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이란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편집 전체를 딕테이션이라든가 검토라든가 분야별로 분리해서 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소감이 어때요? 이 말씀집이 필요한 거예요, 필요하지 않은 거예요? 아직은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지요? 방에서 이렇게 앉아서 들으니까. 얘기 좀 해봐요.
요전에 몇 권? 18권? 「예, 18권까지 나왔습니다」 지금 몇 권을 하고 있나? 「19권을 오케이하구요, 지형까지 다 뜨고, 20권도 거의 다 돼 갑니다」「결국은 200권까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이제는 입을 봉하고 다녀야겠구만. 이제부터 내가 입을 봉하고 다니면 쉬게 될 것 아니예요?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구만? 「예」 미국에서의 말씀은 미리 해 두었으니 말이지요, 안 해 놓았더라면 안 넣을 뻔했다구요. 「일본에서의 것도 가져오고, 거의 다 모였습니다」
「말씀 편찬에만 일하는 사람이 50명인데, 그중에서 한 반은 밤 열 시까지 일하고 또 한 반은 밤 열두 시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일 복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 모였구만. 무슨 복이 있어도 복이 있는 사람은 좋은 거예요.
그래, 선생님한테 무슨 부탁할 것이나 질문할 것 없어요? 이다음부터는 말씀을 짧게 해 달라든가 말이예요. (웃음)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니까 어떤 때는 한국 말이 딱 막힐 때가 있다구요. 또 한국 말을 계속해서 쓰자니까 참 이상하다구요.
자, 뭘할까요? 세 시 사십 분이구만. 「경청인이 있으니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말씀을 또 해요? 「예」
말씀을 또 해주면 뭐 선생님이 성화사에 오셔서 얘기했다는 것이 또 이다음 역사에 남게? 그저 이렇게 앉아서 얼굴이나 보는 것이 좋을 거예요. 「말씀의 귀함을 더 깨달을 수 있게, 그런 것에 대해서 좀…」
지금 나오는 말씀집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을 거예요. 「예, 조금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거기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는데 초창기 말씀보다는 많지 않습니다」 초창기보다 달라지지요? 「예, 점점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면 선생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선생님 대해서 모르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내가…. 또 선생님이 없으면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없으면 이 세상과 연결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종교세계라든가…. 예수님이 중간 역할을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말씀 가운데 선생님이 고생한 얘기는 없지요? 많지 않지요? 「많지 않습니다」 그런 것 안 느꼈어요?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말씀 가운데는 선생님이 고생한 얘기, 감옥생활이라든가 감옥 얘기 같은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거의 다 뺐다구요.
자, 무슨 질문도 없고, 요망사항도 없어요? 말 듣건대는 뭐 광렬이가 지금 편사위원회 위원장인가, 뭔가? 편사실장인가? 「여기에서는 사장입니다」 (웃음) 무슨 사장이야? 「성화사 사장입니다」 성화사 사장이야? 「예」 성화사 사장이 이 놀음 하니까 자격 없구만. 역사편찬 위원장이든가 이래야지. 「그건 청파동입니다」 (웃음) 거기에 사무실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불평하기를, '아, 이거 우리들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서자 취급받고 있는데, 전부 다 못난 사장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하며 서럽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요? 「안 그렇습니다」 그랬어도 안 그랬다고 하겠지, 사장이 있으니까. (웃음)
이 일도 내가 서둘지 않았으면 뭐 참 곤란했을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구요, 역사성이 얼마나 귀한지. 역사적인 말씀이 한번 지나가 버리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만일 화재가 나서 모두 타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건 뭐 땅 주고도 살 수 없는 놀음인데…. 인류역사에 있어서 한 번밖에 없는 말씀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잠이 오지 않을 텐데, 광렬이는 지금까지 그런 데 있어서 그렇게 심각성이 없었지? 선생님이 나꿔채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할 수 없이 하겠지. 그래서 선생님이 미국에 가면서는 전부 다 그런 체제를 만들어 가지고 말씀하던 것 전부 다 번역시키는 일을 해 나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있어서, 한국에서 한 말씀도 말씀이겠지만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서 하신 말씀, 즉 세계 시대에 있어서 한 말씀들을 요즈음 현재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 지도자들이 잘 모른다구요. 그걸 공부해야 된다구요. 어떻게 복귀섭리의 종말을 향해서 지나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 어디 하나요? 몇 년도예요, 지금? 「1968년도입니다」 ( 웃으심) 1968년이면 20년 전이구만. 20년 전이라구요. 「원고는 상당히 앞으로 진행되어 있습니다」 원고는 어디까지 갔나? 「1970년대 접어들고 있습니다」 1970년도. 그래도 16년 전이구만. 「그렇게 하면서도, 예를 들면 이 사람은 그냥 밥 먹고선 계속 전국으로 말씀을 발굴하러 다닙니다. 각 교구니 뭐 교회를 다…」
하나의 파수꾼이 있어야 되겠구만. (웃으심) 한남동공관 문에서 수위처럼 지키고 있다가…. 그것도 필요하다구요. 「그리고 이 사람은 기획실 책임자인데 일이 어떻게 진행돼 가고 있는지 일일이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어디는 어디 나가고 있고, 어디까지 나갔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기획실 책임자입니다」 이번에 광렬이가 많이 배우누만. 「저는 뭐 뜨내기지요, 뭐」
조직편성을 해 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경영된다든가, 어떻게 되어 나간다든가, 또 그런 과정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기재가 필요하다는 등등, 많이 배울 거라구요. 필요하다구요.
다 젊은 사람들이네? 「예, 아주 젊습니다」 다 미혼자들이예요? 「여러 가지 있습니다」(웃음) 여자가 많아 보이는데? 「대체로 6천가정하고 미혼자하고 반반 정도입니다」 미혼자 한번 손들어 봐요! 반 더 되는데, 뭘. 「반이 더 되겠습니까?」 더 되지.
여러분들, 지금 일을 하면서도 '언제 축복이 있겠는가!' (웃음) 그런 생각 하면 안 되지. 내가 어저께 수원 갔을 때, 어떤 녀석이 일어서더니 말이예요, 자기가 30세 된 모양이지요? 자기가 30세라는 이야기는 안 했지만 말이예요. 제일 궁금한 것이 뭐냐고 물을 말이 있으면 물어 보라니까 손을 번쩍 들더니 '축복은 언제 해줘요?' 하는 거예요. (웃음) 축복이 중요한 모양이지요?
