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96년 3월 17일 이 달을 맞이하여 세 번째 맞는 안식일이 되옵니다. 하늘과 땅이 주시하는 이 코리엔테스 이 곳을 아버지 성별하시옵고 하늘이 이 곳을 중심삼고 금후에 남미의 섭리를 연결시키기 위한 뜻이 있어 남미를 중심삼은 역사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당신의 경륜 가운데서 착지를 바라는 이 땅 위에 승리와 영광과 찬양과 존귀가 길이 길이 같이하시옵소서.

금년의 표어는 '참부모님을 자랑하고 사랑하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사랑하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정과 하나님의 아들딸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세계를 자랑하고 사랑해야 할 저희들에게 맡겨진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하늘의 자식된 것을 자랑하고 사랑하며 자식들이 갖추어진 부모 된 것을 자랑하고 사랑할 수 있게끔 하여 주시옵고, 그리하여 자녀를 품을 수 있는 오늘의 가정을 가진 것을 자랑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민족·국가와 세계, 지상에 천국과 천상세계를 사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소원 일념이 저희 역사노정을 통하여 주류를 옮겨 받고 이 시대의 저희들이 생활 무대에서 가정을 통하여 정착될 수 있는 기준으로 바라고 있는 자랑의 중심이 이곳이요, 사랑의 중심이 이곳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하늘이 저희를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것 마찬가지로 저희들도 하늘을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민 만상이 합하여서 하늘을 찬양하고 하늘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이러한 땅이 되고, 이러한 만물이 되고, 이런 인간이 되고, 이런 인류의 역사를 편성할 수 있는 가정들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었사오니 통일교회를 내세워 이와 같은 한스러운 모든 것을 걷어차고 이 땅 전체를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자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만민이 되고, 역사가 되고 세계가, 지상천국이 되어야 할 것을 생각하옵니다.

모든 만유의 존재가 그 하나에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안 저희들은 자연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만물 만상 앞에 부끄럽지 않은 동시에 과거·현재·미래를 통한 인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고, 창조주 앞에 사랑의 대상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자유와 해방의 실체를 갖추어 하늘에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존엄한 인류상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창조주가 이 땅 위에 인간과 더불어 같이 살고, 인간과 더불어 사랑하고, 인류와 더불어 역사 위에 그어 오지 못한 모든 것을 이제 이 시대를 통하여 참부모 이름과 더불어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 혈연적 관계를 다시 묶으신 모든 자녀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하늘에 소원한 목적을 기필코 성사시켜 드릴 수 있는 자녀의 면모를 다 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에서 지상을 중심삼고 총결산을 바라는 이 시대에 있어서 개인과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사적인 모든 전부를 가정으로부터 싹 틔워 가지고 해방적 천주까지 발전시켜야 할 통일가의 사명 앞에 승리와 영광과 만사형통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향심을 모아 정성을 들이는 모든 축복가정, 자녀들을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그들이 처하고, 그들이 행하고, 그들이 모든 움직이는 전체는 이 땅 위의 사탄세계와 달리 하늘이 같이함을 보여주고 증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어디서든지 하늘의 모습들인 것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만민 만상이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숭배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앞날에 저희들이 바라는 360만쌍의 축복을 앞두고 온갖 정성을 다 하는 통일교회의 모습들을 축복하여 주옵고, 그 위에 갖춘 모든 모습들이 하늘의 자랑의 가정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타락한 세계의 하나의 표준적 하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부끄럽지 않고, 하늘에 자랑을 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가정들이 되옵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 당신의 말씀과 더불어 나타나는 곳곳마다 재창조 역사가 하늘 끝까지 움직이시어서 살아 계신 하늘이 같이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증거하고 보여줄 수 있는 역사가 계속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중심삼은 160여개국에 전체 축복권 내의 자녀들을 품으시어서 하나의 통일된 해방권 혈족으로서 만 천주에 드러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월도 중간 정도 지냈사오니 찾아오는 날 앞에 모든 저희들이 결의와 새로운 각오로써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아침부터 이 한 날, 이 달, 이 해를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의 일체적 사랑 이상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참부모의 사랑에 전부 다 동거하는 생활, 온 천주가 환희와 영광 가운데서 품기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이멘, 아멘, 아멘!

