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9월 3일이옵니다. 이달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맞는 안식일 이 아침에 당신의 자비로우심과 거룩한 은사가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의 식구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이 시간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일률적인 은사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남북이 엇갈려 있는 이 한반도를 당신께서 사랑하시고, 지도하시고, 주관하시사 당신의 소원과 더불어 승리의 한날을 맞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북이 교통하게 된 모든 내적 사연은 허락하신 뜻을 이루고 당신의 소원의 나라를 위하여 하늘이 배후에서 움직인 것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고 오는 이 기간에 그 모든 책임자들의 마음을 하늘이 감동감화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곳을 향하여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그 길을 당신의 뜻과 더불어 뜻을 대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이 보호하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제 13일까지 이 나라 이 백성이 하나되어, 금후의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는 하늘의 마음 이상 가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없겠기 때문에 하늘을 추앙하는 간곡한 통일적인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남한 백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 앞에 찾아오는 북한 대표들도 하늘이 원하는 뜻 앞에 자연히 하나될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미리 준비하여 주시옵소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때에 한반도와 한민족이 당신이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그 권위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와 같은 정세를 놓고 하늘을 중심삼고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들은 정성을 들여 오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간에, 아버지여, 저희들의 부족한 정성을 묶어 드리고 있사오니, 저희들의 원하는 뜻을 아시는 아버님, 철부지한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옵고, 당신의 심정으로 저희를 사랑하시옵고, 당신의 뜻의 길에서 저희들이 엄숙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당신이 기뻐하는 걸음을 걸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충신의 도리를 다하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십여 년 세월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저희들은 자유의 한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다가오는 그날들을 소망과 더불어 슬픔을 머금으면서 아버지께서 남기신 한스러운 복귀의 길을 더듬어왔습니다. 지내고 나서 돌이켜볼 때에 불충을 자각하며 불효를 자각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옵니다.
지난날이 그러하였거든 오늘부터, 이 시간부터 그 길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반성하는 자신을 붙안고 하늘 앞에 애원하고 절규하면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뜻을 향하여 생명을 다 바쳐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냘픈 무리들을,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만이 저희의 위로요, 하늘만이 저희의 목표요, 하늘만이 저희의 지도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외로와도 하늘과 더불어, 고통스러워도 하늘과 더불어, 기가 막힌 슬픈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기준을 맞추기 위하여 움직이는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께서 보호하시옵소서. 역사는 이와 같은 무리들로 하여금 사망선을 밟고 새로운 생명의 인연길을 가려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도 그 싸움을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무리들을 바라볼 때, 당신이 표준하는 최후의 결전장을 그 누가 맡아 주겠느냐, 누구에게 맡기겠느냐고, 그런 염려를 하게하는 무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고 또 가고 또 가서 당신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당신이 칭찬을 하면서 저희들을 붙안고 목을 안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를 흠모하면서 저희들의 몸과 마음을 이 시간 다시 다짐하고 이 9월 한달을 아버지 앞에 또 맡기오며,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지금 남한 땅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일선에 나서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의 활동이 당신의 뜻 앞에 일치되어야 되겠습니다. 한민족이 가야 할 운명길만이 아니라 세계가 가야 할 운명길, 천륜이 찾아오는 길에 보조를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비틀걸음을 걸으면서라도 넘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에 쓰러지는 일이 있거들랑 당신을 향하여, 당신 앞에 가까이 쓰러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뒤로 쓰러져서는 안 될 것이고, 옆으로 쓰러져서도 안 되겠습니다. 쓰러지더라도 앞을 향하여 쓰러져야 할 저희들의 사정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필연코 가야 할 복귀의 길에 저희들은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이 천리 만리길이라고 할 때는 저희들이 몇 리를 와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다가 돌아서게 될 때는 하늘이 붙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이요, 사탄만이 좋아라 하며 이를 몰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발을 뺄래야 뺄 수 없는 외통길에 들어선 저희들을, 아버지여, 그럴 수 있는 위험성이 있거들랑 당신이 주인으로서 하나의 방패를 세우시사 저희들을 몰아내시옵소서. 그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아버지께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저희들은 하늘을 슬프게 한 일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것을 이달을 맞이하여 이 시간 이 아침에 당신 앞에 회개하고, 당신 앞에 직고하는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그렇게도 고대하던 통일의 날이 어서 이 땅 위에 오게 하여 주시옵고, 그렇게 찾아오던, 그렇게 탕감의 길을 개척해 오면서 바라던 당신의 뜻의 나라를 어서 이 땅 위에 이루시옵소서. 당신이 그렇게도 잊을 수 없는 창조의 위업을 어서 완성하시사, 당신의 영광을 만천주에 자랑하고, 당신의 높으신 사랑을 온 피조만물 앞에 덮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어린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어린아이 중에서도 배부른 어린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배고파 가지고 이 시간, 어머니의 가슴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고, 당신만을 흠모하고 당신만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자체가 옷이야 입었든 안 입었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이 품어 주는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어버이가 필요한 저희들임을 아시는 아버지여, 저희의 모든 것을 맡으시사 저희를 품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진정 본연의 심정을 가지신 아버지, 본연의 뜻을 이루시려는 아버지의 뜻길, 그 과정에는 역사시대에 수많은 심정의 소모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정을 투입한 것은 당신의 심정의 대상인 자녀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못났든 잘났든 저희들에게는 당신의 피가 연결되어 있고, 당신의 뼈살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친히 느껴 가지고 그의 외로움을 당신이 억제할 수 있는 외로움으로 폭발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과 직결될 수 있는, 당신의 생명을 이어받은 아들의 인연을 튼튼히 갖고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이 슬프거들랑 저희 자신들도 슬퍼야 되겠고, 당신이 원통하거들랑 저희들도 원통해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어린 것들의 손목을 묶으시옵소서.
가야 할 험산준령을 기필코 넘기 위해서 이것들의 손목을 얽어매서라도 기필코 끌고라도 가야 할 당신의 사명을 생각하게 될 때에, 당신은 불쌍한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 앞에 지성을 다하는 효성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 모양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천년 한의 심정을 억제할 수 없는 타락의 후예임을 자각하면서, 당신의 긍휼의 심정을 보다 높이 구할 수 있는 어린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고아의 모습은 저희들도 원치 않고 하늘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버이의 입장에서 고아의 자리에 남겨 놓고, 그 자리를 찾아갈 수 없는 슬픈 마음을 품은 그 어버이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슬픈 자요, 가장 비참한 자요, 가장 외로운 자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사랑의 마음과 그 두터운 인자하심이 오늘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전후 좌후 상하에서 저희와 더불어 인연줄을 끊지 못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쓰러지더라도 양손을 하늘을 향하여 벌리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최후를 하늘 앞에 보고하고 쓰러질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진, 자녀로서의 명분을 갖추는 측은한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은 그럴 수 있는 자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희들 앞에 부과된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9월을 당신이 승리의 달로써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때에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는, 세계의 새로운 명령을 받고 일선에 나선 기동대원들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들이 바라는 그 어떤 종착점이 아니옵니다. 당신이 바라는 출발점을 향하여 지금 복귀의 한의 길을 가고 있사오매, 때로는 외로운 일도 있을 것이요, 엇갈린 사정에 부딪쳐 가지고 천 갈래 만 갈래 깨어지는 심정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사연들도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남과 같은 환경에서 남과 같은 사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남과 같지 못한 환경에서 남과 같지 못한 사명을 가진,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명이 아닌 이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진 이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위신을 보시사 이들의 가는 걸음 위에는 생명줄이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과 줄이 여기에 연결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당신의 승리의 인연이 여기에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에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을 지키시옵고,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을 맡은 통일의 무리들의 가는 걸음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더디더라도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따라서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부디 원하는 뜻 앞에 부름받은 몸들, 슬픔의 짐을 벗고 당신의 소원의 짐과 바꿔 질 수 있는 그 책임을 다시 한번 이어받는 이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제 몇 달 동안에 해야 할 중대한 책임들을 앞에 놓고 일본에서 지금 싸우고 있는 모든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달과 이해와 이 70년대가 당신의 경륜 앞에 일치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인 자녀들의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뜻을 사모하는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흠모와 사모의 심정이 어려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거룩하고 자랑스런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인간들은 제 나름대로 생의 목적을 찾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많은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길을 찾아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요, 인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그러한 입장에 있음과 동시에 가정도 가정 나름대로의 하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 말하면 하나의 나라면 나라,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도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륜이 남아 있는 한 인간으로써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으로써의 길뿐만이 아니라, 만일에 여기에 천륜이 있다 할 때에는 천륜이 가야 할 길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더불어 가고 싶어하는 그런 길이 필연코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을 두고 보면 그 개인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몸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고,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습니다. 몸이 원하는 길로 따라가게 될 때는 마음과 상충되는 목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요, 또 그런 귀결점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을 따라서 가게 된다면 마음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입장에 선 것이 우리 개개의 인간임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러한 인간들의 모습이 확대되어 이루어진 것이 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도 역시 외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내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민주세계의 사람들이요, 외적인 세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공산세계의 사람인 것입니다.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이 어디에서 출발되느냐 하면 '나'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나에서 몸의 목적과 마음의 목적이 분립돼 있기 때문에, 결과에 있어서는 두 세계의 종착점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인류요 이 세계의 정상인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뜻은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외적인 몸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는 길도 아니요. 내적인 마음의 뜻을 따라가는 길도 아닙니다. 그 내 뜻은 어떠한 뜻이냐? 몸과 마음이 합하여 가지고 일방적인 목적이 아니라 둘이 합한 것보다 가치적인 목적을 중심삼고 가야 할 길이 바로 나를 중심삼은 인생으로서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직선을 그을 수 있는 목적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두고 수많은 인류와 뜻 있는 위인과 성현들이 죽고 혹은 희생하여 갔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해결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인류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로서 귀결될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필연적인 목적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했다고 자기를 들어 만피조세계에 혹은 만천주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숙명적인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일치된 그 목적점을 옛사람들도 찾아 나왔고, 지금의 우리들도 그것을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어떠한 성인이 선(總)을 그어 가지고…. '직선' 하게 되면 두 점 사이에 그어진 선을 말하는데, 인간으로서 이렇게 직선과 같이 그어질 수 있는 하나의 목적점을 해결지어 준 성현이 있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방향에 접근시키는 길은 남겨 놓고 있지마는 '그 방향이 이것이다. 틀림없이 이것이고 여기에 일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정을 지어 놓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 가치적인 나로서 찾아가야 할 길을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설정해 놓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자리는 가고 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가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현재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미래에 찾아올 자리이기 때문에, 미래를 향하여서만 모색할 수 있는, 참다운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참다운 나로서 통일된 하나의 길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은 현재를 잊고 미래를 추구해 나온 것이 역사적 방향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그것은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을 밟고 넘어서는 미래에서만이 그런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미래에 하나의 깃점이 완성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준을 향하여 뜻 있는 사람, 혹은 인륜을 넘어서 가지고 천륜을 바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곳을 향하여 언제나 자기의 생애를 바치면서 노력해 나오고 혹은 숭상해 나온 그런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길이 종교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길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종교의 길 앞에는 그 종교가 머무는 그때에 사명을 감당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는 그때를 부정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의 길로 몰아내기 위한 방향성이 지금까지 남아져 나오고 있으며, 지금 이후에도 또다시 그 길은 개척적인 길로서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의 역사 가운데는 예언자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대 시대 마다 그 시대를 대표한 예언자가 나타나 가지고 미래의 뜻 앞에 그 방향이 일치할 수 있는 귀결점을 따라가야 된다고 예언하면서, 종교의 방향을 우리 인간이 소원하는 그 목적에 일치될 수 있게끔 접근시켜 나오는 일들이 종교세계에서만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러한 예언자들이 나와서 예고하는 것은 그 시대에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미래에 머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 가지고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한 사람의 왕자로, 혹은 한 사람의 메시아의 사명을 짊어지고 천국 건설을 위해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왔기 때문에 천국이 올 수 있는 날이 접근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천국이 와 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그 당시에 제자들을 이끌고 다닌 3년 공생애 생활이 천국 안의 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생활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은 천국을 향하는 자리에서 졌지 천국 안에서 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한 말은 와 있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와 있지 못한 자리에서 다시 오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예수님이 바라던 천국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그 자리는 오늘날 인류역사 과정에 이미 나타났던 자리냐, 또 현재 나타난 자리냐,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냐 할 때에, 그 자리는 현재 나타난 자리도 아니요 이미 나타났던 자리도 아닙니다. 그 자리는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로서 소개해 주고 가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명은 이 시대에만 국한된 사명이 아니라, 미래를 이어받기 위한 사명이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를 제외한 수많은 종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 중에 인류가 바라는 목적의 종착점에 도달해서 '이리 와야만 산다. 이리 와야만 살 수 있다' 하는 자신을 가진 종교, 이것이 필연적인 귀결점이라고 주장한 종교가 있었느냐 하면 없는 것입니다. 내일을 향하여, 미래의 하나의 승리적 귀결점을 향하여, 필연적인 목적점을 향하여 점진적인 과정을 다짐하면서 승리의 한 미래상을 그려 나온 것이 종교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상적인 면, 혹은 내적인 면의 대표로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 종교라고 할 때, 종교의 사상을 중심한 문화권, 또 종교생활하는 사람들이 가려 나온 역사의 노정을 밟아가야 할 운명길을 가려 오는 시대를 두고 볼 때,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도 그 역사권내에 있는 인간이 소망하는 시대로서 맞을 수 있는 시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밟고 넘어가고, 그것을 부정하고 넘어가고, 그것을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는 미래를 향함에 있어서 준비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상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와 종교와 사상, 이 세 가지가 추구하는 하나의 목표는, 인간으로서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구상하고, 만우주 앞에 승리한 인생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랑할 수 있는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그 최후의 목적점을 향하여 보다 앞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가 선두에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종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어떤 나라가 그런 이상세계를 향하여, 통일된 하나의 목적세계를 향하여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나라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 어떠한 사상을 주장하는 주의가 있으면, 어느 주의 주장이 나라를 넘어 세계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느냐 할 때, 그런 선두에 선 주의가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있되 이 세 가지는, 종교면 종교 나름대로 분립된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는 나라와 더불어 하나의 귀결점에 봉착할 수 있고, 나라는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와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필연적인 목적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적인 기착점을 발견하는 데서만이 종교의 사명은 끝날 것입니다. 거기에서 인간이 찾아 나온 역사적인 사명도 끝날 것이고 사상이 추구해 나오던 통일된 세계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종교를 중심삼은 어떠한 종교인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요 애국심을 중심삼은 어떠한 일개의 민족사상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어떠한 일방적인 사상이나 그런 주의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닐 것이 아니냐? 그 주의는 인생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의를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몸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의요, 마음을 대표할 수 있는 주의인 반면, 내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주의일 것입니다.
