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마태복음 8:18-34

<기 도(Ⅰ)>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나와서 아버지! 라 부를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사망의 신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이 원한에 사무쳐 살아야 할 저희들에게 사랑하시는 예수를 보내시어서 구속의 은사를 펴 주신 것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이 일을 위해 수천년 역사를 경과하면서 변함없는 수고를 해 오신 성삼위신의 은사 앞에, 어두움의 이 온 땅에 광명의 빛을 비춰 주신 아버지의 수고 앞에, 먼저는 몸 마음 드려 그 은사에 보답할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아침 놀라우신 은사를 마음으로 체휼하면서 어둠에 잠겨 있던 저희의 몸들이 하늘에 감추어져 있던 생명의 흐름에 잠기고, 사망에 잠겨 있던 이 한 몸들이 우주적인 아버님의 사랑의 동맥에 연결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몸 마음 다 드려도 아버지의 은사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이 시간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 마음 다 드려도 스스로 송구함을 느끼는 자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몸 마음 다 드려도 스스로 미비함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있는 힘과 있는 정성과 있는 몸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하나의 산 제물로 바쳐 드려졌어야 할 저희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날 이 시간까지 그러하지 못했음을 용납하여 주옵시고, 아버지께서 기뻐 흠향할 수 있는,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의 모습을 어서 속히 갖출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은 소수의 무리들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이 민족을 대하여 승리의 제물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시고, 이 민족이 사망의 물결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내려면 많은 제물이 요구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염려하시는 모든 분야를 책임질 수 있는 제물, 아버님의 염려의 터를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제물, 선악의 싸움터를 청산하여 하늘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제물로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세우시어 이 한 시간 이끌어 주시는 은사 앞에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부복하였나이다.

