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오늘은 1972년 9월 10일, 이달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저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늘쌍 부족하고, 늘쌍 미급하고, 늘쌍 미숙한 것들이 당신의 높으신 은사를 바라서 이 아침에 무릎을 꿇고 부복하였사오니,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은 어린애의 마음처럼 어려야만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크고 높고 넓으신 사랑의 심정 앞에 생명의 고갈을 느끼면서 자유의 해방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부복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생명의 젖을 공급하시옵고, 당신의 자비의 길로 저희들을 이끄시옵소서. 어찌 당신 앞에 자신을 가지고 자기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렇게 수고하시면서 찾아 나오신 복귀의 행각의 노정을 저희들이 알기 때문에. 저희들을 찾고 저희들을 만나기 위하여 수고하옵신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부족함을 무릅쓰고 아버지 앞에 이렇게 엎드렸사옵니다.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자비가 아니면 저희들은 질식할 수밖에 없는 무리가 아니옵니까? 아버지여! 찾아와 주시어서 개개인의 심정을 살피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저희의 모든 마음을 꿰뚫으시사, 당신의 본성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 저희의 마음속에서 솟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로 말미암아 사는 저희가 되고, 하늘을 따라 모든 길을 갈 줄 아는 저희가 되어야만 당신의 아들이 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당신의 아들딸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그날을 맞이하여 당신 앞에 힘껏 영광을 돌려 드리고 힘껏 충효의 도리를 하고 싶은 마음, 내심으로는 간절한 것을 당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사악된 세상과 사악한 환경에 욱여싸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져 가지고는 아버지 앞에 몸부림쳐서 당신의 협조를 받아 일어서고, 일어서서 가다가는 또 쓰러지는 것을 반복 하는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이 남기신 그 길을 몸부림치면서라도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저희들,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을 갖는 것이 아니라 늘쌍 아버지 앞에 얼굴을 대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불효의 심정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저희들을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긍휼의 마음으로 찾아오시어 당신의 마음속에 저희를 품으시사 당신이 넘으셔야 할 길과 고개를 저희들도 무난히 따라 넘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피 흘려 쓰러지는 자리에 있으면 당신은 얼마나 아픈 마음을 가지며. 저희를 이끄시기 위하여 몇 배의 상처를 홀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겠사옵니까? 그런 아버지시라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옵니다.
저희가 슬플 때는 하늘 앞에 통고하고, 저희가 외로울 적마다 하늘과 더불어 외로움을 느끼는 것보다도, 하늘을 원망하고 하늘이 없는 듯한 입장에서 망동하던 저희 자신들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래도 늘쌍 손해보면서 찾아오시는 하늘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자리가 복된 자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사오니, 이제 당신의 높으신 그 심정을 체휼하고 당신의 넓으신 그 마음을 소유하여서 이 세계에 남기신 인류 해방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처지와 환경은 다를지라도 당신을 위하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더우기 이때에 있어서 저희들이 정성을 들이는 한마음을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남북이 엇갈린 이 비참사를 기억하시옵소서.
만나야 할 형제의 인연도 있거니와 만나야 할 부자의 인연도 있고, 만나야 할 부부의 인연이 엇갈린, 슬프고 또 슬펐던 한민족의 한을 아버지 깨서는 잘 아시는 줄 아옵니다. 저희들은 세상의 그 누구를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어떠한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고 아버지에게만 보호를 바랄 수밖에 없는 저희의 처지를 아버지께서 아시옵소서.
이 나라의 주인은 다른 그 누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 누구도 수습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처지인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의 계획과 당신의 경륜대로 이 나라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남한 땅에 있는 불쌍한 삼천만 백성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북한 땅에 있는 천 오백만 백성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가인의 길. 아벨의 길이 이렇게 엇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한…. 어쩌면 이 나라의 삼팔선이라는 원망스러운 경계선을 놓고 이 모든 역사적인 한의 조건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섭리의 길이 서글픔을 생각 하게 되옵니다. 이것이 하늘이 대해 나오는 지금까지의 처지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신 하늘, 도피할래야 도피할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권내에 있는 저희들…. 당신이 슬프면 저희도 슬플 것이고 저희들이 슬프면 당신도 슬픈 입장에서 있는 인연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이 동(東)으로 가시려고 하면 저희들은 서(西)로 가려고 한, 엇갈린 방향을 취해 나온 저희들을 당신의 가는 길로 수습하시려 했던 그 일이 쉬운 일이 이런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인간 끼리끼리도 사정이 통하지 않는데 인간과 상반된 입장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몇십 배 몇백 배의 수고가 아니라 몇만 배 몇십만 배의 수고가 가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메우고 이것을 다리놓고 이곳을 왕래하고 여기에 중계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의 그 누구인가를 묻게 될 때, 아무도 그런 책임을 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하늘은 얼마나 슬프고 하늘은 얼마나 불쌍한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진정한 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이 길을 메우고 이 길을 가려 내기 위하여 온갖 희생의 길을 스스로 자행하면서 그것을 지키려 하는 무리가 되어야 될 것이옵니다. 그 길이 효의 길인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남북이 엇갈린 사정, 아버지께서 직시하는 환경을 바라볼 적마다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생명을 각오하고 이 나라를 지키고 당신이 원하는 그 나라까지 본을 보여 주면서 양손을 붙들고 하늘과 더불어 뒤넘이치는 자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할 적마다, 오늘날 저희들이 그러한 사명을 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힘이 없사옵니다. 저희 들은 무력하지만 하늘의 동정의 마음이 저희들에게 가중되게 될 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권고의 마음을 가지고 싶으신 아버지가 계시고, 슬픈 자리에서 자비의 마음을 갖고 찾아오신 아버지가 계시고, 비통한 자리에서 인내의 심정을 보여 주며 오신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참고 가야 할 복귀의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사옵니다. 남북이 서로 엇갈려 있어서 참을 수 없거들랑 종교인이 책임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종교인들 가운데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들랑 오늘 불쌍한 이 무리들을 모으시어서 그 책임을 감당시켜 주시옵소서.
이 길이 마지막 길이요, 당신이 소원할 수 있는 최후의 소원이 아니겠사옵니까? 그 자리를 책임지려 하는 자들은 살고자 하는 자가 아니요, 기쁘고자 하는 자가 아니옵니다. 좌우편에서 비난과 비소를 받아야 될 것이고, 좌우편을 위해 수고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호소할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의 힘이 여기에 현현하기를 바라는 그 외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간 저희의 정경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저희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사옵니다. 저희는 고대하는 아무런 소원도 없사옵니다. 당신의 뜻이 이 나라, 이 땅, 이 삼천리 반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그날을 바라는 마음 밖에 없사오니, 당신이 현현하시어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의 길을 따라 나온 몇 년의 기간을 갖고 있는 어린 자식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미약하고, 얼마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을 의지하고 이와 같은 인간을 바라보고 이와 같은 인간을 내세우고 안심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이 저희보다 몇천만 배 더 비참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입장은 우리 개인의 사정을 통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통하고 세계와 더불어 통하고 미래와 더불어 통할 수 있는 것이 옵니다. 그 모든 것을 심정적으로 직시하는 자리에 있어서 하루하루의 심정을 다져야 하는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마다 저희들은 한 순간도 참지 못하고 견딜 수 없는 그 자리를 지금까지 찾아 나오신 아버지임을 생각할 적마다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있다 하면 그 말을 연구해야 되겠고, 아버지를 위하여 충효의 도리, 혹은 가야할 길이 있거들랑 연구를 해서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끝까지 노력해야 되겠고, 끝까지 싸워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9월10일이기 때문에 90수를 대신할 수 있는 날도 되옵니다. 이제부터 3일 후에 이곳을 찾아오는 북한 땅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가인과 아벨의 길이 엇갈렸다 하더라도 찾아오는 그들을 당신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남한 땅에 있는 사람 들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환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고, 하늘의 법과 하늘의 생명줄이 그들 개개인의 마음에, 혹은 북한 땅의 전백성을 대신한 그들에게 하늘의 인연이 나타날 수 있는 길이 있어야만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길을 배반하고 이 길을 반대하는 자가 있으면 아버지께서 정의에 입각한 공의의 판정관이 되시어서. 선하고 악한 것을 대치하는 자리에서 구별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기대를 갖고 소망을 갖는 모든 것이 헛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길에 배치되고 이 뜻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사오면, 아버지여, 그들을 막으시옵소서. 당신이 사랑의 마음으로 손을 대시어서 해결할 수 있는 탕감의 내용이 넘치게 될 때 능치 못함이 없으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날까지 정성을 들이려고 나선 모습들이었사오나, 어찌 당신이 바라는 소원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자가 있겠사옵니까?
시늉이라도 하고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안 될 저희의 입장이기 때문에 불쌍한 저희들을 기억하시는 아버지여, 이들의 소원과 이들의 뜻을 버리지 마시옵고, 이 나라의 금후의 갈 길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자리는 통일교회의 본부이옵니다. 이 자리는 당신의 마음 앞에 심히도 고통을 드렸다면 고통을 드린 자리요, 슬픔을 가해 드렸다면 슬픔을 가해 드린 자리가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마음이 여기에 있다 할진대, 그 마음 앞에 불충의 모습을 감추기에 몸 둘 바를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다해야 할 길이 있는 것을 알면서 부복하는 자신들이 돼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자리는 두려운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천만 배 갚아 주시옵소서.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의 뜻과 이 나라의 운명을 직시하고 마음 졸이면서 한국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는 그들의 소원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그들 가운데 당신의 사랑이 끊어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저주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핏줄을 달리한 이방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사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영인들이 우리를 향하여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외로운 것만은 아니옵니다. 저희의 배후에는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동정의 힘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저희의 배후에서는 수천 억에 가까운 영인들이 저희를 직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들이 가고 이들이 바라는 소원 앞에 저희들이 지성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저희는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하고 겸손히 엎드려 당신의 자비로우신 은사를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저희 마음에 하늘의 사무친 심정이 솟구쳐 오르는 충격이 없어 가지고는 재기할 수 없고 전진할 수 없는 자리에 섰사옵니다. 하늘의 힘을 가중하시어서 생명의 인연을 나타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줄 알고 기도하는 무리들 위에 만복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이 기필코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금후에 찾아올 운명길을 위하여 준비하고, 겸손히 당신의 채찍이 있으면 채찍을 받고, 혹은 칭찬이 있거들랑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2년, 이해가 금후에 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제 2차 7년노정이 2년 몇 개월을 남긴 것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기간은 세계적인 문제가 엇갈려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시대인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굳건히 한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위한 목적 앞에 일치된 방향을 꾸준히 취해 나갈 줄 아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시어서 허락하신 뜻을 저희의 마음에 옮겨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효자의 갈 길이라…. 효녀가 빠졌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아들 자(子) 자 가운데는 딸이라는 뜻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부모의 자녀로서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의 사랑을 받고 길리움을 받아서 지금까지 살아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나이가 많든 나이가 적든 언제나 사랑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이 많은 부모를 가진, 나이가 많은 아들을 가진 부모를 볼적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70난 아들을 가진 80세 이상 된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옛날에 자기가 기르던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그 자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외적인 연령은 많다 하더라도 그 심정은 점점 가까와지고, 아들을 위한 책임이 커지면 커질 수록 아들을 위하는 마음은 더 넓어지는 것을. 우리는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을 대하는 이런 인연을 보게 될 때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없는 사람은 불쌍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고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아가 왜 불쌍하냐 하면, 사랑을 받을래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요, 또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아가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사람이 나면서부터 처음 받아야 할 것은 부모에게 받는 사랑인 것입니다. 또, 사람은 철이 들면서 부모를 대해서 동경하고 부모를 대해서 사모하고 부모를 대해서 흠모할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길은 부모가 처음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권내에서 자라 가지고 성숙하게 될 때, 부부라는 것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사랑이 처음인 것입니다. 그 사랑을 동기로 해서 그 사랑에서 원만히 자란 사람은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사랑이 어떻다 하는 것을 부모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사실은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있어서 종적인 입장, 즉 일대일의 입장에 서가지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체휼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가진 자리가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들은 일대일의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 아들이면 아들을 중심삼고 일 대 이의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일 대 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자식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남자의 사랑도 받을 수 있고 여자의 사랑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남성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남성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세계의 남성을 대표한 것이 아니냐. 또, 어머니라는 것은 세계의 여성을 대표한 것이 아니냐.
아버지는 비단 이 시대뿐만 아니라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수많은 역사적인 남성, 미래에 찾아올 남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냐. 어머니도 역시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여인상, 현재는 물론이지만 미래에 올 수많은 여인들을 대표한 것이 아니냐.
과거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여인이 있다면 어머니를 들어 자랑하고 싶은 것이요, 현재에 자랑하고 싶은 여인이 있다면 어머니를 들어서 자랑 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 혹은 미래에 있어서 여인상을 자랑할 수 있다면 어머니로 말미암아, 어머니를 통해 가지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또, 아버지의 입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남성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와 관계를 안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가 부모의 자리인 것입니다.
세상에 잘난 남자가 있고 혹은 잘난 여성이 있다면 그 잘난 남성 잘난 여성은 자녀에게 있어서는 직접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잘난 남성이 있으면 자식은 그 남성을 자기 아버지와 비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난 여성이 있으면 그 여성을 자기 어머니와 비교하는 것이 자녀의 입장이 아니냐? 잘난 그 남성보다도 자기의 아버지가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소원이 아니냐, 잘난 여성보다 자기의 어머니가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소원이 아니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틀리지 않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도 자기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사랑을 받되, 세계의 남성 여성이 자기 자식을 사랑해 주는 데 있어서 둘째 가는 사랑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 자녀의 입장이 아니냐. 최고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자녀의 자리가 아니냐. 또,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대한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좋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 최고의 마음을 기울여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싶어할 것이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느 때든지 그런 마음으로 대해 줄 게 아니냐. 그런 마음으로 대해 주지 않고 불효가 되는 자식은 없을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부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우주의 근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의 근본이 거기에서부터 싹틀 것이고, 슬픔이 시작된다면 그 이상의 슬픈 자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를 대하는 기쁨은 그야 말로 세계를 대표한 기쁨이 되어야 되고,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기쁨은 세계를 대표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쁨이 아니냐.