내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주의는 우리 가정이 여기에 기착하기를 소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이 바랄 수 있는 최종의 주의가 아닐 수 없는 것이요, 나라와 세계가 '이것만이 우리의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소망하던 것이다. 이것만이 필승의 길이다' 할 수 있는 전체의 기준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종교면 종교 나름대로, 혹은 어떠한 특정한 국민이면 국민 나름대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은 어떠한 사상을 중심삼고 그 주의면 주의 나름대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주의 가운데는 나라도 들어가 있어야 되고, 종교도 들어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나라도 들어가 있어야 되고, 주의도 포괄될 수 있는, 셋이 하나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점을 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역사시대에 추구해 나오던 보다 차원 높은 자리에서 나를 중심삼고 내가 바랄 수 있는 통일적인 주의는 현현을 볼 것입니다. 그 자리를 넘지 않고는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의 미명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소망의 새아침을 바랄 수 없는 것이요, 아침을 맞이하여 떠오르는 새로운 세계의 건국의 태양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만이 사랑하고, 자기만이 좋아하고, 자기만이 주장하고, 자기만이 생명을 걸고 싸우던 것이 자기에게 은사의 조건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를 믿는 자들은 그 종교가 자기를 넘어서야, 즉 자기 부정을 해가지고 부정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확고히 갖지 않고는 그는 패자로서 서러운 미완성의 자리에 머물지 않을래야 머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의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자기가 사랑하던 국가 그 자체를 중심삼고 '일방통행이다!'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국가사상을 초월할 수 있는 보다 새로운 국가사상을 가지고, 지금까지 애국애족하던 모든 전통적 사상을 버리고 비약할 수 있는 국가이념을 가진 국민이 되지 않고는 그 하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주의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를 중심삼고 그것만으로서 일방통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몸과 마음이 상충된 것이 어느 일방적인 면을 따라갈 수 있느냐?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마음을 대해서, 마음은 몸을 대해서 언제나 상충적인 면에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주체적 입장에 서기 위해 결렬된 입장에 있기에, 생애를 통한 투쟁의 길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위주해 가지고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것이 그 목적을 향하는 자리에서는 보다 차원이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보다 높은 차원을 가지고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다운 하나의 목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면 종교에도 지금까지 생명을 투입해 나오고, 전생애를 바쳐 나오던 신앙생활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끝날에는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것을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사상을 중심삼고도 공산주의 이상, 민주주의 이상 되는 그 무엇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부정하고 나타날 수 있는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이 바라는 필연적인 목적을 추구도 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자리에 도달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이 자기를 구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개 어떤 때에 실패하느냐? 자기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하는 자리에서 실패가 벌어집니다. 춘하추동이 있으면 춘하추동을 두고 볼 때, 봄절기가 오는 것입니다. 봄절기가 오면 봄절기에만 고착되고자 하면 이는 일년을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봄은 변하여 가고 여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이 변하여 가고 가을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변하여 가지고 겨울이 찾아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과 겨울은 다른 것입니다. 중심이 다른 것입니다. 위치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시 사계절을 맞을 수 있는 일년의 맛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때이냐? 완전히 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정비할 것이냐? 어떠한 자리에서 정비할 것이냐? 그 무엇이라는 것은 미래를 위주로 하고 정비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정비해야 할 것이냐? 과거에서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당장 정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말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정비하라는 선포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비한 자리에 도달해 가지고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할 최후의 장벽이 아니냐. 자, 그러한 때가 어느 때냐? 바로 지금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할 때, 그 천국이 가까운 때가 언제냐?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겁니다. 일생을 두고 그 길을 바라게 되면 일생 동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생애 동안 언제든지 그러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현재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가진 사람이라야만 현재에 있어서 개인적인 심판을 모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사랑하는 그것에 고착되라고 말할 수 없는 결론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가정도 그러한 것입니다. 수많은 생애노정을 이어 가지고 역사가 지나가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그런 입장에 선 것이 인간들인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마지막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가 예수님 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세계적인 시대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부정할 수 있는 환경에 접어들어야 되기 때문에 번번이 인간이 그 환경을 붙들고 늘어지려고 하는 소성이 있고 소질이 있는 사실을 절대자가 알고 있는 이상 그 절대자는 부정하지 않을래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길로 내몰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정하지 않을래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길로, 종말시대로 내모는 것이 자연적으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마련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던 사람이, 애국애족하던 사람들이 나라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어떠한 주의 주장을 사랑하던 사람이 그 주의 주장만 사랑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종교면 종교를 중심삼고 자기 종파만을 사랑하던 사람도 한 종파만을 사랑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전부 다 부정의 여건이 감도는 세계정세는 우리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쁜 운세냐, 좋은 운세냐? 이것은 미래를 찾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좋은 운세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추구하고 미래의 새 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희망적인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현실을 바라보고 여기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지극히 비참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두 세계의 갈림길은 시작되는 것이며, 여기에서 두 사람의 형태는 서로 색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는 길이냐, 하늘이 가는 길이냐 하는 데서 그것이 결정되는 하나의 돌파구, 하나의 경계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남한이 가는 길과 북한이 가는 길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바라는 것은 남한 일파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북한 일파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양단된 입장에서 서로서로 자기의 주권을 주장하는 엇갈린 나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나라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두고 볼 때, 이 통일의 운세를 바라보고 있는 삼천만 민족,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백의민족, 그대 들이 차지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오늘 현재의 그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일의 통일의 나라는 달라야 됩니다. 역사가 달라야 하고, 수많은 종교가 달라져야 하고, 수많은 주의가 달라져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있는 세계 앞에 하나의 등잔과 같이 나타난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국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닙니다. 초월적인 민족관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나와야 됩니다. 초월적인 사상관을 제시할 수 있고, 초월적인 종교관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세계는 통일의 운세를 맞아, 천운이 있다면 천운과 더불어 규합해 가지고 역사시대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새로운 문화세계가 창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이 나온다 이겁니다.
그러면 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의 마음을 어디에서 찾느냐? 이것은 인간 끼리끼리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자체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북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27년 동안 노력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과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을 수 있는 통일된 나, 즉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목적을 향하여 가기 위해서는,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해 가지고 승리의 영광을 온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 살고 있는 환경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부정하고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그외의 자리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있나니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라! 그래서 절망과 낙망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을 이어 놓았습니다.
'끝날이 되면 너희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한 이 메시아사상이야 말로 역사시대에 보다 새로운 이념을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지 않고는 바랄 수 있는 다른 그 무엇이 나타날 성싶지 않습니다. 메시아의 뜻을 이어받은 종교에도 이제 끝날이 왔습니다. 혹은 애국애족해 나오던 그런 나라도 끝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은 나라를 넘어 민족을 버리고 자기의 모든 환경요건을 부정시키던 주의 주장도 이제는 끝날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 여러분들에게는 정의로운 자리에서 하여야 할, 필연적인 자기 자체를 정비하고 공작을 해 놓아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정해 놔라, 현실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시정해 놔라 이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시정하느냐? 그 자체를 중심삼고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죄를 지은 그 자리를 옹호하는 자리에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혁신하고 격파하고 타파하고 극복하는 자리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극복의 자리는 현재의 설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제 2의 소망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헌 것을 타파하고 오늘을 정비해야 정비가 되지 그러지 않고는 정비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자기가 사랑하던 가정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내 갈 길의 원수가 되고, 자식이 내 갈 길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불가피한 사정입니다. 여러분이 피난길을 나선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다 잘 알거예요. 피난가려고 할 때, 아버지는 아직 일이 채 끝나지 않았다구요. 아버지는 '아 이거 며칠만 더 있으면 일확천금할 텐데' 하고 있고, 여편네는 '당장 가야 할 텐데' 하고, 또 아들도 '남들은 다 가는데 우리도 떠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야, 야 조금만 기다려라, 며칠만.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을 봐도 아무 일 없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니?' 한다면 그것은 상습화된 관념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것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 어버이면 그 어버이가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단안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부활이 출발되는 순간이요, 미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이 아버지를 붙들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남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버지를 버려야 돼요. 남편을 버려야 돼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러한 절박한 목적을 바라보면서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집안 식구가 원수였습니다. 남편이 가는 길과 아내가 가는 길이 서로 엇갈려 가지고 서로 브레이크를 거니 원수지요. 딴 사람이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독교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끊고 넘어서야 할 텐데 그걸 붙들고 늘어졌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 이 민족을 중심삼고 늘어졌다가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보다 차원 높은 내일의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적인 정기를 이어받아야 세계의 국민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 말을 여러분이 잘못 들으면 곤란하다구요.
끝날에는 나를 공인하던, 나의 가치를 높여 주던 그것이 나를 치는 것입니다. 나와 대립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공인하던 그것이 나에게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지요. 이것은 모두 역설적인 결론이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어요. 원수가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집안에 있다고 했다구요. 성경의 골자사상이 그거라구요. 여러분이 기도를 하게 될 때에, 기성교회라든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통일교회 교인도 마찬가지예요. 나라와 세계가 이런 판국에 있는데 내 아들딸이 어쩌고 하지요? 나라를 구해 놓은 다음에야 내 아들딸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갈 길을 가려 간 다음에야 내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이 아니냐, 필연적인 길이 아니냐 이겁니다.
오늘 내가 당도하여 밥을 먹는 그 자리가 오늘의 희망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차피 부정당해야 되고, 극복해야 할 자리입니다. 부정당하게 할 수 있는 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늘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곳을 향해서 이미 출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반대를 받되 달가이 받아라! 그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사회의 규탄을 받되 반대하면서 받지 마라! 악한 자도 최후에 죽일 때는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죽이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악이 선을 대해서 치거들랑 거기에 맞서서 치지 말라! 그에게도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 줘라! 그래야 해결이 나는 겁니다. 같이 치게 되면 '이 녀석아' 하며 따라가서 복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상이야말로 위대한 사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거기에서 비로소…. 원수가 따라와 가지고 치려고 했는데 자기에게 복을 빌고 있으니 칠 수 있어요? 복을 빌고 있는데 쳤다가는 자기가 망하는 겁니다. 그러니 종말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최후의 심정을 중심삼고 이상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해결 방법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아니었더냐?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주의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지도하던 목사님이 나의 생명의 길잡이가 못 된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던 문선생이 나의 생명의 길잡이가 못 된다.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살면 통일교회는 망한다구요. 통일교회의 현재의 자리를 부정할 수 있는 강력한 명령길이 있어야만 사는 것입니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 그 자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전체가 '아이구, 힘들어 죽겠다'고 할 때, 교회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될 때, 나라는 거기에서 소생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죽겠다. 그렇지만 가야 되겠다' 할 때는 그 나라는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학자들이여, 자기가 추구하고 사랑하던 그 학문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종교를 숭상하는 종교지도자들이여! 높은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가르치던 그 단상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면 그 문선생이라는 이름이 자기의 목을 자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서 정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쁜 걸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극복의 일로를 다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엇갈린 길을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이어받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색다른 길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도 그러한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우리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뿐만이 아니고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인륜뿐만이 아니라 천륜이 있다면 그 천륜은 천륜을 위주로 한 인륜을 세우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천륜을 부정한 인륜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인륜을 부정한 천륜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왜? 인륜은 부정당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은 본래 인륜과 상충된 역사적 내용을 지녀야 되고, 상충된 역사적 방향을 지녀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시대의 인간과 더불어, 역사시대의 인륜의 환경과 더불어 타협이라는 것은 하실 수 없습니다. 상충이다 이겁니다. 인륜이 강할 때는 천륜을 깔고 앉아 가지고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천륜이 인륜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인륜이 천륜을 망하게 하여 파탄시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륜은 어차피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은 먼저고 위이기 때문에…. 그릇이 다 지어지게 되면 뚜껑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뚜껑을 만들고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안 그래요? 밥바리면 밥바리를 만들어라 하게 되면 뚜껑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밥바리를 만드는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인륜을 바로잡아 놓고 천륜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인륜이 합할 수 있는 귀일점…. 출발을 위해서 찾아오는 기차가 있다면 인륜은 종착점을 향하여 찾아가는 기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의 방향이 같은 방향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느냐? 아닙니다. 엇갈려 있습니다. 저기서는 이리 왔고 여기서는 저리 갔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갈아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갈아타려면 그냥 갈아탈 수 없습니다. 수속을 해야 됩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빨리 수속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또 수속방법이 있어야 됩니다. 전세계가 그러한 천륜과 인륜이 엇갈린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도 그런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몸뚱이가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이 서로 엇갈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어떻게 잡을 수 있느냐? 한꺼번에 갈아타든가 할 수 있는 무엇이 마련돼야 일방향을 향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의 고충을 벗어난 제 2의 인간이 되어 역사적인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꿔 타려면 그 수속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수속은 집안끼리 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 개인 개인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수속을 할 때, '아이고, 우리 아버지의 아들딸이니까. 아이고 민족에 같이 있겠습니다' 해도 그 민족이 공인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우리 부모인데 그 부모의 정을 끊을 수 있느냐? 지금까지 인륜이 끊지 못한 그 정을 끊을 수 있느냐? 같이 가야 될 텐데…' 하겠지만 안 됩니다. 끊어 버린다구요. 지금이 그런 때라는 거예요.
