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을 중심삼고 보면 여기에 선 사람은 벙어리와 같고, 나를 중심 삼고 보면 여러분은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입니다. (웃음) 이 두 장벽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은 통역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통역을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통역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많이 성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웃음) 오늘 저녁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나는 동양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국' 하게 되면 미국 국민으로서는 6.25동란을 연상케 되리라고 봅니다. 한국과 미국은 이 한국 동란을 중심삼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피의 유대를 맺은, 역사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미국 국민을 이와 같은 공식석상에서 만나기를 다년간 기도해 왔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져 오늘 이와 같이 만나게 된 것을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여러분 앞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라는 거대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한된 시간내에 이런 내용을 다 말하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비약된 내용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여러분이 그 배후의 세밀한 내용을 알고 싶거든, 금후에 통일교회 교리를 참고하셔서 연구하시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계를 통한다거나 계시를 받는다거나 하는 초감각적인 세계에 대한 체험이 우리 인간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서 되어지는 사실들을 우리 인간세상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체계화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려운 문제인 것을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은 잠깐이지만,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봅니다.

대상의 필요성과 중요성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를 말할 때,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요,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와 같은 세계적인 현상을 그냥 그대로 두시는 데에는 어떠한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냐 할 때에.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결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 두 세계를 두고 볼 때, 금후의 세계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고,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와 같은 시점에 있어서 이 두 세계가 금후에 갈 길을 지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옛날에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 즉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결과의 세계를 미루어 보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 우주는 존재합니다. 존재하는 데는 아무런 내용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있음으로 말미 암아 운동을 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 자체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힘도 존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힘이 있기 위한 선(先)의 조건은 작용입니다.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하기 위한 필수요건이 무엇이냐 하면 상대적 관계입니다.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만약에 여기 있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데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거미가 거미줄에 매달려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것을 잡기 위해서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할 때에는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 미국의 대통령 되는 분이 광장에 혼자 서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허허 웃고 춤을 춘다면, 누구도 그를 정상적인 대통령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계를 보고 큰소리를 치고, 그저 좋아하고 웃고 야단한다면 그때에는 그 시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정상적이 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올라가서 한 분밖에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무 대상도 없는데 혼자 웃고 춤추고 노래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정상적인 하나님으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만 무엇을 하나 갖다 놓고서 기뻐하고 감상하고 웃는다면 그때에는 정상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작용의 원칙

여러분이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모든 여건도 혼자라는 어떤 하나. 즉 단일적인 것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상대적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 손해나는 장소에서는 작용을 안 합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는, 둘이 보다 나을 수 있는 공동적인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에는 둘 다 작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미스터 문이 무슨 말씀을 하는가, 그것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여기에 손해나기 위해서 왔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에 손해난다고 하게 되면, 여기와는 영영 이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 내가 작용하는 데 있어서 서로에게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이 있게 될 때에는, 그 관계는 영속하는 것입니다. 남녀간에 사랑을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대해 가지고 상대로 말미암아 이익이 되는 것이 없고 손해나는 입장에 있다면, 그 사랑 관계는 절대로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버클리' 하면 대학교가 유명한데, 대학교를 다니는 젊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데 있어서, 오늘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간다고 하는 학생이 있다면 미친 사람이라구요. 반드시 무엇인가 플러스되고, 무엇인가 바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 작용을 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도 플러스되어야 되고 인간에게도 플러스되어야 됩니다.

