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것, 고통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이 동반하는 자리는 행복이나 평화, 모든 것을 다 저버리게 되는 자리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어느누구나 고난의 자리를 피해 행복의 자리로 옮겨가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의 요구입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이다 이거예요. 고난이라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예요. 발전이 아니라, 후퇴며 내려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은 존재의 기준을 무시하고 파멸의 기준에 접근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존재든지 그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우리 개인들이 그러하기 때문에. 만약에 이 우주를 지으신 주인이 있다면 주인도 마찬가지의 입장일 것입니다. 만일에 이 우주의 중심되는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은 고통권 내에 머물기 마련입니다.
자, 우리 교회를 두고 보면, 우리 교회에 있어서 중심되는 선생님이 고난을 받게 되면 여러분들도 그 고난권 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만이 아니고 전체를 대표했기 때문에 전체는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이나 사회단체나 세계의 어떤 주권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를 두고 보면, 미국 국가에 대통령이 고통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사회단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개인들은 고통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을 안 받는 대통령은 자기의 국민이라든가 어떤 단체가 고통받고 있으면 책임권 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스러운 일이 있거들랑 대통령이 간접적 책임이라도 짊어지고 전체의 고통권을 해방시키기 위한 책임적 소행이 반드시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에는 중심되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되며 혹은 단체면 단체의 장이 있고 단체에 소속한 요원이 있어야 되며, 통일교회로 말하면 통일교회 중심자가 있고 통일교인이 있어야 되며, 나라로 말하면 나라의 대통령이 있고 국민이 있어야 되며. 세계로 말하면 세계는 어떤 주체자가 있어야 되며 그 세계의 주체자에게 속하는 인민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어떠한 고통을 더 중요시해야 되느냐? 고통의 단계라든가 고통의 차이를 생각해 볼 때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 이거예요. 가정으로 말하면, 가정의 식구가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 가정의 중심되는 부모가 고통의 자리, 고난의 자리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그것을 주관하고 벗어날 수 있으면 그 고통의 자리를 모면할 수있는 길은 모색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두고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 여러분이 고통받는 입장에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고통 안 받는 입장이면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한 나라의 대통령은 고통스런 자리에 있지 않고 국민이 고통 받는 자리에 있으면 그것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의 중심된 하나님이 고통을 안 받으면 그 치하에 있는 모든 국민이 고통받더라도 해방받을 길이 있다구요.
그러나 이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건 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누가 구하겠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정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입장 이상의 그 무엇을 갖기 전에는 고통의 자리를 모면할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우주의 중심되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으면, 그 외의 고통스러운 모든 존재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결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받는 입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통 받는 입장을 어떻게든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제일 고통스러운 자리, 제일 고난의 절정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아담 해와의 타락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우리 인간들은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들들이 타락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의 연결이 벌어진다구요. 그 타락한 아담 해와 자신들을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결국은 부모로부터 끊겨 나가는 것은 육적인 고통이요. 마음적인 고통이요, 심정적인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개의 고통이 연결된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쳤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이 당하고, 마음이 당하고, 심정이 당한 고통은 역사적 고통의 출발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하나님의 자신, 자기 몸. 자신의 실체적인 무대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몸 자체가 끊어져 나갔다 이거예요. 그다음에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침해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타락의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잃어버린 자리요, 하나님의 몸이 침해를 받는 자리요, 하나님의 사랑이 침해를 받는 자리라는 거예요. 결국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 사랑의 실천적 무대였다는 거예요. 즉, 실천적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타락은 자기의 아들을 잃어버리는 자리에 처하는 것이요, 그다음엔 부모의 입장을 잃어버리는 자리에 처하는 것이요, 그다음엔 부부의 입장이 파탄당하는 자리에 처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런 것을 다 몰랐다구요. 잘 몰랐다 이거예요. 그냥 떨어지는 단계에서 하나님의 품, 부모의 품에서 떠나니 몸적 고통, 마음적 고통, 심정적 고통은 그저 느꼈을는지 모르지만 이런 전체적 고통의 자리에는 미달하였더라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타락한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적 고통의 자리, 그야말로 인간이 체휼하지 못하고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가운데 심정에 미쳐지는 고난의 자리라는 것은 최고의 절정이 아니었겠느냐는 거예요.