부부도 둘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수속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은 가정끼리, 종족은 종족끼리, 민족은 민족끼리, 국가는 국가끼리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천륜은 사랑이요,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은 끝날에는 다 깨뜨려 놓습니다. 깨어지는 운세가 오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어서 깨져라. 이 놈의 악한 세상아!’저주와 더불어 절망 하지 말고,‘어서 지나가라, 이 놈의 세상아! 공산주의여! 민주세계여! 어서 지나가라!’지나가게 마련입니다. 공산주의도….
인간의 권위라는 것은 돈이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권위는 하나님이 인정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망각하고 돈에 팔려 가는 주권싸움이 있으면 그건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사람을 팔고 사고, 권세를 팔고 사고 하면 그건 마지막입니다. 민주세계도 문제예요. 여러분, 미국의 선거나 일본의 선거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다 알지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권위라는 것은 하나님이 설정하게 마련이지, 돈이 설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악한 인륜세계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선한 인륜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과 하나님과는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원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야, 지나가라! 공산세계야, 지나가라! 이것은 인간의 종말시대에 있어서 종지종말을 고하기 위한 최후의 하나의 현상이거늘, 이때에 우리는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공산주의 보다도, 민주세계 보다도, 혹은 그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단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통일된 기준 앞에서 세계가 하나되자. 하나되자! 무엇에? 더 높은 곳에 하나되자. 보다 가치 있는 곳에 하나되자. 거기에서만이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를 저버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애국자는 못 될망정 애국자를 지도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자가 성인이라면, 하늘땅의 사랑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알겠어요? 성인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어디 섰더뇨? 석가는 어디 섰더뇨? 예수는 어디 섰더뇨? 그 자리를 찾아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의 수많은 성인들은 그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길을 소개했던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보다 차원 높은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나라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부정하더라도, 부정하는 핍박의 길, 부정하는 사회의 질식된 환경에 서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미래를 중심삼은 자기를 긍정 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우리는 지금까지 하려고 했고, 또 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최후의 결정을 봐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숨막히는 결정. 예스(yes)냐, 노(no)냐? 양자간에 택일을 해야 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통일교인은 망하는 거라구요. 망하는 거라구요. 안 망할래야 안 망할 수 없습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기성교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세계도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안 나올 수 없다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오늘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내일에 머물 수 있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야 되겠다구요. 달려 나가는 데 있어서는 세계의 어느 누가, 어떠한 애국자, 어떠한 성인 철인들이 구상하지 못했던 본래의 나의 목적점, 이것을 귀결시켜 주고, 이것을 상속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역사와 미래를 향한 그 자리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가지고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의 사상은 역사를 끌고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품고 살림살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이라고 했고 신부라고 한 것입니다. 생활시대라구요. 그렇게 메시아를 위해여 엮어 왔던 4천년의 유대교의 역사가 유대교의 목을 찔러 죽일 줄이야 누가 알았느냐 이겁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결국은 세계를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목을 찔러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예요.
여러분이 가진 눈, 그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오늘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망합니다. 망해요. 내 듣는 것은 무엇을 향해 듣느냐? 오늘을 바라보고 듣다가는 망해요, 망해. 내 손은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오늘을 위해서 움직이면 망해요. 기가 막힌 말이지만 할수없다구요. 죽 얘기하면 그런 결론에 다 귀결된다구요. 밥을 먹되 나를 위해서, 내가 회사 가 가지고 무슨 기계 짜박지를 만들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면 그것은 망해요. 망해 둔 거라구요.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남을 위해서 행동해라!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 죽어도 그렇다. 살아도 그렇다' 부정 가운데는 부정보다 강한 긍정이 감도는 자리에서 부정이 나와야 됩니다. 긍정도, 긍정을 하는 것은 부정을 넘어선 자리에서 가지고 긍정해라. 알아듣기에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예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현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공을, 종교단체가 반공을 해서는 뭘해, 천당가면 그만이지. 안 그래요? 일방적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승공을 해서 뭘해요? 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뼈다귀도 없는 무골충의 사나이가 아니예요. 세계를 때려 한꺼번에 몽땅 가루를 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악독하다면 악독하고, 선하다면 선한 사람입니다. 중간 패가 아니다 이겁니다. 지독한 패다 이겁니다. 핍박을 받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닙니다. 배때기를 찔러 가지고 전부 다 절개해 가지고 소금에 절여 먹을 수 있을 만큼 악독한 사람이라구요.
그래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핍박을 달게 받아라 이겁니다. 원수를 사랑해라. 인간역사가 마지막이 되게 될 때, 원수를 갚기 위해 살던 무리들과 같이 움직이다가 죽어 가지고는 그 원수를 복수하겠다는 무리들 앞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최후에 자랑할 것은 무엇이냐? '야 야, 너희들 그래 가지고 왔니? 나는 원수를 사랑했다' 하면 '아하, 그렇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 권위를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되던 역사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딴 세계가 벌어진 거예요.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이 아니예요. '이웃을 자기의 몸보다 더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간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기 지금 뭐 반대하는 사람들, 기성교회의 누구누구 전부 통일교회 지독히 반대하는 똥싸개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다구요. 그 녀석들은 뭐 전부 다 성인이 다 됐나요? 들춰 보면 누더기 똥구더기를 싸 가지고 끙끙대며 다니는 녀석들이라구요. 들이치면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통일교회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은 그런 놀음을 안 하는 것입니다. 내 갈 길이 바빠요. 내가 갈 길을 아직까지 다 못 갔고, 내가 청산해야 할 것을 아직까지 청산하지 못했는데…. 그럴 시간이 있거든 잠이나 자라…. 그렇잖아요?
빈정거리며 동네에서 뭐 이러고 저러고 하는 녀석들이 일을 이루는 것을 봤어요?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봤어요? 난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구요. 싸움을 하더라도 묵묵히 그 싸움터를 지나가면서 자기의 갈 길을 재촉해 가는 사람은 그보다도 더 가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냐? 그걸 다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싸움판보다도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길손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 이겁니다. 그래 끝날이 되면 그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누가 더 나라를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가 뭐 나라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누가 공인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만이 공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거리에 있는 여자들을 사랑하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아내만 사랑하면 됩니다. 안 그래요? 본가집이 환영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주막에서 한잔 먹으며 쉬는 자리에서 자기를 맞이해 주는 그러한 친절은 원치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원래 필연적인 길입니다. 필연적인 길은 마음이 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돼요. 몸이 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돼요. 천국가겠다는 종교만 가지고는 안 돼요. 땅 위에서 잘살겠다는 몸뚱이가 나가는 길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 길을 종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웃거들랑 몸도 따라 웃어야 되고, 몸이 웃거들랑 마음도 따라 웃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싸워 가지고 행복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싸움이란 명사가 남아지면 불행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불행뿐만이 아니라, 불행의 결과는 파탄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되는 데서만이….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정비하자, 정비하자! 오늘을 더 사랑하는 남편이여! 아내여! 자식이여! 부모여! 오늘을 사랑하라는 교육을 하는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는 나에게 독약을 먹여주는 부모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남편이여! 오늘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 아내가 있다면 자기 남편에게 독약을 갖다 먹여 주는 것이다. '나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고, 나라를 사랑하고 난 자리에서 나를 사랑하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인륜을 중심하고 인간만 끼리끼리 사랑하면 되지?' 아니예요.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천륜을, 보다 더 큰 천륜을 이어 가지고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결혼도 다르다구요. 자기 마음대로 결혼 못 한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뭐 합동결혼식 문제가 앞으로…. 합동결혼식 문제도 나왔지만 '합동'이라는 말이 뭐예요? 합동이란 말 외에 더 좋은 말이 있어요? 뭐 그 다음에 나올 것은 '통일 결혼식'이겠구만요.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이 온다. 그것은 무서운 때인데 원수는 어디에 있느냐? 책상 앞에서 밤을 새워 가며 책을 뒤지는 학자가 있거든 책이란 것이 문제다. 그것이 자기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이어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는데…. 덮어놓고 정성을 들여라.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부정하라구요.‘기독교를 믿는 신앙자여. 기독교를 부정하라! 통일교회를 믿는 신앙자여, 통일교회의 현재를 부정할 수 있는 내일을 이어받자! 그건 얼마든지 현재를 혁명해도 좋다!’할 때, 그 사람이 망해요? '이거 안 되겠다. 때려부숴라. 이거보다 더 나아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갈 자리지. 이거 안 되겠다구' 하면서 차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공로자인 것입니다.
간신은 그냥 그대로 틀거리를 붙들고 늘어지려고 하는 사람이요, 충신은 간신 틀거리를 청산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끝날에는 자기가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을 조르는 때이기 때문에 이것을 일단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됐기 때문에 덮어놓고 회개하라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아주머니면 아주머니가 배통을 내밀고 가슴을 내밀고 다니는 아주머니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저씨면 아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런 시점에서 갈 길을 모른다면 잠이 와요? 밥이 먹혀요, 밥이? 내가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오래지 않아 내 아들딸을 원수들이 모가지를 자를 것인데 밥이 먹혀요? 심각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따라 나오던 그 종교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요, 나라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요, 세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역사를 통해서 인간들이 노력해 나온 결정이 아니냐? 이것이 인간이 수고해 나온 전시회가 아니냐? 그 전시회가 우리에게 소망적인 줄 알았더니 낙망을 재촉하는 비운의 시대에 접하여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면 또 다른 전시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전시회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것은 인륜의 종말로서 나타난 전시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륜의 시작이 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차를 갈아탈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인생관이 종교 앞에 지배당하는 인생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종교를 지배할 수 있는 인생관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옛날의 도주들 앞에 자기의 목을 내놓고 딸려가는 그런 종교인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도주를 안내해 가지고 그 도주의 시조가 될 수 있는 종교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나? 그 도주들이 올바른 길을 마련했으면 오늘날 올바른 세계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을 명확히 과학적인 결과와 같이 당당코 갈 수 있게끔 보여 줘야 할 텐데 알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라구요.
시집갈 시간이 가까와 왔는데 그 아가씨가 '어머니, 아버지, 오빠! 아이고, 나 죽는다. 죽어도 시집 못 간다'고 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시집갈 때가 되거들랑 가슴이 부풀어서 '아버지 어머니, 왜 나를 시집 안 보내 줘!' 불평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그것이 나쁜 현상이냐? 좋은 현상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보내주마' 하면 '예, 예' 하며 얼른 가지, '나 시집 안 가겠다'고 하고,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나 죽여라!'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올드 미스가 되면 하루에도 불평이 두두룩 두두룩 돋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냐 할 때, 나쁜 것이예요? 자, 우리 아가씨들! 여기게 올드 미스가 된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게 됐다면 그게 좋은 현상이예요, 나쁜 현상이예요? 어머니 대해서 반대하고 아버지 대해서 반대하고 이거 좋은 현상이예요, 나쁜 현상이예요?
여자가 자기의 갈 길을 찾아가는 길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여자가 '왜 내 갈길 안가려 줘?'하고 불평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가려 주니 불평하지, 그렇기 때문에 끝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기독교의 역사는 신부역사인데 시집가야 된다구요. 시집가는데, 이스라엘 민족 앞에, 유대교 앞에 예수님이 왔는데 말이예요. 예수님은 신랑인데 신랑집 법도는 다르다구요. '아이구, 우리 집은 솥을 이렇게 걸었는데 신랑집 솥은 북쪽으로 걸었어. 틀렸어' 그러나요?‘우리 집에서는 아 이거 온돌방에서 누워 잤는데 신랑집에는 아이구 온돌방도 없는 침대에서 버선 벗고 자? 아이구 난 싫어!’그건 망할 여자라구요. 다르다구요, 안 그래요? 보다 나은 것은 같은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으니만큼 보다 내용이 다르고 모양도 다르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인간의 습관성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피난살이 할 때 이북에서 감옥살이하다가 이남에 척 내려와서 보니까 이건 뭐 전부가 생소했어요. 아 이거 뭐 그 환경을 세밀히 살피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리더라구요. 3년 이상 되니 그 환경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그 전에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자꾸 마음이 쓰여지고, 그것이 한 3년 이상 걸리니까 비로소 평평하게 되더라구요. 그것을 볼 때, 예수님도 3년 공생애노정이 절대 필요한 기간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간세상과 하늘세계는 전통과 습관이 다른데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몸에 젖기 위해서는 3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 맞을 수 있는, 어울릴 수 있는 놀음을 하려니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면서 12제자니 해 가지고 자기를 따를 수 있는 일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냐. 그 가운데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집간 색시들도 말이예요, 시집가자마자 사랑받겠다고 하면 그 색시는 소박맞게 마련이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가 가지고 한 3년쯤 길을 닦아 놓고…. 처음 시집가 가지고는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고, 시아버지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고, 시어머니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고, 시누이 뭐 시동생 앞에 가도 자유롭지 않은데, 아이쿠, 내 마음대로? 그러면 쫓겨나지 별수 있어요? 쫓겨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한 3년쯤은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저 듣고도 못 들은 척, 먹고도 안 먹은 척, 배고파도 배부른 척, '척' 장군이 제일이다. (웃음) 그렇다구요. 여러분 아주머니들, 딸의 교육을 이렇게 하라구요. 보라구요. 한 집안의 살림살이가 망하게 되면 그거 하나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생을 걸려도 못 바로 잡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습관성을 바로잡기가 쉬워요?