만일에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에 있어서 서로 마이너스가 되는 작용의 원칙을 설정해 놓으면 이 우주는 형성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서로가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될 때에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우주가 형성될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 관계의 작용은 반드시 자기의 이익을 바라는 데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교수가 화학 실험을 할 때에 원소 원소끼리 어떠한 작용을 시키려고 아무리 힘을 가해도 그 원소들은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서로가 좋을 수 있는 결과가 생기고, 그 어떤 목적적인 가치가 결정 되는 원소와 인연이 되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작용하지 말라고 해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마이너스가 되면 절대 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의 어떤 단체나 어떤 회사 끼리끼리도 둘이 합해 가지고 둘 자체가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야만 그것이 동기가 되어 서로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중공의 모택동이 만났습니다. 그 둘이 만났지만, 이 두 나라가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떤 목적적인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이너스되는 데서는 하나되지 못합니다. 지금 두 국가가 아무리 어려운 실정에 있다 하더라도, 둘이 합함으로 말미암아 현재보다 나을 수 있다는 공동목적이 실현되게 될 때에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여 현재보다 못하게 되면 작용을 안 하는 것이요, 보다 나을 수 있는 서로의 목적을 발견하면 작용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진화론을 보게 되면. 진화하는 데에도 보다 나을 수 있는 목적적인 그 무엇을 갖지 못할 때에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횡적으로 보다 강한 힘이 가중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힘은 작용할 수 있는 목적과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인간의 양심의 주체이신 하나님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이 우주가 조화적 창조의 세계냐, 진화적 우주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증법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변증법에 목적관을 제시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깨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이 새로운 입장에 서 가지고 역사를 비판해 보고, 철학의 기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기도 작용하는 데는 주체와 대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는 한 그 가운데에는 언제나 전자장(電磁場)이라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람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사람에게 양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에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양심은 태어나는 날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가 그릇된 길을 가려고 할 때에 브레이크를 걸어 보다 나은 길로 가라고 내모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 양심이 혼자 작용한다면 이제까지 말한 모든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체는 동기가 아닌 결과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이런 양심작용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떠한 주체가 있을 성싶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나이가 양심작용을 부정한다고 몇백 번 다짐한다고 해서 양심이 작용 안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양심작용은 없앨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더 뚫고 나오려고 합니다.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하나님 노릇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대상적인 어떤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절대적인 하나님이시니만큼 이 땅에 있어서, 이 지구 성에 있어서 최고의 존재를 상대하고 싶어하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최고의 상대로서 관계맺을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이 겠어요? 그 존재는 광물도 아니요. 식물도 아니요, 동물도 아닌 모든 만물 가운데 중심이 되는 인간 이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결론은 유치원 학생들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최고의 상대로 취하려고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지었다면, 그 절대적인 분과 제일 기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양심 작용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으신 분의 목적과 지음받은 사람의 목적이 이루어진, 보다 기쁠 수 있고 보다 좋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있어야 됩니다. 그 자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에서 절대적으로 높은 자리가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의 안착점