그래, 여기서 나이가 제일 많은 청년이 누구예요? 몇 살이예요? (웃음) 「지금 서른 살입니다, 만으로」 서른이면 예수님 동생이구만, 예수님 나이까지 가려면 뭐 3년 더 가야 되겠구만. 예수님은 33세가 돼 가지고 십자가를 지면서도 전부 다 한을 품고 갔는데 말이예요. 그런 자리까지 가려면 아직 3년 더 기다려야 되겠구만. 언제 들어왔나? 「1982년도에 들어왔습니다」 뭐하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들어왔나? (웃음) 1982년이면 3, 4년….
「그리고 여기 파란 옷 입은 아가씨는 송도빈씨가 축복받고 낳은 딸입니다. 벌써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송도빈? 리틀엔젤스 예술학교 다니던 네 언니는 시집가지 않았어? 외부에 어디 시집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갔나? 「예」 너는 몇 살이야? 「스물세 살이요(송은심)」 너도 시집갈 때가 됐는데 이번에 축복가정 2세 약혼 때 왜 빠졌나? 「기성가정…」 기성가정이라고? 아, 미안하게 됐구나. (웃음) 그것을 설명하려면 한참 걸린다구요, 내가 그때 설명을 안 해줬지만. 왜 기성가정 자녀들은 그렇게 했느냐 하게 되면, 거기에는 역사가 많다구요. 그랬구만.
이번에 2세들 축복해 줬다는 소문 다 들었지요? 「예」 다 만났어요, 들었어요? 「들었습니다」 듣기만 했지, 만나지는 못했지? 「만나 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웃음) 사람을 보면, 눈도 같고 코도 같고 별반 차이가 없지요. 보기에는 마찬가지지만 다르다는 거예요. 역사가 다른 거예요, 역사가. 창조주인 하나님의 탕감복귀와 해원성사라는 그 역사의 소용돌이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다른 것이 뭐냐 하면 그런 것이 다르다구요. 축복가정 2세들과 새로 들어오는 젊은 층, 축복 대상자들은 뭐가 다르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축복받게 될 때는 성주식이 필요하고, 그 외에 전부 다 필요하다구요. 복잡하다구요. 그러나 축복가정 2세는 그런 성주식이 없습니다. 뿌리가 다르다는 거예요, 뿌리가. 여러분의 뿌리는 타락세계의 뿌리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물론 사람은 다 같아 보이지만 역사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다는 거예요. 출발이 다르기 때문에 과정도 달랐고, 지금 현재 있는 입장도 다르고, 미래에 갈 목적지도 다르다는 거예요. 목적지가 같다 하더라도 다르다는 거예요. 축복가정으로서의 입장이기 때문에 같지 않다는 거예요.
질문 없어? 방이 좁아? 이제 1년만 지나면 마포에 우리 빌딩이 생긴다구요. 그거 한 층을 줘야겠구만. 한 층 가지고 안 되겠는데? (박수)
금년까지 책을 다 끝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나? (웃음) 「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의 뿌리가, 근래보다는 더 일찍 하신 말씀에 더 비중과 진함과 섭리적으로 요긴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는데, 아버님이 성진님 태어나시고 난 뒤에 이북 가실 때부터가 공식노정이신데 그때부터 1956년 4월 8일까지 10여 년간에 걸친 말씀이 공중에 떴습니다(장진환)」 그건 뭐 평양에서 말씀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 선배 형님들의 필기 말씀이나 전체를 취합해 보면, 1952년부터는 남한의 생활과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이 계셨으니까….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실체 아버님을 모시고 듣고, 말씀을 보고 읽기 때문에 애절한 마음이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후세 만민들이 예수님 제자와 아버님 제자의 수준 차이가 나지 않느냐 하고 참소할 때에는, 이건 호미로 막을 일을 무엇으로 막아도 안 된다는 그런 평까지 듣게 될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아버님, 이것을 탕감해 주시는 관용에서 그 방향을 설정해 주십시오」 방향은 무슨 방향? 지나간 역사인데 뭐. 「전부 다 모으는 것을 직접적으로 좀…」
그때 식구들이야 그런 생각 할 때가 아니지. 요즈음은 환경이 다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 가지고, 세계가 요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준비도 할 수 있지만 그때 사람들은 전부 다 핍박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던 거예요.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전부 다 오늘 하루를 피해 다니며 살기에 바빴던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환경이 다르다구요.
지금 여러분은 현재 같은 입장에서 수난과정을 다 거쳐 가지고 말씀의 가치를 알면서, 필요한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타진할 수 있는 입장에 섰지만 그때 사람들은 각자가 진 십자가가 있었던 거예요. 어느 가정이나 어느 개인, 전부가 핍박을 안 받은 사람이 없었다구요. 자기 일신이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 처리 문제도 힘든 입장이었다구요. 그런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또 그들은, 선생님이 말씀을 하더라도, 공식적인 말씀을 하더라도 지금같이 뭐 이렇게 테이프 레코더를 만들어 놓고 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못 됐어요. 전부 다 방에 앉아 가지고 말이예요, 옛날 마가 시대의 마가 다락방과 같이 전부가 꿇어 엎드려 가지고 기도하고, 가다간 그 즉석에서 얘기하고, 그러면 눈물의 바다가 되는 거예요. 언제 뭐 펜을 가지고 이렇게 딕테이션을 하겠다는 그런 생각 없었다구요. 그거 환경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구요.
그러니까 나타날 때까지 배후에….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어떤 역사가 나타날 때까지는 말이예요, 뿌리가 있어 가지고야 새로운 순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뿌리가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싹 하나를 틔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 싹은 보지만 뿌리는 모르는 거예요. 딱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과거역사에는 비참한 일들이 참 많아요. 일화도 많고, 곡절도 많고 나타나지 않은 게 많다구요. 일천 구백 몇 년도부터, 1960년도 선생님 성혼식 때는 이미 나타난 것입니다. 나타나 가지고 일반 대사회운동으로 전개된 거예요. 그것은 이제 대중이 대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을 그때그때 했던 거예요.
그전의 말씀은 대중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심령을 어떻게 부활시키느냐, 하나의 생명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느냐 하는 문제가 책임진 지도자인 선생님으로서 말하게 되는 전부였다 이거예요. 그것 못 하게 되면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식구들이 아침에 와서는 울고, 집에 돌아갈 때에는 전부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왜? 핍박받아 쫓겨 다니니까 찾아갈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으니 기가 막히거든요.
선생님의 자리가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전 식구들이 반대받는 자리에 서서 총책임을 지고 중앙에 앉아 있으니 선생님에게 밀어닥치는 고생이 자기 일개인에게 밀어닥치는 고생과 비교할 바가 아니예요. 그러나 식구들로서는 자기가 집에서 핍박받아 가지고 쫓겨나서 갈 데가 없게 되면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거 통곡이지요. 찾아오는 것도 눈물이고, 또 만나서 선생님이 권고해 주는 말도 눈물로 해주고, 돌아가는 것도 눈물이었지요. 그런 것은 오늘날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그런 것 없지요? 안 그래요?