자, 한국사람으로서 고추장, 된장, 김치찌개, 뭐 김치, 요런 것의 맛을 본 사람이 서양 가게 되면 김치 생각 안 나요? 이놈의 혓바닥은 왜 이렇게 노적이 많아! 남들은 잘먹고, 생각지도 않는데 이게 뭐 김치가 뭐야? 이거 야단이거든요. 김치가 먹고 싶을 때는 말이예요. 뭐 어린아이가 젖먹고 싶어서 두드러기가 날만큼, 그게 그럴 때가 있다구요. 이거 뭐 고추장에다 보리밥 해 가지고 먹던 게 제격이거든요. 이건 암만 푹신푹신한 빵 아니라, 뭐 치즈니 해도 누린내 난다구요. 몇 끼면 싫증난다구요. 이놈의 고추장….
내가 이야기 하나 하지요. 내가 독일에서 불란서로 가기 위해 스위스를 거쳐 가는데 그 중간에, 저 피망이라고 하는 양고추, 이렇게 큰 게있더군요. 한국 고추는 요게 뾰족하지요? 그건 이렇게 크다구요. 아 이놈이 떡 상점에 있는 것을 얼핏 봤다구요. '이야, 저것 봐라. 고추다!' 눈이 번쩍 뜨여요. (웃음) 그래 가지고 그놈을 그렇게…. 군입정이 나게 될 때는 말이예요. 그것을 뭐 조찬에라도 때울 수 있다구요.
그런데 어디 고추장이 있어요? 고추장이 없으니까 뭐냐 하면, 거기에 일본 된장이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일본 된장이 있는데, 그 된장을 사오고, 그 다음엔 고추 가루는 중국 상점에서 사다가 그것을 이만한 치즈 깡통에 넣어 가지고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먹자 할 때 그건 고추장 4촌, 5촌도 못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건 뭐 여기서 먹던 것에 비하면 이 코밑에 갖다 줘도 아주 기분 나쁜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별수 있어요? 궁한 녀석은 뭐 보리 개떡도 제격이라구요. (웃음) 자 이래 가지고, '저것 사라!' 해 가지고 풀어 놓고는 말이예요. 그때 김영운 선생하고 같이 갔다구요. 차를 버텨 놓고는 손으로 주무르는 거라구요. 언제 뭐 숟가락이 어디 있고, 손을 씻긴 뭘 씻어요? 주물러라 이거야. (웃음) 고춧가루를 쥐고 그저 주물럭주물럭하니 이 사이로 삘 삘 삘…. (웃음) 이래 놓고 척척 뚜껑에다 한 무더기 해 놓고는 그저 '자, 들어. 너두' 하며 집어던지는 거예요. 뭐 거기 대접이 무슨 대접이예요. 집어던져 줘도 입 벌리고 '아이쿠, 고맙다' 이거에요. (웃음) 그럴 때는 만사가 다 통하는 거라구 이래 가지고 말이야, 이거 뭐 먹자! 이것을 그냥 쩍 뻐개면 구멍이 황뚫리고 속이 비었습니다. 거기다가 고추장을 담아 놓고 이렇게 해 가지고 골룡탕을 만드는 거예요. (웃음) '야 이놈아! 네가 들어갈 때에 내 윗입술을 다 거치고 들어가야지, 그냥 들어가면 맛이 안 난다' 하면서 먹는 겁니다. 그러니 입을 아一 벌려 가지고 우물 우물 우물…. 이게 무슨 꿀맛 떡맛은 그거 당하지 못한다구요. 그 습관성을 보충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껴 봤어요.
여러분들 타락성, 집에서 살림살이하던 것, 그것을 차 버리고 나간다고 생각해 봐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것을 연습해야 되기 때문에, '여편네야, 나가! 이놈아, 차 버리고 나가 봐!' 하면, '아이고! 차라리 둘이 보내면 좋겠는데 혼자 가라…' 혼자 가야 돼요. 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하다면 지독하다, 인정사정 없다 해도 그것이야 못하겠지 하면서 눈을 찡그리고 어떻게 하나 보자 했더니…. 죽어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설명을 죽 해줍니다. 눈이 빠지면 빠졌지 안 가면 안 되게 돼 있거든요. 다리가 부러지면 부러졌지 안 가게 안 돼 있거든요. '자, 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말고 싶으면 말라' 해도 '나는 간다!' 하는 거예요. 안 갈 수 있어요! 찍죽빡죽하면서라도 전부 다 퉁겨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여 역사에 없는 큰 사건을 전부 다 일으켜 놓았습니다. 이것은 문선생이 죽더라도 인류역사상의 특기사항으로 기록 안하면 안 된다구요.
한국에서 그러니까 일본의 축복받은 패들도‘우리도 따라가야 돼요, 안 따라가야 돼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말고프면 말아라' 하고 얘기했어요. 결론적으로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입장이냐? 선을 위해서 못사는 사람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할 때에,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다 알거든요. 선을 위해서 못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수고해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냐, 덜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이냐?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통일교회의 뜻을 위하고, 그 뜻은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그 길을 위해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이냐, 덜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이냐? 더 수고하는 사람이 복받지. 그러면 나간 사람과 안 나간 사람과 누가 더 수고하는 사람이냐? 그것은 나간 사람이 더 수고하지, 안 나간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벌받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프면 말라'고 이야기했더니, 선생님에게 인사도 안 하고 다 도망쳐 가지고 다 전도 나갔다구요. (웃음) 미국 놈도 그러고, 독일놈도 그러고 세계는 큰 무슨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구요.
사건으로 보면 남북이 회담하는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영계에서 볼 때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더라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 여편네와 새끼를 다 버리고…. 그것도 잘살기나 하나요? 그저 고생을 해야 복받겠다 해 가지고…. 그걸 보면 내가 황마적 대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구요. 그저 쟁깨비(남비) 짜박지. 사발 짜박지 가지고 못사는 생활 했는데, '아이쿠, 우리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 잘살라고 했기 때문에 당신은 나하고 잘살아야 됩니다' 해 가지고 안 먹고, 남는 것은 적지만 가정집을 만들어야 된다며 뭐 무슨 짜박지, 통 짜박지 마련해 가지고 살려고 하는데 한꺼번에 왱강댕강 다 갖다 집어던지니 별수 있어요? (웃음) 어떤 때는 '야 이거 선생이라는 작자가 황마적보다 더한 놀음을 하였구나. 내가 벌받을 노릇을 했나, 복받을 노릇을 했나?' 하고 생각해요.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벌받을 노릇을 했을지 모르지만 나라와 세계 앞에는 복받을 놀음을 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망해도 나라는 남아지고 세계는 남아지기 때문에 그것은 선한 길이다. 종교는 나라를 이어받아야 되고, 나라는 세계를 이어받아야 되고, 세계는 하나님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이어받아야 되느냐? 하나님도 사랑을 이어받지 않으면 가치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졸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하면, '거 뭐 하나님이 졸장부가 되다니? 하겠지만 보라구요. 문선생이 아무리 잘나고, 또 오늘 뭐 피땀을 흘리며 얘기한다 하더라도 여러분과 같은 상대적 존재가 없이 피땀흘리며 이야기 한다면 정신이 돈사람이예요, 안 돈 사람이예요?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야, 야!’소리 지르면 그는 미친 사람입니다. 세계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없는데 '아, 여러분, 내 말 들으소.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한다면, 그 녀석 미친 녀석입니다.
이렇게 올라가 보면 하나님이 상대도 없는데 '아이고 좋다' 하며 춤춘다면 미친 하나님이지, 별수 있어요? (웃음)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상대가 절대 필요합니다. 상대는 왜 필요하냐?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이어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어받으려면 하나님 혼자는 안 되겠으니 아들이 있고 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되는 거라구요.
'하나님, 무얼 원해요? 좋은 진지요, 좋은 반찬이요? 물으면 하나님은 '아니다. 무얼 원할꼬? 나에게 없는 것이 있나 다 있지', '그렇지만 무엇이 없소?','한 가지가 있지', '한 가지가 뭐요?' 하면, '아들딸을 죽인 것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아들딸을 살려 놓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할 거예요, 그거 아니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찾아 가지고 보내 주겠다'고 해서 아들은 찾았지만 딸이 없으니까, '아하! 땅 위에 신부를 찾을 수 있는 아들을 보내야 되겠다. 딸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겠다' 해서 보내신 분이 메시아라는 분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랑이라는 분입니다.
예수 믿는 패당들이 전부 다 그것을 목표로 해 가지고 신랑 맞을 잔치를 바라며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믿는 패라구요. 이놈의 패들은 잘못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열처녀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신랑 한 사람만 채 가지고 딴 곳에 가서 집을 짓고 살림살이를 하게 되면, 기독교의 수많은, 뭐 전부 다 도적놈 심통이 들려 가지고 사기…. 요전에 목사들을 대해서 어떤 사람이 얘기하 기를 '목사는 우선 사기꾼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내가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좋아서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기가 막히게 됐다구요. 그러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서로 인사를 할 때에는, '밥을 먹었소? 밥을 먹었니?' 그렇게 하지요? '밥을 먹었니? 밥 먹었지?' 하는 건 미정이라구요. 먹었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인사를 하는 거라구요. 그거 가만히 보면 그렇다구요. 오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때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 새로이 결혼한 사람들이 서로 싸움하게 될 때는 절망이지만, 그래도 점점점점 가까와지기 시작하면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 우리 결혼식을 할 때보다도 한3년쯤 지나니 더 났다' 할 때는 재미가 붙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3년을 지나 아들 낳고 딸 낳고 5,6년째 접어들면 더 재미가 난다구요. 잠점점점 좋아져야 재미가 나지, 좋았다가 나빠지면 재미가 나요?
통일교회를 믿기 시작했다가 점점 나빠져야 재미나요? 통일교회 하는 일이 지독하고 못살겠지만 그걸 살짝살짝 지나가 보면 재미가 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이 남자도 이러구 있다구요. 욕먹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의 눈을 보라구요, 욕먹게 생겼나? (웃음) 옛날엔 욕먹고는 소화를 못 시켰어요. 일년이고 십년이고 그걸 청산짓기 전에는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잘못해서는…. 그렇게 데데한 사나이가 아닙니다. 천하의 누구한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에 어떤 녀석 앞에도 부끄러움이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자, 습관성이라는 것이 원수다! 알겠어요? 여자는 여자의 습관이 원수입니다. 여자도 남자의 습관을 이어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자들이 걸어온 길은 남자들을 밟고 넘어왔기 때문에 여자가 여자를 갖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습관성을 버려야 되겠기 때문에 여자는 시집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남자도 남자의 습관성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라는 것은 좋은 것이요, 시집을 가는 것도 좋은 것이요, 가정을 책임지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처녀시절의 습관을 전부 다 골고루 시정해야 된다구요. 그것을 그대로 물고 들어가 가지고 시집살이하면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형제들 보고 싶어' 타령했다가 그 타령이 시집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과 비교할 때 이것이 지금 나은 입장이 될 때는 소박을 맞는 것입니다. 옛날을 돌아보려고 하면 소박 맞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통일교회는 밟고 올라가야 되겠다구요. 기성교회보다 나아야 되겠다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하나님 앞에 가면 당당코 기성교회 어떤 목사들보다 낫다구요. 믿어지지 않으면 죽어 보라구요. 모가지를 칼로 찔러 가지고라도 살아올 자신이 있거든 문선생 목을 찔러 보라구요. 누가 거짓말했는지? 이놈의 목사들 정신차리라구.
습관성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국사람에게는 고추장이 무서운 거예요, 김치가 무서운 거라구요. 어느 판사가 서양에 가 살게 되어 죽어도 못 돌아가게 되었는데 고추장이 그리워서 찾다가는 '이놈의 원수야, 이놈의 고추장 원수야' 하더라는 거예요, 안 그래요? 이 습관이…. 자, 물이나 조금 먹고. (물을 드심)
자, 여러분들 이제 한번 반성해 봅시다. 나는 무엇을 붙들려고 하느냐? 나는 무엇을 알고 싶으냐?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느냐? 나는 무엇을 남겨 왔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남겼어요? 나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욕을 먹고 반대하는 소문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보다 그면에서는 나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세계적으로 소문났어요. 일본 가면 일본정부가 나를 싫어하고, 미국 가면 미국정부가 나를 싫어합니다. 우익 패도 물론이요, 일본 국민들도 '아하! 그 미스터 문이 일본에 한번 왔다 가면 사건을 일으켜 놓기 때문에, 저 사나이는 왔다 가면 곤란하기 때문에 안 왔으면 좋겠다' 이러고 있는 거라구요. 공항에 쓱 가게 되면 거기 입국관리국의 요원들이 '당신이 유명하신 문선생이요? 물으면 '그렇소!'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그건 왜? 갔다가 나올 때는 언제든지 사건을 일으켜 놓고 오거든요.
이번에도 가서 기동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게 또 사건이라구요. '뭘하러 가나 했더니 또 사건을 일으키러 왔구만' 요전번에도 일본에서 합동결혼식을 해줬거든. 그러니 또 사건을…. 그건 신문기자들도 몰랐다구요. 감쪽같이…. 그거 보면 통일교회 사람들이 참 용하다구요. '야! 소문관제다, 소문 내지 마라…'
문선생이 들어오면 이번엔 틀림없이 합동결혼시킬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온천지대로 왔다갔다하고, 바쁘게 북해도로 왔다갔다하고…. '아 북해도 갔대. 사흘 걸려야 돌아올 걸' 하지만, 오늘 아침에 갔다가 두 시간 후에 돌아오는 건 모른다구요. (웃음) 그러다 보니 자기들 모르게 몇 시간 후에 후닥닥 해치우는 겁니다. 가서 자는 줄 알았는데, 가서 노는 줄 알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후닥닥 다 해버렸다구요. '아이쿠, 그랬소?' 소문 듣고는 '아이구 속았다'(웃음) 하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한테 문의해 가지고 하늘의 일을 하니? 벼락같이 해치우지…. (웃음) 그렇게 하고 왔다구요.
