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11월 5일, 이달 들어 첫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찬양이 길이길이 빛나게 하옵소서.
생애의 인연을 따라 만민을 당신의 자녀로 삼고, 창조의 인연을 따라 만천주를 당신의 승리의 발등상으로 세우신 그 거룩한 위업을 당신의 뜻대로 성취하시사 홀로 당신의 권한을 차지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타락한 인류의 조상을 맞은 그 시간부터 한스런 복귀역사를 더듬어 오신 아버님이여, 얼마나 얼마나 개인들 앞에 혹은 민족과 국가들 앞에 당신이 부정당했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부정하는 인류를 당장에 포기해 버리고 싶으신 심정이었겠지만, 그래도 소원의 한 때를 바라보면서 참아오신 당신의 자비와 사랑 앞에 저희들은 몸 굽혀 경배드리며 감사를 드리옵니다. 망해야 할 인류가 이때까지 남아진 것만 해도 당신의 허락하신 온정을 무한히 받은 것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저희 들이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세기말적인 최종점이 저희들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이제‘나'라는 한 존재는 나 하나의 운명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을 아옵니다. 개인의 승리의 길은 민족과 통하여야 될 것이고, 민족의 승리의 길은 세계와 통해야 될 것이고,세계의 승리의 길은 천주와 아버지의 승리와 통하지 않으면 안 될 결정적인 시대를 저희가 목전에 직시하고 있나이다. 숨가쁜 한 장면이 저희 앞에 다가오는 이때에 저희 자신들은 당신이 바라보는 그런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불쌍한 자들이 되며, 불쌍한 나라와 불쌍한 세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하오니 충심으로 당신을 그리워하여야 되겠고, 당신을 시봉하면서 최후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엄숙히 노력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가 엇갈리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악한 땅에서 악한 사람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은 악한 길을 가고 있던 것을 청산하고 선한 길로 접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돌아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은 수난의 길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가는 길 앞에는 개인이 막고 있고, 가정 국가 세계가 막고 있고 뿐만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권한까지도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일생을 통하여 이것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희들에 게는 있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생명을 각오하고라도 이 길을 극복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넘어가야 할 산정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저희의 조상들이 망하고 저희의 모든 선대의 국가들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간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정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저희들은 역사상에 없는 최대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당신 앞에 저희들은 미쳐야만 되겠습니다. 당신과 하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힘만 가지고는 넘어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희들을 찾아오신 것은 이 길을 넘기 위하여 숨막힌 복귀의 한스런 길을 극복하고 참아오신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쌍수를 들어 당신이 허락하신 은사를 바라고 있는 최후의 종대를 향하는 이 마당에, 혹은 정상을 향하는 이 자리에 당신이 현현하시옵소서. 저희들이 불가능한 이런 단계에서 가능의 역사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것이 역대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것을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당신이 자랑하고 당신의 사랑을 받기에 당당한 아들딸이 되기를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습니다.
고대하는 마음의 자리는 쉬울지 모르되, 실체를 넘기 위해서는 생사의 결판을 짓지 않으면, 최후에 싸움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마음적 자세는 됐으며, 저희의 몸적인 무장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부족한 저희 자신 들이고, 벌거숭이의 저희 자신들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저희 몸에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철갑을 입혀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으로 일체화시키시옵소서. 당신의 대신 실체가 되지 않고는 승리의 극복을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만약에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저희들같이 불쌍하고 비참한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사탄 앞에 최정상에 섰기 때문에, 하늘 앞에 최대의 협조를 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패함과 승리가 엇갈리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여기서 패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하늘 앞에도 원수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잃어서는 안 될 자리인 것을 알고, 기필코 승리의 결과를 가져와 당신이 믿고 있던 그 기준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각자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다시 한 번 11월을 아버지 뜻을 통하여 맞고 있습니다. 1972 년도 이달과 12월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약 55일간을 저희들이 힘차게 싸워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1972년도를 넘기고 1973년도를 맞이 하게 될 때에, 아버지여, 저희 자신들이 새로운 하늘의 승리의 모습을 가지고 세계적 도상 위에 나타날 수 있는, 당신이 지배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앞에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일연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저희는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여 기관차와 같은 사명을 하여야만 되겠습니다. 기관차의 힘 여하에 따라서 달리는 속도의 차이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매양 달려야 되겠습니다. 힘이 부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강하고 끈기 있는 자세로서 달려갈 줄 아는 기관차의 사명이 저희들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 당신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이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일일이 소명하시옵소서. 너는 이러이러한 곳에서 불렸고, 이러한 길을 올때에는 기필코 설 수 없고 남아질 수 없는 때가 많았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하늘이 보호하고 길러 준 은덕으로 알라고…. 다시 하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앞에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새로운 결의를 다짐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현재에 당신이 찾아올 수 없거들랑 이것을 전부 다 알리시옵소서. 깊은 마음 가운데 당신이 생명의 인연으로서 좌정하시옵고 임재하시옵소서. 저희의 일체를 주관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이 일대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인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저희는 온유겸손한 어린애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숭이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품을 떠날 수 없는 진정한 적자가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가 눈물을 짓는 것도 부모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처음 눈물짓지 못한 이 한스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만민의 기쁨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눈물로써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웃는 것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어야 할 텐데 불구하고 세상 사탄세계의 인연을 대하여 웃던 저희 들이었사옵니다. 이제 이것을 박차고 아버지를 향하여 웃을 수 있고 그 웃는 것을 대할 수 있는 어버이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희노애락을 당신과 더불어 같이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부족한 소자들의 마음이오니, 아버지여, 찾아와 주시옵소서.
험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그 누구도 지켜 줄 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렇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탄세계가, 원수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고독해도 고독한 모양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엇갈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에게는 이를 악물고 극복할 책임이 있습니다. 망해서는 안 될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위신과 하늘의 처지와 하늘의 체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자신들은 언제나 언제나 약한 자리에, 언제나 언제나 주저하는 자리에, 언제나 언제나 후퇴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진! 전진! 전진! 죽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들이 과연 과연 하늘의 아들이라고 마을 마을을 통하여 기억에 증거를 남기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1972년도 막바지에 처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갈 길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지도자는 그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엇갈리는 이런 실정 가운데 있어서 참의 길을 모색하여 아버님을 시봉할 수 있는 무리가 이 땅 위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남한 땅에서도 북한 땅에서도 당신을 대신하여 설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악과선이 교차되는 현시점에 있어서, 선이 선 될 수 있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님이 이끌어 가고 대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갖 정성과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다 바쳐야 할 이때인 것을 각자가 새로이 명심하여 이때를 놓치는 무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땅 위에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고 왔다 갔던 수많은 애혼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수많은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가 희생된 무리들이 있사오니,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한 나라의 충신으로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 되어 간 사람도 많사오니. 이날 이 아침에 그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사사로운 생활 가운데서 선을 지지하다가 이 땅 위의 생애를 마치고 간 수많은 백성들이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계에서부터 땅까지, 수많은 영인들로부터 후손까지 해방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위로부터 풀지 않고는 아래가 풀릴래야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땅 위에서 풀어 주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 갔던 의에 속하는 반열에 섰던 수많은 무리들을, 아버지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공인된 길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서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영계에서 통일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영인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의 공덕을 치하하여 주시옵소서, 땅을 대신하여 협조하는 모든 것이 당신의 영광의 터전 앞에 자랑이 되고 당신의 마음 가운데 감사의 조건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 땅 위에서 충성하는 이상으로 충성하거든 그들도 동참할 수 있는 혜택된 내에 참석시켜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1972년도에는 이 땅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을 규합하여 지상에 새로운 대열로 포진을 시키고 이북을 향하여 악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아버지의 권고와 지휘가 같이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래지 않은 날을 남기고 저희들이 나뉘어지는 그런 시간이 오더라도 당신의 뜻과 당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변치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늘과의 인연을 높일 줄 알고 심정의 깊은 곳에서 하늘과 더불어 맺을 수 있는 사연을 지니는 무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나야 할 무리, 또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 그들이 하늘을 중심삼고 기쁠 수 있는 내적 인연을 세계 앞에 옮겨 주기 위하여 만나고 헤어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일을 치르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협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뜻을 세계에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각자 개인 개인의 모습을 바라보시고 그 이름을 불러 소명을 하시사 남기신 민족적 사명 앞에, 남기신 복귀의 세계 앞에 부끄러움의 자리에서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고, 당신의 칭찬과 자랑과 사랑을 직접 받는 영광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맡으시옵소서. 1972년도의 후반기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처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우리 개인들의 일생을 총망라해 보게 될 때, 참된 일, 혹은 참된 사정, 혹은 참된 생활이 얼마나 있었느냐 할 때, 많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참된 일이 얼마나 있었느냐? 혹은 일년에, 혹은 십년에, 일생에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것을 따지고 묻게 된다면, 일생에 있어서 , 그야말로 몇 시간, 혹은 몇 개월이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결과가 나타나게 되면 기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기쁜 생활을 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느누구든지 나는 기쁘게 산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슬픈 자리에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슬픔이 결국은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길과 내가 바라는 길과 하나된 자리가 아니라, 그 길과 반대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슬픈 그 자리는 결국은 괴로운 자리요, 그 자리는 악과 통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생애를 놓고 볼 때, 내가 기쁨과 혹은 참됨과 선한 자리에 얼마나 서서 살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살았다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잠깐, 지나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리를 잡아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가지와 잎을 내어‘나는 이렇게 무성하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가정도 없는 것이요. 그런 씨족, 민족도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것이 인류가 아니 더냐. 그 인류로 형성된 것이 국가가 아니더냐. 그 국가들로 이루어 놓은 것이 현재, 2대 조류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딪치고 있는 이 세계 정세가 아니더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세계를 악한 세계라고 전체적으로 결론지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계는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결국은 타락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가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을 보면 창세기에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조상이 타락한 조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조상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부모가 생겨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이 생겨났기 때문에 타락한 자녀와 타락한 씨족, 타락한 민족, 타락한 국가와 세계가 자연히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세계는 불행한 세계요, 죄악된 세계요, 타락한 세계입니다.