아버님! 먼저는 이 청중을 산 제물로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그런 다음에 아버님이 찾으시려는 하나의 승리의 제단을 쌓을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나아가 아버님의 긍휼의 뜻을 이 민족과 온 인류 앞에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보잘것없는 것들을 세워 놓고 우주적인 전체의 사명을 분부하셔야 하는 당신의 사정을 생각할 수 있고, 아버님의 사무친 염려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고, 뼈 살이 울리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싸움에서 지칠지라도 아버님의 서러운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며 스스로 위로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부르시는 아버님의 초조하신 형상을 대할 적마다 스스로 싸움의 힘을 가다듬어 다시 나설 수 있게 하시옵고, 하늘을 위하여 거침이 없이 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금년 한 해도 다 넘어가는 이때, 일년 동안 저희에게 맡기신 바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거든,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저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은 세계적인 역사 관념을 넘어 천주적인 역사 관념에 해당하는 사명이온데, 저희 자체들이 한 해 동안 자기를 중심삼고 살았던 것이 있거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맡겨 주신 사명을 너무나 경솔히 생각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날 아버지 앞에서 지난 일년 동안 저지른 모든 부족한 것을 청산 받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맹세를 갖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지 뜻 앞에 미비한 자신을 회개할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이 가는 길은 일생을 통해서 싸움의 노정을 재촉해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될 우주적인 운명의 노정이오니 가다가 지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가다가 낙심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다가 뒤를 돌아봄으로써 천추의 원한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우주적인 운명의 길에 들어섰사옵고,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할 길에 들어섰사오매, 몸과 마음을 다 바쳐도 부족함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있는 정성을 다 바쳐도 부족함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몸이오니, 아버님, 긍휼을 바라는 마음만이 저희의 생의 전체를 주관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전체의 생활을 주관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도 외로운 식구들이 아버님이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말씀을 가지고 사방에 흩어져서 외로운 제단을 붙들고 아버님 앞에 간곡히 아뢰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어느 곳에 있든지 지켜 주시옵고, 그들의 애달픈 마음의 친구가 되어 주시옵고 마음의 위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하나의 은사 앞에, 하나의 뜻 앞에, 하나의 영광을 중심삼고 같은 마음과 몸으로써 경배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수많은 제단들이 아버지 앞에 애달픈 마음으로 아뢰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하는 당신의 불쌍한 아들딸위에도 긍휼의 사랑의 봉화를 나타내 주시옵고, 긍휼의 말씀의 봉화를 나타내 주시옵소서. 품으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어서 속히 품기어 전체가 하나의 모습으로써 기쁨의 영광을 돌려드리고, 승리의 제단을 갖추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영광의 제단을 어서 속히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만방에 널려 하늘을 위하여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딸 위에 긍휼의 은사가 같이 운행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선의 땅이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지으신 본연의 동산은 선과 사랑과 미와 영원한 의의 방패를 갖춘 동산이었으므로 사탄이 틈탈 수 없는 세계였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내 한 자체가 바라는 소망의 표준은 아버님 속에 감추어져 있는 사랑의 진과 사랑의 선과 사랑의 미의 영광이오니,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옵고, 아버님 속에 감추어 두었던 영원한 사랑의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해 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이미 약속하신 아버지의 눈물의 말씀이 있사옵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명이 있사옵고, 하늘의 전체적인 은사와 아버지의 전권 전능, 전체적인 아버지의 영광을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나타내시려는 뜻이 있사올진대, 아버님이여, 이 시간 아낌없이 나타내시옵소서. 성령의 불길로 나타나 주시옵고, 영광의 은사를 나타내 주시옵고, 재창조의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직까지 아버지 앞에 용납받지 못할 악의 요소가 남아 있사옵니까? 긍휼의 손길로 주관하셔서 용납하지 못할 모든 요소를 손질하셔서 본연의 선의 자체로 빚어지는 기쁨의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불쌍하고 미급한 것들을 세우셔서, 또 타락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들을 불러 세우셔서 아버지의 영원하신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듯 안타깝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6천년 동안 서럽고 비통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을 이 시간 몸과 마음으로 체휼하여 아버님의 서러움을 위로하기 위하여 애달파하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힘이 없사오나 하늘을 향하여 이 모든 것을 바치오니, 아버지, 저희에게 싸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간절한 아들딸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삼천만 민중 가운데서 남이 아니라 하는 이 길을 나선 저희들, 맞고 맞고 맞는 어려움의 고개를 넘고 나온 저희들이었사오니, 아버님이여, 힘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의 승리의 방패를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의의 심정과 의의 갑주를 입고 최후의 싸움, 최후의 결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전체가 하나의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형상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사탄과 싸워 승리의 영광을 아버님 앞에 돌려 드릴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명분을 세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불러 주신 바의 위신이 있사오니 삼위신이 이들을 지켜 주시옵고 충절을 바쳐 드리는 만물만상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산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까지 싸워 나온 길도 험한 길이었지만 이날 이후의 갈 길도 싸움의 길임을 알고 낙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국적은 이 나라도 아니고, 이 땅 위의 어느 나라도 아닙니다. 의지할 곳은 하늘이요,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뜻밖에 없사옵니다. 최후의 생명록에 기록될 때까지는 싸움의 노정과 어려움의 고개가 남아 있사옵고, 환난과 핍박의 길이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마음으로 염려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저희들, 아버님의 사랑의 화신이 되고 불길의 화신이 되게 허락해 주시고, 악을 청산하고 선이 깃들 수 있는 몸 마음을 갖추어 선의 동산을 이룰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참석한 수많은 아들딸의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체를 알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하시고 염려하시며 애달파하시는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외식, 인간적인 가식을 하고 나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솔직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해부하여 내 주관이나 관념, 주의 주장을 전부 아버지 앞에 내놓고 청산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생명의 향기, 아버님만이 취할 수 있는 요소를 아버님의 제단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불꽃같은 눈으로 통찰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스스로 회개할 바를 아버지 앞에 다 회개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선 것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영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해 주시고, 긍휼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고, 각자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아버지의 뜻만이 모인 청중 위에 충만히 넘치어 움직이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기 도(Ⅲ)> 이제 저희들의 마음이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수고하신 심정을 붙안고 천륜의 사명을 받들게 해 주시고, 하늘땅을 대신하여 나선 예수 그리스도의 초조한 형상을 대할 때, 그의 어려움을 저희의 몸 마음이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전해진 모든 내용을 저희들이 받아 감당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의 마음 몸은 거룩한 성전이온데, 하늘의 독생자, 하늘을 위하여 태어난 황태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한 서러움의 역사가 아직까지 이들의 몸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수천년 동안 선조들이 슬픔의 성벽을 쌓아 왔사온데, 이 성벽이 날이 가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많은 꾀를 내어 이 성벽을 높이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류가 선조들이 저끄러 놓은 이 원한의 성벽을 헐어야할 책임을 지고 있사옵고, 또한 우리도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일신이 서러운 길을 가신 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인 줄만 알았는데, 그 서러움이 저희들의 서러움으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될 때, 이제 눈물 흘리며 하늘 향해 나아가야 할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이제 죄에 대한 애달픈 심정을 붙안고 선조들이 저지른 모든 죄의 성벽을 바라볼 때, 너무 연약한 자신들임을 알게 되오니, 아버님이시여, 이것을 밀어낼 수 있는 아버님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아버님, 이 한국 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세계 인류 가운데서 지극히 불쌍한 민족이 아니옵니까? 불쌍한 이 민족 가운데서도 보잘것없고 외로움에 몰리고 있는 저희들은 더 불쌍한 자리에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 저희들은 세계적인 축복이 하늘에 잠겨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아버님의 심정 깊이에 아버님의 사랑이 잠겨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 외로운 자리에 있더라도 눈물의 장벽을 개척하여 화동의 동산을 이루게 해주시고, 아버님께서 마음으로 염려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저희들은 주저하는 입장을 떠나 쉴 새 없이 전진하는 모습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나선 길이오니, 죽든지 살든지 소원 성취의 길을 향해서 줄달음질칠 수 있는 하늘의 선한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 젊은 서기관이 예수께 나와서 선생님이여 원하시거든 이 몸은 따르겠나이다. 할 때에, 따르지 말라. 하시던 서러움의 말씀을 듣는 아들딸들이 여기에 모인 청중 가운데 한 생명도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스스로 예수 앞에 서게 될 때에 사랑의 예수, 선의 예수, 긍휼의 예수, 인내의 예수,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전체성을 완비한 예수가, 초조한 모습으로 나타나던 예수가 내 한 자체에서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의 열매라도 취할 수 있는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예수께서 취하고자 하실 때에 취하실 것이 없어서 오는 길을 오지 말라. 소망하던 것을 소망하지 말라. 고 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서러움이 그 한 자체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에 모인 전체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시던 예수의 말씀에 응할 수 있으며, 거기에 불리움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 앞에, 원하시는 소원의 동산을 향하여 명령하시게 될 때, 주저하지 말고 모든 준비를 갖추어 서슴지 않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이 사랑하고 또 붙들어 주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이 시간 되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그리하여 6천년의 역사적인 원한을 저희들이 맡아 가지고 사탄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사오니,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맹세를 갖추어 백절불굴의 마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승리의 용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허락하신 은사 앞에 말씀을 통하여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의 은사가 머물 수 있는, 영광이 자랑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이 한 시간으로서, 아버지, 맡아 주시고, 저희들도 맡기를 원하옵니다.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말 씀>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창조이상과 인간 타락의 결과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이 모두는 하나의 창조이상을 중심 삼고 영원히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하늘과 만물의 중간에 있는 인간이 실수한 연고로 만물은 만물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 본연의 세계를 다시 찾기 위하여 만물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마지막에는 하늘까지 찾는 복귀의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러분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오늘날의 우리들, 타락의 종족으로서 우거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먼저 마음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서러움이 사무쳐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관계가 있는 이상, 또 섭리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시는 아버님이 있는 이상 우리들은 무의미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악하다 할지라도, 악한 자리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지금까지 역사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섭리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눈물 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남아 있음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우리들을 다시 찾아 회복시켜 주기 위한 섭리, 즉 복귀섭리를 해 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고난의 흔적을 여러분이 역사를 대신하여 여러분의 몸에 지니고 있음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창조 본연의 이상이, 하나님 속에 남아 있는 내적인 소원이 끝날에 있는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내 한 자체에 사무쳐 있고, 무형의 신으로 계시어서 복귀의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수고의 표적이 내 몸에 소망의 터전으로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애달픈 심정만큼 애달파하고, 수고하신 당신의 고난의 흔적만큼 수고하고, 소망으로 두고 나오던 당신의 본연의 선의 심정만큼 몸과 마음을 굽혀 그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는 고난의 심정을 갖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고난을 보이는 체를 갖추어 나타낼 수 있는 모습을 이 날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모든 종교를 판가리 지어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소망의 한 종교를 아버지께서는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활동하나, 어느 한 순간의 생활 과정이나 찰나의 시간에 있어서도 마음에 어리고 몸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성도가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아버지께서는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2. 예수의 강림 목적과 유대 백성의 불신

