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오늘은 4월 들어 세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지여,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봄절기를 맞이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로운 소식과 새로운 인연을 맞게 하여 주시옵고, 새로운 생명의 빛을 찾아온 이들에게 풍족한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새로운 은총을 허락하여 주셔서 당신의 소원과 즐거움이 그 마음에 소생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사람에게는 언제나 변화가 필요한 것이요, 자각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자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과 간절한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스스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내일의 소망을 오늘의 생활권내에 실현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에 빛날 수 있는 실적을 오늘 이 순간권내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나 자기 자체에게 자극이 되지 못하고 기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여기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살펴 주시옵소서.

인간들은 세월을 그냥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한 해가 가면 또 한 해가 오는 걸로만 알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고 반평생 혹은 전생애를 다 흘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짧은 인생행로에 있어서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배반하는 자리에 서서는 절대 안 되겠사옵니다.

섭리의 길을 가는 저희 앞에 저희들이 생각할 수 없는 무자비한 투쟁의 행로를 걸으신 아버지의 결정적인 수고가 없어 가지고는 저희들이 그 길을 갈 수 없고 그 인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하루가 기쁨으로 소화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 기쁨을 내일의 기쁨으로 가져가지 못한다면 오늘의 기쁨은 나에게 있어 영영 원수가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슬픔과 어려움과 탄식의 조건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쁨이 좋은 것만이 아니며 슬픔이 나쁜 것만이 아닌 줄 아옵니다. 문제는 기쁨과 슬픔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목적 성사를 위해 내적 투쟁이 그 환경에 얼마만큼 맺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아옵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이 뜻과 더불어 생애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뜻과 얼마나 일치되었느냐, 뜻의 가치에 저희들의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연결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뜻은 내 일생을 지배하고 영원한 생명과 인연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뜻은 오늘뿐만 아니라 영원한 역사적 시대를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실체가 되시어 역사적인 중심으로서 이 시대를 관찰하고 통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중심인 아버지와 일치되는 것은 기쁨이요, 일치되지 못하고 멀어지는 것은 슬픔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슬픔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떤 입장에서 저희를 부르고 있사오며, 어떤 내용을 가지고 저희들을 찾아오시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고 오는 모든 일들이 쓸모없는 선에서 계획되어서는 안 되겠사오니, 죽든 살든 당신의 권위에 어긋나지 않는 시작과 더불어 과정을 거쳐 결과까지 가야 할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현재의 환경에서 최후에는 아버지 앞에 가지 않으면 안될 저희 인생이기에 저희들의 전체를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아버지로부터 충고를 받고 아버지의 최후의 승리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모습을 스스로 갖추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가셔야 할 기쁨의 길에 슬픔이 맺혀진 것을 알았사옵고, 소망의 세계가 찾아오기 전에 절망의 세계가 찾아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기쁨의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슬픔과 눈물의 흔적을 남긴 원한의 자녀로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걸어가셔야 할 복귀의 행각이 어떻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판가름 길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저희 스스로를 중심삼을 때가 많은 것이 습관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습관으로 말미암아 소망스런 전통을 이어받지 못하면 그 전통을 상속하는 자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 이러한 날들을 통해 분부하신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고 아버지의 높으신 은사와 일치되기 위해서 저희들은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기도할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기쁨의 자리에서 저희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수난과 고통이 극한 자리에서 부르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내일을 다시 다짐하면서 가야 할 섭리이기 때문에 오늘 나타나시는 모습은 슬픈 모습이요, 그 마음은 외로운 마음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대상의 가치를 추구하시는 아버지의 뜻 앞에 끝까지 효성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열 번 칭찬받는 것보다 열 번 수모를 받으면서도 참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필코 행복한 아들이 될 것이요, 기필코 하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들이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열 번 칭찬받는 자리가 저희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니요, 승리가 다짐되는 것이 아닌 줄 아옵니다. 열 번 이상 책망을 받더라도 마음에 걸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소망을 크게 가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하면 세계 복귀라는 크나큰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지금까지 당신은 통일교단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입장에 계시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더 큰 수난의 고비를 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기에 오늘 통일교단이 수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수난길 가운데 복귀의 행각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 길을 찾아서 싸워 나가야 할 각자의 무대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본향의 나라에서 불러 '너는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싸우며, 나라를 위해서 어떠한 중심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느냐'고 묻게 될 때 당당하게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나서서 '아버지시여, 제가 그 뜻을 위해 왔나이다' 하고 아버지가 기뻐하실 대답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쁨이 있으면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요, 슬픔이 있으면 언제나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이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될는지 모르지만 뜻을 중심삼고는 더 깊은 어려움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뜻을 위하여 맹세하고 가는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현재의 자기를 중심삼고 과거의 길이 험했다고 탄식하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넘어야 할 더 큰 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의 그 무엇을 중심삼고 자기를 회상하는 것보다도, 지난날의 뜻을 중심삼은 자기보다도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살펴 가면서, 내 슬픔과 괴로움을 망각해 버리고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염려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그러한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오늘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을 친히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는 이 땅을 대신해서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는 가정적 책임이 있사옵니다. 