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맡겨진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여러 가지 사정과 형편에 부딪치면서, 아버님의 거룩하신 뜻을 가려가면서 싸우던 당신의 어린 딸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하오니 만나고 싶어하던 마음을 다 털어놓고 아버지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기쁨의 집합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들이 느끼고 체험한 모든 것은 자기의 어떤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뜻 앞에 보탬이 되고 서글픈 복귀의 한을 제거하기 위한 거룩한 제물된 싸움의 노정이었음을 생각하게 될 때, 그동안 아버님께서 이들을 무사히 지켜 보호해 주신 은사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실시되는 이 모임이 당신의 장중에 완전히 붙들린 바 되게 하시옵소서. 시간 시간마다 당신의 특별하신 은사로 이들을 품으시옵소서. 이 시대적인 사명의식을 충족시키고, 각자가 아버지 앞에 본연의 사명의식을 충당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 시간부터 아버지께서 이들 개개인의 심중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포용하시어서, 지난날의 모든 슬펐던 사연, 외로웠던 사연, 혹은 억울했던 사연들을 당신의 사정을 앎으로 말미암아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내일의 싸움터를 직시하면서, 힘찬 하늘의 용사의 모습을 갖추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거룩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모든 문제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의 경륜하신 뜻대로 저희들을 맡으시어 격려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기쁜 날들이 허락하신 당신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망의 은사가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 충만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Ⅰ)

그동안 여러분들이 전국에 널려서 각양각색의 형편과 사정을 체험하고 이 자리에 돌아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다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남이 모르는 뜻을 알았기 때문이요, 남이 할 수 없는 사명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가진다는 사실은, 여러분 가정이나 개인에 있어서 추억으로 남긴다면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수련회 개최의 목적과 의의

여러분이 그동안 수고한 모든 수고는 자기로 말미암아 수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수고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한 수고는 여러분들의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수고로 결실되고, 여러분들이 느끼고 당한 사연사연은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당한 사연이로되 그 사연은 여러분 개인의 사연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 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즉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대표해서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서서, 그 나라가 당하는 슬픔을 내가 당하게 되고 그 민족이 당하는 슬픔을 내가 당하게 될 때 그것은 내 일신이 당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 슬픔은 민족의 슬픔이 아니요 나라의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의 슬픔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 어려운 자리를 극복한다는 사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아버지 뜻 앞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즉, 탕감의 여건이 남아 있는 민족과 나라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대비되는, 탕감조건에 해당하는 슬픔과 고통을 대신 받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순교자적 사명의식을 갖고 책임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당하는 슬픔은 개인의 슬픔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슬픔이 아니요, 개인이 당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민족의 서러움을 대신 당하는 것이요, 국가의 서러움을 대신 당하는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내 개인이 슬픔을 대신 당하는데, 절망하는 자리에 서거나, 원망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혹은 나라와 민족 앞에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그 나라 그 민족을 지금까지 강제로 억압하고 있는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슬퍼하거나 외로와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수고한 그 수고는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는 입장을 탕감한 수고로 세워질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탄의 참소를 받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이 민족과 국가 앞에 한의 조건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공직에 있게 될 때, 혹은 공적인 입장에서 당하는 모든 것은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여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기쁨으로 맞게 될 때에는 민족에게 슬픔을 해소시키고 기쁨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요, 또 내가 그 어려움을 책임지고 극복하여 나가게 될 때에는 민족의 어려움이 나로 말미암아 탕감이 되어서 민족 앞에 어려움을 제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책임을 해야 하는 여러분들이기 때문에 출발도 자기를 위해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요, 싸우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와 같이 공석에 모이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여 공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공적인 결과에 인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것은 아무개의 처가 아닙니다. 아무개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비록 작은 여자의 몸이지만 그 몸 자체는 어떤 특정한 가정의 인연을 중심삼은 여자가 아니라, 민족을 대표하고, 혹은 그 나라의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선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높이 평가하고 귀중한 자리에서 여러분의 가치를 부여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가치를 다시 한 번 촉구하고 좀더 큰 의미로 그 가치를 다시 빛내기 위해서 이와 같은 모임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이번 수련기간에 여러분이 나가 활동하면서 느꼈던 고충, 혹은 여러 가지 알고 싶었던 것, 보강하고 싶었던 실력이라든가 하는 모든 것들을 종합 비판하여,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새로운 결의와 더불어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내일의 소망 앞에 있어서 민족이 바라고, 국가가 바라고, 하나님이 탕감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를 바라는 삼각권내에 있는 여러분이 책임수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복귀의 과정

그러면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서 뜻을 중심삼고 어떤 자리에서 책임을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나라를 구하는 데 있어서, 그 나라 전체가 복귀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하나님 앞으로 복귀되는 데는 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노정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해 나오는 데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타락한 인류를 살펴보게 될 때 인간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원수의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그 원수의 자리에서 원수의 자리를 피해 다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의 종도 될 수 없는 우리 인간이 종의 종이라도 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사실은 타락한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복된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를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라는 것은 주인을 갖지 못하는 자리입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에 진전을 한다는 사실은, 즉 종으로서 주인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종의 종으로서는 영광 중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의 종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아들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러면 타락은 무엇이냐? 참된 개인, 다시 말해서 참된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것이 타락입니다. 이루지 못한 가정을 다시 찾는 것이 복귀의 목적입니다. 이 가정이 복귀될 때까지 어떤 역사적 변화를 거쳐 왔느냐? 지금까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복귀역사를 거쳐 나오는 과정에는 종의 종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고 간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의 종 시대에서 아무리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고, 생명을 잃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대권내에서는 종의 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밖에 못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 들어와 가지고 종의 도리를 갖추어 나가게 됩니다. 그 시대에 종의 입장에서 아무리 충성을 다하고 생명을 바쳐 제물된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종 이상의 자리에는 나갈래야 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를 거쳐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을 맞을 수 있는 한때를 기약하셨습니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전체의 생명을 대신한 내일의 소망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을 상봉할 수 있는 그날은 종의 시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 전체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이 종으로서 충성하는 과정을 거치고 양자로서 충성하는 과정을 거쳐 영원히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인연을 세워 놓고, 아들의 사명을 다하고 부모의 자리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인연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양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비로소 새로운 상속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의 자리에서, 혹은 양자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고 나서 아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종이나 양자의 자리에서는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서 그 아들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그 아들이 아들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해 모셔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비로소 아들의 자리를 대신할 상속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축복가정의 가치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축복받았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가정은 얼마나 역사적으로 바라던 가정이었습니까? 이 가정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의 종의 시대에 있어서, 종의 시대에 있어서, 양자의 시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로서 이 땅 위에 와서 생명을 희생하는 자리에 나갔어도 이룰 수 없었던, 역사적인 소망으로 남아졌던,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루기를 바라던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기독교를 통해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복귀과정을 다시 개척하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기준까지 가인적인 형이나마, 외적인 형이나마 세계적으로 다시 탕감하기 위해서 2천년 역사과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도 찾지 못했던 그 가정, 6천년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도 찾지 못했던 그 참된 가정이 오늘날 이 지구상에 현현했다는 사실은 인류에게는 최고의 희망의 현현이요, 역사과정에서 바라던 최고 소망의 성사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 참된 가정이 이 땅 위에 나타났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출발의 시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위해서 수고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는 그 민족이 소원하던 최고의 중심된 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가정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가 출발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참된 가정이야말로 역사시대에 있어서, 혹은 현실에 있어서 우리 인류 앞에 소망의 중심이 아닐 수 없고 미래의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데 출발의 기원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참된 가정을 오늘날 우리가 맞을 수 있고, 모실 수 있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도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얼마나 놀라운 은사요, 이 얼마나 고마운 은사입니까? 그 가정의 배후에 비참한 일이 있다 할진대, 우리 역사상에 없었던 최고의 비참한 역사적인 전통 위에 내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가정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 억울함이 있다 할진대, 이 가정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 위해서 복귀섭리의 도상에서, 이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책임을 지고 왔다 간 수많은 개개인은 물론이지만 그들을 통해서 민족 국가까지 발전시켜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의 그 억울함이란 역사상에 그 누구도 당해 보지 못한 억울함입니다. 그런 억울한 역사의 내연을 남긴 기반 위에서 이 가정이 찾아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죽음의 대가를 치른 역사적인 슬픔이 있다 할진대는, 어떤 민족이면 민족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하나의 국가가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 치른 희생의 대가보다도, 혹은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치른 희생의 대가보다도 복귀섭리도상에서 이 가정을 출현시키기 위해 더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슬픔이 있으면 최고의 슬픔, 어려움이 있으면 최고의 어려움, 피의 대가를 치렀다면 최고의 피의 대가를 치른 그 결과로 찾아진 것이 이 참된 가정인 것입니다.

