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 원리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의 길을 통해서 복귀의 목적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타락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타락의 역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타락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타락하였기에 필연적으로 복귀의 길을 가야 하는 인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직계의 자녀, 그 자녀들로서 구성된 가정을 위주로 하여 가지고 종족이 편성되고, 국가가 이루어지고, 세계가 이루어졌더라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세계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나라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가정이요.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체가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하나님을 원수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역사요. 타락의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면, 하나님이 세우시려던 창조이상의 영원한 사랑의 세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본래 의도하셨던 창조이상을 실현시켜야만 하나님의 본래의 권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표준해 가지고 악한 세계를 수습하여 본래 이상하셨던 본연의 세계로 이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노정에 필요한 것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인간은 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개인완성의 길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요. 복귀의 길을 가지 않고서는 가정완성의 뜻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완성의 길을 넘지 않고서는 민족완성이라든가 세계완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을 통해서만이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완성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필연적인 운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곳에서만 개인이 완성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세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을 중심한 한민족이 있고 가까이에는 일본 민족이 있으며, 나아가 아시아에는 여러 민족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좀더 확대하면 세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야 되겠느냐? 복귀의 길은 함부로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복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완성을 위한 표준형을 세워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표준형은 본래 의도하였던 기준을 다 넘어선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준적인 개인을 통해서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가정과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나라와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세계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오늘날 복귀의 길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추구하시고자 하는 뜻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저 막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가운데 뜻을 대할 수 있는 특별한 종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뜻을 대할 수 있는 특별한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 혹은 교회가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창조목적을 향하는 세계로 직행할 수 있는 길 외에 달리 갈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의 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신학자가 우리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말씀을 했었습니다. 말씀을 하고 난 후에 우리 식구 중에 젊은 사람들이 그 신학자에게 묻기를 '그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오?’라고 하니까 그 신학자가 하는 말이 '아! 그것은 지극히 어렵고도 쉬운 문제요. 하나님의 뜻이 라는 것은 어렵다면 어렵고 또 쉽다면 쉬운 것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우리는 교회 교회마다 전부 뜻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뜻을 두고 '그것은 이렇다!'할 수 있는 결정적인 뜻으로 제대로 정하여 놓고 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작 성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책임수행 여하에 따라 결정되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뜻의 확정을 가리지 못한 자리에서 뜻을 완성하고 뜻을 받든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닌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세계 전체의 중심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의도하는 환경적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이 뜻의 길이기 때문에, 그 뜻의 길이 모호하고 불확실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확실한 뜻의 길을 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뜻의 길은 특정한 종교를 대표한 특정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종교가 무엇이냐?그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그 종교 가운데 특정한 교회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기독교를 두고 보더라도 40여 교파가 있습니다. 그중에 큰 교파를 보면 장로교가 있고, 감리교가 있고 성결교가 있습니다. 여러 교파가 있지만 과연 그 교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대해 나갈 수 있는, 집행해 나갈 수 있는 참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이냐?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이 참다운 교회의 입장에 섰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목사 혹은 어떠한 지도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의 길을 복귀해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 진정한 의미의 교단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름은 기독교의 이름을 갖고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뜻을 받들어 나갈 수 있는, 뜻의 목적인 창조이상에 대한 노정을 그냥 그대로 계승한 대표자로서 우리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모호하고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먼저 창조이상을 완성한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 가는 길은, 나라의 뜻을 따라서 가든가 세계의 뜻을 따라서 가든가 그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이상과 같은, 다시 말해서 타락의 세계를 생각지 않았던 이상세계로 향해 갈 수 있는 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완성의 길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 개인 완성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어떠한 외적인 세력 기반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기반과 일치될 수 있는 데에서만이 개인완성의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욕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우리 가정이라든가 혹은 환경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생활적인 주체요. 환경적인 주체로 삼아 개인인격완성을 표준해 가지고 그 목적으로 접근시켜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개인완성이라는 뜻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지향하는 골자 사상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개인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신 것은 그냥 그대로 보고 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쁘시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기쁨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것이고, 행복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서로서로가 평화로운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 그 자체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서로서로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아들을 대할 수 있는 그 사이에 연결된 힘이 환경을 움직일 수 있는 기쁨의 요소, 기쁨의 힘으로 남아질 수 있어야만 됩니다.

그 둘 사이에 서로서로에게 연결된 그 힘이 무엇이냐? 어떠한 힘도 이것을 제거시킬 수 없고, 어떠한 힘도 이것을 방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주체적인 힘입니다. 거기에는 그 하나만이 우리의 절대 이상이라고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지 않고는 서로서로 이상의 주체요. 이상의 상대자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행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 요인이 무엇이냐, 우리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는 자리밖에는 없습니다.

그 상대적 관계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고, 우리 인간은 사랑의 상대로서 관계를 맺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으시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도 있고, 가정에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많지만 어떤 자리가 제일 하나님과 인간, 절대적인 주체자와 절대적인 상대자의 입장에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제거할 수 없는 하나의 결합되고 통일된 자리이겠느냐? 이 자리는 아버지 앞에 자식되는 자리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최고 욕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단적으로 물어 대답을 하는 분이 있다면 최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말할 것이며, 그것을 이룬 사람을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로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을 최고 성공한 사람이라 한다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그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나라라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자리는 최고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성공의 희망의 자리일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성공했다는 자리에 섰더라도 그 자리가 세계의 뜻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하나되는 자리가 못 될 때는,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한 국가를 대표해 가지고 성공하는 것은 세계와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자기 마음대로 치리할 수 있고,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만이 행복은 아닌 것입니다. 더 큰 세계가 있으면, 더 큰 세계적인 성공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바랄 것입니다. 만일에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더 높은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움직이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욕망의 종착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세계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 이 종착점만으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어떠한 주체적인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와 관계를 맺을 때까지 여러분의 욕망은 그곳을 지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최고의 그분에게까지 우리의 욕망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에게 명령을 받고, 사명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문제에 따라 가지고 그 가치에는 등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자리냐, 혹은 양자의 자리냐, 혹은 직계 자녀의 자리냐 하는 문제를 따져 보게 될 때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절대자 앞에 있어서 그 절대자를 부모로 모실 수 있고, 절대자의 사랑을 중심삼고 홀로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최고의 욕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론을 추구해 가지고 결론지을 수 있는 자연적인 결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랑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욕망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자기 편에 둔다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시간을 초월하고 생애를 지나 가지고 영원히 동반할 수 있는 자리에 자기가 있게 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이란 여기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겠느냐?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최고로 기쁘게 상봉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은 아버지요 인간은 자녀다 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 외에는 인간이 기쁨으로써 맞이할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는 자리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 인간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두고 혜아려 볼 때에, 그 자리가 아니고는 우리 마음 바탕의 종착 점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는 영원히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은 자녀로서 부자의 인연으로 영원한 사랑의 인연을 맺는 그 자리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 하면 그 사랑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모도 그 사랑하는 자식을 대해 가지고 반대할 수 없는 것이고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타락한 인간도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 자식에게 '그 사람들은 너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고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부모인 줄 알고, 또 그 사랑을 받고 있는 이상 어떠한 외적 조건이라든가 혹은 아무리 교육을 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사랑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부정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사랑이 있다면 부정하게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라구요. 부모가 자식을 대해 지금까지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부모의 마음에 가득해 가지고 다른 상대를 취해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갖게 된다면, 그 자식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 큰 사랑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사랑의 길은 희생함으로 빛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침범을 절대 받지 않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절대적인 사랑의 자리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것은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세상의 둘 사이가 좋아 가지고 '너 아니면 나, 나 아니면 너' 하면서 서로서로가 죽자 살자 하던 남녀들이 세계적으로 소문을 내고 결혼을 했을지라도 서로서로가 사랑하는 상대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나오게 될 때, 그 두 부부는 깨질 수 있어요. 없어요? 더 사랑받을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길만 생겨나게 되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리 좋다고 하던 그 사랑의 인연도 버리고 돌아서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이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최고의 이상은 최고의 하나님의 사랑,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빼고라도 절대적인 사랑에서만 최고의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부의 최고의 이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절대적인 사랑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부자관계의 최고의 이상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최고의 부자관계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가정에서 부모, 부부, 자녀, 형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최고를 중심삼고 인연된 사랑이 있는 데에서만 최고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국가와 국민이 분립되지 않고 하나될 수 있는 것도 최고의 사랑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을 여기서 내리더라도 명백한 사실이라고 우리는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의 길을 세워 나오는 하나님편에 있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지도 방침을 세웠느냐? 수단 방법을 가리기보다는 그 자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순수한 이념만을 중심삼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고 했고,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계명 중에 제1차의 계명이 있다면 이 계명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되면 그 외의 모든 법도는 이 법도권내에서 치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이상 실현은 어디서부터 되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역설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의 독재자같이 생각 된다구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구요.

생명을 내놓고 대들어야 이루어지는 사랑

사랑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념을 가지고 합니다. 상대적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도 생명을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라구요. 사랑이라는 말은 독자적인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환경, 관념에서 이루어지는 말이기 때문에, 네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으니 그 말은 하나님도 생명을 다해서 너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했는데, 이것 역시 반대의 말이라구요.

시집갈 연령이 된 아가씨들이 생명을 기울여 죽기를 각오하고 신랑감을 찾아 나서면 시집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그런데 '시집이야 가면 가고 말면 말고, 세월 따라 환경 맞추어 가지' 하고 적당히 생각하다가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 올드 미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됩니다. 열심을 낼 때가 있습니다. 안 그래요?모든 것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죽도록 사랑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기를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까짓 거 남자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 뭐, 시집가는 것이 급한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 삼촌 뭐 다 봐도 그렇더라, 신통한 것이 없다' 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으로 알뜰살뜰한 부부는 절대 안 나옵니다. 나와요? 응? 서로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너 아니면 나다. 그렇지 않으면 죽자' 하면 '그래, 그러자' 하며 세계를 대해 자랑하겠다 할 때에 멋진 부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흐리멍텅해 가지고 죽에 코 풀어 놓은 듯이 해서는….

그걸 보면 하나님도 적극적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죽는 거예요? 성공하기 위해서? 성공의 최고의 종착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점유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찾을 수 있고 점령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한번 생명을 내놓고 대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 없어? 「있습니다」 없는 패들은 통일교회에서 아예 보따리를 싸 가지고 물러가라구, 내가 선포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가도 그저 그렇더라, 말씀은 좋지만 기분 나쁘게 전부 다 자기만 생각하고 있더라' 이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전부 자기들 끼리끼리만 좋아하지 새로 들어온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도리어 반발하는 이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보십시오, 이렇게 얘기 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겠구만.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남녀가 가야 할 근본 길

처녀 총각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처녀는 처녀끼리 합하고 총각들은 총각끼리 합한다구요. 그렇지요? 결혼하기 전에는 처녀들끼리 서로 '야야야, 너 왜 우리 집에 안 왔니? 너 없으니 나 섭섭하더라' 하며 야단합니다. 어쩌다 만나게 되면 붙들고 다짐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본다구요. 또 총각들도 그래요. '에이 자식아, 왜 안 왔어? 나한테 말도 없이 며칠 동안 어디 갔다 왔어?’ 하며 야단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여자는 여자끼리 합하고 남자는 남자끼리 합합니다. 그렇다고요. 그렇지요? 「예」