가정을 대표해서 축복받은 사랑하는 딸들이 일선에 나가 있습니다. 이 길은 내 개인의 사연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족과 세계의 운명을 걸고 필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예수가 간 길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이요, 저희 후대들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는 것이 예수의 소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내용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예수가 피흘린 길을 갔기 때문에 측근 되는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들도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피의 노정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의 통일교단이 걸어온 길도 그러했습니다. 당신이 그런 길을 가셨기 때문에 통일교단이 그러한 운명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환난노정과 가정의 환난노정, 종족의 환난노정이 있기에 저희들에게도 개인이 가야 할 시련노정, 가정이 가야 할 시련노정, 종족이 가야 할 시련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가정을 중심삼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언제 개인이 가정을 대신해서 간 기준이 있었으며, 민족을 대신해서 간 기준이 있었느냐 할 때에 어느누구도 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에 놓여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통일의 딸들이 일선도상에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불효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효녀가 되어 가지고 당신 앞에 정성을 다하여 당신의 은사와 보호 아래서 당신의 힘찬 행로에 힘입어, 그 남편과 가정을 중심삼고 그 이웃 동네와 친척과 자기 친구들을 넘어설 수 있게 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저희 개개인의 집안 식구가 모두 원수가 되었던 것이 가정을 중심삼고 넘어야 할 고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중심삼고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비가 있사옵니다. 이런 엄청난 복귀의 행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기에 묵묵히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오늘 간 것을 기뻐하기 전에 내일에 다가올 슬픔을 염려하면서 오늘의 기쁨을 연장시키기 위해 그 기쁨을 이 민족과 더불어, 세계와 더불어 나누어 가지게 해 달라고 정성을 다하며 가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들의 앞날을 지켜 주시옵고 저희들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길은 세상의 누구를 보고 갈 길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만을 아버지로 알고 가는 길이요,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가야 되는 길이요, 아버지만을 모셔야 할 길이기 때문에 어느누구도 스스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이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자기의 처자까지도 이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기 때문에, 내 갈 길을 막고 내 가는 길에 상처를 입히며 낙망하게 하는 사람은 지극히 가까운 무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나님을 낙망시키고 슬픔의 자리에 몰아넣는 것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무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가면 갈수록 당신 앞에 겸손하고 가면 갈수록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백 번 천 번 죽어서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뜻만은 남기고 가야할 것이 오늘 복귀도상에 선 저희의 의무요 사명인 것을 알고 있기에 이 뜻을 위해 나선 이 몸은 맹세한 적이 한 번뿐만이 아니었사옵니다. 천 번 만 번 다짐한 통일교회 무리의 맹세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맹세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요, 비수와 같이 예리한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끊는 듯한 자리에서 조건을 통과시키는 것이었사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탕감의 길에 있는 당신의 딱하고 어려운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엄숙한 사명과 과제를 앞에 놓고 가는 저희들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슬픔을 넘을 수 있는 내적 다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소망을 갖고 현실적인 모습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노정을 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요, 아버님이 가시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하신 분은 당신밖에 없다는 것을 날이 가면 갈수록 느껴야 할 자가 통일교단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요, 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들딸은 어떠한 조상의 혈통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그런 아들딸이 아니라 하늘의 도의 인연을 통하여서, 혹은 선조의 피의 공적을 대신하여 거두어진 결실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아들딸이기에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등극시켜 주기 전에 자기 스스로 등극해 가야 할 저희 자신들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당신께서 통일교단을 이끌어 주셨사오니 금후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겨야만 되겠습니다. 당신 외에는 어느누구도 저희를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 전체를 인도하여 줄 것을 믿으며 그 인도함을 따라가는 저희들은 당신이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눈물의 교차로가 거듭거듭 축적되어 있는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오며, 그 길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당신을 믿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주장해 가지고는 가지 못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오늘도 손해를 봐야 되고 내일도 손해를 봐야 되며 일생을 통하여 손해를 봐야 된다는 사실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온 천지간에 불쌍하신 분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모에게 열 자식이 있다면 부모가 그 열 자식에게 다 잘 해주어야 그 자식들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와 어긋나는 입장에서 좋아하는 때가 많은 것을 보게 될 때, 수십 억 인류를 지금까지 거느리고 나오시는 아버지는 얼마나 고독하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딱한 자리에 계시겠느냐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는 상반된 혈통적 인연을 가진 인류를 바라보면서 섭리의 뜻을 세워 나가시는 당신의 노고와 고통이 크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저희들을 채찍으로 몰아 세우지 아니하였습니다.

