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아버님, 당신의 영원하신 사랑과 더불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스스로 지금까지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이제 저희들 앞에 맡겨진 책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내일의 나는 이러한 내가 되겠다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년과 같이 봄은 이미 저희들 앞에 찾아왔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자유의 동산이 저희의 목전에 전개된 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당신의 높고 귀하시고 아름다우신 본연의 심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4월을 승리의 달로서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노정을 통해서 볼 때, 이달로부터 8월까지는 저희들이 수난의 한때로서 지나던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해에 있어서 이달이야말로 아버지 앞에 탕감복귀해 드릴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이 통일교단을 홀로 이끌어 나오시면서 지표도 없이 방향도 모르는 황량한 벌판과 같고 사막과 같은 곳을 개척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더듬어 알게 되었사옵니다.

저희 자신들에게 아버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것을 체휼한 그 무엇이 있거든 당신의 무릎 앞에서 당신의 손길을 부여잡고 내일의 소망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결의하는 자신들이 되어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후대하신 아버지의 사랑은 저희들과 더불어 있었으나 저희들은 어려서 그것을 몰랐사옵니다.

저희들은 철부지한 과거를 저버리고 어른스런 자세와 당신의 존전에 세워야 할 스스로의 모습을 갖추어 당신께서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아들 딸의 모습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바라는 마음 간절하오니, 당신의 깊은 마음으로 저희들을 불러 주시옵소서.