세계의 외적인 딴 문제를 전부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대해 가지고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소망의 자리라는 것은 부모 앞에 있어서는 단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 그것만이 제일이 아니냐. 그 부자의 관계가 세계에 드러날 수 있는 자리에서 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욕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부모가 그렇다면 자식도 그럴 것이 아니냐.
이런 인간관계, 타락한 우리 인간을 통해 가지고도 그러한 관계를 우리가 예상할진대는, 하늘과 땅, 혹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인륜이 있는 반면 천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정이 있는 반면 천정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늘은 위이고 땅은 아래라 할진대, 부모는 위와 마찬가지요 자식은 아래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상하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자식이고 하늘이 부모라 할진대, 부모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은 방향이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을 하려고 하고 자식은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든가 자식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든가 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고자 하는 마음과 받고자 하는 마음이 끊어지게 된다면 사랑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막는 길이 생기게 될 때는, 받고자 하더라도 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심정 생활에 있어서, 가정에서 잘 체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습니다. 부모는 위에 있고 자식은 아래에 있다 할진대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놓고는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세상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부모의 아들 가운데 불구자가 있는데 그가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 얼마나 비참할 것이냐 이거예요 백을 사랑해도 백만큼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의 사랑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 그렇지만 자식을 사랑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부모, 언제나 줘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아들을 보게 될 때 백을 기울인 사랑을 가진 부모는 백 이상 몇 배의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려 할 때, 그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식을 갖지 못한 부모는 그 이상 슬픔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상 기가 막힌 것이 없는 것이 아니냐.
만일에 백만한 사랑을 주려고 할 때 백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대자로서 혹은 아들로서 딸로서 나타나게 될 때 그 부모는 얼마나 기쁠 것이냐? 천을 준 이상의 기쁨을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반대의 여건이 성립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자기가 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자식을 갖지 못한 부모는 불쌍한 것입니다. 그것이 한번 뿐만 아닌 영원히 그런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부모는 불쌍하고 비참할 뿐만이 아니라. 기가 막힐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우리 세상에서 미루어 보게 될 때, 만일에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 있다면…. 인정과 천정이 연결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 것이냐? 아무리 우리가 찾아 올라가 봐도 하나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식의 자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에 대하여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부자관계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냐? 타락선 하(下)냐. 타락선 상(上)이냐 할 때, 이것은 타락선도 될 수 없는 것이요, 타락선 하(下)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선 이상의 자리일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된 인간들을 놓고 봐도 그렇지 않으냐? 이것은 타락 이하의 부자관계의 사랑이지만 그 부자관계의 그 사랑을 가지고도 기가 막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 할진대는,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 있는 부모가 불효자식을 맞았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 우리가 일상 생활 주변에서 부자간의 사랑이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 그 배후를 가히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타락선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그 사랑은 얼마나 강하였겠느냐? 타락선 이상의 자리에 섰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 인간은 원리로 말하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습니다. 완성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이상적인 요소를 접할 수 있는 자리와 결연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 이상의 모든 요건을 우리가 자유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이상에 설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은 얼마나 차원이 높을 것이냐.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리가 아니냐.
그러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효자 효녀, '그 아무개 집 아들은 효자야! 아무개 집 딸은 효녀야!' 하고 말하는 그런 효자 효녀의 마음을 가지고, 본연의 하늘 부모 앞에, 그 심정 앞에 나설 수 있는, 참자녀의 자리에 설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 할 때. 역사 이래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백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이 있었느냐 할 때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라 할진대는 그분은 비참한 분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효자의 길을 가라고 가르침받고 있습니다. 충신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을 가르침받고 있습니다. 효자의 길보다도 충신의 길을 가라! 충신의 길보다도 성인의 길을 가라! 이런 것을 우리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아무리 효자가 되어 그 집안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더라도 부모를 중심삼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가 못 된다 이거예요. 효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것으로 일방 통행이 됩니다. 그것이 나라를 대표해도 통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해서라도 통할 수 있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은 사탄권내에 포위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하늘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리에 선 것입니다. 개인이 포위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가정이 포위되어 있습니다. 씨족이 포위되어 있습니다. 민족이 포위되어 있고, 국가가 포위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가 포위되어 있습니다. 악한 사탄권세권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빌려서 말한다면, 이 공중권세를 잡은 자가 누구냐 하면 사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보좌 밑에서부터 이 지상 인간과의 사이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성만 포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까지도 사탄의 침범권내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야만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면…. 개인적인 울타리가 사탄 앞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자리까지 찾아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들어와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지탱해서 모든 포위망을 뚫고 넘어 나갈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번번이 낙심하게 마련입니다.
이 포위망을 뚫고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역사적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개인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보다도 가정에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중심 삼고 사랑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나라 안에서는 사랑할 수 있다 이거예요.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한다 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사탄의 나라 권내에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자리보다도 나라에서 사랑하는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또, 나라에서 사랑하는 자리보다도…. 한 나라에서 사랑했다 하더라도 세계를 뚫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에서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세계를 뚫고 넘어가지 않고는 그 사랑은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은 세계 기준을 넘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뭐냐 하면, 세계를 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도리를 따라 가지고 세계인류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사람들이 성인이 아니냐.
성인이 가르친 이상의 자리로 나가 가지고 성인이 추구하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을 위하고, 가정을 희생시켜 종족을 위하고,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위하고, 민족을 희생시켜 국가를 위하고, 국가를 희생시켜 세계를 위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지도해 나온 것이 아니냐.
이 세계의 끝의 때가 되거들랑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세계의 끝이 되어 오면 되어 올수록 무엇이 찾아오는 것이냐? 물론 심판이 찾아오겠지만, 심판 이후에는 무엇이 찾아오느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끝날에는 반드시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끝날에는 7년 대환난이 올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끝까지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의 갈 길, 효자가 가야 할 길, 그 효자가 가야 할 길은…. 부모가 바라는 일이 열 가지가 있다면, 그 열 가지 일 가운데 제일 중요한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자식이 효자가 아니냐. 아들이 열 명 있다면 열 명 가운데서 누가 제일 효자냐? 부모의 열 가지 일 가운데 제일 어려운 일을 놓고 '이건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가지고 부모를 사랑하겠다'고 나서는 아들이 어떠한 아들보다도 그 부모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이 아니냐. 그런 아들일수록 효자의 자리에 가까와지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쉬운 자리에서 쉬운 일을 하며 효의 도리를 하겠다는 사람보다도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서 효의 도리를 감당하고자 하는 책임자, 그런 자리에 선 사람, 그런 자리에 선 아들딸이 효자가 가는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세계를 목전에 놓고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문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도 물론 문제가 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뭐냐?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세계 적인 문제다 이거예요. 인류를 구해야 할 책임을 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현재의 입장이 대한민국 백성에게 중요할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보다도 더 큰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주력을 다하고, 온 신경을 쓸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세계적인 문제를 염려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문제를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세계의 어떠한 민족, 어떠한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가까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의 자리라는 것은 부모가 당하는 비참한 것을 대표적으로 책임지려 하는 자리다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은 제외하고 나쁜 것을 언제나 책임져야 할 길이 효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충신이 가야 할 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군왕이 있으면 그 군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군왕이 제일 고심하는 문제를 대신 책임지려고 나서게 될 때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성인은 그 나라보다도 세계, 어떤 단일 민족, 단일 국가를 넘어 서 가지고, 초민족적인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염려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 길을 책임지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비참한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비참한 자리를 책임지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인 중의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민주세계가 있고 공산세계가 있습니다. 민주세계도 이미 갈 길을 잡지 못하고 있고, 공산세계도 엇갈린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이냐? 지금까지는 그래도 종교가 하나님을 위해 나왔고,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효의 길을 가려고 몸부림쳐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수많은 종교를 보면. 종교는 이미 가을절기를 맞이했습니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가지고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편을 위하는 사람보다는 하나님편을 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먼저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는 하나님이 없다, 신(神)이 없다고 부정하는 유물론적 견지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두 세계 가운데 그래도 하나님이 있다고, 신(神)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희망을 둘 것이 아니냐. 자. 그런데 지금 민주세계는 신이 없다고 하는 유물론적 견지에 동의하고 있다는 거예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현재 종교가 부패했다는 것을 사회인들이 공인하고 있다 이거예요. 사회인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도 '나는 어떠한 종교를 믿는 아무개보다 낫다'고 자처할 수 있는 입장에 종교가 떨어지고 말지 않았느냐.
그런 입장에 서 있는 종교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저들이 효의 도리를 다해 주겠다고 하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겠느냐?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늘이 있으면 하늘 부모가 어떤 고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전체를 책임지기 위해서 나서는 종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효의 길을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초대교회 이상의 자리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어 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며 의미심장 하게 생사를 앞에 놓고 담판기도하던 자리에서도 하나의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고 유대교가 반대하던 그 자리를 모면할래야 모면할 수 없는 운명에서 신음하던 끝에 십자가에 돌아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앞에 놓고 담판기도를 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예수의 마지막 길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때냐 하면 국가적인 때가 아니라 세계적인 때입니다. 이 세계적인 때에 있어서 그 사명을 실감하는 데는 민족을 중심삼고 사명을 느끼는 자리가 아닙니다. 혹은 민족을 책임진 입장에서 종교의 사명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때는 초민족적인 국가관을 중심 삼아 가지고,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교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염려할 수 있는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우리 나라 뜻대로 말고-내 뜻이 아니예요- 우리 세계의 뜻대로 말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기도라도 하는 아들이 있어야 하나님이 눈짓이라도 보내려고 할 것이 아니냐.
예수님을 두고 보라구요. 민족의 배반을 받고, 교회의 배반을 받고, 종족에게 몰리고,제자 앞에 몰리는 입장에 섰으니,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구요. 홀로 남아진 자리는 우리 뜻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세 제자를 데리고 올라갔지만. 예수는 세 제자와 같은 자리에서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느냐 이거예요. 그 마음에 의지자가 되고, 동지가 되고, 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 섰다 할진댄, 같이 데리고 기도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따로해 가지고 기도한 그 자체는 하나되지 못한 것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
만일에 세 제자와 같은 자리에서 '우리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했으면, 예수는 불쌍한 예수가 안 됐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3년 공생애노정을 가 가지고 최후에 기도한 것이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뜻이 예수의 뜻으로만 남아져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뜻이 되어야 되고, 민족의 뜻이 되어야 되고, 세계의 뜻이 되어야 됩니다. 홀로 남아진 그 자리였기 때문에 내 뜻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의 입장은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아들, 그런 예수를 대하던 하늘이 비참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때는 예수가 이스라엘 나라 혹은 유대교를 대하던 그때가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것은 지금의 민주세계가 아니냐. 유대교와 같은 것이 기독교가 아니냐. 로마와 같은 것이 공산주의가 아니냐.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대해서 안팎으로 들이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꼼짝 못하게끔 쇠사슬을 걸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냐. 마치 2천년 전의 예수를 중심삼은 그 주변 국가의 관계와 같이 환경이 세계적으로 전개된 때가 지금이 아니냐.
자. 이러한 세기말적인 정상을 앞에 놓고…. 이것은 하나님이 해결해야 할 중대사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져야 할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앞에 놓고 직시하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한 자리겠느냐 이거예요. 이러한 가운데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것이 통하겠느냐 이거예요. '당신의 뜻을 굽혀서 우리 민족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지금은 그야말로 개인을 초월할 때요. 가정을 초월할 때요, 민족을 초월할 때요, 세계를 초월할 때입니다. 지금 기도를 하게 된다면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영계에 있는 영인들까지 해방시키기 위하여 기도해야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바 아버지여! 우리 통일교회의 뜻을 위해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해 서는 안 된다구요. 우리의 뜻이자 세계의 뜻이 돼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뜻이자 천주의 뜻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안팎을 규합한 자리에서, 책임을 진 입장에서 예수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소서' 하던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붙안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런 신앙자가 이 땅 위에 있느냐? 없다면 예수의 뜻은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가 뜻을, 내 뜻에서 가정의 뜻, 민족의 뜻, 국가의 뜻으로 확대시키지 못했으니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내 뜻대로 마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우리 민속의 뜻대로 마시옵고 하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건 없다고 단정을 내려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통일교회에 그것을 표준해 가지고 기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붙들고 죽고 살기 위해서 생명을 내놓고 달려 드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환영하실 것이냐, 환영하시지 않을 것이냐? 만일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사람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나를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 가정을 위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세계가 살면 국가도 사는 것입니다. 국가가 살면 민족도 사는 것입니다. 민족이 살면 종족도 사는 것입니다. 종족이 살면 가정도 사는 것입니다. 가정이 살면 개인도 사는 것입니다. 세계가 살아야만 전부 다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앞에 놓고 칭찬할 수 있는 교파가 이 땅 위에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편에서 보게 될 때. '내가 사랑하는 무리들아! 너희들만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다'고 공인할 수 있는 그런 교파가 있느냐? 그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수많은 종파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종파를 전부 다 들춰 본다 하더라도 지도하는 목사가 그렇고, 지도받는 교인도 그렇고, 전부 다 자기 아들딸 이 한계선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거예요. 자기 교회의 울타리를 못 넘어서고 있다 이거예요. 그걸 못 넘어서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한 사람이 자기 교인을 빼앗아갈까봐 생명을 걸고 싸우기는 하지만, 그 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나라를 염려하는 입장에서 한 개인의 장벽을 헐기 위하여 부르짖는 목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양떼는 없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것과 마찬 가지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현재가 아니냐.
그러다가는 망하겠으니까. 하늘이 있다면 터치는 놀음을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교회를 해방해야 돼요. 교회를 해방하려니 신앙의 해방을 해야 됩니다. 신앙의 근본이 틀렸다면 들이쳐야 됩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이걸 헤쳐 놓아 가지고, 뿔뿔이 헤쳐 놔 가지고 재교육을 하지 않고는 이것은 살려 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자리입니다. 내 교회, 내 교회! 내 교파. 내 교파! 이놈의 교파가 벼락을 맞아야 된다 이거예요. 내 교회라는 관념을 가진 사람은 벼락을 맞아야 된다구요.