순응하는 마음, 감동하는 마음을 가지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리로 인간을 이끌기 위해서는 천신만고의 형극의 노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배후에 얼마나 많은 아버지의 피눈물의 공적이 있는지를 알고 저희들은 그것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내가 남이 모르는 섭리의 뜻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배후에는 억천만세의 눈물이 어려 있으며, 죽음의 교차로가 연이어 있으며, 피의 제단이 상속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눈을 들면 눈물 없이 대할 수 없는 것이 뜻의 길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지금까지 저희 교단을 이끌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오늘도 가야 되고 내일도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로 말미암아 시작되어 자기에게로 귀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폐단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통일교단만은 여기에 있는 세째 아들로 말미암아 자기에게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몸부림쳐 나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였기에 아버지께로 귀결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비참한 길을 걸으셨기 때문에 저희들도 비참한 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길을 알았기 때문에 귀결된 자리에서 최후의 비참이 절정에 달하여도 당신이 환희할 수 있는 모습을 찾아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여야 할 것이 복귀의 도상을 가는 통일교단의 운명이요,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이 자식의 사명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생애를 바쳐 남에게 빚지며 살지 않겠다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몸부림치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사오니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민족의 한스러운 현시대의 운명과 더불어, 앞으로 아시아에 다가올 환난과 더불어, 최후의 절정에 달한 비극의 도상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세계 인류와 더불어 하늘의 섭리의 뜻이 흘러가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저희들을 세워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고속도로를 닦는 거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것이요,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할 고비가 많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길을 다 갈 때까지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을 부를 때는 뼛골이 녹아나는 사무치는 심정을 가지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어려운 생활의 환경을 넘고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사무친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희들은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겸손히 아버지를 본받고 아버지의 아들의 인연을 저희들이 맺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를 따라서 끝까지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1년, 금후에 되어질 모든 것이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도 점점점 최후의 정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사오니 여기에 저희들이 기수가 되고 발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사정하에서 이 나라를 치리할 수 있는 때에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이 누구냐고 묻게 될 때에 옷깃을 여미며 '네, 제가 여기 있사오니 명령하시옵소서'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겸손한 아들딸을 아버지는 그리워하며 찾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든 일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묵묵히 남이 모르는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요, 귀가 있어도 들을 줄 모르는 것같이 하는 사람이요, 입이 있어도 말할 줄 모르는 것같이 하는 사람이요,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것같이 하는 사람이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버지와 더불어 운행하며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을 통하여 역사가 개방되고 그들을 통하여서 역사가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이 교단을 당신이 맡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이 교단의 주인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역사적으로 섭리해 오던 노정에서 남아진 통일교단이기 때문에 이 교단은 당신의 운명과 더불어 가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흔적을 남기면서 가야 되겠습니다. 이 길에는 무자비한 싸움의 행각이 거듭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난의 노정과 외로운 길이 있다면 아버님이 끝까지 운행해 주시옵소서.

