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도 불순한데 이렇게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금후에 하늘의 많은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기 이 사람은 벙어리와 같은 입장이고, 나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여러분은 듣지를 못하니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웃음) 이 두 간격을, 아니 두 환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을 낫게 해줄 사람이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인 것입니다. (웃음)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여러분의 많은 후원과 동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세계의 많은 지성인들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문제시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금후에 민주세계가 갈 길이라든가 혹은 반대되는 공산세계가 갈 길은 인간으로서는 수습할 수 없는 차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전세계 인류가 알게 된다면 그분이 목적하는 바와 그분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해 잠깐 말씀을 하고 지나갑시다. 이 우주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힘, 힘은 아무런 내용 없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힘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선행조건이 있어서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작용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혹은 나 혼자 손을 이렇게 저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무엇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잡으려고 하게 될 때는 미친 사람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은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 여건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분이 있다 할 때, 그분 혼자서 아무도 없는 이런 큰 강당에서 말을 하고 웃고 노래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컵을 하나 들고 말을 하며 흥분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 그 사람은 극히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웃음) 더 높이 올라가서 이 우주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 절대자가 계시다 하더라도 그분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웃고, 좋아한다면 정상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작은 조그마한 무엇 하나를 가지고, 그것을 보면서 세상이 놀랄 만큼 기뻐하고 소리를 치더라도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상대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을 때 작용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은 누구나 다 부정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 선(先)의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만 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이 필요한 것이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의 관념에 넣어 두기를 바랍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는 그 주체나 대상이나 서로 손해보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더 나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이 제시되게 될 때에는 곧바로 작용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나 대상이 작용을 하는 데는 서로서로가 플러스될 수 있는 목적의 결과를 향하여 작용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존재가 작용해 가지고 손해나는 데는 절대 작용을 안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워싱턴 번화가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아침에 여기 나올 때 일전 손해보기 위해서 나왔느냐?'고 묻게 될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나오게 될 때는 반드시 이익,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떠한 요건을 바랬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손해나기 위해서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이익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이익이 되기를 바라서, 무엇이 얻어지기를 바라서 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만일 마이너스가 됐다 할 때는, 암만 오라고 해도 다시 안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서로가 좋은 목적의 결과를 바라 가지고 작용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녀간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동기도 두고 보면, 서로서로가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서로가 손해 될 수 있는 것이 보여지는 자리에서는 암만 사랑을 하려고 해도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러스될 수 있는 자리라면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연적으로 묶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존재하는 이 세계를 볼 때, 작게는 원자세계에서부터 크게는 태양계까지 서로서로 작용하는 데 있어서 자기들이 영원히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둘 사이에 관계를 가지고 작용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예서 보게 될 때 주체와 대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화학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원소끼리는 합하기를 원치 않는데도 대번에 합하고, 어떤 원소는 합하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힘을 가해도 합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서로가 합함으로 말미암아 이익될 수 있게 될 때는 작용하지만, 손해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만일 손해될 수 있는 세계 인데도 하나될 수 있다면, 이 세계는 파괴될 것입니다. 작용해 가지고 보다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만이 대우주의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람으로 돌아와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는 양심작용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 나서 좋지 않은 일을 하려면, 마음은 언제나 파수꾼인 양 '야 이놈!' 하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 작용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심을 가진 우리 사람은 결과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결과적인 존재가 끊임없이 양심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작용을 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 된다면 거기에서 어떠한 주체를 공인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양심작용은 내려가라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어떠한 높은 주체자 앞에 하나되고자 하는, 보다 가치적인 요구를 작용시키는 플러스적 요건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가 있어야 되고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양심이 없다고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일진대는 반드시 거기에는 주체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각국 나라 언어가 다르니만큼 백 나라면 백 개의 이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이름은 아무래도 좋지만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 확실하지 않은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좀더 실감적으로 한번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해 보자구요. 우리 눈이면 눈을 한번 예를 들어 보자구요. 우리의 조상의 조상을 쭉 찾아 올라가면 태초의 조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조상이 태어난 것은 이 지구성인 것입니다. 우리 조상의 눈은 이 땅 위에 태어나면서부터 천체의 태양이 있는 것을 벌써 알고 볼 수 있게끔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아하, 태양이 있고 땅이 있으니 이런 세계를 볼 수 있게끔 되어야 되겠구나' 하고 알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자신은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안 것과 같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을 깜박깜박하고 있습니다. 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복사열로 인하여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입니다. 눈의 수분이 복사열로 인하여 증발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이것을 축이기 위해서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부 다 알았다는 거예요.
