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질 것인가, 이길 것인가?「이길 겁니다」무엇으로?「심정으로요」심정? 미국 사람에게는 심정이 없나? 그들을 가볍게 보면 약간 곤란해. 일하는 것을 보면, 이건 밤이고 낮이고 일한다. 실로 선생님은 감복했다. 그것이 미국의 저력이다.
그들에게는 감독이 필요 없다. 개인 각자가 책임을 가지고 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아도 척척 프로그램대로 나누어 놓으면 그대로 두어도 틀림없이 계획대로 해서 밤 늦게까지 한다. 그러나 동양인은 옆눈으로 보면서, 잠깐 선생님이라든가 감독이 없을 때는 몰래 들어가 밥이라도 먹고 살짝 돌아온다. 미국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일본 사람보다 미국 사람은 순종적이예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일본 사람보다 미국 사람이 앞선다. 하나님이 왜 미국 민족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 배후에 축복을 받기에 상응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즉 순종이다. 그러한 면에서 일본 사람보다 순수하다.
일본 사람은 정말은 신용할 수 없다. 조금 기분 나쁠 때는 금새 얼굴이 새파래진다.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 많이 보았다. 때때로 일본 여자를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쓱 스치면서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해본다.
조금 기분 나쁜 말도 해본다. 전차 속에서도 비라도 올 때는…. 다까다 노바바(高田馬場)로부터 죽 시나가와(品川)라고 하는 곳까지 많이 왕래하는데 밀어붙이듯이 하면서 앉아 있다. 웃 저고리는 모두 비에 젖어 있다. 그래도 시침 딱 떼고서 앉아 있다. 예쁜 여자들을 만났을 때는 '아아 저 여자는 이런 타입이겠지. 성질은 이러하며, 가까이 갔을 땐 틀림없이 입을 옆으로 하고 떠들어대겠지. 그리고 조금 다가가면, 틀림없이 투덜거리며 기분 나쁘게 주위 사람들이 알아 차릴 수 있는 표정을 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에서 둘, 셋, 넷, 다섯 사람의 인상을 보고 '이런 성질이 틀림없을 테지. 해보자' 하고 생각하고 쓱 해본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한 가지 맞고 두 가지 맞고 세 가지 맞고…. 그것이 잘 맞았을 때는 기분이 좋다. '장래 사람을 다룰 때를 위해서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은 생각했다. '뭐야 이 아가씨야. 만일 내가 너의 오빠라면, 너의 학자금을 벌어대기 위해서 이렇게 공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오빠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생각한다.
'너는 그 방면에서는 심정적으로는 낙제다. 내가 너의 부친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너 때문에 일생을 바쳐서 괴로운 길을 왔다갔다하며, 비를 맞으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참으며 노력해 온 부모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눈물을 머금고 옷이라도 벗어 부친에게 덮어 주고, 자신이 껴안고 위로해 주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너의 입장이 아닌가' 그런 일을 때때로 했던 적이 있다. 일본 여자는 게다를 신는다. 그래서 깨끗한 일본 보선을 조금이라도 더럽히면 얼굴이 새파랗게 된다.
미국에 가서도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해보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구두를 신고 지나다가 발이라도 조금 밟으면 이 편에서 뭐라고 말하기 전에 '익스큐즈 미(excuse me)'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건 벌써 이겨 둔 것이다. 동양인으로서 미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길에서 급히 뛰고 있으면 '당신에게 무엇 도움될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 것을 보았을 때 미국은 일본보다 순종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한 미국 사람을 버리고 싶겠는가? 어떤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서 일본이 매달리며 '하나님은 평등한 하나님이므로 그들만 사랑하면 곤란합니다'라고 항의할 수는 있다.
'하나님이 머리 색깔이나 얼굴색을 보고 사랑한다고 하면, 이건 참을 수 없다' 그렇게 반항할 수 있다. 그 대신 하나님에게 그 사람보다 몇 배 이상 사랑했을 때,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을 때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이렇게 바꿔 줄 수도 있다. 그것은 할 수 있다. 그런 자신이 있는가? 선생님은 응원하지 않아요. 이 일본의 젊은이들, 이 정도면 시험삼아 그럴 만한 희망이 있으니까 선생님이 '하나님, 제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더 고쳐 생각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아, 그럴 것이다. 보아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고 시험해 볼지도 모른다.