별의별 역사가 다 있었어요. 머리를 깎이고 쫓겨난 사람이 없나, 팬티만 입고 추운 겨울에 쫓겨난 여자들이 없나. 그런 여자들이 갈 곳이 있어요? 자기 친정집에 가겠어요? '이놈의 간나 같으니라구. 그 이단 요술사 같은 문 아무개 찾아가 가지고 저렇게 됐다'고 말이예요. 전부 다 반대하고…. (웃으심) 친정에 가서 말하겠나, 남편한테 쫓겨났으니까 자기 아들딸한테 가서 말하겠나? 사돈의 팔촌까지 이미 다 소문났으니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입장에 몰린 사람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어요? 세상 아무도 그것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거 미쳤지, 자기 친정이 반대하고, 자기 시집이 반대하고, 남편이 반대하고, 아들딸이 반대하는 길을 무엇 때문에 가 가지고 저 모양이냐?'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자, 자기가 직접 받은 체험이 있고 가야 할 길은 확실히 알고 있는데, 천지가 부정하더라도 자기는 부정할 수 없는 참, 사실을 알고 나선 걸음을 후퇴할 수 없다 이거예요. 후퇴할 생각 하면 대번에 영적으로 탕감받는 거예요. 그때는 매일 그저 눈으로 보여 주고 다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내일은 이런 역사가 벌어진다' 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도망가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보고 싶어 찾아갈 때에도 눈물 아니면 찾아갈 수 없고, 또 대하는 시간에도 눈물이요, 떠나는 시간에도 눈물이예요. 또 자기들도 그렇잖아요?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기만 핍박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선생님까지 핍박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잘못한 것을, 통일교인들이 잘못했다 하면 그것을 전부 다 문 아무개가 잘못했다고 전부가 결론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는 요즘 임자네들과 같이 딕테이션하고 말이예요, 말씀에 대한 평가가 뭐 어떻고 서론이 어떻고 본론이 어떻고 결론이 어떻고, 그러한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거예요. 만나 가지고 십 분에 얘기해야 할 것을 일 분에 얘기해야 할 때는 한마디로 결론을 지을 때도 많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요즘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요.
그 당시 말씀을 찾을 수 있으면 한번 찾아보지요. 그 가운데서도 기록한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대다수가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많았어요. 특히 할머니들, 대개 신앙심이 깊고 체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장차장은 아버님이 한국에 계셔서 어디 가서 말씀하시든지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면서, 어디든지 따라다니면서 그저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 비용을 써 가면서라도 쫓아다니며 말씀을 전부 다 수집해야 된다고…」
그거야 허락하나 마나, 허락 안 해도 쫓아다녀야지요. (웃음) 천대를 받으면서라도, 담을 넘어서라도, 안테나를 길게 뻗쳐 가지고 숨어서 들으면서라도 전부 다 해야 된다구요. 「자꾸 허락을 얻어 달라고 하는데 저도 허락을 얻기가 죄송스러워서 그냥…」 다들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이 어디 가서 말씀을 하든지 그 환경에 맞는 말씀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미리 무슨 설교 준비를 해 가지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즉석에서 영감에 의해 가지고 한다구요. 그거 다르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기록을 쭈욱 읽어 보면 알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들이 전부 다 같은 내용 같지만 전후가 다르다는 거예요. 가는 길이 다르다구요.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어렵다면 어렵지요.
앞으로 선생님 말씀을 공부하려면 참 정성을 들여 가면서 해 나가야 잘 풀린다구요. 그러다가도 어떤 대목에 가서는 안 풀리고, 뭐 어떤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서 딱 비약하고, 스톱하지요? 여러분들이 그런 장면을 알려면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영계를 통해 가지고…. 세상에도 비밀이 있지요? 세상에도 비밀이 많지요? 「예」 이것은 하늘의 비밀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나타내서는 안 되는거예요. 전세계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자로서 무책임하게 발표를 할 수 없는 것이예요. 그런 때는 모르는 거예요. 그건 안개 속에 하나의 미완성으로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역사편찬위원회에 소속돼 가지고 모든 전통과 관문을 뚫고 말씀 녹음을 계속하는데, 미국에서 곽목사고 박총재고 녹음 테이프 좀 프린트해 달라고 부탁이 옵니다」 어제도 내가 수원 가서 얘기했는데 따라와서 녹음했나? 「수원교회는 못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못 가면 미리 전화를 합니다. '아버님이 거기에 가시니까 녹음을 부탁합니다'라구요」 연락이 잘 되는구만.
그래 이제 공부들 하려면 큰일났구만. 이 말씀집을 출판하지 말라고 그럴 것을 그랬지요? 「언젠가는 해야 될 것이니까…」 그래 공부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공부하겠나? 「하루라도 더 지나면 청취 못 해 힘들고 지금…」 그래 여러분들, 딕테이션하면서 배운 것 많아요? 선생님이 재미있는 남자지? 「예」 아주 다양한 취미가 있고, 재미있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구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다 젊은 사람들인데 서른 살 이전에는 무슨 훈련이라도 해야 된다구요. 내가 무엇을 못 한다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서른 살 이전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 서른 이전에 자리를 못 잡게 하는 거예요. 그저 이것 시키고 저것 시키고, 고생시키는 거예요, 삼십 전까지는.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 분야를 알게 되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느끼고 지내온 모든 것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다리를 놓습니다. 다리를 놔야 되는 거예요.
자기가 지내온 모든 재료들을 발판으로 삼아 가지고 자기의 갈 길을 닦아야 된다는 거예요. 앞으로 여러분이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자면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전부를 다시 들춰 가지고 보게 되는, 필요할 때가 많다구요. 어려운 일이 절대로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때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내가 오늘날 이와 같은 책임을 진 입장에서 어려움을 해결할 길이 없는 거라구요. 그런 것이 참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라구요. 과거 사람들이 교훈으로 남기지 않았어요? 지금 여러분은 아무것이라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무엇이든지 못 한다는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한 각오 밑에서 훈련을 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 가든지 척 보고 들으면 다 안다구요.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척 벌써 압니다. '저이는 안 되겠는데, 저이는 되겠는데'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구요. 척 듣고선 결론짓는 거예요. 된다면 되는 것이고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 시간 문제는 자기 노력하기에 달렸거든요.
