아담 해와가 우리보다 나은 자리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타락했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요.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해 나온 역사를 두고 볼 때에 기필코 인간이 아닌 어떠한 힘이 개재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원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성인현철

그러면 여기에는 누가 개재해야 되겠느냐? 사람이 아니예요. 과연 누구일 것이냐? 나보다도 제일 악한 사람이 아니면 제일 좋은 사람일거예요. 둘 중에 하나예요. 이런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는 데 있어서 오늘날까지 이끌어 나온 기준까지의 역사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없고 여기에 어떠한 힘이 개재되어 가지고 이끌어 나온 거예요. 그 어떠한 누가 개재돼 있다면 그 힘의 작용을 미친 자는 어떠한 존재일 것이냐? 제일 나쁜 놈 아니면 제일 좋은 놈,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만일에 제일 나쁜 놈만이 치리했더라면 인간은 뭐 해방이니 뭣이니 무슨 소망이니 이런 것은 전부 다 공상이고 망상이라구요. 인간보다도 수완이 많고, 인간보다 능력이 많은 그런 원수 마귀가 인류역사를 혼자 꼭 붙들고 나간다면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해방'이라는 명사니 `행복'이라는 명사니 무슨 뭐 이상적인 명사가 필요 없는 거예요. 그거 전부 다 망상적인 명사요, 공상적인 명사예요.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일에 제일 악한 놈이 아니고 제일 선한 분이 우리를 끌고 나온다면, 이분만이 있다면 거기에 있어서는 `아, 좋은 것이다' 할 수 있는 자유의 날, 해방의 날, 평화의 날, 이상의 날이 있을 수 있으되, 악한 것이 거기에 등장하여 세계를 지배했더라면 이런 명사는 우리에게 아무 관계 없다 이거예요. 그렇겠지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이 세상에는 선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악만이 있는 것도 아니예요. 여러분 자신으로 두고 볼 때에, 이 세계를 관두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떡 펼쳐 놓고 보게 될 때에, 내 마음이 선만이냐 악만이냐 볼 때에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또 세상을 척 놓고 보게 될 때에, 아 이놈의 세상이 악한 놈이 치면 악만 많을 텐데 그렇지도 않아요. 악한 것도 있고 선한 것도 있어요. 그렇게 돼 있지요? 그걸 볼 때에 이 세상은 이 둘이 어떠한 곡절에 의해 엉크러져 있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는 선이 양심을 통하여 `이놈아, 그거 해서는 안 돼'한다구요. 그렇지만 내 이 몸이라는 것은 `악이고 뭣이고 선이고 뭣이고, 당장에 내가 배고프면 뭐 따먹어야 돼. 뭐 누가 입은 츄리닝 거 빼앗아 입어야 돼' 이런단 말이예요. 이런 것이 투쟁하는 거예요. 투쟁해요, 안 해요? 투쟁하나, 안 하나? 「투쟁합니다」 투쟁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인류들은 이러한 두 흐름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망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것이냐? 죽는 것, 사는 것은 어떠한 것이냐? 사는 것은 악한 요소의 세계에서 이것을 박차고 선의 요소의 세계로 옮겨지는 거요, 죽는 것은 선의 요소를 짓밟아 버리고 악의 요소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흥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악의 요소의 모든 본질을 다 제거해 버리고 선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선의 본질 요소를 무찌르고 악의 본질의 요소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악을 자기가 막아 치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놈의 악이 이웃집에 있으면 그 모가지를 짜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그 악이 국가적으로 남아 있다면 이 국가를 대표해서 싸우는 사람이 영웅이예요. 세계에 악이 남아 있을 때 세계를 대신해 싸우는 사람이 세계적인 영웅이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악과 대결하여 개인을 대표해서 싸울 때는 여러분의 양심이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싸울 수 있는 선의 중심자는 여러분이 따라가야 할 스승입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혹은 민족을 대신하여 선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만민들은 깃발을 들고 땅과 시위해야 할 입장에 있다구요. 그런 사람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 각 개개의 국가가 많으면 그 역사에 있어서 역사적 인물이예요. 혹은 세계 무대에 있어서, 세계 역사노정에 있어서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선한 일을 하는 데 공헌을 많이 한 사람들을 오늘날 성현, 현철이라고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성현이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성현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이 세계를 악의 세계에서 구하기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강구하여 만민이 다 가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길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지요? 「예」

메시아는 하나님과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분

여러분 자신들을 보라구요. 여러분 자신들은 자기 힘만으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되니 내 힘에 그 무슨 힘을 가해야 돼요. 그 힘이라는 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지어 놓은 힘이 아닙니다. 성인이 된 것은 성인 자신이 된 것이 아니예요.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최고의 선할 수 있는 인연의 힘이 개재해 가지고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한 사람이 누구냐 하고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과거의 선한 사람이 누구며, 오늘 이 시대의 선한 사람이 누구며, 앞으로 선할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요걸 찾는 것이 인간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나가는 사회생활이요, 인생행로다 이겁니다. 아직까지 완전히 찾지 못하여 찾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만일에 이것을 완전히 찾아 가지고, 나중에는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선을 해치는 악당의 괴수가 있으면 이 악당의 괴수를 알아 가지고 들이쳐서 처치할 수 있는 , 이런 책임을 해주는 지도자와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거예요.

