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고등학교 시절에 있어서는 마지막 모임이 될 수 있는 이 시간에 길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개관을 알고 있을 줄 압니다. 또, 그 개관 가운데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이래야 된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라는 것은 이래야 된다' 하는 것을 개괄적으로나마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역사과정에는 복귀섭리역사의 각 시대를 담당해 가지고 사명을 해왔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인물들 가운데는 물론 그들이 훌륭했다 하더라도 역사가 지나고 근세에 들어오면 올수록, 현실로 오면 올수록 복귀섭리의 가치성이 가중되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의 결실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이 복귀 역사의 관 (關)이요, 복귀섭리를 담당한 사람들의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그 다음에는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그 다음에는 요셉 가정과 예수님,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수많은 사도들이 역사를 연이어 가지고 기독교가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전체 역사를 두고 볼 때, 그 역사 가운데에 역사적인 수많은 책임자들이 와서 일생을 바쳐 하늘의 뜻을 위한다면서 온갖 충성을 다했지만 그 시대에 바라던 바의 결과를 맞아 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들이 소원하는 결과가 성취될 것을 바라면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래면 오랠수록 오랜 시대를 두고 바랐고, 그것이 점점 가까와지면 가까운 시대를 두고 바란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아벨과 아브라함을 두고 보면, 아벨은 아브라함보다 더 오랜 시대를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모세보다도 아브라함이 더 오래 바라고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보다 모세, 예수보다 세례 요한이…. 또, 예수를 중심삼고 보면 4천년 역사의 그 누구보다도 예수 하나로 말미암아 전체 소망의 결실이 맺어져야 했습니다. 그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역사가 2천년 동안 연장돼 내려와 가지고 재차 소망의 결실이 맺어질 때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 가운데는 수많은 신자들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해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로마제국 400년 고역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참사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참사를 당하더라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구원관을 가지고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희생하고 아무리 순교하는 자리에 서 있더라도 그 희생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가치를 보람 있게 드러내기 위해서, 거기에 보다 가치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희생하고 순교한다는 관을 갖고 간 사람이라면 역사적인 승리의 시대를 맞게 될 때 표창받을 수 있고 추앙의 대상이 될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그렇게 죽음으로 말미암아 천국간다고 하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의 미래는 자기에게 결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순교하는 것은 천국가기 위해서 순교한다'고 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을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미래의 세계관을 위해서 죽어 가는 것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아무리 많은 순교역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자기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순교해 갔다면 그 순교한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의 복귀섭리관과는 상치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내가 희생하는 것은 미래에 하나님의 뜻을 이를 수 있는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고, 보다 가중된 가치를 미래에 드러내기 위해서 희생되고, 하늘이 나를 통해서 그 길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감사하면서 현재의 자기 입장을 초월해 가지고 미래를 위해서 미래의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자기가 죽어 간다는 입장에 서면 그 순교야말로 찬양을 할 수 있는 순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반 신앙자들이 생각하듯이 '내가 이렇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관을 가져서는 하나님의 전체 복귀섭리의 결실로 볼 때 그것은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오랜 복귀섭리 역사시대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었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서 과연 그러한 사상을 갖고 죽어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우리 선조들 가운데서, 아담 해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벨을 두고 볼 때, 아벨이 가인한테 맞아 죽으면서 과연 아벨이 역사적인 본연의 소망을 중심삼고 맞아 죽었느냐? 맞아 죽으면서 '아버지여, 내가 죽는 것은 당신의 미래의 뜻을 위하여, 당신이 원하는 소망의 뜻을 개척하기 위하여, 씨를 뿌리기 위하여 죽어 가나이다' 하고 죽었느냐? '내가 죽더라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죽은 것은 가치 있는 죽음이다' 하고 생각하고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120년 동안 수고한 노아 할아버지를 두고 보더라도 '내가 수고하는 것은 전부 다 뜻을 위하고 미래에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남기기 위해서 수고한다' 하는 입장에서 120년을 지냈다면 그 생애야말로 역사에 남아질 생애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120년 동안 수고해서 방주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나만이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미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는 하나님이 택해 세운 본의에 합당한 인물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노아 자신이 방주에서 내려오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내가 이런 생활을 했으며, 또 방주에서 내려와 가지고도 사는 일체 모든 것도 하나님의 미래의 뜻을 빛내기 위해서 산다' 하는 입장에서 지냈다면 한의 역사가 없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된다는 거예요. 과연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수고한 모든 것이 미래의 하나님의 뜻의 세계를 위해서였느냐,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가고 싶고 매일같이 바라고 있는 미래의 세계를 노아도 같은 자리에서 바라면서 그런 일을 해 나갔느냐 할 때 전부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떠했느냐? 아브라함도 그러했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그런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축복하게 될 때, '너는 미래 세계의 초인류적인 믿음의 조상이 된다. 너희 후손들은 미래에 있어서 초민족적이요 초국가적인 조상이 된다' 이렇게 가르쳐 주어야 할 텐데 불구하고 번번이 우리 선조들한테 가르쳐 준 것을 보면 '네 후손이…' 늘'너'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느냐.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 위의 모래와 같이 번창한다' 결국 너라는 것을 강조한 그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면 세계를 강조해야 할 것이, 세계 인류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세계를 위한 네가 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강조해야 할 것이 본래의 뜻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너'라는 자리를 강조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대표한 너'라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네 후손'이라든가 '너'라든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이렇게 한 것은 우리 인간은 자기를 벗어 날 수 없는 약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두고 봐도, 제물을 드린다든가 어떤 때든가 중요한 때마다 번번이 우리 조상들이 실수한 것은 왜 그랬느냐? 그것은 언제나 자기라는 관념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 그 버릇으로 말미암아, 그 전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완수시키지 못한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나서서 언제든지 외로우나 어려우나 고독하고 슬픈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자기를 위한 슬픔이 아니요, 민족의 슬픔도 세계를 위한 슬픔이라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슬픔과 비참함을 대신해서 자기는 으레히 슬픈 길을 가야 되는 것이요. '자기가 이 슬픈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의 슬픔을 제거시킬 수 있고 슬픈 길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나님편에 선 모세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외로우면 외롭다고 하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하고,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고 하는,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여실히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례 요한 같은 양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을 미래의 하나님의 섭리 전체의 결실을 이루어 바칠 수 있는 대표자로 세웠습니다. 그가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것은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고 그것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산다'고 하는 사상에 일관되고, 그런 관념에 사로잡혀서 산 세례 요한이 됐느냐? 아니라는 거예요. 언제나 자기의 전통과 습관과 구약 성경을 중심삼은 유대교의 풍습에 젖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 가지고 자기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 가치를 발견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전통이라든가 습관적인 생활환경에 고착되어 고질된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를 대했기 때문에 미래의 뜻을 망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미래를 대신하여 온 인격자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늘 앞에 반역의 길을 남기고 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쭉 역사를 훑어보게 될 때, 우리 선조들이 그 시대의 사명자로서 세움을 받았지만 남아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미래에 사명을 이어 남겨 주어야 할 책임자들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 사명을 한 선조들이 누구냐 할 때, 꼬집어 가지고 누구누구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러한 역사시대에 있어서 예수는 어떠했느냐? 메시아라는 그분은 어떠했느냐? 예수만은 달랐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왜? 자기의 원수를 대했을 때 자기를 생각했다면 '하늘이여!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하고 저주할 입장이었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보면 응당히 욕을 퍼부어야 됐고 복수하여야 할 입장이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저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돼야 될 것이 아니냐, 내가 이렇게 희생되어 온 것은 저들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저들은 나를 망각하더라도 나는 저들과 더불어 가진 인연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입장이 달랐다구요.
예수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서글픈 환경을 중심삼고 그들을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미래에 찾아올 수 있는 세계적인 천국이 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후손들이 남아져서 천국에 들어갈 전체의 섭리관을 바라보고 대하려고 한 것이 지금까지 역사적 선조들과 달랐다는 거예요.
원수들을 대해서도 그랬지만, 자기를 반대하는 원수들을 대해서 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대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말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는 것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반항을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생명의 진(盡)한 것을 극복해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하늘 앞에 바치고 '다 이루었다'는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예수가 무엇을 중심삼고 '다 이루었다'고 했느냐? 십자가의 죽음 그 자체로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마음가지고 바라던 참다운 아들이면 아들, 역사시대에 있어서 참다운 조상이면 조상들이 이러이러한 사람들로 나타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시대에 실패했던 모든 것을 종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진 나로서, 나는 역사시대의 승리자의 한 장면을 아버지 앞에 이루어 드려야 할 자가 아니냐. 이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했다고 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 그 다음에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 곧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야 할 인류를 바라볼 때, 어디까지나 자기를 변명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과 다른 입장에서 자기는 이럴 수 있는 한 터전을 남겼기 때문에 세상 인간들 앞에 서서 '나는 하늘 앞에설 수 있는 자리를 책정했다'는 그런 의미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입장이 달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반대하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망했는데 예수는 어떻게 흥할 수 있었느냐? 우리의 선조들은 잘못하게 될 때 거기서 전부 다 꼬꾸라져 가지고 섭리의 뜻을 대하지 못한 것이 역사시대에 번번이 나타난 실정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어떻게 세계를 향하여 발전하고 세계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었느냐? 그것은 예수가 생각한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었더라도 예수가 그것을 위하고 바라보면서 결실을 이루겠다고 생명을 다해 나가던 하나님의 뜻이, 그 주체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주체를 위하여 지상에서 상대적인 인간의 가치로서 심어주고 갔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터전이 남아 있는 한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원리의 관이 아니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죽었지만 예수의 소원은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그 소원은 죽은 예수의 소원이 아니라, 예수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소원을 대신할 수 있는 소원으로 심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심어진 가치의 터전을 바라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거기에 접하게 될 때,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서 무성해진 것이 기독교의 발전 역사가 아니었더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 기독교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기독교는 세계로 가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독교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야 되느냐? 개인에서 개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 시작해서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가야 되고, 세계를 지나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까지는 갈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일방적 면만 갖추어 가지고는 완성의 자리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영육 완성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세계로 찾아온 기독교를 수습해서 영육세계를 대표한 새로운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발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명실공히 기독교야말로 세계의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가 되어 끝날 새로운 문화세계에 하나의 사상적인 창건의 이념을 제시해 가지고 세계가 그 품에 포괄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고자 하신 소원의 나라까지 찾아 가려면 그러한 종말시대를 맞이해야 되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기독교의 종말시대를, 우리가 살아 있는 현실에서 망하는 현상을 응시하고 있는 차제에 있어서 이 기독교를 이어받아 가지고 하늘나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들은 어떠해야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왔다 갔습니다. 과거 아담 이후 예수가 올 때까지 4천년 역사, 그리고 예수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2천년 역사, 이렇게 6천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옛날 실패의 한을 남긴 것은, 역사적인 대표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걸 짊어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았는지 모르지만 책임을 지고 나서 하나님의 사람이 못 돼 가지고 실패의 서글픈 노정을 남겨 놓은 것을 우리는 여실히 잘 아는 바가 아니냐? 과연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더냐? 아닙니다.