그러면 우리 인간의 양심작용을 생각해 보면서 그런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여기에 온 여러분 중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혹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막론하고. 혹은 돈이나 권력을 잡은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 등을 막론하고 누구나 다 최고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학생은 자기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교수를 자기의 선생님으로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에 유명한 성현이나, 혹은 역사과정에 제일가는 유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만일에 그런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까 그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제일 꼭대기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 할 때에는 그 하나님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어서 그렇지 가능성이 있으면 누구나 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최고로 높이 되겠다고 하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권세를 잡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고로, 역사를 거쳐오면서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누구든지 그런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용이 무의미하게 목적도 없이 계속되어 왔다면, 그것은 망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라면 그 하나님이 있는 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도달하게 해서 하나님과 안팎으로 관계를 맺게 하고도 남을 수 있는, 즉 내적인 인연을 맺게끔 하는 이 힘의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입니다. 이 세계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과 보다 가치적인 상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분의 상대적 여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양심을 통해서 그런 욕망을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자기가 점령했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행복하다고 할 것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모르니까 그렇지 알면 그것을 원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갖고 있는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줄 알게 되면 하나님 속에 감춰진 하나밖에 없는 사랑마저도 점령 하고 싶어합니다. 그것마저도 점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을 점령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계속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점령했을 때. 하나님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요, 내가 하나님의 전체와 같은, 상대적으로 동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인간의 욕망의 종착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절대적인 하나님 속에 있는 사랑을 점령할 때까지 인간의 욕망은 작용할 것이고, 그것을 점령할 때에는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안착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인간도 기뻐할 수 있는 자리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최고로 원하는 그 결속된 자리가 어떠한 자리 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있다면 천륜이 있는 것이요, 인간이 있으면 인륜이 있는 것입니다. 천정이 있고 인정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륜과 인륜이 합해지고 천정과 인정이 합해 져서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인간도 기뻐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 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종의 자리예요? 사위나 양자의 자리예요?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자동적인 결론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만들고 싶고, 나는 아들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원하는 최고의 욕망이요, 하나님이 원하는 최고의 욕망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내가 아들이 될 때는, 아버지 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신 분들 가운데에는 자녀를 길러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이 태어날 때에 자기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고, 자기보다 높이 되기를 바라고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 우리 타락한 인간들, 고장난 인간들도 그러한데, 본성의 주인 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이야 더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든지 자식을 안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사람, 사실은 부모보다 자식이 못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야! 그 아기 참, 어머니보다 잘났다'고 하면 기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다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전부 다 자기 손에 넣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야, 이 녀석아! 내가 이것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는데. 네가 아무 수고도 없이 그것을 원할 수 있느냐?'라고 노하는 부모가 있느냐? 어린 자식이 어머니 아버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그 자식이 어리면 어릴수록 부모는 도리어 '요 녀석 요거 요거 앞으로 우리 집안에 소망적인 존재다' 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하나의 작가로 생각해 봅시다. 조각가가 조각을 하든가 작가가 글을 쓸 때에 자기가 구상한 것보다도 낫게 되기를 바라면서 조각하고 쓰겠어요, 아니면 구상한 것보다도 못해지기를 바라면서 조각 하고 쓰겠어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것이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도 잘 되었다 할 때, 자기 일생에 아무리 해도 더 이상으로 만들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일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놓을 수 없고, 잊어버릴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보다 잘 되었는데, '야, 이 녀석아! 왜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잘 되었어?'하며 때려 부수는 법은 없다구요. 사람이 그렇다 할진대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법을 모르고 인간을 지으셨겠어요? 능력이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꺼번에 행동을 하고, 무엇이든지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게끔 인간을 지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분이 지은 인간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자기가 기뻐하는 것을 같이 기뻐하고, 자기가 말할 때에 같이 말한다고 '이 녀석아! 재수 없다'라고 하시겠어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있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높이 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기분 나빠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처럼 우리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높이 되겠다는 욕망이 역사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작용되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주체 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신비의 왕궁으로 되어 있는 인체를 보아 신이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실감나게 생각해 보자구요. 인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 머리입니다. 사람에게는 눈, 코, 입, 귀가 있습니다. 여기에 구멍은 모두 일곱 개가 있습니다. 가짓수는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또, 단계는 3단계가 있습니다. 귀는 사방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방 가운데 3단계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얼굴입니다.

인간이 생겨날 때에 무엇이 먼저 생겨나느냐 하면 눈이 먼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눈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여러분은 전부 하나님이라구요. 그리고 이 코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인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제일 앞장서는 것이 코입니다. 이것은 둘이 들어가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눈도 둘이 들어가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입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만물을 섭취 하므로 만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2개의 이로 음식을 골고루 씹어 섭취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왜 그러냐? 귀 때문이 아니고 눈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우주가 하나님 때문에 돌아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을 보게 되면 역시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 둘, 셋 3단계로 올라가는 거예요. 몸 전체로 보면 머리, 몸, 다리의 3단계로 되어 있는 거예요. 어린애들은 손을 이렇게 쥐는 것입니다. 엄지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의 두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네 손가락을 가리키심) 하면 춘하추동을 상징하고, 열두 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숨어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주도 액체와 고체와 기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색도 삼원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회 조직도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 내장의 중요 기관도 폐장, 위장, 심장 등 세 가지가 서로 주고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자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체로부터 반응적인 결과로 태어난 것임을 우리가 상징적인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더 세밀한 것은 시간이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우리 인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자구요.

