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을 내려 주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마음 모아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임하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시대적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승리를 다짐해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가고 있는 불쌍한 자녀들이오니, 아버지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무한하신 은사가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을 온전히 아버지의 품에, 아버지의 존전에 드렸사오니, 당신이 명령하시고 싶은 소심(素心)을 피력하시옵소서. 최후의 사명길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고, 최일선에 서서 당신 앞에 기억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나라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의 숱한 눈물 어린 골짝길을 더듬어 온 이 민족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고, 이 시대적인 난국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이 나라에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자녀들이 많이 있게 될 때, 이 나라는 결코 하늘 앞에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밤이나 낮이나 이 나라의 운명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아 가며 당신 앞에 호소하는 자녀들이 소수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여, 이 나라를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백성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계정세 가운데서 불쌍한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 한국 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여기에서 수난길도 걸으셨고, 눈물 어린 역사노정에 비참한 사연 사연도 남겼사오나, 그 모두가 당신의 승리를 찬양하고 영광의 한날을 기념할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할 때에,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불쌍한 나라와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통일의 자녀들이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널려 있는 어린 딸들이 일선에 서서 3년노정을 개척하는 도상에 있는 것을 당신도 잘 아실 줄 믿습니다. 각자 사정과 처지가 다른 입장에서 당신을 위하여 눈물 어린 심정을 다짐하면서 삼천리 반도를 지키려는 가냘픈 여인들의 사정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이 흘리는 눈물과 땀이 헛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승리의 나라를 찾고, 당신의 승리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사명이 이들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들을 대하시는 당신이 불쌍하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크고 능력 있는 민족과 나라를 뒤에 두고 연약한 이 민족 이 나라를 찾아오신 당신의 뜻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당신은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이시지만 능력의 권한을 행사 하실 수 없는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는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의 아들딸인 저희들도 불쌍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인연을 갖고 있는 저희들이 사경을 밟고 넘어가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위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대를 잇기 위해 오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태어난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 태어났고, 산 것도 아버지를 위해 살았으며, 죽는 것도 아버지를 위해 죽은 예수님의 전반적인 생애노정을 생각하게 될 때, 불쌍하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탕감복귀해야 할 종말적인 사명이 보잘것없는 저희들 개인 개인의 두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통일의 무리들은 이 날 이 아침에도 남겨 놓은 아버지의 뜻길을 향하여 돌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걸어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낙망할 수 없는 사정이요, 현재 처하여 있는 자리가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당신을 저버릴 수 없는 사정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저희들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죽으나 사나 당신을 위하여 서 있기 때문에, 당신은 지키시고 임재하시어 저희들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눈물짓는 장면을 바라보시며 당신의 가슴에 맺힌 슬픔과 더불어 역사시대를 반영하면서 오늘까지 참아 오셨고, 슬픔을 품으시고도 슬픈 표정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인 것을 아옵니다. 도리어 더 많은, 숱한 곡절과 사정에 처해 있으면서도 사소한 저희들의 입장을 동정하고 갈 길을 가려 주지 않으면 안 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아침에, 45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서울 도성에서 소수의 무리가 당신 앞에 엎드려서 기념하고 기억하여야 할 5월의 마지막 성일을 맞는 시간이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생애노정을 지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생애가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생애가 못 될 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다'고 가룟 유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몸을 굽혀 당신의 거룩하심을 마음으로 흠모하면서 내일의 축복의 한날을 개척하기 위한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오니, 친히 당신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전국에 널려서 이 아침 이곳을 바라보면서 마음 졸이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무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흰옷 입은 긍휼의 자녀로 기억하시옵소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슬픔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고, 고독함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며, 쓰라림이 있어도 이들을 위하여 참으시고 대신 당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세상 어느누구보다도 고귀한 아버님을 모신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당신을 모신 그 가치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이 분부하시는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현재의 입장에서 저희들은 무한하신 하늘의 자극이 필요하고, 하늘을 위하여 스스로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현실을 능가할 수 있는 자극적인 힘이 필요하옵니다. 저희들의 힘만 가지고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시는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가중되어 오늘을 넘어설 수 있는 승리의 출발이 필요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 하늘의 가호가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후손들을 일치시키시어 소망의 나라요, 평화의 나라요, 희망의 근거지인 당신의 창조이상세계를 이 땅 위에 실현하여, 만세에 최고의 중심인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 온 피조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에 당신의 은사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복귀의 길은 싸움의 길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역사의 노정은 하나의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걸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노정은 싸움의 노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가 그러하듯이 복귀의 행로를 걸어가는 우리 개인의 생활도 싸움의 노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은 싸움의 노정

그 싸움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느냐?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국가간의 싸움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섭리를 직접 주관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이익될 수 있는 한날을 위해서 싸워 나오고 계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이와 같은 싸움의 역사를 엮어 왔고, 이와 같은 싸움의 무대를 거쳐 나오면서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는 마당에 있어서. 각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점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나'라는 존재가 이익을 바라는 자리가 하나라면 좋겠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를 두고 보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몸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의 목적이 있는가 하면 몸의 목적이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는 이유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몸을 중심삼은 이익을 바라는 것이요, 마음은 마음을 중심삼고 이익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충되는 양면이 부딪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개인들의 생활이요, 양심을 중심삼은 몸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생애노정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양면의 대립된 입장에서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인간 그 자체는 비참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여 보다 가치적인 기준에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거기에서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겠지만 도리어 보다 나을 수 있는 양심적인 기준에서 승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될 때 거기에는 비참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이 그러하듯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면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싸우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면을 중심삼고 주장하고, 선한 사람들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면을 중심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서로 상충된 입장에 섬으로써 투쟁이라는 싸움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국가간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두고 보더라도, 남북이 엇갈린 두 목적의 기준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쪽은 북쪽으로서 가는 방향이 있고, 남쪽은 남쪽으로서 가는 방향이 있습니다. 각기 가는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가는 방향이 다르지만 둘이 될 수 없는, 하나의 민족형을 갖춘 이 민족이 어느 한면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추구할 때에 통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 다 서로 각이(各異)한 입장만을 추구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보다 나을 수 있는 행복이 이 민족에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도 그러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우익이 있는가 하면 좌익이 있습니다. 이런 편이 있는가 하면 저런 편이 있습니다. 이쪽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반대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무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는 투쟁과 전쟁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역사적인 비참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적인 면에서, 혹은 매일매일의 현실 생활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승리점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이러한 역사의 전반을 주관하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 편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에게만 귀결될 수 있다면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신(惡神)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의 방향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서 인간과 인간세상을 움직이는 주체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지도받고 주관받는 권내에서는 반드시 상충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까지 싸움의 마당으로 되어 있는,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과연 인생이 추구하는 행복의 기점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오늘보다는 내일, 현세를 넘어서 미래의 세계 가운데서 행복을 바라고 나갑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노정에서 새로운 소망을 바라는 인류가 추구해 나온 방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무리 행복을 바라고 나간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과연 우리 인류가 바라는 행복의 세계, 즉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승리점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우리 인간 자체를 중심삼고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현재의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미래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보고 나가고 있지만,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도 인류가 살아 나가는 행로를 따라가면 미래에 행복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시겠느냐를 생각할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세상이 바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바라실 수 있다면, 하나님은 고독할 수 없는 것이요, 다시 새로운 무엇을 추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가는 길과 인간들이 바라는 미래와 하나님이 바라는 입장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과 같은 노선에서 그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상반된 면에서만 하늘의 이익과 하늘의 승리의 종착점을 바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이므로 세상과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자리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고 하면, 오늘 이 세상과 더불어 짝을 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현재의 입장은 행복의 세계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현세를 부정하고 현세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더 높은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나타나기 전의 새로운 선의 나라를 하나님은 찾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계를 버리고 선의 나라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의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선의 나라를 소망의 나라로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선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기준이 이 땅 위에 있느냐 하면 그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의 나라를 추구하시는 입장에 서시기 때문에, 아무리 지상에 국가적인 기준을 소원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국가적 기준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 서셨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한 민족을 소망으로 삼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악의 세계를 능가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의 민족이 있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절대적인 선의 민족이 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민족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민족을 갖기 전에 하나의 씨족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선을 중심삼고 미래의 소망을 촉구시킬 수 있고 현재의 승리점을 이익되는 결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족속이 있느냐 할 때에, 우리는 그런 족속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족속이 없다면 선의 목적을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은 불쌍한 것입니다.