여러분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몇 달 있으면 졸업할 것입니다. 졸업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사람으로 졸업할 것이냐? 나는 아무 학교에서 공부도 어떻게 하고 몇 년 동안 역사를 남긴 나 아무개로서 졸업할 것이냐, 하나님의 아들로서 딸로서 졸업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장받는 자리에서 꽃다운 청소년 시대에 있어서 빛나는 졸업장을 받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사람으로 졸업장을 받겠느냐? 여기에는 기필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학교에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수천 명의 학생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학생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체를 바라보게 될 때 '접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때, '그나 나나 대동소이하다. 나나 그나 마찬가지 아니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우리 학교를 대표한 하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할 수 있는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공인받고 있어요. '나는 통일교인이다' 할 때 통일교인은 누구의 공인을 받아야 되느냐? 통일교회만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는 통일교회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의 공인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공인하는 통일교회의 공인을 받으면 되지만 하나님이 공인하지 않는 통일교회의 공인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엇갈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늘나라의 전체를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있느냐? '우리는 그러한 젊은 청소년시대에 있다. 역사에 있어서 우리만이 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 긍지, 역사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이때에 하늘의 소명을 받고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늘의 젊은 청소년이다' 하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여러분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짧은 역사나마 20세 전후의 연령층에 있는데 '과거의 아무개였던 나와 오늘의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근본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 학생들 그래요? '이제 하늘이 나를 불러서 사명을 맡기는 데는 옛날 아브라함보다도 더 큰 사명을 맡길 나다. 왜? 그는 실패자가 아니었더냐? 모세보다도 큰 사명이 맡겨진 나다, 왜 그러냐 하면, 그도 실패자가 아니었더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명을 짊어진 나다. 그 선조들이 지내온 청소년 시절보다도 빛나는 가치를 내가 지녔기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나는 다르다. 서 있는 자체도 다르고 내 생각도 다르고 안팎도 다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래요?(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내가 차간에서 척 보고 '야 젊은 녀석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갑니다. 한 시간 반만 얘기하고 가야 쉽니다. 누구와 만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열시 반이면 내가 가야 된다구요. 아홉 시에 와서 기다리는데 '야야, 기다려라' 하고 눌러 놓고 왔다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빨리 가야 되겠나요, 천천히 가야 되겠나?「천천히 가셔야 됩니다」 왜 천천히 가야 돼? 여러분이 권유해서 선생님이 시간 안 지키고 전부 다 못 만나고 가게 하라는 말이 아니야?(웃음)
만약에 여러분들이 책임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자고 하면 여러분을 만나야 되겠나, 그 사람을 만나야 되겠나. 「그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 사람을 만나야 된다구요. 알기는 아는구만.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골자만 딱 얘기하겠어요. 골자만 얘기하면 5분 내에 전부 다 끝날 수 있다구요. (웃음) 그렇게 간단히 하자구요.「아닙니다」 선생님은 말씀을 오래 하는 데는 전통이 서 있기 때문에, 두 시간 세 시간 하기 때문에 초판은 졸아도 된다. (웃음) 많은 말을 대해 가지고 전부다 잊어버리는 것보다도 자다가 맨 나중에 한 마디만 기억해도 전부 다 듣고 잊어버리는 것보다 낫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거라구. 여러분이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망하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 기독교가 망할 것 같애요, 그냥 갈 것 같아요? 기독교는 망하게 돼 있다구요. 한 7,8억에 해당하는 세계 인류 앞에 선 기독교를 하늘이 왜 망하게 하느냐? 여러분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왜 망할 수 있는 운명으로 몰아넣어야 되느냐? 그렇게 못난 하나님이냐? 그렇게 일을 수습하지 못하는 하나님이냐?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세계 7,8억의 기독교인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 다 한 길로써 하나님을 붙드는, 하나는 오른 손이요, 하나는 왼손이라면 둘 다 남길 수 있지만, 둘 다 바른손만 쥐겠다 하게 되면…. 유대교와 마찬가지예요. 예수는 바른 손을 쥐려고 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왼손을 쥐려고 해야 하는데, 둘 다 바른 손을 쥐려고 해서 한 손을 쳐버렸기 때문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하나만을 남기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망하게 한 것입니다. 때려 눕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만든 세계적인 무대인 기독교를 어찌하여 망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둬야 되느냐? 그것은 수억이 되는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가치 있는 하나님의 참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 교인들 가운데에서 참된 기독교 인과 거짓된 기독교인 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느 기독교인을 취하겠어요? 참된 것도 취하고 거짓된 것도 취하는 게 아닙니다. 거짓된 기독교인에게는 '참된 기독교인들 앞에 굴복해 와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참된 것은 아벨이고 거짓된 것은 가인이지요? 이것을 굴복해야 돼요. 참된 것을 하나님이 취하면 '여기에 따라 하나되어 와라' 하는 거예요. 하나되는 것은 거짓된 기독교인들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언제나 아벨을 통해 가지고 섭리를 연결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관이지요. 섭리역사의 발전의 동기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할 수 있는 운을 만난 것은 전세계 기독교를 대표한 아벨 기독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아벨 기독교가 나오는 날에는 망할 수 있는 운세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한 교단이 나오는 날에는 둘 중의 하나가 망하기 마련입니다. 망하지 않으려면 아벨 교단 앞에 절대복종해라. 그길을 가지 않게 되면 꺾어진다. 이것이 섭리역사의 결정적 노정입니다. 틀림 없지요.
그러면 왜 기독교가 망해 들어가게 되느냐? 우리가 가인 아벨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가인 기독교만 있다면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망해 버렸다가는 하나님의 복귀섭리고 무엇이고 없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렇지만 아벨 종단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종단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반대하게 되면 망해 추풍낙엽처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아벨 종단이 어디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아벨적인 새로운 기독교, 보다 나은 열매는 미래에 나타나게 되지요? 복귀역사가 그렇지요? 역사가 지나갈수록 보다 나은 가치가 나타났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맨 끝날에 나타나는 종단은 아벨적인 종단으로서 세계사적인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서 나오는 종단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중심삼고 하나 안되고 반대하게 되면 꺾여 나갑니다. 들이쳐야 된다구요. 그것은 원리가 그래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세계 기독교 앞에 아벨 종단으로 나타난 그 종단이 어느 종단이냐? 여러분은 그것이 어디라고 생각해요?「통일교회 입니다」 어디라구요? 통일교회? 욕 많이 먹는 통일교회? 고생을 죽도록 하는 통일교회?「예」 뻔뻔스럽게 대답은 잘 하는구만. (웃음) 웃을 게 아니라구요. 원리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래야 될 것이 아니냐?
수억의 인류 앞에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서슴지 않고 잘라 버리고, 우리보다 높은 평가를 한 하나님의 결정의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결과가 우리 목전에 나타난 것이 아니냐? 이것을 볼 때, 개인 적으로 그들보다도 못한 통일교인은 절대 결코 안 됩니다. 큰일난다는 거예요. 있을 수 있어요?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인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기독교 목사들보다 앞서라,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데도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기독교 교인들은 '예수 믿고 천당가자' 그렇게 믿고 나가지만, 통일교인들은 '통일교회를 믿고 세계를 구해 주자' 해 가지고, 세계가 '당신도 필요하니 어서 가야 됩니다' 하고 끌어 주면 '나도 따라가겠다' 하자는 거예요. 이렇게 다르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예」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는 것이고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믿고 천당 보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조상이냐?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냐, 남을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냐? 아버지에 가까운 사람은 보다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버지는 자기를 생각해요? 아들을 남이라고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남이라면 안 됐지만, 그렇잖아요?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보다 자기를 생각하지요? 어때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가 '야, 이놈아' 하고 뭐라고 하면 속으로 '왝왝왝…' 이런다구요. 불뚝불뚝 꿀떡꿀떡, 소가지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자리는 위하는 자리라는 거예요. 아들의 자리는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하고 나머지가 있으면 아버지를 위하지' 이런 자리입니다. 이렇게 조건적이라구요. 조건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 자리로 돌아가야 되고 아버지 사는 곳에 가려니,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자기를 생각하는 입장을 초월해 가지고 남을 생각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 있어요, 남을 생각하는 자리에 있어요?「남을 생각하는…」 남이라도 어떤 남이예요? 사탄의 새끼, 원수의 종자를 생각하는 입장에 선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남이라도 형편없는 남이라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가 망해 들어가는 것은 누구 때문이냐? 통일교회 때문입니다. 8억 이상의 전기독교 교인보다도 통일교회를 더 높이 평가한 기준을 하늘이 인정해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세워 놓았기 때문에 통일교회와 더불어 하나 안 되게 될 때는 꺾여 내려 가는 거예요. 하나될 때까지 망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돈에 팔려 가고 사람에 팔려 가는 때가 온다는 거예요.