자, 보라구요. 야곱은 슬하에 12형제가 있었는데 형제끼리 서로 싸웠지요?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보고 부모가 좋아했겠어요? 오늘도 그 모양으로 천주교. 장로교, 감리교…. 이게 원수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교파관념을 초월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본래 교파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목적이 다르다구요.
하나님은 교회를 잃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길이 딱 설정되어 있다구요. 이 갈 길을 모른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건 세계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세계를 위해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남북이 엇갈린 이런 때에 있어서…. 이제 북한 대표들이 며칠 안 있으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다른 두 자리에 있어서 하나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진짜 한국 사람이 원하는 한국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이거예요. 남한이면 남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북한이면 북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입장을 사수하는 자리에서 하나될 수 있는 길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건 시작부터 하지 말라구요. 했댔자 힘든 것입니다. 그런 방안이 없게 될 때 서로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왔다갔다하면 할수록 약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국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한국문제라는 것은 한국문제만으로 해결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세계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금 남북이 교류해 가지고 통일형태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이상적인 나라는 못 될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추천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 백성들이 북한 백성들을 포괄해 가지고 소화시킬 수 있는 이상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그 권내에 머물 수 있는 국가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국가관이 있다면 그 대한민국의 통일은 세계의 통일과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남북이 엇갈린 자리에서 주장하는 그 자리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나라면 한 나라도 마찬가지요. 교파면 교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실정을 앞에 놓은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방안은 무엇일 것이냐? 다시 말하면. 이런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효자 앞에 하나님이 지시할 수 있는 명령은 어떠한 명령이 될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이거예요.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 문제라면 생명을 희생하고 나서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언제나 사랑하면서 데리고 있고 싶은 거예요. 일대일의 입장에서 부자의 관계를 갖고 나가다가는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다, 세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할 때는, 자식은 희생의 자리에 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그러한 내용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 때문에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은 것이 아니냐. 그 뜻은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성립되느냐? 그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뿐만이 아닙니다. 부자의 관계 고것만이 아닙니다. 고것은 어디까지나 상하관계요 종적 관계입니다. 횡적 관계는 성립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횡적 문제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횡적인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종적인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종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횡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종적인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보면,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횡적 기반이 형성되어 예수와 하나되어야만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옮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뜻은 하나되었지만, 그 뜻은 하나의 뜻으로 성립될 뜻이 아닙니다. 그 뜻은 나라를 넘어설 수 있는 뜻으로 남아져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낸 뜻이다 이거예요. 또, 예수는 그 뜻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와 민족의 배반으로 인하여 그 뜻의 자리를 잃어버렸으니, 그 뜻의 자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죽음길이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야 하느냐 하면, 나라만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 앞에 제일 어려운 문제가 앞에 놓였을 때, 그것을 책임지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효자라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것은 특정한 사람이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역사를 자랑하는 기독교 교파들이 있습니다. 뭐 천주교, 감리교, 장로교…. 아무개 아들이라고 해서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효자는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효자냐? 새롭고 큰일을 보다 높은 자리에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새롭고 어려운 일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행동하려는 사람이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아무리 새로 나온 통일교회라도, 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책임질 수 없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게 마련입니다. 그 사람을 효자라고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다르다구요.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자부심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남에서 이북에 가서 '우리 하자는 대로 하자' 할 때는 그들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손해가 나는 자리에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서로가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합니다. 그렇잖아요? 서로서로 이익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될 것입니다. 그건 인간세상, 우리 나라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간판은 언제라도 뗄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칭호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대한민국보다 더 높은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그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더 큰 것. 더 좋은 것과 바꿔치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이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 교회는 효자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보는 세계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편에서 바라보는 세계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체휼하고, 어떻게 책임을 대신 이어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언제나 부모의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모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가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다가, 가는 목적을 제시했다가 한꺼번에 뒤로 돌아서라면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 에는 이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 번 가다가 열 번 돌아서라 하더라도 또 돌아서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 무슨 부모가 그래? 열 번 가다가 열 번 돌아서고, 열 번 이랬다저랬다한다. 아! 아버지 어머니, 나 이거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하고 반항했다가는 끝까지 효자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면 자식도 미친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명령이라면 미친 놀음이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친 놀음 하는 그 자체는 안 됐지만, 부모가 모르고 하면 모르지만 알고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왜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느냐 이거예요. 효자 가운데서 최고의 효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백 명의 효자가 있다면, 그 백 명 가운데 으뜸될 수 있는 효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부모는 미친 놀음을 할 것입니다. 백 번 가다가 돌아서고, 백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천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변덕을 사실로 알고 생명을 바쳐 가지고 그 부모의 명령 앞에 절대 순응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효자의 왕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효자 가운데 효자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 이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게 될 때는 그런 미친 놀음을 천직으로 알고 할 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아! 이건 내 사리에 맞지 않으니, 그건 난 모르겠소' 하면 여기에서 효자의 도리는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은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어느 한 고비를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세계적인 효의 길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럴 것이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도 되는 분이요, 하나님은 인류의 왕 중의 왕도 되는 분이요. 모든 것의 중심도 되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일대일의 입장에서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효자인데 그 효자는 세계적인 효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충신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충신을 거느려야 할 분이 하나님 입니다. 또, 세계적으로 대표되는 성현을 거느릴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따로따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분이 부모도 될 수 있고, 군왕도 될 수 있고, 다 될 수 있다 이거예요 .세 가지 요건을 전부 다 총합한 중심 존재가 하나님이 아니냐.
그러면 효 중에도 최고의 효요, 충 중에도 최고의 충이요. 성 중에도 최고의 성을 대표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차지한 자만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면, 그것을 따로따로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원은 이 셋을 한꺼번에 이룬 사람. 효자도 되고, 충신도 되고, 성인 중의 성인도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개인적으로는 죽을 자리에 내세워야 될 것입니다. 그 누가 명령하고 반대 하더라도 옳다 할 수 있는 놀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그런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우리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으뜸될 수 있는 효자의 갈 길을 찾고 지키겠다고 노력하는 무리가 되자 하는 패들이, 혹은 종파가, 혹은 민족이 있다면, 그들의 갈 길은 편안한 길일 수 없습니다. 편안한 길일 수 없다 이거예요. 편안한 길을 찾아 나서는 데에는 그런 효자가 나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전부가 바라보면 전부가 틀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남들은 동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서뿐만이 아니라 남으로도 갔다가 동으로도 갔다가 서로도 갔다가…. 그 누가 따라오려고 해도 따라오지 못할 놀음을 시킬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는 종교가 나와야 된다 이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거예요.
만일에 무슨 종교의 이름을 갖지 않더라도, 무슨 종파의 이름을 갖지 않더라도, 성경이니 무슨 경서를 갖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부모로 믿고 '하나님은 이러한 뜻을 가진 주인이 아니요? 하면 그건 틀림없다 이거예요. 그건 틀림없이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전통적인 역사를 못 가졌더라도 보기에는 미친 녀석 같은데, 하나님이 이래야 된다고 해 가지고, 그 부모 앞에 효자가 되기 위하여 이런 길을 가야 된다고, 혹은 세계 앞에 있어서 하나님이 공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지 않고라도, 그런 길을 위하여 일생을 통하여 노력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하나님이 '저. 미친 녀석! 암만 그래 봐라. 내가 알아주나. 난 기억도 안 한다' 그러겠어요? 그건 하나님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무슨 전통적인 종교라고 부르짖고 있지만 상대도 되지 않는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수난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들은 부끄러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이 뭐라 하더라도…. 단 하나의 목적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수고하시는 그 모든 것을 책임지기 위해서 세계를 대표해서 나섰다! 이것이 결정적이라고 할 때 이 단체는 망하지 않아요. 이 단체는 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 단체를 치려고 하는 패들이 꺾여 나간다구요. 그건 내 눈으로 잘 보아 나왔다구요. 치려다간 꺾여 나간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는 효자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효자의 길을 가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이 세계정세를 앞에 놓고 심각하면 그 심각한 이상 밤을 새워 가면서. 혹은 자기 일신을 망각해 가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체휼적인 경지에서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에게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물론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을 구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서 죽었다면, 인류를 구하기 위한 구주로서의 소원이 무엇이냐? 자기 개인을 구하는 것도 소원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소털 같은 소원이라구요.
보라구요. 자기를 위해서 뭐 회개하고…. 물론 회개해야지. 회개하지 말라는 게 아니예요. 회개해야 돼요. 그러나 회개를 안 하더라도,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 죽어야 할 그런 자리가 있게 될 때,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를 책임지고 나선다 하게 되면 회개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나서 가지고 죽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누구보다 사랑받는 것이 아니냐.
기도를 해서 뭘해요? 기도하면 뭘해? 믿으면 뭘해? 그 말은 뭐냐? 제일 밑창에 가 가지고 기도 안 했더라도, 믿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죽겠다는 사람이 안 나올 때 나서서 '내가 책임하겠소' 하며 죽는 자리에 나가면, 그 사람은 믿고 책임했다는 사람들을 밟고 올라설 수 있습니다. 안 그래요?
기도하러 나와 가지고 싸움이나 하고… . 그런 데데한 패들은 전부 다 쓸어 버려야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가지고 교인들을 자기 밥벌이 판국으로 생각하는 패들은 전부 다 망해야 된다 이거예요. 망할 거예요. 망할 거예요. 망할 거예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걸 망하게 할 하나님이라구요.
망하게 하는 데는 길을 딴 데에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섯!' 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입니다. 듣고도 안 돌아섰다간 망하지 별수 있어요. 안 그렇겠어요?
여러분. 비상시가 되어서 나라를 구해야 할 충신들이 책임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나라의 강도라도, 그 나라의 원수라도 불러 써서 그들이 나라를 구할 수 있게 되면, 그 강도, 원수는 충신을 밟고 올라서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그런 길이 있다구요.
아무리 살인강도더라도 강도의 힘을 빌려야만 될 때, 그 나라의 총리면 총리가 '야! 살인강도 아무개 너는 나라를 위해서 못 간다'고 하겠어요? 그 나라의 주권자도 '부탁합니다. 잘해 주소! 하고, 그 일을 해내고 나오면 그 앞에 머리 숙인다구요. 세상의 법도 그런데…. 세상의 법이 하늘의 법을 따라가는 거라구요.
문제는 최후의 결전장을 누가 지키고 나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거라구요. 세계적인 최후의 결전장을 누가 책임지고 나서느냐? 그것이 최후의 효의 길을 이어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밤이야 낮이야 세월이 가건 말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입니다. 그것을 이어받는 종교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이어받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는 무리가 나오게 되면. 그들로 말미암아 세계는 새로운 방안이 설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수난길이요 피눈물나는 비참한 길일 것입니다. 그 비참한 무리를 조롱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저주 받을 것입니다. 쓰러질 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참다운 효자가 갈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효니 충이니 하는 그 말은 비참한 말입니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충신이 되기 위해서도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는 효자. 충신이 못 됩니다.
자기 생명도 부모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 있기 때문에 그 부모의 것을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부모 편이라구요. 내 편이 아니라구요.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동료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주체를 갖고 서 있는 자리입니다. 주체가 없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자기는 없어졌지만. 부모와 동급 동열에 섰지만, 주체를 가진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파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약속을 하게 되면. 그 약속은 그 일가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이 될 것입니다. '야! 야! 너는 효자이기 때문에, 나한테만 효하면 된다'고 말할 부모라면. 그 부모는 효자를 거느릴 수 있는 자격이 없는 부모입니다.
그 부모는 '나에게 하던 이상 너희 형제끼리 해라!' 할 것입니다. 부탁이 있다면 그런 부탁일 거라구요. 형제를 나와 같이 해줘라, 그 다음엔 또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일을 하다 말거든 네가 대신 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어떤 자리에 서야 되느냐? 죽음길, 제일 수난길을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효자로서 갈 길은 무엇이냐? 간단하다는 거예요. '형제를 나 사랑하던 이상 사랑하고, 네가 나를 위해서 있듯이 형제를 위해서 있어 다오. 이것이 효자가 가야 할 길이다' 이렇게 부모는 부모의 뜻을 얘기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내가 하던 일을, 내가 생각하던 일을 이어받아서 해다오' 이 두 가지에 귀결됩니다.
그것을 크게 말하면, 형제를 위하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너 외에 우리 집 사람을 위해 다오' 그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을 세계적으로 확대하면, 인간을 위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인간이 바라는 소원을 위해서 일해 다오' 이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냐. 세계가 아니냐. 결국은 그렇게 확대되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로서 세계를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기 위한 주체의 자리에 서는 사람일수록 훌륭한 부모가 아니냐. 부모가 세계의 일을 자기 대신 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로서 효자 앞에 지시할 수 있는 길이 아니냐. 그건 두말할 것도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다음엔 만물을 사랑해야 되고,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거기에 귀결되는 거라구요.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이거예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고향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 외국에 나가게 된다면 말이예요, 대한민국 사람이 제일 가깝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또, 남한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남한과 북한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남한 사람 하게 되면 더 가깝다구요. 북한 사람은 좀멀다구요. 또, 남한 사람 가운데서 자기 도(道), 혹은 자기 군(郡),이것이 점점 좁아질수록 가까와지는 거예요.
한국 사람을 만나서 '한국 어디서 왔소? 하게 될 때. '나 전라남도 무슨 군에서 왔다'고 얘기 안 합니다. '한국 어디서 왔소' 할 때 평안도면 평안도. 경기도면 경기도라고 말한다구요. '경기도 어디요? 이렇게 물어야 '아! 경기도 무슨 군(郡)', '무슨 군 어디요? ' 해야 '무슨 면이요', '무슨 면 어디요?' 해야 '무슨 리요?' 무슨 리에 누구요? 이렇게 대답하게 되어 있지, 외국에 나가서 '당신 어디서 왔소' 하고 물으면 무턱대고 '나 경기도 무슨 군, 무슨 면, 무슨 리에서 왔소' 그렇게 대답하지 않는다구요. '한국서 왔소', '한국 어디요? '경기도', '경기도 어디요?' 하면, '무슨 군', 이렇게 대답한다구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크면 큰 데에 상대될 수 있는 대답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대답하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만약에 외국 사람 천지 가운데서 북한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면, 그래도 북한 사람이 외국 사람보다 낫다구요. 북한에서 온 그 사람이 공산당이 아니라면 정이 그냥 통할 수 있다구요.