우리에게는 눈이 있습니다. 그 눈이 어디서 태어났어요? 우리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의 눈은 어디서? 올라가고 올라가서 맨 종지 조상,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맨 종지조상이 태어날 때에 눈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 눈이 태어난 데는 지구성입니다. 이지구성에 태어났지만 이 눈이 지구성을 보기 위한 것보다도 태양이 있기에 그 빛을 보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눈이 천문 학적, 박물학적인 지식을 가진 것과 같은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눈이 알았어요? 몰랐다는 거예요.

눈은 수시로 깜빡깜빡거립니다. 이것은 태양열을 받아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서 눈에 있는 물기가 증발하기 때문에, 증발하면 큰일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눈이 깜빡깜빡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에 눈이 그런 것을 알고 깜빡깜빡해요?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예요.

또, 속눈썹이 있습니다. 이 속눈썹은 스크린처럼 되어 있다구요. 이것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느냐? 공기 중에는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또, 이 눈썹은 왜 이렇게 생겼어요? 벌써 사람이 땀을 흘린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땀을 흘리면 땀이 흘러내려서 중요한 눈에 들어가면 큰일나겠으니까 그것을 막으려고 딱 생겨났다는 거라구요. 이것이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코를 보라구요, 코. 이 코가 거꾸로 되었으면 어떻겠어요? (웃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왜 코가 위는 좁고 내려오면서 넓어지는지 알아요? 내려오면서 넓어져야지 좁아지면 흘러내리는 것이 전부 다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구요. 전부 다 직행하게 된다구요. 그러니까 양 옆에 고랑을 쳐 놓은 거라구요. '야, 이놈아! 가지 마라' 하고 말이예요. (웃음) 여러분은 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 '아하! 입에 불순물이 들어가면 큰일나겠으니까 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됐구만' 하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웃음)

또, 여러분 귀를 보라구요, 귀. 만일 귀가 거꾸로 붙었으면 어떨까요? 이 귀는 큰 산맥, 작은 산맥을 거치면서 소리를 죽여 가지고 듣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화음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나겠으니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눈이 여기에 있고 코가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있도록 안 되어 있다구요.

우리 인체는 신비의 왕궁입니다. 여기에 의학박사 되시는 분이 오셨을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해부학에 권위가 있는 박사가 있다 하더라도 결과적인 인체를 탐지해 가지고, 어떠한 조그마한 부분을 알아내어 박사 학위를 얻은 거라구요. 앞으로 이 몸, 이 신비의 왕궁을 캐내어 전부 다 밝히려면 수억의 의학박사가 나온다 하더라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비스러운 것이 적당히 그냥 그렇게 됐겠어요?

모든 존재는 적응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변명밖에 안 되는 말이예요. 정말 모르고 그렇게 지었겠어요?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미묘하게, 구조와 체내조직이 하나도 상충하지 않게끔 그렇게도 치밀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냥 그대로 된 것이 아니라구요.

여기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유명한 박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 박사 가는 '오! 내가 이만하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대단하다'고 하며 자신을 가진 박사인데, 그가 정월 초하룻날부터 시작해서 365일의 계획을 구체 적으로 짜 가지고 틀림없이 이루겠다고 절대적으로 맹세하고 결심해서 그 1년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그 계획했던 것을 그대로 틀림없이 맞추어서 이루어 놓을 수 있겠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이 방대하고 신비의 왕궁과 같은 인체가 무슨 원칙도 없이 그저 자기 멋대로 만들어졌겠어요? 반드시 누군가 다 알고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안 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구요. 그런 분이 있다구요. 그런데, 그분의 이름은 뭐 책상이든, 바위든, 물이든, 공기든 아무래도 좋습니다. 영어로는 '갓(god)이라 하고 한국말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인체를 분석해 보면, 인체는 우주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났다는 사실을 확증한다고 할 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계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구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기에 선 사람은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고의 신비경을 찾아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시여! 우주의 근본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고 따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나온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지상에서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된 그런 부자의 관계가 아니고 근본적인, 첫 결혼한 우리의 조상을 중심삼은 근본적인 것에 있어서의 부자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실감 있는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그것은 약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싶은 곳과 하나님이 계시고 싶은 곳

