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제가 소개받은 문선명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나 사이에는 통역이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벙어리와 같고, 내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은 귀머거리와 같습니다. (웃음) 통역을 해본 사람은 통역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통역을 중계로 하지 않고는 나와 여러분은 서로 마주 보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듣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통역입니다.
미국 책임자가 나와서 나를 소개하기를 영계를 통하느니, 혹은 계시를 받느니 하는 내용을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영적 세계의 현상도 필요하고 그런 내용을 우리가 깨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영적 세계의 일이 어떻게 우리 인간생활에 적용되며, 또 진리를 어떻게 우리 생활권내에 실천시키느냐 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영적 현상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람을 통해서 한때의 일로 그치지만, 진리라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진리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도 그런 관점에서 근본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해왔습니다. 오늘은 영적 세계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말씀 제목이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이므로 이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현재 세계정세를 두고 볼 때, 인류가 금후에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세계인류로서 궁금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계를 올바로 지도해 주실 것은 틀림없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세계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는 사람들이 내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하나님, 하나의 세계종교라는 이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우리 인간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 이 전세계 인류를 빼놓고는 그러한 것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인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고, 인류를 통해서 경륜하신 뜻을 이루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형태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세계적 종교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은 여기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 전세계 인류 가운데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시느냐 하는 것을 잠깐 얘기해 봅시다.
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뭇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조건으로 작용이 필요합니다. 작용을 통하지 않고는 존재를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는 데는 그 자체가 혼자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용하는 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 이라는 관계가 인연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작용이 벌어지는 현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주체가 있고 대상이 있는 곳에서 작용이 벌어져야 계속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데 손을 이러고 이러면 여러분은 웃으며 저 사람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조그마한 대상이라도, 눈에 보일락말락하는 그런 하나의 상대가 있어서 그것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이러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제일 되시는 분인데 그분이 아무도 없는 데서 크게 혼자 '하하하' 웃고 춤을 추고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무슨 상대라든가 여기 이런 물잔이면 물잔 같은 것을 하나 들고 감상하면서 웃고 춤을 춘다면, 그때는 이상한 대통령이 아니라 정상적인 대통령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적인 존재, 대상이 얼마나 귀한가를 우리는 여기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온 우주의 중심존재가 되시는 하나님,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좋아하고 웃으면 하나님도 역시 이상하다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시고 유일무이 하신 하나님이지만 지극히 조그마한, 먼지만한 것 하나를 가지고 웃고 좋아하시면, 그 하나님은 정상적인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역시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그 대상을 이 피조세계에서 취한다면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것은 식물이 아닐 것입니다. 동물도 아닐 것입니다. 물론 식물보다 동물은 좀 나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니만큼 최고의 것을 상대해야 할 입장에 서 계시기 때문에…. 만물 중에서 최고의 존재가 무엇이냐 하면, 이것은 유치원 학생에게 물어 보더라도 다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사람은 걸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피조세계를 짓고 인간을 지었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인연을 갖지 않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면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목적과 지으신 그분의 목적이 따로따로 달라서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결합할 수 있는 일치점을 찾지 못한다면 사람과 하나님이 공동으로 기쁠 수 있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고의 그분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점인 그 곳은 우리 인간의 소원의 기점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그 목적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작용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람의 마음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최고의 목적을 바라고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만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분과 사랑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자기 것 만들고 싶지 않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남녀를 물론하고, 아무리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물론하고, 병신이나 병신이 아닌 사람을 물론하고 그 자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지, 가능하다면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최고를 바라는 데에 있어서는 평등합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도 점령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면 하나님만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점령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는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작용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작용이 계속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양심의 작용이라는 것은 방대하고도 위대한 목표를 향해서 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은 얼마나 크냐? 작게 보면 지극히 작고, 넓게 보면 온 우주보다도 넓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욕망은 하나님보다도 더 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욕망은 우리 인류가 생겨난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변동 없이 역사의 방향과 더불어 작용하며 움직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서로서로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 '아, 미스터 문이 로스엔젤레스에 왔다는데, 어떤 사나이인가 한번 가 보자' 해 가지고 왔는데, 자신이 손해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혹은 사람들이 번화가에 나가면서 '나는 오늘 십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간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잠시 녹음이 안 됨)