그 다음엔, 한국 사람 다음으로는 아시아 사람이 가깝다구요. 일본 사람…. 그 일본 사람 하게 되면 원수 아니예요? 원수지만 아시아 사람이라 가깝다구요. 자기 이웃 나라니까. 중국 사람도 가깝다구요. 그것이 멀면 멀수록 멀어지는 거라구요. 그래 구라파 사람하고 아시아 사람하고 볼 때. 구라파 사람보다 아시아 사람이 더 가깝다구요.
성경에도 그렇지 않아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는데, 그 말 참 잘했다구요. 이웃이라는 것은 자기 형제도 이웃입니다. 그것을 점점점점 연장하면 그 이웃이 넓어 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큰 인물이 될수록 대상 범위는 넓어지는 거라구요. 마찬가지예요.
이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박애주의를 논의하는 거라구요. 세계적인 사랑…. 성인이 뭐냐? 세계적인 사랑을 주장하기 때문에 성인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어떤 큰 회사 사장이 되더라도, 자기 친척지간만 데려다가 쑥덕쑥덕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회사 안 된다고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또, 어떤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가 아무 도(道) 출신인데, 그 도(道) 출신만 데려다 쓰게 되면, 그 사람은 패당을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건 갈라지게 마련이라구요. 패당이 벌어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초도적(超道的)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안 그래요? 그래야 그 나라의 정상적인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초아시아적 사상을 가진 정치가가 있으면. 그는 아시아적 대표자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는 거예요. 세계적인 대표자라면,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고 세계의 수많은 민족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라구요.
이것을 가까이에서 보면 부모와 아들딸의 관계, 부자의 관계에서 연결 되는 것입니다. 크게 보게 된다면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딱 마찬 가지라구요. 세계를 대한 하나님과 세계를 위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들딸이 세계의 끝에 가게 된다면 그 아들딸의 자격이라는 것은…. 세계를 다스리고도 남을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 세계 끝에 간 부모 앞에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세계인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세계인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계 이상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를 세계를 대신해서 이루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결국은 그거라구요.
예수님이 효자가 못 돼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 나라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설 수 있는 가정이 없었고,그가 설 수 있는 종족이 없었고, 그가 설 수 있는 민족이 없었고, 그가 설 수 있는 국가가 없어서 죽었지 왜 죽어요? 왜 죽느냐 말이예요? 나라가 받드는데 죽어요? 유대교가 받들고, 이스라엘만 하나되어 가지고, '아이고, 우리 주님 왔소! 4천년 동안 고대하던 주님이시구만' 그러는데도 죽어요?
그런데 예수가 '아 나 죽으러 왔다'고 하면서 차 버렸겠나? 미친 기독교인들! 뭐 예수가 죽으러 왔어요? 암만 알아봐도 그렇게 안 돼 있다구요. 하나님의 뜻이 그런가? 죽이려면 아주 원수의 나라에 보내지요. 그래 가지고 믿고 천당가겠다고 울고불고…. 믿고 천당가겠어요? 예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뭐 전부 다 신부 되겠다고? 신부? 도둑놈 누더기 보따리를 뒤집어쓰고 신부? 그렇게 싸구려가 예수의 신부예요? 도둑 질하기 일쑤이고, 속이기 일쑤고, 사기치기 일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 무슨 신부? 통일교회 문선생 눈으로 봐도 그거 다 꼴 안 됐다구요. 아무리 발버둥치고, 아무리 죽는다고 곤두박질치더라도 보지도 않는다구요. 뭐 신부? 그렇지 않다구요. 효자 효녀가 못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충신 열녀가 안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효자가 되는 길은 무엇이냐? 죽고 못사는 자리에서도 부모를 위해서 나서는 자리가 효자의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가 죽고 못사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보다 더 죽고 못사는 자리에 들어가야 효자의 도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혹은 충신의 길이 남아지려면, 군왕이 죽고 못사는 자리에 들어갔을 때. 군왕을 위해 그 자리 이상의 자리를 지키고 나설 수 있는. 그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자가 나와야 망할 수 있는 국운을 대한 군왕 앞에 충신 이라는 칭호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효자가 어떻게 되느냐. 충신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끝날에 있는 성도들은 성인이 못다 이룬 것까지 이루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예수님이 못다 이루고 간 것을 이루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공자, 석가가 바라던 그 이상을 다 이루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그러한 방대하고 엄청난 사명을 하겠다고 나서는 패들이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겠다는 패들입니다. 그런 아들은 아들로서만 통할 뿐만 아니라 충신으로 통하고, 충신으로 통할 뿐만 아니라 성인 중의 성인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말이예요. 성인 중의 성인이 될 수 있는 아들딸을 원하지, 충신 중의 충신을 원하고 효자 중의 효자를 원하시지, 시시하게 세상의 효자, 세상의 충신, 세상의 성인들이 규탄할 수 있고 평할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을 원하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 이래 그 누가 갖지 못한 사상을 가지고 우월한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걸 교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천신만고해 가지고 그런 자리까지 가려 줬다구요.
종교 중에는 통일교회 당할 종교가 없다는 자신을 갖고 있다구요. 어디를 가 봐도…. 그 자신은 좋다 이거예요. 그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효자는 못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부모의 모든 고생을, 혹은 부모 앞에 제일 어려운 길을 골라 가지고 책임지기 위해서 나서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거기에 이의가 있어요?
또, 그런 효자가 못 된 자식을 효자 만들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어떤 놀음을 시킬 것이냐? 죽을 놀음을 시킬 것입니다. '야야, 이거 해라' 하면서 형제들 가운데 제일 못할 놀음만 골라서 시키는 것입니다.
부모가 '너 효녀가 되고 싶어? 그러려면 시집도 가지 말고 백발이 되도록 일생 동안 부모를 위해서 희생해라'고 할 때, '아이고! 여자로 태어난 것은 시집가기 위해서 이렇게 생겼는데 왜 그래요?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효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런 여자는 보통 효녀는 될는지 모르지만, 끝날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단 하나밖에 없는 효녀는 못 됩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효자의 이름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효녀의 이름을 갖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의 신부입니다. 너희들이 전부 다 신부 될 줄 알아? 예수님은 남자니까, 남자 앞에 여자 라고 전부 신부예요? 신부가 많아요? 신부는 하나밖에 없어요. 신부가 되려고 하는 데는 경쟁은 다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세계 올림픽 챔피언이 되기 위해 누구든지 다 경쟁될 수 있는 거라구요. 뛰어 봐라! 그렇지만 일등을 고르는 것입니다, 일등을 고르고 2등을 고르지, 2등, 3등, 4등부터 골라 가지고 일등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종교도 경쟁한다 이거예요.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경쟁을 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놓고. 기성교회 교인들하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경쟁을 한다 이거예요. 기성교회의 수많은 교역자들하고 통일교 문선생이 경쟁을 한다 이거예요. 내가 꿈에도 질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요. 그들은 이미 나한테 다 졌다구요. 다 쓸어 버렸습니다. 내가 어느 천하에 가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둘째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사나이라구요. 그 대신 악착같다구요. 질기다구요. 죽으래도 안 죽는다구요.
하나님도 농을 좋아하신다구요. '야 야! 아무개 목사가 너를 놓고 기도 하는 것을 들어 봐라' 한다구요. 들어 보면 '통일교회 문 아무개, 이단, 마귀 괴수, 하나님이 수천년 동안 닦아 놓은 전통적 기독교를 좀먹는 대마귀를 하나님 데려 가시옵소서…' (웃음) 그 기도 잘한다! 그 녀석 얼마나 가나 봐라 이거예요. 죽으라는 녀석은 안 죽고 죽지 않겠다는 녀석이 죽더라 이거예요. 한국 속담에 보따리가 바뀐다는 말. 남의 자리가 제자리 된다는 말, 참 잘했다구요, 옛날에. 두고 보자구요.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구요.
그 대신 통일교회 문선생은 내가 고생을 하면 했지, 식구들한테 신세 지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렇다구요. 지금까지 신세를 지우기 위해서 몸부림쳤지. 신세를 지려고 안 했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신세를 지겠다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얼마나 못났으면 신세를 지고 가느냐 이거 예요. 신세를 끼치고 가야지요. 통일교회 아무리 잘 믿는 사람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신세를 지고 있다구요. 갚아야 돼요. 죽도록 갚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안 사람들은 떨어져 나갔어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못 잊는다구요. 경쟁이라구요, 경쟁.
지금 얼마만큼 왔느냐 하면 7부 능선을 넘었다구요. 알겠어요? 7할 8부 이상 넘어간다구요. 지금 때가. 이제 결승전까지 골인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구요.
자, 여러분! 효자 되는 길을 알았지요? 효자 되는 길은 알았다구요.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틀림없이 알았다구요. 그래 효자가 되지 못했으면 만들어라도 주면 싫소?「좋습니다」 그러면 죽을 길을 가라구요, 죽을 길,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에 죽고자 하는 자는?「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7「죽는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죽겠다는 생각을 몇십 번, 몇백 번, 몇천 번, 몇만 번 해야 된다구요.
그거 생각 안 하는 사람이 효자가 되고, 뭐 천국가겠다고? 천국가 보라구요. 목베임을 당해 가지고 순교한 선열들이 전부 다 행렬을 지어 오는 패들을 바라보며 '너 몇 급이야? 하고 물어 볼 거라구요. '너 뭘하고 살았어?' '내가 뭘하고 살긴. 예수 믿다 왔지' '예수 믿으면서 뭘했나?' 뭘하긴 뭘해. 그냥 집에서 살았지' 하면, '에이, 이것아…' (웃음)
그런 천국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 믿고 뭘했어요? 자기 새끼들…. 전부 다 기도하는 것을 보면 '아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심방을 안 다니는 거라구요. 어디 가든지 시시한 기도 하기 싫어서, 내가 어느 집에 가게 되면 그 집의 관심이 뭐냐 하면…. 우리 선생님이 왔기 때문에 우리 집을 축복해 줘야지….
기성교회 목사들은 '아이고, 하나님! 이 집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는데 나는 그런 기도 못 합니다. 그런 기도 할 생각이 있으면 '이 나라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가정을 망하게 하더라도 이 세계를 살려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런 기도는 할 줄 알았지, '아버지, 나라가 망하고 세계는 망하더라도 이 아들딸 잘되게 해 주시옵소서' 나는 그런 기도 못 한다구요. 자!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 한 가지 물어 볼께.
내 어머니 아버지는 이북에 계신데,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까지, 수십년 동안 내가 이 놀음 하고 있지만…. 어머니 아버지 죽었는지 기도해 보면 대번 알아요. 그렇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려고 생각도 안 해본 사나이라구요. 그거 보면 참 불효입니다. 부모 앞에는 불효라구요. 그렇지만 나는 불효가 아니라구요. 자기 가정을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나라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희생당해야 됩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선생님을 참 사랑했어요. 선생님을 참 사랑했다구요.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어머니인 것을 알았지만 선생님은 누구보다 어머니를 무시한 사람이예요. 당신이 바라는 그런 심정. 일개인의 부모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싫어한 사람이라구요.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도 와 가지고 질질 눈물 흘리면. 벼락같이 그 누가 서 있다간 도망가게끔 들이쏘는 거라구요. 뭐냐구, 시시하게, 그런 놀음 하려면 아예 눈앞에서…. 그거 불효지. 천리 만리 원정길을 개의치 않고 자식을 위해 찾아온 부모 대해 가지고 그렇게 했으니…. 내가 창피하다구요. 여러분. 그런거 느끼지요.
자식이 지지리 못나 가지고 병신돼서 '아이고 엄마! 엄마? 하고 나서게 될 때, 그거 좋아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이러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이렇게 살려고 하는데. 하늘땅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머니라는 분이 와 가지고 뭐 내 아들이 어떻고 어떻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꺼져버리라는 것입니다. 집안 망신뿐만이 아니라. 족속망신이라구요. 안 그래요? 대한민국의 족속망신이라구요.
내가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1956년도에 말이예요, 이화여대 사건으로 내가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제일 잊혀지지 않은 두 사건이 있어요. 그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옛날에 평양에서 나를 따르던 아주머니가 척 나타났어요.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이 놀음 또 하누만' 그러는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도 정신을 못 차렸어? 네가 언제 나한테 정신 차릴 수 있는 말을 했어? 내가 가는 길은 너희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몇백 승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때 나는 '두고 봐라. 네 새끼들, 네 사내, 네 족속, 네가 와 가지고 배밀이를 하면서 코를 땅에 맞대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을 하며 사죄를 하면서 용서를 구하면 구했지. 내가 네 무릎에 빌붙어 가지고 동정을 바라는 그런 사나이가 아니다. 꺼져 버려라'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일생 동안 잊히지 않는다구요. 그런 이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사라질 통일교회 문선생이 안 된다 이거예요.
내가 이북에서 공판정에 서게 되었을 때. 이북에 있는 아무개 아무개 목사들이 와 가지고 별의별 욕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흥. 두고 보자!네 아들딸과 내 아들딸이 누가 훌륭하게 되나 보자. 네가 가르치는 교인들과 내가 가르치는 교인이 누가 나은가. 죽더라도 내가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한, 남이 알지 못하고 남이 느끼지 못한 충격을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았다구요. 자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 자리에서 하늘 앞에 내가 효의 도리를, 충의 도리를 하겠다고 맹세한 그 맹세를 실천하느냐 이거예요. 이런 것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피곤할래야 피곤찰 수 없다구요. 지칠래야 지칠 사이가 없다구요. 바쁘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다고 무골충이 아니라구요. 내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말 안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성격대로 하게 되면 싹싹 도리탕을 해서 독수리밥을 해 먹이더라도 눈 깜짝 안 한다구요. 지독하다면 지독하고 무섭다면 무서운 사나이라구요. 옳지 못한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내 팔이 떨어지고 모가지가 달아나더라도….
그래서 어렸을 때는 남의 싸움을 많이 해줬다구요. 동네를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이 큰 녀석하고 싸움하는 것을 앉아서 보는 거예요. 가만히 들어 보면 상황을 알거든요. '이 자식이 왜 이러냐' 하면서 해결해 줍니다. 그걸 해결해 주지 않고 지나가면 밤잠을 못 자는 거라구요. 성격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가 그저 못난 놀음하고…. 그렇게 있다고 못난이가 아니라구요.
