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들어 세번째 맞는 안식일입니다. 이 4윌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수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부활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어제가 17일이었는데,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4월 17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종족과 민족

​4월은 봄절기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동산을 바라보며 초목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현재 이 동산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습니다. 또, 이제 싹이 터서 자라야 할 나무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나무의 종대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나무는 어떠한 나무가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리라고 봅니다.

현재는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자라 가지고는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되는 나무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앞에 심어 놓은 잣나무를 가만 보면, 새로이 심어 무가치한 존재로 보이지만 이것이 자라게 되면 이 동산에서 제일 큰 나무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현재에 좋게 보이는 나무가 좋은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를 질적으로 볼 때, 어떤 나무의 종류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이, 즉 그 종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고 있는 싹이 작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점점 자라게 되면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보다도 큰 나무가 될 수 있으니, 그 나무의 종자가 문제인 것입니다.

섭리를 두고 세계 인류 전체를 보게 될 때, 이 동산에서 잣나무가 제일 귀중한 나무이듯이 인류 중에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단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단체, 민족, 나라는 어떤 단체, 어떤 민족, 어떤 나라일 것이냐? 세계에 이름이 날 수 있는 나무라면 이 동산 가운데에서만 추앙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에 전세계의 인류가 기원할 수 있는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종류와 나무들이 크고 작은 가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찾아 나오시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에 남기고 싶은 참다운 인간, 하나님의 직계권내에 세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철따라 피는 꽃 같은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혹은 봄이 왔다고 잎이 새로 피어나는 그러한 나무와 같은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체 세계의 목적을 완성하는 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재라야만 될 것입니다. 그 인재가 어떤 종족을 위주해 가지고 그 종족권내에서만 드러난다면 하나님은 그런 인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어떠한 단일 민족이 자기의 민족만을 중시하는 생각과 사상을 가졌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 끝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그런 가치의 내용을 지닌 종족과 민족을 필요로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하면 태초로부터,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변하지 않고 꾸준히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 나온 민족입니다. 그런 민족은 세계에 있어서 기필코 위대한 민족이 될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말할 수 없이 뻗어 올라갈 수 있는 큰 나무인 것입니다. 꼬부라지지 않고 곧게 자랄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와 같은 어떤 특정한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은 오랜 역사를 거쳐 흘러감과 동시에 변함없이 목적을 향하여 세계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상을 가진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원하시고 위대하시고 높고 귀한 가치의 모든 명사를 걸어 충성할 수 있는 중심 존재가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이 요구하는 민족과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고, 역사 위에 두드러지고, 시대를 거쳐 미래의 소망의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민족과 사람을 하나님이 찾아 나오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어야

오늘날 세계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로 나뉘어 대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민주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세계를 수습할 수 없고, 공산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세계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이 단말마적인 선단에 처해 있는 현실에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겠으며,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특정한 단체가 있다면 어떠한 단체가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은 민주세계권내에서 허덕이는 개인이나 단체나 민족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세계를 넘을 수 있고, 또 공산국가의 권내를 넘을 수 있는 특정한 사상을 가진 특정한 민족, 특정한 단체, 특정한 개인들을 하나님은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한국에 나타난 것은 2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역사가 20년의 역사냐 할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역사는 태초로부터, 즉 타락전 세계, 창세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역사는 어디를 거쳐왔느냐 하면 기독교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거치고, 기독교 역사를 거쳐 가지고 지금 민주세계권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세계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목적의 기점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 오늘의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민주세계에 포함되거나 거기에 소화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세계의 중심국가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지배를 받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높고 크고 넓고 귀한 내용을 지닐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통일교회는 어떠한 역사보다도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역사를 보게 되면, 어떠한 시대에는 충신열사, 혹은 어떤 시대에 있어서는 그 시대를 이끌어 나온 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여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은 선조들이 있습니다. 또, 현재에도 그 선조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무로 보면 한 마디 한 마디 자라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맨 처음에 자란 것이나 나중에 자란 것이나 그 내용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용은 변하지 않지만 나무는 커 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이 섭리의 뜻 가운데에서 충성한 것이 오늘에 나타나고, 나타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계승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전통적 인연을 미래에 계승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 그러한 단체로 구성된 민족, 그러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를 형성하여 새로운 사상 체계를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앞으로 세계 앞에 필요한 개인, 단체, 민족,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진 사상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그 당시의 사상과 상치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섭리의 뜻을 세운 그 주인이 가진 생각과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의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시대와 더불어 호흡하고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고, 그 역사과정의 시대성을 지녀 가지고 언제든지 새로운 뜻과 새로운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지 그러지 않고는 세계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세계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든가 제일 귀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람들은 전부 거기에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또, 특정한 문명권이 있게 되면 그 문명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고 거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있는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람들이 왜 미국에 가고 싶어하느냐? 그것은 미국이 세계에 있는 어떤 나라보다도 고도의 문명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문명권에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그 문명권에 참가함으로 말미암아, 그 문명권에 가담함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혜택이 과거의 어떤 시대의 혜택보다도 낫고,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어떤 환경의 혜택보다도 낫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필요로 하고, 또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의 군주는 백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하나님도 역시 인류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인류는 어떠한 인류겠느냐 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는 인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과 소원