​말씀

​선생님하고 6촌이라구. 증조부가 같다구.「전 어디 가든지 아버님하고 몇 촌 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문승룡)」(아버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문승룡 씨의 간증.)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해야

남미 사람이 힘들다구요. 문화도 다르고, 천주교 신자도 있고, 이것이 길 잡아가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리 말씀을 잘 공부해야 된다구요. 원리 말씀이란 것은, 지금까지 성약시대에 대한 것을 몰라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해 나온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식이 없어 가지고는 혼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로 말미암아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이 시작된 것을 취소시키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의 내용이 어떻게 돼 가지고 가는 길이 어떤 방식으로 가고 이 모든 것을 확실히 알고, 참부모를 알고, 참사랑을 체휼을 해야 됩니다. 여기 문승룡 사장도 희열을 느껴야 돼요. 자기가 신앙길에 있어서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기쁨,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요 기쁨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희생도 감사할 수 있는 이런 마음을 갖지 않고는 희열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리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붙들면 모든 것이 절대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병도 낫고, 원하는 것이 뜻대로 다 된다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면 하나님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지만 이 기쁨을 어떻게 실천화시키느냐 이거예요. 모든 것이 기쁘면 기쁜 자기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화동할 수 있고 만물의 상대적 기쁨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취미입니다. 재미가 있어야 된다구요. 신앙 생활도 재미있고, 하나님 뜻길에 있어서 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야 됩니다. 할 수 없어 하는 것이 아니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가 있고 힘들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된다구요. 생활환경에서 이것을 뿌리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새, 조그만 새가 먼저 신호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점점점 밝아 오면 큰 새가 지저귀어서 전부 다 아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침 햇빛을, 아침을 맞기 위한 기쁨의 환영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그래야 돼요. 하루하루에 모든 새들도 만물도 전부 다 햇빛을 바라고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귀한 거라구요. 감사 생활,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여기 남미면 남미는 열대지방이니만큼 여러분도 얼마나 더워요. 다 잠자는데 잠자는 그 대낮에 햇빛을 받아 가면서 하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자는 데 자기만이 찬양한다는 그런 위대한 무엇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게 좋은 거라구요.

또, 밤이 되면 모든 만물도 쉬고 다 쉬는데 그 쉬는 가운데 일어나 가지고 하늘을 찬양할 수 있게 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이 자질 않아요. 잘 수도 있지만 안 잔다구요. 안 자는 하나님 앞에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앞날을 가르쳐 주고 지시해 주고 다 그런 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은 낮을 지배하고 사탄은 밤을 지배하는데, 이건 낮도 하늘이 지배하는 동시에 밤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밤낮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계절을 초월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부자지관계의 사랑이라는 것은 계절을 타지 않아요. 겨울에 자식을 생각하고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여 눈물짓는 그 눈물은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계절을 초월한다구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참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참사랑은 젊은 시대, 중년 시대, 노년 시대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영생할 수 있는,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궤도와 같은 것이 참사랑입니다. 세상에 변동이 오고, 혁명이 벌어지고, 생사지권이 바꿔지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런 심정적 환경을 만들어 가야 돼요. 기도 생활이 필요한 것은 그런 환경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라요. 사랑 안 하는 것은 자라질 않아요. 그래 뜻길을 가는 데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데 감옥이 문제 아니고, 죽음이 문제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놓은 길이 참사랑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자기가 혼자 있더라도 자연은 보면 자연이 전부 다 자기가 가르쳐 주는 거예요. 지나가는 새소리도 자연과 어울려서 음악소리와 같이 들리고 이렇게 모든 것이, 환경적 여건이 나와 공명한다는 것입니다. 공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 아들딸,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눈물짓는 것보다도 자연 대해 가지고 또 그런 마음을 느끼고 눈물지을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하게 되면 심각히 생각해야 됩니다. 투시해서, 저쪽을 바라보는 이런 마음, 그러니까 심각하니만큼 어려운 걸 잊어버립니다. 그런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사랑으로 얼마만큼 만물을 대하고 상대적 세계를 관리할 수 있었느냐? 지금 우리로 말하면 말이에요. 지렁이 같은 것을 만지기 싫어하지 않는다구요. 지렁이 만지기를 싫어하는데 자는 고기 잡을 자격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토룡탕이라고 해서 먹는데 나보다 낫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섯 손가락에 낚시를 끼우는 것이,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구요.