그 다음 여러분의 눈썹을 보라구요, 이 눈썹. 이거 뭐하려고 스크린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어요? 이건 반드시 공중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라구요. 벌써 사람이 땀 흘릴 것을 다 알았다는 거예요. 만약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될 수도 있는데 다 막아 놨다구요. 여기가 깊기 때문에, 중요한 눈에 땀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이렇게 배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썹 자신이 이렇게 나올 수 있어요? 전부 다 이게….
여러분의 코는 왜 아래가 이렇게 퍼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게 이렇게 붙지 않고 거꾸로도 붙을 수 있다구요. (웃음)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되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이렇게 붙어 있다는 거예요. 직선이 되면 입이 위협하니까 이렇게 넓혀 가지고 커브를 치기 위해서…. 이 금 없는 사람은 없다구요. 그래서 입은 쏙 들어가지 않고 드러났다구요. 그 코가 알아서 그렇게 나왔느냐, 입이 있을 것을 염려 하여 코 자신이 그렇게 되어져 나올 수 있느냐 이거예요. 여기 또 콧수염이 있다구요.
여러분, 이 입을 보라구요. 입술이 발바닥같이 딱딱한 살이었다면 어떻게 될 뻔했느냐 이거예요. 말을 하는 데는 이게 얼마나 자유자재인지…. 또 혓바닥을 보라구요. 얼마나 기기묘묘한지 ….
오늘날, 그것이 맹목적으로 자기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그것을 알아서 전체에 대비하여 나설 수 있는 지식적 기대 위에 서 가지고 출발한 존재가 아닌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의학박사가 수십 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전부 다 한 부분 부분을 연구해서 박사니 무엇이니 하고 있다구요. 지금껏 연구해 가지고도 아직까지 밝혀 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얼마든지 있는데…. 태어나는 우리의 눈 자체, 코 자체, 지체 자체가 그걸 전부 다 알고 대비할 수 있게 태어났다구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라구요.
자, 그 모든 것을 모르고 그렇게 태어났어요, 알고 태어났어요? 모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알고 태어났습니다. 먼저 전부 알아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게끔 지식적 배열을 한 것을 볼 때, 박물학적이고도 천문학적인 견지에서 우리 자체의 존재성을 이루게끔 하게 한 그 주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아 그거 모르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라구요.
그러면, 그것을 알고 그럴 수 있는 대비적 여건을 배치한 그분은 누구냐? 그분을 왈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진화적인 문제니, 혹은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변증법적 발전이니 하는 내용이 문제가 되겠지만, 목적관이나 기준이 출발 당시부터 제정돼 가지고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 저녁으로 세수를 할 적마다, 얼굴을 볼 적마다 깊이 생각을 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신다 했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도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외로운 거라구요. 자기의 상대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 것이냐? 창조를 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상대적인 존재로 필요로 하는 존재는 이 만물지중에 어떠한 존재냐?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동물도 아니요. 식물도 아니요,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필요로 하시는데 만물지중에 사람이 최고이니까 사람 외에는 상대하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이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는데 일남 일녀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만든 것입니다.