이 참된 가정이 찾아짐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슬픔이 해원성사될 수 있겠기 때문에, 역사적인 죽음의 대가가 해원성사될 수 있겠기 때문에 역사는 이런 비참한 탕감의 조건을 치러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참된 가정이 이 땅에 현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는 그 이상의 기쁨이 없는 기쁨이요, 그 이상의 가치가 없는 가치인 것입니다.

그런 참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됨과 동시에 참된 부부가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부부가 이루어져 가지고 참된 자녀가 탄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된 부모는 사탄 앞에 어떤 참소의 조건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참된 부부는 사탄 앞에 어떤 참소조건에 걸려서 신음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된 가정에 속해 있는 자녀 또한 사탄세계에 참소조건을 남길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참된 가정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참부모라는 명사

오늘날 여러분은 참부모라는 말을 하고 있으며, 참부모라는 명사를 알고 있습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불러 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부를 수 있고, 알 수 있고, 모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역사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요, 역사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고귀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라는 이름과 더불어 역사는 지금까지 수고해 나왔고, 참부모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라는 명사야말로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는 복된 말씀 중의 복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라는 그 이름 세 자를 생각할 때, 참부모로 말미암아 역사가 치리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생겨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이 결정되고, 참부모로 말미암아 외적인 세계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을 정복하여 비로소 하나님을 해원성사해 드릴 수 있는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더불어 살고, 참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행동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은사에 여러분이 먼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일생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의 가는 길에 동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 인류 앞에 이 이상 행복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의 명령을 따라 적진을 향하여 행진하는 병사가 있다면, 그는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희망의 정상 가운데 있어서 하늘과 땅이 직시하고 역사가 주목하는 거룩한 용사인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참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혹은 국가와 민족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그 심정으로 말미암아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이 비로소 행복의 동산의 문을 열 수 있고, 행진해 들어가서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소망의 국민과 국가가 현현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의 심정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여러분이야말로 역사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망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심판할 수 있는 기수인 것을 여러분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 앞에 아무리 강하게 몰아치는 시련 고비가 있다 할지라도, 참부모는 사탄을 승리하고 이룬 기반 위에 선 중심이기 때문에 이 중심과 더불어 선 자리에는 아무리 모진 시련이 부딪쳐 온다 하더라도 이것을 밀어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가일보 전진을 다짐하고, 가일보 승리를 다짐하는 걸음이야말로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암담한 이 사망권내에서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처해 있는 세계 인류들이 바라는 하나의 소망의 터전으로서, 하나의 희망의 상징으로서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뜻과 더불어 행동하는 무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긍지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보기에는 초췌한 모습이요, 나타난 모양은 초라할지라도 오늘날 우리는 이 민족이 부르고 있는 거룩하고 화합된 모습입니다. 이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가 우리를 맞기 위하여 환희의 함성을 지르고 있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내적인 시련 가운데서, 혹은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맞아 줄 수 있는 소망의 무리가 어디 있느냐'고 울부짖는 그들과 하루라도 빨리 상봉하여 가지고 그들을 소원의 터전에 옮겨 주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맡겨진 용사의 사명이요, 오늘날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의의 있는 뜻의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연약한 아낙네의 몸으로서 엄청난 역사적인 시대를 대표하고 섰다는 것을, 그러한 고귀한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찬양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손은 비록 작은 손이로되 이 손길은 민족이 바라는 손길이요, 방향을 잃어버린 세계 인류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손길입니다. 내 입술에서 나는 목소리는 방향을 잃어버린 세계 인류 앞에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목소리요, 가냘픈 목소리지만 사망의 길을 가려 주는 분별된 주인의 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일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눈은 비록 어느 지방 작은 마을의 산야를 바라보는 눈이라 하더라도 그 산야를 연속시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내일의 소망의 길을 모색하면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뜻을 희망으로 삼고 불쌍한 인류와 민족을 포옹하여 거느려 가는 것을 직시하는 시야를 가졌다 할진대는, 그 시야야말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시야요, 인류가 찾아야 할 소망의 시야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모든 만상은 서글픈 만상으로 나타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눈물이 엇갈리는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산야, 혹은 삼천리 반도는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기쁨으로 품어 줄 수 있는 내일의 행복의 표준으로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역사를 이긴 사람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요, 그러한 여러분의 손길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선한 일을 하는 손길이요, 그런 여러분의 걸음걸이, 여러분의 행동은 역사를 재현시키고 재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새로운 역사의 창건자로 서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것은 참부모의 뜻과 더불어, 참부모의 명령과 더불어 행동하는 무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긍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의 현현

그러므로 참부모를 중심삼고 생각하게 될 때, 참부모가 나타나려면 사탄의 참소권을 초월해야 됩니다. 사탄이 참소 할 수 있는 입장에서는 참부모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떤 존재냐?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존재인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선 중심적인 분이 아니고는 참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영계에 가 있는, 지상에 왔다 갔던 천천만 성도들과 수많은 선조들을 중심삼고 수천억이 되는 영계의 영인들은 참부모라는 그 한 분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권에 대해 승리했다는 환희와 영광의 결정적인 터전을 갖지 않고서는 참부모는 이 땅 위에 현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계의 수많은 선조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운데는 나라의 주권자도 있을 것이요, 각 도면 도의 책임자도 있을 것이요, 군이면 군의 책임자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에서 책임을 수행했던 군주와 수많은 백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주권자들이나 수많은 군주들이 참부모를 자기들이 소원하던 중심된 분으로 모셔야 되고, 국가의 각 부서면 부서에서 책임을 하던 그들도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소망하던 참부모이시다'라고 모실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백성의 자리에 있던 수많은 영인들이 참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통일되어 있다, 하나되어 있다고 하는 결정적인 영적 승리의 터전을 갖지 못하고는 참부모는 지상에 현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사탄이 영적으로 수많은 나라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에서도 사탄은 수많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국가를 중심삼은 군왕이 있고, 도 책임자라든가 군 책임자라든가 하는 책임자들이 있습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조직 편제가 지상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승리한 참부모를 중심삼은 하나의 통일된 조직 편제를 중심삼고 공격하는 놀음을 개시하기 위한 것이 이 지상에 참부모의 현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 영계를 동원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킨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왔다 간 영인들은 천사장권에 해당합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사탄권은 천사장의 자리에 서서 하늘의 법도를 어긴 죄를 범한 원수 사탄이라는 거예요. 천사세계를 동원하여 이 원수 천사장을 굴복시키기 전에는 지상 낙원권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역사에 피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지상에 현현해 가지고 하나의 국가적인 터전을 중심삼고, 하나의 주권을 중심삼고 일시에 세계 주권국가 대열에 평면적으로 올라가고 세계기준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해방 직후에 기성교회와 이 민족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수난길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영광된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이 땅 위에 와서 무엇을 했느냐? 백성이 있어야 중심 책임자가 있을 것인데 백성이 없었고, 또한 백성을 중심삼고 조직 편성을 할 수 있는 여러 책임자들이 있어야 국가형성을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서 반대하므로 이것을 잃어버렸기에 참부모의 권위와 위신을 잃어버리고 수난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 승리의 터전을 소망하는 인류 앞에 다시 한 번 개인으로부터 이것을 불러일으키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지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개인을 세워 나와야 합니다. 가정이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을 세워 나와야 합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거쳐 승리권을 넓혀 가지고 하늘의 부모로서 이 땅 위에 올 때는 본연의 기준을 다시 한 번 복귀시켜 하늘 승리의 영광과 지상 승리의 영광이 맞부딪칠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맞이하기 위한 노정을 가려내지 못한다 할진대는, 이 지구성은 영원히 사탄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이 지상의 복귀섭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선열들이 걸어 나온 것은 무엇이냐?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종의 종의 역사를 거쳐야 되고, 종의 역사를 거쳐야 되고, 양자의 역사를 거쳐야 되고, 아들의 역사를 거쳐야 되고, 부모의 역사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일시에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뜻이 분립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승리의 영광된 터전을 남겨 놓고 다시 지상노정에 있어서 종의 종의 생활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살고 있는 이 고통의 세계, 이 사망세계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한 싸움의 행로를 전개했던 것이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나왔지만 그 배후에는 피어린 투쟁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잠자는 시간에도 여러분이 쉬는 시간에도 발전의 일로를 책임지고 사망과 뒤넘어치며 싸우는 하나의 중심존재가 있어야 되는데, 그 중심존재가 인류 앞에 나타나 영광으로 모심을 받아야 할 참부모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종의 운명을 가려내기 위한 수난길을 거쳐, 종의 자리에서 신음하던 민족을 대신하고 백성을 대신한 싸움의 노정에서 사탄과 일대 일의 대결을 하여, 지상에서 종의 종으로서 이기지 못하였던 것을 이겼노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판도를 만들어야 했고, 또한 종의 입장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는 데 있어서 어느누구보다도 충신이 되겠다고 몸부림치고, 충성과 절개를 다 바쳐 가지고, 생명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인류가 가야 할 전통적인 종의 내연을 결정짓는 싸움의 노정을 거쳤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리하여 종의 싸움의 터전 위에서 양자의 신세를 대신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판가리 싸움을 한 역사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통일교회 역사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흘린 피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책임자의 외로움을 아는가