이것을 파탄당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된 하나님의 고난의 절정을 넘어갈 수 있는 자리를 모색해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의 고통의 근원을 해소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자, 그것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느냐?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관념적으로는 느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실제의 입장을 어떻게 여러분 자신이 체휼하느냐 이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부인이 있는데. 그 부인이 말이예요, 아들딸을 잃어버리고 남편을 잃어버리고 부모를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그다음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가정하자구요. 그럴 때 어떻겠느냐 이거예요. 그때의 그 여인의 상이, 여인의 모습이 어떻겠느냐? 지금 우리 타락한 인간권 내에서 심정이 찢길대로 찢기고, 모든 것이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여인 자체로서도 비참한 것인데, 이런 심정의 고통을 느끼지 않은 순결한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타격이 미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어요? 어떠했을까요? 오늘날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큼 고통스러웠을까요?
자, 이렇게 볼 때 고통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 이외에 딴 사람은 할 수 없다구요. 이런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최고의 고통의 절정에서 구원섭리, 복귀섭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냐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로 말미암아, 대상으로 말미암아, 그다음엔 부모의 자리에서 천금 같은 고통을 받았으면 그 고통을 벗어 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줘야 되는 거예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주기 전에는, 그 이상의 것을 회복하기 전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을 보게 된다면, 인간세상을 보게 된다면, 뭐 남편 죽고 다 파탄되어도 그건 시일이 가면 잊어버릴 수 있다구요. 그런데 영적인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영적인 하나님 앞에 일년이라는 관념이 있어요? 일년이니 하루니 하는 시간 관념이 있느냐 이거예요? 천년, 천년이 그 시간이라구요. 천년 만년이 그 시간이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거 하나님이 빼 버릴 수 있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어떨까요? 여러분들 하나님은 어떨 것 같아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거 할 수 있겠어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다른 데에서도 올마이티 갓(almighty God; 전능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더 절대적이다 이거예요. 더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자, 여러분들이 자식이 죽고 뭐 앞으로 부모가 죽으면 잊어버릴 수 있어요? 잊어버릴 수 없다구요. '내가 떼어 버린다' 그럴 수 있나요? 그럴수 없다구요. 암만 노력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그런 사망권 내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고통받았던 그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망권 내에 그냥 두고는 풀 길이 없다 이거예요.
여기서 만일에 '부활했다' 하면, 부활이라는 말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고통 가운데 계신 하나님, 비참한 고통의 절정에 계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다면 한 가지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새로운 관념을 갖고 다시 주목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부활 했다'는 그 말밖에 없다구요. 그러니 이 부활이라는 말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복된 말이겠어요?
자, 그런데 만약에 부활한, 당장에 부활한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만나면 어떨까요? 어떨까요? 거기는 희비극이 교차하는 자리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눈물 흘리며 고통받던 부모에게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정적인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 어떠했을까요? '너 살아 났니? 그랬을까요?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날 것이고, 입에서는 기쁨의 웃음이 터져 나올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래서 그 몸의 모든 정적인 표시를 하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때, 타락한 인간 역사에 있어서 슬픔을 당하던 하나님이 이런 해방된 부활권, 심정적인 모든 고통권 내에서 해방받을 수 있는 부활권을 지금까지 차지했을 것이냐.
자, 그러면 이제 타락한 인간의 소원은 무엇이냐? 고통의 절정을 밟고 넘어서 새로이 부활하여 새로운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그런 부활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 고난의 절정을 초래한 기준을 밟고 넘어설수 있는 기준, 그것이 인간이 가야 할 최종의 목표가 아니겠느냐? 그럴것 같아요?「예」
그럼 부활되는 데에는 나 혼자 되어야 되느냐, 형제가 함께 되어야 되느냐?「형제가 함께요」 왜? 아담 해와, 형제가 한꺼번에 타락했기 때문 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심정기준 이상의 자리에서 부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이 타락의 행동을 할 때 이상으로 하나되는 자리에서 타락할 때의 심정 이상의 하나님을 위하는 심정을 발견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아담 해와의 자리는 부부의 자리를 대표하는 자리였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그런 입장에서 타락하는 아담 해와의 사랑보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랑 기준을 찾아서 그 사랑에 의해서 결속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고, 그다음에 아담 해와의 횡적인 사랑이 하나되어 전체가 하나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종적인 아버지가 횡적인 아버지로 출발해서 인류의 조상권을 이룰 수 있는 심정의 종합적인 기지가 마련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러한 자리에서 '부활했다, 부활한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벌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겪는 이 세 고난의 절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느냐.