그 시험이 젊은 사람이 모두 도망쳐 버리는, 그러한 시험이 되었을 때는 모두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툭 쳐내고 뜻밖의 사람을 대신 집어넣을 수도 있다. 최고라면 그 최고에 필적할 내용으로 시험을 해보는 것이다. 단박에 미끄러져 버릴 경우 영원히 굿바이인 것이다. 그렇게 안 되겠어? 되지? 그러니까 보통의 테스트 가지고는 안 된다. 선생님만 해도 보통의 테스트는 안 한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3배,4배의 어려운 일을 시켜 봐야 하겠다.
선생님은 그렇게 결심하고 왔다. 그래서 이번 미국에 갈 때에는 잠시 들러서 일본의 간부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일본에 들른 것은, 일본의 지구장이나 통일의 용사들에게 말을 해주고 격려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목적은 미국이다. 세계적 대운세를 모두 모아서 일본에 가지고 와서, 모두 보자기를 풀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약속하고 갔던 것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 여기에 와서 여러분들과 만나는 이때다. 이때가 그 약속의 시간이다.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포켓에 넣어서 춤을 출 것을 준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저쪽 사람이 하나의 짐을 진다면 이쪽 사람은 적어도 네 개쯤 지우려는 결의를 가지고, 멋있는 짐, 멋있는 선물을 가지고 왔다.
그 선물을 기쁘게 받아서 일본의 전국민에게 배급할 경우에는 미국을 차 버리고, 일본이 당당히 가로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때? 그것 좋다고? 적어도 네 배 가량 밀어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활동시킬 것이다. 그래도 좋아?
미국에 가서 놀란 것은, 미국 사람은 성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전부가 성서를 알고 있다. 어떤 어려운 얘기를 해도 '그렇지. 그렇지' 하며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이전에 선생님이 다께다오(武田屋)에서 한 대집회 때 성서 얘기를 했다.
여러분들같이 젊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혼자만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만 모른다고 생각하며 부끄러워했다. 눈이 똥그래져서 이렇게 긴 얼굴을 한다. 그런데 모두 그러니까 다 똑같다. 그것을 알고 안심한 얼굴을 한다.
그들은 전생애를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다. 교육도 그런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으로부터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든가 대학이라든가, 그것들이 다 전부 기독교 사상권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훈련되어 있으니까 벌써 어디를 가더라도 성서에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불을 붙일 경우에는 휘발유에 불을 켜 댄 것같이 단번에 확하고 전국에 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얘기해 보니까 통일교회에 들어와 몇 달밖에 안 된 사람이, 선생님 앞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는 척하며 '이러이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그런 사람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1년 반은 공부해야 한다. 1년 반도 모자란다.
전부 공식적으로 1년 반 이상, 원리를 적어도 몇십 번 들려 주고 읽도록 해서 배후에서 밀어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기리시단(切支分:일본 초기 가톨릭교 신자)과 같은 영향을 끼친 역사가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지금 통일교회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서 일본에서, 세계에서 문제시되어 오고 있지만, 지금 이 풍조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여자들과 남자들이 잘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적다면 다 없어져 버리게 된다.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 비례가 요즘은 조금 높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보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들어오는 사람이 나가는 사람보다 적을 경우에는 없어져 버린다. 어떤가. 여러분 가운데는 들어오는 사람보다 앞서서 나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없습니다」있을 테지. 있을 거예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믿을 수가 있는가?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 선생님이, 세계적인 선생님이 더욱 믿어 주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것은 전반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논리의 결론인 것이다. 틀림없지요? 아무리 천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어도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두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두고 보는 기간이 기독교 문화에 의해서 훈련되어진 경우에는 짧은 것이다. 훈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오래 두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에 미국에 진다고 하는 것은 공식적이지 않겠느냐? 일본에서 20년 걸린다고 하면 미국에서는 2, 3년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미국에 지지 않겠다고? 지지 않아?
그것에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 선생님의 꽁무니를 굳게 잡고 죽어도 놓지 말아야 한다. 그것밖에 없다.
미국 사람보다, 선생님이 어디로 가든지 절대로 놓지 말고, 끈이라도 묶어서 언제나 연결될 수 있도록, 어디에 가든지 따라가야 한다. 죽어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 사람이 선생님을 한번 만나려면 일본 돈으로 50만 엔 이상 들어야 한다. 70만 엔이 없으면 한바퀴 돌아올 수 없다. 일본에서 한국에 가려면 얼마쯤이면 갈 수 있어? 「7만 엔입니다」70만 엔이면 열 번 왕복한다. 지역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 번 만나는 것보다 두 번 만나는 편이 물론 가까와진다.