예를 들어 보면 지금 어디선가 기계 전시회 하잖아? 그곳이 어디인가? 「강남 무역회관 아닙니까?」「코엑스 전시관입니다」 거기가 강남이예요, 뭐예요? 「예, 강남입니다」 거기에 기계류는 통일산업이 제일 많이 전시해 놨어요. 통일산업만 하더라도 지금부터 30여 년 전에 청파동 전본부교회 뒷골목에 다다미 4조방만한 빈터에서 기계 한 대로 시작했어요. 그것도 일본 사람들이 쓰다가 내버린 선반이었는데 그때 돈으로 72만원을 주고 샀다구요. 그것이 통일산업의 시작이예요. 그 기계를 일신석재에서 아직까지 쓰고 있다구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은 공기총을 만들지만 앞으로는 대포도 만들고 탱크도 만들어야 한다, 국방산업을 한다는 말을 해도 어느누구도 믿지 않았다구요. '에이, 공기총을 가지고 무슨 대포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비웃었다는 거예요. 기계공장을 만들어 가지고 독일 기계공장을 전부 다 타고 앉겠다고 했다구요. 그런 얘기를 누가 믿어요? 전부 다 말만으로 다 흘러갈 줄 알았지요. 그런 것을 사실로 믿었다면 통일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오늘날 다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이제는 완전히 그때 선생님이 말한 모든 것이 다 됐다는 거예요. 독일기술도 꽉 잡았다는 거예요. 독일 정부도 놀랄만한 기반을 딱 잡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산업을 중심삼고 중공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기술에 있어서 중공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이 선생님 말만 들으면 20년 내지 30년은 비약한다구요. 자기들끼리는 암만 했댔자 못 따라간다는 거예요. 그래 중공에 대한 투자 문제를 계획하고 있다구요. 여러분, 옛날 말로는 하얼빈, 지금은 장춘이라고 그러나, 뭐라고 그러나? 이제 거기에서 자동차 미션으로부터 모든 것을 만들 계획을 하는 것도 그런 기반이 돼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예요. 중공이 필요로 하고 중공이 도달할 수 없는 기준까지 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거예요. 그거 정부차원 가지고 안 된다구요. 암만 잘해 줘도 정부차원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 것이 30년 후에 된 사실을 그때 누가 믿었겠어요? 전부 다 거짓말 같고, 선생님을 공포나 쏘는 사람인 줄 알았지요.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다 사실대로 들어맞으니까, 이제는 한국에 있어서의 통일산업은 국가적으로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거예요. 국가가 신세를 져야 된다는 거예요.
통일산업에서 나오는 기술이라는 것은, 전자장치 같은 것도 우리가 전부 다 15년 전부터 착수한 거라구요. 제품은 2년 전, 3년 전에 냈지만 연구는 벌써 15년 전부터 전부 다 착수한 거예요. 그걸 하기 위해서 일본이라든가 독일, 미국, 선진국가에 우리 식구들을 동원해 가지고 유명한 회사에 전부 다 집어넣어 가지고 기술을 습득시켰다구요. 그리고는 불러 모아 가지고 그 기술을 집약해서 그러한 기술기반을 타고 도약한 거예요. 날아가야 된다구요. 언제 따라가겠나?
그런 기반을 닦아 왔기 때문에 현재에 있어서는 레버런 문의 산업관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석사 박사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문제시할 단계에 들어왔다구요. 정치관, 경제관, 공업관, 그런 모든 전부를 문제시할 단계에 들어왔다구요, 사상은 물론이고. 그래서 미국에서는 내 이름을 통해 가지고 박사학위받은 사람이 벌써 수십 명에 이른다구요.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시대에는 모르는 거예요, 그 시대에는. 선각자들이 가는 그 시대에는 그들이 왜 가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10년, 20년, 혹은 1세기를 지내 가지고, 대중이 살고 있는 사회가 몇십년 전에 말씀한, 선각자가 느끼던 그 기준과 통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평양의 50년대 사실을 알고 싶지요? 알고 싶겠지만, 그 시대에 있어서도 미래에 대한 것을 말씀을 했지만 그때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지금 알 수 없지요. 그때부터 다 말했다구요. 그때도 식구들을 거느리려니 앞으로 통일교회가 어떻게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전부 다 가르쳐 줘야 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식구들이 핍박의 환경을 뚫고 못 나가요.
그러니까 선각자들은 그 시대에서는 무시당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선각자가 말만 해서는 안 돼요. 말만 하면 흘러갑니다. 말을 하고 그 일을 행해야 돼요. 대개 사상가라든가 혹은 선구자라든가 그 시대의 애국자들은 그 시대의 형편에서, 그 시대의 환경에서 환영을 못 받았어요. 그거 왜?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여러 방향으로 훈련을 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동으로 갈 줄도 알고, 서로 갈 줄도 알고, 남으로 갈 줄도 알고, 북으로 갈 줄도 알고. 이렇게 훈련이 돼 있으면 '아! 나와는 다르구나. 저 사람은 저런 말씀을 한다' 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거예요.
젊은 사춘기시대, 청춘시대, 즉 서른 살 이전에는 정착을, 정착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공을 해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빠른 길, 좋은 길을 찾지요. 그렇지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빠른 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동으로 간다면 동으로 가는 길이 자기가 성공할 수 있는, 정착할 수 있는 빠른 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그보다 더 빠른 길이 서에도 있을 수 있고, 남에도 있을 수 있고, 북에도 있을 수 있으니 사방에 대한 걸 알아야 됩니다.
나는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환경에 의해서 핍박받고 내려가는 자리가 나쁜 것만은 아니예요. 내려가는 길에 내가 일생에 필요로 하는 정착지를 빨리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30세 전의 젊은시대에 있어서는 선각자가 되고 싶든가 역사의 지도자가 되고 싶거들랑 30세까지 모든 면에 손대 가지고 배워야 돼요. 못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30세가 넘으면 안 됩니다. 늦다구요. 30세부터는 실천단계라구요, 30세부터 45세까지 15년간은. 선생님도 그렇게 계획을 짰다는 거예요. 45세까지 15년 동안 실천무대에 도전하는 거예요. 도전해 가지고 45세까지 통일교회 역사를 일단락짓는 거예요, 15년 동안에.
그렇기 때문에 45세에 세계일주를 하는 거예요. 60세까지 세계에서 성숙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런 프로그램에 의해서 전진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일교회 교인들은 30세 전까지는 고생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경험을 통해서 아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자기 지역적인 사람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 사람이나 됐지, 그 나라를 관장해 가지고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된다는 거예요.
