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사랑의 아버님, 천상의 원한으로 남아져 있는 싸움의 역사를 종결지을 사람이 없는 것이 당신의 탄식임을 알았나이다. 인간들로 말미암아 심어진 타락의 근본 뿌리를 인간들이 뽑아 버려야 될 것인데,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간들은 그 죄의 근본 뿌리를 뽑지 못하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것을 뽑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모인 청중들 모두가 아버지의 심정에 사무쳐 일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닮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그 소망을 저희들이 새로이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원한의 역사를 책임지고 억만 원수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하늘을 대표하여 나타나는 용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땅을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용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싸움터에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서로 베풀 수 있는 기쁨의 동산이 이루어질 때까지 각자 아버지의 뜻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각자 각자가 아버지의 전체적인 뜻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아버님의 용맹한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의 마음이 하늘의 어떠한 표적을 향하여 있고, 저희의 몸은 온 우주의 어떠한 표적을 향하여 있는지, 이 시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기쁨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의 몸과 마음은 아직까지 아버지의 품에 품기지 못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어서 저희의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저희가 천성을 향하도록 마음의 방향을 바로잡아 주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망의 길을 저희들이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기쁘심의 은총을 저희들의 몸 마음이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을 중심삼고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죄악의 뿌리를 붙안고 싸워 이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을 체휼하고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모인 자녀들, 억만 사탄의 참소에 걸리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제단에 영광의 제물로서 바쳐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아버지 앞에 엎드린 저희들, 아버지의 존엄하신 성상을 대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스스로 직고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유겸손한 제물로서, 아버지의 속죄의 은사 앞에 굴복하는 자녀들이 되고, 아버지를 찾은 탕자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왔던 무리들이 탄식의 눈물을 흘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비웃는 걸음을 걷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 몸이 아버지 앞에 사로잡힌 바 되게 이 한 시간만이라도 같이하여 주시옵고, 영원하신 생명의 은사, 부활의 은사, 사랑의 은사에 접하여, 아버지,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적인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날은 거룩한 날, 만민 앞에 복을 주기 위한 약속의 날이었사오니, 24억 인류를 대신하여 모인 성전마다 기쁨의 은사가 같이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끝날을 맞이했사오니 성령의 불길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어서 당신이 택한 자녀들이 하나로 뭉치어 이 어두운 세상과 대결하여 싸울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고, 6천년의 원한의 심정을 대신하여 모든 악을 무찌르고 나서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먼저는 3천만 민족을 대신한 3천여 제단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3천여 제단을 대신하여 아버지께 있는 정성과 마음과 충절을 다하며 살려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영원하신 아버지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남아진 싸움터에서 아버지께 빚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영원한 승리의 은사를 감당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축복하심의 그 심정을 땅 위에 나타낼 수 있는 이상동산을 건설할 때까지 백절불굴의 용사의 심정을 갖고 아버지의 뜻을 세워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저녁 이 자리에 참석지 못한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어느 곳에 있든지 아버지께서 일률적으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끝날에 이루고 싶으신 바의 당신의 뜻을 만방에 선포하여 하늘땅이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제단을 쌓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있는 힘과 마음과 정력을 다 기울여 오직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드리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드리자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두운 이 땅 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 세우신 하나의 표준은, 자신의 내적 심정에 남아진 이상적인 형상을 영원한 하나의 실체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하나의 실체를 세워 놓고 그 영원한 기쁨을 느끼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상대적인 이상을 갖추어 살고자 창조역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수고를 거쳐 지은 피조물 중에서 인간 하나를 모든 이상의 중심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본래 요구하신 희망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오랜 역사가 경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신 그 이상과는 관계가 없는 인간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하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을 다시 찾아 나오는 역사노정이 섭리의 노정이요, 구원의 노정이요, 개척의 노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서 소망하신 하나의 이상은 온 피조만물 전체에까지 미쳐지는 이상이었는데, 사람 하나가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은 피조물 전체 가운데에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개척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섭리의 뜻을 세워 찾고자 하시는 하나의 중심 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세워 하나님의 내적 심정으로 그리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즐기는 것은 물론이요, 그 즐거움의 이상을 사람의 영원한 이상으로 삼아 영광의 조건으로 돌려드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자체를 부르고 계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상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중심체가 되기를 바라셔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이상은 우리가 불완전한 권내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 그리고 사탄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상하로 보나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좌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우에 속하여 있는 무리나, 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까지 그 하나의 이상을 무슨 일인지 모르게 흠모하여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새로운 광명의 이상이 나타나야 할 그 날은 어느 날일 것인가, 그 한 시간은 어느 시간일 것인가, 그때는 어느 때일 것인가? 