두 번보다 세 번, 세 번 만나는 편이 더 가까와진다. 그렇지 않아? 그것은 오랠수록 친한 친구인 것이다.
오직 그것 하나 하늘이 원하는 입장에 서 있을 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의 문전에 있으니까, 나갈 때도 들르고, 들어올 때도 들를 수 있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유리하다. 선생님을 몇 번 가량 볼 수가 있다. 그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유리하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알았나?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조금 곤란한 병이 있다. 습관성이라는 병이 있다, 습관성. 동양인을 보는 방식에는 익숙해 있지만, 서양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동양의 풍습에는 익숙해 있지만, 서양의 풍습에는 익숙해 있지 않다. 모두 미국에 가고 싶어하지만, 미국에 가서 1개월, 2개월이 되면 주위를 휘둘러 본다. 좀 좋은 방법은 없는가, 이제 일본에 돌아가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세계를 죽 돌아서 방콕에 갔었다. 인도를 거쳐 방콕에 갔던 것이다. 인도는 유럽만한 대륙이었다. 모두가 골격이 크다. 눈도 크고, 키도 크다. 걷는 것도 다르다. 서양인도 다르다. 그러나 태국에 도착해 본 즉 몇 시간 전까지 계속된 인상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이야말로 순수한 동양인이다. 그것을 보면 실로 친근감이 들었다. 고향에 닿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왔으니 기념이 될 만한 것을 하나 남겨두고 가자, 그렇게 생각되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그러한 인상에 남는 감정,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며 호텔에 도착했던 것이다. 마침 도착한 곳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이었다. 선생님은 옛날 학창시절에 서서 먹던 초밥의 맛을 알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는 늦게 혼자 돌아와 쓸쓸한 방에 혼자 터덜터덜 들어가 먹던 밥보다는 서서 먹던 초밥의 맛은 아직도 인상에 남아 있다.
일본 호텔에 왔으니까 틀림없이 초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시이군, 초밥 알고 있지? 어떤 것이 맛있지? 얼마만큼 비싼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비싼 것은 한개에 40엔도 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 그런가' 그러면서 '인심 좋은 인상을 하고 그대가 좋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사와' 그렇게 들어가자 마자 교섭을 시켰다.
그 주인이라든가 초밥집 할아버지와 교섭하도록 하고 그 초밥집 식당으로 갔던 것이다. 어저께 친해 두었던 할아버지였는데 그 초밥집 할아버지에게 가서 '어떤 것이 맛있는 것인지 사갈 테니 한번 시식합시다'라고 했다. 맛은 모두 알고 있거든. 그래서 돈 내지 않고 아홉 개인가, 여덟 개를 먹었다. 그것, 참 맛있었다. 골라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애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같이 생각하면서.
태국은 그때 한 여름이었다. 가장 더운 때라고 했다. 밖을 보기만 해도 벌써 더운 느낌이 드는 그런 때였다. 기분이 좋아져서 저녁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 나라의 풍습이 어떤가 하는 것을 알려면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초밥을 먹은 것이다. 실로 그것은 멋있었다. 기분이 좋아 가지고 돌아오니, 약간 시장했다. 그래서 초밥을 주문해서 허리띠를 풀어 놓고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겨자라든가, 참치 초밥이라든가, 여러 가지 초밥이 있었는데, 배부르게 먹었다. 그처럼 기념이 될 정도로 먹었지만, 애석한 것은 돈을 실로 생각지도 못할 만큼 지불했다는 것이다. 출발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것이 제 3차 세계순회노정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인상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웃음)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고국에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긴장된 마음은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서양에 있으면 긴장이 된다. 환경이 확실히 다르다. 완전히 긴장해 있게 된다.
동양에 오면, 그런 기분으로 인해 충분히 해방이 된다. 일본에 오면, 마치 자신의 안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된다.
결론을 내고 돌아가자. 미국에 절대로 질 수밖에 없는 입장에 일본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질 것인가? 지지 않을 것인가?
제 2차 전쟁에 진 것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에는 총으로, 즉 강한 총, 강한 일본도(日本刀), 강한 일본 정신으로 싸웠지만, 그것은 강하지 않아도 좋다.