세계를 생각하고 있다면 30세 전에 다방면의 수난을, 다방면의 훈련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야, 요것도 재미있다. 야, 요것도 재미있다. 나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된다구요. '아이구 나는 못 하니까 나하고는 상관 없어' 하는 사람은 가다가 망하고 만다는 거예요. 가다가 자기가 정착할 수 있는 길을 못 찾으면 거기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나 다방면으로 훈련된 사람은 이 길이 안 되거들랑 저 길로도 갈 수 있고 길을 가면서 쓰윽 돌아갈 수 있다 이거예요. 찾아갈 수도 있다구요. 경험이 많으면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 있는 사람과 경험 없는 사람하고 볼 때, 같은 실력 같은 나이라도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 중심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경험을 누가 많이 했느냐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거 이론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은 청춘시대에 안 해본 일이 없다구요. 내가 못 하는 게 없어요. 산에 가면 산사람이 되고 말이예요, 숯 굽는 것까지 할 줄 안다구요. 산에 있는 나무와 풀을 보면 이것이 먹는 풀인지 못 먹는 풀인지 다 안다구요. 무슨 풀, 어떤 풀인지 다 안다는 거예요. 먹는 풀을 다 안다구요. 산에 가서 남들은 다 죽더라도 선생님은 풀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 거예요.
또 바다에 가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구요. 바다의 땅밑에는 무슨 게들이 살고 있고, 무슨 고기들이 살고 있는 것을 전부 다 안다구요. 바다가 선생님 고향에서 머니까 바다를 배우기 위해서는 방학 같은 때 매일같이 바다로 출근을 하는 거예요. 40일 동안 매일같이 가는 거예요. 바닷가에 가 가지고는 구정물 냄새나는 못에서부터, 감탕주머니에서부터 뱀장어를 잡는다든가, 게 구멍을 쑤시고 말이예요, 별의별 곳을 다 뒤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훤히 알고, 그다음에는 낚시질하는 거지요. 어떤 고기가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기를 잡는 겁니다. 게도 잡고 말이예요. 시골 가면 참게가 있다구요. 여기 서울에도 있지요? 낚시질 같은 것도 전부 다 배우러 다니는 거예요.
뱀장어 같은 것을 잡는 데는 선생님이 챔피언이라구요. 여러분들은 한 마리 잡으려면 하루종일 걸리지만 (웃음) 나는 뭐 순식간에 잡는다는 거예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내기 같은 것도 선생님은 참 잘합니다. 대개 여기서는 줄모로 하지요? 「예」 우리 평안도 같은 곳에서는 농지가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남보다 상당히 발전해 있다구요. 기독교 문물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라구요. 모를 한 장대에 열두 칸씩 사이를 둬 가지고, 전부 다 표시를 해 가지고 두 사람이 여섯 줄 여섯 줄씩 옮기면서 심어 나가는 것이 빨라요. 여기서는 줄을 쳐 놓고 한 줄에 사람이 수십 명씩 들어가서 첨벙첨벙 왔다갔다하니까 발자국이 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거예요. 발을 딛는 데 있어서 두 뼘 사이의 간격을 딱 지킬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거기에서 누가 더 많이 심느냐? 참 빠르지요. 선생님이 빠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농사철이면 농사철에 모를 심어 주면 밥벌이는 문제없다는 거예요. 학자금 같은 것 문제없다 이거예요. (웃으심)
산에 가서 낙엽을 긁을 때, 보통 사람은 이렇게 긁지요? 선생님은 이렇게 쥐고 긁거든. (행동하시며 말씀하심) 한 손은 이렇게 쥐고 다른 한 손은 이렇게 쥐고. 이거 전부 다 연구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낙엽 긁는 데 날 못 따라가요. 소나무 밭에 가서 낙엽을 긁기 시작하면 말이예요, 다른 사람이 한 시간 걸리면 난 40분에 다 해치운다는 겁니다. 연구하는 거예요. 그러한 생활 배경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이 시대에 고임돌이 되고, 재료가 되고, 원료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밥도 얻어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밥도. 선생님은 어디 가든지 밥 잘 얻어먹습니다. (웃음) 아침 밥을 안 먹고 배가 고프면 쓱 길 가다가 죽 파는 아줌마가 있으면 가서 춥다며 죽통 옆에 쓱 깔고 앉는 거예요. (웃음) 그리고는 죽을 팔다가 떨어뜨리기만 하라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죽 한 그릇 얻어먹는 겁니다. 다 그런 눈치가 훤하거든요. 추운 날씨에 '아, 죽통이 따뜻해서 추운 사람이 몸 녹인다고' 할 때, 그러지 말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있다면 당장 '이 쌍부인'이라고 욕을 퍼붓는 거예요. 슬슬 웃으면서 집어먹는 거예요. '영감이 어떻겠고 아들이 어떻겠구만' 하고 봐 주는 거예요. 이 아줌마에게 선생님이 얘기하는 것이 또 실제로 다 맞거든요. 사흘만 되면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여보! 친구들 가기 전에 빨리 떠 놔요'라고 벌써 신호하는 거예요. '친구들보다도 내가 일등으로 들어가야 되겠다―먼저 들어가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거든―그러니까 내가 신호만 하면 후다닥 떠놔야 된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에 떠 놔야 돼!' 이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벌써 척 가서 사발에다 죽 담은 것을 훌훌 마시면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거 다 준비해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으면 지는 거예요. 지는 거예요. 거 전부 다 공부라구요! 대학에 가야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미국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힘이 들어서 떨어져 나간 미국 식구들, 통일교회의 엑스 무니라고 하던 사람들이, 내가 감옥에 들어가니까 '아이고, 우리 선생님께서 감옥에 가셨다'고 하면서 말이예요, 나가떨어진 자식들이 엑스 무니라 해 가지고 반대하던 패들이 말이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 믿는다고 하는 무리들은 전부 가짜이고 떨어진 자기들이 진짜라고 한다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감옥 갔다' 해 가지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지금까지 선생님을 안 만났으면 생활의 위협을 일생 동안 받을 터인데 몇 년 동안 펀드레이징을 하고 훈련받았기 때문에 천하에 어디를 가도 생활의 공포심을 없게끔 만들어 주고, 어느 대학교나 어느 철학 교수를 통해서도 배울 수가 없는 그런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비법을 가르쳐 준 선생님입니다' 그러고 있더라구요. 편지를 선생님한테 그렇게 보냈더라구요. 그렇다구요.