이걸 단번에 전부 다 잘라 버릴 수 있는 승리의 관을 우리 인류 앞에 갖다 줄 수 있는 이런 분이 있다 할진대, 그분은 우리 모든 인류를 구해 줄 메시아입니다. 모든 인류를 구해 줄 메시아예요. 내가 나면서부터 원통해하였던 모든 한으로부터 오늘날 내가 살면서 고통스러웠던 모든 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어려운 고뇌의 사정을 전부 다 일소해서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런 사명을 갖고 오신 분이 있다 하면, 하나님 대신 이 땅 위에서 만민을 대신하여 원수 사탄 마귀를 때려 굴복시킬 수있는 이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 이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그런 최고의 승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그 승리자는 비로소 승리한 그 터전에서부터 개인생활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류역사를 좀먹고 인류역사를 유린하는 대원수가 남아 있으니 이 대원수를 쳐서 처단해 버리고 거기서부터 최대의 선한 하나님이면 하나님, 창조주면 창조주를 직접 중심삼아 가지고 그 창조주만을 위주한 개인적인 생활, 창조주를 위주한 가정, 창조주를 위주한 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우리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세계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상세계가 뭔지 알겠어요? 「예」 그런 거 알겠지요? 「예」

이상세계가 무엇이냐? 선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때려부수고 지금까지 역사적인 생활을 전부 다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만 주인이 되어서, 그분 앞에 있어서 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선만의 개인적인 생활로부터 선만의 가정, 선만의 종족 민족이 벌어지면, 민족으로부터 국가, 세계가 벌어져 그 세계와 하늘땅이 하나되어 살 수 있는 그 세계가 지상천국세계요, 이상천국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 어디냐? 바로 그곳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곳이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요, 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소망하는 곳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곳이 인간이 찾아가는 본래의 목적지입니다. 이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나와야 되는 데 그이념을 갖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기독교로 말해서 메시아다 이거예요. 구세주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구세주.

이제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할 일이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수련받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죽은 사람이예요, 죽은 사람. 감옥에 들어가 있다구요. 여러분이 왜 죽었느냐? 양심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요? 「예」 여러분 몸뚱이는 살아 있지요? 「예」그런데 왜 죽었어요? 죽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선이 선으로써 행사 못 하고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가치하다는 거예요. 선의 가치의 실적이 이 이념의 세계에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입장이면 죽은 거예요.

그러면 죽은 나로서 살기 위한 놀음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느냐? 이 하나를 죽여야 돼요. 이 하나를 완전히 죽여 버려야 돼요. 아직까지 고깃덩어리는 채 안 죽었거든. 여러분의 몸뚱이가 전부 다 포로가 되어 있으니 이 포로의 철장을 깨치고 나와서 무엇을 죽여야 될 것이냐? 이 포로를 만든 철장을 터뜨려 가지고 이것을 전부 다 처치해 버려야 됩니다. 그 철장이 뭐예요? 「사탄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중심삼고 철장이 뭐냐 하면 사탄의 우리인데, 사탄의 우리가 뭐냐 하면 여러분 몸뚱이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몸뚱이가 사탄의 울타리라구요.

보라구요. 양심은 명령하는 거예요. 얘 아무개야! 이름이 뭐인고? 「청구입니다」 청가? 「청구요, 우청구입니다」 무슨 청구? 「맑을 청(淸) 자, 아홉 구(九) 자입니다」 성은 뭐야, 성은? 「우청구예요」 우? 「예」 우청구. 우청구면 우청구로서 마음이 `야, 청구야! 너 지갑에 돈이 지금 몇백 원 있지? 길가에 불쌍한 사람 있으니 좀 줘라, 이 자식아'하고 명령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뭣인가, `난 싫어!' 하는 그런 것 있지요? 그런 뭐가 한 마리 있다 말이예요, 한 마리.

두 주인 된 사상은 평화가 없는 거예요. 둘이 끝까지 서 있으면 이 가운데 서 있는 물건은 모두 파괴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각기 찢어지는 거예요? 인간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를 주인으로 만들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사망의 세계에서 양심의 세계를 구현해 나온 종교

죽은 자리에 서서 이제 살아나는 길, 삶의 길을 찾아서…. 제목이`삶의 길을 찾아서'인데, 삶의 길을 찾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삶의 길을 가야 할 내 자신에 있어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와 각오와 실제 행동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를 가두어 놓은 사탄의 철망이 있다 이거예요. 사탄의 철망인데 이 철망이 언제 쳐졌느냐? 여러분은 쳐진 줄 몰라요.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지만 쳐졌어요. 그것이 언제 쳐졌느냐? 6천 년 전 우리 선조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때서부터 철망은 쳐졌다 그 말이예요.

아직까지 인류가 이 철망을 뜯어내 가지고 `야! 해방이다. 인류야 해방을 노래할지어다' 할 수 있는 그날을 갖지 못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문을 터뜨리기 위해서, 이 철장을 터뜨리기 위해서 누가 여기에 가담해 들어왔느냐? 역사적인 선한 사람들이 가담하였다구요. 지금까지 선한 사람 가운데 인간의 양심의 도리를 자극시켜 가지고 이것을 개발시켜 나오는 사명을 하기 위하여 종교를 세웠던 것입니다. 종교는 양심을 개발시키는 거예요. 양심에 자극을 주고 힘을 줘 가지고 양심을 개발시키는 데 있어서 공헌한 종교가 있어 가지고….

