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목이 쉬어 듣기에 좀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시고 들어주시기를 바라면서 잠깐 시간을 가져 볼까 합니다.
오늘은 안보결의대회를 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저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좋은 이름을 갖고 지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를 40년, 그 40년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아, 레버런 문이 어떤 사람이다 하는 것이 바로 드러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알아줄 수 있는 기준으로 올라왔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역시 알아줄 만한 단계까지 왔습니다. 오늘 여기서 내가 여러분을 찾아 만나는 이 시간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마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40년 동안을 기다려서 만나는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안보라는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중대한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안보, 더 나아가서 그 안보라는 말은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금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에 있어서나 국내에 있어서도 사회 제반의 혼란과 부패해 가는 실상을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모두가 세계적인 문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문제가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개인생활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세기적 문제로서 대두되는 시대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적 안보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서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안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성을 두고 보면 남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을 중심한 안보가 있을 것이고, 여성이면 여성으로서 인격을 중심삼고 갖추어야 할 안보가 있을 것입니다. 가정도 가정 자체가 악한 사회와 대치하여 거기에 물들지 않게 하는 안보가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자체도 세계의 사조에 따라 휩쓸려 오는 악한 영향권으로부터 어떻게 안보하느냐, 어떻게 안보를 지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는 국가의 문제인 동시에 세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지구성에 있어서만 안보가 문제 되어 있느냐, 저 영계의 그 어떠한 신의 세계에도 안보가 문제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도 그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키냐 못 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안보가 문제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길을 지켜 나가는 데 있어서 안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악마의 침해를 방어하지 않고는 안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은 지상세계뿐만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안보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이겁니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내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은 믿을 수 있어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가정을 믿을 수 없고, 사회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믿을 수 없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도 믿을 수 없어요.
이렇게 볼 때, 자유세계의 지도국인 미국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느냐? 미국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보문제를 어디서부터 다루느냐 하는 것은 근본문제에 속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변하는 것을 흔히 보게 마련입니다. 그래 인심은 조석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변하는 환경에 있는 내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변하는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행복, 자기 가정의 행복, 더 나아가서는 그 나라와 그 세계의 평화를 어떻게 하면 찾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숙고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한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사상을 찾아 나오고, 혹은 철학을 세워 찾아 탐지해 나오면서 수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무엇을 추구해 나왔느냐? 인간들이 가야 할 정당한 길을 찾아 나가려고 했지마는, 인간의 갈 길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떠한 절대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절대자 있다면 그 절대자로 말미암아 절대적 안보, 절대적 평화, 절대적 행복, 절대적 이상경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변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어 믿을 수 없는 인간으로는 이상세계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철인들은 신에 대해 규명하려고 노력한 거예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것이 실패작으로 끝났습니다. 다 실패했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했지마는 그 하나님이 있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이거예요.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무수한 역사시대를 거쳐왔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인들을 생각해 보아도 성인이라는 그분들은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종주들이다 이겁니다. 예수님이 그러했지 않아요? 석가모니가 그러했지 않아요? 마호멧이 그러했지 않아요? 공자가 그렇찮아요? 그들은 전부 다 종교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의 배후에는 어떠한 내용이 연결되어 있었느냐 하면, 인간세계는 변하지마는 종교의 배후에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를 신봉하는, 변치 않는 사상적 길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는 종교를 중심으로 한 사상권 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세계가 4대문화권으로 분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라파로 말하면 기독교문화권이요, 극동으로 말하면 유불선 3교를 중심한 문화권이요, 인도로 말하면 힌두교와 불교의 문화권이며, 중동으로 말하면 이슬람교문화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문화권이 종교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형성되게 됐느냐? 그 종교라는 이념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역사는 흘러가고, 주권자는 시대에 따라 변천해 갔지마는, 종교사는 하나의 변하지 않는 방향을 통해 왔기 때문에 결국 종교문화권이 형성된 것입니다. 아무리 주권자가 포악하더라도 종교를 없앨 수 없었다 이거예요. 거의 모든 종교가 핍박을 받고 희생해 나왔지만 종교의 길이 오늘날 세계 인류역사를 개척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의 배후에는 신을 신봉하며 가는 변하지 않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변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변하지 않는 그런 신앙의 길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 신앙의 문화권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은 자연히 변치 않는 이상세계를 더듬게 마련이므로, 인류는 신앙권으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도대체 종교가 뭐냐? 종교란 뭐냐 이겁니다.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어 살기 위한 생활무대다 이겁니다. 신을 만나 신과 더불어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개인이 신과 더불어 살아야 되고, 가정이 신의 뜻과 더불어 살아야 되고, 그 사회가 신의 뜻과 더불어 살아야 되고, 결국은 모두 신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종교마저도, 오늘의 급변하는 사회의 변천에 따라 사회를 포괄할 수 없다 이겁니다. 오늘날 세계의 변천은 한 국가만의 변천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 사건으로 뒤넘이치고 나간다 이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종교가 이제 세계적인 기반으로서 모든 것을 소화시켜 끌고 갈 수 있어야 할텐데 그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종교마저도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미국은 기독교문화권으로 형성된 종주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기반을 갖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었던 기독교마저도 2차대전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몰락하는 상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겁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변하는 환경을 가누어 가지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폭 넓은 세계적 무대에 못 서 있는 거예요. 환경은 세계적인 규모로 변해 가는데 교파적인 좁은 틀에서 분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해서는 변천하는 이 세계를 소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도 이제 벽에 부딪쳤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신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보를 진정 바란다 할진댄 안보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분이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안보를 주관할 수 있는 주체자가 있다면, 그분은 누구여야겠어요? 오늘 이 시대를 대표한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자기 기준에서 모든 것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대의 호흡과 더불어 그 인간이 지나가게 될 때에, 그 후 시대는 다른 주장을 가진 인간이 나오게 되니 변할 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개인으로부터 세계 만민에 이르기까지 안보의 길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절대적인 분이 있어 가지고 그분이 주장하는 뜻과 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진정 하나님이 있느냐? 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고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기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누구보다도 수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세계는 어떤 힘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힘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어요. 힘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거예요. 광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요.