외적으로는 강하지 않아도 내적으로 따뜻한 심정, 눈을 녹이는 따뜻한 심정. 서양 사람이라도 잊어버릴 수 없는 따뜻한 심정, 인상에 남을 수 있는 그런 심정, 그 심정만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람을 이기고, 미국 사람을 부릴 수 있다.
미국 사람도 얼마든지 남편으로 할 수도 있다. 또는 부인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질 경우에는 일본인 모두를 미국 사람과 결혼시키면, 미국 여성을 일본 남성이 얻는 경우에는 이기는 것이다. 그러한 식으로 해도, 한 번은 이긴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기분 나빠? 그것은 최후의 작전이다. 제 1의 작전을 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그것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래서 십자군을 미국이 80명이나 85명쯤 한다면, 일본에서는 그 4배 이상 또는 5배 이상 하도록 하자. 그 6배 이상 하자.
6곱하기 8은 48, 480명 동원시키려고 생각하고 왔다. 기분이 좋겠지? 6배가 되면 벌써 수에서 이긴 것이다.
수에서는 이겼다. 질에서는 어떤가? 수에서는 이겼지만 질에 지면 안 된다. 벌써 허리가 구부러져 펴지지 않을 정도로 한번 훈련을 해서, 통일교회가 그러한 훈련을 시켜서 그러한 명물이 남았다고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유명한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세계의 방문객이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더라도 일본은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는 남자, 여자 손들어! 정말 그렇게 하겠어? 기분 나빠?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 왼쪽 눈을 지금 빼어 달라고 하면 주겠는가?「예」그것이 틀림없는가? 그럼 눈알은 받지 않겠다. 눈알 대신에 3년쯤 일본을 위해 선두에 서서 달려라. 미친 사람 같이 뛰어 그것으로 탕감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모두 양손을 들겠지. 그래도 눈알을 한 개 내놓겠는가, 3년간 미친 사람처럼 선두에서 뛰겠는가? 어느 쪽을 하겠는가?
일본 사람은 손해되는 것은 절대로 싫어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얘기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차 버린 입장이지? 그렇지 않아? 눈알대신, 3년이라고 하면, 3년쯤은 문제가 아니지?3년은 금새 지나간다. 발에, 허리에, 가슴에, 머리에 뒤집어 쓰고라도 뛰게 한 경우에는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선생님인가, 일본인가? 일본에 이익이 된다. 그래서 전체가 이익이 된다고 하면 아낌없이 하는 것이 정의의 길이며 선의 길이다. 알겠나? 그렇게 할 수 있나?「할 수 있습니다」믿을 수 없는데.
인간을 믿을 수 없다. 그래도 하겠어? 아직 믿을 수 없다. 그것을 자기 혼자들어 보고 하늘 아버님과 결의했을 경우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들어 보라. 틀림없지? 이제 내려도 좋아. 자기가 자기의 양심과 하나님에게 약속한 것이니까. 이 소나무가 보았겠지. 이 흙이 '그래. 멋있는 것을 맹세해 주었다. 이것을 본 것은 이 흙의 최상의 영광이다'라고 하며 찬양하고 있다.
맹세한 것을 이룰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을 수 있겠나? 어처구니없는 것을 맹세했더라도 실행력을 가지고 성취해 간다면 다 할 수 있다.
선생님은 60년대에 말했었다. '지금부터 10년이나 12년이 지나면 우리들은 세계적이 된다'고 그렇게 말하니 모두 수근수근했다.
선생님은 그때는 이런 양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점퍼였다. 그것도 미국의 작업복을 점퍼로 고쳐 만든 것이었다. 그런 양복을 입고 설교도 했다. 당당히 서서 대중을 향해 말했다.
지금, 일본에 와서 보았는데, 전통적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 많이 있다. 점퍼를 입고 승리하고 나서 신사복을 입는다. 그것을 승리하고 모자를 쓴다. 그것을 승리하고 단장을 잡는다. 그것을 승리하고 세계 여행을 나서는 것이다. 순서가 있다.
그러한 전통을 무시하고, 모두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고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내일부터 그렇게 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시대가 다르다. 그때는 촛불을 사용했다. 지금은 전기를 사용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전기를 모두 떼어 버리라고 하는 명령은 하지 않으니까 괜찮다. 그 반면 그 시대의 선생님보다 그대들이 온갖 방면에서 우수한 환경에 있는데도 진다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알겠나?
책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