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가 왜 안 되는 지 몰라요? 하늘이 협조해 줘야 된다구요, 하늘이. 목회자들이 언제나 주의할 것은 하늘이 앞장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앞장서면 안 되는 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기 시작할 때 먼저 투입했어요. 이것이 투입과 주입, 투입했다구요. 투입을 하는데는 그냥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투입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여러분들도 사랑의 대상은 자기보다도 훌륭하기를 바라잖아요. 이것은 뭐 한계가 없다구요. 무한한 참 존재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할 때 그 표준이 하나님 이상 될 수 있는 상대이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양심이라는 것은 무한한 욕망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있어서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그 이상이 또 있게 되면 그것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무한한 단계까지 점령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가 없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를 지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의 상대를 맞아 가지고 그 사랑을 체휼한 이후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이후에는 그 상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지금 우리의 한계예요. 지금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한계선에서의 그 요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일체가 돼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의 상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요구한다면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류 시조를 창조할 때는 어떠한 요구도 없이 하나님 스스로 창조했지만 사랑의 상대가 상대로서 완성되어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는 일체적 입장에 서게 되면 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입장에 선 하나님은 상대를 지을 때 무한히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투입하는데도 그냥 투입하지 않고 그 상대를 위하고, 상대를 높이고, 상대를 섬기고 받드는 자리에서 이런 창조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주장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전부 높이고 자기는 무한히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대를 높인다는 것은 '봉사' 라는 말로 통합니다. 받들고, 시중 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자기 자신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무한히 받듦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상대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무한히 투입하는 것입니다. 무한히 투입하고 잊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높고 높은 상대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출발이에요.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자기 이상 높은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추구하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러면 투입한 그 자체가 상대에게 이루어질 때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반드시 상대는…. 상대는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그 상대는 아무 관념이나 무슨 생각이 없다구요. 존재의 의식이라는 게 없는 거라구요. 생겨나 가지고야 존재의 의식이 시작하는 입장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창조될 수 있는 편은 어떤 편이냐 하면 말이에요. 하나님이 주입했으면 그만큼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된다는 거예요. 눈물이 날 수 있는 감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인간 세계에서 다시 주입을 해서 돌려보내야 된다구요. 이것을 원칙으로 보면, 운동이라는 것은 전부 다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해서 운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투입과 주입, 이것이 연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주체라면 우리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주체 대상 관계에 있어서 주체 된 사람은 언제나 투입해야 된다구요.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희생해야 돼요. 투입은 희생입니다. 높이면서 자기 자신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봉사와 희생, 투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은 자기 자신에 있어서 소모되는 거예요.
그러면 저쪽(대상)에서는 받아 가지고 무엇으로 돌려보내느냐? 감사하는 거예요,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받은 것을 돌려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없어져야 됩니다. 무(無)가 되어야 돼요. 무(無)가 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다 돌아가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 눈물이 날 수 있을 정도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면 그 투입된 물건 앞에 플러스 됨으로 말미암아, 감사의 마음이 주입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하나님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것, 보다 더 큰 것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무한한 가치적 존재까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주체 대상의 관계, 창조 세계의 공식을 말해 보면, 환경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 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 된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입니다. 언제든지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교회를 대신해서 있을 때, 그것이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이기 때문에 상대가 있던, 없던 간에 거기에 봉사하고 받들고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투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천지의 근본이 거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가까울 수 있는 자리에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중심삼고 더 많이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발전하는 거예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이루어지면 반드시 이 존재는 더 높은 자리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화론도 이와 같은 원칙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설명해야 됩니다. 둘의 마음이 맞아 가지고 서로 더 큰 목적으로 자극을 받아야 됩니다. 자극을 일으켜 가지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둘이 추구해야만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돼요. 그 둘 사이에 일어나는 자극이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한다는 것은 손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 대상 관계에서 주고받으면 그것은 반드시 손해가 안 나요.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진다는 거예요. 그 커지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참사랑.
오늘날 과학 세계사를 보게 되면, 역학 세계에서는 작용을 하면 소모된다고 하지만 참사랑의 세계는 작용하면 더 커 간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균형을 취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책임자로서…. 벌써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전체가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된다구요. 자기가 영향을 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을 미쳐 가지고 내가 마음으로 주고 싶은 만큼 투입하면 그 자체를 상대가 완전히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돼요. 사랑 때문에 투입했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돼야 됩니다. 그러나 아들딸이 되려면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그것이 무한히 어려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까지 가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체험해야 된다구요. 체험한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 사람들을 전부 다 사랑의 마음이 앞서 가지고 봉사하고 하나님같이 투입하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하늘이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되면 반드시 우주력이 이것을 보호하게 마련입니다.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전부가 나쁜 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질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높으신 만큼 피조만물도, 물질도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원소도 투입되어 가지고 이것이 생겨나기 때문에 주입의 노정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원소 자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둘이 화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자극해서 자꾸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자들도 이와 같은 공식, 타락했기 때문에 재창조 노정을 가는 하나님같이 사랑을 중심삼고 봉사하고 희생하므로 말미암아 사랑의 대상이 높아질 수 있는 존재가 창출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제는 여러분들이 원리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골자만 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의 뿌리깊은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골자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알고 매일 같이 느껴야 된다구요.
