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21

<기 도(Ⅰ)>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생명의 동산을 바라보시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사옵고,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하는 진리의 동산이 이상적인 동산이었사옵고, 영원 불변의 사랑을 중심삼고 당신의 성상 앞에 전체가 화동하여 아버지의 내적 성상이나 외적 형상을 드러내면서 그것에 취하여 살아야 하는 곳이 본연의 동산이었음을 아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오늘날 저희들이 바라는 소망의 동산을 이 시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본연의 동산을 체휼하여 마음으로 흠모하는 동시에 몸을 움직여 경배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동시에 또한 몸이 제물로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를 찾기 위하여 수고하셨던 모든 수고를 이제는 저희들에게 맡기시옵고, 아버님은 영광 받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외롭게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한 생명도 버리지 마시옵고, 먼저 이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불붙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생명에 저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전체가 하나되어 제물로 바쳐지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부족함이 없는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이시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를 보호해 주시옵소서. 분별의 역사를 책임져 주시옵소서. 사탄이 침범하는 이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로지 아버지의 뜻에 사로잡혀 분부하시는 뜻을 중심삼고 화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여기에 마음 몸으로 순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부족함과 옳지 못한 모든 요소를 아버지 앞에 내어 놓고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 복을 주시마고 약속하신 날이오니, 이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제단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대신하여 외로운 제단에서 싸우고 있는 자녀들도 많사오니 그들 위에도 일률적인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고하시고, 보여주시고, 증거하신 사실이 끝날 그들로 인해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어둠 가운데 사로잡혀 있사오니 이것을 깨우치고도 남을 수 있는 아버님의 직접적인 역사를 나타내 주시옵고, 아버지가 움직이시는 교회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아들딸들을 통하여 이 시간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약속하신 끝날이 가까웠사옵고, 허락하신 은사의 시기는 왔사오나, 저희들은 아직 불완전하고 미급하고 미진하오니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받들어 드려야 할 아버지의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비한 저희 자신을 탄식하며 아버지 앞에 엎드릴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참되신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충절의 자녀들이 이민족을 대신한 교단 교단 가운데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삼분오열된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님의 전체적인 은사를 대신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 민족에게 하늘이 감추었던 뜻을 나타내시옵고, 24억 인류 앞에 아버님이 즐거워하실 수 있고, 그 뜻을 자랑할 수 있는 축복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날 모인 뭇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은 아버지께서 오라 하시매 온 자들이었사옵고, 아버지께서 외로운 길로 몰아내셔서 모여진 자녀들이오니 전후로, 좌우로, 상하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마음과 몸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 외의 것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의 흔적이 없게 허락해 주시고, 죄악의 잔뿌리가 남아 있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별에 성별을 가하여 완전무결한 선을 중심삼아 그 마음과 몸이 아버지 본성 앞에 자만하지 않는 겸손한 무리로서, 온유의 모습으로서 부복할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도처에 널리어 말씀을 갖고 싸우는 아들딸들이 아버지 앞에 부복한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지켜 주시옵고, 이 시간 같은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이 민족을 위하여 저희들을 내세우셨고, 권고하셨고, 저희들과 같이 협력하셨을진대, 저희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딸임을 자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중심에 서 있는 아들딸임을 증거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당신의 손길에 붙들린 사실을 증거하시고, 이 민족을 각성시키셔서 사탄의 마수에서 이 민족을 구해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민족적인 은사를 허락하시려는 아버지의 전체의 뜻 앞에 이 민족이 부끄러움이 없게끔 저희들을 세우시사 아버지 앞으로 이끌어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처음 시간부터 끝 시간까지 아버님과 성신이 기뻐하시는 뜻에 저희의 마음과 몸이 동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전체의 모임을 영광의 제물로 받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주관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Ⅱ)> 아버님! 시온의 한 중심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수많은 선조들이 피 흘리면서 아버지 앞에 염려를 끼치고 빚진 일을 탕감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아버님이여! 이 시간 저희의 마음 몸에 시온의 영광이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영원히 아버지가 임재하실 수 있는 시온의 기쁨이 저희의 마음에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께서 몸과 마음을 주관하실 수 있는 영광의 아들딸이 된다 할진대는, 저희에게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사옵고, 그보다 더 큰 소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아버님의 사랑의 손길에 붙들리지 못하면 이 땅 위에 저희들과 같이 외롭고 불쌍한 자들이 없을 것이며, 처참한 자들이 없을 것이옵니다.