외적인 역사적인 성인과 내적인 면으로써 개발시켜 놓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신앙심을 위주로 한 역사적인 인물과 합해 가지고…. 선의 기준을 위주로 한 하나님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외적인 기준에서 선을 중심삼고 이루었던 성인들을 기준으로 하여 둘 다 몰아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성현의 역사를 배워야 돼요. 양심의 도리를 배워야 돼요. 그렇지요? 선한 사람의 본을 받아야 돼요. 양심의 변화를 가져와야 돼요. 이제는 둘이 합동작전 하는 거예요. 뭘 잡아 치우기 위해서? 고깃덩어리, 이 기반을 잡아 치우기 위해서. 이 고깃덩어리가 연결되어서 가정이 된 고깃덩어리, 사회가 된 고깃덩어리…. 여러분의 엄마 아버지도 전부 다 고깃덩어리 클럽에 들어가 있다구요. 그런 고깃덩어리 국가, 그런 고깃덩어리 세계예요.

또, 일면엔 양심적인 개인, 양심적인 부모, 양심적인 기준을 갖춘 세계, 이렇게 떡 있다구요. 그러면 양심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은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을 안다 말이예요.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안다 말이예요. 인간은 평화를 지향해야 된다는 걸 안다 말이예요. 세계는 한 형제라는 걸 양심이 알아요. 모르나요, 아나요? 조그만 소학교만 나와도 그건 안다 말이예요. 양심의 법에서는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알고 있는 이 양심을 일깨우고 들춰 가지고 여기에서 대혁명을 일으켜야 돼요, 대혁명.

양심의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울타리를 뜯어야 돼요. 누가 뜯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못 뜯어요.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왔다갔던 영웅, 혹은 지금까지 가르쳐 준 수많은 종교인들, 혹은 도주면 도주들도 못 뜯어요. 뜯으려 해도 어느누구나 못 뜯어요. 얼마나 단단히 얽어맸다구요. 이것을 터뜨려 가지고 뜯어 치워서 `인간아 나와라' 하는 그때가 끝날이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어느 한 때 해방받아야 돼요. 이런 사망의 경지에서 튀쳐 나와서 세계적인 승리자가 돼야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감옥 사람이 아니어야 돼요. 그 사람은 딴 나라 사람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 사망의 세계에…. 다시 범위를 크게 해서 말하면, 그 사람은 사망의 세계에서 살지만 사망의 세계 사람이 아니라 새시대의 사람이다 이거예요. 딴 나라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역사를 두고서 하나님은 섭리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인류 앞에 딴 나라의 세계를 구상하고, 딴 나라의 하나의 평화의 날을 세우기 위해서 구상하면서, 또 딴 나라의 하나의 이념적인 사회, 이념적인 가정, 이념적인 개인을 찾아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이 양심을 기반으로 한 종교라는 거예요. 그 종교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개재해 가지고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이 인간의 양심을 위주로 한 종교를 세워 종교를 위주로 한 하나님이 앞장 서 가지고 인간 세상 앞에 누구를 보냈느냐? `너희들이 그냥 있으면 영원히 죽겠으니 살려 줄 수 있는 길을 닦아서 너희들이 살아라'고 하늘은 인간을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보냈느냐? 하나님 앞에 하나될 수 있는 종을 보냈던 것입니다. 종을 보내 준 시대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모든 세계적인 위인 성현들은 전부 다 하늘의 종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이 종의 본을 받아가지고 종이 하는 대로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들이쳐서라도 그 종을 따라가라는 거예요. 하늘이 세워 준 종의 행동을 따라서 하늘로 가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양심을 기반으로 한 종교의 이념으로써 하나님을 위주로 한 생활을 하고, 외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종교의 길을 대해서 희생하고 피 뿌리며 죽음의 길을 갔던 거예요. 본받게 해 가지고 끌고나왔다는 거예요.

그래, 종의 시대를 지내간 후에는, 그다음에는 아들딸을 보낸 거예요. 아들딸 보내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 역사요, 예수와 성신 역사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들딸이 하늘과 일치하고 종교와 일치된 그런 양심의 사람으로서 태어나 가지고 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 살고 있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합동작전하는 거예요, 합동작전.

여기에 인류를 끌어 넣고 믿어라, 믿어라! 내적인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몸을 희생하고 저기 가서 붙어라' 그래서 이 몸뚱이를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는 대신 몸이 되어라 하는 거예요. 대신 아들딸의 자리에, 나의 고깃덩어리를 부정하여 본연의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교, 양심의 기준 위에서 하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절대적 기준앞에 자기 몸을 쳐서 없애 놓으니 누구 몸을 갖다 붙였느냐? 하나님의 참 아들딸 몸뚱이를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거예요, 그거.

그렇기 때문에 온 세계적으로 그런 환경을 닦아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이념적인 기준의 참 아들딸로 하여금 인류를 대신해서 인류의 몸뚱이를 박차 버리고 다 잘라 버리고, 덜거덕 갖다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아들딸 만들기 위한 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종교가 무엇인지? 「예」

세계적인 양심의 터전을 넓혀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할 통일교회

그러면 오늘날 우리 선조들은 어떤 투쟁을 해왔느냐? 나를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습니다. 나를 잡아죽이는 투쟁을 한 사람은 또 무엇을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느냐? 가정을 잡아죽이는 투쟁을 했다구요. 이놈의 가정, 가정하고 싸웠다 말이예요. 하늘 앞에 선 사람은 가정하고 싸웠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승리하여 이 몸뚱이를 박차고 내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다 박차고 나서게 될 때에는 세상의 낙오자가 되는 거예요. 세상을 등지고,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세상을 박차고 도의 길을 가는 거예요. 세상을 거부하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고 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예」