우리가 동네에서 산다면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계와 연관 관계를 가지고 사는 거라구요. 한 존재가 존재하는 것도 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전체 우주 가운데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연관 관계에서 발전하는 원칙은 결국 뭐냐 하면 봉사와 희생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열 사람이 사는데 그 가운데서 나이 어린 손녀가 있어서 그 손녀가 그 집안을 위해 3년, 4년, 5년 이렇게 계속 봉사와 희생하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거기에 있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가족 전체가 아직 애기인 그 손녀에게 모든 비밀을 다 갖다 맡기고 자기 사실을 전부 다 얘기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점점점 그 손녀에게 모두가 수그리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늘의 본질적인 출발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봉사와 희생하는 것,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생활이 우주의 근본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므로 말미암아, 그것이 하나님의 주체적 핵의 내용과 같기 때문에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히 모두 몰려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봉사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더 가치 있는 사랑의 상대를 생각하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그 자리는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신 출발점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은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 식구들이 열 사람이 살더라도, 거기에서 제일 봉사하고 제일 희생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하는데 왜 자기들은 그런 의식이 없어요? 더 환경을 넓혀 주고 봉사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복귀한다는 세계는 뭐냐 하면, 그것을 재판(再版)을 해야 돼요. 하나님이 봉사하고 투입하면서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환경만이 아니에요. 이 환경이 자기의 상대가 되면 더 큰 것, 개인을 넘어서 가정, 가정을 넘어서 종족…,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해 나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마음 자세를 가져 가지고 가정을 중심삼고 투입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가정의 중심은 커지는 거예요. 가정부터 투입해야 돼요. 가정을 중심삼고 투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체가 투입하는 데 있어서도 더 큰 것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게 되면 반드시 큰 것이 여기와 하나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라 하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희생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가정을 높이 사랑하면서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정이 훌륭하게 되면 가정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중심이 되고 하늘땅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 전부가 중심이 되고 그 중심을 찾아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개인은 가정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가정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면 어떻게 돼요? 중심 존재로 서는 거예요. 왜 중심 존재가 되느냐?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할 때 이와 같은 원칙에 따라 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주체 대상이 된 이 존재는 틀림없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른 높은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존재가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이런 큰 존재와 통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라' 하는 거예요.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구해 주고, 그들을 내가 아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딸로 만들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하나님같이 자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을 만한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 대신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봉사하고 희생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반드시 중심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가르침에 결론을 짓기를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투입해라.' 하는 것이 그 말이라구요.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뭐예요?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씨족을 위하여, 씨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공식. 씨족 열 둘을 합하면 민족이 되는 거예요. 민족을 열 둘 합하면 국가가 되는 거라구요.
이와 같이 나라면 나라가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게 되면 그 나라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세계가 하늘땅을 위해서 봉사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게 되면 천주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이러므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대상의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맨 낮은 자리에서부터 이 공식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이것은 진화론과도 통하고 오늘날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가인 아벨의 역사도 그렇다는 거예요. 아벨이 가인을 구하기 위해서 봉사와 투입을 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원칙 기준이기 때문에 사탄은 여기에 반대를 못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그 본연적 기준에서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사탄이 이것을 반대할 수 없다구요. 그건 반드시 굴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예.」
개인은 가정을 위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하고,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 국가는 세계, 세계는 천주, 천주는 하나님을 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위하느냐, 나를 위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자기 것이라는 게 귀한 거예요, 자기 것이라는 것, 여러분은 자기 것을 다 만들려고 하지요? 내 것을 만들려고 한다구요. 여러분들의 양심은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구요.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야 되느냐? 내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은 종족의 것이요, 종족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요,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천주의 것이요, 천주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창조 이상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우주의 어떤 존재보다도 높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으로 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개인으로서 어떻게 발전해 나가느냐? 봉사하고 희생해 가는 자는 반드시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 중심 존재가 되느냐? 하나님이 이 우주 창조의 원칙에 있어서 뿌리요, 씨와 같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체 대상과 같은 이 입장에서 희생, 봉사하게 된다면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씨앗이 되는 거예요,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니까 내 일생이라는 것은, 자기를 생각해 가지고는 이상세계에 살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하나님 자신보다도 낫기를 바랐다는 거예요. 높이고 높여 가지고 위하는 자리에서 창조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위해서 있다는 이런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의 오관이라는 것을 보면, 오관 자체도 그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에요. 눈이 눈을 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코가 코를 맡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귀가 귀를 듣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입이 입을 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손이 손을 잡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예요, 상대. 상대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남자 여자를 볼 때에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자기 때문에 태어났다고 하기 때문에 세상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에요. 타락이 뭐냐 하면 자기 자각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겠다고 하거든요. 그렇지만 타락했더라도 그 마음은 타락 안 했다구요. 몸뚱이가 더럽혔지, 마음은 안 더럽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은 전부 높은 곳을 바라고 있어요.