그러면 이제 무형의 아버지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려던 창조이상, 만물 앞에 인간을 내세우시고 모두가 선의 이상에 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동고동락하기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의 창조이념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속에 한으로서 남아졌는데, 이것을 풀어 드릴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4천년 수고의 역사를 대신하여, 인류를 대신하여,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원한의 핵심을 실체적으로 풀어 드리기 위하여 오신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모셔야 했던 존재, 예수를 대망하였던 존재, 예수와 영원히 동락할 수 있었던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 사무친 원한의 심정을 대신한 분이요, 무형의 실존체로 실존하시는 하나님의 실체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원한을 실체적으로 풀어 드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당시의 유대 백성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 받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알아서 이 분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서러워 하셨던 그 마음을 풀어 드릴 수 있는 분이요, 아버지가 찾으시던 영원한 소망의 존재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과 동감할 수 있고 그 예수를 모실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서러움은 유형의 인간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서러움과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이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평생 동안 기쁨의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천년 동안 흘리신 하나님의 서러움의 눈물이 그의 마음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만민들이 예수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예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여 예수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의 일생을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살펴볼 때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원한의 자국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연장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메시아를 바라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늘의 독생자, 하늘의 황태자로 태어나신 예수가 이렇듯 서럽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찾으시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찾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서러움에 동참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고,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으셨으나, 마구간에서 태어나 30여 평생을 거쳐 십자가의 고개를 넘으실 때까지 그런 존재를 하나도 찾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은 예수는 만민이 모시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갖고 오셔서 인간들에게 그 사랑을 옮겨 줄 수 있는 살아 계신 예수는 어찌하여 아무도 모시지 않았던가? 그 책임은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수고의 노정을 제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망의 실체로 오셨던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수의 서러움을 붙안고, 그의 고난을 자기 일신에 지니고 그의 소망을 느끼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우리 선조들의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나님의 모든 원한을 예수의 일신을 통하여 풀려고 하던 일이 우리의 선조들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연장된 연고로, 하나님의 서러움은 예수님의 서러움으로, 하나님의 수고는 예수의 수고로, 하나님의 소망은 예수의 소망으로 남아졌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은 성신에게까지 미쳐졌습니다.