개인을 부정하고 나서면 거기에 무엇이 나타나느냐? 가정적인 사탄이 있어요. 가정적인 몸뚱이가 있더라 이거예요. 이것이 부모 처자를 중심삼은 타락한 세계의…. 가정적인 몸뚱이가 있는데 가정적인 몸뚱이를 거부하고 나서면 사회적인 몸뚱이가 있다 이거예요. 사회적인 몸뚱이가 있는 동시에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몸뚱이가 나오고 사망의 터전의 몸뚱이가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서 `제일 높은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이념을 품고, 세계적인 양심 기대 위에 세계적인 종교를 중심삼고 이때에 있어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와라! 오면 너희들 천국간다' 하는 거예요. 왜? 그러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투쟁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고, 또 가정을 대신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고, 사회 '국가' 세계를 대신하여 승리한 기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지만, 저나라에 가서는 새로운 이상적인 세계 앞에 하나님을 위주한 절대적인 양심 기준에 있어서 사망의 위협을 받지 않는 자유의 동산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원이요, 천국이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데 이것만으로써는 안 돼요. 이것을 지상에 실현시켜야 돼요.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뭐하는 곳이예요? 종교예요, 사회단체예요? 「종교입니다」그러면 그 종교인들이 무엇을 모시는 단체예요?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

그러면 하나님을 위주로 한 종교로서 이 종교가 세계적인 이념을 대신할수 있는 종교의 이념을 가졌느냐? 지금까지 막혀 있던 양심의 터전을 넓혀가지고 이 말씀만 들어가게 되면 순식간에 `야! 이 세계는 우리 세계로구나' 하는 이런 사상이 깊이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런 종교라야만이 세계적인 종교요, 앞으로 사망의 세계에서 비로소 넘어가게 될 때 사람들이 발로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종교가 된다 말이예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무슨 공산주의요, 무슨 민주주의보다 더 높아야돼요. `이것까지 다 버리더라도 안 돼, 이것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을 가져야 돼요. 그렇다면 그 한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인류는 누구나 막론하고 전부 다 가야 됩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 온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바라기를, 부디 여러분에게 있어서 오늘 선생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양심 기준과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양심의 터전 위에 하나의 세계적인 새로운 이념을 대신할 종교의 형태를 갖춰 가지고, 거기에 있어서 아까 말한, 하나님을 모셔 승리적인 기반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생활적인 무대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생활적인 무대를 온 억천만년 계승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나!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길이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 선생님도 그런 길이 있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곳을 향해서 우리는 달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비로소 그런 양심의 터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양심의 터전 위에 하나님을 정성껏 모실 수 있는 곳, 하나님이 거기에서 비로소 `오냐, 됐다 이제 비로소 너희들은 이 세계를 대표했다' 할 수 있는 종교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게으르지 않아! 이 세계를 대해서 나가라! 산골짜기나 도심지나 어떤 주권자의 머리 속까지 향해서 돌진해라!

또 세상만이 아니라 여기 이 땅 위의 모든 영들에게도 그렇고, 공간세계의 사탄 세계를 향하여 `이놈아! 좀 보자' 할 수 있는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삶의길을 찾아가는 그런 길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겠지요? 「예」

삶의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 말한 그런 기준에 서서 비로소 세상을 전부 다 뒤바꿔 가지고, 새로운 천지의 어디든지 절대적인 말로써 참다운 선의 한 주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아들딸에게 `나는 틀림없이 됩니다, 죽어도 됩니다' 할 수 있는 이념을 소개하고, 신념을 일으키고, 그러한 심정을 북돋아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는 그런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망에서 살던 인간들이 비로소 삶의 길을 찾아서 갈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타락한 내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길이 자연히 생겨났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가야 됩니다.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어떻게? 우리가 `아! 그것 좋다' 하려면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을 알아야 돼요. 또, 내가 `좋다' 할 때는 좋지 않았던 자기의 입장을 비교할 줄도 알아야 돼요. 삶의 기준에 있어서 내가 살았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아이구, 내가 죽었다' 하는 자리를 알아야 돼요. 배가 고파 봐야 배부르다는 것을 안다 이거예요.

그런 길이 만일에 나왔다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로써 가야 되느냐? `그래 그것이 아직도 좋아? ' `응 좋아' 할 때 좋은 게 왜 좋으냐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왜 나빴느냐? 왜 좋았느냐 왜 나빴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고 살던 아담 해와를 회상해야 됩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해와를 회상해야 된다구요.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를 회상하는 동시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그들은 지금까지 말한 그런 복잡한 세계에서 투쟁해 가지고 하나를 죽이고 가는 입장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둘을 모르는 거예요. 단지 하나님만 알아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이런 입장에 서야 될 것 아니예요?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자리에 나가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돼요. 즉, 하나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야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응? 「예」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다 지나가 버릴 길이다 이겁니다. 이런 길을 거쳐서 비로소 내가 섰다 할진대 나는 어떻게 되느냐? 타락하지 아니했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 아담 해와는 하나님만을 알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붙들고 두려움을 몰랐던 아담 해와라구요.