라고 하면서 수많은 성현 현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모르는 길을 개척해 나오기를 오늘날까지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광명한 이상의 심정을 통한 후 그들을 대하여 그대가 마음으로 그리던 소망이 이것이요, 그대가 지향하던 이상이 이것이로다. 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영원한 이상의 요소를 지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통하여, 몸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나의 기쁨의 터전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기쁨의 터전을 여러분이 이루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이상은 피조세계에서 찾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지어놓은 만물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천상에 있는 천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중심이요 하나의 표준이요, 하나의 핵심이요, 만물의 주인공인 여러분 자체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이상을 좌우하는 중심이요 표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망에 눌려 있는 이 천지간에 그 하나의 표준점, 그 하나의 중심점이 나타나는 한 날의 기쁨이 오늘날 역사노정을 거쳐가는 우리의 소망이요 수많은 악령들과 싸워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인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지내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내적 심정과 동감 동화될 수 있는 자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이 법도대로 움직여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천심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늘의 우주적인 종말점까지 연락시킬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세워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은 피조세계와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하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내 마음과 몸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내 몸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이 있습니까? 그러한 담이 있는 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여러분과 이미 관계를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되겠고, 몸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여 화동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상의 성품을 아니 느낄래야 아니 느낄 수 없고, 아니 행할래야 아니 행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은사를 받아 하나님을 대하고 그의 이상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그 하나의 기준과 먼 거리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고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입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섭리역사가 지금까지 선지선열들을 보내 이끌어 나온 역사인 것을 우리는 마음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제 오로지 여러분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만물을 상징하여 지음 받은 몸의 가치, 천품을 대신하여 몸의 중심으로서 지음 받은 마음의 가치를 소유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온 피조만물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 전체의 중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내적 심성이 우리의 마음을 거치고 몸을 거치고 우리의 생활 무대를 거치어 만물만상까지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한 몸에서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관권에서 떨어진 인간을 본연의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6천년 동안을 역사하셨는데, 그 역사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원리에 의해 상징적인 실체대상으로 만물을 창조했고,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의 실존체가 우리 마음의 이상적인 표준이 되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이 아닌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관성을 막아 놓고, 연락의 길을 중단시켜 놓고 역사하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여러분의 원수인 사탄, 여러분이 그와 싸워 영원한 승리의 인연을 세워 그를 자연굴복시키지 않으면 아니 될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이상의 동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소망의 이상이 내 몸 마음을 통하여 온천주 우주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사탄은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대한 이상, 우리의 몸을 대한 이상, 만물을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탄을 세계적으로 책임지고 굴복시킬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탄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과 대립하여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을 세우셨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만물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천상까지 연락되는 그 문이 막혀 있습니다. 이 요구하는 마음과 몸, 요구하는 상대의 막힌 문을 뚫어 연락시켜 주는 역사를 해 오신 분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불변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먼저는 인간의 마음을 복귀하고 몸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만물세계까지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전체적인 이념과 전체적인 이상을 갖고 오셨으나, 믿도록 택하여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성상을 대신한 마음적인 이상만을 세우시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마음적인 이상, 즉 영적인 이상을 세우실 때까지의,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역사를 알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마음적인 승리의 길, 즉 사탄 대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은 어떠한 시간권 내의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격, 예수님이 갖고 오셨던 소망, 예수님이 믿었던 이념, 예수님이 갖고 있던 생명, 예수님이 갖고 있던 사랑,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며, 또한 그것은 일시적인 사명이 아니고 영원을 대신한 사명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싸우신 예수님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상을 찾아 나아가 그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들은 오늘날 무엇을 가져야 되겠느냐? 하나님의 영원하신 요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때와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실체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닌 이상도 영원하신 이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인간들이 찾아 나아가야 할 최후에 남아진 이상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영원한 이상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영원한 이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날까지 오늘도 싸워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고, 생애를 바쳐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상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신 분입니다. 