여러분들 그거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 노처녀가 시집가서 첫날밤, 남편을 맞이하는 시간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얼마나 궁금하겠느냐 이거예요.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라지' 그러겠어요? 그 시간은 밤이나 낮이나 어떤 시간을 초월해서라도 그 시간은 기다려야 되는 것이 사랑하는 아내가 가는 길이요, 남편이 가는 길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모든 몸과 모든 마음과 모든 심정이 최고도로 흥분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그 사랑하는 대상을 찾아서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가 되면 여기서는 전부가 통일되는 거예요. 몸도 통일되고 마음도 통일되고 심정도 통일된다구요. 그래야 될 거라구요. 눈이 있다고 한다면 생각과 더불어 보길 원하는 것이요, 느낌이 있다고 한다면 생각과 더불어 느껴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예」
너희들 그러한 마음이 되어 가지고 '신랑이 되겠다. 신부가 되겠다'고 생각해 봤어? 세상의 그 무엇, 권력이니, 사랑이니, 돈이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것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봤어요? 오관이 전부 다 한 군데에 굳어져서 전부가 하나되는 경지를 생각해 봤느냐 이거예요.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는 데 모든 감정, 모든 느낌이 하나되어 가지고 굳어져 버린다구요. 굳어졌다는 얘기가 이상하지만…. (웃으심 )
그래서 '그분과 접촉하여야, 그분의 손길이어야 내가 다 풀리고, 그분의 입김이어야 내가 풀리고, 그분의 품에 내가 품겨야 다 풀어진다'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예」 이런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 시간이 좋을 것 같아요, 나쁠 것 같아요? '그것이 사실이다. 틀림없이 된다' 하는데도 거기에 사실 안 된다고 하는 일이 있다면 거 어떻게 하겠어요? 안 된다는 것을…. 그냥 그대로 안 된다고 하겠어요, 된다고 하겠어요? 자. 반대가 있다 해서 없어지겠어요? 더 강력히 뭉쳐서 강해진다구요. 더 강해질 것입니다.
하나의 신랑 신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이예요, 타락한 인간도 그렇 다면 말이예요, 타락하지 않고 순수한 본연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이 아들딸과 하나되고, 부부와 하나되고, 전부와 하나되는, 사랑 가운데 만나는 한 시간을 얼마나 고대할 것이냐구요. 고대하겠어요, 안 하겠어요?「하실것입니다」
자, 이렇게 생각할 때 내 아들이라는 관념을, 내 몸이라는 관념을, 나는 아버지라는 관념을 빼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겠어요, 사랑이라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정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에 하루가 문제가 아니고, 천년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예요. 시간이 변천하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심정도 변화 발전할 것이냐 이거예요. 더 할 것입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것은 더 그리워지고 더 애달플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럴 것 같지요?「예」
이렇게 볼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 이제 말한 바와 같이 이 고난의 절정에 계신 하나님의 심정의 경지를 해소해 주겠다고 하는 사람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에 그런 사람이 누구였던가? 공자도 아니요, 석가도 아니요, 마호메트도 아닙니다. 단 한분 예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여기서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봐서? 예수님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하였습니다. 독생자라고 한 그 말은 위대한 말이라구요. 위대한 말이다 이거예요. 타락한 아담도 아니요, 타락한 아담의 후손도 아니요, 이 세상에 남자가 많지만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가 독생자라고 하는 말의 하나의 키 포인트가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 숨겼던 단 하나의 사랑을 독차지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즉, 단 하나의 사랑으로 부모를 해방시켜야 되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있다' 했다구요. 하나님과 예수 자신과 하나다 이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사랑을 빼놓고 어떻게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말은 우스꽝스러운 말이고, 말 같지 않은 말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신과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진 분이 예수가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거 그런 것 같아요?「예」
그다음에 더 나아가서는 '나는 아들인 동시에 신랑이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신랑이라는 말을 선포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거예요. 그 브라이드그룸(bridegroom ;신랑)이란 뭣을 두고 한 말이예요? 그게 말만이예요? 무엇 중심삼고 한 말이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가 가는 길에서 최고의 사랑, 여자가 가는 길에서 최고의 사랑…. 브라이드그룸은 최고의 사랑이라구요. 참 최고의 사랑을 표준하고 한 말이라는 거예요. 브라이드그룸이라는 그 자리를 생각할 때. 아담 해와의 타락한 그런 자리가 아니다 이거예요. 그것을 넘어선, 참다운 부부의 사랑을 추구한 대표자의 자리가 아니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예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머리가 복잡했고, 정신이 아찔했고, 눈이 잠겼고, 슬퍼서 비통했던 하나님이 눈을 번쩍 뜰수 있었지 않았겠느냐 이거예요. 역사상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순간은 예수가 부활의 한 날을 추구했던 그때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거와 같아요. 그 순간은 하나님의 부활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구요.