지금 복귀섭리를 두고 보면, 제물을 두고 사고 팔고 하지요? 사탄 것이냐, 하나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무엇을 중심삼고 사고 팔고 하나요?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해요? 뜻보다도 제물입니다. 제물을 알맞게 바치면 내것으로 사 오는 것이요, 못 바치면 내 것도 빼앗긴다는 거예요. 제물 중심삼고 팔고 사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제물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제물과 하나되면 장사가 되는 것이요, 하나 안 되면 손해가 납니다. 제물과 하나 안 되면 제사를 안 드렸던 것보다도 못한 결과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남의 굿하는 집에 괜히 꺼떡꺼떡 찾아갔다가 살(煞)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지요? 안 갔던 것보다 못한 일이 많다는 거라구요. 있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 교인인 여러분들이 이걸 자각해 가지고 세계가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고…. 기독교를 공산당이 전부 다 막죄기는 거예요. 공산당은 뭐냐? 끝날의 기독교를 심판하기 위한 하나의 채찍으로 알라는 거예요. 기독교는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망해 들어가는 그 원인을 알아 가지고 하늘의 뜻 앞에 위배되는 사실을 전부 다 제거시켜 가지고 회개하여 하늘의 긍휼을 바랄 수 있는 자리에 서면 채찍은 거두어진다는 거예요. 채찍이 없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람을 벌줄 때, 몽둥이로 때려 가지고 사람과 사람끼리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시켜 나오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왜 그러냐? 아벨 교단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벨 교단이 통일교회 교단입니다. 통일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기성교회의 어떤 누구보다도 못해야 되는 것이다?「나아야 되는 것이다」 응? 못해야 되는 것이다, 나아야 되는 것이다?「나아야 된다」 반대하는 기성교회가 땅을 바라보면 우리는?「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기성교회가 왼쪽을 바라보면 우리는?「오른쪽을 바라보고」(제스쳐를 하시면서) 기성교회가 이렇게 하면 우리는? 그런 내기를 하고 있다구요. 여기서 잡아 당기고 끌어올리고, 밀고 당기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승리하는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줄다리기를 할 때 누가 누가 승리해요? 갑자기 힘을 쓰는 사람이 승리하겠어요. 끈기 있는 사람이 승리하겠어요?「끈기 있는 사람요」 호랑이 힘내듯 갑자기 '왕' 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가 나중에는 '흐흥' 하는 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끈기가 있어야 되겠어요. '잉' 이래 가지고 버티어야 돼요. 버티다 말면 안 된다구요. 끝까지 버터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지옥간다? 「천국간다」 그건 뭐예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진다?「이긴다」 마찬가지예요. 천국가는 것은 이기는 것이요. 지옥가는 것은 지는 것이라구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싸워서 이깁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더러 싸움 해봤어요? 맨 처음에는 자기가 덩치가 크다고 덤벼들었다가 나중에 조그만 주먹 같은 녀석이 '야 이 자식아, 왜 이래?'하면서 물고 늘어지면 가지도 못하고 '아이구'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해보라구요. '아이구 나 잘못했소'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보기에는 어수룩하지만 그저 악착같이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악착같아요? 기성교회 교인들의 엄포를 듣게 되면 '아, 뭐 사탄 마귀, 뭐 이단' 그럽니다. '이단도 좋고 사탄도 마귀도 좋소. 그것 다 좋지만 나중에 내가 이기게 해주소' 이렇게 하라구요. (웃음)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러는 거예요.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나중에 축복은 내가 받소', 그거예요. '주먹질을 하고 침을 뱉고 뭐 어떻게 할 것 다 하소 그렇지만 맨 나중에 가 가지고 복을 받을 때-야곱은 속여서 축복을 받았지만-하나님도 할수없이 나를 찾아서 축복을 안 해줄 수 없게끔 되면 되오. 그것이 일대의 소망이오' 이래야 돼요.
욕 먹는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매 맞는 것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나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나니 그것은 축복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예」
통일교회 3년 이상 다닌 사람 손들어 봐요. 그 다음에는 1년 이상 된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1년 미만 된 사람 손들어 봐요. 다 풋내기들 이라구요. 여러분에게 칼을 앞에 갖다 대고 통일교회 믿을래 안 믿을래 하면 '아하, 믿을래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웃음) 그런 패들이 될래요. 너털 웃음을 지으며 '뭘 그래요? 내가 아침밥을 안 먹었으니 아침밥 먹으라고 그래요? 나 당신 말 알아듣지 못해요' 하는 패들이 될래요? '당신 말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아이쿠, 믿음이란 말도 모릅니다'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예요?
자 너, 진짜 통일교 믿을래, 너 이제 1년도 못 됐지?「예」 믿을래? 이 녀석, 너 접때 나하고 같이 갔나?「예」1년도 못 된 녀석을 내가 차를 태워 줬구만. (웃음) 너 차 탄 것 자랑했나?「몇몇 친구한테….」 왜 했어, 얘기하지 말라니까?
보라구. 선생님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순 자기 자랑으로 몇몇 친구한테는 얘기했어? 「……」 그래, 통일교회 믿을래?「예」 이놈의 자식, 모가 지를 잘라서 거꾸로 꿰매 달아도 믿어? (웃음) 그래도 믿을래?「예」 거 어떻게 믿나?(웃음)
이 동쪽으로 매달았는데 통일교회 본부 뒤쪽에 있으면 눈을 뒤집고 죽어야 한다구요.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씀하심, 웃음) 왜 웃어? 그래야 된다구요. 대가리를 거꾸로 꿰매 달려 죽는 일이 있더라도 사탄과 정방향이 되지 않게 조금이라도 돌리고 죽겠다는 생각을 해야 돼요. 심각한 일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이것 뭐, 기분 나쁘게 길 떠날 때 죽는다는 얘기는 왜 해? 그 말은 하지 마소!' 이렇게 간절히 빌겠지만 할수없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 수많은 인류가 통일교회 때문에 망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책임감을 느껴야 됩니다. 보라구요. 인류가 36억이라고 하게 되면 사망률을 100대 1로 잡으면 1년에 3천 6백만명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냐. 3천 6백만 명이 어디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들이 일년만 일찍 이 복음을 알고 하늘의 뜻을 알았더라면, 통일교회 진리를 알았더라면 3천 6백만 명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하루에 얼마나 손해냐? 360분의 1이 아니냐. 하루에 약 12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이 지옥행이 아니냐. 이 지옥으로 가는 처량한 모습을 내가 하루를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가로막아 가지고 하늘로 안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느냐?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가야 되겠다. 학박사가 돼야 되겠다' 그런 것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 심각한 문제가 달려 있다는 거예요.
또, 기독교인이 한 8억이 된다면, 그들이 하늘나라에 가겠다고 그렇게 안달복달하는데, 4분의 1이면 사팔은 삼십 이(4×8=32), 36억이니까 8억이 넘는구만. 4분의 1이면 사구 삽십 육(4×9=36), 9억의 100분의 1이니까 일년에 약 9백만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냐? 기독교인 9백만 명이 지옥행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이걸 생각할 때 잠을 자겠어요? 거기 에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끼는 거예요. 형님 처자 친척까지 끼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거 내가 배고프니 뭐 어떻고…. 지금 이런 판국에서 밥이 다 뭐예요? 잠이 뭐예요? 뭐 쉴 게 뭐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쁜 길이라는 거예요. 하고 하고 또 하고 나서 끝을 볼 수 없는 처량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사망선에 처해 들어가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보기 때문에 쉴 수 없는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고독한 자리에서, 누구 한 사람에게도 동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누구에게 사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수천년 동안 인류와 더불어 배후에서 슬퍼해 나온 것이 아니냐?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아버지가 아니냐? 그것을 모르고 그 아버지의 상속을 받겠다는 사람은 도적놈입니다. 어림도 없어요. 그거 심각한 문제예요, 아니예요?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을 구하려니 기독교인보다 악착같아야 되는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려다가 까딱 잘못하면 같이 죽지요? 그러니 모가지를 후며 쥐거든요, 뜨게 되면 붙안는 거예요. 그런 것 알아요? 선생님이 그런 말했다고 해서 이 다음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을 때 그런가 시험 한번 해보겠다 해 가지고 후닥닥 뛰어 들어가고…. 아예 그러지 말라구요.(웃음) 틀림없이 죽는 거예요. 죽게 된 사람의 힘이라는 것은 구해 주겠다는 사람 힘 가지고는 당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죽을 힘을 다 써서 한 번 잡으면 떨어져 나가면 나갔지 안 놓는다는 거예요. 죽을 힘 다 쓴다는 말 들어 봤어요? 죽을 힘을 다해 가지고 걸머쥔 것을 구해 주겠다고 간 녀석이 이겨 낼 힘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힘이 장사라면, 레스링 선수가 유치원 애들 앞이라면 암만 그래도 문제없다는 거라구요. 보다 악착같지 않고 힘이 없어 가지고는 구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 틀렸어요, 맞았어요?「맞습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을 구해 주려니 그들보다 악착같이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시궁창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야 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 그러면 죽는다. 나와라. 바깥으로 나와라' 한다고 나올 수 있어요? 빠진 사람 이상의 힘을 안 들이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위에서 구해 줄 수 없으면 아래로 내려가서 구해 줘야 되는 거예요. 인간이 6천년 동안 떨어져 내린 것을 끌어 당길 줄이 없습니다. 그러니 밑창에 내려가서 끌어올려야 된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모르지요.
여러분들 파리 같은 걸 보잖아요? 어떻게 하느냐면, 파리의 날개를 다 뜯어 가지고 놓으면 저 밑창에서부터 올라오지요? 그래, 거의 다 올라와 가지고 조금만 더 기어올라오면 되는데 기어올라오다가 그만 두고 꺼꾸로 돌아서면 기분이 어때요? 그거 구경하면 재미있지요. 그것이 자기 아들이라면 어떻겠어요? 한발자국만 힘을 써 가지고 몇 센티미터만 더 올라오면 될 텐데 '아이쿠!' 이렇게 되면 어떡하겠어요?
자, 그런데 자기 자식이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기가 막히겠어, 안 막히겠어? 세상에 딴 생각 할 여지가 있겠어요? 여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딴 생각 절대로 하지 못한다구요. 하나님 앞에서 역사과정을 통해서 몇천 명이 매일같이 그 놀음 해 가지고 떨어져 내려 간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아이구, 잘한다'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내 손이 미치지 못했구나, 세웠던 아무개 아무개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저렇게 되는구만, 책임을 했으면 저렇게 안 될 것인데, 일년을 더 빨리 노력했더라면 저런 일이 없을 텐데…' 하는 겁니다. 하늘이 바라기를 몇 년까지 책정해 가지고 그때가 되기를 바랐는데, 여러분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비참상이 연장되어 나간다고 할 때는 누가 벌을 받겠느냐? 여러분들이 배가의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택했지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그런 사람의 후손은 끊어지는 거라구요. 무섭다는 거예요.