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손해가 나게 될 때는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는 데도 그런 것입니다. 상대를 대해 가지고 자기가 손해를 보겠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 여자 둘이 합하려면, 두 사람이 일치될 수 있는 기준만 영원히 남는다면 하나되어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해나는 길에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왕창 망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작용하는 데 있어서 작아지는 원칙이 있다면 이 방대한 우주는 형성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므로 둘이 작용해서 플러스될 수 있는, 서로가 이익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큰 목적을 향해서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학실험을 할 때에도 실험하는 사람이 원소와 원소끼리 아무리 강제로 작용을 시키려고 해도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존재가 서로서로 보다 나을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에는 작용하지 말라고 해도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의 원칙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요, 이 주체와 대상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두 존재가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목적적인 내용이 없이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변증법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양심작용이 있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녀석아, 너는 양심도 없는 녀석이다'라고 하면 전부 다 화를 내게 됩니다. 따라서 양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최고의 권위와 최고의 자리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하고 난 후에 양심작용이 또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만 점령하면 몽땅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가 그 안에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은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손해나는 데에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양심작용은 믿지 못하는 작용을 하는 것 같고, 손해나는 작용을 하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최고의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끔 작용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손해가 나고 인간도 손해가 나면 그 작용은 중단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어느 한때에 이것이 이익 될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이 있게 되면 우리의 양심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양심작용을 볼 때, 작용이 있기 위해서는 손해가 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 양심작용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결과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이익 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주체 되는 분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계실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는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인체를 중심삼고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 인체 중에서 제일 귀한 곳이 어디냐 하면 손보다도 머리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단계로 보면 3단계로 되어 있고, 구멍으로 보면 일곱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 귀는 사방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7수가 완성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일곱 구멍이 있는 것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척 일어나면 거울을 바라봅니다. 이 모양이 어떠냐 하고 말이예요. 이 눈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 얼굴 가운데에서 이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코는 아담 해와로 우리 인간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입은 만물,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만물을 상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만물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느냐? 즉, 머리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느냐 하면 눈 때문에 돌아가는 거예요. 눈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눈이 없으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돌아가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굴 가운데 제일 앞장선 것이 뭐냐 하면 코입니다. 이 우주에서 제일 선두에 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입니다. 이 코는 두 구멍이 모여서 하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도 남자 여자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코가 하나 막힌 것과 마찬가지로 답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 입을 통해서는 만물을 섭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넘어갑시다.
눈을 가만 보면 말입니다. 내 눈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그것 물어 볼 게 뭐 있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생겨났지'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너 어머니 아버지의 눈은 없었어'라고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틀림없이 눈이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눈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쭉 올라가서 그 눈의 근본조상이 누구냐 할 때, 태초의 인간조상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조상이 태어나게 될 때, 눈이 생겨난 것입니다. 눈을 가지고 땅에 태어났습니다. 땅에 태어났는데 그 눈은 땅을 보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빛을 보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눈 자체가 알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벌써 천문학적인 견해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또, 더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의 눈이 깜빡깜빡합니다. 태양열에 의해서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면, 복사열에 의해 눈에 있는 수분이 증발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눈을 축이기 위해서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벌써 알고 양쪽 눈꺼풀이 깜빡깜빡하게 되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눈이 이렇게 깜빡깜빡하는 것을 알고 태어났어요? 태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라구요. 태어나고 보니까 그런 거라구요.
여러분, 여기에 눈썹이 있습니다, 눈썹. 이 눈썹은 공기 중에 먼지가 있어 가지고 눈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방지하기 위해 준비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눈썹이 공기 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또, 눈 위에 큰 눈썹이 있는데 이것은 왜 보기 싫게 시커멓게 돼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뭐하려고 눈썹을 이렇게 시커멓게 붙여 왔어요? 사람은 서서 다니는데 땀이 흘러내려 귀한 눈에 고이면 큰일이 날것을 벌써 알고 방어선을 그어 놓은 것입니다. 눈썹이 없으면 틀림없이 이 깊은 골짜기에 물이 모여들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렇게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싹 비켜나가게 되어 있다구요. 이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들어가게 안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 코는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알아요? 만일 이 코가 뒤집어졌으면 어떻겠어요?(웃음) 코는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또 이 코가 위에보다 아래가 넓으냐 하는 것을 생각해 왔습니까? 아래쪽이 넓어야 길을 터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더라도 전부 다 옆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금이 없는 사람 있어요?