타락했다는 명사 그 자체가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냐. 정상적인 자리에 있지 못하다는 말이 아니냐. 그러면, 떨어지는 데 있어서는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높은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과 지극히 반대되는 제일 낮은 곳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물건이 떨어지게 되면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깊다 하더라도 모래 한 알이 떨어지게 되면 그 물을 뚫고 맨 밑창, 깊은 곳에 떨어져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지면 제일 깊은 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제일 높은 하늘이기 때문에 거기에 반대되는 제일 깊은 곳에 떨어질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떨어진 거리를 두고 볼 때에 우리가 바라는 제 1단계의 소원은 어디가 될 것이냐? 태평양 바다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떨어진 돌의 희망의 출발 기점을 찾는다면 그 곳은 물과 접하는 경계선일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 인간으로서 소원할 수 있는 것은 뭐냐? 인간이 어디에 소망을 두고 가다가 미치지 못하고 떨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소망의 출발점은 어디냐 하면, 그 떨어지기 직전의 선입니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이 인간의 소망으로서 바랄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 점을 바라보고 가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점을 다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운명에 놓여진 것이 타락한 인간의 정상이요, 세계 인류가 가야 할 사정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은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타락선을 넘는 데서부터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인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진 우리가 자체적으로 올라갈 수 있겠느냐? 자체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좋겠지만 우리 자체들로서는, 떨어진 자체들로서는 다시는 올라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떨어진 자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대로 끌어 주는 힘을 갖추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땅이 솟구쳐 올라오든가,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가 나서서 반대로 끌어 주는 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땅이 솟구쳐 올라오는 천지의 대변동이 있기 전에는 그 떨어진 구렁텅이에서 본연의 자리를 찾아 올라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떨어진 인간들을 보고 있는 어떤 한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이 떨어진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자기가 넉넉히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구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람을 건져 주고 난 후에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손해난다면 안 구해 주는 것입니다. 구해 줄래야 구해 줄 수 없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냐. 구해 주되, 그 떨어진 자가 구해 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소망의 내적 이익을 줄 수 있다면 건져 줄 수 있는 길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더라도 구해 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인류가 아니겠느냐. 우리 인간들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될 때, 그런 것이 내가 아니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내 갈 길은 어디냐,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어디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옆으로 돌아가고 옮겨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태평양 바다 가운데서 이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이동하나마나 한 것과 마찬가지의 움직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생의 갈 길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갈 길에 있어서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옆으로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왕래하더라도 그 사람의 갈 길은 절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운세에 사로잡힐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를 떠나서 도약을 하는 것입니다. 비약을 하는 것입니다.
비약을 하는 데는 각도가 좋아야 된다 이겁니다. 어떤 각도를 가지고 무한히 반대의 길로 솟구쳐 올라가는 길밖에 없지 않느냐. 솟구쳐 올라 가는 데는 한 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동으로 각도를 갖추어 솟구쳐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서로 북으로 남으로 자기 나름대로 방향을 갖추어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태만상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동서남북, 사방을 중심삼고 보면 360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평면적보다도 더 많은 각도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차이에 의해 자기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며 여기서 도약, 혹은 비약하여 해방을 맞기를 고대하고 있는 인간들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도 그 어떤 분야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어떠한 각도를 향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인간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뭔가, 스스로도 모르지만 해방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사로잡힌 자기의 인생고에 부대껴 가지고 그것을 초월하고, 거기에서 해방할 수 있는 한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한 것이 역사이래의 인간상이 아니었더냐. 그 인간상 가운데서 내가 나를 중요시하고 나를 빼놓고는 전체의 가치를 시인하려 하지 않는 그런 자신을 두고 볼 때에, 이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자리와 가야 할 길이 어디겠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떨어져 있습니까? 거기에는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선한 조상도 있고 악한 조상도 있기 때문에, 역사 이래 제일 악한 조상이라면 제일 깊은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역사이래 제일 선한 조상이라면, 그 조상들의 죽은 사체가 혹은 뼈가 쌓이고 쌓여 그것이 높아져 가지고 하나의 터전으로 남겨졌으면 그 위에 태어난 조상은 선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조상은 그 뼈라도 천지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주인이 있다든가 혹은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의 무덤은 바라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의 행적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 할진대는, 악한 사람의 무덤이라든가 악한 사람의 그 무엇은 남기고 싶어하지 않고 없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맨 밑창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하 고저의 차이에 있어서 천태만상의 이런 배경과 역사적 인연을 남기고 있고 또 그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고로 수많은 인간들이 참을 추구하고, 공의를 추구하고,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전체를 위해서 자기가 빚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무엇때문이냐? 남에게 줘라, 남에게 이익을 줘라, 빛을 지고 남에게 보탬을 줘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은 자기가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평으로 본다면 자기가 높고 낮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입장에 선 인간이 왜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느냐? 결국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갑이라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되었으면 갑이 라는 사람이 나를 기억해 주게 됩니다. 기억해 준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줄로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을이라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협조했다면 그와 나 사이에 줄을 걸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귀한 것일수록 입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덜 가치 있는 것, 덜 귀한 것,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절대 선한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올라가야 할 운명 길 앞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귀중히 여기는 것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 높은 곳에 있는 좋은 것을 주게 되면 그 높은 인연을 중심삼고 얽어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면 상대가 많기 때문에, 나는 모르지만 상대의 수많은 선한 조상들이 그 후손들을 협조하기 때문에,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조상들이 후손을 협조해 주는 자리에 서면 나는 그 높은 자리에 있는 후손과 줄을 맨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이 이동하게 되면 자연히 나는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무엇을 바라 가지고 하라고 하는 것이냐 하면 내가 높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향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색하기 위해 허덕이는 인간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내가 쓰다 남은 좋지 않은 것을 주면 그것은 도리어 밑창과 인연맺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빛을 지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희생을 하는 사람은 좋게 된다는 것이 막연하나마,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막연하나마 오늘날 인륜 도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률적으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 있고 교양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떨어진 자리에서 보다 높은 한 점을 바라고 있어 하늘은 불가피하게 그런 것을 일대일의 자리에서 세밀하게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암암리에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이 오늘날 선을 행하라는, 적선하라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다 남은 것을. 내가 못 쓸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결국 받는 사람이 그것을 진정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게 되면 나를 끌어다가 밑창으로 떨어뜨리는 하나의 조건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오늘날 종교, 혹은 도의 세계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현시점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좋은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누가 제일 좋은 선생이냐? 아무리 지식이 많아 가지고 입으로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는 일등이라 해도, 행동이나 인격에 있어서는 도저히 본받을 수 없는 선생이 있다면 그 선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은 듣지만 돌아서서는 비웃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스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 자기 부모에 대해서도,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부모가 있는데 그 부모가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그 진정은 하늘과 거리가 가까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지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훌륭한 스승을 바라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영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하늘을 대표한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면 그런 지도자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상에는 우리 인간이 원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있는 한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를 넘은 훌륭한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그 시대에 지시하고, 가르침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시대에 어떤 나라에도 있어 온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더라도 좋은 친구, 아들딸을 갖더라도 좋은 아들딸, 남녀가 결혼을 하는 데도 좋은 남편과 좋은 아내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좋은 것을 찾습니다. 좋은 것은 무엇과 통해요? 참과 통하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을 갖추지 않으면 참된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참을 바라는 그 마음은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과 일치되는 것을 우리는 생활 주변을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역사상에 왔다 갔던 최대의 지도자는 누구냐? 나라를 대표해서는 애국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이순신 장군' 하게 되면, 그는 우리 민족이 추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애국자로 추대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지만 그분이 나라는 사랑했지만 세계로 사랑했느냐? 애국자는 되었지만 위인과 성현의 반열에는…. 대한민국의 애국자의 대표는 되지만 인류의 대표자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애국자란 난시, 환란시대를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평화시대에는 애국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운명에 부딪쳐 가지고, 적국이 나라를 삼키려 하는 그런 상대적인 시대에 부딪쳐 가지고 그 삼키려는 적을 쳐서 굴복시키는 자리에서, 그것을 퇴치하는 승리의 기반을 닦은 데서 비로소 애국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간신들이 날뛰는 환경을 청산한 그러한 자리에서 애국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적과 싸워 가지고 승리한 그 자리에서 애국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한 나라의 애국자는 적국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순신 장군이 한국에서는 애국자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애국자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전부 다 일본 사람들보다 나으냐 할 때, 그렇다는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나쁜 사람들보다도 일본의 좋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엇갈려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국자가 필요하냐, 성인이 필요하냐? 성인은 무엇이냐? 한 나라의 애국자는 그 나라의 최후의 운명을 중심삼고 싸운 자요, 성인은 한 시대에 한 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고 세계를 위해서 싸운 사람인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싸운 것만 가지고 인류 앞에 성인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성인이 되려면 하늘을 위해서 싸운 사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대표해서 하늘을 위해 싸운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그것은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온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온 세계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하늘을 붙들고 싸우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사람은 역사시대에 남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존재요, 하늘이 있다면 하늘이 일정해야 할 필연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사상을 통하여 혹은 행적을 통하여 좋은 것을 찾고 있는, 그 어떠한 좋은 친구보다도 좋은 스승보다도 좋은 애국자보다도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는, 인류를 대표한 세계의 위인보다도 그것을 넘어서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역사를 지닌 하늘이 있다면 하늘의 전역사시대를 대표한 하나의 참된 주인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들의 필연적인 욕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그런 자를 역사시대의 대표자로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 지도자가 종교 지도자로서만 서 있는 것이 아니고,성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성인하게 되면 4대 성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무슨 성인이냐? 그분이 땅 위에 와 가지고 30평생 사는 동안에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행사를 해봤어요? 대전쟁에 나가서 총칼을 들어 가지고 승리의 권위를 세워 봤어요? 이건 나면서부터 고생을 말할 수 없이 했습니다. 3년 공생애 노정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그 시간부터 쫓겼던 사람입니다. 이 마을에서 쫓기면 저 마을로 쫓기며 방랑하던 처랑한 사나이가 아니냐. 그러다가 민족 앞에 몰리고, 유대교 앞에 몰리고,로마 앞에 밀려 가지고 갈 수 없는 길인 죽음의 길을 자처해 가지 않았느냐.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같으면 도망갈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한 것을 보면, 내 뜻과 하늘의 뜻이 엇갈린 자리에서 하늘의 뜻을 중요시했다는 데 있어서, 어떤 성인보다도 보람이 있는 그런 내적인 세계를 관찰하고 갔던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늘의 뜻대로 한 것은, 이것은 인간을 대표한 자리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자리가 아니요. 유대교를 대표한 자리도 아니요. 로마를 대표한 자리도 아닙니다. 그런 자리에 서면 상치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대표한 입장에서 그들의 편이 되면 하늘 앞에 반대되는 것이요, 하늘의 편이 되면 그들 앞에 반대될 것이기 때문에 이 엇갈리는 둘 사이에 있어서 공의의 판단을 내려 가지고 결정해야 하는 길, 그것을 판단하는 싸움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아니었더냐.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내 뜻이라는 것은 인간이 망할 수 있는, 타락한 세계의 인류를 대표한 공통적인 마음의 자세였지만, 여기서 당신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의 아직 나타나지 않은 뜻이요, 내 뜻은 이미 지나온 뜻으로서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뜻 기준 전부를 이를 수 없는, 망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운명에 몰린 환경을 붙들고 슬퍼하면서 죽음길을 자처한 것이 아니요, 자기의 생애를 정비하고 나서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더라도 당신의 뜻을 정비하여 내 생애의 터전 위에 남기고 가야 된다는 필생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그 뜻을 심기 위해서 간 것이 십자가의 길이 아니냐.