뭐, 이런 얘기 하려면 한정 없어요. 머리가 멍하게 해주는 얘기가 많지만 돌아갈 때 기분 나쁘면 안 되겠기 때문에…. 기분 나쁘면 안 되거든요. 무거운 짐을 지워 주면 안 되지만 구태여 결론을 지으려면 기성교회 교인보다 악착같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공산당까지도 구해 줘야 되겠기 때문에 공산당 이상 악착같이 해야 되겠어요. 구함받으려고 할 때 말이예요. 어린애가 강가에 서 있는데 내가 물에 빠졌다고 어린애보고 어른이 말이예요, '애기야 날 구해 줘' 그래요? 그건 미친 놈이라구요. 그렇지만 애기가 한 천 명 있더라도 자기보다 힘센 사람이 한 사람 있다면 애기 천 명 제쳐 두고 힘센 한 사람에게 '여보! 날 구해 주소' 그러는 거예요. 그러지요? 망해 들어가는 판국에 애기와 같은 무리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힘센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성교회 떼거리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사망의 구렁텅이에 썩어 떨어져 들어가면 그런 기성교회 목사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목사들보다 강한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전체를 버리고 '여보! 날 구해 주소' 그런 놀음이 벌어지지요? 우리는 공산당보다 악착같아야 되고 공산 당보다 강해야 되겠어요. 그건 자연적으로, 힘의 비준에 있어서 강해야 구해줄 수 있다구요. 그건 원리적인 귀결이예요. 자연적 원칙이라구요.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보는 눈과 우리가 보는 눈은 다릅니다. 저들이 요만큼이면 우리는 이만큼, 저들이 밥을 두 그릇 먹으면 우리는 그보다 나아야지요? 몇 그릇 먹어야 돼요?「열두 그릇요」(웃음) 그래, 기성교회가 밥 두 그릇 먹고 여덟 시간 일하는데 우리는 열두 그릇 먹고 여덟 시간 일하면 누가 망하겠어요?(웃음)
남을 위해서 하는 데는 많이 할수록 좋은 거예요. 알겠어요? 상대를 위해서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많이 할수록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밥 먹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먹어요? 남을 위해서 먹어요?「나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먹는데 나를 위해서는 이기면 이길수록 나쁜 것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밥 두 그릇 먹는 것보다 열두 그릇 먹는 것이 좋은 거예요? 6배 먹었으면 6배 만큼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또, 기성교회 사람이 여섯 시간 자게 되면 우리는 열두 시간 자야 되는 것이다!(웃음) 그건 뭐예요? 남을 위한 거예요, 나를 위한 거예요? 나를 위하여서 하게 되면 망하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이 원칙을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전도하는 데 있어서 여섯 시간 하는데 우리는 열두 시간 하면 되는 것이다' 이건 나를 위하는 거예요, 남을 위하는 거예요?「남을 위하는 겁니다」남을 위해서는 더 할수록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 돼 있어요. 알겠어요?
여러분, 선생님 말 다 잊어버려도 좋아요. 하나님의 사람 되는 비결이 뭐냐? 이것만 알면 돼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 뭐냐? 나를 위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 앞에 꼴래미 되는 것이, 하늘에서도 물론 일등되지만, 결과에 가 가지고도 모든 사람이 '아! 훌륭한 분이요, 일등이요' 하고 모시게 됩니다. 이것을 알라구요.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전부 다 맞춰 보라구요. 역사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교육의 모든 원리도 여기에 입각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선한 사람이 되라, 남을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는 일을 많이 할 때는 악한 거예요. 거기에서는 후퇴가 벌어집니다. 있던 환경도 떠나 버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보다 노력하는 데는 거기에 살이 붙는 것입니다. 위하느니만큼 살이 붙는 거예요. 흥망성쇠는 이 기준에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보다 많이 하게 될 때 나는 흥하는 것이요, 나를 위해서 보다 많이 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우리 아가씨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알겠습니다」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애요? 「알 것 같아요」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눈도 다 안다구요. 그렇지요? 눈도 알 수 있어요. 또, 코도 좋으면 벌렁벌렁하지요? (웃음) 입도 다 안다구요. 전부 그런 거예요. 좋으면 그 기준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귀도 쫑긋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틀림없이 알았지요?「예」
남을 위해서 많이 노력하는 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거예요」 좋은 만큼 노력을 하는 데 어디까지예요?「무한히」 무한히라는 말이 쉽나? 내가 남을 위해서 무한히 하는 데는 그 한계점이 어디까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산다」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죽는다」 죽는 것이다. 이 말은 천리(天理)를 찾아 나가는 대도(大道)를 밝힌 말이요. 공식이 되는 명언입니다. 남을 위하게 된다면 살고 나를 위하게 된다면 왔다갔다합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짜예요. 진짜예요?(웃음) 그걸 몰라 보는 거라구요. 무엇으로 진짜 가짜를 가리느냐? 자기만을 위하려고 할 때는 나쁜 것이 되는 거예요. 그건 뻔한 얘기인 거라구요.
그럼, 전도를 하러 간다고 할 때, '얘, 너희들 뭐하려고 전도하러 가니? 하면 '뭐하러라니? 믿음의 세 아들딸 찾아 가지고 축복받기 위해서 전도 하러 가지' 이렇게 대답했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거예요?「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축복을 받더라도 끝나는 거예요. 그것 하고 나서 또 가라고 하면 '헤, 나 축복받았는데…' 이런다구요. (웃음)
전도를 함으로써, 내가 믿음의 아들딸도 물론 필요하고 축복도 필요하지만 나라를 찾고 세계를 대하여 가기 위한 공식적인 첫출발이 되는 것을 누가 생각하느냐.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함)
여기 전부 몇 명이예요? 「177명입니다」 177명, 기분 나쁘게. 177명이 뭐야 7수라서 좋은가? 지금 177명, 178명이 대수야? 177명, 이 녀석들을 잡아다가 무엇을 시켜야 될 것이냐? 그저 몽둥이로 찜질을 해서라도 어떤 사람을 만들어야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언제나 놀러 가기를 좋아 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으면 그들이 사는 나라나 그들이 사는 곳은 전부다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맞았어? 「틀렸습니다」
만일 여기 177명 중에서 자기만을 위하는 패가 절반 이상이 될 때는 통일교회는 완전히 망살이 뻗쳤다구요. 알겠어요? 이것 똑똑히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틀림없이 알았지요?「예」 바른쪽 귀로도 듣고 왼쪽 귀로도 듣고, 혹은 마음을 통해 가지고 인식을 하고 직감까지 가해서 갈 길임을 똑똑히 알았지요?「예」 정말?「예」
그러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어떤 곳으로 보내 줘야 될 것이냐? 너희들의 소원이 뭐야? 통일교인의 소망이 뭐냐 하면, 전도하러 나갈 때 그저 돈이나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가서 그 동네에 들어가자마자 이밥에 잘먹게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한 온돌방에 자게 해주고, (웃음) 더울 때는 그늘 아래 아니면 삼수갑산 옥수 같은 냇가에 쓱 들어 앉아 가지고 냉수 욕을 하면 동네 사람이 전부 다 부러워서 통일교회에 들어올 텐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원해야 되겠느냐. 그 반대가 되어야 되겠느냐? 어느 것이예요?「그 반대의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 타지에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여름방학 때쯤 되면, 고향이 그리워 가지고 교장 선생님의 축사가 끝나면 그저 전부 다 집에 돌아갈 생각뿐이지요. 숙제를 받아 가지고는 짐보따리를 미리 앞에 갖다 놓는 거예요. 그래야 축사가 다 끝나게 될 때는 먼저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건 고향을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고향이 얼마나 그리운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눈이 와도 그립고 비가 와도 그립고, 뭐 밤이 되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립다가 고향에 가면 반가와서 '어서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라' 하는 거예요. 자, 그렇게 보따리 두둑한 것 가지고 하숙집에 가자마자 문 열고 집에 간다고 인사를 빨리 끝내는 게 좋아요, 들어가 앉아 가지고 싸 가지고 왔던 보따리 풀어 놓고 '고향 집이 그립고 어머니 아버지도 그립지만 나는 피곤하니까 잠이나 자지, 난 그만두겠다' 하고 떡 드러누워 잠자는 게 좋아요? 남들은 다 가는데 잠이나 자면 어떻게 돼요? 잠자더라도 도움이 안 돼요. 잠을 자서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아이구 좀 일어 나시오' 해도, '다른 사람들은 몇 시 기차로 지금 가고 있겠구나' 그런 것도 생각지 않고 꿀돼지마냥 쿨쿨 사흘 나흘 들어가 자는 거예요.
자, 그러면 자고 싶어도 고향에 가는 사람과 쿨쿨 꿀돼지마냥 잠자는 녀석 중에 누가 나아요? 잠자는 사람이 나쁜 거예요. 자 그 잠은 누구를 위해서 자느냐? 나를 위해서 자는 거야, 남을 위해서 자는 거야?「나를 위해서…」(웃음) 결국은 자기의 뜻을 위해서 자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남을 위하는 하나의 뜻을 위해서 잔다 할 때는 잠자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그런 잠은 얼마든지 자라구요. (웃음)
여러분은 이제 새파란 청춘들인데, 통일교회 처녀 총각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하기계몽전도다' 해 가지고 7월 21일부터 출동한다고 딱 광고가 나 있다구요. 이미 이것은 다 결정되어 있다구요. 그것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자 보라구요. 중학교 1학년서부터 1학년 여름 겨울, 2학년 여름 겨울, 3학년 여름 겨울, 고등학교 1학년 여름 겨울, 2학년 여름 겨울, 3학년 여름 겨울, 이거 다 지내 가지고 내게 남아진 것이 뭐냐? '아이고, 이제 이 좋은 때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 들으니 나 전도 나가야겠는데 예비고사 합격을 할 정도도 안 되니 기가 막힌다. '결국은 내가 손해보지 않았소?' (웃음) 요렇게 되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를 탓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 녀석아, 네가 잠을 너무 많이 자지 않았느냐, 그 3분의 1은 잠을 안 잤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걸 탕감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몇 배 노력하게끔 결심을 갖고 가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결심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휘하에서 그럭저럭 나왔지만 이제는 자기가 주동적인 입장에서 결의해 가지고 나서게 될 때는….
자, 결과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남을 위해서 일하다가 자기를 중심삼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싸움을 하지 않고도 완전히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쌓아 둔 공적을 완전히 원수 앞에 넘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겨 줄 때 원수가 고맙게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빨리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한 민국에 내려와서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 그럴 때는 옥살박살 녹아 나는 거예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공적인 길에서 출발했으면 끝까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우리 조상들 가운데에 그런 사람이 누구 였더냐? 예수라는 분 한 분밖에 찾아볼 수 없더라는 거예요. 언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축복을 해줘 가지고 '천지가 네 주관하에 들어오고, 내가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내 아들이고, 이 세계는 네가 마음대로 주름잡고 다녀라' 하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세울 때까지 얼마나 내적으로 가르쳐 주었겠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결심을 하게 해 놓고 나중에는 죽을 자리에 갖다 놓았다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맨 처음에는 좋았다구요. 맨 처음에는 예수도 희망에 벅차서 이어오병(二魚五餠)으로써 5천여 무리를 먹이고 어디 가나 전부 다 마음대로 될 것 같은 판국이 벌어질 때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몰려 가지고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으니 거 좋았어요. 나빴어요?「나빴습니다」 나빴다구요.
