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이 볼티모어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무한히 영광으로 생각하며, 금후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과 같이하기를 마음으로 비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여기에 나선 본인은 동양 사람입니다. 본인이 새로운 하늘의 말씀이니, 혹은 새로운 시대의 계시니 하는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 단에 나섰는데, 이것이 여러분들에게는 처음 보는, 혹은 처음 대하는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영계의 일이니 계시니, 혹은 영적인 사실이니 하는 말을 듣게 될 때, 그 영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한때, 일시적인 일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이러한 영적인 사실을 체계화시켜 가지고, 이것을 우리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진리로 어떻게 규정지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잠깐이지만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영적인 세계의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보고 듣고 하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시켜 체계화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문제인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세계정세를 바라볼 때, 금후의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금후의 세계도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공산세계도 역시 분열된 방향을 취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될 때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인류의 금후의 문제를 책임지고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친히 인도해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것을 누구나 다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분이 목적하는 바와 그분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를 믿는 지도자 층에서도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알고 지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길을 가는 것도, 혹은 교회가 부패하는 것도 하나님이 확실히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먼저 문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해도, 하나님 혼자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 만물지중에서 인간을 제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갈 길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방향에 있어서 하나의 종교니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있어서 이 세상을 지었다면, 하나님을 작가로 볼 수 있고 이 세상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말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힘이 있기 전에 여기에는 반드시 작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계속하지 않고는 힘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되고, 작용을 하려면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하는 데는 둘 중에 어느 한 편이 손해를 보는 입장에 서서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을 해서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거기에는 주체의 목적과 대상의 목적이 보다 자기들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플러스되는 요건이 없게 될 때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즉, 손해 되는 데는 작용을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저녁 여기에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는 손해보기 위해서 오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신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바라서 온 것은 틀림없습니다. 여기에 올 적보다도 마이너스가 될 때는 이 작용을 계속하래도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볼티모어에 번화가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거리에 나가는 사람 중 '나 오늘 손해보기 위해서 거리에 나간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전부가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보탬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바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보탬이 없게 될 때에는 그 움직임은 계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중단되는 것입니다. 무슨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도, 갑과 을이 서로 주고받으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자기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목적을 발견해야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아무도 없는데 이런 행동(몸짓 하심)을 하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잡기 위해서라면 미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에 이 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혼자 방에서 웃으면서 춤을 춘다면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누구나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컵을 하나 들고 소리를 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우주의 중심되는 절대자인 하나님이 있다고 합시다. 그 하나님이 만약에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 웃고 지껄인다면 그 하나님은 이상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조그마한 무엇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걸 보고 하나님이 말씀을 한다든가 웃는다든가 하면 그 하나님은 정상적인 입장에 선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작용과 힘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자기들이 이익될 수 있는 원칙에 입각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화학실험실에서 어떤 원소면 원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화학실험을 한다고 합시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의 힘을 가해 가지고 어떤 원소면 원소끼리 합하려고 해도 절대 합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원소가 상대가 돼서, 서로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합해 가지고 자기 자체가 지금보다도 더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만 생기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남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하고 여자, 그 둘이 합하는 데는, 남자에게 조금만 마이너스되든가 여자에게 조금만 마이너스되든가 하게 된다면 암만 합하라 해도 안 합니다. 