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국에서 왔습니다. 경기도에서도 오고, 또 강원도에서도 오고, 충청도서도 오고, 그다음엔 어딘가요? 경상도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도 오고, 서울에서도 오고…. 「제주도에서도 왔습니다」제주도에서? 「예」 팔도강산에서 전부 모였습니다.

젊은이에 대해서 말하려면 젊은이가 되어야

그리고 오늘 여기 모인 대다수의 사람이 젊은이들입니다. 그렇지요? 「예」 젊은이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지난날에 살았던 것을 생각하고 젊은 시절을 기억하면서 섭섭히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은 될 수 있으면 젊은이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에 대해서 말하려니 선생님도 젊은이가 되어야 되겠다구요.

선생님 나이가 몇 살이면 좋겠나 하고 물을 때, `60이 넘어서 한 70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때요? 있어요? 그거 몇살이면 좋겠어요? `40쯤' 그건 조금 낫지요. 요만큼 들 거예요. 그 다음에 `30쯤' 하면 또 요마만큼, 조금 높아질 거예요. 한 20쯤 하면 다 들 거예요, 아마. 틀림없이 다 들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선생님 나이가 몇 살이면 좋겠어? ' 할 때, 여러분 중에 스물한 살 된 사람은, 오늘이 며칠인가요, 10월 7일이 생일인 사람은 선생님의 나이가 21세이고 생일이 같고 시간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때요?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아요? 나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겠단 말이예요.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대개 보면 20세를 전후한 스물한 살, 17세 이상 21세 미만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젊은 소년 소녀들이 모였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 시절로 돌아가 가지고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여러분과 같은 연령시대에 이런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개척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 그 무엇을 찾기 위해 허덕이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가만 보니까 얼굴도 다 그러그러하고 모습도 다 그러하고 교복도 같고 그러니 아주 기분이 좋다 이겁니다.

여기 처음 온 어르신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녀석들 대해 얘기할 때는 좋은 말만 할 수 없습니다. 욕도 할 것이고, 조는 녀석이 있으면 선생님이 뛰어가서 `이 녀석!'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젊은 애들 세계에서는 장난할 때, `이놈아!' 그러잖아요? 인사할 때 `밥 먹었어? ' `그래' 하면서 가슴을 툭 치고 그러잖아요? (웃음) 그것이 다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달려가서 기합을 주더라도, 오늘 여기 처음 온 어르신네들은 `뭐 통일교회에 갔더니 선생이란 사람이 주먹을 쥐고 아이들에게 기압을 주고, 말하는 데도 막 잡아 먹을 것같이 하고 용서가 없더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일단 그런 건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어른들을 위주해서 말씀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어린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걸 원해요? 원해요, 안 원해요? 「원합니다」내가 노인이 되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되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린이의 공약을 세워야 돼요. 그 대신 어르신네들은 양해하시기를 바라고, 어린이들을 중심삼고 이야기하느니만큼 말씀 속도를 빨리 해야 되겠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게 냅다 부어야 할 때는 냅다 부을 겁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줄 알아야 젊은이입니다. 그러니만큼 그렇게 생각하시고 나이 많은 분들은 미안하지만 양해해 주길 부탁합니다.

저 뒤에 계신 양반들, 어때요? 약속해요? 「예」 오늘 처음 왔는데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끔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젊은 애들, 거 뭐 귀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들한테만 얘기한다고 섭섭히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은 다음 기회에 그런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만 이어린이들에게 양보해 주기를 바랍니다. 약속하겠지요? 약속해요, 안 해요? 「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자,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손을 쥐고 주목하라구요. 노래 하나 해야되겠어요. `선생님이 나와서 무슨 말씀하실까? ' 하고 궁금하지요? 노래 하나 하겠어요. 노래 하기 전에 딱 한 가지 부탁하는데, 여기 선생님 처음 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처음 보는 사람. 그러면 다 봤군요. 지방 교회에 갔기 때문에 다 봤을 것입니다. 팔도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와 같이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선생님 일생에 처음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얼굴들이 발긋발긋하고 아주 소망의 눈이 봄동산에 큰 어떤 종묘장을 만드는 것 같아요. 씨들이 뿌려져 가지고 움이 터서 파릇하니 소망이 넘치는 모습이, 봄빛을 맞아 움을 틔워 자기 모습을 단장해 가지고 `나는 이러한 나무의 종자니라. 나는 이런 무슨 씨의 종자다'라고 종족을 자랑하는 모습이 완연히 보입니다. 이것들이 자라나면 앞으로 별의별 것이 다 될 것입니다. 세계를 녹여 먹는 놈도 나올 것이고, 사탄을 근본적으로 때려잡을 놈도 나올 것이고, 또 일대(一代)에 아주 일격전을 하려는 통쾌한 사나이도 나올 것입니다. 또, 아낙네로 말하면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올 것입니다. 그걸 바라볼 때 아주 신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우리 힘차게 노래 하나 부르자구요.

준 사람한테 갚지 못하면 삼천만 민중 앞에 주어야 돼

노래는 무슨 노래냐 하면 `하늘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용사. 여러분이 먼저 부를래요, 선생님이 먼저 불러 볼까요? 「선생님이 먼저…」 그래, 한번 해보자요. 선생님이 한번 불러 볼께요. 그대신, 원리를 통해서 여러분이 주고받는 이치를 배웠어요. 주었으면, 받았으면? 「줘야 됩니다」준 사람한테 주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돼요? 돌려야 됩니다. 그러니만큼 여기서 선생님이 씩씩하게 한번 부르면 그 노래를 여러분이 `선생님 대해서 우리가 씩씩하게 불러 드립니다' 해야 돼요. 그렇지 않게 되면 돌려야 돼요. 어디로? 삼천만 민중 앞에, 여러분 같은 백만 동지를 앞에 돌려야 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1절을 한번 해보겠어요. 듣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요. 내려요. 하늘의 용사, 1절 가사를 읽을 테니 들어 봐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아닙니다」 (웃음) 뭐예요? 「하나로 묶어 주신…」 정말이예요? 「예」 세계는 둘로 묶어져 있는데요? 「아닙니다」 그러니까 심정의 인연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계는 심정에 의해….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그다음엔 영원히 주고받는 남의 본향…. 「우리의 본향」 우리의 본향. 불행의 터전에서 영원히 살리라? 행복의 터전에서 영원히 살리라예요. 알겠어요? 「예」 그럴 때는 `선생님이 가사를 외었는데…' 하고 생각해야 돼요. 다시 한번 하겠어요.

왜 그러냐? 여러분이 생각이 많다는 거예요. 늦어 가지고 밥도 못 먹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협회장이 와서 얘기하더니 또 선생님이…. 아이고 그만뒀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있다 그 말이예요. (웃음) 복종하라는 거예요, 복종. 그러니까 선생님 얘기에 관심 갖게 하려면, 할수없이 여러분 입장에서 선생님이 이 놀음 해야 돼요. 사실 선생님이 이런 놀음 할 필요도 없어요. 이런 데에 와서 뭐 할말만 몇 마디 해주면 되는 것이지만, 그러면 의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안 그래요?

쭉 보게 되면 선생님에게 그것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여 주려면 입을 딱 벌리게 해서…. 뭘 먹여 주는 데, 입술에 뭘 묻혀 가지고 `지지이이' 하는 것 원치 않습니다. ` 입을 벌려라. 힘껏 이빨까지 목젖이 앞에까지 나오게 벌려라' 해 가지고 입술에도 안 묻게 살짝 집어 넣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소원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참고 나와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처음인 사람들은, 대중을 지도 못 해본 사람은 그렇게 못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같은 사람을 데리고 지내봤을 때 이렇게 해야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또 여러분들도 좋고.

하늘의 용사는 심정·인격·진리의 실천자가 돼 있어야

심정의 인연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는 심정, 둘째는 인격, 세째는 진리의 실천자, 이것이 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소망의 동산에서…. 그러니 4절은 소망의 동산이예요.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는 소망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의 심판은 뭐냐?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심정으로 인격으로 말씀으로인데, 심판은 말씀심판시대 인격심판시대 심정심판시대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발전해 나옵니다. 오늘 시간이 많아서 전부 다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못 하지만,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이게 여러분의 소원이고 누구의 소원이예요? 여러분의 소원인 동시에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의 소원이요,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자, 들어 봐요.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이것은 우리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이라 어떤 용사? 「통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무엇을 모아? 「정을」 정을 모아, 하나님의 심정의 정을 모아 뭐하는 거예요? 「용진…」 용진하리라! 용진이라는 명사는 무엇을 앞에 놓고 쓰는 말이예요. 원수를 앞에 놓고 쓰는 말입니다. 심정적인 이런 용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2절,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니…. 본래 타락하지 않은 인간은 무한한 인격자입니다. 일시적인 인격이 아니예요. 무한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무한히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인데, 빛이라는 것은 흑암의 빛이 아닙니다. 광명한 빛을 돋구어, 온 피조만물은 그 무한한 연격의 빛권 내에 들어가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으신 만물의 그 무한한 소망의 등대로 발하기를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소망의 등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그 가치에는 생명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생명이 솟구쳐 나온다는 말입니다. 가서 건드리면, 가서 부딪치면 움직여 나오는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도 생명의 동기에 접붙이면 일어서는 거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접촉만 되면 죽었던 놈도 벌떡 일어서요.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그렇다고 강제가 아닙니다. 자동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격이 그렇다는 거예요.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그다음은 뭐예요?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예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망이 뭐냐? 하나의 인격입니다. 그 하나의 인격이 향기를 풍기는 꽃봉오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인격을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번 더 읽어 보겠어요.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바라시는 뭐예요?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 이런 것은 누구만이 할 수 있어요?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무엇? 뜻을 세워. 사람이라면 뜻이 있어야 됩니다. 뜻이 있어야 돼요. 이건 동물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뜻이 있어야 돼요. 뜻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예요. 뜻 없는 사람은 뜻 없는 날을 보내는 동시에 뜻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요, 뜻 없는 생활은 뜻 없는 인간을 만들어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구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천지의 이치는 인연과 관계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뜻 없는 사람은 그런 인연과 관계세계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를 중심삼고 무엇을 바라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뜻의 작용입니다. 그런 뜻이 있어야 돼요. 사람에게는 뜻이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 3절,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무엇을 약속하는 ? 「영원을」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이건 뭐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질서가 많고 어떤 사회적 조직이니 이런 것이 많지만 이젠 그런 것은 지나갈 때입니다. 질서의 기틀, 완전한 창조의 이념으로 바랐고 인간의 소망으로 바랐던 원칙적인 질서의 기틀이 잡혀지지 않았습니다. 내 심정적 기준을 통하여, 인격적 기반을 통하여 이루어진 질서적 기틀이 잡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의 기틀, 우리들은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서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배척을 받고 억울하여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이 땅 위에 없는 참다운 질서의 기틀을 회복하고 질서의 기틀을 제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움직이는 하루의 생활, 한날의 모든 투쟁이라는 것은 일시에 여러분 시대에만 미쳐지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의 날이라면, 전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선의 한 날입니다, 한 날. 선의 하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서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 싸운 모든 투쟁의 생활, 그런 역사적인 재료들은 무엇이 될 것이냐? 양양한 선의 천국을 이루는 하루 생활을 심판하는 절대 기준이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은 누구만이 할 수 있어요?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길을, 그러한 진리를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치면서, 무엇? 사탄세계를 향하여 용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절,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그리하여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창조역사시대에 있어서 심판적인 생애의 규범을 세우는 책임을 하기 위한 새로운 진리를 들고…. 그러니까 이런 모든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자랑이라, 무엇? 「통일의…」 통일의 용사입니다.

나 물 좀 주세요. 얘기를 많이 하려면 물 좀 먹어야지요? 괜찮지요? 「예」 여기 한 200명 되나? 150명? 한 200명 모였는 데….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우리는 자랑이라, 무엇? 「통일의…」 통일의 용사. 힘차게, 뭐예요? 「외치면서」 외치면서? 「용진하리라」 용진하리라!