그렇지만 나쁜 자리에서도, 출발한 것이 좋았기 때문에 좋았던 출발의 그 동기와 원칙을 죽을 때까지 어떻게 갖고 넘어가느냐 하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참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냐? 그러한 대표자가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는 만민을 대표한 참사람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예수의 사상은 죽은 이후라도 역사를 구할 수 있는 터전으로서 발전해 나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냐? 이건 틀림없는 역사적 실증이라는 거예요. 알겠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사람과 그 하나님의 사람 아닌 사탄의 사람이 어떻게 다르냐? 하나님의 사람은 시종여일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답이라구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달라요? 시종여일이예요. (판서하심 ) 알겠어요?「예」
여러분, 통일교회 말씀 듣고 좋아서 들어왔어요, 나빠서 들어왔어요? 「좋아서 들어왔습니다」 이거 통일교회 말씀을 가만 들어 보니까 뒷맛이 좋거든. '야 요것 봐라, 조그만 녀석이 얘기하는데 저것 언제 저렇게 똑똑하게 되었느냐? 나는 고등학교 몇 학년인데 저 고등학교 1학년 애가 그 원리인지 무엇인지 말씀을 하는 것 보니까 나는 못 당하겠다' 어떻든 간에 맨 처음에 통일교회 말씀 들을 때 좋아서 들어왔어요. 나빠서 들어 왔어요?「좋아서 들어왔습니다」 야, 이거 후닥닥 쫓아와 풍덩 빠져 죽고 싶어서, 아니면 살랑살랑 다니고 싶어서? 어떤 거예요? 그건 여러 가지로 다 다를 거라구요. 어떻게 했어요? 풍덩 빠져 가지고 기쁨 가운데서 들어왔어요, 깐죽깐죽하면서 힘들게 들어왔어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기에 있는 177명이 다 다르다구요.
여러분은 순종이 좋으냐, 반순종, 순종(純種)의 반대…. (웃음) 거 말이 어때요? 반순종이 좋으냐, 같은 종자가 좋으냐? 어떤 게 좋아요?「순종이요」 그건 누구나가 순종을 좋아하지요?「예」 진짜 종자를 원한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면 진짜 종자가 누구냐? 통일교회 원리를 전부 다 입으로 먹고 눈에다 넣고 코에다 대고 그저 전부 다 몰아 넣고, 그것도 부족해 가지고 뒤집어 쓰고 해 가지고 '야 이거 나 기분 좋다' 이런 사람이예요. 이런 자리에 들어와 가지고 꽁무니 빼고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기분 안 좋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 순간치기 모양으로 원리를 좋아하는 패가 좋아요, 깐죽깐죽하면서 따라오는 패가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순간치기요」
자, 하여튼 '나쁘지 않아서 들어왔다' 하는 말은?「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을 봐도 사실이요. 땅을 봐도 사실이요, 어머니 아버지를 봐도 사실이요, 누이 동생 혹은 오빠를 봐도 사실입니다. 만일 반대를 받게 된다면 점점 강해진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너 통일교회 못 간다' 하면 '흥, 못 간다고 해서 못 가? (웃음) 반대하면 할수록 점점 후퇴하는 것보다도 반대하면 할수록 점점 강해진다구요. 그런 것 느껴 봤어요?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의 반대를 받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반대 안 받아 본 사람보다도 반대받아 본 사람이 났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대장간에 가면 대장일을 한다구요. 그렇지요? 쇠를 두들기는 것이 좋은 쇠가 되느냐, 안 두들기는 것이 좋은 쇠가 되느냐?「두드리는 것이…」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나쁜 쇠가 되는 것이다?「아닙니다」 그거 한없이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쇠는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예」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죽어 버리면 안 되지만 (폭소) 안 죽을 수 있을 만큼 맞으면서 연단해 가지고…. 그럴 때 그것이 나라를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세계를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하늘을 위해서 두들겨 맞으면 그만큼, 두들겨 때린 사람이 약하게 될 때는 몽땅….
애국자 세 사람이 같이 죽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동기도 똑같고 생긴 것도 똑같고 조건도 똑같고 나이도 똑같고 밥도 똑같이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세 사람이 죽는데 매 한대 맞아 단번에 죽는 사람과, 백 대 맞아서 죽을 뻔하다가 또 살아나고 죽을 뻔하다가 또 살아나고 그렇게 백 번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사람이 하나 있고, 그 다음 백 한 번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으면, (폭소) 어떤 사람이 일등이예요? 애국자 중에서 일등 애국자가 누가 돼요?「백 한번…」그런 애국자가 반드시 일등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공적인 입장에서 가지고 맞으면 맞을수록, 반대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냐, 솟아 올라가는 것이냐?「솟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솟아올라갑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니까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임자네들 치다꺼리 해 주기도 내가 신물이 난다구요.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떡 따르겠다고 결심했는데 가만 보니까 선생님이 까닭없이 자꾸 욕을 하고 그러면 소가지가 편안해요? (웃음) 마음이 편안해요? 소가지가 편안해요? 편치 않다구요. 편하지 않지요? 이렇게 조금만 도수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눈이 휘뒤집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또 직접적으로 자기하고 관계가 돼 있으면 눈이 뒤집어져 가지고 붕 뜰 거라구요.
젊은 녀석이 지금까지 욕을 먹고 이래도 가만 있고 저래도 가만 있겠어요? 한번 받아야지요. 그런 의분심이 있으면 못 참아요. 그런데 만약 찌른다고 할 때는, 선한 사람을 찌르면 큰일나지만 그 나라의 역적이요, 세계 인류가 때려 잡아 죽이기를 바라는 악질을 찔러 죽였을 때는 괜찮은 것입니다. 그럴 때 죽이지 않는 사람이 간신입니다.
사탄의 배를 찌르면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좋아합니다」 그를 찌르면서 '너는 너의 선조를 이렇게 이렇게 망치고, 이러이렇게 나라를 망치고, 이러이러한 역사의 죄를 짊어지고 이러했기 때문에 반드시 공법의 치리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전부 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쳐 죽여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만일 이북에서 이남으로 내려 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북에서 넘어 오면서 누구를 죽여 가지고 죄를 지은 녀석인데, 이남에 넘어와 가지고, 자기가 사람을 죽였으니 벌해 달라고 날마다 공판정에 호소하게 되면 판사가 판정해 그 사람을 형무소로 보낼 수도 있고 형장으로 보낼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죄의 진상, 즉 죄상을 알게 될 때는 '이 녀석아, 남한에 오기 전에 죄를 지은 것이잖아! 이북에서 너 이렇게 살았지 않았느냐 이 녀석아' 하고 잘못한 걸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알고 조건이 부가 될 때는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만일 하늘땅이 전부 다 공인할 그런 입장이 되거든 내가 잘못하게 될 때, 하늘 앞에 전부 다 선포하고, 인류 앞에 재판을 받은 조건만 세우면…. 알겠어요?
이렇게 보게 되면 공적인 입장에 내가 얼마만큼 적응할 수 있고 그런 입장에 섰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의 모든 공적인 기준을 아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래서 여러분의 선조들을 여러분은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분의 몇천 대 전 선조부터 하늘을 향한 공적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너희들 선조가 이러했기 때문에 이 녀석아 잘난 체 해서는 안 돼'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런 원리를 알아 가지고, 이런 원리의 전통을 알아 가지고 처리하게 되면 죄를 풀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권한도, 하나님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대신 수행할 수 있는 길도 없지 않아 있더라 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의 공적인 것을 책임진다 하는 사람….
죄지은 사람이 공판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아 형장에 섰을 때는, 이 사람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떤 자리에 서고, 또 죽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공적인 것을 남기려고 하게 되어 있지 자기를 남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죽을 자리에 내 몰아도…. 그렇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도 하나님 앞에 불평할 사람이 있다, 없다?「없다」
그러면 통일교회 사람들이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람은 공적인 기준에 서 가지고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하는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러지 않았어요? 성경에 보면 유대법에는 음행한 여인은 당장 돌무더기에 맞아 죽게 되어 있어요. 그래 교법사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아 이러이러한 현장범을 잡아 왔는데 어떻게 합니까? 할 때, '너희 중에 양심에 죄 없다고 생각 되는 사람이 돌로 쳐라' 하니까, 다 도망갔지요? 자기가 돌멩이로 칠 수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을 다 알고 '네가 이러이러할 때 하늘의 심정은 어떠했고, 아버지의 입장은 어떻다' 하는 것을 전부 다 안다면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입장을 다 알아야만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는 형법 몇 조 몇 조에 의해서 무슨 형이 얼마다 하고 형량을 정할 수 있고 특사도 허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법이 있는 한 그 법을 사용한 판결은 언제나 가능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그 나라 주권자면 그 나라, 그 주권자도 공법을 따를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에서 어떤 한 사람에게 양심의 가책을 갖게 해서, 혹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그 사람이 다니다가 떨어지게 되었다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은 하늘의 공법을 세우기 위해 당당코 한 말이었는데, 말을 자기를 위해서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쳤다고 합시다. 그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끝내는 불평한 사람이 망하지, 사랑한 사람이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사람은 공적인 원리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하여 선악의 모든 것을 가려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공적인 원리원칙이라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늘편에 설 수 있는 공적인 기준은 어디에 속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공적인 기준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복귀섭리역사상의 모든 성인들은 전부 남을 위하는 공법을 현실에서 실행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예요.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복귀해야 되고, 또 세계를 복귀해야 할 공적인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공적인 기준에서 어느 정도까지 복귀하고 난 후에는 하늘땅을 대한 공적인 기준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법을 따라서 여러분 앞에 하늘에 상달된 명령을 내려도 행치 않는 자는 하늘의 원수이자, 하늘과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쳐야지요? 그렇지요? 공법을 선포한 그 시간부터 실효가 되기 때문에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모르면 안 된다구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이 이러한 원리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원리대로 살게 될 때는 사탄도 칭찬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칭찬할 수 있고 죄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지요? 판사는 웬만한 형량에 대해서는 용서해 줄 수 있는 특권이 있어요, 그 한계는 다르지만, 대한민국에 판사들이 많지요? 판사도 많지만 어떤 판사든지 한번 내린 판결은 전국에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법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어요. 이와 같은 환경에 여러분이 우겨싸여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자, 본론으로 이제 돌아가자구요.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가 아벨적인 통일교를 망하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공적인 입장에서 망하라고 하는 이들을 대해서 벌할 것이냐, 축복해야 할 것이냐?「축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은 끝날에 지금까지의 원한을 풀려고 벌주고 있는데, 심판하고 있는데 그건 왜? 축복해 주게 되면 나쁜 것이 아니야? 왜? 대답해 봐요. 왜 그런지?「통일교 회가 나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먼저 모셨기 때문에?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타락론을 통해서 우리가 아담 해와를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벌주게 된 것을 좋아했어요, 나빠했어요? 「나빠했습니다」 근본문제에 들어가는 거예요. 심판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적용하고 싶었겠어요, 안 싶었겠어요? 심판이라는 명사를 적용하고 싶었겠어요, 안 싶었겠어요? 할 수 없어서 하지, 마음은 원치 않는 거라구요.