그 높은 곳을 바란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이건 물건의 대상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 양심은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가려면 그냥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커 나왔다는 거예요. 창조할 때에 봉사하고 자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과정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백 배 투입하고 백 번 투입하고 말겠다 하면 그 자기 사랑의 대상은 백 배밖에 안 돼요. 그러나 천 번 만 배, 천만 배 투입하면 천만 배의 가치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세 이후에 인간이 완성 안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봉사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논리도 여기에서 다 해결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내가 설교를 잘 하겠다'고 하더라도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내가 뭘 잘할 수 있겠다 해서 다른 사람을 인용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그 원칙 강조적, 그 원 공식적인 그 자리에 서 가지고 자기가 느낀 것을 그냥 그대로 전해 줘야, 자기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속의 생명 요소를 감(減)하지 말고 그 이상 감사한 마음으로 투입해야 한다구요. 알겠어요? 투입하면 반드시 이 천운이 협조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모르지만 천운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병이 나게 되면 왜 아프냐 이거예요. 이 몸뚱이 이것은 사지백체가 밸런스를 취해야 되는 것인데 말이에요, 하나의 상대적 기준이 없어지면 병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천운이라든가 우주력이 있어 가지고 상대적 존재를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원칙이에요. 그런데 이 주체와 대상 가운데 하나만 결여돼도 밀어내는 거예요.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쌍쌍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는 쌍쌍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결여된 것 전부는 이 우주력에 의해서 보호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결여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전체의 환경적 여건을 전부 다 파탄시키기 때문에 빨리 몰아 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게 되는 것입니다. 왜 아프냐 하면, 우주력이 몰아 내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기는 플러스 플러스면 반발하지요? 마이너스도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반발합니다. 알겠어요?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말이에요, 자기 친구들끼리 하나되는 거예요. 그 친구들이 없으면 안 돼요,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결혼한 다음 날에 제일 친한 친구가 매일 아침에 찾아오기를 바라는 그런 여자가 있어요? 아무리 반가웠더라도 오게 되면 '저놈의 간나! 저것 죽어 버리지…!' (웃음) 반발하는 겁니다, 반발하는 거예요.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남자도 여편네가 자기 앞에 있는데 자기보다도 잘난 남자가 있으면, 여자도 남편 앞에 자기보다도 잘난 여자가 있으면 말이에요. 그 여자 때문에 여자 자체가 반발하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 앞에 두 남자는 반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말이에요. 결혼하기 전에는 플러스 플러스가 합할 수 있고 마이너스 마이너스가 합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전기 원론에서 이것은 상치된 말이지만, 우주는 그러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정해지기 전에는 합해야 됩니다. 흐린 날 벼락치고 야단하는 이런 것은 전기 작용인데 그것이 수억 볼트가 돼 가지고 플러스 마이너스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기 작용에서 플러스 플러스가 반발한다고 하면 어떻게 수억 볼트가 한꺼번에 확 나타나느냐 그거예요. '야, 나 플러스다, 너 마이너스니 나타나라.' 이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구름 가운데 플러스 전기, 마이너스 전기는 상대가 결정 안 되게 될 때는 이것이 주욱 합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합할 수 있다구요. 그래, 이렇게 되면 여기 마이너스가 따라온다구요. 이것이 쭈욱 따라와서 하나돼 가지고 마주 오는 것과 '딱' 마주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그러면 왜 상대가 되었을 때는 반발하느냐 그거예요. 반발하는 것은 뭐냐 하면 말이에요. 여자와 남자 사이에 제3자가 나오게 되면 왜 반발하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이 우주력에 의해, 천지의 도리에 의해 가지고 질서권 내에서 보호를 받는 자리에 들어왔다' 그겁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존속하고,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가 여기 왜 오느냐 이거예요. 제3자가 오게 되면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와 대상은 반드시 반발한다는 것입니다. 왜 오느냐 그겁니다. 반발하는 것이 싫어서 반발하는 것이 아니고 '이 쌍것아! 너도 빨리 가서 나와 같은 대상을 얻어서 우주의 보호를 받으라'고 하는 겁니다. 이래 가지고 밀어 제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용과 반작용에서 그 반작용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볼 때에 이 우주의 운동하는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것이 위해서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는 주체를 중심삼고 원수를 반대할 수 있는 입장에 못 선다는 거예요. 이원론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도 반발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전부 다 자기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가 가지고 완성의 자리에서 우주의 보호를 받아라' 하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싫은 것도 그래요. 내 마음이 싫으면 상대가 안 맞거든요. 싫어요. 내 몸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는데, 여기에 들어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전부 다 벌어진다구요. 그러나 몸 마음 앞에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더 큰 플러스라면 거기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공식 원칙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일생 생활도 그래요, 자기를 먼저 내세우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배척을 당하는 것입니다. 밀려나는 거예요. 절대 중심 자리에 못 서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하나님이 환경을 창조했어요. 태양을 짓고, 공기를 짓고, 물을 짓고, 이 땅을 지었다구요. 여기에 반드시 공식 상에는 주체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주체 대상을 이루어야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는 것도 내가 완전한 플러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같이 위하고 봉사하고 자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하는 사람은 그 환경에서 반드시 중심이 되고, 그 사람이 죽어서도 그 아들딸이 그렇게 계속하게 되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중심인 대통령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점점점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이것은 공식입니다, 공식. 공식이라구요. 그 공식을 적용할 줄 모르면 아무리 했댔자 결과가 안 나옵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어디에 가 가지고 나서기를 싫어합니다. 될 수 있으면 이 환경에 와 가지고 말이에요. 갑자기 들어와 가지고 '내가 선생님이니 뭐 해라' 안 그런다구요.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 환경에서 그 이상 투입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그것이 느껴지거든 나서야지, 괜히 의례적으로 나섰다가는 도리어 말해주지 않은 것보다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그만큼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는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어요.
여러분이 설교를 잘못 했으면 통곡하며 회개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백 명이 왔으면 백 명 전부 다 기쁠 수 있는 무엇을 심어줘야 할 텐데 말이에요. 하나님이 일한 그 모든 상대의 실적이 나타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려면 그 전체가 나와 위하고 봉사하는 사랑의 마음 앞에 하나되어 감동을 받아 가지고 잊을 수 없는 입장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맞으면 이것은 사탄의 일로써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진 사람은 거느린 사람이 백 명 있으면 백 명을 전부 다 언제든지 상대해 줘야 됩니다. 언제든지 기도를 해줘야 된다구요. 기도하면 벌써 자기가 알아야 됩니다. '아, 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벌써 쓰윽 보이고 이름을 부르면 쉭쉭쉭 나타나게 된다면 말이에요, 가다가 딱 멈춥니다. 매일 같이 기도해주면 알아요. 거기에 전화하면 틀림없이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아이고, 그것 어떻게 알아요?' 하는 겁니다. 의사가 전부 다 진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알게 돼 있는 것입니다.
내가 투입했는데 돌아오지 않아요. 돌아오질 않아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가지고 주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투입과 주입, 주체는 투입해야 되고 상대는 주입해야 됩니다. 주입하는 데도 그냥 그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의 눈물이 나야 합니다, 눈물이. 감동될 수 있어 가지고 몸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하나되어 나를 감동시키는 그 자극을 중심삼고 그 투입된 것을 다시 하늘 앞에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 하늘에 감사하는 것이 충격입니다. 하나님에게 그렇게 자극을 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선물을 사줬을 때,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면 또 사주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더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은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불평하는 사람은 낙엽이 되는 것이요,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암만 잘났다고 하더라도 불평하는 사람은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천지창조의 원칙, 공식에 맞기 때문에 이 공식을 어디에나 적용해도 그 공식대로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에 미국을 중심삼고 가면서도 미국이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미국을 창출하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죽지 않았어요. 살아 있어요. 역사는 살아 있는 거예요. 현실이라구요.
