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72년 7월 1일, 이해에 있어서 6개월을 지내고 새로운 6개월을 맞이하는 첫날 이 아침에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존귀가 온 피조세계에 같이하기를 기원하나이다.
아버지, 금년의 이 7월 1일이 섭리상에 있어서 중요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영계와 육계, 천상과 지상이 합하여 하나의 통일의 노선을 갖출 수 있는 역사적인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민족이 분단된 비운의 운명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 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하여야 할 운명이 저희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의 무한하신 협조를 바라오며 아울러 당신의 노고 앞에 충효를 다짐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이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달을 출발하는 이날에 다시 한 번 그러한 결의를 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이곳 서울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조아리고 당신 앞에 부복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녀들 위에 무한한 축복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이 한국을 흠모하면서 이 나라의 해방과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간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만이 중심이 되고, 당신만이 주인이 되고, 당신만이 통일의 역군이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기에, 저희들은 당신을 따라 하나되고, 당신을 따라 순종하고 당신을 따라 희생함으로써만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당신 앞에 귀일되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바라는 소망이 이땅 위에 있고, 인류의 역사가 바라는 소망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전체가 통일된 은사의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승리적 조건을 제시하여야 할 책임이 오늘 모인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남한에 살고 있는 삼천만 민족을 당신이 긍휼히 보시옵소서, 하늘을 중심삼고 이들을 통하여 최후의 싸움을 판결지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사온데, 그것을 이들이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 무지한 백성을 깨우치고 갈 길을 알지 못하는 모든 백성들을 아버지 앞에 인도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책임 못 한 과거의 지난날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오늘부터 새로운 약속을 다짐하고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부터 6개월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날들이 아버지 앞에 필요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위해서 봉헌할 수 있는 거룩한 날들로서 이 반년을 지내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 자신을 아버지 앞에 내세울 적마다 하늘을 내세울 줄 알게 허락 하여 주옵고, 자기 자신을 아버지 앞에 기여할 적마다 하늘이 높으신 것을 자랑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이 6개월간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이 민족 앞에 맡겨진 책임과 남아 있는 역사적인 분량의 책임을 감당하고 남을 수 있게끔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부터 이 하루를 출발하겠사오니 이 자리를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고, 나머지 달들이 아버지를 영광으로 모셔 드리고 승리를 자랑할 수 있는 거룩한 날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단결하여 최후에 지켜야 할 하늘의 절개를 지키고, 아버지 앞에 충성을 다짐하여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민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로운 자리에 서 있는 이 한국 민족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아시아에서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내세우기 위해서는 피어린 투쟁의 과정이 아직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 일을 위해서 단결하고, 이 일을 위하여 전진하고, 이 일을 위하여 싸워야 되겠습니다. 하늘만을 의지하는 강하고 담대한 용사들이 되어야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으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72년을 맞이해서 벌써 반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부터 나머지 반년이 우리의 가는 길을 맞이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 도상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일도 있겠지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하늘의 승리를 어떻게 이 기간에 이루어 드리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각자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역사는 반드시 오늘이라는 현실을 거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현실은 과거를 대신할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하겠고, 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놓을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현실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고는 어떠한 단체, 어떠한 민족, 어떠한 국가도 역사에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보다 가중된 터전을 오늘 우리가 어떻게 남겨 놓느냐 하는 것이 현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현재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과거의 어떤 사람보다도 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낫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부과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선 거기에는 전후를, 혹은 환경을 과거보다 나은 것으로 갖추는 일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 환경보다도 환경을 움직일 수 있는 우리 자체, 즉 국민이면 국민, 우리 개인이면 개인 자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환경을 움직이고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 각자의 노력이 역사과정의 어떤 시대보다도 두드러지게 될 때에는 그 환경도 개척되는 것이요. 