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인간의 욕망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의 소원이 뭐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 사람들의 소원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원, 어떤 사람은 돈을 모아야 되겠다고 하는 돈에 대한 소원, 어떤 사람은 권력에 대한 소원, 어떤 사람은 사업에 대한 소원,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소원 가운데 공통분모로 원하는 소원이 뭐냐? 이게 문제입니다.

대개 이 세상 사람들은 경제문제를 제일로 하며 살고 있습니다. 돈,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만일 돈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예를 들어 말하면 황금판 위에 내가 앉아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이 행복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돈에 비례해 가지고 불안이 더 개재한다는 겁니다. 불안이 개재해요.

언젠가 이목사가 1억 5천만 원인가 되는 돈을 갖고 있었는데, 그양반에게 1억 5천만 원이면 많은 돈이지요. 그 돈을 맡아 가지고 밤잠을 못 잤다는 겁니다. 이거 돈 가진 것을 알게 되면 도적이 들어와서 전부 다 훔쳐 갈까봐 밤잠을 못 잤다는 거예요.

세상에 욕심이 많다 하는 사람이 아무리 그 욕심의 뜻을 다 이룰 수 있는 황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지식이라는 것은 무한한 거예요. 지식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자꾸 늘어 나가는 겁니다. 안 그래요? 사회가 복잡해 가면 갈수록, 이 문화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간단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복잡해 간다 이겁니다. 그 복잡한 지식을 전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자기가 있는 전문분야…. 결국 요즘에 와서는 모든 것이 분과제도가 돼 가지고 전부 다 조그마한 분야의 지식을 중심삼고 자기 생애의 표준으로 바라보고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내가 전부 다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다 이겁니다. 지식을 아무리 탐구했댔자 다 알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천 가지를 다 알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부분밖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과연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냐? 전체에 둘러싸인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해서 전체의 지식을 안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것은 전체 지식권 내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지식을 안 자리에 서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볼 때, 그것은 만족할 수 없는 겁니다.

또 권력, 요즘에 말하는 권력, 소위 권력구조라 하게 되면 정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데 그 정치 권력, 그거 권력이예요. 대한민국의 대통령,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게 되면 그 사람의 욕심이…. 모든 나라 가운데 대한민국이 최고의 나라가 아니다 이겁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여기서 '꽝' 하면 그 '꽝' 하는 울림이 세계로 울려지지 않는 다 이겁니다. 아시아의 한 모퉁이에서, 동북 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있어서 뭐 찧고 까불고 야단이다 이거예요. 거기서 야당이니 여당이니, 뭐 어떻고 어떻고….

그래 대통령이 됐다 할 때, '아, 나만 좋다' 이럴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 옆에는 큰 소련이 있고, 중공이 있고, 일본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와 비교할 때, 언제나 그 틈바구니에서 운신하려니 모든 것에 지장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 '아이구, 나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겁니다. 권력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러한 제한된 권력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권력을 원한다고 보는 겁니다.

돈을 갖고 있더라도 초월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그런 자리에서 필요할 수 있는 돈…. 내가 돈을 가졌으면 어디든지 쓸 수 있어요. 어디 가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한국 돈 가지고 저 미국 가서 쓸 수 있어요? 요즘에는 물론 교환해서 쓸 수 있지만 말이예요. 그 돈만 가지고는 안 돼요. 그 돈 배후에 있어서 금이 보장되어 있어야 된다구요. 돈 가치 문제도 차이가 벌어지는 겁니다. 여러 나라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돈이 우리의 욕망을,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의 소원은 사랑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우리들 하게 되면 머니까 '내 소원, 내 원'으로 하자구요. 내 원이 뭐냐? 눈을 보고 '눈아, 네 소원이 뭐야?' 하고 물어 보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내 소원은 보는 것하고 웃을 때 싹 웃어 줄 수 있는 …' 눈웃음이라는 말 있지요? 눈도 웃는 다구요. 코웃음, 코웃음은 빈정거리고 안 된 것을 비웃게 될 때 웃는 겁니다. 코웃음, 입웃음, 얼굴웃음 다 있는 거예요.

눈보고 '야야, 눈아! 네 소원이 뭐냐?' 이렇게 물어 보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잘 보는 것이다'라고 하겠어요? 잘 보는 것 중에 제일 좋다는 것이 뭐냐? 잘 보는 가운데 제일 잘 볼 수 있는 것이 뭐냐? '호떡집에 가서 호떡 보고 먹고 싶다' 그래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코보고 '네 소원이 뭐냐? '고 물으면 코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나쁜 냄새 맡기 싫다. 좋은 냄새, 향기로운 냄새'라고 합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천년 만년 맡아 보라구요. 그 코도 말이예요, '아이구, 향기가 싫어' 할 거예요. 보는 것도 그렇잖아요? 여러분, 보는 것도 매일같이 같은 것만, 이것이 제일 좋다고 모든 것 가운데서 택해서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것을 천년 만년 본다고 해봐요, 눈이 어떻게 되겠나?

또, 입을 보고 '야, 입아! 네 소원이 뭐야?' 하고 물어 보면 입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내 소원이 뭐겠노, 맛있는 것 먹는 거지'라고 합니다. 그래 맛있는 것 매일 먹어 보라는 겁니다. 중국 요리 세 끼만 먹으면 깍두기가 먹고 싶고 고추장이 먹고 싶습니다. 서양에 가게 되면 그런 것을 잘 느끼게 됩니다. 서양 요리를 매일같이 먹게 되면 한국 된장찌개가 생각납니다. 이 된장찌개가 없으면 말이예요, 구수한 숭늉이 달고 맛있다고 하는 커피보다 낫다 이겁니다. 그래 입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 입이 천년을 먹더라도 좋고 또 좋고 또 좋고, 또 천년 만년 가더라도 좋다고 할 수 있는 그 맛이 뭐냐?

또, 손을 보고 '손아, 너는 촉감을 좋아하는 데 네가 만지고 싶은 게 뭐야?' 하고 물으면 손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보들보들한 것이다' 할 겁니다. 보들보들한 것만 만져 보라구요. 감각을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울퉁불퉁한 그런 것을 만지다가 보들보들한 것을 만져야 감각이 좋지, 보들보들한 것만 아침 저녁으로 만지면 마비가 되어서 만지는 건지 뭔지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난 그렇다고 생각해요. 난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웃음)

자, 발은 걷는 것이 소원인데 발보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하고 물으면 발이 뭐라고 하겠어요? '구경가는 것', 구경을 가더라도 자기가 구경가나요? 눈이 보지요, 눈이. 구경하면 뭘하는 거예요? 구경하게 되면 말이예요, 그 눈만 좋아하나요? 나쁜 것을 보면 얼굴이 심각해지고, 좋으면 얼굴이 웃고 말이예요, '그래, 잘 해라. 잘 해라' 이러고 있다구요.