물론 공부도 해야지요. 그렇지만 공부가 제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전부 다 써 먹나요? 10분의 1도 못 써먹는다는 거예요. 사회에 나가 쓰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것뿐입니다. 그 간판이 필요하니 그렇지요. 거 절대 필요한 것만은 아니예요. 젊은 30대까지 그런 간판을 못 가졌더라도 실천장에 있어서 실력만 갖고 있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많은 일을 했지만 지금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리고 연구도 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사상가이며, 세계관을 개척했으며, 공산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방망이도 만들었고, 그뿐만이 아니고 활동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도 못 따라오는 배경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지금 60세가 넘고 40년의 역사가 지나고 다 이러니까 산으로 말하면 높은 산이 됐다구요. 낮은 산에서 바라볼 때 '아, 저기 산이 있다' 하면서 즉각 알게 되니 이제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저 산에 올라가자' 해 가지고 올라가려면, 저 밑창에서부터, 평지에서부터 선생님이 어렵게 고생하면서 걸어 나왔던, 닦아 놓은 길을 전부 다 거쳐 가지고 올라가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말씀 내용도 다르다구요. 한군데 돌아다니면서 얘기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척 보면 노동판이 어떤지 훤하고 빌어먹는 깡패 소굴도 내가 훤하게 알고 있는 겁니다. 감옥에서부터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요? 그러한 배후의 감정을 느껴 가면서 얘기하니까 다르다구요.
사람이 대중을 감동시키려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얘기를 해야 돼요. 거짓말은 절대 사람에게 통하지 않는다구요. 자기 얘기, 사실 얘기를 해야 합니다. 사실 얘기는 자기가 체험한 이상…. 사실은 무시 못 해요. 증언을 하는 거예요.
그래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이…. 송도빈 딸 나가서 전도도 해봤어? 「예」 장사도 해보고? 「예」 빌어먹어도 보구? 「……」 아, 처녀들이야 뭐 총각이 척 가면 지갑을 빼면 될 것 아니야? 총각이 '왜 이러느냐?'고 할 때에는 '왜 이러기는 왜 이래? 내가 점심 값이 필요해서 그렇소' 하면 통하는 거예요. (웃음) 뭐라고 하면 뒷발로 차 놓고도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내가 다 아는 거예요. 이렇게 훈련하면 말이예요, 어떤 사람을 대해 가지고도 전부 처리할 수 있게 돼요. 박보희니 곽정환이니 하는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뭐 한다고 하더라도 제일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을 만나 보소' 하는 거예요. 선생님을 한번 만나면 다 녹아난다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해서 사람을 녹여 놓느냐? 경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30대까지는 그 놀음 하라는 것입니다. 자꾸 주워 모으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기 창고에다가 자꾸 저 뭔가? 저 부엉이집 모양으로 자꾸 모아 두라는 겁니다. 창고에 재료를 많이 모아 둬야 많이 만들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을 30세 전에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관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광렬이가 '아이구, 어느 반은 열 시까지 합니다. 어느 반은 열두 시까지 합니다' 했지만 예이 이 녀석아! (웃음) 내가 세 시, 네 시까지 잠을 안 잤다구요. 지금까지 7년 동안 계속해 가지고 한 시간 두 시간밖에 안 잤는데, 뭐 열두 시까지? 그래도 여섯 시간을 잘 수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나한테 뭐가 자랑스럽다고 '선생님' 불러 가지고 '선생님,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 하는데 거 안 통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젊은 놈들은 다리가 꼬이도록 고생을 해야 됩니다. 손이 무슨 갈퀴? 무슨 갈퀴가 되도록 고생을 해야 됩니다. 일해야 돼요. 경험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같은 사람은 어디 가서, 교회 어디 가서 강의 나갈 때 강의 준비도 안 해요. 쓱 가서 보게 될 때 옛날에 내가 봤던 타입의 사람을 한 사람만 찾는 거예요. 한 사람을 찾고는 그가 노동판에서 만난 누구였다 하는 타입의 그 사람을 중심삼고 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악질이었으면 악질이었던 그 사람을 내가 감동시키는 회개의 말씀을 퍼붓는 거예요. 또 얌전하고 깍쟁이 같은 여자가 있으면 말이예요, 그 깍쟁이가 눈물 흘릴 수 있게끔 말씀을 퍼붓는 겁니다. 그런 재료가 있어야지요, 재료가.
그래 고생하는 것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뭐가 좋아요? 싫지요. (웃음) 나도 싫지만 했어요. 왜? 세계를 위해서. 허리가 꾸부러지도록 일해 보고, 기가 막혀 가지고 그저 목에서 단내가 나도록까지 참아 보고…. 일생 살아가는 데 무슨 일이 없었겠어요? 기쁜 것만이 생애 노정에 있을 수 없다구요. 기가 막히고 비참한 자리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흥진군이 영계에 갈 때, 선생님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습니다. 왜? 그 이상 비참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런 일이 있을 때 하늘을 원망한다면 가정, 일족이 망할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늘을 백 퍼센트 사방으로 저버릴 수 있는 배반자가 될 것이 아니냐.
다 이제 끝나고, 끝나고, 요즘에 와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됐다고 생각을 하지요. 좋은 일만이 생애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승화식이라는 식이 있는 거예요. 울고불고하는 데에 무슨 승화식이 있겠어요. 애비고 에미고 말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흥진이 죽은 지 일주일 내에 애승일이라는 날을 책정했다구요. 거 심각한 자리입니다. 눈물 흘리다간 안 된다구요.
지금까지 수많은 부모들이 왔다 갔지만, 참부모가 가는 길은 그런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갔던 길과는 달라야 돼요. 겸손히 엎드려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의 죽음을 놓고 행동을 할 수 있는 결의가 없어 가지고 애승일, 하늘이 이겼다는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명칭은 여러분이 애승일이라고 하지만 그 배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아요? 모르지요.
그렇게 일생을 가는 데는 평탄치 않아요. 더더우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함께 사는 거라구요. 남자 여자는 전부 다르다구요. 극과 극이라구요. 이질적인,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사는 데 말이예요, 둘 다 좋을 수 없다구요.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고 이러면서 그 중앙선을 중심삼고 맞춰 나가야 돼요.
그러니까 젊은 시절에는 그러한 훈련을 해야 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거들랑 위대한 수난길을 자청해 찾아가라구요. 100리 길, 고생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가지고 100리도 걸어 보라 이거예요. 남을 위해 하루 봉사해 주기 위해서 밤을 새워 100리 길을 지친 몸을 이끌고 가서 아침에 가 가지고 밥을 먹고 농토면 농토, 일터에 나가 가지고 그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 정신이…. 편안히 잠자다가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체험을 통한 기반에서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하나님의 아들딸 되기가 쉽지 않아요. 그저 그렇게 고이고이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아들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구요.
남이 못 하고 사탄세계가 할 수 없는 길을 갖추어 나가 가지고 승리의 실적을 갖추어 가지고 그것이 내 것이 아니고 우주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게 될 때, 하나님이 관심이 있지, 내 것이라고 하게 될 때는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일해 놓고, 자기가 열심히 일하는 데 대해서 보람을 느끼지 말라 이거예요. 내가 열심히 일함으로 말미암아 나를 따라서 저 사람들이 열심히 하게 됐다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껴야 돼요. 그게 벌써 세계적이라구요. 자기의 일을 자기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하여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보람이예요.