지금 통일교회 여러분들 대해서도 그래요. 새벽에도 어디 간 줄 모르게 나가고, 언제 온 줄 모르게 밤늦게 들어오니까 여러분은 그저 '선생님은 저런 사람이지' 생각합니다. 내가 도적질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구요. 내 길 닦기가 바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러고 있는데 여러분이 편안한 잠을 잤다가는 전부 다 참소에 걸릴 것입니다. 쉬다가는 참소에 걸릴 것입니다.
내가 지나가다가 안방문을 쓱 열어 보면 할머니들이 와당탕 일어납니다. (웃음) 내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줬어요? '자라구. 어서 자라구. 자고프면 자라구' 하는데도 그거 왜 그래요? 누가 일어나라고 그러는 거라구요. 그것 보면 양심은 다 갖고 있다구요.
여러분에게 우리의 역사를 말한다면 사연이 많다구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사연이 많다구요. 사람이 말을 다 하고는 효의 도리를 못다하는 거라구요. 말로 탕감해 가지고는 마음 깊은 자리에 있는 뿌리가 뽑혀지지 않는 거예요. 알겠어요? 생각이 깊은 사람은. 뜻을 품은 사람은 뿌리는 언제나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걸 드러내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다 팔아먹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여러분들, 누가 알아요? 선생님을 모시고 살면서 선생님을 모른다구요. 다 안 줄 알았더니 보면 다가 아니라구요. 얼마든지 있다구요.
자기의 생명길을 가려 가는 데는 어떠한 표적이 있을 것 아니냐. 그건 누구의 동정을 받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해야 된다구요. 자기의 소유는 자기가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14년 전에 본 3층천을 말했지요? 14년 동안 바울이 어떻게 살아왔느냐? 3층천 본 것, 그것을 힘으로 삼아 가지고 14년 동안을 닦아 나왔다는 거예요. 바울은 그 이상의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3층천을 말하더라도 또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고, 효자 되는 길을 알았다구요. 알겠어요?「예」
통일교회의 패들 기도하는 것 보면, '6천년의 열매인 우리의 사정을 들어 주시옵소서' 합니다. 참, 기도는 멋지다구요. 통일교회 들어온 지 몇개월 안 되어 가지고 믿는다고 6천년 열매가 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도는 퍽 잘하지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나면서부터 모든 사건을 전부 다 이어받는 거예요. 나무가 10년 동안 자랐으면 10년 동안 겪었던 모든 어려운 일, 좋았던 일들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 가지고 비로소 그 나무의 열매로 나타나는 거라구요.
효자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라구요. 충신이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변천하고 발전하더라도 거기에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입니다. 그 자리를 통할 수 있는 사랑은 참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그 사랑은 진실된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라는 것은 그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3자인 딴 부모가 와 가지고, 딴 누가 와 가지고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간섭할래야 간섭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효자를 가진 부모는 그 효자를 대할 수 있는 부모이고 사랑하는 효자를 위한 부모이지, 제 3자가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왜, 관여할 수 없느냐? 그 이상 인연될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한 사람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 이상의 내용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좋아하던 남녀끼리도 그 사랑 이상의 인연을 가지고 충격을 주게 되면 끊기는 거라구요. 결혼했던 사람이 파혼하고 하는 것도 다 그런 놀음 아니예요? 이제까지 사랑받던 그 이상의 충격적인 사랑을 느껴 가지고 감복을 하고 거기에 감동하게 되면, 그 길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참다운 효자를 만들기 위해서, 사탄이 별의별 놀음을 하든가 인간이 별의별 놀음을 하더라도 터치할 수 없는 최후의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깊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세우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효자가 되었던 인간이 다시 효성의 도리를 세우게 하기 위한 하늘의 마음이요. 효자를 세우기 위한 하늘의 지도 방법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바 없는 거라구요.
요전에 어떤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자비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았다구요. 무자비하다구요.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개인을 중심삼고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 뜻을 중심삼고 무자비한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그것은 영원히 통할 것입니다. 그 무자비는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유자비(有慈悲)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효자가 되는 길을 알았지요?「예」 부모가 눈을 하나 빼라고 할 때에, '왼눈 뺄까요. 바른눈 뺄까요? 하고 물어 보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물어 보고 빼야 되는 거라구요. '눈 하나 빼라' 할 때, '예 빼겠습니다. 왼눈 뺄까요, 바른눈 뺄까요? 하면 부모가 '야 이 녀석아! 빼라면 빼지. 뭘 왼눈 바른눈 해? 하는 부모는 없다구요. 그때 부모는 '왼눈 빼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구요.
자기의 마음은 바른눈을 빼고 싶은데…. 부모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에 덜한 눈을 빼라고 할 것입니다. 안 그래요? 더한 것을 빼라고 그래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부모라면, 부모가 '눈을 빼라' 했을 때, 효자는 '예, 빼지요' 하면서 바른눈을 뺀다고 하면 '야 이 녀석아! 왼눈을 빼지' 그럴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척 알아 가지고 '왼눈을 뺄까요. 바른눈을 뺄까요?'물어 보는 거예요. 그때는 바른눈부터 먼저 얘기하는 게 아니라구요. '왼눈을 뺄까요, 바른눈을 뺄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효자라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좋은 줄 알았더니 제일 못해 먹을 것이라고 난 생각해요. 수많은 인류가 전부 다 어려울 적마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 날 구해 주소? 하는 거예요. 자, 이거 못 들은 척 하려니 이것은 세계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하루에도 몇백 몇천의 사건이 있겠어요?
여러분들 자식들이 저 문 밖에 나가서 '엄마!'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를 때, 가슴이 어때요? 부모의 마음이 철렁해요, 안 해요? '아이구, 저 녀석이 길거리에 나가서 죽을 놀음 하느라고 그러지' 하는 부모 있어요?. 가슴이 철렁합니다. 철렁하지요? 우리 아주머니들 잘 알 거예요. 가슴이 철렁하기만 해요? 철렁하자마자 치맛바람이고 무슨 바람이고 그저 뛰쳐 나가는 거라구요.
자, 세상의 부모도 그런데, 본연의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본연의 자식을 찾아 나오는 하나님은 그런 처지에 선 인간들을 바라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나 이거예요. 전부 다 죽는다 산다 야단하고 있는 것을 바라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구경하고 있겠어요. 그 얼마나 달카닥 달카닥 달카닥…. 이 사람이 망할 길로 가는데 말이야.
한 나라의 책임자도 그렇지 않아요? 이 백성이 망할 길로 가는데, 그 책임자는 나라를 사랑한다면 어떻게든지 뭐뭐뭐, 성을 치든가 해 가지고 막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이 한 나라의 주권자가 아니예요? 그것을 역력히 아는 주권자라면 자기의 생명이 희생될 것을 각오하더라도 그것을 막기 위한 준비를 할 것입니다. 의무감을 느껴서라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 가지고 막을 것입니다.
인간세상의 책임자도 그렇거늘, 만인류의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은 이 거대한 인간상들이 전부 다 지옥 함정으로 떨어져 가는 것을 브레이크 걸고 싶겠어요, 안 싶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바쁘겠느냐 말이야.
그런데 이걸 거드는 녀석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아이고, 나 살려 주소. 나 살려 주소' 하는 거예요. 믿는 사람들도 '아이고, 나 살려 주소. 나 살려 주소' 한다구요. 믿는 사람이 더 잘 그런다구요. 복은 받고 잘 살면서도 '아이고 아버지! 나에게 복 더 주소. 복 더 주소' 합니다. 복 더 받아서 뭘 할 거예요? 전부 다 그 놀음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좋은 줄 알았더니 제일 불쌍한 분이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제일 불쌍한 분이라구요. 또 그것도 지상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지옥에 가 있는 영인들이 '아이구,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매일같이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기분 좋겠어요? 자비로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야 이놈들아, 너는 죄를 지었으니 그렇게 깨깨 벌을 받아라. 아이고, 내 기분이 좋다' 하시면서 입맛을 쩍쩍 다시며 좋아하겠어요?
보라구요. 아래로 땅을 바라보면 인간이 그 꼴이요. 영계를 바라보면 지옥에 가 있는 수천 억이나 되는 별의별 패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하나님이 편안하시겠어요?
어떤 사람이 있어 가지고 지옥의 철판문을…. 뭐 철판밖에 단단한 게 없으니까 철판문이라 칩시다. 지옥 전부가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철판 같은 것으로 꽉 닫고 쇠로 채워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어떠할 것 같아요?' 아이고, 그 꼴보기 싫었는데, 그 녀석 참 마음에 들었다. 시원하다. 그거 다시 보기 싫었었다'고 하면서 머리를 젓고 '아이고, 잘했다. 잘했다'고 하시면서 문을 채워 준 사람을 좋아할까요? 그거 어떻게 생각해요? 좋아할까요. 나빠할까요? 아예 나오지도 못하고 아예 보지도 못하게 채워 놓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좋지 않습니다」 왜 좋지 않아. 왜? 보기만 해도 지금 지긋지긋한데 왜?
자, 이게 그럴 수 있어 가지고 참을 수 있는 하늘이라면 모르거니와, '저거 덮어 놓으면 언제 나오겠나' 한다는 것입니다. 덮어 놓는 것도 원수라구요. 덮어 놓아 가지고 좋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자기 자식 중에 살인강도가 되든가, 국가의 범죄를 짓고 사형을 받는 아들이 있다 합시다. 아들이 죽을 자리에 갈 때에 그 부모가 따라가서 '너 죽을 자리에 갔으니까 잘 죽어라. 사요 나라(さようなら). 굳바이(good-bye)'이래요? '잘 가라' 그래요? 그런 부모가 있어요? 죽는 것 보고 '아이고, 보기 싫어, 보기 싫어, 이놈의 자식아, 이제 이별이다' 그래요? 그 아들을 붙들고 죽는 자리에 같이 동참하려고 하는 것이 부모가 아니냐? 그렇지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 하게 되면. 부모가 그걸 바라보고 가만히 있겠어요? 영원히 벗겨 주려고 허우적허우적….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어. 시원하다. 이 녀석! 그것 깨깨 그래 싸다' 그래요? 사랑하는 부모일 수록 영원히 영원히 죽어간다 하면 영원히 벗겨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이제 그만두자, 그만두자' 할 부모가 있어요? 어디 세상에 있을 것 같아요? 영원을 걸려서 죽어간다 하면 영원을 걸려서 살려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것이고, 자기의 수고를 앞세워 움직여 나갈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은 불쌍한 분입니다.
지옥문을 닫더라도 그 영원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아이고, 좋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벗겨 주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에이! 다 쓸어 버리자' 하는 입장에 서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까지 해방해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구요.
그런 부모 앞에 '여보! 여보! 그 자식은 영원히 죽게 가만히 내버려 두길 잘했소. 애비 에미라고…. 당신 뭐요, 뭐요? 꼴불견이요. 그만큼 했으면 됐지, 내버리고 돌아서라구' 할 때. 그 말이 귀에 들어오겠어요? 이런 입장을 생각할 때, 그게 얼마나 비참하냐.
만약에 아들이 그런 정경을 보게 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 때문에 이러는구나' 하며 천만번 죄를 다 회개하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런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 앞에 그 자식은 뼈가 녹고 살이 여위도록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 말미암아 그럴 수 있는 길이 생겨 난다는 거예요.
어떤 부모를 대해서 '당신 아들이 회개한다고 해도 그 죄지은 것을 언제나 들고 나와 가지고 자식에게 항거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지, 자식이 회개한다고 용서해 주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돼' 하는 그런 법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그런 사랑 앞에는 참소를 못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참소를 못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너는 그런 자리에 못 나간다…. 사탄에게는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하늘 앞에 참소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 앞에는 사탄이 자연히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 못 할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심정을 통해서 통일교회는 지옥까지도 해방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창다운 효자로서 가야 할 길이 아니냐. 그래서 지옥까지도 구원해 준다는 말을 통일교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이 그러신 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역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불효 했느냐? 얼마나 불효했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이 전부 다 효자 될 수 있는 역사를 지녀온 사람이냐 할 때, 아니라구요. 전부 다 불효라구요. 불효, 불효. 불효막심한 것들이라구요.
보라구요. 아담 가정에서부터 하늘을 배반했고, 노아 시대에도 배반했고, 아브라함 시대에도 배반했고, 모세 시대에도 배반했고, 세례 요한 시대에도 배반했고, 예수 시대에도 배반했고, 오늘날 통일교회 시대에 이르기까지 배반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런다고 기성교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거라구요. 아브라함, 노아, 예수 시대에 배반한 것과 같은 자리에 통일교회도 있다고…. 통일교회가 그들보다 높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사리도 모르는 멍텅구리가 아니라구요. 얼마나 배반 하고 얼마나 불효했느냐. 6천년,6천년만 돼나? 인류 역사가 6천년이라는 것은 성경의 역사를 두고 하는 말이지. 몇십만 년…. 인류역사가 8천만 년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게 되면 몇십 년이 뭐예요, 몇십 년이. 얼마나 불효했느냐 이거예요. 불효 투성이지. 효자는 꿈에도 만나지 못했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와서 이런 말도 지금 하고 있다구요. 자기 종교를 버리고라도 세계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워야 됩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여러분이 효자 되는 길을 이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끼리,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한 형제라구요, 통일교회의 형제들 가운데서 제일 복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형제를 위해서 희생하고, 하늘 부모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 희생이 일년…. 어떤 사람을 보면, '7년노정이 끝나면 뜻이 이루어지겠지. 뜻이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나 보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심판하는 심판관…. 그것은 사탄보다 더 악하다구요. '어디 두고보자, 되나. 안 되나? 뜻이 이루어지면 살짝 들어가고 안 이루어지면 살짝…' 이렇게 이용하는 놀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살짝 들어가려고 할 때는 먼저 영계에서 데려가는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은 공평하다구요. 왜? 만약에 그런 사람이 들어섰다가는 큰 야단이 난다구요.