환경의 터전도 좋은 역사적인 터전으로 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이 주체이지 환경이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주체가 될 수 없는 이런 입장에서 주체의 사명을 감당해 내야 할 우리 자체들, 혹은 국민이면 국민, 국가면 국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현재에 처해 있는 우리들의 입장이 대단히 귀하다는 것을 알고, 현재를 지킬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거에 충신이 있었다면, 그 충신이 나라를 대하던 그 이상보다 나은 충성심을 가지고 나라를 대하는 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밀려나 가지고는 역사적인 새로운 무엇을 남겨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환경을 밀고 나가 가지고, 자기가 본의의 목적하던 바를 환경의 터전으로부터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역사적인 새로운 무엇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현재에 있어서 우리들 앞에 이러한 터전이 요구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은 물론 어떤 단체나 민족, 국가 전체가 이와 같은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1972년도 이미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이 제 3차 세계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어느때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순회하던 그런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정성을 많이 들였다 하더라도 현재에 있어서 과거에 정성을 들인 이상의 기준을 남겨 놓지 않고는, 과거에 우리가 대하고 느끼고 활동하던 그 실적 이상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보다도 나을수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갖지 않고는, 과거에 비춰 보았을 때 현재가 부끄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게 될 때, 현재가 자랑이 되고 현재가 모든 전체의 중심이 되는 데 있어서는 과거의 어떤 때보다도 현재가 문제인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새로이 발족하고 새로이 출발할 것을 다짐했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이 돌아온 것을 정점으로 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내리받이를 향하여 내려가고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보게 될 때, 역사라는 것은 무정한 것입니다. 우리의 활동 실적 여하에 따라서 그 결과가 자연적으로 환경에 나타나는 것은 역사적인 실정입니다.
오늘날 현재 국가적인 운명이라든가, 현재 이 민족이 처해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 지극히 긴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북괴 5차 전당대회 때 전국민이 시위하는 것을 영화로 보게 될때, 이북이라는 곳은 전인민이 무장되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전부 정규군으로서 어느 때든지 일선에 나가 싸울 수 있게 완전히 훈련되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남한을 위해서 혹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한다고 했지만, 과연 충성했다는 실적이 어느때 나타날 것이냐? 그 실적이 나타날 때에는 국가의 비운이 깃드는 이때에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니겠어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6월을 보내고 7월 초하루를 맞는 금년 후반기에 있어서는, 우리 통일교회가 그야말로 어떻게 총단결해서 어떠한 환경의 어려움도 극복해 가지고, 과거의 어떠한 때보다도 나은 1972년의 현실적인 후반기를 남기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이 보다 귀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못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나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나아야 합니다. 언제나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자체를 지키지 않고는, 또한 지킬 줄 모르고 서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단체는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그러한 나라의 미래는 발전이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 어떠한 개인을 막론하고 이 원칙은 틀림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두고 볼 때, 하늘을 믿는 현재의 여러분의 마음이 어떤 때보다도 더 강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늘을 위해서 충성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 어떤 때보다도 더 나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오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점점 향진해 가지고 넘어지고 높아질 수 있는 이러한 결과를 바라는 입장에서만이 여기에 찾아오는 날들 앞에 우리의 바람직한 소망이 부여되는 것이지, 만일에 그런 결과가 다짐되지 않게 될 때는 소망보다도 책임이 더 크게 되고, 그 책임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가중된 절망이 가까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늘이 사람을 택하게 될 때는 평상시에 택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비상시에, 긴박한 때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최후의 판가리를 하는 때에 하늘은 사람을 세워 가지고 역사했습니다. 언제나 비상시에 하늘과 인간이 하나되어 가지고 역사했지, 평상시에는 역사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 때를 보나, 아브라함 때를 보나, 모세 때를 보나, 혹은 예수 시대를 보아도 그때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비상시였습니다. 과거 어느때보다도 현실에 있어서 보다 나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고 한 때는 좋은 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비상시였습니다. 좋은 의미의 비상시가 아니라 슬픈 의미의 비상시였고, 그런 때에 하늘은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세워 가지고, 혹은 새로운 단체를 세워 가지고, 새로운 민족을 세워 가지고 그 환경을 혁신하는 놀음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섭리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을 볼 때, 현재 판국의 위치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서쪽을 보나 북쪽을 보나 혹은 동쪽을 보나 심상치 않은 정세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북으로도 갈 수 없고, 남으로도 갈 수 없고, 서로도 갈 수 없는 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 민족이 아니겠어요?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국민 자체 자체들이 서로서로 신의를 두터이 해 가지고 하늘밖에 믿을 수 없는 현재의 시점이 아니예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횡적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전국민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국민이 하나되고 그 다음에 나라가 하나되어 가지고, 나라가 제시하는 그것에 모든 전체의 총력을 집중시켜야 됩니다. 그러나 나라만 가지고 안 되겠다 이겁니다. 우리는 나라만 가지고는 안 될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다 강하게 믿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울때 하늘이 같이하고 있다는 것, 이 민족을 하늘이 사랑했고 이 민족을 통한 어떠한 섭리의 뜻이 있다면, 하늘이 기필코 이 민족을 통하여 최후의 결단을 마련하려고 한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단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는 평범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하늘이 최후의 결정타를 가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 역사를 초월하여 새로운 차원의 시대를 형성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자리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72년 7월 1일 오늘부터의 72년도의 후반기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장 귀한 때가 아니냐? 