결국 예수가 원하였던 것은 이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고난의 절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부활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는 하나님을 구할 수 있는 메시아요, 인류에게 사랑을 갖다 줄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 사랑의 메시아, 하나님을 구해 주고 모든 인류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키(key;열쇠)를 가진 분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비로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하나님은 어떠했겠어요? 하나님은 '이제 됐다!' 하겠어요, '아이구! 아직까지 안 되었다' 하겠어요? 어떻겠어요?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예수가 갈라졌겠어요, 하나되었겠어요? 이렇게 볼 때 비로소 역사상에서 하나님의 고난의 절정을 비로소 예수의 부활을 중심삼고 해소할 수 있는 한 때가 세워진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세계가 계획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과 짜고서 로마와 하나되어 잡아 죽이는 입장에 섰으니, 그때 하나님이 좋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하나님이 볼 때, 기가 막히는 노릇이지 뭐예요? '예수가 죽으러 왔다'고 믿는 사람들을 볼 때 기가 차겠어요, 안 차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있겠어요? 기독교라는 것에 관심이 있겠느냐는 말이예요. 하나님에게 가서 '예수는 죽었으니 잊어버리고 예수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많으니 우리에게서 위로 받으십시오?' 이런다고 하나님이 위로받겠나요? 어림도 없는 얘기예요. 어림도 없다 이거예요.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상 하나님과 하나되고, 예수 이상 독생자라고 자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가지고 그런다면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택하여 자기들이 믿어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인정하지 못할 터인데 오늘날 그런 자리에도 있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암만 위로한다고 해서 위로가 되겠어요? 안 된다 이거예요. 어떨것 같아요? 하늘에 대한 모독 중에서 이런 모독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다. 신부를 찾기 위해 다시 오겠다' 이 말을 남긴 것을 볼 때, 무엇을 표준했느냐 하면 고난의 절정을 타파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오겠다는 것은 뭐예요? 고통의 자리를 해소시키기 위해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게 된다면, 하나님은 여기서 타락한 인간을 넘어서 예수시대에 와서 소망을 걸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또 타락했으니 이것을 넘어서 재림시대까지 소망을 걸어 온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하나님을 생각해 볼 때, 에덴의 시대를 잊을 수 없고, 예수의 시대를 잊을 수 없고, 재림시대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에는 이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때는 이때보다 나아야 되고, 이때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판서 하신 것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심) 거 그럴 것 같아요?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활의 목적을 이루어 고난의 절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심정적 이상의 기준을 찾아온 그 하나님 앞에 가장 희망의 날은 끝날밖에 없다 이거예요. 기독교의 목적은 그것 하나라는 거예요. 재림하는 날, 재림하는 날이라는 거예요. 거 이해돼요?「예」
그날이 무슨 날이냐, 그날이 무슨 날이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세계를 심판하는 날이냐, 사랑을 찾아 세우는 날이냐?「사랑을 찾아 세우는 날입니다」 쉽지요?