3. 예수가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이렇게 2천년의 역사를 통해 연장되어 온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의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6천년의 서러움의 원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 6천년의 수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낼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놀라운 아버지의 은사 앞에,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 앞에 나서게 될 때, 여러분이 나서는 그 날이 시작인 줄 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아버지 앞에 서 있는 것은 여러분 일개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믿는 것도 여러분의 일생만을 걸어 놓고 믿는 것이 아니라 6천년 역사를 걸어 놓고 믿고 있다는 실감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설 때에도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이 아니라 6천년을 대신한 회개라고 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의 은사와 주의 사랑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도 여러분은 어느 한 시간권 내에서 여러분 혼자 감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6천년 동안 해 오신 아버지의 전체의 섭리, 평면적인 역사와 입체적인 역사를 대신하여, 소망적인 하나의 기준을 대신하여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서러움을 풀어 드릴 사람,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 맡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오늘날 땅 위에 나타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체적으로 해원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그 일을 다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다시 와야 할 운명을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께서는 다시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는 서러움의 심정을 갖고 보잘것없는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4천년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거기에 2천년의 서러움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또한 서러움뿐만 아니라 2천년의 수고의 원한을 가하여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4.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6천년의 소망을 갖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4천년의 수고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어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 앞에 오셨던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고 반대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아버지의 수고와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러 오셨던 분으로 알고 믿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 중에 없었던 연고로,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로 이 일을 완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총결산해야 하는 끝날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삼위신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의 서러움을 나의 서러움으로 맡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수고를 나의 수고로 맡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맡겨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러분은 한 개체이지만, 하늘땅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예수의 올 날을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오셨다가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구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하여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서러움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합당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자기의 모든 소 망을 풀어놓고 싶을 정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의 세월을 통하여 택해 놓은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성중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던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한과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원한을 거두어서 다 풀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의 침범 조건을 내 몸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가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을 안다 할진대는, 부디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 중심도 아니었고, 메시아 중심도 아니었고, 하나님 중심도 아니었고, 자기 중심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기필코 오실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메시아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중은 소동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점쟁이들이 예수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5. 다시 오시는 주님을 위한 준비

