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참석한 학생들 가운데서 선생님을 처음 본 학생은 없나? 있으면 손들어 봐.
여러분들은 이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귀한 시절인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겠고, 혹은 계속 학구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내고 나면 다른 한 시대가 찾아오는 것은 인간세상의 순리인 것입니다.
뜻으로 볼 때에도 뜻의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개인의 복귀시대가 지나가면 가정의 복귀시대가 오는 것이요. 가정의 복귀시대를 다하고 나면 국가의 복귀시대, 국가의 복귀시대를 지나고 나면 세계의 복귀시대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는 차원이 다르니만큼 그 벌어지는 환경과 사정도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여러분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되, 그 아침은 보낸 날의 아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혹은 십년이 감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행로는 덧없이 죽음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보면 까마득한 옛날같이 생각 될는지 모르지만, 더우기나 10대에서 20대의 기간은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절인 것입니다. 언제 내가 20대가 될 것이냐? 언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갈 것이냐?
언제 내가 청년으로서 당당한 기개를 갖추어 가지고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10대에서 20대를 향하는 그 기간은 가장 지루한 기간인 것입니다. 국민학교 4, 5학년이 되게 되면 10대가 되어 열 살을 지나 그 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는 중학 교에 들어가고, 또 그 다음에는 고등학교를 들어가 졸업반이 되는 이 스무 살 - 혹자는 20이 넘은 사람도 있겠지만 - 까지는 가장 긴 시절인 것을 여러분이 느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20대가 지나가고 30대로 접어들게 될 때에는 그 20에서 30은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또, 30에서 40은 더 빨리 가까워지는 거예요. 40에서 50은 더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점점 짧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생에 있어서 제일 나이 먹기를 바라는 때는 어느 때냐 하면, 10대에서 20대 사이입니다.
그러면 나이 먹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것을 가릴 수 있습니다. 선이 어떻고 악이 어떻고, 인생이 가는 데 있어서는 이렇게 가면 안 되고 저렇게 가야 올바른 길이라고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자기로서의 보람 있는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때가 20대로 넘어서는 때입니다. 10대에서 20대를 바라는 그 기간이 지루하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내면 적인 갈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중학교 시절에, 어떤 사람은 고등 학교 시절에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국민학교나 유년주일학교 시절에 뜻을 알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이나 고등학교 시절에 뜻의 길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이 뜻의 길을 알고 나서는 여러분이 과거에 느끼던 20대 시절과 알고 난 후의 20대 시절이 판이한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러분들이 가야 할 인생의 길을 추구하고 모든 소망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뜻의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뜻을 성사시켜 나가야 되겠다, 뜻에 대한 책임을 내가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을 느낄 때에 들어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오래지 않아서 대학교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려 가지고 올바른 길을 가기란 심히 어려운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말하는 뜻이 원하는 길, 진정한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똑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기 운명의 최후를 마감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최후를 마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뜻이 원하는 길을 맞춰 나가기 위해 30여 생애 동안 노력하면서 혹은 배척도 받았고, 혹은 어려운 생활도 했으며, 고독한 자리에서 신음도 했지만 그 모든 환경과 사연이라는 것은 오로지 뜻이 원하는 길을 세워 가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중심삼은 제자들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이 원하는 뜻의 길에 동참해 가지고 같이 가려고 나섰던 무리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도들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표적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수제자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뜻이 원하는 길을 끝까지 갔지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 외의 사도들은 뜻이 원하는 길을 다 가지 못한 역사적인 서러움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년 공생애노정을 예수님과 더불어 같이 자고 먹고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바라보는 뜻과 제자들이 바라보는 뜻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나라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나라에도 거리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세계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에도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는 관에 따라서는 크다면 큰 거리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개인 개인으로 보면 예수님도 하나의 개인이요, 베드로 같은 사람도 하나의 개인이었지만 개인 자체를 두고 볼 때에도 거기에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한 개인이요, 시대적인 중심의 개인이요, 미래의 선의 기수로서 당당히 출발할 수 있는 개인이었지만, 베드로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할 수 없는 개인이요, 시대의 중심의 사명을 할 수 없는 개인이요, 미래의 새로운 선의 출발을 제시할 수 없는 개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른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는 길도 달랐습니다. 바라보는 표준도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달랐고, 추구 하는 목적이나 대상도 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 뜻을 세우려고 했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들은 죽음을 싫어하는 자리에서 뜻을 저버린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밥을 먹어도 같이 밥을 먹고, 행동을 하여도 같이 행동을 하였지만, 뜻을 중심삼고 바라보는 그 기준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사이에는 판이한 생활의 결과가 나타났고, 그런 결과를 맺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 180명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길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는 남학생이 있고 여학생이 있지만 진정 뜻을 위하는 학생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두 길이 아닌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 성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남자의 가는 길이나 여자의 가는 길이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앞에 서면 남자가 따라가야 할 길이요, 남자가 앞에 서면 여자가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뜻이 원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이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나 젊은 사람이 가는 길이나 뜻이 원하는 길은 다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복귀의 행로를 더듬어 올라가는 데 있어서는 그 길이 여러 길이 아닌 것입니다. 그 길은 단 한 길, 직선으로 그어진 단 한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직선을 중심삼고 우로 좌로 거쳐가는 길은 천 가지 만 가지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직행으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길을 따라 나선 참다운 젊은이가 있으면, 그건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같은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이 원하는 최고의 보람 있는 가치의 길은 어떠한 길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교훈, 성경에 가르쳐 준 교훈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뜻이 원하는 참다운 가치의 길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뜻이 원하는 대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뜻의 주체는 누구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소원이라든가, 자기의 뜻이 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원과 하나님의 뜻을 세워 놓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자기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이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을 이루어 놓고야 우리의 원을 취할 수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소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자기가 세우고자 하는 뜻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대표해 가지고 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 주체자는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표준이요,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인 모델의 형태를 갖추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가지고 일생의 노정을 걸어갔다면 만민이 그가 간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청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 가야 되고, 장년에 처한 사람은 예수님이 장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년시대에 처한 사람이면 예수님이 노년시대에 간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간 길은 누구나 가야 할 운명적인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의 명분을 갖고 이 땅에 왔지만, 우리 인간은 타락 하지 아니한 아들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아들과는 상대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된 우리가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아들 되시는 메시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어 그를 믿고, 그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따라간다고 해서 그냥 순순히 따라갈 수 있는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이라는 내용을 제시해 놓고, 그 탕감의 조건을 넘어섬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길을 더 가까운 거리에 다짐지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는 어떻게 해 나가느냐? 뜻이 요구하는 탕감복귀의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타락하던 그때의 입장을 반대로 걸어가는 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아니한 길, 그 반대의 길을 가려 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 가려 가야 하는 반대의 길은 어떤 길이냐?