이상세계의 기틀이 되는 문화는 심정문화

그다음 4절은 이념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 해야 심정이 통하고 인격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격적 기준의 뜻을 세워서 말씀을 외칠 수 있는 책임을 한 사람이라야 본향의 세계를 거쳐 이상적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이상입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동방이 어디예요? 일본? 「한국입니다」 누가 한국이라 그랬어요? 누가 한국이라 그랬어요? 누가? 하나님이 그랬다고 왜 대답 못 해요? 틀림없이 한국시대가 옵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이제 동방에서부터 찬란한 태양빛이비쳐 오는 것입니다. 아침에 광명한 햇빛이 비치면 만천하를 정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그들도 정복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태양빛입니다. 그런 찬란한 문화가 벌어집니다.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이것이 앞으로 한국에서부터 벌어진다 이겁니다. 한국에서부터 벌어집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신념이 있어야 돼요. `태풍아, 불어와라. 모진 바람아, 불어와라' 하는이 신념만 갖고 있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손에 붙들렸고 내가 결심을 했으니 못 빼 간다 이겁니다. 그러면서 임무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 했으니, `믿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별수 있어요? 미국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이 그런 신념을 가지고 부탁한다면 한국 사람을 축복해야지 별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안 오겠다 해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오겠다 해도, 하나님이 미국 하나님이라 해도 우리가 그렇게 하면 별수 있겠어요? 미국 사람보다도 우리가 더 많은데 말이예요. 더 충성하고 더 신념을 가지고 더 믿는 데….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성경 말씀에 떡 있는데, 딱 걸려 있는데 누가 이기겠어요?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 그런 신념을 가지고 믿고 나가면 자연히 온다는 겁니다. 자신을 가져야 돼요. 알겠어요? 「예」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무엇이? 온─ 뭐예요? 「누리」 온 누리가 여러분 형제만이예요? 엄마 아빠 그것만이예요? 「세계 인류요」 왜 세계 인류예요? 온 누리라는 건 세계 인류만이 아닙니다. 과거에 왔다 갔던, 영계에 있는 우리 사촌들, 또 미래에 올 우리 손자들 전부입니다. 사람 종자, 사람 형태를 갖고 왔다 갔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고 왔다 갔던 존재는 다 속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온 누리입니다. 온─누리입니다. 오오온 누리─, 얼마나 커요? 계속하는 거예요. 끝났어요? 안 끝났습니다. 무한입니다.

온 누리, 무슨 빛 속에? 어느 빛? 여러분 눈 깜박깜박하는 그 빛이예요? 어느 빛이예요?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그러면 그 찬란한 문화라는 것은 무슨 문화냐? 전쟁해서 정복하는 문화예요? 돈많이 가지고 배를 내밀며 잘산다고 자랑하는 문화예요? 오늘날 비행기 타고 세계일주하면서 큰소리하는 문화예요? 무슨 문화예요? 아니예요. 심정의 문화입니다. 심정의 문화예요. 이거 알아야 돼요.

우리가 앞으로 이상적인 세계에 있어서 주류, 혹은 그 기틀이 될 수 있는 문화의 원천은 뭐냐? 원료가 되는 문화로서 누구나 다 필요로 하는 문화는 뭐냐? 심정문화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안 봐도 안 되고 자식에겐 부모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형제가 없어서도 안 돼요. 내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되고 내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다 그렇습니다. 내 세계가 없으면 안 되고 내 하늘땅이 없으면 안 돼요. 이게 심정의 문화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라는 것은 무슨 문화냐? 심정의 문화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심정적인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여러분은 무엇이냐? 지식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는 지식의 부모라고 하지요? 「예」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겐 기술의 부모라고 해요. 우리 통일교회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입장에 있으니, 여러분이 선생님 대해 진리를 중심한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래요? 내 고깃덩어리를 낳아 준 사람은 고깃덩어리 부모입니다. 자기의 인격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제시한 분야 분과에 있어서 가치가 크면 클수록 큰 가치를 중심삼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건 전부 부모적인 혜택을 받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의 인연을 거쳐 선의 조상이 된다는 포부와 신념을 가져라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무엇이냐? 복귀역사를 보면, 아까 협회장도 이야기했지만 종새끼 중의 종새끼가 종으로 복귀하기 위한 역사가 구약역사입니다. 종이 양자로 등장하여 복귀해 올라가는 역사가 신약역사입니다. 구약의 바톤을 붙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 신약이라면, 오늘날 2천 년의 신약역사는 뭐냐? 이 바톤을, 이 뭉치를 들고 종의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종의 고개를 넘으려니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종의 새끼로부터 양자 새끼로 돌아가려니 해산의 수고를 해야 돼요. 해산의 수고를 해서 그것을 들고 양자의 세계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계적인 종의 세계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세계적인 종의 세계를 만들어 세계적인 양자의 인연을 거쳐 세계적인 직계 자녀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다음에 직계 자녀를 세워 형제의 인연을 거쳐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선남선녀가 되기를 바라고…. 선남선녀가 되어 타락한 조상이 되지 않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식을 낳는 멸망할 조상이 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당 갈 수 있는 ,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누구든지 자처하며 나설 수 있는 선의 참다운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서 여러분이 소망의 선의 부모예요.

오시는 주님은 뭐냐 하면, 온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그 주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축복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선의 조상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선의, 참부모의 자리를 가졌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려면 심정적인 이 문화적인 세계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뭐예요? 길이 받들어, 그다음엔 "정녕코 이루리라" 뭐예요? 「하나의 세계」 그래야만 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이런 뜻과 포부와 신념을 갖고 나서는 무리들은 비록 나이는 10여 세밖에 안 되었다 하더라도… .

요즘 뭐 틴에이저라 해 가지고 미국 같은 데서는 아주 다루기가 곤란합니다. 그거 뭐라고 그러든가요? 무슨 춤? 「트위스트」 엿가락 춤이예요, 엿가락 춤. (웃음) 그거 신나요? 신나요, 그거? 그것도 하나님을 모셔 놓고 춰야 신이 나지요. `내가 하나님을 한번 모셔 놓고 춤춰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 그렇게 생각하면 추고픈 마음이 동해도 괜찮지만, 사탄 패들 노는 데서 그거 춤춰서는 안 된다구요. 우리 주님을 모셔 놓고 트위스트 아니라 트위스트 조상 몇 대조, 몇 배 잘한 조상의 춤을 춰 보고 싶어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다리만 꼬여야 되겠어요? 손이 꼬이고 허리가 꼬이고 코가 꼬이가 다 꼬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모셔 놓고 그렇게 추면 덩실덩실 추면…. 그거 얼마나 좋아요?

천지조화의 인연에 의해 노래하고 춤을 춰라

지금 세상은 그렇게 안 돼 있습니다. 그걸 볼 때 여러분은 뜻의 길을 보여 줘야 돼요. 그들은 트위스트니 하는 무슨 엿가락 춤을 추지만, 우리는 직선 춤을 한번 춰 보자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뻗으면, 인공위성 같은 건 잘 따라옵니다. 직선 춤이예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꼬는 춤 말고 직선 춤 한번 춰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날아가면 세계를 몇 바퀴 돌다 쓱 가서, 앉고 싶은 데에 앉을 수 있는 직선 춤을 추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포부를 갖고, 그런 희망을 갖고 나가는 우리 소년 소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거 한번 해보자 말이예요. 해봐요? 「예」 한번 해보자구요.

선생님이 노래를 참 잘하는데,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여러분 눈이 이렇게 보니까 질려서 잘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그렇지만 한번 해보자구요. 자, 척 노래를 부를 때는 `하늘이여 낮아지소서, 낮아져! 땅이여 올라오소서. 솟아! 사람이여 집합! 봐! 들어' 이런 기분 갖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신나는 거예요. 그래 노래를 불러도 혼자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조금 늦었지만, 20일 전만 해도 가을 동산 숲속에 가면 이상한 소리가 나거든요. 뺑─, 뭐 어쩌고…. 그것도 플러스 마이너스입니다. 음양을 갖춰 가지고, 박자를 맞춰 찍 하면 짹 쭉 짹짹…. 이거 자연의 오케스트라입니다. 이거 벌어지는 것 봤어요? 그것들은 꽁무니에 뭘 달고 다니면서 자동적인 음악회를 멋지게 해요. 그건 자연적인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런 걸 볼 때, 미물 곤충도 노래를 부를 땐 누가 들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천지조화의 인연을 가지고 춤추는 거예요. 그들이 노래하고 즐거워하는 걸 가만 보면 천지의 조화 인연, 자동적인 인연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든요. 인간들은 흥을 돋우려면…. 그거 얼마나 답답해요? 다리가 부러졌을망정, 날갯죽지가 떨어졌을망정 곤충들은 소리를 냅니다. 소리 내는 그것이 멋지거든요. 병신이 나가자빠져 가지고 노래한다 해도 멋지지 않나 말이예요. 그거 얼마나 멋져요? 인간세계에서는 멋지지 않지만 자연세계에서는 멋진것입니다. 자동적인 인연의 세계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라는 거예요. 노래하자면 할수없이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천지의 인연을 끌고 다니면서 `가자! 오늘은 서쪽으로 가자, 오늘은 남쪽으로 가자' 하는 기분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이 생활적인 기반을 세워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한번 불러 보자구요. 「예」

1. 심정의 인연으로 세계는 살고

하나로 묶어 주신 본성의 인연

영원히 주고받는 우리의 본향

행복의 터전 위에 길이 살리라

(다같이)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정을 모아 용진하리라

2. 무한한 인격으로 빛을 돋구는

지으신 만물들의 영광의 등대

생명이 솟구치는 본연의 모습

소망의 가치로써 꽃피우리라

(다같이)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뜻을 세워 용진하리라

3. 질서의 기틀 위에 참을 세우고

영원을 약속하는 불변의 가치

드높이 세워지는 진리의 푯대

양양한 선한 날을 단장하리라

(다같이)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외치면서 용진하리라

4. 동방에 밝아 오는 찬란한 문화

온 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다같이)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힘차게 그 세계로 용진하리라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됐어요? 오늘 시간도 늦었는데, 좀 늦어도 괜찮지요? 「예」 선생님이 이야기 많이 할까요? 「많이 해요」 30분만 해요? 「많이요」한 시간만? 「더 많이요」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선생님은 열 한 시간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웃음) 괜찮아요? 「예」 밥도 안 먹고? 「예」

이건 무슨 손? 「왼손」 요거는 무슨 손? 「오른 손」 이것은 젊은 소년소녀들에게 하는 얘기입니다. 뒤에 있는 양반들, 미안합니다. 상징적으로 이건 뭐예요? 「사탄」 요건? 「하나님」 사람을 갖다 붙이면 이건 「여자」 요건? 「남자」 남자가 좋아요, 여자가 좋아요? 「남자요, 여자요」 (웃음) 여자가 좋아요? 「예(여자)」 아이구, 남자가 좋아요? 「예(남자)」 (웃음)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는 여성을 중심한 문화형태였다

자, 보라구요. 복귀시대에 있어서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는 여성들을 중심한 문화형태였어요. 여성문화, 그것이 70년간입니다. 여자들 복귀시대는 70년간입니다. 70년간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유린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리는 것은 통하지만 남자가 여자 뺨을 때리는 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때예요. 그때만 여자가 낫지 그다음엔 남자가 낫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때는 어떤 때예요? 「여자시대」 여자시대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여자들을 등골이 나오도록 부려먹는 것입니다. (웃음) 기분 좋지요? 「아니요(여자들)」 그래 가지고 뜻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남자 선생님들 오시옵소서' 하고…. (웃음) 그거 원치 않아요?

지금까지 여자들이 역사를 망쳤습니다. 어느 영웅 열사도 전부 곤두박질하게 한 것이 여자예요, 이 여자. 수많은 역사적인 문제거리에 있어서도 맨 암초가…. 몇 만 톤급의 기선이 태평양을 마음 놓고 항해하는 도상에 있어서도 암초에 부딪치게 되면, 제아무리 위력이 센 함정도 깨져 넘어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인류 복귀역사, 역사발전 도상에 있어서 인간세계의 배를 운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자들은 암초였습니다, 암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가지고 큰 배들을 많이 깨서 잡아먹었습니다. 알겠어요? 그건 역사적인 사실이니 부인 못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지금까지 여자들은 세계 훌륭한 사람을 다 잡아먹었지만,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까지게 벗겨지게 시켜 먹어야지' 그랬다구요. 어때요? 만일 선생님이 못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인간들이 못 그랬으면 여자들이 합동공세해서 하나님을 해방시켜 줘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이 `오냐, 오냐. 여자들아, 참 훌륭하다'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줘야, 여자로서 타락한 해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또, 남자들은 뭘해야 되느냐? 지금 때는 여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개 집에서 가만 보면 사내 자식들이 문제예요. 집에서 제일 사탄이 남자들입니다. 부모가 있고 남자가 없이 딸만 있는 가정은 오순도순 재미있는데, 사내 녀석만 있으면 그저 누이동생을 치고 박고 어머니 속썩이고 그래요. 남자가 사탄이라구요. 남자는 그렇다구요, 언제든지. 그러니만큼 앞으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도 여자니까 어머니 말 잘들어야 됩니다. 누님도 여자니까 누님 말도 잘듣고 여동생 말도 잘들어서 여성들이 환영할 수 있는 남성이 되라는 겁니다. 그렇게 안 되면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자유당 때부터 출세하려고 여자를 앞세우고 그 치마 끝을 붙들고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남자는 어디 취직하려 해도 못 했지만, 여자들은 그저 얼마든지…. 남자는 쓸데없고 여자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개척도 여자들이 해야 됩니다. 천하통일하는 데도 여자들이 해야 됩니다. 여자 다리통이 남자보다 뚱뚱하지요? (웃음) 다리통에 땀을 그저 흘리면서 이 나라 살리겠다고 다니면서…. .