자기 사랑하는 아들이 대한민국 국법에 저촉되어 가지고 사형장에 나간다면 그 아들을 보고 '너, 어서 죽어라' 그러겠어요? 대한민국이든 무엇이든,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대한민국도 무시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있어요. 그렇지요.
대한민국은 자기가 있기 전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내가 없더라도 남아질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존중시하기 위해 세워진 헌법이니, 그것을 생각하니 자식이 죽을 자리에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입장에 설 뿐이지, 본래 부모의 마음은 대한민국이 있기 전에 있는 마음이라구요.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벌주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에게 동생이나 형이 있었다 합시다. 단 한 사람의 형제가 있어 가지고 그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여, 아담 해와가 벌받을 것을 대신 제가 짊어지고 쫓겨나겠습니다. 나를 대신 잡아 죽임으로써 아담 해와를 용서해 줄 수 있거들랑 용서해 주소' 했다면 어떻게 할까요? 생명을 내놓고 죽음을 각오하는 그런 아들딸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했을까요? 심판하는 날에는 전부 다 심판해 버려야 된다구요.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를 쫓아내는 것도 쫓아내는 것이지만 아담 해와를 위해서 대신 희생하겠다는 아들까지 쫓아내야 된다구요. 그럴 수 있어요?
만일에 끝까지 같이 죽겠다고 그럴 때는 죽을 자리에서도 그것을 연장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요? 쫓아낼 시간을 연장시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던들 복귀섭리는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해결되었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만약에 그러한 아들이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슬퍼하겠어요. 기뻐하겠어 요?「기뻤겠습니다」기뻤겠다는 거예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것이 아벨의 자리입니다. 아벨의 자리 알겠어요? 가인은 뭐냐? 쫓겨난 아들이요, 쫓겨나야 할 아들이라구요. 만일 '하나님이여, 쫓겨난 아들의 죄를 나에게 짊어지워 주소. 그는 나의 혈육이요 당신의 혈육이 아닙니까?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이 당신의 본심이 아닙니까?' 하는 심정을 갖고 들이대게 될 때 '야 이놈아! 망할 자식아, 천벌을 받을 녀석!' 그러나요? 그때는 하나님도 '야, 나보다 낫구나' 그러겠지요? 그렇다는 거예요.
둘째 아들이 맏아들보다 낫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이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일 귀한 것을 선물로 주려고 할 때, 축복을 해주려고 할 때,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나는 그 선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안 받겠습니다. 죽어도 안 받아요' 이러면 아버지는 '받아 이 자식아!' '안 받아, 안 받아' 이렇게 싸움이 벌어졌다 그거예요. 주려고 하고 안 받으려고 하고 끝까지 서로 양보를 하여 싸우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만 생각해 봐요.
만일 아버지가 주먹으로 강하게 때려도 끝까지 못 받겠다고 하면서 '내게 주는 것보다도 그 아무개 형님에게 주소. 나 대신 형님주라구요' 하고 밟히면서도 그러다가 만일 죽어 버렸다고 할 때 어떨 것 같아요? (웃음) '그것 형님에게 주라구요' 이러다가 아버지한테 밟혀 가지고 죽었다 할 때는 그 아버지가 얼굴을 들겠어요? 생각해 봐요. 그 아버지가 얼굴을 들겠어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하에 몹쓸놈, 천하에 몹쓸 놈'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렇겠습니다」 그거 틀림없지요? '천하에 몹쓸 자식, 이런 일이 어디 있나?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요. 응?
그 사체를 보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겠다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머리 숙여 가지고…. 자, 그것을 형님에게 갖다 주면 형님이 그것을 받겠어요? (녹음 상태가 불량하여 약간의 분량을 정리하지 못했음)
자기가 타고난 운명에는 타고난 행복의 양이 있는 거예요. 그 행복의 양을 다 못 누리고 만민에게 나누어 주면 불행했던 만민이 행복의 양을 계승해 가지고, 나는 불행했지만 만민이 행복을 계승할 그 터전 위에 서가지고 만민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양반도 …. 국민을 대신하여 희생한 애국자는 국민들이 머리 꼭대기에 모시겠지요? 그렇지요? 올라가요, 안 올라가요?「올라갑니다」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공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해라' 할 때, '아이구 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6년 했으면 그만이지, 또 하라구요? 난 못 해요' 하겠지만, 보라구요. 효자나 충신은 죽을 때까지, 죽음과 같이하지 않고는 진짜 충신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충신은 죽기 전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리 고생을 했더라도 오늘 한마디 후회하는 말을 하게 되면 충신이 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충신이 됐더라도 이 시간에 불충하게 되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죽음의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충효의 도리를 하고 가야만 충효를 다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길에 있어서는 충과 효는 그 과정이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이고,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아들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기 전까지 불효했지만 최후에 부모가 죽을 자리에 처했을 때, 지금까지 효도하던 자식은 불효하게 되고 불효한 자식이 돌아서게 되면, 효도하던 그 자리를 이어받아 가지고 한 순간 효도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앞에 효자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하루의 행동의 기준과 더불어 효자의 칭호를 갖고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 요?「그렇습니다」그렇게 됩니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그 목적을 향해서 가는 사람 앞에 영광의 상속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 틀림없지요?
개인적으로 보면, 자기를 위하여 더 일하는 것은 악이요, 남을 위하여 더 일하는 것은 선이다. 이렇게 되지요? 자기를 더 위하는 길은 망하는 길이요, 남을 더 위하는 길은 흥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흥하는걸 좋아해요, 망하는 것을 좋아해요?「흥하는 거요」'아, 너희들이 흥하면 좋겠다. 흥해라 흥해라' 이렇게 바라고 있는 것은 하늘편이요, '아, 저들 망해라 망해라' 하는 패는 사탄편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은 개인 대해 가지고 '흥해라 흥해라' 한 사람이라고요. 죽을 때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그러니 …' 하면서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흥해라 흥해라 하는 패는 하늘편이요, 망해라 망해라 하는 패는 사탄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망하라고 하는 마음 바탕을 가지고 대하는 데는 사탄이 같이하는 것이요, 흥하고 용서하겠다고 하는 자리에 설 때는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얼마든지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한번 용서해 주고 두 번 용서해 주고 세 번만 용서해 주면 내 마음에…. 슬슬 녹아나는 거라구요. 세 번만 알 수 있게 용서해 주라는 거예요. 그러면 틀림없이 내 앞에 와서….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전개해 나왔던 거예요. 알겠어요? 어찌하여 복귀섭리가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오지 못 하였느냐 하는 결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선조들이 보다 큰 미래를 위하여, 보다 큰 장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그 날을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끝까지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앞에 흥하는 승자가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하나님의 뜻 앞에 언제나 암적인 존재가 되어 패자의 서러운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역사를 안 것은 시대적인 행로를 걷기 위한 것이니 그것을 표준 삼아 가지고 그 행로에 동참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내일을 위주로 내일의 번창을 위해 내일이 옹호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 길이 하늘이 찾는 길이요, 자리인 것을 알고, 그 자리를 닦아 놓은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이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역사적인 길입니다. 공산세계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나가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우리 교회가 망하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나갑니다. 목적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 그런 원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세계적인 사상체제인 이 공산세계는 망하지만 통일교회는?「흥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개인적인 복귀노정이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복귀를 완성 하면 거기서 개인적으로 안식할 것이 아니라, 안식의 자리, 내 복받을 수 있는 자리를 하늘 앞에 돌려 보내지 않으면 인류 앞에 돌려야 되겠다, 내가 완성한 것을 나를 위해 완성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완성했고 인류를 위해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안식의 터전이 있거든 하늘 것으로 인류의 것으로 주겠다 하고 나서는 사람은 하늘이 또다시 필요로 하는 것이요, 인류가 또다시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개인복귀완성했으면 탕감조건 없이 가정복귀완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원칙에서는 탕감복귀도 통하지 않고…. 왜 그러냐? 아담이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았으면 개인완성과 더불어 가정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벌어집니다. 그렇지요? 거기서는 탕감조건이 없어요. 그 자리는 하나님만을 위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만을 위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리는 자기가 본래 가질 수 있는 뜻의 바탕의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탕감복귀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완성하면 가정적인 탕감복귀를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 복된 길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지 않고 이것을 넘으려면 또다시 제물을 드리고 넘어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연을 갖추고 나가게 될 때는 무한히 전진적인 발전의 노정을 우리가 상속받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가정적인 완성을 해 가지고 그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 우리 가정은 하늘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쳐 드리고 희생하고 나서게 될 때는 탕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 자체가 산제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물은 소유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존재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을 가지는 것도 하늘을 생각하면서 소유관념을 갖는 것이요, 세계 인류를 생각하면서 소유관념을 갖는 것이며, 존재의식도 하늘을 생각하고 인류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를 초월한 공적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산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것이요, 인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개인을 거치고, 가정을 거치고,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 세계를 거치게 될 때, 그 세계가 지상의 천국이라고 하느니라. 알겠어요?「예」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섰으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표한 공적인 입장에 섰고 세계 인류를 위한 공적인 자리에 섰기 때문에,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체가 망하더라도 감수하며 가겠다고 하는 국가적 체제가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하늘 앞에 산 제물과 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제물 앞에는 하나님도 머리 숙이지요? 보라구요. 소를 잡아 제사드리게 될 때는 그 집 할아버지라도 제물 보고 절해요, 안 해요?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상을 차린 장본인도 전부 다 머리 숙이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이 원칙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산 제물, 죽지 않고 살아서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는 피를 흘리고 죽어서 제물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우리는 그렇게 나간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제물이 되어 개인에게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끝까지 제물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끝까지 가고 난 후에는 돌아서서 새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갈 길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하늘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공복(公僕)의 길입니다. 이 공적인 길을 산 제물로서 어떻게 가느냐? 자기를 위해 예수를 이용하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를 위해 통일교회를 이용하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어요. 그걸 잘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원리를 볼 때, '저것 통일교회 교인들이 저래서는 안 되겠는데…' 여러분들은 이런 것 알지요? 그렇게 되면 그것을 보고 비판하지 말고 '나는 그보다는 나아야 되겠다. 너희는 내 앞에 가인이 돼야 된다. 나는 너희들의 아벨이 되어 가지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 옳지 못한 사람들을 나로 하여금 교육을 받게 해 가지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되겠다' 하면서, 주먹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적인 면에서 눈물어린 입장에서 밤이나 낮이나 지새워 가면서 저 생명 대신 내가 희생해 가게 되면, 다시 말하면 아까 아담이 쫓겨난 자리에서 자기 생명을 갖고 변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 가지고, 나는 망하더라도 그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한 공적이 그들 앞에 미치게 될 때 그들은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요?
