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이와 같이 참석한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그것이 오늘 저녁 이와 같이 실현된 데 대해서 하나님 앞에, 그리고 여러분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말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잘 이해를 못 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말을 하는 벙어리와 같고, 말을 듣는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을 다리 놔 가지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여기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통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아시고 많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오늘 저녁 여러분에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목이 크다면 큰 제목이고, 내용이 복잡하다면 복잡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런 내용 가운데 골수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어떤 것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말씀해 보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은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고 가장 영특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존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인들이, 수많은 신앙자들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이 확실히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바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 근본이 틀어져 나가게 되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고,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중심삼고 보느냐, 인간만을 중심삼고 보느냐 하는 데 있어서 두 철학 사조의 세계가 결과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 종교들이 달라지게 되는 것은 근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는 종교라면 '종교는 이래야 된다. 나와 그 종교와의 관계는 이래야 된다'는 어떠한 원칙이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관계에 대해서 지금부터 말씀해 보겠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권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혹자는 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혹자는 지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과연 권력과 돈과 지식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냐 할 때, 그누구도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한 걸음 더 들어가 묻게 된다면 그 누구나 사랑이 귀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겠느냐 묻게 된다면 생명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과 생명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상(理想)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니, 세째번으로는 이상이라는 대답을 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이다, 생명이다, 이상이다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라는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문학 소설의 표현을 보더라도 사랑 하면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유일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변하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청춘시대나 중년시대나 노년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사랑도 그렇지만 생명 문제에 있어서 '난 잠깐 살다가 죽자. 없어지면 좋겠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명도 영원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내 생명은 변치 않기를 바라고 내 생명은 특권적이고 절대적이길 바라더라 이거예요.
여러분이 종교를 믿는 목적도 구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영생이 없다면 종교는 필요 없다구요. 종교를 통하여 인간 이상의 사랑을 그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종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요, 생명이요,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이라든가 이상이라는 말은 혼자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혼자 있어 가지고 '아, 나 혼자서 사랑을 한다' 하는 것은 성립이 안 된다구요. '아, 난 혼자 좋아하고 기뻐한다' 이 말도 성립 안된다구요. 따라서 사랑이라는 말과 이상이라는 말을 우리가 추구하고 절대시하고 바라는 입장에 있다면, 우리 인간은 또 다른 하나의 주체나 대상적인 그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상기시키게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대상이라면 어떠한 주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적인 존재라면 어떠한 원인적인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넘어 가지고 그런 주체적인 존재, 그런 원인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는 불변이어야 되고 영원이어야 되고 이상적이어야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어떤 면에서나 하나돼야 됩니다. 어떠한 일에 있어서는 하나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되는 데에 있어서 나쁜 자리에서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 변치 않는 영원한 자리, 완전히 통일된 자리에서 하나되기를 원하는 것은 주체 대상의 존재로서 각자가 원하는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대상이요 결과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것이 사랑이요. 생명이요. 이상이라고 한다면 주체인 그분의 요구와 그분의 희망과 욕망이 무엇이겠느냐?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 당신이 제일 귀하고 절대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이요?'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도 역시 결과, 즉 대상이 요구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고 권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사랑이요, 생명이요, 이상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누구를 닮았느냐 할 때에 우리를 닮았다 이거예요. 주체와 대상은 닮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닮았다고 했습니다. 닮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요, 생명의 대상이요. 이상의 대상이라는 결론을 여기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라면 나도 절대적인 자리를 원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불변이라면 나도 불변이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유일이라면 나도 유일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원이라면 나도 영원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영생은 불가피적이요, 그것은 결과적인 귀일점이 아닐수 없다는 결론을 당당히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사랑이 없고, 아무리 하나님에게 생명이 있다 하더라도 내게 생명이 없고, 아무리 하나님에게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에게 이상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로 있는 자 앞에 대상이 얼마나 가치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상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서 가지고 청중이 없는데도 주먹을 휘두르고 '어어' 이렇게 한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절름발이 한 사람을 놓고서라도, 병신 한 사람을 놓고서라도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한다면, 정신병자가 아닌 것입니다. 정신병자라고 그래요? 또,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요만한, 조그마한 것을 -여러분은 안 보인다구요-보면서 그저 좋다고 시를 읊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웃음) 그걸 미쳤다고 해요?(웃음)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대상의 가치가 절대를 옹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상대권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고 크면 뭘해요? 대상이 없다면, 그 하나님은 뭘해요? 그 하나님이 기뻐요? 혼자 기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기 위해서 대상의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종교에서는 하나님은 신성한 분이요, 거룩한 분이요, 인간은 악하고 죄악된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은 동등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신앙은 근본적으로 틀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으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도를 통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절대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슬픈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주체를 닮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도외시돼 있었다구요.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의 가치를 갖고 당당히 우주간에 등장할수 있는 권위를 잃어버렸다구요.