결국 예수님이 피를 흘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심기 위한 것이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뜻을 심어 가지고 그것이 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잎이 퍼져서 온 세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심어 놓았기 때문에, 하늘은 그 생명의 씨가 동기가 된 사상과 더불어 세계적인 발전을 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동기로 말미암아 세워진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안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인들은 어떤 무리냐?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4대 성인 하게 되면 예수님도 포함되는데,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냐? 나라를 위해서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정치를 위해서, 그 나라를 수습하기 위해서 미친 사람이 아니라구요. 무엇에 미쳐서 죽음길을 갔느냐? 하늘을 위해서, 나타나지 않는 미래의 이상세계를 향해서 미쳐 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가정뿐만이 아니라 나라도 버렸고, 교회도 버렸고, 그 시대에 출세할 수 있는 제반 요건을 다 버렸습니다. 버린 것은 그보다 못한 것을 찾기 위해서 버린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버린 것입니다. 그는 올라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떨어져 내려가기 위해서 죽어간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것은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과 하늘이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일치될 수 있는, 어떤 접촉점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한 때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세계적으로 접촉하는 끝날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망의 세계의 끝날입니다. 자기를 채찍질하던 모든 원수들의 최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는 서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이 지나간 다음에 선이 행사하는 것입니다. 악과 더불어 행사하기 위한 선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선과 악은 언제나 싸워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격자가 되려면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디 땅 때리면 당장에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로 대꾸하는 것이, 즉 일대일이 아니라 몇 대 일로써 응수하는 것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는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선한 사람은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라는 거예요.
성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고 석가모니도 그렇습니다. 석가모니는 자기가 살던 왕국을 버리고 나선, 하늘의 고독의 세계를 자처하고 나선 그런 사나이가 아니었더냐, 다 버리고 나섰던 것입니다.
공자도 역시 노나라 시대에 있어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희망과 소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구요. 절망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념적인 어떤 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래의 세계는 이래야 된다는 국가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 아니냐. 인간이 갈 수 있는 인도 (人道)의 기준은 이래야 된다는, 인륜 도덕을 중심삼고 삼강오륜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그 기원을 찾았던 사람이 아니냐. 그 시대에 처해 가지고 그 시대와 더불어 박자를 맞추어 가지고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초월하고 그 환경을 극복해 가지고 내일의 보다 가치적이고 보람있는 인생길을 추구하기 위해서 환경에 몰리면서도 싸워 나갔던 사람이 아니냐. 그것이 유도(儒道), 유교라는 것입니다.
마호메트 같은 양반도 종교 지도자라구요. 종교 지도자. 그것이 이상하다구요. 철인(哲人) 소크라테스는 성인에 들어가지 못해요. 철인이라구요, 철인. 철인은 진리를 가르쳐 주는 거라구요. 생명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철학이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죽을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옮겨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인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되려면 생명 문제, 인간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양면의 기로에서 있는 인간을 살려 준다는 결정적인 책임을 지고 나선 사람이 아니고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인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위로부터 줄을 내려 가지고 끌어 올리는 사람하고 그렇지 않으면 받들어 올리는 사람,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끌어 올리려면 하늘로부터 줄을 달고 와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줄, 줄, 이걸 잡아라’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깊은 데 들어가 가지고 ‘너는 나를 타고 올라가라‘고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양면의 사상을 갖고 나오지 않은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타당한 것입니다. 당연한 결론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그런 면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를 바라보아라' 하는 것입니다. ‘아래를 바라보아라’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희생해라. 깊은 데로 들어가라’하는 것입니다. ‘참아라. 전부 다 밟혀라. 밟혀라, 밟혀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밟히는 자리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꾸 들어가다 보니 그것이 땅에서 솟구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뼈가 고임돌이 되어 가지고 그 뼈로 쌓여진 축대가 이 수면을 들고 나오게 될 때, 해방의 한 날이 올 것이 아니냐. 하늘이 있다면 그 두 길밖에는 모색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버리고 미래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도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인간에게 필연적인 교훈은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한 길 한 길 나누어 갈 것이 아니라 두 길을 한꺼번에 가는 것이 더 이상적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그 두 길을 한꺼번에 가기 위할 길을 가르쳐 줘야 되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하늘을 절대 붙들어라’한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큰일이라구요. 그것만 붙들면 사는 것입니다. 하나의 해방을 위해서는 전부가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를 서로 붙들겠다고 주위에 있는 사람이 싸우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붙들고 싸우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종교끼리 싸우는 권내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네가 꽉 붙들고 있거라. 내가 고임돌이 되어 주마’하고 서로 밑창에 들러가겠다고 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러한 양면의 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붙들었지만 인류를 대신해서 내가 고임돌이 되어 가지고 땅에 들어간다’해 가지고 인류를 등에 업고 올려 주면서 ‘하늘이여! 나를 사랑한다면 이것을 끌어올려야 됩니다’이런 작전을 하기 위한 대표자로 왔다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을 위한 대표자요, 인간을 해방하려는 하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요, 인간의 해방을 촉구하는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왔기 때문에, 인간은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표준형이었기 때문에 역사상에 그의 교훈이 세계의 문화사를 움직이게 된 것이 야니냐.
세기말적인 세계 정세를 앞에 놓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내가 가야할 필생의 운명길이 어디냐 할 때,‘나 모른다'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지에는 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무지는 파탄입니다. 그것은 항로를 모르고 대양을 달리는 배와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에 나타난 물결은 마찬가지라고 가는 대로 가다가는 파탄되게 마련입니다. 키를 잡아 가지고 항로를 가려 가면서 전진하는 데 있어서 그 전진하는 것만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항로를 바로 보고 항구가 가까와지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정상적인 선장이 아니냐. 현재 잘 움직인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다간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대한민국이여,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내가 그런 운명에 서지 않았느냐. 이 입장이 우리의 인생길인 것을 생각할 때, 인생길은 그야말로 비참한 길이요, 그야말로 고해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말은 타당한 말이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붙들어야 되겠다 이겁니다. 하늘을 붙들고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육천년 동안 떨어진 이 구렁텅이를 올라가려면 혼자의 힘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난한 자리에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늘이여, 원하거든 이 땅이 솟구쳐 가지고 이 대양을 뚫고 나올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다시 말하면‘이 세상이 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도 바라는 소원이요,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류의 소원이기 때문에 인류 앞에는 반드시 끝날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끝날은 뭐냐 하면 수평선상에 하나의 섬이 나타나는 때일 것입니다. 섬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그 때가 끝날일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이 아니라 특수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때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하늘을 대표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처음 찾아올 것이요, 또 땅을 대표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처음 찾아올 것입니다. 그 자리가 뭐냐? 성경에서 말한 대로, 하늘을 대표한 남자는 신랑이요. 땅을 대표한 여자는 신부이기 때문에 그러한 신랑과 신부가 상봉하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할 때, 그거 참 그럴 듯한 결론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간 후에 하늘로 올라갔고, 선신은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땅에 온 성신의 목적이 비로소 종착점을 결하는 것이요, 올라갔던 그분이 올라가 이루어 가지고 올 수 있는 상봉의 순간이 재림의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재림사상이 아니냐? 메시아가 땅 위에 현현하는 때가 그 목적점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인간들이 구상했던 철학도 아니요, 그 어떤 인생관도 아닙니다. 하나님 플러스 인간, 신인(神人), 신인(神人) 삶의 길, 신인 생활관입니다. 인생관도 마찬가지로 신인 인생관, 신인 세계관, 그것이 통일된…. 그것이 막연하게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사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떨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떨어질 수 없었던 자리 이상의 자리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인(神人)이 하나된 생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의 종착점은 어디냐? 인간의 지성,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학적인 기반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이것이 내적인 면에서 일치점을 가지고 인간의 지식을 포괄할 수 있는 신학의 결론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최고의 지혜가 무엇이냐 할 때에, 하나님도 인격적 신이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소망이 있음과 동시에 사정이 있을 것이고, 심정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문제 세 가지를 뽑는다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아! 그 사람은 사정이 나와 같아’그러면 통하지요?‘아! 나와 심정이 같다’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아!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야’거기서부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과 사정과 심정, 이것은 인격을 가진 인간과 하나님과의 공통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정을 넘어서 신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심정을 넘어서 신의 심정을 가지고 일치되어야 되고 인간의 소원을 넘어서 신의 소원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 땅에 왔다 갔던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안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은‘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했던 것입니다. 달랐다구요.‘제 사정은 비참하지만 당신의 사정대로 하시옵소서, 제 심정은 비참한 길을 가기 싫지만, 당신이 원하는 심정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한 심정이기 때문에 나 하나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이 일체화한 인생관과 세계관과 심정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생활은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것이요, 생애는 소망을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요. 심정은 비로소 소망과 생활이 하나된 본보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냐? 소망을 상징하는 것이요, 소망은 무엇이냐?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소망을 중심삼고 뜻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요, 그것은 사정이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그래서 모든 것은 다 지나가더라도 그 중에 제일인 사랑은 남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인류세계가 바라는 희망의 세계는 지식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라 사랑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상의 세계도 아니요, 인격의 세계도 아니요, 사랑의 세계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神人)을 중심삼은 심정적 세계가 일치된 세계는 하늘이자 땅이요, 땅이자 하늘이요, 위가 아래가 돼도 좋고, 아래가 위가 돼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 위가 아래가 되면 큰일난다구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하나 안 되어 가지고 어머니가 위로 올라가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야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 기준에서는 상하가 엇바뀌어도 그것은 통일입니다. 만일 위가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그것은 아래를 위로 올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내려가는 것은 어머니가 내려간 것을 올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 내려오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잡아당겨 주는 것입니다. 올려 주고 잡아당기고 하며 여기서 돌아가기 때문에 영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자 고착된 점에서는 영원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칠판에 쓴 제목이‘참된 영광의 길' 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인간이 그리는 최후의 갈 길이 어디냐? 그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운명길에 놓여 있는데 내가 갈 수 있는 영광의 길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제 죽음으로 일방이 결정된 그런 운명에 처해서 신음하고 있는 내가 위로부터 하나의 줄이라도 탈 때는, 그 순간은 영광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광된 시간입니다. 