타락하지 않은 순진한 아담 해와도 그 자리에 못 나갔는데 오늘날 타락된 똥개 같은 여러분들이 나갈 수 있어요? 아담 해와만 해요. 이게? 뭣이 묻었어요? 그 뭐 얼룩덜룩한 페인트가 묻었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볼 때 나가자빠지고, 냄새 맡고도 자빠지고, 부딪히게 될 때 밖으로 자빠지는 패입니다. 그러한 인간 중에서 여자라고 '내가 화장을 한다. 목걸이를 한다. 귀걸이를 한다. 반지를 낀다. 하나님이 좋아하겠지!' 한다구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얼마나 기가 막힌 거예요?(웃음)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이예요? 「예」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거예요? '오! 통일교회에는 미국을 복귀하자는 배짱이 있다'고 할 거라구요. 그러나 미국을 복귀하면 뭘해요?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를 못 세우면,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못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문제가 뭐냐 하면 고난의 절정에 선 하나님을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상이었다 이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상이다 이거예요. 확실히 알았어요?「예」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안 됩니다. '나는 신랑이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내가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명사 앞에 처음 사랑을 할 수 있는 독생자가 되어야겠다' 하는 자각을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가장 필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독생녀다 이거예요, 독생녀. 여러분. 그 길 가겠다는 자신을 갖고 있어요? 생각을 해봤어요?「예」 그런 이해는 했지만 그런 것이 되겠다고 노력해 봤어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데는 원래 처녀 총각들이 다 들어와야 된다구요. 젊은 처녀 총각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구요. 왜 하나님은 젊은 사람들을 전부 통일교회로 보내줄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독생자요 독생녀라는 자각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었냐구요?「아니요」 '너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이 있어? 너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 이 자식아!' 그럴 때 어떻게 할래요? 「예」뭘 알아? 모든 걸 알아?「예」 정말 그래요?「예」 모가지를 잘라도 그래요? 아들딸이예요?「예」
보라구요. 세상에 어머니 아버지가 있지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여러분을 낳는 것을 봤어요? 그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지 어떤지 알아요? 더우기나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어머니가 무슨 짓 했는지 알아요? 아느냐 말이예요. 그런 의심 해봤어요? 그럼 어떤 녀석이 총칼을 들이대고 혹은 원자탄을 들이대 가지고 '에이 이 자식아! 너희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라!' 아무리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게 통하나요?「아니요」 하나님이 그래요? 그 이상 돼요, 하나님이? 그렇게 확실해요?「예스」 할수없이 '예스 예스' 하지요? 뭐 그런 말 하지 말라구, 이놈의 자식들! 하트(heart ;심장)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서 하는 '예스'예요, 하트는 하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몸은 몸대로 떨어진 자리에서 하는 '예스 '예요? 어떤 거예요?「하나된 자리요」
자,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은 틀림없이 '내 아버지요. 세상이 뭐라 해도, 억천만년이 가더라도 내 아버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강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예요?「예」 하나님이 얼마나 전지전능하고, 얼마나 담대하고, 얼마나 대담하고, 얼마나 용맹스럽겠나 말이예요. 하나님의 아들이 국무성을 두려워하겠나요? CIA를 두려워하겠나요? FBI를 두려워하겠나요?「아무것도 안 두려워합니다」 왜? 왜?(웃으심 ) '우리 아버지가 우주에서 대장이다'라고 생각하라구요. (박수)
여러분들은 그분을 위해서 사랑을 가지고 죽으면 죽는 것이 아니요, 망하더라도 망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예수가 십자가에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하나님 심정의 고통의 절정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내가 간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 보다 차원 높게 예수와 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수의 부활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을 해서, 재차 연장하여 그것을 이루겠다는 소원을 기반으로 한 심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죽으면서도 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해 변치 않고 그 심정을 찾겠다고 하면서, 그 심정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오직 나와 기독교밖에 없다 할 때, 이 기독교는 망할 수 없다는 결론이 거기서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의 재림을 어디로 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곳에 이루어질 것인가? 이러한 고통의 절정을 해소시키기 위한 신앙기반을 가지고 개인이 만나고, 가정이 만나고, 사회가 만나고, 국가가 만나고, 세계가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곳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수 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종교, 그러한 기독교가 나오면 그 종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상이 없는 기독교, 아무리 큰 천주교, 아무리 큰 감리교, 아무리 큰 장로교, 아무리 큰 교파를 자랑하더라도 그거 다 무용(無用)인 것입니다. 그런 큰 장로교, 큰 감리교와 같은 종교는 필요 없다 이거 예요. 그 교파 전체에 이런 사상이 없거들랑, 그 교파보다 이런 사상을 가진 한 사람, 아직까지 교회도 안 가지고, 어디에 속해 있지도 않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이 도리어 하나님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자. 이북의 김일성이 죽었다고 하자구요. 악랄한 공산주의자 김일성이 죽었다고 하면, 김일성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악랄한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그 놈의 아버지. 그놈의 자식, 잘죽었다!'고 하지 않는다구요. '아버지가 죽었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구요. 그럴 사람은 그 아들 하나밖에 없다구요.