이렇게 볼 때 나의 소원이, 나의 원이 뭐냐? 사지백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뭐냐? 여러분들은 말하기를 '뭐겠느냐?' 하면 물론 통일교회 교인들은 잘 알 것입니다.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면 사랑방을 연상하는데, 옛날 사대부의 집 안방에는 안방마님, 사랑방에는 영감님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대부의 훌륭한 풍습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사랑이 좋은 것이냐 이거예요. 사랑이 좋은 거예요? 사랑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왜? 잘 사랑하면 좋지만 잘못 사랑하는 날에는 모든 것이 다 깨져 나갑니다.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세냐 하면 말이예요, 우주보다 더 세다는 거예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큰 대장부가 있어 가지고 호령하면 천하가 다 움직이는 당당한 그런 위인이 있다고 하자구요. 그 위인이 사랑의 상처를 입게 될 때는 제일 약자 중의 약자가 아니냐! 폭삭 녹아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폭삭 녹아 버린 사람이라도 사랑의 힘만 펌프질해서 보급해 줄 수 있으면 이게 부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말리더라도 말릴 수 없게끔 힘이 강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은 어떻더냐? 둥글더냐, 납작하더냐, 뾰족하더냐, 길더냐, 짧더냐, 쓰더냐, 달더냐? 이런 말들, 상반된 내용을 가지고 둥글둥글 굴러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통일교회는 사랑을 제일이라고 하는데, 사랑이 제일 좋다는데…. 그러면 진짜 우리의 소원을 따져 볼 때, 어떻게 살고 싶으냐?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게 될 때는, 사랑을 받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이게 보편적인 관념이예요. 사랑을 받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은 절대 필요해요. 일생노정에 있어서 사랑을 빼 버리면 그건 무미건조한 것입니다. 모든 나무에 있어서의 진액과 같이, 우리의 몸뚱이에 있어서의 신경기관과 같이 이 사랑의 맥박이 살아 있어야만 모든 것이 원활해지고, 모든 것에 미칠 수 있는 힘이 개재할 수 있지, 사랑의 맥박이 약하게 될 때는 모든 힘은 축소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 앞에 '야, 인간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묻는 다면,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신앙도 필요하겠지만,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믿음, 사랑, 소망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필요하고 소망도 필요하지만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이렇게 말했다구요. 사랑이 왜 필요하냐? 그런 문제는 생각지 않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소원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사랑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물어 본다면 그 인간이 대답하기를, 지혜를 원한다는 사람이…. 솔로몬 같은 양반은 지혜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가 있더라도 사랑을 배제한 지혜는 이미 끝장이예요. 그것은 인간 앞에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혜는 뭐냐 하면 모든 사랑의 길을 촉진시킬 수 있고, 사랑의 길을 완성하는 데 그것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거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 사랑의 길을 멀게 하는 지혜는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말은 반드시 사랑을 완전한 것으로 접근시킬 수 있는 데 있어서 필요한 표시적인 말이지, 그 지혜 자체가 제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혜를 갖겠어요, 사랑을 갖겠어요? 어때요? 일자무식한 사람한테 물어 본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무엇을 원하겠어요? 「사랑」 사랑.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문제예요. 사람한테 소원이 뭐냐고 물어 보면 말이예요, 간단한 겁니다. 사랑을 하든가 사랑을 받든가 둘이예요. 사랑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랑할 때까지는 발전하는 겁니다. 사랑을 진짜 받겠다고 하는 그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망하지 않아요. 사랑을 하겠다든가 사랑을 받겠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져야 돼요. 이걸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이 성립돼요.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보다 받겠다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뭐냐?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겠어요,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이 많겠어요? 어떠한 사람이 많을 것 같소? 받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소, 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소? 아침부터 정신이 안 든 모양이구만. (웃음) 그걸 얘기해야 내가 다음 얘기를 하지요. 그건 필요한 말이예요. 사랑 받겠다는 사람이 많소, 안 받겠다는 사람이 많소? 「받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도 사랑 안 받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에게 사랑 많이 해라' 이러는 거예요. 오늘날 이 나라의 대통령도 잘못한 일이 많더라도 '사랑 해줬으면…' 이럽니다. 정당이 가는 길이 올바르지 못한 그런 놀음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을 해줬으면, 사랑을 받았으면 합니다. 이게 문제예요.

오늘날 이 세계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말이예요. 지금 유물과 유심이 싸우고 있어요, 유물과 유심이. 물질이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 결정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아, 이거 물질이 먼저야' 합니다. '유물론 일색 천하통일', '유심론 일색 천하통일' 이게 문제입니다.

선후가 잘못됨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파탄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사에까지 부딪치게 됐다 이겁니다. 그런 종착점에 끌어다 놓았다 이거예요. 그럼 어떤 것이 먼저냐? 이건 지극히 중대한 문제예요. 역사 이래 철학이 지금까지 여기에 모든 정력을 다 기울였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냐? 인류가 이것의 선후를 가려 놓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가 올 수 없습니다. 그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사랑을 받겠다는 것하고 사랑을 하겠다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이라는 것이 확정지어 있지를 않아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 본연의 본심을 두고 볼 때에,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 내가 원하는 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틀림없이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하든가 받든가 그 자리에 있어야 될 텐데, 어떻게 해야 그 자리를 영속시킬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문제는 어느누구도 생각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 사랑을 좋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것을 영속시킬 수 있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뭐예요? 하나님의 원이 무엇이겠느냐? 이 타락한 세계의 인간은 관두고 하나님편에다 문제를 갖다가 붙여 놓고 '하나님의 원이 뭐요?' 이러면 하나님이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생각하겠어요, 재까닥 대답하겠어요? 재까닥이라는 말은 평안도에서 쓰는 말이지만. 즉각적으로, 무슨 대답 하겠어요?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대답하겠지요? '하나님의 원이 뭐요?' 하고 물으면 한참 생각하겠어요? 즉각적으로 '뭐긴 뭐야, 사랑이지' 이런다구요. 그럼 사랑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사랑을 받기 위한 하나님이요, 사랑을 하기 위한 하나님이요? 어떤 것이 먼저요?' 하고 하나님에게 묻는 다면 하나님은 뭐라고 그러겠어요? '나는 본래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있느리라. 아멘!' 하신다구요. 이러면 거 얼마나 좋아요. '나는 본래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있느니라' 하겠어요? 태초부터 혼자 계시는 분이, 이 세상에 혼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인데 '나는 본래부터 하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있느니라' 하면 그 말 자체가 모순이라는 겁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었는데 누가 사랑을 하느냐 말이예요.

사랑을 받겠다는 그 말이 모순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하나님은 생각을 했다는 거지요, '야, 이거 안 되겠구만' (웃음) 나 혼자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자신이 미친 녀석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대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대 세계, 상대 존재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신학의 관이 여기서 갈라집니다. 절대자와 피조물, 피조물과 절대자는 같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어떻게 같이해요? 하나님의 능력과 어떻게 같이해요? 하나님의 지혜와 어떻게 동반할 수 있어요? 그건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학을 뜯어고쳐야 됩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의 중심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돈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필요로 한 겁니다. 이런 놀라운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하나님 혼자 사랑받겠다는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됐다 할 때에는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무런 존재가 없는 겁니다. 결론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이 세계에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대상자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볼 때에, 피조세계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배포 큰 존재가 누구냐 이겁니다.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고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에서 제일 가겠다'고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돼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체이신데 그 배포를 가진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여건을 갖출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인간밖에 없어요. 안 그래요?

인간의 욕심이 왜 이렇게 커요? 여러분 욕심 갖고 있어요? 그 욕심대로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으면 거 얼마나 분해요? 욕심은 갖고 있는데 욕심대로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원통해요? '나는 욕심대로 해보기 전에 죽을 수 없어, 절대 죽을 수 없어' 이렇게 떼쓴다고 안 죽게 돼요? (웃음)

최고의 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심

욕심이 얼마나 크더냐? 또 욕심이 얼마나 작더냐? 욕심은 크다면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요, 작다면 바늘 구멍도 파고들어가려고 한다구요. 여러분, 바늘 끝에 내가 구멍 뚫어 가지고 들어가고 싶다 하는 마음도 갖고 있지요?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내가 실오라기가 되어서 가는 실같이 싹 천리까지 늘어났다가 싹 합쳐 가지고 이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마음은 그런 거예요. '야, 이 바늘 끝을 내가 파고들어갈 수 있으면 거 얼마나…' 그런 걸 생각해요. 제일 작은 데서부터 제일 큰 것을 걸고 늘어져 가지고 달려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그렇소. 여러분,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물건이 얼마나 많아요? 세균 같은 것. 사람이 듣는 소리도 중간 크기의 소리밖에 못 듣는 겁니다. 천 싸이클만 넘어가 버리면 귀에 안 들린다구요.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의 욕망을 충당시킬 수 있어요? 자, 하나 가졌으면 그다음 또 뭐 갖고 싶어요. 또, 둘이 있으면 손이 나가요, 안 나가요? 이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좋은 것이 있는데 하나를 쥐었으면 '됐다' 그래요, 또 가요? 「또 갑니다」 또 쥐고, 그다음에 또 셋 있으면 또 가요, 안 가요? 「갑니다」 이게 얼마나 갈 것 같아요? 「영원히」 영원히 갑니다. 영원히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요즘에 무슨 돈 많은 사람들도 말이예요, 재벌가도…. 난 재벌이 아니예요. 잼대로 재 봐 가지고 벌받을 것이 재벌이다! (웃음) 왜? 그저 낚아채는 거예요. 자기들이 낚아채는 거예요. 뒷 배경이야 어떻든간에 낚아채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느냐 이겁니다. 욕망이 정착하고 싶은 최종 터미널이 어디냐? 우주에서 제일 좋은 것은…. 그렇지요, 다들? 얼굴들은 제멋대로 생기고 자기 멋대로 살면서도 세계에서 제일인 것은 내 것 만들고 싶어하는 겁니다. 그런 욕심 있어요, 없어요? 없는 사람 때려죽이라구요, 하나도 없으니까. (웃음) 거적대기를 덮고 자는 거지도 '세계에서 제일인 것을 내가 갖고 싶다' 그런다는 거예요.

오늘 아침 여기 통일교회에 모인 사람이, 한 350명 내지 400명이 되겠구만. 이 무리들이 원하는 것만으로써 여기서 시작해 가지고 이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 후까지 계속하는 겁니다. 대홍수가 나 가지고 흘러 나오는 물을 그 누가 전부 막겠다고 하면 그 물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오늘날 우리 욕심에서 흘러 나오는 홍수를 막겠다고 해 가지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있었느냐? 막을 수 있는 역사가 있었느냐 이겁니다. 있었어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있었을는지 모르지 뭐. 없었다는 겁니다. 욕심의 흐름을 어느 누가 막아 가지고 '이런 물욕은 여기서 스톱. 이제부터는 못 가. 저나라에 못 들어가' 아니라구요. 욕심은 무한히 확대되는 겁니다.