영계에 가게 되면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역대의 그 사람들이 최고로 미국을 위하던 이상의 자리에서 생각을 다 해야 됩니다. 그러니 그들이 비참한 생활을 했으면 그 이상의 자리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자리에서 그들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상대로서 도왔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 대신 내가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국민들은 전부 다 안 따라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인사들은 전부 천운에 의해서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자연히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예.」
여러분도 알다시피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이 싸워 가지고 공화당이 대승리한 것은 워싱턴 타임스 때문이라구요. 뉴스 위크니 이게 워싱턴 포스트계 잡지인데 거기에서 평가하기를 '이번에 공화당이 대승리한 것은 워싱턴 타임즈 때문이다.' 한 것입니다. 그거 맞는 말이라구요. 수십 년 동안을 투입하고 잊어버리면서 나온 것입니다. 인맥을 많이 투입하고 돈을 많이 투입했어도 그것을 계산 안 하고 잊어버려요.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게 되면 반드시 무엇이 된다구요? 「중심 존재가 됩니다.」중심 존재는 전체하고 다른 거예요. 10도면 10도, 내가 이제 100도라 하게 되면 10도 더 나아야 된다구요. 99도도 다르다는 거예요. 이것을 나무로 말하자면 이건 큰 나무가 되는 거예요. 여기에 작은 나무가 있으면 큰 나무를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어차피 관계를 맺고 그 원칙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마음입니다.
여러분들 내가 뭐 소개 받을 때 무슨 교구장을 소개해 주면 기분 좋아하고 교역장을 소개해 주면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다 틀린 거라구요. 내가 본연의 하나님의 창조 원칙의 자리에 서 있느냐 못 되느냐, 그럴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자기의 전부를 소개 받아 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은 틀린 거라구요. 거기서 깎아지는 거예요. 그 환경의 여건들이 전부 다 떨어져 나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언제나 불평해서는 안 되고 감사해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감사?「예.」선생님은 어제까지도 일본의 책임자들을 모아 가지고 황환채한테도 얘기했지만, 이게 나서 가지고 책임은 안하고 걱정만 하고 있더라구요. 걱정만 하고 있어요. 어려운 사지에 뭐 한계선이…. 세워 가지고 닦달을 한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대가리만 커 가지고 책임자가 걱정만 하고 있다구요. 걱정하지 않고 그 이상을 해 봤느냐 이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걱정할 수 있는 기준 이상 투입하고 잊어버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선두에 있어야 돼요. 이번 16만 명도 그래요. 전부 다 안 된다고 한 거라구요. 이 원칙이 공식이라구요. 공식입니다. 누구보다도, 일본 사람 누구보다도, 천하의 애국자보다 그 이상에서 투입하고, 높이면서 투입하는 거예요. 그 마음이 그 자리에 올라와야 됩니다. 마음은 높은 거라구요.
하나님을 상대해 가지고 마음의 욕심은 말이에요, 무한대로 째까닥 올라간다는 거예요. 거기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그 원칙에 따라 가지고 자기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눈물이 나고 감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물이 나는 거예요. 감사하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것이 점점점 병이 나서 전부 다…. (녹음이 끊어짐)
공식적 논리, 공식적 과정을 통할 수 있는 여러분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상생활에 심어야 되는 거예요. 부부생활에서도 전부 다 심어야 되는 거예요. 주체라는 사람은 위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거기서 내가 이 만큼 했으니, 뭐 어떻게 하라고 하면 거기서부터 끝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같이 투입하게 되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이랬다 저랬다 하더라도 전부 다 자기 자신의 양심이 알거든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자연히 몇 년만 있으면 동화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효자란 뭐냐 하면 부모를 위해서 자기 자체를 투입하고 부모님과 더불어 거기에 대해서 봉사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충신도 마찬가지예요. 충신이 별것 아니에요. 나라를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나라를 높이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 가지고 자기 전체를 투입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예요. 세계를 대해서 높이고 세계 만인을 위해서 전부 다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성자도 그래요. 성자라는 것은 하늘땅을 중심삼고 봉사하고 투입하게 된다면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원칙이라구요. 아시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생활에 불평하는 사람은 옆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돼서 떨어지는 거예요. 살이 못 쪄요. 반드시 옆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기 불평하는 사람 누구예요?「없습니다.」없긴 뭐가 없어요. 자기 주장을 누가 한 사람만 하게 되어도, 말 한마디 듣게 되면 분해 가지고 빡빡 달려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원수를 왜 사랑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창조 이상이, 사랑의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사랑 이상을 파괴한 원수예요. 그 원수를 때려죽이고 그 자리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기뻐하겠어요? 어떨 것 같아요? 하나님이 사람을 때려죽이라는 그런 법은 없었다구요. 사랑에는 나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투입하고,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창조의 이상을 가지신 분이 거기에 있어서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길을 찾을지언정 자기가 출발한 것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인정할 수 없고 또한 창조 원칙에도 틀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원수를 이론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예!」그렇게 해보라구요. 그래서 종 중의 종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뭐라구요?「종의 몸을 쓰고.」종의 몸을 쓰고?「땀은 땅을 위하여….」그건 뭐예요? 땀은?「땅을 위하여….」눈물은?「인류를 위하여….」피는?「하늘을 위하여….」위하여…. 그거라구. 위하여 사는 거예요. 사랑의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구요. 종의 입장에서, 제일 낮은 자리에서, 없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없애 가지고 있는 전체를 투입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투입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머무는 거예요. 자기보다 더 큰 존재를 원하니까, 다 드러내 놓고, 다 드러냈는데, 여기서 상대가 참 감사한 말을 돌려보내면….