그렇지만 그 둘이 지금보다 조금만 나은 것을 바라보게 될 때는, 혹은 나아질 수 있는 곳을 향하게 될 때는 작용을 하고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합하는 것이 무한한 가치가 있게 될 때에는 영원히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기 위해서는 작용을 해야 되고,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결국은 주체와 대상이 더 커질 수 있는 곳에서만 존재가 계속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이 커 가지고 큰 우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되고 또 상대가 돼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작아지는 데도 작용을 하게 된다면 원소의 가치도 파괴될 것입니다. 상충되는 작용이 있어 가지고는 하나되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서로 보강하고, 서로 더 발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데서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중요시하는 철학, 변증법이라는 것은 크나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 관념을 갖지 않는 존재는 없는 것이요, 보다 나은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곳에는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두고 보면, 우리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 원인이 있어 가지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양심작용이 있습니다. 양심작용은 우리를 선한 곳으로 가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양심작용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나를 관리하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가지고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양심은 '야!' 하고 제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나를 관리하면서 작용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작용하기 위하여는 주체와 대상 관계가 설정되지 않는 데는 작용을 안 한다고 아까 말했습니다. 손해날 수 있는 결과를 바라보면서는 작용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나을 수 있는 가치가 설정될 수 있겠기 때문에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작용을 두고 볼 때, 양심이 결과가 되든가 주체가 되든가 하는 어떠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주체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이제부터 수천년이 흘러가더라도 양심의 작용에는 혁명이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절대적이니까 그 주체가 변하지 않는 한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양심이 작용할 수 있는 주체가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주체가 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주체를 우리는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하든가 뭐 갓(God)이라고 하든가 그건 국가 국가마다 다 있어요, 이름은 무엇이건 그 주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구요. 아까 말한 거와 같이 우리 인간은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결과는 원인을 따라서 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를 가만히 보게 된다면, 이것은 신비의 왕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몸뚱이 하나로 의학박사 된 사람이 아마 세계에 수십만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것을 연구해 가지고, 되어진 결과를 증거하는 입장에서 학위를 딴 것입니다. 그 닥터(doctor)들이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의 조상을 따져 올라가면 맨 처음 조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자, 그러면 우리 인류시조를 아담이라고 한다면 그 아담 할아버지 한 분을 중심삼고 생각해 봅시다. 그분은 태어날 때에 땅에 태어났습니다. 땅에 태어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내가 땅에 나가게 되면 천체에 태양이 있기 때문에, 그 태양을 보기 위해서 눈은 요렇게 생겨야 된다' 하는 생각을 해보고 태어났다고 봅니까? 땅에 태어날 때 그 눈이 땅뿐만이 아니라 공중의 태양빛을 볼 수 있게끔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깜빡거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사열에 의해 가지고 땅에서 수증기가 증발되고 눈에서 수증기가 증발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증발되면 안 되겠으니까 축이기 위해서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깜빡거리겠습니까? 여러분, 눈을 한 30분 깜빡거리지 말고 그냥 있어 보라구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눈썹을 보라구요. 이 속눈썹이 뭐하러 여기에 붙어 있어요? 이 눈썹이 공중에는 먼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렇게 돼 있겠어요? 벌써 공중에는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기에 와 붙었다구요. 여러분, 눈썹을 보라구요. 이놈이 없게 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이것이 없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서 흘리는 땀은 틀림없이 여기에 저장된다구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긴 때문에 벌써 사람이 서서 다닐 것을 알고, 떡 잘 만들어 왔습니다. 이 눈썹이 요렇게 나지 않고 이렇게 났다구요. 여기에 들어가면 안 된다구요. 잘 해 놨다구요.
그 다음에 눈을 보게 되면, 눈이 움푹 들어가지 않고, 쏙 들어가지 않고 요게 살짝 드러나 있다구요. 눈은 그렇다 하고, 또 이 코를 보라구요, 코. 코는 왜 이렇게 생겼어요? 이게 뒤집어져 있으면 어떻겠어요?(웃음) 여러분, 코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코가 왜 위에는 좁고 밑으로 내려오 면서 이렇게 넓어지느냐 하면 좁은 대로 내려왔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입에 전부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넓게 골을 쳐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금이 없는 사람 있어요? 이게 이렇게 안 되고 요렇게 된 사람 있어요?(웃음)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금을 그어 왔습니다. 그리고 입은 쑥 안 들어 갔다구요. 잘 되어 있다구요.