그러면 힘은 어떻게 생기느냐? 힘이 그냥 생기느냐? 이게 문제예요. 그러면 힘이 먼저냐? 힘이 생기기 위해서 작용이 먼저 있었느냐?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기의 힘이라는 것이 전기의 작용을 통해서 나오느냐, 힘에 의해서 작용이 나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전기의 힘이라는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작용에 의해 가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에 앞서 작용이 먼저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작용이 먼저인데, 그 작용이 있기 전에는 무엇이 없었느냐? 이렇게 볼 때,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할 수 없다 이겁니다. 작용이 있기 전에 반드시 거기에는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기준이 있어 가지고 작용을 함으로 말미암아 힘이 생긴다고 보는 거예요. 태양계를 운행하는 것도 각기 혼자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대관계를 맺어 가지고 작용하여 운행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면서 힘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거예요.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먼저 있고, 그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는 거예요.
오늘 여기 리틀엔젤스 강당에 우리가 모였습니다.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모임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 모임의 주최측이 주체가 되고 여러분은 대상이 되어 관계가 이루어지고, 여기에 작용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기서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힘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작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양심작용이 있지요? 우리가 그릇된 길을 가려고 하게 되면 양심이 그 어떠한 작용을 함으로 말미암아 힘이 생겨 가지고, 그 힘이 제재를 하게 됩니다. '너 그래서는 안 돼' 하면서 일생 동안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충고를 하는 거예요. 올바르고 선한 길을 가라고 재촉합니다. 양심이 그렇게 작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양심이 그냥 작용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서 내 마음에서부터 주고받아 가지고 작용하느냐? 그게 아니예요. 그 양심의 본체, 즉 우주를 초월한 어떤 주체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체의 의사와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양심이 작용한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양심은 무엇을 추구하느냐? 양심이라는 것은 보다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여기 오실 때도 그렇습니다. '오늘 문총재를 만나게 되면 만나러 올 적보다는 낫겠지' 그러면서 오지, '아이고 괜히 갔더랬어' 하며 손해나기 위해서 온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뭐 좀 플러스될 수 있는 무엇이 있기를 바라면서 온 거예요. 손해나는 작용은 아무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마당에 나가 보더라도,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해보기 위해서 장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푼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움직임은 보다 나을 수 있는 이익을 추구하며 활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보다 귀한 것, 보다 가치 있는 것, 보다 높은 데로 안내합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모두가 세계에서 제일이 되고 싶은 겁니다. 이제 방금 박총재가 나에 대해서 소개할 때 '아, 문총재 굉장하구만, 훌륭한 분이구만' 그렇게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문총재가 아무리 훌륭한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문총재 자신은 더 높은 곳이 있으면 그 자리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높은 자리, 최고의 높은 한 곳이 아직 남아 있으면 그곳까지 점령하고 싶은 것이 우리 양심의 작용입니다. 그걸 욕심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양심작용이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정당한 길을 통해서 하면 환영하는 겁니다. 비법적 행동을 하니까 나쁘다고 하는 것이지, 정당하게 싸워 가지고 나가게 되면 공적으로 환영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 선한 길, 나쁜 길은 무어냐? 나쁜 길은 비정상이요, 선한 길은 정상적입니다. 정상적인 길을 따라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건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최고의 것을 향해서 달음질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양심이 얼마나 크냐? 여러분, 그걸 생각해 봤어요? 양심이 얼마나 큰가를 말이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여기 오신 한 2천여 명 되는 승공유지 여러분들 한 사람 앞에 내가 돈을 1억씩 나누어 주었다고 합시다. 마음의 명령을 따라서 1억씩 나눠 줬다고 합시다. 그래 그걸 다 주고 나면 마음은 '아이고, 이 리틀엔젤스회관에 온 사람들에게만 주지 말고 서울에 1,200만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특별히 이 사람들에게만 줄 게 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1,200만 시민에게 줄 수 있으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런 거예요. 만약 1,200만을 그렇게 도와주었다고 하자구요. 그런데 또 4천 만이 있다고 하면, 마음은 그 4천 만에게도 도와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한이 없다는 거예요. 한이 없어요. 40억 인류에게 전부 다 그와 같은 선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어느 한 곳에 남아 있는 뭣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까지도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크냐 이겁니다. 측량할 수 없어요. 측량할 수 없이 큰 마음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하면, 이 우주 가운데 제일 높은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우리의 마음이 그 절대자인 하나님을 점령하고 싶다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마음은 서슴지 않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거예요.