하나님의 이상은 어떠한 역사과정에서 중단되는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발전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거기에서 비로소 '뜻을 성사시켰다. 이루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이기 때문에 후회가 남아 있고, 선악의 투쟁과정이 남아 있는 단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것을 극복하고 청산지어 전세계가 선을 위주로 하는 일원화를 이룰 때까지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자신들이 잣나무면 잣나무와 같은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본받은 개인으로서 역사적인 선조들 앞에 부끄러운 무리, 비판받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조들이 '너는 우리와 다르다. 우리 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무리가 못 된다' 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왔던 선조들이 '너는 우리와 같다. 같은데 옛날 우리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구나. 더 큰 자리에 있구나' 하고 공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실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체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십년 백년 천년 후의 여러분의 후손들을 대해 가지고 '저희들은 우리와 모양은 같지만 때에 대한 발전을 세계적으로 했다' 할 수 있는 전통적 인연을 현재의 입장에서 심어 놓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 끝날까지 뻗어 나가 가지고 오늘의 새 이념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만큼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끝날에 필요한 아들이기보다도 창조 당시에 모든 만물을 지으시던 그때의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비참하였던 역사를 전부 다 심판하여 옳고 그른 것을 전부 다 가려 가지고 그른 것은 청산하고 옳은 것은 내세워 공의의 법도에 따라, 그의 지닌 바의 실적에 따라 하나님이 축복을 해줄 수 있고, 하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시켜 줄 수 있는 분별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터전을 갖추어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뻗어 나간 후손이 천추만대를 걸어 가지고 세계에 일원화될 수 있게 될 때, 그 뜻은 에덴 동산의 창세 당시의 이념인 동시에 오늘 이 시대의 이념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그 드러난 이념은 미래의 이념으로 계속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올 시대의 인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당시의 창조적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의 실체를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획득하느냐,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완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를 통하여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체를 역사적인 부활의 실체로서 운행할 수 있게 해야 되겠습니다. 7, 80년의 일생을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섭리의 뜻으로 보아 영생의 노정을 거쳐서 발전할 수 있는 뜻을 세워 나온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그 뜻과 더불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뜻을 드러내기 위해 사는 것이요, 뜻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에 뜻이 가는 길은 내 생명의 연장이요, 내 이념의 연장이요, 내 생활의 연장이다' 하고 찬양할 수 있는 인격을 중심삼은 생활 무대를 어떻게 펼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어야