한국에서도 그래요, 한국에서도 역시. 여기 36가정 합동결혼식 할 때에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뭐 통첩할 수 있어요? 싫다고 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누가 가서 의논한다고 그 자식을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것은 뻔한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오면 가시가 되고, 기쁜 날 눈에 티가 되겠는데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빤히 알면서 그 어머니 아버지한테 물어 보고 소개하게 돼 있어요? 통첩은 해야 되겠기에 결혼식하기 전날 몇 시간 전쯤 딱 도착하게 하는 겁니다. '당신의 아들딸이 거룩한 결혼식을 하옵나니, 왕림하시길 원합니다' (웃음) 그렇게 통첩은 다 했다구요.
자, 남의 자식 데려다가 시집장가 보내 주면 그 부모가 와 가지고, 아이고, 옷을 입은 것을 보더라도 좋은 옷을 입었고, 아 신랑을 얻어 주더라도 자기 딸보다 나은 남자를 얻어 주었는데, 와서 고맙다는 인사는 못하고 반대를 해? 이 녀석! 당당하다구. 당당하다구요. 그랬더니, '아이고, 누가 우리 아들딸을 데려다가 결혼시켜?'해서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했다고 하면 에미 노릇하고 애비 노릇을 왜 당신이 했느냐 이거예요. 그때는‘언제 한번 새끼가 죽을 자리에 왔는데 알아 봤어, 이 녀석아!’들이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건, 그건 못 했습니다','그래 놓고 무슨 수작이야?' 그 한마디에 미끄러져 가지고 골통도 못 들고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놀음 하는 것입니다. 뭐 신문이 떠들고, 떠들겠으면 떠들어라 이겁니다. 내가 천하에 못 할 놀음 안 하는 것입니다. 강도새끼보다 낫다 이거예요.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 내가 애국자요, 나라를 위해서 눈물 흘리는 데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구요. 나라를 위해 사는 거예요.
기성교회에서는 뭐 벌거벗고 춤춘다고? 내가 벌거벗고 춤추면 얼마나 보기 좋겠어요? (웃음) 할 일이 없어서 벌거벗고 춤춰요? (웃음) 한번 벌거벗고 춤이나 춰 보고 그런 말을 들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구요, 재미가. (웃음) 작전이 참 잘 들어맞는다구요. 그 바람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통기둥에 전부 다 갖다 걸어 놓고 튼다구요. 우직 우직 하면 '아이쿠 큰일났다, 아이쿠 큰일났다. 아이쿠 무너진다. 어디로 갈꼬?' (웃음)
그게 작전법 중의 최고의 작전법임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보고 '하나님, 어쩌면 나를 그렇게 교육을 잘 시켰소…' (웃음) 벌거벗고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내가 모래사장도 한번 벌거벗고 기어 보지도 못했는데 춤을 춰요? (웃음) 에이 미친 것! 이것은 낮도깨비 중에서도 미친 낮도깨비예요. 미친 낮도깨비는 미치지 않은 낮도깨비한테 지는 거라구요. 나도 낮도깨비예요. 반대하는 녀석들은 도깨비는 도깨비인데 그건 미친 낮도깨비라구요.
지금까지 그렇게 나왔다구요. 망하는 줄 알았더니 언제 세계적인 기반을 닦고, '야 이 녀석아, 네 이름이 뭐든가?' 유명한 목사들은 문선생의 계획 가운데 놀아나고 있는데 전교계가 지금 문선생의 계획 아래 춤추는 놀음을 하고 있는데 그걸 누가 시키는지도 모르고 있거든.‘언제 그렇게 됐어? ’언제 그렇게 되긴 언제 그렇게 돼? 너희들은 자니까 세월을 모르지. 낮잠 자다가 놀라 갑자기 일어난 녀석들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아요? (웃음) 나는 그렇게 못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그 목사들 반대 바람에 나가떨어질 것 같으면 벌써 보따리를 내가 다 차 버렸다구요.
이번에 미국 갔다 오는데도 그런 거예요. 미국의 상원의원들 가운데에도 미스터 문이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그것은 대한민국도 모릅니다. 일본 고위층에서 '청파동 선생님 집을 방문하겠습니다' 해도 '여보, 여보! 지금 방문하면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아무 때 오소!' 이라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구요.
여러분 가운데 통일교회에 구경삼아 온 사람들은…. 문선생은 통일교회의 단에 나서서 말하는 선생님만은 아닌 것입니다. 세계 작전을 한번 밀게 되면…. 꼭 산에 올라가야 호랑이를 잡아요? 동네 가운데 좋은 미끼만 해 놓으면 돼지우리에 오자마자 산채로 잡을 수 있는 길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세계를 요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말하기를 '통일교회는 정당조직이다' 하는 데 정당조직하려면 여기서 할 게 뭐예요? 미국 가서 하지. 안 그래요?
그래서 이제부터 미국 가서 한번 싸울 거라구요. 이번에 세계로 돌아 다니면서 10만 달러 현상 소설 모집 광고를 내걸고 부흥회니 뭐니….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이 녀석들 콧대가 높다니 그놈의 코를 한번 거꾸로 뒤집어 박아 놓은 것입니다. '미국놈 망한다!' 하고 가는 데마다 때렸다구요. '망한다'고 하면, '뭐? 미국이 망해?' 그래 눈깔 시퍼렇게 뜨고 들어 봐라 이거예요. 역사적으로 주욱- '이러니까 망한다. 요것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요렇게 됐고, 망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미스터 문이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욕을 들입다 해도 '아, 맞소' 하며 (박수 치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동양사람으로서 미국에 가서 그렇게 판을 치고 온 사람은 아마 미스터 문이 역사이래 처음일 거예요. 시시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껄렁껄렁한…. 머리로 말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구요. 정력으로 해도, 선생님 고기는 질기다구요.
왜정 때 고문을 받으면서도 '쳐라, 이 자식아!' 그런 거예요. 이런 책상 다리 네 개가 전부 다 부러져도 '쳐라, 이자식아!' 그랬다구요. 그 매를 맞는 법도 연구했다구요. 매를 맞을 때 '아이쿠, 잘못했습니다' 하면 죽습니다. 그건 죽는 거예요. '쳐라, 이 자식아. 쳐라 이 자식아!' 몽둥이가 들어오면 '움-' 힘을 주는 거예요. 거기에 안 진다는 거예요. 너보다도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이 개똥 같은 자식들아, 네 뼈다구까지 가루를 내서 내가 마시겠다! 쳐라, 이 자식아!' 그 이상의 강한 정신력으로 나를 쳐대는 거라구요. 끄떡없다구요. 그린 놀음을 해 왔다구요. 그래서 생리가 아주 이제는 반대받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옛날에 뱀장어를 참 많이 잡았어요.‘요놈아 안 잡힐래? ’잡으려 했다가 놓치게 되면 '요놈의 자식아, 스톱!' 하고는 대가리를 깨물어서 잡았다구요. 그런 사나이라구요. 한다 하면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망하든가 통일교회가 망하든가 둘 중의 하나, 양자택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려면 죽도록 반대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도망가서 반대하든가, 그러지 않으면 믿든가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그대로 부끄럽게 보따리 싸 가지고 뭐…. 그렇게 안 되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지금 한국사람들을 포위작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잘 걸려들도록 그물을 쳐 왔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거라구요. 기성교회 믿던 사람들이 왔으면 '기분 잡쳤구만. 그거 이단인 줄만 알았더니 뿔까지 돋아났구만. 뿔까지 돋아났을 뿐 아니라 거기에 꽃까지 피었구만. 아이쿠….' (웃음)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이제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될 때가 왔기 때문에 통일교회나 한번 믿어 보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남한 사람들이여! 북한 사람들이여!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거든 통일교회 한번 믿어 보라' 이제 문제는 그것밖에 없을 거라구요.
그거 왜 그러냐? 통일교회는 사람의 뜻을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똑똑히 얘기하는데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따르지 마라, 문선생을 믿지 마라 이겁니다. 문선생은 일세기밖에 머물지 못할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왔다가 백년 이내에 가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그 백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문선생보다 하나님의 뜻을 믿어라.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여러분을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뜻의 길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 살아라 이거예요. 나도 그것을 위해 살고, 여러분도 그걸 위해 살아야 됩니다. 맡은 분야와 직책에 한계가 있어서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여러분과 마찬가지요. 뜻의 길을 가는 데도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선두에 섰을 뿐이지 그 자리에서 일방통행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죽거들랑 선생님을 붙들고 우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사랑하던 하나님을 누가 사랑할 것이냐를 걸고 울고, 선생님이 사랑하던 뜻을 붙들고 그 이상 사랑하지 못할까봐 그것을 놓고 탄식하며 우는 것은 가(可)하되, '어이쿠, 나 큰일났구나' 하는 그런 시시한 패가 되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부모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처자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형제도 버린 사람이라구요. 까딱하면이 나라도 버릴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악착같이 반대한 이 나라까지, 그렇게 악착같이 모든 것을 출혈하면서 위하려고 하던 그 나라까지 내가 할 책임을 다하면 버리는 거예요.
내가 할 책임을 다하면 나라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이냐? 이 나라보다 좋은 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를 망하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성공을 하게 되면 그 성공을 가져다가 그 나라 앞에 다시, 예수님이 찾아온 것을 찾아 가지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동동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이러고 있다구요. 남들은 낮잠을 자지만 통일교회 패들은 낮잠을 안 자는 것입니다. 남들은 피곤하다고 쉬고 낮잠을 잘는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은 낮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장 가까이 가게 되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기계 소리가 들려 오면 젊은 사람들에게 죄 짓는 것 같아서 내가 낮잠을 못 자는 사람이라구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여러분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뜻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가야 할 뜻이 남아 있는 거라구요. 그 뜻이 무엇이냐? 이제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어차피 넘어가야 할 뜻이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난 이편 나라와 저편 나라입니다.
요전에 홍수 얘기 하나 하지요. 지난 19일에 내가 청평 별장에 가 있었어요. 그때 일본 의료단 40여 명이 와서 전국을 일주하고 내일 모레면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떡 해 놓았다구요. 아 그런데 장마가 져 가지고 뭐 라디오 방송에는 서울에 난장판이 벌어 지고, 뭐 물난리가 나서 어떻고, 야단이 벌어졌어요. 자 이거 가려니 길은 막혔고, 그래도 아니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이왕지사 떠나려면 이런 날은 새벽같이 떠나자고 해 가지고 모터보트를 몰라고 했습니다. 모험을 한 거예요. 이놈의 집이 떠내려오지 않나 뭐, 물이 무섭긴 무서운 거라구요. 그것을 잘 알고 있다구요. 무섭지만 수십 명의 수고한 사람들을 알아줘야 할 책임이 있는데 무섭다고 안 갈 수 없다구요. 그래서 '자 이왕지사 가려면 아들딸이랑 같이 가자!' 해 가지고 네 사람이 보트에 올라타고 '몰아라' 했어요.
그럴 때는 재치가 있어야 됩니다.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구요. 그 물을 봐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데를 가려 나가는 거예요. 거기에 오만 가지가 떠내려 오는데, 그것을 터치고 나가다가 모터만 스톱하는 날에는 여지 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내몰아라'고 한 겁니다. 그때는 우물쭈물 안 한다구요. 순식 간에 내몰아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들이달려간 거예요. 달려가는데 배 꼬리가 이러는 거라구요. 구비치는 거라구요. 앞쪽은 떠서 나가니까 그냥 나가지만 뒤쪽은 닿기 때문에 이런다구요. '에라, 사람 팔자 모른다 더니, 오늘은 이 한강수 최고 장마 바람에 놀아나는구나. 가자. 이놈아! 내 갈 길이 바쁘지, 네 갈 길이 바쁘냐? 네 갈 길보다 내 갈 길이 바쁘니 몰아라!' 이래 가지고….
내가 한강을 잘 안다구요. 이것이 쓱 돌아 가지고 댐 가까이 가면 안 되거든요. 거기 들어가다가는 야단이거든요. 거기 가려고 쓱 들어가 보니까 획-(행동으로 표현하심)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보트를 그 옆에 대놓고 척 내리니까 그 옆에 있는 별장 주인이 하는 말이‘이 사람들이 물 무서운 줄을 모른다. 지금 낮이냐 밤이냐? ’무슨 영인체가 도착한 줄 아는 거예요. '죽는다는 생각 해봤냐고' 하며 핀잔하는데, '아 그거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지' 라고 대답했다구요.
자, 그러한 놀음을…. 그런 때도 인생길에는 있어요. 알겠어요? 모험을 해야 할 때에는 모험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 '아이구, 요거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라구요. 피난할 때에는 그저 닥치는 대로 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그저 울타리 안에서 하인들한테' 여보게! 요것 하게' 하면 '예이!' 이렇게 살던 양반집 아주머니들이 피난통이 되니까 깡통을 들고 종새끼들한테 '나 좀 도와주소' 그 꼴 되는 거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러지 말라구요. 닥치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나 자신도 노동판에 가면 일등 노동자입니다. 배를 타게 되면 일등 선장감이라구요. 공장에 가면 무슨 직공을…. 안 해본 것이 없다구요. 내가 운전하는 것 하나는 일부러 안 배우고 있는 거라구요. 운전은 사흘 이내에 면허증을 딸 자신이 있다구요. 그런 소질이 있지만 운전은 안 배우는 거예요. 왜? 내 성격을 알기 때문입니다. 추월하는 녀석이 있으면 내가 기분 나쁘다고 갖다가 처박아 가지고 망치든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망하든가, 안 가면 들이받아 가지고 네가 죽든가 내가 죽든가…. (웃음) 성격을 알거든요. 그걸 안 배워 둔 게 장수의 비결이기 때문에, 그거 안 배운 거라구요.