그러면 그렇게 높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상대적인 자리로 나갈 수 있겠느냐? 노력으로 돼요? 힘을 써서 돼요? 무엇 가지고도 안 된다구요. 오직 사랑의 관계만이, 사랑의 인연의 줄만 갖고 나가면 누구든지 대번에 동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어떤 위대한 남성이 있으면 그 남성을 중심삼고 한 여성이 있다고 할 때, 그 여성은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 가치도 없고 인격이나 지식이나 모든 권한에 있어서 영점에 가깝다 하더라도 주체 되는 그 남성과 사랑의 인연만 맺으면, 일시에 당당한 대상적 권한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존(John)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여자는 당장에 미세스 존(Mrs. John)이 되더라 이거예요. 그 남편이 가는 데는 아내도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도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될 수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사랑은 세상 부자간의 사랑보다도 높은 것이거늘, 그 사랑을 중심삼고 당장에 대등한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이론은 성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절대적이요, 불변이요, 영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위대하고 가치적인 근원을 망각해 버린 우리 인생의 본연지를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은 하나돼야 됩니다. 원인과 결과도 반드시 하나돼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이자 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둘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하나된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알파라면 우리 인간은 오메가라구요. 하나님이 시작이라면 우리는 나중이라구요. 하나님이 처음이라면 우리는 끝이라구요. 끝과 끝이 이렇게 돼 가지고는 하나될 수 없다구요. 돌아서, 왼 손이 돌아 가지고 바른 손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될 때 서로 달라서야 되겠어요? 이것은 크고 이것은 작으면 되겠어요? 화목을 바라고 평화를 바라는 것은 모두 하나되는 기원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러한 사랑과 그러한 생명과 그러한 이상의 주체로 계신다면,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되기 위해서 인간과 대등한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연결 될 수 있는 자리를 책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계는 알았어요.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알았다구요. -이제는 그 통일의 장소가 어디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다구요.
우리 인간은 최고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의 지능을 갖고 있어요. 둘 가운데 조금 나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위에 있고 좋은 것이 아래에 있으면 내려와 가지고 이것을 가지려고 한다구요. 또, 이것을 쥐고 있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다른 것이 있으면, 이것을 던지고 요것을 가지려고 한다구요. 더 높은 것이 있으면, 이것을 갖고 있으면서 또 바라보는 거라구요. 더 높은 것이 있으면 또 그거, 또 그거…. 제일 높은 것을 바란다구요.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믿어 왔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결론이요, 평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끝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어디까지겠느냐? 이제 알아보자요.
지금 세계의 제일인 위인이 살아 계시다고 합시다. 말 한마디에 세계를 전부 다 움직일 수 있고, 한마디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성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아!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됐으면 좋겠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됐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이거예요. 그 윗 자리가 있으면 '아이쿠, 이것보다도 요거…' 할 것입니다. 친구보다도 그분의 양자 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친구 되는 것 버리고 '나 양자 됐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요? 여러분, 만족해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건 뭐, 물어 볼 게 뭐야. 같지'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동양 사람이고 여러분은 서양 사람이지만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구요. 마찬가지라구요.
또, 양자는 그만두고 직계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되고 싶겠어요, 안 되고 싶겠어요? 양자 버리고 직계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양자를 버리고 아들딸이 되려고 하느냐?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점령하기 전에 그 사람의 사랑만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면…. 그는 누구의 아버지예요? 그 사람은 누가 되는 거예요? 그가 웃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요, 그가 가진 것은 내 것이 되는 것이요, 그가 거느린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수속을 거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보다도 더 높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자리를 또 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고 싶어요? 그것도 되고 싶겠지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을 원할 거라구요. 친구를 원해요, 그렇지 않으면 양자를 원해요. 친구를 걷어치우고 양자를 원한다구요. 그 다음에 아들딸이 될 수 있다면 양자도 집어치우는 거라구요.