어떤 때는 선생님이 산에 가서 그런 놀음을 했습니다. 불개미 둥지 있지요? 거기서 한 마리 딱 잡아서 이게 남자 불개미인가 여자 불개미인가 하고 보면 필시 남자 불개미는 아니거든요. 가서 뭘 끌어올 때는 여자 불개미도 끌어오고 남자 불개미도 끌어오지만, 도리어 여자 불개미가 부지런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건설시대에 있어서는 삼천만에서 절반 되는 천 오백만의 여성들이 앞서서, 이놈의 남자 사내 녀석들 하면서…. (웃음)

여성이 닦아 놓은 터전을 유린하고, 여성들이 지금까지 수고하고 피땀을 흘려서 쌓아 놓은 터전을 허물어 버리는 사탄이라며 가서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여성들이 한국 가정 가정에, 사회 골짝 골짝에서 나와 활동하면 남자들이 가정에서부터 시시한 놀음을 못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는데 어머니가 가슴을 타고 앉아서 `이놈 사탄아, 항복하겠나 안 하겠나? 돈 보따리 갖다 줄 거야, 안 갖다 줄거야? ' 이럴 수 있는 여성들이 되면 틀림없이 이 나라는 살아날 것입니다. 어때요? 그 말이 틀렸어요? 그렇게 안 됐다면 그렇게만들 수 있게끔 국가적인 운동으로 해야 될 일입니다. 국가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운동, 세계적인 운동만이 아니라 하나님 운동으로 전개시켜야 할 일입니다.

사회에서 제일 문제거리가 되는 것이 10대 청소년

하나님은 욕심이 많아요, 알고 보니.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는 데에서 누굴 동원했느냐하면 남자들이 아니고 여자들이었습니다. 중요할 때, 복귀섭리를 할 때는 반드시 여자들을 통해서 했습니다. 그걸 볼 때 하나님은 인간세계의 인간들보다 한 단계 머리가 높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걸 설명하자면 여러분이 부인할 수 없는 설명을 쭉 할 수 있는 데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알라구요. 선생님 말 믿으면 손해는 안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성들? 「예」 알겠어요, 저 점잖은 아주머니들? 「예」미안합니다. (웃음) 말하다가 형편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겠소? (웃음)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면 물을 많이 먹게 될 텐데….

남자들, 이놈들이 뭣인 줄 알아요, 이놈들? 나이 많은 분들말고 말이예요. 너희 이놈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어느 연령에 타락했어요? 25살? 20대였어요? 30대? 10대였어요. 요즘 틴에이저라 해 가지고 사회에서 제일 문제거리가 10대 녀석들이라 이거예요. 그렇지요? 깡패도 나이 많은 깡패는 오록(오금)을 못 쓰거든. 10대 깡패, 이 깡패는 낮도깨비입니다. (웃음) 이건 천사장을 겸한 깡패입니다. 제일 마사꾼들이예요. 어떻게 이걸 정비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요 사내 자식들, 이 연령은 뭐냐? 옛날 아담이 타락했던 연령이거든요. 17세, 이 연령에서 타락했습니다. 알쏭달쏭하게 아직까지 이성이 비판력을 갖지 못하고 있어서, 누가 속닥속닥하면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때다 이겁니다. 또, 생각은 뭐냐 하면 도깨비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저 한꺼번에 세계를 내 것 만들려고 그러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내 말 안 들으면 교장 선생님 상투끈도 잡아당기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폭발되어 오는 거예요. 이런 때에 놓여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패들입니다. 그걸 전제 조건으로 해 놓고….

이놈들을 잡아다가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골부터 까야 돼요. (웃음) 골부터 까놓고, 그다음엔 내장을 제껴 놓아야 됩니다. 그다음엔 전부 다 꺼내 가지고 뼈다귀를 휘발유로 닦고, 그다음엔 타오르지 않는 불에 슬쩍 구워야 돼요. (웃음) 왜 그러냐? 남자는 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후손들이 어떻게 퍼지느냐 하면 여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자에 의해서 나옵니다. 자녀라는 것은 남자에서부터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중요한 입장에 있는 것이 남자라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누구한테 가 가지고도 대가리를 흔들흔들하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덤벙덤벙합니다. 해와가 따먹으라니 그것도 좋다고, 이러다 타락했다 이거예요. 이럴 때에 이 젊은 애들은 중심을 딱 잡게 어떤 신념을 집어넣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한 패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심정, 절개를 지켜라

여러분은 여기에 몰려왔습니다. 잘못 걸렸단 말이예요. 잘못 걸렸어요.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죽지 않으면 사는 거예요. 힘이 많아서 선생님을 밀어 제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할 때에는 선생님한테 정복당합니다. 그건 뭐 알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죽어도 들어가야 돼요. 들어가면 이건 여러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젊은 녀석들, 눈을 깜박깜박하고 빤질빤질해 가지고 문제라구요. 길가에서 아가씨들 지나가면 가만있고 싶지 않지요? (웃음) 사탄이 문제예요, 사탄이. 혓바닥이 둘이예요. 뱀은 혀가 둘입니다. 본래 자기의 인격을 중심삼고 하나의 말을 해야 할 텐데, 자기가 본래 취해야 할 입장을 떠나 가지고 두 가지 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사탄 본질을 정복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먼저 부름받은 여러분에게는 무슨책임이 있느냐? 그런 놀음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겠으면 방망이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방망이로 다리를 중심삼고 치는 것입니다. 칠 때는 사탄도 칩니다. 사탄세계에 장벽이 많으면 그저 들이까고 벽을 흔들면서 대가리가 깨지든 벽이 깨지든 쳐야 할 때는 쳐야됩니다. 그런 사명을 해야 됩니다.

이 남자 녀석들은 골머리가 아직 안 되어 먹었어요. 전부 해부해서, 수술해서 우리 아가씨들한테 잘 순종하는 남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타락한 여자들 말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도상에 있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또 여자들이 중요시하는 절개를 존중해야 돼요. 남자들도 절개를 지켜야 돼요. 알겠어요? 「예」 알겠나요? 「예」 더우기나 여러분은 타락 전의 아담 해와 연령에 있으니만큼, 여러분이 타락론 배웠으니만큼 여자나 남자나 자기들의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자기 일신이라는 것은 천추만대의 거룩한 하나님의 생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로부터 생명의 줄기가, 가지가 무한히 뻗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흘러가더라도, 만약에 그다음에는 어디…. 한강이 흘러가다 막혀 버리면 되겠어요? 막혀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국보다 드높은 모든 것이 막혀 버리면 한국이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막혀 버리지 않고 뻗어나가 세계에 넘쳐 흐를 수 있는 후손을 남겨야 할, 심정의 핏줄기를 세워 나가기 위한 책임감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만큼 남자의 위신과 남자의 인격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껄떡거리지 말라 이겁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뭐 어떻고…. 통일교회 여기 온 녀석들, 연애편지하는 녀석들 내가 손을 잘라 버릴 거라구. 잘라 버릴 거라구요. 남자의 위신이 돼먹지 않았다구요. 여자가 남자를 따르게 돼 있지 남자가 여자를 따르게 안 돼 있습니다. 첫날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주느냐 하면, 해야 할 여러분에게 위험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 공약으로 지키겠어요? 「예」 지키지 않을 녀석, 일어서라구! 내가 차버릴 테니까.

앞으로 여러분이 하늘 앞에 선 입장에 있어서는 자기 개인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혈통을 존중시해야 돼요. 내 개인을 존중하고 혈통을 존중시하며 연연히 선조로부터 거룩히 더럽히지 않은 핏줄을 받은 것을 영원히 계승하는, 혈통을 존중시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절개를 지켜야 돼요. 하나님이 절개를 안 지켰다면 여러분이 믿을 수 있어요? 만약에 하나님이 본연의 해와를 다시 찾아 가지고 사탄세계에 가서 `야, 너 창조이상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나하고 상대하자' 이러면 되겠어요? 핏줄을 존중시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심정, 우리가 사랑했다는 심정, 하나님을 위하여 사랑했다는 심정, 첫심정을 깨끗히 보존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앞에 제물이 돼요. 알겠어요? 「예」 제물이란 그런 것이예요. 동네 서낭당 같은 데서 제사할 때 봤지요? 소 새끼를 제물로 드리게 될 때 암소만 낳은 소한테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암컷도 낳고 수컷도 낳는 소에게서 그 새깨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갖추어야 돼요. 그리고 흠점이 없고 순결하고 말이예요. 지방이면 그 지방성을 대표할 수 있는, 그래도 몇 년 동안 그 지방에 있으면서 먹고 자란 소라야 됩니다. 원래 그래요. 그런 역사성을 띠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갖춘 전부가, 천품이나 모든 것이 순해야 됩니다. 세상에 사탄한테 제물드릴 때 그런 것을 표준하거는, 여러분이야 하늘 앞에 승리적인 하나의 제물로서, 또 인류의 역사적인 결실로서 하늘 앞에 최후에 드려질 수 있는 하나의 산제물로 나가야 하는건…. 그런 입장에 있어서 자기 개체로부터 혈통 심정이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런 이야기 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겠는데, 이제부터는 간단히 이야기하겠어요.

과거·현재·미래의 소망의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 되라

여러분이 여기에 왔습니다. 여기에 왔어요. 어디 왔어요? 대답을 해야지요? 왔지요? 「예」 여러분이 지방에 있을 때는 `가고 싶다. 본부에 한번 가 보고 싶다' 그랬을 거예요. 내가 통일교회 나온 지 몇 년 됐는데, 본부에 한번도 못 가 보고 선생님도 못 봤는데 한번 가 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도 요놈은 요렇게, 그놈은 고렇게, 고놈은 또 그렇게, 고놈은…. 수백 명이 전부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지요? 「예」 수백 명이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생각이라는 두 글자 위에는 천태만상으로 복잡합니다. 그 배후를 한번 쭉 잡아당겨보면, 여러분이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여러분이 비로소 본부에 왔습니다. 본부에 와서 여러분은 `우리 본부가 한국에서 제일 큰 예배당이어서 뭇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을는지 몰라요. 여기 본부에 와 보니 생각하던 거와 다를 겁니다. 그렇지요? 「예」 달라야 돼요. 또 여기 왔으니 선생님한테 좋은말씀 들을 줄 알았는 데, 좋은 말씀은 하지 않고 때로 욕도 하고 막 때리고 그런다 이거예요. 심정이 있고 믿을 만하고 높일 만하고 만질 만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할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 와 앉아 있습니다. 왔다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올라가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늘로 올라가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오긴 왔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하고 싸우겠어요? 이 시간에는 내 말을 듣고 있어요. 또 왔으면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어떻게 돌아가느냐? 그 방향은 천태만상입니다. 그렇지요? 또, 선생님이 말씀을 하는데, 말씀 듣는 데에 있어서도 천태만상으로 듣습니다. 여러분이 오기는 왔는데, 여러분 중에는 참 아니게 온 사람도 있고, 참 같게 하고 온 사람도 있고, 참이라 할 수있는 입장에서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면 그건 둘이예요, 하나예요? 둘이예요, 하나예요? 대답해 봐요. 둘이 있을 수 있어요? 한 사람입니다. 섭섭하지요? 수백 명이 왔지만, 오기는 많은 사람이 온 것은 같은데 진짜 온 사람은 이 가운데서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섭섭하지요? 섭섭해도 할 수 없어요.