자, 그 욕심이 어디서 왔을까요? 욕심의 조상이 누구냐? 욕심의 조상이 누구겠어요? 욕심의 조상이 누구예요? 어머니 아버지이지요, 뭐. (웃음) 어머니 눈을 들여다보고 아버지 눈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그놈의 눈은 욕심쟁이예요.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것을 내가 가졌으면…' 할 수 없어서 이러고 있지, 가질 수 있다면 매일 나가서 마음대로 하고, 생사를 개의치 않고 막 이럴 거라구요.

욕심의 조상이 누구라구요? 「어머니 아버지」 누구라구요? 어머니 아버지. 그 어머니 아버지가 욕심의 조상인데 나는 뭐예요? 나는 욕심쟁이예요. 가능하지 않은 일을 하고 그저 질서를 알지 못하고 그저 황당무계하게 날뛰는 패들을 쟁이라고 하는 겁니다. 멋쟁이, 무슨 쟁이, 무슨 쟁이 많지요? 그게 욕심쟁이 아니요? 얌전한 아가씨들 뭐 이래 가지고 아주 새침데기 인형같이 한 곳만 깜박깜박하면서도 그 마음에는 천하를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왕이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거 부정할 수 있어요? '아이고, 내가 좋은 학교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지' 이런 것들도 내 욕심을 조금 더 채워 보기 위한 거라구요.

그러면 마음보고 '네가 원하는 최고의 목적이 뭐야?' 하고 물어 보면 공부라고 해요? 노벨상이예요? 내가 노벨상받은 학자들을 만나서 '아, 거룩하신 학자님, 위대하신 학자님, 영원히 존경할지어다. 아멘!' 이러면 '아아아' 그런다구요. (웃음) 아직까지 공부는 시작도 안 했다는 거예요. 이제부터 해야 되겠다고 그러더라구요. '모르는 게 없이 세상 것을 다 아니 천하에 행복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겠구만, 노벨상을 받았으니 말이야' 노벨상도 그만이예요. 노벨상 이상의 것이 있으면 그건 다 접어 놓고 또 갖고 싶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보면, 이 온 세계, 이 땅덩어리, 땅 주인이 돼 가지고….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세계 대통령을 바란다구요. (웃음) 세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빠르다면 그걸 바랄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세계 대통령이 떡 돼 가지고, 욕심 바가지가 돼 가지고 네활개 펴고 잠이나 자면 되느냐? 아닙니다. 가만 보니까 우주가 있다 이겁니다. 우주 대통령 되고 싶어요. (웃음) 우주 대통령이 떡 돼 보니 그 위에 점잖게 앉아서 '야, 여봐라. 문 아무개야!' 하고 부르는 분이 있다 이거예요.

거 있다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웃음) 물어 보면 대답하라구, 웃지 말고. 우주 대통령이 떡 돼 가지고 배통을 내밀고 행차를 하고, 명령 일하에 천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판국에 떡 앉아 있는데, 척 위를 바라보니 '야, 문 아무개야!' 하는 녀석이 있다면? (웃음) 하나님 얘기 안 했으니 웃지 말라구요. 그건 녀석이라고 해도 좋다는 겁니다, 하나님 얘기는 안 했으니까. 녀석이 있다면 기분이 좋을싸, 나쁠싸? 「나쁠싸」 거 나하고 닮았구만. (웃음) 그런 거예요.

제일 높은 것은 내 것. 그래 우주 대통령이 떡 됐는데, '야, 문 아무개야!' 하면 '왜 그래?' 한다구요. (행동으로 해보이심. 웃음) 그런 우주 대통령이 됐다면 필요한 게 뭐예요? 우주를 마음대로 똘똘 굴리고, 위의 놈을 아래로 가게 하고 아래 놈은 위로 가게 하고, 밖의 것은 속으로 가게 하고 속의 것은 밖으로 가게 하고,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는 한 그 이상의 힘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그럴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또 원할 것이 아니냐! 그건 틀림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갔다고 모든 것이 만능의 자리에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인간은 제2의 존재입니다. 제1의 존재가 아닙니다. 원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래 그 위에, 내 위에 아무개야 하는 그분이 있어 가지고 '네가 원하는 것을, 우주 대통령보다도 더 큰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그걸 내가 소개해 줄께'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이놈의 허리띠가 자꾸 내려가서 조이려니까 왜…. (웃음) 허리띠에 구멍이 하나 없는 모양이구만. 또 '선생님이 뭘하나?' 이상하게 생각해 가지고 '이이' (표정지으심) 이러기 때문에 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말하다 보면 자꾸 내려가거든, 배가 좀 나왔으니까. (웃음) 배가 나왔으니까 잘먹고 잘산다는 얘기지요? (웃음) 옛날에는 내 배가 제일 홀쭉했었는데 요즘에는 배가 자꾸 나와서 걱정이라구요.

최고의 자리에 계신 하나님도 대상이 없으면 기쁨이 없어

자,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앉아 있댔자 거 무슨 재미예요? 남자 혼자 턱 버티고 앉았으면 거 재미있겠어요, 없겠어요? 재미있겠어요, 없겠어요? 「재미없습니다」 재미없다고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욕심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재미있다고 할 때는 점점 파고들어간다는 겁니다. 끝까지 올라가도 재미가 없어요. 밥 먹을 재미가 없고, 볼 재미가 없고, 만질 재미가 없고, 냄새 맡을 재미가 없고, 웃을 재미가 없고, 잘 재미가 없고 무엇이든지 재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 최고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뭘해요? 그건 더 큰 사고지요. 큰 사고라는 겁니다. 그런 욕망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느냐 이겁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혼자 있으니까,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어도 재미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혼자 있어 가지고 재미가 있어요? 재미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아무리 잘났다고 뻐기는 하나님이라도 재미가 있을 게 뭐예요, 혼자.

하나님은 눈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코는? 귀는? 얼굴은? 손은? 발은?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과 같아요. 인격적 신입니다. 인격적 신이니 사람과 같아요. 지·정·의를 갖춘 인간과 같아야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은 이런 얘기를 안 하지요? 모르지요? 하나님 자신도 재미가 없으면 못 살아요. 하나님이 재미 없으면 뭘해요? 잠만 자지. (웃음) 저나라 영계는 잠이 필요 없다구요.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예요.

자, 이거 재미없이 천년 만년 살아 있으니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재미가 없으면 그 하나님 불행하겠어요, 행복하겠어요? 어디 대답해 보라구요. 불행하겠어요, 행복하겠어요? 「불행합니다」 왜? 「재미가 없으니까요」 왜 재미가 없어요? 대상이 없기 때문에. 꽃도 대상이 없으면, 꽃이 딱 되어…. 꽃이 이렇게 흔들흔들해야 재미가 있지요. (행동으로 해 보이심) 이거 가만있지 않고 이쪽 갔다가 왜 또다시 와요? 재미가 있으니까. 대상이 없으면 재미가 없는 겁니다.

재미를 좋아하는 하나님의 심정세계…. 기성교인들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말했는 데 하나님이 무슨 재미를 좋아하노' 이런다구요. 이런 목사들은 죽어 자빠져야 돼요. 꺼져야 돼요. 일찌기 꺼져 버리라는 겁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놀음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은 최고의 욕망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도, 조그마한 아가씨들도 하나님 상대하고 싶지요? 물건을 사더라도 하나님의 집에서 사고 싶지 그 가까운 옆 동네에 가서 사고 싶지 않을 거라구요. 멀더라도 하나님의 집에 가서 사고 싶지….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 하다 시간이 벌써 40분이 지나갔구만. 자, 이제 그만하면 정지작업이 다 됐다구요.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대상이 필요해요. 이의 있어요? 대상 중에 무슨 재미? 종합적 재미, 통일적 재미. 여러분들은 어떤 재미를 원해요? 분파적 재미를 원해요, 종합적이고 연합적이고 통일적인 재미를 원해요? 연합과 통일은 어떻게 달라요? 어떠한 재미를 원해요? 연합적 재미예요, 통일적 재미예요? 「통일적 재미요」 통일적 재미는 뭐예요? 주체성을 지니는 겁니다, 본질을 통해서. 내가 동기가 돼 가지고 다 좋게 되는 겁니다. 좋은 재미를 보더라도 내가 동기지, 피동체가 아닙니다. 연합적 재미라는 것은 서로서로 상대되는 겁니다. 통(統) 자는 거느릴 통 자예요. 그래 어떤 것을 좋아해요? 통일적 재미를 좋아해요, 연합적 재미를 좋아해요? 「통일적 재미」 어째서? 하나님이 그런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럼 재미는 무엇을 중심삼은 거예요? 축구경기 한다, 마라톤 대회 한다, 그거 한편에서는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죽을 지경이지요. (웃음) 그거 뜀박질하는데 다나까든가 누구든가? 일본에 무슨 선수? 다나까든가? 뛰는 거 보니까, 나도 옛날에 뛰어 봤지만 여기서 쉰내가 난다구요, 다리도 아프고. '벼락맞을 자식이지, 어떤 녀석이 이런 놀음을 했어?' 마라톤이고 무엇이고 욕을 하며 뛴다구요. 그런 생각이라도 해야 뛸 수 있지 그냥 뛰었다가는 못 뛰는 거예요.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욕이라도 해야 빨리 뛴다는 거예요. (웃음) 두 시간 20분 가까이 뛰는데 무슨 재미로 뛰겠어요? 나 죽으러 간다, 살려고 간다, 누구 만나러 간다, 이렇게 해야 피곤도 덜하더라 이겁니다. 내가 마라톤도 해봤다구요. 말하지 말라고 기침이 나는구만. 빨리 그만둬야 되겠구만.