소망의 천국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당신이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기 전에 저희들이 그곳에 나아가 이것이 아니냐고 하며, 당신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대한의 나라가 걸어온 역사적인 과정과 더불어 그 인연 가운데 태어난 한 개체로서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소망의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는 너무나 불쌍하고 비참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 누구도 바라보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당신이 운행하시는 그 방향조차 잃어버린 채 스스로 허덕이면서 싸워 나온 이 민족의 처참한 역사를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의 그 뜻을 이 나라의 역사에 두시고 이 민족의 배후를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후대하신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침이 되어 광명한 햇빛이 저희들을 비출 적마다 저희들은 뜻 있는 우리의 선조들이 이 나라의 소망도 그와 같이 비춰질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 나라를 위해 애쓰고 염려하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당신의 소원이 비추어지기를 바랐지만 비춰 줄 수 있는 그날들을 안타깝게 보내면서, 눈물과 더불어 헤아릴 수 없는 캄캄한 심정으로 석양을 보내고 밤을 맞는 슬픔의 역사를 걸어나온 것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밤이 밤으로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 올 것을 알고 있사옵고, 지루하고 모두가 원치 않은 세월이 전부 다 가고 역사적인 새로운 광명의 때가 이 천지에 찾아올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를 지키시옵소서. 외적 기준을 다짐하는 현실적인 시점에서 새로운 정신적 혁신을 다짐하고 새로운 봄날을 맞이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민족의 내일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이 책임지고 있는 것을 저희들이 중심된 기업으로 상속받기 위해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고 선,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믿음직하고 바람직한 아들딸이 되어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천국을 향하여 행진할 수 있는 대열에 설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상속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들이 모이는 자리는 외로운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고, 슬픔이 깃드는 자리가 되어서도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계시는 곳, 아버지께서 언제나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곳, 아버님과 더불어 살고, 아버님과 더불어 가는 운명의 한 제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항상 습관과 풍습에 예속되어 하루하루의 생활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버지의 심정세계에 처해 있는 저희들은 습관화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매일 매일 새로움과 매일 매일 자체의 발견과 자체의 발전을 위하여 내적 외적으로 다짐하는 생활이 거듭되어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아침, 이 자리에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한 것은 단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이 땅 위에 왔던 인간 전체를 대표해서 무엇 인가를 남기기 위해 그 표준을 바라면서 노력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사옵고, 소망의 결실로서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서 나왔사옵니다. 저희 자신들은 승리의 실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오니, 긍휼의 아버님, 사랑의 아버님, 저희 자체에 부족한 것을 제거시키시옵고, 아버님과 일체화하고 아버님에게 화할 수 있는 자체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이오니, 당신의 후대하신 사랑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의 마음 깊은 가운데서 심성을 밝히시어 자신을 찾고 자신에게 명령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바라보는 자기 자세가 어떻다는 것을 스스로 체휼할 줄 아는 이 자리가 되게 하시어서, 자신의 모든 것이 당신 앞에 드려지는 생축의 제물이 되고 분향의 향기가 되어서 당신의 자랑이 되고 당신의 소망이 깃들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당신의 사랑하는 딸들이 일선에 나가 있사옵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선에 나가 있는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뜻을 위하여 시들어 가는 이 나라 이 민족의 내일의 운명을 위해 나가서 싸우고 있사오니, 가냘픈 여성들이 이 민족을 붙들고 호소하는 그 자리에 당신께서 같이하여 주시옵시고, 그들로 하여금 원수의 조롱으로 사라질 수 있는 탄식의 탕감 조건이 남아지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의 운명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후대하신 동정적 사랑이 그 자리에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로 말미 암아 만민의 슬픔이 연결되어 삼천만의 한을 제거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들이로되 하늘의 소원을 그들의 마음과 연결시키어서 그들의 손길과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대하는 일마다 스스로 감명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바라는 엄숙하고 고귀한 가치를 발견하여 민족적인 새로운 정기를 이어받을 수 있는 동기와 터전이 싹트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을 지도하던 책임자들이 지금 수택리 수련소에 모여서 수련중에 있사오니, 이번 기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고이 품기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들의 마음과 몸이 아버지와 일체되어 거룩한 화신이 되게 하시어서 아버지의 사랑의 본체요, 아버지의 말씀의 증거자요, 아버지를 대신하여 악에 대한 영원한 심판의 주인공으로서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안팎으로 갖추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갈라진 심정이 상봉하는 시간에는 다시 한 번 당신의 높고 귀하심을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고, 온갖 사연들로 갈라졌던 사정 들을 통합하시어서 통일기반을 확보하게 하여 주시옵오서.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아버지의 제단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이들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해원성사를 바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북의 한을 분별시킬 수 있는 전통적 계기가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의 따뜻한 품에 안기게 허락하여 주시어서 승리의 1971년도가 되도록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각자는 통일기반확보라는 공고한 터전을 세워야 할 엄청난 책임을 맡은 자체임을 발견하고, 주어진 환경을 개척하여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충성을 세워 놓을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을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고,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살피시옵고, 저희 자신의 마음과 함께 이 모임 가운데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체를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길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직까지 봄과 같은 역사를 맞이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역사를 맞지 못한 동기는 역사 자체에 있는 것보다도 역사를 움직여 나오고 역사를 형성해 나오는 인간에게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봄을 맞이하지 못한 인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더우기나 인류 시조에게 있어서 천지가 바랄 수 있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인류 시조가 타락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타락이라는 그 자체는 모든 것을 부정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하는 바를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대해 후퇴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목적에 대하여 소망을 주는 입장이 아니라 목적에 대하여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운명 가운데서 인류의 시조가 출발해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출발이야말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절망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붙들고 희망의 길을 어떻게 찾아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인류 시조도 갈 수 없었던 그 길을 우리 후손들이 타개해 간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시조의 한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후퇴한 인간이 되어 그 목적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도 그 운명권내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 인간이 어떤 목적을 향하여 갈 것인가를 짐작하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입장에 섰을는지 모르지만 소망의 기준을 영영 잃어버린 선조로부터 태어난 후손들로서 역사적 거리를 두고 현재에 처해 있는 우리들에 있어서는 우리 선조들이 잃어버린 소망의 터전을 다시 희생시켜서 그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정할 수없는 그런 운명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만으로서는 도저히 이런 소망의 곳, 희망의 곳을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미 떨어진 자리에 있는 인간에게는 직선적으로는 가지 못하더라도 우회해 본래의 주권을 찾아 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이런 방향을 주도해 나오고 개척해 나오셨으며, 역사적인 모든 환경을 거쳐 나와서 수많은 종족의 분열상을 규명하고 민족의 분열상을 규명해 가지고, 이제는 세계가 분열된 운명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적인 시대까지 끌고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때의 세계적인 사조로써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라고 하는 문제가 인간의 생사를 판결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할 줄 알았지만, 이것 조차도 우리 인류 앞에 희망의 조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도 지나가야 됩니다. 이것을 타고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세계는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타고 넘어가서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인류 시조가 타락하였으니 타락하지 않은 그 본연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돌파구를 어떻게 찾아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 인류가 바라던 새로운 인간의 모습, 그 모습은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세계 인류가 바라는 인간상이 될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타락 하지 않은 본연의 선한 입장에서 걸어 나가는 가정의 모습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현상권내의 인류가 바라는 참다운 가정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이뤄 놓은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다면, 그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오늘날 세계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민족이 되고, 소망의 국가가 되고, 소망의 세계가 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야 할 종착점