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갈 수 있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냐?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보는 하나님을 모시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를 모시는 천사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서 종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아들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딸을 잃어버린 후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신랑 신부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부모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을 잃어버렸고, 그 아들딸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신랑 신부를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결과가 되었는데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을 끝까지 충성으로 모시는 천사장을 가졌을 것입니다. 참다운 아들딸을 가졌을 것입니다. 참다운 신랑 신부를 하나님은 맞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통하여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서 이루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려고 했던 것, 즉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사위기대 완성이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뜻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이냐?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부부와 참다운 자녀를 형성하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가지고 참다운 종을 맞아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뜻의 표준이라는 것을 결론지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할 때는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이상을 완성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 하나된, 사랑의 주체 되는 그들을 중심삼고 종 되는 천사장들이 모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 즉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타락했기 때문에 무엇을 찾겠다는 것이냐? 이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올라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어떠한 내용을 제시하며 오라고 하느냐? 먼저 우리는 종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장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란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온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순수한 법도와 종의 순수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뜻길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종의 복귀역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복귀역사를 해야 되는 겁니다. 미래의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가는 인류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소원삼고 나가는 수많은 무리 혹은 피조세계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는 대신 뜻을 모실 수 있고 뜻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진 그 사람들을 모실 수 있는 종의 훈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하는 놀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섬기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섬겨라! 희생 봉사하라! 이런 놀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기초단계의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종으로서 사명을 완결하지 못하였던 이 인연을 나로 말미암아 완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설 때,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펼쳐 나가는 복귀의 길에는 어떠한 무리가 있느냐? 참된 종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종이 있는 반면, 악한 종으로 설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자리를 지나고 난 후에는 어떠한 사람이 있느냐? 참된 아들딸로서 설 자리가 있는 것이다. 참된 아들딸로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참된 아들이 아니라, 거짓된 아들로서 설 수 있는 자리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표시된 가인 아벨형인 것입니다. 아벨의 길은 참된 길이요, 가인의 길은 거짓된 길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그 길을 지나고 난 후에는 아벨로서 가인을 굴복시켜 승리해 가지고 신랑 신부의 자격을 완결해 나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을 잃어버렸고, 신랑 신부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신랑 신부로서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사명을 완결한 사람은 신랑으로서 설 수 있는 자리를 이어 받을 것인데, 본래 하나님의 사랑과 혈통의 인연을 통하여 난 사람이 아니고는 신랑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신랑 신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종횡으로 일치될 수 있는 기원이 지상에 설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신랑 신부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신랑 신부의 자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직계 사랑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이 성숙해 가지고 맺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순수한 신랑 신부로 설 수 있는 아들딸의 자리에 그냥 그대로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기대를 완성해 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어 받으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어받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메시아와 나를 접붙이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돌감람나무 되었던 것을 참감람나무로 돌이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서 선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만 신랑 신부의 자리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원리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종교가 찾아 해 나온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종으로서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아들과 선한 아들, 두 아들이 서로 서로가 죽이고 빼앗는 싸움의 역사 가운데에서 남아질 수 있는, 아벨적인 사명을 계승할 수 있는 무리를 확대시켜 나온 길이 지금 까지 기독교가 걸어온 길입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자리에 직접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의 자리를 계승시키기 위해서, 또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메시아라는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사람입니다. 날 때도 아버지로부터 나왔고, 자랄 때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서 자란 그러한 아들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일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출발한 것입니다.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출발했기 때문에 악한 사탄을 저버리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걸 쳐부수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으로서 승리해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신하여 반항의 깃발을 들고 돌아서 박차고 나오지 않고는 하늘을 향한 아벨적 자리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들의 자리를 계승받아 가지고 신랑 신부의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출발하기를, 하나는 사탄세계에서 올라가기 위해 출발했고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이걸 붙여 가지고 올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 기독교의 비참이요,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된 동기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종으로서 바꿀 수 있는 길이 있고, 악한 아들이 선한 아들로서 설 수 있는 자리는 바꿀 수 있지만, 진짜 선의 목적을 이어받을 수 있는 완전한 아들의 자리에는 못 나가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를 닦아 참다운 아들의 자리를 연결시켜 가지고 신랑의 자리까지 나아가 우리 인생이 하나 남의 사랑을 중심삼아 일체 이상을 이루지 않으면 사위기대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되찾아 나가는 것이 복귀의 길이요, 뜻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보면 참다운 종이 있고, 참다운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참다운 신랑이 있고, 그 신랑을 통해 가지고 참다운 하나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탄편에는 거짓 종이 있고, 거짓 자식이 있고, 거짓 신랑 신부가 있고, 거짓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뚝 잘라 버려야 됩니다.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명령에 불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불신, 불순종, 불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 반대로 탕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종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된 아들이 가는 길, 선한 아들이 가는 길을 찾아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종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고,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메시아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도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와야 된다는 거예요. 유대교시대에 예수님이 왔다 간 후에 다시 재림하여야 된다는 것은 아들이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필연적인 사실 인데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완전히 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 나 가지고 커서 갈 수 있었던 본연의 자리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서 나서 자라 가지고 사탄의 품에 돌아갈 것이었는데,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대표자를 만나 가지고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리까에 시켜 가지고, 전환시켜 가지고 가는 길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앞에는 절대 필요한 것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신앙길에 있어서 메시아가 왜 필요하냐? 이 문제가 희미해 가지고는 여러분은 갈 수 없습니다. '내게 무슨 메시아가 필요하냐? 사람은 다 마찬 가지지' 이러한 애매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틀림없이 세계는 두 세계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혹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있다 이거예요. 교육을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 되기보다도 악한 사람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교육도 필요 없다니…, 그 자체가 그냥 악한 것입니다. 교육함으로 말미암아 악과 갈라낼 수 있지, 교육을 함으로 말미암아 악과 분립시킬 수 있는 것이지….