이러한 족속, 하늘편의 씨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씨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을 찾을 수 없는, 그런 방향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는 반면, 그런 인간을 통하여 선의 나라, 선의 세계를 이루려는 소망을 갖는 하나님이 더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터전이 이 땅 위에 어떤 씨족 가운데 있느냐 할 때, 이렇다 할 수 있는 씨족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러한 씨족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런 씨족을 구하기 전에 하나의 가정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씨족을 대신하고, 그 다음에는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와 세계를 대신해 가지고, 하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가정이라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국가 형성의 출발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타락한 이 세계에는 그러한 가정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없었지만, 그러한 개인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악한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 한 사람만은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만이 하늘의 사람이다. 이 사람만이 최초의 출발점으로 삼고 승리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생활 전체가 하늘의 완전한 승리의 터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중심적인 존재가 역사시대에 왔다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이 사람이다'라고 확정지어 공인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기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제외하고라도 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종교인 중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완전한 승리의 출발자로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서 '이는 역사적인 결실자요 현실의 중심이며 미래의 출발이 될 수 있다. 이분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는 중심존재가 있느냐 하는 것을 종교인에게 묻게 될 때, 수많은 종파로 갈라져 있는 종교계에서는 자기가 숭상하고 있는 종교의 종주가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종주들을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중심존재가 이분이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결정해 놓고 신앙해 나가는 신앙인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인은 하나님을 위주한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후의 승리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에 있어서 승리의 출발점을 다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성인들이 있습니다. 성인은 대관절 어떠한 사람이냐? 이들은 인간을 중심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은 주장을 가지고 하나의 국가 형성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순전히 하나님, 신(神)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를 자기의 전체 생활과 이상 가운데 개입시켜 가지고, 그로 말미암은 생활관과 그로 말미암은 국가관과 그로 말미암은 세계관을 제시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싸움의 도상에서 몰려 가지고 희생과 제물의 자리를 지키며 간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더라도 예수님은 당시대에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 나라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반역자로 몰렸던 것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오시리라고 바라던 메시아요, 바라던 중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 자체가 그분을 핍박의 자리로 몰아 넣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를 따른 무리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각오했던 모든 무리가 예수님이 죽음이라는 최후의 자리를 맞이했을 때는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예수만이 홀로 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만이 홀로 죽음길을 지켰습니다. 죽음길에서도 자기가 주장했던 일념을 남기기 위하여 끝까지 싸우다가 간 대표적인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의인이나 선열들도 역시 그들의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반역자로 몰려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한 나라만을 위하고, 자기의 인간적인 주장을 펼치다 죽은 사람, 자기 나라를 위해 죽은 애국자는 많을는지 모르지만, 인간을 초월하여 신을 위하여, 신의 생활관이라든가 신의 국가관이라든가, 신의 세계관을 위하여 이 땅의 인류를 대표하여 역사시대에 있어서 자기 생명을 하나님이 바라는 가치적인 자리에서 뜻 있게 바치고 간 사람은 적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성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석가, 공자, 마호메트가 4대 성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관절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자기를 주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을 위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한 것입니다. 신을 위주로 하여, 신이 바라는 소망의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생명을 개의치 않고 싸워 나간 무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이들이 주장한 것은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입니다. 이들이 싸운 것은 자기를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웠으며, 세계를 위해서 싸웠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은 개인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되,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가정주의를 주장하되, 자기 민족만을 위한 가정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가정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개인주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개인주의를 주장했고, 가정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가정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씨족주의를 부정했느냐? 아닙니다. 씨족주의를 주장하되 보다 높은 차원의 씨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씨족주의를 주장한 것은 세계를 이어받기 위한 씨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 민족주의는 현재 자기 민족에게만 규합되어 가지고 그 가운데 포괄될 수 있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 민족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지도할 수 있는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주의를 부정했느냐? 아닙니다. 국가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국가주의는 단일민족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세계의 공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차원 높은 입장에서 국가주의를 주장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주장한 것이 국가주의뿐이었더냐? 아닙니다. 국가를 넘어서…. 국가주의를 필요로 한 것은 그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기대가 필요해서 국가주의를 주장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국가주의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주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주의의 현현과 더불어 세계주의의 출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주의가 현현되기 전에는 세계주의의 이상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타락된 인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바라는 것, 즉 우리 개인들이 바라는 욕망은 전부 다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내에서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공통적인 심성(心性)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목적점은 국가주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민족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주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주의를 주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국가로 형성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 앞에 주체성을 갖고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최후에 바랄 수 있는 세계적 대표자와 그 종교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후의 승리점을 찾기 위해 어떤 개인을 추구하시는데, 그 개인은 자기 가정을 위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 개인은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개인이어야 개인적인 최후의 승리자로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 앞에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 개인은 자기 가정만을 위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가치의 존재이어야만, 하나님이 최후에 바랄 수 있는 승리자로 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최후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권내에 세워질 수 있는 개인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관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악한 세계를 수습하려면 개인에서부터 수습하여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민족을 수습해야 되고, 국가, 세계를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상적인 세계가 온다고 보게 될 때에, 그 수습의 출발은 개인에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어떤 개인이어야 하느냐? 가정내에 포괄된 입장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씨족 앞에 주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야 개인적 가치에서 하늘의 승리적 출발이 현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외의 길이 있다면, 이 땅 위에,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길 가운데 나타났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는 방향이 틀렸고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활 자체가 틀렸음을 말해 주는 것임을 여기서 우리들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 높은 입장에 서서 우리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개인적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승리적 주체가 되는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완전히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자기 가정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정은 씨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개인이 주체가 되어 가정을 상대로 해 가지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완전히 통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체의 목적이나 상대의 목적이 보다 높은 세계를 추구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악한 현재의 세계를 초월한 입장에서 천주주의(天宙主義)라고 하는 입체적인 세계관을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된 주체가 있어야만 대상의 세계를 바라서 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내용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상대적인 세계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원칙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 가지고 씨족권내에 있는 수많은 가정들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로 만드는 것은 씨족들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나라를 형성하고, 나라를 형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씨족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주체적인 가정이 가는 길을 다른 가정들이 절대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씨족 형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너면 너고 나면 나지 하면서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나타나게 될 때는 이상적인 민족 형성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선한 주체를 중심삼고 상대적권에 있는 모든 가정들은 절대 복종하라는 운동을 하나님이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족이 그 가정과 하나되면, 비로소 통일권을 이뤄 가지고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적인 사명을 하여, 보다 차원 높은 씨족권을 중심삼고 같은 공식적인 원칙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의 씨족이 있다면, 그 씨족이 바라는 국가, 그 씨족이 바라는 세계, 그 씨족이 바라는 천적인 이념의 세계를 중심삼고 다른 씨족들은 규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체되는 것, 플러스되는 것이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상대되는 것이 따라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것은 개인의 중심이요, 가정의 중심이요, 씨족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심이 이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종교가 나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교를 중심삼고 이런 뜻을 이루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종교를 중심삼고 그런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종교의 교리를 통하여 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리는 중심을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 대표자, 그러한 개인이 없는 세상에 개인을 대표하고, 그러한 가정이 없는 세상에서 가정을 대표하고, 그러한 종족이 없는 세상에서 종족을 대표하고, 그러한 국가가 없는 세상에서 국가를 대표한 그와 더불어 하나되게 될 때는, 개인의 형성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주체적 개인의 형성권이 가정의 중심으로 확대되게 될 때에는 가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발전하게 될 때 씨족, 민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음을 하나님은 바라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교의 가르침