거기도 어려움이 있어요. 낚시 가면 춥기도 하고 다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그러니 심각해야 돼요. 자기 생명을 위하고, 자기 생활 이념을 세워 나가는데 심각해야 됩니다. 할 수 없이 하는 사람은 전부 다 오(○) 엑스(×)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자기가 손대면 자기가 자기를 알기 때문에 주체 입장에서 상대를 전부 사랑하기 위해서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되풀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나 몰라주나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옆으로 크고, 위로 큰다는 것입니다. 10년, 20년 일생을 두고 보면 그 차이가 천지 차이가 돼요. 여러분 생명이 시작하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돼요. 몇천 번 몇십만 번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런 면에서 숨쉬기를 싫어해요? 싫어해요? 마찬가지입니다. 반복입니다. 우리의 사는 생활은 반복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생명을 유지시키는 근본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밥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하는 것도, 농사를 짓든 무슨 직장을 가든 반복입니다. 매일같이 반복이에요. 그 반복하는 세계에 있어서 커야 된다구요. 이것 전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커야 됩니다. 10년을 지났으면 10년만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10년만큼 커지는 거고, 일생 동안 정성 들였으면 일생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 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새들이 자기 둥지 트는 건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참새가 집 짓는 것이나 미국 참새가 집 짓는 것이나 몇억 년 전에 갈라졌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집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들도 생태 환경에 있어서는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유지하느냐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모든 지향성, 스스로 모든 것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지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는 나무가 자라는데 순이 큰다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순이 하늘을 언제나 중심삼고 큰다는 거예요. 여기에 숨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여기 숨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일주의로 하게 된다면 모든 자기 일생의 가는 길이 어려운 일, 기쁜 일을 스스로 가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늘을 모시는 생활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모시면서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이걸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 길을 안 가면 편안치를 않아요. 벌써 길이 아니면 몸에 지장이 와요. 환경에 지장이 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전부 다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아침에 해가 뜨고,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은 변하질 않아요. 천년 만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궤도가 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갑니다. 그래 사랑의 마음,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생명·참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서 하나님과 같이 언제나 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자기가 오고 가는 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대상이니 주체와 대상은 하나된다고 할 때 이 자연과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부모가 나를 길러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자랄 때까지 사회환경에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게 될 때는 부모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돼요. 자기 독자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의 종횡의 사랑, 하나님과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가정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것이 만물의 주체적 입장에서 사랑하니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돼 가지고 이 모든 만물들을 움직이기 위한 여기서 주체를 만들기 위한 생활입니다. 그 창조적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새로운 것을 가졌으면 나눠주어야 되고, 나눠줬으면 또다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받기 위하려니까 겸손해야 돼요. 받기 위하려니 겸손하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그래 받아 가지고는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정성들인 사람이 무서워요. 정성을 무한히 들인 사람은 무한히 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배타고 낚시질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에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구원섭리와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고기라면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밑감을 좋은 걸 꿰어 넣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든든한 줄 해야 되고 낚싯대도 좋아야 되고 모든 걸 갖추어 가지고 잡아야지, 줄도 약하고 밑감도 나쁘고 낚시도 나쁘고 낚싯대도 나쁘고 잡는 기술도 나쁘면 그것 못 잡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도 딱 고기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내가 이 세상에 있어서 성공하려면 내 자신이 낚싯대와 같은 입장에서 좋은 줄을 걸고 좋은 밑감을 걸어서 낚시를 만들어 가지고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낚아지질 않아요.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균형이, 상대적인 여건이 맞아 가지고 거기에 수확이 벌어지지, 상대적 여건이 맞추지 않으면 수확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예요. 전체와 같이, 만물과 같이, 인류와 같이, 하늘땅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산다 이거예요. 그래, 만민이 바라보는 눈, 좋은 눈, 좋은 오관, 좋은 몸, 그것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오관, 그러한 좋은 몸으로서 같이 살 수 있다 하는 이것을 자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살게 되면 그 사람은 그냥 그대로 종교가 필요 없어요.