교육이라든가, 윤리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선을 표준하고 나갑니다. 선을 표준하고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닌 것입니다. 고통의 길입니다. 내 몸이 원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본질에서 상충되는 역리적인 노정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선한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가르침을 받는 표준인 것입니다.
그걸 보면 이 세상은 악과 선이 뒤섞여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악을 제거하고 선만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이것을 가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뜻이 원하는 것으로 보게 될 때 가려 나가는 데는 무엇을 가려 나가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천사장이 종으로서 책임 못 했으니, 절대적인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자리에 못 갔으니,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종의 자리를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코스를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통일 교회에 들어오면 반드시 회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민은 선한 것을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사람을 위해라, 전체 인류를 위해라, 사람을 사랑해라, 사람을 위해 살라,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다' 하는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천사장 복귀의 노정을 가려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요거 알겠어요? 응? 자기를 위하는 자리라면 우리 타락한 인간으로서 가려 가야 할, 천사장이 인간을 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타락을 가져왔는데,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 아들의 자리라는 것은 어떠한 자리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입니다. 양자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양자예요, 양자. 아들은 아들인데 양자야! 양자란 무엇이냐? 핏줄이 다른 것입니다. 출발이 딴 아버지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후 오늘의 인류는 양자와 마찬가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양자가 된 것은 무엇 때문에 되었느냐? 사탄 때문에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가 복귀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대표 되는 아들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형을 실체로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이 원하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아벨의 문제는 언제나 남아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둘 다 똑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 중심삼고 뜻을 설정하게 된다면 반드시 선한 사람을 중심삼아서 할 것입니다. 그 둘 가운데 조금 나은 사람이 조금 나은 분야에 해당한 아벨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분야가 커지면 점점 큰 아벨로서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벨 중에 개인적인 아벨이 생겨나는 것이요. 아벨 중에 가정을 대표한 아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커 가는 거라구요. 아벨 중에 종족적인 아벨이 있는 것이요, 아벨 중에 국가적인 아벨이 있는 것이요, 세계적인 아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반대적인 면에서 개인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민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국가가 생겨나는 것이요, 반대적인 세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되면 반드시 세계는 두 갈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갈래로 돼 가지고 '내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때가 되거든 끝날인 것을 알라! 끝날인 것을 알라!
가인 아벨을 두고 보면 말이예요, 공판정에 나타나는 심판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올수록 가인은 가인대로 변명하는 것이요, 아벨은 아벨대로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낼 때가 오는 것입니다. 누가 옳으냐, 누가 그르냐 하는 문제를 가려야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부딪치는 거예요. 그러면 부딪치는 데 가인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가인과 아벨의 성격이 어떻게 차이가 있느냐? 맞는 자리에 서는 것이 아벨이요, 치는 자리에 서는 것이 가인인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전세계를 두고 보면, 치는 자리에 선 것이 누구냐 하면 공산세계요. 맞는 자리에 선 것이 누구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또, 하나의 국가에서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하나의 민주세계를 두고 본다면 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맞는 자리에 선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이겁니다.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비판한다 이거예요.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도리어 핍박하고 도리어 평을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비평을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가인 아벨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는, 맞는 것은 아벨이요, 치는 것은 가인인 것입니다.
맞고 때리고 난 후에 최후에 결판이 나게 된다면 서로서로가 기진맥진 해집니다. 기진맥진해진다구요. 둘 다 끝까지 싸웠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럴 수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는 망하게 마련입니다. 어느 것 하나가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느 것이 굴복하게 되느냐? 어느 것이 굴복하게 되느냐? 악한 것이 먼저 굴복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악한 것은 자기가 대항을 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가 당당히 나서서 변명하고 변호 했지만 대하고 나면, '네 이놈?' 하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에 양심의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올바른 자리에 선 사람은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가책은 커녕 도리어 발전이 벌어집니다. 그렇지요?「예」악한 편에서 치면 칠수록 아벨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치는 쪽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남아지는 것이요, 악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민주세계는 내가 어느 편에 섰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사고라구요. 내가 선한 편에 섰는지 악한 편에 섰는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한 편에 선 것을 자각하는 날에는 '내 편에는 하나님이 있고 내가 선한 편에 섰으니 마음대로 쳐 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해지는 것입니다. 치면 칠수록 우리 편은 하나님과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구요. 안 그래요? 부모 앞에 있어서 잘못한 형님이 동생을 치면 칠수록 부모는 누구의 편에 서느냐? 맞는 동생의 편에 오지 말래도 오게 마련입니다.