도대체 이러한 마음의 작용은 근본도 없이, 어떤 관계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통해서 벌어진다고 할진대, 최고의 것을 바라는 양심이 있다고 하면 그 양심의 욕망의 기준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주체자가 계신다는 거예요. 그 주체자는 말하자면 절대자요, 종교적 술어로 말하면 하나님이라고 하는 분이다 이거예요.
내가 지금은 그 하나님과 먼 자리에 떨어져 있지만, 어느 한때에 가서는 하나님을 친구로 하고 싶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고, 하나님과 같이 기뻐하고 싶은 그러한 본심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보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겠어요, 행복한 사람이겠어요? 하나님이 보호하고, 하나님이 지켜 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할 것이냐? 안 그래요? 전지전능하신, 무소부재하신, 유일무이하신 그분이 나의 안보를 책임져 주신다면 얼마나 멋지겠느냐 이겁니다.
우리는 미국도 믿을 수 없어요. 미국도 믿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국도 잘못하면 망하는 겁니다. 대한민국도 잘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떤 국가도 잘못하면 망하는 거예요. 공산주의도 영원히 갈 수 없어요. 망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만은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통한 안보 이상의 안보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보는 결의하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의 이 리틀엔젤스회관에서 공산당을 이기자고 결의를 했다 하더라도, 만약에 하나님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결의를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동의하지 않고 반대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결의를 암만 했댔자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한 안보의 자리에 내 개인이, 우리 가정이,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우리 세계가, 인류가, 이 우주가 섰다면 그 세계는 비로소 완전한 안보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의한 그 결의는 마지막 결의가 될 것입니다. 그런 결의 시대는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모든 문제는 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나와 하나님의 문제로 귀결되는 거예요. 내가 있기 때문에 가정이 문제 되고,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가 문제 되고, 내가 있기 때문에 세계가 문제 되는 겁니다. 안 그래요? 세계가 암만 좋다 하더라도 내가 불행하게 되면 그 좋은 세계와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암만 가정이 좋다 하더라도 내가 불행하게 되면 가정도 좋지 않다구요.
그러면 여기 여러분들에게 묻기를,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왜 안보를 염려해야 할 사람으로 태어났느냐? 안보를 염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었느냐? 이런 여러 가지가 문제 되는 거예요. 신이 있단다면, 신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해서 인간이 신을 향한 안보를 결의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도록 하였느냐? 이런 비운의 결과를 왜 가져왔느냐 이겁니다.
이런 걸 볼 때 신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라구요. 이런 등등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다 해결해야 됩니다. 시간 관계상 많은 말은 못 하겠지만, 안보문제만 짚고 넘어갑시다.
그러면 안보 중에서 제일 중요한 안보가 뭣이냐? 자, 보자구요. 인간에게서 가장 귀한 것이 뭐예요? 본인이 모든 걸 따져서 결론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면, 생명이 제일 귀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제일 귀해요. 더 나아가서는 사랑이 귀하다는 거예요.
그래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뭐가 먼저예요?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여러분, 이것은 근본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보면, 내가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생명을 이어받기 전에, 내 생명이 싹트기 전에 부모님의 사랑의 터전 위에 내 생명이 돋아난 거예요.
내가 가치 있다는 것과, 내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부모님의 생명을 이어받아서 귀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에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생각 안 해봤지요?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의 사랑에 동참한 자입니다. 그게 그렇소, 안 그렇소? 그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생명이 돋아나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할 때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근본을 파고들어가게 되면, 성경에서는 우리 인간 조상을 아담 해와라고 합니다. 그 아담 해와는 생명체가 먼저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태어났느냐? 이거 문제예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되어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을 닮았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우리 자신을 봐야, 제일의 원인 되는 존재가 아니예요. 아무리 보아야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 결과는 원인을 통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 결국은 결과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를 지을 때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던 보통의 공식적인 창조과정을 통해 지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중심삼고 지었느냐? 이게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해서 뭘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해서 뭘하겠어요? 언제나 가질 수 있고, 언제나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분이 만물을 지어서 뭘하겠습니까?