자기가 옷 하나 잘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 이거예요. 나무처럼 푸른빛을 가지고 스스로 자라나는 그 만물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박물관에 가게 되면 그 골동품들, 인간이 쓰다 남은 것이 비싸다 하지만 이것은 몇억만 년 된 골동품입니다. 나뭇가지 하나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랑하고 뭐 어떻고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만물이 웃는다는 것입니다. 쓰레기통과 같아요. 그걸 좋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대번에 이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라든가 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자기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르다구요.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과 공기와 사랑은 수평으로 움직여

선생님 성격으로 보게 되면 개인적인 개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이 모든 자연과 더불어 누구보다도 줄 수 있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화합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길, 하늘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지, 하늘을 몰랐으면 선생님 같은 성격에 뭐라 할까, 세상으로 보게 되면 마피아의 장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 성격이 있다구요. 자기를 위하라고 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독재가가 될 수 있는 성격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성격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다 수평이 된 것입니다. 물도 수평이 되고, 기름도 다 수평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도 수평으로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간다고 해서 거기 가더라도, 특별히 거기 가더라도 거기가 제2고향입니다. 거기에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모든 환경적인 것 태양도 있고, 하늘도 있고 별반 차이 없다구요. 어디든지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정적 사랑보다도 국가적 사랑을 받아야 되고, 국가적 사랑은 세계적 사랑, 세계적 사랑은 천주적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됩니다. 더 큰 사랑을 찾아 나가는 만큼 더 큰 고향의 사랑을 체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은 동서남북, 자기 중심삼고 3개국을 거쳐라 이거예요. 동서남북, 4개국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사람은 아르헨티나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4개국, 브라질이면 브라질, 파라과이면 파라과이, 우루과이면 우루과이로 그것을 확대해야 됩니다. 그것을 확대하면 6대주가, 다른 대륙이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나라들이 생각할 때는 여러분 아르헨티나 국민이 아르헨티나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나라 백성들도 아르헨티나에 못지 않게끔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낚느냐 이거예요. 어떻게 연관짓느냐 하는 문제는 더 큰 사랑, 더 맛이 있는 밑감, 더 좋은 것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사랑이라는 표제는 놀라운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사랑이라는 놀라운 것입니다. 참사랑을 통해서 영적 오관 육적 오관, 모든 세포가 거기에 다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희열을 이루느냐? 이 4백조나 되는 모든 세포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희열을 느낍니다. 희열이 구름 타고, 구름 가운데 이것을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어느 자기 고향 땅의 자기 집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세계, 어디 땅 끝에 가거나 어디나 가더라도 그러한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평준화가 된 심정, 유대 관계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 천상천국을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세계, 종횡의 사랑의 세계를 전부 다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빼 가지고 그런 우주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은 편안한 게 좋다고 생각하지요? 아닙니다. 편안한 건 수평적입니다. 어려운 것을 극복하고 나면 이것이 입체적으로 서는 것입니다. 수평적이 아니예요. 입체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더욱 어려운 것을 하면 자기가 점점점 커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같은 것이 전부 둥글어지고 원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고생한 사람은 꿈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꿈이 아니예요. 