그 원칙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느 편에 섰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갈팡질팡하니까, 한 대 맞고 '그래 그래' 그러니까 사고지, 옳은 것을 알고 끝까지 지키고 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내 편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게 사고입니다. 아벨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자기의 뜻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예수님도 죽을 때까지 자기의 뜻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만 나는 아버지를 안 버리겠습니다' 했습니다. 확실히 알았다구요. 나는 참된 뜻을 가졌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부딪쳐 오는 환경이, 혹은 원수들의 핍박이 가중되어 오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을 갖지 못한 민주세계가 돼서는 큰일입니다. 도리어 공산세계는 '이놈은 치면 망한다' 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 적인 면에서 신념을 드높이 하고 '이놈을 치면 우리 방망이에 나가떨어진다' 이렇게 자신을 갖고 나가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이건 맞으면 으례히 망할 것인데 죽지 않는 것은 맞는 자로서 당당히 부모의 변호를 받을 수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아들의 권위를 갖고 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됐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피폐해가고, 민주세계는 약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그냥 그대로 계승받을 수 있는 자리에 못 선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여기에서 자각해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로서 당당히 섰다 하게 될 때는, 오늘날 이 공산세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세 번까지는 치는 것입니다. 한 번 치고, 두 번 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1차대전, 2차대전, 3차대전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몸을 치는 시대, 그 다음에 마음을 치는 시대, 정을 치는 시대,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치는 시대,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몸뚱이 빼앗기 싸움이라구요. 인간의 역사를 가만히 보게 되면 지금까지 전쟁은 무엇 때문에 했느냐? 땅을 빼앗기 위해 했습니다. 땅 빼앗기 싸움입니다. 땅은 몸뚱이 상징입니다. 그렇지요?「예」그 다음에는 무엇 빼앗기 싸움이냐? 그 다음에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사람 빼앗기 싸움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는 무엇 빼앗기 싸움이냐? 누가 주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라구요.
공산당들이 지금 그 놀음 하고 있다구요. 공산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기 위해 강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당을 사랑해라. 당을 사랑해라. 당을 사랑하는 데는 자기 여편네보다도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 이렇게 돼 있지요? 그 당이 무엇이냐? 김일성이 남편이라면 당은 여자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당은 무엇이냐 하면 김일성의 집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김일성의 집이라구요. 하나되는 것은 직계 족속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그러한 자리까지 나가서, 사람을 중심삼고 한 곳으로 집중 시켜 가지고 무엇을 치느냐? 하나님을 친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쳤지요? 「예」 몸뚱이, 마음, 사람 빼앗기 싸움, 그 다음에는 이 인간에게서 사랑을 몽땅 빼앗는다구요. 그 다음엔 하나님까지 치는 게 공산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 몸뚱이를 하나님편에, 우리 인류들의 마음을 하나님편에, 사상적인 면에서 인류를 포섭해서 하나님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 사랑을 집결시켜야 되고, 하나님을 절대로 위하고 반대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 발전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은 불가피한 결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뜻이 원하는 길은 뭐냐? 천사장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양자로서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양자입니다. 양자. 양자의 길에는 가인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을 굴복 시켜 가지고 하나되어야만 아들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들은 무엇이냐 하면. 인류의 부모입니다. 메시아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과 아벨이 복귀되지 않고는 아담을 구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원리가 그렇게 돼 있지?
아벨은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아담 해와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혼자 못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둘이 하나되어야만, 참다운 형제로 등장해야만 타락하기 직전 단계에 섰던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 해와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는 뭐냐? 신랑 신부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신랑 신부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됨으로써 참다운 부모의 자리를 이어받아 가지고 비로소 선한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사위기대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반드시 세 천사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세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지요? 응?「예」 그것을 상대이념을 중심삼고 보면, 노아의 여덟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돼 있다구.
하나님 바라시는 뜻이 무엇이냐? 뜻이 원하는 길이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천사장 대신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양자의 길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로서 직계의 혈족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건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접붙여야 되는 거예요.
요전에 어떤 학생이 왔을 때 내가 이야기했지만,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혈족권내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탕감법칙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수속이 복잡하다는 거예요. 그 수속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이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나, 무슨 말인지? 그 수속을 거치지 않고 결혼하면 그냥 그대로 사탄 새끼를 번식하게 하는 비료공장같이 되는 거라구요. 사탄 제조공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수속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여야 됩니다.
접붙인 후에는 반드시 그 본나무의 진액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종으로서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에 양자로서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엔? 직계 아들의 자리를 지남과 동시에 신랑의 자리를 대신 묶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하나돼야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완성이라구. 그렇지?
뜻이 무엇이냐? 뜻이 그것입니다. 뜻이 그것인데 아담해와만 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을 두고 보면, 뜻 앞에 선 여러분 개인에게는 가정이 달려 있고, 그 다음엔? 민족이 달려 있고, 그 다음에는? 국가가 달려 있고, 그 다음엔 세계가 달려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사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복귀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국가복귀, 세계복귀를 할 수 있는 전통이 서야만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기를 개인복귀완성, 가정복귀완성, 민족복귀완성, 국가복귀완성, 세계복귀완성한 후에야만 천주복귀완성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고라구요, 이러니까.
아담 해와가 한 사람으로 타락했지만, 그 한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 암아 가정이 타락되었고, 민족타락, 국가타락, 세계타락이 된 것입니다. 아담 하나 때문에 전부 다 저끄러졌습니다. 그렇지요?「예」 이것을 탕감 복귀하려니 오늘 우리가 시대적인 사명을 세계적으로 공인받아야 됩니다. 세계 만민을 크게 나누면 하나는 세계적인 남자요, 하나는 세계적인 여자입니다. 인류를 쪼개 놓으면 몇 사람이예요?「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 인데 하나는 남자형 사람이요, 하나는 여자형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보다도 큰 소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들도 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이 무엇이냐? 이 세계적인 사위기대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사위기대를 완성하려니 인류 자체도 세계 사람들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서로서로 사랑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내 나라 네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끝날에 있어서는 내 나라 네 나라 갈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전인류가 아담이요, 해와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장도 있고, 양자도 있고 다 섞여 있는 것입니다. 전부 다 두루뭉실해 가지고 둘뿐입니다.
둘인데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서로 천사장이 되라, 서로서로 양자가 되라, 서로서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게끔 노력해라 그런 입장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상은 개인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김 아무개라든가, 박 아무개 개인을 위하는 게 아니예요. 가만히 족보를 뒤적여 보면 자기 할아버지 훌륭해요? 자기 조상 가운데 몇 조상 이나 자랑할 수 있어요? 선과 악으로 본다면 선한 조상보다도 선하지 않은 조상이 많겠나, 적겠나? 선한 조상이 많겠나, 악한 조상이 많겠나? 평균적으로 보면 선한 조상보다도 악한 조상이 많게 마련입니다.