그러면, 그러한 세계는 어떤 세계냐? 그 세계는 하나의 세계일 것입니다. 그 세계는 완전한 하나의 세계로 시작되어 발전되어 나가는 세계상이기 때문에, 발전되는 그 내용은 완전한 개체를 중심삼고 전체의 동기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한 인간조상의 출발로 말미암아 완전한 사회 형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방향으로 가는 데 있어서 이색적인 방향은 요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단 하나의 방향이요, 그 누구에게도 맞는 것이기에 그 시대에 있는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도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 없는 절대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소망하는 그런 터전이 오늘 이 세계에 다시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그 하나의 세계의 귀결점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귀결점은 어디가 될 것이냐? 이것은 몸부림 치다 말고 하나의 돌파구를 찾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가 바라며 가야 할 곳, 우리가 찾아 나가는 소망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놓치고 오지는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다시 돌아가 그 길을 찾아 허덕일 수도 있는 시점에 놓인 것을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만일 이 자리까지 왔던 인간들이 다시 흑암 세계로 돌아간다면 그야말로 비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우리 인류가 그런 세계로 돌아간다면 희망도 없을 것이고, 인간이 바라는 봄이라는 것은 꿈 가운데서도 지닐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해서 앞으로 인간들이 찾아 나가야 할 봄의 세계, 즉 인간이 찾아야 할 봄을 맞이하게 하고, 여름이 되게 하고, 다음에 가을이 되게 하여 인간을 통해 결실을 거둘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류의 종말 때까지 이것을 방비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와 만반의 방어진을 강화시켜 나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류는 진정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될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오늘 우리 인류는 12, 13세기부터 인문사조가 발달하기 시작하여 16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신의 실존을 부정하는 인본주의 사상까지 나오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조를 거쳐 나와서 현재는 신을 부정하는 단계를 넘어 신은 죽었다고까지 하는 결론을 짓는 절망적인 한계점에 도달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부정했던 신은 없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잃어버린 신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신(神)은 인류에게서 영영 사라져서는 안 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한계선에서 추방을 당하고 완전히 부정을 당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부정의 자리를 뚫고 나왔고, 그 한계선을 돌파하면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현시점에서 단 하나의 길을 모색해 주어야 할 것이 하나님으로서 해야 할 책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인문 사회를 통하여 이루어진 과학의 결과의 세계가 아닙니다. 신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부정되었던 종교 기반 아래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시대에 새로운 정신적인 이념을 어떻게 촉구시켜 재현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부터 종교가 해야 할 사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기 전에 먼저 신(神)이 있다고 하는 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야 될 것입니다. 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함과 동시에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인식한 신으로 하여금 우리의 생활권내의 감정과 생활해 나가는 자기 인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관계를 맺어 주는 새로운 종교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조를 다시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으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사회가 신을 부정하는 그 부정의 환경을 다시 부정하여 그것을 새로운 긍정으로 돌이킬 수 있는 주체적인 힘, 주체적인 동기를 어떻게 발현 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현대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바라고 나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사상이 아니라 천국을 창건하자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현 시대에 세계 인류가 단말마적인 극단의 세계에 들어와 가지고 자기 자체의 일신조차 수습할 수 없는 현실에 처하여 있는 이 때, 새로운 의미로서 새로운 차원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사명을 해야 할 종교가 있어야 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종교의 입장을 확고히 세우는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할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천국에 가는 것을 소망하는 종교가 아니라 천국을 실현시키려는 종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종말 시대에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런 운동을 책임지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믿고 가는 것보다 신을 증거하면서 가야 되겠습니다. 또, 신을 증거하고 가는 동시에 증거된 신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 터전을 개척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종말시대에 있어서 요구되는 새로운 종교가 제시할 내용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의 한계선을 타파해 버리고 그 한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방안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문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神)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기쁨을 주며, 자기의 모든 생활권을 넘고 어떠한 극난한 환경까지도 넘어서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를 발견할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인류가 희망하는 봄의 세계를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종교, 시대를 혁신할 수 있는 종교, 시대의 모든 감각을 새로운 면에서 자극시킬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오늘날 이 현대인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것입니다.