하늘 앞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내쫓은 사람이 없습니다. '저 사람은 안 되겠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할 책임은 다 했다구. 저거 저렇게 가다가는…, 물론 나는 괜찮지만 피해가 막심하겠는데…. 한 사람이 세 사람을 희생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그럴 때는 하늘은 그 사람을 제거시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길을 막는 거라구요. 어쩌면 하늘이 그렇게 잘 골라서 처리해 주느냐 이거 예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섭섭히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건 내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이 눈으로 똑똑히 본 산 증거예요. ‘야 전체 앞에 지장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어느새 그의 집에서 무슨 야단이 나든가, 그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 가지고 곤두박질쳐서 올래야 올 수 없게끔 흘러가 버리고 만다구요. 그럴 때 선생님은 '아이쿠, 잘됐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구요. '네가 다시 올 수 있게끔 지금은 용서해 준다. 너를 최후까지 용서해 주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걸린다구요. 천법에 걸린다구요. 지도자는 끝까지 지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을 때까지 그 생명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선생님하고 약속한 사람을 배반하는 법이 없습니다. 책임져야 되는 거예요.
만일에 그걸 좋다고 하게 될 때는 책임자가 많은 사람 앞에 잘못할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평면적인 입장에서 보면 잘못하지 않지만, 그 선조로부터 보게 되면 잘못한 거라구요. 역대 선조 가운데 공이 많아 가지고 하나님이 직접 특명으로 통일교회에 들여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들여보냈는데 그 사람의 공적 이상으로 대우를 안 해주면 통일교회가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道)의 세계에 있어서는 전부 다 경주라구요. 심판무대입니다. 들어오는 사람을 허술하다고 문전에서 박대하다가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꺼꾸러진다구요. 걸려 넘어간다구요. 여러분은 그런 걸 모르는 거라구요.
그래서 수많은 도인들이 여기에 오게 된다면 선생님이 그 사람들 모셔 주는 종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먹지 못했으면 얼마나 고생했느냐 하며 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잘 알아주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외로운 도(道)의 길을 닦아 오느라고 얼마나 수고했느냐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지내 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잘 압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 먹여 주고, 입고 싶은 것 다 해주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그 사람 앞에 '당신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해야 할 책임이 있어야 될 게 아니냐. 그러니 이런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입니다. 안 했다가는 하늘의 심판을 받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수고해서 쌓아온 보따리를 전부 다 여기에 풀어 놓고 벗고 나가야 됩니다. 그런 은혜의 보따리를 여기에 풀어 놓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구요. 그 보따리가 있기 때문에 아무 공적이 없는 사람한테 배급해 가지고 '옛다, 너 가져라' 하고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한 지 14년 후에는….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는 점점점점 가을이 될 것이라구요. 가을이 되면 겨울이 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기성교회가 가을이 오면 이쪽은 봄이 오는 것입니다. 엇갈리는 거라구요. 저기가 가을이라면 우리는 봄이예요. 알겠어요? 저쪽은 가을을 찾아 가고, 우리는? 뭘 찾아가요? 봄을 찾아가고 여름을 찾아가는 거라구요. 겨울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여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도…. 나 기성교회한테 지고 싶지 않다구요. 어떤 목사나 총회장도 꺾어 놓을 것입니다. 나는 다리를 펴고 자게 되어 있지만 그 사람들은 다리를 못 펴는 거예요. 왜?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구요. 그러면 반대를 잘했느냐, 못했느냐? 그것은 자기들은 모릅니다. 모르지만 하늘의 천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국법이, 헌법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백성 가운데 강원도 산골짜기 초가삼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헌법을 알아요? 그에게는 헌법이 있으나마나 하지마는, 법에 위배되는 사건만 생기면 대번에 경찰이 와 가지고 '야, 가자!'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여보 여보, 나 헌법 몰랐어요' 한다고 돼요. 모르는 것이 잘했어요? 못했지요?
통일교회를 알아보지도 않고 반대를 해요? 요전에 내가 영계를 봤는데 아무개라는 사람이 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런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해서 그랬소!’ 하며 기가 막힌 자리에 와 가지고 허덕이는 것을 내가 본 사실도 있지만 말이예요.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이라구요. 여기, 누구 누구 훌륭하다는 목사들도 영계에 가 보라구요. 통일교회 반대하다가 영계에 가면. 천국 통행하는 데 통행금지가 되어 있더라 이거 예요. '지상에 가서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사인을 받아 가지고 와' 요렇게 되어 있다면 어떡할 거예요? 좀 곤란하지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려면 통일교회 이상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서 내가 영락교회 같은 것을 지으려면 당장에 지을 수 있다구요. 내가 안 하는 거예요.
기성교회 판도, 그걸 내가 훅 불면 그들이 날아가지. 이젠 내가 날아가지 않는다구요. 신학대학의 반대하는 학자들도 내가 전부 다 월급 줘 가지고 부려 먹을 거라구요. 현재 그러고 있다구요. 자기들이 좋다고 춤출 때는 그것이 누구 계획 때문에 하는지 모르지만 알고 보니까 통일교회 문선생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일이 수두룩하다구요.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아이쿠 아이쿠 후퇴다' 그러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구요.
선생님이 그 사람들만 못해서 이런 놀음 하는 게 아니라구요. 또, 여러 분들만 못해 가지고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단 한 가지 이유는…. 단 한 가지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죽어도 부모와 같이 죽자. 살아도 부모와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면 만사는 다 해결되는 거라구요.
세상 천지를 바라보아도 하나님에게 그렇게 할 사람은 기성교회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구요. 내가 다 알아 봤다구요. 내가 이 길을 나서게 될 때.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 이름난 목사들을 다 만나 봤습니다. 익었나, 설었나 다 알아 봤다구요. 누가 몇 점짜리이고, 누구는 몇 점짜리인지 이미 점을 치고 출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모릅니다. 겉으로 봐서는 총각이요, 그냥 텁수룩하니 지나가는 길손으로 밖에 생각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속살을 다 빼 가지고 이미 하늘 보고서에 기록하고 나섰다구요. 보고하고 나선 놀음이라구요. 이 놀음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적 패들이 군신이 될 때는 충신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역적이 뭐예요? 역적이 뭐예요? 반대하는 패예요. 반대뿐만 아니라 죽이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잡아죽이려고 얼마나 야단했어요? 하나님도 고맙지. 죽으라고 감옥에 잡아넣은 사람은 죽지 않고, 감옥에 잡혀들어 가게 한 사람은 죽고…. 평양에서 나를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이 남이라는 목사인데 이름은 모른다구요. 그 목사의 자식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런 놀음을 봤어요. 하나님이 너무나 공정합니다.
그 사람들 내가 한번 만나 가지고 잔치를 벌여서, 술은 안 먹지만 축배라는 조건으로 한잔씩 먹고 죽었으면. 이별했으면 좋을 텐데. 내가 해결지을 수 있는 것을 못다 해준 거예요. 그것을 하늘이 다 청산한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원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기성교회 목사들에 대해서 내가 막대한…. 통일교회 교인들을 굶기면서라도 그들이 오면 잘 먹이고 잘 해주는 거라구요 이러고 있다구요 세상 같으면, 저, 이 녀석 잘 왔다. 독약을 쳐 가지고는 먹어라' 그럴 것입니다. (웃음) 내가 자기들한테 밥을 달랬나?
이거 기성교회 욕이 나왔는데 오늘은 터놓고 이야기 한번 하자구요. 오늘이 9월 10일이니까. 넘어가는 날이기 때문에 터놓고 이야기해야 되겠다구요. 9월 10일은 90수이기 때문에, 9수는 나쁜 수라구요. 넘어가는 수예요. 내일부터 사흘 후에는 이북에 있는 패들이 와요. 그거 잘 됐다구요. 내가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고 내려왔어요.
이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보고 갈 곳이 없다 할 정도로 이 나라 곳곳을 보고 가더라도 통일교회는 못 보고 갈 것이다…. 지독한 패는 통일교회인데…. 그렇지 않아요? 일본에서도 지금 조총련의 공산당하고 우리가 뿔개질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여러분들,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밥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의 밥은 되더라도. 여러분의 밥은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밥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되지만, 밥은 안 된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밥은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입장이라구요. 여러분에 대해서 선생님은 책임을 다했습니다. 통일교회에 대해서는 지금 한 가지 남았습니다. 그것도 한가지 가운데서 절반은 했다구요. 2분의 1이 남았다구요. 이제는 한번 만나서 통고만 하면 한국에 대한 내 책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한국 사람으로서 하늘의 사명을 책임지고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내가 할 책임은 다했다 이거예요.
이 다음에는 한국 사람이 문선생을 만나 볼래야 만나 볼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여러분이 '아이구, 우리 선생님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한국에서 사셔야지' 하더라도 못 만난다구요. 그때 가게 되면 한국 기성교회 교인들도 눈물을 흘리고 아이쿠…. 그때 되면 서양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이 '아이구, 문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하게 됩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차는 내가 다 타는 거라구요. 그렇게 될 때가 오는지 모르고 있다고요. 오지 않으면 내가 오게 만들어 가지고 살 거라구요. 그럴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안다구요.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신 차려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고자 했던 게 뭐냐? 효자의 길이었습니다. 효자의 갈 길이었습니다. 부모가 잠을 자더라도 효자는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잠자고 나서는 죄인같이 회개하는 생활을 한 거라구요. 먹고 나서도 미안해서 눈치를 보는 사람입니다. 입고 나서도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허리를 못 펴고 다닙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 '링컨' 하게 되면 세계에서 유명한 차라구요. 내가 그 차를 타고 수택리 골목에 들어갈 때는 숨어서 들어갑니다. 남들 같으면 자랑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그래요.
그런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그저 뭐 뭐…. 지금 가격으로 치면 그 차는 한 3천만 원 나간다구요. 3천만 원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를 지으면 30개. 백만 원씩만 주면 못해도 30개는 지을 수 있다구요. 그런 차를 통일교회 문선생이 척 타고 다닌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도둑질한 것도 아니예요. 이렇게 지금 대한민국이 부패되고 있지만 도둑질해 온 것도 아니예요. 그것은 외국 식구들이 보내준 것입니다. 그것도 안 타고 다니려고 그러는 거예요. 크라운 차를 타고 다니려고 한다구요. 그런데 크라운 차는 협회에서 타겠다고 말이예요. 큰 차를 두고 조그마한 차를 타고 다니려니까…. 그래서 이 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할 수 없이 링컨차를 타고 다니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양심에 가책이 있는 게 아닙니다. 또, 그렇다고 자랑하며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구요. 한국 사람. 여러분이 팔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파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우리 협회장으로부터 간부들이 전부 다 '선생님! 저 차 팝시다' 하면 파는 거라구요. 그 대신 팔았다가는 외국 사람들한테 모가지가 걸린다 이거예요. 팔아먹었다 할 때는 한국이 어떻게 되느냐? 앞으로 한국 통일교회 본부에는 외국 식구들이 절대 안 도와줍니다. 팔아먹으면…. (웃음) 그래서 팔 수 있나요? 팔지도 못하고…. 그렇다는 거라구요. 또, 안 타도 걱정이라구요. 선생님이 그 차 타고 다니나, 어쩌나 보는 거예요. 안 타고 다니면 '왜 안타고 다니나? 기분 나빠서 그러나? 한다구요. 내가 그런 입장에서 다닌다구요.
결국은 뭐냐 하면 효자의 길, 효자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이걸 보면 선생님은 미친 사람이라구요. 부모를 알아봤나, 처자를 알아 봤나, 형제를 돌아봤나, 친척을 알아봤나, 나라를 알아봤나…. 내가 나라를 안 알아 준 것이 아닙니다. 더 차원 높은 입장에서 나라를 위해서 가려니…. 내가 나라를 위해서 왜정 때 눈물을 흘린 것은…. 애국자에 지지 않는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지금도 흑석동 길이…. 지금은 용산까지 길이 나 있지만 아쉬운 감이 나요. 그때는 포플라도 있고 플라타너스도 있었는데. 그때 다니던 인상이 남아지는 거예요. 저기 저 저 명수대, 노들강…. 그때는 왜정 때라구. 그때 눈물 흘리고 나라 위해 기도 많이 했다구. 일본 갈 때도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고 부산서 배 타고 갔는데. 사나이 떠나는 길이 이렇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항구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그리고 별의별 수난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지를 한 분 더 구하기 위해 입을 안 연 사람입니다. 이런 전부가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예요. 남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살아 나온 내가 지금에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 해 가지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편안히 살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교수협의회에서 교수들과 학생 100명을 일본에 데리고 가는 데 거기에 드는 비용만 하더라도 수천만 원이 들어갔어요.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먹고 남은 돈이 아닙니다. 피를 팔아 가지고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것을 생각하면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는 내가 면목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문제는 통일교회를 의지하지 않고는 수습할 길이 없는 기반을 일본에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일본을 앞세워서 수습할 때예요. 일본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한국의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예상했는데 딱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모험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모험할 때가 왔다 이거예요. 이제는 한국에서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일본에 가서 싸울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조총련과 이마를 맞대고 백주에 칼침 맞을 각오를 하여 가슴을 들이대면서 '찔러라' 할 수 있는 용기백배한 사나이, 승공대열의 선두에 설 수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있느냐? 이거 손꼽아 보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냐 할때 '아이쿠, 나는 아들딸이 얼만데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변명할 사람은 많지, 뜻을 염려해 가지고 가족을 차 버리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그런 일을 해야 되겠기 때문에. 지금 가정의 부인들을 빼내 일선에 내보내어 가지고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거 다 훈련이라구. 앞으로 통일교회 문선생을 인질로 북괴에서 붙들어 가 가지고 통일교회 간부 아들딸을 거느린 일가족 100가정하고 바꾸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할 수 있습니다」 말이야 쉽지. 말은 쉽다구요. 그러나 실제로 할 수 있어요?