자기의 외로움을 가지고 식구들 앞에서 불평하는 것은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의 습성인 것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을 지도하던 모세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훌륭했고 노아도 훌륭했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그들이 걸었던 역사적인 행적과 교훈을 다시 한 번 배워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의심치 않고 떠나갔습니다. 노아도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모세도 40년의 미디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를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망의 마음을 강하게 가졌기 때문에 의심보다도,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도 아버지를 더욱 믿고 힘든 길을 참으면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참고 가야 할 행각의 노정에서 굳건하여야 되겠으며 강하고 담대하여야겠습니다. 내 스스로 최후의 자리까지 결의하고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생명을 걸고 아버지와 담판하는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문제는 자기 자식과 더불어 결정지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부모와 사랑하는 친척과 사랑하는 나라와 세계 앞에 모든 것을 결정지어 놓고 가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그 고빗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누가 잘못을 했다면 그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전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요, 이 책임을 저희들이 다하게 되면 아버지 앞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개인 개인들이 슬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옵니다. 저희 개인 개인이 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옵니다. 저희 개인의 슬픔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슬픈 것이 문제요, 이것이 당신에게 인연된다는 사실이 슬픔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선과 악은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가는 노정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 식구가 원수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고, 교단적인 입장에서도 그렇고, 나라를 중심삼고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에는 개인적인 원수가 있었습니다. 가정적인 원수도 있었습니다. 교단적인 원수도 있었습니다. 국가적인 원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원수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수들이 외적인 입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 자체 내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원수는 먼저 나에게 있는 것이요, 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원수를 무자비하게 끊고 넘어설 수 있는 당신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자식이라든가 처자라든가 그 누구도 절대 믿을 수 없고 이들에게 절대 운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잘 믿었다는 많은 무리가 있사오나 이 길에 관계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 이외는 믿지 말고 당신만을 높이고 당신만을 의지하고 당신과 의논하면서 가야 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삼자의 말을 하기 전에 아버지와 더불어 나 스스로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제삼자를 평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먼저 평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어야 할 것이 통일의 아들딸들이 가져야 할 전통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4월과 이후의 모든 전체를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월부터 8월까지, 이 기간에는 우리 교회에 거듭되는 수난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외부의 수난이 없다면 자체 내에 수난이 생긴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수난의 때를 피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온갖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진정 사랑했는지 나를 놓고 다시 한 번 물어 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내 편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고 있는 나인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고 다시 한 번 스스로 판단해 봐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확정지어 놓고 뜻길을 끝까지 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사람이 소신을 가지고 자기의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소망을 이루는 데에는 비례적으로 상극적인 요소가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나에게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반발하고, 나를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밀어 내려 하는 것입니다. 크나큰 목적을 향하여 가게 될 때는 그 목적에 비례되는 수난길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공의 여건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려고 결심을 합니다. 세상에 크나큰 목적을 중심삼고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개개인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꿈을 꾸고 나가지만 그 목적을 성사시킨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 목적하는 바가 민족적이면, 민족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출발을 같이 하였다 하더라도 최후에 남아지는 그 자리에 들어간 후라야 그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승리의 한때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이 수난노정에 있게 될 때에, 그 수난노정과 더불어 흘러가는 사람은 민족 앞에 있어서 크나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민족이 수난노정에 있으면 흘러가는 역사적인 환경을 가로막고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삼천만이면 삼천만 가운데 몇 사람 앞만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 됩니다. 삼천만 앞을 전부 다 거슬러 올라가기 전에는 민족 전체를 새로운 목적의 결과로 이끌 승리의 터전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제를 볼 때, 세계적인 어떤 정상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세계적인 수난의 고비를 피해서 가려고 한다면 그는 세계의 정상에 절대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의 길이 나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나와 더불어 있는 것이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다짐하며, 이것이 다른 누구의 운명이 아니라 내 필생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그 길을 남이 어렵게 보더라도 먼저 가고 소화시켜 그것을 생명의 가치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싸움을 일년, 이년, 십년, 백년, 혹은 수천년 다짐해 나가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적인 민족이 될 것이요, 국가는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또 그런 종족이 있다면 그 종족은 반드시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 하게 되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고객 (孤客)이 되어 유리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부터 총탄의 세례를 받고 수많은 원수 나라의 말굽에 밟혀 희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개만은 지켰습니다. 자기 개인을 위해 수난길을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사상은 무엇이냐 하면 선민사상입니다. 수난길을 가지만 최후의 노정에서는 메시아가 와 가지고 자기들의 모든 수난의 대가를 세계적으로 치러 준다는 소망을 품고 나온 민족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신문 지상을 통해 알다시피 키부츠(kibbutz)제도의 배후에는 정신적인 동기가 있는데 그것이 선민사상입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몰리는 곳곳마다 수난이 닥쳐왔지만 그 수난이 민족의 골수에 흐르고 있는 선민사상을 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환경에서도 선민사상을 다짐하였고, 어려운 고빗길에서도 외로움을 탄식하기 전에 선민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들고 몸부림쳐 나온 민족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떤 분야에서도 유대인이 문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대 민족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세계적 수난길을 피해 가서는 하늘 민족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은 이 길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길로 알고 걸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유대인을 환영하는 민족이 없었고 개인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이 주위에 등장하게 되면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싫어하는 환경에 몰린다고 하더라도 선민사상이 있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사라질래야 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오래전부터 도피할래야 도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모든 시련의 여건들을 저버리고 그 환경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입장이 도리어 하늘 앞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체 유대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은 애국심을 마음 깊이 품고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역사를 통해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수난노정을 참고 가면서 하늘을 부여안고 나온 민족이었기 때문에 유대 민족이 필시 세계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 가야 할 통일교회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개인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간다면 개인과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개인과 더불어 사라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대한민국의 한민족과 더불어 가기를 원하는 뜻이라면 한민족이 망하면 뜻도 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시아 몇 개국을 중심삼고 가려고 하는 주의가 되었다면 그 아시아 몇 개국이 역사를 대신하는 승리한 자리에서 세계를 영영 지도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면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막혀 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대한민국만을 위한 길이 아니요, 아시아만을 위한 길이 아니요, 세계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길은 출발에서부터 어떠한 개인을 위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동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 아니라 슬픔의 하나님으로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때에 기쁨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어떠한 민족의 한계선에서 명령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면 그 정상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의 민족을 대신했으면 그 민족을 수습해 가지고 또 다른 민족을 가세하여 단계적으로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통과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수난길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슬픔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런 길을 다 갈 때까지는 슬픔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국가가 당한다면 하나님도 당하는 것이요, 세계가 당한다면 하나님도 당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 세계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중심삼고 맺혀져 있는 모든 수난길을 하나님도 기필코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정신적 입장에서 타개해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세계와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망하고 독일이 망하고 이태리가 망하게 되어 전쟁이 끝나게 될 때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전쟁에 가담했던 나라들은 어느 나라보다 비참하였고 수난길 가운데 어려운 짐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수난의 자리에서 최후까지 극복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때 그 승리는 어떠한 특정 민족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가담했던 큰 나라나 작은 나라를 막론하고 슬픈 자리에 동참했던 무리들은 승리의 한날을 맞이한 기쁨을 자기들의 기쁨으로 맞이했던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귀 섭리는 기쁨으로 출발하지 않고 슬픔으로 출발했습니다. 슬픔으로 심은 것입니다. 슬픔으로 심었기 때문에 자라는 것도 기쁨으로 자라온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자라온 것입니다. 눈물로 심었기 때문에 눈물로써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거쳐가는 환경에서 심어 나왔기 때문에 죽음길을 다짐하는 자리에서 반드시 전진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대한민국만을 위하는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을 아시아의 어떤 국가의 운명과 더불어 가서도 안 됩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나라면 나라,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자기 나름의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더라도 그 기쁨과 더불어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뻐하는 민족이 있더라도 그 민족을 중심삼고 기뻐하는 것은 세계를 중심삼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민족만을 위했다고 할 때는 그 기쁨을 넘어 가지고 세계적 슬픔을 대하여 그 슬픔을 넘어가야 하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는 대신자가 되어야