통일교회의 문은 좁아지고 사람들은 몰려올 때가 온다

하나님의 재미는 뭐예요? 하나님이 좋아할 재미가 뭐겠어요? 꽃 보고 재미있다고 하겠어요? 그거 자기가 다 만들어 놨는데, 꽃 보고 얘기해 봐야 무슨 재미가 있어요?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는 서로서로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충당시켜 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된다구요. 그 재미가 뭐예요?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뭐예요? 사랑이예요. 하나님 가라사대 '아, 나는 사랑이다'라고 암만 하면 뭘해요, 상대도 없는데? 미친 녀석이예요. (웃음) 상대가 있어 가지고 사랑이 필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귀한 이 우주를 바라볼 때, 거기는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돼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제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증거할 때가 온다구요. 멀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증거한다구요. 그때 통일교회에 들어오려고 '아이구 통일교회로 가자' 통일교회의 문은 좁은 문인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자' 이래 가지고 홍수가 나 가지고 다 밀려 쓰러져 죽을 거라구요. 내가 그때는 문을 점점 더 좁히려고 그래요.

요즘에 축복해 주기를 바라지요? '선생님 왔으니까 이제는 축복해 주겠지' 해요, 이놈의 망할 간나 자식들. 축복이 그렇게 싸구려야, 이 쌍것들! 안 해줘. 어디 시집 장가 가나 보자, 통일교회 교인들. 어디 시집 장가 가나 봐라. 똥집이 타고 굳은 똥을 못 누어 가지고 한 10년 동안 고생해 봐라. 굳은 똥 못 누면 큰일이라구요. 뭐 이런 똥 얘기한다고 뭐라고 그럴 거라. 똥이 거룩한 거예요. 인간세계는 안된 것이라고 하지만 식물의 세계는 똥 이상 거룩한 것이 없어요, 차원이 다를 뿐이지. 해봐라 이겁니다. 축복 안 해줄 겁니다. 내가 한 40년….

요사스러운 세상, 믿을 수 없는 세상, 남자 여자 이렇게 해 가지고 뭐 문란한 세상, 다 똥개 같은 세상인데 거 통일교회에 가 보니까 통일교회의 그 결혼이상이, 가정이상이 멋지거든요. 미국에서 지금 나한테 편지가 오는 데 '문 선생, 당신 결혼이상이, 가정이상이 멋진데 내가 이번에 합동결혼식에 가입할 테니 해주겠소?' 이렇게 문의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웃음) 문세도 모르고 말이예요. 통일교회에서는 문세를 알거든. 혼자 결혼할 수 있어요? 쇠로 잠궈 놓은 것을 혼자 열 수 있어요? 선생님이 열어라 해야 열게 돼 있지. 그거 큰일났지요. '제발 그러지 맙시다'라고 마음으로 빌어 보라구요. (웃음) 거 빌 만하지요, 처녀 총각들? 둘이 붙어 연애해 보라구요. 재까닥 걸려 버리는 겁니다. 마음대로 해보라구요,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누더기 보따리를 싸고 누더기 옷을 해 입었다구요. 비단 창고가 수두룩한데 누더기 보따리, 그건 전부 다 누더기 창고 거름판으로 가는데 그런 거름더미를 찾아가겠어요? 거 시시한 문선생이 아니예요. 오색 찬란한 것으로, 뭐예요? 뭐가 제일 좋은가요, 비단 중에? 무슨 양단 옷 뭐 이래 가지고 그런 것을 화려하게 만들어 입고 '나 봐라' 이렇게 한번 살고 싶다구요. 내 그럴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았다구요. 내가 도적질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구요. 돈도 있어요.

내가 차를, 링컨 같은 차를 한 열 대 달아 가지고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를 하나 샀으면 좋겠다구요. (웃음) 타기는 나 혼자 타구. 속도를 그렇게 해 놓고 '빵' 소리치면 자동적으로 다 비킬 겁니다. 이거 얼마나 복잡해요? 이거 얼마나 답답해요? 이 길로 가야 되고, 그 길을 따라 다녀야 되는 거지요. 천리 길을 달리더라도 그 길을 따라가야 돼요. 어떤 때는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를 만드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나쁜 것이 아니예요. 링컨을 타고서 소리를 치고 꼬리를 젓고 한번 달려 보자는 겁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겠으니까 뭘 만든다구요?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 생각은 좋은 겁니다.

사랑은 상대가 있어야 움직여

하나님도 재미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양반이 누구겠어요? 세상하게 되면 이상하지요. 영원한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대왕님이 누구시겠어요?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가 만든 것 보고 재미가 있겠어요? 사랑을 하나님이 만들 수 있나요? 사랑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논리적으로 모순이예요. 사랑은 가지고 있지만, 그거 어디서 나왔나요? 물론 하나님에게서 나왔지요. 사랑이 있긴 있지만 하나님 혼자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대상이 나오게 되면 이것이 움틀거린다는 겁니다. 우리 처녀 총각들 사춘기가 되게 되면 움틀거리지요? 왜 눈을 요렇게 감노? 물어 볼까봐 그러나 왜 눈을 감아, 아가씨? (웃음) 그래 마음이 꿈틀거려요? 꿈틀거려요, 안 꿈틀거려요? 꼬리를 젓는 다구요, 이게. 이게 구정물을 낸다구요.

사랑의 바람이 불었을 때는 천하가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겁니다. 우리 할머니들 그렇습디까? 사랑의 바람이 불 때는 그 사랑의 훈풍이 얼마나 멋진지 천하가 다 아름답게 보여요. '이게 다 나를 위해 있구나' 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움직이면 전부 다 박수치는 것 같고, 내가 춤을 추면 전부 다 같이 춤추는 것 같다는 거예요. 전부 다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 시절을 맞는 처녀 총각들은, 더우기 처녀는 입이 터져서 '허허허' 웃는 겁니다. (웃음) 얼마나 웃기를 잘하느냐면 말이예요, 가을에 나뭇가지에서 잎이 다 떨어져 가지고 기가 막힌데 하나 달렸던 잎이 바람이 불어 딱 떨어지면, 그걸 보고 '하하하, 이햐'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웃음) '야, 그거 멋지다. 낙엽이 떨어지는구나' 이런다는 겁니다. 그렇게 감수적(感受的)이라는 겁니다. '왜 이러노?' 그래요? 그런 논의도 하지요. 꽃을 봐도 뜯어 가지고 맛을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난 모르지만 그런 것 같애. (웃음)

전부 다 사랑 보따리에 집어 넣으면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풍류객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소성을 인간이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이 벌어먹고 살 수 있고, 춤추는 사람이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사랑의 감성적인 본성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자극시켜 주는 날에는 돈이고 뭣이고, 비싼 극장이고 뭣이고 문제가 안 되고 찾아간다는 겁니다. 다 그렇게 돼 있어요.