이것은 여러분이 모든 안팎의 정세를 미루어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역사를 창건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현실의 모든 불의한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여기에서 하나의 새로운 목표를 정해 가지고 민족 앞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년간 역사를 거쳐오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활동이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패자가 되게 될 때는 동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적으로 희생의 자리를 다짐하면서 이 나라 이 민즉 앞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다각적인 활동을 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한계선에 미쳐져 가지고 인정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달리던 기차가 거의 종착점에 다다랐는데,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착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여기에 최후의 피치(pitch)를 가해 힘차게 종착점까지 달려가 가지고 웅장한 자세를 보이고 내일의 희망을 갖고 또 달릴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통일교회의 오래된 식구들은 물론 모든 식구들을 바라보게 될 때, 달리는 기차로서는 종착점에 다 다가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연료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가는 그 속도를 가속시켜 가지고 더 바쁜 시간을 재촉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체를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목적지가 희미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은 가장 위험한 입장이 아니냐 하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느낀다는 것은 여러분도 공인하는 바일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여러분의 말로(末路)는 어떨 것이냐? 그 종착점이 여러분과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 놓인 현재의 입장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이것은 그 누구가 타개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이 타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 즉 자조자(自助者)를 돕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적인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서 있다는 자각된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대신한 것도 물론이지만 역사를 대표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했으니만큼, 우리는 역사의 말석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역사의 선두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과거보다 나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낫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은 쉽지만 여기에는 피어린 희생이 가중될 것이며, 무정한 투쟁의 결과를 촉구하는 것만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기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을 사랑하고 나서 그런 일을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목적을 가중시켜 가지고 단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역사요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섭리는 최후에 남아질 하나의 목적이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이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자체가 절대적인 자아의 신념을 가져 가지고 그 목적만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곳에서만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라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둘 다 사랑하는 자리에서 이것이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은 평상시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비상시에는 그러한 여건을 가지고 최후의 승리를 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1970년대를 향해 들어오면서부터 새로운 운동을 제시하고 여러분의 가정 주부들을 동원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항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은 이것이 지난날, 혹은 있어야 할 섭리과정의 한때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음을 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적 환경을 타개해 가지고 1970년대에 있어서 우리만이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역사적인 새로운 그 무엇을 두드러지게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고, 우리 후세 앞에 새로이 빛나는 전통으로 하나의 기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3년 동원의 세월도 이제 6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972년도 1년에서 반의 세월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 6개월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게 되면, 주부가 없는 가정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상습화된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위로부터 느껴지는 모든 고충, 혹은 생활에 스며드는 모든 어려움이 있을 적마다 여러분은 쌍수를 들고 '하늘이여, 슬픔을 막아내기 위해서 저희는 이런 일을 합니다' 하면서, 불효했던 것을 내적으로 새로이 개척하고 가중시켜 가지고 거기에 새로운 가정으로서 하늘이 바라볼 수 있는 주체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하더라도 그야말로 심각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붙들고 아내를 생각하면서 애기를 재워 누이고 말할 수 없는 깊은 심정을 가지고, '이것이 복귀의 노정을 찾아온 하늘의 사정이 아니냐? 하늘이 인간을 창조해 놓고 바라던 창조 이상과 그 모든 소망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죽은 아들딸을 다시 살리기 위해 부활의 행로를 개척해 나오는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이 아니었더냐?' 하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참아 나온 아버지의 심정을 그와 같은 환경에서 깊은 골수까지 흘러 스며들 수 있게끔 체휼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의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기에 반발되고 여기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발될 수 있는 자리요 제외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이지만, 거기에서 하늘의 깊은 심정을 발굴할 수 있는 좋은 역사적인 기간이 아니더냐?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날들을 보내면서 일년이 지나고 일년 반이 지나간 오늘에 있어서, 이제 6개월이라는 기간을 남겨 놓은 이 시점에 있어서 여러분이 애기들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은 아버지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 봐야하겠습니다. 또, 자기 아내를 생각하게 될 때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되겠고, 아내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교회에서 바라는 책임을 다했느냐? 즉, 하나님이 바라는 데 있어서의 내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바라 보게 될 때, 그 책임은 우리 가정에 한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 긍(亘)한, 이런 책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책임 못 한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자식을 바라보면서 느낀 그 슬픈 마음, 아내를 생각하면서 느껴진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이 나라 이 민족에 연결시켜야 됩니다. 이 나라와이 민족과 오늘 우리 가정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이 나라를 지킬 사람이 누구냐? 