아까 하나님과 인간이 상봉할 수 있는 기초, 기틀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이루고도 남을 수 있는 우리 인간의 욕망이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축복의 가치가 뭐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 인간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유일무이하고 우주에 있어서 최고로 가치 있는 존재이십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갖다 두고 싶겠느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저 하늘 꼭대기에 갖다 두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미국인인데 동양에 있는 한국 같은 데 갖다 두고 싶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겠어요? 더욱이나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아버지요, 한 분밖에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모시는 데 있어서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자기에게 제일 가까운 데 두고 나만이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와 둘이 똑같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만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그것을 보이지 않게 감추려고 할 것입니다. 감추었더라도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한사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만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이 있으면, 그런 곳에 감추고 싶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은 인간의 그런 욕망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가지고 전부 다 볼 수 있게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오늘날 이 세상에 그런 하나님이 있으면 서로가 빼앗기 위해 싸움이 벌어질 거라구요. 조그마한 땅 짜박지, 무슨 나라 짜박지를 찾기 위해서 살인하고 야단인데, 이 우주의 하나님이 몸이 있어 보인 다고 할 때, 보이는 그 하나님을 서로가 차지하겠다고 한다면 이 우주가 큰일난다는 거예요. 강한 나라가 있으면 '이놈아! 그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야' 하면서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니 공산세계니 하는 사상 적인 전쟁보다도 하나님을 빼앗는 전쟁이 더 크고 무서운 전쟁일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정말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예요. 안 보이길 잘했다는 거예요. 안 보이길 잘했다는 거라구요. (웃음) 진짜 하나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 속닥속닥해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우리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볼 때에 어디에 계시고 싶어하시느냐 하면, 우리 인간하고 제일 가까운 데 계시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크신 하나님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곳은 무한히 커야 되는 거라구요. 그곳이 어디냐 하면 양심입니다. 양심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여기에 들어와서 자기만을 중심삼고 속닥속닥하고 자기만을 칭찬하고, 자기만을 좋아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를 잘한 것이고, 결국 하나님은 우리 양심에 들어와 계시고 싶어하신다는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게 되면 타락한 인간이 예수를 믿어 가지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아까 말한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 될 수 있는 본연의 부모, 본연의 조상이 있다면 그 조상은 더더욱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도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러면 양심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을 거기에 모셔 놓고 '아이고, 내가 터져 죽겠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관계는 '네가 나를 마음으로 사랑하느냐? 즉, 마음속에 있게끔 사랑하느냐, 없게끔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은 가장 귀하기 때문에 그 귀한 사랑도 마음속에 집어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자동적으로 마음속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 사랑은 영원한 사랑, 불변의 사랑, 길이길이할 수 있는 사랑이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명사 중에서 최고의 명사로서, 문학에서 소재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온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온 사랑은 내 것이나 네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중심체를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다음엔 내 것이기 전에 상대의 것입니다. 그 다음 그와 내가 하나되어야 사랑이 내 것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귀한 사랑, 영원한 사랑, 불변하는 무한한 가치의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됐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당당하게 나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겸손하게 받들고 위하는 자리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원칙이 거꾸로 되어 있다구요. 