오늘날 하늘을 믿고 있는 여러분,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잘못을 저지른 유대교의 입장과 같은 입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초림 예수의 서러움을 여러분 자신이 풀어 드릴 뿐만 아니라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신령한 단계, 아버지와 의논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여러분에게 이것을 해라, 혹은 저것을 해라 하는 지시가 많이 내릴 것입니다.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먹을 것이고, 입을 것이고, 계실 것이며, 활동하실 것인데,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고 메시아를 모실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입을 옷 한 벌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준비한 사람이 있었다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말했을 때, 온 유대 백성이 소동했을 때,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러움의 자국을 남겨 놓은 것이 하나님을 따라 나오던,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고 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저질러 놓은 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그러한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안팎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동원되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메시아 오기를 바라던 유대 백성들이 메시아가 탄생했을 때 계실 곳을 준비하는 백성들이 되었던들, 예수를 말구유 위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탄생하면 계실 곳을 준비할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6. 오시는 주님을 위한 예물

예수가 강보에 싸여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여러분은 기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합하여 이 땅 위의 어느 누구보다, 4천년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영광 된 자리에 눕혀 드렸어야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찬양받아야 했던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 앞에 자랑해야 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렇게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서러움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고, 2천년 전의 예수의 서러운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적으로 남 모르게 예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예물은 사탄 앞에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도 보일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제일 귀한 예물은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건 누가 먼저 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사람이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알면 미련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세계를 위하여 오시는 주를 위해 준비를 하되, 이 땅 위에 없는, 이 땅 위의 무엇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임재하시어 활동하시게 될 때, 주께서 마음적으로나 몸적으로나 어려움을 느끼시지 않도록 모심의 터를 여러분의 한 몸에 찾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제일 귀한 것이 여러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한 분이요, 만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이니, 그 아버님의 아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독생자가 오시게 될 때에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평화의 터를 건설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서 예수가 다시 오시면 예수의 손발이 되고 예수의 생애를 대신하고, 예수를 편안히 모셔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가 2천년 전에 싸우시던 그 싸움을 대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 동안 싸워 나오셨는데, 이제 그 사탄과의 싸움을 내가 다 책임지고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그 싸움을 위한 방패까지도 내 한 일신이 준비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태어나실 때의 예수의 사정을 통감해야 하는 동시에 그 다음에는 지상에서 사실 때의 예수의 심정을 통감해야 되겠습니다.

7. 예수의 눈물과 기도

여러분이 이제 참되게 아버지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예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서러워하시면서도 그 서러움을 나타내시지 못하셨는데, 예수는 실체적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사셨습니다. 성경상에는 서너 곳밖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실제 예수께서 눈물 흘리신 숨겨진 사실은 무한히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섭리역사를 통해 사랑해 오신 유대 백성들을 바라보게 될 때, 어느 한 순간도 눈물 흘리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예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적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렵고 외로운 일에 부딪칠 적마다 예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시는 가운데 서러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서러움을 제자들에게 말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만 기도하신 것이 아니에요.