잣나무면 잣나무를 볼 때, 지금 그 본체에 새로운 싹이 나와서 자라고 있는 것이 비록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잣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또, 아무리 큰 잣나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잣나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잣나무는 일년 사시사철 푸르른 채, 잣나무로서 자랄 수 있는 한계선을 향하여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고 어려운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이것을 헤쳐 잣나무로서 자랄 수 있는 한계선을 향하여 뻗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환경에 따라 뻗어 나가기 위해 환경을 이기고 환경을 개척하면서 자란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이 되는 데는 과거에 사랑을 안 받았던 아들이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 사랑을 받았고, 현재에도 사랑을 받고 있고, 미래에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큰 잣나무나 작은 잣나무나 본질에선 차이가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잣나무라도 태양빛을 받아 가지고 땅에서 모든 영양소를 섭취하는 작용은 큰 나무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잣나무가 그 환경에서 바라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무리 환경이 어렵더라도 필요로 하는 요소를 섭취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입장을 떠나 현재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입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아들딸이라는 것은 특정한 입장이 아닙니다. 역사과정을 통해 가지고 뜻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아들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본질에서는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나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각된 입장에 서 가지고 과거를 청산짓고 과거의 자기생활을 비판하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만 사랑받을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를 하나님이 사랑했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이상세계에 필요한 참다운 개인이 될 것입니다. 개인으로 필요한 사람이 된 후에는 가정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하느냐? 꼬불꼬불한 길을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명을 짊어지고 있는 통일교회는 아무리 극한 시련과 고통이 있더라도 그걸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 본질이 강하고, 그 본질이 크고, 그 본질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반대되고 상충되는 것도 크지만, 그 모든 것을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서 후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더라도 어떻게 그 길을 따라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무면 나무, 인간이면 인간이 자라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시련이 있습니다. 시련이 없이 자란 나무는 귀중한 재목이 될 수 없습니다. 시련을 받으면서 단단히 자라 소기의 목적에 필요한 나무가 될 때, 그 나무는 큰 재목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대학을 나왔다고 자신만 중심삼고 다른것은 부정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에 환난이 오면 그 환난을 전부 다 도맡아 가지고 해결지을 수 있고, 거기에 있어서 중심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전체의 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전체 백성은 반드시 좋게 된다'라고 공인받을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 나아가게끔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을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를 보게 되면 우리는 비참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곡절의 노정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길을 걸어왔지만 그 곡절과 더불어 지쳐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시련 분야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지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진 실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극한 시련 도상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그 시련이 세계적으로 움직여 미래에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시련의 무대가 시작되고 계속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피해 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딪쳐서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것을 뚫고 가야 한다고 할 때, 정면으로 부딪쳐서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여러분 중에는 부산에 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려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길이 지금처럼 달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지기까지에는 천태만상의 수고를 거쳐 가지고 길이 닦여진 것입니다. 그 길을 닦기 위해서 수많은 생명이 제물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 국가가 자랑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된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산이 험하다고 해서 꼬불꼬불하게 길을 닦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산이 험하더라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굴을 뚫고 다리를 놓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고 굴을 뚫는 것은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결정짓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 요건입니다. 굴을 뚫기를 싫어하고 다리 놓기를 싫어했다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고속도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굴을 뚫지 않고 수백리 돌아가는 길을 아무리 잘 닦아 놓았다 하더라도, 좁지만 굴이 뚫려 있는 길이 있으면 사람들은 수백리 돌아가는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굴이 뚫려 있는 빠른 길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를 통해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찾으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요, 우리도 그런 입장에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돌아가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돌아가지 않고 직행하기 위해서는 직행하기 위한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직행하기 위해 길을 닦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사람들은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험이 없이는 용사로서, 혹은 영웅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애국자가 못 됩니다. 역사상의 위인이나 성현을 보더라도 모험노정을 회피한 위인이 없으며 성현이 없었습니다. 정면으로 부딪쳐 가지고 뚫고 나갔기 때문에 성현이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무는 심어져서 뿌리를 박고 난 후에는 아무리 그 땅이 나쁘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질이 흡수할 수 있는 최고의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자리에서는 크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좋은 땅에 옮겨 심어질 때에는 그 본색을 드러내어 무한히 자랄 수 있는 본성적인 힘과 본성적인 요소가 스며져 있어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곳에 심어지고 싶은 소망은 사랑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가야 할 것이냐? 세계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 교인의 수는 지극히 작은 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뜻이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일과 같다면, 우리는 이제 착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많은 수난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동원되는 데에 있어서 제멋대로 동원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원된 사람은 목표를 위하여 가는 형편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더라도 그 목표인 부산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부산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의 이념에 일치될 수 있는 목적관이 투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관과 자기 현재의 환경이 부딪치게 될 때, 목적관이 깨져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의 생활무대가 깨지면 깨졌지, 부딪쳐 오는 시련이 깨지면 깨졌지, 목적관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시작하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맙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 개인으로 갈 때는 자기 몸이라든가 환경이 자기의 것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시련노정을 거쳐 가야 할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비례하는 수난의 환경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몰아칠 것입니다. 부딪쳐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운명길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이 뜻만을 남기고 가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유언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고빗길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목적의식이 투철해야