미국 사회에 있어서 가정을 보거나 부자간의 사랑관계를 보면 전부 다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되고 헝클어졌지만, 부모의 사랑,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사랑만은 본질에 가까운 사랑이라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아들딸에게 '나는 대통령이니 나를 알아 주라. 나는 대통령이니 네가 나를 사랑해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부모가 있어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데는 굶어도 좋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러한 등등의 문제가 우리의 생활에 엇갈린 결과로서 반영되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가정은 이상과 행복과 사랑의 기점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고 갖추어야 할 가치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들이 가만 보니 아버지는 윗자리 같고, 자기는 아랫자리 같거든요. 그 아들은 아버지 것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아들이 하나님 자리를 갖고 싶어 '아버지 한번 그 자리를 주시옵소서' 할 때에 아버지가 '야, 이놈아, 너는 그럴 수 없어!'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마음의 중심이 되고, 우리 인간은 몸과 같이 되어 서로 안팎관계와 같은 입장에 섰다는 거예요. 그렇게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섰더라도, 또 알고 보니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으니 창조의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거예요. 인간은 그것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의 힘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되는 거예요.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귀납적으로 따져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은 일남일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근본된 존재이기 때문에 결과적인 존재는 근본적인 그 모체를 닳아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씨는 두 조각이 한 꺼풀로 씌워져 있는 것입니다. 콩과 같은 것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거예요. 콩을 심으면 두 잎이 나와 가지고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분 가운데 있는 두 성품이 하나되어 가지고 창조의 능력을 발하였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갈라진 것이 완전히 하나 되어 가지고 종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힘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을 창조한 것같이, 그런 걸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 창조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창조의 능력을 우리 인간에게 부여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며 기뻐하시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준 것이 자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부모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상대가 없어 서는 안 되는 것이요, 자녀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랑을 완전히 받은 사람이라야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요 천리법도이기 때문에 이 원칙과 천리법도에 합격되려면 이것을 다 갖춰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우주가 그를 환영하지 않고, 그는 이 존재세계로부터 추방당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고통이 오고 슬픔이 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것인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행복의 본향이요, 행복의 기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의 사랑이 그리운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인 아내의 사랑이 그리운 것입니다. 그 다음엔 자식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아이고, 나는 부모의 사랑이 싫어. 상대도 싫고 자식도 싫어'라고 하며 암만 떼 버리고 떼 버리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아니고는 하나님과 만나서 자리잡을 수 있는 행복의 터전이 이 우주 안에 없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요, 당연한 욕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인간 가운데 어떻게 나타났느냐 하면, 부모의 사랑으로 나타났고 부부의 사랑으로 나타났고 자녀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기 마련이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자녀를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고귀한 인간의 가치적인 기준이 절대적인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무궁토록 맺어질 수 있는, 불변의 사랑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관계맺을 수 있는 이상적인 개인과 이상적인 가정이 출발해야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종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된 여러분은 자식이 결혼하여 그의 아들딸이 없으면 기뻐요?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현실 인간의 실상과 종교의 역할