양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해낼 수 있는, 아들보다 낫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기준까지 모진 싸움의 행각을 거쳐 가지고 하늘로부터 공인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패하고 하나님은 승리하고, 영계에서는 지상이 승리하였다고 찬양할 수 있고, 영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의 군주는 물론 그 백성 전체가 합하여서 지상의 승리의 양자권을 획득하였다고 찬양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이 닦여지지 않고는 아들의 자리가 닦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양자의 자리에서 결정된 승리를 기반으로 해서 아들의 사명을 하는 자리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종은 천사장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이념을 허락할 수 없고, 양자의 입장에서도 기쁨의 자리에서 상대이념을 허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들의 자리에 서야 비로소 상대이념을 허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한을 지상에서 부여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통일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 역사이고 얼마나 고마운 한때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가 바로 1960년도, 민족과 국가,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개인들이 입을 모으고 손길을 들어서 통일교회를 몰아대던 핍박의 절정에서, 생명을 각오하고 생사의 판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결정적인 찬스에서, 모진 핍박 가운데에서, 모진 조롱 가운데에서, 모진 시련밖에 남지 않은 그런 극한 자리에서 생명을 걸어 놓고 단판의 판가리 놀음을 한 것이 1960년도에 있었던 성혼식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성혼식은 한날 하루의 행사로 끝났지만, 그 배후의 역사에는 영계에서 수천억 이상의 개인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영광을 갖춘 참부모의 영광된 모습을 지상의 영광으로 맞이했더라면 기독교와 수많은 종파를 발전시켜 가지고, 세계적 민주세계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목적은 이 한 분을 모실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부여하기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모진 핍박의 화살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원한의 자리에 휘몰아침을 받아 가지고, 여지없는 슬픔과 고통 가운데에서, 역사적 재탕감의 노정,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노정을 거치고 양자의 노정을 거쳐 아들의 자리까지 올라올 때까지의 눈물어린 슬픈 역사적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통일교회의 그 누구도 모르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민족과 다시 상봉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면서, 소원하였던 것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갔던 한, 그 한이 예수님에게서 그쳐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한은 하나님의 한과 더불어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의 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기 위해서 가는 길이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은 삼천리 반도에서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외롭고 서글픈 행각의 노정 위에서 핍박을 받으며 통일교회를 주도하는 문선생이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 한 분이 쓰러지는 날에는 영계의 갈 길은 막혀 버릴 것이고 나라와 민족의 갈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분은, 여러분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스스로의 행동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하루의 행동, 한 낮, 한때의 행동도 뜻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야 하고, 한때의 생각도 뜻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야 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도 뜻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 누구도 모르는 숙명적인 전쟁터에서 고달픈 싸움의 행각을 계속적으로 책임지고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그 누가 알고 있습니까? 그 싸움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싸움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고차적인 싸움으로서, 입체적인 싸움으로서 전개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아들로서 한을 남겼던 예수 그리스도의 한스런 민족복귀의 기반을 중심삼고, 국가복귀의 기반을 중심삼고 또다시 몰려나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다시 몰려나면 마지막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몰려나지 않는 그 길을 찾아 나가려니 내적인 싸움의 고충이 얼마나 많았으며, 내적인 고독이 얼마나 심하였던가 하는 사실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책임자의 어려움

밤이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영원히 영원히 반짝이는 별빛, 변하지 않고 빛나는 별빛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가는 지도자의 발걸음도 천세만세 빛날 수 있는 지상의 기반을 결정지을 수 있는 발걸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만일에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될 때는 암흑 천지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 몇억만 년이 가도 생명의 노정을 재현시킬 수 없는 운명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한마디의 말, 한 가지 행동에 얼마나 주의를 하고 있느냐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처녀들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 중의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일일 것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한 길을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선 가냘픈 처녀의 사정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한 남자를 관찰해야 할 안팎의 인연이 얼마나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저분이 나와 더불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남성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고대하는 마음, 알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그것을 한번 결정하게 되면 일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선한 남자를 중심삼고 결정하는 날에는 행복이 열려 나지만, 선하지 못하고 불의한 남자를 결정하는 날에는 자기의 일생은 영영 불행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일신의 불행으로만 끝난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천추만대의 후손까지 불행의 도가니에 녹아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종족의 운명이나 개인이 갈 길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며칠 밤을 새워 가면서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거기에서 누가 권고를 해주고 안팎을 가르쳐 주면서, 이것은 이렇고 이래서 좋다는 말을 들으며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그는 무한히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섰을 때는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의 운명길을 가려 가기 위한 결정을 짓기 위해서도 이렇게 참담한 인생살이가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한번 도장을 잘못 찍게 되면 억천만세가 걸려들어가게 되니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나라의 운명이 망하는 것은 물론이요, 역사의 방향이 뒤틀려 들어갈 것이고, 현재의 세계 30억 인류가 함정에 빠지는 것이요, 역사적인 소망을 가지고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낙망과 절망의 길로 저끄러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그런 상황에서 예스(yes)냐 노우(no)냐를 결정하는 순간에 처한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설 때에는 세상의 사랑하는 아내가 문제가 아니요, 세상의 아들딸이 문제가 아니요, 세상의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도 이런 기준을 결정해야 사는 것이요, 아들딸도 이런 기준을 결정해야 사는 것이요, 부모도 이런 기준을 결정해야 사는 것입니다. 책임자에 있어서는 사랑하는 처자로부터 부모로부터 그 나라 백성 전체를 중심삼은 것은 물론이지만 이 지구상 전체가 좌우되는 이런 엄청난 자리에서 결정하는 순간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런데 복귀의 노정은 한번의 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복귀되면 가정을 중심삼고 그런 싸움을 거쳐 결정지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의 복귀가 끝나면 종족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기 위한 탕감의 노정이 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이 그 길을 넘어섰더라도 민족이 가려 가야 할 그 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또 민족적인 탕감노정을 결정지어야 할 싸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넘어 국가라는, 하나의 주권을 복귀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한을 품고 십자가 상에서 사라져 가면서도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소망하던 국가 주권을 결정하여, 그것을 하늘나라로 결정지어 아버지 앞에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그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국가적인 지상 승리의 기준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의 여러분은 나라가 있느냐? 나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는데 가정이 있을 수 있느냐? 있다고 해도 그런 가정은 원수들이 와서 농락하는 거라구요. 그런 가정의 자식들은 원수의 손끝에 다 사라지는 거예요.