오늘날 기독교라든가 불교라든가, 혹은 유교라든가 회회교라든가,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이상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는 종교, 가정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는 종교가 있느냐? 있을 성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에 인류가 절충하여, 확실한 하나의 경계선을 그어 선과 악이 공동보조를 취해서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좌익이니 우익이니, 민주세계니 공산세계니 하면서 공존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존의 원칙을 포기하기 전에는, 좌익이면 좌익이 된 원인을 부정하기 전에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강조하는 한 공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출발점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대하는 곳곳마다 추구하고 주장하는 면이 다르게 나타나게 될 때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극과 상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활적인 면에서 자기 입장을 부정하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발견해 가지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생활적인 요인이 된다면 거기서부터 공존의 이념은 있을 수 있으되, 상충적인 내용 그 자체를 가지고는 공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과 악이 손을 잡고 같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선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것입니다. 선은 악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악이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은 절대적인 선이기 때문에 선은 일방통행입니다. 악은 절대적인 선 앞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쌍방통행이 아닙니다. 이것 역시 일방통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악과는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악이 아무리 하나님과 공존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존하려면 하나님이 자체를 부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절대적인 상대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절대적인 플러스 되시는 하나님 앞에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입장이냐?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플러스 입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양심을 중심삼고 마이너스 입장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자동적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자체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본성이라는 주체 앞에 또 다른 주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상충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몸뚱이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싸움입니다. 본래 인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비로소 마이너스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기 전에는 절대적인 분 앞에 마이너스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그런데 몸이 또 하나의 플러스가 되어서 상충이 벌어지니까 마이너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이 몸의 플러스를 제거시키고 마이너스권내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몸을 쳐라, 때려잡아라 하는 것입니다. 몸을 때려잡으면 어떻게 되느냐?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몸이 끌려가는 사람이 되면 비로소 마이너스권이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전부 다 몸뚱이가 바라는 것을 끊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금식을 하라. 자지 말라. 혼자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지 말고, 자지 말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요구하는 것에 절대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마이너스권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되는 몸이 플러스의 영향을 받는 존재형들을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육(肉)은 사탄을 중심삼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요, 마음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또 다른 하나의 플러스입니다. 플러스가 둘이라는 거예요. 이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양심아 이겨라' 하고, 사탄은 '몸아 이겨라' 하면서 둘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몸뚱이를 중심삼고 또 다른 마이너스를 만들려고 하고, 하나님은 마음을 중심삼고 또 다른 마이너스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중심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이 가는 길과 종교인이 가는 길은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기껏해야 자기만을 생각하는 거예요. 기껏해야 자기 중심삼고 살고 자기 이익만을 취합니다.

그러면 선악이 다른 점은 무엇이냐? '나'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악은 자기를 위하여 세계를 굴복시키겠다 하고 나로 말미암아 너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의 출발점은 어디냐? 사탄입니다. 사탄은 왜 생겨났느냐? 타락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타락은 왜 생겨났느냐? 중심을 부정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중심을 부정한 것이 타락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인간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선악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니, 인간은 '그게 아니다!'고 했습니다. 중심을 부정했습니다. 악은 중심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선은 무엇이냐? 개인적인 중심이 아닙니다. 전체의 중심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선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전체의 중심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선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때, 그는 선한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것을 확실히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혼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은 무엇이냐? 전체의 중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뭐, 나라가 어디 있어!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 있어! 주체가 뭐야. 나 하나면 되지' 이것이 악입니다. 그렇게 출발한 것이 악입니다. 악의 본질은 그렇게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동기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히틀러 같은 사람, '히틀러가 왜 독재자야. 당당한 영웅이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 청년들이 말하듯 '훌륭한 사나이지. 이 악한 세계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보다 칼을 들어서라도 전부 제거하고 하나 만들면 하나되지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가 독재자라고 낙인찍혔느냐? 그렇게 낙인찍힌 것이 잘못이냐? 아닙니다. 그는 구라파는 게르만 민족을 위해서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구라파를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독일 민족을 위해서 구라파가 있는 것이지, 그 외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구라파의 평화를 위해 독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구라파의 이익을 위해 독일이 있다고 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그러한 통치자였다면, 그는 역사적인 정치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거예요.

선악은 한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럼 악은 뭐냐? 악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도 나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지면 지면 '뭐야?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효입니다, 불효.