말씀을 듣는 데도 수많은 사람이 듣고 있습니다. 노랑 저고리 빨강 저고리 알록달록 제멋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모양대로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다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본의를…. 하나님이 배후에서 염려하면서 선생님을 세워 말씀하라는 명령이 있기에, 이 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선생님이 말씀하는데, 여기에 수백 사람이 모여 앉아 있지만 참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됩니다. 몇 사람? 「한 사람」 또 왔다가 돌아가야 할 여러분의 입장이요 필시 가야 할 운명이지만, 가는 데 있어서 걸음걸이가 여러 종류의 모양이 있는데, 참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 「한사람」

젊은 녀석들의 마음은 욕망이 등등합니다. 백두산도 자기 주머니에 넣겠다고 자신하고, 태평양 바다물 한 잔의 물과 같이 마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젊은 사나이 혹은 젊은 아낙네가 품는 바입니다. 여러분 청소년 시대에 품어야 할 기백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할 때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합니다. 하나의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그런다는 겁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니? 하면 속으로는 다 그럴 거예요. 인간들의 욕망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까 말한 과거도 하나요, 현재도 하나요, 가야 할 입장에서도 하나입니다. 하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 그런 인연의 세계에 있어서 필시 부정할 수 없는 소망의 목표로 등장한다는 것을 시인하겠지요? 「예」

그러면 말씀을 하는 데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해야 되느냐? 문제입니다. `당신은 선생 입장에서 그런 인연의 입장의 책임을 졌다 할진대는 , 우리들을 모아 놓고 어떤 입장에서 말씀을 하시오? ' 하고 여러분이 묻게 될 때, 선생님이 '아무렇게나 말씀하지요' 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잘라 버려도 돼요. 원수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가든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람을 중심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올 때도 이런 사람이요, 현재도 그런 사람이요, 가야 할 사람도 그런 사람, 그러한 사람을 대해 말씀해야 할 것이 지도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만약에 환경이 그렇게 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원수가 되더라도 때려서라도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가르치는 스승의 사명이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둬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창조주가 고대하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라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범위를 넓혀서, 나 하나의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동으로 가면 내 한 개체에 있어서는 동에 서는 사람이 되지만, 뒤를 돌아 보면 거기에는 민족이 있고 더 돌아보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원서부터 세계 30억 인류가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연된 역사무대를 기반으로 하여, 이 지구성을 기반으로 하여 무한한 세계를 볼 때에, 아득한 어떤 존재세계까지 인간과의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인식되는 모든 존재세계에 있어서 그것이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어떤 공의와 공전, 어떤 궤도적인 법도를 통하여 하나의 전체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적인 운세의 궤도에서 움직이는 존재라 할진대는, 그 존재와 나 하나가 동격에 선 그 자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천갈피 만갈피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동으로 가면 동이요, 서로 가면 서요, 남으로 가면 남이요, 북으로가면 북이요, 중앙이면 중앙…. 내가 어디에 정지하게 될 때는 내 자체가 정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우기나 젊은 청소년시대에 있어서는 `나는 배달민족이요, 삼천리 반도에서 삼천만의 일인으로 태어났고 혹은 백만 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대표한 나다. 내가 선 곳은 피가 동하고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선 피가 약동한다. 내 살과 피는 민족의 살이요 피다. 역사적인 성현 현철이 남긴 바의 소망의 피가 끓는다'고 호소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내 손으로 들고 당기게 되면 삼천만 민족과 세계 인류가 움직여 들어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천주의 모든 존재들까지도 움직여 나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신념으로 어떤 목표를 향하여 가는 사나이와 그렇지 못한 사나이와 비교하게 될 때, 어떤 존재를 역사가 고대하고 시대가 고대하고 미래가 고대할 것이냐? 또 삼천만이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인가? 30억 인류는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는 어떤 사람을 고대할 것이냐? 그것은 누구에게 맡겨도 자명한 답이 나옵니다. 누구를 물론하고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고대할 것입니다. 이런 가치적 기준은 아무리 철부지한 삼척동자라도 답을 내는 데서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의 젊은이들, 여러분은 자칭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역사적인 결실이다'라고 합니다. 과연 그러냐? 문제입니다. 과연 그러냐? 갑이라는 사람을 두고 `넌 뭘하느냐?' 하면 `나는 산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면, `이렇게 살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개인을 두고 대다수의 사람에게 `너는 어떻게 지내왔느냐' 하면 `밥을 먹고 살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사느냐? 잘 사느냐, 못 사느냐? ' 할 때 대다수의 사람은 `집 칸이나 있고 밭뙈기나 있고 거느린 바의 생활환경에 있어서 지장을 느끼지 않고 산다'는 견지에서 대답을 합니다.

더 큰 것을 위해 먹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

살기는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인간들은 어떻게 사느냐? 살기는 사는데, 생활을 통한 생활은 영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사는데는 그렇게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보다도 한 단계 높혀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이냐? 밥도 먹기는 같이 먹고 사는데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고 생각은 없이 사는 사람이 있고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각을 가지고 입을 벌려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면서, 자기의 신념을 전파하면서, 말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뼈다귀가 부러지고 자기 일신이, 사지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신념과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의 환경도 개의치 않고 용사답게 싸우는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이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런 생활적 무대에 있어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또 자기 신념을 세워서 말씀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말씀을 대신하여 실천하고 전부 통합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최고의 욕망의 괴수요, 모든 소망과 욕망의 특권적인 실체라고 할진대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어요? 밥도 먹고 살고, 생활도 하고 살고, 말도 하고 살고, 행동도 하고 살고 하는 이런 생활을 지금 하고 있지요? 「예」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사는 그 생활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물어 봅니다.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자기 개체를 위해 살았다면 이는 역사적인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생각했느냐? 개인을 위해 생각했다면 이것 역시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누구를 위해 말했느냐? 네 자신을 위해 말했느냐? 누구를 위해 실천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대답이 아까 말한 개인을 위해서였다면….

세계적인 가치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자기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사는 사람과, 자기 개인 위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는 걸 볼 때,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족이 요구하고 세계 인류가 요구하고 하늘땅이 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여러분이 생각할 때에는 누구인지 한번 대답해 봐요. 어떤 사람이예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왔어요? 과연 지금까지, 이 시대의 연령까지 부모 슬하에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겁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사느냐? 내가 말하는 말은 어떻게 돼서 하고 있는 말이냐? 내가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되어 움직이느냐? 이것이 내 개인을 위함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내 개인을 위함이냐, 가정을 위함이냐, 민족을 위함이냐, 국가를 위함이냐, 세계를 위함이냐, 하늘땅을 위함이냐? 이걸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어때요?

가정을 위하는 사람과 민족을 위하는 사람, 둘 중에서 하나를 취하라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취하겠어요? 더 큰 것을 위해, 민족을 위해 그렇게 살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어느 민족, 어떤 사람, 사람이라는 사람 종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 크기에있어서 개인을 위하는 것보다도 가정을 위해 개일을 버리고 가정을 찾아야 되겠고, 가정을 위한 것과 사회를 위하는 데에 있어서도 가정을 버리고 사회를 찾아야 되겠고, 사회와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국가를 위해 사회를 버려야 되겠고, 세계를 위하여 국가도 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 사람과 모든 것을 취하게 될 때 묵묵히 세계를 위하는 사람을 취하고 국가를 위하는 사람은 버려야 됩니다. 그것이 인생 본연의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 필연적인 요건이예요.

하나님은 생활을 통해 말씀과 인격을 실천하시는 분

오늘날 인류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로 끌어갈 것이냐? 인간이 소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는 존재는 어떤 자리에 머물고, 어떤 자리에서 살고, 어떤 사회에서 살다가 어떤 자리에서 쓰러지게 될 것이냐? 내 인생이라는 자체가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주관은 모를망정, 소망의 그 개체 목표는 모를망정 아득히나마 내 양심적인 인식을 통하여서, 혹은 자극을 통하여, 혹은 충동을 통하여 느껴지는 소망의 입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그것이 뭐냐하면 더 큰 곳을 가까이 하고, 더 큰 곳에 내가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요? 「예」 어르신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3천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3천만분의 1, 이것을 넘어서 세계 인류, 수많은 국가를 대표하고 한 민족을 대표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30억 지상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의 일원으로 등장한 것을 볼 때, 오늘날 세계 역사는 어떤 힘이 있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의 세계, 인식적인 과정을 통하여 목적의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가 계시다고 한다면, 그 절대자는 기필코 어떤 사람을 만들고 어떤 세계를 만들고 요구할 것이냐 이거예요. 여러분 자신들도, 타락한 종족인 무리들도 세계적인 인물을, 더 나아가 하늘땅을 위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거예요. 나도 그걸 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떤 사람을 요구할 것이냐?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를 , 천지를 자기 것, 천지를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그럴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기준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사상가라면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하나님은 생활환경에 있어서 어떤 분이냐? 만민이 본을 받을 수 있는 생활원칙을 가진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는 인간이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까지 도달할 수 없는, 인생의 최고 이상적인 소망을 생각하고 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 그러한 생활과 그러한 양심기준을 통하여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말씀을 하시면서 사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그러한 말씀과 인격을 생활을 통하여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실천하는 무대는 어디냐? 하늘과 땅입니다. 알겠어요? 「예」 무대가 어디라구요? 「하늘과 땅」 천지가 무대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하늘땅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 생활적인 절대자요, 양심생활에 있어서 절대자요, 말씀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자요,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자입니다. 이러해야 할 분이 우리 인류가 동경하는 절대자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되었는 고? 하나님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도 인간의 것입니다. 누구의 것이 됐어요? 이거 다 인간들이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역사 발전상을 볼 때 유물사관이라는 것은 생활적인 것입니다. 경제사관이예요. 물질을 위주로 한, 물질을 중심삼은 가치적인 세계를 전개시키기 위한 작전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란 뭐냐? 사람을 위주한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것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물질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의 세계로…. 오늘날 유물론자들은 사람을 찾아 나가야 돼요. 경제적인 모든 생산력을 자랑할 수 있는 계획 경제를 세계적으로 완전히 실천했다 할진대는, 그다음에는 뭘 해야 되느냐? 그것으로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참사람을 찾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진영이 한 단계 앞 섭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기준입니다. 물질에서 출발하여 사람으로….

여기에 있어서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물질로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물질의 영광을 중심삼고 세계를 호령하려 하면 망합니다. 오늘 이 민주진영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신의 영역을 찾아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영역에 하나의 인간 대표를 보내기 위한 것이 재림사상입니다.

민주진영의 사람권, 이런 사정권 내에서 엉클어져 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새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주진영에 있는 종교인들은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됩니다. 한 단계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짓기위한 것이 오늘날 지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중세로부터 역사 발전상을 헤아려 볼 때, 봉건사상을 중심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교황청을 중심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교황청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파면 파, 교파를 중심삼은 하나님으로서 안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을 들이 때린 것입니다. 때려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나 하나님은 세계적인 종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세계 인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까지도 그 품에 둬야 한다, 이래 가지고 갈라 떼어 발전시켜 나오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16세기 이후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재발견 시대로서, 인간이 제아무리 허덕여도 인간의 모든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재발견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천지의 주인 되시는 어떤주체적인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가 소망하는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실천하는 , 인간세상에 어느 누가 당치 못할 최고의 우주적인 내용을 가진 주의사상시대로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봉건시대 봉건사회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교황청권, 카톨릭권 내에 머문 그런 하나님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터쳐라! 그래서 그걸 째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민주진영권 내에만 있는 하나님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늘땅의 하나님입니다. 천지간에 지으신 모든 만물은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입장에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개인주의 시대로부터 가정주의 시대, 씨족주의 시대, 민족주의 시대, 국가주의시대를 거쳐 가지고 지금 세계주의 사상주의 시대까지 나왔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이냐? 세계는 두 갈래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이렇게 나와요.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씨족관념을 버려라

그러면 어찌하여 세계는 이렇게 발전하게 되느냐? 기필코 그렇게 되어야 돼요. 왜 그렇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이 세계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내 아들딸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 세계를 대신하여 세울 수 있는 한 사람, 이런 사람을 찾기 위한 섭리의 뜻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이 기필코 수고하여 6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늘날 이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뭐냐? 여러분이 아까 말하던 세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씨족관념에 매여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탈피할 것이냐? 내 전통관념으로 대하지 말라 이거예요. 자유해방을 노래해야 됩니다. 인간의 최고 양심기준을 중심삼은 최후의 해방을 주장해야 할 때가 왔나니, 그 주장을 부르짖어야 할 하나의 해방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역사를 했는데, 가나안 7족을 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모순이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거 반문해야 돼요. 어찌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을 멸하라고 하나님이 했느냐 이거예요. 세계적인 하나님이라면 가나안7족을 전부 자기 수하에 몰아넣고 멸하지 않게 하고 다 품고 나와야 되는데 왜 멸하게 했느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있어서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무대를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당면한 과업이요 부과된 과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가나안 7족은 민족 자체 발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발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환영하는 가나안 7족이었다면 왜 망하겠어요? 복받지요. 그러나 민족적 발판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가는 데에 있어서 원수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원수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조의 흐름에 따라서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세워질 때에 가정을 위주하면 그 가정은 들이맞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하는 사조에 와서는 국가 위주의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천적인 사조의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일개 국가, 국수적인 사상을 갖고 나가다가는 들이 맞습니다. 더 큰 것을 세우기 위하여 작은 것을 제거하면서, 사탄을 그런 입장에 세워 놓고 때리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투쟁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의 원수

그럼 오늘날 끝날에 있어서 이런 논법이 일리가 있다 할 때, 앞으로 인간들은 어떻게 심판의 난관을 넘어갈 수 있느냐? 이 심판의 관문을 터뜨리고 넘어갈 수 있느냐? 크나큰 사상적인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하늘도 내 것이요, 땅도 내 것이요, 인류도 내 것이요, 하나님도 내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지고 거기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본성의 심정을 닦아야 됩니다. 그런 답변을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도(道)라는 것은 무엇이냐? 도의 목적은 뭐냐? 쩨쩨한 어떤 종파의 괴수를 만들기 위한 것이 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도의 목적은 우주사적인 세계관을 통하는 것입니다. 창조사적인 이념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와 인연맺어 가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사실적인 평면적인 세계에 기틀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의 세계의 목적입니다. 도의 길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반이 닦아지지 않았으니 하늘이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오는 데에 있어서 개인기준을 중심삼고 닦지 못하였고, 가정기준을 중심삼고 닦지 못하였고, 민족기준을 중심삼고도 닦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고생고생하면서 세계적인 사조에 휩쓸려 종말시대로 끌려 나오면서 세계적인 운세시대를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말이 어려운데 이해하겠어요? 설명하려면 시간이 없어요.