상대가 없을 때는 자기들끼리 합하지만, 만일 남자 가운데 여자가 생기면 어제의 친구가 오는 걸 좋아해요. 나빠해요? 결혼해 가지고 첫날 밤을 자는데, 아무개 친구가 와서 '색시를 나중에 보고, 나하고 만나자, 너하고 나하고 십년 친구인데 나하고 가깝지?’하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 좋아해요? 그것을 절대 좋아해요. 절대 싫어해요? 「싫어합니다」 그거 절대 싫어합니다. 절대 싫어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알겠어요? 절대 좋아하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거예요. 자, 우리 아가씨들, 첫날밤에 친구가 그렇게 들어오면 기분이 좋겠어요? '저놈 미친 자식 같으니, 저 미친 개 같은 것을 도깨비가 왜 안 잡아가지' 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고 욕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더욱이나 욕 잘하는 여자들은 속이 새빨갛게 불 탈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상대가 나타나기 전에는 끼리끼리 몰려다니지만 상대가 결정되게 되면, 상대에게 모가지를 걸고 지금까지의 관계는 뒷발로 차 버린다구요. (웃음)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되기 때문에 상대 없는 기성교회에 서는 누구나 와도 좋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축복을 받기 때문에 상대가 다 있다구요. 축복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거치적거리면 방해가 되니까 자기들 끼리끼리 뭉쳐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섭섭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축복받은 가정인데 저런다고 기분 나빠서 통일교회에 못 나가겠다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고 오해이니 들어보라구요. 새로 들어온 녀석들은 잘 대접해 주면 멍청이가 된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더 잘 대해 주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기 길을 못 간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결혼을 떡 했는데도 남자가 옛날 친구를 찾아 잘 대해 주고 '결혼했어도 너하고 나하고 친구인데 너하고 나하고 둘이면 되지 색시가 무슨 소용이니' 이렇게 나오면 또 그 남자 친구가 '아! 그 말 맞다 맞다' 하고 맞장구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집안은 파탄되어 버리고, 그다음 그 친구도 그냥 두었다가는 영영 결혼 못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 버려야 됩니다. 쫓아 버려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사람이 가야할 근본 길이니, 이와 같이 되어야만 아들딸을 낳고 씨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혼자 가게 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쫓아 버려야 됩니다. 쫓아 버리는 것이 뭐냐 하면, 너도 빨리 나와 같이 이렇게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지고 행복하게 되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차 버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예요. 사랑, 요걸 몰랐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결혼한 다음에는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원리는 뭐냐? 상대이상을 완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이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 전기도 그렇지요. 플러스 마이너스가 만나야 번개도 칩니다. 번개가 치려면 수억 볼트의 전압이 생겨나야 하는데, 플러스 마이너스가 생기려면 그것이 한꺼번에 생겨나는 게 아니예요. 플러스 플러스끼리 아직까지 상대가 결정되지 앉았을 때는 플러스가 생겨납니다. 그러다가 마이너스에 그와 가까운 플러스가 있게 되면 합해지는 것입니다. 비슷한 상대를 찾아서 쭉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면 스톱되어 번개가 치고 우뢰가 나고 하는 것입니다. 전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자, 이렇게 볼 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았다 하게 되면, 절대적 주체와 절대적 상대가 딱 하나되었다 하게 되면 거기에 방해되는 것을 그냥 두겠어요? 환영하겠어요? 발길로만 차요? 입으로는 물고 발로는 복장이라도 차 버려야 된다구요.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섰으면, 천사장하고 타락하지 말라느니, 따먹지 말라느니 하는 이런 경고가 다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지금 재미있게 사는 부부에게 '야야, 너 이혼하지 말라구' 하는 경고가 필요해요? 서로 죽자 사자 좋아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코방귀나 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사람은 어떤 때가 좋으냐 하면, 혼자 있을 때가 좋다 그래요? 그럼 몇이 있을 때가 좋아요? 둘이 있을 때가 좋은 것입니다. 그럼 둘만 있으면 좋으냐? 아닙니다. 주인이 있어야 좋습니다. 무슨 주인? 절대적인 주인이 있어야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어야 좋다는 말이라구요. 땅을 중심삼고 보면, 형제는 무엇이 있어야 좋으냐? 부모가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 싫다는 사람 있어요? 부모 싫다는 자식 있어요? 그 놈의 자식은 후레자식이라구요. 그런 녀석은 자식도 아니예요. 미친 녀석이라구요.

불평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고아이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노처녀가 되면 '아, 나는 불쌍하다. 외롭다. 슬프다. 죽고 싶다' 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건 왜? 부모가 있어도 그때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부모가 아무리 고기 반찬을 해주고, 대접을 매일같이 아주 푸지게 해준다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 고맙습니다. 내 나이 서른 다섯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럽니까? 그래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태어났으면 정상적인 입장에서 부모와 하나되어 가지고 자라야 합니다. 부모와 종적인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종적인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모의 사랑을 완전히 계승받으면, 비로소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난 사람은 이 세계에서 쫓아낼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우리 아주머니, 아저씨들,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잊어버려요. 안 잊어버려요? 마누라가 죽어서 새장가를 두 번 세 번 간다 하더라도 첫사랑의 인연을 맺었던 상대자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소, 없을 것 같소? 응? 대답을 하라구요. 대답을 해야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대답을 안 하면 이야기를 안 할 거라구요. 선생님 물이나 좀 먹습시다. (웃음)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없을 것 같다니? 없지요. 그때는 없다고 그래야 만점이 되는 거라구요. 내가 없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묻는다고 그렇게 대답하면 안 돼요? '없다'고 대답 해야 백점을 주고, 동그라미를 치더라고 주먹 같은 동그라미를 쓱쓱 그릴 것인데, 대답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애요? 「없습니다」 없지요. 없다고요.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그러면 형제간에도 내가 왜 외로우냐? 형제 중에 사랑할래야 사랑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을 줄래야 받을 자가 없고, 사랑을 받을래야 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싫어요. 여러분, 독자 좋아요? 독자가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외동딸이 좋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백만장자의 외동딸로 태어난다면 좋지, 왜 나빠요? 형제가 많으면 재산을 전부 분할해 가지고 나누어 가질 텐데 뭐가 좋아요? 혼자면 어머니 아버지 사랑도 독차지할 텐데 외동딸이 왜 나빠요? 좋지요? 좋아요, 나빠요? 백만장자의 외동딸로 태어나는 것이 나빠요? 좋아요. 나빠요? 「나빠요」 왜 나빠요? 왜 나쁜가 말이예요? 이것은 우주의 원칙에 불합격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형제 사이에 사랑을 서로 주고받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 밤이나 낮이나 부모를 대해, 하늘을 대해, 종적인 위를 대해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게 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어머니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면 자신도 어머니 아버지의 딸로서 사랑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되겠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한 차원 낮은 평면적인 형제의 사랑입니다. 형제의 사랑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것처럼 아들딸도 서로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싶은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을 때 당당히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이런 부모의 사랑도 받고 형제의 사랑도 할 수 있으면 행복하지만, 남자, 여자로서 성숙한 후에는 남자에게, 여자에게 또 하나의 횡적인 대상이 생겨나야 됩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플라스의 세계를 대표한 남자와 마이너스 세계를 대표한 여자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종적인 세계가 결합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부모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는 가정의 행복한 아들딸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남자면 남자가, 여자면 여자가 결혼 하지 않든가, 결혼하지 못하는 자리에서는 불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요. 이런 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종횡을 중심삼고 종적인 사랑이 뭐냐? 부자의 사랑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부자의 사랑이고 횡적인 사랑은 부부의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횡적인 면의 부부의 사랑과 종적인 면의 부모의 사랑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형제가 위로 아래로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형제의 사랑으로 엮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제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다? 어때요? 가정에서 누구보다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예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들, 오늘 결혼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 나쁠는지 모르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기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한다구요. 그렇잖아요? 때도 가을절기고 날도 괜찮구만, (웃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종적으로, 위로 드리고 싶을 때 언제나 드릴 수 있는 주체를 가져야 됩니다. 미성년 시대에는 횡적으로도 얼마든지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형제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훈련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자유 환경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불행한 사람이 아니고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되는 것입니다」 되지 않는 것이다? 「되는 것입니다」 그런다면 내가 지는 거라구요. 아무리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도 여기엔 지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 나오느냐? '행복이야,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패스해 가지고 판검사 되는 것이지' 하는 사람, 그건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 판사 자리를 버리겠느냐, 사랑하는 애인을 버리겠느냐? 어떤 것을 버릴 거예요? 이것은 미치광이에게 물어 봐도 대답은 100점 맞는다구요. 누구나 100점 맞는다 이거예요. 이렇게 누구나 100점 맞게 되면 그것은 세계의 공통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것이냐, 판사직을 버릴 것이냐? 「판사를 버리겠습니다」 제일 못난 사람, 병신 보고 '어떻게 하겠소?' 하면 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병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대답이 확실하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려니 말을 그렇게 안 할 수 없고,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떤 형태의 사람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아니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요.

대통령, 그 최대의 성공하는 자리를 위해서 별의별 놀음을 다했는데 이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대통령직을 버리겠습니다」 대통령직을 버린다구요? 그 대답 틀림없지요? 정신차리라구요. 왜 이렇게 묻느냐 하면 선생님이 목적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러니 작전에 말려들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요. 대통령직도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세계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세계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어때요? 세계의 대통령 자리는 역사적으로 수천만 인간들이 한 날의 성공을 위해 희생된 보람 있는 가치의 자리인데, 그 자리를 버리다니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절대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것이냐, 세계 대통령직을 버릴 것이냐 할때는? (웃음) 어떡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립니다」 정말 이예요? 「예」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세계 대통령 되어 보겠다고 노력해 보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노력을 안 해보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되지만 진짜 피땀 흘리고 노력한 사람이 그 자리를 버려요?

역사노정에 몇천 년 동안 죽지 않은 할아버지가 있어서 그러한 각고 끝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여자는 언제든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세계 대통령 자리를 한번밖에 없는데 그걸 버려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을 하라구요. 세계 대통령직을 버려요.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요? 「세계 대통령직이요」 그것 틀림없소? 맞아요? 「맞습니다」 맞아, 안 맞아? 「맞습니다」 뭐가 맞아, 이 쌍것들. 「맞습니다」 그것 틀림없이 맞아요? 「맞습니다」 욕을 먹어도 하겠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것은 욕하는 사람이 오히려 미친 사람이 된다구요.

대통령직을 버리는 것이 원형이정입니다. '원형이정은 천도지상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지강(元亨利貞天道正當, 仁義理智人性之綱)이라'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 원형이정은 천도(天都)로서 어느 누구나 공인할 수 있는 사실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 세계 대통령도 사랑이 없으면 빵점입니다. 그렇지요? 결국 그말 아니예요? 자, 우리 다정스럽게 대답합시다. 그 말이지요? 「예」 틀림없지요. 아가씨들? 「예」 무뚝뚝한 아가씨들도 틀림없지요? 「예」 미루지말고 대답 합시다. 그러면 내가 기분 나쁘다고요. (웃음) 이제 점심때가 되어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점심이 환영 안 한다고요. 자, 여기 무뚝뚝한 남자들도 '세계 대통령도 사랑만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거요. 알겠지요?

자, 또 한 단계 올라가게 되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절대적인 하나님을 점령했는데, 거기에 또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을 버리겠어요.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오」 대답하라요. 대답을 하라구요. 누구를 버려야 되겠느냐? 응? 사랑을 원칙으로 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겠다고? (웃으심) 「사랑이 작은 쪽을 버리겠습니다」 사랑이 작은 쪽을 버리다니? (웃음) 결국 아무리 하나님을 맞아 들였다 하더라도 하나님 가운데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도 쓸데 있다? 「없습니다」 하나님도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런 걸 미리 아시고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나만 사랑해라' 하셨다 이거예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결론이 나온다고요. 하나님은 껍데기만 들고 나오지 않고 사랑을 들고 나오신 주체가 되셨기 때문에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고 하는 거예요.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인 인간의 본성

자, 대통령도 되고, 세계의 대통령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함께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잖아요? 사랑이 없는 하나님일 때는 그 하나님도 버리고 사랑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인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참 잘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말씀하신다고 한번 가 보자고 해서 어떤 사람일까 하고 처음 온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문선생 수다스럽다고, 우리 집도 못살게 만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오늘 요것 하나만 기억하고 간다면, 땀 흘리고 수고하면서 이 산에 올라왔던 것이 손해난다고 보지 않아요. 절대 손해 안 난다고 봐요. 알겠어요?