오늘날 인류는 이렇게 무한히 가치 있는 인간의 권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자리를 찾아 가지고 그와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세상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사랑을 받았다. 나는 당당히 그런 자리에 있다'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라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인간은 상반된 두 목적을 지향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장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내일 저녁과 모레 저녁에 참석해서 세밀한 내용을 알기를 바랍니다. 결국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고 미완전하여 이상향을 찾아가고 있는 인간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목적하시는 결과의 자리에 못 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이런 고장난 인류를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회복시켜야 됩니다. 고쳐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류역사과정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수리공장. 그 수리공장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이 곧 종교입니다.

세계 수많은 문화의 배경이라든가 민족적인 환경이 다른 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맞게끔 수많은 종교를 만들어 모아 가지고, 손가락 발가락처럼 벌어져 있는 것을 점점점 통합해서, 지금은 4대 종교문화권으로 형성된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유교 문화권입니다. 인간들은 비진리의 종교는 몰아냈습니다. 최후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결과는 심은 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조상이 몸과 마음이 갈라져 싸우는 비극을 심어 놓았으니. 그와 같은 결과의 세계가 나타나야 되기 때문에 마음의 사람을 중심삼은 세계와 몸의 사람을 중심삼은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은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은 하나님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몸은 악신의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선신과 악신은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존하는 한 언제까지나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를 두고 보면,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나,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들도 나름대로 재림사상이 있어 가지고 전부 다 세계 인류가 잘 살고 종교를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금후에 있어서 세계의 문제는 무엇이냐? 종교문제입니다. 사상적인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더라도 종교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상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맹목적으로 해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원칙을 따라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은 원칙에 맞는 공식노정을 따라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종교 출현의 필요성

우리 인간이 타락하여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종만도 못한 입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끌어올려야 되는데, 수리공장에서 수리해 가지고 올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의 종교 가운데 종의 사명을 맡는 종교가 나와야 하고, 양자의 사명을 맡는 종교가 나와야 하고, 아들의 사명을 맡는 종교가 나와야 합니다. 나중에는 부모의 사명을 완결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프란시스코나 버클리를 중심삼고 새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뉴 에이지(new age)니, 뉴 에이지 프란티어(new age frontier)니, 뉴 프로펫(new prophet)이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은 어떻고, 어떤 것은 어떻고, 다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맞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종의 종교에서 양자의 종교로 접붙일 수 있는 사명을 하게 될 때를 새시대라고 하고, 마찬가지로 양자의 종교에서 아들의 종교로 접붙일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때에도 새시대라고 합니다. 또 아들의 종교에서 부모의 종교를 찾아 나가는 때는 언제나 예언자가 나와 가지고 새로운 시대라고 증거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최후에 도달할 곳은 어디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적인 가정까지 가야 됩니다. 아까 말한 그 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즉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본연의 기준을 갖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의 참된 그 기준에 도달해야 깁니다. 우리 인류는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못 올라갔습니다.

모든 종교의 일반적인 가르침

종교는 고장난 인간을 수리하는 공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리공장의 교육방법은 어떠해야 되겠느냐? 마음과 몸이 싸우니까 그것을 그냥 놓고는 고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시느냐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거시키는 놀음을….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몸을 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어 말하자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이 가자는 길과 반대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몸이 좋아하는 교만,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그것을 없애려고 하니, 하늘편은 그 반대의 길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치라고 하고,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세계 4대성인의 자리는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고 선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주의를 주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적인 성인의 도리를 중심삼고 오늘날 역사적인 인간세계의 윤리도덕관이 성립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종교의 교주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 하면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산 사람들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시키고, 자기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을 하면서 죽어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와 있는데, 흥하는 길과 망하는 길, 선과 악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남을 위하여 사는 데서만이 흥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고 불복종할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에게 열 명의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열 친구를 대해서 전체를 봉사하고 희생하며, 생명을 걸고 그들을 위해 살게 될 때에 그 열 친구들은 그 사람을 위할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 친척이라든가 자기 친구들 앞에까지 데려다가 소개해 주며 자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서 열 사람에게 전부 다 나만을 위해 달라고 할 때에는 한 사람뿐만 아니라 전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없어지니까 망하는 것이요. 많아지니까 흥하는 거예요. 이쪽은 악이 가는 길이요, 이쪽은 선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선과 악의 모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적인 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악한 흉내는 물론 악한 길에 들어서실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악의 본질이기 때문에, 선의 자리나 선하라고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람은 그 중간에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요. 몸적으로 가면 왼쪽으로 가는 거라구요.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이 이익 되고, 왼쪽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은 망하고 사탄이 이익 되는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망치게 할 수도 있고, 사탄을 망치게 할 수도 있는 중심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그 거주지는 어디냐? 이놈의 몸뚱이, 몸뚱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이 몸뚱이를 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역사적 종교가 그런 입장에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몽뚱이를 치는 것은 지극히 힘듭니다, 몸과 마음이 비슷비슷해서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마음이 몸을 끌고 갈 수 있도록 마음에 몇 배의 힘을 보충할 수 있는 또 한가지 길을 하나님은 강구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온갖 정성과 생명을 다 바쳐 그 마음의 힘을 받으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정성들여 기도하는 길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입니다.