자, 이렇게 볼 때 인간에게 최고의 욕망을 준 것은 창조목적에 있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의 가치관이 설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안 주게 되면 큰일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기만을 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만을 원하는 거예요? 결국은 하나님 속에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라는 거라구요.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점령하고 또다시 무엇을 요구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예요.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그 다음엔 봄 중의 봄이요, 기쁨 중의 기쁨이요, 세상만사가 다 내 말에 놀아나고 내 행동에 놀아난다구요.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신비로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고 알아 본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대답이 '부자의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이다'였어요. 결론이 그거라구요. 일반 사람 같으면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하고…'라고 생각할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와 어머니로 생각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가진 특정한 내용이 무엇이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어디냐? 사랑이 교차되는 그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그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 중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이 된다 이거예요.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초의 인연과 최초의 통일의 장소가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더라 이거예요.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엄마 아빠의 예를 들어서 한번 얘기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태어나려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움터야 된다구요. 서로서로 상대적 관계가 성립돼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랑의 환경에서 생명의 일치점에서 생명이 연결돼야 된다구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상적이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가 사랑을 맺고 하나되어야 부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은 내 사랑이요, 남편의 생명은 내 생명이요, 남편의 이상은 내 이상이 되는 거라구요. 반대로 아내의 사랑, 생명, 이상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게 하나된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이,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 그러한 통일적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이 자식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식을 낳아서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그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서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생명의 연장체요, 이상의 구현체다. 제2의 나다'라고 하는 거예요.
출발서부터 사랑과 생명과 이상적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로 등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서 연결되느냐? 생명이 교류 하는 곳, 사랑이 교류하는 곳, 이상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그 점이 어떤 점이냐? 부자지관계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점핑을 해야 되겠어요.
자, 이렇게 볼 때, 아, 내가 하나님하고 동등할 수 있다니, 이 내가…. 그런 기쁨이 얼마나 크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거기서 기도가 필요해요? '하나님, 나 죄인이요' 하는 기도가 필요해요?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인데 기도가 필요해요? 위신과 체면을 초월하는 거라구요. 서슴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야' 이러겠나요? 하나님이 붙안고 비벼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체험한다면 뼈살이 녹아날 거라구요.
여기에 종교 지도자도 왔으리라고 보는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받아봤어요? 그런 자리에서 숨을 쉬면 세계가 들락날락한다구요. 아편을 먹고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보다 못하겠어요? 아편만 못하겠어요? 술만 못하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오게 되면 채워지지 않는 곳이 없다구요. 4백조나 되는 세포까지도 춤을 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눈대로, 손은 손대로 전부 다 느끼는 거라구요. 그 가외의 다른 것은 갖다 주더라도 다 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최고의 고귀한 욕망이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믿는 데 있어서 남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고 믿겠어요, 자기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고 믿겠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그런 실감이 있어요? 오늘 저녁 여러분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틀림없이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리 고독하고 아무리 고난의 자리에 가더라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잠을 잘 수 있고 수난길을 갈 수 있다면 고통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보는데, 여러분이 그런 길을 살 수 있다면 몇억 불이라도 주고 사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돈 가지고 못 삽니다. 뼛골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의 심정을 설명하기 전에 주체요 대상이라는 감정의 흐름이 속에서부터 폭발되어야 합니다. 거기 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구요. 이 세상에서 사느라고 '뭐, 남편이 어떻고, 아이가 어떻고…' 그러는 인간이 얼마나 불쌍해요?
아까 말한 그러한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가치적인 내용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우주와 생명과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될 그 생명에는 사랑이 있고 이상이 통하게 돼 있다구요. 생명과 이상이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이 약동하고 이상을 중심삼고 생명이 약동하게 돼 있다구요.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와 위치를 알았습니다.
이 자녀의 자리는, 형제끼리 그러한 자리가 돼요? 될 수 없다고요. 부처끼리도 그러한 자리가 돼요? 될 수 없다구요. 그것을 알게 될 때 당당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구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말이예요. 기독교인들 보게 되면 '하나님은 높고, 우리 인간은 죄인이고 피조물이니 가치가 없고, 예수님은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연결돼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사람편에 서야지 하나님편에 있으면 어떻게 되나 이거예요.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중보가 있으니 그는 곧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어요. 그래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 죄인이 어떻게 가요?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 뜯어 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이론적으로 타당하게 전부 정리해 놔야 한다구요. 그는 죄 없는 사람이요, 우리는 죄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교류될 수 있고, 생명과 교류될 수 있고, 이상과 교류될 수 있는 분이라구요. 그런 것이 하나님의 원리, 우주의 근본이라면, 그렇게 알고 있는 하나님이라면 끝날이 되면 될수록 그런 기독교를 전부 다 차버리는 거에요. 주먹구구로 믿을 때는 지나갔다구요. 알아야 돼, 알아야 돼요.