이것을 내가 바랐다면 바라던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기뻐할 순간이 아니냐. 만약에 바라지 않았는데도 그런 길이 있다면, 그 줄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 것이냐? 그것은 바라지 않았던 사람도 기쁠 것이요, 바랐던 사람은 더 기쁠 것이 아니겠느냐. 그 영광의 길은 어떤 것이냐? 신음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바라는 길입니다. 전부 다 기쁨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아니냐. 그 길을 찾는 순간은 영광된 순간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영광의 순간을 붙드는 데도‘아이쿠 내 손에 힘이 없어’하게 되면 아무리 영광의 길이 왔더라도,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더라도 영광의 길을 거쳐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줄이 있다면 그 줄을 붙들 뿐만아니라 그 줄에다 목이든 다리든 꽁꽁 얽어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얽어매기만 해 가지고 되느냐? 되지 않습니다. 얽어맸더라도 누가 위에서 당겨 줘야 되는데 만일 위에서 당겨 주지 않으면, 옆에서 당겨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함받는 데 있어서 세 사람이 한꺼번에 구함받겠다고 하면, 세 사람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 구함받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사람은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참으로 이치적인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라는 말은 누구를 중심삼고 한 말입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까? 삼위일체란 뭘 하기 위한 것이냐? 인간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그 자체를 중심삼고 하늘은 꼭대기에 있고 나는 그 줄을 붙들고 있는데, 하늘이 안 당기게 되면…. 하늘이 꼭대기에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줄을 걸어 붙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줄을 당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의 자리에 처해 있는 운명을 대신 책임질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자리를 전부 책임질 수 있게끔 되어 가지고 전부 다‘내가 끌어올릴 수 있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끌어올리려면 현재의 입장을 책임지고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희생이 없어 가지고는 한쪽이 올라갈 수 있다?「없다」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비참한 운명에…. 그럴 수 있는 줄이 있으면 그 줄만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줄 대신 수평선을 중심삼고 하나의 육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요렇게 올라갔다가 이렇게 떨어지기를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 줄을 붙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다가 쓰러지면 그때 하나님이‘야! 요녀석아 너 제발 망해라’하겠어요? 고생 고생하다가 남편이 쓰러지면 부인이 해주었으면, 부인이 쓰러지면 그 손자가 해주었으면, 그 손자가 쓰러지면 후손이 해주었으면, 후손이 없으면 나라 사람이 해주었으면, 그 나라가 없으면 세계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이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역사시대의 희망봉입니다. 틀림없이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왔다면 그것은 인류의 소망이요,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그 소식은 복된 소식이 아니냐. 기독교를 중심삼고 그 소리는 복된 소리예요, 망할 소리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물론 우리 선조도 물론이요. 수천만 대의 인류가 고대하던 메시아가 왔다니 그 얼마나 복된 사실이냐.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라는 말 자체는 죽어도 그 말이 좋은 것이요, 살아도 그 말이 좋은 것입니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는 말은 망해도 좋고 흥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한국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아이구 좋아 죽겠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보면, 한국 민족이 지지리 망할 민족이 아니면 반대로 지지리 흥할 수 있는 국민이라는 뜻입니다. 한국말을 보면‘아이구! 이 문둥아, 너 어디 있었니, 반가와 죽겠구나’하는데, 좋아 죽겠다니 이게 무슨 말이예요? 좋아 죽겠다니. 왜 듣기만 해도 끔직하게 죽겠다는 말을 붙이고 다니느냐? 이렇게 보면 좋은 것의 이면에는 반드시 나쁜 면이 있다는, 양면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국말을 보면‘그런데 말이야, 이렇고 저런데 말이야’합니다. 왜 그렇게 마리아를 불러?(웃음)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로 볼 때, 예수 어머니 마리아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해서‘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한 것은 당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뭐? 유대 나라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천만에 어머니가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지‘말이야, 말이야’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이 망하지 않으려면‘그런데 말이야, 너하고 나하고 말이야’하면서 좋은 마리아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웃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동양 일대의…. 일본말도 그렇지만 형용사는 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휘청휘청’'깜빡 깜빡’‘똘똘’‘딸랑딸랑’이렇게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 그래요? 딸딸 굴러간다, 껄껄 웃는다 펄럭펄럭 날린다. 그렇지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가을바람이 솔솔 분다. 이런 등등….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말이예요. 좋아도 울고 나빠도 웁니다. 그렇죠? 좋아도 눈물이 난다구요. 웃어 보라구요. 눈물이 나나 안 나나, 좋아서 눈물이 나오게 되면‘야 이놈의 눈물아,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해도 자꾸 눈물이 나온다구요. 그런 것을 느껴 봐요. 좋은 것이 얼마나 좋더냐? 눈물이 나 죽기만큼 좋더라.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세계는 원형이라구요. 돌아가는 운세니, 끝과 시작은 같은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접촉선에 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좋아도 죽겠다고 하는 것이고, 나빠도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극단과 통할 수 있는 것을 구비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한국 민족이지만 소망이라도 가져 보라구요. 문선생이 거짓말 하더라도….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싸워 나가면 성공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좋게 되어 있다구요.
자, 그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에 그런 분이 나오려면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 동안을 정성들인다고 해서 그 길 갈수 있다고 생각해요? 십년도 그만, 백년도 그만, 천년도 그만, 몇 만년도 그만, 꾸준히 하나의 사상이 역사시대의 통일된 사상으로서 고임돌을 고여 나온 인연을 가진 곳일수록 높아질 수 있는 곳이 되기 때문에, 세계의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면에 이 땅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는 죽어도 가겠습니다’하는 순교의 선혈을 많이 뿌린 종교가 세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어떠한 종교냐 할 때, 그것은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뭐 통일교회가 기독교에서 생겼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는 아담 해와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딴 종교는 아담 해와가 없습니다. 인류 시조부터 들고 나오지 않습니다. 불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불교는 모든 법을 중요시합니다. 유교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회회교는 종교정치의 이념을 갖고 나오고 있습니다. 조상에 대해 가지고 뿌리에 대해 가지고 그렇게 악착스럽게 나쁜 말을 하는 패들은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건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구요. 그렇잖아요? 그걸 보면 조상을 들추어 내서 좌지우지해 나오는 패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기독교 외에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 역사 가운데 있어서 슬픈 사실을 원망하기 시작한 오랜 역사적 전통을 어떤 종교가 가졌느냐 할 때, 유대교를 거쳐 나왔지만 그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있다면 기독교는 세계 종말시대에 있어서 세계에 추앙받는 종교문화권을 형성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명실공히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승리한 예수님으로서 승천했느냐 할 때, 승리하지 못하고 승천했습니다. 살아서 승천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죽어서 승천했습니다. 예수님이‘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또 가룟 유다에게‘네가 나지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이런 부정적인 요건을 심각한 자리에서 남긴 것을 볼 때에, 그는 영광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길을 갔느냐 할 때에, 예수님은 영광의 길을 가기 위해서 왔지만 어떤 길을 갔느냐?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수난길을 갔습니다. 뜻을 이룰 수 있는 해방의 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갈 길만을 추구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된 희망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끊고 십자가의 길을 간 사람이 예수입니다.
그러면 참된 영광의 길은 어떻게 되었느냐? 남기고 갔기 때문에 다시 오셔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참된 영광의 길로서 남아지는 때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십자가의 길이 일방통행으로서만 될 것이냐 할 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박차고 영광의 길로써 혁신하고 비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통일교회일지도 모릅니다. 기성교회에서 온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 보아서 결과가 그래요.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고 영광의 길을 나서야 할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보다 더 지독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 여러분들도 그럴 거라구요. 우리 처녀 총각들,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너보다 백 배 나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 천 배 못한 아들딸을 낳고 싶어?' 하게 되면, 천 배 아니라 몇억만 배라 해도 나쁜 것은 싫지요? 그렇지요? '만배 나쁜 아들 낳을 거야, 만 배보다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을 거야? 하면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기를 원한다구요. 영점 영영영 일이라도 원하는 거라구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원한다구요.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랍니다. 그건 인간의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가 잘났으면 그 아들딸은 잘나야 되겠어요, 못나야 되겠어요? 못나게 되면 그 집 망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잘살려면, 세계의 뜻을 품고 예수님이 승리한 기반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면 됩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예수님이 밀알이 되어 죽어 심어 놨으면 그 심었던 본래의 밀알보다 많이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간 예수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종교의 길이냐?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것을 좋아했더냐? 그것은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왜? 나라도 몰아넣고, 4천년 동안 준비한 유대교도 몰아넣고, 세례 요한도 십자가의 길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몰아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괜히 집을 나가 가지고 3년 공생애를 지낸 줄 알아요? 여러분이 갈릴리 바닷가엘 가보라구요,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토굴은 너무나 좋아요. 못난 어부들 형편없는 패들입니다. 사도니 뭐니 이름을 붙여 왔기 때문에 그렇지. 형편없는 패들이었습니다. 2천년 후인 오늘날에도 어부한테 시집갈래, 노동자한테 시집갈래 물어보면 노동자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처녀들의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2천년 전의 어부가 형편이 있었겠어요? 형편 없는 패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몰려다니다가 어쩌다 저쩌다 저녁밥을 얻어먹게 되어 가지고, 인연이 되어 가지고, 그들이 박대하지 않으니 그 집에 머무르게 되어 가지고 신세를 갚아야 할 예수는 할수없이 그들을 데리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잘살기를 바라고 따라다녔지 예수님이 바라는 천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래서 번번이 부딪친 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정이 아니냐.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좋더냐? 천만에요, 보라구요. 그를 나라가 차 버렸고, 교회도 차 버렸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다 불신한 자리에 섰습니다. 다 저버린 자리에 섰다구요. 예수님하고 3년 동안 같이 먹고 살고 욕도 같이 먹었던 이 패거리들 전부 다 나중에는 ‘아이쿠, 우리 선생님 저럴 줄 몰랐구만', 뭐 영광된 주로서 나라와 세계를 가질 수 있고 로마제국도 수중에 넣어 가지고 들이 때려부술 줄 알았는데, 형편이 무언지경이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죽을 줄 몰랐다'고 하며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기 바빴다구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가 십자가의 길을 갈 때 누가 따라갔어요? 따라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습니다. 없어요. 그래 따라가고 싶어요? 그 길을 따라가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지지리 고생하고 망해야 됩니다. 예수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지만 천당가기 전에 망해야 됩니다. 망하고 나서 하나님이 동정하게 되면 천당가는 것입니다. 동정 안 하면 천당도 못 간다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천당간 비법이 뭐냐?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 것 때문입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나는 하나님 믿고 천당가기 위한 것이 소원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옥을 보내도 좋습니다’하는 뜻입니다. 그 말 아니예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했으니‘지옥을 보내도 나는 달게 가겠소’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었습니다. 천당가기 전에 지옥가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3일간 어디 갔었어요? 지옥갔었습니다. ‘내 뜻대로 말고 당신의 뜻대로 하라' 고 했으니 내 뜻대로 지옥 보내겠다 해서 지옥 보냈습니다. 지옥 보냈는데도 3일 동안 불평이 없으니‘어 그 녀석 쓸만하다. 나와라’그래 가지고 3일 만에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뭐 이렇게 말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례한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에게 물어 보세요.
만일 지옥가 가지고‘하나님, 나 이럴 줄 몰랐어요. 천국갈 줄 알았는데 지옥이 웬말이오?' 하고 야단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그런 사람 건져 주긴 뭘 건져 주겠어요. 부활이 무슨 부활이겠어요. 영영 그것으로 쓰러지고 말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아보니까 그렇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 절대 천당 못 갑니다. 못 갑니다. 죽어 보라구요. 한다 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가 만나 보세요. 어디에 가 있나? 그런 무리는 자기로부터 출발한 거라구요.