아버님이여! 싸움에 지쳤고, 핍박에 지쳤고, 어려운 환경에 시달려 온 당신의 아들딸들을 이 한 시간 생명과 사랑으로 보호해 주시고 길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상한 몸 마음이 그대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아버지, 긍휼히 여겨 주시사 이 한 시간만이라도 싸움에서 찢긴 저희들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이 한 시간만이라도 아버지 마음속에 감추인 사랑의 맛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마음을 닮고, 하늘의 영광을 중심삼고 전체가 노래할 수 있고, 하늘의 영광을 중심삼고 전체가 즐길 수 있고, 하늘의 뜻을 위하여 전체가 머리 숙일 수 있는 이 한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외로운 저희들을 이리저리 몰리는 길에 몰아내신 것도 아버지이셨사옵고, 처참한 자리에서 하늘을 향하여 남 모르게 호소하게 한 것도 아버지이셨사오니, 이 시간 그들이 위로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걸어온 수고의 노정 뒤에는 아직도 피어린 발자국이 남아 있사옵고, 서러움의 눈물이 그들의 기도를 돕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날로부터 가지는 바의 소망, 이 날로부터 가지는 바의 한, 그리고 이 날로부터 느껴지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되어 소망을 가지고 내일의 싸움의 고개를 넘도록 하여 주시옵고, 생애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수많은 원수들의 저주의 담을 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평화의 마음만이 저희의 마음의 중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승리를 향한 갈급한 심정만이 저희의 생명의 중심이 되어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싸움의 깃발을 들고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허락하신 승리의 말씀을 방패로 들고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오늘도 내일도 해묵은 서러움을 간직한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영원하신 사랑에 불붙이어, 참소해 나오고 있는 원수 사탄을 물리치고도 남을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로운 이 단상을 인도하시는 아버님이시여, 당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아들딸들도 외롭고 불쌍한 자리에 있사옵니다. 오늘도 아버지께서 이들의 생명의 전체가 되시고, 선의 전체가 되시고, 소망의 전체가 되시어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이때는 끝날이 되어 사람의 말이 필요 없사옵고, 사람을 통한 말씀이 필요 없사오며, 사람을 중심삼은 뜻이 필요 없는 때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직 영원한 생명의 맥박을 통하여 움직여 나오는 아버지의 사랑의 말씀만이 필요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이 날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이 사랑을 체휼할 수 없는 불안정한 자리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역사하여 주시옵고,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여 주시옵고, 저희들 마음에 감추어진 희열의 핵심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두려움에 사로잡힌 저희들, 아버지 앞에 나와 회개하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손길에 붙들리어 아버지의 은사를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변함없이 그러한 마음을 간직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아버지 앞에 사랑의 아들딸이란 인을 받고도 남음이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도 이 민족을 위해 모이는 수많은 제단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알지 못하여 애달파하며 하늘에 호소하는 성도들의 음성이 하늘에 사무친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옵고, 그들의 마음을 감당하여 주시사, 그들로 하여금 끝날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을 받들고 이루어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뜻을 위하여 남이 모르는 외로운 길을 개척하며 어둠과 싸우고 있는 숨은 형제들이 이 민족 가운데 많이 있사오니, 이 민족 앞에 그 어두움이 물러가는 때가 어서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움직임도 하나였사옵고, 은사의 움직임도 하나였사오며, 영광의 현현하심도 하나였사올진댄, 아버지시여, 그들을 통하여 증거하시옵고, 흩어진 제단을 울타리 삼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몰아 세우셔서 어서 속히 이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는 기쁨의 제단을 이루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도 외로운 아들딸들이 지방에 널리어 말씀을 가지고 싸우고 있사오니 거기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6천년 역사의 최후의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신으로 승리의 제단을 세우고, 아버님과 아들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때를 위하여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싸우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같이하여 주시사 그들이 머무는 곳곳

마다 아버지의 직접적인 역사를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러한 환경을 통하여 전체에까지 미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 한 시간 오로지, 아버지, 기쁘심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고, 저희들을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사랑하시는 주의 이름 받들어 기도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이 시간은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인간이 새로움의 실체로 완성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