내가 공(空)이 된다구요. 공이 됐으면 우주는 그 공을 공기와 마찬가지로 채우는 것입니다. 사랑도 공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물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전부 다 구덩이가 생겨나면 채우는 것입니다.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는 거예요. 높은 무대에서 낮은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높은 데서 낮은 것으로 가는 것은 딱 마찬가지라구요. 여기에 진공 상태가 되면 우주의 무한한 사랑의 힘이 찾아온다 이거예요. 이 우주가 사랑 때문에 존재하는 거예요. 그 힘이 전부 다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고 나서 우는 사람은 없어요. 사랑하고 나면 기뻐요. 자기가 희생하고 나서 다 없어져도 기쁘다구요. 왜 기쁘냐 이거예요. 그건 발전한다는 거예요. 없어졌다가도 반드시 다시 채워진다 이거예요.
이러한 모든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더구나 단에 서게 될 때는 형장에 나가는 사람과 같이 '나는 없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나는 없다 이거예요. 나를 활용해 가지고 백 퍼센트 있는 정성을 다해서 봉사하고 투입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마음 자체는 반드시 창조원칙에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자기 본심으로 와서 흉금을 울린다구요. 그럼, 거기에 자기대로 감동이 되면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나도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 도는 거예요. 순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심력, 구심력, 아시겠어요? 이것이 존재 세계의 원칙이에요.
여기에 플러스 될 수 있는 자극이 뭐냐 하면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신앙자의 일생은 감사의 눈물이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은 어디 가든지 성공을 합니다. 선생님도 그래요. 선생님은 교만하고 그렇지 않다구요. 언제든지 평등입니다, 언제든지.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품고 자기가 높이면서 키스를 하지, 낮추면서 키스를 안 한다구요. 알겠어요?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고 높이면서 키스를 하려고 하지 내 누르면서 키스를 안 합니다. 그 마음이에요. 하늘은 사랑의 대상을 자기보다 높게 만들려고 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사랑의 대상은 몇억만 배, '백 배 원해요, 천 배 원해요' 하면, 뭐라고 그래요?「무한정입니다.」천 배, '천 배 원해요, 만 배 원해요' 하면?「만 배 원합니다.」만 배 원해요, 십만 배?「십만 배 원합니다.」십만 배요, 백만 배요?「백만 배.」억만 배?「억만 배.」억억억 무한배입니다. 그게 어디서 온 거예요? 그 자리까지 가려면 여러분이 그마만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는 상대가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높고 높은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으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생각해 보라구요. 제멋대로 살았지요.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책을 가지고 전부 다…. 책이 안 통한다구요. 누구 말 들었다가는 하늘과의 관계를 못 가집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의 말은 하늘의 계시의 말과 다르다구요.
그렇지만 우리가 원리 책을 읽어야 됩니다. 그 책은 유효원이가 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부 다 코치한 거라구요. 반드시 한 페이지 해도 감정한 거라구요. 그러니까 하늘과 제일 가까운 그 말씀이 주체니까 그 말씀의 대상이 되어서 말씀을 볼 때에 감사의 마음이 플러스 되면 창조하던 하나님의 심정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어떠한 사람의 골자를 가져 가지고 강의하는 것보다도 하늘 앞에 제일 가까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거기에 접해 가지고 눈물을 흘리게 되면 대번에 하늘과 대등한 자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원칙과 마찬가지예요. 책은 하늘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상을 위해 주는 말이라 한다면 그 말을 읽으면서 감사의 눈물로써 대하게 되면 나는 심정적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구요..
그러나 골자를 가지고 강연을 들을 때는 이런 사람들이 다시 들었다 한다면 말이에요. 골자를 다 안 갖고 있어요. 감동은 되었지만 그 감동된 것을 다시 체크하고 싶고, 다시 재검토하고 다시 느낄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찾아가느냐? 21일수련을 하고, 혹은 40일수련을 했더라도 그 때에는 느꼈지만 그것은 자기 책이 아니에요. 한 노트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책으로 딱 되어 있으면 그 책을 중심삼고 하게 되면 자기가 감화된 것을 책 페이지에 기록을 하고 확인하게 되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사다리가 얹혀 있다구요.