오늘의 신학계에서는 그것이 문제 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대신학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거룩한 분, 우리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에서 이게 문제라구요. 어째서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했느냐 하는 근본문제를 풀어야 돼요. 하나님이 뭣이 필요해서?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요? 다이아몬드가 필요해요? 금이 필요해요? 보석이 필요해요?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은 다이아몬드를 좋아하고, 금을 좋아하고, 보석을 좋아하고, 진주를 좋아합니다. 그건 왜?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다이아몬드는 굳은 데 있어서 어떤 것에도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천년 전에 어떠한 힘이 오고, 만년 후에 어떠한 힘이 와도 그 힘 앞에 침해를 받지 않아요. 절대적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는 거라구요. 황금이라는 것도 빛에 있어서는 역사성을 초월해 있습니다. 시대와 환경을 초월해 있다 이겁니다. 변하지 않아요. 절대적입니다. 그런 것을 보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진주는 뭐냐 하면, 조화의 빛깔에는 못 당합니다. 아무리 갈더라도, 그 절반을 갈고 갈더라도 그 우아한 조화의 빛은 변치 않습니다. 그 빛에 대하여는 무엇이 점령할 수 없어요. 어떤 힘을 가지고서도 변경시킬 수 없다구요.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보물로 취급하는 것이 인간인데, 어찌하여 인간은 그런 것을 좋아하느냐? 인간은 변치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조석변입니다. '인심은 조석변'이라 하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종교적으로 볼 때 타락했다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는 그 개인과 하나님이 문제인데, 그러면 인격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인격자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구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가 어려워지면 그때 도와주는 사람이 인격자예요?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지식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최고의 인격자예요?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이 지식이라든가, 황금, 돈, 권력이겠어요? 이것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냐 이겁니다. 지식도 변하는 것입니다. 지식도 변한다구요.
그렇잖아요? 오늘날 의사들이 어느때는 무엇이 좋다 해 가지고 비타민 B가 좋고, C가 좋고, 그래 놓고서 다음에는 나쁘다고 합니다. 자꾸 변하는 거예요. 돈도 믿을 수 있어요? 변합니다. 자꾸 흘러 돌아가는 겁니다. 권력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도 변하는 거라구요.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인격자라 하는 것도 변해서는 안 됩니다. 인격자는 무엇에 변해서는 안 되느냐 하는 것이 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인격자를 좋아하겠지요? 하나님이 바라는 그 인격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예요?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은 지식의 왕이신데, 지혜의 왕이신데 지식이 필요하겠읍니까? 권력? 권력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겠어요? 거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뭘까?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상충되지 않고, 하나의 공통점에 귀결되게 될 때에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하나님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 나에게도 절대로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는 하나님하고 나하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뭣이냐 하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은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언제나 가질 수 있는 거예요. 언제든지 보급할 수 있고,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아이구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만했으면 나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도 훌륭하다면 훌륭하지요. 돈도 있다면 돈도 있고, 뭐 지식도 있다면 지식도 있고, 권력도 있다면 권력도 있습니다. 내가 세계 사람이 모두 부러워할 수 있는 기반을 당당코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레버런 문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 응,그게 뭐겠어요? 그것이 사랑이라는 문제입니다. 사랑, 사랑이라는 것이 문제예요. 안 그래요?
여기 있는 나는 남자인데, 남자라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뭐겠습니까? 대개 딴 것은 다 가질 수 있으되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나니, 그게 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전지전능하시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에 갖고 있어서 그것을 그리면서도 혼자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그렇다고 해서 내게 사랑의 본질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긴 있지만 나 혼자 '내 사랑아 좋아' 그러면 그건 미친 것으로 취급받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거치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이게 맞는 말이요, 틀린 말이요? 예? 아무리 미인인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랑을 찾기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돼요. 남자를 찾아가야 돼요. 그게 놀라운 사실입니다. 놀라운 사실이예요.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남자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사랑이예요, 여자예요? (웃음) 웃지 마시고,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전부 다 승공가족으로서 터놓고 얘기 좀 하자구요. 부인네들이 많이 오셨구만, 젊은 부인네들. 내가 시아버지 연령으로는 넉넉할 거예요. 그러니 시가집 할아버지나 시부모로 생각하고, 문답식으로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게 뭐냐? 「여자입니다」 (웃으심) 맞습니다.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여자라는 동물이다 이겁니다. (웃음) 이걸 흘려 버리면 안 돼요. 내가 이런 것을 물으니까 '문총재께서는 뭐 다 아는 얘기를 묻느냐'고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확실히 몰랐어요. (웃음) 남자가 절대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돈, 지식이라고 생각했지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이놈의 남자들, 우리 같은 남자들이 잘 몰랐다는 겁니다. 확실히 몰랐어요. 이걸 확실히 안 해 놓고는 기초석을 놓을 수 없습니다. 초석을 바로 놓지 않고는 집을 짓더라도 곧 무너진다는 거예요.