내가 이 우주의 근본 문제에 부딪쳐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할 때, 내용이 이렇게 됐다는 것을 알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가치를 알 수 있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인간의 본향을 찾아가야 되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인류가 살수 있는 조국을 건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하는 때가 있다구요. 자기를 위하려고 전부 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짓고 인간을 짓기 전에는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상의 세계를 전개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또 다른 자기의 상대 존대를 만들자는 거라구요. 그래서 하나님 자체를 투입한 거라구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전개시키자는 것입니다.
창조역사를 한다는 것은 힘의 투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란 힘을 소모시키는 거라구요. 자, 투입했는데 얼마나 투입했느냐?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어! 이래라' 해 가지고 장난식으로 창조한 것처럼 알고 있다구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참된 생명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사랑을 완전히 투입하고, 참된 이상을 완전히 투입한 거라구요.
창조하기 전과 창조하고 난 후가 다른 것입니다. 창조하기 전에는 자기를 생각했지만 창조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상을 위하는 시대로 절로 전환된다는 거예요. 내가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있다, 아들딸을 위해 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돼요. 사랑과 이상이라는 말은 대상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존재의 기원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백 퍼센트를 투입했는데…. 손해가 나게 되면 하나님은 안 한다구요. 돌아올 때 90퍼센트가 되어 10퍼센트가 손해나면 안 한다는 거예요. 그 이상으로 돌아올 것이 있기 때문에 한다는 거라구요.
백 퍼센트를 투입함으로써 없던 것이 생겨났습니다. 대상이 생겨났다구요. 그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내가 바라던 사랑을 갖고 오고, 생명을 자극시키는 이상적 대상으로 나타난다 이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에는 끌려간다구요. 그 대상이 끌면 끌려가는 거예요. 그들이 좋아하는 곳에는 하나님도 갑니다. 내가 나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고, 그 상대가 보면 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인간 창조는 자기의 완전 투입입니다. 인간은 그로 인한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여기 유명한 화가가 있다면, 그 화가는 장난으로 쓱쓱 그린 그림을 중요시해요? 밥을 먹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정력을 투입해 가지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자기 자체 이상을 투입한 작품에 대해서 걸작품이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작은 자기가 갖고 다니고 보관하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참된 하나님은 상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완전 투입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이고 이상적인 완전형을 전개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는 아담 해와를 위해서 있겠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구요. 자기를 위하던 때에서 상대를 위하는 때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상적 존재라는 것은 자기를 위주하지 않습니다. 이상적 존재는 남을 위하는 데에, 대상을 위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여기에 워싱턴의 유명한 분들이 왔을 거라구요. '아하! 내가 이만하면 앞으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어디 가든지 내가 실력으로 해도 무엇으로 해도 지지 않을 당당한 난데….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왔을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결과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을 닮았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던 때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위할 때가 있다구요.
그래야 자기가 성숙하는 거라구요. 크는 거라구요. 흡수하여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상이 생겨나게 될 때는 자기를 버리고 상대를 위하는 때로 넘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終極)지을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짓게끔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남자 자신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여자 때문에….