그렇다면 세상의 재미 중에 제일 재미가 무슨 재미일 것인고? 공부하는 재미, 돈버는 재미, 관공리가 돼 가지고 살살해서 한 계급 올라가는, 권력구조 세계에서 한 단계 올라가는 재미, 거기에는 투쟁이 벌어져요. 모든 것이 투쟁이예요. 돈버는 데도 투쟁이요, 공부하는 데도 투쟁이요. 다 투쟁입니다. 사랑의 길도 투쟁이예요, 투쟁. 그러나 사랑의 길은 지칠 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래서 재미 중에서 제일 재미가 뭐라구요? 여러분이 재미 본 중에서 제일 좋은 재미가 뭐예요? 난 나이가 많아서 모른다구요, 둔해서. 뭐예요?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소원은 사랑받는 것

자, 그러면 오늘 답이 뭐예요? 네 소원이 뭐냐? 소원이 뭐냐?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어떻게 가고 싶어요? 어떻게 행하고 싶어요? 이럴 때는 사랑을 중심삼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좋으냐? 사랑만이 모든 오색 가지의 자극을 통일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촉감도 사랑이 흘러 나올 때는 거기에 모든 것이 맞추게 되어 있다구요. 사랑의 맥박이 뛰게 될 때는 눈도 그곳을 향하는 겁니다. 코도 입도 모든 것이 흘러 들어가게 돼 있다구요.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그렇지요, 영감님한테 말이예요. 할아버지를 동네 아이들이 보게 되면 '아이구, 할아버지 냄새나. 아이구, 냄새나' 이런다구요. 그렇지만 할머니는 말이예요, 할아버지의 냄새가, 싫다는 냄새가 구수하더라는 겁니다. (웃음) 구수하더라는 거예요. 나도 나이가 많은데 말이예요, 나이 많은 사람이 냄새나는 것 나도 싫더라구요. 우리 어머니도 가끔 날 보고 그런 얘기를 하던데, '나이 많은 냄새가 나면 안 되니 깨끗이 해야 된다'고 교육을 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교육을 받지요. (웃음)

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세상이 싫다 하는, 영감님 냄새가 싫다고 동네가 전부 다 도망가지만 그 할머니 코에는 구수하다는 겁니다. 할아버지 얼굴하고 손을 보더라도 가죽만이 있고, 이 동산 가죽이 저 동산에 왔다갔다하고 앞동산 가죽이 뒷동산에 왔다갔다하는 그 가죽 만져야 아이구, 시체 같은 맛이 가까이 날 수 있는 그런 기분 나쁜 손인데, 할머니는 그 손이 더 좋다는 겁니다. 그거 뭐가 이렇게 하는 거예요? 뭣이? 뭣이? 「사랑」 사랑인지 뭐 랑사인지 모르겠구만. (웃음) 거꾸로 해도 사랑, 바로 해도 사랑.

자, 이제 한 시간이 됐다구요. 결론짓자구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 내 소원이 뭐냐 할 때에, 나면서부터 사랑받고 싶다 그거예요. 그거 틀림없습니다. 어렸을 때 사랑을 받고 싶으니, 나에게는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잘 알았어요. 인간의 욕망을 잘 아는 거예요.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나자마자 부모가 있어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해요. 그렇지요? 「예」

점점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면 그다음에는 무슨 사랑? 사랑이 필요한데 그것이 끊어지겠으니까…. 그렇잖아요? 나이 20세가 떡 되게 되면, 어머니가 '아가야, 너는 내 젖을 먹기 좋아했으니 내 품에 들어오너라'하고 품으면 그때는 싫어한다구요. '아이구, 엄마도 노망이지. 이게 뭐야, 이게?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이런다구요. 성숙하면 그때는 말이예요, 사랑의 길을 다시 전환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성숙하게 되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준비돼 있다 이겁니다. 그것이 남자에게는 여자, 여자에게는 남자입니다. 부모를 떠나서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남자 여자들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혼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떡 결혼하고 나면 말이예요, 또 사랑하고 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아들딸을 낳는 겁니다. 아들딸을 낳고…. 물론 아들딸을 사랑하지만 아들딸이 엄마 아빠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엄마, 아빠' 하는 그 재미가 다른 재미에 못지않은 겁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아들딸의 사랑을 받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가정의 2세가 생겼다구요. 대가정이 생길 때는 그 가족이 나를 사랑하는 겁니다. 그걸 원하고 있다구요.

인간이 진정 원하는 것

그다음에는 그 가족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한 나라 안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테두리 안에 있으니 나라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거예요. 사회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세계가 있으면 세계 만민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겁니다. 하늘땅이 있으면, 영계가 있다면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의 수많은 조상, 조상으로부터 수많은 인간 후손 전체를 대신해서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의 소원이 있다면 이제는 알았다구요. 소원이 있다면 사랑받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거예요. 태어나서는 부모의 사랑, 그다음에 자라서는 아내의 사랑, 그다음에 가정을 가지고는 자식들의 사랑, 그다음에 자식들을 중심삼고 한 가족이, 일가가 살게 될 때는 가족의 사랑, 일가를 더 확대시키게 될 때는 종족의 사랑, 민족의 사랑, 국가의 사랑, 세계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어느누구나 제일 필요로 하는 타당한 답이 아니겠느냐? 거 틀렸어요?

그래서 '불쌍한 사람' 하게 되면 누구냐? 돈이 없어서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은 말이예요,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없는 것이 불쌍한 겁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혹은, 남자에게 있어서 불쌍한 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이 불쌍한 거예요. 또,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없으면 사랑을 줄 수 없고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가정이 없으면 안 돼요. 가정의 사랑을 필요로 해요. 가정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가정이 그리워요. 가정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지요? 고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는 나라가 없으면 나라가 그리운 겁니다. 타국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 백성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대한민국이 그리운 거예요. 나라가 그리운 겁니다.

저 영계를 가게 되면 말이예요,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수많은 선조들과 만나 가지고 공론하는 것입니다. '당신 어디서 왔소? 지구성 어디요? 어느 나라요? 어디요?' 거 묻고 회상하고 말하는 겁니다. '거기서 뭘하고 살았소?' 이런 말 안 하겠어요? 친구끼리 만나게 되면 자기의 모든 옛날 얘기를 하지요? 영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종지 할아버지, 수천 수만의 조상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조상들이 '너 어디서 왔어, 이 녀석아?' 할 때 '왜 이 녀석이라고 하시오'라고 하겠어요? 몇 대 할아버지인데 이 녀석이라고 해도 되지 뭐. '요놈의 자식아, 어떻게 살았어? ' 하고 반말할 때 기분 좋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기성교회에서 예수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주님! 주님!' 하고 이마가 갈라지도록 엎드려서 기도하고 다 그랬더라도 예수님이 나타나서 '이 자식아, 여기 왜 왔어? '라고 만날 적마다 해봐요. 기분 좋겠어요? (웃음) 그래도 '주님' 그래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 쌍간나들아' 하고 벌써 세 번만 하면 '에이' 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라구요. 저나라에 가서 예수님을 만났을때 예수님이 '이놈의 자식아, 여기 왜 왔어?'라고 묻게 되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이 자식아' 할 때도 사랑, '이 자식아, 이 자식아' 할 때도 사랑의 마음이 들어가 있으면 말이예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자식이라는 말이 별미라는 겁니다, 별미. 별미 알아요, 별미? 구수하고도 못 견딜 맛이라는 거지요.

사랑이 뒷받침하는 날에는 욕을 해도 매력적이라는 거예요. 거 묘하지요. 사랑의 꿀샘은 천하를 녹여 내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 번갯불의 위대함과 번갯불의 세력이 아무리 세상을 밝히더라도 그 이상 환하게, 그 이상 약동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너 어떻게 살고 싶어?' 하고 물으면 이젠 답을 알았다구요. 사랑받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받고 살겠다는 겁니다.

사랑하겠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해

그런데 사랑만 받겠다고 가만히 기다려 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으니 사랑해 주소'라고 해보라구요.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그런 녀석은 사흘만 앞에 와도 얼마나 밉살스럽겠어요? '이놈의 자식아' 이거 얼마나 답답해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사랑받기만 하고 사는 것이 원칙이라면 사흘만 나타나도 기분 나쁘다구요. 어머니가 사랑하게 되면 그 손을 붙들고…. 거 상대적 반응이 있어야 재미가 있잖아요? 사랑받겠다고 '더 해주소, 더 해주소' 하고 가만있으면 기분이…. (웃음) 사랑받겠다는 녀석, 사랑받고만 살겠다는 녀석은 사흘도 못 대해요. 부모도 못 대하고, 남편도 못 대하고, 아들도 못 대하고, 가정도 못 대하고, 나라도 못 대한다는 겁니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사람은 지혜로운데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아온 태반의 사람이 사랑을 받고…. '시집 왜 가?' 하면 '남편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이럽니다. 그 간나 데려다가 무엇에 쓰겠노? 깍두기를 해먹겠어요, 고추장에 찍어 먹기를 하겠어요? (웃음) 그런 아내는 남편에게 있어서 화통 중의 화통입니다. 매일같이 사랑받겠다고 요러고 있으면 이거 죽을지경이 아니예요? (행동으로 해 보이심) 자, 그러니까 싫더라도 그저 며칠에 한번씩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좋다는 말이라도 해야지요. 그런 결론이 나와요. 사랑받겠다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사랑한다고 하는 모양이라도 취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자, 그러면 인간은 본래 사랑받게끔 돼 있느냐, 사랑하게끔 돼 있느냐? 그거 보게 된다면, 사랑받겠다는 사람들은 환영할 사람이 없다 이겁니다. 그러나 사랑하겠다고, 밤이고 낮이고 사랑하겠다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보라구요. 사랑하겠다고 밤낮 찾아다닌다구요. 사랑할 것이 없나 하고 말이예요. (웃음) 그런 사람이 있다 손치면 반대할 사람 있어요? 정 없으면 동네 개를 붙들고도 '아이고 좋구나, 아이고 좋구나' 춘향가를 부르고, 오색 가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아이구 좋구만…' 거기서 노래를 부르고 그래도 미쳤다고 하지 않는 다구요. (웃음)

사랑받겠다고 오색 가지 전부 다 '아이구…' 암만 해보라구요, 흥미가 있나. 노래가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랑에 미쳐서 살고 싶어하는 겁니다. 사랑에 미쳐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렇잖아요?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서 판사가 되길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저 고생을 하는 데 미쳐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미쳐 가지고 자기 아들딸이 판사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미쳐 살고 싶은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서 미쳤다 할 때 그 부모는 불행한 부모냐, 행복한 부모냐? 어때요? 「행복한 부모입니다」 행복한 거예요.