아뭏든 여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웃음) 웃긴 왜 웃어요? (웃음) 여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웃음) 「남자입니다」 남자예요.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 이 앞 줄에 앉은 남자분들이 대답하라구요.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뭐라구요? 「여자입니다」 여자라는 거예요, 여자. 아무리 잘난 남자, 아무리 세계에 이름이 난 남자라도 혼자 사는 남자일진대 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를 불쌍하다고 그러지요? 이 문총재도 집사람이 없으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한다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아무리 미인이라도 혼자 살게 되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제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절대 필요하다구요. 남자가 태어나길 왜 태어났느냐? 한번 더 묻겠어요. 남자가 왜 태어났어요? 답변하세요, 어디?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폭소) 여자분들 좋아하시는구만. (웃음) 집에서 천대받고, 속에 한을 품고 사는 아주머니들이 많으실 거예요. (웃음) 남자가 태어나기를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웃음) 이것은 우주의 천리입니다. 천칙입니다. 남자라는 동물이 태어난 것은 여자라는 가냘픈 동물 때문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박수) (웃음) 박수 칠려면 힘껏 쳐요. 뭘 그렇게 어렵게 쳐요. (박수) 남자들은 기분 나빠서 이러고 있다구요. (웃음)
자, 그것이 그런가 안 그런가 확실히 증거해 봅시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었는데 누구 때문에 지었겠어요? 해와 때문에 지었을 것 아니예요? 틀림없지요? 또 해와를 지을 때도, 아담이 혼자 있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지은 것입니다. 해와를 짓고는 지극히 선한지라 했지요? 그러니 아담 앞에 해와를 지은 것도, 해와 앞에 아담을 지은 것도 서로서로를 위해 지은 것이다 이겁니다.
만약에 여자가 없다면 남자라는 존재는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다른 게 뭐예요? (웃음) 아, 웃지 마세요. 심각한 얘기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 남자와 여자의 생활질서를 근본서부터 바로잡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근본이 틀렸으니 암만 때려도 틀려 나가는 거예요. 출발을 바로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태어난 것은 절대적으로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자가 태어난 것은 절대적으로 남자 때문에 태어났어요. 여자들 보라구요. 여자 때문에 생겨난 것이 하나라도 있나 보라구요. 가슴이 두둑한 것이 누구 때문이예요? (웃음) 누구 때문이예요? 그건 자녀를 위해서입니다. 궁둥이가 큰 것은 왜? 그것도 전부 남을 위해서 그렇게 생겨났어요, 남을 위해서. (웃음) 그게 여자때문에 그렇게 생겨난 게 아니라구요.
또, 남자는 어깨가 크고 넓은데, 왜 이렇게 생겼어요? 일을 하자면 힘이 세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를 먹여 살리고, 집안 주인 노릇을 해야 되기 때문이라구요. 또한 여자 남자 둘이 앉더라도 사각형으로 딱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어깨가 크고 여자는 궁둥이가 크니 딱 맞는다는 거예요. (웃음) 조화의 법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지은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인데, 근본적으로 확실히 몰랐다는 겁니다.
오늘 문총재를 만나 가지고 다 잊어버려도 좋지만, 이것만은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자는 절대적으로 여자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살아야 되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싫든 좋든 남자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로서로를 위해 살아야 되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서 무엇 때문에 서로서로를 위해 살아야 되느냐 이거예요. 남자 여자가 태어난 것이 서로를 위해서 태어났는데, 그렇게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틀림없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는 남자가 남자를 통해 가지고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고 야단이지만, 그건 1세기도 못 가서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끼리 사랑의 길을 찾자고 별의별 요사스러운 놀음을 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다 꺼져 버리는 겁니다. 남자 여자가 태어나 서로서로를 위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남자보다 귀하고 여자보다도 귀한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이십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자의 사랑의 주인은 남자이고, 남자의 사랑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엇바꿔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슨 말인가 다 이해 못할 거예요. 남자하고 여자하고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지요? (웃음) 거 웃지 말라구요. 다 벗으면 그건 뭐 사실이니까. (웃음) 남자가 갖고 있는 그 유별난 것의 주인은 남자가 아니예요. 여자 것이예요, 여자 것. (웃음)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 말이 맞나, 안 맞나? 주인이 누구냐? 남자가 아니예요. 이놈의 남자들이 주인을 몰라 보고 도둑놈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오늘 부인네들은 좋은 소식 들은 거예요. (웃음) 그래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여자입니다. 여자 때문에 생겨난 거예요. 여자의 것이예요. (웃음) 또 여자가 갖고 있는 것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웃음) 남자의 것입니다. (웃음)
그런데 남자의 모양이나 여자의 모양은 해가 가면 갈수록 늙어져 갑니다. 소년시대로부터 청년시대로부터 장년시대로 늙어져 가지마는, 그 둘 사이에 엮어져 있는 사랑은 점점 커 간다는 것입니다. 완숙해 간다는 거예요. 완숙해 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느때 이루어지느냐? 성숙해야 된다 이겁니다. 17, 8세로 성숙해야만 사랑의 자극이 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금물이야! 주인이 없어! 주인이 없을 때에는 훗날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온갖 준비를 다 해야 돼요.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서로서로 주인을 엇바꿔 만나는 그런 예식이 결혼식이라는 겁니다. 결혼생활이라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러면 인간세계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예요?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죽어 가면, 다이아몬드를 전부 다 팔아서라도 죽어 가는 남편을 살려야 되겠어요, 안 살려야 되겠어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돈 주고도 바꿀 수 없어요. 권력 주고도 바꿀 수 없어요. 인간에게 귀하다는 지식 주고도 바꿀 수 없어요.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주고도,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거예요. 천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망각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가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 사랑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남용하고 사랑을 무시해 버리고 사랑을 천대하는 인간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혼자 못 이룹니다, 하나님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대가 필요한데, 그 상대 될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이겁니다. 상대 될 수 있는 분이 누구냐? 그것이 우리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인간이 어떤 존재냐? 하나님의 사랑에 상대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존재인데, 그 가치기준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권리를 몰랐다는 거예요. 그걸 상실해 버렸다는 겁니다.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미국 대통령이 저 시골 순박한 처녀하고 사랑의 관계를 가졌다 할진대, 다시 말해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 할진대 그건 지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이 있고 없고가 문제 되지 않으니 그 시골 순박한 처녀가 당장에 미국 대통령 옆에 앉을 수 있다 이겁니다. 당장에 동등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는 사실이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절대적인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과 같은 대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종교 중의 어떤 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기독교만이 세계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연고인고 하니,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래 예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는 제일 가까운 거리의 내용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거예요. 여기서 아버지란 말은 가정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출발이, 안 그래요? 예수는 자신을 '신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중심이 뭡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인들은 신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라는 거예요. 한 형제라는 겁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구비한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외에는 없어요. 그 내용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은 인격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동등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신을 증명하는 겁니다.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예요. 그 하나님의 사랑은 막연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 사랑을 어떻게 찾아가는 것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알기를, 하나님은 우리 교파 우리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파주의적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지, 교파를 사랑한다고 안 했어요.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지, 교파를 사랑한다고 안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숙을 하고, 자아비판을 해야 돼요.