참부모와 인연된 자녀들의 사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 뭐냐? 남북한 삼천리 반도를 우리의 나라로 품을 수 있는 그 날을 맞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을 이루어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나, 자나깨나, 오나가나 죽더라도 이 소원을 위해서 죽어야 됩니다. 그것은 부모의 소원임과 동시에 그 인연과 그 핏줄을 따라 태어난 아들딸의 소원입니다. 따라서 그 소원은 부모가 이루지 못하면 아들딸들이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승리적 영광의 터전을 결정짓고, 이 땅 위에서 한 나라와 더불어 승리권을 결정지어 하늘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통일된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영광의 선포식을 하기 전에, 만일 선생님이 이 지상에 없게 될 때는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그러면 부모의 길을 갈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 참부모를 모시는 자녀라는 명분을 가진 우리는 생명이 다하기 전에, 죽기 전에 이 나라를 복귀해야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과 4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소원이 해원성사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그 나라를 붙들고 나라를 찾으면서 죽어야 되겠습니다. 살아도 그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참부모의 인연을 따라 세움받은 아들딸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위해서 먹어야 되고, 잠을 자도 그 나라 그 백성을 위해서 자야 되고, 사는 것도 그 나라 그 백성을 위해서 살고, 죽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이번 이 길을 나서기 전에 언제 하나님께서 이렇게 수난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내가 이와 같은 은사의 자리에 서게 된 것에 대해 언제 한번 자각해 봤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자신이 수천년 역사의 한을 남기고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가 간절히 바라시는 효성의 도리는 무엇이냐? 여러분이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여러분들이 해방된 민족으로서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부모를 중심삼고 악의 주권을 물리치고 선의 주권을 갖추어 가지고 영계의 영광의 터전과 지상의 영광의 터전이 일치될 수 있는, 하늘을 대신하고도 영광, 땅을 대신하여도 영광이라 할 수 있는 가정이 결정될 때, 통일신도들이 바라는 소원인 통일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가는 길 앞에는 반대하는 무리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고 있는 기성교회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굴복시키는 길은 무엇이냐? 싸움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반대하다가 지치고 반대하다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까지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복귀의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종족의 판국을 가려 나왔다 할진대, 종족이 가야 할 길은 민족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누구냐? 기성교단입니다. 따라서 이 기성교단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성교단을 복귀시키는 날에는 그 앞에 민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는 길을 막은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기성교단인 유대교와 기성주권인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었더냐? 예수님이 타파하고 가야 할 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주권이 아니었습니까? 그 다음에 그 주권을 중심삼고 로마를 격파해 버려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뺄 수 없는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이며 하나님의 섭리적 골수의 노정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청산하는 여자가 되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남편을 모시고, 아들을 낳아서 기르기 위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아낙네가 못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먼저,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가 하나님 앞에 유린했던 것을 내 일생에서 벗겨 버려야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먼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이 볼 때에 지상의 여자로서, 해와로서 이겼다고 공인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영계의 공인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지상의 통일교회 여자 신도들은 지상의 어떤 종파 어떤 교단의 여자보다도 낫다는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권내에서 망해 들어가는 현재의 기성교회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냘픈 여자라 해도 그 배후의 인연이 크면 그 여자는 혼자의 몸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에 한 나라의 황후라면 그 한 사람은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여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전통을 따라가야 되는 것이요, 전통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요, 전통을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요, 전통을 따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부패하는 것을 보면, 이번 선거공약에도 그런 문제가 제기되어 있습니다. 박대통령이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선거공약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부패를 근절하는 데는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남자들이 썩었습니다. 남자들이 썩었으면 여자가 썩지 않든가 아들딸이 썩지 않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가 썩었으면 썩은 남자를 중심삼고 따라가는 그런 추종자들 가지고는 아무리 노력해 봤자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뿌리 뽑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패했어도 여자는 부패하지 않아야 된다 이거예요. 부모가 부패했어도 자식은 부패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패한 남자들을 중심삼고 나라를 망쳐 놓은 현 실정을 바라보게 될 때, 여자들은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소망의 하늘나라의 주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선봉에 서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전통적인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사탄의 화살에, 독약 묻은 창에 맞고 쓰러져 가는 남자들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방부제를 발라야 됩니다. 방비책을 강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의 부패해 가는 사회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남자들을 위주한 사회 환경을 우리들이 불신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사탄이 불신을 심었는데 불신의 열매가 사탄을 중심삼고 맺혀지는 데 있어서 여자들까지 맺혀져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자들이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는 신앙의 길은…. 지금까지는 타락의 동기가 여자이기 때문에 6천년 역사를 가려 나오는 데 있어서 여자들이 희생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 정성을 들인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에서도 정성을 들여야 할 사람은 누구냐? 여자들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종족적 승리의 터전을 닦으려면

그러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심판하는 데는 어디서부터 심판할 것이냐? 자기 자체내에서부터 심판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심판할 것이냐?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개인을 중심삼고 심판하는 때는 지나갔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사람은 개인을 중심한 참소조건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정을 중심삼은 탕감조건을 놓고는 심판받아야 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조건을 세운 가정 전체가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종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은 가정 전체가 일심동체가 되어 가정적 탕감노정을 걸리지 않고 하나되어서 넘어가는 날에는, 종족적 승리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종족적 승리적인 안식의 터전을 갖추지 못하고 죽어갔던 한을 풀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유대교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또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은 기독교가 십자가의 자리가 아닌 영광의 자리에서 유대교와 하나되어 가지고 이스라엘의 종족 편성을 했더라면, 이스라엘 나라는 예수님을 위주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못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이스라엘 가정들이, 이스라엘 가정과 아낙네들이 예수님 앞에 책임하지 못했던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위에 왔는데 신랑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신부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신부는 어디에 있느냐? 사탄편에 있습니다. 하늘편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과 악의 모체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왔다갔다하지요? 통일교회 교인이 되어 전도 나가 가지고도 '안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나갔어'라고 하면서 쉽게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왜 이렇게 나와 가지고…' 하며 왔다갔다 해요, 안 해요?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부는 어느 편에 있다고요? 「사탄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편에서 신부가 나타났다고 하면 사탄들이 가만둘까요? 그 신부는 하늘편 신부인데 사탄이 미워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부는 이렇게 사탄이 미워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찾으시는 신부

그러면 신랑 되시는 주님이 이 신부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에서 양보해 주든가, 즉 '어서 인수하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모셔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찾아와야 합니다. 찾아오려면 신부가 누가 주인인 줄 알아야지요? '내 주인은 이분이 아니라 다른 분이다'라고 하면서 자기 주인을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지요? 또 주인도 상대편에서, '본래는 내 처가 아니고 당신 처인데…'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찾아가도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꼼짝 못할 수 있는 패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 유대교입니다, 유대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눈을 까박까박하다 할 수 없이 넘겨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가 예수님을 받들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받들어야 되는데 이스라엘 나라는 사탄편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그냥 넘겨 줄 것 같아요? '너 뭐야, 요놈의 자식, 목을 잘라 버리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래서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무엇을 찾으러 왔어요? 남자 찾으러 왔어요? 형님 찾으러 왔어요? 아버지 찾으러 왔어요? 동생 찾으러 왔어요? 누구를 찾으러 왔어요? 「신부요」 신부가 여자야, 남자야? 「여자요」 그 신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난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어떻게 생기기는 뭐 어떻게 생겨요?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여자예요, 남자예요? 「여자요」

여자는 자기한테 좋은 것은 좋아하고, 나쁜 것은 싫어하고, 자기 것보다 조금만 더 좋으면 헤헤하고 좋아합니다. 좋은 것은 '좋다' 하고 나쁜 것은 '난 싫다' 하는 패들입니다. 여자들 그렇죠? 여자들이 시집갈 때 '나는 시집가서 고생해야 되겠다. 시집가서 고생해도 괜찮아' 그러면서 시집가는 여자가 있어요? 그런 종자가 있어요? '내가 시집을 가는 것은 사랑받기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이러이러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런 패들이 바로 여자입니다.

여러분은 남자야, 여자야? 「여자입니다」 젊은 여자야, 늙은 여자야? 「젊은 여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젊은 여자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신부삼는 데 할머니 신부를 원할까요, 아가씨 신부를 원할까요, 아주머니 신부를 원할까요? 아가씨 신부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순 살 쯤 된 신부라면 어떻겠어요? (웃음) 웃을 일이 아니라구요,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 중에서 최하여야 해요, 최고여야 해요? 가시밭길을 헤치고 핍박의 화살을 물리치고 홀로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싸워 이긴 예수님이 신부를 찾겠다고 궁리하는 자리에 와서 '당신은 신랑의 자격으로 와서 신부를 찾기 위한 궁리를 하고 있지요? 그 신부는 세계에서 일등가는 승리한 신부가 아니겠습니까' 하는 물음에 '그렇소' 할 때 '내가 그런 신부요' 하고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30대 청년으로서 '그런 신부는 나는 싫소' 한다면 진짜 인류를 대표하여 찾아온 신랑 자격이 됩니까? 여자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런 신랑이라면, 복덩이예요, 아니예요? 여러분, 이걸 알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30세쯤 되어서 신부를 맞이할 때, 나이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를 바랄까요, 30전의 얌전하고 보화같이 부드러운 각시가 찾아오기를 바랄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여자를 바랄까요? 20대가 좋을까요, 30대가 좋을까요, 40대가 좋을까요? 어떤 사람이 좋을까요? 「20대가 좋습니다」 알긴 아는구만. 예수님이 서른 살인데 신부가 서른 살 이상 되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어울린다고 그래요, 안 어울린다고 그래요?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자를 먼저 만들고 남자를 만들었어요? 남자를 먼저 만들고 나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30대 예수님 앞에 80대 할머니가 나타났다면 어때요? 좋아요, 싫어요? 「싫어요」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싫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부끄러워서 손 못 들겠지요? 신랑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처녀들이 말이야, 순정을 잃지 않은, 아직까지 젊은 처녀들은 부끄러워서 손 못 들거라구.