여러분 자신들도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념을 알아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만을 알고, 세상 천지가 두려운 게 없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상 천지가 언제나 두려운 게 없어야 된다구요. 아무리 수많은 원수가 있다 하더라도, 사탄이나 혹은 마귀가 있다 하더라도 두렵지않아! 이 천지 가운데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탄과 마귀가 있다 해도 그 사탄 마귀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놈들!' 하면 그들이 꼼짝 못할 그런 자신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모시고 두려움 모르는 그런 자리에 여러분들이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래야 비로소 소생할 수 있는 길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하나님만을 알고 두려워하는 것을 모르는 내가 돼야 돼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자리에서 `아이쿠…' 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서러움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아이쿠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나님만을 알던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알아야 된다구요. 타락을 그렇게 했지요? 아담 해와가 그랬으니 아담 해와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 말이예요.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역사적인 저끄러짐을 전부 다 제거해서 길이 더럽혀진 것을 다 헤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메시아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이 길을 헤치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표적으로 길 닦아 놓은 분이예요. 그분이 닦아 놓은 그 길을 우리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가는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분보다도 앞으로 뛰어가서는 안 돼요. 그 길이 열렸다면, 그분의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에 있어서는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하나님밖에 모르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두려움을 모르는 경지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길을 찾아가 가지고 그 모든 입장을 느끼는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것을 슬퍼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되돌아가서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슬픔을 느끼는 내가 돼야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 두려움을 모르던 이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서 사망이 나를 덮쳤기 때문에 지긋지긋한 공포의 자리에 떨어진 나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던 나와 공포에 떨어진 나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나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후의 나를 비교해 보게 될 때에 얼마나 차이가 있더냐? 얼마나 원통하고 얼마나 분하더냐? 이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느끼기 전에는 못 돌아가는 거예요.

인간을 죽음과 공포의 세계로 몰고 간 사탄을 때려잡는 내가 돼야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느껴야 되느냐? 어떻게 내가 느낄 수 있겠느냐? 그걸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느냐? 아까 말하던 거와 같이 하나의 인간이 찾아가야 할 그 길을 개척해 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어야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엔 슬픔을 몰랐는데 잃어버리고 난 후에 얼마만큼 슬퍼졌느냐?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공포를 몰랐던 것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는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느냐? 그 차이를 느껴야 됩니다. `음, 이렇게 됐구나. 그러면 그렇게 되는 데는 나 홀로 그렇게 됐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는 관심을 가져야 된다구요. `오, 이렇게 만든 것은 누가 이렇게 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했소!' 할 때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누가 그랬소? 아담 해와가 그렇게 했소?' 하면 아니라는 겁니다. 아담 해와도 할 수 없이 그렇게 됐고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이렇게 만든 동기와 그 모체는 무엇이냐? 이것이 마귀다! 악한 세계의 대장 마귀예요. 알겠어요? 「예」 악한 세계의 뭐예요? 「사탄…」 대장 마귀, 일명 사탄이라구요.

그런 기쁨의 자리에서 고통을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던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타락하니 슬픔과 공포는 인간을 몰아쳐 다시는 하나님을 찾아갈 길이 없고, 다시는 평화와 행복의 길에 설 수 없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여기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죽은 내가 됐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요, 아담 해와가 기뻐서 이렇게 했던것도 아니요, 그렇게 만든 동기의 모체가 있는데 그 모체가 뭐냐? 악의 대장 마귀요, 사탄이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면 마귀는 어떤 존재냐? 나에게 공포를 갖다 주고 전달해 주는 주인입니다. 양심적인 기준에서 원치 않는 모든 요소를 내게 갖다 내 앞에 쌓아 놓은것이 마귀예요. 오늘날 그 마귀는 누구냐?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한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어떤 마귀냐? 이상적인 세계에서 타락하지 않고 선한 나로서 살 수 있는 나를 죽음의 자리에 떨어지게 한 원수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한 원수요, 나를 죽음의 자리에서 죽게 한 원수요, 나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전부 다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고서 타고 앉아 살을 뜯어먹고 있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이 세계를 그들이 타고 앉아 가지고 등을 벗기고, 가죽을 벗기고, 살을 베면서 지금까지 우리들을 유린하고 이용해 먹는 대원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제 알겠어요? 「예」

몰랐어요,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있는 것도 몰랐고, 아담 해와가 타락한것도 몰랐고, 원수가 있는 것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몰랐지만 결과는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된 나는 여지없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지만, 해방을 맞기 위해서는 그런 길 가운데 이런 곡절의 모든 경위를 밝혀 가지고 원수가 누구였다는 것을 똑똑히 가르쳐 줘야 돼요. 알겠어요? 「예」

내가 고통스럽게 이 고통을 알고…. 이 동기는 누가 만들었느냐? 원수가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분하고 원통하고 쓰라린 모든 것의 모체인 이 원수를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강한 화살을 원수의 복부를 향해 쏠 수 있는 결의와 각오가 강해질 수 있는 신념이있어야 돼요.

그 신념을 따라 가지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종교를 세워서 가르쳐 나온 것입니다. 인간에게도 원수가 있고, 천지에도 원수가 있고, 하나님에게도 원수가 있습니다. 이 원수를 이 지구성에서부터 추방하여 전멸시켜야 합니다. 전멸시키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종교입니다. 메시아를 따라가는 사람이 완전히 승리하려면 이제 말한, 원수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나의 모든 불안의 요소를 제거시킬 수 있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원수를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개의치 않고 나가 투쟁할 줄 아는 용사가 돼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 년 역사를 거쳐왔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은 그 목적은 어디 있느냐? 원수와 투쟁하는 데 있습니다. 투쟁해서 뭘할 것이냐? 승리의 한 날을 가지려는 거예요. 아직까지 하나님은 승리의 한 날을 못 가졌다구요. 승리의 한 날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원수를 갚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 원수를 완전히 갚아야만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우리들의 하나의 인생이 필시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찾아가는 길을 닦을 메시아가 온다 하더라도, 그 메시아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분한 공분의 마음에 사무쳐 가지고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죽을래야 죽을 수 없어요.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더라도 원수를 갚겠다는 철저한 사상을 갖기 전에는 그 메시아와 하나될 수 없습니다. 왜? 그 메시아는 지금까지 원수를 갚는 입장에서 6천 년 동안 투쟁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대신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6천 년 동안 투쟁해 나왔다는 거예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알겠어요? 「예」