제일 높은 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분은 절대자인 동시에 절대적인 사랑을 지니신 분인데,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한꺼번에 취할래요. 따로따로 취할래요? 어떤 방법을 택해서 그걸 취하려고 하겠어요? 「한꺼번에」 한꺼번에? 삼키려면 몽땅 삼켜 버리는 거라구요. 한번에 꿀꺽하고 삼켜 버려야 된다구요. 여러분, 배 고플 때 먹을 것이 있으면 침이 꿀꺽하지요?(웃음) 한꺼번에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이런 표정을 하느냐 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표정까지 지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은 잊지 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귀중한 말이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할수없다구요. 꿀꺽 (웃음) 꿀꺽 삼켜야 됩니다.

그만한 주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나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놀음, 그 싸움을 한번 해 보겠다는 거예요. 자 그러니, 이렇게 하는 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요. 멋진 사람이요? 그렇다고 내가 자가선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상은 나 말고 여러분을 세워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만일 그것을 소화하고 그 사랑을 독차지해 가지고 간다 하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오지 말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오지 마라, 어딜 오느냐'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나쁩니다」 오지 말라고 할수록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하는 데도 같이 가겠다고 하고, 자는 데도 같이 가겠다고 하고, 밤중에도 같이 가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요즘엔 이런 노래가 있더군요. 대학을 나와야 남자인가 뭔가 하는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결국은 다 자기 사랑이 문제더라 이거예요. 그거 이해되지요?

하나님의 뜻은 진짜 사랑하는 아들딸을 만드는 것

자, 이제 복귀의 길까지 이끌어 나왔는데 또 돌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뜻이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의 가치와 자격은 어떤 것이냐? 세계가 전부 바라보고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할 수 있는 고상하고도 높은 자격이요. 가치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면 진짜 사랑하는 아들딸을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그 사람도 진짜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다구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부터 배우느냐? 어디서부터 출발이냐? 사랑은 남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출발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디서 사랑을 배우느냐?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젖을 먹고 기어 다닐 때는 아무리 형제들이 많더라도 보게 되면 어딜 찾아가요? 누구를 찾아가요? 「어머니요」 엄마를 찾아간다구요. 형제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느냐? 철이 들게 되면 형제도 필요로 하고 친구도 필요로 하게 됩니다. 횡적으로 필요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혼자 자란 아이들은 형제와 어울려서 자란 아이들과 다릅니다. 혼자 자란 아이들은 보면, 언제나 꽁해 가지고 융통성이 없다구요. 그렇다고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세요. 교육만 잘 받으면 될 수 있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어요. 알겠어요?

사람은 무엇이냐? 진정한 부모, 절대자인 그분을 부모로서 모셔 가지고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와 함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를 조금 더 사랑해 주게 되면 '에이, 엄마는 누구는 사랑하고 나는 왜 사랑 안 해' 하면서 불평하고 형제끼리 싸움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올라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다 차 가지고 넘치게 될 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아직까지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걸 채워야 됩니다.(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를 귀하게 느끼는 동시에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인연을 갖추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형제가 커 가지고 상대적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담 해와는 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의 사랑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야 부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 해와 둘밖에 없었던 그 시대로 찾아 올라가서 생각하게 되면, 부모의 사랑을 받고, 형제의 사랑을 받는 훈련을 해 가지고서, 아담이 '해와야! 나 어디 간다' 할 때, 해와가 '오빠 어디 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누이동생 되는 해와가 어디 가면, 아담이 '야야, 너 혼자만 가지 말고 같이 가' 이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오누이 자리에 있었지만 결혼식을 해 주셨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은 어떻다는 것이냐?타락하지 않은 순정(純正)한 자가 순정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딸이 되는 것, 요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못 되면 그 뜻을 바라보고 가야지, 그 자리가 뜻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구요.

신분을 초월하는 사랑의 세계

성경 마태복음 5장 48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완전함과 같이 우리가 어떻게 완전해요?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

보라구요. 한 나라의 대통령 그 대통령은 학박사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 부인은 시골뜨기 국민학교도 못 나오고 유치원도 못 간 사람일 수도 있어요. 없어요? 응? 있을 수 있지요? 남자는 대학을 나와 성공해 가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 아내는 국민학교도, 유치원도 못 나왔더라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보' 하면 '왜 그래' 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한 특권적인 권한을 일시에 점유하고 남을 수 있는, 대등한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어떤 자리를 통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고요. 그렇지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분을 중심삼고 그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면, 하나님에게 '여보' 할 때, 하나님이 '에이 이놈아, 나는 천주를 창조한 대주재이고, 너는 피조물인데 이 녀석, 네가 그럴 수 있니' 그러겠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사랑만 하고, 사랑만 받게 되면 아무래도 좋다' 이런다구요. 그렇지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이 비록 몰리고 천하고 타락된 후예로 태어났지만, 전부가 형편없지만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조건만 남기게 될 때는, 하나님을 대해서 '당신' 해도 통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최고의 것인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해 주고 싶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고 개인적인 뜻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 그러한 여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아담만 데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해와만 데리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에게만 속닥속닥하고, 딸에게는 '야, 너는 오지 말라' 하는 것이 사탄세계에는 많지요? 여자들이 데모해야 된다구요.

어머니 아버지를 보게 되면, 중요한 것은 아들한테만 이야기하려고 하고 딸은 싹 무시합니다. 여러분, 기분 나빠요. 안 나빠요? 나쁘지요?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아담을 팔에 턱 안고 '아, 예쁜 아들아' 하고 해와를 대해서는 할수없이 '아, 예쁘다' 합니까? 사랑스러운 아들딸을 대해 이쁘다. 이쁘다 하여 점점 예뻐지면 사이가 가까와지겠어요. 안 가까와지겠어요? 둘의 손을 갖다 합해 가지고 '야 요것들 잘 생겼구나' 하면서 둘을 한꺼번에 깨물어 주고 싶은 것이지, 요것 물고 난 다음에 조것 물고 그러겠어요? 몽땅 내사랑 할 때는 '요것 봐라, 어쩌면 요렇게 잘 생겼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예요.

또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합해서는 안 된다. 사과가 익기 전에 따먹으면 안 된다' 할 때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구요.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할 때 따먹으면 비려서 전부 버리게 됩니다.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점점 불그스름하게 익어 가지고, 여러분, 요즘 가을에 배 보았지요? 그와 같아요. 주머니를 떡 씌워 놓으면 배가 '야야, 주머니야 좀 비켜라' 해 가지고 노르스름한 얼굴을 쓱 내놓고 '내 얼굴 봐라' 하는 그것을 보면, '야, 그것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그와 마찬가지라고요. 이놈을 먹을 때는 이렇게 갖다 먹어요. 이렇게 갖다 먹어요?(제스처와 함께) 이렇게 갖다 먹으면 병신이예요. 이래야 된다고요. 머리가 돌아가야 돼요. 입이 이렇게 생겼으니까 할 수 없이 입으로 갖다 먹어야 된다고요. 마찬가지라고요.

그러니까 아담 해와가 점점 성숙하게 되면 '야야 이제는 됐다. 요 녀석들아' 해 가지고 완전히 장성해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갔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야, 이리 오너라' 해서 결혼식을 해 주셨겠어요. 안 해 주셨겠어요? 해 주셨겠어요. 안 해 주셨겠어요? 「해 주셨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셨다는 내용 보았어요?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요. 성경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못 찾는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적인 교과서입니다. 일학년 교과서….

여러분, 대학교에서 말입니다. 대학교에서 학박사 학위증을 타는데, 책을 갖다 놓고 학위증을 타요? 아무것도 없이 학위증을 타는 거라구요. 거긴 책도 필요 없습니다. 그건 왜? 공부를 다해 책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학위증을 주는 거라구요.

박사가 되었으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된 것은 다 해 놓고, 자기가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남겨 놓아야 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 있는 것 가지고는 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박사도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이면에 있는 사랑의 세계를 찾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하나님이 딱 사랑을 했다면, 첫사랑으로 사랑한 아들딸,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든 부부, 하나님이 몽땅 한꺼번에 사랑한 부부가 된다면 잊을 수 있겠어요. 못 잊겠어요? 앞에서는 인간세상의 첫사랑도 못 잊는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첫사랑을 주신 사람, 부부로서 정신이 돌 정도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하게 하셨다면, 그것을 잊어버리겠어요? 안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들딸 낳기를 바랄 것입니다. 손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딸이면 누구의 손자예요? 아담에게는 아들딸이고, 하나님에게는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손자를 미워하는 사람 있어요?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통해 가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올라갈 수도 없고, 옆으로 뻗어갈 수도 없으니 내려오는 거라구요. 내려오는데, 누구를 통해 내려오느냐? 사람을 통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이걸 보면 지금까지의 신앙 관점으로는 일반 신학자들, 기성교계, 전통적인 신학을 논하는 신학자, 전부 다 탁 차 버려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사랑이 올라가요. 내려가요. 평면적으로 굴러가요? 할 때, 평면적으로 굴러가도 안 되고, 올라가도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오는데 누구를 통해서 내려오느냐? 자기 아들딸을 통해서 어디로 내려오느냐? 손자에게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으로, 가정을 통해 어디로 내려가요? 씨족으로 내려가지요. 씨족을 통해 또 어디로 내려가요? 민족으로 내려가요. 민족을 통해 어디로 내려가요? 나라로 내려갑니다. 나라를 통해 세계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연 된 환경에 인류가 남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복귀섭리를 통한 뜻의 완성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상적이고 원칙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된다고요. 이 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의 길을 가야 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거꿀잡이가 됐다구요. 떨어졌으니까…. 여러분, 떨어질 때 어떻게 떨어져요? 지붕에서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떨어져요? 어디가 무거워요? 머리가 무겁다구요.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머리가 거꾸로 먼저 떨어진다구요.

거꾸로 떨어져 박힌 녀석이 복귀하려면 혼자서 복귀할 수 있어요?복귀할 수 있어요. 없어요? 혼자서 복귀할 수 없으니까 무엇이 필요해요? 구세주가 필요하다고요. 죽는다면 그만이지만 말입니다. 자기 혼자는 일어설 수 없으니까 부축해 주고 구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역사라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구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지요?

목이 비틀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창자가 터져 버렸으니까 그것을 고쳐 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하려면 반드시 구주가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이 찾아가야 할 운명의 길이 뭐냐?복귀의 길입니다. 복귀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복귀의 길을 바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실을 잘 알아 가지고 뒤집어 가지고 구해 줄 수 있는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구세주는 타락한 인간을 고쳐 주는 의사

오늘날 세계의 문화사적인 배경을 헤쳐 볼 때, 그 정신적인 뒷받침이 된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 가운데서 대표적인 기독교를 보면, 구주, 하나님의 구원섭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인류역사 가운데 구원섭리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은 타락한 인류 앞에 무엇보다 복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이상 복된 말이 있어요?죽을 녀석 앞에 살 길을 열어 준다는 그 말 이상 복된 말이 있어요?그 이상 복된 말은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구주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 뭐라고 해요? 「구세주요」 구세주라 합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구주라고요. 구주로서 일을 다해 가지고, 가정을 구하고 마지막으로 세계까지 구할 수 있어야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구세주가 못 되었어요. 구국주(救國主)도 못 되었다고요. 알겠어요? 구국주가 됐어요? 세계에서 예수님이 '내가 찾던 나라가 이것이다' 하는 그런 나라를 찾아야 되는데 그 나라를 못 만났다고요. 그러니 아직 구국주도 못 되었으니,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구세주가 어떻게 되겠어요?