이런 일을 내가 강조하고 다녔기 때문에 반대도 많았습니다. 반대받던 레버런 문은 결국은 세계적인 판도를 넓혀 가고, 반대하던 기성교회 모든 교파는 점점 땅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옳은 것은 드러나는 것이요, 그릇된 것은 낙엽이 되어 떨어져서 거름이 되는 거예요. 그게 천지 이치입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뭐라구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딴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이 모든 식물계 동물계를 보게 되면 쌍쌍으로 되어 있어요, 쌍쌍으로. 그러면 왜 쌍쌍으로 지었느냐? 인간에게 사랑에 대한 교육을 하기 위해 자연계를 박물관같이 지은 거예요. 그래 놓고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고 말입니다.
그래, 뭣 때문에 사람만이 귀할까요? 뭘 중심삼고 하는 말이예요, 그게? 여러분과 같이 막된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이웃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사람입니까? 오직 사람이 최귀하다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은 천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앞에 사람만이 오직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하나의 주체자, 절대적인 주체자 앞에 단 하나로서의 상대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귀하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한 거지, 사람을 통해서 사랑을 찾을 수 없다면 귀하긴 뭐가 귀하겠어요?
아까 말하기를 변하지 않는 것이 귀하다고 했는데,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길을 가고 있어요? 반성을 해보셔야지요. 남편이나 아내로서 사랑의 길, 혹은 가정에서 거느리고 있는 자녀들 앞에 부모로서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변치 않지요? 세상이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만은 바르다고요. 그게 있기 때문에 오늘 구원의 역사가 가능한 거예요. 그게,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구체적으로 얘기할 시간이 없지만 말이요, 변하지 않는 사랑의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게 없으면 구원의 역사가 가능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기독교에서 사랑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같이 있을진대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예요?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이어야 돼요. 천지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기쁘시기 위해서 지었는데, 무엇을 통해서 기뻐하려고 했느냐?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하는 과정을 보면, 그들이 평면적으로는 동과 서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동과 서의 입장에서 그들이 자라 올라와요. 점점 자라 올라가다 보니 철이 들어가면서 저들이 서로서로 배우는 거예요. 만물세계를 보고 배우는 거예요. '아, 쌍쌍이 저렇게 다 새끼를 치는구나' 하는 거예요. 철이 듦으로 말미암아 저 먼 데서부터 찾아 깨달아 올라가는 거예요.
사랑의 인연을 맺기 전에 누구를 중심삼고 사랑을 해야 되느냐? 그걸 생각해야 돼요. 아담 해와 자기 둘이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축에다가 횡적인 남자 여자의 사랑을 90각도로 딱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역사는 그것이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축이라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우주의 축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우주의 축은 어떤 주의도 아니요, 사상도 아닙니다. 어떤 권력은 더욱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사랑의 축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순간에 절대자의 사랑의 축이 하늘로부터 땅 위에 들이 꽂혀 심어져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출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직계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축이 어디에 박혀졌느냐? 그 사랑의 축이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절대자의 사랑의 축이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이 뭡니까? 아담이 뭐냐 이거예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뭐가 되느냐 이거예요. 아담 해와가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 하나님이 아담 속에 들어가고, 해와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누구도 떼어낼 수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과 같은 혼란이 벌어질 수 없어요. 영원히 그 축을 옮길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고장이 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벌어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 다시 맞춰야 됩니다. 신랑 되신 예수가 오신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여러분, 신랑이니까? 남편입니다. 예수님을, 하늘을 남편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땅에 있는 인간들이 사모하는 사랑의 축으로 내려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축은 혼자 못 내려옵니다. 어린양 잔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착륙이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직계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혈통! 그 혈통을 타고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혈통이 어긋났다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뭡니까? 하나님이, 즉 이 우주의 대황제가 아담과 해와를 황후와 황제로 만들어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황후와 황제가 되는 결혼식을 시키기 전에 사탄 마귀가 침노해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 성경에도 말하고 있잖아요? 부활된 우리들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하고 인간이 완전히 사랑의 일체 기준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됐어요? 역사시대에 어떤 위인이나 성인이 나와 가지고 역사를 대표해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바울 같은 분도 탄식을 했어요. '내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항상 싸우니 나는 괴로운 사람이라' 그랬잖아요?