심각한 사나이입니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처자를 놓고,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칼로 째 가지고 제물을 드리겠다는 맹세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스승을 모시고 있으면서 여기에 와 가지고 자리가 불편하다고 탓하고, 자기가 먼저 들어왔다고 삐죽거리고…. 꼴 사나운 패들이라구요. 이 길은 부모 처자까지 다 버리고, 사랑하는 나라를 배반하는 자리에 설지라도 하늘을 붙들고 나온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그러지 않고는 효의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비참한 자리까지 갈 각오를 시킨 것이 뭐냐 하면 나를 말단 효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큰 효의 자리에 세우기 위한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교도소에 보내서 고생시킨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끝에 가서는 나를 위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질기게 이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따라간다는 통일교회 패들, 복받겠다고? 통일교회 들어와서 복받겠다고 하면 벌받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들어 왔으면 복을 다 털어놔야 됩니다. 복을 다 털어놓아 가지고 거기에 누룩을 만들어 가지고 세계에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내가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서 썼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의 지방 교회를 가 보게 되면, 기성교회는 드높이 십자가를 달고 '땡그랑! 땡그랑!' 종을 치지만 통일교회는 단칸방 교회라구요. 그래도 나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커라!
사람이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땐 얼마나 좁았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면 여러분. 얼마나 숨막혀요? '아이쿠, 코딱지만한 그 물주머니에서 살았으니 아이쿠…' 그러나 운동을 자유롭게 해라. 천하가 크다고 배를 들이 차라구요. 옆구리를 들이 차라구요. 배에서 사방을 굴러다니며 자유롭게 운동하는 아이가 건강한 아이가 아니냐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좁다고? 한국을 넘어갈 수 있도록 차라! 영향을 미쳐라! 망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에 자랑할 수 있는 건강한 아들로 태어날 것이 아니냐? 이러고 나오고 있다고요. 그러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더니 망하지 않았다구요. 알겠어요? 우리 아줌마들. 알겠어? 이 아줌마들, 선생님한테 욕 많이 먹었지? 밤이나 낮이나 때도 없이 야단했으니….
이런 놀음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효자 되기 위해서, 효자의 길을 닦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 번 공석에서 '하나님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지만, 있다면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어 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구요. 일구월심, 철을 알면서부터 이 길 때문에 미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한민국 사람 잘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하지, 못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안된 사람을 만나도 '언젠가는 내 손을 거쳐가야 되겠다' 그래요. 그러니까 얼마나 고달파요? 고달픈 생활이라구요.
결국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느냐? 욕을 먹고 소문을 듣고…. 그것을 내가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누가 20대의 꽃다운 청춘시대에 욕먹고 감옥길을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렇지만 내가 욕먹는 것은 남과 같이 수치의 욕이 아니다 이거예요. 당당하다 이거예요. 하늘 앞에 가도 당당하고 어디 가도 당당합니다. 역사시대에 당당합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별의별 놀음을, 별의별 구경을 다 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효자의 가는 길은 그게 아니더라. 그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효자가 가는 길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는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충신은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군왕을 위해 있는 것이다! 성인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더냐? 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정이 뭐냐? 아들딸을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의 소원은 뭐냐? 그 사랑에 취해서 살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소원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망과 사정과 심정을 통해라! 그러지 않고는 효자가 못 되는 것이다! 그것이 통일교회의 골자가 되는 사상이라구요. 하나님의 사정을 알자는 사람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가지고 되겠어요?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몰라 가지고 효자 돼요? 하나님의 심정이 슬픈지 기쁜지 몰라 가지고 효자 돼요? 어림도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가 설파하지 못하였던 깊은 내용을 가르쳐 준다구요. 아직까지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때가 오면 예수님이 하고 싶지만 못다한 그 말을 내가 가르쳐 주고 갈 것입니다. 지금 그러고 나가고 있다구요.
여러분 가정들! 36가정 중에 누가 제일이냐? 72가정 중에 누가 제일이냐? 120가정 중에 누가 제일이냐? 많은 가정도 필요 없고, 한 가정이 필요합니다. 전통을 남길 수 있는 한 가정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씩만 있으면, 그 전통은 남아지는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의 전통은 통일교회를 지도하던 문선생의 사상이 전통이 아니냐. 여러분들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효자가 되는 길은 간단한 것입니다. 부모의 보다 고생스러운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자리가 효자 되는 길입니다. 알겠지요?「예」
선생님은 정치가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누구보다도 첨단에 서 가지고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요전에 미국에서 대강연을 할 때, 선생님이 선포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1977, 78년까지 미국에 대해서 세계적인 위기가 닥쳐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대해서 그것을 선포했습니다.
그걸 누가 방지하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까지 구해 줘야 되겠다 이거예요.
독일에 가서 부흥회를 했을 때도, 공산당들이 몇 주일 전에 우리가 승공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본부에 대해서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정문에 총탄을 들이쏘아 가지고 구멍을 뺑 뚫어 놓았더라구요. 이거 왜 구멍이 뚫어졌느냐고 하니까, 공산당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 경찰에 조사를 시켰느냐고 하니까, 안 했다는 것입니다. 왜? 경찰 가운데도 공산당이 있다는 거예요. 독일 책임자는 지금까지 기성교회가 반대해 가지고 별의별 모략 중상에 걸려서 대법원에까지 끌려 다녔어요. 내가 가기 며칠 전에야 대법원으로부터 '당신네 단체를 알아보니까, 공익 단체로서 소문난 것과 다른 단체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하라'는 통고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여 주더구만요. 그거 대한민국의 죄가 크다구요.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몇몇 지도자들이 반대한 것이 세계의 길을 막아 놓은…. 그것이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자손만대에 그 죄를 벗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원수시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수시 안 한다구요.통일교회의 문선생 하나가 욕먹고 반대받아 가지고 세계가 잘되고 대한민국이 잘될 수만 있다면 어서 그러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잘되지 않으니까 섭섭하지.
그런 판국에 선생님이 독일에서 강연할 때면 반드시 공산당이 반대를 하는 거예요. 어디를 가나 청중이 일어서서 반대하는 놀음이 벌어졌다구요. 그걸 볼 때, 독일도 결국은 우리가 책임져야 됩니다. 사람은 많지 않다구요. 많지 않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녹여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효성 지도(孝誠之道)는 누구보다도 세계의 선두에 서서 지키자 하는 이 사상만은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합니다. 철두철미하다 이거예요.
이스라엘에 척 들렀더니…. 이스라엘도 67년도에 갔을 때 그러한 책임 감을 느꼈어요. 내 센스가 상당히 빠릅니다. 몇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면 벌써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구요. 아, 기독교가 큰일났구나! 통일교회도 큰일났지만 기독교가 큰일났구나!
금후에 기독교가 갈 곳이 어디 있느냐? 이걸 볼 때 세계적인 대활동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동대를…. 그런 예상은 했지만 예상한 대로 세계적인 기동대를 편성해 가지고 지금까지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에는 여러분이 전부 다 기동대원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세계를 우리만이 책임질 수 있고,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될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낙네가 되고 사나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그 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효자의 길을 지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효자 되는 길입니다. 효자 되기 위해서는 하늘을 위해서 보다 큰 무대에서 희생하고 나서는 사람이 되자! 그래 통일교회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자! 이제 세계를 위해서 다 길을 떠나야 되겠습니다. 한국에 있는 간부들도 전부 3년 내에 전부 다 세계로 배치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들을 위해서 내가 길을 닦아야 되겠다. 경제적인 문제라든가, 대사회적인 기반을 닦아 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바쁜 거예요.
청파동에서 욕먹고 앉아 가지고 허리 부러진 호랑이같이 생각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혹은 기성교회가 꿈도 못 꾸는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해외에 나가면 이제부터 또 할 일이 많다구요. 여러분들이 모르니까 그 길을 닦아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지나게 되면,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불원간에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을 표준으로 지금까지 싸워 나왔는데, 이제는 많이 올라왔습니다. 올라온 것 같아요? 어때요? 많이 올라온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효자의 가는 길은…. 그 부모는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효자 되는 길을 알았어요. 그러면 효자로서 가는 길은 뭐냐? 부모는 자기에게 사랑하던 마음을 돌려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부모의 훈시가 되느니라. 효자로서 가는 길은 어떠한 길이냐? 나를 사랑하듯이 네 형제를 위해서 일하라! 그것이 부모가 최후로 바라는 소원이다! 그것이 효자된 자로서 가는 길이다! 알겠어요?「예」
통일교회 교인들, 선생님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 선생님을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선생님의 명령에 죽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그런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명령은 듣지만 형제들의 명령은 싫어' 요런 패가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위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됐다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의 명령은 듣지만 협회장의 말은 안 듣는다! 왜? 협회장은 나보다 몇 해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그의 말을 들을 게 뭐야, 그가 내 말을 들어야지!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여기 통일교회 먼저 들어온 할머니들. 선생님이 가만히 있지만 할머니들 대해서 생각하는 거라구요.
여기에 무엇하러 와 있느냐? 여기 기도하는 할머니한테도 얘기했지만, 기도하기 위해서 온 할머니는 희생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할머니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를 위해서 자기 것을 집어넣더라도 불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잠자리가 편안치 않더라도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매를 맞았더라도 거기에 대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나를 동네 개만큼도 안 알아준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지금까지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여기 있는 할머니들 가운데 그런 말이 들리면 전부 다 쫓아내야 돼요. 그건 내가 쫓아내지 않고 하나님의 특명에 의해서 쫓아내는 거라구. 천국 권한을 가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쫓아내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런 마음 가진 사람들은, 남을 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천국 못 갑니다. 할머니들, 알겠어요? 가만히 보면 남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 오래 줬다는 사람들이 아랫목을 차지해 가지고 '이건 내 자리다 ' 하고 이건 그저 꽁꽁 감싸 가지고 '아이구…' 이런 패들은 선생님이 보기에 꼴불견이예요. 내가 가서 사는 천국에는 안 데리고 갈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효자가 됐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형제들끼리 자기 보따리를 싸는 사람은 효자 못 됩니다. 간부들도 그렇다구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일을 쓱 시켜 보는 거예요. 좋은 자리에 인사 이동되면 좋다고 '헤헤' 하고, 조금 뭐하면…. 이 녀석아,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러고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슨 간판이 있어요? 내가 이사장 간판이 있나, 사장 간판이 있나? 내가 이사장은 많이 시키고 사장은 많이 시켰지만 아무것도 없다구요. 아무것도 없어요. 건달이라구요, 건달. 통일교회에서는 나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선생은 국민학교 선생도 선생이고, 유치원 선생도 선생이고, 중학교 선생도 선생이고, 고등학교 선생도 선생 이고, 선생이 수두룩한데 어떠한 선생이냐? 욕먹게 만든 선생이다! 내가 그렇게 결론지었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한테 욕먹게 만든 선생이다. 내가 책임을 못다 해서 욕을 먹었으니까, 내가 할 책임이 남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게 제일 편하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동서남북으로 날뛰고 다니는데 자기 자식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리잡아 가지고 살겠다고…. 그 대신 뜻을 위해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러분들이 노력하는 이상 잘살게 해줄 책임을 짊어진 사람입니다. 잘살 수 있는 놀음이 없지 않아 있는 거라구요. 영계는 나하고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기필코 만들어 줄 것입니다. 보따리를 싸지 말라구요. 홋바지바람이든 치맛바람이든 그걸 입고 다니더라도 나라가 있어야 된다구요,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어요?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오셔서 '야! 이 백성들아! 내 말듣거라!' 할 때, 대한민국이 '예이!'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이북 공산당은 김일성이 '야! 들어라!' 할 때, '예이!' 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수작하는 사람이 많다구요. 엊그저께 내가 청평에 갔는데 누군가 와 가지고 자기가 뜻을 위해 20년 가까이 일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쌀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쌀쌀하지. 내 그 말 듣고 좀 더 쌀쌀하지 못한 것이 한이구만. 요놈! 한대 발길로 가슴을 차 보지 못한 것이 한이구만' 한 거예요. 그러면 효자가 못 되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이제 가을이 되어 오는데 가을이 되면 잘 익은 감을 먼저 따고 덜 익은 감은 나중에 따게 되는 거예요.
그래, 선생님을 사랑해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응?「예」 그거 믿어지지 않아요. 전부 다 가식이예요, 가식. 내가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구요. 선생님의 말을 얼마만큼 믿고 있나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구요. 한번 시험해 보면 좋겠어요?「예」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죽을 자리에 가라. 뜻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 가라'고 할 땐 '아이고, 왜 하필 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집어 가지고 요렇게…. 딴 사람도 있는데…' 합니다. (웃음)
이번에 최창림이를 일본의 조총련과 싸우기 위해 국제승공연합의 민단 대표로 임명하게 될 때, 그 녀석을 불러 가지고 '너 일본을 위해서 맞아야 되겠다. 죽을 각오를 해야 돼? 하니까 눈을 깜박깜박하고 있어요. '무슨 대답을 하나 보자. 재치꾼이기 때문에 세 가지 대답 중에 한 가지 대답을 할 것이다' 하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아주 재치가 있다구요. '나밖에 이 일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책임지고 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그래요. 민단 요원으로 임명했지만…. 통일교회 사람은 기가 막히게 재치가 있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어디 가든지 선생님이 염려해 주고 생각해 주면 칼날도 총탄도 오다가도 인사처리가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딴 곳에 떨어지든가, 그렇지 않으면 딴 사람이 막아서 떨어지든가…. 그러면 그렇지 객사의 무덤은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하루에 밥 먹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하는 날에는 무사할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런 놀음을 안 해봐서 모르지만 말이예요. 지하운동을 많이 해본 사람은 아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지하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왜정때부터 우리 친구들이 관부 연락선 짐짝 타고 와 가지고 부산 부두에 올라가서 철대, 철바퀴를 타고 여덟 시간, 아홉 시간을 신의주까지 달리는 놀음을 했어요.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절대 못한다구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충신이 못 된다구요.