고요히 앉아 명상하는 가운데 부딪히는 시련보다도 우리의 모든 생활 환경 가운데에서 부딪히는 시련 무대에 있어서, 혹은 교차점에 있어서 신의 실존을 스스로 대변할 수 있는 자체를 갖고 나타나는 신앙자의 대열이 오늘날 인류 앞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바로 그런 모습들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20여년의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20여년간 바라던 소망이 풀리지 않은 그와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신음 하면서 뒤넘이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신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신(神)과 나와의 관계, 그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관계는 오늘날 사회의 어떠한 관계나 인연보다도 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결의는 나라에 대한 충신의 절개보다도, 부모에 대한 효자의 절개보다도, 남편에 대한 열녀의 절개보다도 더 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딪쳐 오는 사방의 어려운 사회상을 바라보게 될 때, 거기에 부딪쳐 가지고 스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타개하고 전진의 일로를 가해 갈 수 있는 자체를 하나님은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 사회에 휘말려서 스스로를 수습하지 못하는 자세가 아니라 현 사회 환경을 타개해 버리고, 일소해 버리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자세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기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어려운 환경 가운데 허덕이는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의 목적, 혹은 어떤 희망의 좌표를 제시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십년 동안 걸어온 그 역사적인 수난길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대 사회, 대 국가, 대 세계에 남아진 수난길을 대비해 가지고 그 이상의 수난의 길을 가져다 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수난의 구렁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세계를 타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 연단시키고 훈련시킨 것입니다. 수난길은 그런 한 기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현재의 시점

우리는 그런 수난 가운데서 좌절될 것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다짐된 그 소망을 가지고 결의된 그 마음을 가지고 어떤 환경의 침식을 받을 것이 아니라, 침해를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수난기간을 새로운 개척의 역량을 키우고, 자제력을 키우고, 환경을 흡수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5년,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걸어나온 걸음걸이라는 것은, 앞으로 세계적인 시련 무대에 여러분을 내세우기 위해 같은 생활권내에 있는 종족과 민족의 시련무대에 내세워 가지고 연단시킨 것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련은 우리가 자국민을 넘어서 이국민의 시련무대에 나서게 될 때 우리에게 가중된 시련이 있을까 염려하셔서, 그 시련무대에서 쓰러지지 않는 무리를 만들기 위해서, 치열한 수난의 과정을 통하여 훈련시킨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결의했다면 그야말로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걸이는 다시 한 번 내일의 소망의 터전 앞에 빛이 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앞에 다가오는 시련의 무대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좌절되는 것이 아니라 결의를 다진다면, 그것은 내일을 향하여 새로이 출발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동기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국가면 국가,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한 마디를 결정지어 놓고 새로운 세계 무대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동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때를 맞아 노력하였다면 맞이한 그때야말로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민족의 한계선을 넘는 때요,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새로운 봄절기와 같은 시대를 맞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시대는 반드시 우리 앞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봄절기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체가 꽃이 피는 것이 아닙니다. 봄은 겨울의 연속이요, 겨울과 연결되는 때이기 때문에 어차피 한 기간에 있어서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 시련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시련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일의 소망 앞에 강하고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다가오는 시련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갈 때, 다가오는 시련은 강한 시련 근 시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작은 시련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간 하루하루를 생각해 볼 때, 통일교회가 대한민국권내에서 시련을 받던 그때는 겨울과 같은 때였습니다. 그러면 그 겨울이란 무엇이냐 할 때, 겨울이란 생명 자체가 완전한 생명으로 남아지느냐 못 남아지느냐를 판가름하는 시련기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의 씨에 있어서 과거의 시련이 크면 큰 만큼, 그 시련 속에 남아진 생명력을 가지고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되어 있다면, 그 자체는 땅이 높아지고 하늘이 낮아지는 봄날을 맞이하여 따뜻한 태양볕을 받으면 새로운 싹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싹이야말로 봄의 주인이 될 것이고, 여름의 주인이 될 것이고, 가을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씨를 심은 주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실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의 현시점은 어떤 때냐? 이 민족과 국가를 대신 해서 시련과정을 넘어가는 때입니다. 이것을 절기로 말하면 입춘을 향하여 겨울을 넘어서는 경계선에 도달한 때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연단되었던 여러분 자체는 이제 얼마나 늠름하며, 새로운 봄을 향하여, 새로운 여름을 향하여, 새로운 가을을 향하여 뻗어나갈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생명력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에서부터 한 방향을 향하여 무한정 뻗어 나갈 수 있고, 자의도 '그렇다'고 할뿐만 아니라 타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자체를 어떻게 지니느냐하는 것이 봄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봄을 맞는 바른 자세