이게 왜 고장이 났어요? 둘이 성숙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였으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는 사람이 됐더라면, 그건 하나님의 핏줄에 엉킨 그런 몸이기 때문에 자기 멋대로 살더라도 원리적이라는 거예요. 한 나무의 열매는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선한 열매를 맺고 선한 행동을 하니, 하나님과 같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사람들과는 핏줄이 달라요.
여러분이 이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시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몰랐는데, 레버런 문이 이 역사시대에 나와 가지고 비로소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 안 되어 있는데, 행복해질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육신은 400조에 가까운 세포로 되어 있는데, 오관의 모든 세포가 한 골수로 전부 집결되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사랑의 힘은 그 어느 힘보다 자극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다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래 영과 육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100퍼센트 화합해서 하나된다면 얼마나 강하겠어요?
마음의 세포와 몸의 세포가 사랑에 의해서 완전히 하나되게 되면 공명하게 됩니다. 공명, 공명체 알지요? 음차? 주파수가 같아서 이렇게 때리면 같은 소리를 내는 거예요. 공명체가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것이 고장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살릴 길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이 길을 바로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레버런 문이 지금까지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자유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돼요. 인간은 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야 할 길, 가정적으로 가야 할 길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의 길은 같은 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민족이든, 어떤 나라든 그 길은 같은 길입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는다구요, 사랑의 길은. 개인이 가는 사랑의 길이나 가정이 가는 사랑의 길이나 수가 많을 뿐이지 같습니다. 초점은 전부 다 똑같은 한 길입니다. 그것이 무슨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길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되어 태어났어요. 그래서 여러분 자신들은 본연의 부모의 사랑을 근거로 해 가지고 우주와 연결될 수 있는 놀라운 사랑의 길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비록 타락은 했을망정 그 근원은 남아 있다는 거예요. 선을 추구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그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 기원이 거기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남자 여자는 왜 태어났겠어요? 서로서로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서로서로는 왜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태어났어요, 사랑 때문에. 그러니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은 인간끼리는 갈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르고는 안 돼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 앞에 무슨 환난과 핍박이 문제가 되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40여 년 동안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당코 지금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세계문제를 다 극복하고 여러분 앞에 나와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것도 딴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길을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인간 남녀끼리의 사랑의 길도 못 막는데, 인간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그 사랑의 길을 그 누가 막아요?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을 따라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로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고 키움을 받는 거예요. 태어나 가지고도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으로 키워지는 겁니다. 사랑 속에 키워지는 거라구요. 그다음엔 철이 들어 가지고, 남자 여자가 만나 부부끼리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거예요. 사랑에 의해 출발하여 사랑으로 연결시켜 차원 높은 부부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그다음에는 자녀의 사랑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뭡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다는 것을 교육할 수 있는 것이요,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요, 그것을 체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자녀라는 거예요. 자녀란 자기들을 통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류시조를 지어 놓고 기뻐했던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기 때문에 아들딸을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못 낳은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세상 인간을 사랑했다는 자리에 못 서기 때문에 슬픈 거예요. 남편이 죽으면 왜 슬퍼요? 하나님이 세워 놓은 천리의 중심인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는 길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길이 막힌다는 거예요. 그래서 슬프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원인 없이 작용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근원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여자 때문에.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에. 남자 여자가 왜 같이 살아야 되느냐? 사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남자 여자가 하나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는 동과 서에서 중앙점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자나 남자나 욕심이 많잖아요? 여자도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을 누구나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기 위해 딱 중앙선에 오려고 한다구요. 요 수직선에 말이예요. 하나님의 귀한 사랑이 전부 다 아담한테 가게 되면 불평할 것입니다. 또 아담도 하나님의 귀한 사랑이 해와 앞으로 가게 되면 불평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딱 중앙점에서 만나야 돼요. 수평선을 중심으로 90도 되는 중앙점에서 둘이 하나님의 사랑에 딱 접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천지가 다 완성의 출발을 볼 수 있었어요, 완성의 출발을. 오늘날 인간이 이와 같은 도탄 중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그 사랑을 찾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자식들을 다시 찾아 그 아들딸을 통해 이상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인간이 그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걸 전부 다 가려 가지고 교육해서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걸 가르쳐 주는 도리가 역사상에 처음으로 문총재를 통해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혼자 못 받아요. 남자 여자가 생명 이상의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되어야 됩니다. 생명 이상의 사랑이예요. 생명보다 앞선 게 사랑입니다. 생명 이상의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결혼을 합니까? 왜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결혼을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축으로 해서 돌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축이 되어 움직여야 같이 돌지요. 그것이 이상이예요. 축이 떠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왜 결혼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축과 함께 돌면 돌수록 반경이 커지고, 반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밀착되는 것입니다. 우주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축을 중심삼고 도는 거예요. 거기에 관계된 모든 소유권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그 자리에서만이 상속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 집안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겁니다. 보다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보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인간들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완성된 사람으로서 완성된 사랑을 갖춘 부부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소유를 내 소유로 상속받을 권한이 있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상속이 벌어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인간은 그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거예요.