그러니까 유유한 사람이 못 되어 봤다구요. 알겠어, 이 젊은 녀석들! 알겠어, 이 녀석들아!(웃음) 통일교회에서는 이렇게 해도 통한다구요. (웃음) 기성교회 목사가 그랬다가는 큰일나지. 그 목사 왱가당 댕가당 쫓아낼 거라구요. 이것들은 그저 쥐어박아도 좋다고 하고…. 자 그러다 보니까 뭐 한바탕 통일교회 자랑했구만. (웃음) 자 이제까지 욕도 그만큼 먹었는데, 선전 한번 했다고. 그거 나빠요?
자, 이제는 정비하고 넘어가자구요. 습관이 무섭다는 말을 했으니, 돌아갑시다. 습관이 무서운 거예요. 고추장 얘기 들었지요? 그 피망이 참 맛이 있습디다. 한번 먹어 보라구요. 도적질해다 먹는 참외는 더 맛있다구요. 나도 도적질해 봤어요. (웃음)
그 삼촌네 오이밭을 내가 전부 다 한번 쓸었어요. 내가 농도 잘합니다. 내가 '작은 어머니?' 하니, '왜?' 하는 거예요. '삼촌네 외밭에는 금년에 참 잘되었는데요. 그래서 맨 처음으로 익은 것은…. 그래도 이 집안에서 내가 주인되고 대장이 될 터인데 지금부터 대접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 제일 좋은 참외는 내가 따먹어요?' 한 거예요. 엣날에도 그런 자부심을 가졌어요. 그래서 동생들도 나를 이렇게 봤다구요. (행동하심) 그랬더니 '그래 그래 그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럼 내 친구들 몇 사람을 데리고 와서 실컷 한번 먹여 봐도 괜찮죠?'하니 '그래 몇 개나 먹겠니? 그래라. 그래' 하는 거예요. '예, 됐습니다' (웃음) 떡 말해 놓고는 그냥 와라 이겁니다. 동네방네 그저 졸장부, 무슨 장부 (웃음) 전부 다 모이게 하는 거예요. 아침에 가서는 안 되겠으니 해가 진 다음에 어두워지면 '자 뽑아라!' 해 가지고 뽑는 것입니다. (웃음) 포대 자루를 몇 포대를 가지고….
그 뒷동산에 싸리밭이 있어요. 그 싸리밭에다 포대를 갖다 놓고 뭐 심심하면 먹자 이거예요. 한 일주일쯤 먹어야지. (웃음)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건 예고하고 했기 때문에 밀고를 하더라도 정면으로 대하여 슬쩍 넘어 설 수 있고, 또 참외를 그 자리에서 얻어먹을 수 있는 수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했지.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어머니가 나한테, 홀딱 반했다구요.
작은 어머니가 '너 언제 오니?' 하면 '언제 오지요. 언제쯤 올 텐데 여비나 잘 마련해 주세요' 하는 거예요. 어머니한테는 학비를 마련하라고 차비는 작은 어머니한테 전부 다 시켜 놓는 거라구요. 그렇게 살아온 사나이예요. 그렇다구요. 고거 참 그렇게 갖다 놓고 먹는 맛은 참 복잡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거기는 거기대로 재미있는 게 있다구요. 그렇지만 통고라도 안 하고 하면 안 되지요.
자,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습관들, 재미를 붙인 그런 습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생 동안 그 놀음만 했으면 사기꾼 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 전부 다 왕창 잘라 버렸어요, 왕창.
시집을 갔다면 남편을 위해서 수절하는 열녀가 되었을 거라구요. 내가 그 여자들을 가만히 보면 '저것도 여자인가? 모양은 여자 같은데 여자는 아니구만' 아, 그 남자 하나 못 녹여내요? 남자 같은 푸서기가 없다구요. 남자는 쉬운 것이라구요. 이건 그저…. 요전에 우리 안집에 강아지 새끼를 한 마리 갖다 놓았어요. 이걸 애들이 서로 갖겠다고 싸움을 하는 거예요. 요건 바둥바둥하며 '아이고 내가 갖겠다' 하며 싸움박질하는 거예요. 야, 요거 강아지 새끼까지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인데 말이예요. 귀염둥이가 되고, 영감 모양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보고 생활을 잘 하게 되면….
남자들이 보기에는 그래 보여도 약한 게 남자들입니다. 알겠어요? '맨처음부터 시집가면 남자가 나를 사랑해 줘야지' 그게 아니예요. 덮어놓고 사랑을 해야 된다구요. 아기를 키우는 습관이 있으면 애기 키우는 두배만큼만 남편에게 해보라구요. 그러면 남편에게 '오소' 하면 '그래' 하고 '오소' 하면 대낮에도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봤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남편을 애기 기르는 것의 두 배 이상 수고하면서 한 3년 동안 키워 보라구요. 그가 어떤 남자가 되려나? 그렇게 해봤어요?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나중에 시집가게 되면 일생동안 살 남편이니까 애기 기르는 수고의 배 이상 해봐라 이겁니다. 저 차만춘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해봤어요?「못 했습니다」 저런 양반들은 다 살이 두꺼운 양반들이라구요. 그렇지만 그런데는 센스가 빨라야 된다구요.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에 대해서 결코 비평하면 안 된다 이겁니다. 자기가 자기의 값을 떨어뜨려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나는 이렇게 할 텐데…. 아주 뭐 하나에서 백가지를 보더라도 내 마음에 차는 것이 없다구요. 다 자기들은 잘한다고 보지만 말이예요. 그러니까 난 고독한 사람이라구요. 그곳을 향해서 달리는 거라구요. 달려 가지고 맨 나중에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달릴 거라구요. 무서운 곳이니까 아예 오지 말라구요. 마라톤 선수는 기막힌, 숨이 그저 할딱할딱하는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면서라도 결승점을 향해 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마라톤 선수가 뛸 때에 좋다고 생각하면서 뜁니까? 나도 마라톤을 해봤어요. 이게 고개를 넘나들 때는 입에서 쇳비린내가 나고 말이예요, 세상에 못 할 것은 마라톤이예요. 그렇지만 타고난 운명 길이니, 안 갈 수 없으니, 죽기 전에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뭐 승패를 결하는 것이라구요. 그렇다구요.
통일교회의 길을 통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 나와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세계 마라톤 챔피언 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아요, 어려울 것 같아요? 하나의 선수의 권위를 갖기 위해서도 밤을 새워 가며 새벽이면 냉수목욕을 하고, 겨울이면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저 훈련에 훈련을 계속해 가지고 자기의 그 명분을 유지하는 것이 운동 선수들의 생활이거든,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 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딸 되겠어요? 생각을 해보라구요. 먹을것 다 먹고, 입을것 다 입고, 쓰고싶을때 다 쓰고, 뭐 사랑받고, 칭찬받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아들딸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나는 안 될 거예요. 그것은 무가치한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하여‘야, 너 문 아무개!’할 때 '예' 대답하면…. 주체 되시는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구요. 그 정도를 봐 가지고 명령을 하는 거예요. 야 요 녀석이 이걸 해내겠느냐 안 해내겠느냐를 봐 가지고 조금 어려운 것을 시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조금 쉬운 것을 시키려면 명령도 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내버려 둬도 하는 거예요. 불러 가지고 다짐하며 시키게 될 때는 좀 어려운 걸 시키는 거라구요. 여러분, 통일교회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뭐 전도를 안 하는 사람 있어요? 전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도하라고 특별히 부르게 될 때는 지금까지의 전도 방법보다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불러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말도 해주고 내모는 거라구요.
그러려면 옛날 역사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한 그 승리의 기준 이상의 결의를 다짐하고 나서야 되는 거라구요. 거기에 뭐 '옛날에는 내가 배고플때 이렇게 참아 나왔는데….옛날이 무슨 상관 있어요, 옛날이. 옛날에 장관 아니라 애국자가 되었더라도 오늘에 역적이 되면 그 장관 바가지 다 깨지는 거라구요. '더러운 놈의 자식아! 네가 옛날엔 역사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왜 그래?' 가중된 채찍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자, 끝날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 저 출정하는 남자…. 가난한 살림을 하다가 자기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여편네와 자식을 놔 놓고 군대에 가는 사람이 그걸 놔 두고 길 떠나게 될 때 기가 막히겠지요? 그런 것을 체험해 본 사람이 있을 거라구요. 그것도 잠을 재워 놓고 떠나야 되겠다 할 때 자는 시간에 떠나는 애비라면 애비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 앞에 몇 번 말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없다 이겁니다. 그런 놀음을 해나온다는 거라구요. 자, 둘이 만나서 얘기해 보자는 거예요. 무슨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상상하지 못하는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렇게 된다…. 내가 60년도부터 예고해 가지고 준비하라고 여러분한테 이야기했던 것이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거예요. '세계는 이렇게 된다…' 그랬는데 그렇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붙어 있는 거라구요.
이제 우리 갈 길은 지금이 아니예요, 지금. 종교 그 자체를 절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애국심을 갖되 나라만을 위해는 애국사상을 가질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세계적인 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를 위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애국사상을 갖지 않고는 이 민족이 세계에 있어서 주도적인 사명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선진국가에도 선교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이거예요. 통일교회 교인은 자기 새끼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겁니다. '세계인을 자기 새끼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라!' 꿈같은 이야기인데 사실 그러구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부모를 버린 사람입니다.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외적인 인연을 다 버렸다 이거예요. 그렇게 버려 가지고 찾았다고 하는 패들이 여러분이라구요. 결국 내 인생은 뭐냐?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던 그 관념이 벗어지지 않았다, 처자를 대하던 내 생각이 벗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를 버렸던 것은, 그보다 나은 것을 찾기 위해서 버렸는데 오늘날 그보다 나으냐, 못하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버리고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버리고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을 풀고 한 중의 한을 푸는 겁니다.
부모를 버린 죄라고 할까, 처자를 버린 죄라고 할까? 그 죄값으로 알고 응당히 받을 탕감으로 알고 간다는 생각 외에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그들이 모르거들랑 가르쳐 주고, 가르쳐 줘도 모르거들랑 보여 주고, 보여 줘도 모르거들랑 그 자리에 세워 체험을 시켜서 가자 이겁니다. 밥을 해 가지고 상을 차려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가지고, 입을 안 벌리니까 입을 벌려 가지고 몰아 넣어 줘도 안 먹어요? 입을 떡 벌려 가지고 먹이니까 맛있거든요. 이러고….
여기 통일교회 들어온 여러분, 통일교회 선생님이 좋아서 통일교회에 들어왔어요? 전부 다 눈을 흘기면서 '저 사람이 뭐 벌거벗고 춤추는 패지?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패지?' 그런 사상이 없어질 때까지는 몇해가 걸리는 거라구요. 그래도 고마운 줄은 모르고 뭐 쓰다 달다 타박이 수두룩하다는 거라구, 이 쌍것들! 그건 망할 것들이예요. 안 망하면 내가 망하게 해줄 거라구요. 그건 망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패는 문선생과 상관없다구요. 그런 마음 있거들랑 보따리 싸 가지고 살짝 갔다가 몇해 후에 오라는 거예요. 방해가 되는 거라구요.
못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들어오느냐? 아니야, 아니야! 통일교회는 누구든지 다 들어오지 말라구요. 내가 필요한 사람 외에는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그러면 필요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자식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 나라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 이 세계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을 안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키고 예수를 해방시켜 드리자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예수를 해방 못 시킨 것 아니예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했으니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나중에는 예수 장가까지 보내 줘야 되는 거라구요.
이런 말을 한다고 이단이라고 하는데, 누가 이단인가 두고 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신부를 찾기 위해서 2천년 동안 별의별 죽고 살고, 못사는 놀음을 했는데, 예수님의 신부를 찾아 가지고 혼인잔치 준비해 주겠다면 예수님이 나빠할 게 뭐예요? 하나님도 그것 못한 것이 한인데, 하나님이 나빠할 게 뭐예요? 그게 이단이예요? '장가들지 못한 노총각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시집가지 못한 처녀들, 올드 미스가 되어 가지고 노처녀로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안 계신 80세 노인 아버지도 그 아들딸이 모여 앉아서 쑥덕 쑥덕하면 '왜 쑥덕공론하니?', '아버지는 몰라도 돼요!','야 너희들은 지금까지 효자노릇을 잘했는데, 오늘 아침따라 왜 아버지는 몰라도 된다고 하니? 왜 그런 반대 말을 하노? 내가 섭섭하지 않나?', '아니예요, 아니예요' 하면 '아니긴 뭐가 아니냐!' 하며 아버지가 성이 나서 투덜투덜하게 되면 '아버지, 딴 게 아니예요. 우리가 어머니를 한 분 모시려고 공론했어요!' 할 때, 그 아버지가 '아, 그래, 그놈의 효자 효녀들한테 내가 괜히 그랬구나. 아이구…'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여기 남자들은 통할 거라구요. 자기를 위해서 쑥덕공론하고 그래도 그 아버지는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하나님 잠깐만 기다리소. 우리 쑥덕공론하는데…' 이래 가지고 새벽부터 해 가지고 하루, 이틀, 사흘, 한 일년 동안 쑥덕거리느라고 인사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볼 때, '야 야, 이녀석 아! 왜 그래? 아침 저녁으로 인사해야지?' 할 때, '아니, 조금 기다려요. 조금 기다려요. 하나님…' 하나님이 기분 나빠서 '이 녀석' 그러면,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어요. 조금 기다려요, 기다려요' 하면, 하나님이 '야, 이놈아!' 하며 벼락을 치겠다고 하면, '그렇습니까? 벼락을 치면 하나님 망합니다' 해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을 위한 것을 보고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벌주겠어요? 부모의 염려할 것을 먼저 염려하면서 부모 앞에 알리지 않고 하려고 하면 '야, 요놈의 망할 녀석아' 그러겠어요? '야, 이 녀석이 저만큼 컸구나…' 한다는 거예요. 그런 길이 있다구요. 이건 자기를 위해서 '나 천당가겠다'고 그런 시시한 통일교회 문선생이 아니라구요. 천당은 이미 몇번씩 갔다 왔고, 모든 것 다 알고 있는 거라구요. 천국에 가게 되면 제 1은 어떻게 되고 제2는 어떻게 되고, 수속절차며, 누가 환영 나올 것까지 다 알고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여러분에게는 필연적인 길이 있는데, 죽음길이 필연적인 길이예요. 우연적인 길이예요? 대답해 보라구요. 「필연적인 길입니다」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길이예요. 자, 그때는 남편 데리고 가지요? 여편네 데리고 가지요? 아들딸 데리고 가지요? '제발 데리고 가라. 안 데리고 가면 큰일난다'고 해서 데리고 갈 수 있어요? '아이쿠, 당신은 오지 말고 남으소' 하면서 떼어 놓고 가야 된다구요. 아들딸에게도 '야 야, 오지 마라, 오지마라. 나 혼자 가겠다' 하며 혼자 가는 거라구요. 자기 혼자 가는 겁니다.