나라가 서야 할 자리는 세계를 위하는 자리입니다. 세계를 위해 서야 할 본래의 원칙적인 자리에 나라와 주권자가 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와 주권자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천륜을 따라가는 백성은 나라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길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사는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해야 하는 것은, 세계로 가는 교량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통치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중심이 결정되고, 그 절대적인 중심인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 상대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중심이 되고,인간은 절대적인 횡적 존재가 되어, 이 세계내에 종횡의 일치점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권이 종적으로 형성될 때, 비로소 인류가 바라는 희망의 세계가 현현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중심입니다. 중심은 하나입니다. 절대는 하나입니다. 중심이 왔다갔다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설 개인의 자리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영원한 개인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가정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씨족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민족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국가의 중심도 되는 것이요, 세계의 중심도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 하나의 중심점이 자리잡아 가지고 그 중심과 개인이 하나되게 될 때, 그 개인은 절대적 주체 앞에 하나님이 공인하는 절대적 대상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 주체 앞에 절대적 대상의 가치를 지닌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비로소 가정을 형성하게 되면 가정적 이념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의 가정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절대적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을 형성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이 벌어지면 씨족을 형성하고, 그 씨족이 벌어지면 민족을 형성하고, 민족이 벌어지면 국가를 형성하고, 세계까지 형성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요, 복귀섭리의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적 주체 앞에 절대적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종교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종교가 찾아 나온 길은 이 세상에서는 '나'라는 것을 절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개인도, 세상의 가정도, 세상의 씨족도, 세상의 민족도, 세상의 나라도, 세상의 세계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부정하고 나가는 거예요. 그건 왜?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장하는 개인과 다르고, 가정과 다르고, 민족과 다르고, 국가와 다르고, 세계와 다르니까 이 모든 세상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니까.

그래서 종교와 정치는 분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냐? 영원히 분립한다? 아닙니다. 선의 절대적인 중심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인격이 형성되었을 때는, 그 인격을 관리 보장해 줄 수 있는 법적인 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가정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필요합니다. 씨족과 민족을 보호할 수 있고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주권체제가 필요할 것이 아니냐?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몸을 때려잡아라. 절대적으로 몸을 부정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죽고?「살고」 산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 세상에서 살겠다고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망한다는 거예요. 다 잃어버리고 마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이율배반적인 입장에서 가르쳐 준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인간이 보기에는 허위요, 맹랑한 사실 같지만 원리원칙을 따져 보게 될 때는, 이것은 진리 중의 진리요, 그릇된 현세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종교인들은 왜 절대복종을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려니 절대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대해서는 죽더라도 절대 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하고 절대 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랑하라고 하면서…. 인간을 사랑하되, 인간과 하나되어 있는 죄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해요.

종교에서는 신을 중심삼은 교주, 도주 앞에 절대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알겠어요?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주장을 본받아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게 되면 그들은 못난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의 가르침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그의 주장은 자기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장한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정치가니 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데 그것과는 다릅니다. 색깔이 다릅니다. 위인과 성현은 레벨이 다릅니다. 출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절대적인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권을 추구시키려니 그러한 절대적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종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개인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종시(家長) 앞에, 그 종교의 가르침 앞에 절대 뭐라구요?「순종입니다」 순종이 아니예요. 순종은 누구든지 따라가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순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것입니다. 복종은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어야 사는데 금식을 하라고 하고, 졸음이 오는데 자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불행한데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것을 갈라서 오늘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세계로 가는 것이다,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가지 않고 미래에 갈 것이다 하는 것은 기성교회의 신앙인입니다. 믿고 있으면 천국에 간다는 식입니다. 회개하고 뭐 야단하고는 나오자 마자 싸움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는 천국에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내적 생활 기준으로부터 외적 생활을 체휼해 가지고 대사회에 있어서 주체적인 절대적 존재로서, 여기에 침범받는 종교가 아니라 침범하는 종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가진 개인이요, 가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연결된 교회가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씨족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앞으로 미래 민족을 편성하기 위한 씨족임을 알아야 됩니다.

장로교라든가 감리교라든가 성결교라든가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해 있어요? 무슨 총회장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총회장의 가는 길은 자기 욕심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욕심대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틀림없이 걸려 버립니다. 그것은 지옥행이라구요. 총회장이 아니라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하더라도…. 총회장은 전체를 대신하여 앞으로 나라와 민족을 형성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단이요 종파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종파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민족을 이루기 위한 종파라는 관념을 못 가졌다면, 그 종파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망해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는 이렇게 세상과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최후의 승리점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발견해야

그러면 현재 여러분 자신들에게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현재 여러분 자신들은 어디에 서 있느냐? 지금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내 주장에 서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 한 분만을 위주한 주장에 서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 주장에 서 있게 될 때는 세상과 같습니다. 사탄의 활동권내에 속해 있는 끄트머리 아니면 중간이요, 중간이 아니면 머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머리나 꽁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싫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꽁지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 꽁지를 끊어 버리고 다른 것으로 이어야 합니다. 그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 전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공적인 일을 위해…. 공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이끌어 가지고 종족을 편성하고, 종족을 이끌어 가지고 민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이끌어 가지고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국가를 이끌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하고, 세계를 이끌어서 천주를 복귀해야 합니다. 천주를 복귀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최후에 남는 것은 그것입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말로는 천주복귀(天宙復歸)입니다. 천주복귀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하여 영계와 육계가 통일된 대표적인 입장에 나서게 될 때, 절대적인 그 주체 앞에 비로소 나는 세계를 대표하는 절대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자로 등장하면 그것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최후에 남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고 인간도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여기에 귀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설파한 바울의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에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뭘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뭘하느냐 말입니다. 그저 심심하고 재미가 없는데 뭘해요? 안 그래요? 배가 부를 수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다? 배가 부르고 나면 뭘해요. 배가 부르도록 먹어 보라구요. 그러면 죽을 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영원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을 만나 관계를 맺어 가지고 그 인연의 도수(度數)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가 바라보는 인간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접붙임을 받게 되면 전세계의 이상적인 중심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로 확대됩니다. 그렇게 확대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어디에서 발견할 것이냐? 오늘날 이 세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세계에서 발견하기 전에 나라에서 발견해야 됩니다. 이러한 논리적인 결과에 따라 현세계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특정한 나라에서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서로 주고받는 운동은 영원하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특정한 나라가 있느냐? 만일 특정한 나라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특정한 민족에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갈라져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있기 때문에 특정한 민족은 반드시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다음 민족에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으면 씨족에서 발견하고, 씨족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가정에게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개인에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서 최후의 승리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종주(宗主)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 종주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세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개인적인 생활관, 가정관, 국가관, 세계관을 제시하는 심정적 내용의 입체성의 비례에 따라 종교의 등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이 좀 어려운 말인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고자 할 것이냐? 하나님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나님적 생활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주체와 대상을 겸한, 이성(二性)이 일체가 된 중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이성이 일체가 된 중화적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성이 일체가 될 수 있는 대상적 중화적 존재가 무엇이냐? 아담 해와는 분립된 주체와 대상인데,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상대적 중화적 존재로 나타나게 될 때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어 플러스인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되기 마련입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는 운동을 영원히 일으키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운동이든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있다 할 때는 스톱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너를 위해 있다, 상대를 위해 있다는 관념이 원칙이기 때문에, 동작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있는 세계는 운동이 계속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추구하여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계시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있지' 하겠지만 아닙니다. 하나님도 별수없이 상대를 위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니까 절대적으로 고독한 자리에 있어야 된다? 아닙니다. 내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 한다면 미친 녀석이라구요. 그렇지만 조그마한 상대를 가지고 그 상대를 보고 웃고 좋아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해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을 내가 보고 히히 웃고 춤을 춘다면 미친 사람이예요?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만 보이는 것을 보고 춤을 추더라도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가치에 절대권을 시인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절대적인 주체자가 아니요? 절대적인 주체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 요인을 총합한 영원한 중심적인 대상의 결정이 벌어지지 않고는 절대자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당당코 '당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처끼리 서로 당신이라고 하지요? 당신이라고 한다 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기분 나쁘게 당신이 뭐야' 그래요? 그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점은 오늘 이 세상에서는 발견할 성싶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젊은 청년들 '서울 대학교에 들어가야지' 그럽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우쭐해 합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 우쭐하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 우쭐하는 거예요? 이 녀석들, 자기가 우쭐하기 전에 나라가 우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제 들어가서 공부해야 할 더 큰 짐이 남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자기가 선출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는 녀석들은 기껏해야 그런 귀신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번 걸려 나가자빠지면 거기서 미끄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끝이 오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살면 끝이 오래입니다.