검둥이하고 흰둥이하고 섞어 놓으면 얼룩덜룩할 겁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많으냐? 흰 게 많으냐 검은 것이 많으냐? 검은 게 많으면 그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각하고 자기 집만 생각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얼룩덜룩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암만 가 봐라, 그냥 그대로 얼룩덜룩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이나 자기 종족이나 자기 민족이나 나라보다도 세계주의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내 세계다 그겁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 세계가 누구의 세계예요? 아담의 것이지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정리하지 못했음)
여러분, 새들이 삼팔선을 넘어갈 때 '아이고, 미안합니다. 넘어갔다 오겠습니다' 인사하고 가나요? 뱀도 그렇고, 토끼도 그렇고, 쥐도 '삼팔선 아, 내가 넘어간다' 하고 지나가나요? 인간만이 이 꼬락서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라보다도 세계를, 개인보다도 인류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한꺼번에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알겠어요? 인류를 남자와 여자,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타락하지 않은 해와와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고, 우리의 소원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인류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이 모시는 천사장이 되어야 되겠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사장이 복귀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천사장 노릇 하는 가운데서 양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아들딸 될 종자는 없으니까, 사탄한테서 빼앗아다가 양자를 만들어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 만드는 길밖에 없겠기 때문에, 제일 충성하는 가운데서 양자를 택하게 돼 있지, 충성하지도 않는데 양자로 뺏겠나? 그건 하나님도 별수없다구요. 그러니까 지극하게 충성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빼서 한 단계 높여 가지고 '너를 양자로 하느니라' 하면 그가 아들이란 존재입니다. 알겠어?「예」
여러분은 밥을 먹고 눈을 뜨면 명령에 순종해야 되는 거야. 우리 통일 교회 교인들은 그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전도 나갈 때에 자기 동네에는 절대 안 내보내는 겁니다. 자기 동네 전도 나가면 안 되는 거야. 세 동네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면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군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도 이상 넘어가야 되고, 세 나라 이상 넘어가야 됩니다. 멀수록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멀수록 좋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3개국의 시련을 받아 나온 겁니다. 세 나라를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3정권의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3종단의 시련을 받고 넘어가야 됩니다. 또, 사랑하는 제자 가운데 3인의 원수가 나타나 그들의 반대를 받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탕감 복귀의 원칙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아벨 혼자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아벨이 됐다 하게 될 때는 벌써 가인이 없게 마련이예요. 있게 마련이예요?「있게 마련입니다」 가인은 '이 녀석아! 네가 태어난 것은 나의 복을 빼앗으려고 태어난 거다' 하며 경계하는 겁니다. 아벨은 복 빼앗는 도둑놈이라구요. 그렇지요? 가인이 살림살이를 잘하고 있는데 아벨이 와 가지고 전부 다 뒤집어 놓는 거예요. 사탄편에서 보면 괴물로 등장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아벨을 잡자'고 핍박하겠나, 안 하겠나? 핍박하게 돼 있습니다. 핍박하는 데도 원리원칙대로 이 고개만 넘어가게 되면 못 친다는 것입니다. 쳤다간 걸린다는 것입니다. 한번 쳤다 하면 도리어 그가 넘어가는 거라구. 몇십 번까지는 쳐도 괜찮지만, 그 기준만 넘어가게 되면 손을 댔다가는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됐다 하면 그 앞에 가인이 몽둥이를 들고 와 '이 녀석! 아직 살아 있구나' 하며 친다는 거예요. 그 대신 죽이지는 못하는 거예요. 죽이면 손해배상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손해배상이란 무엇인지 알지요? 잘못한 녀석이 손해배상하나, 잘한 녀석이 손해배상하나? 대답해 보라구요.「잘못한 녀석요」잘못한 녀석이 손해배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 죄 없는데 침범한 것입니다. 침해했기 때문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남을 먼저 치는 것, 손질을 하든가, 트집을 잡든가 해 가지고 먼저 시비를 거는 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알겠어? 잘못한 것은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악한 것입니다. '매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고, 때린 사람은 다리를 펴지 못한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 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악한 자리에 서는 것이요, 피해자는 선한 자리에 서는 것이다! 요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가해자 측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 들이냐? 피해자 측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무리들이냐?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 지금까지 종교를 믿는 사람은 피해자요, 안 믿는 사람은 가해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안 믿는 패들이 가인이요, 종교를 믿는 패들이 아벨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를 입히게 될 때는 손해배상을 피해자가 물어요? 가해자가 무는 것입니다. 그래 손해배상을 문다 하게 될 때는, 사람을 죽였으면 죽인 것만큼 물어 가지고 되느냐? 안 됩니다. 알겠어요? 손해배상을 물게 될 때는, 그 본전을 다 배상해 주고, 피해자가 달라는 것까지 주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 그걸 보면 하나님의 탕감복귀원칙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떤 동네에 가서 돈 쓰고 다니고 이러면 침해당하는 거예요. 침해하는 거예요? (웃음) 왜? 그 동네 사람들을 꼬여내면 침해당하는 거예요, 침해하는 거예요? 계몽한답시고 밤이나 낮이나 처녀 총각들 꼬여내게…. 피해자예요, 가해자예요?「가해자입니다」그렇다구. 가해자예요, 가해자.