땅 위의 인간들에 있어서 지금 때는 사상주의 시대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위주한 사상주의시대, 지금 20세기에 있어서 해산의 신음을 하는, 진통을 겪는 시대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고비 넘어 사상주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을 회복한다는 문예부흥…. 현대 문명이 문예부흥을 중심삼고 발전했다 하지만, 문예부흥 그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심정부흥을 논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라는 시대가 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아 허덕이는 시대는 지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활권 내에 들어가야 돼요.

이 천지는 우리의 것입니다. 이 국경은 원수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볼 때는 이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편으로 볼 때 이 세계는 내 것입니다. 누가 금을 그었느냐? 국경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의 원수입니다. 수많은 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인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편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부터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종말에 남아져야 할 인류, 소망의 인류, 소망의 인간의 가치는 어떤 것이냐? 책상 위에 있는 이 컵은 오늘 선생님이 물을 먹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만, 이 컵은 누구의 것이예요? 통일교회 것이 아닙니다. 이건 천지의 것, 인류의 것입니다. 만물도 그러한 사조의 흐름에, 무한한 가치의 반열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예」 내 지갑에 있는 한푼의 돈도 누구의 것? 한국의 것, 물론 한국 것이지만 인연을 두고 볼 때 최후에 남아질 한 때에 있어서는 인류의 것입니다, 인류의 것!

이렇게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물을 유린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이 그거예요. 이것을 유린하는 것이 악당입니다. 이것을 유린하는 것은 심판을 받아야 할 무리예요. 그럼, 산에 가서 하나의 나무떨기를 바라볼 때에, 이것이 누구의 것? 아무개 김씨 산이리고 김씨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누구의 것? 본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통일교회 젊은 청소년들에게 무슨 사상을 심어 줄 것이냐? '세계는 내 것, 우리의 것!' 이런 사상을 먼저 갖고 세계의 선두에 서게 해 가지고 내것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말하고,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 되게 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알겠어요? 「예」

인류가 소망하는 본연의 나를 찾아야

여러분은 지금까지 인류를 몰랐습니다. 역사를 몰랐으니 인류를 몰랐고, 인류를 몰랐으니 자기를, 즉 인생을 몰랐어요. 내가 아무개 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아들로 태어나 뭘할 것이냐? 그걸 확실히 모릅니다. 밥 조각이나 먹다 쓰러져 공동묘지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무가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거룩, 거룩, 만천하가 소망한, 피조만물이 바란 소망의 실체요, 소망의 등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일국의 대통령 아들이 남으로부터 '저것 저것…'하는 소리 들으면 되겠어요? 인간이 자기의 위치와 위신을 단속해야 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냐? 이 우주사적인 존재로서, 최후의 인생행로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맞아 천지의 만우주를, 만유의 존재물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왕자입니다. 이러한 존재들이 떨어져 가지고 밥 한 덩이에 팔려가요? 어느 무가치한 악당 무리한테 농락을 당해요? 그거 용허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복귀의 해명을 하고 복귀의 사명을 감당하여 뭘할 것이냐?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본연의 나는 어디 있느뇨? 나를 찾기 위해 헤매느라고, 본연의 내 자신을 알아 가지고 거기에 인연맺어 살려는 소망에서 허덕이느라고…. 역사적인 기원과 통하여 있고, 역사적인 기원에만 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천지의 법도와 연결돼 있고, 현실과 연결돼 있고, 앞으로 오는 미래와 연결돼 있는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인류의 소망의 나입니다. 삼천만의 소망의 나입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나입니다. 아닌 영계에 가 있는 수십 억의 우리 선조들이 소망하는 나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나임을 해명하여 찾아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알겠어요? 「예」 소망의 나입니다.

소망의 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대한민국 이 땅에서 나서 죽을 것이 아니라 세계는 내 것, 하늘은 내 것,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은 내 아버지라는 거예요, 끝까지. 여기까지 가야 할 인생 본연의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어떤 자리에 설 것이뇨? 한국을 주고도 바꿀 수없는 나, 미국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더 나아가서 극동을 떼어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나, 더 나아가서는 타락한 30억 인류를 줘도 바꿀 수 없는 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올 때도 하나요, 현재도 하나요, 갈 때도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 선생님 앞에 그런 하나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앞에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나'가 돼야 합니다.

그 `나'는 어디에 가 있을 것인고? 그 '나'가 그리워요. 그 '나'가 그립습니다. 그 '나'가 바라보는 시야의 소유권이 있다 할진대는 천하는 내 것입니다. 그 '나'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이 지구입니다. 그 '나'가 간섭하고 심정을 기울여야 할 무대도 이 지구만이 아니라 천상세계까지입니다. 이 광대무변한 대우주를 인연하여 친구로 삼고 생활적인 무대로 해야 할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죄악의 골수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탄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지리 탄식해야 돼요. 배때기를 들이째야 돼요. 목을 매고 죽어야 돼요. 한강에 빠져 죽어야지.

나는 나를 찾아 헤매노라! 나는 나를 찾아가노라! 나는 어떤 나냐? 하나님이 부르는 나입니다. 그 나는 어떤 나냐? 민족이 부르는 나, 이 끝날의 역사가, 하나의 세계가 부르는 나, 그 나를 찾아서 나는 가노라! 이러한 결의와 이러한 각오를 해 가지고 하늘 앞에 쌍수를 들어 맹세할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이 이 땅 위에 십만만 되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민족주의 어디 선진국가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것이요,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의 백성을 그리워하는 것이요, 그걸 넘어 소망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지은 새로운 문화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이 되어야 됩니다.

세계는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국가의 세계

너는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 너는 어떤 존재로서 살려고 했느냐? 김아무개는 어디서 살려고 하느냐? 우리가 사는 곳은 좁은 무대입니다. 인연의 세계는 실제와 달라요. 이 원칙에서 벗어난 사람은 깨져 나갑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는 민족감정을 초월해야 됩니다. 흑인도 형제입니다. 백인도 형제예요. 잘난 것 없어요. 하나님 앞에서는 잘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났다는 녀석들은….

예를 들어 말하면 백만장자 거부의 아버지가 있는 데 아들딸 10남매를 가졌다 하자구요. 그 아들딸 중에는 잘난 놈도 있어요. 사회적인 명망도 그렇거니와 갖춘 바의 인품도 좋습니다. 안팎으로 결점을 잡을 수 없는 늠름한 존재입니다. 어디에 나가더라도 부모의 자랑이요, 가정에 있어서도 자랑이요, 사회 국가 혹은 체제를 세울 수 있는 어떤 무대에서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 반면에 천치 바보 아들이 있어요. 지지리 못났고 곰배팔이고 무슨 병신 사촌 뒤집어쓴 아들이 있다 합시다. 부모가 보게될 때 `너는 사회적인 활동을 잘하니 불쌍한 형보다 얼마나 낫느냐? 네 가치는 만점이요, 불쌍한 병신 자식은 영점이야' 이러겠어요? 심정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정으로 볼 때는 너는 만점 될 수 있고 영점 될 수 있지만, 심정으로 볼 때는 `너는 만점이요, 너는 영점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오늘날 선진국가들이 해야 할 것은, 앞으로 선진국가가 정책을 세워 나가는 데에 있어서 취해야 할 길은, 민주진영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심정적인 세계가 찾아오는 종말시대가 되기 때문에, 자기의 문화적인 기틀을 다 뒤에다 놓고 아프리카의 불쌍한 민족들을 위해 가야합니다. 불쌍한 생활을 하는 처지에 떨어진 민족에게 가서 `문화의 주체야 잘 있거라, 몇 년 후에 만나자'고 하고 자기의 귀중한 보물들을 나누어 주고, 그것도 안 되거든 자기 피살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돼요. 이렇게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형님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주권은 깨져 나갑니다. 두고 봐요, 안 그런가?

사조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미국의 평화군이니 하는 것은 말로 한 것으로 실체적으로 실천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천지운세를 사람이 받들어야지 말이 천지운세를 받드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조가 오늘 통일교회 교인들에 의해…. 공산당이 40년 기간에 이세계를 이만큼 풍미할 수 있게 된 것은 뭐냐? 하늘이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는 시대로 오기 때문에, 그들이 가짜지만 그런 형으로 발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이 그 이상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마리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몰던 것을 뒤로 하고 자기의 모든 정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진영에서 그런 국가가 나온다면 그 국가는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찾아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문화혜택을 입고 풍류를 즐기며 고래등 같은 집에서 능라의를 입고 사는 잘 사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피눈물 어린 심정을 가진 사람…. 같은 입장에 있더라도, 잘사는 사람이 열만한 심정을 갖고 있고, 못사는 사람이 열만한 심정을 갖고 있더라도 잘사는 사람을 먼저 찾는 하나님이라면,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약소민족, 후진국가를 먼저 찾습니다. 배급을 먼저 탄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물질적인 배급시대, 인간적인 배급시대, 즉 주의사상시대를 거쳐왔습니다. 물질과 인간배급시대, 그다음에는 심정적인 배급시대입니다. 우리는 심정적인 배급시대를 준비하자는 거예요. 이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와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서는 자식의 위신과 명분을 다 팔아서라도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됩니다. 그래야 상속을 받는 거예요. 백만장자의 아들로서 자기가 아무리 잘났고 좌우 풍신이 좋고 외모를 갖춰 당당하다 할지라도 심정을 갖지 못하면 상속의 인연을 못 가집니다. 사정의 인연을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속의 인연은 못 가집니다. 천지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은 인류 앞에 상속하고자 하는데, 먼저는 물질적인 축복시대를 거쳐 그다음엔 주의 사상의 인간적인 축복시대를…. 그래서 미국이 그거예요. 인간을 좋아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다 쓰러진 자기 형제를 찾아 나오는 놀음이 지금까지 신앙을 중심삼은 종교인들이 가는 걸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해서 뭘할 것이뇨? 나중에 심정의 상속, 모든 위업을 상속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해야 되느냐? 아무리 인기가 있고, 아무리 가진 바가 많다 하더라도 불쌍한 동생을 품고 눈물지어 줄 수 있는 부모의 심정에 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지에서 미국도 전부 다 후진국을 후원해 줘야 합니다. 사실은 내가 다 터뜨려 버리고…. 이제 터뜨리지 못하면 어느때에 총칼 들고 터뜨린다는 거예요. 두고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먼저 잘살았던 그들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붙들고 주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을 대신하여 세계를 향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문화적인 사절, 문화적인 천사장이 되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때는 형제국가시대입니다. 형제시대예요. 전부가 통일이예요. 케네디 대통령도,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도 주권을 대신한 형제예요. 네가 뭐냐 이거예요. 이건 밀어 제낄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꼼짝못한다구요. 일대일에 있어서 형제시대, 전부 형제국가시대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 나라, 약소국가가 전부 해방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분열적인 기준에 서 있었지만, 이제 때는 민족적인 관념을 초월하여 하늘적으로 볼 때 형제사회국가시대로 들어온다 이거예요, 형제사회국가.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UN기구 아래 형제입니다. 그런데 형제가 싸움을 하는 거예요. 가인과 아벨이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평화적인 형제만 되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는 형제의 동등한 입장에 있으니 미국이 가진 재산을…. 그 재산을 자기들이 만들었어요? 부모에게서 상속받았으니 그걸 나눠 주자는 것입니다. 나눠 주는 데는 껍데기를 나눠 줘서는 안 돼요. 이걸 주면 줄수록 화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때는 하늘을 위주하는 심정의 세계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찾는 사람은 세계와 더불어 생활하는 사람