입을 봐요. 입도 땀이 흘러내리면 옆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되어진 전부가 알고 갖추어 태어났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연구해 가지고도 다 알지 못할 만큼 완전무결하게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 전체를 보면 우주의 신비의 왕궁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만 수억의 의학박사의 연구재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멋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터전 위에서 우리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 태어날 때 그것을 몰랐어요. 태어날 때 알고 태어났소. 모르고 태어났소? 모르고 태어났다구요.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는 몰랐지만 알고 있는 분을 동기로 해서 결과적인 존재가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안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든, 뭐 절대자든 이름은 뭐 아무거나 붙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다, 혹은 계시다고 하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을 때는 큰일이 날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소련의 무슨 사상 전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하나님을 빼앗기 위한 세계적인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점령 안 하겠어요? 점령하려고 하지요? 보이기만 하면 큰 사태가 벌어진다구요. 그러니 이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안 보이는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웃음)
만일에 여러분이 보이는 하나님을 점령했다면, 세계가 그것을 알고 전부 다 빼앗으려고 할 텐데 어디에 감추겠어요? 감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점령할 사람도 연구를 해보면 '아,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자기만이 알고 남은 모르는 곳에 감추어 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그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만이 알고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그곳은 우리 양심인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을 점령했다면 여러분은 남이 볼 수 없는 양심 속에 두어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을 감춰 두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만이 알려고 나만이….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이 그럴 수 있기 위해서 무한히 커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또, 우리 인간은 최고의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데는 누구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상대적 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근접한 자리에서 사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가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위가 되면 좋겠어요, 며느리가 되면 좋겠어요, 양자가 되면 좋겠어요, 양녀가 되면 좋겠어요? 인간은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되려고 합니다. 결국 아들딸의 자리가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여기 오신 분들 가운데 기독교를 잘 믿는 분이 있으면 '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다' 하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된 사람이 있습니까? 되려고 하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되려고만 하고 된 자리에 못 섰느냐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그 자리에 섰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간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창조의 능력이 있는 분이므로 인간은 그 창조의 능력까지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즉, 상하관계입니다. 아들이 '나, 아버지 자리에 한번 오르고 싶소'라고 할 때, 하나님이 '야 너 그만두어라'고 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동등한 안팎관계, 마음과 몸과 같은 관계에까지 우리를 놓아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아들로 만들고, 둘째는 하나가 되고, 세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까지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기뻐하시던 것까지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 나이가 많으신 분이나, 혹은 젊은 사람들도 다 경험이 있겠지만 부모가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전부 다 자기가 갖고 싶어합니다. 자기 것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면 아버지 것은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부모도 자기보다 못한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어요? 아기를 낳은 부모는 그 아기가 못생겼더라도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생겼다고 하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부처끼리도 첫 아기나 둘째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를 예뻐하고 귀여워하면서 잘생긴 아이면 잘생긴 아이일수록 서로 자기 닳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면 아들딸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시시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동등한 자리요, 동위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최고의 것을 희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가로, 인간은 작품으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자기가 무엇을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안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들고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보고 '야, 이녀석아 생각한 대로 안 되고 왜 더 잘됐어? 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잘 만들어진 것은 잠을 잘 때도, 혹은 전쟁이 나 가지고 피난을 갈 때도 품에 넣어 갖고 다니고, 어디 가든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능력이 없다면 모르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내버려 둔 것과 같이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절대자이니 하나님이 좋아하면 인간도 좋은 것을 느껴야 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인간도 들어야 되고, 하나님이 가면 인간도 같이 갈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부자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 아들딸들이 성숙할 때까지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어디에 갔느냐고 야단인데, 더구나 본연의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자녀들이 하나님과 떨어질 수 있고 갈라질 수 있어요? 꿈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안팎으로 한몸과 같은 관계가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을 중심삼고 사랑 가운데에 사는 인간이 됐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인간이 이 땅 위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는 인간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그런 자리가 인간본연의 가치의 자리라면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인가 생각해 보라구요.