이런 것을 보게 되면 그 무슨 장난으로, 자기 멋대로 한번 해보고파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코까지도, 눈은 그렇다 하고, 코까지도 공기 중에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요 귀까지도 먼지가 있는 것을 알았어요. 귀에 털이 나 있거든요. 또, 사람의 귀는 정면으로 말을 들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높은 산맥, 낮은 산맥 잘 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손도 보라구요, 손. 전부 다 앞을 중심삼고 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멋대로 적응하기 위해서 됐다고 하는 작자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돼서 그러느냐? 보면, 전부 다 보면 신비의 왕궁입니다. 신비의 왕궁이라구요. 그것이, 제멋대로?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박물학자도 당치 못하고 어떠한 학자도 당치 못할, 상충이 없는 구체적인 내용의 지식적인 기반 위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춰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 이런 사람이…. 우리 조상이 나올 때 전부 모르고 나왔지만, 그 나온 사람은 몰랐지만, 나오기 전에 안 분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다는 사람 있으면 대답해 보라구요? 다 알았습니다. 다 안 결과로 태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안 분이 누구냐 하면, 맹목적이 아니예요. 하나의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인생으로 태어날 수 있게끔 한, 구체적인 지식의 중심이요 모든 앎의 근본되는 그분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부터는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볼 적마다 '아, 신비스럽구만' 하며 자기 얼굴서부터 자기 사지를 감상하면서, 오늘 저녁 말씀드린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있는 것을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있다고 같이 결론을 내립시다. 하나님은 있다! 자,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추진합시다. 아까 말한 대로 하나님은 절대자이신데, 그 절대자도 혼자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여기 이 나라의 닉슨 대통령도 혼자 있어 가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여기에 온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되는 사람이 그러니까, 원인 되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도 혼자 있어서는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도 상대가 필요한데, 상대를 취하는 데는 이 만물지중에 누구를 상대할 것이냐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다이아몬드를 상대로 하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는 식물이, 생명이 있는 식물이 하나님 앞에는 더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면 식물을 상대로 하겠습니까? 그것보다도 조금 나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도 나은 것을 상대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물? 동물 중에 누구를 상대로 하겠느냐 하고 묻게 될 때는 유치원 학생들도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악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을 상대하겠습니까? 그거야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사람 중에도 최고의 존재를 하나님이 상대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서나 다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큰 교단의 총회장이 있으면, 그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를 상대로 하겠느냐 할 때,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요러요러요러한 조건에 부합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니까 하나님도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나 여자들도 결혼하게 될 때는 세계 제일가는 여자, 제일가는 남자를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절대적인 주체이니만큼, 그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바라는 어떠한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었다고 하게 될 때, 지은 그분의 목적과 지음을 당한 사람의 목적이 달라서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고 사람도 좋아할 수 있는 제 3점의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최고의 하나님이니까 중간쯤 되는 자리를 바라지 않는다 이거예요. 최고, 최고를 바란다구요.
그 최고의 자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가 인간이라면, 인간이 그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려면 최고의 자리까지 자기를 이끌어가는 욕망이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 아무리 못생긴 부인이라도 세계 대통령이 있다면, 그 세계 대통령의 부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높은 자리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에 서 가지고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봤으면….여러분들은 안 그렇습니까? 뭐 웃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니까 다 그런 모양이군요. 그 다음에는 온 세계 만민 앞에 들림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만 허락됐느냐 이거예요. 자고이래로 지금까지, 영원히 우리 인간에게 그런 양심작용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상관할 수 있는 최고 절정의 표준을 하나님도 만나려고 하고 우리 인간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주체를 대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양심적 지향성을 주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 사람의 욕망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를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이 하나님이 있는 것을 발견해 가지고, 하나님을 알아서 모시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모시는 것도 물론 행복이겠지만, 하나님 속에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보화가 있다고 합시다. 즉,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는 고 사랑을 점령하고 싶겠어요, 점령하고 싶지 않겠어요?