천륜의 본의는 내가 잘되기 위한 자리에서, 잘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망하는 자리에서 출발했어요. 망한 그 자리에서 출발했는데 그것을 그냥 계승받으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 목사들,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됐지만 말이예요. 혼자 정통이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누가 정통이라고 이마에 써 붙였어?(웃음) 좋은 것 있으면 그것을 내 것이다! 하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러지 않는다구요.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에서 목사들하고 한 번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수히 맞고 끙끙거리면서도 가만히 있으니 동네 북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웃음) 천만에요. 그들 모양으로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그걸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의 종말은 뭐이냐? 살고자 하는 자는?「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복받으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예수님 믿고 죽고 난 후에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이 될 수 있습니다. 영광의 길은 죽고 난 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는 뭐하자는 것이냐? 죽어갈 길을 살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백 번 죽을 수 있는 길을 극복해 나가야 죽지 않고 한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제자들하고 기독교인들하고 임자네들하고 누가 예수님에게 가까울 것 같아요?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을 따라 다니던 패들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목사패들을 볼 때 말만 듣고….
성경은 뭐냐하면 예수님이 죽은 후에 다 뭐 불 때 가지고 꿩을 구워 먹은 뒤에 고기덩이는 하나도 없는 잿더미를 긁어 모아 가지고 편집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좋아했어요? 오병이어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하는 등등을 봐 가지고 하늘의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하늘땅이 삐거덕 뿔구덕뿔구덕 뒤넘이치는 것이 다 보이는 판국에 있던 사도들하고 오늘날 그 말만 듣고 믿는 목사들하고 어느 쪽이 예수 앞에 더 가깝겠어요?
내가 감옥에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전국에 총회장을 해먹었던 목사가 감옥에 들어와 젊은이들한테 비판받아 가지고 밥 목사라고 골리게 되니 나중에는‘문선생!' 왜요? ‘하나님 없는 것 같아요’(웃음)‘하나님보다 밥이 실감 난다는 거예요?’(웃음) ‘그건 그렇지요’그런 놀음을 한 것이 엊그제 같아요.
사위가 한 사건에 연루되어 목사인 장인하고 같이 붙들려 감옥에 들어 왔다구요. 그 목사가 지금 살아 있어요. 내가 이름은 안 밝히겠어요? 주모자는 목사고 사위는 장인 때문에 감옥에 들어와 한 감방 건너의 감방에 앉아 있었다구요. 그래도 그 장인인 목사는 교회를 갖고 있으니까 우리 교회 목사님 고생한다고 이북 천지에서 그래도 신도들이 푼푼이 돈을 모아 가지고 면회 올 때 떡을 해오고, 옷도 갖다 주고, 또 병날까 봐 다아아진이니 뭐 페니실린이니 약을 잔뜩 갖다 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목사는 그것을 파는 장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다이아진 하나에 미싯가루 한 봉지와 바꾸는 장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사위가 반죽음이 되어 가지고 죽겠다고 약 좀 달라고 사정을 해도 약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밥목사였습니다. 난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밥목사 떼거리들이 기르고 있는 하늘의 양을 누가 해방시킬 것이냐?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고 있다 이겁니다. 나한테는 설설 기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살이를 해도 그런 시시한 감옥살이를 안 합니다. 영계에서 전도해 가지고 내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감방을 죽 출장 다녔습니다. 1사,2사, 3사…, 매일 일곱 시가 되면 말이예요. 아침에 출격 명령 나게 되면 피해 와 가지고 말이예요. 간수들한테 들키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도망갈 준비를 위해 공모한다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큰일나겠으면 나라는 거예요. 영계에서 가르쳐 주니 어떻게 해요? 모르는 사람도 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건빵이나 미싯가루를 갖다 주라고 조상들이 나타나 야단하니까, 그렇게 인연맺었기에, 죽으면 어떠냐는 식으로 오는 거예요.
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달 동안 이렇게 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내가 진땀을 흘렸다구요. 이래 가지고 서로가 뭐 인사도 서서 하는 게 아니예요. 엎드려 가지고. (웃음) 그 비극적인 맛, 그거 처량한 것이지만 그때 그 맛은 여러분에게 설명해 가지고 모릅니다. 암만 설명해도 여러분은 모릅니다. 서로 눈총이 엇갈리는 심정적인 정이라는 것은 그 자리 안 가고는 모릅니다. 백과사전 천만 권으로 배워도 모른다구요. 그러니까 그러한 자리에 가서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담도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며‘야! 요것들 봐라!' 하시며 빵긋 웃으실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른다구요.
그런 것을 볼 때, 내가 죽는다면 이 녀석들이 따라죽을 수 있겠느냐? 생각했을 때 죽을 수 있다면 문선생이 예수님보다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구요. 낫다는 게 아닙니다.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자가 선전 잘한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선전 좀 할 만하지 않습니까? 내, 아무리 못났어도 한국에서 자랑하는 목사 숫꺼먹더기 같은 사람들에게 지고 싶은 마음 꿈에도 없다구요. 틀림없이 밟고 올라설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도 결심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날이 올 것입니다. 안 오거들랑 앞으로 후손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무덤을 파 버리고, 통일교회 문선생님 무덤 앞에 와서 통곡하고 회개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교만한 것 같지만 하늘이 가르쳐준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선생이 갖고 있는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을 갈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이 피곤하면 나는 기세당당해야 되고, 너희들이 자면 나는 깨어나 병기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뭐 총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왔습니다.
자, 십자가의 길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십자가의 길 좋아요, 나빠요? 좋아, 나빠?「나쁩니다」 나쁘다구요. 십자가를 왜 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말했을 때, 베드로가‘선생님, 그러지 마십시오’하니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십자가가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결심했다는 겁니다.‘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한 것이나, 또 유다를 대해 가지고‘차라리 너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고 저주한 것을 보면, 십자가의 길이 할수없는 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할수없는 운명적인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고 한 것입니다. 할수없이 고개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3일노정을 지난 후에 부활했기 때문에, 그 길이 십자가의 고개가 아니라 영광의 고개요, 부활의 고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란 탕감의 도리입니다. 죄 지은 것을 청산하기 위한 빛 갚는 도리입니다. 빚 갚는 게 뭐가 좋아요? 빚 갚고 나면 해방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부활의 도리입니다. 통일교회가 십자가의 도리를 짤라 버리므로 세계 기독교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암만해도 기독교는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인들에게 먹히나 안 먹히나. 예를 들어 한 70명 되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를 전부다 이제 한 번 수련소에 데려다가 3일 동안만 우리 통일교회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교육해 보라는 거예요. 큰 녀석 작은 녀석 한꺼번에 몽땅 함락되고 맙니다. 총 한 방도 안 맞고….
해방 이후에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환영했더라면 기독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젠 세계 기독교는 추풍낙엽과 같이 망하는 운세권에 들어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서글픈 가을절기를 맞는 것과 같은 처량한 기독교가 되어 갈 것입니다.
본래 기독교는 형님들이고 우리는 동생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딱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쳐박았다가 그중에 한 형이 팔아먹자 해 가지고 팔았습니다. 애급에 가 가지고 망할 줄 알았던 그가 총리대신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 요셉이 아버지를 구하고, 자기를 버린 형들을 구해 주었습니다. 통일교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어떻게 용서했느냐 하면. '내가 없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반사막지대에서 효도를 하며 섬겼던 분들이 아니냐’하면서 원수된 형님들이었지만, 부모를 생각하면서 용서했습니다. 즉, 내가 없을 때 부모를 봉양했던 그 은덕을 생각하면 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형들을 죽이고 싶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용서한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한 요셉은 어려운 일을 한 것입니다. 딱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없었을 때, 하늘을 위해서 효도했고 하늘을 아버지로 모시고 나온 그들이기에, 딱 그 마음을 갖고 용서해 주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길입니다. 원치 않지만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기관차가 달리면 객차는 반드시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피를 흘려야 된다구요.
십자가의 길에는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고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고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이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다가 개인적으로 학살당하고 일족이 학살당하는 일이 있음과 동시에, 일국이 망하는 일이 있고 세계가 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민주세계권이 까닥 잘못하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 기독교의 십자가의 길을 누가 받아서 소화시킬 것이냐? 여기에서의 십자가는 무엇이냐? 왼쪽 공산주의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와 전세계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야말로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세계적인 결의를 하고 나서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공산주의(늑대)가 평화 공세를 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갖추어진 모양의 꼴을 해오면 해올수록 우리는 모두 포승을 준비해 가지고 포위망을 만들어 일시에 잡을 수 있는 내적 준비를 해 놓고 접근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영광의 길이 어디 있느냐? 영광의 길은 십자가에 있지 않습니다. 영광의 길은 십자가를 넘어 승리의 표적을 바라는 자리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부활의 한 날은 하나님을 통하여서 되어진 것이 아니냐?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시대에 그런 비운의 역사를 이어받은, 타락한 인간의 후손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때가 오기 때문에 끝날이 있는 것이요, 그 끝날은 심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무엇을 갖고 오는 것이냐? 생명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갖고 오는 것입니다. 심판장으로 나서는 사나이 앞에는 시험이 있고 무자비한 하늘의 공적 법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악하게 될 때는 들이치는 것이요, 선하게 될 때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최후의 심판 때입니다.
그때는 인간의 법을 가지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천륜의 법도를 통해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판하는 데는 누구를 표준해 가지고 심판하느냐 하면 선한 사람을 표준해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한 사람, 가정으로 선한 사람, 민족적으로 선한 사람, 국가적으로 선한 사람, 그 다음엔 종교가 가운데 종교적 입장에서 선한 사람, 이런 반열에 따라 가지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되어진 대로, 자기가 심어진 대로, 커진 대로, 자기가 갖춘 모양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떨어지고, 또 씨를 갖지 못한 열매도 떨어져서 썩게 마련입니다. 잎도 썩고 열매 껍데기도 썩지만 그 가운데에 있는 씨만은 썩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가 아무리 썩었더라도, 하나의 생명의 씨가 남아지는 날에는 썩어진 기독교가 도리어 부활의 요건이 될 수 있고 발전의 요건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비료는 주는 대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지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 보고‘왜 기독교인을 전도해? 일반사람이나 전도하지’하는 것도….
1972년도부터 세계적인 공격전에 들어간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세계를 대해 가지고 공격전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수세에 몰리고 피해를 입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수세를 넘어 공세를 취하면서 점검 세계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편제를 만든 것이 국제기동대입니다. 기동대를 말하게 되면(판서하심)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동서남북 사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넘어지면 그 중앙에 하나의 상대적 추가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넘어지는 날에는 십자가의 중심에 추가 머물 수 있는 하나의 표준이 된다는 거예요.
기동대는 미국으로부터 출발해서 영국, 독일, 일본 그리고 맨 꼴래미 (꼴지)가 한국입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할 때 차바퀴가 생각납니다. 차바퀴 큰 것과 작은 것을 함께 돌리면 큰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 작은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 어느 것이 안으로 들어와요?「작은 것이요」 작은 것이 안으로 들어오지? 자꾸 돌다 보면 윗놈이 아랫 놈 되고 아랫 놈이 윗놈 되는 것입니다. 큰 놈인 미국이 작은 놈인 월맹한테 걸려 가지고 헐떡거리며‘아이쿠 아이쿠’하는 것입니다. 큰 놈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큰 놈도 돌아가고 작은 놈도 돌아가지만 큰 놈이 자꾸 바깥쪽으로 나가는 바람에 작은 놈은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들어가 가지고 그 다음에 쑤시고 들어갈 구멍이 없게 되면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맨 가장자리가 꼭대기 왕초가 되는 것입니다.