그러면 하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늘은 어떤 사람을 찾을 것이냐? `과연 나는 너를 세워 주고 싶노라!' 이렇게 하늘은 말할 것입니다. `야, 아무개야 너를 통하여 주고 싶다'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야, 이 녀석아 너를 세워서 주고 싶노라' 할 때, 무엇을 주고 싶으시냐? 어디에 주고 싶으시냐? 먼저 누구한테 주고 싶으냐? 부자한테 주고 싶노라, 이게 아닙니다. 불쌍한 사람한테 주고 싶은 겁니다. 불쌍한 사람 가운데는 도를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도를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산비탈 토굴에 들어가 먹을 것을 못 먹으면서, 자기의 절개를 더럽힐까봐 사회에 나가 빵 한조각도 마음대로 못 사 먹습니다. 불쌍한 사람, 너를 불러서 그에게 주고 싶다 이겁니다. 그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들이 고맙다고 할 때에, `나는 이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에, 그다음은 그보다 더한 사람한테 주고 싶어합니다. 그보다 또 위에, 또 위에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나는 안 줘도 좋으니 딴 사람을 도와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다음에 또…. 그래 가지고 나중엔 끝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운세시대가 오는 걸 바라볼 때에, 오늘날 사방에 이런 형태로 전개될 것이요, 역사적인 사조가 그런 형태로 종결된다는 것을 우리가 예측할진대는 , 오늘날 우리 통일성도들을 어떤 방향으로 지도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될 것이냐? `세계는 내 세계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고, 새로운 세계를 계승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결론이 그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누구와 살았느냐? 나와 더불어 살았고 기껏해야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본질적인 욕구에 있어서 그 방향성을 비판하고 부정해 봤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번 총회에 몰아넣어 어떤 사람을 만들 것이냐? 이 삼천리 반도 환경을 통해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 다른 것 아닙니다. 세계와 더불어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대신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밥을 한 술 먹는 데에 있어서도 `너 밥아, 어디서 왔니? ' 하고 생각해 보라구요. 쌀 알맹이는 하나님의 손길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어요. 역사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 의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유물이예요, 유물. 이 낮도깨비 같은 것들, 그저 벌커덕 벌커덕 마구 먹지요? `밥님 황공하옵니다. 상감마마입니다' 해야 된다구요. 만물은 해원의 여건을 가지고 탄식하고 있는 데 인간은 어때요? 몰랐다구요. 만물보다 못합니다, 이 돼먹지 못한 것들.

하나님은 부릅니다. 하나님은 부르나니, 어떤 사람이냐? 아까 말한 하나로 남아질 사람, 천지간에 하나로 남아질 수 있는 나 찾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열 자식이 있다 해도 부모 앞에선 전부가 하나입니다. 그렇지요? 심정 앞에서는 열 자식도 하나입니다. 아들을 중심삼고 전부 다 내 부모예요. 그런 하나의 내가 돼야 합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과거에도 내가 필요했고 현재도 내가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나예요. 알겠어요? 「예」 맨 처음에 말했지만, 여러분이 올 때의 인연도 복잡했고 그랬지만 그중의 한 사람, 그 한 사람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여기서부터 끌어 올라가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서 이만큼 끌어 올라가고 삼천만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를 초월하여 천주까지 가고 하나님 앞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적인 심정기반을 중심삼은 세계

오늘 온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와야 되느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와야 돼요. 또,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을 들어야 되느냐 하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씀을 들어야 돼요.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는 사람도 어떤 사람을 만들기 위해 말씀을 해야 되느냐 하면,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해야 합니다. 하나입니다. 무엇에 하나밖에 없느냐 ? 심정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리 부모가 천만의 아들딸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심정에 대해서는 평등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오는 그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내가 부모를 사랑하듯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세계, 형제를 사랑하듯이 세계 인류를 사랑하는 세계, 부부가 사랑하듯이 자기 동년배 사람을 사랑하는 세계입니다. 가정적인 심정 기반을 중심삼은 대우주적인 인격관을 중심삼아 사는 세계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정이 전체화한 사회적 형태가 천국사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천국이 뭔지? 「예」 천국이 어떤 것이라고 하면 막연하잖아요? 천국은 내 가정을 확대한 세계, 내 형제를 확대한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돈이 있어서 미국 땅에서 살더라도, 불쌍한 미국사람이 있으면 자기 민족이 불쌍한 것같이, 자기 형제가 불쌍한 것같이 여기며 그런 심정으로 도와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러니까 만민의 하나님이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만민의 하나님이예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될 자신 있어요? 「예」 되겠어요? 「예」 될래요, 안 될래요? 「되겠습니다」 이래도 안 들을 거 아녜요? 없다고 안듣는 녀석은 사탄입니다. 자기에게 묻지 않는다고 대답을 안 하는 녀석은 사탄편입니다. 선생님이 말할 때는 당장에 천지를 뒤집어엎을 것 같은데 문 밖에 나가면…. 그래서 되겠어요? 될 자신 있어요? 「예」 자신 있어요? 「예」 더 크게 대답하라구요.「예!」 본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선 안 돼요. 있으나 없으나…. 천하는 내가 졸더라도 돕니다. 내가 정신차려도 돌아요. 내가 없더라도 돌아야 할 천지운세이어늘 그 운세 앞에, 있다고 변명하고 없다고 대답을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없으면 없을수록… .

부모가 없을 때 가정을 잘 지키고 더 염려하는 자식은 부모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신앙자들은 그렇게 해야 돼요. 이 자리에 선생님이 이렇게 입고 나왔지만, 앞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뒷동산의 나뭇꾼이 되어 볼 겁니다. 나뭇꾼 모양으로 해 가지고 누구 꽁무니를 뒤따라 가 통일교회 청년이거든 돼먹지 않았다면 엎어놓고 밟아 죽일 거예요. 선생님은 곧잘 그런 놀음 합니다. 전부가 보는 거예요.

우리의 소망을 보자구요. 소망인 내가 나를 바라보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소망의 가정이 있고 소망의 종족이 있고, 소망의 민족이 있고, 소망의 국가가 있고, 소망의 민족이 있고, 소망의 국가가 있고, 소망의 세계가있고, 소망의 천주가 있고, 소망의 하나님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소망의 세계에는 억천만 천천만 성도들이, 수천 년 동안의 영인들이 속해 있습니다. 그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망합니다. 그놈의 나라는 언제나 투쟁해요. 알겠어요? 「예」 안 보일수록 책임이 더 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 나가더라도 하나도 돌봐 주지 않습니다. 돌봐 주지 않는데도 부모의 심정을 다하여 돌봐 준 이상으로 충성을 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그런 것이 있어요. 여러분 자신있어요? 「예」 내 돈 쓰면서… . 내 세계를 만드는데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해요? 통일교회에 억천만금의 금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난 그거 싫습니다. 저건 세계 사람에게 주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있게 되면 `난 필요 없소. 세계 불쌍한 형제들에게 어서 갖다 주시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나는 이것으로 만족하니 어서 세계를 위하는 데에 주소' 이럴 수 있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다 주고 나왔습니다. 제일 사랑하는 종 새끼도 이 땅위의 인간을 위해서 줬습니다. 하나님은 주고 나옵니다. 주는데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는 게 아닙니다. 형제끼리도 동생이 달라면 형 눈에 번개불이 붙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 그건 거짓입니다. 그건 큰사람이 못 돼요. 정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아이들 하는 것 보면 벌써 압니다. 좋은 것을 떡 갖다 놓으면 집어 가는데, `그거 안 된다. 형 것이야' 하면 `그래요?' 하면서 슬쩍 두는 아이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돼먹지 않는 아이는 엄마든 누구든 불러 가지고 자기 달라고 그럽니다. 여기에도 그런 것들이 많을 거라구요.

혁명은 정의를 위해 투쟁했을 때 남아지는 것

선생님도 한때 그랬던 것이 생각나요. 한번 울게 되면 사흘 나흘을 울었어요. (웃음) 정말이예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말이예요. 한대 맞으면 항복을 받아야 돼요.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왜 그랬는가 모르겠어요. 너무 울어 다리 가죽이 벗겨져서 피가 흘러 방안이 피투성이가 될 때도 있었어요. 한번 우는 날엔 어머니 아버지도 항복해야 됩니다. 집안에서 새로운 무엇을 해야 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울더라도 앉아서 엉엉 이러는 게 아니예요. 다리로 들이 차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털이 다 없어졌어요. 그런 것도 선생님은 좋아해요, 정의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또 양보를 잘해요. 그런 뭐가 있어야 돼요. 통하지 않을 때는 무한히 안 통하지만, 통할 때는 엄청나게 통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사탄이 아무리 끌고 다녀도, 암만 얘기해도 내가 한번 성이 나면 사탄 골짜기가 시끄러워서라도 행복해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성나게 되면 입을 다물지 않으니 그저 시끄러워서 사탄이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한번 시작하면 그런 뭣이 있어야 됩니다. 그 동네가 시끄러워서, 사탄까지도 그 동네가 시끄러워서 도망가게 해야 돼요. 그러면 그것 점령하는 거 아녜요? (웃음) 끈기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배짱도 부릴 수 있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자기 사리에 있어서 뻔히 알게 될 때는…. 선생님이 한번은 그랬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어떻게 내 손아귀에 넣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나 해 가지고 작전을 세웠어요. 1차전 ,2차전, 3차전, 작전을 세워 가지고 제1차에 실패해서 어머니한테 부지깽이로 들이 맞았어요. 맞아 가지고 대가리를 다쳤어요. 그 대가리를 딱 내밀고 어머니 앞에 서 가지고 `때려라, 때려라!' 한 것입니다. 여러분보고 그러라는 게 아니예요. (웃음) 부모의 심정에 약점이 있거든요. 약을 올리면 `이놈아' 하고 쫓아와요. 도망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도수가 차 오릅니다. 이런 얘기는 왜 하느냐? 선생님이 어머니한테 매 맞아 가지고 40분 이상 정신을 잃고 기절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지독해요. 이래서 우리 부모님이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손을 못 대거든요.

그래 놓고는 `내가 이런 일 해야 되는데 소라도 팔아 내소' 하고 부모한테 통고를 합니다. 나쁜 놀음은 안 합니다. 저기 동네 불쌍한 사람 있어서 도와줘야 하는데 부모들은 막거든요. 그러면 그저 소라도 끌고 가는 거예요. 끌고 가서 쌀이라도 사다 주는 겁니다. 그런 성격은 가만 보면 부모에게 있어서는 안됐지만 말이예요, 뜻을 세워 나오는 데 있어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역사적으로 이야기할까요? 나에게 한 열 시간만 주면 그저 여러분과 단번에 친해 놓고, 여러분이 내 동생이 되고 그럴 텐데 시간이 없어요.

보라구요,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의 집에 있어서 혁명적인 요소를 청구했어요. 그랬지요? 「예」 '이 아비야, 우상이 다 뭐야' 하면서 발길로 우상을 차고 그러지 않았겠어요? 집에 들어갈 적마다 `이건 언제 내 손에 의해서…' 몇 십번 속으로 결의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했겠습니다」 그런 데서 하나님은 그편이 되는 거거든요. 선생님도 지나고 보니, 과거에 그렇게 한것이 잘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그저 손 하나 안 대고, 말하지 않고도 항복시켰어요. 그건 잘한 일이예요. 나쁜 일은 아니거든요. 부모들 소견으로는 자기 아들딸 사랑하고 자기 울타리 안만 사랑하지만 난 그렇게 안 본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아브라함도 그랬지요?