예수님은 자기가 갖고 온 천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위한 소기의 사명을 감당하려 하였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그때의 환경이 받들지 못하고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그 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필생의 사명 의식으로 알고 죽으면서도 다시 와서 가야 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소기의 목적을 죽어가면서도 이루려 한 거기에 위대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 정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있기 때문에 만 인류의 마음세계에 호소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혼란된 민족들을 수습하여 새로운 민족 형성을 하였기에 새로운 민주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 뜻과 목적이 영원히 남아지는 시대에는 역사를 더듬어서 이것을 풀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누구보다도 이 뜻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이 뜻을 이루려고 노력한 사람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질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목적의식이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그 목적이 민족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인은 어디에 가더라도 통일교인입니다. 아무리 이 잣나무의 밑을 자르고, 가지를 잘라도 소나무 순이 나올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모양이 아무리 초췌하고 미미하더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노정을 가고 있는 통일교회 교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가정이나 직장의 사정에 전부가 매여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은 서로 다르더라도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 한 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사방에 넓혀질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매여 있다면 어디에 매여 있느냐? 하나의 이념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으로 가나 서로 뻗어가나 가다가 돌아오게 되면 같은 중심에 모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에 있어서 서로 아무리 다른 길을 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전부 다 모이는 것입니다. 과정에 있어서는 갈라졌지만 결국은 모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 법도입니다. 정(正)에서 출발하였으면 분리되었다가도 합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가든지 그 주체 앞에 있어서, 그 본성에 있어서 그것이 틀림없는 것이면 갈라져 가더라도 결국은 전부 다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은 민족권내에 국한되는 내용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에 국한된 이념보다 더 큰 주체를 가진 이념이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결정체와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체는 깨고 깨어 그 모양은 작아지더라도 그 성질에 있어서는 변함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결정체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은 수난길은 간단한 것이었다

여러분 자신들이 통일교회 이념을 중심삼고 여러분 자체를 보면 현재에는 비록 좁은 환경에 처해 있지만 이것이 뻗어 나가게 될 때는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인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저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는 부끄러운 모습이 된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바다도 있을 것이고, 험한 태산준령도 가로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넘지 못하면 뚫고라도 가겠다는 결의,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수난의 길을 걸어왔다고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수난길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가 가지고 4백년 동안 고역을 받은 기간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로마에는 지금도 카타콤이라는 지하동굴이 있습니다. 그곳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눈을 피해 종교의식을 행한 곳입니다. 이걸 보면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희생당했고,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랐던 것은 화려한 로마문명권내에서 호화롭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망할 수 있는 로마문명권의 그런 무리와 박자를 맞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지하에 들어가 있었지만, 비록 지금은 지배받지만 앞으로 로마를 점령하겠다는 철두철미한 사상이 그 지하동굴속에서 싹터 뻗어 나갔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적인 기독교의 발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핍박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모여 있는 사람들은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전체의 뜻 앞에 보탬이 되고, 부합되고, 연결되고, 통합되는 모체로서 개개인이 그런 사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수십 년의 수난길을 걸어온 그것이 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출발을 못 했습니다. 당당코 우리 민족이 이 세계의 수많은 민족 앞에 자율성을 자증할 수 있는 입장에 서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 위대하다는 자율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한때를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국가들아! 우리 국가의 이념을 본받아라. 이 이념을 누가 정복할 것이냐?' 라고 할 수 있는 주체적 입장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말씀을 전할 때에, 절대적인 말씀을 전한다는 입장에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씀을 전한다면, 여러분은 부끄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피를 토하는 결의를 가지고 민족 앞에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고, 한을 풀 수 있는 환경을 닦아야 합니다. 뜻을 못 이루게 되면 자기의 아들, 자기의 후손, 혹은 후계자를 통해서라도 기필코 그런 날을 봐야겠다는 결의를 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핍박을 하게 될 때는 천년 수천년 수만년 핍박을 해야 되겠습니다. 악에 대해서…. 그럴 수 있는 줄기가 어디 있느냐? 그러한 길에 설 수 있는 기준을 우리가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만들기 위한 터전이 필요합니다. 즉, 땅이 필요한 것이요, 사람이 필요한 것이요, 그 다음에는 모든 사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요,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는 승리만이 목표입니다. 그런 때에 있어서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사람은 전투요원의 대열에 참여하더라도 전투요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투대열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있다면 대열에서 제거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정통 사상을 갖고 나가라