산 꿈을 지니고 살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만 나타나면 모든 현실적 사람이 다 좋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몸 마음이 부활된다는 것입니다. 산 꿈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은 하나님과 하나돼 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 갖고 길을 가게 되면, 맨 발 벗고 가게 되면 이 땅이 '여기를 밟아 주소. 여기를 밟아 주소.' 그러는 것입니다. 발이 이렇게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체험을 해야 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낚시질을 가더라도 오늘 기분이 복잡하면 고기가 안 물어요. 안 문다구요. 일심, 모든 것이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사방이 말이에요. 기후가 맞아야 되고, 물의 속도가 맞아야 되고, 갖춘 기구가, 밑감이라든가 모든 것이 맞아야 돼요. 모든 것이 사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히 위하지 않고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진정히 대해 주지 않는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그렇잖아요. 선생님에게 경제적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여, 나에게 돈 주소.'라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요.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해 주소.'라는 기도를 절대 안 해요.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알아요. 거기서 뭘 해야 되느냐?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할 것이냐 이거예요. 도와주고 싶은 데는 돈이 아니예요. 정성이에요, 정성. 돈이 아닙니다. 정성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앞에 서야만 경제도 따라오고 모든 축복도 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어요. 나 알아 달라는 것이 필요 없어요. 보면 알아요. 괜히 그 사람을 아침이나 밤에 만나면 마음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전부 어울린다구요. 거기에는 담이 없어요. 자연스럽다구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자연스럽지요? 환경이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어색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은 하나님과 하나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기면 힘줄과 같아서 나뭇가지만 하나 잡아당기면 전부가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꺾으려고 할 때 '아이구!' 이런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이라든가 생명이라든가 혈통을 중심삼고 움직이면 하나님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생활에 하나님만이 관심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일들을 남기고 하나님이 나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리는 그런 입장에 서면 효자의 길을 가고, 충신의 길을 가고, 성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신은 군왕을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는 것입니다. 효자는 자기 부모를 밤이나 낮이나 눈물짓게 하는 것입니다. 성자는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을 눈물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성자의 길입니다. 자기가 있어 가지고는 언제든지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어디 나타나게 될 때는, 세상으로 말하면 내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누구한테 존경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자기가 나타날 때 그 기준이 어느 상대의 기준이냐 이거예요. 높은 상대가 아닙니다. 낮은 데서 크게 돼 있다구요. 큰 데서부터 낮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니예요. 그건 죽는 것입니다. 낮은 데서 커 가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대할 때는 아무리 자기 높더라도 낮은 데서부터 친구를 삼아 가지고 낮은 데서 끌어 올려야 된다구요. 높은 데서부터 더 높은 데를 올라가는 것도 좋지마는 높은 데 한계선은 모든 것이 포물선입니다. 인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포물선을 그리기 때문에 그냥 높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높아지면 반드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데서 하나님은 내려올 수 있는 길이지 내려왔다가 낮은 데서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고, 훌륭한 인물, 이름 있는 사람은 높은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원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원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낮은 데 있으면 친구가 많아집니다.