천지 이치, 순환 법도의 이치를 따라오면 돌아가는 시대권 가운데 제일 작은 데가 중심이 되는 것은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기동대를 한국에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국은 작지요? 그것도 절반으로 쪼개어 나뉘어져 있습니다. 잘 돌아가지? 조그만하니까. 잘돌아가나, 안 돌아가나?「잘 돌아갑니다」 잘 돌아가지 않지 않지?「예」(웃음)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이 돌아갈 때 돌아가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중앙에 가만히 붙어 있겠다고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통일교인은 기동대 출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자, 우리 젊은 양반들, 기동대에 가담할싸 말싸?「할싸」이놈들, 할싸 말싸?「할싸」말싸?「할싸」말싸?「할싸」해 보라구. 우리 아가씨들 시집갈싸, 말싸?(웃음) 기동대 출동할 싸, 말싸? 말싸?‘할싸‘는 하자는 말인데‘할싸'(작게 말씀하심, 웃음) 여자들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것 보면 에덴 동산에서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전통을 그대로 받았다구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청파동에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있었지만 이젠 그럴 때가 지났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우리 회사가 세계적으로 벌어진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게 되면 기술공업하는 패들은 우리 제품을 서로 사겠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그때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낼름낼름 만들 것입니다. 상당히 내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사업을 추진 중이라구요.
뉴욕에서 몇십 만 달러를 런던으로 송금할싸 하고 전보를 한 번만 치면 사람은 안 가더라도 돈은 점보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떨어집니다. 그 떨어진 것을 개미새끼 같은 통일교회 패들이 물어다가…. 고것 재미있다구요. 남들은 욕을 해도 나는 이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웃음)
그래 남들한테 욕먹다가 망할래요, 흥할래요? 어떤 것 택할래요? 난 욕먹다가 망하는 것 택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욕먹다가 흥하는 것이요」욕먹다가 흥하는 것, 고것이 통일교회라고…. 괜히 욕한 녀석들 욕하다가 전부 손해배상 해주고 나중에는 그 동네에서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회 안 믿으면 도망을 가든가, 죽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은 다 싫어하지만 내가 20년 동안 이것을 간파해 가지고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고생해라, 고생해라’하고 죽도록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고생을 시키는 책임자는 등골에 뼈가 녹아나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고생을 시키는 지도자의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고생을 안 하겠다는 녀석을 잡아다가 고생을 하라고 하는 것은 죽을 일입니다. 팔자가 드세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라에서 반대받고 뭐 부모한테 쫓겨난 것도 분한데 이건 또 뭐 이래?' 그러나 반대로 돌아갈 입장에 있으니까 디리 때려 모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한 바퀴 삥 돌아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바퀴 싹 돌아가서 달라붙으면 거기서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기 시작해서 멎으려고 하는 자식들을 방망이로 찜질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어때요? 복귀니까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안 됩니다」 지금까지 언제 한 번 영광의 때가 온다고 말해 봤어요? 여러분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무슨 팔자가 그래? 나도 이 골치거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래도 수고하면서 넘어오다 보니 하나님이 보우 하사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말이지 통일교회 패들 문선생한테 천대받지 않았어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아닙니다」 언제 내가‘당신 잘 싸웠으니, 만민이여 이 자를 본받으라' 하면서 손을 잡고 복받으라고 축복해 주었어요? 축복 못 해주겠으면 편지 한 장으로라도 축하해 주었어요? 못 했다구요. 여러분 그렇지요?(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복귀하는 데는 좋은 것만 복귀하겠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알아요? 하나님은 털 하나, 이 솜털 하나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웃음) 왜 이러느냐 하면 저 뒤에 있는 양반들을 교육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가 가지고 선생님 말 못 들었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게 온 것을 반성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구요. (웃음) 그러니 한 사람쯤 교재로 써도 실례가 아니라 유례라구요. 언제 임자의 머리가 이 대중의 교재로 쓰이게 될 수 있을 것 같애? 이것도 다 십자가의 영광이야.
기독교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수난의 길을 걸어온 기독교가 최후에 머물러야 할 종착점이 어디냐? 수난의 길이 아니라 부활과 더불은 영광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밟고 올라서 가지고 그 권위와 희망 앞에 만국과 만민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자기들의 미급함을 직고하게 해야 할 권위를 가진 십자가의 길을 다짐지어 가지고 세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도리어 세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사탄 새끼들 앞에 무릎을 꿇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단계에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젠 볼장 다 봤습니다. 주인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있어도 그것은 허재비다 하는 그 말은 없다는 말이지요?
기성교인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아요?「예」 알아, 몰라?「압니다」 여기 있는 사람도 하나님이 있는 것을 몰랐다면 이 놀음 안 할 것입니다. 보라구요, 내가 감옥에서 배고플 때 미싯가루를 날라 주던 하나님을 알고 있어요. 또 길을 가다가도 해가 저물게 될 때 하늘이 불쌍히 보시고 잔치상을 미리부터 준비해 놓아 대접받는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날 죽으라고 잡아넣은 사람은 죽어 버리고, 죽으라고 한 나는 살아 나오더라 이겁니다. 그 잡아넣은 장본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족까지 쓸어 버리더라구요. 그런 것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무서운 사람입니다.
내가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일 하기에 바쁜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나쁜 마음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선한 길 가는데 원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원수 천지라구요. 이 마을에 가도 원수요, 저 마을에 가도 원수요, 이 나라에 가도 원수, 저 세계에 가도 원수뿐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플러스 앞에 플러스가 나타나면 상충되는 것은 천리이치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수난이 많았지만 누가 깨져 나갔느냐 하면 결국은 부딪친 사람이 깨져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반대하던 사람들 두고 보라구요. 누구 누구 두고 봐요. 한 14년만 두고 보라구요. 14년, 21년만 지나면 깨끗이 정리될 것입니다. 또 일면 무서운 것이 뭐냐 하면, 어느때 쓱 가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그 녀석을 생각지도 않았는데‘이놈의 자식 같으니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되면 그 집안은 7개월도 못 가서 쑥 새둥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성교회의 말로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다 말했습니다. 재건교회가 아무리 떠들어도 7년노정이면 되는 것이고, 뭐 교려파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14년노정이면 떨어집니다. 또, 기성교회가 합동으로 통일교회를 정면적으로 반대하더라도, 21년노정이면 그들은 완전히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두고 볼 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땅 위에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아니냐. 다시 구하자는 것은 어떻게 구하자는 것이냐? 여기에서 타락했으니 그 이상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병난 사람이 병나지 않았던 자리에 가려면 이 자리를 통과해야 보다 건강한 자리에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 하늘의 소원이요. 인류가 마음으로 바라는 소원의 기준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끝날이 있다는 말은 하늘을 중심삼고 볼 때, 복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고 복음입니다. 설움의 자리에서 수천 년 동안 신음해 나오던 역사적인 한을 풀게 할 수 있는,원한의 가슴을 가진 아들딸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한 날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심판의 한 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법도를 가진 천지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서 그것은 반드시 선포해야 할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심판받는다는 말은 복된 말입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바라 나온 것은…. 역사는 탕감역사를 거쳐 해 나가기 때문에 세계는 반드시 망해야 되는 것이고 망하게 될 때는 선과 악이 교차되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이며, 그 교차되는 점에서 올라가야지 떨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길만이 영광의 길, 참된 영광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서로 엇갈려 있다가 서로 지쳐 가지고 이제는 서로 화합하자 하고 있습니다. 또, 남북이 엇갈려 있었지만 이젠 하나되어 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또 동서가, 미국과 소련이 냉각시대를 거쳐서,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이제는 서로 세계를 다시 한 번 모아 보자 해 가지고 평화의 타이틀을 가지고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면 서로 같이 살 줄 알지만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서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라지는 것을 누가 수습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여당과 야당이 엇갈려 있다가 하나 만들자 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지만, 하나된 다음에 갈라지는 날에는 누가 수습하겠습니까? 현정부의 모 기관장을 만나 가지고 한 이야기지만, 역사적 귀결점에 있어서 반드시 교차로가 있어야 할 그때가 왔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해서 새로운 분야를 들고 나오는 것은 좋지만 그 자체내의 결렬이 벌어지게 될 때에는 누가 통합할 수 있겠느냐? 그것을 난 제일 무서워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기성교회 대표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자는 거예요. 그리고 사탄세계의 외적 대표자격인 사회 저명인사와 대학총장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자! 만나서 너와 내가 싸울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한 길을 가려 가자는 것입니다.
서로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최고의 뽀족한 곳이라는 것은 전부를 합해 가지고 대표적으로 뽀족한 곳이기 때문에 제일 뽀족한 자리에서는 서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뭐냐? 주체와 대상이 갖추고 나타나야 할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철학사조를 보면 인간 위주한 주체사상을 논하던 입장에서는 인간이 제일인 줄 알았지만 최후의 종말인 심판시대가 오기 때문에 그것은 장막에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로 절벽에 부딪쳐 가지고 신음하는 초점에 놓여진 절망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존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장벽 앞에 소외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밟고 올라가느냐? 인간 위주로 절대 주체사상을 강조한 철학사상은 이제 말로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은 대상 철학을 논의해 가지고 주체 존재를 깨칠 수 있는 입장을 갖지 않으면 해방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몰락된 신을 부활시키고, 우리의 주체자로서의 잃었던 권위, 신의 권위를 다시 복귀해 가지고, 하나님이 주체 입장에, 우리는 대상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는 대상의 입장에서 하나되어 하나님이 끌어 줘야만 넘어갈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절대 못 간다는 것을 알게 해야 됩니다. 태평양 바다 가운데서 아무리 덤벙대도 살 길이 없는 것처럼….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하나님 내 아들딸 복 주소’하고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여러분을 놓고 문선생이‘통일교회만 복 주소'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은 해방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울더라도 하나님은 기뻐해야 됩니다.
나라를 찾아 나선 우리에게 있어서 나는 망하더라도 나라가 자리를 잡는 그날을 보고 죽으면 나라를 찾아 나섰던 한 사람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했다면 소원성취가 아니예요. 그것이 나라에서 바라던 영광의 날입니다. 그 안에서 죽지 말고 그 자리를 영광으로 맞아 가지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나라는 수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온 나라, 땅 위의 주체자이기 때문에, 그 하늘의 절대적인 주체자와 대상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되어 가지고서야 천지가 주체로 삼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높은 그분도 나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나와 같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아우와 같이 가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약한 아내일지라도 사랑하는 아내의 품에 들어가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종의 입장에서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거기에는 비운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거기서부터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적 결속이요, 승리적 결판을 지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이 뭐냐?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심정은 인간을 통한 심정이 아니라 천륜을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역사시대를 통한 심정, 전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으면 역사의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시대의 기틀이 있을 수 없고, 미래의 출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하게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복지의 천국은 벌어질 것이요, 해방의 기원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 그 기점이야말로 우리들이 찾아 나오던 참된 영광의 출발점이 아니겠느냐.