사탄을 굴복시키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주는 통일교회

그런 길이 나오는 동시에 내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길을 닦으신 분이 그렇게 왔으니 그 길을 닦으신 그분을 따라서 나도 그런 심정과 그런 마음으로 원수를 갚겠다는 결의와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과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알았다 이거예요. 영원히 모시고 싶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은 그 기쁨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그 두려움의 자리를 우리는 피해 가지고 하나님을 다시 찾음으로 말미암아 그 기쁨을 다시 가져야 되겠다구요. 그런데 기쁨을 가지려니 내 몸뚱이가 원수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이겁니다. 이것을 끊고 벗어 나는 도리를 우리는 배워야 된다구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르쳐 주는 원수를 대해서 그냥 원수로 대할 것이 아니라 이 원수를 잡아 가지고 `이놈! 개인의 사탄이며 가정에서 우리 가정을 유린한 놈, 사회 국가를 유린한 놈, 세계를 유린한 놈' 하고 싸워야 됩니다. 영적인 동시에 실체로, 영과 육이 합한, 즉 하나는 무형의 힘으로 싸우고 하나는 유형의 실체로써 이 세계의 악을 대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이 사탄을 전부 다 제치기 위한 투사로서 나서야 됩니다. 투사로 나설 때에는 개인 전쟁시대, 가정적인 전쟁시대, 국가적인 전쟁시대, 세계적인 전쟁시대로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지금 때는 세계적인 전쟁시대에 왔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투쟁 도상에 있어서 끝날에 이것을 차 버리고 승리해 넘어갈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이 비로소 죽은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비로소 찾아갔다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인정을.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에 뭐하러 왔느냐? 그런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온거라구요.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분한 마음, 하나님을 잃어버린 슬픈 마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추방당함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내가 느꼈던 공포, 이 모든 것을 투쟁하여 제거시키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세밀히 알아야 돼요. 여기에 대해 `이렇게 가라' 할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주어야 할 그런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가 뭘 하는 곳인지. 응? 「예」

그런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줘 가지고 여러분들이 사탄세계를 대해서 최후에 벌어지고 최후에 한 번밖에 없는 전쟁, 하나님이 가담하고, 오시는 주님이 가담하고, 선을 위해서 소망하는 전체 사람들이 가담하여 최후에 벌어지는 , 한 번밖에 없는 최후의 전쟁시대를 같이 나가 가지고 세계를 붙안고 싸울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서 원수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원수를 잡아서 하늘 앞에 굴복시키는 여러분들이 돼야 비로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거쳐가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하면, 그런 방법과 수단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었던 여러분들은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사는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여기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만드는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사탄을 여지없이 개인으로부터 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에서 격멸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6천 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 모르게 싸우던 것이 오늘날 외적으로 최후에 심판하는 날이 되는 거예요. 하늘이 앞장서 가지고 싸우는 이 무대 앞에서 여러분도 하늘의 용사로서 총칼을 들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총칼은 세상 총칼이 아니예요. 참다운 말씀과 참다운 인격과 참다운 심정입니다. 즉, 하나님 대신, 오시는 주님 대신 그것을 기준삼아 가지고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그런 모든 것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전부 다 굴복시키고, 파괴시켜서 하늘 앞에 완전히 복귀해 드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모인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자신 있어요? 「예」 여러분들 한번 해볼래요? 「예」 한번 해볼래요? 「예」 그러려면 나를….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서 새로 태어나는 여러분이 되라

여러분들이 `춥다' 할 때, 양심이 `야, 내 양심이 춥다' 그래요? 양심은 추운지 몰라요. 속사람은 추운지 모른다 말이예요. 배고픈 것도 몰라요. 영인체는 먹지 않아요. 먹지 않고 천년 만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서 추운 것도 춥지 않다, 배고픈 것도 배고프지 않다, 이렇게 부정해야 됩니다. `이놈 고기야, 천대받아라' 하며 최고로 천대하라구요.

이 세계에 남아진, 이 인류를 괴롭히는 대원수는 나에게 뿌리를 딱 박고 있으니 이 뿌리를 빼기 위해서 세계 사탄이 위하는 이 몸뚱이를 부정해야 돼요. 그러니 그걸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야 돼요.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죽여 놓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죽기는 죽었는데 아직까지 서 있잖아요? 뿌리가 자라면 뿌리를 빼 버려야 돼요. 그러므로 나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 양심이 최고의 긍정의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대표자의 양심 기준을 닦아 가지고 그 기준에 서서 몸뚱이를 여지없이 심판해야 됩니다. 여기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만 자기를 가누어 가지고 사탄을 대해 싸울 수 있는 무장도 짊어지지요. 그렇지요? 「예」군장 짊어질 수 있나요? 자기 하나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녀석들이 군장을 어떻게 짊어지느냐 말이예요. 인류를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가정을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세계를 위해서 어떻게 싸우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완전히 부정해야된다구요. 이런 허락한 축복의 길에 나가 새로운 내 삶의 인격을 세워 가지고 세계에 있는 사탄을 굴복시켜 총복귀시켜야 할 용사가 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기 위해 온 사람 어디 손들어 보자구요. 내리자구요.