슬픔으로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어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 들인다는 원칙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슬픔으로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 기뻐하실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무리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슬픈 환경이 자기와 하나되는 입장에서는 기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려운 가운데 있게 될 때 어려운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 같이 고생하려고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가진 부모는 돈이 없더라도 자기와 더불어 동고동락하기를 원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는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새로운 소망을 다짐할 수 있는 자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데 자식이 그 슬픔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기뻐하는 자리로 나간다면 거기에서는 절대로 뜻이 같이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데 자식이 부모보다 더 슬퍼할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그 부모와 역사적인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와 더불어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 자식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자식아, 너는 이와 같은 마음을 죽을 때까지 가져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런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간절하고 더욱 높고 더욱 넓은 슬픔을 가지고 수난길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의 전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부를 주고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수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부모라 할진대는 부모 이상의 수난을 앞에 놓고 다짐하고, 그 수난길을 가는 것을 생명시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부모의 슬픔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슬픔을 넘어서기 위해 다짐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픈 자리에 있는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으로 뿌렸기 때문에 슬픔으로 거두어야 할 운명길을 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나 스스로 기뻐하며 가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슬픈 부모를 어떻게 위로하고 그 부모보다 더 슬퍼할 수 있는 자리에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런 운동, 그런 결의, 혹은 그런 맹세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자극시켜서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현재의 환난 시대를 극복하여 넘어갈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타락한 인간의 부모와 자식간에 벌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슬픔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슬픔의 역사를 스스로 개척하여 금후에 연속되는 최후의 끝과 최고의 정상까지 가야 됩니다. 이 길이 하나님이 가셔야 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기뻐하고, 먹고, 울고, 자기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결렬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에 가야 할 최고의 정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서부터 최고의 정상을 이어받느냐, 어디서부터 최고의 정상의 길을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슬픔으로 출발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쁜 날이 언제 있었습니까? 세상에서 뜻을 알고 좋아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슬픔을 알아 가지고 한걸음 앞서서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고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수난길을 대신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무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체휼하는 신앙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내가 당하는 시련이 너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내가 당해야 할 시련이 너 때문에 사라졌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슬픔을 망각할 수 있는 것이요, 개인을 대해서 현재의 슬픔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뜻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느때에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염려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나에게 슬픔이 있게 되면 '아버지여, 내 슬픔을 막으시옵소서. 슬픔은 하나님 것으로 하시고 나에게는 기쁨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 방법입니다. 또는 '저희들에게 화를 없게 하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화가 있다면 그 화를 당신이 가지시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복을 나에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신앙은 반드시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신앙길을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지금까지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자기 스스로 어려운 길을 잘 극복해 나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가 극복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잘 참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걸어온 노정을 생각하며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0억 인류를 바라보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열 자식이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 앞에 있어서 자식들은 전부 다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30억 인류는 전부 다 자기의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소신대로 하나님이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에게 다 좋게 해주어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것을 다 해줄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좋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게 해줘도 불평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는 비애와 슬픔이 교차되어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때가 있으면 슬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서 일생 동안 수난길을 간 사람이 그 일대에서는 기쁨을 못 봤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후대에서는 기쁨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단이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볼 때, 통일교회는 어떤 길을 갈 것이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갈 것이냐? 또 문선생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길은 기쁨을 구가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슬픔을 느끼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자기가 느끼는 가슴 아픈 슬픔은 당사자 외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체휼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자는 것입니다.