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에게 한한 것도 아니요, 여자에게 한한 것도 아니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원히 인간에게 부여된 특권적인 절대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한분이신 그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에 있어서 목적은 하나밖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면 마음과 몸이 서로 배치되는 목적권내에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몸이 거부하고, 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양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대상으로 설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을 향할 수 있는 본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 있는 인간을 타락한, 혹은 고장난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몸이 싸우는 것은 본래부터 그랬다, 선과 악은 본래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악과 선은 상대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선이 플러스라면 악은 또 하나의 플러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가 마이너스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인류역사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그런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상을 씨라고 하면, 씨를 심었으면 세계적으로 거둘 때가 되면 인류의 가을절기,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면 면양과 산양을 갈라 세운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산양은 주인이 없는 양을 말하는 것이요, 면양은 주인이 있는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두 갈래의 길을 심었기 때문에 그것을 거둘 때가 되면 양심을 중심삼은 세계와 몸뚱이를 중심삼은 세계가 자연히 발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즉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몸을 거부하는 이 싸움의 결과로 세계는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이 전복, 혹은 연결되면서 역사는 전쟁사로 결과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인류를 그냥 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작전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 다 죽였다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중심삼고…. (녹음 잠시 중단)
마음은 선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몸뚱이는 악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은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마음은 하늘, 천국의 초소가 되어 있고, 내 몸뚱이는 지옥의 초소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여기에서 선과 악이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과 일치하려고 하고 사탄은 선에게 져서는 안 된다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새로운 작전을 인류 앞에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리공장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어떠한 운동을 하느냐? 종교는 양심을 절대적인 자리에 놓고 몸뚱이를 때려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싫다고 하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고, 편한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 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희생하고, 고통의 자리로 들어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반대인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식을 하라. 고생을 하라' 하고 밤낮 몸뚱이에 브레이크를 거는 거라구요.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는 종교는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불교나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과 마음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싸우니까 몸뚱이를 강제로 굴복시키는 하나의 법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몸은 고행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마음에다가 2배 3배의 힘을 퍼부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가서 거기에 습관화시켜서 마음의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몸뚱이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있는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본질적인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무한히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방법을 종교를 통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역사적인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설정했고, 그 종교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해 가지고 끝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종교 가운데에는 단계적으로 여러 가지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종의 종교가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종교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의 종교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아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이념을 가지고 나오는 종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그런 세계적 종교권을 만들어 가지고 나온 것이 4대 종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뉴에이지(newage)니, 무슨 새시대니 하는 이런 말을 알 것입니다. 종의 시대에서 양자의 시대로 넘어갈 때도 새시대요, 양자의 시대에서 아들의 시대로 넘어갈 때도 역시 새시대요, 아들의 시대에서 앞으로 올 이상적인 부모를 찾아 나가는 시대도 새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디에 가서 머물 것이냐?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종교, 제일 중심적인 종교를 우리는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불교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기독교인은 기독교가 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회회교는 회회교, 유교는 유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통일을, 혹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 종교가 되려면 그냥 그대로 주먹구구식으로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의 목적과, 인간 본연의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본래의 원칙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치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가를 봅시다. 세계에는 4대성인이 있습니다. 하나의 인격을 위한 종교관념을 가지고는 세계적인 성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교의 종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주의를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국가를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종교라면 세계적인, 세계를 위하는 주장을 갖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타락하기 전, 고장나기 전 그 원칙기준에 일치된 내용을 갖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교를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상징적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악을 행하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행동적인, 윤리적인 면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법적인 하나님은 가르쳐 주지만 인격적인 기준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마호메트를 중심한 회회교를 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한 손에는 코란경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잡고 지금까지 포교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바라는 종교의 입장과 같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상한 것은 4대성인들이 전부 다 인간을 중심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주의를 주장한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들고 나와서 가르친 성인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제일 깊이 똑똑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의 자리요,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자리이며, 그 다음에는 창조능력까지 갖는 자리입니다. 