그러나 제멋대로 강의하고 제멋대로 하게 된다면 사다리가 없어요. 공산당이 73년 동안 세계에 전파한 것이 뭐냐 하면 책입니다. 압박을 받는 그 환경에서 말을 가지고 했겠어요. 책을 보고는 반드시 책에 주소를 쓰는 것입니다. 주소, 전화 번호를 쓴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설악이면 설악에 있어서 책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말이에요. 책 뒤에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이름이 있어요. 그러면 설악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통해 가지고 그 사람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포 조직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수많은 강의를 했지만 서로 서로가 동서사방으로 다 상대할 수 없다구요. 동료들을 다 찾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이 기록을 보고 재까닥 전화해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가지고 다시 당신이 느낀 것이 무엇이고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다 하면서 토론하는 거예요. 거기에 감동을 받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가지고 토론하고 읽고 읽으면 읽을수록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이 감동 받은 것을 내가 전부 다 같은 자리에서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 사람이 감동 받은 것을 내 것으로 하게 되면 열 사람을 감동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책만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예.」
지금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탕감시대이니 전부 다 세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이런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탕감시대에는 종족적 메시아를 전부 다 환영할 수 있는 환경시대가 오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가 160가정을 하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일주일 이내에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이내에.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다 어렵게 생각하지요? 어렵게 생각하지요? 뭐 이제는 선생님 이름이 점점점 최고로 부활해 올라갑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 원칙에서 세계가 나를 받든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상대적 자리에 안 서면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이 알아요. 양심이 안다는 거예요. 고차적인 도를 통하고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이 찾아 온다구요. 그런 붐(boom)이 불었습니다, 붐이.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왜? 이 공식적 원칙에 따라 무한히 상대에게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그 주인 이상 되고 싶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주의 중심이니까 그 중심 자리에 찾아 올라오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소는 전부 다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사다리가 필요하다구요. 그 사다리가 되는 것이 풀입니다. 그 풀이 흡수하는 거예요. 흡수해 가지고 그 풀에 들어간 원소는 전부 다 곤충에게 먹히고 동물에게 먹혀서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더 큰 것에 먹혀 가지고, 소에 뜯어 먹히고 사람에게 먹혀 가지고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에 돌아가자는 거예요. 그것은 투입했기 때문에 주입해서 돌아가자는 운동인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볼 때, 찰스 다윈의 약육강식이라는 말은 현재의 이 모든 사랑을 중심삼은 순환적인 존재권을 몰라서 한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전부 다 고난을 받고 희생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몸뚱이는 싫어해요. 아시겠어요? 이렇게 다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좋아하는데 몸은 세상적이에요. 그래, 이것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명령에 따라가면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골짜기를 지나야 더 높은 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골짜기로 내려가기 싫어하는 거예요. 몸뚱이는 안 내려가겠다 한다는 거예요. 몸뚱이는 안 내려가려고 하고, 마음은 올라갑니다. 여기서 희생하게 되면 이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안 죽으려고 한다구요. 안 죽으려고 합니다. 본연의 그 본심은 높은데 올라가고 싶은데, 평면적 기준에서는 희생하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그러나 골짜기로 들어가야지, 들어가지 않으면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희생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거예요. 높은 산에 올라가려면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생활에 있어서도 기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슬픈 일이 생겨나는 거예요. 반드시 탕감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멋모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탕감에 걸려 가지고 다 떨어져 버립니다. 또 못 간다구요. 그러므로 이런 공식적인 원칙을 알아 가지고 일생의 목표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1년, 2년 나는 이렇게 투입할 것이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어디 가든지 대접받고 잘살기를 바라지요? 아무도 없는 데 가 가지고 하나님이 없는데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공식을 적용해야 된다 이거예요. 공식 적용! 하늘이 6천년 역사를 점령해 나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몇천만 년이 걸렸어요. 잃어버린 자식을 만나는 것같이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이거예요. 알겠어요? 말씀 한마디만 듣게 되어도 눈물이 쏟아지는 이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눈은 맹맹해 가지고 기도할 때 뭐 전부 다…, 기도는 남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절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기도는 안 통합니다. 교회의 문제, 동네의 문제, 세계의 문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기도를 하고, 기도했으면 반드시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락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투입해야 합니다. 기도만 해서 뭘 하자는 거예요. 행동을 해야 됩니다. 기도한 것만큼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기도 안 하고 행동하면 더 귀한 겁니다. 그건 하나님과 같은 창조 역사가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공식적인, 원칙적인 이 원칙이 공식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우주의 원칙 속에서의 작은 질서로부터 큰 세계의 질서가 생기려면 그 공식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공식은 단위를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수학 푸는데도 단위가, 숫자가 있어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공식은 반드시 단위들을 연결시키고 공식은 공식을 연결시켜서 큰 답을 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현대 문명도 그래요. 공식 발달입니다, 공식 발달. 주먹구구가 아니에요.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예.」
왜 전도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있어서 그래요. 하나님 앞에 재창조되는 원료가 되어야 되고 원자재가 되어야 할 텐데, 아무것도 섞어지지 않은 진흙탕, 찰흙을 발라야 되는데 여기에 모래알과 자갈돌이 들어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이 땅 위에서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안 해 가지고 저나라에 가면 청산할 길이 없어요. 그냥 그대로 갖고 가는 거예요. 거기에 맞는 세계에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옆길로 가 가지고 그 자리에 머무는 거예요. 영원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한번 그렇게 해 봐요.「예.」여기 대가리 큰 교구장들, 대접받는 것이 원수입니다. 높임 받는 게 원수라구요.
그러면 그 발판으로 성을 쌓고 피라미드 같은 걸 잘 쌓아 가지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쌓아준 터전 위에서 선생님을 절대 믿고 절대 사랑해야 됩니다. 심정적으로 하나된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불신 때문이에요. 아버지와 아들딸은 같은 혈통의 맥박이 뛰고 있는 거예요 부모를 대해 가지고, 사랑은 일체입니다. 일체라구요. 사랑하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일체에서 갈라질 수 없다 그거예요. 그런데 부모가 명령한 계명을 전부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적 내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신앙과 절대 부모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일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체휼적 생활권 내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체휼적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지요?「예.」체험이 아니에요. 체휼적이어야 돼요. '아, 오늘 내 마음이 왜 이런가?' 그러면 부모님이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 길을 가다가도 모르게 그런 것을 느껴야 된다구요. 통곡하는 이 사정이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벌써 그럴 때 기도하게 되면 '이런 일이 역사의 어느 곳에서나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나에게 반드시 하늘이 알려준다구요.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 체휼적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의(侍義), 시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 모시고 산다는 것은 체휼적 생활권 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지상 천국이 뭐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체휼적 권내에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부모와 같이 무엇보다도 제일 가까운 분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누구예요? 여자로 말하면, 여자들은 세상에서 자기의 사랑의 상대는 하늘땅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자를 상대자로 삼고 싶지요?「예.」하나님이 남자라면 말이에요, 여자로서 하나님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겠어요?「하고 싶습니다.」본래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여자의 남편이에요.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어서 그렇지 내적인 여자의 남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것이 아담이에요. 해와가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해와가 누구냐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내요, 보이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하나는 종적인 아내예요. 보이지 않는 종적인 아내입니다. 그래서 종적인 아내이고, 보이는 아내는 횡적인 아내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들은 지상에 살 때에 여자들은 땅 것밖에 생각 안 하고 남자는 종적이어서 하늘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하늘 땅으로서 하나되는 것이 사랑이에요. 종적, 횡적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서 합해지느냐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인간의 사랑이 있는데 합해지는 자리가 두 자리면 큰일이에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 그러면 그 자리가 어디겠느냐 이거예요. 오목 블록에서 합해지는 것입니다. 오목 볼록, 그렇잖아요?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어 가지고 그 사랑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오목 볼록이 안 되면 사랑이 안 되는 거라구요. 오목 볼록! 사랑은 누구로 말미암아 오느냐 하면 자기 자체로는 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한 것입니다. 이 창조원칙은 우리 생활상에 전부 다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목 볼록이란 것을 왜 그렇게 갈라 놓았느냐 하면 말이에요. 사랑을 찾으려면 오목 볼록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돼요. 하나되면 그 사랑은 내적이 되고 이 몸뚱이 사랑은 외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이라구요. 이렇게 되면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인간의 사랑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 하나돼요? 오목 볼록이라구요. 그래서 내적인 하나님과 외적인 하나님, 그것이 아담이 완성한 자리요, 해와가 완성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이 그걸 바라는 것입니다. 양심이 그것을 바라고 있어요. 양심은 무한한 욕망을 그리고 있어요. 하나님을 점령하고도 그것으로 만족 안 해요. 그 때 가서 '하나님, 내가 없을 때에, 아담 해와를 보지도 않고 이렇게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 주소!' 하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로 말미암아 우주보다도 더 큰 창조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 상대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가치의 존재라는 거예요.