왜 체휼적인 신앙을 강조하느냐? 하나님의 슬픔을 몰라 가지고는 하나님 앞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슬픔을 완전히 알고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슬픔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만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이 부모와 같지 못하면 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충신 열녀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기반 위에 얼마나 있었느냐? 그런 적이 몇 번이 되느냐?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도수와 그런 때가 얼마나 많았느냐에 따라 믿음은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체를 따라가는 길이 사는 길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선생을 생각해 보세요.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선생님과 의논합니다.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전부 다 도와줄 것 같아서 왔으니, 좋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자리에 서기 전에 자신이 이루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간부들이 뜻길에 나가 싸우고 있지만, 탕감노정에 있어서 뜻과 더불어 자기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냉정히 자신을 비판해 볼 때 자기 스스로 자신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없으면서도 자기를 중심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욕구를 중심삼고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고요. 이런 사람은 뜻 앞에 절대 설 수 없습니다.

뜻 앞에 있어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욕구조건을 가지고 요구한다면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이요, 전체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속한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망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가 망하지 않으면 원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지시하면 여러분은 불평하지 말고 따라와야 됩니다. 따라오는 사람보다 지도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더 지는 것입니다. 지금 부녀자들을 일선에 내세웠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피해가 있으면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일선에 배치했으면 배치된 일선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고생하고 명령을 내린 책임자는 편하게 사는 법은 없습니다. 책임자는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 단체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밥을 먹으면서, 혹은 잠을 잘 때까지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정상이라는 것, 역사상에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을 넘어가야 됩니다. 정상으로 모든 사람을 끌어올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미 넘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정상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나는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어떻게 했느냐' 할 때,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과 같이 예수님이 가는 길은 사도들이 가야 할 길이요. 사도들이 가는 길은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가야 하는 길은 선생님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데에는 부모, 여자, 친구 그 누구도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그 길은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이 하늘 가정에 있어서 불화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불화의 싸움은 언제 끝나느냐? 싸움을 다하고 진짜 망하는 자리까지 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까지 가야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하나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망하고 공산주의도 망하는 것입니다. 둘이 싸우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 두 세계 중 한 편에서 선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선의 출발을 모색하는 한때가 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원리를 통해서 개인복귀 원리를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개인복귀 원리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가정복귀 원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왜 죽었느냐 하는 것은 가르쳐 주었지만 예수님이 안 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가정을 버렸습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을 버리는 자리에 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자리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도 그런 자리에 가야 합니다. 세계가 그런 자리에 설 때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대한민국으로 오는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경배해야 할 때가 오는 거라구요. 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이 대한민국을 위하여 정성을 들여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시대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 선을 주입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남자들이 임지에 나간 부인들에게 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이익 없는 놀음을 많이 해 나왔습니다. 언제는 가정적으로 축복해 주더니 이제는 동원한다고 하는데, 비참하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아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동원된 여러분은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거예요. 누가 물어도 꼼짝 못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정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해결점