그러한 원칙 밑에 나가면 여러분들이 복받는 거예요. 사실은 밥도 하루에 한 끼씩 먹어 봐야 된다구요. 예수님도 그랬다구요. 배가 고파 울어서 눈물이 그저 눈물 굴러 떨어져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놈, 죽어봐라!' 사탄이가 `야, 너 먹어라, 먹어라' 했지만 참았다는 거예요. 그런 훈련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양심의 사람만 가는 거예요. 그래 천지에 오르락내르락 한다는 말은 금식 기도 많이 하면 영계를 통할 수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상적인 감정에 사무쳐 하나님을 증거하는 아들딸 입장에서 하나님의 대신 심정을 거쳐 가지고, 거기서부터 나를 찾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공인받아 가지고, 제2의 나를 희생시켜 가지고 비로소….

그러려면 참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많이 참고, 많이 연단하고, 많은 고통을 느끼라는 겁니다. 많이 굶주리고 많이 눈물 흘리고 다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다 하는 것을 내가 찾아가서 다 하라는 거예요. 이런 마음 가지고 이 수련장에서 제일 가야 됩니다. 밥도 안 먹여야 할 텐데, 밥 안 먹이면 `밥도 왜 요거밖에 안 주나? 어, 김치 조각만 주네. 물도 찬 물만 주네, 찬물. 추운 겨울인데 화덕도 안 놔 주세' 그럴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죽으러 왔습니다. 영인체는 추운줄 모르고…. 영인체가 춥다고 그러나? 영인체 위주하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 왔으니 불평을 허용치 않습니다. 그래 불평 안 하겠어요? 「예」 정말 불평 안 하겠어요? 「예!」 불평은 허락치 않는다구요. 추워도, 춥기는 춥지만 춥다는 말을 못 해요. 배고프지만 배고프다는 말을 못 해요. 고향에 가고싶지만 고향이 없어요. 그 고향은 어떤 고향이냐? 죽은 고향이예요. 부모가 그립지만 그 부모도 죽은 부모예요. 그렇게 돼 있단 말입니다. 그 나라 그 세계를 내가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곳에 가고 싶지 않고, 괴로워도 여기 있고 싶고, 밥을 굶더라도 여기있고 싶은 그런 느낌이 있어야만 비로소 여러분이 수련받는 자로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이런 무엇을 느낄 수 있는 심적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내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걸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지내야만 여러분들이 수련을 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런 약속을 하고, 한번 해보잔 말이예요. 응? 「예!」 그래서 죽었던 나로서 삶의 길을 찾아가 가지고 찾은 다음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은 내가 돼 가지고, 찾은 내가 돼야만 원수를 대해서 싸우는 거예요. 찾아가는 자는 싸울 수 없는 거예요. 찾은 자가 돼야만 사탄 대해서 싸워서 처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한단 말이예요. 그만….

기 도

아버님, 타락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사망의 철장 가운데서 저희들이 죽은 자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런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 힘만으로써는 도저히 살 길을 찾을 수 없는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철망을 터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저 세계 끝의 끝에서부터 반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세계 끝에서 지금까지 찾아와서 오늘날의 나까지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닦았습니다. 길을 닦아 가지고 내가 죽어 있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서 살려주기 위하여 나를 끌고, 다시 개인으로부터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십자가의 길을 또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저희들이 얼마나 아버지 앞에 면목이없고,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후손인가를 알았습니다.

이것을 저희들이 알았기에 이것을 대신하여 분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돼야 겠사오니,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을 붙드신 다음에는 놓지 마시옵소서.

최후의 전쟁터를 맞이하여 아버지가 원수를 갚으라는 한 호령 앞에 저희들이 총칼을 아끼지 않고 나가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데 있어서 선봉 장군들이 되기 위해 여기 와서 수련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사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길을 찾아서 비로소 아버지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고, 원수에게 항복받을 수 있어서 아버지의 아들딸이라고 자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40일을 중심삼고 이 본부의 생활을 시작하오니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모든 행동과 모든 생활적인 면을 친히 당신이 주관하여 주옵고,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여건들을 제거시키면서 당신의 품 안에 품으신 자녀로서 보호하여 주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 왔던 사람들이 한 생명이라도 다시 사탄의 제물 되어 끌려가는 자가 없게 허락하여 주옵고, 아버지 품 안에서 끝까지 남아져 승리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전체를 맡기오니 당신 것으로서 취하여 당신이 길러 주시옵시고, 당신이 보호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이들을 수련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 맡기오니 받아 주시기를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싫든 좋든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고 보니 하늘과 땅이 있고 인류가 있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이 세계에는 여러 사회, 국민, 국가, 국토가 있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여러분도 복잡한 이 세계의 경계를 타파하여 모든 사람들이 서로 위하고 만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현실

이와 같은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소망하는 대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은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 두려움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 기쁨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과거 생활을 통하여 어느 한때라도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사람, 보고 또 보고 싶고,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 천주에 드러내어 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갖춘 적이 있습니까? 물론 가정에서 부모 형제에게나 혹은 작은 생활의 테두리 속에서 어느 누구에게 일시적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기는 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런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부모까지도 여러분을 세상에 내놓고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초조해 합니다. 세상이 걱정스럽고 믿지 못할 세상이요, 공포의 세상이요, 그러면서도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에 얽매어 벗어날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망의 물결이 휩쓰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의 보응은 사망입니다. 인류역사는 이 사망으로부터 생명, 즉 삶의 길을 찾아 나온 역사였습니다. 이 길은 인간 스스로는 닦을 수 없는 길이기에 여기에 그 무엇이 플러스(+) 되어야 합니다.

인간조상은 타락하지 않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가졌었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시조는 우리들보다 심정이나 하나님을 모시는 심적 기준이 나았었는데도 타락했는데, 우리가 어찌 우리의 힘만으로 구원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힘에 그 무엇이 플러스 되어야 합니다.