그럴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다면 그 봄은 나를 위해 찾아온 것이요, 그 봄의 가치를 찬양한다는 것은 외적인 봄 자체보다도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를 중심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봄이 왔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기쁨을 자극시키고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지 않는다면, 그 봄은 도리어 여름과 가을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봄을 봄답게 아름답게 단장하고 봄을 봄답게 자랑할 수 있는 꽃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꽃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꽃이 되려면 먼저 생명력을 지닌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역사적인 봄이 우리 앞에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 자체를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체는 하나의 산 생명나무가 되어 가지고,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만일, 그럴 수 있는 내 자체가 되었다면 강한 지난 겨울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수난을 심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수난을 탄식의 요소로 흘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쁨의 요소로, 영양으로 섭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체적인 힘을 가진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역사를 심판하고 시대를 새로이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나타나야만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체를 지닌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더우기 오래된 식구들은 지금은 과거지사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내일을 논의하고 내일의 세계에서 자랑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춥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입춘까지 지나가고 봄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꽃피고 향기 풍기고 생명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연단기나 수난기를 흠모하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자기 자체의 모습을 자랑하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감동된 자기 자체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봄날을 맞을 수 있는 자체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련과정, 그런 겨울과정에 남아지는 자체만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겨울을 지나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 가지고, 내일의 희망에 벅차서 인류가 잃어버린 소망의 한때를 우리의 때로 맞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몸 마음이 활기에 넘쳐 가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실체가 되지 못하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을 지닌 실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봄이 오게 되면 꽃이 필 것이고, 꽃이 피게 되면 향기가 풍길 것입니다. 그러면 천천만 성도나 천군천사는 물론이요, 하나님께서도 화동할 수 있는 자유의 출발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기쁨의 동산과 같은 봄날을 맞지 못한 비참한 탄식의 소리가 인류역사에 스며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비참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오늘날 새로운 역사의 목적을 지향하는 어떤 종교의 무리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을 꽃 피게 할 수 있는 봄절기의 무리들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수난과 역경을 타개하고 수고해 나오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하나님의 수고를 이어받아 제물이 되어 가면서 싸워나왔던 것이요, 제물이 되어 가면서 그 목적을 계승해 나온 것이 아니었겠느냐, 또 그 목적을 계승해 나온 기쁨의 한때는 봄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이처럼 수많은 인간들이 그 봄을 그리워했지만 맛보지 못했던 그 봄을 우리들이 비로소 체휼하고 체득하면서 살 수 있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제부터 통일교회는 그런 세계로 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기필코 우리를 그 세계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수난과 시련의 진정한 의미