자기 부정은 선이 발전하는 원칙적 법도의 길이자 비약의 길

자기를 위해서 살 거예요? 남을 위해서 살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은 자기로 끝나는 것이요,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존속하는 방법은 내가 주체의 자리에 서더라도 전체의 대상권을 위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인물이 되겠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 인물이 된다면 그는 세계적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권을 밟아 치우는 세계적 주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 주체는 세계적 상대의 형을 빛내기 위한 주체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는 주체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세계를 위해 태어나고 상대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길은 자기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자기를 부정한다고 해서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또 다른 상대가치에서 찾고자 하는 데서부터 선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이 발전하는 원칙적인 법도요 길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개인을 위해 살던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자기 동네를 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살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는 비약이 벌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개인으로서 살던 생활을 벗어나서 대번에 국가를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국가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그 길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고,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길이 될 때는 비약이 벌어집니다. 개인 자체를 부정하고, 가정 자체를 부정하고, 씨족 자체를 부정하고, 민족을 위해서 살게 된다면 비약이 벌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본래는 비약이 벌어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래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기준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를 지향하는 주체가 있어서 그 주체가 국가를 위해 나가게 될 때, 자기를 부정하고, 가정을 부정하고 그가 세워 놓은 전통을 따라가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게 되면 비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건 왜? 전통적 기반이 닦아지면 내가 국가적 기준에 접붙일 수 있는 기반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종교를 중심삼고 그 시대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되는 사람은 혜택을 받게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에 의하면 시대적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위해 살면 주체와 중심이 된다

통일교회는 어떤 길을 가느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기성교회는 어떤 길을 가느냐? 기성교회는 기껏해야 영적인 나라, 영적인 이상세계를 바라보면서 가고 있습니다. 믿고 천당가자는 것입니다. 믿고 천당을 이루자고 하면 그것은 현실적이지만, 믿고 천당가자 하는 것은 현실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당가는 데 어떻게 가느냐? '나만 간다'고 생각할 때는 천당에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데리고 천당에 가겠다고 하면 천당에 갈 수 있지만, 나만 천당에 가면 된다고 하면 아무리 천당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못 갑니다. 못 가는 것입니다. 천당에 가려면 남을 전부 다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같이 데리고 떨어졌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리에 가려면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을 전부 다 데리고 떨어졌기 때문에, 아담 해와 이상 승리한 자리에 올라가려면 세계를 전부 다 데리고 가려고 해야 합니다. 역사 이래 충신이나 성현들 이상의 심정을 갖고 남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혼자 가야지' 하는 것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개인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라는 것이냐?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나라로 서기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나라가 아니라구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수많은 국가가 바라보고 밤이나 낮이나 환영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환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세계에서도 소망의 실체였고, 현재 세계에서도 이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래 세계에 우리가 이어받을 수 있는 영원한 출발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를 추구해 나가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 도(道)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종교가 아니면 최후의 승리점까지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은 누구를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서 살아? 나를 위해 살지' 하면 그것은 낙방입니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사람 앞에 가정이 있을 수 있어요? 소망의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을 수 있어요? 나라는 안 나옵니다. 거기에 세계가 있을 수 있어요?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가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있어요, 없어요? 천지의 공약은 '이 개인주의 악당이여 물러가라' 하고 제지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하는데 거기에 가정이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에 어떤 이상적인 나라가 들어갈 수 있어요? 송곳 끝같이 좁은 데를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이념은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지금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위하여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다르다구요. 누구를 위해 살라구요? 남을 위해서 사는 범위가 크면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사는 가정이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들어갑니다」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국가가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들어갑니다」또, 거기에는 남을 위해 사는 세계가 들어가나요, 안 들어가나요?「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라 하면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피해를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피해를 입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착한 사람이 없습니다. 피해를 입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애들에게 아침 저녁 동네방네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싸움을 하면 나쁜 아이가 된다고 말하지요?

그렇지만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이익을 입히면 뭐예요? 악이요, 선이요? 선입니다, 선. 선한 사람들은 이익을 입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이익입니까?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럼 이게 왜 좋은 거예요? 그 가운데서는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날 수 없다?「있다」이상적인 사회가 생겨날 수 없다?「있다」있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이상적인 나라, 이상적인 세계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상형이 나타나는 곳은 하나님이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안 받겠다고 해도 받는 거예요. 그런 작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망하게 되면 역사는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같은 사람들은 땅따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지 중에서도 맨 끝따라지인 땅따라지라는 거예요. 그것에서 끝나 가지고 바람에 휙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만민을 위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는 멋진 사나이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교회가 되지 말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우리는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고 난 결과 통일교회가 망하느냐? 지금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마이너스입니다. 우리 자체를 회상해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망하게 될 수 있느냐? 망하게 될 수 없습니다. 망하게 될 수 있다? 「없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은 그만두고 세계를 위해서 살고, 살기를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사람들이 공인할 때까지 살게 될 때는 세계는 세계를 위해서 산다는 무리들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지도를 받으면 세계의 주체가 되는 것이요, 지상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찾아오시는 데도 중심을 찾아오시기 때문에, 지상의 중심이 되면 여기에 오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개인은 가정의 중심이요, 민족의 중심입니다. 그 개인은 국가의 중심이요,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하기 위해 지상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떻게 오실 것이냐? 만일 그분이 개인적인 기반만 갖고 오신다면 그분은 개인적 주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자만으로서는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종적인 주체라면 종적 기준밖에 없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종횡이 합하지 않고서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십(十)자는 사방으로 종횡을 합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방으로 종횡을 규합한 것입니다.