또 야곱이 어떻게 했어요? 그거 혁명이라구요. 이삭에게 축복을 받는데 펄떡거리는 양새끼 죽여서 받았다구요. 안 되었다구요. 왜?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위해 경건하고 좀더 하늘을 모시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돼먹지 않았기 때문에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의 인연을 에서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조상의 유업을 상속받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혁명적인 기준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야곱의 심정의 태도에 대해서는 사탄도 항의 못 한다 이거예요. 그것은 하늘이 세워야 할 공적인 심정이니 그편에 하늘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행동에 하늘은 후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이거 용서할 수 있어요? 자기 형을 속여 가지고…. 형은 뜻을 대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천적인 기업을 상속하는 때의 계대를 받을 수 있는 내적인 태도와 생활적인 태도가 돼먹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니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라도 계대를 해서 내가 더 충성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어떠한 시련과 괴로움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삭은 이런 시련에 꺾어지고, 에서는 이런 시련에 자빠지더라도 자기는 안 꺾어진다고 했던 거예요. 폭풍 같은 시련의 무대가 전개되더라도 나는 에서와 같지 않고 이삭과 같지 않고 아브라함보다 더 낫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찾아 축복해 준 하나님이 늠름히 사탄세계에 세워 놓고도 이삭의 복을 야곱에게로 돌려준 것입니다. 그런 배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혁명적인 일이예요.

또, 예수를 보라구요. 예수가 유대교 구약성경의 탈을 써 가지고 했다면 왜 죽어요?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혁명적이었다구요. 그런 걸 보면 하늘은 세계적인 혁명을 원하는 겁니다. 또, 모세를 보라구요. 40년 동안 바로의 왕자로서 길리움받을 때 얼마나 진수성찬에 잘 먹었겠어요? 배에 기름이 끼고 태평가를 노래하여 할 짓 다하고 살 수 있는 환경에 있었지만 '음― 보자!' 하며 선민사상을 잃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찬란하고 좋고 호화로우면 호화로울수록 그 속 깊이에 칼을 품었다는 거예요, `이놈들 두고 보자' 하고 문을 나섰을 때 이스라엘 민족과 애급 사람이 싸우는데 서슴지 않고 애급 사람을 때려죽였어요. 얼마나 혁명적이예요.

여기 박 의장(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은 기분이 맞는단 말이예요, 그런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민족을 사랑할 때, 누구보다도 정의에 입각했을 때, 누구보다도 충성했을 때, 누구보다도 정의에 입각해서 투쟁했을 때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역사적인 비법이예요. 이런 걸 볼 때, 여러분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자기가 준비를 해야 돼요. 누가 본다고 하고 안 본다고 안 하고 그러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등에 지고 날 수 있고 용맹스럽게 뒤넘이치고 나설 수 있는, 뭔가요?

하늘땅을 떨게 할 수 있는 용맹스런 기백이 필요해

`고려인의 산천'의 3절에 뭐예요? 아침해 솟아올라서 산과 들을 비추일 때 잠들었던 범 일어나?「맑은 물… 」 흐린 물 마시고? 「맑은 물 마시고!」 여러분 맑은 물 마셔봤어요? 「예」 내가 보기엔 흐린 물 먹었는데? 맑은 물 마시고, 낮은 산?「높은 산입니다」올랐을 때?「온 세상 내 것 되리라!」 큰소리로 왜? 온 세상 내것…. 온 세상이 놀라게 크게 외치는 거예요. `아침해 솟아올라 산과 들을 비추일 때 잠들었던 범 일어나 맑은 물… '이게 얼마나 멋져요. (곡에 맞춰 노래하심. 웃음) 허허허, 여러분들이 평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구요. 듣는 거라구. 높은 산 올라선 뒤에, 그다음이 뭐예요? 큰소리 외칠 때 온 세상 내 것 되리라… . 그렇게 되지요? 한번 정식으로 해봐요? 시작! (다같이 노래함)

아침해 솟아올라 산과 들을 비칠 때

잠들었던 범 일어나 맑은 물을 마시고

높은 산 올라선 뒤에 큰소리 외칠 때에

온 세상 내 것 되리라 내 사랑 고려 산천아

얼마나 기가 막혀요?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히나 이거예요. 기나긴 6천 년 동안 잠을 자던 맹호가 잠을 깨 가지고, 태평양 물을 듬뿍 마시고 백두산 천지 끝에 쓱 가 가지고 `어흥' 하고 어르릉하게 되면 세상 천지는 다 거기서….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한번 여기서 쾅쾅 (탁자를 치심) 치고 나서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엉덩이 아팠지요' 하고 기도해 보란 말이예요. (웃음)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가다가 쓰러지면 `너 열두 시지, 자라!'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구요. 그렇다고 또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생각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억! (큰소리치심) 놀랐을 거예요. 그런 기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해요.

선생님이 이번 여름에 고기잡이 많이 했습니다. 아주 지치도록 했다구요. 골짜기에 있었지만 `5대양 6대주, 5대양을 간다'고 했다구요. 그런 기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탕감조건이 서는 거예요. 알겠어요? 탕감조건은 세우려면 세계적인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느니만큼 여러분들이 누가 있다고 `예'대답하고, 누가 없다고 모른 척하는 사람은 안 되겠다는 말이예요.

그러므로 아까 말하던 과거ㆍ현재ㆍ미래에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결의하는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대답할 때는 `예!' 해야됩니다. 저 삼천리 반도나 저 영국에서 잠꼬대하는 사람들도 전부 다 깰 정도로 대답해야 돼요. 하늘땅이 전부 불안에 떨게 하고 한번 이런 기분이 나게 대답해야 그것이 맹세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크게 대답함. 웃음) 한번 대답해 봐요. 한번 대답해 봐요. 「예」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예잇!」(웃음) 자, 내리시오. 이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약속했어요? 「예」 이제는 약속했다 말이예요. 「예」 이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약속했어요? 「예」 요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의 첫대지(大旨)입니다. 알겠어요? 「예」

어떤 사람이 된다구요. `이야, 선생님 말씀이 그럴 듯합니다. 에이쿠!' 이럴 수 있는…. 이게 얼마나 근사한 거예요? 자다 생각해도 그저 기분이 나거든요. 선생님이 꿈에 나와서 이놈의 이불을 탁 차는 거예요. `저기 가서 붙어라!' 하면서 말이예요.(웃음) 세계에서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잠을 자던 이불을 차고 일어나도, 한번 차 가지고 저 몇만 미터 올라갔다 떨어지는 이불떼기를 덮겠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다구요. 차더라도 그렇게 용맹스러운 기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예」

소망의 실체가 되겠다는 결의는 영원히 변치 않아야

여러분들은 그런 데에 소질이 맞지요? 「예」 맞아요? 「예」 여러분들 마음에 딱 들어맞나요? 「예」 선생님의 마음속에 여러분들이 들어맞나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들어맞나요? (웃음) 여러분들 마음에 들어맞지요? 「예」 여러분들 마음에 들어맞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커요. 그러면 선생님이 참 좋아한다 말이예요. 이게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말이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선생님의 등을 타고 춤을 추게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아지면 `에잇, 이놈의 자식! 뭐야?' 하는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어서 등을 타서 나보다 더 높이 어서 날아라!'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아요. 때가 됨에 따라 가지고…. 수많은 군중을 대신해서 호령할 줄 알고, 수많은 군중을 울릴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때가 오거든 나는 뒷골방으로 갈 것입니다. 그 영광은 여러분들이 받아 가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 엄청난 소망의 실체들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이예요.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틀림없이 약속했다구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총회에 와서 이것만 결심해 가지고 그런 관념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이번에 올 때 천리길을 걸어오고 여러 가지 복잡한 환경을 다 거쳐왔겠지만….

본부에서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에서 밥도 잘 못 주고 선생님이…. 그렇지만 우리들은 망하지 않아요. 죽지 않는다 말이예요. 보리밥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피와 살이 움직이는…. 알겠어요? 「예」 그런 사람이 됐다면 그 사람은 알아줘야 돼요. 응? 「예」 그러면 이제부터 한 30분 동안….

우리는 필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기에 있는 아주머니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저 뒤에 있는 아저씨들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나 나중 온 사람이나 오지 못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숙원이요, 인류의 숙원입니다. 이 말은 비단 오늘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만의 말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다년간 이런 목표를 위해 투쟁해 나오던 경험담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가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을 지나서 가는 거예요, 그때까지.

그러면 여기서부터 문제입니다. 가긴 가야 할 내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필시 내가 가겠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필시 내 스스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러분들, 가 보라구요. 이제 이 문밖에만 나가면 그 결심은 간데 없어요. 알겠나요?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 지나고, 일 년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간 곳이 없어요. 맹세하던 결의는 든든하였고 그때 갖춘 모습은 자랑스러웠다면,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그 모습은 변함없어야 됩니다. 우리가 맹세했던 그 길은 천년 만년 가도 남아져야 할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가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가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가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인류의 고통과 더불어 최후의 날까지 싸워 오시는 하나님

보라구요. 아까 말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이거예요. 하나님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소망의 생활을 하고 싶었고, 소망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었고, 소망의 말씀을 전하면서 인류와 더불어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망의 심정을 통하면서 살고 싶었던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날 이때까지 그러해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찾아오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소망의 하나님이 못 되었더라 이겁니다.

우리가 보니까 하나님의 마음 깊이에는 숨겨진 인격관이 있고, 숨겨진 소망의 이념적인 터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나타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괴로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명사뿐입니다. 실제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경영해 나온 도상에 있어서는 꿈과 같은 명사입니다. 꿈과 같은 명사라구요. 인류가 슬픈 무대에 있어서 사망의 암초에 부딪칠 위기에 당도한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 그것을 바라보고 잘한다고 축사를 올릴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됩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선봉에 서 가지고, 그 암초를 홀로 친히 먼저 부딪치면서 인류가 파손되어야 할 운명 가운데 설 때마다 하나님은 결사적인 투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핸들을 돌려 가지고 새로운 해방의 곳으로 운전을 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어린 역사노정을 엮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하나를 운행하여 움직여 나온 예수도 그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때 피어린 혈투전을 거쳐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실정을 들춰 말할 시간은 없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이런 소망의 아들딸들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수고를 해 나왔느냐? 하나님은 편안한 자리에서 호령할 수 있는 역대의 영웅과 같은 자리에 못 나왔습니다.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 기세도 늠름하고 신세가 당당한 모습으로도 못 나왔어요. 하나님은 찾아왔나니, 거리의 뒷골목에서 목메인 신세로서 시대시대마다 조롱과 저주의 암담한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허덕이는 역사적인 와중에서 신음소리를 거두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겁니다. 그 신음의 함성을 인류의 고통과 더불어서 역사적인 최후의 이날까지 같이 싸워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될 때에 역사적인 칼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됩니다. 또, 그의 형상을 바라볼 때에 역사적인 화살자국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의 몸을 바라볼 때에 원수들의 형극의 자리가 있었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피의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사망의 골짜기 길을 가는 역사요,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는 죽음의 고비의 제단을 연이어 나온 역사입니다.

개인적으로 망하게 될 때는 가정에 있는 어떠한 대표자를 세워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정들이 망할 때는 민족적인 대표자를 세워서 이것을 상속받으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민족이 망하게 될 때는 세계적인 사명을 계승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와 오늘날 전세계적인 승리의 소망의 세계를 상속시키기 위하여 신음하고 있는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아버지의 그 성상 위에 주름살이 잡혔다면 6천 년 동안 신음에 쌓인 주름살이 잡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피어린 싸움터의 6천 년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의 화살과 원수의 쇠사슬과 원수의 신음하던 그 처참하고 가련한 신세를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구요. 이러한 신세가 아직까지 거두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그런 신세의 입장을 모면하고 피하기 위하여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식을 찾아 나오는 충성의 도리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조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수난은 결국 나 때문이다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인류을 향해 외치나니, `악몽이 남아 있는 이 수많은 인류여! 내 고난의 상처와 고난의 형극에서 남아진 내 신세와 내 심정적인 터전 위에서, 그것을 상속하여 인류 대신, 나 대신, 인류 앞에 갈수 있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용사는 없느냐? '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환경 가운데에서, 원수들의 적진 가운데에서, 하늘의 법도를 따라 충성의 절개를 향하여 최후의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예수의 신세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죽지않고 원수를 물리쳐 부활의 승리권을 갖추어야 할 사명이 오늘날 인류와 하나님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어찌하여 1년도 아니요 10년도 아니요 100년도 아닌 6천 년 까지 이어져, 타락한 그날부터 소용돌이친 원한의 심정을 품고, 고생과 혈투전의 와중에서 혈혈단신(孑孑單身) 혼자만이 싸워야 할 신세가 되었던 것은 누구 때문이냐? 크게 말하면 30억 인류도 되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때문이요, 이것은 나 때문이요, 우리의 후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내 일대를 위하여 충성한 어떤 친구가 있다 할 때는 그 은덕을 갚아야 할 것이 인간의 도리요 인륜입니다. 그러하거든 역대의 사명을 위하여 나 하나를 해방시키고, 나 하나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싸우는 하나님 앞에, 이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보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러면 이런 일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숙명 앞에 이런 모든 원한의 암을 우리들이 해결지어 주고, 이 암을 해소시키기는 데에 내 일생에 포탄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갚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결사대들이 이 지상에 나타나야 할 때가 되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의 청소년들은 이곳을 향해 가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다른 걸 다 몰라도 괜찮지만 하나님은 슬픈 하나님이라는 건 알아야 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져 와요.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고통스러웠던 사실, 1,600년을 수고하여 노아를 세워 둔 간곡한 소원의 심정 앞에 덜커덕 화살촉을 겨눠 가지고, 하나님 앞에 화살질을 하였던 함의 실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부터 역대의 우리 선조들이 잘못한 원한을 알아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의 죄를 회개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을 위로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대적인 기준 앞에 내 홀로 책임지고 나선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무대로 삼아가지고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용사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나요? 「예」