신의 실존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조금 전에 미국 책임자가 나와서 이 문선생에 대해 소개했는데, 영계를 통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본인도 상당히 심각한 면에 들어가 가지고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하늘을 대해 신비스런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우주의 최고의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따지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에 답이 오는데, 그 답이 뭐냐 하면 우주의 근본 진리는 부자의 관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집에 모시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가정제도나 나라제도는 하나님이 소망하는 패턴의 제도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님이 창조 당시의 패턴으로 인간을 세우려 하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으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있는 것이요, 인간도 지음받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치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일치점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가치의 자리를 부여하려고 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대해서 어떠한 가치의 자리에 도달하려고 하느냐 하면, 그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욕망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잘못된 우리도 세계를 한번 내 것 만들고 싶어하고,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보고 싶어하고, 세계의 최고 권위의 자리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통치하는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와 더불어 하나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친구가 되고 싶고, 더 들어가서 그의 아들딸이 있으면 그의 사위가 되거나 며느리가 되고 싶고, 그보다도 더 들어가서 그의 아들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적인 주권자를 대해서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이것을 버리고 그 높은 분을 따라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분이 절대적인 하나님인데, 자기가 누구보다도 그 하나님 앞의 가까운 자리에 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모시고 다니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속에 감춰진 사랑,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까지 점령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의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애기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병신이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사람은 그 자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고 나야만 인간의 욕망은 비로소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바라는 자리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요구하시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의 자리를 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러한 자리를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부자의 관계 이외의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인 그분이 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구요. 그 권위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인간이 공동적으로 가져야 하는 권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되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된 자리에서 보게 될 때,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끼리 살림하는 사람은 잘 아는 바이지만, 가정에서도 그래요. 자기를 닮은 아기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난 아기가 있으면 전부 다 자기 닮았다고 그런다구요, 어머니나 아버지나. (웃음) 그건 여러분도 잘 알 거라구요.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도 우리 사람을 자기 닮게 안 만들 수 없다는 거라구요. 아들을 만드는 데는 자기 닮게 안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또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 못난 것을 싫어하는 거예요. 자기보다 더 잘났으면 좋아하지.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계를 추구해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하나님보다 못한 자리에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대로 아버지가 위에 있고 아들이 아래에 있으면 '왜 언제나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인 나는 아래에…' 하면서 아들은 아버지 자리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이런 욕망을 가진 인간인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제일 귀한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닮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어떤 자리에 놓아두려 하시느냐 하면, 안팎관계, 내적 외적 관계에 놓아두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신앙자들은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한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타락했던 우리도, 잘못됐던 우리도 그걸 바라는데, 아무것도 잘못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그 아들딸이야 두말할 것 없이 본성전…. 하나님이 그들 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안팎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으로 등장한 것이요, 우리 인류 조상인 아담 해와, 즉 본래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은 보이는 하나님으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신앙계에 있어서 혁명적인 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성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절대자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은 엄격히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라는 거예요. 하나, 그 자체를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 자체 몽땅, 전체를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거라구요.
하나님의 몸이 될 수 있는 권한,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우리는 상실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아담이 이름을 짓는 대로 되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 자체가 전부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 속에 천지를 지으신 주인이 들어오기 때문에 한 몸으로서 주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하면 이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속에서 말하는 것을 다 듣습니다. 또 자신이 원치 않는데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영계에 가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안 맞으면 천국도 좋지 않다는 거라구요. 안팎이 딱 들어맞아요. 딱 하나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세계에 가면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고, 또 같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첫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둘째로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째는 뭐냐? 가만히 보면 사람의 욕망은 최고 자리까지 바라기 때문에, 인간은 '아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걸작품인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놨구나. 