만일에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사람한테 하나님을 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평화니 행복이니 무슨 이상이니 하는 것이 사랑을 빼놓고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하나의 표준으로 바라는 최고의 자리요, 우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최고의 자리가 어디냐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자리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무엇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예요? 그 자리를 찾아보니,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싶다는 거예요, 아버지. 그것이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욕망의 종착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비천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이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있음을 확실히 알고, 그럴 수 있는 길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춤만 추겠어요? 그 길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눈에 볼 수 있게끔 해서, 그렇게 되자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게 되면, 세계적으로 무슨 가입을 한다든가, 갈 수 있는 길을 신청하라고 하면 아마 세계 30억 인류가 한꺼번에 동원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4년만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별의별 놀음을 다 하는데,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면 무슨 짓을 안 하겠느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면 여러분은 결사적으로 놓지 않을 겁니다. 내가 놓으라 해도 안 놓을 거예요. 만일 내가 가르쳐 주게 되면 놓지 않을 거라구요.
그러한 고귀한 가치의 자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본심은 도달하기에, 미치기에 불가능한 것 같은, 꿈 같은 소망과 꿈 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그 아들딸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내 것 만들고 싶고, 세계를 뒤흔들고 싶고, 누구보다도 높고 싶다는 것은 창조원칙으로 부여한 인간의 당연한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런 인격기준이 아닌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절대자 하나님과 관계된 사람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절대자가 만약에 우리 인간을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하겠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끼리 붙안고는 요렇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 있어요? 붙안고 돌아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기가 있더라도 이래 가지고 이러구 좋아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너와 나라는 거예요. 나, 대상은 제2의 나예요. 그리고 제2의 나와는 하나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희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이 되어 있습니다. 상하관계입니다, 상하관계.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는 위에 있고 나는 아래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인간의 욕심은 아버지의 자리에 나도 한번 올라가야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자리에. 우리 인간의 욕망은 그런 겁니다. 그걸 하나님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더구나 이렇게 상하관계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부여하고 싶은 것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결국은 어디에 계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랑받는 그런 인간이 되었더라면,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에 들어가고 아담은 하나님의 밖에 있다는 거예요. 안팎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무엇이냐?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안팎이 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외적 하나님의 자리가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요, 해와의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 이 우주를 창조한 그 하나님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큽니까, 작습니까? 조그마해요, 커요? 하나님이 암만 크다 해도 그 큰 하나님까지도 전부 다 몰아넣고도 남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락되어 가지고 예수믿고 구원받은 사람, 구원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성전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상의 입장에 선 사람이야 성전 중의 성전이지요.
지금까지 기성교회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인들은 창조주와 피조물과는 하나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요, 우리는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 몸이 거룩한 것입니다. 이 몸이 거룩하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가치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적 하나님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이러한 본연의 인간의 가치를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하고 우리 인간이 안팎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냐? 그것으로 우리 인간이 가만히 있을 것이냐? 하나님 가운데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인간이 '아, 그것도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할 것을 하나님은 알았다는 거예요.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걸 또 갖고 싶어할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 가만 보니까 하나님은 창조주고 나는 지음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도 내가 한번 가져 봤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만들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느냐 하는 것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이 놀라운 일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여러분, 창세기 1장 2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니 1남 1녀더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계시기 위해서는 하나님 속에 주체 대상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즉, 하나의 하나님 가운데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 씨는 그 근원을 닮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근본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인이기 때문에 그 원인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지고 모든 씨는 열매맺히는 것입니다. 씨를 보면 무슨 씨든지 두 쪽이 한 꺼풀에 씌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나님이 그렇게 생겼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기에 플러스 마이너스 성격이 있어 가지고 생명의 근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상대적으로 지어 놓았는데, 그 주체적 형상이 아담이요 상대적 형상이 해와인 것입니다.