아직 개인 대해 가지고도, 구해 주지 못했다구요. 그래서 개인에 대해 구주노룻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해서 구제할 수는 있지만, 나라를 대해서 구제할 수 있는 터전은 아직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복잡한 문제가 벌어져 있습니다. 복귀하는 데 구주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복귀하려면 구주가 필요한데, 그 구주는 뭘하느냐? 약을 주고, 주사를 놓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병난 사람으로서 약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병이 났을 때 약 먹기를 좋아해요? 「싫어합니다」 그래요. 그것이 사고입니다. 그것 이상하지요? 병이 났으면 약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해야 할 텐데…. 약먹는 것을 할 수 없어서 먹어요. 할 수 있어서 먹어요? 할 수 없어서 먹는 거라고요. 이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병이 났으니 안 죽으려면 약을 밥보다 더 맛있게 먹어야 할 텐데, 밥은 맛있게 먹어도 약은 할수없어 먹는다구요. 그렇지요? 할 수 없어서 약을 먹는다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병이 절대 낫는다? 「안 낫는다」 안 낫는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타락한 우리 인간은 병난 사람들인데, 병이 났으니 구주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꿀단지를 갖다가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주사침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 주사 맞는 것 좋아요?큰 주사를 생각하면 '아이구, 뼈가 후들후들 해요'라고 할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링게르 같은 것을 맞을 생각하면…. 이것을 한두 시간 맞는 것은 죽지 못해서 맞는 거라고요. 그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건강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싫어하는 거라고요. 그렇지요?

그러면 구세주가 이 땅에 와서 뭘할 것이냐? 타락한 인간을 구해 주려니 주사를 가지고, 주사약을 가지고, 약을 가지고 오십니다. 주사바늘을 가지고 약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구세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말을 안 듣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죽는 거라구요. 영원히 구해 줄 수 있는 생명의 구세주로 나타난 그분의 말을 안 듣는 날에는, 영원히 약을 안 먹고 주사를 안 맞는 날에는 영원히 지옥가서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거라구요.

이것은 조금도 비과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안 그래요? 오늘날 인간은 병이 났다구요. 그러니까 구세주는 뭘 갖다 주는 분이냐? 주사와 약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자, 그러면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는 그분의 말을 좋다고 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할 수 없어서 좋다고 하는 것이지, 진정으로는 좋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할수없어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종교 책임자가 되었는데, 이것을 좋아서 하느냐? 통일교회 선생님이 언제나 얘기하려고 하면, '아이구, 또 주사약을 주시려고 하누만….' 합니다. 사람이 많은 데서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궁둥이를 내라고 해 가지고 주사를 한 대 딱 때리며 놓아 줍니다. 이것이 사랑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내가 주사 놓는다. 주의해라, 주의해라' 한다면 이것이 사랑이예요? 무자비하게 딱 때리고 찔러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수록 그것은 여러분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까지 나왔어요. 알겠지요?

종교의 경서는 병든 인간을 고치기 위한 처방전

종교의 경서는, 최고의 인간 생활에 대해서 반대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젊은 놈들에게 '술 마셔라' 그래요? 우리 아가씨들도 빨간 치마 저고리 싹 입고,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계절에 맞추어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명동 거리에 나가 한번 바람을 살짝 일으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있지요? (웃음) 그런 마음 없으면 시집 못 간다고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시집을 간다고요. 우리 총각들도 그렇지요? 대학을 다닐망정 싹 빼고, 깃도구두를 딱 신고, 바지 줄도 싹 잡아 가지고 한번 멋지게 하고 나가면 젊은 각시들이 '아이고, 저 남자 잘 생겼다' 하며 옆으로 바라보고, 앞뒤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것이 결혼하기 전 총각의 꿍꿍이속이라고요.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러면 사람 축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요.

그런데 종교 중에 '아, 젊은이들이여, 명동 거리에 나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사계절 바람을 피워라' 하는 종교가 있습니까?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경서가 있어요? 「없습니다」 '가지 말라, 가면 죽는다. 가면 죽는다' 하며 야단이라고요 '나가면 죽는다. 내 말 들어라' 하지만….

병난 녀석은 병이 났으니 병원에 가만 엎드려 있든가 거기서 뒹굴어야지요. 그렇잖아요? 절대 못 나가게 했는데 갔다간 사고가 난다고요.

경서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경서는 없습니다. 병난 사람치고 약 좋아하고 주사 맞고 싶어하는 사람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대로 했다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망하는 것입니다. 깨깨 망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주사 맞고, 약 먹으라고 하는데, '주사가 뭐야, 나 싫어' 하면서 발길로 들이 차는 사람은 죽어도 '흥, 잘 죽었다'고 합니다. 장례를 지내더라도 한 사람도 안 간다고요. 그런 거라고요.

그러나, 약을 꼬박꼬박 열심히 먹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간호원실에 가서도 '고마워요' 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후에는 간호원도 모두 눈물 흘리고 의사들도 '아휴! 세상에 병자 중에 그런 병자가 없는데 죽었다'고 하며 안타까와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일생에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났다면 잊을 수 없는 병자가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 인간은 병이 난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 잘 들으라고! 그렇기 때문에 경서치고 우리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 가지고 병을 낫게 할 길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옳건 그르건 그 사람이 좋다는 대로 해주어 가지고, 그런 가르침을 준다면 그 경서를 통해 가지고 그 사람을 고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습니다. 없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싫다고 하는 것만 시켜 왔습니다. 통일교회는 지독한 교회로서 지독한 주사를 놓으려고 한다구요. 독한 약을 주는 것입니다. 수십 년 걸린 병이라면 매우 쓴 약을 지어 한꺼번에 먹고, 죽든가 아니면 벌떡 일어나든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강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조제해 주는 약은 달다? 「쓰다」 씁니다. 주사를 놓으면 안 아프다? 「아픕니다」 아프다 요거예요. (웃음) 아프고 쓴 것,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처방만 잘하고, 자신을 갖고 투약만 잘하는 날에는 대번 벌떡 일어납니다. 대번에 낫는다 이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놓는 주사는 어떤 주사냐? 세계 주사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주는 주사는 그렇다고요. 통일교회에서는 세계적인 주사를 펑펑펑펑 주는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자기 집안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도 그렇다고요, 나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한 집안보다도 타락한 병자, 큰 병이 든 세계를 고쳐 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게 되면 병들어 사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고쳐 주고 싶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병원을 경영하는 원장이, '아이구, 우리 병원이 잘되게 병이 십년 만년 가게 하시옵소 서, 환자들이 낫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낫게 해주시옵소서. 춘하추동 배급해서 병이 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바라는 원장이 있다면 그는 벼락 맞을 원장입니다. 병원의 원장은 자기 병원에 병자가 하나도 없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더 많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하나도 없기를 바라야 됩니다. 여기 병원 원장하던 사람도 있는데 말이예요. (웃음)

환자들이 안 오면 '가을절기가 되었으니 환자가 많이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 응? 이것 나쁜 생각이 예요. 좋은 생각이예요? 이것은 근본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 원장이 자기 병원에 환자가 많기를 바라는 것이 좋은 원장이예요. 나쁜 원장이예요? (웃음) 「나쁜 원장입니다」 환자가 없기를 바랄수록 좋은 원장입니다.

통일교인은 모두가 병든 인간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그러면 이 세상이 병든 세상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서 병들이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더디게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어요? 「빨리요」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야 되겠다고요. 그러면 의사가 많기를 바라겠어요. 적기를 바라겠어요? 만일 전부 다 의사가 된다면 병은 없어집니다」 병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생각으로는 전부 의사 선생님을 만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의과대학만 만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것 좋은 생각이예요. 나쁜 생각이예요? '의과대학 선생하고 의과대학 학생 외에는 하나도 안 내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사랑 많은 원장 선생님의 소견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도 그러한 입장에 선다면 그것밖에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부가 신학생이 되고 신학자들이 되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의사들이 되고, 또 그 계대를 받아 세계의 병자를 구할 수 있는 의학생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조그만 놈, 큰 놈 할것없이 모두 의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문제는 뭐냐 하면 병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무슨 병이 걸렸느냐? 전염병이 걸렸다면, 처방은 하나 가지고도 다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알겠어요? 「예」

콜레라면 콜레라가 어디 남부에서 들어와 삼천만이 모두 병에 걸리게 된다면 의사가 달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방해 주사만 놓을 줄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저 주사만 쭉 놓아주면 낫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전염병이 세계에 걸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고쳐 주자 해서 전부 다 통일약국을 차리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놀음하고, 조그만 녀석, 중간 녀석, 큰 녀석 할것없이 전부 다 병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병이란 무슨 병이냐? 약병이라구요. 무슨 앓는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사기를 들고 주사약병을 들고 삼천리 반도에 나가 안 맞으려고 하는 걸 붙들고 놓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 안 듣게 되면 '이렇게 해야 낫는다. 절대 손해 안 날 테니 한번 맞아보라' 하여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 한번 맞아 보니 옛날보다 기분이 좋으니까 그 다음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놀음을 하려니 통일교인들은 삼천리를 밤낮없이 부산스럽게 그저 뛰는 것입니다.

자, 그것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죽을 병 든 사람을 고쳐 주는 날에는, 죽을 때도 '아이고 그 선생님' 하고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을 너무 길게 하니까 뱃속에서 '야야, 빨리 그만 둬라' 하는구만요. 그만둘까요? (웃음) 그만둘까요. 더 할까요? 「더 해주세요」 하긴 나도 말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구요. 그만두자면 그만두지요. 하려고 하면 삼백 예순 날이라도 할 수 있다구요. 이제 초반전인데, 뭐….

자, 의사 선생님이 잘해서 죽을 병을 고쳐 주게 되면, 다시 또 죽을 병이 들어서 죽게 될 때 그 의사선생님을 부르게 돼요. 안부르게 돼요? 부르게 되지요? 그보다 더 독한 병이 걸려도 '아이고 세상에는 아무 선생님밖에 없어, 다시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며 구주로서 부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들에게는 선생님이 무슨 약을 주었는지 모르겠다구요. 통일교회 약을 먹고 좀 나은 사람들은, 죽을 병에 들게 되어도 '선생님-'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그때 병이 다르게 되면 거기에는 다른 처방이 나오게 될 겁니다. 통일교회 처방법이 한 가지만이 아닌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삼천리 반도, 세계가 이렇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메시아, 조건물, 기간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오래지 않아 미국에 갑니다. 이번에 가게 되면 선생님이 이 미국 녀석들 전부 다 발길로 차 버릴 것입니다. 옛날에는 서양 녀석들이 동양 녀석들을 찼지 동양 녀석들이 서양 녀석 한번 차 본 적이 있어요? 저기 미국 사람도 와 있지만 말입니다. 내가 기분 좋다구요. 동양, 아시아를 대표해 가지고 내가 가게 되면 와서 인사를 꾸벅 합니다. 그러면 나는 '으, 그래야지, 양반 좋아하는 한국 사람인데….' 그런다구요. 자, 이제 수습을 하자요. 그러니 쓴 약을 좋다고 하지 않는 날에는 흥하느냐, 망하느냐? 아픈 주사를 좋다고 하는 날에는 망한다?

그런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는게 문제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 당신이 준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먹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 허허허…. 알겠어요? 먹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말 듣고 행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자, 결론지었어요.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 지금 통일교회에 들어와 조제한 약봉지는 가지고 있지만, 알맹이는 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여기에 모인 여러분 가운데도 점심때 먹고, 저녁때 먹을 약 봉지는 가지고 있는데 약이 없는 빈 봉지를 가지고 있는 패들이 많습니다.

오늘 좋다는 날, 대다수의 사람 앞에서 얘기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겠습니다」 좋아요? 난 모르겠는데 뭐, 아까 총무부장이 나와서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 해서, 내가 '좋긴 뭐가 좋아' 했는데, 약봉지를 가졌다 하지만 봉지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약이 든 봉지를 가지고 있으면 빈봉지를 들고 있는 것보다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좋기는 좋은데 그 약을 자신이 만들었느냐, 교회에서 뒀느냐? 자기가 만들었어요? 허허허허….자기가 만들 수 있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지요. 약을 조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약을 누가 누구한테 타야 되느냐?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약봉지를 타올 수 있어요?없습니다. 할수없이 통일교회 문선생님한테 와서 사바사바해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도 약봉지가 두둑하게 된다? 안 되는 것입니다.