친구 중에 지금 이북에서 공산당 간부를 하고 있는 녀석도 있습니다. '이 녀석아. 너하고 나하고 앞으로 원수가 되는 것이다' 앉으면 그저 이념투쟁을 했습니다. 자기가 암만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해봐야…. 그때부터 싸움한 거예요.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손잡아야 될 것이 아니냐 해서 같이 활동했다구요. 그러나 지금은 이렇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달라 딱 들어맞았다구요. 내가 이런 놀음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거라구요. 지금은 알고 있을는지 모르지. 그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온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디 가든지 손님입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와도 손님입니다. 지금도 내가 대한민국의 손님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국을 보라구요. 기성교회도 문제지만 내무부면 내무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보과는 나하고 원수였다구요. 지금은 정보과가 우리의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에 있지만 말이예요. 선생님에 대해서 이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와 있지만 말이예요. 옛날에는 전부 다 원수였다구요. 기성교회도 원수였다구요. 이제는 다 통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와 있지만…. 기성교회 교인들이 핍박한 게 아니라. 통일교회 교인들이 책임 못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 타진해 봤다구요, 어느 총회장은 그들이 주는 돈의 몇 배만 주면 얼마든지 온다 이거예요. 이제 기성교회는 추풍낙엽이 되었어요. 생명을 가져야 할 기성교회가 돈에 눈이 뒤집혀 가지고 5만 원씩만 주게 되면 통일교회에 올 사람이 수두룩하다구요. 이것을 한번 해볼 거예요. 내가 6억이라는 돈만 있으면 한 천 명을 일년 동안 전부 다 통일교회 교인을 만들 수 있는 거라구요. 6억 원쯤은 내가 일년 동안에 댈 수 있다구. 그렇게 하면 좋겠지? 우리 통일교인들, 좋겠지? 그거 교회 짓는다고 힘들일 필요 있어요? 교회를 짓긴 뭘 지어요, 교회가 많은데? 통일교회는 기성교회 들어가서 예배 볼 테니까 문 열어라…. 내가 누구든지 통일교회에 와서 강연해라 그랬는데, 통일교회에 갔다간 말려든다….그것 재미있지요?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방에 전도 나가서 그 지방 기성교회 목사를 세 번만 찾아가면 목사들이 뒷문으로 도망갑니다. 옛날에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뒷문으로 출입하더니 요즘에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뒷문 출입을 한다고요. (웃음) 지금은 그러고 있다 이거예요.
아침에 햇빛이 나면 그림자는 서쪽으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낮이 지나면 서쪽으로 기울던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것은 천지의 이치입니다.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세상에서 말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나온 지 몇십 년 됐어요? 기성교단에서는 지금까지 문선생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는 통일교회와 밀서 통첩이 왔다갔다하는 줄 모르고 있더라! 이런 말 기성교회 교인들이 와서 들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요전에 통일교회를 심하게 반대하던 대학교수가 통일교회가 어제도 어떤 신문에 나고, 오늘도 신문에 나니 '아이쿠, 통일교회가 언제 이렇게 컸나! 반대 성명만 주로 하다 보니 아이쿠, 큰일 났구나!' 요거 요렇게 됐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상 식구들을 사랑하라' 하면. 뒷맛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패들이 되었다면 그 패들은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래도 그 패들은 가망성이 있습니다. 왜? 효자는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부탁할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냐?
효자에게 훈시할 수 있는 부모라면 그 부모는 '나와 같이 너희 형제를 사랑하라. 나보다 너희 형제들끼리 더 하나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부모는 나빠한다?「좋아한다」 다 아는구만. 통일교회 교인들, 선생님보다도 여러분 끼리끼리 더 사랑하라' 그거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맞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했어요,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왜 안 했어요? 왜? 몰라서 안 했어요, 알고도 안 했어요? 알고도 안 했으면 벌을 받아야 되고, 몰라서 안 했으면 이제부터 해야 됩니다. 그래, 몰라서 안 했겠지요?(웃음) 그럴 때는 대답이라도 '예!'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몰라서 안 했지요?「예」(웃음) 자, 그러면 이제부터 알았으니까 해야 되겠습니다.
지방에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들, 여러분, 이번 3년 기간은 통일교회의 특별한 때입니다. 안 가면 안 될 때입니다. 한 국가가 뒤넘이치고 세계가 뒤넘이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에 휩쓸려 내려가고 거기에 스쳐 가지고 희생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미국을 떠나면서 기도하고 왔어요. 그런 말도 비추고 온 거라구요. 그런데 아니나 달라 그런 사실이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본부에 보고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불의의 사고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벌을 받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가는 것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벌을 받아서 그렇든가, 나라나 남을 위해서 대신 제물이 되든가, 두 가지 비참상이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잘 믿다가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닙니다. 잘살고 있는 식구들을 위해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통일교회 사람들을 위해서 타계했다고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니냐. 선생님은 그걸 알기 때문에…. 갈 길이 바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식구들이 있으면 얼른 달려가서 자기 문제와 같이 염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때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택리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앞으로는 청평을 중심삼고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하늘에 기도하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이 있으면 내가 어서 책임해야 되겠다…. 여러분은 그런 때 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계에 가는 것은 안 됐지만 그들을 통해 가지고 통일 교회에 하늘의 두터운 인연을 남기고, 여러분들이 형제지간에 사랑하지 못했는데 사랑의 길을 닦고 간다면 그들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냐.
지방에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찾아가 보았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염려하느냐 이거예요. 자기 아들딸들을 공부시키면서 학비를 못 대어 가지고 빌리러 다니는 부모들은 많을 것입니다.
뜻의 길을 위해서 창피를 불구하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불구하고, 망신도 불구하고, 체면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 가지고 하늘의 슬픈 사정을 통고하러 다니다가 면박받아 가지고 돌아설 때에, 하늘이 나를 대하는 심정이 어떻겠느냐? 그러한 시간과 그러한 놀음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하늘의 사랑권내에 가까와지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선생님을 위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선생님은 걱정 안 해줘도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걱정하지 마라 이거예요. 선생님은 선생님 갈 길을 응당 밤이나 낮이나 가고 있습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하듯이, 생각하듯이 식구들끼리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세계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세계 인류를 위해서 해야 할 책임을 지고 나가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료를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이 금후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부모의 입장에서 모심을 받는다면 부모의 입장인 하나님은 자녀 되는 자들 앞에 하나님을 위하듯이 사람을 위하라고 할 것이고, 사람을 위하듯이 나라를 위하라고, 만물을 위하라고 가르쳐 줄 것이 아니냐. 그것 외에는 부모로서 최후에 남길 유언이 없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고….
오늘이 9월10일…. 요 9월까지 넘어가게 되면 통일교회도 큰 고개를 하나 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넘고 있어요. 남북이 교류하는 문제는…. 선생님이 1972년은 역사적인 해라고 말하던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냐. 어쩌면 한 개인이 말했던 이 말이, 세계적인 정세가, 오늘날 통일교회의 나가는 길과 더불어 맞아떨어지는 놀음이 목전에서 전개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심각하고 책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 내가 여러분들을 지도했던 것은 통일교회가 노동자 농민을 위한 것을 놓고 공산당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저들은 틀림없이 그런 일을 했다고 증거할 수 있는 실적을 남한에 남기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60년대부터 우리가 싸워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려면 통일교회 자체에 있어서는 그러한 재요를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제는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남한국민은 물론이지만 공산당까지도 머리를 숙이고,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는 재료를 얼마나 남기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싸워 나오고 소원해 나오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여러분,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만약에 북한이 열리는 날에는 통일교인은 북한에 가 가지고 지금 공산당들이 국민을 사랑하던 몇백 배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사람들 앞에 안팎으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외적으로는 이론적인 면에서, 내적으로는 심정적인 면에서 실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 심정이 인간만을 위한 심정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으로는 공산당을 감동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을 중심삼은 심정적 전통을 가지고야 공산당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새삼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바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했다는 공증을 받고 북한을 사랑했다는 공증을 받게 되면, 그래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막연하게나마 하늘길을 갈 수 있는 방향성이라도 제시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제시된 방향성은 새로운 민족사상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선생님은 이것을 바라서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종교계나 학계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통일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9월은 큰 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지금 큰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차제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빠르면 빠르고 더디면 더디고 생각지도 않은 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사건이 벌어지지요? 금년 올림픽 대회를 보라구요. 독일이 뮌헨에 지금까지 올림픽 역사에 없는 스타디움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설비를 해 가지고 독일 국민의 우월성을 자랑하려고 생각했던 것이 하루 아침에 전부 다 꺾여 나갈 줄이야. 그걸 누가 알았어요? 그것을 누가 꿈에도 생각했어요? 인간의 계획과 인간의 꿈이 아무리 높고 아무리 멋지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루 아침에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북도 그렇지요? 김일성이 아무리 자기의 독재체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유일사상으로 전북한 주민들을 무장시켰다 하더라도 영계에서 호출 명령만 하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 사람만 교체하게 되면 교체 안 한 남한보다 못하게 되는 거라구요. 지금 소련을 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동기를 누가 만드느냐? 그런 동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늘이 보기에 이 백성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길도 생겨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선두에 서서…. 하나님을 아는 무리들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도 정성들여 해야 할 것이고, 노력도 정성들여 해야 되겠다는 것을 여러분이 결심해야 되겠어요. 알겠지요?「예」 효자 되는 길을 알았어요.
그러면 효자로서 갈 길은 만민을 사랑하는 것, 세계를 하나 만들어서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어 드리는 것, 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최대의 가르침이 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렇게 알고 형제를 위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으면, 또 못 했으면 그런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아들딸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푼푼이 모은 돈에서 십일조라도 해 가지고 그것으로 식구들을 돕고 협조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는 데에서만이 여러분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의 선두에 서서 일하는 사람들의 배후에서도, 후방에서도 같이 동참했다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을 알고, 그런 노력을 해주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 때로는 통일교회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이런 비참한 자리에 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만일에 통일교회가 없었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하는 책임을 추궁할 때도 있었사옵니다.
내가 없었으면 이러한 결과도 가져오지 않았을는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나날이었지만, 당신의 지도가 있었기 때문에 따라가야 할 길을 안 그날부터 몸부림치는 생활을 지금까지 밀고 나왔나이다.
그러나 저희가 당신의 협조를 받고 당신의 동정을 받기를 원치 않더라도 당신은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저희밖에 없었기 때문에 저희들을 통하여서 당신의 사정을 통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계시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당신이 가장 불쌍한 분인 것을 느끼옵니다.
효도를 다했다는 사람은 효자의 전통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충신이 되었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충신의 역사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을 걷더라도 효자 못 되었다는 마음을 더더욱 느끼는 자만이 효자의 길을 남길 것이고, 충신의 절개를 지키면서도 충신이 못 되었다고 하늘과 땅 앞에 부끄러움을 가질 줄 아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 충신으로 영원히 남아질 것이옵니다.
아버님! 통일교회 자체를 보게 된다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잡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운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했고, 남모르는 피어린 투쟁의 행로를 거쳐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우리가 맞게 되면 아버지께서 심정적인 매를 맞았다는 것을, 우리가 몰리면 아버지께서 비참한 참소와 탄식의 자리에 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금년 9월10일, 아버님이여! 남북이 엇갈린 인연 가운데서, 남과 북이 교차될 수 있는 이 시점에 오늘 이날을 맞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이날 저희들의 사연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웬일인지 이들과 멀리하시려고 하는 것을 엿볼 때마다, 애달픈 심정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한 사람을 기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길러진 자들을 수습하시어, 그들을 내세우셔서 아버지의 중차대한 책임을 맡겨 주기를 바라는 것이 스승의 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통일의 무리를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들은 나라 없이, 이들은 가정 없이…. 사회의 사람들과 같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걸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늘에서 살아 나온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불쌍한 책임자를 따라왔기 때문에 불쌍한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이 아니옵니다. 이는 아버지가 불쌍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아버지가 자유분방할 수 있는 자유의 한날을 맞을 때에야 비로소 이들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광명한 새날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아오니, 오늘도 극복, 내일도 극복하면서 투쟁의 길에 있어서 지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겸손히 엎드려 아버지의 옷깃을 붙들고 놓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었으면 놓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목을 껴안았으면 내 손이 떨어지더라도 놓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이 가는 길 앞에 언제나 문제거리가 되는 존재가 되더라도, 그 문제거리가 자기를 위한 문제거리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문제거리로 제시할 때는, 붙든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요 붙안은 팔을 부리칠 수 없는 하늘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의 갈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바쁜 걸음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새로운 결심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효자 되는 길을 저희가 알았고, 효자로서 가야 할 길을 알았사오니, 이제 가야 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엇갈린 길에 있어서 아벨이 가는 길이 효자의 길이었기 때문에 아벨은 죽음을 대신하여 갔던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이들이 갈 길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결정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국가적이요 세계사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한때가 이때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총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총궐기해야 되겠습니다. 일체 일심을 가누어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야 되겠습니다.
사랑하기에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아들딸을 맞고, 완성된 효 그 자체의 모습을 맞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향해서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진격해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곳이라도 개의치 않고 갈 것을 결의하고 나선 몸이오니, 아버지,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이날을 기억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서글픈 하늘의 마음을 더듬어서 하염없는 눈물로 당신의 옷깃을 적시며 당신의 옷소매에 엎드려서 천년 만년 울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아들딸이 있거들랑, 아버지여, 그들을 잊지 마시옵소서. 그들을 붙안고 사연을 통고하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걸어나온 길 가운데서 못난 것을 지도하시고 못난 것을 보호하시던 아버지의 놀라우신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자기를 망각하고, 아버지께서 남긴 사명을 다하려고 자기를 잃어버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안내받아야 할 것이 여생의 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한 나라를 차지하고, 한 세계를 바라 보고, 내 아들 내 딸은 다 모이라고 세계를 향하여 통고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일구월심 당신의 소원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날을 위해 저희들은 모였습니다. 그날을 위해서, 그 시간을 위해서, 그때를 위해서 저희들은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한곳으로 가야 되겠습니다. 이끄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당신의 자녀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효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효자의 길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봐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불쌍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보다 더 불쌍한 분이 아버지인 것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수난길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 이상의 수난길에 서 있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를 깊이 아는 데는 누구보다도 수난당하는 사람의 친구가 됨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경계선을 왕래하는 그 자리를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비장한 자리를 알 수 있는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그런 것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효자의 가는 길을 각자가 다 가게 허락하시옵고, 자기의 후손들과 주위 환경에 이것을 전통으로 남기고 가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고, 세계의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을 또한 기억하여 주옵소서. 개척노정의 선두에 선 어린 딸들 그 심정을 부디 기억하여 주시어서 백배 천배로 갚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자기가 빚지지 않기를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만복을 베푸시옵고, 만배로 갚아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무리들이 이곳을,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청파동이라는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있는 그 정성 앞에 저희들이 교단적인 제물의 사명을 다하게 하여 주옵고, 오명을 남기는 수치스러운 무리가 없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오니,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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