이걸 왜 갈라놓았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 여자를 완전히 별개로서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 갈라놓은 것입니다. 남자가 완성하고 여자가 완성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둘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합하기 전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받고 나서 장성한 다음에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 만나 가지고 부부가 되는데, 그것이 가정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둘이 이렇게 합하니까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주체되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하던 일을 대상권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강한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처럼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로 가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사랑의 힘을 통해 가지고 아들딸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아담 해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도 아들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갖출 뿐만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짓고 사랑하던 그 재미, 그 묘미까지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아들딸을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 하나님 가운데 자녀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이 있으며 부모의 사랑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몽땅 인계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원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없는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아라고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들딸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를 영원히 갖추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가정이 딱 갖추어 놓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내에 들어와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서, 절대적인 하나님으로서 인간을 대하고 싶었던 하나의 모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온 사람 가운데 '그렇게 된 사람 있소. 나 그렇게 되었소'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결론 내려도 섭섭해 하지는 않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는 지금 간단히 몇 분 동안에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탐구해 들어가서 알아보고 알아보니 여기에 결론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특권의 가치,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여 자기의 존재 위치까지 상실한 세계인류가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은 물건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을 보면 마음과 몸이 상반된 목적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우리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마음과 몸이 왔다갔다하는 싸움을 하면서 죽어가고, 왔다갔다하는 싸움을 하면서 죽어가고…. 그러면서 인류역사는 엮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용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내일 모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튼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안에서 두 목적을 지향하는 요소가 싸우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면 이것이 넷이 됩니다. 열 사람이 되면 스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는 불행의 세계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되어 있는데,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이러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냥 내버려 두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고장이 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배후에서 이것을 수리하기 위한 수리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냐? 그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을 중심삼지 않은 종교는 없는 것입니다.
신하고 관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지 않으면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그런 배경을 통해서 수많은 종교 형태를 벌여 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비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맨 처음에 이 양복을 만든 사람이 세계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양복을 만든다고 생각해 가지고 만들었겠어요? 맨 처음에 이 양복을 지은 사람은 세계 사람들이 다 입을 줄 몰랐다구요. 편리하니까 입게 된 거라구요. 이것보다 더 편리한 것이 나오면 이것을 집어치우고 더 편리한 것으로 또 바꿔 입는다는 거예요.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후진국이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다 그런 방식에서 좋은 것을 따라가려는 것입니다. 즉,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저급한 종교에서부터, 샤머니즘 같은 종교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좀더 좋으면 바꿔치고 좀더 좋으면 바꿔치고 하면서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에 와서는 4대 종교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수리 공장을 네 개 남겨 놓았다 그말이라구요. 종교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없다고는 말 못하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요 몇 해 동안에 하나님을 저버리는 운동이 급속적으로 세계화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이상한 징조라구요.
그것은 20세기 후반기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금보다 좋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끔 못 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외적인 세계보다도 몇 배 가치 있고, 더욱 훌륭하고, 좋다는 것만 가르쳐 주면 오지 말래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부터 종교인들이 해야 할 세계적인 숙제 입니다. 종교의 최고 책임자들은 이것을 해결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이루어 놓은 전통이니 틀이니 하는 것이 깨질까봐 급급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더라도 그렇게 되어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을 통해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치워 버리는 거예요. 지금 목사나 신부 하게 되면 '에헴' 하고 있지만, 그들은 구세대에도 뒤떨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학자까지도 요리해야 돼요. 누구든지 요리해야 됩니다.
자, 결국은 하나님이 종교를 통해서 규합해야 되는데, 이제 4대 종교끼리 싸우고 있다구요. 서로 내가 잘났느니 네가 못났느니 하고 있고, 같은 교파끼리도 네가 못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하고 있다구요. 여기 선 사람도 지금까지 이치에 맞는 논리를 터로 해서 새로운 종교를 주장해 나왔는데, 전통을 자랑하는 기성교회들은 지금까지 반대했다구요. 반대하기 전에 터놓고 연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4대 종교 가운데서 제일 좋은 종교가 어느 종교냐, 으뜸되는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고려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세계 4대성인을 봅시다. 세계 4대 종교라 하면 첫째는 기독교요, 그 다음에는 불교요, 그 다음엔 유교요, 그 다음엔 회회교를 꼽습니다. 그 책임자들을 4대성인으로 우리는 꼽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4대성인 중의 한 사람이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인인 것입니다. 지식을 중심삼고는 생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하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을 통해 가지고 우리 타락한 인간을 죽고 사는 길로 가려 나오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가 아니고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마호메트도 전부 다 종교의 도주라구요, 도주,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상이요, 그들이 바라는 사상은 세계적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것은 한 나라를 위주해 가지고 난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주한 사람입니다.