1971년에 여러분들은 새로운 결의를 해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또, 축복가정을 대표한 축복가정 부인들이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습니다. 왜 싸우느냐? 그들은 지금 여자로서 역사상에 없던 수난의 고빗길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버려 두고 여자로서 홀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그 뜻을 세우는 아낙네로서 한번 덤벼 보자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러한 일을 남자가 해볼 때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상황에 보조를 맞추는 통일교회가 되어 가지고는 남북으로 갈라진 현 정세권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김신조가 속해 있던 이북의 124군부대 같은 부대에서 훈련받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혹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쓰러지고 포기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훈련, 죽을 지경의 훈련이지만 점진적으로 가중되는 훈련과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그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건 비극적인 행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핍박을 받고 수난길을 걸어왔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길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은 단단히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 앞에 무슨 명령이 내려질지 모릅니다. 그 명령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죽고 한 사람만 남아 가지고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 나무로 말하면 나무의 씨는 몇천 년 전에 하나님이 창조한 모양 그대로의 씨입니다. 그 씨는 아무리 환경이 어렵더라도 그대로의 씨이고, 그대로의 나무를 배양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서 거둔 열매도 그와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머루나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 머루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와 이질적인 사상, 그런 사상을 가질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우리의 적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세계를 바라볼 때, 이제 갈길이 다 막혀 있습니다. 단 하나 길이 있다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경부고속도로를 설계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공사기간에 공사가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밤이나 낮이나 감독하며 그 방향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공사가 어디 어디에서는 몇 퍼센트가 진행되어 있고, 어디에는 무슨 난문제(難問題)가 있으며, 또 어디에는 어떤 사고가 있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그 목적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 환경에 부딪치는 모든 사건들을 처리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야만 설계를 하고, 또 그것을 지도하는 책임자의 도리를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지금 엄청난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진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 목표까지 도달하는 데에 있어서 이상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총지휘관이나 설계자의 간섭을 받는, 그 법도와 발전적인 기준 앞에 모순된 입장에 서 있지 않느냐, 또는 비판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지는 않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목적 달성이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본부면 본부에서 무엇을 지시했다 하게 될 때에는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영계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반드시 영계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부에서 지시하는 것을 영계에 가 있는 여러분의 선조들은 알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모든 선조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할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여러분에게는 두 세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악한 세계요, 타락된 세계요, 원수들이 흥망사를 좌우하는 현실에 있어서는 미래에 우리의 후손들이 가는 길 앞에 말할 수 없는 방해요건으로 남아질 수도 있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권내에서의 인생살이입니다. 미래에 부여될 모든 환경을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노력을 하고 나서 그것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또 해야 할 노력 때문에 내적으로 다짐하고 나서는 연속적인 생활과정이 있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뜻을 중심삼고 얼마나 사무친 마음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

우리가 이곳에 한 10여만 평의 땅을 샀습니다. 여의도에는 만여 평의 땅을 사 놓았는데 앞으로 4천평 정도의 땅을 더 사야 되겠습니다. 또 청평에다 금년에 70여만 평의 땅을 사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교회 신도들을 전부 다 굶게 만들고 선생이라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별의별 땅을 다 산다'고 말들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벼락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고생을 하더라도 후손들이 잘살 수 있는 터를 닦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조상을 못 갖는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책임자는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각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깨끗이 희생하라 이겁니다. 모든 계획이라는 것은 섭리로 볼 때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 개인적으로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전부 다 월급을 주게 되면 오히려 후퇴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게 됩니다.

나무가 자랄 때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당연지사입니다. 여기에서 시련을 얼마만큼 극복하고 남아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끈질겨야 합니다. 힘든 역사를 자랑하지 말고 새 시대를 출발할 수 있는 현재의 자신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되는 것입니다. 자기, 혹은 처자를 위주로 하고 살아서는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생님은 독재자다'라고 합니다. 내가 독재자라는 겁니다.

복귀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자연복귀가 아니라 탕감복귀입니다. 그런데 열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한 사람이 다해 버리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열 사람의 뜻을 대신해서 한 사람이 복귀섭리해 나갈 자신이 있다는 말이예요? 백 사람을 대신해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사명을 할 수 있다는 말이예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타락은 누가 했느냐? 부모가 했습니다. 그럼 복귀는 누가 해야 되느냐? 부모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를 완성하기 전에는 자식은 없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뜻을 받들어 부모의 갈 길을 닦을 수는 없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이 가인의 말을 듣고 움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원리적 견해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의 말을 듣게 되어 있지 아벨이 가인의 말을 듣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모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자식도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뜻이 세계적 기준까지 갖추어지기 전에는 인간은 천사장권내의 후손입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골수의 노정을 지금까지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간부들 중에 자기들은 놀고, '선생님만 알면 된다' 이런 수작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도가 아닙니다.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갈 길을 못 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모시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책임자가 되려면 선생님 이상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선생님 이상 기도하고 있느냐, 얼마나 선생님 이상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무친 마음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선 앞에 악은 자연굴복하는 법