공산국가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세계대표 국가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는, 예수님이 진짜 인류의 메시아라면 그 예수님은 무엇을 찾아오시느냐? 예수님이 남자니까 신부를 찾아오시는 것이 천지이치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가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자기 가정만을 위한 가정이 아니고, 자기 종족만을 위한 가정이 아닙니다. 세계의 가정을 대표한 가정입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가정을 대표한 가정이 합하여 종족을 형성할 때, 그 종족은 특정한 민족을 위한 종족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종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종족이 규합되어 민족을 형성할 때, 그렇게 형성된 민족은 특정한 민족을 위한 민족이 아니라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규합하여 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국가는 특정한 나라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국가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국가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가는 데 있어서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이 승리점을 이어받고, 가정으로부터 민족이 승리점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패턴으로 가정의 승리점을 종족이 이어받고, 종족의 승리점을 민족이, 민족의 승리점을 국가가, 국가의 승리점을 세계가 이어받아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패턴이 출발과 동시에 변함없이,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이어받을 수 있는, 일관된 인연을 갖춘 터전이 지상에 벌어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섭리적 최후의 승리점은 이 땅 위에 현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없이 이 땅 위에 평화의 세계는 올 수가 없습니다. 희망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자그마치 그런 소망의 개인으로 일깨우기 위해 나타난 단체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그마치 개인뿐만 아니라 그런 가정을 창설하기 위해 불리워진 무리인 것입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이 종족은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종족을 편성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10개 국의 민족들을 규합하여 합동결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나라의 자식이 아닙니다. 새로운 이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승리점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적인 무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와 민족감정을 초월한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그 수가 확대되어, 이 악한 사탄세계의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나라, 하나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주권국가가 형성되는 날에는, 비로소 사탄 앞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대행할 수 있는 지상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심판법도시대가 올 것입니다. 절대적인 법을 중심삼고 세계를 치리하는 주체적인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지상심판시대가 될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민족을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악한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수십 수백개 국가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수백 명이라도 거기에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일등 한 사람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세계에 있어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수난길에 몰아넣을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사탄을 위하여 가장 충성하는 한 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탄국가 가운데서 세계적인 대표국가 한 나라를 중심삼고 악을 추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사탄세계의 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설 수 있는 선한 나라가 나오는 날에는 당당히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기독교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를 대표한 것이 공산당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민주세계에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공산세계의 주권 국가 이상의 주권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공산세계에서는 생명을 위협하고 협박을 해 가지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걸어서 세계적인 발전을 시켜 나오지만, 오시는 주님은 그런 사상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의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고,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도, 자진해서 생명을 바치고 나서는 무리로 말미암아 형성된 주권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가 공산당을 능가할 수 있게끔 주권자와 국민이 일체가 되어 공산세계의 국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하나의 국가 형성의 터전이 이 땅 위에 벌어지는 날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한 공산당을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불려가고 모택동이 불려가고 3대만 교체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최후의 승리점은 우리가 닦아야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부름받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실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보다 가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위하여…. 역사 이래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위에 서서 역사적 전통을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와 국민이 되어 한 분의 주권자를 모시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수많은 종교의 사명입니다.