역사 과정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그 소망과 믿음의 한계는 자기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만은 믿음과 소망을 자기 자신만의 믿음과 소망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한, 그 이상의 요소를 갖출 수 있는 믿음, 즉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을 통하여 바라신 하나의 중심이 무엇인가? 그때까지 4천년 역사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믿음의 기준을 세웠으나, 그들의 믿음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것, 영원한 믿음을 세우기 위한 것이 그의 일생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믿음은 자기 일신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구원이 목적이 아니었고 이 땅만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그 과정과 미래의 어느 한 종점까지 전부를 섭리해 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복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영원한 이상을 찾아 세우기 위해 먼저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영원한 기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이상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믿음의 조건을 세우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붙들려면 먼저 예수님 한 분에게는 역사적인 전체 인류의 뜻이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4천년 역사 과정의 수많은 신앙인들, 또는 그 당시의 모든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추만대의 미래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인류의 믿음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영원불변의 하나의 중심을 갖고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개인을 넘고, 사회를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어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의 기준, 영원불변의 확고한 하나의 믿음의 발판을 세우기 위하여 이 땅 위에서 30여 평생을 보내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되, 전무후무한 영원한 믿음의 기준을 세웠던 그러한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소망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그의 일신의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소망해 나오던 그 모든 소망을 전부 흡수한 소망이었습니다. 또 천상과 지상에 사무쳐 있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대신한 소망을 지니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역사이래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소망의 중심을 세웠기에 우리의 소망을 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대한 믿음을 세워 소망을 갖추고 생명의 인연과 사랑의 인연을 갖추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영원한 소망으로서, 생명도 영원한 생명으로서 세우기 위해 30여 평생 싸움의 노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과정에 있어서 생의 가치를 느꼈던 것은, 피조세계 전체를 대신하여 영원 실존하시고 생명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요소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탄의 힘의 작용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우신 사랑은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자기를 중심한 한계권 내에 머물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천상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만민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에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적인 영원한 이상을 대신하고 온 우주 인간을 대신하여 불변하는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은 지니고 계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소망으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세워 놓은 섭리의 뜻을 오늘날 우리는 인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의 노정을 거치어 세워 놓은 구원의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또 십자가의 방패로써 자기 일신을 불살라 대속의 기준을 세우신 그 노정을 우리는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한계권 내에 있는 우리들은 무한대의 하나님을 믿음으로부터 무한대의 하나님의 소망, 무한대의 하나님의 생명, 무한대의 하나님의 사랑까지 그리워하며 30여 평생을 서럽게 보내신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우주의 주인공이요, 만민의 구주요, 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소망과 믿음, 생명, 사랑의 전체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조건들을 세우기 위해 생애를 걸고 싸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의 심정으로 만물을 바라보아야 되겠고, 예수가 느끼던 감정을 같이 체휼해야 합니다. 또 그러한 포부와 그러한 소망, 그러한 이상을 흠모하면서 싸워 나오신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히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역사적인 인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있고 여러분의 일신 가운데에 동행하고 있는 예수님으로 느껴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생명적인 요소를 여러분은 다시금 재인식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과 비할 수 있고, 여러분의 소망도 예수님의 크나큰 소망과 비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생명도 사랑도 역시 예수님의 그것들과 비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체 이상적인 요소를 대신했던 예수님의 중심을 여러분이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으로나 소망으로나 생명으로나 사랑으로나 그것들을 모두 세우기 위해 싸워 나오시던 그 중심의 마음을 오늘날 여러분들이 유업으로 받아 이루어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없다 할진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 오셔서 이루려다 못다 이룬 그 뜻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못다 걸으신 노정이 남아 있는 고로 섭리의 뜻은 오늘날 우리의 일신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 하고 만물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상을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성상과 우리의 성상이 합하여 온 천주를 대신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에 합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심이 무엇을 예고한 것인가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십자가의 고개는 영원한 믿음을 성취한 십자가요, 영원한 하나님의 소망을 체휼케 하고 권고하던 십자가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들도 가지라고 권고하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속의 역사를 거쳐 남겨진 구원의 도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영원한 