여러분은 최정상의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이 세상에 없는 가정적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기필코 그 길을 끝까지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망하는 데는 원수도 망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볼 때 그렇잖아요? 싸움으로 비참한 자리를 넘어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동정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타난 환경을 바라보면서 점점 비장한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 일본의 구보끼가 왔다 갔는데 그를 보내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는 일본을 혼자 책임져야 할 엄청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이 엇갈리는 현정세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기에 그는 무자비하게 다짐해야 됩니다.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같이할 것입니다. 그들과 얘기해 보니까 꿈 같은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볼 때 뜻 길은 생명을 걸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정상이 되려면 무엇이 문제냐?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의 해결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심정입니다. 아버지가 수난길에 있을 때, 아버지의 심정에 어떻게 동참하느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미래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안팎으로 몰고 들어가 하늘의 협조를 일으키도록 자극을 가해 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무리가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정상은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 가는 길은 기뻐도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기뻐도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은 하늘은 수난으로 뿌리고 슬픔으로 뿌렸기 때문에 수난으로 거두어야 되고 슬픔으로 거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어디에 있어요? 잘먹고 잘사는 데 있어요? 아닙니다. 못먹고 못사는 데에 슬픔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슬퍼하느냐? 뜻 때문에 그러한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최고의 심정의 정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공식석상에서 책망하는 이유

우리 통일교인들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공식석상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책망을 가끔 하지요? 왜 그렇게 하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는데 있어서 일대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와 나, 일대일로는 절대 용서가 안 됩니다.

선생님이 책임진 것은 세계적이요 전체적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번 잘못하면 세계적으로 전체적으로 걸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짓게 되면 공판정에서 선포하고 결정하지요?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공석에서 선포식을 하는 것입니다. 친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어떠한 사람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공석에서 그를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잘 아는 유 협회장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내가 공석에서 그를 많이 공박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탕감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 협회장이 돌아간 다음에 어떤 사람은 선생님은 죽은 충신에게 복은 못 주고 상은 못 주나마 공박만 한다고 했지요?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수단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책적으로 말하는 수단을 못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모르는 내용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하다 보니 여러분 보기에는 그것이 걸리는 것입니다.

영인들이 선생님에게 나타나 자기를 변호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자기들을 구원해 줄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내용을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판결지어 주어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잘못하여 죽게 되어 영계에 가면 그 잘못을 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했으면 살아 생전에 회개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영계에 가면 이를 악물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체면불구하고 이 땅에 와서 회개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그들을 공판정에서 판결지어 줘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공석에서 그들을 공박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대한민국이면 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삼천만 국민 앞에 선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이러한 입장에서 잘못됐으면 잘못됐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적 권위를 가지고 이러이러한 공적이 있기 때문에 용서해 준다는 법칙이 있으니 전후를 가려 용서해 주는 것이 세상의 법도입니다. 이러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책임자가 위신을 모르고 책임하라고 책임을 추궁하면서 책임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어요? 책임자는 다 알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그 배후에 여러분이 모르는 곡절이 있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해받는 것이 문제입니까, 사람의 갈 길을 해결해 주는 것이 문제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갈 길을 해결해 줘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체면을 불구하고, 오해를 각오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이야기해 주겠어요? 이런 배후의 인연은 모르고 선생님이 책망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책망받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이 그를 위해서 눈물 흘리며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래 그게 잘못됐어요? 그러니 선생님이 공석에서 책망을 하게 되면 왜 그러는 줄 알아야 돼요. 여기 유광렬이 왔어요? 엊그제 부흥회 할 때 공석에서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렇게 책망하고 명령한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교회를 일시에 편성해 가지고 지방 지역에서부터 중앙에까지 전부 다 내가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의 책망으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 책망을 들어야지요. 전체가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해방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열 번 책망하고 그 이상 책망하고도 안심할 수 있는 아들이라면 그는 효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 번 책망했는데 그 책망을 거역했다 할 때는 그는 불효자입니다. 거기에서 효자 불효자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의심나면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천년의 전통을 남기기 위해 고생하는 무리가 되어야

선생님은 하루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이러고 저러고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이러고 저러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여러분 자신들에게도 영계에서 가르쳐 준 것이 왜 없겠느냐는 거예요. 없을 것 같아요? 책임자는 누가 말 한마디 잘못 하게 되면 그것을 전부 다 요리해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버지 뜻 앞에 불상사가 있으면 벌써 알아요. 손에 일이 안 잡힙니다. 일거리를 가져와도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대번에 안다는 거라구요. 내 개인 일신상의 문제는 문제시하지 않아요. 가정의 애기들이 앓든가 가까운 친척 중에 누가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 돼요. 뜻을 위해 죽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뜻의 기준이 한번 틀어지면 억천만세가 녹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의 가지야 꺾이면 또 돋아나지만 종대가 꺾여 나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 중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들도 선생님이 기도하는 것을 모릅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선생님이 기도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되는 일이 있어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걱정을 끼쳐 드리는 사람들은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늘 앞에 공적을 남기고 가겠다는 사람은 눈물 없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눈물이 마른 사람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먼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게 나왔는지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비참으로 심어졌고 슬픔으로 심어졌고 억울함으로 심어진 역사는 그보다 더 큰 비참을 통하지 않고는, 억울함을 통하지 않고는, 슬픔을 통하지 않고는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거두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가 거두어야 됩니다. 나는 수억의 돈을 가지고 있지만 그 돈으로 양복 하나라도 안 해 입으려는 사람입니다. 무서운 돈입니다. 그 돈을 쓰면 식구들이 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는 깍쟁이라구요. 현실의 손실은 무서워하지만 우리 후대를 위해서는 그 돈을 다 쓰면서도 가는 사람입니다.