그런 내용을 가르쳐 주는 종교 지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라는 양반을 우리가 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는 자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결정적인 선포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기준을 설파했고, 그 자리에 섰다고 자부하고 나선 이는 단 하나 예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나는 하나님 안에 있으며,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며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체를 말했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1과 제2의 내용을 설파한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째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니, 아담과 해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가운데에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안에 주체성과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와 대상으로 하나된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체적인 능력이 상대적인 능력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되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계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것을 위업으로 받은 것이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씨든지 두 조각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콩 같은 것도 두 조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는 근본의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과 한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과 같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교를 중심삼고 4천년 동안 섭리하신 것은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예수를 죽이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으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믿지 말라고 준비한 것이겠어요? 틀림없이 믿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오늘날 유대교는 이 땅 위에서 없어졌을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합한 새로운 종교형태를 갖추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유대교의 대표적인 제사장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선민이 예수님을 중심존재로 보내주마 약속하신 메시아인 줄 알고 모셨더라면 예수님은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수백의 교파로 되어 구교니 신교니 하고 싸우는 종교, 퇴폐적인 종교 형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님이 왕인데 혼자 사는 왕을 바랐겠어요? 혹은 제사장인데 혼자 사는 제사장을 바랐겠어요? 하나님도 틀림없이 신부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가정을 가지고 왕이 되었다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한몸이 되고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아들딸이 되어 자녀를 가졌다면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손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으라고 보냈어요, 죽으라고? 천륜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된 아들이 되었고, 한몸이 되어 아버지를 대신한 첫째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창조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죽어 갔기 때문에, 죽는 그 시간에 신랑이요 신부라는 말씀을 남기고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탄식한 곳이 많습니다.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는 탄식은 그 불이 붙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 예루살렘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으려 했지만 너희들이 품기지 않았다'고 탄식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최후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하게 된 곡절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구주가 가면, 구해 주는 사람이 가면 그 뒤를 구원받는 사람도 따라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에 자기를 따라 나오려는 사람은 십자가의 죽음길을 걷지 않고는 올 수가 없기 때문에 후대의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할 내정을 알고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3차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다 잃어버리고, 기독교의 수많은 사람이 몸뚱이를 말할 수 없이 찢기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한 국가적인 기반, 혹은 종교적인 기반은,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승리적인 터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 나 버리고 오늘날 기독교는 공중을 중심삼은 국가의 새로운 이념을 찾아 나서는 비참한 운명에 섰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나라와 같이 교회를 중심삼고 영육을 중심삼은 땅의 기반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라만 바라보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같은 기반을 새로 찾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사탄세계를 승리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묵시록에 보면 어린양잔치, 혹은 신랑 신부가 만나서 잔치하는 날이 온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오신 예수님을 중심삼고 뜻을 다 이루었으면 다시 올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자리가 어디냐 하면 인류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 여자가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처음으로 지상세계에 가정적 이념이 성립되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사는, 죄 없는 가정의 중심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인류는 타락한 선조를 가진 인간들인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부모를 못 가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알파로 인연맺었던 것이 저끄러졌기 때문에 오메가와 같은 묵시록에 가서 맞춰 놓은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는 날이 인류의 소망이요, 수많은 종교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류의 참된 부모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부모 없이 형제끼리 싸우던 이 세계에 비로소 새로운 질서를 세워 가지고 천륜에 맞는 인류의 이상적인 가정의 기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문명권과 역사성을 지니고 왔지만, 이제 새로운 부모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의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맞겠다고 합니다.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 마귀한테 실패했던 하나님이 권위 있는 하나님이요. 승리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개인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구원받는 때가 되어 새로운 역사시대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비로소 가정에서 만나고,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세계의 출발이 비로소 가정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출발의 기원이 되어 새로운 종교형태로 나타나면 그 결과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오시는 참된 부모를 국가 민족을 초월하여 모시고, 그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종교의 형태를 이루어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부모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어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들이 되기를 바라서, 오늘 여러분 앞에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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