그 주권자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개인을 지도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국가와 민족을 치리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길을 닦아야 되고, 가정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가정의 길을 닦아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의 터전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닦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터전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스릴 수 있는 나라의 기반이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기반을 갖지 못한 예수님은 비참하게도 가정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을 뿐더러, 개인적인 기반도 갖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형성하는 데는 가정이 출발의 기원이기 때문에, 가정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나는 죽지만 다시 찾아와서 가정을 찾아야 되겠다'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셨던 것이 기독교의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출발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사내로서 사내 노릇도 못 하고 가신 예수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져 가지고 예수님의 직계 혈족이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누구의 통치권에 있을 것이냐? 예수님의 선한 직계 후손에 의해 치리를 받기 때문에, 바오로 6세와 같은 천주교 교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혹은 구교 신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체계화된 세계적인 주권국가 형태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세계적 판도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한 기반만 되었다면 공산당은 나올래야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원인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었고,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기독교 신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운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출발의 기원을 개인으로 다짐하고, 가정으로 다짐하고, 종족, 민족, 국가로 다짐하는 나라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민족이 망하게 되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리를 옹호하고 발전시켜 놓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무리들을 제거시키는 날에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러한 무리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최종점, 최후의 승리점은 여러분이 닦아야 합니다. 그 발판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개인은 가정 전원에게 넘겨주고, 가정은 종족 전원에게 넘겨주고, 종족은 민족 전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민족이 그것을 넘겨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새로운 이스라엘의 출애급노정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그 민족이 거국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승 민족이 될 때는 세계를 대표하고, 세계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한국을 통하여 그러한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이어받아 가지고 영계와 육계까지 완전히 이것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결속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결정되었다는 평화의 기점이 이 천주간에 형성되는 날이 와야만, 비로소 천상천하에 최후의 승리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비로소 웃으실 수 있고 , '아! 다 이루었다'고 하실 수 있으며, '내 앞에는 행복만이 있을 뿐이다. 내 앞에는 더이상 억울하고 분한 소모와 희생의 역사적인 탕감노정과 구원섭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낙인이 찍혀야 합니다. 이 지구성과 영계에 있는 영인들을 해방시켜 가지고, 그들이 완전히 해방된 자리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가져야만 최후의 승리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야만 영원히 천상천하에 평화의 왕국시대. 그야말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가야 됩니다. 난 것도 그것을 위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도 있고 다 가진 것 같지만, 갖고 있는 것은 전부 다 남을 위해서 또 세계를 위해서 갖고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내가 양복을 해 입고 집을 사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집에 살고 있지만 돈이 있다면 나라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내가 이번에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십만 달러를 쓰고 왔습니다. 한국을 위해 그 돈을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잖아요? 못사는 한국의 통일교회. 지금도 지방에 가 보면 도깨비집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농부가 초야에서 자고 일어나 그 손으로 생명을 지닌 씨를 뿌리는 것은 허망하고 처량한 놀음이라구요. 한 되밖에 안 되는 밑천까지 다 뿌린다고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예요? 그 결과를 모르고 뿌린다면 그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딱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통일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위해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런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십만 달러를 어떻게 쓴다느니, 돈을 얼마나 많이 쓰고 다닌다느니, 별의별 소문이 났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거예요. 망하려고? 한 되밖에 안 되는 씨를 뿌리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그것밖에 없는데도 세계를 위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고 나서 쫓겨나느냐? 아닙니다. 내가 쫓겨날 길이 생길 때 세계의 사람들이 내 대신 쫓겨나겠다고 하게 되는 날 세계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회가 세계를 위해서 있었으니까 세계도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자연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이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입은 옷이 초라하다고 해서 그걸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하고 있는 실상이 처량하다고 해서 눈물지으면 망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관념을 초월했습니다. 누운 자리가 초라하다고 해서 이것을 원망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누가 통일교회 자체를 보고 통일교회 본부가 왜 이렇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어떻고 어떻고, 세계적인 그 무엇이 되었으니 본부를 새로 지어야 될 것이 아니냐고 권고하기 전에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세계에 갈 때까지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데도 통일교회가 망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가짜입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어디에 가든지 거처할 집이 있습니다. 어디 가든지 남부럽지 않는 터전이 다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 나라에서 제일 고급차를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는 거예요? 주고받는 주체와 대상은…. 대상은 주체의 원동력에 해당하는 상대적인 가치자로 등장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자가 주체의 기준 앞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마음에 미안함을 느껴서라도 비례적인 기준 앞에 서려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 본성이 있기 때문에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잘한다고 하면서 하고 나서도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서…. 선생님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심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 본심이 그러한 것을 볼 때에 그런 길은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은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거예요. 지상의 공산당 해방은 물론이고 영계의 지옥까지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하느냐? 그것을 해방하는 것은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만 들으면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계의 주류사상은 흘러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상적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지옥을 만들어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기뻐하실 분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기쁨의 날이 오면, 잔칫날이 되면 지나가는 거지도, 관계없는 거지까지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인류를 그와 같은 신음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만이 영원한 태평왕국의 주인공으로 군림하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만국 만민 어느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기준이 세워지게 될 때에, 비로소 승리의 종착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개인을 위해서 산다면 이 다음에 영계에 가더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가정도 없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상적인 종족권내에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전세계 인류와 더불어 공통적인 이상을 갖고 형제와 같이 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사랑하기를 바라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기쁨으로 뛰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영계에 가서 막히는 무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세계적인 뜻을 이루시옵소서. 통일교회 이념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세계 사람들이 오면 얼마나 관심을 가졌습니까? 자기의 조카사위나, 조카며느리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습니까? 아주머니들! 사촌동생, 사촌형님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어요?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왔으면 '야, 우리의 이상의 때가 왔구나. 대한민국 사람이 세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역사시대에 처음 있는 때가 왔구나' 하면서 있는 성심을 다해서 한 조각의 비스켓을 대접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한모금의 보리차라도 좋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하나의 조건물로라도 그들과 더불어 관계맺겠다고 움직이는 데서만이, 앞으로 주체적인 통일교회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만일 외국 식구들이 여러분보다 더 정성을 들여 그렇게 하게 될 때는, 여러분들은 그 자리를 물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물려줘야 되겠어요, 안 물려줘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물려주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물려줘야 되겠어요, 안 물려줘야 되겠어요?「……」 '아, 통일교회라는 것은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라고 할 수 있어요? 천만에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기 때문에 보다 낮은 곳에 길이 열리게 되면 조금 높은 길을 비켜 놓고 보다 낮은 길로 흘러 안가는 것이다?「가는 것이다」 그건 아누만.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누가 세계를 더 사랑하느냐? 세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계의 주류사상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그렇게 핍박을 받고, 그렇게 욕을 먹고 비틀걸음을 걸어오다가 그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바로 뜨고 외국 식구들을 눈물어린 심정으로 대하고, 감사하는 심정으로 대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통역을 세워서라도 한마디의 말을 하고 싶고,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생활적인 유대가 결핍되어 들어가게 되면, 이 새로운 이념은 하나님이 바라는 상대적 생활권을 유지해 나가는 무리들 앞에 옮겨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옮겨져야 되겠어요. 옮겨지지 않아야 되겠어요?

지금 여러분을 가만히 보게 되면 교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뭐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구요. 하나님은 대한민국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기가 막히다구요. 좋은 의미에서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힌 의미에서 기가 막힌 것입니다. 한국 민족은 저주로 벌을 내리라고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내용이 얼마든지 있는 민족입니다.

보라구요.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를 핍박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내가 미국 같은 곳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광고를 내게 되면 '아 문선생 가지 마소'라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난 후에 십년 아니 몇년도 못 가서 눈물을 흘리는 무리들이 많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팔단계의 승리점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운 것은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닦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길을 닦지 못하면 세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천신만고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내 개인의 승리점을 다짐하고, 우리 가정의 승리점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것을 못 한다면, 우리 가정에서 종족을 대표하고, 우리 가정에서 민족을 대표하고, 우리 가정에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중심기준을 남겨 가지고 이 길을 가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고 쉬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본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다는 사람들, 소위 오래되었다는 사람들이 도리어 교회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떡잎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떡잎밖에 될 수 없습니다. 자기 후계자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선배들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로 가는 승리점,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승리점을 이어받아 가지고 언제든지 선두에 서고, 주류에 설 수 있는 행로를 상실하는 여러분이 된다면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과 더불어 같은 민족이요, 같은 길을 나섰을 바에는 끝까지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인류를 해방하고 하나님을 해방해 드려야 합니다. 효자는 부모를 해방시켜 드리는 사람, 완전히 해방시켜 드리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군왕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성인은 뭐냐? 하나님의 충신입니다. 성인은 하나님 앞에 충신의 절개를 남기고자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성인들이 실패한 자리 이상의 자리에서 영계와 육계, 다시 말하면 천주를 해방하자, 보다 심정적인 이상, 하나님의 이상적인 해방자로 등장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 가운데는 구더기보다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시시한 패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이 가는 본래의 노정을 정상적으로 가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까지 관철할 수 있는 행로를 자기 마음의 세계에서부터 가려 놓고 가지 않으면 이상적인 천국이상세계는 여러분과 관계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승리점, 가정적 승리점, 종족적 승리점, 민족적 승리점, 국가적 승리점, 세계적 승리점, 천주적 승리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8단계까지 넘어가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 세상에는 그런 승리점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돌아서서 새로운 출발점, 즉 새로운 개인에서부터, 새로운 가정에서부터 이 길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기준을 중심삼고 이제는 민족편성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때에 들어왔습니다.

주체는 상대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원칙입니다. 주체는 상대를 창조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주체는 새로운 상대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통일교회 씨족은 새로운 민족을 창조해야 합니다. 새로운 민족이 찾아지는 날에는 새로운 국가를 창건해야 합니다. 새로운 국가를 창건한 후에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형성해 가지고, 천상천하에 통일적인 기반을 닦아서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효도를 하고, 하늘나라의 애국자가 되고, 하늘나라의 충신이 되어 가지고 가는 곳이 하나님의 이상세계인 천국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상대를 창조하면서 최후의 승리점까지 가자

지상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효자가 되고, 애국자가 되고, 세계적인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애국자는 국가적인 충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적인 성현보다 나아야 됩니다. 어떠한 성인보다 낫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낙원에 갔지요? 낙원은 천국가기 전에 머무는 대합실입니다.