이 땅 위에 있는 여자들이 동맹파업해 가지고 '당신은 나이 많은 사람을 신부로 맞지 않으면 신랑될 자격자가 못 됩니다'라고 해야 되겠어요, '당신은 수난의 길을 통해서 역사를 대표한 주인으로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들 가운데에서 일등가는 신부를 택해서 맞이해야 하지 않겠어요?' 라고 해야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일등 신부가 될 만한 사람을 추대해 드려야 되겠지요?

이렇게 추대받을 수 있는 아가씨는 미스 하늘나라로 당선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당선될 수 있는 자격자는 얼굴만 잘나 가지고 되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잘나야 되느냐? 마음만 좋아서 될 것이냐? 신부가 무엇을 찾아서 시집 갑니까? 마음을 찾아서 가요? 신랑의 무엇을 찾아가는 거예요?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심정문제에 있어서 꼴찌가 되어야 되겠어요? 일등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일등이 되어야 합니다.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는 신부가 되려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각시가 있다면 그 각시는 나이 많은 신부 대표자 앞에 충성을 다하여 모셔 가지고 '당신이 받은 복을 나에게 나누어 주소' 하여 그분의 것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90세 할머니에게 상속받고, 다음에 80세 할머니에게 상속받고…. 내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70세, 60세, 50세 아주머니에게 상속받고…. 그렇게 해서 10대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타락은 10대에서 했기 때문에 10대권까지 내려와야 됩니다.

그 신부는 심정적 사랑의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피어린 수난길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낭군을 찾아가는 데는 사탄이 갖은 방법으로 자기를 유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꽁꽁 다짐한 절개를 품고 세상의 남자 그 누구라 하더라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일편단심으로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역사의 종착지까지 가야 합니다. 그 절개지정을 품고 남아지는 자리에 서야만, 그런 심정을 품고 개인도 지나가고, 수많은 종족도 지나가고, 수많은 민족도 지나가고, 세계도 다 지나가야만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난길에서 허덕이는 가운데서 사랑을 맺게 된다면 수난길에 허덕이는 주님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여자는 이런 수난길을 거쳐 와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두고 볼 때, 여자들은 지극히 어려운 수난길을 거쳐왔습니다. 어떤 가문을 보면,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여자도 있습니다. 시집을 가서 시부모를 모시는 데 밥상을 들고 안방에 들어가서 시집 식구들과 밥을 같이 먹지 못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50세가 넘도록 그렇게 사는 사람을 내가 봤습니다. 비참하지요? 잠자리는 남이 모르는 으슥한 자리요, 밥 먹는 자리는 부엌의 부뚜막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친구가 되고, 강아지가 친구가 되는 자리에서 밥을 먹고 살았다 이겁니다. 이런 비참한 역사를 지내 오면서도 남겨야 할 것은 오로지 일편단심이었습니다. 낭군을 위하여 충성하는 그 마음이 변할소냐 하면서….

겨울이 되어 손이 갈라지고, 여름이 되어 몸이 진무르는 한이 있어도 그 마음에서 남편을 위하는 일편단심의 절개지정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한 어머니가 죽으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그 어머니의 수난을 기억해 가지고 그 어머니가 영계에 가서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빌 수 있는 효자를 세워야 되는 겁니다. 또, 딸이 있으면 어머니가 저렇게 여자로 태어나 고생했으니 하늘나라에 가서나마 복받기를 빌어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절개를 세워 놓아야만 오늘날 역사적인 이 심정적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 길을 출발할 때, 어머니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18세 아가씨를 그냥 그대로 어머니로 맞을 수 있었겠습니까? 수난의 길을 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맨 꼭대기에서부터 하늘의 깃발을 이어받아 가지고, 역사적인 심정적 전통의 인연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을 상속받고야 신부의 자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자리에서는 수많은 사탄들이 자기 것을 빼앗아 간다고 떠듭니다. 동네가 떠들고, 나라가 떠듭니다. 세계가 반대합니다. 반대해요, 안 해요? 결국 그 한 분 때문에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찾아오지 못하면 빼앗아 와야 됩니다. 신부를 사탄세계에서 데리고 오는 데는 찾아오지 않으면 빼앗아 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들은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가는 걸 왜 싫어하는지 알아요?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빼앗아 와야 합니다. 지금도 축복가정 남자들이 선생님이 가라 할 때 자기 부인들을 보낸 거예요? 선생님이 빼앗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빼앗기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반대를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 빼앗겨야 됩니다. 언제든지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기에 남자가 반대하면 그건 사탄입니다.

축복가정은 전부 동원되어야

이번에 동원된 7백 가정은 아직까지 약혼단계입니다. 도깨비 같은 녀석들은 그저 헐떡헐떡하지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부인을 내보내지 않은 녀석은 망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입니다. 남편으로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제거되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찾아올 수 있는 자리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것을 빼앗아 와야 할 입장에서 원수시했던 한이 선생님 일대에 남아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탕감할 것이냐? 탕감하는 데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세워서 탕감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렇지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은 누구냐?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가정이 안식하려면 여러분이 이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생님의 가정이 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새로운 가정적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여러분, 누구를 빼앗아 와야 된다구요 ? 「신부요」 신랑을 빼앗아 와야지요? 「아니요」 신부를 빼앗아 와요? 「예」 그러면 여러분이 신부예요, 아니예요? 「신부입니다」 자기가 신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기야 아직까지 처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신부가 아니라구요. 신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이 기준에 딱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신부를 빼앗아 오느냐? 누가 찾아와야 되느냐? 신랑이 찾아와야 됩니다. 신랑이 찾아온다면 어때요? 세계에 있는 여자들을 한꺼번에 몽땅 찾아온다면 남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굴복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여자들을 다 찾아오고 빼앗아 왔다면 남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절대 복종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싫으면 관두라는 겁니다. 50이 되든 60이 되든 혼자 늙어 죽으라는 겁니다. 그리 되면 싹싹 빌면서 '종도 좋고 다 좋소'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이래서 세계의 여자 남자가 딱 한군데 다 모이면 세계 통일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통일 방안은 간단한 거예요. 여자나 남자나 한편으로 모아만 놓으면 잘났다는 남자들은 돌아간다는 겁니다. 이 놀음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섭섭하지만 축복받은 가정은 모조리 동원입니다. 누구는 남고 동원하라고 그랬어요 ? 모조리예요, 머저리예요? (웃음) 여러분은? 「모조리」 남편은 머저리이고 여러분은 모조리입니다. (웃음)

축복가정 부인들이 동원되어야 할 이유

선생님은 핍박을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받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핍박을 받았어요? 여자 때문에 받았습니다. 왜 여자 때문에 핍박받았느냐? 이건 통일교회 가지 말라고 해도 동동동 갑니다. '아이고, 나와 사랑하면서 잘살자는데, 내가 잘 해줄 터인데 왜 통일교회 가는 거야' 해도 갑니다. 통일교회에 가서 강냉이 밥을 먹고 보리밥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여기에는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행복이 아닌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행복은 끝나는 것입니다. 한번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하늘 행복은 영원무궁한 것입니다.