사랑에 미쳐 살아야 돼요. 취해 살아야 돼요. 취하는 도수가 조금 넘으면 미치는 겁니다. 미친 사람이 별거 있어요? 미친 사람은 별거 없다구요. 순서를 거꾸로 하는 겁니다, 거꾸로. 아빠 대해서 엄마라 하고, 엄마 대해서 아빠라고 한다구요. 그것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왜 아빠보고 엄마, 엄마보고 아빠라고 그래?'라고 하지 않아요. 다 통한다는 겁니다. 사랑은 하나돼 있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취해 살아야 됩니다.

문선생도 취해 사는 겁니다. 욕먹는 재미가 얼마나 맛있는지 그걸 몰라요. 세상 사람은 모르는 겁니다. 욕먹는 맛이, 욕먹는 재미가 얼마나 맛있는지 세상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욕 안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난 그 맛을 알거든요. (웃음)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한테 내가 욕먹을 짓을 할 것입니다. 파이프를 걸어 대고 그저 독주를 하루종일 마셔 가지고 오줌을 슬슬 싸도록 취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다 도망가겠지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전체가 환영하지를 않아요. 취해 사는 데는 전체가 환영해야 돼요. 하늘이 환영하고 땅이 환영하고 밤이 환영하고 낮이 환영하고 어디나 환영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환영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인생을 취해 사는 사람이 인생다운 삶을 살고 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에, 그렇게 살 수 있는 원료가 뭐냐 이겁니다. 돈이예요?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 하나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겠다는 사람을 만들어 놓아야 평화의 세계가 와

그래서 문제는 무엇이 문제냐? 사랑받겠다고 하는 사람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두고 볼 때에, 세상은 비례적으로 90퍼센트 이상, 99퍼센트 이상, 100퍼센트 가까이가 받겠다는 눈을 갖고 있다구요. 사랑받겠다는 눈을 전부 다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랑받겠다는 눈이 뭐냐 하면, 타락한 사탄의 후계자들의 눈입니다. 이걸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전부 다 사랑을 받겠다는 겁니다, 전부 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어떻게 됐을 것이냐? 그 눈과 모든 세포와 마음과 몸의 활동 방향 전체가 사랑하겠다고 미쳤을 겁니다. 사랑하겠다고 자기가 고생하면서 취해 사는 겁니다. 그렇게 산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나라의 왕궁에 가는 겁니다. 딴 데 가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 왕궁에 들어가더라 이겁니다. 예수 같은 양반은 이 땅 위에 와서 뭘했느냐?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면서도 인류를 사랑하겠다고 취한 겁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중심삼고 취해 간 사람에 지나지 않아요. 사랑받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방향 전환을 세계화시킨 그때에는 평화의 세계가 옵니다. 지금까지 사랑받겠다고 하는 눈을 가진, 사랑받겠다는 의식 가진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평화의 세계가 영원히 안 와요. 영원히 안 옵니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나니, 사랑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평화의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통일의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류 앞에 최후에 선언한 과제인 것을 알아야 돼요. 숙명적인 과제예요. 숙명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운명은 자기 노력으로 개조할 수 있고 변경할 수 있지만, 숙명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인 레버런 문이 미국에 가 있더라도, 아무리 백인 사회에 가 있더라도 동양 사람을 면할 수 있어요? 그건 숙명이예요.

우리 인간이 이제 바로잡아야 할 하나의 숙명의 과제가 남은 것이 뭐냐? 사랑하겠다고,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위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위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만드는 여기서부터 세상은 뒤집어지는 겁니다. 거 맞소, 안 맞소? 「맞습니다」 사랑을 받기 전에, 내가 사랑을 받으면 반드시…. 사랑이 움직이는 방향은 그래요. 열 사람이 오더라도 그 사랑이 감소돼서는 안 돼요. 이게 철칙이예요.

사랑을 하겠다 하는 것이 본연의 중심

오늘날 이 힘의 세계에 있어서는 말이예요, 과학의 세계에 있어서는, 힘의 밸런스를 취한 세계에서는 말이예요. 전기로 말하면 들어온 힘과 나가는 힘을 보게 되면 들어오는 힘보다는 나가는 힘이 작아지는 겁니다. 작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식은 그게 아닙니다. 들어오는 힘보다도 나가는 힘이 더 커져야 돼요. 그건 뭐냐 하면, 내가 사랑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본래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을 받게 되면 거기에 플러스시켜서 돌려보내는 겁니다. 확대되는 겁니다.

내 자신이 받아 가지고 큰 것을 소모시키게 되면, 이것은 우주의 발전 원칙에 위배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인들이 말하기를, 공자님이 말하기를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을 받는 겁니다. 불선을 행한 사람은 화를 받는 겁니다. 불선은 뭐냐? 자기 중심삼고 끌어당기려고 하는 겁니다. 선한 사람은 나를 중심삼고 뭘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확실히 가려 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선이 도대체 뭐냐? 악이 도대체 뭐냐? 악은 받겠다고 하는 겁니다. 받고 또 받겠다고, 계속적으로 영원히 내 것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선은 뭐냐 하면 지속적으로 주고 영원히 주는 겁니다. 주다 보니, 한번 주고 돌아가고 자꾸 돌아가니 난 자꾸 올라간다는 겁니다. 자꾸 커지니 자꾸 올라간다는 겁니다. 올라가다 보니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돌고 돌면 이것도 커집니다. 자꾸 커진다구요. 커지니까, 높아지니까 하나님 자리에 가서 재까닥 만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겁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려는 위대한 목적을 가진 욕망이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에 사랑은 위대한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구요. 알겠어요? 「예」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받겠다고 하면 피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든 자체가, 창조 자체가 하나님이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본연의 중심이예요. 원인의 중심이예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고 주고 또 주고 더 주고 영원히 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응을 해 가지고 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돌려주는 날에는 자꾸 커지게 마련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받겠다는 이치를 가졌더라면 들어오는 사랑의 힘을 전부 다 소멸시키는 것이요, 주겠다는 원천의 마음을, 본연의 마음을 우리가 가졌으면 들어오는 사랑보다 언제나 더 큰 것으로 돌려보내는 거예요.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진정 나를 사랑하는 의미에서 100불에 대한 선물을 보내 왔으면 나는 110불, 120불, 200불의 선물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왜? 그 마음에는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위하는 본래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겠다는 데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점점 커지는 거예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행복한 부모예요. 자식이 그 사랑을 부모 앞에 돌려줄 때에는 부모는 죽으면서도 자식 가진 것을 자랑합니다. 천하에 자랑하면서 죽어간다는 겁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위하는 남편과 아내가 있으면 행복한 부부예요. 이제는 행복을 알았어요? 행복한 부부가 뭐냐 이겁니다. 그건 왜? 둘이 위하는 그 사랑이 동네를 살리고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서 퍼져 나간다는 겁니다. 왜? 자꾸 사랑하면 점점 커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제일 원하는 것이 뭐냐? 사랑의 자리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사랑받겠다고 하는 것이 탈이예요. 이 바탕을 뒤집어 놓은 겁니다. 그게 뭐냐? 타락이예요. 하나님을 배척했다구요. 우주를 위해 줘야 할 텐데, 하나님에게, 주체에게 돌려야 할 텐데 자기 중심삼고 스톱을 했습니다. 알겠어요? 「예」

위해 사는 사람 앞에는 온 천하가 머리 숙여

그러면,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내 원이 뭐냐?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취하는 겁니다. 사랑하려고 일생 동안….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잖아요? 뭐 난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가더라도 선생님 만나면 다 좋다는 겁니다. 하룻밤 얘기해 보면 괜히 선생님이 좋다는 겁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서양 사람들도 말이예요, 선생님이 참 좋다는 겁니다. 가까이 오고 싶고 말이예요, 전부 다 그렇다는 겁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주려고 하는 마음, 주고 싶은 마음, 밤을 새워 가면서 얘기를 하더라도 지칠 줄 모르고, 그렇다는 겁니다.

요즘에 우리 이 패들 보게 되면, 떡 자기만 생각해 가지고 뭐 열두 시만 되면 벌써 갈 생각을 합니다. '아이구, 피곤해' 이런다구요. 생활 방법이, 방향이 틀려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리 해야 하늘나라에 못 가요.