보라구요. 가해자라는 것은 말이예요. 지금 자살하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몽둥이로 발을 꺾어 버렸다면, 그거 가해자예요, 피해자예요?「가해자입니다」가해자는 가해자인데 종류가 다르다구요. (웃음) 그 사람이 그 나라에 있어서 둘도 없는 충신 될 사람 인데, 그냥 두었으면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인데 다리를 꺾어 놓았기 때문에 안 죽었다면, 그것 잘했나, 못했나? 「잘했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 잘했다고? 그건 왜 잘했느냐?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것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조건을 제시하게 될 때는 가해자요,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서 조건을 제시할 때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가해자와 피해자는 그게 다르다구.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그 사람을 복받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잘살게 해주기 위해서 애쓰다 욕을 먹는 피해자가 돼 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전도 나가서 마을에서 쫓기고, 동네에서 몰리는 일을 했더라도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동네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했다 할 때에는 가해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자기 앞에 복을 주려고 하는데 들이쳤다 할 때는 구경하는 사람까지도 내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선악의 판가름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 여러분의 수고는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끝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시일이 가면 갈수록, 선을 위한 그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손해배상의 양이 커져 가지고 한 나라 전부를 살려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복이 굴러떨어져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 세상 나라들을 보아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자꾸 바꿔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손해배상을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이런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벨은 태어나자마자 가인이 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세워 가지고 가인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빼앗는 데는 아벨의 욕심을 위해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인의 것을 빼앗는 것은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지…. 그렇다는 거예요. 가인을 구해 주기 위해서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쳤기 때문에, 치면 칠수록 자기를 구해 주는 그 희생이 크면 클수록 사탄세계는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역사는 엇바꾸어져 가지고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니냐!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양자로서 하나님의 직계 아들의 자리를 이어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남자로서 태어나고 여자로서 태어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무리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혼자서 남자로 태어난 목적을 이를 수 있어요?「없습니다」 여자로 태어났더라도 여자 혼자 여자로 태어난 목적을 이를 수 있어요? 여자는 누구를 위해 태어났어요?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어요? 여자는 그렇게 보기 싫게 생겼지만. (웃음) 본래 태어나기를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본래 태어나기를 여자라는 것은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은 자기 근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웃음)
또, 남자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겨났나?「여자 때문에요」그런데 이놈의 남자들이 여자들을 들이패는 일이 많다구요. 여러분들도 그런 걸 들어 봤나? 뭐 술 먹고…. 못된 남자 만나 가지고 불행한 여자가 많다구요. 그런 남자들 많아요. 그건 자기 존재권한을 무시한 거예요. 그렇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가 여자로 태어나서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신랑 신부의 자리를 거쳐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건 왜 그러냐?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하나되어야만 종적인 중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둘이 가까와지면 몇이 되나? 하나되는 거예요. 하나되는 데는 무얼 갖고 되나? 부부면 부부끼리 하나되려면 무얼 갖고 하나되나? 사랑 갖고 하나됩니다, 사랑. 사랑 갖고 하나된다는 거예요.
사랑 갖고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그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깃든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게 마련입니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곳에는 사탄이 임재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사랑은 서로가 위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년이 가고 몇 년만 가보라구요. 그저 땅거미처럼 되는 겁니다. 여자도 마음이 꼰드러진다구요. '너 그러면 나도 그러자' 그런 마음이 생겨나나. 안 생겨나나? 그건 생겨나게 마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데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 계시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위하는 곳에 계십니다. 형제끼리 서로서로 위하는 데서 하나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위하지 않고 싸우게 돼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탄은 서로서로가 싸우고 분립시키는 데 있으려 하며, 여기 왔다 저기 갔다 하니 자리를 못 잡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자리를 못 잡으니 안식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죄를 짓게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지요? 잘못하면 그런가, 안 그런가?「그렇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거라구.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안식할 수 없다구요. 악한 것은 둘로 갈라지게 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사탄은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해 가지고 하나되는 데는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은 위하는 사랑권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전부 다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태어난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다운 남자와 참다운 여자로서 장성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부의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해 가지고 그 부부를 통해서 비로소 사위기대가 완결되는 겁니다. 횡적인 사랑이 하나 됐으니 종적인 사랑이 하나되어야지요? 종적인 사랑의 인연이 하나님을 붙잡아 그 종적인 상대로 태어난 것이 무엇이냐? 아들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종횡의 사위기대 사랑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를 누가 잇느냐? 남편이 잇고 아내가 잇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이 잇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 죽게 될 때에 자기 아들 딸한테 주고 가야지, 자기 아내에게 주고 가면 안 된다구. 유언하게 될 때 '마누라, 이 재산 잘 맡아 가지고 잘 살아요' 하지 않고, 마누라, 이 재산 잘 간직해서 아들딸한테 잘 인계해 주오' 그러지요?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전부 다 그런다는 거예요.
종횡으로 갖추어진 사랑권이 사위기대 사랑권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부모가 부모로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비로소 횡적인 면에서 실체적인 하나님의 대신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고 느꼈던 기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인간 앞에 횡적인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창조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슬프기 위한 것이냐? 기쁘기 위한 것입니다. 기쁜 데는 무얼 갖고? 돈 갖고, 물건 갖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통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 딸이 커 가지고 부부의 사랑, 그 부부의 사랑이 커 가지고 부모의 사랑, 이 삼사랑을 일대에 전부 체험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 앞에 자식의 때와 신랑 신부의 때와 부모의 때를 허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횡적인 면과 종적인 면에서 느낄 수 있는 중심에 선 하나님은, 그때서야 비로소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고 언제나 기쁠 수 있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아이고, 내가 짓기를 잘했다. 아이고, 내가 참 일을 잘했다. 내가 행복하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그 자리에 집을 지어 가지고 영원한 안식처로 삼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 알겠나?「예」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갈래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종으로서 순종을 거부하는 '에이 순종이 뭐야? 사랑해서 뭘해? 다 나를 위해야지' 세상에는 그런 패들이 많다구. 통일교인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지 말고 희생하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봉사해라' 다르다구요.