지금도 선생님은 그렇다구요. 여기 한국에 와 가지고는 언제나 고달파요. 계속적으로 고달픈 사람이라구요. 그동안 내가 한 4개월 동안 일 많이 했지요? 「예」 여러분은 뭐 여기 있어서 뭐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4개월 동안에 한국이 '휙―' 돌아갔습니다. 완전히 돌아가 버렸어요. 거 그냥 된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이 돌려놓은 거예요. 벌써 되게끔 다 짜 놓고 하는 거예요. 4개월, 120일 동안에 한국을 돌려놓지 않으면 문제가 크다는 거예요. '내 힘과 국민의 힘으로, 내가 바꿔 놨다구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약하면 하나님이 밀어 주실 것이다!' 이랬다구요.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 한국의 풍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도, 전에는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무리들도 이제는 기운이 빠졌어요. 암만 반대하더라도 작아지고 움츠려져야지요. 반대할수록 자꾸 커가니까 반대하던 녀석들이 움츠려지고 말이예요,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 단계까지 왔다는 거지요.
그러한 놀음도 선생님이 과거에 싸운 경력이 없으면 하겠어요? 미국 정부를 혼자…. 피고가 레버런 문이고 원고가 미국 정부예요. 미합중국입니다. 미국과 혼자 싸우는 거예요. 그런 경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그냥 딱 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젊은 놈들, 전부 다 출세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지? 거룩하게. 간단히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의 격언에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거 일리가 있어요. 어디에 갔다가 돌아올 때, 좋은 일을 하지 못하고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어디에 갔다가 돌아올 땐, 좋은 실적을 남기지 않고는 안 돌아왔다구요. 집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디 나가 가지고 매를 맞고 부끄러운 얼굴이 되면 집에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오다가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찾아와도 안 돌아가는 거예요. 내가 일단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안 되게 되면 안 돌아갔다구요.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신세지면 안 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나에게 신세를 지게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그 이상의 세계가 환영준비를 한다는 거예요. 내용은 간단하다구요.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다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가 일을 하는데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통일교회도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뭐 요전에 선생님이 귀국할 때, 금의환향이니 금의환국이니 하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 내가 정했던 목표를 다 달성하고, 미국을 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다 닦아 놓고 온 거예요. 민주당과 공화당이 하지 못하는 일을 선생님이 다 해 놓고 왔습니다. 이제는 내 신세를 져야지요, 미국 대통령도. 일본도 그렇다구요. 일본도 절대적으로 선생님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 때에 내 신세를 져야 하는 거예요. 한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도 그렇다구. 이놈의 자식들, 전부 다 떼어 버린다는 거예요. 젊은 놈들! 알겠어? 「예」
여자들은 시집을 가겠으면 말이예요, 그저 자기를 뒤에 두고 내일을 위하여 무정하게, 무자비하게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구요. 그저 애기들을 남겨 두고 따라가지 못해서 뺄뺄 우는 여자는 따라지예요. 그 이상 훌륭한 부인이 못 된다는 겁니다. 남편을 재촉해 가지고 '멋진 사람이 되십시오. 그 대신 내가 뒤를 밀어 주겠소. 나는 이러이러한 고생을 하기로 작심했소' 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둘이서 달려가더라도…. 세계 40억 인류의 가정이 얼마나 많아요? 그 가정을 밟고 넘어갈 수 있겠어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하는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구, 점심도 못 먹고 내 일하는데…' 그것을 재미로 알라는 거예요. '아이구, 저녁도 못 먹고 일했더니…' 그게 재미라구요. 배고픈 가운데 그것이 재미라는 겁니다. '내가 오늘 한 페이지의 글을 지을 수 있는 기록을 남겼고, 이제 10년 후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키(key)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라구요. 사실이 그렇다구요.
이제 말한 거와 같이 선생님이 그런 별의별 생활을 다 했기 때문에 어느누구, 청중 가운데 한 사람만 딱 붙들고 그때 시대에 경험한 그 사람을 얘기하게 되면 청중들은 감화하는 것입니다. 그거 사실 얘기예요. 그 이상의 사실 얘기는 없어요. 진리의 얘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농촌 계몽 가 가지고 놀지 말라는 겁니다, 계몽 가서. 땅을 파고 모진 시련을 자초해 가면서 경험하라는 거지요. 그 경험한 것이 내 자신의 눈물로, 즉 내 자신이 참된 것을 느끼고 스스로 눈물이 날 수 있는 경지까지 가라는 겁니다.
그러한 사실의 기반 위에서 대중 앞에 서면 대중은 통곡이 벌어지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선생님이 오시면 좋은 선물이라도 해줄 줄 알았더니, 젊은 놈들의 귀가 뭐라 할까? 나팔 같은 귀. 눈이 전부 다 뭐라 할까? 올려다보는 학의 눈같이 하늘만 바라보게 돼 있지만 거기에 서리를 퍼붓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미안합니다. (웃음)