우리가 지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느껴 온 우리 민족의 원한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슬픈 자리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 가지고 분발하고 자체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하늘 앞에 오늘을 지킬 줄 아는 우리 축복가정들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7월 초하루를 맞이하면서, 남아진 기간을 여러분이 과거의 습관적인 생활의 연속으로서 흘려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6개월 간은 보다 힘차게 살고 보다 보람있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6개월 이후에는 아내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 돌아온 아내를 대해, 나는 당신이 없을 때 이런 이런 일을 했고, 우리 아이들은 이런 이런 일을 했다고 진지하게 지난 기간을 회상하여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아무것도 아닌 입장에서 살아왔지만 하늘은 우리의 전후좌우에서 우리들과 같이하셨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돌아온 그 시간부터 손에 손을 붙들고 보다 보람있는 내일의 가정의 터전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새출발을 맞아야 할 것이 지금부터 6개월 이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그때에 그것을 가정의 기쁨으로 맞을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기쁨으로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무정한 것입니다. 어젯날보다 못하게 될 때는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되는 거예요.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로 보게 되면, 하나님은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로 점점 차원이 높은 분야를 다짐하면서 그 사명을 추구하는 자를 세워 가지고 개척해 나오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걸 볼 때, 미래에는 현재까지의 사명과 싸움보다도 더 큰 사명과 치열한 싸움을 촉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금후에, 1970년대에 하늘이 요구하는 사명 분야가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이만한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도 그만한 수고와 그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 남북이 갈라져 있는 현재의 국가적 비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어차피 누가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문제, 어느 누가 하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너나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체를 탓하면서 내일의 이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고 세계의 운명을 염려하는 이러한 무리가 있거들랑, 그 무리를 통하여서 새로운 국가 운동이 벌어질 것이고, 새로운 국민사상의 지침이 서게 될 것이고, 새로운 역사의 한 민족 봉기선이 벌어질 것이 아니냐? 여기서부터 새로운 방향이 제시될 것입니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1년에 안 되면 3년에, 3년에 안 되면 10년에, 10년에 안 되면 20년을 거쳐서라도 그 방향을 제시해 가지고 삼천만 민족 전체가 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던, 출발 당시에 맹세했던 그날의 소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체가 움직여 가지고 전체가 출발했다고 하는 그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소망이 싹틀 것이고 우리의 소망의 결실이 보여질 수 있지, 그전에는 소모전입니다. 전체가 움직여 나가기 전까지는 소모전쟁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소모전쟁을 누가 감당해야 하느냐? 누구도 감당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희생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을 가졌지만 말없이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목표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오직 이것만을 생활수단으로 삼고, 투쟁만을 생활방편으로 세워 나가는 무리 외에는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선 사람은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섭리사에 나타났던 개척자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은 언제나 제물이 된 것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역력히 알게 됩니다. 제물된 사람으로부터 제물된 무리를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제물된 무리로부터 제물된 민족정신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총진군하게 될 때, 제물의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거기서 비로소 빛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거기서 싹이 트고 줄기가 되고 잎이 되고 꽃이 피어 가지고 열매가 맺어질 수 있는 것이지, 제물되는 그런 과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된 결과가 반드시 전체 앞에 받아들여진 결과에서만이 제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1972년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입니다. 남북이 최후의 정상에서 부딪치는 때가 왔습니다. 또한 세계도 최후의 정상에서한 발자국 후퇴하느냐 전진하느냐 하는, 승패를 다짐지어야 할 기로에서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외적인 세계는 내적인 세계의 그림자나 다를 것이 없지 않아요? 그러면 외적인 세계를 대비해서, 내적인 세계에 있어서 주체적 형태를 갖출수 있는 이 기로를 판정지어 가지고, 새로운 혁신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내적인 주체를 누가 형성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 현재의 기성종교를 가지고는 안됩니다. 이것은 국민 전체가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국가 국민들이 주장하고 있는 애국사상, 막연한 애국사상 가지고 되느냐?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개재하지 않고는 어느 시대든지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개재하는 폭발적인 힘이 가중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적 현재를 개방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재하지 않고는 어려운 환경을 타개하고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역사적 새로운 기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은 우리에게 있어서 더더욱 하늘을 개재 시킬 수 있는 좋은 때가 아니예요? 그야말로 하늘이 최후의 자리에서, 혹은 최고의 심각한 자리에서 너희들이 각오하고 나섰으니 한 발짝만 더 떼어 놓아라…. 이 한 발짝이 문제예요. 하나의 행동을 더 제시해라….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 발자국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천년의 공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이요. 한 발자국 다짐함으로 말미암아 천년의 공이 보다 빛날 수 있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화를 볼 때, 스릴(thrill)있는 장면을 보는데 그와 같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보다 나은 한 발자국, 보다 나은 한 가지의 결의와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젯날보다도 오늘이 나을 수 있는 이런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보다 하나님과 같이, 보다 하늘과 같이….