이런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가는 여러분인 것을 알고, 그곳까지 가려면 갈 길이 바쁜데 일생은 짧습니다. 그러니 밤이나 낮이나 쉬고 난 뒤에는 회개해야 합니다. 잠을 자고 나서도 회개해야 합니다. 일을 하고 난 뒤에도 하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더 해야 할 책임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걸음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하는 신앙 생활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최후의 종착점까지, 최후의 승리점까지 극복하며 넘어가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님! 이 자리는 초라한 자리이지만,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어린 자녀들이 눈물로 사모하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내용은 세상 사람들은 알래야 알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것이 원통하면서도 도리어 이것이 복됨을 느끼옵니다.

이 자리는 악한 무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진짜 순수하고 참된 심정적 유대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 자리를 진실로 알 수 없는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가치적인 존재만이 가치의 세계, 가치의 행로를 더듬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당신이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고 오셨는가를 생각하면, 천번 만번 우리 조상의 실수를 참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역사이래 잘못된 선조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수십 억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사악한 현실을, 자비의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우리 후손들이 이어받을 수 있는 역사적인 비참상이 어디에서 종결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무리들이 이것을 돌이켜 후대 앞에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고 아버님께서 소망하시는 전폭적인 환경을 상속시키고자 하는 것이 일체의 관념이요 일체의 생활의 희망인 것을 당신이 아시사, 아버지께서는 이들이 가는 길을 지금까지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불쌍한 무리옵니다. 당신이 불쌍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효의 도리를 지키고 충의 도리를 지키는 자들도 불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 통일교인은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나라의 3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아 왔고 수많은 교단 앞에 고아의 신세, 의붓자식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성경 말씀과 같이 이제 이 민족이 저희들을 붙들지 않고서는 갈 길을 모색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사옵니까? 당신이 이때를 만나기 위해 마음으로 얼마나 바라오셨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방으로 벌어진 환경을 바라보게 될 때, 이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이 있사옵니다. 잘난 나라도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어쩌자고 당신께서는 불쌍한 이 민족을 찾아오셨습니까? 인간 쓰레기와 같은 무리들을 붙들고 이 엄청난 소망의 세계를 더듬어 가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아버지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는 외적으로 가진 것이 없사오나 당신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물로 동정할 수 있는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려고 하는 것만은 틀림없사옵니다.

아버지! 아시아 정세를 직시하게 될 때에, 금후에 한국 민족이 가야할 길은 막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에 한국이 회생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세계를 더듬으면서 안간힘을 다 써 오신 당신의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또다시 찾아와 오늘 20일째를 맞는 이날, 이달의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아버님! 지나가는 날 가운데에 있어서 웬일인지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의 운세가 몰려오고 있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통일교회 무리들이 자리를 깔고 베옷을 입고서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된 것을 절절이 느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최후의 승리점이 어디냐고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추구하고, 찾아오고, 소원하고, 희망하는 최후의 승리점이 어떠한 자리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승리점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그 승리점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당신의 소원일진대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떠한 자리인가를 반문해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어떻게 가야하고 어떻게 해야 됨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알고 행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늘은 경고하였습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하여…. 통일교회보다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그 나라를 중심삼고 찬양할 수 있는 자리를 위해 가고 있는 교회가 되기를 저는 지금까지 바라왔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앞에 이 전통적 기개를 이어받으라고 호소했습니다. 주류적인 사상을 고이 접어 이어받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새로운 세계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새로운 기동대 편성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일을 당신이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한 곳밖에 믿을 수 없던 무리들이…. 한 곳에 중심이 된 이 선생의 명령을 받고 출발한 일이, 만일 실패하는 날에는 저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 길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맡겼사옵니다. 무리하고 과분한 짐을 지운 연유는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불가피한 것임을 당신이 잘 아실 것이오니, 그 진심을 받으시옵소서. 이들의 갈 길 앞에 핍박도 많을 것이옵니다. 그 핍박의 길 앞에 패배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미국이 그러하고, 영국이 그러하고, 독일이 그러하고, 일본이 그러하듯이, 이제 한국도 그러한 대열을 편성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여기 통일교회의 문이라는 자식을 사랑하시거든, 제 정경을 보아 사랑하는 자리에 서지 마시옵고, 통일교회 불쌍한 무리의 정경을 보아서 당신이 사랑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통일교회 전체 무리를 당신이 동정하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무리가 되면 저희들이 소원하는 것은 기필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이어받고 축복의 한날을 즐거워하는 것보다도 당신의 마음속에 깊이 다짐될 수 있는, 당신이 동정적인 심정의 눈물을 가지고, 당신이 내심으로 결의하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참아라. 참고 극복하여라. 내일의 소망의 자리를 위해 최후까지 싸워 나가라'고 권고해 주는 무리가 통일의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5월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이면 6월을 맞게 되옵니다. 아버지, 가는 세월을 슬퍼하지 말고 당신의 심정에 두터이 인연 지을 수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면서 가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늘 지키시옵고, 늘 이끄시고, 늘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는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식구, 아니 더 나아가서는 공산권 국가에서도 통일교회의 이름을 갖고 이 시간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무리가 있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까지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새로운 길을 결정하여 그들 앞에 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입장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스승의 말과 더불어 생명을 다짐하는 길도 개의치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무리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본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새로이 각성을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불쌍한 무리들이 가는 길을 당신이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그러하기에 당신을 따르고 있는 무리도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붙들고 사정해야 할 무리들이 이들밖에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런 길을 거쳐올 때에 당신이 지도해 주셨듯이, 세계에 널려 있기 때문에 직접 지도하지 못하는 그들을 같은 자리에서 지도해 주시옵소서. 저와 더불어 인연지었던 심정을 그들에게도 인연지으셔서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통일교회는 안간힘을 다해서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는 역사적인 사명을 하고자 하는 3년노정에 들어섰사오니, 나머지 6개월 기간에도, 아버지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는 기필코 합할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고 저는 알고, 또 믿고 있사옵니다. 온갖 충성과 지성을 다하여 최후의 경계선을 돌파하고도 남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적인 승리점을 국가적인 승리점으로 이어받고, 국가적인 승리점을 세계적인 승리점으로 이어받고, 세계적인 승리점을 천주적인 승리점으로, 천주적인 승리점을 아버지의 심정적 승리점으로 이어받게 하시옵소서.

완전히 포괄된 자리에서 심정적 일치점을 이루어 당신이 해방되고 이땅 위에 만민, 만우주, 피조세계가 해방될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때까지 전진밖에 모르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최후의 승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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