할아버지를 중심삼아 가지고 효도하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에게도 아들이 있다고 할 때, 이 3대에서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효도한다면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효도하는 걸 아는 것입니다. 효도를 하는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도 효자가 되게 하고 싶을 것입니다. 효자관을 갖고 있는 그 아버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자기보다 못한 효자를 갖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효도해 나왔지만 너는 나보다도 몇 배 더 효도하기를 바란다'고 할 것입니다. 왜? '내 효도는 오늘날의 환경에 있어서 민족권내에 서 있지만, 너는 세계권에 서서 나보다도 더 위대한 효자가 되어서 세계권을 대표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기보다도 더 효성하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효성을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를 책망할 것입니다. 그 책망은 자식 앞에 복을 주기 위하여 실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데에 있어서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50평생 이렇게 고생만 시키느냐'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동정해야 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가는 마당에서도, 영어의 신세, 철창에 갇히는 신세의 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뜻길을 가기 위한 그 첫걸음에서부터 '이렇게 생명이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을 지녀 온 역사적 탕감기준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느누가 침범하려고 해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진이가 대학을 나올 때까지 내가 성진이 아버지로서 아버지 노릇 한번 못해 봤습니다. 이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녀석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말하기 전에 나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틀렸거든 총칼을 들고 아버지에게 대항하라.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뜻 앞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선 앞에 악은 자연굴복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환경을 걸어왔기 때문에 여기에 아무리 불평불만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또 과거에 잊을 수 없는 한을 엮은 소원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을 붙들고 소원해 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이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 십여 년 동안 세계의 역사가 얼마나 급변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 역사과정에 없었던 역사적인 변천을 어떻게 해서 가져왔느냐? 그것은 통일교회 때문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평범한 한 사람같이 보이지만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한 사람만 남더라도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1년도를 바라보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걸어 목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맹세를 했더라도 생명을 다해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봄을 맞을 적마다 여러분은 자기 과거를 다시 한 번 뉘우쳐야 되겠습니다. 결실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 혹은 생명이 있는 나무로서 남아졌다면 봄이 찾아오면 다시 부활의 운동을 스스로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계속적인 자연법칙을 따라서 부활의 환경을 개척한다는 것입니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춰지고 땅의 수분이 있게 되는 봄절기가 되면 생명 있는 것은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고 있는 모든 소성을 완전히 드러내는 절기가 봄절기입니다. 이것이 여름을 지내고 가을을 지내고…. 이렇게 자연은 순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한다고 해서 여러분은 그냥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만일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때는 모두 보따리 싸 가지고 갈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없더라도 갈 길을 갑니다. 그렇지만 내가 없게 되면 여러분은 갈 길을 못 갑니다. 여러분의 후손도 못 갑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전통을 중심삼고 살라

이렇게 나무를 심은 주위를 돌아보니 심은 나무를 손질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거 나무를 간격이 1미터도 안 되게 심어 놓은 것도 있습니다. 나무를 심었으면 정성을 다해서 가꾸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이땅을 사기 위해서 얼마나 피어린 심정을 가졌고 여의도 땅을 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이겁니다. 여러분 중에 선생님을 붙들고 그런 사정을 한번 들어본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부 다 선생님에게서 뜯어 가려고만 했지…. 그러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방에 있는 지역장이 밥을 굶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에서 누가 굶는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서 통일교회 사상을 올바로 가진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합니다. 희미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하늘로부터 인계받은 영광적이고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자고로 뜻을 이루려고 수많은 선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수난길을 앞놓아 가면서 하늘을 중심하여 인계받았던 그 뜻입니다. 그것은 역사시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역사가 지나가더라도 그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여러분이 후손 앞에 그 뜻을 실현하느냐, 실현하지 못 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중심삼고 앞으로 아내를 맞더라도 그 전통에 일치될 수 있는 아내를 맞아야 되겠습니다. 자식을 낳더라도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역적의 도당을 낳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편네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즉 부처(夫妻)끼리 사랑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그러한 맹세의 터전 위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다짐하여야 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세계도 모두가 그러한 목적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뜻을 위하는 일은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무를 심었으면…. 나무를 심은 이것은 영원히 남아질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운명과 더불어 영원히 남아질 것입니다.

여의도면 여의도에 그 부지를 마련하는 데에 정성들인 그 도리는 영원히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을 위해서 하면 일생 이내에 다 털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한 페이지를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모험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모험은 인간을 중심삼은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알고 시대가 알고 뜻이 아는 땅 위의 기반만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 길을 걸어 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부정했습니다. 평양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오는 가운데 하늘 앞에 맹세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내가 모두 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 누가 이런 맹세를 했고,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 중에 책임자면 책임자, 혹은 자기 나름대로 잘한다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 생활을 변명하고 제삼자를 비판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서 결실을 맺을 것이냐? 결실이 문제라구요.