노아도 가정을 등졌고, 아브라함도 가정을 등졌고, 야곱도 가정을 등졌고, 모세도 가정을 등졌고, 예수도 가정을 등졌습니다. 안 그래요? 이스라엘도 지금까지 세계에 유리고객하면서 자기의 민족과 국가와 이념적인 세계를 등지고 오늘날까지 허덕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어디로 갈 것이냐? 이들이 손에 손을 붙들고 하나님의 고통을 대신하여 인류 앞에 구원할 수 있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역사적인 엄숙한 과제 앞에 불리워진 우리들은 무엇을 할것이냐? 나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대신자가 돼야 되는데 영광을 대신하여 오신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통을 대신하여 오신 하나님을 대신한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아버지가 찾아가서 수고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는 대신자가 되자 이거예요. 또, 내가 살고 있는 면에 아버지께서 찾아오면 아버지의 손길이 거쳐야 할 곳이 여기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손길이 거칠 곳을 먼저 내가 책임지자 이거예요. 이 민족과 이 땅 위에 지금까지 수고하신 아버지가 찾아오게 될 때, 이 민족과 이 땅 앞에 고통 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가 책임지자 이거예요. 이 천지간에 아버지가 찾아가시는 길 앞에 고통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자는 거예요.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해야 할 책임이요, 이 길을 감당해 나가는 모든 생활적인 방편이라는 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누가 책임진다구요? 「내가 책임져야 됩니다」내가 책임져야 돼요, 내가.

불쌍한 민족을 바라볼 때 그것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나 때문이라구요. 전부 다 나 때문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여기에 선 것도 나 때문이요, 이 몸이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이요, 이 민족이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이요, 오늘날 예수가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책임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대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열 번 움직이면 열 번 승리하고, 백전백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고 빼앗아 오는 것이요, 맞고 점령해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고 눈물 흘리던 자리를 빼앗아 오는 거예요. 매맞는 자리에서 매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죽는 자리에서 죽고 빼앗아 오는 거라구요. 주고 빼앗아 오고, 맞고 빼앗아 오는 하나님의 기준을 알아서, 나 때문에 책임지고 나 때문에 사명을 완결짓겠다고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다면 삼천리 반도는 이제부터, 이번에 왔다 간 수백 명이 남한 각지에 흩어진다면 새로운 봉화는 들려질 것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수난은 결국 나 때문이라구요. 예수는 누구냐? 예수는 아담의 완성자입니다. 우리의 선조인 아담 때에 그 아담이 완성을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아담의 새끼입니다. 또 노아도 아담 새끼로서 더 크기 위한 것이었고, 아브라함도 아담 새끼로서 점점 커 나오는 것입니다.

아담 새끼가 뱃속에서 완성되지 못했는데, 점점 한 달 두 달 커 가지고 6천 년 동안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와 가지고, 결국은 뭐냐 하면, 본연의 한 사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 년을 수고하여 천국 갈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국은 땅 위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천국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사명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6천 년 걸린 것을 여러분들은 엿새 동안에 할 수 있고 6개월 동안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비법만 알면 간단해요. (이후 말씀은 녹음상태 불량으로 수록하지 못함) *

<말씀 요지>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국의 각 교회에서 모여든 젊은이 들인데, 젊은이들에게 말하려면 선생님도 젊어져야겠어요. 어느 정도까지 젊어져야겠느냐? 여러분은 나이와 생일까지도 같기를 바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정도로 젊어지길 원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 때가 바로 선생님이 이 뜻을 찾던 때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아마 각자 천태만상의 생각들을 하고 왔을 것입니다. 오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참마음’으로 온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갈 때도 참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세계와 역사의 중심이신 하나님

그러면 선생님은 어떠한 사람에게 말씀을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참마음’으로 온 사람에게 할 것입니다. 때려서라도 그런 참사람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사명입니다.

무모하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하여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삼천만 민족은, 그리고 전인류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고대하실 것인가? 삼척동자라도 답은 같습니다. 역사적인 결실체를 고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어디 봅시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밥만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다음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움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한다면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땅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사는 것과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또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과 가정이나 민족, 혹은 국가나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귀한 사람인가? 여기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더 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못난 사람도 세계적인 인물이요, 너도 나도 모두가 세계성을 띤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위해야 할 것이냐? 천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는 사람을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이상을 생각하며 사는 분을 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인격으로 실천하시는 분이시며 천지를 위해 온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말씀과 실천에 있어서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시고 실천해 보셨는가? 환경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은 불쌍하십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생활을 하고 그런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또 그런 사람들을 영원한 이상세계에서 살게 하기 위하여 소망의 첫사람을 보내셨나니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 세계는 인간의 것입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경제사관을 터로 하고 있고, 물질위주의 세계를 가치시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사람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합니다. 공산주의는 먼저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보다 한 단계 앞서 있습니다. 다만 이 민주주의에는 인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세계에로 한 단계 높아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한갓 교황청이나 가톨릭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 종교의 하나님이요,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세계로 수습되어 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봉건시대의 교황청이나 가톨릭에만 계실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고 또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심정의 시대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왜 가나안 7족을 멸하셨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민족 형성의 발판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입장에서 치신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국수적인 사상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심판의 관문을 넘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정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이끌고 고통에 고통을 당하시면서 세계적인 입장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해산하려는 여인의 진통기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현대 문명을 문예부흥의 소산이라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심정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계도 하나입니다. 국경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직 하나의 세계일 따름입니다. 국경 같은 건 다 원수입니다. 누가 금을 그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가치를 가진 사람입니까? 이 컵(책상 위에 놓인)은 누구의 것이냐? 천주의 것이요, 인류의 것입니다. 만물도 그러한 가치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며 아직까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린하는 악당들은 심판받아야 합니다. 저 산은 누구의 것이냐? 김 씨의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을 소망의 실체요, 소망의 등대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지를 상속 받을 거룩한 왕자들입니다. 그런데 밥 한 덩어리에 팔려 다닙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천지의 법도에 의해 모든 인연을 맺고 현실과 미래를 연결지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민족이 소망하는 사람이요,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사람이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계가 나의 것이고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 아니 세계 30억 인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소유관념을 갖고 ‘천하는 내 것이요, 지구도 내 것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어두움의 골짜기를 헤매었으니 탄식할 일입니다. 이러한 나는 죽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본연의 나를 찾아 헤매는 ‘나’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나’요, 끝날의 민족이 찾는 ‘나’라고 하는 젊은이들이 10만 명 만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소망의 ‘나’를 그리워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어떻게 살려고 했어요?

우리는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흑인 백인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잘났다는 사람이 심판받습니다. 부자집의 잘난 아들은 만점이요, 병신 자식은 영점입니까? 아닙니다.

민주 진영은 아프리카에 가서 보물을 나누어 주고 피와 살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형이 되지 않으면 깨져 나갑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팽창하는 것도, 그들이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한 사람을 구하려 하시는 것과 같은 형태나마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이 땅 위에서 맺기 전에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 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물질배급시대와 인간배급시대를 거쳐 심정배급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상속 받으려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상속권을 못 갖습니다.

먼저는 물질축복시대를 거쳐 인간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인에게는 물질축복도 안 해주고 마지막의 심정을 상속해 주기 위하여 외곬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지금까지 신학을 중심삼고 내려온 종교인들의 걸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심정을 상속 받기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줄 때에는 자꾸만 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심정을 가지고 주어야 합니다. 껍데기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형제시대입니다. 또한 형제사회국가시대입니다. 그러니 싸우고 있는 가인 아벨이 서로 화합하는 형제의 때가 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고 싶노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하나님은 먼저 불쌍한 사람에게 ‘주고 싶노라.’ 하십니다. 불쌍한 자 중에서도 도를 닦는 사람이 제일 불쌍합니다. 그러니 도인들에게 먼저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도인이 고맙다고 하며 이젠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고, 이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천지간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이러한 역사적인 때에 사람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이냐? ‘세계는 내 것이다.’ 하며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서 살아왔고 기껏해야 부모 형제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세계 대신, 하나님 대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만물보다 못합니다. 만물은 해원의 한 날을 바라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합니다. 천지간에 참되게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을….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에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몰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도 그런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천국에서는 노인을 부모로 대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한 가족으로 대하고, 모든 남녀를 형제로 대합니다. 천국은 가정을 확대한 세계로 형제애의 세계입니다.

천지는 우리가 졸고 있어도 그 궤도를 따라 돕니다. 아무도 없다고 누가 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하면 망합니다. 안 볼수록 잘해야 합니다.

남이 내게 무엇을 줄 때도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세계를 위해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시지 않습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는 사람은 큰사람이 못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데는 혁명적인 기질도 있어야 합니다. 뜻 앞에, 하나님 앞에 최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겁니다. 가야 합니다. 가야 할 운명입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문 밖에 나가면 맹세한 것을 잊어버려? 그러면 안 됩니다. 천년 만년이 가도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격을 지닌 실체를 바라셨지만 아직까지 땅 위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은 혈로(血路)를 거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영광의 자리에는 한 번도 서 보지 못하시고 몰림받고 저주받는 암담한 자리에서 신음하면서 싸워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역사적인 화살 자국이 있습니다. 선민의 역사도 피의 자국과 죽음의 자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들이 망할 때에도 가정의 상속자가 있었고, 가정들이 망할 때에도 민족의 상속자가 있었고, 민족들이 망할 때에도 세계의 상속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외치고 계십니다. 인류 대신, 하나님 대신 싸울 용사가 없느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죽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할 운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죽어간 선조들과 우리들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개인의 원수를 갚는 것도 어려운데 역사의 원수, 인류의 원수를 갚는 것이 쉽겠습니까?

하나님은 슬프십니다. 120년, 아니 1,600년의 터 위에 세운 노아의 기대가 무너지고, 다시 400년을 거쳐 세운 아브라함이 실패하고, 그 후에 모세가 실수하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원수를 향해, 적진을 향해 돌격해야 할 때입니다. 알겠습니까?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도 그들의 가족이 그들을 등졌습니다. 이민족, 이 땅에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우리가 책임집시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이 사회, 이 민족, 이 세계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우리 자신들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눈물 흘리면 망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고 매 맞고 빼앗아 오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참한 경륜도 우리들 때문입니다. ‘너와 같이 말하고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나는 언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동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생활 무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십자가의 생활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신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갑시다. 죽음의 길로 갑시다. 십자가로 뿌렸으니 눈물과 통곡으로 거두어야 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일개 부락을 위해 사는 것은 30억 인류를 대표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세워진 사람들의 사명

하나님과 같이 한 시간이라도 생활할 수 있을 때를 생각하고, 그때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워진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십자가까지 가는 겁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어려운 길도 더 걸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수가 많지만 하나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세계의 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세계적 가나안복귀시대입니다. 모세 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각자가 자신들을 몰랐습니다. 소망의 땅인 가나안에 대한 동경도 희박했고 지도자도 몰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상에 그러한 존재들이 있을 때 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다 죽고, 20세 이하만이 남았습니다. 60만 장정이 있어도 할 수 있을지 말진데, 그들이 할 수 있었겠어요? 다 항복해도 여러분은 항복해서는 안 됩니다. 60만 이스라엘 민족이 학살당한 것은 그들이 책임 못한 대가입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스승을 바라볼 때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봅니까? ‘선민이 되게 하소서.’ 하며 때려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 칼로 몰아쳐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모세가 칼을 들어서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몰았으면 10만쯤은 죽었어도 60만이 다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문제없습니다. 가는 길에 지장이 되는 것은 차 버리고라도 가야 합니다. 지도자가 그렇게 끌어 주기를 바라야 합니다. 안 가면 망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기필코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이 사명이 우리 통일교인의 어깨 위에 있습니다. 안 가면 때려서라도 가게 해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고, 시대적인 선봉자가 되고, 미래적인 개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의 결실체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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