외적인 사탄의 근거지를 타파시키기 위한 이러한 하늘의 작전이 있음을 보게 될 때에, 어떤 종교든지 그러한 내용을 부정하고 나온 종교가 없는 것을 봐서 하나님이 있는 한 그 길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있는 한 하나님은 절대 계시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종교가 중심종교인가

그러면 4대성인을 중심한 4대 종교 가운데에 어떤 종교가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종교요, 중심종교인가를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영계에 들어가서 깊은 내용을 탐지해 가지고 결과를 확인해 보니,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본연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야 되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행복해야 되는, 이 4대 요건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는 종교여야만 하나님이 중심종교로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피를 많이 흘리고 생명을 바쳐 나온, 보다 희생적인 종교라야 됩니다. 그러한 종교가 하나님 앞에 가까운 종교이기 때문에, 그 종교는 세계 종말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하늘편을 담당할 수 있는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4대성인의 종교를 볼 때에, 불교나 유교나 회회교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격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만은 이 땅에 와서 주장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말이예요. 인류역사시대에 있어서 단 하나의 독생자라고,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선 것을 선포했습니다. 성경 요한 복음 14장에 보면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했느냐? 신랑 신부로서 만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한 나라를 중심삼고 실체를 가지고 이루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다시 오겠다는, 신랑 신부의 약속을 남겨 놓고 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종교가 해야 할 일

그런데 죽은 예수님을 믿어 가지고 예수님이 죽은 지 4백년만에 로마를 정복하고 2천년 동안 세계적인 기독교를 형성했는데, 만약에 예수님이 죽지 않았으면 얼마나 빠른 시일내에 이 세계를 전부 기독교 문화권으로 만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죽지 않았으면 오늘날 유대교는 유대교 만으로 남아지지 않고,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한 세계적인 종교로서 세계 적인 이스라엘권을 형성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유대교인들은 '아, 미스터 문이 예수를 믿으니까 저런 말을 하지' 할지 모르지만, 안 그렇습니다. 영계에 가 보라구요. 내가 말한 것이 틀리다고 생각된다면 죽어 보라구요. 지금 이 시간에 내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앞으로 이틀 더, 마지막 날까지 나와서 말씀을 들어 보라구요. 들어 보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유대 나라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 비참한 운명의 길을 가지 않고 어떠한 나라보다도 행복한 나라가 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사명은 인간이 잃어버린 4대 목적을 다시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섰지만 두 가지는 못 이루고 갔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려면 신랑 신부를 찾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죽어 가면서 최후에 남겨 둔 말씀이 '신랑 신부'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양잔치는 무엇이냐? 6천년 전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선한 부모, 참된 부모를 모셔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악한 부모가 되었으니 이것을 다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한 부모의 기준으로 등장시키는 결혼식이 어린양잔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주님은 구름 타고 온다'라는 관념 보다도, 주님은 이러한 본연의 내용을 해결하기 위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렸으니 묵시록에서 찾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알파요 묵시록은 오메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부모가 이 땅의 끝날에 있어서 기필코 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 부모를 모셔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사랑의 가정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이상세계, 종족과 민족을 초월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하나님이 하나의 완전한 사람과 하나의 완전한 가정과 하나의 완전한 종족, 완전한 국가, 완전한 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세계적인 종교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부모가 나오지 않고는 그 뜻이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늘날 기독교가 있는 것이요, 수많은 종교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이루려는 것이 이상적인 종교의 출발이 되는 것이요,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오늘 제목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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