또, 아무리 미인이고 아무리 남자가 싫더라도, 여자가 왜 그렇게 태어 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존재의 기원은 나를 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세상이 되거들랑 천국이 아닐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게 될 때, 서로 위해 주니까 돌아가는 거라구요. 위하면 위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다구요. 이상적이예요. 사각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둥글둥글한 거예요. 위하는 것은 밀어 주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나를 위하여 밀고 나도 그쪽을 위하여 밀어 주니 빨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원형을 닮아 있다구요. 얼굴도 둥글하다구요. 여기에 둘이 있는데 이 둘이 합해 있는 거라구요. 눈도 동그랗다구요. 상부 하부가 있다구요. 그것이 전부 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된다구요. 정맥, 동맥도 주고받는다구요. 주는 길은 있는데 받는 길이 없으면 병나는 거라구요. 깨지는 거라구요. 존재물은 운동을 하는데, 그 존재의 근원에 있어서 위할 수 있는 작용의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면 이제 인간들에 있어서 제일 문제 되는 게 뭐냐 하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불확실하다구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알았으니 그 관계가 일치돼 가지고 악이 무엇이고 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하게 근본부터 가려 놓아야 된다구요. 악이 뭐냐? 악의 정의가 뭐예요? 사탄이 참소할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악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돼요. 죄가 뭐냐? 사탄이 참소해 가지고 거기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게 되면 죄예요. 기독교인들은 죄의 뿌리를 다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얘기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고, 전부 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이상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요? 그런 자리에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없다구요. 그거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사탄이 들어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철망에 붙들려 매여 있다구요. 사탄이 참소해서 관계맺을 수 있는 조건이 죄라고 했는데, 결국은 뭐냐 하면 창조원칙, 본래의 우주의 근본 원칙에 반대되는 입장에 선 것입니 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은, 인간은 대상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주체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위하는 데 있어서 존재의 가치가 있고 존재의 기원이 있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악의 출발은 사탄 자신도 그렇고, 해와 자신도 '내가 주체가 돼 보자. 내가 중심이 되자'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랑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주체를 위하여 있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있어라. 나를 위해서 있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악이라구요. 하나님의 창조원칙은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대상을 부정하고 '나를 위해 있어라' 이렇게 된 거예요. 이걸 근본으로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선악의 기원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악한 사람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하라. 전부 다 나한테 와서 굴복해라' 이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때려부숴야 되고 예수님도 이것을 때려부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 자기 이익을 구하지 말라.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 봉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전부 반대라구요.
결국 타락해서 고장났기 때문에 이것을 원리원칙대로 갖다가 맞춰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 법도에 일치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깨진 것을 다시 맞추려면 재창조 역사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타락은 자기를 상대에게 투입하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자기에게 투입하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투입하는 놀음을 시킨다구요.
그래서 종교는 자기를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주로 왔지만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어요. 또, 예수님은 말하기를 '친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보다 큰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완전히 투입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자기를 주장하는 세계에서 성경을 보면 수수께끼 같고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전부가 반대라구요.
그렇지만 천리 원칙을 두고 볼 때, 위하는 원칙으로 볼 때 성경은 그야말로 진리더라 이거예요. 과연 성경은 성경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맞아요. 전부 다 맞아떨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악한 사탄세계에 반대되는 천국을 만들기 위해 악한 세계와 반대되는 길을 공작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이게 종교라구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 대해서 한번 예를 들어 보자구요. 선한 사람은 열 친구가 있다면 그 열 친구를 대해 가지고 아침이나 저녁이나 금년이나 내년이나 십년이나 일생 동안 시중들고 봉사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는 친구는 좋은 친구예요. 열 사람 전부가 제일 좋은 친구라고 한다구요. 그래 가지고 자기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라든가 자기 누이 동생이 있으면 데려가서 소개하려고 한다구요. 그렇지요?
하지만 열 친구를 대해 가지고 '야! 이놈아. 날 위해라'고 세 번만 그런다면 도망가는 거라구요. 그가 따라올까봐 겁이 나서 도망가는 거라구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왜 그러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예요. 지옥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원리원칙에 들어가 가지고 남을 위해, 상대를 위해서 투입하는 자는 천국가는 것입니다.
인류 교육이라든가 모든 지도 이념에 있어서 막연하게나마 선을 이러한 관점에서 세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 지구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이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는 전체 앞에 선한 사람이요, 어떠한 가정이 전체의 가정을 위해서 완전히 희생하면 전체의 가정 앞에 선한 가정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또 어떠한 민족이 전체의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나서면 그 민족은 선한 민족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어떠한 나라가 전세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나서면 그 국가는 선한 국가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수를 보낸 것도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보냈을 것이어늘,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국가를 희생시키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 투입하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기독교는 세계 앞에 선한 하나님의 뜻을 위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지 장로교면 장로교, 감리교면 감리교, 성결교면 성결교 그것 하나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만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구요.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이다 이거예요.