그래 최고의 높은 곳, 최고로 좋은 곳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이건 중요한 말입니다. 여기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알기 위해서 생애를 바쳐 고심한 거예요. 알고 보니 내용은 간단하다구요. 내용은 간단해요. 아하,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의 길을 따라 사랑의 본원지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되는구나! 그렇지 않아요? 거기서 출발했으니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돌아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부모로부터 사랑에 의해 태어나 사랑의 품에서 성숙하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키우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늙어지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세상에서 부모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느끼고,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껴 가지고 거기서 하나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식물의 열매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의 모든 부분에서 진액을 흡수한 열매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품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 오늘의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다 이겁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다 이거예요.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우주를 전부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기준이 사랑이요, 가치의 존재가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과 하나될 수 있는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으로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오늘날 인간이 가야 할 이상세계요, 영계라고 하면 영계요, 천국이라면 그곳이 천국이다 이겁니다. 그런 열매들이 맺혀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곳은 개인이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아요. 사랑을 중심으로 결실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소유권을 상속받은 대등한 가치에 있는 대상의 자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자, 이런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밤낮 이 교육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이끄는 것이 이거예요. 사랑을 하게 되면 우주적인 힘을 지니게 됩니다. 그 힘에 닿으면 자연히 따라가게 되는 거예요. 사랑은 곧 우주적인 생명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모든 식물의 근본인 거와 마찬가지로, 모든 순은 전부 다 그 빛을 따라가는 거예요. 빛이 비치면 모든 나무의 순이 그것을 따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심은 참다운 사랑의 기준이 접촉된 곳을 자연히 안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본심은 사랑의 순을 통해서 자연히 하늘의 빛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한 곳으로 모인다는 거예요. 자연히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한 작용 이론은 공상이 아닙니다. 망상적인 것이 아니라구요. 사실적인 이론과 더불어 일치화하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다고 하는 거예요. 이들이 가야 할 관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가야 할 관이 확실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되고, 종족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되고, 국가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되고, 다 그것이 한 방향입니다. 한 방향.
사랑이라는 것은 본래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나를 위하라'고 하려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하기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을 아들딸로 생각하는 그곳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남편을 왜 위하고, 아내를 왜 위해야 되느냐? 고귀한 사랑은 자기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위해야 돼요.
그래서 통일교회 사상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기 바라는 사람은 위하지 않고는 찾아갈 수 없는 거예요. 참된 사랑은 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 금방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고도 기억치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 참된 사람인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참된 사랑의 주체자가 아니었다면, 수십만년의 인류역사를 지내오면서, 그동안 인간들 앞에 수난과 배척을 수없이 받으셨는데 지금까지 참아 왔겠어요? 인간을 위하고, 또 위하고…. 그러니까 악마와 다른 겁니다. 악마와 다른 길을 가는 거예요. 위해 주고, 또 위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악마의 사랑은 어떠냐? 자기를 중심삼고 모두에게서 보탬받겠다는 것입니다. 꼭 기억해서 갚으라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데서 모든 사랑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부부끼리 왜 위해야 되느냐? 가치 있는 것이 상대를 통해서 오니 서로 위하는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도 역시 그랬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의 대상은 인간밖에 없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을 존중시하는 하나님은 인간을 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위해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인간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위할 줄을 몰라요. 왜? 참사랑을 몰랐기 때문에. 참사랑을 알아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안보를 하는 데는 무엇을 안보할 것이냐? 사랑의 안보 이상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요. 공산당을 무찌르는 것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분과 내가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것이 내 것으로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을 몰라 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는 완전히 가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확실히 안다면, 위정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위정자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거라구요. 서로서로 위해야 돼요. 위정자는 백성을 위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위해야 됩니다. 서로서로 사랑해야 된다구요. 그 운동이 확대되면 함께 도는 거예요. 여기서 세상만사가 다 풀린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총재로서 말씀드린 안보 중에 제일 중요한 안보가 사랑의 안보다 이거예요. 사랑의 안보!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서 오늘 저녁부터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참사랑, 변치 않는 참된 사랑을 찾아서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가치 있다고 봅니까? 보석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변치 않는 그런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랑하는 데 있어서 변치 않는 사랑을 해야 되겠습니다. 변치 않는 남편, 변치 않는 아내, 변치 않는 아버지 어머니, 변치 않는 자식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변치 않는 가정을 중심삼고 모여 그런 변치 않는 종족, 변치 않는 민족, 변치 않는 국가, 변치 않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세계라는 것은 오로지 단 하나,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기를 바라면서 총재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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