하늘나라는 어떠한 사람이 가느냐? 본연의 원칙에 입각한 사람, 타락 전 본연의 사람만이 갑니다. 본연의 사람은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면서 취해 살자는 사람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름다운 겁니다. 자기가 배고픈 것을 참고 자식을 위해서, 허리춤에 있는 그 먹을 것을 녹여 가지고 자식에게 주겠다고 하는 그 부모의 사랑 앞에는 천하가 머리를 숙인다는 겁니다, 천하가. 그 아들딸을 틀림없이 우주가 협조합니다. 천하가 머리를 숙이는 겁니다. 자식이 잘나서 그 자식이 출세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사랑이, 위하는 공덕이 거기에 묻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한때에 출세를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책임자로서, 서양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교주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교주로서 나는 생각해요. 내가 통일교회 사람들의 사랑을 받겠다는 사람이예요? 아닙니다. 나는 통일교회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관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세계 통일교회 교인을 위하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딴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잘나서, 잘생겨서 좋은 것이 아니예요. 위하는 사랑 앞에는 천하가 머리를 숙여요. 하나님도 거기에는 머리를 숙여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세계에 있어서 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은 위하는 분이지만 이 땅 위에서 위하는 사람을 못 만났었는 데 비로소 역사 이래에 이러한 내용을 지니고 이론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은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고, 이런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오기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느냐'고 하는 위로의 마음과 더불어 '이제 내가 이 땅에서, 지상에서 당신을 위할 수 있는 역사의 한을 대신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위하겠노라' 하며 나선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망할 자리에 들어갔어도, 감옥에 깨깨 있더라도 망하지 않았어요. 올라가는 겁니다. 자꾸 올라가는 겁니다. 깊은 웅덩이에 들어갔던 것은 높은 데에 올라가야 돼요, 순환법도에 따라서.

인류를 위해서 주기 위해서 감옥에 찾아갔으니,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감옥을 찾아갔으니 인류는 갚아야 됩니다. 사랑을 도둑질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영원한 공의의 판사로 계시는 이상 갚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그 사랑보다도 더 큰 것으로써 이 세계가 갚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갚아 준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갚아 줌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전부 다 선생님의 휘하에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놀라운 원칙이예요.

오늘 회사원으로서 회사를 위하고 회사에 플러스될 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악마의 후손입니다. 지옥에 가야 돼요. 지옥에 가야 된다구요. 악마의 후손이예요. 그렇게 보는 겁니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한 나로 말미암아 회사가 플러스가 돼야지…. 위하는 것이 법도예요. 사랑의 천리를 따라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면 그러한 환경이 나를 품어 줍니다. 어디 가든지 그걸 느끼는 겁니다. 만물이 나와 더불어 화동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자연을 좋아하는 겁니다. 따분한 인간들보다도 자연을 위해 주면 자연은 그런 마음이 빠르다는 겁니다. 화답하는 것이 빠르다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이렇게 위해 주기 위한 사랑을 갖고 살아야 할 사람이니, 너를 먹어 준다 하면 음식이 좋아한다는 겁니다.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세포의 자리에서 태어나 그 사랑이 내 살이 되고 하나의 맥박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서 소모되면 그 이상의 영광이 없다는 겁니다. 천하의, 만우주의 법도의 치리에 의해서 생사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사람, 존재하는 물건들의 목적이라는 겁니다.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이걸 어디서 배울 수 있느냐 이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듯이 무엇을 사랑하느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부모가 사랑하듯이, 부모의 사랑이 기점이니 그 사랑보다도 더 커 가야 돼요. 그 사랑이 기점이니 그 사랑을 중심삼고 부부의 사랑,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부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또, 부부의 사랑을 가졌으면 뭘하느냐 이겁니다. 내가 세계를 품어야 돼요. 내가 중심이 돼 가지고 사방으로 퍼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이 서 가지고 그냥 올라오면 횡적 기반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 땅 위에 왔으면 반드시 사랑의 뿌리를 남기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손이 필요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사랑은 모든 것이 하나예요. 한 뿌리예요. 한 나무입니다, 한 나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나무예요. 위함을 받겠다는 나무는 이 위하겠다는 나무 앞에 반대입니다. 그건 사탄의 나무예요.

자, 그럴 수 있는 사람…. 문 아무개는 40년 이상 고생을 하고 욕을 먹고 다 이러고 나왔지만 지치지 않았다구요. 거기에 흥망성쇠의 모든 것이 따르고 있다 이겁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나를 반대하고, 세계가 나를 반대하고 나왔지만 이제 불원한 장래에는 대한민국 자체가 나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세계가 불원한 장래에 나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왜? 사랑을 알기 때문에. 안다는 겁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뿌리요, 원조

자, 그러면 결론짓자구요. 인간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는 겁니다.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지식이 있으면 뭘 해요? 지식의 꽃과 같은 것이 사랑입니다. 황금의 뿌리와 같은 것이 사랑이예요. 권력의 원조가 사랑이예요. 사랑의 힘을 누가 점령할 수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니고 있는 사랑의 힘, 이것을 점령해 보라는 거예요. 점령할 수 없어요. 통일교회 문선생 대신 딴 사람이 할 수 있어요? 여기 전대통령이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 대신 할 수 있어요? (웃음) 한번 해보라지요,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사랑의 주체자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천하의 어디에 갖다 세워 놓아도 모든 것이 환영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를 무엇으로 볼 수 있느냐? 중심 존재가 주체인데 그 주체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겁니다.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세계 중심은 세계 대통령이요, 나라의 중심은 나라의 대통령이요, 그다음에는 회사면 회사의 중심은 회사의 사장이요, 가정의 중심은…. 전부 다 하나님 대신이예요. 이건 전부 다 종적이예요. 종적인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하늘땅을 대표해서 이런 가정의 중심으로 서 있다 하는 사상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가정은 세계를 다 돌아다니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에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 어머니 같은 사람, 누나 같은 사람, 오빠 같은 사람, 아저씨 같은 사람이 다 있는 겁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한, 세계를 위해 주기 위한 표본으로 축소시킨 것이 가정이다 이겁니다. 이 가정을 떠나 사회로 출발하게 되면, 이 가정에서 위하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고, 회사를 위하고 전체 환경을 위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지 환영받는 겁니다. 그걸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를 표창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애국자에게 표창하기 위해 상패를 줄 때 인사를 하게 되면 대통령도 인사를 같이 해야지요. 안 그래요? '대통령인 나는 인사할 줄 몰라' 그러는 게 아니예요. 사랑의 마음이 동해 주고받는 이치에 있어서 주는 데도 그를 위해 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는 겁니다. 거기에서 화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위해 사는 사랑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운동을 하는 통일교회

그러면,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것이냐 이겁니다. 뭘하자는 거예요? 주기 위한, 주기 위한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치자 이겁니다. 받는 것이 본래의 원칙이 아닙니다. 전후가 거꾸로 되므로 세계가 뒤집어진 겁니다. 오늘날 유심론이 중심이 되어 돌아갔으면 세계는 이렇게 안 되는 겁니다. 유물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세계가 뒤집어진 겁니다. 이러니 전부 다 옥살박살 다 깨뜨려지는 겁니다.

타락한 세계는 반대의 세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뭘하느냐? 받고자 하는 사랑의 세계를 주고자 하는 사랑의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종교로서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영적인 면에 있어서 종횡을 연결시켜 하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위하고 살라는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여러분이 후손은 망하지 않고, 여러분의 천상세계로 가는 길이 완전히 트이는 겁니다. 180도, 360도 개방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원이 뭐예요? 결론은 위하는 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사람이 되고, 위하는 사랑 길에서 취해 살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위해서 동동걸음을 뛰면서 일하는 아내는 천국의 길을 그냥 가는 겁니다. 뭐 주님이 필요 없어요. 안내자가 필요 없어요. 그냥 가는 겁니다. 가기 마련이라구요. 저기압이 생기면 길을 만들어 가지고 오나요? 움직이면 길이 생기지요? 마찬가지예요. 길 닦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위하는 사랑을 지닌 아내가 가는 길에는 천지가 환영합니다. 위하는 남편이 가는 길에는 천지가 화합하는 겁니다. 위하는 나라와 위하는 국민이 서로가 위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이 나라의 모든 내각과 이 나라의 관직에 있는 모든 책임자들이 전부 다 긁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합니다. 주머니에 넣는 것이 좋아요? 자기 재산을 털어 1억, 천만 원을 주겠다고 해보라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받는 것은 주기 위한 거요, 내 정성을 다 긁어 가지고, 눈물을 합해 가지고 더 주고 싶은데 다 못 주는 것이 한이다' 하면서 백성을 위해 주라는 겁니다. 그래야 세금 받아서 쓰는 그 나라가 흥한다는 겁니다. 알고 보면 간단한 겁니다. 그럴 성싶어요?