오늘날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요, 편안한 하나님이요, 행복한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단지 레버런 문 하나만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요, 비참한 하나님이요, 예수는 불쌍한 사람이요, 지금까지 기독교, 종교는 불쌍하다고 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반대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아들 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예요. 아버지의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레버런 문이라든가,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것입니까? 뭘하자는 거예요? 딴 것은 없다구요. 여러분의 돈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모두 출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것 아니예요. 아담이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고통을 겪게 되었고,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해소시켜서 해방시키기 위한 책임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예수보다 더 힘든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이것을 주장하겠다. 내가 예수보다 더한 죽음의 자리에 가더라도 나는 이것을 주장하겠다' 그 외에는 없다구요.
그래서 개인이 반대하는 것을 넘고, 가정이 반대하는 것을 넘고, 사회가 반대하는 것을 넘고, 종족이 반대하는 것을 넘고, 민족이 반대하는 것을 넘고, 국가가 반대하는 것을 넘고, 세계가 반대하는 것을 넘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넘어가는 날에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축복하면서 기뻐 하실 것이고 '내 아들아! 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 하나님을 해방시킬 수 있는 독생자라는 자각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그 놀음을 하자는 거라구요. 그 놀음을 하자는 거라구요.
'하나님, 당신과 나는 하나되었습니다.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이래야 된다구요. 나라가 반대하면, 나라를 버리고 갈 것이고,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버리고서라도 가야 됩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를 버리고도 가는 거라구요. 나는 이 길을 택하겠다 이거예요. 이것을 반대하는 자는 어떤 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희생시켜서라도 간다 이거예요. 자식이 반대하더라도 끊고 갈 것이요, 아내가 반대하더라도 끊고 갈 것입니다. 왜? 이것이 우주의 중심의 고통에 귀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소시키는 길이 우주가 바라는 단 하나의 소원이기 때문에 단연코 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위해 태어났다 이거예요. 그것을 위해 살다가 죽는다 이거예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생전에 못 이루더라도 자기가 정성들인 것은 심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 것입니다. 어느땐가 그 심정이 부활할 땐, 나도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도 그런 심정을 가졌기 때문에 부활해서 기독교를 하나님권 내에 세워 예수의 이름을 남긴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갈 길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어떤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이 사상을 개개인에게 묶어 주지 않는 한 하나님과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처녀 총각들, 여러분이 신랑 신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예수가 2천 년 동안 신부를 고대하던 간절한 마음 이상 되어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대했어요? 하나님이 기대했고, 예수가 기대했고, 수많은 인류가 고대했던 그날이 얼마나 귀한 날이예요? 그날이 축복의 날이예요. 통일교회가 하는 축복의 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문제예요. 백인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황인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심정이 문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심정이 어떤가요? 이게 통일교회의 주류적인 골수 사상입니다. 정수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남편과 아내로서의 기준을 못 세우면 그때는 에덴동산의 한을 해원할 수 있는 길이 없고, 예수를 해원할 길이 없고, 재림시대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여러분은 아담 해와와 같이 여러분에서부터 새로운 혈족이 생겨나는 선의 조상이라는 것이 자각되었어요?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그건 선생님 말뿐이 아니라구요. 보라구요.
그러므로 기독교에 신랑 신부라는 말이 있는 거라구요.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이거 해야 된다구요. 여기에 자신없는 사람들이 축복받겠다고 생각하면 강도, 절도자보다 더 악한 것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기 처녀 총각들 손들어 봐요? 결혼하지 않은 남자 여자들 손들라구요. 내리라구요. 너희들 어떻게 생각해? '선생님은 뭐 워싱턴 대회도 끝났는데 축복 안 해주나, 3년이 지났는데…' 그러지? 이놈의 자식들! 「아니요」 뭐야? 이놈의 자식들! 그거 그런 생각 해서 고난의 절정에 처해 있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있고, 몸을 나타낼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라구요. 어떤 사람들은 '야! 선생님이 축복해 주면 너하고 나하고 축복 받자! 야! 뜻이 뭣이고 하나님이 어떻든간에…' 이런 공론이나 하고 말이예요. 이게 이 우주 앞에 얼굴을 들 수 있는 놀음이예요? 무슨 말인지알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자각을 해야 되겠다구요. 그랬어요? 그랬다면 내가 일하기가 쉽다구요.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자리도 갈래? 할 때 '하나님을 위해서 갑니다. 가기를 바랐습니다' 라고 해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래요?「예」'어떻게 좀 편한것. 어떻게 좀 쉬운 것,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빠질까?' 이런 생각들만 하잖아요? 그건 흥정하는 신앙이예요. 흥정하는 신앙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역사적으로 진 하나님의 빚을 생각하게 되면 헤아릴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구요.