원수 이상의 수난의 길을 비참히 가는 것, 그게 있어야 됩니다. 많은 씨 중에서 제일 귀한 씨 하나를 빼내야 합니다. 이럴 때의 씨 하나는 역사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것은 또 시대를 대표한 승리적인 표준입니다. 인간의 표준적인 씨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표준적인 씨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필요합니다. 통일사상은 신세 지는 사상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자주적인 신념과 더불어 넘길 수 있는, 영원한 빛과 더불어 남길 수 있는 뜻을 지녔다면, 여러분이 죽더라도 그 뜻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충성한 그 절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 지조는 자기 생명과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지조를 붙들고 가게 되면 어디를 가든지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신념이 있으면 천국도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축복은 좋은 것이나 수난의 대가를 치러야 해

봄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봄맛이 나지 않지만 돌아다니면 사방에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봄바람은 아주 사납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생명이 부활하고, 여기에서 생명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건을 중심삼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되면 그것들이 무르익는 여름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변하지 않는 씨와 마찬가지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던 그 본성의 심정이 여러분 마음에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타락의 흔적을 이어받은 우리로서는 원한을 품고라도 이 흔적을 벗고 올라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타락의 흔적을 벗기 위해 싸워온 것이 복귀역사노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시대적 환경에 있어서의 통일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에 이 사명의 자리에 선 우리들은 그 본성의 기준에 일치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에 갖다 맞추더라도 그것이 표준이 되는 완전한 중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틀림없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미래에 있어서도 틀림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라는 것은 외부 환경의 변천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앞으로 뜻길을 간다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주시해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빚지는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빚져 가지고 나가는 단체는 발전하는 법이 없습니다. 시련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그것을 꺾어 나가면 그것은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미래의 거름더미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거름더미에 뿌리를 박고 자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과 모든 여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자체가 앞으로 봄날을 맞이하여 어떻게 발전해 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창조 당시의 모습과 오늘날 찾아진 모습이 일치되고, 그것을 이 세상에 영원히 남길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주체적인 입장으로 확고화시키지 않고는 여러분의 자리는 꺾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이러한 무리가 되지 못하면 정지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얘기했듯이 지금까지 통일원리는 개인이 탕감해 나가는 내용밖에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가정으로서 탕감해 나가는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시련노정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가정적인 시련노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이 좋으냐? 축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반면에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이제 원수라 하면, 그 원수는 개인적인 원수가 아니라 가정적인 원수요, 가정을 중심삼은 단체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선을 위한 통일교회의 환경은 점점 세계적인 환경으로 커져 가지고 일시에 그 환경이 청산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영계가 총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의 본질을 해부해 보게 될 때, 자신이 통일교회의 전통적인 사상을 지녀 가지고 봄날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무성할 수 있는 그런 본성의 내용에 일치될 수 있는 자기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가을이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천년 만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반드시 후대에 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그러한 자리를 이어받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복을 받습니다. 이처럼 어느누구보다 복받는 길이 가치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때는 본부의 인사 발령을 반대로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려면 반대로 집어 넣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훈련을 시키십니다. 내가 그런 훈련을 많이 받아온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려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효도하는 부모는 자기보다 더 효도하는 아들을 원해

이제 오늘 남은 시간에 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나무를 심어야 되겠습니다. 이 나무들이 자라면 여러분의 후손들이 앞으로 산에 와서 이 나무들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여기에다 대학교를 지으려고 합니다. 교육기관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 정성들여 이 땅에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른 데 자리를 잡더라도 여기에서 나무를 옮겨 심든가 씨를 받아 심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역사를 살리고 역사를 지킬 수 있는 내적인 사연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이 우리의 땅입니다. 청파동을 중심삼고 긴 세월과 환경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 여기 이 땅도 샀고 청평에 있는 땅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부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거처할 수 있는 집도 사야 됩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여러분들 앞에 발전이 있습니다. 또한 가정들 앞에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 양심상 내 집을 먼저 못 삽니다. 먼저 하늘의 성전을 짓는 데에 있어서 내 집보다 몇백 배 몇천 배 큰 성전을 지었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그 약속을 한 후에 내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통일교회 나온 사람들을 내가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젊음을 바쳐 고생을 한 사람을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해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걸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36가정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을 다 했습니다. 내가 빚을 져 가면서도 다 해준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생활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위신 때문입니다. 외부 사람들이 와서 볼 때, 현재 상태로는 통일교회 위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통일교회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또, 하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힘이 있어야 됩니다.