성인들 가운데는 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 나라의 백성들로부터 배반받은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구요. 공자 같은 양반도 그랬다구요. 마호메트 같은 양반도 그 당시에는 그 사회로부터 규탄을 받았다구요.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궁중을 버리고 자처해서 나갔지만, 그도 역시 괴로운 자리, 외로운 자리에 나선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볼 때, 그러면 하나님이 세운 세계적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 누가 중심이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봐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몇 가지 종류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아들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종이 있어야 돼요, 종. 종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떨어졌기 때문에, 어디까지 떨어졌느냐 하면 종의 자리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종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자리, 그 다음에는 아들의 자리, 최후의 자리는 부모의 자리, 부모….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 가운데는 종의 종교가 있고, 양자의 종교가 있고, 아들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공자 같은 양반은 하늘을 가르치는 데는 막연히, 선을 행하면 복받고 악을 행하면 벌받는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습니다. 석가 같은 양반은 신을 긍정했지만 법을 중심삼은 신으로서 인정했지, 인격적인 신은 설파하지 못했습니다. 마호메트교는 기독교를 이어받은 종교지마는 코란경과 칼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칙적인 기준에서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어땠느냐?
그러면 우리가 제일이 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표준해 가지고 골라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까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야 되고, 그 다음엔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이 다시 찾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얼마만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중심 종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예수도 그 원칙을 바라보고 일치화시키는 일을 했다면 그야말로 중심적인 종교책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보게 된다면, 어느 종교나 고행을 안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몸을 쳐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방법은 다 같습니다. 내용에 들어가 가지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자격을 우리가 알아봅시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했습니다. 역사 이래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즉, 예수는 자기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한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을 보게 되면,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새로운 하나의 주권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로 태어났으니 그 남자 앞에 설 수 있는,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신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엄청난 하늘의 사명을 책임지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나라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가정을 갖춘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목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정적 터전을 갖지 못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남긴 소원이 무엇이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신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오실 주님을 바라면서 신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제 끝날이 되면 주님이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에서는 주님이 오게 될 때에 구름 타고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을 보게 되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승천할 때, 땅에 있는 베드로한테 천국 열쇠를 주고 갔습니다. 땅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땅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구름 타고 와 가지고는 이런 것을 전부 다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신랑이니까 신랑 앞에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는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보게 되면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지만,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주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신부를 찾는다면, 그 신부는 여자인 것입니다.
묵시록에 있는 어린양잔치라는 말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면,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부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인데 그것이 깨졌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맞추기 위한 놀음을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신부를 맞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조상, 타락한 부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서 잃어버렸으니 묵시록에 와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지금까지는 종의 종교, 혹은 양자의 종교, 혹은 아들의 종교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부모를 믿고, 부모 앞에 사랑만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부모를 중심삼고 새로운 문화의 출발을 볼 것이며, 새로운 전통이 설정될 것이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는 역사를 해서 새로운 종족을 편성할 것이고, 새로운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래 하나님이 구상하고 이상하였던 가정의 터전이 땅 위에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을 지도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자 인간의 뜻이 여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요,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후의 행복의 세계와 희망의 세계는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하나님과 같은 창조의 능력을 같이 감미할 수 있는, 이런 최대의 권한을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지상천국이요, 그것을 통해서 천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세계종교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이만 끝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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