'와! 그런 말이 사실이라면 땡 땡….' 무슨 말로 표현해야 되나? '땡 잡았다'는 얘기는 안 돼지.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전부 지금까지 가진 것을 다 줬지만 말이에요. '아빠, 나 이것 해줄 거야?' 할 때 안 해주겠다고 하겠어요? 눈물 흘리는데 안 해주겠다고 하겠어요? 자기 아들이 문제가 아니에요, 사랑의 상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는 여자에게는 남편과 아들이요, 남자에게서는 아내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남편과 자기의 아내는 최고의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들딸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딱 같다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내적인 하나님을 대신하고 외적인 아담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상대가 그렇잖아요? 아버지와 아들이에요. 남편하고 아들이지요. 그거예요. 동위의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들이 자기보다 몇천 배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둘밖에 없는 사랑의 상대인 자기의 남편도 그러길 바라고 아내도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으로써 추구하는 최고의 자리가 있는 거예요. 그 최고의 자리가 인간의 사랑의 자리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와 인간의 사랑의 자리는 최고의 자리인데 그것은 어디서 합할 거예요?「오목 볼록에서입니다.」그건 뭐 이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국민학교 애들도 누구나 오목 볼록이라고 대답한다구요.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하나님의 부인이에요. 본래 태어나서부터 하나님의 부인이요, 또 남편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욕망은 남자로 말하면 말이에요, 하나님의 부인과 전부 다 결혼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게 완성한 해와라는 거예요. 왕궁이라는 것은 첫번 시작하는 곳을 말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늘나라의 왕궁, 지상세계의 왕궁, 이러한 두 세계의 왕궁에 사랑을 빼 놓으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왕궁이라 하면 영계의 왕궁과 지상의 왕궁이 있는데 이것이 어디서 접선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인간과 하나님이 어디서 합해지느냐 그말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일체였던 그 생식기라는 것은 본원지예요. 그것이 본원지니까, 궁으로 보면 본궁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출발한 궁, 첫번 시작하는 궁이에요, 알겠어요? 그것이 본궁입니다.
사랑의 본궁이고, 생명의 본궁이고, 혈통의 본궁이고, 양심의 본궁이고,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지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자유가 있는 것이요, 그 자리에 없으면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행복이 있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평화가 있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짓기를 그렇게 지었어요.
그래서 남자 여자로 보게 된다면, 여자가 아무 남자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어요? 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상대가 돼야 벗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영원한 사랑의 상대를 결정해야 벗게 되는 거라구요. 거기에는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자 앞에 여자가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고 남자도 여자 앞에 부끄럽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결혼했지요?「예.」남편 있을 때 옷 벗으면 부끄러워요? 가슴이 두근거려요?
남자의 첫사랑을 느끼는 성숙기에 들어간 처녀들은 남자 앞에 서면 부르르 떨리지요? 두근 두근거리지요? 그래요? 그것이 순탄한 거예요. 고요한 세계예요, 정지되어 있는 거예요. 전부 수평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충이 없어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부끄러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부끄러움이 있으면 벌써 차이가 벌어지는 거예요. 파장이 없는 고요한 곳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들이 손을 잡고 참 좋으면 눈을 감는 거예요. 왜 눈을 감아요? 무한히 고요한 곳에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부 다 으슥한 데 찾아가요, 저 안테나에 찾아가요?「으슥한 데 갑니다.」그거예요, 고요, 고요! 깊은 고요한 자리에서 무한한 세계로 연장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모든 문제가 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어요. 이상 세계가 둘일 수 없는 거예요. 사랑이 동(同)치 않는 이상 세계가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 사랑은 첫 출발이, 지상천국이나 천상천국이나 같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출발한 그 곳, 신인(神人) 일체의 사랑의 기지가 어디냐? 그것이 선생님이 제일 고민한 자리예요. 이론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이거예요. 거기에 대한 답이 뭐냐 하면, 들리는 소리가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한다.' 한 것입니다. 직단거리, 그 소리를 듣고 만세를 부른 거예요. '야, 그렇구만!' 그건 영원히 한 자리예요. 직단거리, 수직으로 오게 되면 반드시 직단거리는 이것이 90도가 돼야 돼요. 91도가 돼도 먼 거예요. 89도도 먼 거예요. 길다구요. 오로지 수평인 것은 90도밖에 없어요.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그렇다면 인간 인간, 남자 여자의 사랑도 참사랑의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90도 각도 외에는 없는 거예요. 이것은 우현 좌현, 상현 하현, 전현 후현 전부 다 하나로 되어 있고 12, 열 두 피스(piece;조각)가 나오는데 하나 가지고 열둘을 다 맞춰요. 딱딱딱 다 맞아요. 아시겠어요?「예.」
여기서 부부간이라는 것은 상충이 없어요. 열둘 전부 다 맞아요. 열 두 번을 전부 다 맞추더라도 다 상충이 없다구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손자가 할아버지를 전부 다 사랑하는 자리로 들어가더라도 상충이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 세상이 타락해서 그렇지 앞으로는 3대가 한 방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 나와요. 안 그래요? 우현 것이 좌현에도 들어가 맞고, 하현에도 맞고, 상현도 다 맞는다는 거예요. 하나가 동서 사방을 중심삼고 하나 중심삼고 셋이에요. 사방이 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위기대라는 것은 3대상 12대상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전부 다 한방에서 다 맞추더라도 불평이 없다구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자기 3대가 한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겠느냐? 어때요? 부끄러워하면 타락권 내에 있다는 거예요. 찌그러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만큼 부자지 관계는 일체인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인간은 하나예요. 각도가 딱 맞는다는 거예요.