통일교회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통일교회에서 아벨의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아서 '통일교회의 교인이 저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 '안 되겠다' 하는 입장에서 나는 됐기 때문에 나를 본받아 저들이 재교육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아야만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교인들의 마음을 점령한 여러분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들이여! 여러분이 기성교회 교인들 앞에 반대를 받고 핍박을 받던 과거의 원통하고 분한 사실이 크면 클수록 그들이 '우리들도 통일교회 청년과 같이 되어야 되겠다. 저들이 저렇게 움직이는 것은 자기 교회 발전을 위하고 전도를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나의 생명을 구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다'고 알게 될 때, 그들이 숭고한 사상을 지닌 젊은이라고 뼛골이 녹아질 수 있게끔,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구해 준다면 그들은 나로 말미암아 영원한 새로운 길, 하늘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럼으로 말미암아 나는 살아서 제물이 필요 없이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이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현재에 내가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산 제물의 실권의 역사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무대에서, 교회에서, 혹은 나라에서, 세계에서 발휘하고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길이 아니냐? 이 통일교회 교인들의 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야 될 길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결정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지는 여러분이 되라. 통일교인 가운데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통일교회 선생님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긴 모르겠구만. 여러분 선생님 생각해요?「예」 병신이든 잘난 미남 미녀 할 것 없이 통일교회 교인들은 문선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흠모하면 홈모할수록 진리의 중심 실체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자기가 진리를 사랑하는 이상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자, 그렇게 될 때까지는 우연히 된 게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내 개인의 욕심을 중심삼고 이 자리까지 나오지 않았어요. 내가 여러분 같은 20대 젊은 시대에 누구보다도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구요. 세상에 나갔으면 빨리 출세도 했고 남 못지 않은 일을 다 했을 거예요. 학박사 다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한 생애를 다 바쳐 가지고 자기의 이익보다도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양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원리라구요, 그게 천운이라구요.
여러분이 이번에 돌아가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남아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의 뜻은 반항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고 위하는 인연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아벨의 완성의 터전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 국가, 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 나가지 않고는 세계천국 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 그날들을 중심삼고 이 원칙을 적용시키고, 이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쉬지 않고 달려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왈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알겠어요?
밥을 먹는 데도 자기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배고픈 것은 왜인가를 따지는 거예요. 공적인 일을 위하여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이라면 거기에 얼마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피땀을 흘렸느냐? 나를 위했느냐, 공적인 일을 위했느냐? 이렇게 스스로 비판해 보고 공적인 일을 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밥그릇을 대하게 될 때, '오냐, 어제 아침에 먹던 밥보다 너를 먹고 더 빛나게 보다 공적인 일을 해줄게' 이렇게 생각하면 밥이 웃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밥이 소리를 치고 좋아한다구요. 그런지 어떤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어서 어서 이날이 있기를 바란다구요. 그런다구요. 밥 먹는 시간이 아주 신비로운 시간 이라는 거예요.
내가 호미를 들고 땅을 팔 때도, '호미가락에 긁히는 이 땅은 비록 한 초점에 놓여 있지만 세계 전체의 땅을 내가 언제 긁어 봤느냐? 그렇기 때문에 어서 손을 들이 내밀어서 긁어라. 이것이 지구반경을 긁어 내는 입장에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라구요. 달라야 한다구요.
길을 가더라도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품고 가니, 하늘땅이여! 내 말을 들으소서' 할 때는 나는 공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나서게 되면 천만 군중이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들어온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 앞에는 머리 숙이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제물이 되라. 제물이 되어 가지고 망하는 법이 없다. 진짜 제물을 잘 드린 그 자리는 망하는 법이 없다. 제물 드린 끝에는 복이 오는 것이다. 그렇지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교인들을 바라볼 때, 36가정이라든가 축복받은 가정들을 바라볼 때, 저들이 저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 되면 그들을 교육해야 되겠어요. 그들은 선조들의 입장에 있지마는 통일교회 선조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구요. 선조들은 훌륭하지 못하더라도 후대의 후손들이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이 복귀섭리의 전통적 길이 아니었더냐?
우리 통일교회가 한 국가적인 환경을 중심삼은 이 좁은 환경을 맞았지만 앞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조들이나 선배들보다 우리들이 더 찬란한 노력을 해야 되겠다. '형님들이 한 일이 그만큼이거든 나는 형님보다 못해서는 안 되겠다, 더 힘든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무대를 세계화시켜 나가겠다'고 하는 이런 전통적 모습이 젊은 가슴에 흘러 넘치게 될 때 통일교회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형님들이 쉬니까 우리도 그래야지'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다구요.
망할 하늘의 뜻이 아니요, 망할 천운이 아닐진대는 그 뜻은 이 민족을 버리고 딴 나라에 옮겨져서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백성 앞에 이어 주려던 이 뜻인데, 이방 민족이 이 뜻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그걸 이어받았어야 할 것인데 이방 나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어받은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통일교회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라.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라. 그래야 돼요, 단체 책임자니까. 식구들의 공인을 받고 난 후에는 단체의 책임자 앞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냐? 세상에도 그렇지요? 그 사람의 공로가 크면 그 동료들이 추천해 가지고 장 앞에 추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래 가지고 상을 주는 거예요. 상을 받았으면 국가적 단체들과 대결하고 나서는 거예요. 그렇지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따라 가지고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라.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은 뭐냐? 선생님은 지금 국가적 사명을 하는데 여러분은 '아이구, 나는 가정적 사명을 촉구 하는 내가 되겠다' 하면 선생님의 마음에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것은 꽁무니에 따라오는 방해꾼이예요.
선생님의 마음에 들려면, 국가 탕감복귀 사명을 촉구하는 시대가 되거든 국가는 물론이고, 앞으로 올 세계를 위하여 책임질 수 있는 내가 되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직행으로 달려가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냐, 바라던 사나이가 나타났고 바라던 아낙네가 나타났구나' 하고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기필코 선생님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 때가 어떤 때냐? 국가적인 시대로부터 세계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청소년들인 여러분의 소망과 여러분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표준이 대한민국을 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통일교회가 세계적 무대의 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세계를 휘어잡기 위하여 출발하는 무대에 섰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해야 할 사명을 어서 끝내고 손을 털고 세계로 날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선생님을 모시는 여러분들은 어떠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 이상 저….
'뉴욕의 5번가에서 만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야 되겠다. 뉴욕의 어디어디에서 만나야 되겠다. 그날을 위해서 내가 준비하자. 그러려면 내가 대한민국 이 민족으로 태어났으니 이 민족의 젊은이들한테 지지 않아야 되겠다. 기성교회라든가 통일교회 젊은이들한테 지지 않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 나는 준비한다' 하고 노력하는 무리가 돼야 할 것이 아니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국가적 사명을 촉구하는 이때에 있어서 '아,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난 몰라, 세계가 어떻게 되든 난 몰라. 그저 나 편하면 되지. 내 어머니 아버지 모셔야 되겠으니 어머니 아버지 말대로 해야지' 이러는 것은 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계점이 되어서는 선생님이 가는 곳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되려고 암만 그 자리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는다구요.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구요. 국가를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하려고 '하나님, 내 힘이 부족하니 도와주소' 이래야지요. 그렇지요? 안 그래요?