나도 한번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봤으면…' 하는 욕망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계시는데, 남성 성품과 여성 성품을 합해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아담 해와를 형상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주체와 대상인 사람, 즉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거기에서 아들딸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최고의 걸작품인 인간도 인간이 창조했다는 결론의 자리에 세워 주기 위해서 우리 남자 여자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부부가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아들딸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기뻐하시던 그러한 기쁨의 위업까지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랑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갖고 있는 전체를, 사랑하는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이 몽땅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된, 우리 인간의 욕망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다 갖춘 자리에 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이 땅에 있느냐? 없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하나되어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완전히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낳은,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그냥 그대로 계승한 가치적인 자녀를 낳아 본 사람이 있느냐? 그런 부부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기뻐하던 그 기쁨을 대신 느낄 수 있는 가정을 가져 가지고 서로 사랑해 본 부부가 있느냐? 그런 부모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대신자로, 아들의 대신자로 설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돼 가지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닐 수 있는 인간이 됐을 것입니다. 신성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됐더라면 영원한 신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것인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개인이 되고,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 그러한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됐으면 그 세계가 다름 아닌 지상의 천국이요, 이 천국에 살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천상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분을 중심삼고 그 후손은 전부 천국가게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기도도 필요 없고 구주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옥도 안 생겨난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 땅은 지상지옥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타락은 어떻게 어떻게 되어졌느냐 하는 것은 내일과 모레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 관계상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물건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결과적 존재인 우리 자신들을 두고 볼 때 우리 자체는 두 가지 목적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뿌렸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질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그 현상이 열매 맺힐 때가 된 거예요. 그래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그냥 둔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구해야 됩니다. 아들이 죽었으면 다시 살리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구하는 기반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사람이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자리를 상실해 가지고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종도 못 되리만큼 떨어졌다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끌어올려 가지고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아들의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로 하나님은 끌어올리는 운동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그 종교 가운데는 세계적인 대표로서 종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양자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아들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러한 종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시는 데는 어떻게 교육하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과 몸, 이 둘이 싸우고 있으니 한쪽 편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몸을 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몸을 굴복시키는 첫째 방법입니다. 그 다음 둘째 방법은 뭐냐? 몸과 마음이 일대 일로 비슷비슷하니까 왔다갔다하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몸을 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싸움을 하는 여기에서 마음 편에 힘을 두 배, 세 배 강하게 주입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힘을 주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심정적 일치점을 하나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척 들어 보면 하나님은 완전히 사랑의 독재자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면 그렇게 사랑해 주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자리에 못 선 것을,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만 그런 악을 제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강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자식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체험이 얼마나 강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되면, 즉 몸뚱이를 사탄세계에 못 가게 하고 여기에 끌고 와서 습관만 들이면, 하늘이 찾고자 하는 본연의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그게 왜 그래야 되느냐는 거예요. 결국 하늘의 생명을 찾으려면 몸뚱이를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 몸뚱이를 살리겠다고 하다가는 하나님을,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높아지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배를 위하려고, 자기만을 위하려고 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금식을 하라, 절제를 하라, 몸을 쳐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교의 가르침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역사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기관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역사적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을 거예요.
여기 워싱턴이면 워싱턴에 꺼떡했다 하면, 뭐 뉴 에이지니 뉴 프런티어니 해 가지고 별의별 사람이 다 왔다고 합니다. 뭐 감리교면 감리교가 나올 때 그랬고, 몰몬교의 조셉 스미스면 조셉 스미스를 중심삼고 그랬고, 전부 다 자기가 뉴 에이지라고 말했기에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워싱턴 신문에도 나고 하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다 그렇고 그렇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찾아 올라가는 섭리를 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표의 종의 사명을 짊어지고 온 사람 다음에 양자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나와야 할 때에 가서는 반드시 새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계가 높아진다는 거예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비슷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최후에 부르짖는 새 시대에 와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들을 중심삼은 종교이념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이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시대가 오게 될 때는 마지막 시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인류를 구하려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제일 중심된 종교냐, 최고의 종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선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형태를 중심 삼고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 4대 종교로는 기독교, 불교, 유교, 회회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의 교주들은 전부 다 국가주의자가 아니고 세계주의자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도 위인은 있습니다. 