자, 지금 약봉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구요. 지금 약봉지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은 식후 30분, 아니면 식전 30분에 먹으라고 쓰여 있는데, '그 약 아무렇게나 먹으면 어때? 전에 먹으나 후에 먹으나 배에 들어가면 다 마찬가지야' 하며 시간을 안 지키고, 식전에 먹으라 한 것을 식후에 먹었다 하게 되면 그 약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속에 얹힐 수도 있습니다. 알겠지요. 무슨 말인지?의사의 지시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습니다」 맞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너 뜻길을 가야지' 했을 때, '뭐 가긴 가야지, 가야 하지만, 내가 성공을 한 다음에 한꺼번에 다 도우면 되지'라고 한다면 그것이 통할 수 있어요?안 되는 것입니다.

병난 환자가 병이 낫기 위해서는 약을 조제한 약사의 지시와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지요?

복귀의 길을 가려면 메시아가 필요한 것이고, 병이 낫기 위해서는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복귀하는 데는 의사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조건물이 필요하고, 기간이 필요합니다. '약을 사흘은 먹으시오, 일주일간 치료를 해야 되겠소' 그럽니까, 안 그럽니까?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면 병난 사람은 메시아 대신, 구주 대신 신념을 가져라 이겁니다. 대신자가 되라, 알겠어요? 구주가 하는 말, 의사가 하는 말을 자기의 말 이상으로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보면,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에는 기간이 필요하고, 그 다음엔 조건물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엔 아담 대신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아들 대신의 존재, 메시아 대신의 존재,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은 뭐냐 하면….

의사가 지시한 것을 죽더라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아벨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실감 나요? 실감 나요. 안 나요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싫든 좋든 선생님이 하는 말을 절대시하고 '난 선생님 대신자다' 하게 되면 통일교회의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된다구요? 조건물을 세워야 됩니다. 약을 먹어야 됩니다. 약을 먹을 때 누워서 먹어라 하면 누워서 먹고, 뛰면서 먹어라 하면 뛰면서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뛰면서 먹으라고 했는지, 그것은 자기가 그 입장에 처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직접 되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씹어 먹어라 하면 씹어 먹고, 발라내고 먹어라 하면 그렇게 먹어야 됩니다. 밤에 먹어라 하면 밤에 먹어야 하고, 저 포플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먹어라 하면 올라가서 먹어야 됩니다. (웃음) 왜 웃어요? 조건물을 세우는 데는 절대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요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

복귀하는 데는 구세주가 필요하고, 즉 의사가 필요하고 그 의사의 말을 중심삼고 절대 조건을, 기간을….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탕감복귀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복귀하는 데는 그냥 복귀하지 않는다구요. 뭘한다구요? 탕감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열만큼 못 쓰게 되었으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열만큼의 수고를 해야 됩니다. 10년을 두고 걸린 병이라면, 그 병이 낫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복귀를 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원칙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조건을 제시하는 데는 의사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조제하는 데 이 약 저 약 마음대로 넣는 게 아닙니다. 원리원칙에 따라서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결론지읍시다. 복귀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혼자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하는데 혼자는 갈 수 없으니, 메시아를 만나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메시아를 만나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복귀의 길에 들어서 가지고는 원리원칙을 가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구세주, 의사를 만난 후에는, 그 의사의 말을 중심삼고 원리원칙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야 할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밝아가야 할 길이다. 결론 났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상세계, 혹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이상적인 상대세계, 사랑의 세계는 우리의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복귀의 길에 들어선 우리는 그 길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복귀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복귀의 길에는 개인을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나라를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길이 있습니다. 하늘땅, 영계에서도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복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하나님을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복귀해 가지고야 하나님의 사랑의 단계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이렇게 남아 있더라 이겁니다. 알겠어요? '뭐 나 예수 믿고 천당만 가면 된다' 하는 것은 유치원만 가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유치원을 갔으면 소학교를 가야 되고 소학교에 가서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졸업을 해야 되고, 그래 가지고 중고등학교를 거쳐야 되고, 그 다음에는 대학교를 나와 학박사가 되는 원리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거기에는 가르칠 수 있는 소학교 선생이 필요 하고, 중고등학교 선생이 필요하고 대학교 선생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와 마찬가지의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세계에서 민족, 문화가 다르고 사상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종적, 횡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 유치원과 같은 소학교와 같은, 중고등학교와 같은,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설치해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서 움직여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놀음을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갈수록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을수록 그 사람은 비양심적이요,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문화발전의 주체적 사상의 뒷받침을 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종교가 이렇게 나오기까지에는 어떠했느냐? 수난길을 거쳐왔습니다. 희생했습니다. 참된 교역자는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은 희생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있지요?훈장, 글방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말이예요. 그런 말이 있다구요. 왜냐? 선생의 똥은 타서 쓰기 때문에…. 열이 나게 되면 쓰게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애기 엄마는 어린 애기가 병이나 고열에 시달리게 되면, 그 아기의 똥맛을 본다구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이러한 놀음을 해 나온 것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서도 통일교회의 길을 가겠다 하면, 고생을 죽도록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고생을 죽도록 하면 할수록 그 이름은 점점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이렇게 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메시아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메시아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중심삼고 세계 대표, 역사 대표, 혹은 인류 대표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입니다. 그 길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있나요? 하나라구요. 그러한 하나, 제일 최고를 중심삼고 규합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는 비슷한 것은 많지만 참된 하나의 사람이 안 나오기 때문에 재림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 오시는 그분은 과거를 대표하고 현재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해 개인완성의 표준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완성 할 수 있는 조제와 투약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정완성하고, 종족완성, 민족완성, 세계완성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 총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알겠지요? 「예」

개인이 완성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 십자가의 길은 제물의 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십자가의 길을 싫다고 하게 되면 개인완성의 길을 못 찾는 것입니다.

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높은 가치를 찾아가야 할 통일교회

우리 통일교회가 1960년대서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이,….여기에 대해서 결론을 지읍시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걸어 나온 것이 뭐냐 하면, 처녀 총각들을 고생시키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아야 하기 때문에 투약시키는, 약을 먹이는 놀음을 하기 위해서 처녀 총각 개인을 고생시켜 나온 것입니다. 개인이 살아나기 위해서, 또 개인을 살려주기 위해서 고생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게 되면, 개인완성을 했다고 해서 개인이 편안히' 살자고 하게 된다면 가정완성이 나올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완성한 사람들이 가정을 만들었으면 부처끼리 합해 가정완성을 위한 싸움 노정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합동결혼식한 사람들은 색시, 남자 할것없이 모두 동으로 서로 헤어져서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지금 희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해야 산다'는 투약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삼천리 반도에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지요?가정이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탕감노정을 가야 되고, 그 탕감노정을 가려면 제물과정의 원리원칙을 따라가야 됩니다.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통일교회 가정들도 그렇지만, 통일교회 자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자체도 역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전도하는 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교파와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 교파의 발전을 위해서 전도하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우리 자체를 위한 전도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완성한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궁극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은 나라입니다. 교회를 버리고라도 나라완성의 길을 가게 되면 한 단계 높을 수 있는 자리에서 완성의 길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보다 가치 있는 길이기 때문에 교회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찾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책임을 못 했더라도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희생 하게 된다면 세계의 모든 국민 앞에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세계의 국민들이 사지사판에서 자기들을 구해 준 것을 알게 될 때는,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시대를 통해 세계가 추앙할 수 있는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 천당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도적놈들입니다. '예수 믿어 내가 천당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다 천당가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올바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예수 믿어 잘살겠다는 사람은 도적놈이라구요? 예수 믿어 다른 사람들이 잘살게 만들겠다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 기도하는 것 보게 되면, '하나님이여, 우리 장로교회…' 하게 되면 그 목사는 벌써 빵점입니다. 목사가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목사는 빵점입니다. 여러분,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남의 가정을 다 저버리고 '하나님, 우리 아들딸 복 많이 주고 남의 아들딸은 희생해도 괜찮습니다'해도 돼요? 천만에, 그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 이루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 천당가겠다고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라, 예수 믿어 천당 보내 주겠다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내가 의학 공부하는 것은 의사 되어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다' 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돌팔이 의사보다 나쁜 것입니다.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은 남을 살려 주기 위한 것이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상반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전부 뜯어서 뒤집어 가지고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느냐, 아니면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사람들의 말이 맞느냐? 그것을 어디 가서 물어 봐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 들으니 기분 좋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안 것만큼 실천하라

선, 보다 선한 것은 어떤 것이냐? 가정에서 효자를 가진 사랑이 충신을 둔 나랏님 앞에 나가 자랑할 수 있습니까? '나랏님, 우리 아들이 효자입니다. 충신이 있을지라도 우리 아들을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게 통해요? 안 통한다구요. 나랏님 앞에 부모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나랏님이여, 우리 아들이 충신입니다' 할 때, '그렇고 말고' 그럴 수 있는, 공증을 받을 수 있는 실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효자를 두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자기 가정이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늘의 충신 되기까지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의 충신이 되면 좋겠어요. 효자가 되면 좋겠어요? 충신은 효자의 도리를 다하고 나서야 그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효자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충신의 길을 닦을 수 없습니다. 충의 길을 따라가는 첫출발이 효의 길이기 때문에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가 되어야 하고, 충신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면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월남전에서조차 휴전을 하는 일이 벌어지지요? 원수끼리도 그날을 서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날은 원수로서 맞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 그건 예수가 자기 나라의 충신보다도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를 통해서 세계는 하나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의 도리는 무엇이냐? 세계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의 백성을 위해 사는 사람은 충신이요. 자기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은 효자지만, 하나님은 효자보다도, 충신보다도 성인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성인 중에도 최고의 성인이 있다면, 그 최고의 성인이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자, 이제 결론지읍시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으면, 그 안 것만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라 이겁니다. 선두에 서라 이겁니다. 거기에서 개인으로서, 가정으로서, 종족으로서, 민족으로서, 국가로서, 세계까지 대표자의 책임을 느끼게 되면, 거기에 아무리 모진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그 바람에 밀리는 것이 아니라 밀고 나가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받고 나오면서도 도망하지 않았다구요. 레슬링 헤비급 챔피언이 링에 나와 가지고 으스대지요? '요 녀석 으시대기 좋아 하지만 조금 기다려라 으시대면 다야?‘ 해 가지고 난데없이 이름도 없는 촌 녀석이 나와 싸워서 거꾸로 눌러 놓는 날에는 그 으시대던 챔피언이 어떻게 됩니까?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지요? 「예」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으시대고 '뭐야 이것들, 사람도 몰라 보고,…. ' 이러면서 자기들 천지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고 보자구요. 실력 대결입니다. 실력은 실적이 많아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으면서 나왔지만 내가 기성교회와 싸움하려고 해서 싸움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내가 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해명하려니 이런 놀음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나는 혼자고, 여러분들은 단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챔피언 팬이지만 챔피언이 나한테 지는 날에는…. 그 챔피언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나요? 「없습니다」 인사도 안 하고 돌아설 수 없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젠 통일교회 문선생도 종교계에 많이 이름이 났습니다. 그렇지요? 이제부터는 내가 종교계의 거두들을 좀 만나려고 합니다. 이번 외국에 나가기 전에 말입니다. 나라의 거두들, 저명한 사람들을 한번 쓱 만나 봐야 되겠다구요.

자, 지금 이렇게 씨름을 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옛날에 통일교회가 기성교회 무서워했지요? 기성교회의 목사 장로, 혹은 집사들이 눈을 시뻘겋게 해 가지고 '야, 요놈의 자식, 통일교회 청년 녀석아, 네가 통일교회 뭐라고? 야, 뭐 전도대원 요 녀석아, 왜 왔어!'하면, 가슴이 뭉툭 내려앉고 형편 무인지경이었다구요. '아, 그렇소' 이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가난한 집 살림살이도 원통스러웠지만, 부잣집 영감 호령은 더 원통스러웠다구요. 그것을 느꼈다구요. 그래요?