개인이 참삶의 길을 찾으려면 가정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은 그냥 넘어갑니다. 가정이 참삶의 길을 찾으려면 종족이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은 그냥 넘어갑니다. 민족이 참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국가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민족은 그냥 넘어갑니다. 국가가 참 삶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는 그냥 넘어갑니다. 이렇듯 시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서서 이끄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거기에는 분명 어떠한 존재의 힘이 작용하는데 그 존재가 누구이겠습니까? 만일 그 힘의 주인이 제일 나쁜 존재라면 인간 세상에는 구원이나 행복, 평화 등의 이상적인 명사는 아예 존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존재가 그 힘의 주인이라면, 이 세상에는 소망적인 명사만 남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을 보면 내 속에는 선과 악의 두 마음이 있고, 사회를 보더라도 선과 악의 두 조류가 있어서 항상 투쟁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곳은 어디며 삶의 곳은 어디냐? ‘사는 것’이란 악의 요소를 버리고 선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이요, ‘죽는 것’이란 선의 요소를 버리고 악의 요소의 본질에 접붙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선한 사람이란 생활 속에서 악과 대결하여 싸우는 사람이요, 악한 사람이란 선과 대결하여 싸움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현이란 악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악과 대결해 이길 수 있는 대책과 길을 소개한 사람입니다.

인간을 구원해 오신 하나님

우리는 선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을 찾는 데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그 무엇의 힘을 합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 힘의 주인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탄의 괴수를 쳐서 멸해 버리고 승리의 권한을 우리 인간에게 주는 분이 계시다면 그가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주인공이요, 메시아요, 하나님을 대신한 자로서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이 분이 악을 멸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위주로 한 선의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를 만들면 그것이 이상세계요, 지상천국입니다. 그곳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곳이요, 인간이 소망하는 곳이며, 인간의 본심이 찾아가는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길로 가는 편과 그 반대의 길로 가는 편이 있습니다. 이 두 편이 부딪쳐 하나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 두 편을 처리할 이념을 갖고 오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우리는 양심도 살아 있고 몸도 살아 있다고 자부하지만, 선의 인연 속에서 생활할 수 없는 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으니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철창을 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나 주위에는 두 주인이 있어 평화란 있을 수 없고 고통이 연속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삶의 길을 찾아가야 할 우리가 해야 할 각오와 결의는 무엇이겠는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철창은 다름 아닌 이 몸뚱이이니, 양심을 동원하여 이 철창을 헤치고 나와야 합니다. 그때가 끝날입니다.

자기가 갇혀 있는 줄도 모르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내적으로는 양심대로 살 수 있도록 종교를 세우시고, 외적으로는 선의 가르침을 주시어 이끌어 오셨습니다. 비록 사망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세대가 아닌 새 세대, 즉 평화의 세계에서 살아갈 도인이나 선열들을 세워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움직임과 함께 할 종을 세워 역사하셨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일체가 된 자녀를 보내심으로 사람들의 양심에 충격을 주어 내적 외적으로 중심과 접붙이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내적 양심을 동원하여 철창, 즉 몸뚱이를 쳐 버리게 하고 대신 그 자리에 하나님과 일체된 자녀의 몸을 접붙이게 하는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도의 길이란 몸뚱이를 부정하고 나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몸뚱이를 부정하고, 가정적 몸뚱이를 부정하고, 사회적 몸뚱이까지 부정해야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선의 이념을 세우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모든 철창, 즉 몸뚱이를 다 잘라 버리고 승리하여 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회단체가 아니라 종교단체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단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이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이념은 인간 최고의 양심의 터전을 넓혀 승리적 생활 무대를 닦아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이념으로서, 세계의 모든 것을 밟고 넘을 수 있는 높고 큰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양심의 터전을 넓히고 하나님을 정성껏 모시고 살 수 있게 하는 가르침(종교)이 나와야 사람에게 삶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이념이 나와서 몸뚱이를 버리고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가는 사람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수련의 목적

우리는 이와 같은 엄청난 길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느냐? 지극히 좋다 하는 것은 그것에 상대되는 것과 비교할 때 알 수 있습니다.

타락 이후 오늘까지는 없어야 할 역사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타락 전 아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아담은 하나님만을 알고 두려움이 없었으니 우리도 하나님만을 모시고 두려움을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서러움을 알아야 하고, 두려움이 없는 나와 공포 속에 있던 때의 나를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가 우리를 타락으로 이끌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 홀로 타락하였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가?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입니까? 마귀 때문입니다. 악의 대장 마귀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고, 우리의 주위에 공포의 벽을 쌓아 놓은 존재, 우리를 사망의 자리로 몰아넣은 존재,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유린하고 이용한 마귀를 찾아 모든 한과 고통과 슬픔을 한 화살에 총집결시켜 그 원수 마귀의 가슴에 꽂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가 남아 있고 싸움의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싸워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공분(公憤)의 심정을 갖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해도 쉬지 않고 원수와 싸워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길을 개척하고 닦아 오신 분이 그렇게 해 나오셨으니 나도 그 길을 그렇게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심과는 무관합니다.

원수와의 인연을 끊고 원수로부터 해방받기 위하여 원수에 대한 공분의 심정을 길러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사탄과 싸워 승리할 방법과 수단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승리의 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련에 임하여 말씀을 통한 심정과 인격을 기르십시오. 그러기 위해 몸뚱이를 부정하십시오. 속 사람은 배고픔과 추위 등의 외적 조건에 변동되지 않으니, 여러분은 겉 사람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도리를 배워, 양심을 최고의 긍정적 위치에 세워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삶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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