새것이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어진 모든 물건, 즉 미물인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피조물을 볼 때, 보다 더 새롭고 보다 더 나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최후로 사람까지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을 완결지으시고, 그것이 아버지께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새롭고도 변치 않는 실체를 갖추기를 바라셨던 것이 창조주의 이상이었음을 여러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새로움의 실체로서, 만물만상을 대신하고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해 보아도 이는 과연 아름답고 과연 좋다. 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지어 놓은 것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아담 해와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연의 선하심과 내적인 영광을 실지 생활을 통하여 즐거워해야 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인하여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대신하여 새로움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리에 머물게 된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하나님의 뜻은 불변의 뜻으로서, 기필코 완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지킬 수 없으며 권한을 나타낼 수 없기에, 이것을 다시 세워 가기 위한 것이 복귀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서 우주의 만물만상을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고 피조물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귀한 존재, 하나님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전체의 성상을 새롭게 드러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새로움의 실체가 주인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이런 감격적이고도 충격적인 한 날을 맞기 위해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의 목적을 세워 놓으시고 복귀섭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수고로써 역사해 나오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이 피조물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지금까지 없었던 기쁨을 누리게 할 새로운 우주적인 존재를 찾게 되는 그 한 날이 어느 때에나 올 것인고? 하나님은 그 한 날, 그 한 존재를 애타게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과 만물이 같이 즐기고 기뻐하며 화동할 수 있는 창조이상세계를 이미 다 설계해 놓고 계시며, 이상적인 생활면까지도 이미 다 구상해 놓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외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진 땅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을 중심삼고 즐기게 될 때, 하늘과 땅이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 하늘이 수고하고 계시다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인가?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깨뜨려 버릴지라도 놓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뜻이 있다면 그것은 완성 인간입니다. 인간이 완성될 때까지는 원리적인 창조의 법도를 거쳐서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비원리적인 실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되 그의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형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를 대신한 분신체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형은 갖추고 있으되 창조이상의 형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인간에게 창조이상의 형을 다시 주입시키고 계십니다. 새로운 하나의 실증체를 찾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늘의 역사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그러면 이 하나의 중심 되는 본체, 소망의 존재로서 오셨던 분이 누구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창조 이후 비로소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만물만상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존재로 예수님을 보내셨으나, 인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소원의 푯대 되는 존재로서 대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타락한 역사를 다시 벌였습니다.

잃어버린 선의 기준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은 4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사탄의 참소하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민족적인 발판을 만들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적인 발판은 하나님과 만물을 대신하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세우신 예수님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명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새로움의 세계로 다시 이루어 놓기 위해 전체의 대신 존재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체의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유대 백성들이 모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전체의 주인공 된 사명을 가진 예수는 예수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서러움은 더욱 가중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당시 유대 백성을 대하여 하시던 말씀과 그가 나타내신 모든 것은 자기 일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뜻이었느냐 하면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타락권 내의 백성과 예수님 사이에 상충적인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다 할 때, 이 말씀이 민족 앞에 나타나면 민족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개인에게 나타나면 개인을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이 될 것이요, 세계 가운데 나타나면 세계를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 또한 하늘땅을 새로이 혁명시킬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의 유대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천년 동안 줄곧 모세를 통해 내려 주신 율법과 야곱에게 내린 언약이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맨 하급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소생적 구약역사를 거쳐 나온 후에는 장성적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완성급까지 나아가는 천지창조의 원칙적인 순로를 다시 거쳐 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구약 율법보다 더 높은 새로운 말씀이요, 종래의 것보다 더 높은 새로운 가치와 인연맺기 위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이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땅을 대신하여 우주적인 사명을 완수하려고 끊임없이 혁명적인 과정을 거쳐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주적인 뜻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타락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무수한 싸움의 곡절과 혁명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 예수님의 소망과 유대민족의 불신

그러면 이 혁명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어느 정도의 소망인고?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에서 가지는 그런 소망이 아닙니다. 세계를 넘어 무한대의 하나님 나라까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예수의 소망인 동시에 예수와 하나된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소망을 거시고 하나님의 뜻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을 인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유대 백성 앞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표한 실증체로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느냐?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진리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진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민족과 민족, 그리고 모든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라고 주장했을지 모르지만, 실제 그러한 진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다시 비춰 줄 수 있는 진리를 갖추어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런 고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그 말씀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적인 것이요, 새롭고도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이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을 고대하던 유대 백성들이 알았다면 여태까지의 자기들의 생활을 버리고 이 진리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야 할 유대민족이 이루어야 할 한 날을 깨뜨려 놨으니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맺힌 것을 풀어 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희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민족을 세워 놓고 그 민족 가운데서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 중심으로 하여금 우주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여년간에 걸쳐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나타내셔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버려진 바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말씀의 실체를 찾는 그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전파하려 하셨던 우주적인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말씀은 예수님 당시에 민족적인 말씀으로, 또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말씀으로 나타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그 당시에 이 땅을 구원할 수 있는 중심의 말씀으로 나타났다면 하나님의 능권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개인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민족이 있고, 개인인 예수 앞에 따르는 세계가 있었던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그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앞에 그러한 개인과 민족과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해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교단, 사랑하는 국가가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어야 했는데, 자기들의 교단적인 차원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서 끝날의 성도인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부끄러운 우리 자신에게 우주적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셔서 우주적인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개인으로 오셨으되 그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요, 천하 만상의 피조물 전체를 대신한 분이었습니다. 온 피조세계의 창조원리적인 전체의 진리를 대신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오셨지만 가치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이 못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이런 우주적인 가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 자신들은 예수님의 심령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진리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신령역사를 거칠 때 무한한 은혜가 내려오면 그것을 개인적인 은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시일이 지나 환경적인 은사, 교단적인 은사를 거쳐 세계적인 은사로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사가 내리면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신만의 은사로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를 얻었다 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이 진리를 책임지고 세계에까지 전파시켜 나갈 줄 알야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와 더불어 나간다면, 그것은 나의 은사가 되는 동시에 하늘땅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신앙관념이 여러분 하나를 구원하려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 관념에 머물다간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마음에 넘치는 은사가 개인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다 할진대, 옛날 유대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얻은 바 진리가 나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종교에 머물러 있다할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고, 가정을 통하고, 사회를 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의 섭리사에 미쳐지는 소망의 중심을 갖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부활과 중생의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민족적이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구원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인 구원과 민족적인 구원과 세계적인 구원과 우주적인 구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때도 개인적인 감사뿐만 아니라 가정적․사회적․국가적․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회개한다고 하면, 개인적인 회개로부터 가정적인 회개, 국가적인 회개, 세계적인 회개, 하늘땅을 놓고 회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구원 관념을 넘고 가정적인 구원 관념을 넘고 사회와 국가적인 구원 관념을 넘고 세계적인 구원 관념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대 백성들이 민족적인 구원 관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 관념까지 가졌었다면 예수님은 이 유대 백성을 통해서 세계 인류를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5. 예수님의 말씀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