'지금은 우리가 키가 작아서, 나이가 작아서 이렇지만 내가 40대 목사, 장로 정도의 연령만 되면 그때는 틀림없다' 이러한 뱃장은 다 가지고 있었다구요' 두고 보자, 십년만 두고 보자' 이래 가지고 맨날 죽은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되살아 나왔다구요. 그랬지요? 우리가 물러나는가 봐라 해 가지고…. 내가 그런 이야기 하려 해도 여러분 다 도망갈까봐 안 하는 거라구요. 그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초창기에 비해 크게 성장한 통일교회

여러분, 한때 통일교회 문선생 소문 있었지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칭찬했습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지, 남편, 혹은 아내가 반대하지, 할아버지 할머니 반대하지, 학교에서 선생님 반대하지, 회사에 나가면 회사의 사장님까지 반대하지, 반대 안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당당할 때에는 '두고 보자 내가 양심적으로 봐도 틀림없이 잘했다' 이럴 때는 거기에 굴복해요? 「안 합니다」 가하면 가할수록 너희들이 넘어지는 걸 보기 전에는 내가 밥을 안 먹고 산다. 밤잠을 안 자고 산다' 이렇게 악에 받쳐 가지고 우리는 목적을 향해 달음질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 옛날에 목사, 장로, 집사가 오면 가슴이 철렁하던 것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집사들 뭐 건드려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아이구!'하면서 다시 만나자면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장로들도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목사 패들도…. 요전에 여러분이 만났겠지만 목사가 떡 안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사모님 '목사님 어디 갔어요?’ 하니까, '어디 갔어요. 없어요' 이러고 변소에 숨어 있다가 변소 뒷문 열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놀음이 벌어졌다구요. 그거 보게 되면 뭐 '주객이 전도된다'라든가 '남의 자리가 제자리'라는…. 세상에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런 일이 우리 목전에서 벌어지는 걸 볼 때 기분이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기분 나쁘지요. '우선은 기분이 나쁘고, 생각을 해보니까 나쁘지 않다' 그래야 된다구요. 기분 나쁘다고 하면, 기성교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저렇게 가르치누만' 하니까 우선은 기분이 좋지 않지만,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지 않지 않다. (웃음) 이것이 좋다는 말이예요. 나쁘다는 말이예요? 「좋다는 말입니다」 좋다는 말이다 이겁니다.

이제는 기성교회 목사들도 인정하고 나옵니다. 선생님이 누구 만나자고 하게 되면, '아, 그러시냐' 하며 나옵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교인 하나만 들어서도 뭐!' 하며 노발대발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무엇으로 봐도 지지 않습니다. 돈을 대려고 해도 그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힘내기를 해도 지지 않는다구요. 우리를 반대하던 그 사람들은 벌써 육십, 칠십, 팔십 다 넘었지만 나는 오십대입니다. 힘으로도 안 된다구요 달리기를 해도 안 될 겁니다. 내가 옛날에는 뚱뚱하고 씨름도 잘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밥목사가 돼 가지고, 월급받아 가지고 시시하게 사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개척시대에는 웃통 벗고 씨름도 하고, 노동판에 가서 짐도 져 보고, 목도질도 해보았습니다.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집도 지을 줄 알고, 미장이도 할 줄 알고, 온돌 놓을 줄 알고, 전부 다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어디를 가도 먹고 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또, 거기다가 우리는 금식까지 훈련해 놓았으니…. (웃음) 어디 가더라도 밤이면 산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쓱 일어나 일하러 가게 되면 점심에는 밥을 먹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은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쌀이 없으면, 앉아서 입맛을 짭짭 다시며 굶으면 굶었지 나와 같이 하지는 못할 겁니다. 나같이 훈련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전쟁판이 벌어져서 피난을 가게 되면, 내 신세를 져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어디를 가더라도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 해낼 수 있습니다. 노동판에 가게 되면 인부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농촌에 가게 되면 농민이 되고,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농민들 선동도 잘 한다구요. 하지만 기성교회 목사들은 피난가게 되면 누가 알아줍니까? 달랑달랑 달랑달랑…. 그렇게 되면 내 신세를 져야 됩니다.

앞으로 잘못하다가는 피난가는 길이 벌어지게 됩니다. 목사들이 싸우다가,….남북의 정세를 바라볼 때 피난갈 수 있는 한 길을 찾아 달음질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내가 이 사람들을 고쳐야 되겠다. 그때에 응급 자금도 조달해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반대하던 그 사람들, 굶어 죽게 된 밥목사들 뭐 밥만 먹여 주겠다면 와서 그저 배 밀이를 하면서 '그저 구해 주소' 그럴 때가 올 수도 있다구요. 올지도 모른다구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번에 공청회 때, 이 사람들 수련소에 불러다 고기 반찬에, 들이 먹이니까, 이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르고 남의 상에 있는 닭다리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가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목사라고…. 눈이 죽었으니까 목사(目死)지, 안 된다구요.

이러한 것들을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이제 종교계에서 명실공히 무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무시 못 합니다. 내가 미국 가서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미국은 망한다고 들이쳤습니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미국은 망한다고 말입니다. 눈이 새파란 어떤 녀석이 와서 '동양 녀석이 와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하느냐' 하고 반대했다가는 나꿔채 가지고 때려 잡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큰소리해도 시퍼런 눈을 껌벅껌벅하며 어이가 없지, '아이고, 세상이 뒤집어졌구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이 미국 천지에 와서 그러고 다녀도 항의 못 하고 눈만 꺼벅꺼벅하고 있더라구요. 내가 기준 좋았습니다. (웃음) 내가 이런 놀음을 하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한국도 그 바람에 대사관 직원들이 왔다가, '아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줄 몰랐더니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대사가 특별 초대를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만날 시간이 없다구요. 이제 이만큼 컸다구요. 알겠어요?

이만큼 컸으니까, 그 다음엔 우리 살림살이를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지요?옷도 좀 잘 입을 때가 왔다구요. 이제 앞으로는 내가 통일교회 선생으로서 여러분을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빨리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천천히 말씀하심) 이렇게 천천히 할 겁니다. 그때는 영감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지금은 이렇게 말을 빨리 하지만 그때 가서는 '여러분들' 한마디 하고 한번 쓱 해 가지고 '여러분들' 한마디 하고 한 5분쯤 쉬고 또 한마디할 것입니다. 그러면 답답해서 못 듣겠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고, 선생님 초창기같이 하실 때가 좋았지, 이거 안 되겠다' 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야 된다구요. (웃음) 여기에 나오는 것도 천천히 뚜-벅 뚜- 벅(걷는 시늉하시자 웃음)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거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변화무쌍한 곳이라구요. 그렇지요? 「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데서 사랑의 길이 열린다

자, 이제는 이만큼 컸습니다. 봐요. 여러분은 아직 모르지만, 앞으로 아시아에 있어서 어느 대통령, 어느 수상의 이름은 안 남아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이름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러한 일을 해왔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아직 모르고 있다구요. 배후에서 일본이면 일본, 중국이면 중국을 통해서 여러분이 모르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세상을 대하니, 나를 본 사람은 없지만 소리는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허리가 부러진 호랑이일지라도 울게 되면 소리는 같지요? '우와앙' 하면 산 중에 있는 새나 짐승들은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와 같은 놀음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용을 쓰고 활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구요. 그렇게 하면 좋겠지요? 여러분을 시키는 것보다 선생님이 하루 나서서 일하는 것이 낫다구요. 그렇지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부흥회 한다 하면 기성교회 목사들이 모이겠어요. 안 모이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얼굴 생긴 것은 이렇게 생겼지만, 한번 보고 싶어서 다 모이게 되어 있다구요. 그럴 때가 온다구요.

그때가 오면 한국에서 안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부터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좋아하니까, 그 미국의 상하원 꼭대기를 질어 가지고 대통령의 소개를 받아가지고 오면 어떨까요? 미국 대통령 특별 전용기를 타고 '한국부흥단 일행이 한국에 행차시다' 하는 공문을 띄우고 갈 때, 그 일행의 책임자로 문선생님이 떡 내릴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런 준비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같이 시시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도 여러분 앞에 참소받지 않습니다. 가정적 입장에서도 참소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족적인 입장으로나 민족적 입장, 국가적 입장, 세계적 입장으로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애국자도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애국애족, 통일교회 문선생이 누구보다 애국애족하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애국자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이렇게 선전하는 목사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에게 지지 않겠다' 이 놀음을 할 수 있는, 그것이 영향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떠했느냐? 개인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개인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는 이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가정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족속적인 수난시대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민족, 국가, 세계까지 뻗어 나가는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수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나서 이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남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설수록 그것은 악한 것이 아니고 보다 선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보다 선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은 세계를 두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자신보다는 이 세상의 자식들을 위해, 인류를 위해 대표적인 입장에서 수고해 나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최고 선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을 위해 희생하는 데에만 사랑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가 너를 20년 동안 공부시켰으니까 너는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20년 동안 부모 앞에 희생하라' 합니까? 없습니다. 자기의 대가를 치지 않고 수고하면 할수록, 그 수고가 극하면 극할수록 자식은 그 부모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식의 본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부모 앞에는 불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염려시키는 불효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 앞에는 효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한 나라의 군왕이면, 군왕 자신이 신하들을 위하여 희생하면 할수록 그 신하들은 충신이 아니 될래야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면 하나님, 그 절대자가 자기 앞에 제일 가까운 인류를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이란 보다 수고하고 보다 고생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이 '좋은 것' 할 때, 그 좋은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좋은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손해보는 자리에 선 사람이 결국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형제끼리 싸움을 해도 부모가 볼 때 먼저 싸움을 걸고, 피해를 입힌 자식을 야단치는 것이요. 피해를 당한 자식을 두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사회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은 남한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익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보다 더 바쁩니다. 요즘 수택리에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에 보통 하루에 두세 번 왔다갔다 합니다. 바쁩니다. 그거 왜? 통일교회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개인적 탕감노정, 가정적 탕감노정, 종족적 탕감노정, 민족적 탕감노정, 국가적 탕감노정, 세계적 탕감노정을 거쳐서 영계까지 탕감시켜서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거기에는 편안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에 처한 사람부터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는 지지리 고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퍼져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은 하늘이 같이하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1차, 2차, 3차 7년노정의 섭리적 의의

이제는 많이 올라왔습니다. 1946년부터 14년이 지난 다음에 1960년도에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렇지요? 그 성혼식을 중심삼아 7년 후인 1967년도에 '하나님의 날'을 택정했습니다. 이때까지가 선생님 개인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1946년부터 1967년 말까지가 21년노정에 해당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1960년도는 선생님의 2차 7년노정의 마지막 해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1960년도부터 가정 출발 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1차 7년노정이 출발하는 해입니다. 1974년도까지가 2차 7년노정입니다. 그렇지요? 그럼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이때까지가 몇 년도가 되는 거예요? 28년째가 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80년에는 35년째가 되는 것입니다.

1961부터 1974년까지 몇 년간이예요? 또, 1946년부터 계산을 하면 몇 년간인가요? 28년이지요? 그렇지요? 28년입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때는 어느 때까지냐? 세계적인 때는 선생님이 출발한 때로부터 30년에서 33년 되는 기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때냐 하면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잡는 것입니다. 이때가 세계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운 때가 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로 보게 되면, 통일교회는 2차 7년노정에서부터 3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를 고비로 보는 것입니다. 이제 금년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12년째입니다. 이것이 13년, 14년이 지나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가 1974년까지요.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가 1981년입니다.