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으면 그야말로 이때에 더 흘려야 되겠고, 정성을 들였으면 이 기간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붙들고 하늘과 하나돼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사명을 인계하고 새로운 제2의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7족 앞에 내보내게 될 때, 하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있으니 강하고 담대하라, 하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믿는 이상으로 내가 너희들을 믿는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하늘은 찾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을 명령하니만큼 그 명령하는 배후에 있는 하늘은 어려움을 극복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각오와 신념과 책임을 지고서 있지 않아요? 그 책임 앞에 내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보다 강할 수 있는 신념에 불타는 내 자신이 남은 6개월간 여기에 목표를 달아 가지고 투시된 신념 앞에, 새로운 행동을 개시하는 오늘에 빛나는 자아를 어떻게 재발굴하느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하늘 앞에 보다 가까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게 되면 보다 깊은 자리에서 흘리고, 민족을 부여안고 호소하고, 세계를 부여안고 호소하고, 하늘의 뜻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 대신 책임지겠노라고 하며 나를 보내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여러 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늘과 더욱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역사를 대신해서 역사시대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역사적인 책임자의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하늘과 하나되고 그 하늘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자가 없다는 자각된 자아를 발견하는 데서만이, 보다 보람 있는 현재의 기준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내일의 새로운 기원의 터전이 형성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위해서 충성한 과거가 회상되거들랑, 회상되어지는 그 과거의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때보다 저급하게 된 지금의 나 자신을 반성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열심히 했던 그 기준을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나 혼자 열심히 했지만, 어느덧 세월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아내도 있을 것이고 자식도 있을 것이 아니냐? 아내 앞에 내가 충성된 과거의 가치 이상의 것을 보여 줘야 되겠고 자극시켜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 이것을 알려 줘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정을 중심삼고 횡적인 연결을 강화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가정들 앞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갖고, 만나면 손에 손을 붙들고 찾아온 이때를 놓치지 말자고, 서로서로 이마를 맞대고 말하게 될 때는 서로서로 존경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새로이 반성할 문제들이 많다고 봅니다. 만나면 쓸데 없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습니다. 사공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일소해 버려야 하겠습니다. 깊은 침묵의 자리에 서서 하늘의 내연(內緣)을 명상도 하면서, 실천적 자아로서 미급한 것을 탄식하면서 순간순간 자기 자체의 개척자의 사명을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입을 열어 가지고 삿(邪)된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서로서로 만나 입을 열게 되면 손에 손을 붙잡고 새로운 맹세를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을 극복합시다' 이러한 활동, 운동을 횡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그러한 환경,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까지는 우리가 그럭저럭 살아왔지만…. 그럭저럭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승리를 우리 앞에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습관적인 폐단을 일소해 버린 혁신적인 신념 앞에 새로운 자아의 자각된 터전을 확립시켜 가지고, 주체적인 강한 모습을 드러내 가지고 하늘과 더불어 부딪치게 될 때, 여기서부터 새로운 창조의 역사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이렇게 되었을 때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나타 났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폐단적인 습성을 타파해 버리고 새로운 의미의 주체적인 내적 인연을 확립해 가지고, 주체적인 개척자로서 환경을 타개시키는 데 있어서 창조자가 되고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때가 아니냐 하는 것을 느끼는 바입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내일은 나에게 슬픔을 갖다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빛날 수 있는 영광자 승리를 갖다 주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승리가 완전해야 되겠기 때문에, 오늘의 완전을 추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완전이 나만으로 형성된 완전이 아니라 하늘이 완전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하늘과 하나된 자리에서 완전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전심전력을 투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개인이 투입 되어야 되고, 가정이 투입되어야 되고, 나라가 투입되어야 되고, 국가가 투입되어야 됩니다. 투입된 그 전체는 부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이 멋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겁니다.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보다 나은 현재를 지니지 못한 사람은 보다 나은 역사적 승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현재를 추구하고 나가는 사람일수록 보다 나은 내일의 승리와 내일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자아를 인정시키고, 그러한 자아를 노출시키는 거기에 있어서는 반대의 결과만이, 응당한 보응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1973년은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1972년까지 한계선을 그었는데 이미 그때는 다가왔다 이겁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우리는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계선에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이냐? 그야말로 이제 치느냐 맞느냐, 이것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선상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이 그야말로 다시 한 번 발동을 걸어 가지고 최고의 스피드를 내야 할 때입니다. 최고로 강한 힘을 여기에 가중시켜야 할 것입니다. 보다 혁신적인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주체자가 되어야 할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나 자신이 문제요. 우리 가정이 문제요. 우리 교회가 문제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때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때에 대한 자각된 무엇이 없거든, 선생님이 지시하는 바에 의해서 진군해야 되는 것입니다. 진군해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이제 남은 6개월 기간에 여러분이 해야 될 최대의 사명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난길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고 억울한 역사를 지내 왔습니다. 