역사 과정을 거쳐 결실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선조들이 지나 온 전체의 역사와 생활을 초월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이야말로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음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때까지 믿어 왔던 모든 율법주의 앞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은 완성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우주적인 신앙관이 들어 있는 말씀, 우주적인 가치의 말씀의 뜻을 이스라엘 민족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 시대에는 우주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사랑면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치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시던 우주적인 하나의 완성체를 이룰 때까지 진리를 찾아 나가는 데는 우주적인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우주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의 사랑과 관계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문을 꿰뚫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이 사랑의 문을 뚫을 수 있으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께서 사탄권 내에 붙들려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붙들어 주심으로써 인간들을 하나님과 본연의 사랑을 주고받는 자리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적인 혁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의 혁명을 일으키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적인 사랑의 혁명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물론이요, 가정적․사회적․국가적․세계적인 진리를 대신한 사랑이었습니다. 우주를 대신한 사랑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혹은 국가를 중심삼은 사랑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나라를 사랑한다든가 혹은 자기의 가정을 사랑한다든가 하는 정도였습니다. 국가 이상, 국가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소망은 한 민족, 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적인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세계를 넘어서 하늘땅에까지 연결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6. 진리의 혁명, 사랑의 혁명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놓으신 참의 길은 무엇이었던가?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어느 정도의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가정이나 국가 앞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우주적인 사랑의 주인공 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정적인 핍박과 국가적인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하늘땅의 억조창생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던 모든 피조물이 예수를 기원으로 하여 비로소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개척하여 찾아 세운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세상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기껏해야 나라를 위하는 사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주적인 사랑입니다. 즉 개인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늘에까지 사무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양면을 갖추는 사랑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면, 사탄까지도 위해 주는 사랑입니다. 사탄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표준을 걸어 놓고 원수까지 사랑하라. (마 5:44)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우주적인 사랑의 기준을 이 땅에 찾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 기준을 세워 놓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고, 하늘의 은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하늘 앞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구함을 입은 것도 감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사명을 대신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결짓기 위해 사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붙안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우주적인 사랑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설움을 이기고 사랑의 심정으로 원수들을 바라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며 다 이루었다. (요 19:30) 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슬픔과 자기의 억울함도 다 잊어버리고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일신을 통하여 우주적인 생명을 다시 찾는 일이 저끄러지려고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억울함도 잊어버리고 온갖 고난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자신만이 살려는 생애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7. 각성해야 할 끝날의 성도들

오늘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활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크신 은사를 받고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민족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이나 똑같습니다. 이 땅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남아 있고, 땅 위에 없었던 새로운 우주적인 참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우주적인 진리와 우주적인 사랑과 우주적인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고하신 분으로서 불쌍하다면 예수님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계를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 땅 위에 뿌려졌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요, 땅 위에 받아들여졌어야 할 하늘의 말씀이었으며, 땅 위에 심어졌어야 할 우주적인 생명의 말씀이었는데 땅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신 예수님은 부정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는데, 이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 드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공, 진리의 주인공이 이 땅에 오신다면 땅 위의 모든 양심적인 사람은 그를 사모할 것입니다. 땅 위에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생명의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더불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늘이 소망하는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기준, 개인주의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옛날의 유대교인들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늘땅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념적인 말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화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인 오늘날 여러분은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진리와 생명과 사랑을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세계를 구하고 하늘땅의 6천년의 원한을 해원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적인 혁명의 주인공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테마
글꼴
글자 크기  1.1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