여기 죠지 워싱턴이면 죠지 워싱턴은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위대한 사람이지만 영국을 중심삼고 볼 때는 원수라구요. (웃음) 참사람은 어디든지 원수가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원수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기독교만 해도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경은 못 넘어서 가지고, 자기 종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크리스찬이 아닙니다. 4대종교 종주들을 4대성인이라 말하고 있는데, 그 성인들 전부가 종교의 교주들이 되어 있다구요. 이게 우스운 일이라구요. 그가 서 있다면 그것은 자기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서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 그런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제일이냐? 누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냐?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이 내적 하나님이면 사람은 외적 하나님이 되어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완전한 부부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 해와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는 내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종주라야만 최고의 종주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종파가 다른 사람들, 즉 불교 신자가 오고 회회교 신자가 오고 유교 신자가 오고 기독교 신자가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어떤 종파를 지적한다고 해서 '그건 미스터 문이 좋아하니까, 그가 크리스찬이니까' 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칙을 통해서 볼 때 그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들은 후에 섭섭해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불교를 보게 된다면 영계와 하나님을 가르쳐 줬지만, 인격적인 신보다도 법적인 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교를 보게 되면 하나님을 그저 도덕적인 중심이라는 관점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 망하고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준다고 그랬습니다. 또, 회회교는 한 손에 코란경을 들고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종교는 하나님을 중심한 본질적 종교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럼, 기독교를 알아봅시다 왜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아니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여기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인간세계를 대표해 가지고 하늘 대해 아버지라고 제창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하나님과 인간이 상봉할 수 있는 자리인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 자리를 적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이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로부터다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라고 일체(-體)됨을 말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둘째번 내용인데, 이와 같이 하나님과 안팎의 관계에 일치점을 제창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신랑 신부의 길을 찾아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결속시키고 출발하여야 했는데, 십자가에 돌아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다시 오나니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로서 기다리라'는 약속을 남기고 갔던 것입니다.
지상에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이 그것을 이루어 가지고 기쁨으로 이 땅 위에서 아들딸을 보았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의 중심 책임자는 예수님의 후손이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다면 기독교는 하나됐을 겁니다. 여러 가지 잡동사니 시시한 것이 안 되고…. 이렇게 못 된 것이 비통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창조는 공중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공중에서 한 것이 아니예요. 땅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천국문 열쇠를 가져 가지 않고 땅에서 열 수 있도록 베드로에게 주고 갔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땅이 문제라고요. 이것은 문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의사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 들어가 알아보니 그렇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어디로 와야 되느냐 하면 땅으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목사 되는 양반들, 혹은 신부 되는 양반들이 있으면 '아, 저 사람은 이단자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영계에 가 보면 알 거라구요.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기도해 보라구요. 그렇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하늘만 바라보면 기독교의 발판은 다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다년간 기독교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에게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원수로 대해서 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기독교를 깨우쳐야 할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오늘 미국 땅에 와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반대하지만, 어디 선진국가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보자구요.
여러분, 주님이 오실 때는 그가 신부를 맞아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이 계획했던 창조본연의 타락 하지 않은 인류의 참부모를 가져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짓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을 제거시켜 버리고 다시 참부모를 대신하는 존재를 세워 세계적인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어야 하겠기 때문에, 그 사명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요 재림주와 상봉하는 날이 어린양잔치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번 아담으로 왔다고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세째번 아담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둘째번 아담인 주님이 올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지만, 세째번 올 주님 앞에는 나라가 있느냐? 나라도 없고, 종족도 없고, 가정도 없고, 어느 교파를 믿고 올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파로 시작한 것이 실패되었기 때문에 오메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문화의 창건과 새로운 전통적 역사가 시작될 것이요, 천상 지상세계에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지금 전세계의 종교에 있어서는 구세주가 오는 것이 절박한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적인 민주세계나 공산세계를 막론하고 세계 만민 앞에 있어서 외적으로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요구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 한분, 그 한 중심이 종교의 세계와 외적 세계, 이 둘을 합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비로소 이분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개인적인 패턴과 가정적인 패턴과 국가적인 패턴과 세계적인 패턴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터전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분이 부모로 오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적으로 종이나 양자나 아들의 입장에서 가르쳐 주었지만, 이제 최후에 남아질 하나의 우주종교로서 등장할 것은 부모를 중심삼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전통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입니다. 이것만이 하나의 우주종교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부모를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오늘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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