그 다음에는 아벨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벨의 길도. 그저 가인을 구해 주려고 하고, 반대하는 무리들을 구해 주려고 한다구요. 그러다가 피해를 받아 다리도 부러지고, 머리도 깨지고, 그러면 머리에 꿀떡을 해 붙이고라도 또 찾아가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한 번, 두 번만이 아니라 몇 번씩 가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만 그렇게 하게 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손해배상을 물게 마련이라구요. 세 번 이상은 침범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어떤 악한 사람이 자기에게 찾아와 가지고 쓱 거짓말을 합니다. '여보게, 자네 나한테 돈 좀 빌려 주게' 그러면 그게 거짓말인지를 벌써 안다구.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빌려 준다구요. 그 다음에 또 와 가지고 '여보게, 자네 돈을 좀 빌려 주게' 그러면 그게 속이러 왔는지 알고도 또 빌려 줍니다. 자, 그러면 그렇게 첫번 나한테 빌려 갈 때 모르고 빌려 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부 다 알고 있더라 이거야. 그렇게 되면 두번째 와 가지고는 얼굴이 붉어지게 되는 거예요. 두 번까지도 빌려 주긴 빌려 주었는데 전부 다 알고서 빌려 주었다 할 때, 그 다음에 와서 '여보게, 나 또 좀 빌려 주게' 하면, 또 사기치려고하는 것을 알면서도 또 빌려 주면, 그 다음에는 올 수 없다는 거예요. 세 번 이상 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세 번 이상 나를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 이상만 넘어가는 날에는 그 다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거예요, 손해배상. 그렇게 되면 완전히 내 앞에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굴복하게 마련이라구요. 그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해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런 노정을 반드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하면, 참아들과 양자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아들과 양자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양자는 이 세상에 언제든지 있을 수 있지만, 참아들이라는 것은 메시아이기 때문에 한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봄절기가 돼야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때에 이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양자로서 직계자녀로 들어갈 수 있는, 접붙이기 위한 수속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수속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란 분입니다. 알겠어요?
그 수속만 잘 하면 어떻게 되겠나? 여러분, 차표 알지요? 차표를 사러 갔는데, 차표 파는 곳도 모른다구 합시다. 어디서 사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모르지만 암표라도 사면, 차표를 파는 데 가서 안 사더라도 개찰구에 들어갈 수 있나, 없나? 들어갈 수 있지? 있다구요. 결론은 차표를 어떻게 내 손에 집어넣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시아는 와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차표 끊는 방법, 차표가 이렇다고 해 가지고 전부 다 딱딱 도장을 찍어 가지고 나누어 준다는 거예요. 나누어 주는 데는 얼마얼마 내라, 내는 데는 이렇게 이렇게 내라 하는 식이 있다구요, 차표를 끊어서 내는 것과 다르다구요. 딴 식이 있다구요. '이렇게 이렇게 해라, 이렇게 이렇게 하면 그 차표를 입수해서 차를 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제시하는 조건만 거쳐서 수속만 하는 날에는 여기서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나? 알겠어?「예」
그러한 사명을 해야 할 곳이 통일교회라는 곳입니다. 알겠나, 무슨 말인지?「예」 어떤 사명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라구? 이런 수속을 할 수 있는 곳은 딴 데는 없는 것입니다. 이 수속을 밟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태어난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나? 없다구요.
그것은 조건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몰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집문서를 누가 썼는지 몰라도 좋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집문서는 누가 썼는지 몰라도 믿을 수 있는 내용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마찬가지 입니다. 양도증이면 양도증, 집문서면 집문서 그것만 중요시하면 되는 거예요. 그건 뭐 펜으로 썼건, 연필로 썼건, 붓으로 썼건 아랑곳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예」 붓도 좋고, 연필도 좋고, 만년필도 좋고, 무엇이든 좋다는 거예요. 내용이 잘 되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뭐 이름을 다 쓰지만 그 주인이 그저 동그라미만 몇 개 쳐 놓아도 싸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의 싸인이 그렇더라 하는 것이 공인되면, 뭐 동그라미 열 개를 쳐도 좋고, 백 개를 쳐도 된다구. 그렇게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수속절차를 밟는 데는 통일교회 이외의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속절차를 밟아 가지고야 비로소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연의 부모의 자리에서 선한 아들딸을 낳음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연의 사람, 그렇게 됐다 하면 그는 타락한 세계의 사람이 아니고, 타락하지 않은 창조본연의 사람의 가치로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통일교회는 축복이라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탕감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뜻이 원하는 길입니다. 알겠어? 가정은 개인과 부부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씨족도 개인과 가정을 통해 가지고 이루어지지? 나라도 개인과 가정과 씨족이 합해 가지고 이루어지지? 세계는? 세계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씨족도 탕감할 수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 나라도 탕감할 수 있고, 세계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각해서 하나님 앞에 탕감조건을 세우면, 나라도 복귀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자각의 내용을 가지고 나타난 가정이 되게 될 때에는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에 한 남성으로 와서 한 여성을 찾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을 세계적인 대표의 가치기준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찾아왔더라, 그것이 예수님이 와서 이루고자 한 신랑 신부의 길이더라! 그렇게 돼 있지? 뜻이 원하는 길이 뭐냐? 그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은 순수한, 죄와 상관없는 참다운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과 딸이 되기 전에는 순수한 양자와 양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런 양자와 양녀가 되기 전에 순수한 종이 돼야 되겠습니다.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거쳐 가지고 신랑 신부로서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을 못 모시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을 혼자 못 모십니다. 신랑 신부를 갖추어야만 부모를 모시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귀의 길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돼야만 땅 위의 횡적인 하늘부모를 모실 수 있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돼야만 종적인 하나님, 영원한 부모를, 종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위기대 이상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뜻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나?「예」
먼저 종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엔 양자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에 접붙여 가지고 아들의 도리를 다해라. 그 다음에는 가정을 대표한 부부의 도리를 거쳐 가지고 부모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라!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가르쳐 주는 창조이상완성이요, 사위기대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즉 무엇이냐?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는데, 아버지의 뜻이 뭐예요.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뜻이 뭐예요?「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귀하기 전에 개인을 복귀해야 된다구요. 나라를 복귀하기 전에 가정을 복귀해야 된다구요. 가정만 세계적 기반을 대표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자리에 나가게 되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걸 표준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유대교는 무엇을 내놓기 위한 것이었느냐 하면, 신랑 신부를 내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 기반 위에 선 예수와 신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결국 뭐냐 하면, 전체 가치를 대표한 사위기대완성의 기반을 찾아온 것이 메시아가 찾아온 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나?「예」