소망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우리에게 넘겨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우주의 인간 전체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의 믿음이 전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온 인류를 대신해서 소망하던 그 소망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원한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 당시에 예수님께서 바라신 믿음, 예수님께서 바라신 소망, 예수님께서 바라신 생명, 예수님께서 바라신 사랑이 나타날 수 있었던들, 십자가의 원한의 호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들이 십자가를 통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품고 있던 영원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가 지녔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워하던 영원한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 앞에 세워진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그저 예수님의 것으로만 돌려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영원한 믿음을 내 믿음으로, 그의 영원한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그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나의 생명과 사랑으로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넘겨주던 하나님의 이상의 요소들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믿음,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을 넘겨줄 수 있는 수제자를 가졌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 사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믿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소망,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바의 생명과 사랑을 여러분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는 조건이 남는다 할진대는, 그것들이 끝날에 여러분을 대하여 심판의 조건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끝날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영원한 믿음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기신 소망의 빚, 생명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당신이 남겨 준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을 내 일신에서 다 이루었나이다. 라고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하나의 사람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섭리의 뜻은 완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상 하신 중심의 요소를 예수님이 세웠습니다. 영적이고 내적인 구원의 조건을 확장시켜 세계적인 기준까지 늘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역사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내적인 이상의 요소를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생명과 사랑을 세우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2천년 섭리의 뜻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까지 느끼고자 하는 믿음의 노정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믿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자기 일신의 관념으로써 세워진 자신의 주장권 내에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주 전체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비교하여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있는 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것입니까. 여러분이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소망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여러분의 소망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이상을 대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과 차이가 있으면 그만큼 끝날에 심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내 일신이 살기 위해서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 생명은 이 민족을 복귀시키고 천천만 성도들까지 화동시켜야 할 생명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사탄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신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태연자약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이 죽어지는 입장에 처해 있을지라도 원수들의 반격에 대해 일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원수와 싸우신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고자 하신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그 무한하신 심정을 동경하게 될 때, 자신 앞에 그것이 신앙의 기지가 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느끼신 하늘의 사랑에 대한 감도는 땅 위의 어떠한 비난과 어떠한 고난도 넘어설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원수들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인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무한하신 생명을 받은 자신일진대, 그 생명이 어느 권내에 처해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즉 온 천지를 지으시고 그것을 품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는 영원하시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아셨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자기의 일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든 사랑의 중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 전체를 대신하여 그들이 못다 이룬 섭리의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잊고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느끼면서 남겨 준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끝날의 심판이 있다고 할진대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와 예수님에 의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자체에게 미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 일신에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의 토대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끝날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그리스도의 크고도 높은 소망과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크고 높은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에 가셔서도 세계를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고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성신과 그리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를 대신해서 사탄과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 우리에게 소망하시던 소망, 우리에게 요구했던 생명, 우리에게 바라신 사랑을 이제 우리는 내 사랑으로서만, 내 생명으로서만, 내 소망으로서만, 내 믿음으로서만 가져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만일 그것을 내 것으로만 갖고 있다 할진대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상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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