왜 흥하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의 법도가 그래요. 천도가 그래요, 천도. 내가 이 원칙을 알고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망했어요? 나는 미국의 댄버리를 내 자신이 찾아갔어요, 남들은 도망 다니는데. 왜? 감옥을 넘어서라도 미국 국민을 위해야 되기 때문에.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를 위하는 세계로 만들려니, 내가 걸어 나간 뒤는 위하는 세계가 탄생될 것임을 알기 때문에 감옥을 뚫고 전진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여기에 오면서 지시한 1천만 카우사회원모집운동이 11월 10일 이내면 끝납니다. 그렇게 반대하던 미국 국민이었는데 레버런 문이 주도하는 카우사 운동에 몸을 바쳐 같이 싸우겠다고 사인하는 무리가 왜 생겨났느냐? 위하는 자 앞에는 머리를 숙여야 돼요. 따라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이게 천리예요.

여러분들 잘살고 싶지, 젊은 놈들? 우리 통일교회의 직장에 취직한 이놈의 자식들, 회사에 빚을 지고 회사를 이용해 먹고 자기를 위하겠다는 녀석들 두고 보라구. 옥살박살날 겁니다. 나는 알고 있다구요. 3대도 못 가 가지고 전부 다 옥살박살날 겁니다. 두고 보라는 겁니다. 마음대로 잘될 것 같지요? 전부가 틀어져 나간다는 겁니다. 하늘이 그냥 두지 않아요. 우주가 헤쳐 버리는 겁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적마다 언제나 생각합니다. 어려운 가운데 내가 위함이 부족했다, 내가 사랑이 부족했구나, 그러니 반대가 벌어지게 될 때 통일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반대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교회의 수난길이 풀려 나가지 않더라 이겁니다. 여기 통일교회 회사 움직이는 사람들, 알겠어요? 또, 믿는 사람들,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믿으면 잘된다니까 복받기 위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구요. 복을 주기 위해서 들어온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내가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세상에 뭘 남기기 위해서 통일교회를 믿는 겁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복받고 살 그럴 자리는 없습니다. 복받고 살 자리는 없어요. 없다구요. 그런 사람은 오늘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도 좋아요.

위해 사는 사람은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아까 결론을 지은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원이 뭐냐 이겁니다. 위하고 사랑에 취해 살면서 일생을 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최대의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람들의 원이어야 됩니다. 알았어요? 「예」 똑똑히 알았어요? 「예」

그래 가지고 땀을 흘려 봐요.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피곤한 다리를 중심삼고 볼 때 눈물이 핑 돌아 '아버지, 당신은 얼마나 인류를 위해서 그렇게…' 통곡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그 자리, 깊은 자리가 있더라 이겁니다. 그러나 자기만 위함을 받겠다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막혀 버리는 겁니다. 남을 위하겠다는 사람은 피곤해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자더라도 자다가 일어나서 손을 보면 손이 빛이 나는 거예요, 빛이. 하늘은 그 피곤을 풀어 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자리에 같이하려고 하는 겁니다. 몇백 배 몇천 배의 사랑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불행해요? 나는 불행하지 않아요.

내가 이것을 알았으니, 나는 일생 동안 세계 사람을 위하다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바빠요. 지금 미국이 망하게 됐으니 미국을 위하기 위해서는 바빠요. 내가 빚을, 두 어깨에 운신하지 못하도록 빚을 짊어지고 지금 이 미국의 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 나라를 위해 주는 겁니다. 왜? 미국이 세계의 운명을 책임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바로 서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혹은 아시아, 세계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두 어깨에 그런 짐을 짊어지고 우주사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만 세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그걸 알아둬야 돼요. 알겠어요? 「예」

알아두는 데 있어서 여러분 끼리끼리 서로 위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는 반드시 돌아 들어오는 힘보다도 나가는 힘을 나를 통해서 플러스시켜 줘야 됩니다. 그 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 운동은 확대되게 마련이요, 번창하게 마련이라구요. 국민을 위해서 노력하는 통일교회가 국민이 전부 다 합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위하는 이상의 것으로 돌려 보내 주면 통일교회 때문에 이 나라는 번성하는 겁니다.

오늘날, 한국이 몇 년 동안에 왜 이렇게 전부 다 발전하노, 놀음놀이하는 야당 여당 사람들, 돼먹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통일교회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붙안고 몸부림치고 싶은 겁니다. 그 누구 이상 나라를 위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은 차마…. 여기에 하나님 자신도 플러스시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구요. 이건 이론적입니다, 이론적이예요. 허황한 말이 아닙니다.

미국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은 내가 싸우지 않아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가 다 위하고, 세상을 다 위할 수 있는 이 자리가 차는 날에는, 넘치게 될 때는 공산당은 자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공산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내가 감옥생활을 했기 때문에, 공산세계가 어떤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허리가 굽어질 것이고 김일성이도 오래 못 가서 모가지 달아날 거라고 본다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되느냐? 어떻게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가를 알았지요? 「예」 여러분 소원이 뭐예요? 「위해서 살자」 예. 위하는 길을 가야 되고, 위하는 사랑을 짊어지고 가야 됩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 앞에는 나라가, 4천만이, 아무리 사탄이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데는 길을 내놓아야 돼요. 그런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의 하나님까지도 내 하나님으로 모실 수 있는 주인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쟁취할지어다. 아멘! 「아멘」 자, 그럴 사람 손들어 보시지요.

오늘이 10월 마지막 주일이예요. 바쁜 세월이니만큼 지난날을 청산할 수 있게 이제부터 나머지 이 해를 향해 달려가야 되겠어요.

​기도

​사랑하는 아버님! 흘러간 역사 앞에 자신들의 운명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 인생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 지구성에는 40억 인류가 지금 허덕이고 있습니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고 오늘을 보장받지 못하고 그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의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이 세계 인류를,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와 같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위하라고 하던 역사시대에 있어서 오늘 통일교회가 나타나 가지고 위하겠다고 하는 길을 취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통일교회 움직임은 지루했습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전통의 인연을 몸에 지니고 생활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쓰러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비틀걸음을 걸은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 길을 부러워하고, 그 길을 보호하고, 그 길을 찾아오시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저희 편에 서서 위로하셨습니다. 제가 낙망할 때 권고하셨습니다. 쓰러질 때는 저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사연 많은 역사시대에 흘러간 그날들이, 추앙받을 수 있는 사연이 제 자신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수고롭게 한 것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제 자신 자랑하기에 앞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마음이 앞서옵니다. 이런 역사과정을 지내고 보니 오늘날 문(문선명 선생)이 가는 길, 문(문선명 선생)이 인도하는 이 사상은 세계 정상의 날을 앞두고 지금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가 환희의 함성과 더불어 우리들을 찾아오게 될 때에, 무엇을 하려고 이 무리들은 모였습니까? 세계 만민을 부려먹기 위한 것이요, 세계 만민에게 위하라고 하기 위한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몰려드는 그 무리들을 품고 사랑하고 위해야 할 무리입니다. 사랑해야 할 무리가 되지 않고는 통일교회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아는 무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이제 진정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요, 사랑을 위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러겠다는 마음을 갖고 가다 보면 최후에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을 수 없는 종착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알았사오니, 그날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의 모습을 갖춰 가지고 충실히 가는, 충효의 도리를 지켜 가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0월도 다 갔습니다. 아버지, 미국에서는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안팎으로 시달리는 그런 길 가운데서 미국을 위해서, 미국을 살려주기 위해서…. 저희들이 미국을 살려주고 무슨 대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 대가를 세계를 위해 주기 위해서 움직이며 가는 길을 그 누가 막더라도 그 길은 멀지 않아 트여질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나라와 그 백성이 무릎을 꿇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천리의 도리를 따라가는 이들의 앞날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쁜 미국의 사정을 놓고 떠나야 할 입장에 있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 나라의 사정을 아버지, 염려하시어 당신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의 무리들이 이 나라를 위하는 데 있어서 밤을 지새워 가면서도 자기 일신의 피로함을 잊고 밤잠을 못 자며 눈물지어 호소하는 그 호소를 이 나라를 위하는 호소로 받아 주시옵시고, 외로운 사랑의 대가로 받아주시옵소서. 이 나라가 망할 수 없는 나라요, 망해서는 안 되는 나라로 하늘 앞에 작정된, 결정된 나라라는 것을 믿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앞장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젯날의 자신을 스스로 한탄하면서 내일의 소망의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는 자신을 연마하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다짐을 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우리들의 소원이 무엇인가, 내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았사오니, 그 말씀 앞에 부끄러운 자녀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판의 말로에 서서 영원토록 탄식의 무리로 사라지는 이런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않게끔 결의를 다짐하였사오니, 가는 길 앞에 힘을 주시옵고, 같이하여 주시옵고, 나날을 보호하시어서 축복의 은사로 품어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도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 가운데 희망의 전진을 다짐하는 힘찬 무리들로서 나를 세울 줄 아는, 하늘땅 앞에 자랑할 줄 아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들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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