직접적인 상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안 들어야 된다? 「잘 들어야 됩니다」 잘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신랑과 선생님을 생각해 볼 때에, 신랑보다 선생님이 더 가깝다는 거예요. 그런가요? 「예」 신랑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거예요. 거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랑의 말은 틀리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가긴 가야 할 텐데 이놈의 남편과 자식이 원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그날에는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눅 21:23)"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제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에게도 걸리는 것입니다. 남편을 가진 여인이 화가 있다는 거예요. 하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남편에게도 걸리지 말고 아들에게도 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걸렸겠어요, 안 걸렸겠어요? 선생님도 걸렸어요? 뜻을 이루기 위한 일편단심으로 신랑의 자리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남자들이 가지 못하는 자리에까지 가 가지고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죽음의 고비가 몇 고비라도 넘어 가지고 신부를 찾아 넘어갔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세계의 일등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지요? 그렇지요? 그래 수많은 남자들이 선생님을 반대했습니다. 그저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몇백 번, 몇천 번, 몇만 번 선생님을 죽이고 싶어했지만 못 죽였습니다. 그래 가지고 남아진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이스라엘 나라의 한이 풀리기 시작하고 유대교의 한이 풀리기 시작하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예수님에게 한이 맺히게 한 것이 누구냐? 신부가 있어서 그랬어요, 없어서 그랬어요? 「없어서…」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 한을 풀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는 걸음은 무엇을 위해서 가는 걸음이냐? 하늘 남편을 따라 신부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나라를 찾기 위해 가는 걸음입니다.

나라를 찾아야 할 예수님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먼저 예수님을 맞이해야 했던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기 때문에 신부가 가서 맞아 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부를 맞이하러 온 예수님을 죽여 버렸기 때문에 신부가 가서 신랑을 맞아와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역사의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197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동원할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뜻의 때가 멀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이제 가야 할 길은 다른 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어디예요? 통일종족은 예수님을 중심삼은 파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이방인이라고 쫓아내던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옛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교단의 터전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치지 않고는 이스라엘 나라에 못 갑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국가와 민족 앞에 공인받아 가지고, 주권 국가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여 선생님을 중심삼고 기성교회를 거쳐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 길을 누가 가야 되느냐? 신부가 가야 됩니다. 본래는 신부가 여기에서 와야 하는데…. 신부가 갔다가 다시 오는 거라구요. 신부가 이스라엘 나라까지 가서 탕감해 놓고 돌아와야만 신랑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가야 돼요. 우리 앞에는 이런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여러분의 3년노정을 중심삼고 세계정세를 두고 볼 때,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 한국, 중국을 중심삼고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세계가 뒤넘이쳐요, 안쳐요? 앞으로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을 여러분이 보게 될 것입니다. 사탄과 하나님이 겨루어 가지고 최후의 결정을 짓는 판가리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와가 하늘땅을 중심삼고 뒤집어 놓는 데 판가리의 괴수가 됐던 거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 한 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두 갈래 길을 가려낼 수 있는 선봉에 여자가 서야 됩니다. 이것은 탕감복귀 원칙에 있어서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어려운 것을 내가 몰랐느냐? 이렇게 몰아냄으로써 여러분의 가정이 파탄되고 남자들은 체통이 형편없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이북으로 갈 때,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를 버리고 갔어도 편지 한 통 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 편지가 와도 읽지도 않고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건 보는 게 아닙니다. 편지를 읽으면 사적인 마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눈물도 흘리게 되고 시시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은 제자들도 가야 합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인류가 타락권내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영적인 길을 개척해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길을 찾아가야 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의 운명길에서 피를 뿌리며 갔습니다.

통일교회 신도들도 통일교회 선생님이 가던 길을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고독단신으로 사탄세계에 있어서 자신의 생명을 도마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삼팔선을 넘어 세계적 사탄 공산국가를 찾아가던 선생님의 신세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아들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맡기면 망하지 않고 남아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린 것입니다. 내 아들딸들을 죽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산제물로 바쳐 드리고 가운이 돌아오는 그날, 영광의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 못 되었다면 그 여자는 이 자리에 못 앉아 있지요? 여러분 가정에 있어서 여러분이 가는 길에 남편이 하나가 못 되면 앞으로 남자는 여러분 앞에 있겠어요, 없겠어요? 갈라서게 되는 거예요. 그런 남자가 있다면 참소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부의 입장에서 사탄세계를 공격해서 사탄세계를 때려잡아 가지고, 사탄세계를 굴복시켜 가지고 개선장군이 되어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나라가 환영하고, 동네가 환영해야 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이렇게 볼 때 우리 뜻의 때가 얼마나 남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북괴는 1972년도까지 남한을 침략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아시아 정세뿐만 아니라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이 소용돌이칠 때는 아무 쓸데없는 검부러기 하나가 소용돌이 흐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얼토당토 않은 일인데 세계적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보잘것없는 몇몇 사람이 움직이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세계적으로 나간다는 거예요. 이북이 지금 공산당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하늘 부모를 위해서, 하늘 남편을 위해서, 하늘 자녀를 위해서 더 정성들여야 할 이중 삼중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축복가정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몽땅 제물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가 제물됨으로 말미암아 사위기대가 탕감될 수 있는 기준이 서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앞으로 새로운 전통의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잘 싸우려면 고생해야

그래 이번에 전도 잘 나갔어요, 못 나갔어요? 「잘 나갔습니다」 잘 나갔으면 잘 싸워야 되겠습니까, 못 싸워야 되겠습니까? 「잘 싸워야 됩니다」 틀림없이 잘 싸워야 되는데 '아이고, 배고플 때는 밥을 푸지게 잘먹어야지. 그래야 잘 싸우지' 한다면, 그게 잘 싸우는 거예요? (웃음) 열녀가 되는 데 있어서 극상의 열녀가 되려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밥을 먹고, 노래가락을 읊으며 춤추면서 싸워 이겨야지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싸워서 이기는 법이 있습니까? 큰 승리일수록 악착같이 피땀을 흘리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레슬링을 봤어요? 내가 레슬링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좋아하는 거라구요. 진땀 피땀 흘리면서 나가자빠지면서 쓰러뜨리고 이러면서 싸우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김일선수하고 캐나다에서 온 세계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선수하고 시합을 하는데 김일선수를 업으면 콩알만합니다. 그들이 짓밟고 꺽고 하는데 다 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듯이 하고 있다가 들려 올라가는 그 힘을 이용해서 말아 가지고 그대로 내리 꽂아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저건 내가 쓰는 방법이로구나' 했습니다. 통일교회식 전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몰리긴 몰렸지요? 몰리긴 했지만 나중에는 떡 반격을 해서 꺼꾸러뜨리는 겁니다.

우리가 목사 찾아가게 되면 뭐 무슨 변명을 하고 별꼴 다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지요? 여러분은 전도 나가서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 가지고 남자들의 억센 사정을 다 알아야 돼요. 다 부딪쳐 봐야 돼요. 별의별 입장에서 나쁘다는 것은 모두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제일 좋아하는 데 가야 되겠어요, 제일 나쁜 데 가야 되겠어요? 제일 싫어하는 데를 가야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곳이 어디예요? 그 군의 군수예요? 서장이예요? 그들은 다 우리를 좋아합니다. 그렇지요? 우리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성교회입니다」 기성교회에서도 누구? 「목사요」 목사들입니다.

여러분, 기성교회 목사들 앞에 가기 좋아요, 나빠요? 기분 나쁠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목사 앞에 갈 수가 있나? 목사는 대학을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지도하는 사람이고 나는 실력 부족인데 어떻게 가나' 하고 생각하지 마세요. '너희는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요놈, 내 치마폭에 깔려야 된다' 해야 됩니다. '너 잘 만났다. 이 녀석들, 통일교회를 골려 먹던 요놈의 패들' 하면서 당당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목사가 여러분의 뺨을 때리는 날에는 여러분의 요리감이 되는 겁니다. 손을 대는 날에는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 주일날 당당히 예배시간에 강단에 올라가서 '나 말좀 해야 되겠소. 목사님이 교회는 지키지 않고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 남편 있는 여자의 뺨을 때렸소. 목사님이 나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남편 데려오겠소' 이렇게 공갈 좀 치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도 굴복하지 않으면 '대중의 눈들이 있지 않느냐? 대중의 공판을 받아 봅시다' 해 놓고 사연을 쭉 교인들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원고지 한 서너장 써 가지고 가서 읽어 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개 목사님이 하늘같이 높은 줄 알았더니, 흰 옷 입은 신사인 줄 알았더니 내복은 시꺼먼 것을 입었구만' 한다는 거예요. (웃음) 누구든지 통일교회 여자를 건드리는 날에는 걸립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비상한 작전입니다. 이렇게 살랑살랑 찾아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어디라구요? 「기성교회입니다」 기성교회 누구를 찾아가야 해요? 「목사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를 못 만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기성교회를 통해서 가야 됩니다. 꼭대기에서 눌러 내리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불쌍하지요? 이들을 우리가 구해 줘야 됩니다.