자,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그래요. 이런 모든 이론 적용이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맨 처음 출발한 공식으로서 어디나 다 맞게 마련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래, 높고 높은 귀한 것을 바라면서 봉사하는 가운데서 사랑의 대상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 창조이니, 주체가 된 그분도 그랬기 때문에 대상인 나는 그걸 받아 가지고 감사의 눈물, 고마운 마음을 돌려줌으로 말미암아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의 가치는 나에게 결실되는 것입니다. 이거 이론적이라구요. 그렇게 살아봐요?「예.」
이제 누가 취직 생활을 찾아가면, 그것은 거지 떼거리라구요. 앞으로 돌아올 길이 없어요. 그 나라에 가다가 곁길로 가는 거라구요. 선생님도 그래요. 감옥에 가서 밥덩이 찾아 다니지 않았어요. 그것 다 잊어버린 거예요. 그것보다도 더 고생이 심한 데 있으면 그 자리에 하늘의 큰 은사가 찾아오는 거예요. 그 은사를 받아 가지고 감사함으로 돌려줄 수 있는 자기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이 없더라도 감사해야 된다구요. 그 자리는 하늘이 같이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옥중에서도 매일 밥을, 창살을 지나 선조들을 통해서 미수가루를 날라다 주더라구요. 망하면 큰일나요. 천지가, 창조의 세계가 존속하게끔 만들어 준 거라구요. 알겠어요?「예.」
식구가 없게 되면 밤잠을 못 자요. 잘 수 있어요? 지옥갈 수 있는 부락이 지금 전부 다, 지옥가면서도 자고 있는데 그것을 아는 부모가 눈물 없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부락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지 않고 영점 자리에서 나를 환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면 그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님이 창조하기를 환경을 창조했어요. 환경 가운데 보다 귀한 것을 투입한 거예요. 태양을 만들고 공기를 만들었다구요. 태양은 눈을 상징하고 공기는…. 윗 입술은 말이에요, 물을 상징해요. 물 먹을 때 아래 입술은 내려가거든요. 윗 입술은 물을 상징하는 거예요. 이빨이 꼭 씹어 먹을 때에 윗 입술을 깨물지만 아래가 받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4배 땅 수의 8배예요. 8수, 이상 수예요. 32개가 전부 다 치아가 돼 있다구요. 천지 이치를 다 표시한 거예요.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구요. 하나님이건 인간이건 만물까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공기, 태양, 물…, 만물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환경을 어떻게 봐야 되느냐, 잘 봐야 돼요. 숨을 잘 쉬어야 돼요, 순리적으로. 죄를 범하면 가슴이 뛴다구요. 마음이 책망을 하는 거예요. '이 녀석!' 하게 되면 숨결이 달라져요. 알겠어요?「예.」물을 먹을 때도 전부 다 그래요. 전부 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되는 거예요.
음식이 고맙고, 전부 다 생명의 근원 되는 것이 여기에 달린 거라구요. 빛깔이 없으면 안 되고, 공기가 없어도 안 되고, 물이 없어서는 안 되고, 만물이 없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에 엄숙한 자리에서 감사하며 먹어야 된다구요. 밥을 먹으면서 눈물 흘리는 자는 복 받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만물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금식 다 해 봤어요? 금식 다 했나?「예.」7일 지나 가지고 다음날 12시 되는 그 시간에 밥을 생각했어요, 죽을 생각했어요? 사랑을 생각했어요? 거짓 사랑의 씨앗이 된 타락한 인간이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한탄해 가지고 그것을 찾기 위해 갖은 고역의 골짜기도 넘고, 산정을 넘어야 할 자신을 생각할 때에 밥보다도 더 사랑을 그리워해야 될 나 자신이다 이거예요. 이렇게 생각하고 금식해야 된다구요. 밥을 그리워했다면 금식을 다시 해야 됩니다. 그것은 타락한 몸뚱이를 위했다는 결론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 그런 것을 알고 선생님 말씀대로 한번 해 봐요. 알겠어요?「예.」결과가 나오나, 안 나오나 보라구요.
이번에 16만 명 일본 식구 하나도 안 데려왔어요. 어머니까지도 나중에 와서는 전부 다 그만두면 좋겠다는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럴 수 없어요. 하늘과 약속했으니 거기에 내가 투입에 투입을 못했을 뿐이지 더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그 이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결정해 가지고 한다 하는 것은 다 됐다구요. 이러한 위대한 공식을 알고 살아봐요. 알겠어요? 「예.」(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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