자, 슬쩍 한 고개만 넘어가면 영계가 없는 게 아니예요. 앞으로 이제 초감각적인 시대가 와요. 영통을 안 하는 사람이 없을 때가 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 지구성을 습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그 다음에는 영인들이 습격해요. 사탄 마귀가 지금 습격하고 있지만, 선한 영들이 습격할 때가 오는 거예요. 그런 길을 닦기 위해서 내가 이러고 있다구요. 자식을 대한 부모의 입장을 보더라도 사랑하는 자리,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자식을 위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있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여러분, 이제는 요만큼 왔어요. 누가 부정하더라도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또, 죽음길은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혼자가게 될 때는 어떡할래요? 황량한 영계가 벌어지면 어디로 갈 거예요? 국적이 있어요, 국적? 국적이 없는 민족이 어디로 가요? 집이 있어요, 어디로 가요? 제일 무서운 세계가 됩니다. 거기에는 사탄이 올 것이고, 거기에는 천사도 올 것이라구요. 사탄편에 서 있으면 천사도 안 온다구요.
이렇게 될 때, 죽고 나서 눈을 번쩍 뜨고는 영계가 있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때 사탄이 끌고 가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야 야, 네가 앞장서라' 하며 이러고 달려들 거라구요. '가자 가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길이 있다고 생각할 때 여기서 잠이 와요? 그것은 필연적인 길이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러한 놀음에 대해서 심각한 사람이라구요. 사후에 어떻게 되느냐? 내가 영계에 가는 날에는 누구 누구가 올 것이다. 다 만들어 놨다구요. 알겠어요? 공자니, 석가니, 뭐 예수니, 그들의 비밀을 내가 다 알고 있다구요. 예수님도 딱하신 심정…. '당신이 이래서 죽지 않았어요?' 하면, '그렇고 말구. 어쩌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것을 다 알아?' 그러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하고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 주님!'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않는다구요. 친구지간이라구요. 이런 말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 누가 이단인가 가 보라구요. 그거 다 닦아 놓고 가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땅 위에 누구 누구가, 문 아무개가 갈 때는 자그마치 영계에는 대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안 믿어지거들랑 당장 기도해 봐 가지고 알아보라구요. 이게 통일교회의 하나의 협박 같은 말이라구요. 모르겠으면 기도해 봐라… 기도해 봤다가 진짜인지, 진짜가 아닌지 판 틀리면 어떻게 될 거에요? 그런 내용이 다 준비돼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기란 힘들지만 나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어디로 갈래요? 준비돼 있어요? 죽게 될 때에는 통일교회 패들은 '아이고 선생님, 내가 죽어서 영계에 가니까 부탁합니다' 그때 가서 준비 안 된다구요. 그 준비는 땅에서 해야 돼요.
땅에서 수속을 밟아 약혼식을 하고 예장(禮裝)을, 치장을 하고…. 그 준비를 해야 되는 거라구요. 자신 있어요? 그 남편이 영접을 하겠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영접을 하겠어요? 못하는 거라구, 못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후에 벌어질 비운의 역사를 생전에 다 가려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갈 길이 바쁘다구요. 자, 그 길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준비를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해야 되겠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바쁜 거라구요.
자, 그러니까 땅 위에 사는 모든 습관성을 이제는 청산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내가 느끼는 감각부터…. 내가 무엇을 보게 되면 좋든가 나쁘든가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됩니다. 내게 이익 되느냐, 마이너스 되느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하게 마련입니다. 손을 한번 이렇게 했으면 그것이 좋은 손길이냐, 나쁜 손길이냐? 하나님이 좋아하는 손길이었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손길이었느냐? 내가 어디에 갔다 오면 그것도 둘 중의 하나로 결정된다구요. 자,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을 갔다왔느냐, 선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왔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자리에 갔다왔느냐, 악할 수 있는 자리에 갔다 왔느냐? 둘 중의 하나라구요. 전부가 그렇다구요.
밥을 먹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 나서 그 밥이 소화될 때에 하루의 생활이 선한 편에서 살았느냐, 악한 편에서 살았느냐?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보는 것도 그렇고, 듣는 것도 그렇고,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여편네면 여편네, 남정네면 남정네 끼리끼리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둘이 합해 가지고 보다 나을 수 있는 선한 가정을 이루었느냐, 악한 가정을 이루었느냐? 전부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이 살아 가는 데도 전부 다 그렇다구요. 서로가 좋아하더라도 사탄편에서 좋아하느냐, 하나님편에서 좋아하느냐? 나라가 나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라의 운세 가운데 서 있느냐, 사탄이 좋아하는 나라의 운세 가운데 서 있느냐? 끝장이 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 과정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볼 때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세계냐, 사탄이 좋아하는 세계냐, 둘 중의 하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왜? 몸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열매맺힌 것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철학이나 사상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유물사관이니 유심사관이니 하는 것도 둘로 돼 있지요? 하나는 몸을 대표한 세계관이요, 하나는 마음을 대표한 세계관입니다.
몸뚱이 편은 '신이고 하나님이고 없다' 하며 들이죄기는 거라구요. 그것은 사탄입니다. 마음 편은 '하나님이 있다' 하며 몸뚱이 편을 들이죄긴다구요. 이것이 언제 하나되느냐? 몸뚱이가 하나되기 전에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몸뚱이가 하나되기 전에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몸뚱이가 언제 하나가 되느냐? 여기에는 몸뚱이 혹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창조원리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보다 높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렇지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날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가 되는 날에는 중심을 통해서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알겠어요? 거기에서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작용의 모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기의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라구요. 요렇게 돼 있어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거들랑…. 마음과 몸을 보면 마음은 주체요, 몸뚱이는 대상입니다. 이것이 둘이 싸우게 됐는데, 왜 싸우게 됐느냐? 요 몸이 플러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알겠어요? 타락이 뭐냐? 주체되는 마음 앞에 몸이 영원한 대상이 되어야 될 텐데, 이것이 또 다른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게 타락입니다.
오늘날 동양철학으로 말하면,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구요. 그 어두움은 빛을 따라가기 위한 어두움이지, 빛이 왔는데 '야, 못 온다!' 하며 막는 그런 어두움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빛이 아무리 어두운 데에 있더라도 그 빛에 따라 가지고 그 어두움은 자유통과 해 가지고 점령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어두움이 빛을 반대해요?
사탄은 무엇이냐? 또 다른 주체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이 죄입니다. 교만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절대 주체자인데 자기를 절대시하게 되면 이것은 사탄 족속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절대복종이 원칙입니다. 절대복종하라는 것은 뭐냐? 절대적 주체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라는 말입니다. 마이너스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절대적인 주체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그 무슨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냐? 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은 본래 계시며, 플러스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왜 창조했느냐? 하나님도 혼자서는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좋다는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자기 혼자서 행복하다는 사람 있어요? 혼자 좋다는 사람, 그건 미친 녀석이라구요. 혼자 기뻐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좋고, 사랑이고, 행복이고, 바람이고 하는 것은 차원 높은 의미의 상대적 관계를 요구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고, 거기에서 행복의 요건의 등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도 상대가 없어서는 큰일나겠기 때문에 상대적 존재로 지은 것이 무엇이냐?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로 계시느냐 하면 이러한 주체로 계시는데, 이것을 형으로 보면 강하고 약한 플러스 마이너스의 소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판서하며 말씀하심) 그래 가지고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요 원칙을 따라서 만물은 발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한 주체가 피조물을 지은 것은 왜냐 하면 이러한 상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 상대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가 그냥 그대로 떨어져 나와서는 행복하지 않은 거라구요. 요 상대들도 행복하려면 요것이 갈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 놓은 것이 남자요 여자입니다. 요것이 합해 가지고 행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한 남자에게도 이러한 마음과 몸의 관계가 상대형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에게도 상대형이 있다는 거예요. 여자에게도 마음과 몸이 있는 것입니다. 요런 원칙으로 우주는 구성되어 있다구요. 알겠어요? 요것은 마이너스 소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요, 요것은 플러스 소질을 많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을 왜 이렇게 갈라 놓았느냐? 왜 갈라 놓았느냐 하면 이것들도 행복을 느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남자 자체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까 여자로 갈라놓은 것이요, 그것은 여자 자체와 남자 자체를 서로 행복하게 하기 위한, 횡적인 행복권을 만들어 가지고 서로 하나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 뭐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는 하나되는 법이 없어요. 그렇지요? 남자와 여자를 하나 만드는 것은 무엇이예요? 사랑이라구요, 사랑.
남자와 여자를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하면, 요 자체내에서 하나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작용은 무엇이 하느냐? 무엇이 해요?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재창조역사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가능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목적과 몸이 원하는 목적을 발견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는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왜 하나되려고 하느냐?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익되기 때문에 자기를 부정하면서도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적 노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창조했느냐? 창조를 왜 하게 됐느냐? 하나님밖에 없는 자리에서 피조물을 창조할 때는 어떤 입장이냐? 자기를 소모하는 입장입니다. 에너지를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너지. 안 그래요?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면 손해가 납니다. 손해가 나는데 하나님이 왜 기쁘냐? 이게 문제라구요. 왜, 기쁘냐? 하나님이 '선한지라' 하셨는데, 언제 선하냐 하면 힘을 투입할 때에 선한 것이 아닙니다. 힘을 다 투입해 가지고 그 물건이 완성한 물건이 되었을 때인데, 그때 그 완성한 물건에서 무엇이 생기느냐? 예를 들어 말하면, 남자가 완성하면 여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데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여기에는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기 위한 사랑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남자가 완성하고 여자가 완성하여, 사춘기 시대를 지내 가지고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그 남자보다도 강하고, 여자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통일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서로서로가 부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길에서는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요 힘이 왜 있느냐? 요 힘이 왜 있게 됐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것을 투입해 가지고 이 사랑이 완성된 후에는, 그것이 사춘기와 마찬가지의 완성권에 왔으면, 여기에서는 보다 강한 힘의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열만큼의 힘을 투입했는데, 여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본성의 대상적인 사랑의 힘을 투입하게 되면, 먼저 투입한 것보다도 강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그렇지만 인간이 완성돼 가지고 사랑이 가중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투입한 힘보다도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학의 원칙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요것을 소모시키게 되면 어떤 게 돌아오느냐? 요런 힘이 되어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열만큼 힘을 소모시켰지만 그 힘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열만한 힘을 투입한 그것을 중심삼고 또 다른 상대의 이념을 추구하는 존재적인 힘, 다시 말하면 사랑의 힘을 가해 가지고 돌아오기 때문에 이것은 요것보다도 강한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손해 보는 입장에서 투입했지만, 여기에 작용을 투입했지만 그 이상의 사랑을 통해서 자극을 느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감이 안 나거든 예를 들어 보자구요. 아들딸을 낳은 부모가 고생을 죽도록 했지만, 그 아들딸이 어머니를 점점 더 알게 됨에 따라 가지고 엄마 앞에 반겨 들게 될 때는 그 어머니는 그때까지 수고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것은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기 때문에 창조하고 나서 기뻐했다는 겁니다. '선한지라' 사랑이 그 상대에게 미쳐지지 않게 될 때에는 선하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요렇게 된 거라구요.
남자나 여자가 다 성숙하게 되면 사춘기 시대에서 반드시 입체적인 힘에 의해 상대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플러스 입장에 서 있는 마음과 마이너스 입장에 서 있는 몸뚱이가, 즉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는 사춘기 시대가 왜 없느냐 그거예요. 알겠어요?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내 개체는 왜 하나되려고 하지 않느냐? 요게 모순이라구요.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려고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되려고 하는데 왜 내 몸과 마음은 하나되려고 하지 않느냐? 그렇게 하나되려고 하지 않는데, 플러스적인 남자와 마이너스적인 여자는 왜 하나되려고 하느냐? 이것이 역설적인 입장입니다. 그거 이상하다는 거예요. 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타락입니다, 타락. 타락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타락으로 인해 또 다른 플러스가 생겼기 때문에 서로 반발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플러스 입장에 서지 말고 마이너스 입장에 서라고 합니다. 완전히 희생하라! 완전히 복종하라! 그러면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게 되고,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개인에게 있어서 이것이 하나되면 무엇이 나오느냐? 중심이 생겨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들어오기 때문에 영통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계를 통해 버리는 입체적인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자기의 몸뚱이는 여지없이 마음을 위한 하나의 길로 규합되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되게끔 해 가지고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것이 본연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물에 빠지고, 병이 났으니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거예요.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자,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요것이 상대적 관계에서 남자 여자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남자 여자를 갈라 놓아 가지고 요것이 비로소 하나되면 부부를 이루게 되고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요것이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하나 돼 가지고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왔지만, 끝에 가서는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요것이 절대적인 플러스 앞에서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돌아가던 것이 결국 180도 돌아섰다는 말이라구요. 안 그래요?