시련의 고비가 길면 길수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시련을 거쳤으면 그 국가와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해방의 기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된 그때의 환경에서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해방된 이후의 역사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귀역사를 완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시조가 타락하던 그 한계선에서 기쁨을 느낄 것이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경지, 타락선을 넘은 경지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소망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미래의 전체를 대신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기쁨의 경지를 체득할 수 있는 내용과 바탕이 되어 있어야 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인간 시조가 타락했던 그 한계선 이하의 기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기쁨을 느껴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편안한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은 그런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배가 고플 때는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느껴지고, 배가 부를 때는 맛있는 음식도 맛없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반대적인 현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위안에도 더할 수 없는 눈물어린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기쁨 가운데 있는 사람은 몇십 배 몇백 배의 기쁨이 온다 해도 고통 가운데서 작은 기쁨을 느끼는 그 기쁨만큼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난과 시련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나쁜 반면에 좋은 것을 더 자극시키고, 그것을 더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평범한 것도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에 올려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난의 경지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옥중생활 가운데나 기근이 극심한 자리에 서게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콩 한 알, 혹은 밥 한 알도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련과 수난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련과 수난 가운데 생명의 가치를 세워 나가는 힘과 소망과 욕구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시련과 수난의 어려 움이 어려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기쁨의 자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의 기쁨뿐만 아니라 소망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소망을 갖고 있다면 그 자리에서부터 기쁨의 천국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는 어떠한 소망도 성사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앞으로 다가올 시련무대를 극복할 수 있게끔 연단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연단과정이 연단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자극을 보다 가치 있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선물로서 준 수난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수난이 나쁜 것이 아니요, 어려움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의 터전이 되고, 내일의 행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두고 보게 될 때에,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그 시대에 있어서 수난의 고비를 극복해 나가면서 그 나라의 소망을 붙들고 싸워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현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천의를 받들어 이 인간 세상에서 긍정하는 것을 부정하고 세상의 방향을 바꾸어 소망의 세계를 향하여 자기의 일신을 버리고 그 이념과 더불어 환경의 시련을 극복해 나온 사람이 성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성현의 삶은 비참한 것이로되 그 내심에서 받던 모든 고충이 도리어 기쁨의 세계와 인연맺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은, 통일 교회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일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세계에 보다 빛 될 수 있는 통일교회로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우리는 그 수난 가운데서 얼마나 기쁨을 느꼈느냐? 우리가 수난을 헤쳐 버리고 수난을 깨쳐 버릴 수 있는 자제력과 주체적인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소망의 천국을 흠모하였느냐? 그것이 사망권, 혹은 시련권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기를 지니고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시련과 부딪쳤을 때 그것을 밟고 넘어서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싸움을 해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봄을 맞이하는 때에는 희망에 벅찰 것입니다. 그는 잘래야 잘 수 없고 앉아 있을래야 앉아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활개를 펴고 온천지에 봄이 온다고 자랑하며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다짐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모습이 오늘날 통일교회들 믿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위 오래 되었다는 식구 가운데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픔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해 나왔다면 이때야말로 가일층 전진과 가일층 발전의 자세를 갖추는 자체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시련에 부딪치던 그 한때를 추구하고 그 한때를 회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환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일의 소망의 봄동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뻗어 나갈 수 있는 늠름한 기백과 자세가 넘쳐흘러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에 슬픔이 가득차 있고 절망이 깃들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중심삼고는 봄날을 맞이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내일은 망한다 하더라도 그 얼굴과, 그 마음과, 그 결의는 희망에 벅찬. 새아침을 맞이하려는 환희에 용솟음치는 기분, 그 기분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감동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반이 여러분 자신들과 연결되어야할 때가 아니냐 하는 것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 비로소 환희의 봄날을 맞이했다고 온 우주 앞에 두 손을 들고 찬양할 수 있는 모습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기도드리는 모습,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늘어질 수 있는 모습, 그런 자리에서 이제는 아버지를 놓지 않고 아버지와 같이 가겠다고 결의하는 모습이 오늘 통일교회에 맺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내일의 봄을 향하여 전진하는 통일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수난길을 도피해 가고 수난길을 부정한 입장에 선 과거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다시 한번 긍정적인 한때로 소화하기 위해서 그런 한 기간을 다시 한 번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과 1971년도를 넘어서면서 축복가정의 부인들을 전국에 배치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배치한 것은 그것으로 어떤 결말을 짓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비판받고 있는 통일교단의 역사적인 서러움을 다시 남겨주어 이들로 하여금 어떠한 탕감적인 조건을 제거시키는 제물을 삼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옛날을 회상하면서 극복할 수 없었던 과거를 다시 한 번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제시해 주는 하늘의 사랑이요, 긍휼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선에 나가 있는 부인들로부터 전해 오는 편지를 받아보는 남편이 있거든 그 편지는 일대의 경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전도 나갔던 아내로부터 받았던 편지가 아니요, 권고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편지는 겨울 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봄이 왔다는 희소식이요, 새로운 나라를 향하여 나가라는 하나의 소명의 청첩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거기에 감사하면서 자기 자체를 정비하기 위해 급급해 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미래의 통일교단의 봄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내려 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다 더 사랑한다는 증거인 동시에 마지막 때를 알리는 예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부인들로부터 전해 오는 소식을 통하여 봄이 오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때가 온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해 주는 소식이 1960년도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이 달라진 것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안팎의 모든 내용을 헤아려 볼 때 그야말로 이제 우리 앞에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감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모체가 되라

그러면 이 봄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쳐야 되겠느냐? 이 남한 땅뿐만이 아니라 북한 땅까지 이 봄의 영향이 미치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적도선 이하로 내려갔던 태양이 적도선 이상으로 올라와야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한의 힘과 영향이 이북으로 미칠 수 있는 운동을 개시해야 되겠습니다.