교회가 참된 교회거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이거예요.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교회가 망하게 되더라도 희생해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게 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텐데, 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심판하면서 '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부정하고 '우리들을 위하라'고 하면서 자기를 절대시하는 교회는 망한다구요. 악한 세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 여러분 어떻게 할 거예요? 악한 세계에 반대적인 하나님의 천리원칙으로써 교육을 하고 근본 이치를 가려 가지고 전세계를 통일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악을 처단할 수 있는 기원이 생길 것이 아니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주의를 깨뜨려 버려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여러분, 미국의 가정에서 문제 되는 것이 뭐예요? 남편은 늘 자기를 위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아내는 나만을 위하고 나만을 사랑하라고 하고 말이예요. 남편은 자기만 사랑하라고 하고 그것이 사탄의 본성의 자리가 되니 하나님이 떠나는 거예요. 사탄이 들어왔으니 깨지게도 됐지요.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딸을 길러서 결국은 자기들을 위하라고 하고, 아들딸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자기들을 위하라고 하고, 서로가 자기를 위하라니….
오늘날 세계의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남의 나라를 속이고 농락하려는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어떤 나라가 우리 나라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희생하겠다는 그런 나라가 있어요? 미국이 외국을 위해서 협조하고자 할 때는 미국은 전성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아이고, 우리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흥하면 뭘해, 세계를 집어던지고 우리 나라를 붙들어야지' 지금은 이렇게 됐어요. 그런 나라가 선한 나라예요?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 미스터 문이 말하는 원칙을 두고 보면 하나님은 아메리카에서 떠나야 된다구요. 만일, 미스터 문이 가르치는 통일교회가 세계는 통일교회를 위해 있어야 된다고 하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원칙에 의하여, 통일교회가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 있다 할 때는 흥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청년들이 여러분을 못살게 몇 번씩 찾아가고 귀찮게 했을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왼뺨을 치거든 바른뺨을 돌려 대라'고 한 것은 완전히 주라는 것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바른뺨을 돌려 대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면 돌아오는 거라구요. 천지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로마 병정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창으로 가슴을 찌르는 데도 복을 빌면서 죽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완전히 투입하고 완전히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원수의 나라까지도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날 로마제국이 기독교의 왕국이 되었다 이거예요. 기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방향을 뒤집어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막연했어요. 어떤 것이 선인지 어떤 것이 악인지 모르고 그저 이렇게 책을 끼고 찬송이나 부르고, 믿고 천당가겠다고 이러고 교회에 나왔다구요. 그건 안 된다구요. 원칙에 적용되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믿는 것은…. 믿고 천당가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천당 보내기 위해서 믿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자기를 위했으면 벌써 섭리고 무엇이고 다 집어던졌을 거라구요.
미국 국민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존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망각한 개인주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막다른 골목에 온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어디서 나올 것이냐? 이제야말로 기독교 정수의 노정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본연의 생명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 외에는 없다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 미스터 문이 여러분이 환영하지 않는 놀음을 이렇게 하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리원칙을 통하여 주장하나니, '너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고, 너 가정은 민족을 위해서 있고, 너 민족은 나라를 위해서 있고, 너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있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어야 하느니라' 이거라구요. 그 하나님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 것이자 내 것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하던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내것은 우리 가정의 것이요, 이 가정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는 세계의 것이요,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멋져요? 어떤 것이 멋져요? 전세계가 내 것이 되고, 우주가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위한 사람은 충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 나라의 사상적 중심존재로 모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 나라의 중심존재로 등장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위대한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젊은 청년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홍! 미스터 문, 켸켸묵은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돼서 이런 악한 세상에 어떻게 살아!'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위하는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중심존재가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위하는 자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이 위하는 창조이상을 가지고 지금까지 위하여 나왔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위하면 중심이 안 될 수 없다 이것입니다.
악은 뭐냐 하면 네 것도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가 세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박애사상, 남을 위하는 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지금부터…. 앞으로 두고 보라구요. 공산주의는 가면 갈수록 깨진다 이거예요. 왜? 나를 위하라고 하기 때문에,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건 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확실한 또 하나의 세계를 창건하기 위해서 종교를 내세웠는데, 종교가 이걸 몰랐다구요. 그저 엄벙덤벙…. 그러나 확실히 금을 긋고 오른쪽이면 오른쪽, 왼쪽이면 왼쪽, 확실히 가려야 되겠다구요. 그러면 선악에 대하여 금후에 가야 할 방향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았으리라 믿습니다.
자, 병이 났으니까 의사가 필요하고, 고장이 났으니까 수리공장의 주인이 필요합니다. 개인으로 고장났고 가정으로 고장났고 국가적으로 고장 났고 세계적으로 고장났다 이거예요. 그러면 고장나지 않았을 때의 인간, 본래 하나님이 완전한 것과 같이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생명과 완전한 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한번 얘기해 보자요.