이 기간이 해방의 깃발을 들고 제2, 제3의 해방을 촉구시킬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간인 것을 알고, 오늘부터 빛나는 내일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되기를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을 개재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각된 자아를 보다 깊이 넓게 찾아 가지고 거기에 가서 부딪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이제부터 협회 자체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아니냐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역량 전체를 발휘해 가지고 하나의 목적에 투입해야 할 시점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고,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이 기동대원들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우리는 전체가 기동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본부를 위주해 가지고 서울에 있는 교회장들, 그리고 서울 교회 전체 식구들은 새로이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기동대라는 것은 무슨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예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를 하면서 전체에게 새로운 부흥과 새로운 환경을 제시해 가지고, 내일에 있어서 패자의 서러움을 모면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작전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전체의 식구들은 여기에 단결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활동 형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동대 활동을 통해 가지고 집회가 끝난 교회들은 교회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동대 활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활동이 어느 때보다도 단결적이고 전체적인 활동으로서 제시할 때가 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게 될 때, 거국적인 국민운동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환경이 그러기를 절박하게 요구하는 때가 오지 않았어요? 대학가면 대학가에서, 마을이면 마을에서, 도시면 도시에서, 전지역에서, 전국에서 이런 활동이 제시되게 될 때, 이 방향을 돌리는 여하에 따라서는 승공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요. 교회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새마을운동도 할 수 있는 것이요. 여러 가지 분야의 활동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방향에 전체가 호흡을 일치해 가지고 움직일 수있는 활동체제를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알고, 기동대 대원들은 그러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선두에서 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오직 하늘의 뜻, 오직 하늘이 찾고자 하는 나라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자기 가정이 바라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은 핫발이의 뜻이예요. 핫발이의 뜻,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핫발이의 뜻이예요. 자기 부모를, 친척을 생각하며 뭐 보고 싶어하고 뭐 생각하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느낄 수 있고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동물도 갖고 있다구요. 저급한 미물인 동물까지도 갖고 있는 생각이라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것은, 보다 큰 것을 위해서 극복할 수 있는 데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권위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일단 사내 대장부가 집을 나왔으면, 추한 모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이겁니다.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으면 생사 결단을 짓고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칼을 가지고 죽든가 살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핍박을 받아 왔지만, 핍박 무대에서 사라질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심한 폭풍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전진이다! 바람 부는 것이 내 방향에 다짐을 가중시키는 조건이 될 수 있을지언정, 후퇴의 요건이 될 수 없다'는 신념에 불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늘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을 삼천만 민중이 바라보고 있고, 그분만 아니라 세계의 인류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식구들, 독일에 있는 식구들, 영국에 있는 식구들, 일본에 있는 식구들이 여러분과 어깨를 겨루면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체국, 종주국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한국의 기동대원들이여! 그대들의 모습이 그래서야 되겠느냐? 영계에 있는 수많은 나라의 선조들이 비교하여 통계를 내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실적이 매달 각 상황판에 기록되어 나가고 있지 않아요?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자기를 생각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을 대신하여 경주장에 나선 국가 대표 선수가 스타트 라인을 나서게 될 때, 그 시간은 자기의 일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이요. 국가의 운명도 좌우할 수 있는 긴장된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자기의 일신의 피로에 지쳐 쓰러지는 대표 선수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나는 오직 죽더라도 승리하겠다. 쓰러더지라도 승리를 이루고 쓰러져야 되겠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갖고 달려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달리는 것만이, 그렇게 싸우는 것만이 경주장에 나선 선수들의 의무입니다. 죽지 않으면 반드시 승리한다…. 이것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하나님, 역사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시대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이 아니예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여러분 기동대원들은 역사적인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적인 현시대 앞에 있어서 부끄러운 여러분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있어서도 부끄러운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세가 올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올바라야 되겠고, 목적관이 올바라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믿고, 하늘을 믿음으로써 하늘이 나를 믿게끔 해야 되겠습니다. '나를 믿으시옵소서' 하고 여러분이 주체가 돼야 됩니다. '당신이 내세운 나는 졸장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는 이렇게 할 것입니다. 위험을 만나게 될 때는 그것을 죽음과 더불어 격파해 버리고 폭발시켜 버리겠습니다'는 신념을 갖고 나서는 사나이들이 기동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고 철모르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역사는 얕지만, 얕은 역사에 흘러 밀려날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밟고 올라서 가지고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관념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문제가 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때가 지금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손과 발이 깨어져 나가더라도 하늘을 위하겠다고 하는 신념을 갖게 될 때는 하늘이 같이 할 것입니다. 