여러분, 솔직이 한 번 얘기해 보라구요, 오늘 이 시간에. 그런 자각을 갖지 못했던 사람은, 하나님이 다 아니까 솔직이 한 번 손들어 봐요. 그러면 하나님이 귀엽게 볼 거예요. 너희들이 통일교인이야?
이것을 볼 때, 원래 하나님이 원하는 통일교회 교인들이예요, 하나님이 원치 않는 통일교회 교인들이예요? 진짜예요, 가짜예요?「진짜입니다」 가짜 취급하면 싫지요? 가짜더라도 가짜 취급하면 싫지요? 진짜로 취급해 주기를 바라지요? 그것도 가짜예요. 그것도 가짜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가짜는 가짜 취급을 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싫다고 하는 것은 사탄이예요, 사탄!
자, 이제 알았을 거라구요. 응? 신문을 팔고, 환드레이징을 하고, 전도를 할 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 이거예요.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일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닦기 위해서. 세상이야 어떻게 하든, 욕을 하든 그것은 안중에도 없다구요.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심정에 상처가 갈까봐 그걸 염려하며 가는 사람이어야 된다구요. 레버런 문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 외에는 없다구요. 선생님은 위신이고 체면이고 아무것도 없다구요. 나는 모른다구요. 단 하나, 독생자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의 길은 생겨난다는 거예요. 순수한 의미에서는 그거 하나밖에 없다구요. 그런 전통을 세우겠다는 것 외에는 없다구요.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외딸과 같이 사랑하겠다는 것밖에 없다구요. 그게 틀렸다고 심판을 하게 되면, 그 심판대에 나는 즐겁게 나갈 거예요. 심판할 자가 없다구요. 이것이 하나님의 복귀의 골수 전통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남자가 그런 자각을 하면 하나님의 심정이 부활되고, 여자가 그런 자각을 하면 심정이 부활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런 자각을 하면 그런 부부의 심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되어 하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의 심정이 해원성사되고, 고난의 절정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남자 여자가 합해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닌 사탄의 아들딸로 태어난 눈인데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딸의 눈으로 변해 가는, 그런 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귀가, 이 일신이 그렇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 이상 기쁜 것, 그 이상 자랑할 것, 그 이상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느낄 수 있겠어요? 내가 잘 입었던 옷을 벗어 젖히고 못입고 맨발로 뛰더라도 이 몸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변해 가는 것을 볼 때 기뻐해야 된다구요. 그 변화의 가치를 자랑하고 기뻐하며 가는 것이 신앙자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임을 알아야 된다구요. 확실히 알았어요?「예」 선생님은 그것밖에 생각 안 해요.
보라구요. 미국에 와서 선생님은 다 핍박을 받고, 뭐 있는 말 없는 말해서 모략 중상을 하여 레버런 문을 백방으로 반대한다 이거예요. 그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특권을 빼앗지 못한다구요. 그것만큼은…. 내가 그런 것을 당할 때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인류와 인간들 앞에 당했던가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교육의 재료니 감사합니다' 하였다구요. 24시간 반대가 벌어지면 24시간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고 이 길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세계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구요. 그런 환경으로 소화하려고 했다구요.