사랑에서 영생 개념이 나온다

스페니쉬 사람들을 가만 보면 개인주의가 강해요. 이것은 미국의 바람으로 그런 것입니다. 서구사회가 앞으로 문제되는 것이 물질 문명을 중심삼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 세계의 첨단에 섰다 하는 자부심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동양 사람이 위대한 것은 뭐냐? 동양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신적 분야에 있어서 종교적인 모든 훈련을 받은 배경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소속한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존중시 할 수 있는 이런 관념이 들어가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동양 사람들은 산을 존경하고, 큰 나무를 존경하고, 큰 바위를 존경하고 그럽니다. 자연적인 모든 걸 의인, 인격적인 대상으로 섬겨 나왔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를 중심삼고 이것을 분해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취소하게 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라는 것은 교만한 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위해 산 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전부가 위해 사는 거예요. 보라구요. 벌레가 살지만 벌레는 더 큰 벌레한테 먹힌다구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먹혀야 돼요. 하나님의 밥이 되고, 하나님의 영양소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밥을 먹어야지요. 하나님도 먹을 수 있고 안 먹을 수도 있지만 먹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누구를 먹겠느냐 이거예요. 인간의 사랑, 자기 사랑의 상대의 사랑을 먹고산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졌으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돼요. 사랑하고 사람끼리는 자도 고단치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시공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랑하는 상대가 올 때는 밤이 되면 자야 돼요.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남으로 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영생 개념이 나와요. 영원한 사랑의 힘이 계속하는 한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사랑화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의 영생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된다구요. 문사장의 문제는 뭐냐 하면 재미있게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싫은 것이 이렇다.' 할 때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받아요. '아무 것은 좋고, 아무 것은 싫다.' 할 때 싫다는 것으로 여기서 침해하는 것입니다. 원형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침해받아요. 그래 싫다 하는 것이 내게 원수입니다. 나를 올가미로 걸어 놓은 것입니다. 신앙길에서는 싫다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싫다는 그게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원형이 되기 때문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위신과 처신을 벌여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왕좌에 올라가서 연(輦)을 타고 간다 하더라도 어려운 환경을 보게 되면 뛰쳐 내려서 왕 자리를 잊어버려 가지고 끝까지 내려갈 수 있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선생님을 만나면 선생님은 자연인이라고 생각한다구요. 그래서 소개할 때 뭐라고 할까, 서론이 필요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나 당신 그리워했습니다. 그림을 그려 놓고 이와 같이 좋아했습니다.' 그것이 필요 없다구요. 직격탄입니다. 붙안고 키스를 하고, 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말씀을 할 때는 거꾸로 하고 있어요. 선생님과 달라요. 제일 귀한 것이 참부모를 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재림주면 재림주, 사랑이면 사랑, 인간의 가치 문제, 여기에 연결되어서 오목 볼록, 왜 그런 얘기를 자꾸 하느냐? 그것이 근본입니다. 근본을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어요. 가지가 절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씨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곽정환 같은 사람은 유교사상에 있기 때문에 선생님 말하면 앉아 가지고 '저런 말은 나중에 하면 좋겠다.' 그러고 앉아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왜 선생님이 저런 말을 하나?' 하지만, 아닙니다. 그런 말, 그것을 얼마만큼 선생님이 찾기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걸 헤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 생각이 앞에 나선다구요. 그것이 뿌리라구요, 뿌리. 그렇기 때문에 10년 20년, 여러분을 언제 만날지 모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걸 전해 놓으면 잊어지질 않아요. 내가 생각한 그 밑창에 주체적 개념이 있으면,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한다는 원칙이 있으면, 자기가 그런 개념을 가지고 얘기했으면 그것이 꺼지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상대의 세계는 커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말씀 들어 가지고 자기가 은혜 받은 말씀을 먼저 하잖아요? 그렇지요? 우리가 보통 자기 정도의 상대적 기준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내용도 달라지고, 출발도 달라지고, 과정도 다르고, 목적지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근본에서 해야 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과정도 관찰해 가고 말이에요. 그런 것이 일반 사람과 선생님이 갖는 생각이 다르지요.

진정한 사랑의 길에는 가식이 없어

그래서 우리가 사랑완성이라는 것, 남자는 여자를 완성시키고, 또 남자는 여자를 사랑을 중심삼고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완성이 없어요. 태어나기를 그렇잖아요? 남자도 여자를 완성시키고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 해방시키는 게 뭐냐 하면 오목 볼록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남자 여자가 완성되고, 남자 여자가 사랑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그래요. 하나님의 완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해와가 이성성상이 되어 가지고 종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을 해방시키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또, 인간을 완성시키고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떨어질 수 없다구요. 그 자리에서 살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길에는 가식이 필요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여행 갔다오면 옷 벗기 전에 가 가지고 키스하고 다 품어주고 그러는 거예요. 거기에는 소개가 필요없어요. 과정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타나는 환경에는 그림자가 없고,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되면 해 난 날과 같이 모든 것이 깊이 넓게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침이 되어 태양 빛이 올라오면 모든 동물들의 생명선이거든.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이 태양과 같은 입장에 있으면 하나님이 생명선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면 찬양하고 싶고, 감사하고 싶고, 그것이 언제나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가 혼자 은혜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은혜 생활을 어떻게 환경적으로 하나 만들어 가지고 취미 환경을 생애를 통해서 확대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확대된 환경이 그냥 그대로 천상세계에 자기 머물 수 있는 계열이 되는 것입니다. 급이 되는 것입니다. 위치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손 안 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대해서도 오대양을, 육지에 대해서도 육대주를 다 거친 거예요. 바다고 그렇고, 육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원래 이 자연의 친구도 되고, 자연의 아버지도 되고, 자연의 주인도 되지만 전부 다 친구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기 친구도 되고, 청년 친구도 되고, 중년 친구, 노년 친구, 영원한 할아버지 친구도 돼요. 그게 사랑관계입니다.