협회본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협회본부가 계획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세워야 합니다. 나라를 보더라도 정부의 예산을 책정하는 데에 있어서 먼저 청와대의 예산부터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각 부처면 각 부처의 중요한 순서에 따라 그 예산을 책정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먼저 예산을 책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협회에 있어서 자기들의 생활문제를 살피려고 하게 되면 양심적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아예 도와주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망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청기와집에서 잘산다 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얼마 얼마 예산 편성을 해서 선생님이 생활 걱정을 안 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밥을 먹는지 굶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생각하는 데에도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적인 기준이 현재에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전통적 기준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을 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독재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나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나보다 정성을 더 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나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다 넘겨 줄 것입니다. 효도를 하는 어버이가 있다면 이 어버이는 자기보다 더 효도하는 아들을 바랄 것입니다. 그래야 할아버지가 죽을 때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가 죽을 때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아들을 자기보다 더 고생시킬 수 있는 심정이 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나와 더불어 수고해 오신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아들딸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후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못 잊을 수 있는 효도를 하게끔 하는 것이며, 나보다도 더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는 깍쟁이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돈 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사 먹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먹고 입는 것까지 간섭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의 동기를 남겨야 됩니다. 마음이 갈급할 때에 하늘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일을 남겨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충성을 해도 눈 밖에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교육받은 교훈이요 상속받은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미래를 위해 일하라

나는 매일같이 통일동산에 드나들었습니다. 14년 동안 허구한 날을 이 망우리 고개를 넘은 것입니다. 그것은 놀러 다닌 게 아닙니다. 선생님 버릇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 앞에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 이러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오니 그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드나들겠습니다' 한 것입니다. 충성이라면 세계에서 충성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라면 망할 수 있는 자리에서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숱한 노정이 있더라도 빚을 져 가면서 그 일을 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입니다. 나도 돈 아까운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오천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다리를 놓는 데에 있어서 바쁠 때에는 밤에도 다리를 놓아야 하고 낮에도 놓아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 애들, 선생님이 보기에 한심합니다. 잘못됐다는 거예요. 철부지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무대가 어떻다는 것과 이 민족이 가야 할 운명길이 어떻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의 비참함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무를 심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현재에 수고한 대가를 받고서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일에 보따리 싸 가지고 나서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에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자신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안 나타나느냐? 1차, 2차, 3차 교수회의를 했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어떤 대학총장을 만나서 밀담하는 좌석에서 그가 하는 말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제 승리한 것입니다' 하면서 '자세를 드러내면 그땐…. 큰일 하는데 왜 안 나타나시느냐' 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몰라서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옛날 청춘시절에 다 체험한 사실입니다.

때가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일대일로 부딪쳐야 됩니다.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하나라도 걸리게 되면 한 사람으로서 탕감받는 것이 아니라 3대가 걸려들어가고, 후손이 걸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내가 통일교회 지도자라는 말을 안 한 것입니다. 그들의 심령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안 한 것입니다. 말석의 서러운 자리에서 평소에 도를 어떻게 닦겠느냐를 생각해 나온 것입니다.

변함없이 충성하는 자는 남아진다

천사장 복귀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내세워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충성을 잘 하여야 앞으로 자식들이 충성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복귀의 운세가 여러분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모르고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일대뿐만 아니라 몇 대가 걸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사월 초하룻날 이야기했듯이 4월, 5월, 6월, 7월, 8월이 시련 기간인 것입니다. 외부의 핍박이 없으면 내부에 시련이 생겨납니다. 그러기에 일선에 나가 있는 아내들과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 뜻이 가는 길과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내부에 심판이 있게 되면 하나님도 처리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외부인도 모르게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자만이 남아지고, 뜻을 위해 충성하는 자는 남아지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1971년도를 향하는 여러분들은 전진 도상에 있어서 정상적이요, 전통적인 통일사상의 기반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본성에 일치될 수 있는 사람, 세계를 넘고 남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그 누구한테도 지지 않고,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긍지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무자비하고, 아무리 원통한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의 분기점을 넘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는 한, 여러분이 가는 길은 순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비참했다 하더라도 여러분 후손들은 여러분의 몇십 배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1971년도를 여러분들의 일생에 남아지는 한 해가 되게 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바쁜 사람입니다. 피곤하다면 언제나 피곤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한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1971년도에 있어서 보다 넓은 범위의 내일을 생각하고, 선생님이 가는 길과 일치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되게 되면 흥하는 것이요, 하나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위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일본 협회장인 구보끼한테 '내가 이러이러한 때를 중심삼고 가니까 이러이러한 것을 준비해' 라고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부끄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한국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 못하는 이야기를 외국 식구들에게 했다는 사실은 주체국가의 체면을 여러분이 세우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라도 선생님의 명령에 움직인다는 조건을 세워 그걸 지킴으로써 주체국가의 체면을 세워 나갈 수 있고, 여러분의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해 있는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자리는 진정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고개가 아직까지 몇 고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변하지 않는 본성의 근원을 따라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목적관을 가지고 오늘 개체 개체의 생활권내에 있어서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1971년도와 1970년대를 의미 있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련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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