그 출발점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셨다면, 그 부모 앞에 원수들이 참소와 탕감조건을 제시하고 피를 흘리는 자리에 있어서 죽음의 대가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죽음의 대가의 보람있는 가치의 영광을 가져 가지고, 옛날의 슬픔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날을 맞아 내 개인 적으로 탕감의 효의 길은 찾아왔겠지만, 탕감없이 사탄이 참소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느냐 할 때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면서 낙원길을 개문하기 위한 최후의 기수의 놀음은 했지만, 영광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천국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사랑이요, 아버지는 사랑의 주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맞을 수 있는 대표의 자리에 못 섰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가 있지만 그 기독교는 개인을 대표한 기독교요,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요, 민주세계를 대표하고, 하늘을 대신하는 마지막 종교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사명을 다 망각하고 교파 싸움으로 분열되어 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명을 저버리고 자기 교파적인 사명을 들고 나서는 무리는 망합니다. 국가가 망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데 자기 가정만 붙들고 있는 무리는 망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십 년 비운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나이도 슬픈 심정을 품고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려고 했고, 누구보다도 신앙길에 있어서 하나님을 위하려고 애썼지만, 애쓰는 길에 있어서 환영이 아니라 반발이요. 핍박만이 있었습니다. 죽음과 엇갈리는 영어의 신세밖에 없었던 그런 비운의 기점을 가져 나왔던 그런 사실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날을 거쳐서 고통의 출발이 개인의 시대에서부터 가정시대, 종족시대, 민족 시대, 국가시대를 거쳐서 현재까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역사시대의 모든 고통을 현재의 통일교회가 짊어질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두 어깨에 짊어진 남북의 엇갈린 이 사상을 수습할 수 있는 운명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앞에 귀결시켜 가지고 책임 추궁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면에서 하나의 기수가 되어 보겠다고 수십 년 동안 싸워 나온 무리가 통일교회의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이렇게 나온 우리가 지난날의 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에, 그 시대는 슬픈 역사가 가로놓여 있던 시대였습니다. 나의 10대 시대, 20대 시대, 30대 시대, 40대 시대, 50대 시대를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비운의 역사가 깃들어 있었고, 하늘의 서러움이 깃들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잊을 수 없는 사연과 지난날의 모든 것들이 흘러갔지만, 그 흘러간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 살아 남아 있는 한을 내 한과 더불어, 하늘의 한을 풀어 드리고, 민족의 한을 해소시킬 수 있는 그 한 날을 기필코 성취해 놓아야만, 하늘이 안식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것이요, 내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그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라는 것은 탕감복귀의 노정, 제물의 노정, 비참한 노정에서 하늘의 효의 길을 찾아 나왔지만, 해방과 더불어 천상천하에 영광의 가치를 대신한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전체의 사탄세계가 참소하지 않는 단 하나의 영광된 자리에서 하늘이 칭찬하고 온 존재세계가 환영하는 입장에서 효의 길을 아직 가지 못하였고, 충의 길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성인으로서의 부활된 자리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개인으로 가야 되겠고, 가정으로 가야 되겠고, 민족으로 가야 되겠고, 세계로 가야 되는 사명 분야가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972년도 정초에 여러분 앞에‘통일전선 수호' 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앞에 최후에 장벽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교육을 시키고 있는 내 아들딸을 수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전선, 섭리의 전선을 수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대양 육대주를 우리의 발판으로 삼아 가지고, 그 터전 위에서 하늘의 기수가 되어 그 수호의 권한을 자랑하고 영광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하늘 앞에 효도를 해야 되고 충을 돌려 드려야 되는 새로운 역사적 전통을 세워 놓아야 할 책임이 통일교회의 사명이 아니냐. 비장한 각오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내 53년 반세기의 생애를 지낸 것은 탕감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기 위함이었지만, 아직까지 영광 가운데서 개인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대신하여 효도의 자리에 못 갔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고 하늘 앞에 영광으로서 시위하는 그런 자리에 만국이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못 간 것이 아니냐. 개인도 그렇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도 그랬습니다. 이런 한스런 운명의 길이 우리 앞길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만일에 이길을 반대할 때 막지 못하면 죽음으로 이 전통적 기원을 남기고 가야 하는 사명이 살아 생전 땅 위에 있는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 앞에 보여 줘야 되고 세계 앞에 보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개개인 앞에 보여 줘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인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삼천만 민중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저들을 본받아야 나라가 산다’하고, 기성교회 수많은 종교가‘통일교회 같이 움직여야 교회가 살 수 있다’하는 길을 바로잡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까지 참된 영광의 길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음의 박차가 가해 들어오는 숨막힌 세계적인 최후의 교차점을 향하여 찾아 들어가는 혼란된 와중에서 내 주체성을 어떻게 들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가 금후에 한국에 있어서의 종교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수많은 교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대한민국 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는 안 됩니다. 주체와 대상을 확실히 가려 가지고, 하늘을 주체로 인간을 대상으로 완전히 가려 가지고 설 자리에 설 수 있고 처할 수 있는 자리에 처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숨막힌 시대의 교차점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전진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이 그 순간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으로서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그 누가 있겠느냐 이거예요. 제2의 해방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제2의 해방뿐만 아니라 제2의 해방이 되고 나면 제3의 해방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제3의 해방을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의 목을 따는 것입니다. 더구나 공산당은 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동원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도 주체와 대상관계에 있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를 갖지 못한 단체는 존속하지 못하는 것이 원리의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영계의 천사들을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그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기 때문에 땅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일은 자녀의 날입니다. 그러나 사선을 넘는 이런 때가 찾아오는 숨막히는 역사적인 전환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적인 소원, 과거 현재를 통해 가지고 하늘이 찾아 오는, 하늘의 3원의 3층천의 개문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맞을 관문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느냐? 영광된 새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어느때일 것이냐?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정성을 다 들여서 그 순간의 초점 앞을 지나쳐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개문되는 날 어디로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 한 발자국, 반 발자국, 반의 반 발자국, 반의 반의 반…. 1센티미터라도 넘어서야….
그 넘는 순간이 얼마나 숨이 막힐 것이냐? 숨을 들이 쉬고 넘을 것이냐. 내쉬고 넘을 것이냐?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쉴 때에는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한스러운 숨길을 전부 다 씻어 버리고 영광의 숨길을 완전히 쉬어야 되겠다는 이런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순간이 언제냐? 내 숨을 내쉬고 넘어야 되겠다. 그 순간이 언제노? 힘을 다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내 눈은 이 선을 똑바로 보고 넘어야 하겠다. 그선이 삼팔선이 아니냐.
전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전통은 인간을 중심삼고 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갈라지는 날에는…. 공산당은 갈라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금 포위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다 평면도상에 나타나야 할 시대에 있기 때문에 국가의 위정자들이 결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하나되어 가지고 1974년부터 1977 년까지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로 이 나라의 운명을 판가리할 수 있는, 숨막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이러한 사명을 책임지고 가야 할 통일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남자 여자가 하나되고 남녀노유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으로 하나되어야 되고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흥하려면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전쟁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남녀노유가 서로 일선을 지키겠다는 민족은 승리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민족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민족이 아무리 약한 민족이라도 그 민족을 축복할 것이며, 그들에게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을 세계 앞에 남겨 놓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사상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사상을 지닌 정병으로서 전선에 나서는 날에는, 우리 소수의 무리들이 일치 단결해 가지고 최후의 전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날에는 우리의 신념으로 인하여 승리는 하늘의 것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맡길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1972년에‘통일전선 수호' 라는 역사적인 표어를 정한 것입니다. 복귀원칙으로 볼 때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수호의 시대에 왔습니다. 남북이 이렇게 되어 있고 또 아시아권이 포위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문제입니다. 아랍권내에 포위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역사의 신음과 비참과 수욕과 고통을 극복해 나왔던 처참상이 가슴에 못박혀 있는 것입니다. 박혀도 단단하게 박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우리 민족을 들어 한 때를 맞을 것이므로 아무리 원수가 많더라도 그때를 놓치면 망하기 때문에, 그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전선에서 죽더라도 우리는 승리를 다짐하여야 될 것입니다.
하늘의 역사적인 권위와 우리 선조들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의미에서 오늘을 지키고 나가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사상적 기반이 역사시대의 수난 길을 통하여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 수난, 그 사상적 단결을 오늘 통일교회 수십 년 역사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흘러간 역사로 그저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어렵습니다. 중공과 일본 이 3국, 쫓겨난 아담 해와가 다시 복귀될 때는 반대하던 세 천사장과 같은 형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밟고 올라서서 우리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승리하고 나서게 될 때 이 민족의 영광이 올 수 있습니다.
우방인 미국이 우리를 저버렸고, 인접 국가인 일본은 본래부터 우리를 원수시했기 때문에 저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강대국은 우리를 삼키려 오는 것입니다. 믿지 말라구요. 믿을 수 없습니다. 약소민족으로서 개인에게 의지했다가 약탈당했고, 가정을 믿으려고 했다가 약탈당했습니다. 씨족, 민족, 국가를 믿으려고 했다가 다 유린당했습니다. 이제 누구를 믿어야 될 것이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역사적인 한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단 하나 믿을 것은 하나님을 한 번 믿어 볼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다구요.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영광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배를 가르고 피를 흘리는 자리에 가게 될 때 하늘은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물의 피가 흐른 곳에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희생의 울음 소리의 환경 위에 해방의 인연이 세계에 개문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고맙게 맞고 그 인연을 저버리지 않고 극복하는 날에는 한국은 영광의 국가가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나섰기 때문에, 우리가 모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진정한 효도를 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복을 주고 잘살아야 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겠거든 그걸 보고라도 죽는 것이 내 소원이라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역사상에 인간으로서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사랑하고 싶은 아들딸을 실컷 사랑하고 행복스럽게 사는 당신의 가정을 보고 죽으면 나는 한이 없다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충신의 도리입니다. 만일에 자식의 자리에 섰거들랑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하는 것이…. 효자와 충신의 두 길을 찾는 길이 통일 교회가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으로부터 가정을 치리하고, 민족을 치리하고, 주권국가를 세워서 하나님의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세계에 미쳐서 통치하는 세계가 평화의 세계요, 영광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못 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고 죽는 것이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소원을 가진 우리 앞에 그런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은덕을 얼마나 감사해야 될 것이냐? 그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약속해 주었다면 그 가는 길은 엄숙한 길이 아니겠느냐?