싫으면 관둬도 괜찮아요. 안 해도 괜찮아요. 우리같이 못난 사람이나 하지 뭐, 얌전하고 잘난 사람들이 하겠어요? 그렇지? 안 그래? 내가 잘살기를 바랐으면 왜 못사는 대한민국 이상 고생해야 돼요? 못사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못사는 대한민국 이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논리는 천리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제 갈 시간이 됐구만. 말씀했던 말이 날 참소해요. '여보세요. 내가 갈 길이 먼데 왜 자꾸 가로막소' 그러고 있을 거라. 안 그래? 그럴 것 아니야? (웃음) 「아닙니다」그런지 아닌지 선생님 말씀이 돼 봤나?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렇습니다'라고 못 하겠으면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이라도 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가도 된다는 말이라구요. (웃음) 안 그래요?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밤일은 안 합니다」
그렇다면 쉬어야 할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나? 「괜찮습니다」 아이고, 내가 있으면 여러분이 중국요리 사 달라고 할 것 아니예요? (웃음) 눈치가 뻔한 걸 뭐. 돈이 없다구요. 난 솔직한 사람입니다. 「저희가 사 드리겠습니다」(웃음) 그게 중국요리보다 더 맛있구만. 그 '사 주겠다'는 말 자체가 중국요리 흠뿍 먹는 것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젊은 사람들 뭘 좋아해요? 「아버님, 말씀집 1집을 70권 준비해 놓았는데요. 거기에 싸인을 해 가지고 한 권씩만 주시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이극로)」 (웃음. 박수) 참, 뭐 네가 머리가 제일 좋구나. (웃음) 도망도 하지 못하게끔 이렇게 꽉 붙들 수 있어? 코너 골을 헤딩 볼로 쏜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거 참 힘든 거예요. 코너 골도 힘든데 헤딩 볼로 집어넣은 그 식이라는 거예요, 아주. (웃음)
아이구, 나도 늙어서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걸려들었지, 걸려들었어요. (웃음) 이것 보라구요. 의사표시도 안 했는데 이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웃음) 내가 가져오라는 얘기 안 했거든요? (웃음)
자, 이제 별명을 대요. 뚱보면 뚱보, 깍쟁이면 깍쟁이, 이렇게 별명을 대라구요. 그러지 않는 사람은 사인을 안 해주는 거예요. 별명, 별명. 깍쟁이라든가, 똘똘이라든가, 못난이라든가, 납작이라든가, 삼각이라든가 별명을 대야지, 이름 가지고는 안 돼요. 뚱보라든가, 자기가 부르라구요. 별명 지어요. (이후 전직원에게 말씀집 1권에 사인을 해주시고 '충정(忠情)'이라는 휘호를 써 주심)
이제 다섯 시가 됐기 때문에 가 봐야 된다구요. 나는 어머니한테 꼼짝못하는 사람인데, 공처가인데, 어머니보다 나중에 들어갔다가는 야단맞을 텐데 큰일났구만. 선생님이 공처가인 줄 몰라요, 공처가? 공처가인 줄 몰라? 나는 공처가를 참 좋아해. 「공처가 아버님께서 오셔서 장시간 많은 은혜를 베푸셨으니 감사하는 박수를 한번」 (박수)
박수받았으니까 가라는 얘기 아니예요? 「아닙니다」 선생님이 공처가여서 어머니 오시기 전에 안 가면 야단맞는다고 했는데 박수받았으니 가라는 말이 아니예요? 「아닙니다」「또 하시면 또 박수를 쳐 드려야지요」 그래, 여기 앉아서 맛보면 무슨 국물이 생기나? (웃음) 거기 창문 좀 열어! 「열었습니다」 비가 오겠구만, 더운 것 보니까.
그래! 선생님이 오니까 좋아요? 「예!」 뭐가 좋아요, 뭐가? 언제나 이마 맞대고 살게 안 되어 있잖아요. 그저 선생님이 있겠거니 하고 사진이나 보고 지내는 것이 제일 낫지. 사진보다 내가 못생겼나, 잘생겼나? 사진 어디 있나? 「여기 있어요」 사진보다 못생겼다구요. 「잘생겼습니다」 저 때만 해도 몇 살인가? 저 때만 해도 젊었을 때지? 「예」
이거 나 혼자 먹기 미안하구만. 「괜찮습니다. 우리 사원들의 빚을 갚는 의미에서…」 (박수) 빚 다 받았으니까 빚 가지고 가는 거지요. 세상사가 그렇잖아요. 빚받으러 왔던 사람이 빚 다 받으면 가는 것 아니예요? 「아닙니다」 가게 해줘요. 「안 돼요」 (웃음) 아이구, 아이들처럼 내가 장난하는구나. 내 지갑에서 저녁 값이나 주고 가야지. 마흔 명? 「예순 명입니다」 곰탕 한 그릇에 얼마 씩이예요? 「곰탕 한 그릇에 만 원씩 합니다」 (웃음) 그것이 만 원씩이나 해요? 천 원씩인 줄 아는데, 내가. 「천 원씩입니다」 천 원짜리야. 자. (금일봉 하사하심. 박수) 이 정도면 뭐 곰탕 얼마든지 사 먹을 거라.
그건 또 뭐예요? 요즈음 때아닌 참외는 맛이 없잖아요. 여러분들 가운데 기성교회 믿었던 사람은 손들어 봐요, 기성교회 다니던 사람들. 다 교회 다니지 않은 모양이구만. 「아버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뭐요? 「아버님과 사진 찍고 싶은데요」 (박수) 무슨 사진? 사진 찍고 싶다면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그게. (웃음) 처녀가 사진찍겠다면 다 된 거지, 뭐. 처녀가 그런 얘기를 못 하는 것이지. 이건 뭐예요? 이것이 군자(조군자) 솜씨예요? 맛있다구요. 입이 참 간사하다구요. 군자가 이렇게 맛있게 하면 군자를 광렬이한테서 채 와야 되겠구만. 광렬이의 얼굴이 요즘 왜 저렇게 좋아지나 했더니 맛있는 것을 잘 먹어서 그렇구만. (웃음)
「아버님, 우리 직원 중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노래 한번 들어 보시겠읍니까?」 먹기에 바쁘오. (웃음) 「더욱 맛있으실 것입니다. 아주 금상첨화입니다」 가만있어. 어디 얼굴을 보자구요. 얼굴을 보면 노래를 잘 할지 못할지 안다구요. 누군가? 「변성숙입니다」 너는 신랑한테 수다한 여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구. 저런 여자는 한 번 주장하게 되면 누구한테 지려고 안 그럴 거라구. 주의해야 돼! 「예」「시집갔습니다」 시집갔어? (웃음) 신랑이 반대했겠구만. 신랑의 얼굴이 갸름하고 그래? 「예」 그렇겠지. 노래를 잘 부르면 미국에 데려갈 것인데 신랑이 있어서 못 데려가겠구만. 못 하겠으면 앉아요. 하고 싶지 않은 노래 듣고 싶지 않아. (변성숙씨가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라는 노래를 부름) 그다음은 광렬이가 불러 봐요, 오기가 있으면 잘할 텐데. (웃음) (유광렬 사장이 '아리랑'을 부름) (한계희씨가 '꽃타령'을 부름) (문정배씨가 '천황태자'를 부름) (안형진씨가 '빛나는 대한'을 부름)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되던가? 배탈이 나지? 너무 많이 노래를 들으면 귀탈이 난다구요, 귀탈이. 이제 가 봐야 되겠다구요, 이제 저녁도 사 줬으니. 「못 다 부르신 분이…」「아버님이 안 부르셨습니다」 나는 목이 쉬고 뭐 할 노래도 없다구요. 그러면 내가 짧은 노래 딱 하나만 하고 갑니다. 새 노래를 배운 것이 없다구요. 무슨 노래를 하겠나? 힘을 내서 해야 될 텐데 힘이 날는지 모르겠는데, 잘 들어 봐요. 무슨 노래? 고향무정을 할까요, 고향무정. 「예」 (박수) (아버님께서 '고향무정'이란 노래를 부르심) 서글프구나. (박수)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자,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요. 일요일에 다 나오나요? 「예」 자, 굿바이.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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