나는 하늘을 대신해 증거자로 나섰다고 하며 바라보는 그 시선은 예리합니다. 어떠한 악한 무리가 앞을 막아 정면으로 충돌하더라도 이것을 절반으로 깨져 나가게 만들고 말겠다는 신념에 불타야 합니다. 거리에 나서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반대되는 무엇이 있거든 '오늘 단판할 좋은 미끼가 걸렸다. 좋은 고기가 걸렸구나, 나와 실력 대결이다!'이런 신념을…. 수단을 갖고 안 되거든 지혜를 가지고 나서야 되고, 지혜를 가지고 안 되거든 힘을 가지고서라도 나서야 되겠습니다. 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돌아서게 될 때에 자기 마음으로는 '나는 지지 않았다'는 신념을 가지고 돌아설 줄 알아야 됩니다. 패자의 서러운 마음을 가지고 '어이구! 못 하겠다' 하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움직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기동대라는 것이, 자금을 투입하고 원조를 해 가지고 움직이게 한 것은 우리 교회 역사에 있어서 처음이다 이겁니다. 역사에 없는 놀음이다 이거예요. 그런 활동의 대열에 섰다는 것, 이것은 무서운 거라구요. 여러분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되면, 여러분 한 사람을 한 교회의 책임자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나가 있는 여자 대원들에게 한 달에 천원씩 협조해 주려고 합니다. 특별 전도대원에게는 2천원씩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배 이상 원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막대한 소모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비운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이런 놀음이라도 이를 악물고 해야 할 무리가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우리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 있는 기동대원들에게는 여러분과 같이 그러한 후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고, 전부가 자체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3개월 후에는 점점 삭감될 것입니다. 자주적인 사상을 갖고, 자체적으로 개척자의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열 사람보다도 끌고 가는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걸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동대 편성을 해 놓고 그만한 배후의 협조를 하게 되면, 당당코 어떤 지역 교회 하나는 멋지게 만들 수 있고, 책임자를 세우더라도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기성교회 목사들 중심삼아 가지고 그만한 돈만 협조해 주면, 우리 편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에 없는 놀음을 하느니만큼 여러분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길거리에 나섰을 때 누가 손가락질을 한다거나 지나가는 친구가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갖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쇠고랑을 차고 서대문 거리를 왕래하면 서도 절대 졸장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쇠고랑을 찬 것을 보고 비웃는 사람이 있느냐? 오냐, 넌 내 가슴에 뺄 수 없는 못을 박는 것이다. 넌 그런 비웃음으로 나를 대하지만, 선을 가진 나를 대해 네 후손들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날을 보기 전에는 나는 죽을 수 없다. 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재료를 생활 환경을 타개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있어서 수모를 받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냐! 오늘은 그렇지만, 내일에 있어서 승자는 누가 되느냐? 나는 패자의 서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패자는 누가 동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숙명적인 수난길에 있어서도 극복의 일념을 다짐하면서 하늘과 동반한 역사적인 실적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세계적인 기반을 닦게 된 것입니다. 이 터전을 여러분들이 빛나게 상속할 것이냐? 부끄러운 모습으로서 후퇴해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속시키고 돌아서는 여러분이 될 것이냐? 이런 문제가 여러분의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보다도 사실이 필요하고, 변명보다도 실적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변명은 통하지 않아요. 말은 통하지 않아요. 실적 앞에, 결과는 삼엄한 것이요 냉정한 것입니다. 옳으면 옳은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요. 나쁘면 나쁜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승리는 승리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패자는 패자로 서러움과 비참함과 더불어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판단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냉담한 현시점에서 자아를 새로이 직시해 가지고 내일을 개척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 자신이 자아 비판해 가지고 자각된 자신을 가지고 나서야지, 그러지 못할 때에는 도리어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나서서 행동하는 것이 후진들 앞에 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거든 아예 후퇴해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길거리에 내세워 가지고 이런 운동을 시키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1년을 극복하고 2년을 극복하고 3년을 극복하고, 이것이 점차적으로 승리적 결과를 다짐하게 될 때는, 여러분의 영광은 세계에 빛날 것이요. 역사에 빛날 것이요. 여러분 자체는 현실의 중심으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재의 환경을 타개하고 현재의 희생을 다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둘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 양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중심삼은 그 길을 양보할 것이냐, 아니면 전체의 목적을 위주한 것이 양보당하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중심삼은 목적을 양보하고 전체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는 흡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 가지고, 이제 오늘 초하루부터 남은 6개월 180일을 어떻게 넘어가느냐? 잘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 여자들은 나가서 전도를 하고 있을 때 남자들은 가정에서 뭘하느냐 이거예요. 그거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밥만 먹고 그렇게 엎드려 가지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런 것을 알고, 냉혹한 현세의 이 문제의 물결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자아를 중심삼고 하늘과 내 자신이 하나된 것을 느껴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주체적인 신념을 가지고 보다 충성하고, 보다 희생하고, 보다 자기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아를 어떻게 전체 앞에 적응시킬 수 있느냐?이 문제에 의해서 현실을 타개할 수 있고 역사적인 현실의 승리의 기점을 넘을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기존의 현실적 역사적 승리의 기준보다도 두드러져야 미래의 소망의 터전이 되지, 그렇지 않고는 비판의 조건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뭐 어떻고 어떻고 하더니 다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승리적 터전을 이어받아 가지고 계승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는 이어받을 수 있는 현실의 승리적 결실체를 필요로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하게 되면, 이것은 세계를 구해야 되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이것 때문에 동원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이후부터 지금까지 동원되어 가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있는데, 나는 그 아들딸로 태어났으면서도 역사시대의 과정에서 그런 것을 알아 가지고 이제야 거기에 동참했다는 데에 수치심을 느끼면서, 하늘이 지금까지 역사전 시대부터 활동해 오던 그 인연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을 마음으로 염원하고 하늘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하늘 앞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지금까지 내 생이 지내온 사명 분야의 몇 배를 투입하고 가겠다는 그런 신념을 갖게 될 때, 하늘은 그를 역사의 창건자 이상의 가치로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미래의 선봉으로 설 수 있고 하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내가 보다 희생하겠다. 