동물도 보더라도 말이에요. 강아지도 그 집안에 열 식구가 산다고 해도 아무리 주인이 훌륭하고, 아무리 주인 마누라가 훌륭하고, 아들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주인 아버지, 형님을 따르지 않아요. 애기들이라도 자기만 사랑하면 그걸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게 교재입니다. 제1 교재라구요.

그래서 새들도 사람 집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추울 때는 먹이를 주어야 되고 없을 때는 헛간을 열어 놓아야 됩니다. 거기서 추울 때는 문을 열어 놓고 들어와 자게 만들어야 됩니다. 집을 지어주고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사실이 그래요. 새들이나 동물들은 전부 다 사람 가까운 동물입니다. 사람이 사랑 안 해서 그렇지요. 사랑하면 지붕에 와 사는 것이고 헛간에 와 사는 거예요. 소들과 같이 살고 말들과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약할수록 무시하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전부 다 가깝게 됩니다.

새 소리를 듣고 자기를 위해 축하한다는 인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어서 노래한다는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없거든. 날아가는 새가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구요. 오게 되면 잡으려고 한다는 거지요. 반대라는 거예요. 이 새들을 다 누구 때문에 만들었느냐 이거예요. 곤충도 그래요.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 아닌 것이 없어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눈을 가지면 친구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잔디 같은 것도 밟게 되면, 몇억 년 전부터 나오는 박물관의 골동품은 자라질 않아요. 그림 같은 게 뭐예요? 푸르게 하는 거예요? 계절 따라 색깔이 달라지고 거기에 순응하면서 자기의 의연한 가치를 그냥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알아주지 못해도 본색을 만 우주와 더불어 스스로 연결돼 가지고 동화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남미에 그런 걸 만들어야지요. 박물관도 만들고, 동물원도 만들고, 식물원도 만들고 말이에요. 식물원도 만들고 동물원도 만들었으니 인간의 이상적 마을을 만들어야 되고 이상적 도시를 만들어야 됩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거기에 정성을 들이고 거기에 땀을 흘리면서 미련 없이 무한한 소망을 갖고 무한한 재미를 갖고 살면 거기에 하나님이 찾아와서 내 주체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재미화시켜야 돼요. 취미화해야 됩니다.

취미산업이라는 것이, 모든 것이 취미입니다. 색다른 곳에 간다면 산이 다르고, 바위가 다르고, 나무가 다른 거예요. 그것이 전부 다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었느냐? 하나님, 주인이 품기 위해서 만든 거예요. 아들딸이 땅위의 어디 가서든 살 수 있는 환경의 적절한 그러한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디 그 지방에 태어났으면, 몇 대 살았으면 그 지방의 물건을 모두 알아야 됩니다. 병나면 다른 데 가서 약을 쓰지 않고 그 지방의 약초를 쓰고 그 지방에서 나는 샘물을 먹고 그 지방에 나는 건강제를 먹는 것이 병의 회복에 빠르다는 것입니다. 왜? 그 지방에 사랑이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땅의 주인들이 있어 가지고 모든 것, 농토를 사랑하고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이 직결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하늘도 상대적 가치로 인정하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니만큼 언제나 그 환경적 여건이 자연스럽고 환경이 거기에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향이 그래서 귀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그만 하자구요.

진정한 사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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