어려운 길을 걸으시면서도 서러움의 사정을 아뢸 수 있는 곳은 하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서러움을 하늘에게 맡기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서러움을 자기가 도맡아 지게 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버님이여! 나를 보고 서러워하시는 그 서러움을 내가 맡을 것이오니, 아버님이여! 나를 보시고 위안 받으시옵소서! 아버님의 서러움을 내가 감당하겠사오니 서러워하지 마시옵소서. 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4천년의 수고를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아버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있사오니 아버님의 소망이 남아 있다고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라는 기도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부터 서러움을 가졌습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예수를 모시어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랄 적부터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가정에서 의붓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온 동리가 예수를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그는 말없는 생활을 했다는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뜻, 크고 놀라운 뜻을 품었으면서도 보통 아이로 자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30평생을 목수 일을 하며 사신 그 생활이 좋은 생활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누구보다 더 고귀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즐거움과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야 할 예수님이 요셉의 생활을 협조해 주기 위하여 까뀌를 들고 대패를 들고 생활했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를 원하는 아들딸, 하나님의 원한의 심정을 풀어 드리기를 바라는 참다운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는, 그들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생애를 본보기로 해서 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사신 생애를 알려고 할진대는, 여러분은 놀라운 은사를 대신한 예수의 심정에 동감하고, 그 심정을 체휼하고, 그 어려운 입장에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서러움은 시간 시간, 생활 생활을 넘어선 서러움이요, 예수님의 생활은 어느 한 순간 평안함을 느낄 수 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는 땅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서러움을 하늘 앞에 돌리지 않기 위해서 안타까워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십자가와 자기의 서러움도 하늘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늘의 서러움은 나로 말미암은 서러움이니 그 서러움을 내가 지겠나이다. 하나님이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념, 예수의 생활의 일면을 통한 사람인 것입니다.

8. 너는 나의 친구인가?

이제 30여 평생 눈물로 사셨던 예수의 서러움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이것을 풀어 드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30여 평생 서러움 속에서 사시다가 마침내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운명하게 되셨는데,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면서도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애달픈 심정에 사무쳤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나는 예수의 친구다. 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눈물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몸을 움직일 적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 하루 하루 생활하는 가운데서 하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교회 교회에서, 가정 가정에서 서로 서로를 위하여, 예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무한한 생명과 사랑이 같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정이 통하고, 정이 통하고, 내용이 통할 수 있는 크리스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오늘날 이 땅에 주님이 오시면 너는 과연 고난의 30여 평생을 보낸 나의 친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또 너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었으며, 세계적인 서러움을 갖고 몇날 며칠을 살아 보았느냐? 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땅 위에 오신 예수를 인간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사탄 앞에 하나의 조건으로 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조건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살아 있느냐? 이 몸이 죽기 전에, 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있는 충성을 다하여 예수의 생애를 붙들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의 생애에서 밟혔던 것을 일으켜 세워 드릴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러한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단순한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온 연령만의 여러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아담 해와로부터 예수까지의 4천년,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2천년을 합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여러분 일신에서 결실해야 할 우주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원수들 앞에서 당당하셨듯이 여러분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흘리지 말고, 울더라도 자기를 위해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울려거든 예수를 위해 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위하고 여러분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사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고난에 부딪치게 될 때에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사랑권 내에 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면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어깨에 천 톤이나 되는 것 같은 무거운 짐이 얹혀졌어도 아버지, 이것을 가볍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런 입장에 있는 나를 잘 아십니다. 그러지않아도 서러운 입장에 계신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 이런 짐을 지고 있나이다. 라고 기도하게 되면 아프신 아버지의 마음에 제2의 서러움을 안겨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여러분들은 알아 가지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 속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 해도 이 민족의 서러움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서러움 때문에 우는 모습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9. 아버지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예수

예수는 우주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셨으나 일생 동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서러움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 상하심과 염려를 위로하시기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땅을 바라보고 인간들의 무지함을 용납하여 주기 위하여 애달파하신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30여 평생의 눈물의 생애로서만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하여 나섰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아버지의 뜻만을 영광 되게 해 드리려는 마음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든지 말든지, 땅 위의 인간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개의치 않고 뜻을 위해 사셨습니다.

뜻을 완전히 이루려고 오셨던 예수였으나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해서 고심하거나 낙망하지 않은 예수였습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나가서도 예수는 자기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과 같이 빌라도의 법정을 통하여 골고다의 산정을 거쳐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는 자리까지 나가면서도 예수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무변명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예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나신 예수로부터 사신 예수를 거쳐가신 예수의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무엇과 친구가 되었느냐 하면, 생명과 친구가 되지 않고 죽음과 친구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갔지만, 만민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음의 친구가 되고, 만민을 대신하여 죽으신 분은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과 희생의 종교요, 기독교의 진리는 죽음을 이기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은 자기 일신을 파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망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예수의 행로였음을 여러분이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친구이셨기 때문에 죽음을 재촉할 때에도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 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구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고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셨으나 그것을 안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우신 은사를 가지고 오셨지만, 일단 죽음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나선 이상에는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도, 하늘이 소망의 존재로 대해 주시지 않으셔도 반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예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데에는 최후의 고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세계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희망을 갖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오직 이 하나의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10.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의 최후의 고개