인간들이 지금까지 바라고 나온 것은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은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출세를 꿈꾸며 나간다구요. 알겠지요? 전부 다 세계적 출세를 하려고 하는데, 세계적 출세를 알아요? 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편을 얻어가려고 하고, 남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자를 얻어가려고 한다구요. 그걸 바라볼 때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높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요것보다 플러스적인 가치를 찾아가지만, 세계 끝에 남자와 여자가 딱 완전히 차지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자기가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대통령 위의 자리를 또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찾아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완성을 이루게 되면 이 주체는 마이너스를 찾아나가야 되고, 여기의 마이너스는 플러스를 찾아가는 길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러스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욕망을 두고 찾아 나갔지만 최후에 가서는 '팩'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왜 돌아서야 되느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때가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원리로 말하면 왼쪽으로 주려고 하던 것을 바른쪽으로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지금까지의 입장을 완전히 부정하는 놀음입니다, 부정. 요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한 길을 애당초 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전부를 부정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자리까지 가자. 말세까지 달려가자' 하는 것이 기독교 사상입니다. 말세까지 가서는 절대적인 마이너스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고기압권이니 나는 절대적인 저기압권이 되자는 거예요. 절대적인 저기압권이 되면 나쁘냐? 절대적인 저기압이 되면 절대적인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을 채움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소성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완전히 차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같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같아집니다. 여기서 통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몸뚱이를 사랑하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끝날은 어떤 때냐? 자기가 믿어 오던 그 종교를 가지고 그냥 그대로 일방통행으로 하나님 앞에 못 간다. 나라도 못 간다. 세계도 못 간다. 부정하고야 간다. 이런 논리가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완전한 종교는 완전 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게 이론적이라구요. 오늘날 종교에 끝날이 다가왔으니, 국가와 세계의 운명에 끝날이 다가왔으니, 이때에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횡적인 이념을 찾아 나가는 역사가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다운 남자와 여자들로서 구성된 인생관이 설정되어야 되고 세계관이 설정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가지고 하늘땅이 통할 수 있는 사상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표방하고 그러한 사상의 길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통일은 무엇을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인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륜과 인륜이 합해져야 합니다. 인륜과 천륜은 무엇을 중심삼고 합하여질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보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위가 될 것이냐, 하나님의 며느리가 될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사위나 며느리가 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보다 높은 것이 뭐냐? 아들딸입니다. 아들딸 이외의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떤 자리에서 사랑할 것이냐? 인륜과 천륜이 있으면 인정과 천정이 있을 것이거늘, 인정과 천정이 연합될 수 있고 통일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인류는 아들딸이 되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가 하나님을 대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우주의 근본을 설파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여러분들, 지금 무엇이 되려고 그래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고 한다구요. 그렇지요?「예」 세계 대통령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딸까지는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더라도 어떤 아들딸? 반대되는, 불효한 아들 딸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마음을 점령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하기를 '독생자'라고 하였습니다. 독생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가 신랑으로 오기 때문에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한 종교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종교는 최후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까 말한 거와 같이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없고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 중에 보다 나은 종교라야 됩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나라를 위하는 어떠한 사상 이상 나라를 위하는 사상이 되어야 되고, 세계를 위하는 어떠한 사상 이상의 주의 사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다 연결되어야지, 동강이가 나고 따로따로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합된 귀결점을 가릴 수 있는 새로운 이념적, 사상적, 애국적, 혹은 종교적 내용을 일원화해 가지고 그 목적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끝날에 모든 것을 부정해 놓고, 간절히 바랄 것은 하나님의 사랑 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심정의 역사를 말하는 겨예요. (판서하심)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심정통일을 말하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반대하는 거예요. 심정통일이 벌어지면 생활통일은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부끼리 하나되어 심정통일이 벌어지면 행동은 남편 가는 데 그 아내는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아버지와 자식지간이라면, 아들이 가는 데 아버지가 따라가려 하면 그 아들이 '아버지, 오지 않아도 돼요' 하더라도 그 아버지는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주관할 수 없고 제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병사가 동원되고 인류가 동원되더라도….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아버지로 알고 키움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의 아버지로 알고 자식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어떠한 설법과 어떠한 방법을 가지고 사랑하는 그 사이를 끊을 무엇이 있어요? 그것은 출발부터 통일이요, 생활 자체가 통일입니다. 그 무엇이든지 통일할 수 있는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못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것을 절대시하는 자리에서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을 바라니 절대적인 기준에서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남아 있으면 아직까지 사탄세계의 플러스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깊은 불평불만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만족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에 나가더라도…. 예수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릴 때, 엉엉 울면서 기가 막힌 입장에서 '아이고 나 죽지 않겠다'고 그랬다면 구세주도 못 되고, 부활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감사로 기쁨으로 맞이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본래 우리 인간은 기쁨으로 와서 기쁨으로 살다가 기쁨으로 죽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원칙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권내에 들어왔더라도 기쁨으로 감사하고 살다 가야만, 하늘과 더불어 그럴 수 있어야만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필연적으로 찾아가야 할 길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갈라져 가지고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던 투쟁의 역사는 지금 내 가슴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바울이 말하기를 마음의 법과 몸의 법, 둘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이 싸움에서 누가 나를 구해주리오' 하고 탄식을 했다구요, 바울까지도.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도 그 싸움에서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싸웠던 거예요. 예수님도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몸도 굴복하고 마음도 굴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절대적인 상대적 입장을 취하려니 내 뜻 말고 하나님의 뜻을 강조했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남편만을 위하는 아내는 없어진 것 같지만 남편을 싸우지 않고 점령하게 마련입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자기 아내에게 명령하고 교육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끝까지 아내를 위하려 할 때는 그 아내는 그 남편을 위하지 말라고 해도 더 위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왜 싸웠던가? 거기엔 '나'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자각 때문입니다. 자체 자각을 한데서부터 타락한 것입니다. 자체 자각이 남아 있는 여자는 시집가더라도 남편하고 하나 못 되는 것입니다. 주체 자각을 자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체 자각을 부정해 놓고 하나님을 중심한 주체 자각을 해야 됩니다. 나는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적 자각을 부정하고 주체적 자각을 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인간의 복구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심전(心田)을 계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돼 있다구요.
효자는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부모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신은 뭐냐? 군왕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열녀는 뭐냐? 남편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이상(理想)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주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받고 있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시느냐? 지금까지 주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일해 나오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일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체인 것입니다. 그 주체를 주체로 모시기 위해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상대가 되려니 절대복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저기압권이요,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비법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오?' 하고 물을 때, '아이고 사랑하지. 세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지. 그렇지만…' 할 때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서 요만큼 남아 있어' 할 때는 기분 좋겠어요? 요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 있다구요. '요만큼만 남아 있어' 할 때는 지금까지 좋다는 것이 도리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있어라. 절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살아라. 그래서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상대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가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남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존재는 자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모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인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자기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그가 하나님이 향하는 방향과 일치되지 못한 입장에서 자기를 주장하는 입장에 있으면 이는 망하는 것이요, 국가면 국가도 하나님의 섭리역사관에 일치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요, 어떤 주의도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이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입장에서 주체만을 위할 수 있는 사상의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희망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된다, 여기까지 올라간다는 거예요. 남편 앞에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남편의 사정을 알아야 되고, 소원을 알아야 되고, 심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이 비로소 새로운 종교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이 발현될 것입니다.
그 발현된, 그 인연된 통일적인 내용이라는 것은 인간 누구든지 요구하고, 국민 누구든지 요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인류사에 있어서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만을 위할 수 있는 세계에 포괄되고 거기에 안식할 수 있는 자기 생명의 가치를, 온 주체와 더불어 하나된 자리에서 찬양할 수 있어야만이 보다 절대적인 이상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나님이 계신 맨 안방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만이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노동자의 딸, 아무리 무식한, 유치원도 못 간 그런 여자라도 그 나라의 주권자와 사랑관계를 맺으면 그 나라의 국모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이 형편없고 사탄의 제물밖에 될 수 없는 입장이지만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하늘의 본궁 그 안방까지도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들어가고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요, 필연적인 귀결점이요, 필연적인 역사의 노정인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것에 골인할 수 있는 자체를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아야 되고, 국가를 찾아야 되고, 세계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데서만이 본연의 나, 몸과 마음이 분열되지 않은 결렬되지 않은 통일된 나로서의 귀결점에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인간역사를 청산하고, 비로소 내 자체의 인간으로서 승리했다는 우주사적인 가치를 들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당히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원의 길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 우리는 '통일전선 수호'라는 엄청난 표제를 내걸고 1월부터 8월까지를 지냈습니다. 오늘은 9월을 맞이하여 3일째 되는 날이요, 이달에 있어서 처음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날 아침에 '필연적인 길' 이런 내용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소원하고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통일된 당신의 사랑의 대상의 실체가 되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사탄의 종이 됐고 사망의 족속이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되살리기 위한 구원섭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이 종교요, 그 종교사상 가운데 있어서 신랑신부의 이념을 가릴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이 기독교역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마음적인 면의 민주세계를 대표해서 기독교 문화권이 그 주도적인 입장을 가려 나오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하게 된 줄을 압니다.
이 세계 가운데서 자기 나라만을 사랑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것은 이미 실험이 끝난 세계적인 말로에 처한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보다 넓은 차원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하늘 주체를 위한, 자기 나라를 희생시키면서라도 세계를 살리기 위한 민주주의가 되지 못한 것이 지극히 비통한 사실이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우리는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일개국을 위주로 한 애국심에 사로잡힌 그런 민족성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종족을 초월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의 혈족을 민족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기의 종족을 세계인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류보다도 하나님을 덜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통일로 갈 수 있는 방향은 이미 제시됐습니다. 목적의 세계도 이미 제시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버님의 사정을 통하고 아버님이 바라는 희망의 방향을 따라 가지고 아버님의 심정적 생활을 중심삼은 안식의 자체를 복귀하는 것만이 필연적인 운명의 길인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내 마음 속에 아버님의 사랑이 있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아버님이 인연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동으로 가게 되면 그 부모도 동으로 갈 수 있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기 때문에 아버님의 아들이라면 아들이 가는 곳에 부모되는 아버님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아버님이 계신 곳에 저희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입장은 다를지라도 묶어져 있는 자리는 한 곳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자리도 서로서로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리인 것을 알고 아버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행복이요, 아버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필생의 길인 것도 알았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나가기 위한 싸움을 우리는 전개했사오니 끝까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최후까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강한 원수가 있더라도 이것을 직시하면서 내가 사랑의 힘을 가지고 포괄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그길을 위하여 밀실에서 기도하고 그 사랑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 하늘의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죽음의 길도 넘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를 버리고라도 새로운 인류의 현현을 위하여 저희는 선두에 서 가지고 이 인류를 각성시키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방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한 것이 통일의 무리였사옵니다. 개인을 버리지 않고는 가정을 찾을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종족을 찾을 수 없는 것이요, 종족을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이요, 이 땅 위의 나라를 버리지 않고는 아버님이 원하는 세계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나섰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오로지 아버님을 중심삼은 통일입니다. 내 개체도 아버님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을 통일하고,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며, 민족이면 민족, 분열된 한국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그와 같이 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오른편 왼편, 양편이 아버님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묶어질 수 있는, 열 손가락이 하나로 묶어질 수 있는 길 이외에는 길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님이 이 나라의 주체적인 새로운 이념적 국가의 중심이 되어 주기를 저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계도 좌우로 갈라져 있사온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키이 포인트(key point)가 한국이옵니다. 한국에서 이것을 가려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으로 불이 붙여질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싸워 나가고 있사오니, 통일의 운세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엇갈린 입장을, 아버지여, 살피시옵소서. 몸과 마음이 엇갈린 이 운명길을, 아버님의 사랑을 더듬어서 아버님의 인격관과 하나님의 세계관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옵고, 지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 초월적인 것을 바라는 이 국민이 되지 않고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을 위해서는 저희들은 싸워야만 되겠습니다. 이 길을 위해 저희들은 개척해야만 되겠습니다. 이 길을 위해서는 악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선만을 위주해 가지고, 싸움길에서 지치지 말고 최후의 적진을 직시하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당당히 진군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러한 아버님의 사랑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리하여 당신이 찾아오는 길을 상속받아 가지고 기필코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찾아오던 나라를 기필코 이루어 드릴 때까지 저희들이 싸우면서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찾아오던 세계를 이루어 드릴 때까지 저희들은 기필코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자리까지 죽더라도 따라갈 것을 이 시간 맹세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인 것을 알았사오니, 아버님의 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소원과 더불어 아버님의 심정을 통하여 가지고 아버님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아버님을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부부가 되고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까지 추구해 올라가야 할 방대한 소원의 길에서 낙오자들이 되지 않고, 희망 중의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건설자가 되고, 내일의 무엇을 남기며, 내일을 품고, 내일을 위해 사는 무리가 되기 위한 것이 통일의 무리인 것을 이 시간 새로이 자각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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