내가 보다 희생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는 데서만이 여러분을 중심삼은 뜻의 결과가 반드시 향상될 것이고, 그 승리의 터전이 여러분의 생활권과 생애노정에 남아지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여러분이 잘 알아야겠습니다. 현재가 문제입니다. 보다 나은 현재가 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현재를 계승시키지 않으면 하늘이 여기에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현재의 터전을 만들지 않고는 미래가 새로운 터전에서 출발할 수 없는 것이 아니예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 7월 초하루를 맞아 가지고 남은 6개월을 힘 있게, 안팎으로 결의를 다짐해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이 성지는 40개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성지와 연결되는 중앙성지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설 적마다 저희들은 이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인류를 생각하는 당신의 염려의 마음을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 설 적마다 1965년도에 세계를 역방하면서 하늘의 인연을 남기려던 것을, 그리고 애달픈 당신의 복귀의 심정이 어떠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되옵니다. 어린 자녀들을 여기에 모아 놓고 역사적인 패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승세자가 되지 않고는 미래에 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다짐하는 이 시간을 갖게 하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오늘은 7월 1일이옵니다. 한 많았던 60년대부터 70년대, 저희로서는 12년을 지내고 13년을 맞는 1972년도입니다. 아버지여, 이제 3년간을 당신이 지키시옵소서. 이 나라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관리하시옵소서.
저희들의 정성이 부족하였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말을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입은 크지만 마음이 좁다고 비판받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입이 크기 전에 마음이 커야 되겠고, 행동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보다도 큰 것을 목표하고 행동할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이여, 이제 1972년 이 후반기를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당신이 이끄시는 대로 저희들은 가야 되겠습니다. 겟세마네 산정에 서 가지고 '아바 아바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호소하던 예수님의 심정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어린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이를 먹었다고 충신이 되는 것이 아니요. 나이가 어리다고 충신이 못되는 법이 없는 것이옵니다.
아버지, 저희 마음은 당신 앞에 그려져 있습니다. 저희의 마음은 당신을 사모합니다. 저희의 마음은 당신 앞에 흠모의 심정으로 사로잡혀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그곳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명령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그 명령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삼엄하고 아무리 비참하다 할지라도, 당신으로부터 직접 받는 명령이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명령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심각한 자리에 서기를 바라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싸워 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던 때에도 싸워 나온 역사를 남긴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 있는 때에도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약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볼 때, 그 집을 보고 자랑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가 걷고 있는 그 자리를 보고 자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집이 저 집이 아니며,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이 이 길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이 자리는 슬픈 심정을 갖고 호흡하고, 하늘의 염려의 마음을 갖고 호흡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자유의 해방과 더불어 이상적인 중심자리, 천지가 해방된 자리에서, 자유의 환영의 터전에서, 해방된 최고의 승리자가 되어서 호흡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 하루로부터 이달을 맡으시옵소서. 이해를 아버지, 맡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고, 또 보내고 또 날을 계승하고 또 달을 계승하여 이해를 보내게 될 때, 기억될 수 있는 해요, 잊을 수 없는 해로서, 일생의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1972년 후반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덧없이 늙어 가고, 젊은 청춘시대는 지나가고 장년시대로 혹은 노년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모든 무리들을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기력이 점점 쇠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사옵거든, 아버지여, 조급한 것이 인생의 행로요 복귀 행각의 노정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하시옵소서.
아버님, 젊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쉴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한의 운명을 넘고 넘고 또 넘어도 끊임없이 파동쳐 오는 큰 물결이 저희를 맞아 준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넘고 나서 쉴 수 없고 지친 몸으로 또다시 몸을 이끌어 가지고 재차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늘이여 1972년도까지 자기도 모르게 왔습니다만 이제 알고 보면 또다시 넘어야 할 물결이 큰 것을 아는 이 자리에서 후퇴하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늘을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예수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피와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의 간곡한 사정의 통로를 거치지 않고는, 남아질 수 없고 남겨질 수 없는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하늘이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보잘것없는 것을 가다듬어 한 길로 몰아 세우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발걸음이 지치거든 발걸음을 재촉하시옵고, 지쳐 쓰러지거든 채찍질 하시옵고, 내일의 민족을 위하여, 내일의 새로운 나라를 위하여….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정리하지못했음)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