그러면 세계는 어느 때까지 내려가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21년 동안에 하늘의 뜻이 세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때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탕감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선생님에게 있어서 1960년도는 1946년도를 중심으로 보게 되면, 14년째에 해당되는 해입니다. 이 14년을 7년 7년, 원리적으로 보면 소생, 장성의 기간을 넘어서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야곱으로 보면 라헬과 레아를 찾아 가정의 출발을 한 때라고 보는 거예요. 이 14년 맞는 때인 1960년도를 중심삼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나선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자리를 잡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중심삼고 보면 이때는 교회가 자리잡고 나와도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노정이 아직 완결 못 되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이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21년을 채우는 때입니다. 1차 7년노정은 거의 완성, 가정을 대표해 설 수 있는 개인 완성 기준을 갖추고 나갈 수 있는 때입니다. 2차 7년노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따라서 축복받은 가정들이 책임하여야 할 기간입니다.

이 2차 7년노정은 민족을 중심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던 그 목적을 완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해야 할 때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메시아는 실체기대를 완성하여 교회와 민족권을 맞이하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맞을 수 있는 기준은 장성기 완성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고로, 통일교회가 이제 가야 할 길은 1974년까지 남은 3년 동안 나라에 새로운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기성교회를 대해서도 새로운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리하여 유대교와 예수가 하나되고 예수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어야 했던 그러한 비준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유대교가 쳤고 이스라엘 민족이 치는 자리에 섰지만, 지금은 그런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가 유대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스라엘의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2차 7년노정을 통해서 완결짓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것을 맞추기 위해서 지금 초교파운동이니, 종교협의회니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대등한 자리, 더 나아가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의 신세를 지는 자리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점점 다가오면 우리의 때가 가까와 온다는 것을 알라는 거예요.

또, 나라가 통일교회가 가는 방향과,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사상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나라 앞에 어려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국가적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로 넘어가는 때이기에 미국을 중심삼고 활동해야

선생님이 이번에 3차 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까 여러 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얘기 안 하지만, 남북한 협상문제가 벌어지고 점점점…. 이러한 현상은 이미 복귀원리 원칙에 의해 짜여진 공식적인 발전 노정에 제시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언제까지 갈 것이냐? 1974년, 늦으면 1975, 1916, 1977년까지 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간다고 해서 이것을 한국이 다 해낼 수 있느냐? 안 됩니다. 지금 월남을 보라구요. 티우 대통령이 월맹과 화해해 연립정부를 만들기 위해 교섭하고 있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남한과 북한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전지역에 공산권이 우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을 누가 방어할 것이냐? 문제가 큰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미국을 중심삼고 방어선을 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은 어제부터 미국을 중심한 활동체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한국은 갈 곳이 없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1년도까지는 우리의 세계적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알겠어요? 1981년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21년에 해당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나라를 넘어서 세계로까지 발전 기반을 닦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적 탕감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적 종교로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일교회 위에서 섭리해 나오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와 같은 조건적인 공식 노정을 통해서 가야할 책임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 책임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온갖 정성을 다해 보조를 맞추지 않고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 세계의 인류가 될 수 없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2년, 1973년, 1974년까지 이 3년 동안, 2차 7년노정 기간에 국가적으로 세계적인 기반을 닦으려 하는 것이 국가적인 이 때와 맞먹어 들어가는 때가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복귀의 길에서는 반드시 탕감노정을 가야 합니다. 탕감노정은 원리원칙의 길을 가야 합니다. 탕감노정은 원리원칙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2차 7년노정이 끝날 때까지는 대한민국은 남북한에 있어서 주도적인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만히 앉아서 될 것 같아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과 하나되어 있는 힘을 다해서 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여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로 넘어가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지만, 지금 그 원리, 공식적인 노정에 의해 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렇게 맞아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제 금년까지 남은 9년을 넘기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할 것입니다. 이걸 믿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여러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함께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뚝을 박고 줄을 다 걸어 놓았습니다. 기를 걸어 놓았습니다. 이런 놀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동대 편성이니 이런 것 전부 다.

금년에도 미국 중심삼고 전도를 하기 위해서 150만 불 달라는 것을 85만 불 주고 뉴욕에다 집을 샀고, 앞으로 워싱턴에도 집을 사 가지고 대대적인 세계 교육을 할 것을 지금 계획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원의원들이나,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과 연결시키기 위한 놀음을 하고 있고, 대학가를 중심삼고, 대학 교수를 중심삼고 아시아협의회로부터 세계협의회…. 그래 가지고 앞으로 미국이 공산당의 활동무대가 될 것을 방비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요리하려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르다

여러분 통일교회를 일반적인 종교단체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러분은 모르고 있지만 세계적 기반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이 일본에서 지금 5개월 동안 활동하는 것도 전부 다 그 준비입니다. 구라파에서 활동하는 것도 다 그 준비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지금 세계적인 선두에 서 가지고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통일교회 들어오던 때와 같이 그저 적당히 잠자고 일하며 들락날락하는 통일교인이 있다면 큰일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 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 국가적 시대, 세계적인 무대로까지 나설 수 있는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일본 사람을 데려다가 쓸 것입니다. 일본 사람도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미국 사람을 데려다 쓸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방향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데, 아침이 되었는데도 밤인 줄 알고 잠자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그 한국 사람들은 망하는 것입니다. 아침을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낮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잠을 자고, 저녁이 되도록 잠만 자면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왕지사 여러분이 선생님과 인연맺고 지금까지 탕감복귀의 길을 걸어 왔으니 이 길을 뜻과 일치시켜 복귀노정을 완결지어야겠습니다. 원리의 뜻을 완성시켜서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야겠습니다. 이것을 개인에서부터 세계에까지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그 길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선생님을 좋든 싫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결심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오늘 이 출옥기념일이니 하는 이런 놀음도 뭐하러 하는 것이냐? 왜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를 했느냐? 이미 감옥살이할 것을 각오하고 간 것입니다. 또, 이남에 내려와 출발할 때, 이미 서대문 형무소 갈 것을 다 각오하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구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탄이 최후 발악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부딪치기 마련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부딪치고, 가정적으로 부딪치고 교회적으로 부딪치고 세계적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일본에서도 오는 걸 싫어합니다. 미국에서도 오는 걸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에 내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렀을 때 '미스터 문이 일본에 들렀는데 무슨 일을 할꼬' 했겠지만 폭발적인 사건을 벌여 놓고 왔습니다. 미국에 가서도 그런 놀음 하고 왔습니다. 이번에 또 가면 무엇을 할꼬, 궁금하지요? 이번에 갔다가는 안 올지도 모릅니다. 안 오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세계를 요리하려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르겠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르겠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빠릅니다」 그래서 원리무장이 잘 되어 있고, 새공산주의비판에 대해서 강의할 줄 알고, 통일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중요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빼갈 것입니다. 이제 한국에는 몇 달만에 한 번씩 잠깐 다녀갈지 모릅니다.

미국이 망하는 날에는 한국은 갈 곳이 없다

요 몇 년 동안 한국을 보면, 남북적십자회담이니 뭐니 하고 있는데 그거 누가 책임지느냐? 일본이 지금 미국을 저버리고 중공하고, 다나까 수상이 중공하고 하나되려고 하는 판에 한국을 언제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배후에 배수진을 쳐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모르면 그런 일을 못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실적 있는 사람들은 한 곳으로 다 모을 것입니다. 실적 없을 때는 선생님을 암만 불러도 소용없습니다. 금년에도 일본에서 120명, 구라파에서 800명을 미국으로 데려간다구요. 그런데 한국, 한국에서는 몇 명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습니까? 약속했어요. 안 했어요?한국은 아직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을 아직 못 갔다구요. 선생님은 아벨적인 입장에서, 영적인 입장에서는 넘어섰지만 여러분은 영적인 입장, 실체적 입장에서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은 상대적이라구요. 마음대로 끌어 가도 괜찮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만은 동원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섭섭하지요?

이제부터는 모든 싸움에서 선생님을 대신해야 됩니다. 그래야 한국이 주체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못 하게 되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일본이 못 하게 되면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미국도 못 하면 영국, 영국도 못 하면 독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 대회, 영국 대회, 독일 대회를 한 것입니다. 다 그 길을 닦기 위해서….

자, 선민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이러한 복 된 사실을 옮겨 올 수 있는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기성교회 책임자를 만나고, 이 나라의 주요 간부를 만나 할 말을 하고, 또 이 나라를 위한 세계적인 준비 노정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를 수호할 수 있는 길이 없겠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겠다는 것이 지금 선생님의 자세입니다. 세계 책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주사를 놓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주사 맞은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기 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번에 내가 뉴욕에 가게 되면 모르면 몰라도 열두 나라 백성을 데리고 함께 활동을 하고 함께 사는 실적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그쯤 되면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 문선생 오라고 야단나겠지요. 기성교회 목사들도 '통일교회 문선생님' 하며 소문나고 야단 난리 벌어질 것입니다. 행차 후에 나발 부는 놀음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우리 편에 서 있을 줄 알았더니….' 할 것입니다. 올라갈 때는 한 길밖에 없습니다. 올라갈 때는 한 길이지만, 다 올라가서는 동서남북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다 올라갈 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영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보면, 다 올라간 자리에서 세계를 왕래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은 10월 14일인데, 8월, 9월은 우리 통일교회가 국가에 있어서 예스냐, 노우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인데,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우리 단체는 강력한 단체로서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보아서도 국가에서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통일교회가 여러 가지 난관을 해결하는 배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당국자간에 많은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이제는 한 고비 넘어갔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제 이것으로 한국에 있어서 선생님 책임은 완전히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늘 앞에 한국 백성, 한국 민족으로 태어나 한국에 통일교회를 세워 가지고 일으켰던 책임자로서 이 민족에 대하여 당당히 책임을 완결짓고 길을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제는 세계적 시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동안 강의하고 싶지만 못해서 맺혔던 한을 풀 때가 온 것입니다. 이번에 본부에서 한 세 사람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먼저 가서 그 길 닦아 놓고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120명 데려가고, 미국에서는 명년까지 한 400명 뽑아 기동대를 만들고 3년 이내에 2천 명의 기동대를 편성할 것입니다. 미국 상원의원들이 공산당 선전에 말려들어가기 때문에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미국을 중심삼고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된다구요. 한국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책임 다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방향 제시까지 해주었습니다. 이제 그것을 다 알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오늘, 이와 같은 날을 기념해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노정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역사적 원칙으로서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승리와 성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뜻을 알고…. 그러한 길이 오기 때문에 이 길은 고생길이 아닐 수 없다구요.

내가 미국 간다고 해서 편안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세계 선두에 서서 치열한 투쟁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민족을 합해서 가는 것입니다. 12개 국 이상의 민족을 모아 한 울타리에서 각국에 영향을 골고루 미쳐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 전역의 어려운 문제를, 미국은 수많은 민족이 모여 가지고 국가를 형성했기 때문에, 흑백문제라든가 민족간의 감정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 케이스를 제시해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이념을 중심삼고 미국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내적 실적을 쌓아 영향을 미쳐 가지고 1977년, 1978년까지 미국에 다가오는 고비를 넘을 수 있는 방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미국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망하는 날에는 아시아 자유국가, 자유세계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 천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 기독교인은 대환란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전부 학살당해 버린다구요.

이러한 위기가 우리 앞에 오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해야 할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이야 알든 모르든 이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길을 위해서 세계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 금년 지나고 명년부터는 통일교회도 세계적인 활동시대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단단히 준비하라구요. 알겠지요? 「예」 몇 시나 됐나요? 한 시? 이제 밥 먹고 해야 되겠구만.

심정적 사랑의 인연을 남긴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다

원필이 얘기하게 되면 내 얘기가 필요할 거라. (웃음) 앞으로 내가 많이 시정해 줘야 된다구, 내가 지난번 들어 보니 빠진 게 많더라구, 빠진 이야기 하나 해주지, 감옥살이할 때의 일인데, 제일 잊을 수 없는 것 한가지 얘기할께요. 그 이야기 할까요? 「예」 지금도 제일 잊을 수 없는 것인데, 여러분도 이것을 잘 기억해 둬야 되겠어요.