자, 우리 아가씨들은 졸업하고 말이예요. 세상 같으면 시집갈 처녀들도 있을 거라구요. 시집은 무엇 때문에 가느냐? 나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구요. 시집은 무엇 때문에? 천추만대의 선대를 이어받고 후대를 위해서 시집가는 거라구요?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자기를 위해서 가는 게 아니예요. 자기를 위하다가는 전부 다 망쳐 버립니다. 그런 퇴폐풍조가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그것을 전부 다 뽑아 내고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 젊은들이 이런 사상을 가졌으면 나하고 원수라구요. 그런 사상은 안 가졌겠지요?「예」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주인이 돼 가지고야 남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아내가 될 수 있게끔 천리원칙은 되어 있어요. 아담이 완성하면 그것은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완성이라구요. 그렇지요? 아담의 완성은 세계의 중심, 주인으로서의 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주인을 꿈꾸고 주인 대신 나라의 책임과 사명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나이, 아낙네가 되어 가지고서야 축복을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해 가지고 연애질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구요. 편지질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어요. 붓을 들고 쓰는 자체가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담의 소원은 천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더냐? 아담이 품고 사랑한 부부의 가치는 세계의 중심가치를 대신했던 것이 아니냐? 그런 자리에서 사랑을 찾아야 할 것이었는데 오늘날 타락한 인생들, 이 악한 형상을 보라구요. 세계는 어떻게 가든지, 전부 다 개 돼지 모양으로 육적인 만족을 찾아가고 있어요. 육적인 만족이란 영원하지 않다구요. 몇 날도 못 가서 전부 다 누더기 바가지가 돼 가지고 굴러 떨어진다구요. 그런 퇴폐적인 사나이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어요. 여러분의 그런 자유무대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꽃다운 젊은 청춘시대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20대에 가까운 청소년으로서 더럽혀지지 않고 물들지 않은 거룩한 순정을 고이 꽁꽁 싸 가지고 어디에 갖다 놓을 것이냐? 하늘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그 제단 앞에 놓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와 같은 순정을 가진 그런 사나이와 혹은 아낙네가 만나서 하나님이 같이 묶어질 수 있는 거룩한 터전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이건 개 돼지만도 못한 자리에서…. 그럴 바에는 다 짤라 버리고 파 버려야 됩니다. 그런 긍지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천하의 미녀가 와도 나를 꼬이지 못한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해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20대부터 쭉 그런 자체적인 훈련을 해 나왔어요. 아무리 미인이 천정 가운데에 발가벗고 뒤넘이치더라도 절대 안보겠다! 나는 꼬이지 못한다! 해봐라! 또, 내가 가는 길 앞에 어떤 친구가 방해가 못 된다! 이렇게 딱 공식적인 노정을 훈련받아 온 것이라구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다 그 놀음 해 나왔다구요. 이래서 그 목표를 겨누어 가지고 '저기 팻말이 보이지 않느냐' 해 가지고 거기까지 걸어가야 돼요. 목표점이 보일 때까지 가야 됩니다. 가다 보이지 않으면 또 가야 됩니다. 쉬지 않고 가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 마음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의 마음에 기억되려면 선생님이 하는 현재의 일만 책임지고 활동하면 현재에는 기억될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기억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통일교회 문선생이 다 가르쳐 주었어요. 천주복귀란 거룩한 사명을 중심삼고 그것을 위해서 언제나 먼저 달려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사명을 단계적으로 귀결을 짓고 넘어 가는 그런 때라도 선두에 서서 갈 수 있는 입장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제물된 입장에서 달려 나가면, 기억하지 말라고 해도 기억되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사탄을 굴복시켜 이 무대에서 영영 몰아내 가지고 천국을 개문하여 하나님을 부모로서 모셔 가지고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못 한 6천년의 한을 푸는 기쁨을 가지고 아들딸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의 사랑을 가진 아들의 사랑에 흠뻑 취해 늘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아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가 당신의 사랑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신이 진정 사랑하고 싶은 그 사랑을 내가 받든가, 그것이 안 되거든 흠뻑 사랑을 가지고 거리낌 없는 자리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라도 죽게 해 주옵소서. 그것이 내 소원입니다' 이래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랑을 받든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죽게…. '당신은 아들이 있으면 이렇게 사랑하고, 딸이 있으면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런 아들딸이 만나서 부부가 되었으면 부부는 이렇게 살아야 될 것이 아니요? 그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 나라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그 세계는 이렇게 사랑할 것이 아니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을 보고 죽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할 수 있고, 내가 미치지 못하거든 내 아들딸에게라도, 내 아들딸이 미치지 못하거든 다른 나라 세계 어디 라도 빠른 시일 내에 그럴 수 있는, 아버지를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이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남아지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가정을 나는 보고 죽고 싶소. 그리하여 당신이 나를 측은히 여기던 그 자리에, 같이 사랑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이상의 소원이 없습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네면 동네, 씨족이면 씨족을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는 죄 없는 자리의 씨족을 거느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싶소. 진정한 죄 없는 나라를 통치하는 주권자로서의 아버지를 보고 싶소. 진정한 죄 없는 세계의 여호와로서 만국을 치리하는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싶소. 그것이 내 평생 소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 소원인데 이 소원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이므로 죽어서라도 소원이 이루어질 그날이 올 것을 믿고 갑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죽더라도 그날을 위해서 죽게 되면 그것은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날을 위해서 죽게 되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 마음속에 기억되는 아들로 서, 사랑의 무리로서 저나라의 천국 자녀의 상속을 받고, 주인 대신 모든 권한으로 치리할 수 있는 대역자가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이 길을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선생님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아니예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예요. 아버지가 사랑할 수 있는 그 친척을 내가 거느리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아버지가 진정으로 죄 없는 자리의 교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한번 서 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탕감복귀의 수난길에서, 제물적인 노정에서 비참한 길을 가려 나온 하나님이었지만, 영광의 자리에서, 해방된 자유 천국의 자리에서 아들딸과 세계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고, 내가 아버지를 대하여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원통하냐 이거예요. 이 원통의 길을 빨리….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이제 여러분들이 오래지 않아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고 나서 대한민국의 실전무대를 책임져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실무를 책임져야 할 청소년들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무리가 되면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무리의 사상으로 대한민국을 품게 되면 그 사상은 대한민국을 구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배양 시키고 그런 사상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이 통일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망하라고 잡혀 간 사람은 망하지 않고 나와 보니 도리어 망하라고 잡아 넣은 사람을 다 쓸어 버리고 그들이 남겼던 모든 것을 관리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이 돼 버리더라. 알겠어요? 그런 공평한 세계가 있어야 젊은 사람들도 고생할 맛이 있고 선생님 같은 사람도 살 의욕이 있지, 그렇지 않으면 살기는 뭐하러 살아요? 그런 것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 말이예요?
그런 것이 천리원칙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내일도 그런 시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혹은 젊은 청춘 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의 그런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고 가더라도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천리의 공법은 틀림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그런 가치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의 선조들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제부터 가는 길에 대해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과거의 여러분이 있는 것을 똑똑히 알라는 거예요. 과거에 내가 이러했던 것을 확실히 기도해서 버려라. 나 아무개는 그래서는 안 되었던 과거의 나를 오늘로 청산지어라. 깨끗이 청산지어라. '오늘부터 나는 이러한 나다'라는 소신을 결의해 가지고 하늘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하여 정당한 자리에 서라.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지금까지 걸어온 나와 오늘부터 가야 할 나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렇게 되면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이 솟구칠 것이고 낙담의 자리에서도 희망이 솟구칠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 이 시간 나와는 달라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내 사는 생활무대에 있어서 보람과 가치를 느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하나님을 위하는 것보다도 영광의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참다운 효자의 길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어요.
'일선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의 자리에 나는 건너간다. 나이가 부족 하거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왜 맡겨 주지 않느냐?'고 하면서 한을 품고 그날을 위해 준비해 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불원한 장래에 일선의 지휘관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런 마음을 갖고 자신을 연마하며 10년 20년 가게 되면…. 그 20년이 지루하지 않다구요. 빛나는 영광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20년 역사에 갖지 못하고 몇천 년 역사에 갖지 못한 가치를 그 기간에 탕감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숭고한 가치를 이를 수 있는 기쁜 길이 오늘의 이 고난의 길이요 극복의 길이더라 이거예요.
돌아서 보면, 그 기간이 없었던들 난 어떻게 됐을 것이냐? 그 기간이내 생애를 단장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요, 복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보람 있는 생애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냐. '나는 청년시대를 잘 살았다. 장년시대를 잘 살았다. 일생을 잘 살았다. 한이 없다' 하는 생애를 갖추고 아버지의 품에 품기는 자리에 가게 된다면 인생노정에서 그 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된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이 길을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사명을 다하고 가야만 반드시 하늘의 사람으로 살다가 하늘의 사람으로서 저나라에 갈 것이 아니냐 해서 이 길을 가 주기를 바라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옛날 악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에 그 악을 중심삼아 시종여일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기뻤던 그날을 중심삼고 일관하라는 거예요. 그때의 밤이든 낮이든 한곳으로 흘러가던 그 마음을 더 강하게 나라와 세계 끝까지 뻗게끔, 그 순을 그리로 향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 가지고 산 제물이 되어서 영광의 아버지, 영광의 하나님을 모셔 영광된 자리에서, 효자 효녀의 명분을 남기고 죽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목적인 것으로 알고 끝까지 가는 날에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늘의 사람으로서 출발할 것이고, 하늘의 사람으로서 거쳐가 가지고 하늘의 사람으로 끝맺게 됩니다.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은 틀림없는 하늘의 백성이 될 것이며 하늘나라의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면서 오늘 '하늘의 사람들'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말씀을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내가 돌아가면 이제부터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는 사람 양 손을 들어 결심하자구요. 내려요.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젊은 아들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당신의 존전에 부복하였나이다.
나 아무개는 서글픈 나라는 끔찍한 사실을 인식하고 알았습니다. 이렇게 비천하고 이렇게 불비한 모습, 이렇게 추악한 모습들이 하늘 앞에 망령되었던 과거지사를 엄숙히 회개하옵니다.
이제 역사시대의 통일사관이 찾고 있는 보다 가치적인 존재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옛날보다도 지금이요, 어제보다도 오늘이요, 오늘 보다도 내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침에 밥 숟가락을 들 적에도 새로운 다짐을 해야 되겠고, 저녁에 밥을 먹고 자리에 눕게 될 때도 아침보다도 저녁이 빛나야 되겠다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빛나야 되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는 생활을 연이어 나가 그 가운데서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거들랑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인 되기를 이제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했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대한의 나라를 지키시옵소서. 남북이 엇갈린 비참한 이 민족이 된 것은 하늘을 받들지 못하고, 당신이 찾아온 역사적인 공적을 시종여일한 입장에서 모셔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옵니다. 이처럼 비참한 국가의 운명이 저희 목전에 직시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와 같은 한을 저희 가슴에 품고 역사를 붙안고 대신 회개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혹은 오천만 민족을 대신한 회개의 제물이 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세계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최후의 싸움터를 즐겨 맞을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로서 세워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짧은 시간을 통하여 들은 말씀, 각오한 전부가 하늘 앞으로 거두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다시 만나는 그 시간이 혹은 몇 개월 후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들이 가는 기간 동안 숭고한 사상을 그 환경 환경에 적응하면서 끝까지 싸워 하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민 앞에 내세우고 사탄 앞에 내세워 자랑하고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늘의 칭찬뿐만 아니라 즉석에서 내세워서 사랑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수난의 길이요, 핍박의 길이요, 고역의 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이것을 의의 있게 맞아 나가면서 거기에서 가치를 느낄 줄 아는 그런 자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부디 한 생명이라도 떨어지지 않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보람 있는 후계자 혹은 상속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잠들어 있는 세계 인류들은 젊은 저희들이 깨우쳐야 되겠고, 이 나라 이 민족은 저희들의 손길로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신념에 불타야 되겠습니다. 용기 백배하여 목적을 위한 전진만이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면 다시 만날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졸업식도 다 지내겠지만, 그 자리에는 선생님이 없을 거라구요. 다시 와서 만날 때까지 여러분이 열심히 싸우다가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끝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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