이번에도 그래요. '통일교회의 원리 말씀을 들어 보니 그럴듯한데 내가 여기에 들어올 터인데 차후 대책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어 보는 목사들이 수두룩하게 많았습니다. 이번에 왔던 지방교회에 있는 어떤 목사는 한 달에 평균 만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이 그렇게 잘 싸우기 위해서 나갔으니 잘먹어야 되겠어요, 못먹어야 되겠어요? 「못먹어야 됩니다」 또 내가 잘 싸우기 위해서 나갔으니 희생해야 되겠어요, 편해야 되겠어요? 「희생해야 됩니다」 몸이 원하는 것과 전부 반대라구요. 남이 잠을 열 시간 자면 나는 여덟 시간 자고, 남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면 나는 네 시에 일어나는 거예요. 또 남이 열두 시까지 일하게 되면 나는 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하나되어 하나님과 인류의 한을 풀어야

그러면 이 길을 가는 데 이 주인공님을 모시고 가야 되겠어요, 여러분만 가야 되겠어요? 「모시고 가야 됩니다」 모시고 가야 되겠지. 그렇게 해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탕감조건이 성립되는 날에는 하나님의 행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2년 동안 잘만 하면 대한민국은 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지금 내가 이것을 맞추기 위해서 구보끼 회장을 중심삼고 입체적인 작전을 추진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신부가 가야 할 걸음이라는 것은 여러분 일대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한 시대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3시대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왜? 찾아오시는 신랑은 한 시대를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신약시대, 성약시대, 이 3시대를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찾아오시는 신랑은 종의 시대, 아들의 시대, 부모의 시대를 거쳐 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시는 그분이 종의 종 시대로부터 종의 시대, 양자, 아들의 시대를 거쳐 부모의 자리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듯이 여러분도 갔다오는 데 있어서 3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3시대를 보게 되면 소생은 한국이요, 장성은 기성교회요, 완성은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통일교회 가정들은 소생이 없고 장성이 없는 완성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소생에 해당되는 것이 이스라엘 나라요, 유대교가 장성이며, 예수가 완성이지요? 앞으로 기성교회가 반대하다가 이제는 반대를 그만두자 하고 반대하는 목사들 사이에 여러 파당으로 갈라져서 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환영할 것입니다. 2년 동안 여러분은 이런 길을 가야 합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이 갈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천상에 영광의 승리의 터전을 결정하고 지상에 승리의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하여 민족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국가의 한을 해원성사하고, 세계의 한을 해원성사하여 3시대의 역사의 한을 풀고 영광의 깃발을 들고 로마제국을 대해 기수를 높여 가지고 당당하게 하나의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 가지고 나가려 했던 예수의 소원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삼천리 반도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수고한 공적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의 기틀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국과 독일을 연결시키고 소련의 모스크바까지 연결시키는 날에 세계는 복귀의 에덴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사명을 맡아서 탕감시켜 나가는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하면 참된 가정이요, 참부모님의 가정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참부모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참부모님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주체적인 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일전이 우리의 생애권내에서, 희망의 결전이 우리의 이 기간권내에서…. 생사를 판결할 수 있는 엄숙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이 과정에서 있는 정성을 다 퍼부어 피살을 바치지 못한 것이 한이요, 눈물과 정성을 다해 드리지 못한 것을 한으로 알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아낙네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거룩한 어버이의 눈물 자국을 덮을 수 있는 눈물을 흘려야 되고, 거룩한 어버이의 핏자국을 내 피로 덮어 하늘의 한이 되지 않게 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한이 맺혔거든 내가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아들된 여러분의 사명이요, 선생님 가정의 주위에 선 축복받은 가정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눈물짓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눈물지어야 되고, 선생님이 수난을 당하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수난을 당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반대였습니다. 이러한 퇴폐적이고 하나님에 반대되는 사상을 일소해 버리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아낙네들의 거룩한 행군의 대열이, 지금 삼천리 반도에서 개척의 길을 가고 있는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아낙네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역사적인 행군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수천억의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은 승리를 다짐하여 잘 싸우라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처럼 영계가 동원되어서 응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희망을 바라고 나오는 세계의 수많은 가인적인 종파, 양자격인 가인 세계의 종교권내에서는 어서 빨리 승리하여 자기들의 해방권을 찾아 달라고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내일의 싸움터에서 결정될 것이냐, 아니면 이 밤의 싸움터에서 결정될 것이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모색해 나가는 걸음이 지금 여러분이 동원되어서 나가는 노정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삼천리 반도에 참부모의 전통을 심으라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무엇을 남길 것이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역사적인 투사의 노정을 거치면서 절개 지조를 남기기 위해서 혈혈단신으로 책임을 수행해 나오신 참부모의 전통을 여러분이 처해 있는 가정과, 여러분이 처해 있는 마을과 군, 혹은 도 전체, 삼천리 반도 골짜기 골짜기에,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만나서 인사하는 곳곳마다에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엄숙하고 거룩한 사상을 말없이 그들의 가슴 가슴에 봄볕이 스며들 듯이 심어지게 하고 돌아오는 것이 지금 이때에 사명을 짊어진 여러분들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슬픔이 있어도 '아무개 아버지! 아무개 애기야?' 해서는 안 됩니다. 애기나 남편과 더불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와 더불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가지가 뻗기 때문입니다. 참부모는 뿌리이기 때문에 가지가 뻗어 나가려면 뿌리의 진액을 많이 빨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와 얼마나 하나되고, 참부모의 정성의 일념과 얼마만큼 일치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부모의 진액을 흡수하여 크게 넓게 가지를 뻗어 가지고 열매를 맺어 참다운 신부의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으로 돌아올 때, 그 가정은 이미 신부 완성한 세계적인 동산의 터전을 계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편이 여기에 절대 순응하여 가지고 새로운 가정의 출현이 벌어지게 될 때, 통일가에서 모색하고 있는 천국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종족의 편성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지파에 속해 있어요? 속해 있어요, 안 속해 있어요? 지파는 민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할 때 비로소 편성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스라엘 민족은 12지파를 편성했었습니다. 우리가 민족이 있어요? 그러니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참된 가정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서 참된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참된 신부의 전통을 세워 가지고 참된 남편, 참된 자녀를 가져서 천리가 바라던 참된 승리의 가정을 우리 일대에 상속받아 가지고, 선한 조상의 기틀이 보잘것없는 나로 말미암아, 나의 짧은 수고의 기간을 통해서 탕감되어 상쇄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복중의 복이요,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시대의 여성보다도 최고의 영광된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그런 숨가쁜 시간들인 줄 알고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노력을 다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한 시간, 한 날도 그 뜻과 더불어 싸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마음으로, 자기와 인연된 것은 다 잊어버리고 그 이상의 하늘의 인연을 많이 남기기 위해 싸워서, 부디 1972년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하여서는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극을 받고, 심정의 수습을 하고, 재차 결의를 하기 위해서 이번에 이런 수련기간을 가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이와 같은 참된 가정의 대표적인 중심 사명을 짊어진 부인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을 자각하면서, 내일의 싸움터를 직시하고 책임수행에 필요로 하는 모든 장비를 갖추기 위해서 이번 기간이 필요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노력을 다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는 가운데서 질서를 지키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길 바라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드렸으니, 이것을 여러분이 잘 소화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기 도

​아버님,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존속해 나온 것은 그 누구의 힘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아버님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역사시대에 있어서 피의 대가를 치러 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아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애를 바쳐 나갔던 충효의 도리의 터전이 남아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와 같은 인연이 성립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한 역사노정의 수난길에 있어서 당신께서 저희 앞에서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외롭기 전에 당신이 먼저 외로왔사옵고, 제가 슬픈 사정에 처하기 전에 먼저 슬픔을 당하셨던 아버지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그와 같은 역경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 통일교단을 형성하고 통일종족을 편성하여 수많은 가정들을 앞에 놓고, 오늘 당신의 뜻과 더불어 참된 가정의 인연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겠사옵니다.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는 모체요, 인류에 있어서 소원성취의 중심이요, 이상세계의 출현의 기원이 되는 이 참부모야말로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시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내 가정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내 자식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언제나 명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 참부모의 사상을 몸에 지녀야 되겠습니다. 참부모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뜻입니다. 참부모의 사상은 현실을 무시해 버리고, 미래의 창건과 역사적 전통을 남기기 위한 사상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과거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 현재에 있는 것이요, 현재의 목적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현재에 있는 것이요, 미래의 목적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현재에 있사옵니다. 이렇게 3시대의 결정적인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거룩한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할 때, 그런 인간임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하오나 아버님, 이제는 알았사옵니다.