그래서 전부 다 걸어 잡아당기다가 자기들끼리 맞는다구요. 응? 뭐 브레인워쉬(brainwash ;세뇌)시킨다는 말도 지나갔다구요. 요전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미국 국방성, 국무성, 뭐 대통령도 전부 쌍안경을 갖고 'KCIA 레버런 문, KCIA요원 이 녀석아!' 하며 야단했다구요. 김형욱이 나와서 증언하는 것을 보고는 '이번에 통일교회 옥살박살 내자. 아이고 좋아라! 하하하!' 이랬다구요. 그런데 반대로 들이 맞았다구요. 프레이저가 지금 강펀치를 맞았다구요. 입을 벌리고 좋다고 하던 것이 서리를 맞으니까 '야! 하나님의 탕감복귀가 참 멋지게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구요. 대통령하고도 싸움이 벌어지고, 위원회끼리도 싸움이 벌어지고, 국회에서 민주당, 공화당 의원이 전부 다 '야, 레버런 문이 뭐 어찌됐어? 이놈의 자식아! 뭐 이 자식아!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고, 미국 전국민이 야단이라구요. 뉴욕 타임즈도 큰일났다구요. 뉴욕 타임즈는 레버런 문이 KCIA의 에이전트라고 선전했는데 워싱턴 포스트지는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큰일났다 이거예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싸움판이 벌어졌다 이거예요. 난장판이 벌어졌다 이거예요.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오해받았다! 미국 국민아, 전부 다 그 어느때 보다 회개하라!' 고 선언할 것밖에 없다구요. '회개하라! 우리 식구와 레버런 문과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 이렇게 우리가 통고를 해야 된다구요. 통고문을 내야 될 것입니다. 그거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가만 있지, 하나님의 사랑은 가만 있어야…. 아니라구요. 이젠 때가 다 지나갔다구요. 워싱턴 대회, 내가 금년 9월달까지 고개를 넘어간다고 했지요? 지금 이때가 그때예요. 이제는 정의를 가려야 되겠다구요. 이제는. 지금까지 그늘에 있었던 무니(Moonie)들이 태양 앞에 나타난다 이거예요. 양지가 되는 것입니다. (박수) 무서워할 것이 없다구요. 당당해라 이거예요. 당당하라구요. 당당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가 가질수 있는 때가 됐다 이거예요.
보라구요. 미국의 젊은이, 대학생, 중·고등 학생들이 전부 다 '레버런 문은 사기꾼이요, 도둑놈이요, 마피아보다 나쁘구 KKK단보다 나쁜 놈이다'라고 생각한다구요. 그것을 뒤집어 놓는 날에는, 이 자식들이 이럴 수 있느냐고 아는 날에는 폭탄같이 공격할 거라구요. 이제는 '너도 반대 하느냐? 너 프레이저와 통하느냐, 이 자식들!' 하고 공격할 수 있다구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 머리숙일 수 있게끔 해놓을 때가 왔다구요. 결국 레버런 문이 나쁘게 유명했었다가 좋게 유명해진다구요. 알겠어요? (박수) 거 좋다구요.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이 심정을 가지지 못하면 나무아미타불이예요.
'지금까지 나하고 우리 여편네하고 둘이만 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계의 나라와 나라끼리, 국가끼리 손을 잡고 하자!' 이럴 수 있는 때라구요. 그런 때가 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고난의 절정에 있는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독생자 독생녀가 되고, 신랑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골수의 심정을 해방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는 문제만이 과제로 남아 있다구요. 속으로는 '이것이 당신의 심정적 고난 가운데 절정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심정 이상의 고통을 내가 받더라도 감사해야 되고, 당신의 심정에 해방의 날이 우리로 말미암아 오시옵소서. 아멘!' 할 수 있어야 되겠다구요. '당신 이상의 고통을 받더라도 감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아들이 있사오니 그 마음을 푸시옵소서. 아멘!' 해야 된다구요. 지금까지 얼마나 우리들이 가짜였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오늘 말씀을 듣고 이제 가치 있는 존재로 돌아섰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고맙다구요. 거기서 하는 말이 '이제 내가 그런 입장에 서니 예수가 혼자 당하던 십자가의 자리에 여편네하고 내가 서더라도 감사히 가겠습니다' 하며 이런 마음을 가지면 완전히 하나되는 거예요.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받아 나가기 직전의 단계까지 부활할 수 있다구요. 그러면 사망권을 벗어나고도 남을 수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나의 아버지! 나에게 짐을 지어 주소! 미국 통일교회의 수난길을 내게 지어 주고, 세계 통일교회 수난길을 내 어깨에 지어 주소! 우리 여편네, 우리 가정에 지워 주소! 그 짐을 내 달갑게 받겠습니다'라고 해야 된다구요. 그러겠다는 사람은 손들라구요.
여러분들이 이제 그렇게 가는 데에는 망하는 법, 몰락하는 법은 절대 없다구요. 자신 있고, 승리할 길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겠다구요. 그래서 1977년 6월을 의의 있게 마감합시다. 그리고 '7월은 새로운 달로서….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이제는 내가 독생자 독생녀로서 예수 이상의 심정을 갖고 땅 위의 실천적 예수의 부활실체로서 나는 갑니다' 하고 결의해 준다면 하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금후에는 통일교회에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은 손들어요. 내리라구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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