그 운동을 개시함에 있어서 물질적인 힘도 있어야겠지만, 정신적인 힘이 보다 강해 가지고 이북을 능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북한을 통일시킬 수 있는 봄이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 위에 찾아올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제 우리는 과거처럼 남한만을 위하여 기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북한 5도에 있는 천 삼백만 이상의 북한 동포들 붙들고 우리의 힘과 역량으로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봄의 깃발을 힘차게 붙들어 얼어붙은 북한 땅을 녹여내고 그들이 봄을 맞이할 수 있게 주체적인 역량을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민족적인 주체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북한 땅까지 합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주체의 모습을 갖추어서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고 아시아 전역에 봄을 맞게 해야 할 주체국가로서의 사명을 수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외적인 무대에서부터 할 것이 아니라 내적인 정신적인 무대에서부터 해야 합니다. 여기에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하늘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성사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남한 땅을 중심삼고 극복해야 했던 시련과정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북한까지도 봄날을 맞게 하기 위한 시련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북한 땅은 지금까지 겨울인데, 지금은 겨울과 봄이 맞서는 때입니다. 겨울과 겨울이 맞서는 때가 아니라 겨울과 봄이 맞서는 때이기 때문에 봄이 오면 올수록 겨울은 물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뜨거운 태양의 열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체에 있어서도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그 내부에 결속된 힘은 인류를 감화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보다 더 크고 많은 시련이 부딪쳐 오더라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며, 거기에 내적인 문제까지 영향받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 봄이 찾아오면 그 경계선에서는 침범 받을 수 있고 상충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내적인 자리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적인 자리에서는 봄은 봄대로 남아질 것이고, 외적인 자리에서는 여름을 맞이할 수 있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만, 봄은 점점 더 확대되어 세계를 점령해 나가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주체 국가,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중심이 결정된다면 그 중심을 통해 인류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조들이 환희의 봄으로써 맞이할 것입니다.

모든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수천년, 혹은 수십만년 동안 수고를 해 나오신 하나님도 말할 수 없는 영광의 한날로서 그날을 찬양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그 봄을 하나님은 얼마나 바랄 것이며, 영계에 있는 선지선열들은 얼마나 바랄 것이며, 또 통일교회 교인들은 얼마나 바랄 것이며, 북한에 있는 수많은 동포들은 얼마나 바랄 것이며, 세계 인류는 얼마나 바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새로운 봄날의 운동을 세계 도처에 전개시킴으로써 지구성 전체가 꽃동산으로 화하게 하여 어디 가든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유 천국이 나타나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봄을 이 지구성이 맞지 못하고는 소망의 여름과 가을은 물론, 우리가 소원 하는 본연의 때는, 결실의 문명시대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온 봄을 세계에까지 연결시키자

새로운 봄을 제시하고, 새로운 봄을 출발시켜 그것을 성사시켜야 할 기원의 자리에 서 있는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자체는 미래에 다가올 역사적인 운세에 밀려가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역사적인 희망의 운세를 맡아 그것을 세계 끝까지 밀어낼 수 있는 주체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하고는 오늘의 생활권내에서 하나님이 환영하고, 온 세계가 환영하고, 온 인류가 환영할 수 있는 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야말로 그런 경계선을 넘어 남한에 봄이 찾아오는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봄을 이북에까지, 이 봄을 아시아에까지, 이 봄을 세계에까지 연결시키고, 이 봄에 반대되는 일체를 부정해서 그것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때가 될 때, 그때야말로 하나님께서 소망하는 지상의 천국, 인류가 소망하는 지상의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싸움과 시련의 도상에 있지만 내 마음 가운데 봄이 있고, 내 마음 가운데 여름이 있고, 내 마음 가운데 가을이 있어서 그것이 상대적인 때로 나타나게 될 때는 내가 봄의 주체가 된 것이요, 여름의 주체가 될 것이요, 가을의 주체가 될 것입니다. 겨울이 찾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력을 가지고 그 겨울을 무난히 넘고도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겨울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보호하고 그 겨울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생명으로 지탱시키는 계절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위협하기 위한 겨울이 아니요, 생명을 분립시키기 위한 겨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히려 확실히 결속시키고, 그 존재를 완전히 보호하는 겨울은 될는지 모르지 만,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겨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이 오더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자기 자체의 역량, 생명력을 지니지 않고는 아무리 봄을 맞고, 여름을 맞고, 가을을 맞는다 하더라도 해마다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봄을 맞기 위한 시련과 그 극복의 노정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임에 틀림 없다는 자각과 스스로의 결의를 갖는 여러분 자신이 되지 않고서는 온 우주가 소망하는 환희의 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 도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봄이 온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는 생명의 민감한 촉각을 가진 자체가 되지 않으면 봄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자연법칙을 통해서 아는 바입니다.