자, 선생님을 감옥소에 집어넣은 주모자가 있었어요. 그 주모자는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원수이지요? 「예」 그건 보기만 해도 눈에서 퍼떡 불이 나야 된다구요. 그거 뭐 평안도 식이라면 받아 쳐야 됩니다. 그러한 원수인데, 감옥에 떡 들어가 있는데-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책받고 그러면 그것을 직고해 가지고 전부 다 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나를 감옥에 넣기 위해 선두적 역할을 한 그 녀석이 떡 나타났다 이거예요.

그는 공산당 간부라구요. 그러니 그가 나타났을 때 나의 기분이 좋았을까요. 나빴을까요? 어때요? 그 자를 봤을 때 나의 기분이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나빴을 겁니다」 나빴다구요. 척 대할 때 기분 나빴다구요. 하지만, 잘 알면서도 시치미를 딱 뗐습니다. '누구신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랬습니다. 모르기는 왜 모르겠어요?매일같이 보았는데, 그러니까 눈치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무개인데 나를 모르십니까?’ 해서 아, 그러시냐고 내가 미처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 눈을 보니, 옛날에는 고약했는데, 그 눈이 다 풀어지고 제법 사람 꼴을 쓰고 나타났더라구요. 그래 가지고 지난 일을 다 흘려버리고 찾아온 걸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까.

그러고 나갈 때 먹을 것을 사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먹어야 되겠어요. 안 먹어야 되겠어요?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구요. 독이 들어 있는지 알아요? 어때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먹어야 됩니다」 왜 먹어야 돼요? 「감정을 다 풀었기 때문입니다」(웃음) 감정은 그 사람이 풀었지 내가 풀었나? 내가 안 풀게 되면 먹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가 풀게 되면, 그 사람보다도 더 감정이 없게 풀어지는 기쁨으로 먹으면 내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떡 받아 들고 먹을 것이냐, 안 먹을 것이냐가 걱정이었습니다. 감옥 같은 데서는 먹을 것이 참 귀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 맨 처음 군대가 생겼을 때 젊은 놈들 군대에 가게 되면 들어간 날부터 '밥 밥'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뭐 감방에서는 누가 먹을 것을 들었으면 서로 빼앗아다가 먹을 판인데, 이것을 먹느냐 안 먹느냐? 심각했습니다. 그것을 점심때 받아 가지고 저녁때까지 안 먹고 심각하게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응? 탕자가 부모 앞에 불효하고, 형제를 배반하고 길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아버지의 옷, 혹은 지팡이라도 사 왔다면, 그 아버지가 그것을 받을 것이냐, 안 받을 것이냐? 어때요? 이것은 사랑이 없이는 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랑의 원칙을 발견하지 않고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자기의 모든 과거를 회개하면서 부모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랑의 표시로 그것을 사 오게 될 때는, 그것이 도리어 부모의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가지고 식구들과 나누어 먹은 생각이 납니다. 그 다음에도 가만 생각해 보니 만일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찾아갈 용기가 있었겠느냐, 그렇게 감옥까지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것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등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가 감방을 찾아올 때는 배척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체면이 서지 않을 입장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공산당 간부라구요. 거기에서는 보안대라고 하지만, 간수들 앞에 창피당할 것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침을 뱉고, 뺨을 갈기면, 창피당하지 별수 있어요? 그런 입장에서 체면과 위신을 무시한 채 왔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기까지는 또한 얼마만큼 양심의 고통을 받았겠어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사람은 그래도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다고 심각히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생을 지내오면서 지금까지도 그 사람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옥 생활에 있어서,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주하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그래도 그런 사람은 의리가 있고, 장래성이 있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감옥이라는 곳이 얼마나 고독한 곳입니까, 자기의 체면도 체면이지만 그 고독한 곳에 있는 사람을 염려해,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해 먹을 것 한끼라도 도와주고 싶은 책임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어떠한 조건에서도 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 때는, 그 사람이 충분히 이해되고 마음속에 남아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원수지간이지만, 그 심정적 인연을 남긴 사람이 되게 될 때는 역사에 다시 만날 수 있고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는 것을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 감옥에서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와서 위로해 주고 간 사실이 언제나 잊혀지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다른 누가 왔던 것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걸 보면 원수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교육이 될 수 있고 배울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내가 느껴 봤어요. 알겠습니까? 「예」

이런 걸 생각하여 본다면, 통일교인들 중에서 누가 군대를 가든가, 혹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식구의 입장 아니면 다른 관계로라도 그를 방문해 주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식구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찾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어느 누구 하나가 찾아 주게 되면, 그가 누구일지라도 그는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물론 바쁜 사람일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서 그 외로운 자리에 찾아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정성이 아닙니다. 친척이 왔다간 것보다도 그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찾아 주고, 동정해 주게 되면 누구보다 가까이 인연맺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식구 중에 누가 군대를 가든가, 혹은 감옥소에 가든가 하게 되면, 선생님도 물론 찾아가야 되겠지만 못 갈지라도 여러분은 그런 인생을 남기고 그런 인연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상대방에게 일생 동안 이렇게 좋을 일을 해야 된다는 교지로서, 하나의 교육의 표준으로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그 후손들 앞에 '그런 사람과 같이 되라'고 유언을 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사상 가운데 지켜져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외로울 때 찾아주는 것은 용서를 받을 입장이면 누구보다도 빨리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되고, 또 친구지간이라면 누구보다 깊이 기억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한 많은 복귀의 길이 이렇듯 슬픈 길임을 미처 몰랐나이다. 아버지,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복귀의 운명길을 모면할 수 없는 개개인이요. 가정이요. 국가요. 세계요. 천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끝날이 되면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복음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자식은 이제 50대를 넘기고 있는, 인생의 반세기를 넘어 내리막 길을 향하는 때에 처해 있습니다. 혈기 당당하고 늠름하던 그 시대에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겠다던 것이 당신과의 변함 없는 약속이요. 맹세요. 서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교계와 민족의 반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여곡절의 수난길을 더듬어 온 것을 생각할 때, 저 스스로 슬픔도 있지만 배후에서 아버님께서 얼마나 슬프시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 누구의 사정과도 통할 수 없는 외로운 심정을 억제해 가면서 길고 긴 날을 하루같이 보호해 주시고 갈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이 자리까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 누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은덕 때문이기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개인복귀의 길이 이렇게 험난하고 슬픈 탕감길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수난길을 더듬어 수십 년의 역사를 거치고 이 자리에 남아 가지고 세계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인연을 설정하기 위해서 당신이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회가 인연맺은 50년대부터 60년대 70년대까지, 가정을 연합하여 세계 기준까지 777쌍을 묶기 위해 싸움의 노정을 더듬어 온 것을 생각할 때, 당신께서 이 자리에서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3차 세계순회노정을 연결시킬 때까지 피어린 투쟁의 노정을 가려 가면서 상처 입을세라 보호해 주시는 당신의 후대 앞에 몸 마음을 다하여 머리 숙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여기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시옵소서. 당신이 필요하옵니다. 당신의 창조이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하옵니다. 당신의 사랑 가운데서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의 공고한 자리에서 당신을 우러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딸이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회를 통하여 심정의 세계를 계발하라고 명령하신 그날부터 오늘까지 개인복귀와 가정복귀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나아가 당신을 해방시키어 당신이 자유분방한 자리에 서서 그 누구의 참소도 벗어나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활개를 펴고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저희 자녀들의 소원입니다.

당신이 개인을 마음놓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내 일생의 소원이요. 당신이 가정을 흠뻑 취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요.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한 나라와 세계인류를 사랑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걸 보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될것을 알기에, 지루하고 어려운 복귀의 길을 참아 나온 것을 당신께서는 잘 아시고 계십니다.

아버지, 대한민국을 불쌍히 보시옵소서. 기성교회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 이 민족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될 수 있는 날을 맞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운명은 비참할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아버님, 이들이 다시 한 번 상봉할 수 있는 날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는 이 10월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날을 지켜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남북이 원수지간으로 이마를 맞대고 무릎을 맞대고 논의하는 이때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저희는 원수가 아닙니다. 형제이옵니다. 에서와 야곱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요. 야곱의 아들들 요셉과 열한 형제와 마찬가지 입장인 것을 알게 될 때, 당신 깨서 분부하시는 뜻을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풀 수 있는 날이 오게 하시옵소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도 당신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시대에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통일되어야 했던 그 승리의 권한을 갖추기 위해서 모진 투쟁의 길, 많은 고난의 길을 거쳐 지금의 이 자리까지 연결시켜 나온 것을 당신께서는 알고 있사옵고, 또한 저희는 거기에 당신이 협조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통일교회는 이미 남아 있지만, 기성교회에도 아버지와의 인연을 연결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딸들을 3년노정의 일선에 세워 기성교회를 드나들게 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와 정성을 들이게 하고 있습니다. 삼지사방에 나가 있는 당신의 딸들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이 민족의 갈 길을 위해서, 민족 해방의 그날을 위해서 남 모르는 수고의 길 가운데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가려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별의별 중상모략으로 몰고 있지만, 일편단심, 당신의 뜻, 하나의 뜻세계를 향한 우리의 갈 길이 바쁘기에 옆을 보고 싸울 수 없는 바쁜 길을 걸어온 것을 당신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남북이 엇갈리고, 아시아에서 고립된 이 한국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이것은 이 나라가 책임하지 못하고 기성교계가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가로막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밤을 지새워 가면서 나라를 붙들고, 교회를 붙들고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형제를 잘못 가진 인연을 탄식하면서 하늘의 긍휼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통일교회의 운명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누구보다 뜻을 대하는 자리에서 불쌍하고, 자세를 갖출 수 없는 통일의 무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이 그 이상 슬픈 자리, 불쌍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고생시켜 또다시 좁은 길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선 이 분하고 억울한 사실을 역사와 더불어 흘려 보내더라도, 당신을 위하여 자랑할 수 있는 길만을 남기기 위한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뜻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내가 하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를 이 시간, 이 날을 축하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자각하고 묵묵히 결정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승리의 터전을 향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외롭고 고독한 길일지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동정하지 않을지라도 당신을 향해 갈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과 하나될 수 있는 깊은 심정의 인연이 남아질 것을 생각하고 가는 이 길, 부디부디 당신의 염려하는 길이 되지 않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이날을 축하하면서 스승이 남긴 슬픈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있거든, 저를 사랑해 주시는 당신의 축복이 그들에게도 같이해 주시옵소서. 남은 당신의 십자가의 길을 위해서는 이 이상의 슬픈 길이라도 자기들이 책임지고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향하여 나서겠다는 재결의를 촉진하고 다짐할 수 있는 오늘이 되면 이 이상 기쁜 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오늘을 기쁜 날로 맞아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1972년은 역사적으로 수난의 기간이 넘어가는 때라고 이미 말하였습니다. 1972년은 6천년 역사의 정상을 대표하는 달, 날로서 맞아진다고 하였습니다. 하오니 이 10월 14일을 해방의 날, 축하하는 날, 특별한 날로, 아버지여, 세워 주시고 맞아 주시옵소서. 통일교회가 민족을 대신해서 안팎으로 넘어설 수 있는 계기, 내연적으로 갖추어진 자리를 맞이한 줄 알고, 있사오니, 금후에 가는 길도 아버지께서 활짝 열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수고의 길, 고난의 길, 역경의 길을 다짐하여 온 이들이 가는 길이 이제 멀지 않은 장래에 축복의 손길로 변할 줄 알고 있기에 극복의 일로를 다짐해 나올 수 있었던 이들, 아버지 앞에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만인류 앞에 내세워 칭찬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의 칭호와 명분을 가릴 줄 아는 이들로서 세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달이 복되고, 이해가 복되고, 70년대가 복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복잡다단한 세계정세를 가려 승리의 팻말을 박고, 아버지의 영역을 넓혀 나가 승리의 무리들을 규합하여 당신 앞에 봉헌할 수 있는 거룩한 인연을 자아내는 이번 기간이 되고, 이달이 되고 이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저희들, 허락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바치고, 남기신 길을 지킬 수 있는 파수병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복귀의 길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