이 길을 가야 돼요. 이 길을 가야 된다구요. 이 길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수고했는데, 여러분들이 이 길을 자기 일대에 가려면 얼마나 수고해야 되느냐? 얼마나 수고해야 되느냐, 생각해 보라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도, 혹은 예수님 같은 양반도 이 땅에 와서 실패한 그 길을 찾아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긴장된 자리에서, 얼마나 성심성의를 다하는 자리에서 이 길을 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분은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을 통하여, 노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세례 요한과 예수를 통하여, 예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피의 선혈을 흘려 가지고 이어 나온 그 모든 역사과정을 볼 때, 그것은 끝날에 있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완성해야 할 사위기대복귀를 위해서 투입된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길을 가면서 얼마나 책임을 추궁하고, 얼마나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우리의 한을 풀어 달라며 이 땅 위에 얼마나 한의 요건을 남기고 갔느냐! 그것을 우리 자신들이 풀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심각하고도 심각한 자리에서 이 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명을 다하도록 노력해라 이겁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의 자리를 두고 볼 때, 끝날에 있는 우리로서는 역사를 대표한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한 아벨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한, 예수보다 나은 자리에서 신랑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남성으로서 여성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품겨 가지고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사위기대 복귀를 완성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돼야, 하나님이 끝날에 찾아진 가정이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라고 내세워 가지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다. 요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더우기나 여러분이 20대 젊은 청년시대에 있어서 순결한, 아직까지 꽃이 피지 않은 그러한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은 입장에서 이 길을 직선으로 가게 되면 얼마나 그것이 아름답겠느냐?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이거예요. 횡적으로 더럽히지 않고 순정이 깃들어 있는 그런 깨끗한 처녀 총각으로서, 이 개인탕감노정을 거쳐 전체탕감기준 앞에 승리의 자리를 닦아 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맡아 주시는 그런 놀음을 하게 된다면, 역사시대의 그 어떤 시대보다도 보람 있는 가치를 지닐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서 첫사랑의 인연을 맺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자리에서 첫사랑을 통해서 첫아들딸을 낳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었던 본연의 기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을 해서 그렇게 안되었지만…. 여러분, 여기에 찢겨진 종이 짜박지 같은 것이 있다면 이것을 전부 붙여 가지고 깨끗한 종이 같이 만들어 놓으면 편지는 쓸 수 있더라구요. 여기에 먹칠을 하고 구멍을 뚫고 다 못 쓰게 갈래갈래 찢어진, 전부 다 금이 가고 주름이 잡힌 그런 종이 짜박지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찢어져서 붙이긴 붙였지만 깨끗한 모습을 해 가지고 예수와 더불어 혹은 메시아와 접붙이는 자리에서 완전히 재생된, 찢어지지 않은 종이와 같은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한을 대신 풀 수 있는 그러한 승리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보다도, 형제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가 있다면 그 애국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인류를 사랑하는 그 박애심도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만 되지, 그것이 자기 라든가, 자기 민족이라든가, 혹은 자기의 주의 사상을 가진 일파적인 동기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뜻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여러분은 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알고 나면 가면 갈수록 이 시대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이 짧고 한 번밖에 없는 이때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그러한 시대를 오늘날 내 젊은 청소년시대의 꽃다운 시절에 맞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선조로 이어 나온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 혈족을 중심삼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한 번밖에 없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빛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온갖 생애를 다 투입하더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가야 할 것, 오늘 뜻을 대한 복귀의 길을 찾아 나가는 길이요, 여러분이 뜻의 원을 이루어 드리는 길인 것을 알고, 다 함께 달려가 하나님의 축복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알겠지?「예」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의 과정이 어떻게 엇갈려 있는지를 모르던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사, 당신이 찾아오시던 한 많은 복귀의 길을 더듬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을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으셨사오니 이번 기회를 통하여 저희들이 금후에 가야 할 길을 어떻게 가려 가야 되는가를 확실히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고, 본래 아버님이 지으신 본연의 타락하지 아니한 우리의 조상의 그 기준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아버님의 원수인 사탄권내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부모를 통하여 자식이 되었고, 그 혈족이 되었고, 그 국가와 세계인류가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억울하고 원통한 이 자리에서 저희들은 용단을 내려 이 세계를 잘라 버리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한 세계에 잘라 버린 대신 그 같은 가치의 기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세계를 잘라 버리고 나서게 될 때에는 나만 남는 것을 확실히 말아야 되겠습니다.
외롭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외로와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간 길이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러한 외로운 자리를 굳건히 지켜 가지고 하늘이 원하는 그 소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가야 할 길을 다 달려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종으로서 충성하지 못하였던 그 길을 저희들은 복귀해야 되겠고, 양자로서 책임을 다 완결짓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복귀완성하여야 되겠고, 아들과 신랑 신부로서 당신의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저희들은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둘도 아닌 당신의 뜻으로 원하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 길을 순수하게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가 몸을 더듬어서 밝히게 될 때에 내 손이 아버지께서 친히 빚어 만든 아담 해와를 대신한 손인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 손 가운데는 아버지의 정성이 어려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모습 가운데는 아버지의 소원과 아버지의 이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모든 사지백체에 아버지의 사랑의 손자국이 남아 있고, 아버지의 정성과 심정의 모든 것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자기 자체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가치가 하도 귀하기 때문에 악과는 짝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만을 받들고 하늘만에 속할 수 있는 자신을 남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세계와 선한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한 자는 공격을 받되 반드시 손해배상의 대가를 받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흐리멍덩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불확실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똑똑히 아버지편에 선 것을 자인하고 자랑할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악한 세계를 가려 갈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하늘이 원하는 뜻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깨닫고, 생애를 통하여 그 길을 갈 것을 다짐할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무한한 희생을 할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길을 청산짓기 위해서는 어떠한 탕감의 길도 감사히 맞아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고등학교 시대를 넘기는 최후의 이 기간 위에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이들이 새로이 결심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아버지의 신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이 민족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깨끗한 청춘시대를 고이 간직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결실체로 바쳐 드리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이 충성을 하고, 아버지 앞에 효성을 하고, 혹은 세계 앞에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지고, 당신의 자랑이요, 당신의 승리의 결정체로 남아질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지도편달하여 주시옵고 양육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옵소서,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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