여기에 모인 통일의 자녀들은 멀리멀리 남으로 갔던 태양이 북으로 돌아오게 될 때, 기쁨으로 봄의 출발을 맞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통일교회는 수십년의 역사를, 시련과 승리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오면서 망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들이 망하지 않고 지루했던 겨울을 지나 새로운 소망의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봄이 남한 땅의 봄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느껴야 겠습니다. 우리는 이 봄에 공고한 생명력을 지니고, 새로운 빛 새로운 광명과 같은 태양의 힘을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무한한 열과 무한한 빛과 무한한 생명의 인연이 깃들수 있는 주체적인 터전이 점점 공고히 되어 감에 따라 봄의 터전이 확정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내적 기준을 갖춘 터전이 됨으로 말미암아 삼천리반도 북한 땅 전역에까지 새로운 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가는 데 있어서 북한 땅, 우리가 극복해야 할, 또다시 봄의 힘과 겨울의 힘이 맞서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봄은 나약한 것 같지만 겨울을 극복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보잘것없는 통일교회가 세계의 원수라고 하는 공산당들과 대결하여 그들을 녹여 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는 지극히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봄의 주체지만 무지무지한 겨울과 같은 이북을 몰아내고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믿어야 되겠사옵니다.

찾아오는 하늘의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위치를 상실하지 말고 굳건히 지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봄을 봄답게 그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게끔 역량을 발휘해야 된다는 것을 각자가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시아 일각에서부터 전 아시아로, 나아가 온 세계에 미쳐질 수 있는 봄의 동산을 이루는 것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소원이요, 인류가 바라는 소원이요, 영계에 있는 선조들의 소원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기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이제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어젯날을 자랑하는 자들은 흘러가 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을 자랑하기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며 내일에 대한 욕망이 불타서 스스로 부정하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흘러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런 경계선에 서 있는 저희들은 이자택일(二者擇一)하여 아버지만을 위하여 전진하고 아버지만을 위하여 봄을 맞을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내적 외적으로 준비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외적인 환경을 바라볼 때,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 통일교단에게는 봄입니다. 남한에 봄이 오면, 그 봄을 아시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요, 민주세계를 휩쓸어 아버지의 뜻 앞에 결속시킬 수 있는 것이요, 공산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땅 위의 새로운 문화 창건에 없어서는 안 될 봄의 기수의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통일사상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 길을 아버지께서 세우셨고, 아버지께서 가려 나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아직까지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서 계시는 한 저희들도 굳건히 서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계를 향하여 가일보 전진하는 한 저희들도 전진해야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힘이 저희 자체를 부정시킬 수 없다는 결의와 더불어 우리가 부정시킬 수 있는 자체를 발견하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외적으로 확대시켜 나가야 할 자체인 것을 자인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저희를로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들이 되면 생명은 자라는 것이옵니다. 그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든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이옵니다.

약자는 쓰러져 가더라도,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반대받고 부딪치는 시련의 환경에서도 생명의 영양소를 흡수하고 소화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침식당하지 않는 한 길을 닦아 그 길을 하늘의 길로 남기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남한 땅, 어떤 곳에 처하더라도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떤 자리에 서더라도 지면 안 된다는 결의를 가질 때, 봄에 속한 자들은 반드시 승리하고 만다는 신념을 가지게 하옵시고, 그런 신념으로 나가 싸우는 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들 또한 그런 벅찬 마음을 가지고 자기들 앞에 허락된 한때의 봄을 잃어버리지 않는, 봄의 주인으로서 당당한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같이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환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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