그리하여 세계를 하나의 백성으로 치리하고, 하나의 사랑으로 묶은 형제의 인연을 갖추고 천지가 하나되어 그야말로 영광과 승리만이 비쳐질수 있는, 즉 해방이 필요치 않는 평화의 기틀이 영원히 설정된 그 세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보고 싶은 곳, 보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세계, 보고 싶은 분을 중심삼고 그러한 자리를 소원하고 나온 것이 타락한 선조의 후예인 우리들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보고 싶은 그분을 만나서 그분이 가는 곳이면 동서남북 어디라도 따라갈 수 있고 어떠한 명령을 내려도 반갑게 대답할 수 있고 그가 바른발을 내딛을 때 같이 바른발을 내딛을수 있는 반열에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나에게 부여한다면 천만 번 죽더라도 그 감사와 영광은 무엇하고 바꿀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하늘 백성이 될 수 있는 영광 이상의 소원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소원인데, 하늘이 그런 사람을 불러 가지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이 세워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광 가운데 내세워 가지고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치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면, 그 영광을 무엇으로 갖을 것이냐? 그러한 권한이 설정되게 되면, 그 권한은 영원한 자리에 승리의 권한으로 내려가지 않고 영원히 고착될 수 있는 참된 영광의 길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을 중심삼고 공인된 아들딸의 자리에서 가지고 만국을 대신하여 혹은 만천주를 대신하여‘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 고 온 천지 앞에 자랑하고, 목을 붙들고 입을 맞추는 그런 자리가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분과 더불어 살고 그분과 더불어 가고픈 곳을 가 보고 죽을 수 있는 환경을 보고 살다가 죽는 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된 영광의 길이 아니겠느냐!
타락한 그날부터 이 세계에는 그런 세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음과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죽음이 엇갈린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소망했던 날이 이제 우리 목전에 다가올 수 있는 비장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해결할 자가 하늘도 아니요.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닙니다. 바로 이 한국, 남북이 엇갈린 여기에서 문제점을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진 종교 가운데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목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숨막힌 이 순간에 있어서 한 점 한 점을, 한 발자국을 잘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의 한 날, 나는 없는 것으로 탕감해 버리고 남은 것으로써 숨을 내쉬는 기쁨과 더불어 영원히 찬양한 그 숨결이 또다시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출발을 볼 수 있는 내 일생이 되고 내 후대 후손 앞에 그럴 수 있는 대표자로 남아진다면 그 얼마나 영광이겠느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를 차지해야 인생의 참된 영광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미국을 믿지 못하고 일본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믿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가인 아벨 복귀 운세라고 했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가인 아벨이 하나 못 된 것을 우리는 단결해 가지고, 개인적 가인 아벨을 타파하고, 가정적 가인 아벨도 타파하고, 종족적 가인 아벨도 타파하고, 민족적인 가인 아벨도 타파할 수 있는 전통을 우리가 지녀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가정을 동원하는 데 동원되지 않은 가정은 입적하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불응하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선생님과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하가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어야 되겠다구요. 하나되어 가지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해서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없으니 올라가야 되겠습니다.
역사이래 그런 압축된 환경에서 솟구쳐 오른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무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뚫고 세계를 뚫고 나을 수 있는 개인과 가정, 종족. 국가가 나타나면 그 국가는 세계적인 전통 국가가 될 것이고, 그종족은 세계적인 전통 종족이 될 것이고, 그 가정은 세계적인 전통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서로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적인 승리권을 갖게 되면, 이것은 영원한 국가와 영원한 민족, 영원한 종족, 영원한 가정과 영원한 개인의 전통을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세울 수 있는 전통의 기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랑 신부의 이념을 중심삼고 뭘하려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를 편성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국가보다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강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구 누구보다도 단결해야 되고 누구보다도 하나되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승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길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희생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늘 이상을 먼데에 두고 지금까지 희생해 나왔습니다.
우리의 희생의 대가는 컸습니다. 그렇게 자꾸 나가다 보니 국가에서, 반대하던 교단에서, 세계에서 통일교회를 알아주게 됐습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그렇게 올라온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는 그 방법밖에는 해방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지나서 영광의 한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영광의 한 때를 맞이하도록 해야할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알고 더욱 다짐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때는 아버지 어머니를 믿을 수 없고, 다 믿을 수 없는 때입니다. 하늘만을 믿고 의지하여 그 자리를 나서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영광의 길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삼팔선을 넘고 남아질 수 있어야 됩니다. 이북을 지나가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반대하더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공산세계를 밀고 넘어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못 가게 되면 죽음이라도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세계는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이 땅이요. 천주도 하늘이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이 거기에 버티고 있을 때 그것을 격파할 수 있는 특공대로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동대란 말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지금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는 위성국가 안에서도 투쟁하고 있는 식구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수가 아니지만, 판도가 이만큼 넓어진 것을 알고 이것을 몰아 가지고 최후의 세계 전선을 수호할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1970년대를 의의있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영광된 길을 남기기 위해서 움직이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출발하기 위하여 삼팔선을 넘던 날이 어제 같지만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역사시대를 회상하면서 1960년도를 기점으로 하여 1980년대까지 통일교회는 피어린 투쟁 과정을 거쳐가야 할 역사적인 기간을 이미 설정해 놓았습니다. 1960년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 4월 11일이 12년을 보내고 13년째를 맞는 때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뜻있게 보낸 옛날을 추억하옵니다. 13년 넘어서 14년만에 야곱이 가정을 중심삼고 에서를 찾아가서 승리의 한 날을 맞이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이, 통일교회가 가야할 7년노정이 이미 3년 전에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은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이미 원리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서 있는 내 한 개인은 개인이로되 내 한 개인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타락한 후손들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버님이 이끌어 줄 수 있는 한 줄기의 생명의 줄이요. 이것을 높여 줄 수 있는 승리의 피의 대가를 치른 선한 선조들의 생애를 걸어 가꾼 터전인 것을 생각할 때에, 엄숙히 이어받을 수 있는 거룩한 자세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거룩한 무리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은 이것을 이어받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더듬어 왔사옵고, 슬픈 가시덤불을 제쳐 왔사옵고 태산준령 돌짝밭을 개척해 나왔사옵니다. 그러면서 어언간 수십 년의 역사가 지나고, 이제 바라보이는 것은 지친 모습과 주저와 피폐한 모습으로 정상을 향하는 자리에 쓰러져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정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몇 발자국 밖에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나설 젊음이들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선을 돌파하고 방어해야 할 젊은 기백을 가진 하늘의 용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재편성하여야 할 때가 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가에 있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야 되겠고, 고등학교 출신들을 규합하여 일선에 다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사명이 저희 앞에 있는 걸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이여, 소망하는 길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이루시옵소서.
이제 이들이 기백을 갖추어 가지고 2세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를 밟고 넘어서 하늘이 역사하는 정상을 넘어 새로운 전통을 세워 달라고 전체가 하나 되어…. 그렇지 못하거든 밧줄을 매어 가지고 우리를 끌어 줄 수 있는 때가 지금 때인 것을 알고 있으되, 자신을 구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에는 설 수 없는 때가 이때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갈 길이 바쁜 통일교회 운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 옵소서. 한국과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운세가 남아 있사옵니다.
아버지, 제 1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제 2선에서, 제 2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제 3선에서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3선에서 지키지 못하거들랑 전부 결의하여 배를 가르고 일시에 죽음으로써 해결지어야 할 운명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비장한 길인 것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이 길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왔던 기간이 지금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원한의 심정을 억누르고, 비참한 역사의 피맺힌 눈물의 길을 수만 년 거쳐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비참한 역사를 해원성사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날 우리의 거취에 달려 있다는 엄청나고도 황공한 자리에 자리에 저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살고자 하여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승리의 장병으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용맹한 하늘의 용사가 필요한 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일깨워 가지고 하늘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촉구하던 때가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골리앗 앞에 연약한 다윗을 내세웠을 때 다윗은 하늘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는 입은 옷은 남루했습니다. 목동의 신세요, 집도 없고, 마을도 없고 문화와 전통도 갖추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통일교회 무리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벌거숭이인 이들은 세계 공산당과 같은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과 같은 무리입니다. 우리는 물매도 갖지 않았습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을 사랑하는 마음, 아버님을 믿는 마음은 그 나라에 주권을 갖고 있는 누구보다도 더 강합니다. 그 주권을 갖고 있는 국민의 강한 힘보다도 아버님을 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보호하시옵소서.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의 운명을 판가리하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고 통일교회가 나라 앞에 혹은 세계 앞에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이 자유로운 천지를 바라보고, 당신이 이 땅에 좌정하셔서 소생되는 이 땅을, 천지를 주관하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효자의 마음이요, 이 길을 따르는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만이 저희의 길이요, 가야 할 사명만이 저희의 사명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저희들은 또 가야 되겠습니다. 통일전선 수호를 위하여 또 나서야 되겠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자리를 버려야 되고 못난 사람은 못난 자리에 서서 일선을 수호해야 되겠습니다.
삼천만을 붙들고 눈물로써 저희들이 호소해야 되겠고, 피눈물을 가려 가면서 최후의 날이 온다고 일깨워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희들이 책임지지 않는 한 영광의 나라. 영광의 자리는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참된 영광의 한 날을 그리워했던 대한민국의 백성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버리지 않고 찾아왔던 당신의 뜻이 한을 남기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통일교회 교인들을 필요하거들랑 써 주시옵소서. 죽음의 자리에도 감사히 받아 나갈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양자의 도리를 세워 나온 기독교의 사상 가운데서도 죽음길을 가려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광된 효자의 자리에서 나를 위해 죽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통적 사상을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죽어가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희생 해야 되겠습니다.
그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자신들이 구원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요, 최후의 승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최후의 아버지의 영광이 다 이루어진 그때에 있어서 저희들의 설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우리의 갈 길인 것을 알고, 끝까지 나선 걸음 주저 말고 힘차게 달려가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11월 첫 주일입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불쌍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 이름이 빛나지 않게 될 때는 하늘이 빛나지 않을 것입니다. 땅 위의 수난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자식이 짐을 또 져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뜻을 받들어 이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이 이 길을 감당하지 못하거들랑 책임져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를 넘나들며 최후의 전선을 개척하기 위해서 나서는 길 위에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국 땅에 남아 있는 당신의 어린 자식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들을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이들의 갈 길을 권고해 주시옵소서. 이들이 빛나는 승리의 담을 쌓고, 하늘의 튼튼한 장벽을 높이기 위해 가는 길은 틀림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다시 만나는 그날, 영광을 중심삼고 나라를 찾고 남북이 통일되어 해방의 함성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당신이 얼마나 바라고 계시는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목을 놓고 하늘과 더불어 담판할 때가 왔습니다. 저희들은 밀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밤을 지키고, 낮을 지켜야 할 하늘의 용사 시대는 왔습니다.
이 거룩하고 찬란한 한 때밖에 없는 이 시대를 놓치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광의 날, 영광의 시대, 영광의 주인, 영광의 권위가 우리를 맞기 위한 순간이 시시각각 우리 목전에 숨가쁘게 다가오고 있사오니 그것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깨어나 응시하면서 승리의 길을 다짐하면서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11월, 12월을, 1972년, 1973년, 1974년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부디부디 이들을 뜻하신 뜻대로 남아지는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참된 영광의 길이 저희 앞에 찾아올 것을 엄숙히 고대하면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승리하고 구원 얻는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가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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