오늘날 여러분은 천당 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생명이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일생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일생을 역사를 대신하여 받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를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가져야 예수의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를 모셔 드려야만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께서 2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을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인격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가 연장되었으니, 6천년의 섭리를 대신하여 책임지고 오실 이를 모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버지께서, 혹은 주께서 나타나셨을 때 주를 초대하여 모실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한 시간 두 시간도 아니고 영원히 모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를 모실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을 책임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고하신 주님 앞에 나가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당신을 모시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준비했나이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준비를 갖추어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나타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망할 리 없는 것입니다.

이런 크나큰 사명이 우리들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내적인 심정과 예수의 내적인 소망이 오늘 우리 한 사람을 중심삼고 돌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르는 사람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가슴을 칠 때가 올 것입니다.

11. 오실 주님을 모시려면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로 모시고, 세계로 모시고, 하늘땅으로 모시는 일, 이것이 아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마음으로도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시는 일에 출발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모시고, 몸으로 모시고, 사회가 모시고,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시고, 하늘땅이 모심으로써 영광이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온 피조세계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남달리 모인 여러분은 쩨쩨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비굴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수많은 원수들 앞에 나가더라도 당당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우주적인 영광과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를 모셔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자리에 마음과 실체를 가지고 나서야 할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 정성들이고 가정을 위해 정성들이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크리스천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하나를 중심삼고 만족하는 크리스천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크리스천, 세계 인류가 전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대표적인 크리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모든 천사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할 우리라 할진대, 그들 앞에서도 버젓하게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 누가 오셨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하려고 오신 예수, 이렇듯 우리가 지극하게 모셔드려야 할 예수인데, 그 예수를 바라보고 나가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습니까?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면목이 없어서 6천년 동안 눈물을 흘리더라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워 가슴을 치고 6천년 동안 통곡하여도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인데도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쓰러지고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진 바의 절개심, 가진 바의 충절의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 하고, 우주 만상 앞에 버젓이 드러내어 하늘의 아들딸의 위신을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12. 절개와 충절의 아들딸

여러분들은 어려운 길에 섰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에 선 것입니다. 이런 운명의 길에 선 여러분은 일생 동안 신념과 내적인 충절을 지니고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울어야 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모시더라도 세계적인 주, 우주적인 주, 6천년의 역사를 넘고 넘어 영원한 이상세계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주, 이러한 주님을 모셔야 할 나인데, 나는 이제까지 가정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었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주를 모시고 기뻐하는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회개하며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은 태초부터 창조의 이념이 완결되는 끝날까지 전체의 인류가 소망해 오던 이상을 내가 대신 이루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그런 우주적인 사명감을 느끼어 보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나는 이러한 사명을 다하고도 남을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도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기도할 때에는 많은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 하는 한마디로 다 통할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논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말씀을 하기 전에 마음의 직감적인 충격에 의해 서슴지 않고 나서서 모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우리는 나섰습니다. 그런 보화를 가지고 우리는 나섰습니다. 이제 출발한 여러분은 어떤 조건에 걸려 있지는 않습니까? 가다가 어느 과정에 멈추어 서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생애노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금 어느 기준까지 달렸습니까? 여러분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늘땅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천주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참사람을 찾아서, 6천년의 한숨을 다 벗어 버리고, 그를 붙들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며 아버지, 당신이 찾고자 원하시던 존재가 여기 있나이다. 아버지! 즐거워하십시오. 라고 할 때 하늘로부터 그렇다! 고 하는 영광의 대답이 나오는 한 날이 인간 앞에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날을 표준으로 하고 싸워 나가는 여러분은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며 온 생애를 바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노정에서 개척자가 되고, 선봉자가 되고, 우주적인 신부로 단장하여 우주적인 주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승리의 영광, 아버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을 받아 만물만상, 온천주를 대신한 신부가 되고, 아버님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될 때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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