참된 가정, 그렇게도 당신이 바라시던 참된 가정, 그 참된 가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참된 민족이 형성되는 것이요, 참된 가정의 전통이 뻗어 나감으로 말미암아 참된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요, 참된 가정의 인연을 통해서 국가를 넘고 세계로 흘러가게 될 때에 참된 세계가 형성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이 기억하실 수 있고, 아버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참된 가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낙네들이 먼저 심정적인 전통의 동산을 가꾸어 세워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에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일신이 쓰러지는 데는 얼마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내 몸 다 드려 하늘의 해원성사, 땅의 해원성사, 참부모의 해원성사, 이 삼대의 해원성사뿐만 아니라 이 민족을 해원성사하고, 후대의 우리 후손들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입체적인 소원성취의 내정이 결정되는 이 엄청난 자리가 오늘날 축복받은 아낙네들의 자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정성을 다하여 천추만대에 선한 선조로서의 명분을 세워 길이길이 높임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통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통일기반확보' 라는 표어를 내걸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기반인 부모님을 몰랐습니다. 저희들이 언제 부모님 앞에 효도하였으며, 언제 꽃피는 봄에 부모님을 모셨으며, 혹은 여름, 가을, 겨울에 언제 같이 싸웠으며, 언제 같이 죽기를 각오했습니까? 3년 동안 부모님을 모셔야 됨에도 불구하고 모시지 못한 저희들에게 부모님과 3년 동안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이 기간을 부여해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낮에도 부모님이요, 밤에도 부모님이요, 외로와도 부모님이요, 기뻐도 부모님이요, 하늘땅을 바라볼 때도 부모님이요, '우리 부모님 모셔 놓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는 간절한 눈물이 어릴 수 있는 생활노정이 생활환경에 어리게 될 때에는 수많은 민족이 여기에 감동을 받을 것이며, 수많은 민족뿐만 아니라 수많은 세계 인류가 감동을 받는다는, 거룩하고도 엄청난 사연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힘차게 힘차게 더 힘차게 전진하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이 지나면 새달의 초하루가 되옵니다. 임지활동의 6개월을 맞는 출발의 날이오니 저희들에게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 그 동안의 한 많은 사연을 모두 듣고, 서로서로 느끼고 서로서로 나누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그 사연을 아버지께서 알아주시옵소서. 간절한 마음에 사무치는 마음을 통하여 아버지 앞에 아뢰고, 아버지 앞에 사연을 통고하는 그 자리마다 당신의 거룩한 손길로, 제가 그런 자리에 있을 때 위로해 주시던 것의 몇배로 인연을 통하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생명의 불길이 이들의 민족애의 기원을 통하여 온 삼천리 반도에 불붙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거룩한 무리들, 깨끗한 무리들, 숭고한 무리들, 하늘땅이 굽어살피시어 찬양하는 무리들이 이 삼천리 반도의 여성들을 통하여 거룩하게 나타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런 시대적 영광의 터전이 이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고, 거세적인 놀라운 역사가 이들의 움직임을 통하여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높고 귀하고 거룩한 이름과 숭고하고 고귀한 내용을 더럽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딸들을 아내로 알고 있는 수많은 아들들과, 이 딸들을 어머니라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당신의 무한한 복과 사랑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었사오니, 허락하신 뜻의 영광이 이들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싸움터에서 승리한 영광의 기수가 되어 하늘 부모를 높이 높이 모시고 그 부모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참다운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간구하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Ⅱ)

​통일은 우리의 정성으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싸움으로 성취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통일의 노래'를 힘차게 한번 불러 봅시다. (다같이 통일의 노래를 부름)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은 대한민국과 이북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무찌르고 공산당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런데 공산당은 세계적인 체제를 갖추어 악착같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공산당을 굴복시키고 이 나라 삼천리 반도에서 추방할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형극의 길을 가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일 대한민국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나라를 지켜서 이 나라를 빠른 시일내에 부흥시켜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안팎으로 단결하여 남북을 통일시켜 가지고 자주적인 국가를 형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외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있지만, 우리는 내적으로 세계적인 원수 사탄과 대결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부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부흥은 내적인 부흥 위에 자연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부모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면 부흥이 됩니다. 이것을 중심삼은 부흥이 외적인 부흥의 여건보다도 더 강하게 드러나게 될 때에, 즉 이것이 삼천리 반도 위에 여파(餘波)를 일으켜야만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내적인 승리의 한 국가가 형성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어려운 시점에서 외적인 경제부흥을 이룩하기 위해 그 많은 수난길을 거치면서 극복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도 내적인 부흥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중심한 간부들이 일체화되고, 축복받은 가정들이 일체화되고, 우선 여자들이 일체화되어 여기에 영향을 미쳐 가지고, 심정적인 새로운 싹을 내게 하고, 민족이 갖지 못한 새로운 정기를 여기에서 발현시켜 가지고 삼천리 반도에 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외적인 경제부흥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적인 부흥을 모색하는 이때에 있어서 우리들은 거국적으로 국민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수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멀지 않아서 그런 때가 우리 앞에 반드시 다가옵니다. 이때를 잃어버리게 되면 필시 환난이 오기 때문에 여러분은 일치단결하여 거국적인 터전 위에 통일사상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인 세계는 남자들이 이끌어 나가지만 내적인 심정 세계는 여자들이 이끌어 가야 합니다. 남자들이 굴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경제부흥이 내적인 정신부흥의 인연에 끌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북진통일의 이념은 성취될 것이요, 하나님은 북한에 대해 새로운 대책을 취해 가지고 우리의 갈 길을 기필코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한을 통일시키는 데는 여자의 손을 빌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이렇게 동원하면 그 다음에 기성교회가 동원하게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삼천만 민족, 남한의 가정들이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 땅은 자연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단결하게 되면, 수적으로 볼 때, 우리가 그들의 수를 능가하고 결국에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의 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세계적인 터전이 닦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북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북 땅을 한평 한평 사서라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이 통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태어난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보지 못하고 죽게 되면 한이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북 정주 땅, 선생님이 태어나 자란 그 곳에 가서 선생님이 어릴 때 마시던 물을 마셔 보고, 선생님이 뛰놀던 동산에 올라가 거닐어 보고,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그 자리에서 거룩한 찬양의 소리를 높여 하나님 앞에 축배를 드리게 될 때, 선생님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지 못했고, 선생님을 받들지 못했던 것을 해원성사하고 탕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죽기 전에 선생님이 태어난 곳을 가지 못하면 통일교회 식구로서 한이 남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니 이것을 여러분의 특별한 의무로 결심하고, 선두에 서서 통일의 그날까지 용기있게 전진하고 승리를 다짐하면서 싸워 주기를 재삼 부탁합니다. 다시 한번 통일의 노래를 부릅시다. (통일의 노래를 두 번 합창하고 나서 다같이 통성기도함)

이 시간에 우리 다같이 하나님 앞에 통일을 위해서 선서합시다.

통일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바치고, 자기 가정을 바치고, 우리 교회를 바쳐야 됩니다. 이것을 바치지 않으면 통일은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기 자신을 바치고, 자기 가정을 바치고, 우리 교회를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직접 선서를 할 테니까 여러분은 '바치자' 하고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통일을 위해서 내 개인을 바치자. 「바치자」

통일을 위해서 내 가정을 바치자. 「바치자」

통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바치자. 「바치자」

​기 도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당신의 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 개인들을 받으시옵소서. 오늘의 새로운 약속과 맹세와 결의를 집행하시옵소서. 후대의 역사의 창건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당신이 소원하시는 통일을 위해서 우리 개인을 바치기를 결의하였습니다. 우리 가정을 바치기를 결의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를 바치기를 결의했사오니 남북통일을 맞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원의 날, 당신의 소원의 때, 당신의 소원의 세계를 위하여 저희 나라의 통일을 아버지께서 성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들이 당신 앞에 결의한 모든 결의가 헛되이 돌아가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가슴속 깊이 깊이 묻어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때까지, 통일의 영광을 맞이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고 전진에 전진을 다짐하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 맹세와 더불어 생애를 아버지 앞에 바치겠다고 선서했사오니, 고이 붙들어 주시어서 그 자리에까지 싸워 남아지고 영광의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게끔 승리의 자리에 세워 주실 것을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인연과 우리의 사명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