백년이면 백년 자체의 생을 누릴 것이냐, 천년의 전통적 역사를 남길 것이냐? 우리는 백년 자체의 생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년의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돈이 있으면 후손을 위해서 쓰고 우리는 고생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극복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기는 못먹고 못살더라도 후손들은 잘먹고 잘살게 하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친구가 없습니다. 고독단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에 부모도 개의하지 않고 출발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을 개의하지 않아요. 누가 통일교회에서 떨어져 나간다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관계되었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하지 그 자체를 두고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반대하고 그래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말한 원칙은 틀림이 없습니다.

후대를 위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희생하는 민족, 단체,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부정하고 현실을 의지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라구요. 미국이 흥하겠어요, 망하겠어요? 그 나라는 망한다는 거예요. 미래를 부정하고 현실을 위주하는 나라는 끝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히피족들이 나타나고 그 와중에 끼리끼리 싸움을 벌이는 거라구요. 그건 왜 그러느냐? 슬픈 세상을 거쳐가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난을 극복하고 최고의 정상점을 결정짓는 자가 되자

여러분은 이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최고의 정상에 올라가야 합니다. 제주도의 한라산에 가게 되면 보기에는 정상이 가까운데 상당히 멉니다. 그 한라산의 정상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느냐? 그저 올라가면 정상이냐? 천만에요. 그렇게 알았다면 실수입니다. 최고의 정상점을 어떻게 올라갈 것이냐? 정상을 올라가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출발점이 없으면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최고의 정상이 어디 있느냐? 높은 꼭대기를 찾아가는 자기 자체의 마음 세계에 있습니다. 슬픈 세계를 다 극복하고서 정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슬픈 세계는 어디에 있느냐? 자기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제일 낮추어서 극복해 올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는 것을 평생에 타고난 팔자인 줄 알고 가는 사람은 최고의 정상을 점령해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기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섭리역사를 출발하신 하나님의 슬픈 고개가 어디일 것이냐? 세계일 것이냐? 아닙니다. 천주입니다. 우리는 천주주의자이니까 영계까지 해방시켜야 됩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패들은 아예 잘살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영계까지 우리가 해방시켜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 최고의 정상은 무엇이냐? 하나님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천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6천년 동안 고대해 나오던 일을 우리가 해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정상입니다.

최고의 정상을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마음 자체에 있어서 그 이상 결의해야 합니다. 그 결의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온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시련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나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정상을 넘기 위해 내적으로 결의한 나 자신, 정상점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는 최고의 정상을 향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수난으로 뿌렸기 때문에, 최고의 수난을 극복하는 자제력을 가진 여러분이 되어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정상점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기 도

가고 오는 복귀의 행각을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저희들이 영광의 세계에 기수가 되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축복받은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의 갈 길을 아버지, 지금까지 믿고 나오면서 가면 갈수록 눈물이 더 많아야 될 것을 느꼈습니다. 짐이 더 무거운 것을 느꼈습니다. 말로만 아버지 앞에 생명을 걸어 놓고 이렇게 하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정상에 오르지 않은 것을 느끼며 가는 길이오니 끝까지…. 통일교단이 갈 최후의 고비를 아버지께서 자랑으로써 세울 수 있는 그날까지 저희들은 죽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이 어려운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후손에게 남겨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일대에 해결짓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초조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당신이 그렇기 때문에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도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미래를 개척하면서 힘의 자극제가 되어 영광스러운 세계에 품길 수 있는 아들딸로서 남아지고, 최고의 정상을 넘어갈 수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시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누구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가까운 친구도 아니요, 자녀들도 아니옵니다. 오로지 아버지와 더불어 끝까지 싸워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모이는 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내내 허락하시는 뜻과 더불어 수난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습니다. 아멘.

최고의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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