그는 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못 받고 있다구요. 그러한 아들딸이 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결혼식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여러분 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봤어요? 아닙니다. 낳아 놓으면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메시아가 필요하다구요.
죄 없는 아버지가 되는 동시에 그 다음에는 죄 없는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구요. 그 다음에는, 이 세계에는 사탄의 나라가 있고 왕이 있는데, 죄 있는 이런 왕들이 전부 다 하나님을 대해 악한 놀음을 하는데 이 땅위에 있어서 이것들보다 나은 완전한 왕이 되고 완전한 여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이런 사랑을 언제 하나님이 가져 봤어요?
왜 못 가졌느냐? 사탄 때문에…. 그러니 이 사탄을 추방해 가지고 한번 가져야 된다 이거예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한꺼번에 갖다 맞춰 가지고….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가정적으로 사랑하고 국가적으로 사랑하고 세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와 그러한 백성과 그러한 아들딸과 가정을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못 이루었다구요.
우리는 타락한 조상을 가졌습니다. 타락한 할아버지 할머니, 타락한 아버지 어머니, 타락한 민족, 타락한 국가, 타락한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그 세계와는 관계없는 패들이 되어 버렸다구요. 이것을 한꺼번에 개인적으로 수리하고, 가정적으로 수리하고, 종족적으로 수리하고, 민족적으로 수리하고, 국가적으로 수리해 가지고 한 국가를 내세우기 위하여 준비를 한 것이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예수님이 온 목적은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사람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완전한 가정을 가지고 완전한 할아버지가 되고 완전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대상으로 아담 해와, 남자 여자를 지었다구요. 그런데 이들이 타락했으니까 둘 다 수리공장에 갖다 맡겨야 된다구요.
그런데 예수님은 완전한 아담의 완성자로서 왔으니 신부를 맞아야 합니다. 신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부를 얻어 결혼을 했으면 예수님의 아들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 아들딸은 죄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오늘날 기독교니 로마 가톨릭이니 무슨 장로교니 하는 이런 교파는 다 없었을 거라구요. 예수님이 왕이 돼 봤어요? 이게 돼야 완전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이걸 못 했으니 다시 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와야 되는 거라구요. 제1이스라엘인 이스라엘이 이걸 못 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래서 제2이스라엘권을 대신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원인과 결과는 같고 주체와 대상은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목적으로 왔다면, 하나님이 주체이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신부 될 사람이 대상이라면 사람으로 와야지요. 어린양잔치가 뭐냐 하면, 6천년 전에 하나님이 사랑이요, 생명이요, 이상의 주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다가 축복을 해서 인류의 선한 조상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때 인류의 조상으로 못 만들어 놓은 것을 역사 이래, 끝에 와 가지고 다시 축복해서 하나님이 인류 앞에 선한 조상으로 등극시키는 거라구요.
무형의 부모와 실체를 가진 부모를 중심삼고, 무형의 하나님과 실체의 하나님이 하나되는 데서 아들딸을 낳아야 영원한 영을 가진, 무형의 영을 가지고 실체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구요. 우리의 영적 주입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신부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즉 영적인 플러스 마이너스와 실체적인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이렇게 영과 실체가 하나로 합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태어난 아들은 영원한 영생의 영을 받고 영원한 실체로서 죄 없는 아들딸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실체적인 아버지를 부를 수 있다구요. 두 아버지를 안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영원한 생명과 사랑과 이상으로써 종횡으로 하나 못 된 것을 비로소 인류의 종말시대에 영적인 하나님과 실체의 참부모가 하나돼 가지고 영육으로 지상과 천지가 배합되는 여기에서 자녀의 명분을 복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러한 죄 없는 부모로부터 죄 없는 아들딸, 죄 없는 종족, 죄 없는 민족, 죄 없는 세계를 한꺼번에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이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와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이상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하나를 이루어 가지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고 사탄의 흔적이 없는 그러한 세계가 되어야 이 지상이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완전히 주체와 대상으로서 부자의 관계로서, 완전히 죄 없이 성별된 부자의 관계로서, 완전히 죄 없이 성별된 거룩한 뜻 가운데 일치가 돼 가지고 참부모와 더불어 참자녀, 참종족, 참민족을 중심삼고 지상천국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어디든지 연결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만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세계로 화해야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바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인 것을 여러분이 오늘 저녁 기억하시고,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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